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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법특강]웨스트민스터 총회(1643-1649)와 한국장로교회의 교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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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부분 장로교회에 지금 있는 교회법은 어디서 왔을까? 물론 원리는 성경에서 왔다. 또 16세기 종교개혁의 영향을 받았다. 근데 직접적으로는 영국 웨스트민스터 총회(1643-1649)에서 작성한 교회법에서 왔다. 웨스트민스터 총회는 5년 7개월에 걸쳐 1163회를 모였다. 처음에는 목사가 121명, 상원의원이 10명, 하원의원이 20명으로 총 151명이었다. 첫 모임 한 달 후인 8월 17일에 스코틀랜드와 맺은 ‘엄숙한 동맹과 언약’(Solemn League and Covenant)으로 인해 스코틀랜드 목사 5명(알렉산더 헨더슨, 로버트 베일리, 사무엘 루더포드, 조지 길레스피, 로버트 더글라스)과 장로 3명이 파송되므로 회원이 159명으로 늘어났다.
웨스트민스터 총회는 법적으로는 총회의 소집과 해산, 총회의 구성과 회의 진행 등 모든 권한이 의회에 있었다. 당시 교회는 왕과 의회의 지배 아래 있었다. 총회는 단지 의회에 조언을 해주는 기구에 불과했다. 웨스트민스터 총회는 잉글랜드 의회에 의해 소집된 종교회의였다.
바로 여기서 교회법, 특히 장로회 교회정치가 확정되었다. 당시 총회에는 감독정치, 회중정치를 주장하는 이들이 있었다. 총회의 구성원이 다양했기 때문에 확정하기까지는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국가가 교회 위에 있다고 여기는 에라스투스파들과도 상대해야 했다. 심지어 장로회 정치를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즉 영국 장로회주의자들과 스코틀랜드 장로회주의자들 사이에서도 의견 차이가 있었다.
회중정치를 주장하는 이들이 가장 먼저 문제를 제기했다: “성경이 교회의 정치에 대해 과연 말하는가?” 위원회는 다음 질문을 염두에 두고 보고서를 작성했다: 1) 신약에서 어떤 직분이 언급되는가? 2) 어떤 직분이 임시적이고 어떤 직분이 항존하는 것인가? 3) 어떤 호칭이 각각 그 직분에 속하는가? 4) 항존 직분의 내용은 무엇인가?
성경의 자료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토론이 이어졌다. 1643년 11월 2일부터 21일까지는 목사와 교사 사이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두고 토의가 있었다. 총회는 회중정치에 반대하여 목사와 별개로 존재하는 교사의 직분은 성경에 근거가 없음을 결정했다. 그러나 한 교회에 목사가 두 사람이 있을 때 한 사람은 설교를 다른 사람은 교육을 맡을 수 있게 했다.
이후 12월 8일까지는 가르치는 장로와 다스리는 장로의 차이에 대해서 토의했다. 성경에 두 종류의 장로-즉 말씀과 교리에 전념하는 장로와 권징을 시행하는 다스리는 장로-에 대한 증거는 있으나, 총회는 다음과 같이 절충했다. 성경이 다스리는 장로를 말하고는 있으나, 이것이 임시 직원인지 아니면 항존 직원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말하고 있지 않다고 결정했다.
가장 중요한 토론은 치리회(당회, 노회, 총회)의 권위에 대한 것이었다. 장로회주의자들과 회중주의자들이 대립했다. 이는 지역교회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것이기도 했다. 예를 들면 지역교회가 단독으로 목사를 안수하고 임직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 등이었다. 수많은 토의를 거쳐 목사 임직은 노회의 권한이며, 치리회 결정에는 신적인 권위가 있다고 결정했다. 1644년 4월 20일에 <목사임직 지침서>가 의회에 제출되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영국 땅에서 총회가 모여서 확정한 4개 교회법 문서(신앙고백서, 교회정치, 예배지침, 대, 소교리문답)를 정작 영국의회는 승인하지 않고, 나중에 총대 8명을 보내며 합류한 스코틀랜드 총회가 웨스트민스터 총회를 언약에 따라 소집된 양국의 공동총회로 인정하고 이를 수용했다는 점이다. 스코틀랜드교회가 이 교회법을 수용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이고 하나님께서 이루어가신 신비였다. 1660년 영국 교회는 왕정복고와 함께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들을 모두 폐기하기 때문이다. 그때 스코틀랜드교회들이 채택한 바로 이 교회법 문서들이 미국교회를 거쳐 한국교회에 전파되어 한국에 장로교회가 세워졌다. 이는 하나님의 신비로운 섭리요 복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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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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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고신교회 행사, 무엇이 빠졌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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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개최된 고신 선교대회와 전국장로회 부부수련회는 고신교회의 정체성과 미래를 담아내는 뜻깊은 행사였습니다. 많은 분들의 헌신과 기도 속에 잘 준비된 자리였고, 좋은 결과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쉬움도 있습니다. 행사 전 이어진 소위 ‘기관장 인사’ 순서를 보며, 행사의 본질과 방향성을 돌아보게 됩니다.
