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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법특강]주일 예배는 왜 두 번일까?
    주일 예배는 왜 한 번이 아니고 두 번일까? 최근 한 번만 드리는 교회가 늘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 두 번 드리는 곳이 훨씬 많다, 일부 교단을 제외하고는 헌법(교회정치, 예배지침)에서 주일 예배를 두 번 드릴 것을 직접 규정하지 않음에도 한국교회는 전통적으로 주일에 예배를 두 번 드려왔다. 주일에 두 번 예배를 드리는 이유가 대체 무엇일까? 어떤 이는 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드린 구약의 제사에 기원을 찾지만, 이는 억지다. 초대교회와 중세교회에서 주일에 예배를 두 번 드렸다는 기록은 있으나 두 번째 예배 출석은 저조했다. 주일에 두 번째 예배를 드린 전통은 16세기 종교개혁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종교개혁 당시 신앙교육을 위해 두 번째 모임이 생겼다. 본래 주일 두 번째 예배는 아이들을 위해 목사가 교리문답(敎理問答, catechism. 성경의 교훈을 요약해서 질문과 대답 형식으로 만든 것)을 해설하는 시간인데 부모도 거기에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교회 공식 예배로 자리 잡았다. 교리문답 전체를 52주일로 구분하여 주일마다 설교해서 일 년에 모두를 해설하도록 했다. 독일의 팔츠 지방은 오후 예배 시간에 교리문답이 설교 되었다. 당시 팔츠 지방은 주일 예배를 보통 오전과 오후에 두 번 모였지만, 도시는 아침 일찍 한 번 더 예배를 드렸다. 주일 예배 외에 주간에도 모였다. 시골은 한 번, 도시는 수요일과 금요일에도 예배를 드렸다. 그 외에도 매일 아침과 저녁에 간단한 예배가 있었다. 이 예배는 30분을 넘지 않지만 그래도 성경 본문을 읽고 짧은 설교가 있었다. 당시 교회는 교회 생활 중심에 하나님의 말씀을 두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삶을 다스리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우리가 잘 아는 개혁가 칼빈이 목회한 제네바 교회들도 마찬가지다. 정오에 아이들의 신앙교육을 위한 모임이 있었다. 네덜란드 교회는 총회(1618-19년)에서 교회정치를 작성할 때, 제68조에서 교리문답 설교를 위해 주일 오후에도 다시 회집할 것을 규정했다. 웨스트민스터 총회(1643-1649) 시 예배위원회는 교리문답교육을 다루고 교리문답을 작성했다. 바로 그 소교리문답을 1907년 제1회 대한예수교장로회는 교회 신경으로 채택했다. 이를 “성경요리문답”이라고 불렀다 1922년 조선예수교장로회의 <교회정치> 제7장(교회예의와 율례)를 보면 주일 공예배에 꼭 들어갈 순서로 찬송, 설교, 성례 등과 함께 ‘성경교육’이 나온다. ‘성경교육’은 1930년 <교회정치>서부터는 ‘성경문답’으로 변경된다. 곽안련 선교사도 ‘성경소요리문답’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성경요리문답’은 현 예장합동 헌법 <교회정치> 예배 순서에 아직 남아 있다. 예장고신 헌법에도 얼마 전까지 “성경문답”이 있었다. 이같이 한국교회는 종교개혁 전통을 따라 주일에 두 번 예배를 드리고, 헌법 예배지침에 ‘성경요리문답’ 순서를 넣었음에도, 정작 두 번째 예배의 기원과 성격을 자세히 살피지 못했다. 한때 주일 두 번째 예배를 ‘찬양예배’라 불렀다. 일부 교단은 지금도 헌법에서 ‘찬양예배’ 용어를 사용한다. 개신교의 기초를 놓은 종교개혁가들은 왜 두 번째 예배에서 교리문답을 가르치고 설교했을까? 성경에서 가르치는 대로 바른 교훈 위에 서고, 이로써 교회가 같음을 추구하기 위해서다. 곧 바름과 같음을 위해서다. 진리를 상대화하고 감성을 중시하는 시대에 바름과 같음을 지향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 주일 예배를 왜 두 번 드리는지 그 이유와 각 예배의 성격에 대해 교회법에서 속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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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6-02
  • [목회자칼럼]자녀양육, 혁신적인 통합 이론 필요
    청소년 사역을 그렇게 오래 하여도 여전히 이해 안되는 단어가 청소년과 사춘기입니다. 2천년 전의 낙서에도 ‘다음 미래 세대가 버르장머리가 없다’라고 해놓았다는 말은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그 말은 지금도 늘 사용되고 있는 말이지요. 정신분석학자 에릭 에릭슨은(Erik H. Erikson)은 생애 주기별 발달 단계를 나누었는데 맨 마지막 단계를 절망과 통합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자녀 양육을 평생 농사라고 한다면 가장 중요한 시기 시기마다 해야 할 과정이 있습니다. 어릴 적 보리농사를 짓는 아버님 얘기가 생각납니다. 보리를 물에 넣어 부드럽게 하여 곱게 갈아놓은 밭에 뿌립니다. 뿌려놓은 보리에 싹이 나서 올라오면 너무 예쁘고 귀엽습니다. 그런데 겨울이 오고 나서 한 가지 이해되지 않는 일이 있었습니다. 바로 보리를 발로 꾹꾹 밟는 것입니다. 그때 하시는 말씀이 이때는 땅이 얼어서 보리 뿌리가 공기에 노출되면 얼어서 죽기 때문에 땅을 꾹꾹 밟으면 보리도 밟히긴 하지만 오히려 더 잘 살 수 있고, 곡식 열매도 더 많이 열린다고…. 자식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사랑을 줄 때와 고집을 꺾어줘야 할 때가 있는데, 자녀 양육에도 각 시기마다 적절한 단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보통 자녀의 발달 단계를 4단계로 나누었을 때, 첫째, 0세부터 많게는 2-3세까지를 애착 단계라고 합니다. 무조건적 수용과 공감을 해주고 정서를 안정시켜 주는 것입니다. 왕자처럼 공주처럼 모시는 것입니다. 바로 신뢰감을 갖게 하는 중요한 시기입니다. 이것을 한국에서는 1980-2000년까지는 모르고 살다가 2000년 이후에 알려졌습니다. 