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60년 전 부산 교계(마지막회)
이 책 《부산기독교 명감》에는 당시의 부산지역 교계 통계가 포함되어 있다. 당시 부산교계는 교파를 초월하여 천주교 22개 교회까지 포함해 모두 290개 교회였다. ‘기독교주의 사회기관’들도 전후 10년이 되었던 시점에, 부산지역 사회복지시설이 101개나 되어 이웃 사랑의 전위대가 되었다.
부산지역에서 당시 목회자 양성 기관은 고신측의 고려신학교, 통합측의 부산신학교, 합동측의 부산신학교, 김길창 목사가 설립한 부산신학교, 재건교회신학교가 포함되어 있었다. 나라가 가난하던 1960년대는 고려고등성경학교(고신측), 경남고등성경학교(통합측), 부산성경고등학교(합동측), 부산고등성경학교(기감측) 등도 중요한 교육기관으로 존재했다.
고신측은 칼빈대학을 감천 영국군 주둔지 콘센트 막사에서 운영하였는데, 중앙대학교 임영신 총장측과 교지 분쟁에 실패해 1963년 고려신학교 대학부로 편입되면서 기독교대학의 꿈을 접어야 했다. 이후 고려신학대학, 고신대학, 고신대학교로 발전하면서 올해 개교 80주년을 맞는다. 기독교병원에 포함되어 있는 복음병원(원장 장기려 박사)은 아직 영세한 규모였는데, 1981년 의과대학을 설립하여 한때 고신의료원이 되었다가 지금은 고신대학교 부속 복음병원으로 있다. 당시는 전쟁기에 부산에 임시로 내려왔던 연세대학교 가정대학은 아직 서울로 이전하지 않았다. 김길창 목사가 설립한 한성여자실업초급대학은 오늘의 경성대학교로 크게 발전하였고, 그가 설립한 부산신학교는 경성대학교의 단과대학이 되었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친일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지만 해방 후 교육사업에 투신해, 대동중, 광성공고, 남성여중고, 훈성여중, 계성여상 등을 설립하여 십여 개 이상의 학교를 경영하는 교육재벌이 되었다. 당시 정화여자중고등학교는 이사벨여자중고등학교로, 브니엘실업중고등학교는 브니엘고등학교가 되었다.
1984년 한국장로교회가 시작된 이래 해방 전까지는 교회 수가 많지 않았다. 부산에서 초기에 설립된 부산진교회, 초량교회, 영도교회, 항서교회, 수안교회 등이 오랫동안 각 지역의 중심이었다. 이들 교회중에 부산진교회, 수안교회, 항서교회, 구포교회는 통합측에, 초량교회, 중앙교회, 부전교회는 합동측에, 제일영도교회, 수영교회, 엄궁교회는 고신측에 속하여 있다.
60년 전 부산의 중심교회였던 부산진교회(통합측), 초량교회, 부전교회(합동측), 삼일교회, 부산남교회(고신측)들은 대부분 지역교회에 머물고 있다. 그동안 부산이 남구, 동래구, 해운대구, 북구 등으로 확장되면서 교회의 판도도 변화되었다. 1980년대까지 통합측의 중심교회였던 영락교회는 교회 분쟁으로 합동계열의 군소교단에 속하였고, 서면의 중심부에 있던 부전교회는 몇 년 전 송월타올 부지에 대형교회당을 건축해 이전했다. 부산남교회는 동광동 옛 시청 앞에서 연산동으로 이전하였지만 교회가 분열되고 말았다. 부산진교회와 초량교회도 도심공동화 현상으로 예전 명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부산교계에서 수영로교회(합동측), 포도원교회(고신측), 호산나교회(합신측) 등이 세 중심축을 이루고, 세계로교회, 김해중앙교회(고신측)가 함께 교회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그시대에 크게 쓰임받던 교회들의 영향력이 축소되었는데, 교회가 시대마다 꾸준히 자기혁신을 해야 함을 ‘60년 전의 부산 교계’의 모습에서 교훈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