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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사칼럼] 선물
    멜라네시아 원주민들에게는 “쿨라(kula)”라고 부르는 독특한 관습이 존재했습니다. 일종의 선물 교환 시스템으로 누군가가 선물을 받으면 제공자가 아니라 다른 이웃에게 선물하는 교환 기부 형태였습니다. 북미의 인디언 중에는 부와 지위를 과시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진수성찬을 베풀고 축제를 후원하며 상당한 가치의 선물을 하는 “포틀래치(potlatch)”를 행하는 지도자들이 있었습니다. 부족사회를 연구해서 이러한 의미심장한 결과물들을 찾아낸 마르셀 모스(Maecel Mauss)는 이러한 현상들을 두고 “평화를 얻기 위해 ‘소유권을 없애기’, 서로 죽이지 않기 위해 ‘축제를 열어 분배하기’, 동맹을 맺기 위해 ‘물건을 희생시키기’”라고 정의한 바 있습니다(『증여론(Essai sur la don)』(1924), 원문 197-202). 그런데 이런 기부와 후한 인심은 위에서 언급한 지역들뿐만 아니라 많은 다른 원시 사회에서 발견되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원래 사치스러운 기부는 경쟁이 아니라 화합을 위해, 경제가 아니라 도덕을 위해, 과시가 아니라 종교적 동기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습니까? 인류학적으로 볼 때 “사치”는 크게 세 개의 범주로 존재해왔습니다. 첫째는 신성한 사치 혹은 속세의 사치로 신들이나 왕들에게 고가의 물건을 바치는 형태를 의미합니다(질 리포베츠키, 엘리에트 루, 『사치의 문화』(2004), 32). 다른 표현으로 하자면 ‘사회적 사치’ 혹은 ‘에토스(ethos)적 사치’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다. 전술한 쿨라나 포틀래치도 여기 포함됩니다. 둘째는 미학적 사치인데, 예를 들면 예술품과 같은 어떤 물건들은 사회적 위상이나 권력의 상징으로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귀한 존재처럼 소개되고 사랑을 받았습니다. ‘에로스(eros)적 사치’라고 할 만한 이러한 변화는 중세를 지나면서 르네상스와 근대를 잇는 중요한 하나의 표상으로 작용합니다. 셋째는 감정적 사치 즉 ‘파토스(patos)적 사치’로서 ‘사치의 현대화’라고도 할 수 있는데, 19세기 후반부터 조짐을 보이다가 20세기 들어 대유행하기 시작한 프랑스의 ‘오트 쿠튀르(haute couture)’가 그 중심에 서 있습니다. 이는 파리의 고급 양장점의 총칭인데 해가 지날수록 발전을 거듭해서 1935년 이미 4천 명이 일하고 있던 ‘코코 샤넬(Coco Chanel)’만 해도 연간 2만 8천 점의 작품(?)을 생산하고 있었습니다. 샤넬만큼은 아니어도 1956년에 크리스티앙 디올(Christian Dior)을 위해 일하는 사람도 1,200명이나 되었다 합니다(사치의 문화, 48). 그런데 지금 바로 그 “디올”이 대한민국의 언론과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대통령 영부인이 동사의 고가품 가방을 선물 받는 장면이 담긴 영상이 유포되면서부터입니다. 그 직후 대통령 내외가 네덜란드를 방문했을 때 환영식 광장에 있던 커다란 디올 매장을 우연인지 트럭이 가리고 있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는데, 오히려 사람들의 호기심을 더 자극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마도 지금 한국을 바라보며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인물은 바로 디올의 최고경영진이 아닐까 합니다. 사람들의 모방 심리를 자극해서 디올 제품이 앞으로 불티나게 팔리리라는 예측은 “인간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다”라고 했던 프랑스 사상가 자크 라캉(Jacques Lacan, 1901-1981)을 굳이 동원하지 않더라도, 삼척동자라도 하겠기 때문입니다. 이미 지난해부터 “여사는 디올을 입는다”라는 문구가 등장하면서 디올의 국내 매출액은 전년 대비 두 배 가까이 상승했고(6,139억) 영업이익은 102% 늘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머니투데이, 2022.6.5). 우리는 신이 인류 최대의 선물인 “성탄(聖誕)”을 안겨준 계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물론 성탄은 석가나 다른 성인들의 탄생을 의미하는 보통명사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인은 물론이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참된 의미의 성탄은 창조주가 영원 전에 나시고 영원 전부터 함께 하신 독생자를 아낌없이 인류를 위해 내어주신 사건이기 때문에 특별합니다. 세속적 사치나 미학적 혹은 감정적 사치를 위해 내어준 선물이 아니었습니다. 무언가의 대가를 바라면서 바치는 뇌물이 될 리가 만무했습니다. 이 선물을 이 땅에 투척한 이유 또한 원시 사회의 지도자들이 자신의 위대함을 과시하기 위해 대단한 가치를 지닌 것을 불태우거나 바다에 던져버리기도 했던 행태와도 달랐습니다. 절대존재이기에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따위의 이론이 적용될 여지도 전혀 없었습니다. 성탄은 창조주의 무한한 호의의 결과요, 지고지순한 순수의 산물입니다. 모스는 원시사회를 분석하며 “선물의 교환은 풍성한 부를 만든다”(증여론, 165)고 했지만, 성탄이야말로 스스로를 다 내어주면서 모든 사람을 풍성하게 만든 유일무이한 선물이었고, 지금도 가장 놀라운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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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20
  • [은혜의말씀]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눅 1:26-38)
