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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말씀]절대적 안정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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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늘 소란스럽고 하늘 아래 새것이 없다. 그래서 남을 탓하거나, 밖에서 답을 찾거나, 돌려막기를 해서는 노답이다. 변화무쌍하고 돌발변수가 많고 모든 것이 급변하는 격동의 세월 속에서 성공하는 사람은 강하고 유능한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살아남는 사람이다. 실패했다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는 사람이다. 도무지 요동치지 않는 안정감이 있는 사람이다.
교통사고가 날 때는 전방주시 태만, 안전거리 미확보, 휴대폰을 본다거나 무엇인가 엉뚱한 데에 혼이 빠져 있을 때 사고가 난다. 애정결핍, 정서불안, 주의산만 할 때는 외로운 늑대가 되고 사회 부적응 환자가 되고 고독사에 이르고 만다. 사람이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되어 청년처럼 덤볐다가는 다치기가 쉽다. 인생은 천천히 평온하게, 서서평해야 된다.
안정감은 언제 어떻게 생기는가? 아기로 태어날 때부터 울지도 않는 천하장사 같은 사람은 없다. 어린아이들은 철이 없고 미숙하나 산전수전 겪어가면서 산수를 배운다. 예수님처럼 키와 지혜가 자라나매 하나님과 사람에게 점점 사랑스러워져 가시더라. 건강한 사람은 편식하지 않고 균형 잡힌 건강한 식습관을 가지고 있다. 식탐이 없으니 과식하지 않고, 일 욕심이 없으니 과로하지 않고, 성공 욕심을 부리며 과속하지 않는다. 서두르면 사고가 나고, 성급하면 후회하게 되고, 조급하면 실수하기 쉽다. 밸런스, 균형이 건강이고 지혜이고 아름다움이다. 얼굴의 이목구비가 반듯한 사람이 잘생긴 사람이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것이 지혜이다. 자기를 돌아보면서 이웃도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나무도 보고 숲도 보라.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는 중용의 미덕이 있고, 과유불급이라는 말도 있다.
아굴의 기도에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라는 구절이 있다. 매 맞고 굶주리고 감옥에 갇히기까지 한 사도바울은 가난한 데나 부한 데나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한다. 회복탄력성이 남다른 요셉은 허리가 잘 돌아갔다. 적응능력이 뛰어났다.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랐지만, 머슴살이를 할 때나 감옥살이를 할 때나 총리로서 대국을 다스릴 때도 한결같이 하나님과 동행하여 형통했다.
여호수아는 모세가 죽은 이후에 대권을 이어받았지만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고 마음을 강하고 담대히 하라 하신 말씀대로 행하였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았다. 예수님께서는 때가 차매 이 땅에 오셨다. “지금은 엘리야 때처럼 주 말씀이 선포되고 지금은 모세의 때와 같이 언약이 성취되고 지금은 다윗의 때와 같이 예배가 회복되네”라는 찬양의 가사가 있다. 그 시대에, 그 지역에서, 바로 그 사람을 들어 쓰시는 하나님은 복을 주시기 전에 먼저 평안을 주신다.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을 때 광풍을 고요하게 하사 잔잔하게 하시고 평온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중에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신다. 인자하신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기이한 복을 주시니 그를 찬송할지로다.
무슨 말을 들어도 상처받지 않고 무슨 일을 당해도 시험 들지 않는 절대 안정감은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이다. 성경의 구원역사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을 택하시고 오랜 시간 다듬고 만들어 가신다. 그 와중에 별일을 다 겪지만 늘 피할 길을 열어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따라가면 절대로 안 망하고 반드시 일어나게 된다. 그러니 요동하지 않는 절대 안정감을 누릴 수밖에 없다. 어떤 상황에도 굴하지 않는 속 실력, 내공은 주님이 다듬으시는 중에 쌓인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주님께 나의 인생을 맡기며 순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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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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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연구]그들 중에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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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매일 <말씀산책>이란 제목으로 5분 남짓한 영상을 찍습니다. 영락교회 홈페이지에도 있고, 유투브에도 있습니다. 제가 짧은 영상을 찍게 된 것은 코로나19로 교회 문이 닫혀 성도들이 대면 예배에 참석할 수 없게 되어 느끼는 영적 공허함을 메우는 차원에서 2020년 3월 1일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119대작전>, <한친구운동> <오이코스 말씀묵상> 등 제목을 바꿔가면서 계속했습니다. 작년부터는 <말씀산책>이란 이름으로 하루에 성경 한 장씩 진행합니다. 한 장에서 한 구절을 택하여 묵상하고 있습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차례로 하지 않고, 왔다 갔다 하면서 찍고 있는데, 현재는 에스겔서를 읽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는 시편 중 제4권의 말씀들을 나누었습니다.