고신교회의 대형 행사에서 기관장들의 인사가 전통처럼 되어버린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물론 기관을 대표해 인사하는 일이 전혀 불필요하다고 말할 수는 없겠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환영과 기대가 고조되어야 할 시간에 반복적이고 형식적인 인사말이 길게 이어지는 것은 오히려 행사의 긴장감과 감동을 흐리게 할 뿐입니다. 참석자들이 진정 듣고 싶어 하는 말이 무엇인지, 그 자리에 서 있는 이들이 누구여야 하는지를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그렇게 많은 인사자들 가운데 정작 고신교회의 교육을 책임지는 ‘교육원장’의 인사가 없었다는 점입니다. 현재 교육원장은 비록 젊지만, 그 위상과 역할을 고려할 때 결코 가벼이 여길 수 없는 분입니다. 고신교회의 미래가 교육에 있다는 점에서, 가장 전략적이고 핵심적인 자리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금은 은퇴하신 한 목사님은 “고신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두 축은 교육과 선교”라고 하셨고, “가장 존경받아야 하고, 고신교회가 가장 잘 대우해야 할 자리가 교육원장과 선교본부장”이라고 강조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되새긴다면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중요한 본질을 놓친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행사가 매년 반복된다고 해서 그 형식마저도 ‘늘 하던 방식’ 그대로여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오히려 반복될수록 더욱 진지한 성찰과 재구성이 필요합니다. 나이나 신대원 기수가 아니라, 오늘 고신교회가 어디에 중심을 두고 있는지, 어떤 사역이 지금 하나님 나라의 전략적 우선순위인지, 무엇이 미래를 여는 결정적 열쇠인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지 않을까요?
진정한 존경은 직책의 높낮이나 나이보다, 사역의 본질과 하나님 앞에서의 충성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신교회의 리더십은 행사 순서를 통해 그것을 보여야 하며, 다음 세대를 세우는 교육 사역에 대해 더 큰 관심과 공적 인정을 나타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한편, 고무적인 흐름도 있었습니다. 최근 고신선교대회 직후 이어진 고신 선교사대회에서는,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방식으로 강사를 세우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그 결과, 선교사들에게 큰 은혜를 끼쳤다는 평가가 이어졌습니다. 이는 향후 고신교회가 강사 선정과 순서 구성에 있어서도 ‘본질’을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이제는 사람을 보는 기준, 사역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행사를 구성하는 철학까지도 새롭게 점검할 때입니다. 향후 고신교회의 대형 행사에는 사역의 전략성과 공동체의 우선순위를 반영한 순서 구성 원칙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특히 교육과 선교 분야는 그 중심에 위치해야 합니다. ‘무엇이 중요한가?’라는 질문 앞에 서서, 우리 고신교회 전체가 그 답을 더욱 분명히 보여주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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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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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교수의역사탐색]6.25 전쟁의 기적: 기적으로 살아남은 대한민국(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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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초기 서울을 점령한 인민군의 서울에서 3일을 허비한 것은 우리에게 반전의 기회를 준 기적같은 일이었다, 북한이 남침을 하고 파죽지세로 남하하였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남침한 북한군은 서쪽의 웅진반도로부터 개성, 전곡, 포천, 양양 등 4개 축선(軸線) 11개 지점에 이르는 38도 선 전역에서 남침을 개시하여 6월 26일 임진강 일대와 의정부 및 춘천을 돌파했다. 27일 밤에는 미아리 삼거리에 설치해 두었던 장애물을 밀어제치고 길음교를 통과하고 서울 도심으로 진출했다. 개전 3일 만인 6월 28일에는 서울을 점령했다. 서울을 점령하기까지 소요된 시간은 3일 7시간 30분이었다.
그런데 인민군은 서울에서 3일 간을 허비했다. 이 3일이 우리로 하여금 반격을 준비하게 한 것이다. 남침 하루만인 6월 26일 오전 4시(현지시간 25알 14시)에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긴급 이사회가 열려 북한이 침략행위를 중단하고 38도선 이북으로 철수할 것을 권고했다. 이 권고를 무시하자 유엔 안보리는 28일 유엔 회원국들의 해,공군을 통한 한국지원을 요청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그렇게 하여 유엔군의 참전을 결의한 것이다.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은 3일을 허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반격할 준비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북한군이 소중한 3일을 서울에서 허비하면서 국군과 유엔군의 반격의 기회를 준 것은 이해할 수 없는 기적이었다.
전쟁발발 5시간도 안 되어 개성을 점령한 북한군은 3일만에 서울을 점령하고 6월 30일이 되도록 한강을 넘지 않는 것은 일반적으로 남한에서 봉기가 일어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었고 따라서 굳이 서울 이외의 지역으로 전선을 확대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박명림, 박태균 등은 서울만 점령함으로서 전쟁을 끝내려했다는 이른바 ‘제한전쟁설’을 제시한다. 어떠 해석을 하던 북한군이 순식간에 전쟁을 끝낼 수 있는 중요한 3일간 서울에서 허비한 것은 우리에게는 반전의 시간을 준 기적적인 일이었다.