이제는 오히려 과장되어서 20살까지 이것만 강조하는 부모와 교사가 있기도 하여서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둘째, 5세부터 11세까지로 나눕니다. 이때 중요한 부모의 역할 세 가지는 경계선 세우고 경계선 지키기입니다. 경계선을 그어서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시켜 주는 것입니다. 부모와의 친밀감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애착에서 신뢰가 되었다면 이 시기의 친밀감은 재미와 흥미, 호기심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놀이의 세상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많이 놀고 자유롭게 뛰게 해서 오감과 신체와 정서와 운동을 모두 활발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야구에서 내야의 주루 경계선을 지어주는 1루, 2루, 3루와 홈베이스 각 꼭짓점의 각도는 90도입니다. 하지만 야구에서처럼 자녀 양육에서 부모가 경계선을 지어주는 것을 자신의 틀로 각도를 좁혀서 그 좁은 영역 안에서 아이를 제한하려 하면 자녀의 건강한 성장과 독립을 방해하며 자율성 억압, 정체성 혼란, 폭발하고 튀어버리는 반항적인 행동 등 부모 자녀 관계에 긴장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셋째, 12세부터 19세까지, 중·고등학생 사춘기 시기입니다. 이제는 논리가 발달하고 자기주장의 소리가 나오는 시기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질문을 하고 질문을 받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브루타 교육 방식이 너무 좋은 예시입니다. 이때는 아이들이 예의 없이 말하고 반응하지만, 격한 감정이 사라져간 후에 차근차근 부모와의 대화가 꼭 필요한 시기입니다. 그리고 이때는 작은 노동의 경험이 꼭 필요합니다. 작은 머슴이 되어 많이 노동하는 경험이 필수적인데, 한국은 입시 중심의 교육으로 인해 교실 속에서 사고와 암기 위주로만 나아가기에 너무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는 시기입니다. 넷째, 20세부터 30세까지, 청년 시기입니다. 청소년기본법에서는 19-24세를 후기 청소년이라 하는데, 2000년 이후에 남자는 30세, 여자는 26세까지 전두엽이 발달한다고 발표하였는데(참고하시길‥), 이때는 많은 성취 경험과 실패 경험, 그리고 자립심이 필요합니다. 머리의 이성만으로 살아가는 공부와 이론뿐인 곳에서 삶의 실제 현장으로 나아가는 시기인지라 몸으로 직접 체험하게 되는 시기입니다. 때로는 좌절도 겪고 온갖 소리를 듣기에 이때 부모가 이야기를 들어주고 격려와 조언을 해주는 것이 정말 필요한 시기입니다. 집에서는 큰 머슴처럼 일을 해보는 것입니다. 힘도 있고 도전도 있고 용기도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이 시기에 방콕, 집에서 컴퓨터 게임만 하려고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이때는 싸움 밖에 안되는 상황이지요. 부모님의 멘토링이 정말 필요한 시기입니다. 마지막으로, 사춘기 부모님들이여. 정말 수고가 많습니다. 사춘기 아이들은 부모와 교사를 자기 아래로 두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는 일부러 권위를 갖고 이야기하는 논리적 멘토링이 필요합니다. 부모는 경제적으로 어떠하든 간에 자녀에게 이야기할 자격과 능력을 충분히 갖추었습니다. 너무 자녀에게 못해주었다고 미안해하지 마시고 사랑을 준 만큼 당당하게 대하여 사춘기 자녀 멘토링에 적극적으로 임해주시면 저는 행복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부모님께 힘내라는 말씀 전해드리며, 오늘도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님 파이팅 한 번 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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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6-02
  • [이상규 교수의 역사탐색]부활절 연합예배
    금년 서울에서는 한국교회 71개 교단이 참여하는 부활절 연합예배를 4월 20일 오후 4시 서울 압구정 광림교회에서 드린다고 한다. 설교자는 한교총 대표회장 김종혁 목사라고 한다. 부산에서는 부산지역 주요 기독교 기관들이 모두 연합하여 4월 20일 주일 오후 3시 부산외국어대학교 중앙광장 특설무대에서 ‘십자가, 십자가 부활 능력일세’라는 주제로 개최된다고 한다. 이번 부활절 연합예배는 부산기독교총연합회, 부산교회총연합회, 부산성시화운동본부, 부산교회희망연합이 공동 주최한다고 한다. 설교자는 포도원교회 김문훈 목사라고 한다. 부활절이 분열된 한국교회를 연대하고 화합하게 한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부활절 연합예배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한국 최초의 부활절 연합예배는 서울에서 1947년 4월 부활절에 시작되었다. 해방후 두 번째 맞는 부활절인 4월 6일 새벽 6시 일제 치하에서 조선신궁이 있던 남산공원에서 개최되었다. 이때의 연합예배는 조선기독교연합회와 주한미군이 공동주최한 행사였는데, 설교자는 한경직 목사였다. 조선기독교연합회는 후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韓國基督敎敎會協議會)로 발전했는데, 연원을 따진다면 1924년 9월 24일 당시 장로교와 감리교의 선교 연합 구축을 위하여 결성된 조선예수교연합공의회에서 시작되었다. 비록 조직을 갖추었으나 일제의 간섭으로 별로 활동하지 못하고 지내던 중 해방 이후인 1946년 재발족한 교회 연합체였다. 이 조선 기독교연합회는 해방된 현실에서 거 교회적인 축하행사를 의도하고 미군과 협력하여 연합예배를 드리게 된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그 연합예배 장소가 조선신궁터였고, 신사의 입구에 세우는 기둥문인 도리(鳥とり)가 그대로 남이 있음을 볼 수 있다(사진 참고).