    예수님의 탄생은 우주가 생긴 이래 가장 놀라운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 속으로 들어오신 사건은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그런데 꼭 열 달 전에 이 엄청난 일을 혼자서 다 겪은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지요? 마리아입니다. 천사가 나타나 “네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할 것이다” 예고했을 때 마리아가 받은 충격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처녀가 임신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요. 그래서 마리아는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냐고” 천사에게 따집니다. 그러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이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었다고,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다고” 말할 때 마리아는 겸손히 순종합니다. 그는 천사의 말을 믿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면 마리아가 지녔던 믿음이 무엇입니까? 마리아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천사가 한 말은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겁니다. 그 때 마리아의 나이는 10대 후반이거나 20대 초반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요셉과 정혼을 한 사이지만 아직 어린 처녀 아이입니다. 그런데 잉태가 웬 말입니까? 인류가 이 땅에 존재한 이래 들어본 일도 없고 있을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마리아는 그것을 믿고 받아들였습니다. 38절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는 기적의 하나님인 것을 믿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은 기독교 교리 중에서도 핵심교리입니다. 예수님은 그냥 육신의 아버지와 육신의 어머니를 통해 태어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 탄생하셨습니다. 요 1:14 뭐라고 합니까?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700년 전에 벌써 그와 같은 일을 예언했습니다. 사 7:14절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여러분은 기적을 믿으세요?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기적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통치하시면 우리 이성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일들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성경에 그런 기적의 얘기가 가득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은 기적을 믿을 뿐 아니라 기적을 기대해야 합니다. 오늘의 현실이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 가정이 아무리 힘들어도, 내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하나님 안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있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을 기대하십시오. 그렇게 기적을 믿고 사는 것이 복 된 삶입니다. 예수님이 “네 믿음대로 될지니라.” 했지요. 성탄과 새해를 맞이하며, 여러분 모두가 기적이 상식이 되는 그런 축복된 삶을 누리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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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20
  • [목회자칼럼] 하나님의 선한 손길
    꿈자리가 사나울 때는 어떻게 해야될까? 속 시끄러울 때는 무엇을 해야할까? 꿈자리가 사납고, 일이 종잡을 수가 없을 때, 그 때 주께서 간섭하신다. 인간의 수단과 방법이 다할 때 하나님께서 본격적으로 역사하신다. 숨 쉴 수 없을 만큼 코너에 몰리고, 힘겨울 때 주께서 숨통을 틔워주신다. 구약성경에는 이방 왕들의 꿈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손길을 볼 수 있다. 바벨론 포로시절에 개인적으로는 출세하여 수산궁의 술 맡은 관원이 되었던 느헤미야는 고향 예루살렘이 황폐해진 것과 무너진 성벽소식을 듣고는 수일을 슬퍼하며 금식 기도하는 중에 아닥사스다 왕이 그의 소원을 묻고 느헤미야는 왕 앞에 황망한 중에도 막간 기도를 하며 왕께 아뢰니 하나님의 도움의 손이 역사하셔서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도록 총독으로 파송 받고, 건축 자재를 얻고, 특별조서까지 받았다. 나라의 결재권자는 왕이지만 역사의 최종 결정권자는 흥망성쇠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에스더는 민족이 몰살당할 위기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죽으면 죽으리이다" 라고 기도할 때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아하수에로 왕의 눈을 열어 왕에게 부름 받지 못한지 30일이 지난 에스더를 예쁘게 보게 하였고 나라의 절반이라도 줄만큼 사랑하는 마음을 주었다. 다급한 가운데 마침내 절호의 기회가 왔지만 에스더는 내일 잔치에 오라고하는 여유를 부릴 때는 그 믿음의 배짱이 대단하다. 어느 날 밤, 왕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역대일기를 읽는 중에 모르드개가 암살음모에서 왕을 구한 것을 알게 되고 대반전이 일어나서 하만을 물리치고 나라와 민족을 구했는데 위기의 때에 이방왕의 마음을 움직인 분은 하나님이시다. 요셉은 꿈꾸는 아이였다. 그러나 현실은 꿈과는 반대로 돌아갔다. 살아서 나오기 힘들다는 왕실의 감옥에 갇힌 요셉이 바로 왕의 꿈을 해석해 주면서 총리가 되어서 가족과 민족을 보호하였다. 바로 왕은 요셉을 하나님의 성령에 감동받은 사람으로 인정을 하였다. 다니엘은 그 시대에 최강 제국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꿈을 해석해 주면서 쓰임 받게 되었다. 나라가 망하고, 성전이 불타고,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서 어린 시절 이국 만리 포로로 끌려간 아이가 다니엘이다. 패배감, 절망감, 열등감, 수치감에 살아갈 팔자였지만 뜻을 정하고, 왕의 진미를 거절하고, 멀고도 험한 고향땅을 그리워하며 집에 가서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고 하루 세 번씩 기도의 루틴을 가진 사람이었다. 기도할 때마다 더 어려워졌다. 왕에게 절하지 않는다고 사자 굴에 투옥되고, 바벨론의 지혜자들이 느부갓네살 왕의 꿈을 아무도 해석하지 못했기에 모든 지혜자들과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마저 죽을 위기에 빠졌지만 다니엘의 꿈 해석으로 친구들도 살고 뜻밖에 그는 총리가 되어서 정권이 바뀌는데도 세 번이나 총리가 되었다. 모두들 하나님이 주시는 영감을 받았기 때문이다. 과부와 부흥되지 않는 교회의 공통점은 영감이 없다는 것이다. 남편, 영감이 없고, 성령의 영감(Inspiration)이 없다는 공통점이다. 성령이 임하시면 영안이 열리고, 하나님의 지혜가 생긴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 주께서는 우리 안에 소원을 두고 행하신다. 