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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건축칼럼] 교회건축의 과정과 시행착오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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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건축은 목회자와 성도가 그 추진과정 자체가 축제이어야 한다. 교회건축이 은혜가운데 축제 지향적으로 추진되어 가려면 많은 준비와 전략이 수립되어야 한다. 준비와 전략은 교회내 의사결정이 일부에 의하거나 주관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합리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교회건축과정에서 결정되어야 할 수많은 내용들이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결정해야할 내용들에 대해서 합리적 평가기준이 수반되고 이 기준에 의해서 결정되어지면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이루어졌다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평가기준의 요소들을 전략적 기준이라 하여 크리테리온(criterion)이라 한다. 이 크리테리온은 교회마다 다 차이가 있으며 교회가 위치한지역마다 다를 것이다. 또 목회자의 목회철학과 비젼, 교회크기, 교회프로그램, 교회형태 등 여려가지 요인에 따라 다양한 요소들이 대응 될 수 있다. 이 다양한 요소들을 많이 나열하고 그것이 교회건축 과정에서 의사결정을 수행하는 판단기준의 준거들로 사용해야 한다. 하나의 결정사항을 여러가지 판단기준 요소들로 평점을 주어 평가하면 의외로 감정적으로 결정했을 뻔한 사항이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결정되어져 감을 알 수 있다. 가령 예를 들면 교회부지 매입에 대해 의사결정을 내려야 할 때 많은 목회자들이 범하기 쉬운 일중에 하나가 평당 부지 가격이 싼 곳을 서둘러 사는 것 같은 의사결정을 지적할 수 있다. 감정적으로 부지가격이 낮다는 것이 의사결정 크리테리온의 전부가 되어서 이와 다른 여러 크리테리온의 판단기준이 결여되므로 합리적 의사결정이 되지 못하므로 매입 후 발생되는 여러 시행착오 요인(risk factor)에 의해 많은 어려움과 시련을 겪는다. 부지가 싸다는 이면에는 부지에 건축하기위한 수도, 전기, 하수도시설, 가스등과 같은 기간 인프라시설이 없어서 별도의 부대비용이 상승된다든지, 진입도로가 좁아서 건축허가시 일정규모이하 밖에는 건축할 수 없다든지(건축법에는 6M이하의 도로와 접한 부지는 604평 이하로 건축해야함) 형진변경이나 개발행위허가 등의 허가가 수반되거나, 아예 교회허가를 득할 수 없는 부지를 매입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교회건축과정에서 많은 의사결정은 순간적으로 이루어 질것이 아니라 합리적 의사결정 크리테리온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며, 교회 내 이 기구를 두는 것이 건축위원회일 것이다. 건축위원회는 교회건축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의사결정기구이다. 그러나 건축위원회가 명목상 위원회가 되거나 형식적 위원회가 되면 오히려 교회건축과정에서 비생산적여론만을 양산하는 비효율적 기구가 되어 교회건축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합리적인 건축위원회가 되려면 몇 가지 운용에 있어서 개선 방향이 요구된다.
첫째, 위원회의 구성에 있어서 현재의 모습은 교회 내에서 일부장로나 교회건축 관련 종사자와 같은 단순한 형식에 의해 구성되어진다는 점을 개선해야 한다. 왜냐하면 비전문가들로 구성되다보니 교회건축과정에서 합리적 결정을 내릴 수 없게 되고 감정에 치우칠 수 있게 된다. 개선된 위원회의 구성은 교회 내 전문가를 최대한 참여 시키는 것과 외부 자문위원을 영입해야 한다. 교회건축에서 음향, 설비, 인테리어, 금융행정, 법등은 전문가의 조언이 필요한 분야이다.
둘째, 위원회의 활동에 있어서는 기존의 모습은 주일이나 평일 교회 내에서 회의 정도가 전부이다. 건축위원회의 활동은 교회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위원회는 현지답사와 항목별 연구 분석 현장대안 분석 등 현장위주로 활동해야하고 교회 내의 활동은 이것의 보고와 전략회의이어야 할 것이다. 또한 건축위원회의 활동구성은 인원수에 의함보다 소위원회 별로 활동해야 한다. 예를 들면 전문 분야별로 나누어야 한다. 부지매입위원회(행정 법률전문가 초빙), 교회비젼위원회, 교회설계위원회, 건축시공위원회, 음향.영상.인테리어 위원회, 유지관리위원회 등으로 세분화해서 각 위원회가 각 분야에서 활동해서 종합회의를 통해 결정해 나가야 의사 결정에서 세부적이고 전문 영역화 될 수 있다.
셋째, 정기적인 스케줄 관리가 이루어져야 한다. 위원회는 교회에서 필요시 모이는 것이 아니라 정기적인 모임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 경우 위원회는 각자가 회의에 필요한 자료를 분석하고 회의에 대비해 나름 데로 활동할 것이다. 위원회는 교회건축과정의 전체일정을 숙지하고 단계별 활동스케줄이 명확히 수립되어야 한다. 이것은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예측된 리스크를 미리 점검할 수 있게 해준다. 건축위원회는 시계를 보는 영역에서 시계를 만다는 영역으로 진화돼야 한다.