다섯째,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은 기적이었다. 인천상륙작전은 전세를 완전히 역전시키는 시건이었다. 북한군은 6월 26일 임진강 일대와 의정부 및 춘천을 돌파했고, 개전 3일 만인 28일에는 서울을 점령했고, 30일에는 한강 도하를 시작하여 7월 6일에는 오산 인근을 점령하고, 7월 24일에는 대전을, 7월 말에는 목포와 진주를, 8월 초에는 김천과 포항을 점령했다. 8월 말 북한군 주력부대는 낙동강까지 진출했고, 북한군은 전쟁 개시 한 달 남짓한 기간에 낙동강 남서부 일부 지역을 제외한 남한지역의 90% 이상, 인구로는 92% 이상을 수중에 넣었다. 북한군은 낙동강 전선에 모든 전력을 집중하고 있었다. 남은 지역만 점령하면 남한을 거의 전부 점령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맥아더 장군은 인천상륙작전을 기획했다. 그러나 미합동참모본부와 해군 수뇌부는 인천으로 상륙 시도는 성공률 5천분의 1이라며 강력하게 반대했다. 10m에 이르는 조수간만의 차도 상륙을 어렵게 하지만, 수로가 좁아 대규모 선단(船團)의 진입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상륙을 위한 LST 艇(Landing Ship Tank, 전차양륙함) 이 정상적으로 가동하려면 수심이 50미터 이상이 되어야 하는데, 썰물 때는 작전이 불가능한다. 결국 상륙작전은 3-4시간 정도의 밀물 때를 이용해야 하는 위험한 작전이었다. 그런데 북한군이 좁은 수로에 기뢰(機雷)를 매설할 경우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되기 때문에 인천상륙작전은 미친 짓이라고 반대했다. 그러나 맥아더 장군은 작전의 성공을 확신하고 대통령을 설득하여 승인을 받았다. 9월 15일 항공모함과 순양함, 구축함과 제10군단 병력이 탐승한 대규모 선단이 인천 앞바다에 집결했고, 유엔군 소속 함정은 261척, 미제5해명 연대 제3대대의 선봉 공격대가 인천수로에 진입하면서 총 7만 5천명이 투입된 작전이 시작되었다. 성공률 5천분의 1이었으나 작전은 성공했다. 맥아더 장군의 용기와 지혜로 이룬 기적이 아닐 수 없다. 9월 16일에는 인천을 탈환했고, 인천 지역에 주둔했던 북한군 2천여 명은 거의 멸절 되었다.
정일권의 회고록 의하면, 맥아더는 정의와 자유에 대한 신념 때문에 이 작전을 수행했고 성공할 수 있었다고 확신했다고 말한다. 맥아더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우리 인류의 정의와 자유가 아직도 확고하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이 신념을 한국의 수도 서울에서 입증해 보이기위해 이 모험을 단행하려는 것입니다. 나는 성공을 확신합니다. 우리 장병 10만명의 목숨을 살릴 수 있는 이 계획을 어찌 바꿀 수 있겠습니까? 나는 확신을 가지고 이 작전을 단행할 것입니다.” 이 신념 때문에 미국방성과 콜린스 미육군참모총장과 셔만 해군참모총장이 승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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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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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건축칼럼]시공과정의 민원 방지와 유지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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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건축의 시공 과정에서 예견되는 주요 문제점중 하나는 민원의 문제이다. 특히 교회건축은 민원에 거의 표적이 되어 왔고 민원인의 민원제기 사항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해볼 수 있다.
첫째. 건축법과 직접적으로 관련성이 있는 내용으로서
①일조권을 침해하는 사항 ②공사중의 먼지 ③시선으로 인한 프라이버시 침해
④본당의 소음 발생 등의 사항이 있고
둘째. 건축법과 직접적으로 관련성이 없는 내용으로서
①집값의 하락 ②주변환경의 혼잡성 ③주변주차의 혼잡성
④종교적 성향의 차이에서 오는 무조건적 반대,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상의 민원제기 사항을 분석해 볼 때 교회건축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민원의 사전예방의 전략을 교회는 철저히 준비하면 그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즉 민원은 착공 후에 발생이 되면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보통 돈으로 보상을 요구하거나 공사중지 가처분 신청 등을 하기 때문에 공사기간의 연장되며 주변과 끊임없는 마찰로 교회의 사회적 이미지가 손상을 받는다. 따라서 민원을 미리 예측하여 사정에 이에 대한 준비를 한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 건축 시공 전에 교회는 건축의 내용과 공사기간, 교회의 시설이 지역주민을 위해 제공되어 주민이 함께 사용하므로써 지역사회에 기여 할 수 있는 내용을 자세히 홍보하여 지역주민의 문화센터와 같은 열린공간으로 사용하며 교회주차장은 지역주민의 공용주차장으로 사용되는 등의 선기능적인 내용을 알게하여 오히려 지역주민의 협력하도록 해야한다.
둘째, 건축법과 직접적으로 관련성이 있는 내용을 설명하여 일조권 침해나 소음, 시선으로 인한 프라이버시 등의 문제가 적법하게 허가되었음을 공지하여 지역주민의 막연한 오해를 불식 시켜야 한다.
셋째, 건축법과 직접적으로 관련성이 없는 내용은 교회가 건축되어지므로써 오히려 지역사회가 활성화되고 낙후성이 극복되고 생기 있는 지역으로 변모되어, 지가가 상승되고 지역상권이 살아 개발의 장점이 혜택 되어짐을 설명해야 한다.