그러다가 시편 99편에 왔을 때였습니다. 6절 말씀이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그의 제사장들 중에는 모세와 아론이 있고 그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 중에는 사무엘이 있도다 그들이 여호와께 간구하매 응답하셨도다> 전에도 이 말씀을 많이 읽었습니다만, 별 감동이 없었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제사장 중에 있고, 사무엘이 하나님을 부르는 자 중에 있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그 날은 이 말씀이 제 가슴을 강하게 때렸습니다. 이 말씀이 날카로운 질문으로 다가왔습니다. <너는 하나님의 목사들 중에 있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무엇일까요? 저는 목사입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교단의 목사입니다. 서울노회 소속 목사입니다. 영락교회 담임목사입니다. 서울노회 회의록에 제 이름이 있습니다. 영락교회 주보와 요람 등에도 제 이름이 있습니다. 교회 홈페이지에도 있습니다. 인터넷을 열람하면 거기도 제 이름이 있습니다. 사람들도 저를 목사라 부릅니다. 저는 목사가 분명합니다. 그러나 제가 하나님의 목사들, 즉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목사들,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목사들 중에 있는지에 대해 자신 있게 답할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저는 1982년에 신학대학원에 입학했습니다. 그 해 말부터 교육전도사 사역을 시작했고, 전임전도사, 부목사, 담임목사로 오늘까지 살고 있으니, 사십 년이 훨씬 넘었습니다. 긴 세월이었습니다. 머지않아 사역에서 은퇴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목사가 사역한 것을 성역이라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가 살아온 세월을 성역이라 부른다면, 저는 사양할 것 같습니다. 아니 사양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성역이라 하려면 하나님을 위한 일을 했어야 하는데, 저는 그동안 저를 위한 일을 많이 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수십 년을 돌아볼 때, 하나님을 위해 일한 시간보다 저를 위해 산 시간이 훨씬 많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무엇인가를 할 때도 성공한 목사가 되기 위한 것이라면, 그건 저를 위한 시간에 불과할 것입니다.
생각해 보니, 하나님 앞에 부끄럽고 죄송하기 짝이 없습니다. 제가 목사가 되기까지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부모님은 제가 목사가 되도록 온갖 수고를 아끼지 않고 뒷바라지 하셨습니다. 눈물로 기도하셨습니다. 영락교회는 신학대학원 3년 동안 장학금과 책값과 기숙사비와 용돈까지 주셨습니다. 많은 성도가 저를 도와 주셨습니다. 기숙사에서 춥지 않도록 포근한 담요를 사 주신 분도 계십니다. 목회 현장에서는 부족한 저를 많은 성도들이 돕고 이해하고 용서하고 기다려 주셨습니다. 그래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책망하실 것 같아 두렵습니다. <난 네가 이런 목사가 되길 바란 게 아니다. 넌 내가 기대한 사역을 하지도 않았고, 네 됨됨이도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르다. 넌 내가 사랑하는 목사들 명단에 포함될 수 없다>고 하실 것 같습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목사들 중에 없다>는 결론에 이를 것입니다. 참 두렵고 민망합니다.
성도님들은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성도들 중에> 계십니까? <그들 중에> 있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고, 다시 출발해야하겠습니다. 우리 생애가 끝날 때, 우리도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이들 중에 있길 원합니다. 그들 중에 있기 위해 남은 삶을 더 깊은 믿음으로 바르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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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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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임중칼럼]엄마의 젖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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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다섯에 늦게 신학을 시작해 시골교회를 담임하게 된 어느 날, 고향에 홀로 계신 어머니를 문안했다. 평소에는 당일로 다녀오는 것이 일상이었지만, 그날은 왠지 어머니와 하룻밤을 함께 보내고 싶었다. 늦가을의 으스스한 한기 속에 잠이 오지 않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괜스레 어머니의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아이고 야야, 노인 냄새 난다.” 뒤돌아 눕는 어머니를 다시 돌려 눕히면서 “엄마, 젖 먹고 싶다.”고 장난스럽게 말하자, “아이고 망측해라, 니가 어린애가?” 하며 웃으셨다. 나는 어머니의 저고리 섶을 살며시 헤치고, 앙상한 몸에 말라붙은 젖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젖을 떼고 37년 만에 만져보는 엄마의 젖이었다. “아이구 야야, 애미 젖 안 나온다. 왜 이러노?” 하며 만류하시는 어머니.... 그러나 나는 “엄마… 젖 먹자”라고 말하며 젖꼭지를 입에 넣는 순간, 눈물이 쏟아지며 헉 하고 울음이 터졌다. 어머니는 아무 말씀 없이 내 머리를 아기 머리 쓰다듬듯 어루만지셨다. 어머니도 울고 계심을 느낀 나는 한참을 울었다. “이 젖꼭지를 통해 우리 5남매가 살았구나.” 그날 이후 내 목회의 기본 철학은 ‘모심목회(母心牧會)’가 되었다.