교회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또 있다면 건축기간의 수립이 될 것이다. 대부분 교회건축의 기간은 교회의 상징적 일정(교회창립일, 부활절, 크리스마스 등)에 맞추어 완공일정을 수립한다. 또는 기간을 대단히 촉박하게 수립하여 많은 요쇼들을 충분히 점검하지 않고 다음공정을 진행하여 많은 시행착오를 겪는다. 한국의 빨리 빨리 문화는 교회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설계도 1개월 시공도 6개월 등 의미 없는 기간수립은 완공 후 많은 문제점을 야기 시킨다. 촉박한 설계와 시공은 부실을 초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교회건축의 기간은 시간대별로 수립해서는 안 되고 단계별로 수립해야한다. 교회건축의 과정이 몇 개월 내로 맞추는 것에서 1단계는 교회건축의 비젼수립단계, 2단계는 부지매입단계, 3단계는 설계. 시공 4단계는 인프라 점검단계 5단계는 우지관리단계 등 단계별로 수립해야 각 기간에 대한 점검과 확인을 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전략이 필요한다. 이를 때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시행착오를 줄이는 가장 큰 지혜는 부지매입단계부터 건축사의 조언을 받고 각종 건축법이나 전문영역, 인허가, 기술적사항을 확인 해 나가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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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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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교수의 역사탐색] 이승만의 반공주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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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셰비키 혁명(1917. 10)으로 소련이 공산화되자 공산주의 사상은 동유럽으로 확산되고 동쪽으로는 몽골까지 확장되었다. 지식인들은 실험되지 않는 허황된 유토피아 사상을 환호했다. 중국이나 러시아 등지에서 활동하던 우리나라 독립운동가들도 공산당과 연계하여 독립자금 지원이라는 사탕발린 독약을 받아먹게 된다. 이동휘와 박진순이 중심이 되어 1918년 5월 31일 창당한 ‘한인사회당’은 동아시아 최초의 공산당이라고 할 수 있는데(중국 공산당은 1921년에, 일본공산당은 1922년에 창당된다), 볼셰비키의 지원을 받아 항일투쟁을 전개한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이승만이 쓴 공산주의에 대한 논설은 당시 한인 사회에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중요한 사실은 이승만은 독립운동의 근거지를 대륙 세력인 중국이나 러시아를 택하지 않고 해양 세력인 미국을 택하여 독립운동을 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에게는 공산주의에 대한 이념적 연계(ideological chain)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 이후에도 이승만은 공산주의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두 편의 논설을 남겼는데, 「태평양 잡지」 1924년 7월호에 쓴 “사회공산주의에 대하여”와 「태평양잡지」 1925년 7월호에 쓴 “공산주의”가 그것이다. 그는 전자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일변(一邊)으로는 우리 사람들이 이런 새 주의(主義)를 들을 적에 우리의 오늘 경우가 다른 것을 미처 생각지 못하고 다만 남이 좋아하니 우리도 좋아하자고 덮어 놓고 따라 나가다가 영향을 받을까 염려함이라. 물론 우리 내외지(內外地)에 모든 인도자들이 응당 앞을 보아 지혜롭게 인도할 줄 믿는 바이지만, 그중에 몇 사람이라도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일시(一時) 풍조에 파동(波動)되면 그 손해가 장차 전체에 미칠까 하는 근심이 없지 아니함이라.”
도처에서 공산주의 운동이 흥기할 때에 쓴 이글은 “공산주의의 폐해를 이론적으로 명쾌하게 논증한 세계 최초의 논설”로 평가받고 있다. 이런 반공정신은 팽창주의를 지향하던 러시아에 대한 경계라고 하는 측면을 부인할 수 없지만, 따지고 보면 이승만의 반공사상은 그의 정신세계를 관통하는 기독교 신앙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승만의 반(反) 유물론적 이념체계가 자유민주의를 지향하고 공산주의를 거부하는 반공사상의 기초가 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승만의 반공주의는 ‘자유주의적 반공주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승만은 자유민주주의를 가장 이상적인 정치 체계로 인식하게 한 것이다.
이승만의 반공주의는 그의 모스코바 방문 이후 심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1933년 제네바에서 개최된 국제연맹 회의 참석차 유럽을 여행하고, 7월 19일과 20일에는 모스코바를 방문했는데, 이때 공산주의 치하의 국민 생활의 실상을 보게 되었다. 또 제2차 대전 이후 소련의 팽창주의 정책을 보면서, 그리고 1949년 중국의 공산화 이후 한국이 공산화될 위험이 있다고 보아 크게 우려하였다.
