• 최종편집 2024-05-17(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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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회의에서 고(故) 이건희 회장은 파격적인 변화를 선언했고, 이 회장의 발언은 훗날 ‘혁신’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삼성이라는 대기업의 효과 때문인지, 혹은 시대의 흐름 때문인지 30년 전에 시작된 ‘변화’의 바람은 그치지 않고 지금은 태풍이 되어 몰아치고 있습니다. 

시대 변화의 속도가 빠릅니다. 변화가 대세로 자리잡아 그 흐름을 타지 못하면 금방 도태될 것만 같습니다. 

30년 전 대기업 회장은 “아내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고 했고,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변해야 살 수 있다. 혁신만이 살아남을 길이다. 변하지 않으면 곧 죽음이다”고 소리치고 있습니다. 이제 변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시대입니다. 

세상은 이미 변화와 혁신의 중요성을 알고 하루, 분, 초 단위로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는데, 그렇다면 교회는 지금 어떤 변화를 맞이하고 있으며, 이 시대 교회의 생존 방법이 무엇이라 생각하는 것일까요?


‘변화’는 사물의 성질, 모양, 상태가 달라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도 과거와 비교하면 교회를 구성하는 성도들의 상황, 세상이 인식하고 있는 교회의 모습 등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세상의 변화 앞에 교회도 변화의 길을 가야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무엇을 변해야 할까요? 

 

이불변응만변以不變應萬變 이란 말이 있습니다. “변하지 않는 것으로 만가지 변화에 대응한다“는 뜻입니다. 

세상은 매일 만가지 변화를 겪습니다. 사람들은 세상의 변화 속도에 맞추기 위해 급급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교회는 세상의 수만은 변화보다 더 중요하면서도 결코 변하지 않는 진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복음입니다. 

 

세상은 변하지만, 변하는 세상에 대응할 수 있는 것, 만가지 변화를 한 번에 바꿀 수 있는 것은 바로 변하지 않는 복음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세상의 변화를 따라가거나 혹은 변화를 또 다시 바꾸기보다는 변하지 않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 더 집중해야 합니다. 우리 주위에 인생의 참 의미를 알지 못한 채 변화의 소용돌이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교회는 이들에게 인생의 의미, 복음의 가치,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를 전해야 합니다. 만족이 없고, 변화를 위한 변화만 계속되는 현실에서 하루 하루 자족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 구원의 감격으로 나와 이웃을 섬기는 삶이 어떤 행복을 가져다 주는지를 알려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사명입니다. 교회의 가장 본질적이면서도 핵심적인 사역인 ‘영혼구원’이야말로 세상의 변화에 가장 ‘혁신적’으로 대응하는 방법일 것입니다. 이 일을 소홀히 한다면 교회는 더 이상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교양을 쌓는 곳도, 친목 도모를 하는 곳도, 공부를 하는 곳도 아닙니다. 복음의 꽃을 피우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이 진리를 아는 성도들은 교회의 파수꾼 역할을 해야 합니다. 

파수꾼은 첫째, 깨어있어야 합니다. 파수꾼은 경계하여 지키는 사람입니다. 지키는 사람이 졸거나 제대로 감시하지 않으면 경계는 무너지고 안전은 위협 받습니다. 이 시대 파수꾼의 역할을 하는 성도들은 깨어있으면서 복음의 진리를 지켜야 합니다. 이미 많은 부분에서 세속화된 한국 교회가 더 이상의 경계가 허물어지지 않도록 깨어서 지켜야 합니다. 


두 번째는 깨어나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파수꾼의 역할을 하는 성도는 본인도 깨어있어야 하고 더불어 잠자고 있는 성도들도 깨워야합니다. 그래서 다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교회와 성도가 잠을 자면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습니다. 혹시, 최근에 하나님의 말씀이 잘 들리지 않는가요? 그렇다면, 내가 영적으로 잠자는 상태는 아닌지, 우리 교회가 영적으로 깊은 잠에 빠진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세 번째는 전해야 합니다. 

파수꾼은 지키면서 동시에 전하는 사람입니다. 성도는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나의 삶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사명이자 핵심입니다. “저는 죄인이라서 너무 많은 죄를 지어서 제대로 전하지 못하겠어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우리가 죄를 지어서 죄인인 것이 아니라 죄인이기에 죄를 짓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기에 죄를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매일 십자가 앞에서 내 모습을 그대로 올려드리기에 죄인임에도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 말했습니다. “안된다고 말할 때가 가장 적합한 시기”라고.

예수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교회, 복음의 생명력이 흘러 넘쳐 성도의 삶으로 나타나는 교회, 그래서 복음을 전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는 교회가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합니다. 이 복된 복음을 바쁘다는 핑계로 잊고 있지는 않습니까? 다시 복음의 본질로 돌아가 전할 수 있는 시기가 바로 지금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과 이심전심으로 하나가 될 때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고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역시 예수님과 한마음이 되어 복음의 파수꾼으로 지키며 전하는 삶. 진정한 변화와 혁신은 바로 복음을 전하는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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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 변함에서 전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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