강산이 네 번 바뀐 오늘까지도 그날의 감정은 잊히지 않는다. 나는 지금도 농어촌의 작은 교회에서부터 도시의 대형교회, 개척교회에 이르기까지 다니며 ‘엄마 젖꼭지 목회철학’으로 말씀 사경회를 인도한다.
목사는 하나님의 젖꼭지다. 성도는 목사를 통해 신령한 영양분을 공급받는다. 그래서 목사는 성도에게 풍성한 젖을 먹이기 위해 온갖 영적 양식을 준비해야 한다. 그 양식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주일마다 성도는 하나님의 젖꼭지인 목사를 통해 하늘의 양식을 공급받는다. 영적으로 배가 부르면 그 목회 현장은 푸른 초장이 된다. 엄마의 마음이 아기의 환경이 되듯, 담임목사의 마음은 교회의 환경이 된다. 은혜와 평강이 넘치는 교회든, 갈등과 분쟁이 끊이지 않는 교회든 그 중심에는 목사의 마음이 있다. 그래서 다시 ‘엄마의 젖꼭지’를 묵상하게 된다.
아기를 키우다 보면 엄마는 젖꼭지를 깨물릴 때가 있다. 첫째, 젖이 잘 나오지 않을 때 아기는 젖꼭지를 문다. 둘째, 이가 날 무렵 잇몸이 근질거릴 때도 젖꼭지를 문다. 엄마의 반응도 두 가지다. 하나는 순간적으로 아기의 엉덩이를 때리며 “왜 깨무노” 하고 화를 내는 것. 그러면 아기는 울음을 터뜨린다. 다른 하나는 젖이 안 나와 아기가 문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미안한 마음으로 아기와 눈을 맞추며 엉덩이를 쓰다듬어 주는 것이다. 그러면 아기는 스르르 잠이 든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을 깨닫는다. 젖꼭지를 깨물리지 않으려면 젖이 풍성해야 한다. 그래서 엄마는 젖이 잘 돌도록 음식을 챙겨 먹는다. 또 하나, 이가 날 무렵의 아기는 배가 고플 때는 젖을 깨물지 않는다. 그러나 배가 어느 정도 부르고 엄마가 자신을 보지 않고 다른 데 시선을 두면, 관심을 받고 싶어 젖꼭지를 문다.
그래서 이 시기의 아기에게 젖을 먹일 때는 엄마가 눈을 맞추고 관심을 주면 젖꼭지를 깨물지 않는다.
목회 현장도 이와 같다. 목사의 마음이 편안하고 생활이 안정된 교회는 은혜와 감사가 넘친다. 반대로 목사의 마음이 불안하고 지친 교회는 영적 기갈과 갈등이 반복된다. 젖이 나오지 않아 젖꼭지를 깨무는 교인, 관심을 받고 싶어 젖꼭지를 깨무는 교인…오늘의 교회 현실이다. “좋은 엄마는 완벽한 엄마가 아니라, 지치면 쉬고, 힘들면 도움을 요청할 줄 아는 엄마다.”라는 말처럼 교회도 완벽한 목사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젖을 풍성히 준비하고, 젖꼭지를 물리는 순간마다 아기와 눈을 맞추듯 성도의 상황을 살피고 공감하는 목사를 원한다. 목사도 사람이기에 지칠 때는 쉼이 필요하다. 그럴 때 교회의 도움을 겸손히 요청할 수 있어야 하고, 교회는 그 마음을 헤아릴 때 푸른 초장이 된다.
요즘 AI로 설교를 준비한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젊은이들은 ‘라떼’라며 웃을지 모르지만, 나는 묻고 싶다. 거기서 영양가 있는 젖이 생성될 수 있을까? 설교는 글쓰기의 문제가 아니다. 말씀 선포의 본질을 고민해야 한다. AI는 생명이 없다. 감정이 없다. 사랑이 없다. 영적 경험이 없다. 문장을 나열하는 능력은 AI가 더 뛰어날 수 있다. 그러나 말씀 앞에서 떨리는 마음, 성도를 향한 사랑, 골방에서 기도하며 씨름하는 시간, 삶에서 우러나오는 진정성은 AI가 대신할 수 없다. 자료 정리, 배경 분석, 예화 적용, 표현 다듬기 등은 AI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설교 전체를 AI에 의존한다면 생명력 있는 메시지는 나올 수 없다. 말씀은 살아 있어야 하고, 설교는 하나님의 마음을 전달하는 지고한 수단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설교자의 삶과 기도, 그리고 경험된 영적 체험이 담겨 있어야 한다.