주께서는 꿈을 통해서라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신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을 꿈이라도 꾸어지면 언젠가 실제상황이 된다. 그래서 믿음이 좋은 사람은 꿈이라도 빵실하게 꾸지만 믿음이 없는 자들은 꿈도 없고, 소원도 없고 “냅둬 이래 살다 죽을란다” 성도는 긍정, 낭만, 진취, 발전, 소망의 꿈을 꿔야 된다. 잠꼬대라도 믿음의 언어를 사용해야 된다. 진인사대천명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으로서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는 것이다. 하나님100%, 사람100%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부모님을 공경하고, 부부간에 존경하고, 형제간에 우애하고, 나라를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가정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도시를 사랑하라. 성경 곳곳에는 이름도 없고 힘도 없는 여인들의 믿음 찬 모습이 나온다. 이방 모압 여인 룻의 신앙과 하나님의 우연한 인도로 재혼 후 다윗 왕통 출생, 여리고의 기생 라합의 결단으로 인한 온 가족 구원, 자식이 없음으로 통곡하며 오래 기도한 한나에게 이스라엘 최고 멘토 사무엘 주심, 군대 장관 시스라를 죽인 외딴집에 살던 헤벨의 아내 야엘... 신앙생활에는 5기가 있다. 언약의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고, 위대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기대하고, 주님의 때를 기다리며, 쉬지 말고 기도하면 기념비적인 기적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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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20
  • [이상규 교수의 역사탐색] 호주선교부의 미우라 고아원 출신 김순복 여사2
    호주 장로교의 커를 의사를 따라 진주로 이주하게 된 박순복은 남편 박성애 조사와 함께 커를 의사가 준비한 진주면 성내4동 정경철 씨 소유의 초가에서 거주하게 된다. 이곳이 호주선교부의 첫 거점이 되었고, 바로 이곳에서 교회와 학교를 설립하게 된다. 처음에는 거주지에 주택 한 켠에 서적고를 설치하고 성경 보급을 시작했는데 이것이 시작이 되어 1905년 10월 22일 진주교회가 탄생했다. 이 교회가 진주지방 첫 교회이자 서부경남지방 첫 교회가 된다. 1906년에는 대안면 2동에 8칸의 예배당을 건축하고 이동하였고, 1916년에는 도동면 옥봉리 비봉산 아래에 예배당을 신축하고 이전했는데, 이때부터 옥봉리교회라고 불리게 된다. 이곳에서 커를 의사를 도와 진주지방 첫 근대학교를 설립하게 되는데, 개교식은 1906년 4월 15일 거행되었고, 첫 입학생은 21명이었다. 학교 이름은 안동남학교였다. 설립자 겸 교장은 커를 선교사, 교감은 김경숙, 학감은 박성애, 교사는 안헌이었다. 안헌(安憲, 1886-1946)은 후에 안확(安廓)으로 개명하는데, 후일 그는 마산 창신학교 교사가 된다. 일본에서 유학 한 이후 독립운동에 관여하고, 문명개화론을 주창했던 인물이었다. 또 그는 국문학자이자 역사가로 명성을 얻었다. 이 학교의 교과는 성경, 국어, 산수, 역사, 지리, 한문, 습자, 체조, 창가, 그리고 영어였다. 남학교가 설립된 지 4개월 후인 그해 8월, 커를 선교사 부인 에셀 커를의 주도로 사립 정숙학교라는 이름의 여자학교가 설립되었다. 이때 김순복은 교사기 되었다. 정식 개교식은 9월 3일 거행되었는데 교과목은 성경과 국어, 산수, 역사, 지리, 한문, 습자, 침공(바느질) 등이었다. 학비가 면제되었기 때문에 진주지역 뿐 만 아니라 인근 고성, 산청, 하동 지역에서 오는 학생도 있었다. 이렇게 설립된 안동남학교와 정숙학교는 1909년 2월 통합되어 사립광림학교가 된다. 각종학교로 인가를 받기 위한 조치였다. 비록 학교는 통합하였으나 남자부와 여자부로 나누어 수업했는데, 학급은 심상과(尋常科) 4년, 고등과(高等科) 2년으로 편성하였다. ‘심상 尋常’이라는 말은 평범한 것, 보통의 것이라는 의미인데 일본의 교육제도의 소학교, 곧 초등학교 과정을 의미했다. 1910년 당시 이 광림학교의 교직원은 6명이었고, 학생 정원은 40명이었으나 실제로는 80명 이상 재학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남자부 사립 광림학교는 재정 문제로 1929년 폐교되고, 여자부는 1921년 시원여학교로 개칭되는데 이 학교는 신사참배 문제로 1939년 7월 31일자로 폐교되고 만다. 진주에서 첫 근대의료 기관인 배도병원이 설립된다. 호주장로교 여전도회연합회는 1906년 6월 병원 설립 기금으로 825 파운드를 진주로 보냈고, 커를 의사는 1907년 12월 병원 설립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였다. 이렇게 되어 현재의 진주교회 뒤편 삼전아파트 자리에 임시 진료소를 설치하였는데, 이것이 진주지방에서의 병원 설립의 시작이 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커를의 조사였던 박성애와 부인 김순복 여사가 동역하였다. 1910년 10월에는 병원 건축을 시작하였고, 1913년 11월에는 50개 병상을 갖춘 병원을 설립하게 된다. 이런 학교와 병원 설립의 뒷바라지를 한 이가 김순복 여사였다. 남편 박성애 조사는 1911년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였고, 1915년에는 진주교회 장로가 된다. 1917년에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1919년 1월 목사 안수를 받고 진주교회 첫 담임목사가 된다. 따라서 김순복은 남편을 도와 목회자의 아내로 살게 된다. 그런데 광림학교 교사로 일하던 김순복은 평양을 다녀온 남편 박성애 목사의 주선으로 김 마리아 등이 조직한 ‘대한민국애국부인회’와 ‘대한적십자회’에 가입하여 진주지부 초대 지부장으로 추대되었다. 김순복은 진주지방의 여성동지를 규합하고, 상해임시정부의 독립자금 모금과 항일광복운동과 항일사상을 고취하는 일을 맡았다. 그런데 1919년 11월 28일 서울에서 대한민국애국부인회 활동이 발각되어 전국 조직 지도자들이 모두 체포, 수감되었는데 진주의 김순복도 박보렴, 박덕실(朴德實)꽈 함께 체포되어 대구 지방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이 때의 대한민국애국부인회 활동에 대해서는 「매일신보」 1919년 12월 19일자 등에 보도된 바 있다. 박순복 여사는 목사의 아내로서 민족과 애국, 독립운동에도 관여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남편 박성애 목사가 1920년 창원교회로 이동하게 되자 박손복 또한 창원으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창원여자야학교’를 설립하여 후학 양성에 이바지하였다. 이때의 헌신이 널리 알려져 1922년 8월 8일자 「동아일보」는 ‘박순복 여사의 열정’이라는 기사를 게재하여 그의 봉사를 기념하였다. 이상과 같이 독립운동과 애국운동에 기여한 공로로 김순복 여사는 2021년 3월 1일에 독립유공자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 이 처럼 고아 소녀로 성장했으나 호주선교부의 사랑으로 양육을 받았고, 부산과 진주에서 개척자의 길을 가며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헌신했던 김순복 여사는 55세를 일기로 1942년 10월 6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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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규교수의 역사탐색
