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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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이는 많은 교회의 송구영신 예배나 신년예배 설교 주제일 것이다. 우리는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 이전 것은 대부분 잘못으로 치부되고, 새로워질 것을 기대한다. 그래서 정권이 바뀌거나 새로이 단체의 대표를 맡게 되면 이제까지와는 차별화된 새로운 모습을 보이려고 애를 쓰는가 보다. 그러나 ‘해 아래 새것이 없다’는 말씀처럼 과거의 모든 허물을 만회할만한 쇄신은 쉽지 않다. 새로운 시도 역시 우리가 이전에 대부분 시행했던 일로 단지 외형만 바뀌었을 뿐이다. 그래서 골백번 투표를 하고 개혁한다고 떠들어 봐야 늘 그래 왔듯이 우리 사회는 별 변화가 없으리란 게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생각이다.
 유대교 랍비가 제자들에게 “동이 트는 시간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한 제자가 “멀리서 개와 양을 구별할 수 있는 때”라고 말하자, 또 다른 제자는 “무화과나무와 포도 덩굴을 구분할 수 있는 때”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랍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너희가 사람의 얼굴을 보고 그들을 너희의 형제나 자매로 인식할 수 있을 만큼의 빛이 있을 때가 바로 동이 트는 시간이고, 그전까지는 아직 어두운 밤이다.” 하시디즘(Hasidism)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 동이 트고 새날이 온다는 것은 우리가 이웃을 인식하고 그들을 사랑하기 시작할 때부터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우리의 이웃을 사랑할 때 비로소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는 말은 우리에게 새로운 변화의 본질을 깨우쳐 주는 듯하다.
 필자가 출석하는 부산 산정현교회의 이번 송구영신 예배 주제 역시 ‘새 일을 행하리라’였다. 새해를 맞는 카운트다운이 끝나자 새해 비전이 선포되었다. 부임한 지 3년 차에 접어드는 담임목사는 그동안 본 교회의 역사와 정체성(identity)을 세심히 헤아린 듯하다. 평양을 시작으로 이어져 내려온 본 교회 성도들의 삶은 주기철 목사의 순교, 조만식 장로의 애국, 장기려 장로의 봉사를 뜻하는 소위 『주·조·장의 정신』으로 대변되어 왔다. 그러나 오늘날 순교나 순국을 말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사랑과 봉사의 정신을 바탕으로 『섬김』이라는 비전이 선택된 것 아닌가 싶다. “하나님을 섬기고, 성도들 서로를 섬기며, 지역을 섬기는 교회!” 이것이 새해를 맞는 우리 교회를 통해 행하시고자 하는 ‘그리스도의 새 일’인 것이다.
 지금은 지구촌 일원으로 새 시대를 열어가고 있지만, 오랫동안 외부와 단절이 되어 어둠 속에 있던 대륙 아프리카. 이 아프리카 밀림 속에서 타민족을 위해 평생을 숨어 봉사하던 슈바이처 박사를 찾아온 기자가 원주민들에게 “슈바이처 박사가 여러분들에게 무엇을 해주었느냐?”고 물었을 때, “그분이 무엇으로 우리에게 도움을 줬는지 잘 모르지만, 우리를 사랑한 것은 알고 있다.”라는 원주민의 말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마음이야말로 온 세상 구석구석의 어둠을 밝히고 새날이 오게 하는 원천이며, 이는 인간을 사랑하여 성육신 해서 지극히 낮은 데로 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제자 된 삶을 사는 우리들의 새로운 행동 강령이어야 하는 것이다.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막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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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규 관장]그리스도의 새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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