목사는 하나님의 젖꼭지다. 풍성한 젖을 위해 자기 자신과의 영적 씨름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교인은 젖꼭지를 깨물어서는 안 된다. 목사는 교인들에게 깨물리지 않는 젖꼭지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설교는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설교자는 언어라는 붓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그림처럼 그려 성도들에게 보여주는 거룩한 화가이다. 성도는 그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보게 되고, 깨닫고 회개하며 결단하게 된다. 설교의 교과서는 성경이다. 다양한 색채로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듯,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다양한 내용과 예화, 경험은 참고 도서일 뿐이다. AI도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주기 위한 설교의 도구일 뿐이다. 주체와 객체가 바뀌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다시 엄마의 젖꼭지를 묵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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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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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교회폐쇄법’ 논란에 즈음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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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부 국회의원들이 민법일부개정안을 발의하자 기독교계가 크게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그 내용을 조금 들여다보자면, 현행 민법 제38조의 “법인이 목적 이외의 사업을 하거나, 설립허가의 조건에 위반하거나, 기타 공익을 해하는 행위를 한 때에는 주무관청은 그 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는 기존의 조항에 “법인이 대한민국헌법 제20조 제2항에서 정한 정교분리의 원칙 또는 공직선거법 등 관계 법령을 위반하여 선거, 정당 또는 후보자와 관련하여 조직적·체계적으로 정치 활동에 조직적·반복적으로 개입하여 공익을 현저히 해한 때”라는 조항을 덧붙였습니다. 또한 제38조의 2 조항을 신설해서 “➀ 주무관청은 법인이 제38조 1항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유가 있다고 의심할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해당 법인에 대하여 업무 및 재산 상황에 대한 보고를 명하거나 필요한 자료의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 ➁ 주무관청은 제1항에 따른 확인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 소속 공무원으로 하여금 법인의 사무소, 사업장 또는 그밖의 장소에 출입하여 장부, 서류, 그밖의 물건을 검사하게 하거나 관계인에게 질문하게 할 수 있다”고 규정합니다.
이에 대한 교계의 일반적인 반응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한국교회언론회는 1월 26일 논평을 통해 “해당 법안을 일명 ‘교회폐쇄법’으로 간주하고 반대한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같은 날 ‘악법대응본부’도 “위험한 발상이 담긴 이 법안은 가히 ‘종교법인 강제해산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며 비판의 수위를 높였습니다. 유튜브의 언어는 더욱 직설적입니다. “결국 교회폐쇄법이 발의되었습니다”(czchurch). “사탄의 칼끝 교회폐쇄법안”(bzCmk70). “민주당이 교회폐쇄법을 만들었다”(54KQwc). 법학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의 비슷한 논평도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물론 조심스럽게 반론을 제기하는 입장들도 있습니다. “교회는 해산시킬 수도, 해산되지도 않는다”(cupnew, 1. 28). “교회 SNS 떠도는 ‘교회해산법’ 발의, 진실은?”(logosian, 1. 26). 하지만 앞선 입장들과 비교하면 소수설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일선의 목회자들 입을 통해서도 ‘교회폐쇄법’이나 ‘교회해산법’이라는 말들이 더 널리 회자되지 않겠습니까? 벌써부터 교회로 성도들의 다음과 같은 문의들이 빗발친다고 합니다. ‘교회폐쇄법이 만들어졌다는데 사실인가요?’ ‘강제적인 교회해산법이 추진된다는데 목사님들 가만히 계시면 되겠습니까?’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또한 표현의 자유를 강력하게 보장하고 있습니다. 일반 법안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고 나아가 적극적으로 찬반의 입장을 피력하는 것 또한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표현의 자유의 일환입니다. 그러나 지나친 선전이나 선동까지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합리화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일단 사실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발의된 법안의 이름은 ‘교회폐쇄법’이나 ‘교회해산법’이 아니라 ‘민법부분개정법률안’입니다. 그 내용이 교회를 탄압하고 강제로 해산시킬 수 있는 독소조항을 품고 있으니 교회폐쇄법이나 교회해산법과 다름없다고 주장할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그런 이유만으로 존재하지 않는 법안을 존재한다고 우길 수는 없지 않습니까? 또한 해당 법안의 발의자 중에 민주당 소속 의원도 들어있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대표발의자는 무소속 국회의원이며 기타 다른 정당 소속 의원도 포함되어 있으니, ‘민주당이 교회폐쇄법을 만들었다’는 말도 사실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만일 이 법안이 통과된다면 어떤 위험성이 있을지에 관한 논의는 당연히 가능하고 또 충분하고 진지하게 논의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교회폐쇄법’ 혹은 ‘교회해산법’이라는 용어의 사용은 자제해야 합니다. 정확히 ‘민법개정안 반대’라고 해야 합니다. 진정한 자유는 허구가 아니라 진리에서 기인함을(요 8:32) 안다면 더욱 사실에 입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교회는 오랫동안 말도 안되는 선전·선동으로 시달림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살과 피 때문에 식인집단이라는 공격을 받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했습니까? 어린아이를 잡아먹는다는 말도 안 되는 소문 때문에 특히 한국교회 초창기에 얼마나 끔찍한 핍박을 감내해야 했습니까? 서로 형제자매라고 부르는 호칭 때문에 근친상간집단으로 몰려서 숱한 수모와 핍박을 견뎌야 하지 않았던가요? 무엇보다도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종교는 아편’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져서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무고하게 목숨까지 잃었습니까? 이처럼 교회는 그릇된 선전과 선동의 피해를 누구보다 많이 입으며 생존해 왔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거짓이 판을 치는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웬만한 거짓말은 이제 기사거리도 되지 않는 그런 시대가 되었습니다. 여전히 교회를 향한 근거 없는 억측과 악의에 찬 선전과 선동이 존재합니다. 그래도 교회만은 진리의 수호자로 남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교회만은 사실의 보루(堡壘)로 세워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려면 먼저 교회가 허구가 아니라 사실을, 가짜뉴스가 아니라 진실만을 말하고 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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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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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건축칼럼]교회건축의 상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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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외관은 교회의 대외적 이미지를 알리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과거 중세 교회와 성당은 높은 첨탑과 과대한 형태, 벽돌재료, 스테인그래스의 장미창등이 교회당을 알리는 주요 모티브였다. 이런 양식은 교회의 상징성을 힘의 압도적 스케일로 교회를 표현해 왔다.