    2023-12-20
  • [소강석칼럼] 국기원에서 태권도를 재발견하다
    얼마 전에, 우리교회에 출석하시는 최규옥 회장님이 점심을 초대하여 갔습니다. 거기는 이수성 전 총리님이나 백성학 회장님 등 여러 고명하신 분들이 함께한 자리였습니다. 식사가 끝나고 함께 자리를 했던 우리교회 협동장로이자 국기원 원장이신 이동섭 장로님이 국기원이 이곳에서 가까우니 잠시 방문을 해 줄 수 있느냐고 하셨습니다. 사실 국기원은 세계 태권도의 메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천주교인들에게는 바티칸이고 기독교인들에게는 예루살렘과도 같은 곳이죠. 차를 타고 정문인 일주문을 지나는데 태권도의 위엄이 벌써부터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국기원은 김운용 초대 원장에 의해 1971년 겨울 강남의 언덕배기에 기공식으로 시작된 곳인데요. 본관은 한옥의 멋과 풍류를 고스란히 반영한 건물이었습니다. 특별히 청와대를 본떠서 지붕이 청기와로 덮여 있었습니다. 본관 앞에 도착하니 210개국의 국기가 걸려 있었습니다. 그 210개국의 2억 명이 넘게 태권도 수련을 하였고, 1100만 명 이상의 유단자와 20만 명 이상의 사범이 배출되었다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는 태권도를 통해서 210여개국 이상에 정신적, 무도적 영향을 미치고 지배를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동섭 국기원 원장님의 안내로 박물관 관람부터 하였습니다. 그곳에는 2천 6백여 점의 자료가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국내와 세계의 주요 대회에서 시상한 우승컵, 상장, 메달, 우승기 등이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이동섭 장로님은 “목사님이 지금까지 몰라서 그렇지, 국기원 원장 자리는 가톨릭으로 말하자면 교황과 같은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저야말로 태권도의 교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말을 듣자, 저는 교회에서 늘상 보던 장로님과 국기원에서의 장로님이 사뭇 다르게 보였습니다. 참으로 엄청난 거인 앞에 제가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장로님은 국기원 원장실로 저를 안내하시더니 먼저 기도부터 해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저의 기도가 마치자, 장로님께서는 태권도의 C.I.를 비롯해 수련의 목적을 설명하였습니다. “태권도는 단순히 무술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심신 수련과 인성교육에 더 큰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수련 과정에서 쌓이는 정신 수양은 인의와 예의, 관용과 생명, 인격, 인내력과 의협심을 가져다주고 덕을 가져다줄 뿐만 아니라 인격을 완성하게 해줍니다.” 이런 태권도의 황제인 이동섭 장로님이 20대 국회의원으로 계실 적에 국회의원 225명의 서명을 받아 태권도를 대한민국의 국기로 지정하는 법을 만드셨습니다. 한마디로 국기 태권도를 법제화한 것이죠. 왜 그것이 그렇게 중요하냐면, 중국이 태권도의 동북공정을 할 뿐만 아니라 일본은 올림픽 경기에서 태권도를 제외시키고 가라테로 교체하려고 하는 시점에서 국기 태권도법을 입법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 위대한 거인을 옆에 두고도 저는 이제야 거인을 다시 볼 수 있었습니다. “아, 내가 왜 국기원을 방문하지 않았던가. 진작 국기원을 방문하였을 걸...” 국기원 수련장을 둘러보니 전국에서 모인 수련생들이 대련(시합)을 하고 있었습니다. 순간 저의 어린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워낙 시골 깡촌에서 자라서 태권도 도장에는 한 번도 못 가보고 학교 운동장에서 태권도를 배웠습니다. 빨간 띠까지는 읍내에 있는 관장님이 학교로 오셔서 심사를 하였습니다. 저는 품새도 잘했을 뿐만 아니라 대련에서 누구에게 한 번도 져본 적이 없었습니다. 드디어 검은 띠를 딸 때가 되었습니다. 사범님으로부터 예비심사에 합격을 하고 읍내에 가서 관장님 앞에 심사만 받으면 검은 띠를 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단자가 되려면 그때 당시 심사비를 꽤 많이 냈던 것 같습니다. 그 이유로 어머니가 절대로 유단증을 못 받게 하였습니다. “검은띠는 큰 형으로도 족하다. 너는 어딜 가나 누구에게도 안 맞고 다니지 않느냐. 태권도만 잘하면 되지 검은띠가 무슨 필요가 있느냐. 너까지 검은 띠를 따게 해 줄 수는 없다.” 그래서 저는 실질적으로는 유단자였지만 심사를 못 봐서 검은띠를 못 땄습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제가 죽기 살기로 도전을 했더라면 뭘 못했겠습니까? 제가 마당에 엎어져서 뒹굴고 엉엉 울어댔으면 어머니도 어찌하셨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태권도 말고도 돈이 들어가지 않는 백일장 대회나 웅변대회에 가서 상을 받아오는 것으로만 만족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 제가 국기원에서 공인 9단이요, 세계 태권도의 교황 앞에 서서 제 자신을 바라보니 너무나 작아지는 느낌이었습니다. 특별히 옛날에는 안 맞고 다니고 싸움을 잘하기 위해서만 배우려고 했던 태권도가 심신 수련과 인성교육, 덕과 인격 완성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우리의 국기인 태권도가 새삼스럽게 위대하고 자랑스럽게 느껴졌습니다. 태권V 이동섭 국기원 원장님이 더 거인으로 보였고, 이제는 옛날에 배웠던 태권도를 복습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심신 수련과 덕과 인격 완성의 과정을 삼아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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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칼럼
    2023-12-01
  • [성서연구] 혼란 시대의 그리스도인