넷째, 교회 시설의 프로그램이 지역 사회와 공유할 수 있는 시설로 상호 유기적으로 교회되고 다양한 교육과 문화, 정보, 복지, 오락, 스포츠 등의 근린 커뮤니티의 장을 제공하므로써 지역주민이 이용할 수 있는 열린공간으로서의 교회상을 홍보해야 한다.
이상과 같은 교회의 비젼이 지역사회와 공유되어짐을 홍보함으로써 오히려 지역주민의 협력하고 참여하는 축제의 과정이 되도록 적극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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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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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말씀] 사랑의 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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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바울은 나는 빚진 자(롬1:14)라고 고백하였다. 돈에 빚진 자는 스트레스가 엄청나다. 그러나 사랑의 빚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물질의 빚은 억지로라도 갚아야 되지만 사랑의 빚, 복음의 빚은 사람을 바꾸어서 빚을 갚을 수 있는 유력자로 변화시킨다.
우리 포도원교회가 지나 온 45년의 시간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빚진 세월이다. 그동안 받은 사랑의 빚을 잊지 않고자 한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에 빚진 자이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에 빚진 자이고 부산에도 빚진 자이다. 피와 땀으로 포도원교회를 일구며 앞서간 성도들의 사랑에 빚진 자이다. 하나님의 은총을 듬뿍 받은 우리는 채무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빚이 빛이 되게 하라. 빚진 자니까 빛 가운데로 걸어가서 일어나 빛을 발하라. 우리는 빛의 자녀이니까 어둠에 속한 것은 벗어버리자.
복음을 받아들여 하나님의 사랑에 빚진 자가 되었으니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복음전하기를 원하노라(롬1:15). 최고의 선물은 복음이다. 태어난 모든 사람은 죽느냐 사느냐가 중요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고 부활하셨다. 십자가와 부활이 복음의 핵심이다. 크리스천의 사명은 하나님 사랑에 빚진 자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할 수 있는 대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믿거나 말거나 복음을 전해야 된다. 복음 전하기를 멈추지 마라. 전도하기를 애를 쓰다 보면 주께서 시간도 주시고, 건강도 주시고, 물질도 주신다.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롬1:16). 복음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내가 교회 다니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는 이순신신앙을 버리라. 남을 부러워하지 말고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라. 복음 전하는 자의 발이 가장 아름답다(롬10:15). 복음은 영광스러운 것이다. 복음이면 충분하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롬1:16). 하나님의 능력, 두나미스, 성령의 권능, 예수 이름의 능력이 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롬1:17)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복음이 들어가면 관계가 새로워진다. 복음이 들어가면 의가 생겨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반듯하게 정립된다. 모든 것이 하나님과의 나와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나 자신과의 관계, 부부사이의 관계, 부모와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자연과의 관계.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긍심을 회복하면 부모님을 공경하고 부부간에 사랑하고 이웃도 내 몸같이 사랑하게 된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1:17). 모든 계명을 지켜 행하면 약속의 땅에서 장구하리라. 믿음이 들어가면 하나님을 경외하고, 부모님을 공경하고, 부부간에 존경하고, 형제를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게 된다. 의인은 믿음으로 주님의 말씀을 지킨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네가 형통하리라. 오늘날 우리나라는 남북이 대치하고 있고, 동서가, 세대가, 좌와 우가 나뉘어져 싸운다. 믿음의 세계에서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하나님 편에 서라. 비록 더디게 가는 것 같지만 치우치지 말고 똑바로 나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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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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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박물관처럼 미술관처럼 찬미하는 교회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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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4월 영국 미술매체 ‘아트 뉴스페이퍼’가 2023년 한 해 동안의 전 세계 박물관과 미술관 관람객 수를 조사해 발표한 결과를 보고 다들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886만), 바티칸 박물관(676만), 대영박물관(582만),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536만), 런던의 테이트 모던 현대미술관(474만)에 이어 한국의 국립중앙박물관이 6위를 차지했기 때문입니다(418만). 해방과 함께 개관한 국립중앙박물관이 최근 들어 이렇게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이유 중 하나로 자타가 인정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사유의 방’입니다. 각각 국보 78호와 83호에 해당했던 반가사유상 두 개를 비교적 널찍한(439m²) 공간에 나란히 배치한 이 방을 들어서는 순간 저절로 탄성이 터집니다. 기념비적인 걸작에 기념비적인 전시라 할 만합니다. 하지만 느닷없는 탄생이 아닙니다. 수십 년 간 반가사유상에 천착해 온 박물관장과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보았던 몇 번의 과감한 시행착오와 그리고 무엇보다 최 욱이라는 건축가와 신소연이라는 학예연구관의 집념과 창의성이 조합한 결과입니다.