제2차 대전 이후(1944-45) 소련이 동독을 비롯하여 동유럽의 약소국가들, 곧 헝가리 유고슬라비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알바니아 폴란드 등을 점령하고 공산주의를 이식하여 소련의 위성국으로 만들었고, 1948년 2월에는 마지막으로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쿠데타로 공산당 독재국가를 수립함으로써 공산화를 마무리 지었다. 이보다 앞서 1947년 9월에는 국제공산당(Cominform)이 결성되면서 동유럽의 공산화는 두 번째 단계에 접어들었다. 인접한 중국에서는 1949년 마우쩌둥(毛澤東, 1893-1976)이 장제스(蔣介石, 1887-1975)의 국민당 정부를 몰아내고 중화인민공화국을 선포하게 되자 국제정세에 민감했던 이승만은 공산주의 체제를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강한 의지를 갖게 된다. 그래서 이승만의 반공주의는 해방 이후 건국투쟁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게 된 것이다. 해방 후 귀국한 이승만은 정략적 고려에서 박헌영(朴憲永, 1900-1956)의 조선공산당에 대하여 관용적인 태도를 보여준 바 있다. 1945년 10월 21일 행한 중앙방송 연설에서, 그리고 11월 21일 ‘공산당에 대한 나의 관념’이라는 제목의 연설에서 공산당에 대한 포용적 입장을 피력한 바 있지만, “절불굴(折不屈)하고 배일항전(排日抗戰)하던 공산당원들,” 혹은 “경제방면으로 근로대중에게 복리를 줄 목적으로 공산주의를 주장하는 인사들과는 협조할 용의가 있다”는 식의 제한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시사는 정략적인 의도였다. 그는 한번도 공산주의를 용인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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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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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 부활을 이상하게 보는 현대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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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보는 관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한 작품을 ‘아름답다’고 할 때, 작품 속에 그러한 속성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는 ‘플라톤의 미의 대이론’입니다. 작품 속에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미의 객관적인 속성이 있다는 이론입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작품 자체에 객관적으로 좋고, 아름답고, 훌륭한 속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감상자는 작품을 ‘아름답게’ 보게 됩니다.
그러나 철학자 칸트는 반대의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감상자가 작품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이유는 감상자 내면에 ‘아름다운’ 속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즉, 칸트의 이론에서는 작품 자체에 아름다운 속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감상자에게 아름다운 속성이 있기 때문에 작품을 아름답게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아름다움은 작품의 객관적 속성이 아닌, 보는 감상자 내면에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에 주관적 감정에 따라 작품을 아름답게 보게 됩니다.
아름다움은 작품의 객관적 속성일까요? 관객의 주관적 감정일까요? 절대표현주의는 두 가지 모두를 이야기합니다. 이에 따르면 작품에도 객관적인 속성이 있고, 보는 감상자에게도 주관적인 감정이 있습니다. 두 가지가 서로 상호작용하여 작품을 ‘아름답게’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독일의 철학자 슐라이어마허는 작품, 즉 본문을 보는 두 가지 방법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본문을 문자 그대로 분석하는 문법적 이해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본문을 적은 저자의 상황과 시대, 정신세계 등을 포함한 본문의 맥락과 이면의 뜻, 의미 등을 분석하는 심리·정서적 이해입니다. 문법적 이해는 본문에 나타나 있는 것을 분석하는 객관적 이해력이고, 심리·정서적 이해는 본문 이면의 의미를 분석하는 주관적 이해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본문의 바른 이해는 본문을 문법적으로만 이해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저자의 상태와 환경에 따라 심리·정서적으로만 이해해서도 안됩니다. 문법과 심리·정서 즉, 객관과 주관을 함께 사용하여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두 가지가 상호 소통하여 이해할 때, 본문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 만에 살아나시고, 부활하신 것, 기적을 베푸신 것을 역사적 사실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독일의 신학자 불트만은 부활이 역사적 사실인지 신화인지 구별하는 것은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고대의 세계관과 현대 21세기 세계관이 서로 생각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사실이냐 아니냐를 생각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문법적 해석을 이해하고 사실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이러한 사실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부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활에 대한 문법적 이해와 더불어 부활에 대한 심리·정서적 이해가 함께 상호작용하여, 객관과 주관이 상호작용하여 부활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2025년 4월, 부활절을 맞아 우리는 부활의 사건을 어떻게 사실 그대로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또한 어떻게 의미를 이해하고 나 자신의 주관으로 이해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다음세대에게 복음의 전승, 언약의 전승이 일어날 것입니다.
부활은 기독교에만 있는, 예수의 복음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핵심입니다. 부활을 사실로만 이해하는 것은 한 단면만 이해하는 것입니다. 부활의 사실을 모른채 의미만 파악하는 것도 바르다고 할 수 없습니다. 부활의 객관적 사실과 함께 그 사실 너머의 의미를 알고, 부활이 우리에게 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복음을 다음세대에게 전하는 부활절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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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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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법 특강] 교회법과 장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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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법은 장례에 대해 무어라고 말할까? 대부분 한국장로교회 헌법은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시나 찬송을 부르고 합당한 성경을 낭독하며 설교를 하고, 특별히 비참한 일을 당한 자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하며 저희의 슬픔이 변하여 영원한 유익이 되게 하며, 위로를 받도록 해야 한다. 또 유족들을 위로하는 데 힘쓰고 신앙이 없이 생활하다가 별세한 자에 대한 소망은 언급하지 않아야 한다.”