    5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한 사람이 있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6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7 엘리사벳이 잉태를 못하므로 그들에게 자식이 없고 두 사람의 나이가 많더라 요즘 우리 기독교인들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현실에 당황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19만 겪어보지 못한 일이 아니라, 한국교회의 현실 또한 겪어보지 못한 일입니다. 교세가 감소하고, 신학생이 줄어들고, 한국교회의 목소리가 대한민국 사회에서 먹혀들지 않고, 소수로 전락하는 일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1960년대 이후 한국교회는 세계가 주목할 정도로 급성장했고, 대형교회가 가장 많은 나라가 되었습니다. 한국교회는 힘이 있었고, 대한민국 사회의 여론 지도층 대부분이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이런 데 익숙한 우리에게 오늘의 찬 바람 부는 현실은 겪어보지 못한 어색하고 힘든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우리는 먼저 생각부터 바꿔야 합니다. 그것은 교회와 성도는 본래 소수였음을 상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겨우 열두 제자를 부르신 이후 예수님을 따르는 참 성도는 늘 소수였습니다. 기독교 국가이던 중세 유럽에서도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중생한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소수였습니다. 우리나라도 복음이 들어온 초기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기독교가 다수였던 적은 없었습니다. 단지 힘이 좀 있다 보니 다수인 듯 착각했을 뿐입니다. 본래 믿음의 선배들은 불신앙의 거대한 세상에 에워싸여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믿음의 정절을 굽히지 않고 그리스도인답게 꿋꿋이 살았습니다. 그게 우리 선배들이 혼란 시대를 살아가는 방식이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좋은 모델입니다. 누가복음 1장 5절은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한 사람이 있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고 두 사람을 소개합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유대 왕 헤롯 때에>라는 구절입니다. 이것을 각색한다면 <더 악할 수 없을 정도로 악한 세상에서>라고 하겠습니다. 헤롯은 로마와의 인연으로 분봉왕이 되어 유대를 다스린 에돔 출신의 광포한 사람이었는데, 아내들과 친아들들을 죽였을 정도로 악했습니다. 헤롯에게 베들레헴의 아기들을 죽이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습니다. 사가랴 부부는 로마의 식민지요, 헤롯 같은 악한이 다스리는 시대에 살았습니다. 게다가 인간적으로 낙도 없었습니다. 누가복음 1장 7절은 <엘리사벳이 잉태를 못하므로 그들에게 자식이 없고 두 사람의 나이가 많더라>고 했습니다. 세상이 악해도 자녀가 있다면 낙이 있을 텐데, 이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삶은 놀라웠습니다. 누가복음 1장 6절은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고 되어있습니다. 사가랴 부부는 헤롯 왕이라는 눈앞의 권력자가 아닌, 하나님께 맞춰 살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의인이었습니다. 더구나 주의 계명과 규례대로 고집스럽게 흠 없이 살았습니다. 세상이 악해도 그들은 그들의 믿음의 외길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이렇게 산 끝에 세례 요한을 낳았습니다. 앨런 크라이더는 『초기교회와 인내의 발효』에서 로마 시대의 초기교회가 로마 전역으로 확산된 비결은 어려운 핍박의 상황에서도 묵묵히 인내한 것과, 세상의 조롱을 받으면서도 말씀에 따라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고집한 데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 모습에 감동된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해결책은 여기 있습니다. 세상의 편법을 따르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맞춰야 합니다. 그리고 묵묵히 그리스도인답게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지켜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시간이 걸리겠지만, 하나님의 뜻이 우리를 통해 이루어질 것입니다. 고독하고 힘들지만, 묵묵히 믿음의 길을 걸어가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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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01
  • [시사칼럼] 타락한 지도자들, 빛과 같은 백성들
    총체적 난국이란 말이 있습니다. 사방이 어려운 국면에 빠져 타개할 길이 보이지 않고 해결할 실마리를 찾을 수 없는 상황을 가리킵니다. 하마스와 전쟁 중에 있는 예루살렘을 보십시오. 지금도 그러하지만 그 옛날도 예루살렘은 총체적 난국에 빠져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이 어떤 곳입니까? 평화의 도성인 동시에 하나님의 성전이 자리 잡고 있던 거룩한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선지자들이 전하는 예루살렘의 모습을 보십시오. “패역하고 더러운 곳, 포학한 그 성읍이 화 있을진저”(습 3:1). 패역이란 하나님을 향한 교만과 불순종을, 더럽다는 말은 도덕적 타락을, 포학하다 함은 정의와 인자의 실종을 의미합니다. 한 개인의 편견이 아니었습니다. 예레미야도 “그 성중에 오직 포학한 것뿐이니라”(렘 6:6)라고 증언했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결정적인 이유가 등장합니다. “방백들은 사자요, 재판장들은 이리요, 선지자들은 간사하며, 제사장들은 성소와 율법을 범했다”(3-4절)고 합니다. 한 마디로, 당시 지도자들이 완전히 부패하고 타락해버렸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도 “선지자와 제사장이 다 사악하여 내 집에서도 악이 가득하구나”라는 하나님 말씀을 전했습니다(렘 23:11). 역시 동시대에 활동했던 에스겔 또한 “제사장들이 불법을 범하고 사람들의 눈을 가리워 하나님께서 더럽힘을 당한다”고 고발하고 있습니다(겔 22:26). 