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12-01(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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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는 홍해를 가르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너게 하셨습니다. 백성들은 감격하여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그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르 광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사흘길을 걸었지만 물을 얻지 못했고, 마라에서 물을 얻었으나 마실 수 없는 쓴 물이었습니다. 홍해에서는 넘치는 물로 인해 위기를 만났던 그들이 이번에는 물이 없어 위기를 만났으니, 인생이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어려운 사태가 발생할 때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은 어떻습니까? 우선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을 것입니다. 그 후엔 책임 추궁을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물이 없는 상황에서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사태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요? 모세 탓일까요? 여기서 매우 곤란한 상황이 발생하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의 탓!>이라고 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수르 광야로 들어선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결과였습니다. 출애굽기 13장 21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물 없는 수르 광야로 들어간 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면 <하나님의 탓!>이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요즘도 자신의 삶에 어떤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을 탓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 하나님께서 그렇게 부족하고 판단이 모자란 분이실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실수가 없으신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수르 광야에 물이 없는 줄을 모르셔서 그리로 인도하신 게 아닙니다. 그들을 수르 광야로 가게 하신 이유는 그들을 훈련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훈련이란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따르라!>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마라의 쓴 물은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한 나무를 집어넣음으로써 단물로 바뀌었습니다. 물이 고침을 받은 것입니다. 단물로 바꾸는 데 사용된 나무도 마라의 쓴물 곁에 있었습니다. 문제가 있는 곳에 해결책도 함께 있었습니다. 그 뿐입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엘림으로 이끄셨는데, 그 곳에는 물 샘이 열 두 개나 있었고, 종려나무가 일흔 그루나 있어 마음껏 지친 몸을 쉬게 하셨습니다. 엘림은 이스라엘을 위해 하나님께서 특별히 준비하신 이벤트였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것이 처음에는 물 없는 광야로 가는 것처럼 힘들게 여겨집니다. 그 때는 인도를 받는 게 아니라 <방황>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끝까지 따르면 반드시 쓴물이 단물로 바뀌고, 엘림에 도달하는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관건은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갈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것을 훈련하고자 그들을 수르 광야로 이끄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25절 중간부터 당신의 의도를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말씀의 인도대로 순종하면 질병이 내리지 않고, 하나님의 치료가 함께 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지금 물 없이 사흘길을 걷는 어려운 처지에 계신 분들이 계시다면 확신을 가지고 끝까지 말씀대로 가십시오. 결코 다른 길을 모색하지 마십시오. 지금 하나님의 시험을 받으시는 중입니다. 계속 가면 반드시 엘림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오직 말씀으로(sola scriptura)라는 종교개혁의 모토대로 살아가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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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연구] 사흘길의 의미(출애굽기 15장 22-2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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