첫째, 장례에서 먼저 생각할 점은 찬송을 부르며 성경을 읽고 설교를 통해 슬픔을 당한 이들이 위로와 은혜를 받게 하는 일이다. 성도에게 죽음이 복된 것이고 또 고인이 장수하여 치르는 호상이라 할지라도 장례식은 유족에게 애도와 위로의 시간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둘째, 신앙이 없이 생활하다가 별세한 자에 대한 소망은 언급하지 않아야 한다. 고인의 지난 삶이나 죽음에 관해 판단하는 자세를 가져서는 안 된다. 자살했으니 지옥에 갔다고 섣불리 말해서도 안 되지만 거꾸로 성도는 자살해도 천국 갈 수 있다는 말도 쉽게 해서는 안 된다.
셋째, 고인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세상의 관습이나 미신이 들어오는 것을 피해야 한다.
한국 장로교회의 예배지침의 원형인 <웨스트민스터예배지침>(16456)이 이에 대해 잘 지적했다: “누가 이 세상을 떠나면 시신은 장례식 날 집에서 매장지까지 규율에 따라 옮겨가고 즉시 묻을 것이다. 시체 앞에 무릎을 꿇거나 그 옆에 서서 시신을 향하여 기도하는 것은 미신적이며, 찬송이나 기도, 성경을 봉독하는 것도 불필요하게 남용되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떠난 사람의 친구나 친척들과 함께 말씀을 상고하고 위로하는 것은 매우 필요하다. 목사가 참석하였으면, 그런 경우 가족을 잃은 사람들을 자주 찾아 그들의 상처를 씻고 그들이 맡겨진 의무를 잘 이행하도록 인도한다.”
이런 규정은 모두 미신적인 관습을 염두에 두고 제정되었다. 과거 교회에서 시신 앞에서 죽은 자의 영혼 안식을 위하는 기도를 하고 소위 거룩한 물과 함께 축성된 땅에 매장하는 일이 있았다. 장례식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감사하는 것보다는 죽은 자를 칭송함으로 사람의 영광이 나타나고 이로 인해 죽음의 엄숙함이 살아 있는 자들에게 선포되지 못하기도 했다. 그런데 종교개혁을 통해 이 모든 미신이 개혁되었다.
고인을 위해 기도하거나 고인의 무덤이나 관 앞에 촛불을 켜거나 향을 피우거나 배례하는 행동은 경계해야 할 세상 관습이다. 입관 시에 고인의 부장품을 넣지 않는 것이 좋으며 고인이 사용하는 찬송가나 성경 등 유품은 잘 보관하고 고인을 추모함이 좋다. 화장의 경우 화장을 한 후 분골은 납골당이나 기타 적당한 장소에 안치하면 되나 이 경우는 가급적이면 가족 중심으로 진행하는 것이 좋다.
넷째, 장례식 때 기도와 설교는 어떻게 해야 할까? 교회 역사에서 많은 토의가 있었다. 17세기 웨스트민스터 총회는 이 문제를 가지고 6일 동안 토의했다. 상황마다 다르겠지만 기도는 원칙적으로 출생 이후 지금까지 고인을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드리는 감사의 기도와 유족을 위로하는 간구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설교는 주일설교에 부담이 가지 않는 범위에서 준비하도록 했고, 특별히 부자와 가난한 신자를 구별해서 부자를 위해 설교를 남용하지 말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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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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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말씀] 여김의 축복 (야고보서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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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힘든 것은 여러 가지 시험이 동시다발적으로, 복합적이고 다중적으로 일어난다는 점이다. 설상가상,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연속되는 시험이 더욱 어렵다. 인생이 힘든 것은 정신을 차릴 틈이 없을 만큼 문제가 혼란하다는 것이다. 또한 어떤 결과가 나와도 감정적으로 인정할 수 없는 것이 불편한 일이다.
야고보 사도가 대단한 것은 예수님의 친동생이면서도 자기를 소개할 때 예수님의 종이라고 스스로를 일컬을 만큼 겸손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행함을 강조하는 야고보서는 의외로 기도를 강조하는 말씀들이다. 그가 얼마나 기도에 힘썼는지 별명이 낙타 무릎이었다.
의심하지 말고 믿음으로 기도해야 된다(약 1:6).
두 마음을 버리고 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된다(약 1:8).
욕심을 버리고 기도해야 응답받는다(약1:15).
그러므로 의심, 두심, 욕심은 버리고 힘써 기도하면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니님께서 지혜를 주신다. 기도가 행함이고, 기도가 사역이며 기도가 역사를 일으킨다. 간절히 부르짖음으로 마음이 새로워지고, 신의 한수를 둘 수 있게 된다.
약1:2에서 말하는 ‘형제들’은 예수 안 믿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믿음이 좋은 집사님, 권사님, 장로님이 시험에 든다는 것이다. 또 시험이 들 되, 여러 가지로, 컬러풀하게, 시리즈로 시험이 든다는 것이다. 사람이 계속해서 어려운 일을 당하면 우울해지고 대인기피증, 공황장애가 온다. 그러나 야고보는 내 형제들아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한다. “온전히”는 대충대충, 얼렁뚱땅, 건성건성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올인 하라는 것이다. 여러 가지 시험이 드는 것은 결국 우리의 인격을 연단해서 온전한 사람을 만들고자 함이다. “연단”이란 단어 뜻이 천 번 맞은 것이 연이고, 만 번 맞은 것이 단이다. 수없는 담금질을 겪어야 정금 같은 믿음이 나온다.