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을 모질게 강요하고 박해하던 신사제도의 총본산인 신궁에서 부활절 연합예배를 드린 것이다. 이날 모인 연합 집회에 나온 성도는 1만 5천명에 달했다. 이날 행한 한경직 목사의 설교문은 ‘한경직설교전집’에 그대로 남아 있다. 그렇다면 부산에서는 언제부터 연합예배를 드렸을까? 호주선교사였던 도로시 레가트(Dorothy F. Leggatt, 이혜수)에 의하면 1949년이었다. 1928년 내한하여 통영, 마산, 부산에서 사역하고, 1941년 본국으로 돌아갔다가 해방 후 1947년 다시 내한하여 6.25전쟁전까지 부산에서 일했던 도로시는 1949년 5월 27일 자로 쓴 부산에서의 부할절 연합예배에 대한 흥미로운 기록을 남겨두고 있다. 그는 이렇게 썼다. “한국의 신자들은 부활절 새벽예배를 언덕 받이에 모여 드리기를 좋아한다. 부산에서는 교회가 연합하여 일본 시대 신사언덕(Shrine hill)으로 알려진 곳에서 부활절 연합예배를 드렸다. 이곳은 경상남도의 대표적인 일본 신사가 있었던 곳인데, 현재 한국 전역에 신사가 남아 있는 것은 아무 곳에도 없다. 이날 예배는 부활절에 부르는 ‘무덤에 머물러 예수 내 구주 새벽기다렸네’로 시작되었는데, 600여 명이 참석하였고, 설교자는 권임한 목사였다.” 레가트가 말하는 신사언덕이란 다름 아닌 용두산공원이었고 연합예배를 드린 부활주일이 4월 17일이었다. 서울에서 남산 조선신궁터에서 부활을 기념했듯이 부산에서는 용두산신사가 있던 바로 그곳에서 부활의 주님을 찬양한 것이다.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십자가를 져야 했던 성도들이 천조대신을 섬기던 불신의 터 위에서 부활의 주님을 찬양했으니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를 더욱 깊이 새기게 되었을 것이다. 왜정시대를 살았던 당시 성도들에게 있어서 부활절 예배는 더욱 감격스러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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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규교수의 역사탐색
    2025-06-02
  • [교회건축칼럼]교회부지 매입 시 고려해야 할 건축법
    교회건축의 버젼은 부지매입이 완료되는 시점부터 실질적인 과정이 시작된다고 봐야 한다. 즉 교회의 부지매입은 교회건축과정에서 거의 반을 차지한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처럼 교회의 부지매입은 중요한 의사 결정 단계이다. 어떤 교회는 부지매입이 잘못되어 많은 시행착오와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교회건축허가가 나지 않는 부지를 매입하는 경우와 허가는 득할 수 있으나 구모가 제한되는 경우, 부지가격이 싸서 매입했는데 시설의 설치를 위해 소요되는 시간시설의 설치를 완료한 후 소요비용을 계산 해보면 결코 싼 부지가 아닌 경우 등 여러 형태의 경우를 볼 수 있다. 먼저 부지 매입을 하기 전에 반드시 고려할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건축허가가 가능한 곳인가를 살펴봐야 한다. 건축법에서 교회건축허가가 가능하지 않는 곳은 선택해선 안 되며 건축허가가 가능한 곳이라 할지라도 관계 구청이나 시청 건축과에 문의하고 결정해야 한다. ② 부지가 싸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상수도, 가스, 맨홀, 하수도, 전기, 도로 등의 기간시설이 완비된 곳인지를 조사해 보아야 한다. 기간시설이 구비되지 않는 부지는 이에 대한 설치에 많은 비용이 소요되며 결국은 비싼 부지가 되는 것이다. ③ 부지와 접한 도로 조건은 건축허가와 건축규모 산정에 결정적인 조건이므로 도로망의 여건은 철저히 분석해야한다. 구모면에서 건축물의 대지는 너비 6M이상의 도로에 4M이상 접하여야하고, 막다른 도로, 차량통행 불가능도로는 예외이며 원칙적으로 2M이상 접하여야 한다. 또 도로너비가 좁을수록 도로사전제한의 법적 제한을 받는다. 도로너비의 1.5배 이하의 높이로 건축해야 하며 이 경우 도로가 4M라면 4M×1.5=6M이하로 건축해야 한다. ④ 도로와 대지의 여건상 일조권을 적용해야 하므로 북쪽으로 도로가 있는 부지가 일조권이 배제 되므로 건축 계획에 절대유리한 부지이다. 건축법은 북쪽으로부터의 인접대지 경계선에서 건물높이의 1/2를 이격시켜 건축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동서방향으로 긴 장방형의 대지는 일조권을 적용할 때 건축규모가 절때 불리해진다. 가급적 남북방향으로 긴 대지가 일조권 적용에서 유리하다. ⑤ 지목이 대지가 아닌 전, 답, 임야의 대지는 건축허가 전에 개발행위허가를 사전에 득해야 하므로 이 부분의 허가가 가능한 곳인지를 사전에 군청에 확인하여 매입해야 한다. 이 경우 대부분의 도시 계획이 비도시 지역이므로 도로구조와 상수도, 하수도, 전기, 가스, 전화 등의 기간시설이 구비된 곳인지를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⑥ 대지가 경사부지일 경우 잘 활용하면 건축법의 용적율 제한이나, 지하층 산정 등에 유리하게 건축 할 수 있다. 지하층은 정면에서 1층과 같은 조건이되며 용적율 산정에서도 제외되므로 경사부지도 잘 고려 해볼 필요가 있다. 이처럼 교회의 부지 매입은 매입 전에 충분히 법적이 내용을 분석하고 매입해야 하며 건축사나 관계 공무원의 자문을 받고 기도 속에서 선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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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6-02
  • [은혜의말씀]사랑의 동기