사실 미술이나 조각 같은 예술에 관한 사람들의 관심이 갑자기 급등하는 일은 흔치 않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한국의 필수관광코스 중 하나가 되었다고 할 정도니 외국인의 방문은 분명히 늘어났는데, 이런 현상에는 BTS(한 멤버가 언급함)나 애니메이션(케이팝 데몬헌터스 관련)도 일조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많은 국내 관람객 수의 증가는 무엇에 기인할까요? 여러 요인 중 하나로 미술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저변을 확대하는데 이바지한 책을 한 권 소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전설적인 곰브리치(Ernst Gombrich, 1909-2001)의 『서양미술사』(1950)는 아니고, 미술전공자가 아닌 한국인 경영학도 청년이 쓴 『방구석 미술관』(블랙피쉬, 2018)이라는 책입니다. 지금까지 50만 부 가까이 팔렸다는데, 예술서적으로서 이만한 성취가 있었던가요? 더 눈여겨 볼 대목은 이 책이 미친 파급력입니다. “미술관 키워드가 포함된 예술 분야 도서의 출간 총수가 매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대중이 미술을 접하고 향유하는 접점이 넓어짐에 따라 관련 도서에 관한 열풍은 물론 미술관이라는 장소에 대한 대중적 관심도 높아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예스24)
한국에만 일어난 일도 아닙니다. 작년 말에 앞서 언급했던 뉴욕의 메트로폴리탄에서 10년 간 청소부로 근무했던 패트릭 브링리(Patrick Bringley)라는 사람이 내놓은 뒤 아마존에서 40주 연속으로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원제: All the Beauty in the World)가 우리나라에서도 잔잔하지만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작가는 「뉴요커」에 근무하던 기자였는데, 어느 날 형의 죽음으로 엄청난 상실감에 무너져 내리다가 형과 함께 들렀던 미술관에서 새로운 삶을 택했습니다. “형이 세상을 떠나자 나는 내가 아는 공간 중 가장 아름다운 장소에서 떠올릴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일자리에 지원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나만의 방식을 갖추게 되었다.” “우리는 각자 자기만의 슬프고 밝은 그림을 찾기 위해 갈라졌다.” 독특한 명성이 자자해서 베스트셀러라는 허명에 쫓기지는 말자는 다짐을 잠시 접고 읽었던 책들입니다. 조원재도 브링리도 그 책 속에 깊은 울림이 있습니다. 단순히 미술을 소개하는 글이 아니라 감정을 그림 속에 이입하고 울분도 따뜻한 시선도 화가들에게서 발견하는 미학적인 노고가 담겼습니다. 그런 공감이 있기에 미(美)에 둔감한 사람들을 미적 여정으로 인도하는 게 아닐까요?
일견 작아 보이지만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는 이런 담론을 소개하는 이유는 한국 교회가 이제는 미적 관점을 새롭게 정립해야 할 필요성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주지하다시피 종교개혁자들은 한 때 미술과 조각과 심지어 음악까지 다 몰아내려 시도한 바 있습니다. 물론 교회 안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차원을 넘어서 우상처럼 변할 수 있는 위험 요소들이 존재했지요. 하지만 그러다 보니 하나님의 아름다움 자체를 찬미(讚美)하는 관심과 열정까지 시들해져버리지는 않았을까요? 교회 건축이나 성화(聖畫)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진·선·미의 창조적 조화와 균형을 이제는 한국 교회도 좀 더 심각하고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할 때입니다. 우리는 그 동안 신앙의 진리와 신앙의 바름을 강조하고 추구해 왔습니다. 그렇다면 신앙의 아름다움은 어떻습니까? 국립중앙박물관에 올해 상반기에만 벌써 270만 명이 다녀갔다고 합니다. 신기록이 예상됩니다. 사람들의 아름다움에 관한 관심이 이렇게 뜨겁습니다. 우리의 교회도, 성도도, 신앙도, 다 아름다우면 좋겠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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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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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연구]믿음은 늘 능력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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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난 주일에 영락교회에서 <믿음은 때로 무능합니다>란 제목으로 설교했습니다. 우리는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있어도 뽕나무를 바다에 심기게 할 수 있다는 말씀에 고무되기도 하지만, 실제로 그 일은 한 번도 이루어진 적이 없었습니다. <믿음을 더해 주소서>라고 제자들이 요청했지만, <믿음을 주노라>는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낙심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할 수 있는 전능자이시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전능자의 무능함>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뽕나무를 바다에 심는 것보다 죄인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기적을 이루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없이, 정말 무능한 자처럼 십자가에서 죽으실 수 있었던 힘은 어디서 온 것입니까? 그건 성부 하나님께 대한 신뢰에서 온 것입니다. 예수님께 질문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만약 이렇게 십자가에서 죽어도 죄인을 구원할 수 없다면, 아무 성과도 없이 예수님만 애매하게 죽는 게 아닐까요?> 그때 예수님의 대답은 무엇일까요? <내 아버지께서는 보고만 계실 분이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아버지의 뜻이며, 아버지께서는 구약에서 준비하신 대로 나의 고난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실 것이다. 아버지의 열심이 반드시 이루실 것이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명의 기적이 일어나는 현장으로 바꾸셨습니다. 그 후 어떤 죄인이라도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믿고 의지하면 죄 사함을 받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생을 얻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따라 십자가를 지시는 독생자 예수님을 기뻐하셨고, 그 십자가는 부활로 이어지게 하셔서, 인류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무를 바다에 심는 이적도 행하지 않으시고, 가장 무능한 자처럼 말없이 십자가를 지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다고 했는데, 그 결과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셨습니다.