현재에도 아직 이런 양태의 교회 외관이 종종 눈에 띄고 있으며 도시내에 차별화된 장소성을 제공하고 있다. 과도한 스케일의 건축형태는 유지관리비와 운영에 많은 비용이 지출되곤 한다. 교회다움의 건축표현이 크기와 높이 특정한 재료로 표현되는 것은 결국 획일화의 주된 요인이 되곤한다. 과거 교회가 전국이 거의 비슷한 형태로 인식되어 지는 것은 이런 상징성 때문이다. 그러나 미학적측면에서 교회라는 상징적 언어가 리얼리티에서 멀어지면 멀어질 수록 성스러움의 표현은 보다 더 사실적이면서도 인상적인것이 된다. 반드시 교회 다움의 외적 양식은 교회가 추구해야할 더 많은 가치를 후퇴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눈에 보이는 상징체계는 기호적 표현에서 체험적 상징으로의 전환이될 때에만 획일화를 극복할 수 있다. 체험적 내용들은 외부에 수공간이 도입부에 설치된다면 그 공간은 성도가 예배당으로 진입하는데 예배의 준비공간적 기능을 제공한다. 우리가 물을 보면 감성적으로 순화되어지고 마음속의 복잡한 것들이 다 사라지고 순화되어진다. 예배자가 예배드리기 전에 자기 마음을 정돈하고 정화시키는 전이공간과 같은 기능을 제공한다. 이런 유형의 공간이 체험적 공간이며 이런 유형은 강한 장소성의 상징을 부여한다.
건축에서 상징은 참여 기능을 가능케한다. 물이 가진 성경적 의미는 풍요와 재생, 순화, 정결의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수공간을 바라보면서 그런 의미로 참여하게 된다. 수공간의 풍요를 내 마음에 투영시키고 정결을 의식적으로 다짐하게 된다.
교회건축의 상징을 보여지는 체계에서 참여되어 지는 것으로 바뀔 때 그 공간은 가장 의미있는 공간이 된다. 또 하나의 상징성이라면 교회건축이 지역사회에 열려있는 것이 최고의 상징이다. 열려있는 것의 이미는 참여이며 동일화이기 때문이다.
지역사회의 열린근린센터가 되고 지역 문화공간이 될 때에 지역사회는 본질적으로 교회와 유지적 연합이 이루어지게 된다. 그것은 상징이 지향하고 있는 참여의 의미를 잘 반영하게 되는 것이며 그 교회는 가장 장소성이 강한 랜드마크가 된다. 랜드마크는 원시시대 부족이 자기 땅의 영역을 표시하기 위해 구분해 놓은 경계석이다. 이 랜드마크가 자기소유를 구분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그 주변과의 연계와 소통을 의마하는 것이기도 하다. 교회는 어느지역에 건축되어 지던지 그 주변과 끊임없는 소통과 공유를 통해 존재를 규정해야한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제자삼으라는 지상명령에 순종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현대적인 건축의 언어로 표현해 내는 것은 쉽지 않다. 요즈음 신도시 재개발지역의 교회모습은 건축의 상징성을 어떻게 구현해 내는 것이 랜드마크적일까 하는 과제는 성도들의 발걸음을 교회로 이끌게하는 직접적 모티브이기때문에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열려있는 교회공간의 체험이 역동적으로 발흥되는 공간의 내용들을 분석해 보는 것도 의미있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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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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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세대칼럼]은사를 불같이 일으켜 신앙도 일어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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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부 수련회나 대학생·청년부 수련회를 자주 섬긴다. 공통점이 있다. 스마트폰 중독, 무기력, 학교 부적응, 교회에 오기 싫어함,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서도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너무 많다. 이들의 가장 큰 공통점은 자신의 은사를 잘 모른다는 점이다.