    고신대학교 복음병원에 교목으로 근무하면서 故장기려 박사님과 함께 성경공부도 하고 가까이서 지냈던 시절이 있었다. 그 분은 말주변도 없이 조용한 분이셨지만 한국의 슈바이처요, 사랑의 사도로서 수많은 사람들이 존경하는 의사 선생님이셨다. 그분의 어록 중에서 복음간호 전문대학 복도에 붙어있는 “사랑의 동기가 아니고는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글이 기억에 남는다. 왜 사람들은 장기려 박사님을 사랑의 사도라 할까? 일평생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신 분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한다. 북한에 남겨둔 아내 때문에 월남을 해서도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셨다. 이북에서 김일성 주치의까지 했던 명망 있는 의료인이었는데 6.25전쟁 이후 부산에서 무료진료기관이었던 복음병원을 설립했고, 이후 청십자 의료보험을 만들어 가난한 환자도 수술 받을 수 있게 하는 등, 수많은 환자들에게 사랑의 인술을 베풀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13:1~3) 사랑도 실력이고 기술이고 예술이다.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갖추어지면 누구라도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사랑도 배우고 연습해서 실력을 키워야 한다. 사랑은 달달한 꽃길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사람이 인생을 안다. 가슴 짠한 사랑, 속 터지는 사랑, 사랑할 수 없는 자를 사랑하는 마음, 은총, 헤세드, 측은지심이다. 사랑은 유약하고 소극적인 것이 아니라 자기를 불사르고 희생하는 것이다. 엄마가 자식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손해를 보고 포기할 수 있는 것이다. 성경은 러브스토리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신 증거가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어 주신 것이다(요3:16).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죄의 값인 사망,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다. 고난의 잔을 날 위해 다 마셨나이다. 죄인 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다.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친구라고 부를 가치조차 없는 나 같은 죄인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다. 십자가 위에서 우리에 대한 사랑을 확정하셨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되는 것이다. 말이 많은 세상에서 말없이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손주 사랑은 오면 좋고 가면 더 좋고, 그냥 다 좋은 것이다. 스바냐를 보면 여호와께서는 우리를 사랑해서 기쁨을 이기지 못한다고 하였다. 사랑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 사랑으로 이길 수 있다. 사랑의 힘은 강하다. 미움과 분노가 있을 때는 아름다운 역사가 일어날 수가 없다. 사랑하며 섬길 때 새 역사가 일어난다. 주님의 사랑을 묵상할 때마다 사랑이 아니고는 십자가를 이해 할 수가 없다. 오매불망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며, 우리도 사랑하며 섬기는 삶을 감당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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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6-02
  • [시사칼럼]무엇이 우리를 삼키려 하는가
    지난 3월 발생한 ‘산청산불’은 장장 213시간 34분 만에 불길이 겨우 잡혔습니다. 2022년 3월의 ‘울진산불’에 이어 두 번째 긴 시간이라고 합니다. 대형 산불이 최근 들어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와 환경위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어쩌면 산불보다 더 무서운 무언가가 우리를 삼키려하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움베르토 에코는 『장미의 이름』 마지막 장에서 ‘세계를 태울 만큼 큰 불’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에크피로시스(ecpyrosis)”를 사용하여 “지나친 믿음이 지옥을 불러들인다”라고 썼습니다. 미국의 역사·경제학자 닐 하우는 『제4의 대전환』(한국경제신문, 2024)에서 바로 이 개념을 차용하여 “지금 우리가 향하는 곳”이 일종의 “에크피로시스”에 해당한다고 했습니다. “시민 행동이 최고조에 달하고, 외부공격자로 판단되는 모든 세력에 맞서 전면적인 투쟁이 일어날 위험이 가장 크며, 내부적 정치 혁명이나 내전이 일어날 위험 역시 가장 크다.”(357 p.) 그런데 닐 하우가 진단한 미국의 상황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대체로 미국의 블루존(민주당 지역)은 더 부유하고 더 건강하며, 교육 수준이 더 높고 전문직이 많고 이동성이 더 크며 경제적 불평등이 더 심하고 인종이 더 다양하다. 미국의 레드존(공화당 지역)은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많고 이웃과 더 친밀하며 자선 모임이 더 많고 더 가족 중심적이며 이동성이 적고 더 폭력적이고 덜 관료적이며 세금을 덜 낸다. 블루존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더 창의적이고 첨단기술에 뛰어나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고, 레드존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근면하고 성실하다고 정의하는 경향이 있다.”(345 p.) 여기 나타난 블루(blue)와 레드(red)는 현재 한국의 상황에도 아주 잘 맞습니다. 