결국 예루살렘에 “화 있을진저”라는 신탁(Woe Oracle)이 붙었습니다. 선지서에 자주 등장하는 이 문구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대적하는 이민족을 향해 주께서 분노에 차서 선포하던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총체적 난국 가운데 한 줄기 빛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계시는 여호와는 의로우사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시고 아침마다 빠짐없이 자기의 공의를 비추시거늘..”(습 3:5). 그렇습니다. 사방이 캄캄한 어둠뿐이라 해도 언제나 한 줄기 빛이 존재합니다. “아침마다 비추시는 하나님의 빛”입니다. 말라기 선지자도 선포하지 않았습니까?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말 4:2). 총체적 난국에 처했더라도 우리는 이사야처럼 이 빛을 기다리고 바라봐야 합니다(사 8:17). <바보 예수>로 유명한 서울대 명예교수요 가좌대 석좌교수인 ‘김병종’ 화백이란 분이 있습니다. 서초동 사랑의교회 지하 4층 예배당 벽면에는 그가 그린 55미터의 대형 그림이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원래 작품 이름은 “바람이 임의로 불 때-송화분분”이지만 교회 측에서는 그림을 ‘기도와 묵상의 길’이라 부릅니다. 김 교수의 고백입니다. “사람들이 버스나 지하철에서 내려 우르르 예배당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창조주를 예배하러 가기 위해 옷깃을 여밀만한 준비와 여유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옛날 어머니와 손잡고 들길을 걸어 교회에 갔던 일을 떠올리며 제작했습니다.” 성경은 주께서 아침마다 빛을 어김없이 비추신다 말합니다. 하지만 끝내 외면하는 자들이 존재합니다. 반면 그 빛을 찾아가는 그림 속 모자(母子) 같은 이들도 있습니다. 선지자는 그들을 “겸손한 자들”(2:3) 혹은 “유다 족속의 남은 자”(2:7)나 “나의 남은 백성”(2:9) 내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3:12) 또는 “시온의 딸, 예루살렘의 딸”(3:14)이라고 불렀습니다. 지도자들이 타락하고 그 때문에 한 사회가 총체적 난국에 빠져도, 결국은 이런 사람들이 빛이 되는 법입니다. 최근 한 지역방송국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한 편이 뒤늦게 입소문을 타며 화제몰이 중에 있습니다. 진주에서 평생 한약방을 운영하던 분 이야기인데, 그분 이름을 딴 제목이 “어른 김장하”입니다. 그는 모은 재산으로 학교를 세우고 사회에 기증했고 장학금을 주며 어려운 이웃을 돌보고 살폈습니다. 젊은 감독은 선생의 모습을 취재하며 감탄한 나머지 “살아 움직이는 사회보장제도”라는 격찬을 남깁니다. 하지만 본인은 소문내지 않고 너무나 검소하게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후원 받은 사람들 중에 헌법재판관도 나오고 의사도 나오고 했다 합니다. 그런데 방송 중에 한 사람이 “선생님 장학금을 받고도 특별한 인물이 못 되어 죄송합니다.” 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그 때 어른의 대답에 깊은 울림이 있었습니다. “그런 걸 바란 게 아니야. 그리고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고 있는 거야.” 우리 지도자들을 보면 한숨만 나올 때가 많습니다. 정치인들만큼이나 성직자들도 부패하고 타락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거룩함을 소중히 여기고 겸손할 줄 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도 빛을 기다리며 묵묵하게 살아가는, 온통 혼탁하고 세속적인 분위기 가운데에서도 신을 경외하며 그 교훈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가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하나님의 선하심을 소망으로 삼고 살아가는, 비록 유명하지 않아도 영향력이 없어 보여도 한 줄기 빛과 같은 평범한 인생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아직 희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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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01
  • [은혜의말씀] 무화과 나무가 마르다(막 11:12-14)
    베다니에서 하룻밤을 보내신 예수님은 이른 아침, 다시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십니다. 그런데 배가 좀 고프셨나 봅니다. 멀리 무화과나무 잎사귀가 풍성한 것을 보시고는, 열매를 얻을까 하여 가까이 가십니다. 그런데 잎사귀만 무성하지 아무런 열매가 없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 나무를 저주하십니다. “이제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 오늘 본문은 좀 이해하기 힘지요? 이 본문은, 이스라엘의 대표적 나무인 무화과나무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 필요가 있습니다. 무화과나무의 본격적인 수확기는 6월에서 7월입니다. 그러나 나무에 따라서는 좀 이른 시기인 3-4월에 열매를 맺기도 하고, 반대로 좀 늦은 시기인 9-10월에 열매를 맺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화과나무는 열매가 먼저 맺히고, 잎은 나중에 무성해집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길을 가시다가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열매를 구하러 다가가신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나무를 저주까지 할 필요는 있느냐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예수님이 나무를 저주하시는 것은 하나의 ‘상징적인 행위’입니다. 바로 허울뿐인 이스라엘 백성들의 잘못된 신앙을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의 신앙이 잎만 무성하고, 열매는 하나도 없는 껍데기 신앙과 같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자, 우리가 무화과나무를 통해서 배워야되는 교훈은 이것입니다. 1. 잎만 무성하고 열매는 없는 껍데기 신앙 – 종교 외형주의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시 바리새인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그들은 겉으로 보면 대단했습니다. 