그래서 수련회 집회 중에 은사를 많이 발견하고, 그것을 위해 사명 선언문까지 만들 때 신앙이 매우 급속도로 성장하는 경험을 자주 하게 된다. 그러면서 안타까운 점은 부모도, 학교도, 교회도 청소년이나 청년의 강점·재능·은사를 찾아주고 개발하게 하는 일에는 무관심하면서, 교회 가는 일과 예배드리는 일에만 집중한다는 점이다.
청소년의 은사를 불같이 일으켜 신앙도 함께 일어나게 해야 한다.
디모데후서 1장 6–7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 듯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라.”
1. 하나님은 이미 우리 안에 은사를 주셨다.
청소년 시기는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시기다. 많은 청소년이 자신을 평범하거나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한다. 하나님은 예수 믿는 우리 안에 이미 ‘은사’를 주셨다.
은사는 특별한 사람만 가지는 것이 아니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만, 믿음이 좋아 보이는 사람만의 것도 아니다. 문제는 은사가 없어서가 아니라, 은사가 꺼져 있는 것처럼, 혹은 아예 없는 것처럼 여기고 살아간다는 데 있다.
2. 은사는 불과 같아서 가만두면 약해진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은사를 다시 불일 듯하게 하라”고 말한다. 이 말은 은사가 불씨처럼 관리와 돌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불은 바람 불지 않으면 꺼지고, 나무를 더 넣지 않으면 약해진다. 더군다나 방치하면 재만 남는다.
청소년의 은사도 마찬가지다. 신앙을 ‘숙제’처럼 여겨도 은사는 점점 식는다. 또한 은사를 제대로 찾지 않고 개발하지 않아서도 은사는 식어 버린다.
“교회는 다니는데 재미가 없어요.”, “믿음이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이것은 믿음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꺼져가는 믿음의 불을 다시 살릴 필요가 있는 상태다.
3. 은사가 살아나면 신앙도 같이 일어난다.
중요한 사실이 있다. 은사와 신앙은 따로 움직이지 않는다.
은사가 살아나면 예배가 달라지고, 기도가 달라진다. 눈빛이 달라진다. 교회가 ‘남의 곳’이 아니라 ‘내 자리’가 된다.
디모데가 다시 일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환경이 좋아져서가 아니다. 자기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붙였기 때문이다.
“나는 못해”, “나는 잘하는 것이 없어”라는 생각은 하나님에게서 온 음성이 아니다.
4. 은사를 불같이 일으키는 실제적인 방법
① 말씀과 기도로 은사에 바람이 일어나게 하라
은사는 말씀 위에서만 건강하게 자란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시는지 다시 듣게 된다. 기도로 불을 붙여라. 기도가 짧아도 좋다. “하나님, 제 안에 있는 것을 다시 찾게 해주세요. 은사의 불씨를 살려 주세요. 그래서, 은사가 모두 사용되는 직업과 사명을 잘 찾게 해 주세요.”이 기도가 불씨가 된다.
②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 집중하는 것을 분석하여 정리하자
이것이 재능이고 강점이다. 이것을 하나님과 공동체,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사용하게 될 때 은사가 된다.
③ 지나치게 욕을 듣는 영역도 반대편의 좋은 면을 찾아 개발하자
부정적으로 보이는 성향에도 일부 긍정적인 면이 있다. 이를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남을 위해 사용하자. 은사로 개발되면 부정적인 면도 점차 줄어든다. 이를 ‘재명명’이라고 한다.
④ 혼자가 아니라 사명을 나눌 공동체 안에 있으라.
불은 함께 모일 때 더 크게 탄다. 혼자 신앙을 지키려 하면 꺼지기 쉽다. 특히 공동체 앞에서 자주 사명을 선포하고 나누면 불같이 은사가 일어난다. 은사와 개발 계획을 자주 나누라. 놀라운 큰불이 서로 되어준다.
⑤ 작게라도 사용해 보라
은사는 사용할 때 커진다. 완벽하려고 기다리지 말고 작은 순종부터 시작하라. 홍해가 한 걸음을 내디딜 때 갈라진 것처럼, 작게라도 일단 시작하고 남을 돕기 위해 사용하려 할 때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가 임해 60배, 100배의 열매가 맺힌다.
⑥ 전문적인 적성검사를 통해서 도움을 주라.
중학생용 스트롱 진로탐색검사II, 고등생용 스트롱 진로탐색검사II, 대학생과 청년 등 성인용 STRONG™ 직업흥미검사를 하여 전문가에서 해석을 받으면 도움이 된다.