대체로 진보는 파랑을, 보수는 빨강을 표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름답기 그지없는 이 두 가지 색상이 지금 이 나라를 온통 물들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표방하는 정치색이 사람을 비롯한 방송과 모든 영역들을 집어삼키는 일종의 “에크피로시스”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문제는 앞서 인용한 에코가 제기한 ‘지나친 믿음’ 곧 ‘광신(狂信)’입니다. 이는 기존 종교뿐만 아니라 이데올로기로 작동하는 믿음을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이미 언론인 강철주는 1966년부터 10년 동안 중국 대륙을 삼켜버렸던 ‘문화대혁명’ 역시 “지나친 믿음이 불러들인 지옥” 곧 ‘광란의 에크피로시스’의 일종이 아닐까 하고 질문을 던진 바 있습니다(시사저널 2004. 7. 6). 홍위병들의 극좌주의적 광신으로 말미암아 혁명은 “한 밤중에 각목을 들고 들이닥친 제자들이 집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데서부터 시작”되었고, 이어서 “학대와 억압 그리고 고문과 낙인”으로 사람들을 삼켰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건 어떻습니까? “민주주의 헌정 질서 파괴, 그리고 브레이크 없는 전쟁과 학살!”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이 최근 이스라엘 정권을 바라보며 종교적 광신과 결합한 극우 세력이 국가 권력을 장악했을 때 벌어지는 끔찍한 광경이라면서 제시한 칼럼 제목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던 자들이 선거 결과에 불복하며 미국국회의사당에 난입하던 몇 년 전 장면도 유사하지요. 당시 사상 초유의 행동 바탕에도 종교적 신념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새로운 정권이 출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착오적인 이념이 우리를 집어삼키지는 않을까 근심하는 시선들이 있습니다. 광신적 사상이 많은 이들을 집어삼키고 있지는 않는지 걱정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전쟁의 화마(火魔)가 문자 그대로 이 나라를 집어삼키지는 않을까, 그렇지 않더라도 범세계적인 경제 전쟁이 우리를 통째로 삼켜버리지는 않을까, 가슴앓이를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신자라면 신적 섭리와 경륜의 신뢰 안에서 그래도 희망을 품고 희망을 전파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헬무트 틸리케의 『하나님의 침묵』에서 한 대목을 인용하면서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해를 힘차게 맞이하자. 우리는 미래형 인간이다. 우리가 지나갈 음침한 골짜기마다 산이 우뚝 솟아 있어 우리의 도움은 거기서 온다. 이미 산꼭대기는 장차 임할 영광으로 벌겋게 물들어 있다. 벼락은 번쩍이고 소리만 요란할 뿐 결코 우리를 때리지(삼키지) 못한다. 우리가 밟을 길은 이미 평평하게 다져져 있다. 바람과 폭풍의 행로를 정하시는 그분이 길을 닦아 두셨다. 하나님이 우리를 놀라게 하실 일이 어디서나 기다리고 있다. 보리라 약속된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다.”(6장, ‘불투명한 미래의 문턱에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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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6-02
  • [성서연구]나무는 원래 거기 있었다
    세상은 요란하고 살기 힘듭니다. 늘 마음이 무겁습니다.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만드는 장애물들이 여전합니다. 길이 막힌 것처럼 보일 때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삭개오는 여리고성의 세리장이었습니다. 여리고는 집단 거주지 가운데 가장 오래된 도시 중의 하나입니다. 성지에서 여리고는 예로부터 매우 큰 성읍이었습니다. 지금도 팔레스틴 해방기구의 수도가 여리고에 있습니다. 삭개오는 여리고의 세리 업무 책임자로서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그러나 겉보기 성공과 달리 속사정은 달랐습니다. 그는 여리고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직업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벌레 보듯 했습니다. 당시에 세리는 창녀와 같은 수준으로 대접받았습니다. 심지어 거지도 세리가 주는 돈은 던져버리던 때였습니다. 삭개오는 돈은 있었으나, 외로웠습니다. 그의 가슴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자신이 잘못 살아왔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는 예수님의 소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소문은 놀라웠습니다. 그분은 소외된 사람, 버려진 사람들의 친구가 되신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그의 제자 중에는 자신처럼 세리였던 사람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이 율법적이고 살벌한 유대 사회에 세리까지 끌어안으시는 그런 분이 있다니!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고 싶은 마음으로 가슴이 설레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더욱 흥분시켰던 것은 바로 그 예수님께서 자신이 사는 여리고에 오셨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는 급하게 뛰어나갔습니다. 예수님을 뵈옵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문제에 봉착했습니다. 본문 3절은 그의 좌절감을 말해줍니다. 