종교적 열심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껍데기만 그럴듯하게 포장을 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의식했습니다. 자, 오늘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보여지는 것에 신경을 쓰고, 사람들의 시선에는 집중하지만,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가 멀어져 있다면, 잎만 무성하고 열매는 없는 신앙입니다. 입술로는 ‘주여, 주여’ 하는데, 행동은 도무지 주님의 뜻과는 관련이 없다면, 그게 열매 없는 허울뿐인 신앙, 종교의 외형주의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은 어떻습니까? 혹시 바깥으로 기울어져 있지 않습니까? 저는 여러분의 신앙이, 외형이 아닌 내면이 단단하고 꽉 차 있는 진짜 신앙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2. 무화과나무를 통해서 배우는 교훈은 - 예수님은 우리 삶에 열매를 찾으신다는 것입니다. 무화과나무는 꼭 한 가지 목적을 위해서 존재합니다. 바로 열매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 삶에 정직과 신실함과 의의 열매가 풍성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삶이 예수 향기를 나타내는 거룩한 열매가 풍성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열매를 맺습니까? 아니, 왜? 열매를 맺지 못할까요?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이유는, 주님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의심하지 않고, 그분을 온전히 신뢰하는 것입니다. 기적을 믿는 게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기도가 없기 때문이다. 기도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엎드리는 순간, 기도하는 순간, 살아계신 주님의 능력이 임할 줄 믿습니다. 열심히 기도하는데도, 기도 응답의 경험이 없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기도가 막혔는지도 모릅니다. 인간관계의 갈등입니다. 내 마음속에 이웃을 향해서 미움이 있다면, 그것이 기도를 막는 것입니다. 용서는 하나님의 중요한 성품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해주셨습니다. 복음의 한가운데는 용서가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한없이 하나님의 용서를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도 용서를 실천해야 합니다. 모든 성도님들이, 세상 속에서 날마다의 삶이 거룩한 예배가 되도록 하시길 축복합니다. 세상 속에서 거룩하게 살므로, 풍성한 열매를 맺으며 살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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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01
  • [교회음악칼럼] 찬송(예배)하며 사는 사람들 9
    미국에서 살 때 아들의 성화에 못 이겨 런닝머신을 들여 놓았다. 그것만 있으면 살을 뺄 수 있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살도 못 빼고 머신은 장식품으로 전락했다. 운동을 하면서 느낀 것인데 억지로라도 운동을 하기 위해 머신에 올라갔을 때 제일 힘든 점은 지루함이다. 절박함이나 목표가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좁은 실내공간에서의 운동은 답답하기까지 했다. 비겁한 변명이긴 하지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다. 30분정도 걸으니까 몸이 데워지고 근육과 관절이 부드러워 지면서 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이 지루한 30분이 문제였다. 이것을 극복할 수만 있다면 지속적인 운동이 가능하겠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가 무엇인가는 시작하면 얼마가지 않아 어려움에 봉착할 때가 있다. 나의 전공인 음악분야를 예를 들면 아이들이 피아노를 시작하게 되면 바이엘이라는 교본으로 시작을 하는데 반쯤 진도가 나가면 힘들어 하면서 하기 싫어하는 것을 보게 된다. 나름 힘든 장애물을 만난 것이다. 이 고비를 넘기지 못하면 포기하게 된다. 상당한 수준의 경지에 이르기까지 이와 같은 어렵고 힘든 고비를 수도 없이 견디고 넘어야한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겨내야만 목표한 바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성악도 가르쳐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짧은 시간에 결과를 얻고자 한다. 바꾸어 말하면 길게 인내하며 지속적으로 오래하기를 원치 않는 것이다. 세상에 어떤 열매도 지난한 고난의 시간을 견뎌내지 않고 얻을 수 없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모든 여정가운데 이것은 늘 경험해 온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즉 지속적이고 꾸준함이란 참으로 고통스럽고 힘든 것임에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우리의 신앙생활을 돌아봐도 능히 느낄 수 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푯대를 향한 우리의 걸음이 바르고 꾸준하였는지, 어렵고 힘들어서 주저앉아 걷기를 포기한 적은 없었는지, 또 지금 나는 인내하고 참으며 지속적으로 푯대를 향한 걸음을 계속하고 있는지, 아니면 안개 속에 길을 읽고 헤매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쯤 돌아보며 점검해 봤으면 좋겠다. 시대의, 세월의 흐름에 맡기고 살아도 될 만한 세상이 아닌 거 같다. 찬송과 예배가 강력하게 살아나서 힘들고, 악하고, 유혹이 많은 이 땅위를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소망하는 푯대를 향한 걸음에 멈춤이 없고 변함없는 꾸준함으로 쉼 없이 걸어갈 수 있기를 기도하며 하루하루 주님을 향한 사랑과 감사의 노래가 우리 입술을 통해 끊임없이 고백되고 선포되어지기를 소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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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01
  • [목회자칼럼]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있나?
