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2-2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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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퇴 1년이 되었다. 대한예수교 장로회 헌법이 명시 한 정년을 지키지 못하고 조기 은퇴한 것은 분명 법리적으로 잘못임을 나는 잘 안다. 그래서 동역자들에게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헌법이 정한 정년을 지키는 것이 은혜요, 질서라는 것을 요즈음 강조한다. 그래도 후회하지 않은 이유는 일찍 그것을 마음에 담았고 개인적인 서원과 말씀사역의 비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보다 건강할 때 나에게 주신 은사의 하나인 말씀 사경회에 전념하고자 한 것이었다.
  나는 가난과 병약함과 고난의 환경을 극복하고 여기까지 왔다. 대형교회를 담임하면서도 늘 이 부분이 마음자리에서 어느 한 날도 떠나지 않았기에 조금은 일찍 은퇴하여 농어촌 개척 산골교회를 다니면서 자비량 부흥사경회를 인도하면서 사도 바울의 흉내라도 내고 싶었다.
  그래서 2년 단위로 부흥사경회 일정을 약속하는데 52주 매 주일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50여명 미만의 교회의 초청만 허락하여 자비량 1일 부흥회로 헌신하고, 주중에는 조금은 갖추어진 교회들의 초청을 받아 말씀 사역을 하고 있다. 운전에 익숙하지도 않고, 숙식도 대형교회 시무할 때처럼 갖추어진 환경이 아니어서 이래저래 불편함이야 말할 수 없지만, 칠순에 이르는 나이에 아내와 함께 번갈아 운전하고 차내의 찬송과 말씀을 들으면서 어촌 길, 산골 길, 고속도로를 주행하노라면 천국이 따로 없다는 생각을 한다. 휴게소마다 들러 아내랑 마주앉아 차 한 잔 나누면서, 평생을 목회 뒷바라지만 하고 여기까지 온 아내에게 쉼의 은총을 갖게 하지 못하고 고달픈 여정을 갖게 하여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면, 아내는 “이보다 더 행복은 없다.”고 웃음을 짓는다.
  조기은퇴를 하게 될 때 교회에서는 목회와 관련된 다양한 뒷바라지를 해 준다고 결정하였지만 이래저래 뒷말이 있어 나는 거절했다. 목사라는 이름의 거룩한 자존심 하나로 오늘에 이르렀는데 잡다한 흠집 내기로 목사의 이름을 더럽히는 것은 내 자존심으로는 허락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아프고 힘들고 외롭지만, 아내와 함께 운전을 하면서 여전히 서원한대로 사도 바울의 복음사역을 흉내라도 내고 싶은 하루를 열고 닫는다.
  사도 바울의 3차 전도여행의 여정을 나는 2차 여정까지는 돌아보았다. 그때 편리한 교통수단을 통해 사도 바울의 전도여행의 여정을 돌아보면서 참 많이 울고 웃었다. 그 때 결심한 것이 나도 남은 생애 바울처럼 나에게 주어진 은사를 따라 헌신하리라 서원했었다. 사도 바울이 살았던 시대상황과는 다르게 말할 수 없는 편리한 교통수단과 환경이지만 사도 바울의 마음을 담고 그가 복음전도에 일생을 바친 그 삶을 흉내라도 내고 싶었다.
  경기도 파주에서 전라도 해남까지 이르는 곳마다 눈물행전을 쓰고 있다. 35명 정도 모인 어촌교회, 가장 젊은 교인이 62세로 90% 이상이 70대를 넘긴 어르신들만 사는 산골교회, 어른이라고는 5명 정도, 어린아이들이 10여명 정도 모여 혼신을 다하여 박수치며 찬송하고, 말씀마다 아멘을 목이 터지라고 외치는 개척교회, 통성기도를 시켜놓으면 통곡이 터지면서 차마 그 기도를 멈추게 할 수 없는 상황에 강단에서 강단 아래서 함께 울고 또 울면서 예배를 드리는 시간, 예배를 마치면 “목사님, 한번만 안아줄 수 없어요.”하는 허리 굽은 할머니를 품에 안고 그냥 소리 없이 눈물을 쏟아낸 시간이 엮어지는 주일 예배는 감동과 행복, 아픔과 고뇌, 기쁨과 축복이 뒤엉킨 시간이다.
  주일 오전예배를 마치고 나면, 점심시간은 못난 목사를 주님처럼 영접하며 예배를 준비한 교인들이 집에서 각자가 갖고 온 온갖 반찬들을 앞에 내놓고 오랜만에 밥을 했다고 자랑하듯 기뻐하면서 시골특유의 밥그릇 위로 밥이 올라오도록 고봉으로 담은 밥그릇을 앞에 놓고 “목사님 목사님, 이것 다 잡숫고 또 잡수셔요.”하면서 눈가에 눈물 자국이 남은 그대로 강사라고 섬기는 연로하신 권사님의 표정은 문자 그대로 천사였다.
  그렇게 주일 예배를 드리는 시간은 차라리 울음이라는 표현이 맞다. 찬송하면서 울고, 기도하면서 울고, 말씀 선포하면서 울고, 그렇게 눈물 행전을 기록하면서 오늘도 내일도 말씀 사역을 한다.
  은퇴하고 난 후, 선배 목회자들이 충고했던 것처럼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는 것은 고사하고 온갖 아픔과 억울함과 고통스러운 일을 당한다는 말을 귀넘어들었던 현역시절이 회고된다. 그렇게 웃고 울면서 함께 했던 평행감축의 목회 현장이었는데 바통 터치가 끝나자 말자 이방인이 된 듯 돌변하는 교회 현실을 보면서 충격과 놀라움에, 이것이 내가 목회한 곳이 맞는가 싶은 상황에 트라우마(trauma) 현상에 실어증으로 유구무언이 되었다. 그러다가 주님 가신 길을 묵상하면서 성령의 어루만지심을 입고 일어나 내면의 아픔을 안고 억울하고 참담한 일을 당하면서 할퀴고 쥐어뜯는 일을 겪으면서도 골고다 언덕의 주님을 생각하면서 그래도 가야 할 길을 걷는다.
  사도 바울이 족보와 학벌과 명예와 권력과 부귀영화를 포기하고 말씀의 두루마리를 들고 그토록 모진 매를 맞고 헐벗고 굶고 병들고 동족과 이방인들에게 수모를 당하고 바다와 강과 시내의 위험을 겪으면서 오직 말씀사역을 하면서 침묵하면서 주님가신 길을 걸었던 것처럼, 나는 오늘도 그 사도 바울의 흉내라도 내고 싶은 마음에 여전히 말씀 사역의 하루를 열고 하루를 닫는다.
  그러면서 다른 생각이 없다. 주님이 어서 오셨으면 좋겠다는 마음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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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임중 칼럼] 오늘도 사도 바울의 흉내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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