길에 나갔을 때 그는 예수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를 가로막는 것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그의 키가 작다는 것과 사람들이 너무 많아 예수님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생각해 보면 이 두 가지 문제는 삭개오의 잘못이 아니었습니다. 키가 작은 것도 생래적으로 주어진 것이었고, 사람이 많은 것도 그의 의지와 무관한 것이었습니다. 삭개오처럼 우리도 좌절할 때가 있습니다. 무언가 목표를 가졌지만, 가로막는 것들이 있습니다.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우리의 잘못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너무 억울합니다. 세상을 원망합니다. 신세타령을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런 태도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탄식만 하다가 돌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삭개오의 선택에 유념해야 합니다. 그는 키가 작은 것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많은 것도 탓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돌무화과나무 위에 올라갔습니다. 그 순간 키가 작은 문제와 사람이 많은 문제가 동시에 깨끗이 해결되었습니다. 그의 선택은 기가 막힌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돌무화과나무 패러다임입니다. 자신의 환경을 원망하지 않고, 제3의 길을 찾아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나무가 본래부터 거기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갑자기 돋아난 것이 아닙니다. 원래 있었고, 삭개오는 그것을 발견하여 올라갔을 뿐입니다. 우리에게도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찾아보면 우리 안에 있습니다. 문제는 많은 사람이 나무를 발견하지 못한다는 것과 발견해도 그 위에 오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무를 발견하는 눈과 그 위에 오르는 용기를 갖기를 원합니다. 무엇이 우리에게 나무일까요? 여러 가지를 말할 수 있지만, 가장 근본적으로는 예수님이 돌무화과나무처럼 우리 곁에 계십니다. 그분은 본래부터 우리 곁에 계셨습니다. 그분은 늘 우리 곁에 계십니다. 우리가 힘들 때나 기쁠 때나 늘 곁에 계십니다. 믿음의 눈으로 예수님을 발견하십시오. 그리고 그 위에 오르십시오. 그 순간 모든 장애가 극복될 것이고, 목표에 도달하게 될 줄 믿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올라가면 부러질 나무에는 올라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직 늘 우리 곁에 계신 예수님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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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6-02
  • [서임중칼럼]모심목회(母心牧會)
    나의 목회철학 절차탁마목회(切磋琢磨牧會)의 10가지 중 중심에 있는 것 한 가지가 모심목회(母心牧會)다. 평생을 모심목회로 일관하여 대과 없이 은퇴하게 되었고 은퇴 후 생각지도 못했던 낭패스러운 일을 당하면서도 그 고통과 아픔을 이겨내는 중심에는 항상 모심목회가 버팀목이 되었다. 모심(母心)에는 통감(通鑑)의 울타리가 있다. 그 모심(母心)의 내면에는 농심(農心)과 예심(藝心)과 시심(施心)과 애심(愛心)과 성심(誠心)과 관심(關心)이 자리 잡고 있다. 어릴 때 쌀밥 달라고 졸라대던 어린것 품에 안고 종갓집 마당에서 쌀밥 한 그릇 얻어 들고 돌아와 명태 두 마리 구워 한 숟갈 한 숟갈 입에 떠 넣어 주시면서 그렇게 좋아하셨던 분이 어머니였다. 발에 종기가 나서 걸음을 걷지 못할 때 김치를 입에 빨아 종기에 대고 “엄마가 붙이는 모든 것은 명약이다”라고 입으로 후후 부시면서 다독거려 주시던 분도 어머니였다. 20리 길 고무신 한번 못 신고 학교 다니는 것이 안쓰러워 학교 가기 싫어하는 어린것 등에 없고 흥얼거리면서 학교까지 데려다주셨던 분도 어머니였다. 몸에 신열이 나서 온몸이 불덩이같이 달아올라도 춥다고 이불 뒤집어쓰고 앓고 있던 때 이웃집에 가서 아스피린 한 알 얻어 부엌 가마솥에 물을 끓여 후후 불어주시면서 약 먹여 주시던 분도 어머니였다. 아직은 설익은 풋풋한 사과를 먹고 배가 아파 아랫목에 엎드려 울고 있을 때 “내 손이 약손이다. 엄마 손이 약손이다.” 하면서 배를 쓸어 문질러 주실 때 희한하게 아프지 않고 잠이 들게 하셨던 분도 어머니였다. 설날이 되면 이웃 부잣집 아이들은 때때옷 입고 세배 다닐 때 묵은 헌 옷 입고 세배하는 것이 속상해 정월 초하룻날 들판으로 연 날리러 갔다가 돌아온 어린것을 치마로 감싸안고 무슨 큰 죄라도 지은 듯 돌아서서 눈물짓던 분도 어머니였다. 100점 시험지만 들고 오던 것이 어쩌다가 94점짜리 시험지 들고 사립문을 들어서는 어린것을 방안으로 들여주지 않고 “이놈아, 이래 가지고서야 어떻게 훌륭한 사람이 되겠니?”라고 회초리로 모질게 종아리를 치시고, 저녁에 잠든 아들 부풀어 오른 종아리 쓸어 만지면서 눈물짓던 분도 어머니였다. 나이 들어 목사가 되었을 때 잠 못 자는 것이 안쓰럽게 보이시고, 소견 좁은 교인들에게 이리저리 시달리는 것 속상해 새벽까지 아들 머리맡에 앉아 기도하시면서 성경을 눈물로 적셨던 분도 어머니였다. 세상을 마무리하실 때 “교회의 어미 같은 늙은이들은 모두 목사의 어미야. 알아듣겠는가?”라고 마지막 말씀 남기시고 조용히 천사 같은 모습으로 눈을 감으시고 천국으로 가신 분도 어머니였다. 이것이 모심(母心)이다. 평생 그런 마음으로 목회했고 은퇴 10년을 넘기고도 여전히 한주도 쉼 없이 나의 말씀 사역은 모심목회(母心牧會)의 현재 진행형이다. 5월이 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어머니다. 끝없이 베푸시는 어머니의 사랑, 퍼 올려도 퍼 올려도 멈추지 않는 샘물처럼, 어머니 마음의 사랑은 그랬다. 철없기만 했던 어린 시절, 그저 투정 부리고 어머니 속만 태웠던 날들이 생각나면 자꾸만 슬퍼지고 속상하다. 