문제가 생기고 시험당하는 것이 반가운 사람은 없다. 그런데 왜 야고보는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하였을까? 사도바울의 옥중서신인 빌립보서의 주제는 기쁨이다. 동안을 가지려면 동심을 가지면 된다. 부름 받고 쓰임 받고 사랑받는, 일복이 많은 것이 복이 많은 것이다.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는 것은 보통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억지로라도 기쁘게 여기라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기쁨을 빼앗기지 않는 크리스천의 역설적인 태도가 축복이 된다.
여김의 축복이 있다. 분명히 골치 아프고 복합적인 문제인데도 온전히 기쁘게 여기면 쓴물이 단물 되고, 문젯거리가 간증거리가 된다. 불안한 현실이지만 믿음으로 미래를 바라보면 주께서 역사하신다. 사건보다 해석이다. 해석의 힘이 바로 믿음이다. 팩트보다 해석능력이 중요하다. 나라가 망하고 포로로 끌려 간 상황에서도 선명한 뜻을 정했던 다니엘, 형들에게 배신당하고 애굽에 노예로 팔려갔지만 생생한 꿈을 꾸었던 요셉을 보라. 꿈꾼 대로 뜻한 대로 형통하게 되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최상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반드시 복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라. 모든 고통에는 뜻이 있고, 여러 가지 시험은 나를 정금같이 단련하는 과정이니 감사함으로 받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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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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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연구] 가버나움에 오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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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부르던 어린이 찬송가 중에 갈릴리를 소재로 한 찬송이 있었습니다. 가사 일부가 생각납니다. <갈릴리야 갈릴리야 너의 이름 아름답다 소리 높여 노래하자 아름다운 갈릴리> 어린 동심에 갈릴리 마을들로 다니시며 가르치시고 이적을 행하시던 예수님의 모습에 신이 났었습니다.
갈릴리에는 익숙한 여러 지역이 있습니다. 나사렛, 막달라, 벳새다 등입니다. 그중에서 으뜸의 자리는 나사렛과 함께 가버나움이 다툴 것이라 생각합니다. 나사렛은 예수님께서 자라나신 곳이고, 가버나움은 예수님께서 메시아 사역을 시작하시 직전에 이사하신 곳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사하신 것에 대해서는 마태복음 4장 13절에서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라고 했고, 마태복음 9장 1절은 <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네에 이르시니>라고 했습니다. <본 동네>라고 할 정도로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동네였습니다. 지금도 가버나움에 가면 <예수님의 도시, Tte Town of Jesus>라는 팻말이 붙어 있습니다.
가버나움은 예수님 당시에 갈릴리의 중심지였습니다. 로마군인이 주둔할 정도로 요충지였고(로마군 백부장의 하인의 중풍병을 고친 기사 참조), 세관이 설치되어 있을 정도로 물동량이 많았습니다.(세리 마태를 부르신 곳) 가버나움은 갈릴리 북동쪽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두로와 시돈으로 이어주는 요지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으로 가신 이후에 그곳은 <위로의 마을>이 되었습니다. 가버나움이란 <나훔의 마을>이란 뜻인데, 구약의 나훔 선지자와는 아무 관련이 없고, 나훔이 위로이므로, 위로의 마을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가버나움의 위로는 거짓이었습니다. 경제활동을 잘 하는 사람, 세관에 근무하는 사람, 로마 군인, 성공한 일부 사람에게는 권력과 돈이 위로였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거짓 위로였습니다. 회당장 야이로도 딸의 죽음 앞에서 울어야 했고, 백부장도 사랑하는 종의 중풍병 앞에서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그들의 성취도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지 못했습니다.
