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05(화)
 
홍석진 목사.jpg
 1970-80년대를 거치면서 명동성당은 민주화의 성지(聖地)로 불렸습니다. 크고 굵직한 시국 사건 때면 으레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이 명동성당으로 피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곳에 김수환 추기경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국 천주교(天主敎)는 국내외 언론과 통신에 수없이 반복적으로 노출되었습니다. 만일 경제적으로 환산한다면 측정이 불가능할 정도의 엄청난 마케팅 효과를 누린 셈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한국 천주교 신자는 인구 비율로는 1985년 4.6%에서 1995년 6.6% 그리고 2005년 10.9%, 숫자로는 20년 동안 186만 명에서 515만 명으로 급증했습니다(통계청 인구센서스 자료). 물론 정치적 요인이 천주교 급성장의 절대유일의 원인은 아니겠습니다만, 이미지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닌 지금 민주화를 거치면서 명동성당이라는 상징이 쌓은 강력한 이미지가 천주교 부흥의 중요한 열쇠 중 하나였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란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2009년 김수환 추기경의 사망을 정점으로 명동성당은 서서히 정치적 도피처의 역할을 지양(止揚)해 왔습니다. 대신 불교의 조계사가 그 후임을 자처하고 나섰습니다. 1990년대 중반부터 각종 파업을 주도하고 쫓기던 노조원들이 숨어든 곳이 조계사였으며 최근 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쫓기고 있는 인사들이 피신한 곳도 역시 조계사입니다. 한 때는 “산사에 찾아온 짐승도 쫓지 않고 먹이를 주는 게 불교 정신”임을 강조하더니 언제부터인가 조계사를 ‘현대판 소도(蘇塗)’로 비유하는가 하면 이번에는 원효대사의 ‘화쟁(和諍)’ 사상을 강조하고 나왔습니다. 현재 한국 사회의 가장 뜨거운 이슈로 인한 사회 갈등을 화해하고 소통하는 중재자 역할을 자청하고 나선 겁니다. 당연히 조계사는 지금 국내외 언론에서 가장 빈번하게 언급되는 현장이 되었습니다. 조계사 내부에서 신도회가 반발하고 있습니다만 그것마저도 비중 있는 기사로 다루어지는 형편입니다.
  팩트(fact)는 쉽게 사라지고 이미지(image)는 끈질기게 잔존합니다. 첫인상이 나쁘면 두고두고 그 사람에 대한 평가가 인색해지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명동성당이, 조계사가 논쟁의 중심지가 되었는지 사람들은 금방 잊습니다. 대신 ‘민주화의 성지’, ‘불교 정신’, ‘화쟁과 화해’와 같은 이미지만 남게 되어 있습니다. 작년 4월 실시한 한국 갤럽의 최근 조사 결과를 보면 ‘가장 호감 가는 종교’로 불교 25%, 천주교 18%, 기독교가 10%였습니다. 10년 전인 2004년에는 불교 37%, 천주교 17%, 개신교 12%였습니다. 민주화의 성지는 사라졌어도 천주교는 여전히 약진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불교계는 10년 간 잃어버린 지지율을 만회하기 위해 작금의 조계사를 상징으로 삼아 다시 한 번 이미지 전략을 세우고 실제로 이미지 구축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간 외국인 승려를 부각시킨다든지 청년 멘토를 자처하는 젊은 학승(學僧)들을 중용한다든지 하는 인적 이미지 작업과 템플 스테이(temple stay)를 중심으로 하는 물적 이미지 작업을 지켜보았기 때문에 내리는 결론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성지(聖地)는 어디 있습니까? 다윗이 아둘람 굴에 피했을 때 빚진 자 원통한 자 소외된 자들이 모여들었습니다(삼상 22:1-10). 좁은 이스라엘 땅에 도피성을 여섯 개나 예비했던 것도 같은 취지였습니다(수 20:1-9). 세계에서 가장 큰 대형교회 중 몇 개가 있다고 자랑하는 한국 교회입니다. 그럴싸한 외양에 아름다운 부대시설을 갖춘 교회가 즐비한 21세기 한국 교계입니다. 그런데 왜 쫓기는 자, 피난하는 자들이 교회를 찾지 않고 다른 곳으로 향하는 것입니까? 성지(聖地)와 화해(和解)와 피난처(避難處)는커녕 왜 이토록 부정적인 이미지만 잔뜩 득템하고 있을까요? 바야흐로 이미지 전쟁의 시대라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굳이 이미지 전략을 따로 세울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십자가 주님의 희생과 겸손의 모습으로 돌아가 정작 잃어버린 우리의 본질적인 이미지를 회복하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시사칼럼] 우리의 성지(聖地)는 어디인가?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