고난 중에 있던 욥이 버틸 수 있었던 힘도 이런 믿음에 기인했습니다. 욥기 23장 10절에서 그는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고 확신했습니다. 그의 확신의 근거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뜻이 일정하시고, 반드시 이루십니다. 욥기 23장 13~14절입니다. <13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키랴 그의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 14 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이런 일이 그에게 많이 있느니라>
바울 사도께서 빌립보서를 에바브로디도 편에 보낼 때, 그는 로마 감옥에 계셨습니다. 빌립보교회 성도들은 바울의 안위에 대해 많이 염려했습니다. 그들이 에바브로디도를 보낸 이유도 바울을 돌보게 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오히려 성도들을 위로했습니다. 빌립보서 1장 6절은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사울일 때 예정하셨고,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복음의 빛으로 부르셨고, 이방을 위한 전도자로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갇힐 때까지 그를 통하여 많은 이를 구원하시고,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설령 복음을 위해 살다가 죽더라도, 하나님의 복음은 막히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실패하지 않으시기에, 이미 시작하신 착한 일을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믿었습니다.
이것은 빌립보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바울에게서 예수님을 믿고, 그리스도인이 된 후로, 복음을 위해 헌신하며 고난당했는데, 빌립보 성도들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의 날에 반드시 이루실 것이라 했습니다. 주님만 믿고 나아갑시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믿음은 늘 승리의 능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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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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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임중칼럼]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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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잘 아는 목사님은 나이 서른에 야간 대학을 다녔고, 서른다섯에 신학을 시작하고 불혹의 나이 사십이 되어 목사 안수를 받았다. 지방에서 대형교회로 성장시키고 목회가 꽃이 피어 향기를 토할 즈음에 그 목사님은 그 사역의 폭을 더 넓히고 싶어 일찍 은퇴를 선언하고 전국 방방곡곡 미자립교회를 찾아 자비량집회를 시작했다. 모두가 바보라고 할 때 그는 바보 사도 바울의 흉내라도 내고 싶어 그 고난의 길을 자초했다. 대부분의 동역자들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느냐?”고 물을 때마다 그는 긍정적 삶의 교훈을 이야기한다. 시편 18편 1절의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를 들려주고, 고린도전서 15:10절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한다.
하나님이 힘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 그는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깨달음으로 오직 주님으로 달음질했다. 청년의 때에 먹지 못하고 병들어 쓰러질 때 그는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회의(懷疑)를 느꼈다. 벌레만도 못한 존재라는 사실 앞에 통곡을 해야 했던 아픔도 있었다. 그러나 그 절박한 상황에서 어둠을 밀어내는 빛의 말씀이 들려오면서 그는 다시 자기자신의 존재에 대한 기쁨에 몸을 떨면서 감격했다.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이사야43:1)” 내가 하나님의 것이 된 것, 나를 구속하신 하나님이 나를 지명하여 불렀다는 사실 앞에 그는 무가치한 존재가 아니라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하나님의 자녀 됨을 확신하면서 삶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병든 몸은 건강으로 바꾸어졌고 가난한 생활은 마음의 부요에서 삶의 부요로 나아가게 되었다. 행복한 목회를 마무리했고 은퇴 후 1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한 주일도 쉼 없이 말씀사경회를 인도한다.
그 목사님은 종종 ‘노만 빈센트 필’목사님의 독수리와 닭 이야기를 들려준다. 양계장에서 부화되어 양계장에서 자란 독수리가 자기가 닭이 아니고 독수리임을 깨닫고 날개에 힘을 주어 하늘 높이 날아오른 것처럼,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존귀한 자라는 사실을 확신할 때 엄청난 힘이 솟구치는 것을 느끼게 된다. 내 자신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귀한 존재가치를 깨닫게 되었을 때, 세상 그 무어도 부러울 것 없는 오직 주님으로 삶은 희망과 행복감으로 출렁이게 되었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것은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을 닮은 존재로 창조된 피조물이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전능하심처럼 인간에게도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이 가능성을 계발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음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과학적으로도 증거되는 것인데 독일의 뇌학자 ‘에코노모'박사는 인간의 대뇌는 무게가 약 1,500g 이며 이는 핑크색 제지와 같은 고체인데 두께가 평균 3mm이고 그 세포 수는 136억 5,300만개가 되며 그 한 개의 세포는 소형 트랜지스터 1개의 성능과 같다는 사실을 발표하였다. ’노이만‘ 박사는 이 세포와 트랜지스터의 비교 논문에서 뇌세포는 트랜지스터보다 속도가 1만~10만배 빠르다고 발표한바 있다. 이와 같은 뇌를 인간이 평생 얼마나 사용하는가 하는 문제는 학자들 간에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누구도 1%의 머리를 개발한 사람은 없다는 것이 보편적인 결론이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존재가 인간이라면 우리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가능성을 계발할 수 있어야 한다.
꿀벌이 1파운드의 꿀을 채취하기 위하여 5만6천 송이의 꽃을 찾아다닌다. 가령 클로버 꽃인 경우는 한 송이 안에 60개의 튜브(flower tube)가 있으므로 벌은 336만회의 작업을 거쳐 1파운드의 꿀을 얻는 다는 것이다.