가버나움이 진정으로 위로의 마을이 된 것은 예수님께서 오신 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위로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위로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으로 이어지는 참 위로였습니다. 본래 성부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이신데, 하나님 아들로 오신 예수님께서도 위로를 가져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이후 가버나움에는 놀라운 일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나병환자, 중풍병 걸린 백부장의 하인, 지붕을 뜯고 달아내려진 중풍병자, 열병으로 고생하던 베드로의 장모,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인,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셨고, 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죽은 것과 진배없던 세리 레위를 불러 제자를 삼으셨는데, 그가 바로 마태복음을 기록한 마태입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가버나움에서 놀라운 진리를 선포하셨습니다. 요한복음 6장 54~59절을 보면 이렇습니다. <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58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59 이 말씀은 예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하셨느니라>
가버나움 사람들은 예수님을 기다렸고, 환영했습니다. 누가복음 8장 40절을 보면 <예수께서 돌아오시매 무리가 환영하니 이는 다 기다렸음이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오자마자 야이로가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8장 41절입니다. <이에 회당장인 야이로라 하는 사람이 와서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려 자기 집에 오시기를 간구하니>
가버나움은 오늘 우리 삶의 터전을 상징합니다. 우리 삶의 자리에도 예수님께서 오셔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환영해야 합니다. 예수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가버나움에도 예수님으로 인한 이적이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 가정과 교회, 사회가 욕망과 좌절이 공존하는 가버나움이 아니라, 예수님으로 인한 기쁨으로 충만한 가버나움이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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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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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칼럼] 빛의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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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는 오래된 꿈이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하나 되어 민족의 빛과 소금이 되고 희망의 등불이 되는 것입니다. 십수 년 전, 죽전 신도시에 프라미스 콤플렉스를 건축하고 부흥의 최정점을 맞았을 때 저는 한국교회를 무너뜨리려는 반기독교 세력의 실체와 전략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개교회 성장을 넘어서 공교회를 세우는 공적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아마 계속해서 개교회 성장 지상주의로 갔다면 지금쯤 더 큰 예배당을 짓고 숫자적으로 더 큰 성장을 이루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한국교회와 건강한 사회를 지키는 영전, 사상전, 문화전의 최전선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이슬람 스쿠크, 동성애 차별금지법, 종교인 과세 등 한국교회 생태계를 무너뜨릴 수 있는 반기독교 법안이 올라올 때마다 정계와 교계의 깨어있는 소수의 분들과 함께 대처하고 막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일을 하다 보니까 한 개인이나 개교회의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권을 위한 자리가 아니라 한국교회를 섬기기 위해 하나님의 은혜로 예장합동 총회장, 한교총 대표회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를 가장 가슴 아프게 했던 것은 한국 교계의 분열이었습니다. 한국교회가 대정부, 대사회를 향해 영향력을 발휘하려면 원 리더십, 원 메시지를 낼 수 있어야 하는데 계속 분열하면서 각자 다른 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저는 한국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릅니다. 물론 지금도 그 꿈은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한국교회 연합기관이 하나 된다면 ‘빛의 연대기’라는 창작 칸타타를 제작하여 공연하고 싶은 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한국교회 연합기관은 하나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한국기독교 선교 140주년을 맞아 한국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위한 소망을 담아 공연을 준비하였습니다.
우상과 미신, 가난과 차별로 가득했던 조선 땅에 복음의 빛을 전해준 푸른 눈의 선교사들, 평양 장대현교회의 대부흥,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빛을 지켰던 믿음의 선진들의 고난과 희생, 폐허 위에서 조국 근대화와 부흥을 이뤄낸 한국교회의 눈물의 기도와 부흥의 대서사, 그리고 뼈아픈 분열과 상처... 다시, 연합과 부흥을 꿈꾸는 희망의 대서사시가 빛의 선율처럼 울려 퍼질 것입니다.
음악의 힘은 위대합니다. 남아공의 만델라가 종신 징역살이를 하고 있을 때, 1988년에 영국에서 각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성악가 80명이 모여서 만델라의 석방을 기원하는 음악회를 하였을 때, 그 음악회의 영향으로 그 이듬해 봄에 만델라가 석방이 되었습니다. 아무리 유창한 연설이나 은쟁반에 담긴 옥구슬 같은 말이라 할지라도 언어는 반론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음악은 무조건 하나를 만듭니다. 영국 황실에서 음악회를 하면 여야를 다 초청합니다. 그래서 영국 의회는 극한으로 가다가도 음악 안에서 하모니를 이룬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도 얼마나 극한 갈등과 대립으로 치닫고 있습니까? 한국기독교 선교 140주년 기념 칸타타 ‘빛의 연대기’가 한국교회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를 하나로 만드는 사랑과 용서, 화해의 하모니가 되고 희망의 빛이 되기를 바랍니다. 