    1397년 5월 15일, 지구의 한 곳에 한 생명,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그 후 약 150년이 흐른 후 1545 4월 28일, 지구의 한 곳에 한 생명,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이 두 사람은 현재 ‘경제규모 13위 부유국가, 7위 소비국가’인 대한민국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첫 번째 한 생명, 아기는 잘 자라서 훌륭한 공무원이 되고, 두 번째 한 생명, 아기는 잘 자라서 군인이 되었습니다. 여기까지 말씀드리면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은 다들, 눈치를 채셨겠지요? 아니면 아직도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예상을 못하고 있는지요? 첫 번째 한 생명, 어린 아기는 자라서 훗날 한글을 창제한 조선 4대 왕인 세종대왕이 됩니다. 그리고 두 번째 한 생명, 어린 아기는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어려움을 당할 때, 바다를 지키며 임진왜란을 승리를 이끌고 23전 23승이라는 기적같은 전직을 세운 이순신 장군입니다. 만약, 이 두 생명, 두 어린 아기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세종대왕은 한글을 만들면서, 훗날 조선을 넘어 대한민국의 후손들이 한글을 자랑스러워하며 민족의 정신이 담긴 글로 받아들이며 잘 사용할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고 만들었을까요? 이순신 장군 역시, 500년이라는 긴 시간이 흐른 후 지긋지긋한 일본의 괴롭힘 속에 벗어나 이제는 일본과 경제, 문화 분야에 어쩌면 더 뛰어난 성장을 이룰 것을 알고 치열하게 싸운 것이었을까요? 아마, 아닐 것입니다.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 모두, 100년 후 혹은 500년 후를 미리 알고 그 일들을 한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을 의미를 찾아내서 했기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세종대왕이 중국의 눈치를 보며 한글을 창조한 이유는 ‘백성을 향한 사랑’이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오자병법과 손자병법을 뛰어 넘는 전술로 전쟁을 했습니다. 이순신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적의 숫자가 아군보다 더 많으면 절대로 싸우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지만, 이순신은 13척의 배를 갖고 명량해전을 치루었습니다. 오자병법, 손자병법을 넘어서는 결정을 하며 해전을 치룬 이유는 무엇인가요? 바로 어려움을 겪는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 이었습니다. 이제 시선을 돌려 나를 향하여 바라봅시다. 지금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요? 혹,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결과가 나오지 않고, 별다른 성과가 없어 힘들어 하고 있지는 않는가요? 연말을 맞이해 일년을 결산하면서 날씨도 춥고 경제도 추운데 이뤄놓은 것도 없어 마음까지 추운 분은 없는지요? 지금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느 곳에서 이름도 없이 묵묵히 자기의 일을 감당하며 뚜벅뚜벅 걷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비록 빛도 없고, 이름도 없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갖고 다가서는 그 자리에 100년 후, 500년 후에 대한민국과 하나님 나라가 있을 것입니다. 2000년 전, 1월 1일에 태어난 한 생명 예수가 오늘날 전세계 75억 가운데 30억의 가슴 속에 하늘 나라의 사랑을 심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중 한 명이 바로 나이고, 나같은 사람을 그분의 사랑으로 변화시키셨습니다. 뉴턴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도 사랑이라는 바다에 한 발 조차 담그지 못한, 모래 밭에서 놀고 있는 어린 아이와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바다를 눈과 가슴에 품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내 눈동자와 가슴 속에는 바다가 넘실거리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나는 그 바다에 나 자신을 내던질 것입니다. 나 스스로를 사라이랑는 바다에 던지려는 순간, 무수히 많은 사람이 곁에 있지 않을까요?” 사랑으로 시작했는데 지쳐버린 영혼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이 걷고 있는 그 길이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당신이 걷고 있는 그 길이 미래와 하나님 나라를 만들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이 바로 미래의 출발점임을 아는 것, 지금 내가 섬기고 있는 단 한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의 시작점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2023년을 보내며 다시 한 번 점검해야 할 나의 태도와 자세일 것입니다. 2023년, 마지막 한달을 남겨 놓고 있는 이 시점, 다시 사랑에 물들고 싶고 사랑으로 견디고 싶고 사랑으로 승리하고 싶습니다. 지쳐버린 영혼이 있다면 다시 사랑으로 일어나길, 다시 하나님의 소망으로 세워지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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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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