회사에서 신입사원을 채용하는 과정의 면접 시험 시간에 시험관은 까만 점 하나를 찍은 백지 한 장을 벽에 붙이고 무엇이 보이느냐고 물었을 때 대부분의 응시자는 까만 점이 보인다고 답을 하는 가운데 몇 사람만 백지가 보인다고 답을 하였다. 면접관이 말하기를 “여러분은 왜 이 작은 점 하나만 보는가? 이 큰 백지는 보이지 않는가?”라고 교훈하였다.
실망을 잘 하는 사람은 흔히 자신의 속을 본다. 인생의 싸움에서 패배하는 사람은 흔히 자신의 과거를 본다. 줄곧 남만 따라 다니는 사람은 흔히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무슨 일을 하다가 중도 하차하는 사람은 흔히 자신의 눈 한치 앞만 본다. 자신감이 없는 사람은 흔히 모든 사물을 대강 본다. 좌절하고 절망을 잘 하는 사람을 흔히 보려고 하지 않는다. 보는 것도 훈련이다.
영어 속담에 ‘The parade passes and dogs bark'(행렬은 지나가고 개들은 짓는다.)는 말이 있다. 일하는 사람과 비평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뜻도 되고, 몇몇 말꾼이 시끄럽게 해도 역사의 행진은 멈추지 않는다는 뜻이 담긴 속담이다. 역사의 키를 잡고 이끌어 가는 사람은 떠버리가 아니라 자기의 길을 조용히 걸어가는 사람들이다.
수학여행을 다녀온 여학생 둘이 소감을 말했다. 한 여학생은 “어쩌면 산이 그렇게 더러워요. 쓰레기는 여기저기 쌓여있고 파리는 왜 그렇게 극성이예요.” 다른 여학생이 말했다. “산에서는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들국화를 보았어요. 새소리는 마음을 행복하게 했어요.”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어떤 사고(思考)로 보고 느끼는가의 차이다.
‘버클러’ 박사가 신학교 교수로 재직할 때 헬라어 최고점을 받은 학생이 시각 장애자였다고 했다. 그에게 비결을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을 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서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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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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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말씀]인생을 연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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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시편을 보면, 대적이 그물을 치고 웅덩이를 파고 함정을 만들어서 억울하게 공격할 때에도 다윗은 곡소리를 내지 않고 오히려 노래를 불렀다. 사람이 시험을 당하고 어려움을 겪으면 얼굴이 일그러지기 쉬운데 어떤 이는 미소를 잃지 않는다. 징징거리기 마련인 그 때에 오히려 노래를 흥얼거린다.
다윗은 계속 공격을 당하면서도 마음이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마음을 확정하고 확정하였다. 마음에서부터 병을 만들지 않고 마음의 쓴 뿌리를 제거하고 마음의 강퍅함을 면하고 마음의 어두움을 물리치고 마음의 풍금을 연주했다. 내 마음 나도 몰라 하지 말고 네 마음을 튜닝하라. 주파수를 주님께 맞추어라. 주님께 맞춘 채널을 고정하라. 데시벨을 높여라. 파장을 보내라.
무반응, 무대책, 무기력한 우울증에 빠져있지 말고 네 마음을 표현하라. 무엇인가 소리를 내라. 차든지 뜨겁든지 반응하라. 묻든지 따지든지 대화하라. 비전, 도전, 응전하라. 죽네 사네 하지 말고 추임새라도 넣어라. 마음의 풍악을 울려라. 나팔을 불어라. 주님은 우리가 찬송을 하도록 만드셨다. 절대 음감을 깨워라. 나만의 음색처럼, 내 정체성을 찾아서 내 속에 장착된 하나님의 영광을 깨워라. 비파와 수금을 연주함으로 주변에 있는 악기들을 소리 나게 하라. 불협화음을 내지 말고 옆에 있는 가족, 성도들과 동역하며 아름다운 동행을 하라.
새벽을 깨우리로다는 나를 에워싸고 있는 어둠의 세력을 타파하고 아침을 맞이하는 것이다. 야엘은 마치 아침 해가 힘 있게 솟아오름과 같았다. 어둠의 자식 같은 사고방식과 행동거지를 하지 마라. 우리는 빛의 자녀들이기 때문이다. 좋은 음악은 귀로 듣는 것이 아니고 눈으로 보는 것이다. 그만큼 아름다운 노래와 연주는 사람의 눈을 열어 선하게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줄 아는 청음이 능력이다. 득음이 음악의 시작이다. 듣는 귀가 음악적인 재능이다. 경청이 지도자의 조건이다. 사람의 말은 들으면 시험에 들고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 은혜를 받는다. 세상의 잡다한 소리에 귀를 닫고 주님의 음성을 들으라. 믿음은 들음으로, 들음은 말씀으로 온다. 사랑하면 들린다.
지치고 상한 엘리야는 하늘의 세미한 소리를 듣고 회복이 되었다. 예배시간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징징거리지 말고 노래를 불러라. 찬송 한 곡을 잘 부르면 가슴에 쓰나미가 밀려오듯이 심금이 울린다. 다윗은 수금을 연주함으로 사울왕의 정신병을 치료한 뮤직 테라피를 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노래 잘하는 자였다. 아들 중 막내였고 들판에서 양을 치던 목동에 불과했던 다윗이 이스라엘 역사를 이끄는 대서사시를 만들었다.