⑦ 영적 은사, 일반 은사 체크리스트를 통해서 실제로 찾아주라.
결국 청소년기는 단순한 준비 기간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현재 진행형이다. 지금도 은사를 찾고 적용하며 즐거운 열매를 누려야 한다. 하나님은 “나중에 쓰겠다”가 아니라, 지금 너를 통해 일하고 싶다고 말씀하신다.
이제 부모도, 한국교회도 다시 청소년들에게 하나님의 은사를 많이 찾아주고 개발하게 하여 은사를 불같이 일으키자.
그 불이 살아나면 신앙도 반드시 함께 일어난다.
그리고 그 불은 세상을 밝히는 하나님의 불이 되어,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고 확장되는 진정한 사명을 가진 사람으로 살아가는 행복한 삶, 귀한 신앙으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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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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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목사의다음세대이야기]다음세대여, 믿음의 스위치를 올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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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수도인 워싱턴D.C에 가면 토마스 제퍼슨 기념관이 있습니다. 흰색 대리석 건물에 돔 형식으로 아주 잘 지어진 건물인데요, 이 건물은 실은 유지비가 많이 들기로 유명했어요. 대리석 벽면이 계속 부식되어서 수리비가 계속 들어가는 거에요.
그런데 이 건물에 새로 발령을 받은 건물 관리책임자가 여기에 “왜?” 라는 질문을 던졌어요. 왜 수리비가 많이 들까? 논의 끝에 비눗물로 너무 자주 대리석 벽을 청소해서 그렇다는 답이 나왔어요. 그는 여기서 또 한 번 “왜?” 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왜 비눗물로 청소를 자주 해야 할까? 그랬더니 비둘기가 많다는 거에요. 그래서 비둘기들이 모여서 새똥을 계속 떨어뜨리니까 그걸 지우느라고 비눗물 청소를 자주 한다는 거죠. 자, 어떻게 하면 떨어지는 새똥을 막을까요? 이제 이 문제는 아주 유명한 문제가 됐어요. 많은 건물들이 똑같은 문제를 안고 있었거든요.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미국의 표준이 되는 거죠. 어떤 결과가 났을까요? 비둘기를 다 총으로 잡았을까요? 새똥이 떨어지는 걸 막기 위한 차양막을 설치했을까요? 엄청난 예산과 수고를 투자하는 대신 그는 여기서 또 한 번 “왜?” 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왜 비둘기가 많이 모일까? 이번엔 조류전문가들이 대거 투입돼서 결론을 냈어요. 답은 비둘기가 좋아하는 먹이인 거미가 많아서 그렇다는 거였어요. 자, 됐죠? 그런데 여기서 그는 포기하지 않고 네 번째로 “왜?” 질문을 던졌어요. 거미가 왜 많지? 또 연구를 했어요. 그랬더니 거미가 좋아하는 먹이인 나방이 많아서 그렇다는 결론이 났어요. 그런데 그는 여기서 마지막으로 또 한 번 질문을 던집니다. “왜?” 왜 나방이 많이 모이지? 곤충 전문가가 투입됐어요. 그리곤 최종적으로 답이 나왔어요. 이 건물의 외부 조명 때문에 그렇다는 거에요. 이 건물은 유명한 관광지라 해가 질 무렵 이 주변 건물들 보다 두 시간 일찍 외부 조명을 켜요. 그러니까 그 불빛을 보고 나방들이 몰려오고, 그 나방을 먹으러 거미가 오고, 그 거미 때문에 비둘기가 모이고, 그 비둘기의 배설물로 건물이 지저분해지고 그걸 닦으러 비눗물 청소를 자주 하다 보니 유지비가 엄청나게 들었던 거죠. 그래서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간단했습니다. 스위치를 내렸어요. 다른 건물 보다 두 시간 일찍 켜던 스위치를 잠시 내렸다가 남들 켤 때 같이 켰더니 모든 문제가 해결된 거에요. 돈 한 푼 안 들이고 말이죠.
이 다섯 번의 “왜?” “5 Why”라는 유명한 이야기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발생하는 수 많은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중요한 힌트를 전해줍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문제는 모두 대단해 보입니다. 저도 다음세대나 부모님을 만나보면 문제가 없는 가정이 없구요, 가슴 속에 상처 하나쯤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없습니다. 그리고는 그걸 시간만 되면, 기회만 되면 쏟아 놓는 거에요. 하지만 그런다고 해결이 되나요? 뾰족한 수는 없고, 그러니까 믿음 생활을 하면서도 왠지 기쁘지가 않은 거에요. 내 신앙은 계속 오락 가락이고, 나쁜 습관은 계속 못 끊고, 아이들이 하는 건 마음에 안 들고, 내 믿음은 분명히 서있지 않은 것 같고, 성경말씀은 읽어도 잘 모르겠고, 기도는 한다고 하는데 마음 먹고 앉으면 피곤하고 졸리고... 가끔씩 불쑥 올라오는 분노 때문에 내 자신에게 치를 떨 때가 한 두 번이 아니고, 하나님은 믿지만 정말 날 도우시는 건지, 내 앞날을 책임지시는 건지 영 불안하고 믿어지지가 않고... 도무지 내 믿음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막막한 거에요. 여러분은 혹시 그렇지 않으십니까?
