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7(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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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부활”이란 종교와 학문과 일상을 불문하고 언제 어디서나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단어라 할 수 있습니다. 올해에도 서구와 한국 기독교계에서 지키는 부활절을 맞이하여 부쩍 “부활”이란 말이 각 영역에서 등장하는 빈도가 늘었습니다. 부활절 특수를 노리기라도 하듯 부활주일 이틀 전에는 「7인의 부활」이라는 드라마 방영이 시작됩니다(SBS). 덧붙인 제목들도 상당히 종교적(?)입니다. “욕망의 진화인가 참회인가?” “악인들은 속죄할 수 있을까?” 세속적인 이 드라마가 과연 얼마만큼의 부활절 프리미엄을 누릴지 궁금합니다. 종교적인 작품이라 해서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2021년 고(故) 이태석 신부의 일대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 「부활」도 당시 부활절을 며칠 앞두고 개봉되어 상당한 반향을 불러온 바 있었기 때문입니다. 작년 2월에 개봉되었던 미국 영화 「예수 혁명」도 고난주간과 부활주일을 거치면서 엄청난 화제몰이와 흥행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부활은 그 자체로 가치중립적인 개념입니다. 썩 좋지 못한 관례나 전통이 부활한다면 반길 사람이 별로 없겠지만, 반대로 되살아난다면 좋을 제도나 현상이 부활한다면 많은 이들이 쌍수를 들고 환영하지 않겠습니까? 경제계로부터도 이번 부활주일을 둘러싸고 두 가지 부활의 소식이 들려옵니다. 하나는 ‘K-방산의 부활’입니다. 1971년 북한은 화포에 탱크까지 생산하는데 한국은 소총 한 자루 만들 능력이 없는 나라였던 사실을 감안하면 최근 한국 방위산업의 발전은 괄목상대(刮目相對)라는 말이 부족할 정도입니다. 미국의 한 방송(CNN)은 “한국 방위산업이 이미 메이저리그(defense major league)에 진입했고 미국과 NATO를 대신해 ‘자유민주주의의 무기고’(arsenal of democracy)’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2022. 8. 17). 하지만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국의 급변하는 정치 상황 탓으로 한국 방산업계가 위기라는 말이 떠돌기도 했으나 최근 들어 다시 기술 혁신을 이루어낸 몇몇 업체의 분발로 ‘K-방산의 부활’을 꿈꾸게 되었다는 소식입니다.

 

일본 발 경제계 뉴스도 하나 있습니다. 지난 달 일본 정부는 규슈의 양배추밭이었던 곳에 세워지는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업체) TSMC의 제2공장 건설에 6조 5천억을 투자한다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이미 구마모토에 위치한 제1공장에도 4조 이상을 투자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일본 정부는 한 때 전성기를 구가했던 반도체 산업의 부활을 위해 다양한 업체에 대규모 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는 소식입니다. 반도체 산업만큼 경쟁이 치열한 분야도 드문데, 일본 반도체 산업의 부활은 한국의 반도체 산업에는 그리 반가운 소식만은 아닐 테지요. 물론 협력하는 분야도 많고 또 저마다 경제가 살아나야 동아시아 및 세계경제의 발전에 도움이 되겠지만 그래도 윈-윈(win-win) 게임이나 다름없는 살벌한 경제 전쟁의 한복판에서 일본의 부활은 한국으로서는 달갑지 않은 소식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우리는 지금 거의 전쟁 같은 의료 대란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진료권 부활”이라는 개념이 간혹 지면에 다시 등장하곤 합니다. 건강보험 통합과 의약분업 및 고속철도 도입으로 인한 전국 일일생활권화 등 다양한 요소가 얽혀있기 때문에 풀어내기가 좀처럼 쉽지 않은 의료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제기되어 왔던 대안의 하나인데 일정 지역을 벗어나서 진료를 받고자 하는 경우 추가 비용을 부담하게 함으로써 일부 지역을 향한 의료 과잉 수요를 줄여보고자 하는 방안입니다. 단순히 의료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요소가 개입되어 있어서 복잡한 국면입니다만, 진료권의 부활이나 어떤 식으로든 국민의 건강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번 논쟁이 서로 간 협의와 조정으로 인해 조속한 시간 내에 해결되기를 바랍니다. 기왕 정치 이야기를 꺼냈으니 지금 모든 화제의 초점이 되어 있는 선거에 관한 부활 소식을 하나 더 전합니다. 작년부터 ‘지구당의 부활’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습니다. 해방 후 수십 년 존속했으나 불법적 정치자금의 온상으로 퇴출되어 버린 지구당 시스템의 부활을 현재 소위 ‘팬덤 정치’의 폐해를 해소하기 위한 대안으로 들고 나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번 선거를 둘러싸고 혹은 추후 과연 지구당은 부활할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 부활을 둘러싼 몇 가지 부활들을 다루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진짜 부활은 무언가의 가치 추구를 위한 수단이 될 수 없고, 이익이나 특수와 거리가 먼 그 자체로 진정한 목적이요 역사적 사실입니다. 부활은 그 진위 여부를 둘러싸고 신앙적 논쟁은 있을지언정 그 자체로는 죽음에서 부활이란 기쁨을 모든 이들에게 선사하는 좋은 가치를 지닌 소식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앙숙과 원수를 오히려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게 만드는 아름다운 윈-윈(win-wim)의 소식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자의 몸의 부활 소식은 질병이나 고통이나 우울이나 심지어 사망까지도 초월하게 만드는 가장 건강한 소식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의 부활이란 모든 부패와 타락을 씻어 정결하게 만드는 지극히 순수한 정치적 메시지라 하겠습니다. 부활을 둘러싼 부활들을 보면서 그리스도의 진정한 부활을 더욱 사모합니다. 그리고 그 진짜 부활을 닮아 모든 영역에서도 참된 부활이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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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부활을 둘러싼 부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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