솔로가 듀엣이 되고 중창이 되고 합창이 되고 뮤지컬이 되고 오페라를 연주하게 된다. 손경민 목사님처럼 인생을 작사, 작곡, 노래하라. 네 인생의 지정의를 터치해서 노래하라. 연주하라. 연출하라. 네 인생을 최고의 악기로 만들어라. 별일이 다 있는 인생을 살아가며 우울감에 찌그러져 있지 말고, 자신만의 음색으로 고백하고 온몸으로 연주하라. 그것이 찬양의 멜로디가 되고 인생의 주제가가 된다. 많은 사람들에게 영적인 찔림과 울림과 설렘을 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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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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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법특강 8] 주일학교는 왜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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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학교(교회학교)는 한국교회 초창기부터 조직되었다. 교회 성장과 신앙 전수의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2000년대 이후 저출산 등으로 인해 주일학교가 쇠퇴한 것이 사실이지만, 최근에는 교단과 교회마다 여러 방식을 통해 새로운 대안을 찾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주일학교에 대해 교회법은 어떻게 규정하고 있을까?
주일학교는 조선예수교장로교회 헌법(1934년)에 언급된다. <예배모범>(7장 주일학교)에 실려 있다. 주일학교는 어떤 순서(절차)로 모이며 무엇을 공부할 것인지, 교장과 교사의 할 일이 무엇인지 나온다.
우선, 주일학교에서 적용하는 절차는 기도, 찬송, 신경, 교회의 요리(要理)와 헌법 등을 공부하고 전도사업을 위하여 헌금하는 것이다.
둘째, 주일학교로 인해 주일 공예배에 출석하는 것과 또한 부모가 직접 자녀 교훈하는 책임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셋째, 항상 당회의 감독을 받아야 한다.
넷째, 주일학교 교장은 교사 선발, 학생들의 공부와 경건한 자세에 전체 책임을 맡는다.
다섯째, 주일학교교사는 자 성경을 연구하며 묵상하며 기도함으로 준비해야 하며, 아직 믿지 않는 학생이 있으면 권면하고 심방하며, 특별히 아프거나 사고가 있을 때 심방해서 하나님의 복을 빌어야 한다.
근데 이렇게 주일학교에서 기도하고 찬송하며, 신경과 요리, 헌법을 공부하며, 전도사업을 위해 헌금하는 최종 목표가 무엇일까? 여러 가지로 대답할 수 있지만, 특별히 입교(入敎, 공적 신앙고백)와 깊은 관련이 있다. 역시 1934년 헌법 <예배모범>을 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교회 교우에게서 출생한 자녀로 유아세례를 받은 아이는 교회의 권고와 치리 하에 있고 이들에게 문자를 가르치며 주기도문과 사도신경과 요리문답을 독습하게 하며, 기도하는 것과 죄를 미워하는 것과 하나님을 경외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순종하는 것을 가르칠 것이며, 성년이 된 다음에는 출생하면서부터 교회의 교우 된 것을 알게 하고 개인으로 그리스도를 믿고, 사람 앞에서 증거하며, 성찬 참여를 청원하는 것이 자기의 의무와 특권임을 기억케 할지니라”(예배모범. 10장: 입교(入敎)예식)
이로 볼 때 주일학교(교회학교)의 최종 목적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즉 유아세례를 받은 자녀가 주일학교에서 교육을 잘 받아서 성년이 된 다음 입교를 통해 “교회의 교우 된 것을 알게 하고 개인으로 그리스도를 믿고, 사람 앞에서 증거하며 성찬에 참여하도록”하는 것이다.
16세기 종교개혁 당시 독일 하이델베르크를 포함한 팔츠 영지에 속한 교회들은 <교회법>을 작성했다(1563년). 그런데 그 <교회법> 목차를 보면 주목할 점이 있다: 설교가 제일 먼저 나오고, 둘째로 세례, 셋째 요리문답(要理問答), 넷째 성찬, 다섯째 권징, 여섯째로 구제/기도 등의 순서가 나온다.
이 순서를 잘 보면 <교회법>의 목적은 말씀이 온 회중에게 전해지고 가르쳐지기 위함이다. 그래서 제일 먼저 설교가 나온다. 그런데 설교가 있는 교회는 하나님의 언약으로 살아간다. 그래서 언약의 표인 세례가 나온다. 이를 위해 주일학교에서 요리문답으로 교육한다. 그리고 입교를 통해 성찬에 참여하게 한다. 여기서도 주일학교(교회학교) 교육의 목적이 분명히 나온다. 즉, 주일학교에서 기도하고 찬송하고 헌금하는 것을 배우고, 또 성경과 신경과 요리문답, 헌법을 공부해서 마침내 입교를 통해 자신이 교회의 교인된 것을 알고, 개인적으로 그리스도를 믿고 사람들 앞에서 증거하며 성찬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교회법>은 직분과 치리회의 질서를 넘어, 신앙교육을 위한 질서를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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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