한교총 주관으로 4월 23일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열릴 예정인데, 한국교회 지도자들 뿐만 아니라 정관계의 주요 지도자와 기자들을 초청하여 다시 한번 사랑과 빛의 하모니를 이루는 감동의 시간이 되기를 소망하며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역사를 시적으로 표현한 서정적 해설과 더불어 장엄한 연주와 감동의 노래로 빛의 대서사시를 연출할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격동의 역사, 감동의 기록, 눈물의 시가 담겨 있는 ‘빛의 연대기’가 분열과 갈등으로 상처 입고 신음하고 있는 한국 교계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를 하나로 만드는 아름다운 노래가 되어 빛의 파동을 일으키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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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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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평화의 나라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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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한 세대 이전이 되어버린 1985년에 이런 가사를 가진 노래가 나왔습니다. “사랑 없는 마음에 사랑을 주러 왔던 너 너의 작은 가슴 그러나 큰 마음, 정이 없는 마음에 몸 바쳐 쓰러진 너 너의 작은 손으로 그러나 큰 슬픔, 내가 헤매어 찾던 나라 맑은 햇빛과 나무와 풀과 꽃들이 있는 나라 그리고 사랑과 평화가 있는 나라 그러나 그곳은 갈 수 없는 낙원 네가 가 버린 갈 수 없는 나라”(‘갈 수 없는 나라’ 중에서). 조해일이 쓴 동명 소설에 등장하는 작중 가수이자 주인공인 배수빈이 작품 속에서 부른 노래의 가사 일부를 바꾸고 해바라기라는 팀이 곡을 붙여서 발표한 노래라고 합니다. 소설은 1970년대 급격한 산업화를 거치면서 양극화 현상이 심해지는 가운데 살아가는 인간 군상들을 그렸습니다. 사랑하는 여인을 잃고 복수의 화신이 되어버린 주인공은 결국 형장의 이슬이 되어 사라지지만 그가 남긴 말이 깊은 울림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나는 완전히 절망할 순 없었다. 무언가 우리에게 구원의 여지가 있다고 믿고 싶었다. 무언가 우리에겐 희망이 남아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평화의 나라를 꿈꿉니다. 한국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팀으로 불리던 비틀즈(The Beatles)의 리더였고 그룹 해체 후에는 독자적인 활동들을 펼쳐갔던 존 레넌(John Lennon, 1940-1980)은 1971년 의미심장한 노래 하나를 발표합니다. ‘이매진’이었습니다. 후반부에 이런 노랫말이 등장합니다. “Imagine all the people Livin’ life in peace, You~! You may say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 I hope someday you’ll join us. And the world will be as one(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삶을 생각합니다. 당신은 아마 나를 몽상가라고 부를 지도 모르겠군요. 그러나 나는 혼자가 아닙니다. 언젠가 당신도 우리와 함께 할 줄 믿습니다. 그리고 온 세상도 하나가 될 것입니다).” 그를 둘러싸고 여러 가지 논란이 있지만 적어도 그가 모든 이들이 자유롭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세상을 소망했다는 사실만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극단적인 광신도였던 한 남자에 의해 목숨을 잃었을 때, 타임지는 “When the Music Died(음악이 죽은 날).”이라 썼지만 혹자는 “The Dream is Over(꿈은 끝났다).”라고 했지요.
그는 과연 좌절하고 만 몽상가였을까요? 누가 알겠습니까마는, 한 가지 분명한 점은 바로 이 순간 우리 사는 이 세상에 기이한 몽상가들이 판을 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우리는 이상한 망상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도처에 널린 모습을 목격합니다. 우리도 꿈을 꿉니다. 결코 헛되지 않을 꿈을 말입니다. 모든 이들이 평화롭게 사는 나라를 향한 꿈입니다. 우리는 노래를 부릅니다. 온 세상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나라에 관한 노래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부질없는 몽상가가 아닙니다. 우리의 꿈은 결코 망상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런 노래를 사랑하고 부르려고 하는 나도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함께 꿈꾸는 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함께 노래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사랑과 평화와 정의의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그래도 상당수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언젠가는 세상도 우리와 하나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모두 함께 아름답고 평화로운 그리고 영원한 완전히 새로운 나라에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소망을 성경에서 발견합니다. 이사야는 몇 차례나 평화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처음 노래에는 살상용 무기를 평화의 농기구로 바꿔달라는 염원이 담겼습니다(사 2:4). 그리고는 이리와 어린양이 표범과 어린염소가 송아지와 사자가 곰과 암소가 그리고 아이들이 함께 어우러진 나라를 꿈꿨습니다(사 11:6-9). 하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았습니다. 첫 번째 노래에 담긴 꿈은 아람과 북이스라엘의 침공으로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두 번째는 앗수르의 발흥으로 무참하게 부서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선지자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평화의 왕’(사 9:6)을 예언하고 ‘고난의 종’(사 42, 49, 50, 53장)을 노래하며 마침내 이루어질 ‘새 하늘과 새 땅’(사 65, 66장)을 선포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세 번의 반복은 평화의 나라를 향한 이사야의 ‘꺾이지 않는 마음’을 보여줍니다. ‘언젠가는 진정한 평화의 나라가 도래하리라, 우리 사는 날 동안 그렇지 못해도 그날이 오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그리고 그 일을 이루시기 위해 마침내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도 같은 꿈을 꿉니다. 부디 주 안에서 꺾이지 않는 마음을 가지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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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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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말씀] 샘물의 축복 (이사야 5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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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는 흐름이 중요하다. 모든 것은 흐름이 있다. 말이 통해야 행복하고 돈이 통해야 경제가 살고 뜻이 통해야 원팀이 되고 피가 통해야 건강하다. 혈행이 고른 것이 건강이다.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다.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역사의 수레바퀴가 흘러가는 대세가 있고,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고, 시대가 요청하는 흐름이 있다. 백세를 사신 방지일 목사님은 병들어 늙고 녹슬어 죽지 않고 주의 일을 하다가 닳아서 죽으리라 하였다.
예수님의 계보를 보면 주님이 오시기까지 수많은 방해가 있었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많은 아이들이 죽는 위기도 있었고, 많은 고비들을 지나며 때가 차매 구원사역을 이루신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끊어질 듯 하나 끊어지지 않고 아슬아슬하게 위태위태하게 조마조마하게 흘러가는 것을 볼 수 있다. 흘러가는 물을 막으면 물은 기다렸다가 다 채운 후에 흘러 넘어간다. 물은 겸손하게 아래로 내려간다.