그런데 이 엄청난 문제들이 실은 정말 왜? 왜? 왜? 질문을 던지다보면, 이유를 찾다보면 결국 스위치 하나에 달려 있다는 거에요. 그 스위치는 바로 “믿음이 무엇인가?”라는 것입니다. 믿음이 무엇인가, 이 스위치를 위로 올리는가, 아래로 내리는가에 따라서 우리의 믿음생활에 엄청난 비용과 대가가 따르기도 하고 엄청난 은혜와 기쁨이 쏟아지기도 합니다.
믿음은 내 생각을 관철해내는 능력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겁니다. 믿음은 내 자신에 대한 확신이 아닙니다. 믿음은 나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내가 잘 될 거라는 자기 최면이 아닙니다. 믿음은 내 인생을 관통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힌바 되어 그 말씀을 내 온 삶으로 붙잡고 내 인생으로 그 말씀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이 말씀되고 그 언약이 언약되게 하는 것, 그래서 하나님이 하나님 되시게 하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올 한 해 믿음의 스위치를 올려서 하나님을 기쁘시게하는 우리 다음세대들이 다 되시길 우리 하나님 원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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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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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명 성추행 목사, 징역 1년 6개월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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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신도 5명을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부산지역 모 교회 담임목사가 대법원으로 실형 확정 판결을 받았다. 대법원 3분(판사 이숙연)는 ‘강제추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 목사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이 선고한 징역 1년 6개월을 확정했다. 또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40시간, 이수, 아동청소년, 장애인 기관 5년간 취업 제한 명령도 확정했다.
앞서 1심 재판부인 부산지법은 A 씨에게 “담임목사로서 직분을 망각하고 젊은 여성 교인들을 강제로 추행해 죄질과 범죄 정황이 불량하다. 특히 B 씨 추행 정도가 심하고, 장소가 목양실이라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크다”며 징역 2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A 씨가 범행을 인정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있다. 피해자들이 공탁금을 수령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시했지만, 일정 금액을 형사 공탁하는 방법으로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했다”며 징역 1년 6개월로 감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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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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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 임원회, 분쟁교회들 화해 조정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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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동총회(총회장 장봉생 목사) 임원회가 교단 내 분쟁교회들의 화해 조정을 나섰다. 총회임원회는 1월 20일 분쟁교회 관계자들을 불러 의견을 청취하고,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단, 사회법 분쟁 중에 있는 교회 문제에 대해서는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 아래, 조정에 나서지 않았다. 이날 참석한 교회는 영덕교회, 혜린교회, 부전교회, 천안중부교회 등이다. 이들 갈등교회는 양쪽 관계자와 노회 관계자들이 참석해 서로의 입장을 듣고 화해 방안을 모색했다.
총회장 장봉생 목사는 “지금 상황에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상대측에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리고 총회에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지, 임원들이 직접 듣고 임원회가 도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 돕고자 한다”며 면담을 주선한 배경을 설명했다.
담임목사 청빙문제로 분쟁중인 부전교회도 당회 선임장로와 당회서기, 그리고 원로 및 은퇴장로 등이 참석했고, 임시당회장과 노회 재판국장도 함께 자리해 자신들의 입장을 밝혔다. 총회 임원회는 사태 해결을 위한 상대방의 양보와 이해를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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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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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동, 입후보자 ‘삼진 아웃제’ 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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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총회에서 임원선거 문제로 홍역을 앓은 예장합동총회(총회장 장봉생 목사)가 ‘삼진 아웃제’를 실시한다. 최근 선거관리위원회는 제주동산교회에서 선거법 위반에 관한 삼진 아웃제를 논의하고 관련 내용을 발표했다.
삼진 아웃제는 입후보자가 선거운동시 세 차례 선거법을 위반 할 경우 후보 자격을 박탈하는 제도다. 이 제도는 금년 9월 111회 총회에 적용된다. 후보자는 작년 110회 총회 폐회 이후 행사 강사 및 순서를 맡거나 자신을 알리는 발언, 사진을 촬영(행사포스터에 얼굴 노출 금지)해 공개하는 것도 금지된다. 단, 후보자들이 소속 노회에서 후보로 추천받는 마지막 날인 4월 30일까지는 단순 행사 참여나 단체사진 촬영은 가능하다.
총회 선관위는 선거법 개정안을 전국 노회에 발송해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 이후 지역별 공청회를 통해 선거법 개정안을 최종 완성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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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