목회를 시작하면서, 많은 성도에게 어머니 같은 목사로 목양해야지…. 그러면서 벌써 은퇴한지 강산이 한번 바뀌었다. 그런데 왠지 요즈음 자꾸만 어머니가 더욱 그리워지는 것은 무엇 때문인지? 늦은 밤, 서재에 앉아 묵상하다가 천국가신 어머니가 자꾸만 보고 싶어 “엄마”하고 눈물짓는 시간은 어린아이가 된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는 집에서 7km 떨어진 곳에 있었다. 매일 걸어서 등하교 했다. 5학년이 되면서 오후 수업이 있는 날이면 도시락을 싸야 했다. 대부분의 아이는 쌀밥에 좁쌀과 보리쌀이 섞인 밥이었지만 나의 도시락은 언제나 감자를 삶아 밀가루를 찐 것에 함께 버무려진 밀가루 범벅이었다. 어린 나이에 점심시간은 나에게 트라우마가 되었다. 가난한 집 아들은 그 시간이면 영락없이 드러나는 것이 너무 싫었다. 어느 날 괜스레 도시락 갖고 가기 싫어 투정을 부리면서 그냥 학교로 갔다. 넷째 수업이 진행되는 시간에 교실 뒷문이 드르륵 열리면서 엄마 얼굴이 교실 안으로 들어왔다. 요즘 같으면 엄마하고 뛰쳐나갈 상황이지만 그때의 우리 엄마는 거지 엄마 같았기에 나는 얼굴이 빨개지면서 고개를 숙였다. 선생님이 엄마에게 가서 이야기를 나누고 무엇을 들고 내 책상 서랍에 넣어 주셨다. 도시락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아들이 굶을까 봐 앞집에 가서 나중 하루 일을 해줄 약속을 하고 품값으로 쌀 한 되를 받아 따뜻하게 지은 쌀밥과 명태를 구워삶아 고추장을 바른 당시로는 최고의 반찬을 준비하여 20여리 길을 걸어서 아들 얼굴도 보지 못하고 도시락만 전해 주고 돌아간 엄마였다. 엄마는 내가 도시락을 가지고 가지 않으려고 생트집을 부리고 간 것을 아셨다. 그것이 모심(母心)이다. 목회하다 보면 나의 어릴 때 도시락 사건의 내 모습과 같은 교인들을 수없이 만난다. 개인 일이나 가정사나 목사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자기들끼리 얽히고설킨 일들도 목사에게로 가져와 화풀이하는 일도 다반사다. 그렇게 목회하다 보면 아프고 속상하고 억울하고 화나는 일 한두 가지 아니지만 도시락 사건을 생각하면서 나는 모심목회(母心牧會)를 했다. 은퇴한 후에도 다를 바 없이 괜스레 원로 목사를 걸고넘어지는 일 또한 다반사다. 세월이 훌쩍 흘러 은퇴를 한지 강산이 한번 변했다. 이제야 교인들이 종종 편지도 문자도 보내온다. “사랑하는 원로 목사님, 한세월 흐르고 이제야 목사님의 중앙교회 사역을 돌아보면서 목사님의 목회가 모심목회(母心牧會)였음을 깨닫고 눈시울이 젖습니다. 철없이 행동한 것 용서하시고 사모님과 같이 평행감축의 노후를 기도합니다.” 깨닫는 것이 은혜라고 했던가? 5학년 때 엄마의 마음이 내 마음이 되면서 그 모든 사람의 일상을 여전히 품고 오늘도 모심목회(母心牧會)의 하루를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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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5-31
  • [은혜의말씀] 잃었던 아들 찾기(누가복음 15:31-32)
    나이가 든다고 어른이 되는 게 아니다. 결혼을 했다고 어른이 되는 게 아니다. 아이를 낳았다고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흐른다고 가만히 앉아서 부모가 되는 것이 아니고 훈련을 받고 준비를 해야 된다. 진정한 부모가 되기까지는 마음이 썩어야 된다. 누가복음 15장의 주인공은 집 잘 지킨 맏아들이 아니다. 집 나갔다 돌아온 둘째 아들도 아니다. 주인공은 아버지이고, 주제는 그 애비의 마음이다. 부모가 되기까지는 한 알의 밀알처럼 땅에 떨어져 썩고 죽어야 된다. 한마디로는 온갖 희생을 다해야 된다는 것이다. 빛과 소금처럼 촛대가 녹아 타 들어가고 소금 자신이 녹아 없어져서 비로소 맛을 내고 간을 들인다. 부모가 되기까지는 한도 끝도 없이 사랑을 주어야 된다. 내 새끼를 위해서라면 피를 뽑아서라도 사랑할 수 있다. 손주 사랑은 오면 좋고 가면 더 좋은 것이다. 우리 포도원교회도 포도송이 키즈카페를 만들어서 다음세대를 위하여 몸부림을 친다. 부모가 되면 열 손가락 안 아픈 곳이 없다. 집 잘 지킨 맏아들도 결국 아버지 마음을 모르고 속을 썩였고, 폐륜적인 둘째 아들도 부모 속을 썩였다. 그야말로 집토끼, 산토끼 둘 다 힘들다. 착한 맏아들은 훨씬 더 부모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집 나간 둘째 아들이 바보 같은 짓을 할 줄을 뻔히 알면서도 다 품어 주었다. 그리고 그 아들이 돌아오기까지 오매불망 기다렸다. 돌아왔을 때는 목을 안고 울어버리고, 잃었다가 찾은 아들을 위해 잔치를 벌였다. 그래도 대화가 필요해! 미워도 다시 한 번!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 자식 농사는 산 너머 산이 아니라, 아예 산 너머 똥밭이다. 평생을 가슴 졸이며 수고와 눈물을 쏟아 부어야 된다. 사도 바울은 믿음의 아들에게 그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회복하기까지 다시 해산의 수고를 치른다고 하였다. 또 하나의 열매를 얻기까지 춘하추동 비바람이 불고 천둥번개가 쳐야 되는 것이다. 꽃샘추위에 바람을 겪어야 꽃대가 힘 있게 선다고 한다. 자식 키워봐야 부모 마음을 안다. 세월이 흘러갈수록 부모님의 희생과 눈물, 가난과 애달픔이 가슴 절절이 느껴진다. 태를 열어 달라고 기도하듯이 전도의 문을 열어 달라고 기도하라. 잃은 아들 돌아오기를 기도하라. 오매불방, 노심초사, 학수고대하시는 아비의 심정을 알고 기도하라.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일꾼을 보내어 달라고 기도하라. 내가 일꾼을 찾아다니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주인에게 청하여 일꾼을 보내어 달라고 해야 한다. 세월이 지나서 돌아보면 내가 찾고 내가 선택한 것은 중요하지가 않았고, 하나님이 떠밀어 주신 곳, 하나님이 붙여 주신 만남이 최고였다. 뉴욕 프라미스 처치의 김남수 목사님은 복음은 하나님 아버지의 자식이 되는 것이라고 한다. 상속자가 되는 것이다. 내가 전도해서 낳은 영적인 후손의 이름을 적어보고 불러보라. 하나님은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으시고 세상 끝 날까지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신다. 주님의 가장 큰 기쁨은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이 살아서 돌아오는 것이다. 야곱의 축복은 죽어서 잃어버린 줄 알았던 요셉을 다시 만나고 그 아들이 온 집안을 살리는 것이었다. 잃은 자식을 찾아 드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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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5-20