역사는 반복된다. 사사시대에는 일곱 번의 사이클이 반복 된다. 축복을 받고, 교만하고, 죄를 짓고, 심판 받고, 회개하고, 회복되고, 다시 또 축복 받고, 범죄하고, 계속 반복된다. 위기의 시대에 그 땅에 14명의 사사가 나타나서 구원역사를 이루었다. 블레셋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삼손, 미디안의 압제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기드온! 사도바울의 사역을 보면 사방으로 우겨 싸여도 새털처럼 자유롭게 살았고, 온 이태를 감옥에 갇혀 지내면서도 담대하게 거침없이 복음을 전했다. 성령에게 이끌리어 예루살렘으로 갈 때 누가 막으리요? 누가 끊으리요?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환난과 핍박, 온갖 방해와 공작이 있어도 도도히 흘러간다. 거침없이, 중단 없이 계속 이어져가는 물줄기 같다.
이사야는 패망하고 포로 된 이스라엘의 회복을 노래했다. 물이 귀하고 메마른 사막 천지인 이스라엘 땅에서 샘은 축복이다. 사막 지역에서 오아시스는 생명수이다. 물 댄 동산, 잠근 동산은 물이 넉넉하게 풍요로운 것이다. 샘물 같은 은혜는 은혜(카리스)의 단비가 내려와서 카리스마를 이룬다. 은혜의 이른 비 늦은 비가 내려와 큰 못, 저수지를 이룬 것이 은택이다.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자, 은혜를 입은 자가 장땡이다. 성령님은 불처럼 바람처럼 생수처럼 임했다.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왔다.
성전 문지방에서 물이 흘러나와 강이 되고,
강 좌우에 과실나무가 심히 많아지고,
이 물이 바다에 이르니 바다의 물이 되살아났다.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모든 생물이 번성하고 고기가 심히 많아졌다(겔47:1~12).
눈물 테라피가 있다. 눈물 총량의 법칙이 있다. 눈물의 기도로 키운 자식은 망하지 않는다. 금식하며 통곡하며 부르짖는 구국기도는 나라를 살린다. 지금은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할 때이다. 역사가 어두울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새벽이슬 같은 청년들을 일으키신다. 날마다 때마다 일마다 주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도우시며 영광의 주께서 풍성케 인도하신다. 영적 전투에서 최후 승리 얻을 때까지 나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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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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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애] 4월 20일 주일을 ‘장애인주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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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곧 ‘장애인의 날’이 다가온다. 누군가는 이날을 ‘장애철폐의 날’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곳에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조금 더 익숙한 용어인 ‘장애인의 날’로 지칭하겠다.
‘장애인의 날’은 4월 20일이다. 이날만 되면 서로가 약속이라도 한 듯, 대중매체에서는 장애인과 관련한 기사와 영상을 내보내고, 장애관련기관들은 이와 관련한 행사를 진행한다. 다른 날들도 그렇게 하고 있으니 특별할 것도 없고, 매년 비슷한 내용이라 색다른 것도 드물다. 그럼에도 이런 행사들이 필요하다. 이런 행사들을 통해 누군가는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 것이고, 또 누군가는 장애인을 대하는 생각과 말이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기 때문이다.
교회도 어느 때부터 교단차원에서든, 교단차원이 아니든, 개교회가 ‘장애인의 날’을 기점으로 ‘장애인주일’을 정하여 예배를 드리고 있다. ‘장애인주일’을 지키는 교회들을 보면 목사이면서 장애당사자로서 미소가 띈다.
그런데 ‘장애인의 날’인 4월 20일은 교회력으로 사순절 기간이거나 부활주일과 겹치는 일이 종종 있다. 공교롭게도 올해 ‘장애인의 날’은 주일이면서 부활주일이다. 이렇게 되면 대부분의 교회는 장애인주일 보다는 부활주일에 예배 포커스를 맞추게 된다. 물론 교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부활주일이 그 어떤 절기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목사인 내가 모를 리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계실 때에 어떤 이들과 함께 하셨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보고 싶어 하는 모습이 과연 어떤 모습일지 한 번쯤은 생각해 봤으면 한다. 사실, 그리스도인에게 부활주일은 일 년마다 돌아오는 어느 특정한 날이 아니라, 매 주일이 부활주일이 아닌가? 아니, 하루하루가 우리에게 부활절이 아닌지. 그래서 매일의 삶이 감사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2025년 4월 20일 주일을 부활주일로 지키기보다 장애인주일로 지켜보는 건 어떨까? 교회 여건과 분위기 때문에 그것이 어렵다면, 부활주일과 장애인주일을 함께 지키는 건 어떨까? 오전에는 부활주일, 오후에는 장애인주일 이렇게 말고, 말 그대로 함께. 이렇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 한국교회에서는 요원할 일일까? 내가 너무 큰 희망을 품고 있는 것일까?
물론 나의 바람이 요원할 수도 있고, 너무 큰 희망을 품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만, 불가능한 것이 아니기에 한 번쯤 희망을 가져본다. 이 글을 보고 4월 20일을 부활주일이 아닌 장애인주일로 예배를 드렸다는 교회가 한 곳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어렵다면, 4월 어느 한 주일을 ‘장애인주일’로 정하여 교회들이 꼭 지켜주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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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