  • [교회법 특강] 교회법과 양삼의 자유에 대해
    지금 우리 사회는 극단적인 이념 대립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 결과 중립을 지켜야 할 국가기관과 공무원이 종종 정치의 도구로 이용되기도 한다. 참담한 것은 일부 교회가 정치의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교회법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할까? “하나님만이 양심의 주재가 되시어 신앙 혹은 예배에 대한 문제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사람의 교리와 명령으로부터 사람의 양심을 자유롭게 하셨다” 이 글은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20장(기독신자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 2조에 나온다. 이 문구가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것은 장로교회의 교회정치원리 제1원리 첫 문장에도 나오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에 도입된 교회정치 8대 원리는 본래 1788년 미국 장로교회가 제1회 총회를 앞두고 작성되어 이후 미국장로교회의 정치원리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제1원리는 한국교회에 제대로 소개되지 않았다. 교회정치원리를 한국교회에 전한 이는 미국 북장로교회 소속 곽안련 선교사다. J. A. Hodge가 1882년에 쓴 <교회정치문답조례>(원제: 장로교회 헌법이란 무엇인가)를 축약 번역한 책에서 그렇게 했다. 본래 제1원리는 위에 소개한 “양심의 자유”에 대한 고백을 시작으로 문장이 두 개 더 있다. 그런데 곽안련 선교사는 그중에서 두 번째 문장을 제1원리에서 엉뚱하게 제2원리(교회의 자유)로 이동시켰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두 번째 문장 내용이 어떠하기에 그렇게 했을까? 두 번째 문장은 “교회와 국가의 전적인 분리”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곽 선교사가 위 책을 번역하여 처음 출간한 1917년, 1922년에는 제자리에 있었다. 근데 1930년 판부터는 두 번째 문장이 제2원리로 이동되었다. 당시 1930년대는 당시 조선총독부가 교회에 대해 국가에 대한 충성과 동방요배, 신사참배 등을 강요한 반면 교회는 여러 일로 특혜를 받기 위해 조선총독부와 교섭하며 그들의 권력을 의지할 때였다. “양심의 자유” 선언에 이어지는 첫째 문장은 다음과 같다: “그래서 종교와 관련한 모든 문제에서 개인적인 판단의 권리를 보편적이고 양도할 수 없는 것으로 여긴다”. 제2원리로 옮긴 두 번째 문장은 다음과 같다: “심지어 보호와 안전에 필요한 것 이상으로 또 동시에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고 보편적인 것 이상으로 국가 권력에 도움을 받는 어떤 종교적인 법을 바라지 않는다.” 이 문구만으로 이것이 무슨 뜻인지 명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런데 곽 선교사는 1882년 미국에서 출간된 <교회정치문답조례>에서 의도적으로 제1원리의 일부를 제2원리로 옮길 뿐 아니라, 심지어 이 문구에 대한 해설도 생략해버렸다. 당시 국가를 최고 가치로 강요한 조선총독부의 눈치를 의식한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한 민감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해설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어떤 신조나 정치가 국가에 의해 강요되어선 안 된다. 우리 교회도 보호와 안전에 필요한 것 이상으로,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고 보편적인 것 이상으로 국가 권력에 도움을 받는 어떤 종교적인 법을 바라서는 안 된다...국가는 교회정치형태의 어떤 것이라도 부과하고 강요할 권한이 없으며 교회 일부를 특별하게 지지하고 후원할 권리가 없다. 사람들이 양심을 따라 예배하도록 공평하고 보편적인 보호를 제공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이다. 이 나라와 관련해서 교회와 국가의 전적인 분리(the entire separation)보다 더 좋은 원리가 세워지지 않았다. 로마천주교나 어떤 다른 교파라도 설립과 확장을 위해 헌금하도록 시민에게 세금을 강요할 권리가 없다.” 이제 의문이 풀렸다. 곽안련 선교사가 교회와 국가의 전적인 분리 조항을 엉뚱한 곳으로 옮기고, 이에 대한 해설도 생략한 것은 당시 우리나라는 총독부가 국가 권력을 대신해서 교회에 신사참배, 국가헌금을 강요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교회정치원리가 가르치는 교회와 국가의 전적인 분리 원리가 지금 우리에게 간절한 때다. 물론 신앙과 정치는 분리할 수 없다. 그러나 신앙은 누룩처럼 정치에 역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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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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