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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 색다른 은혜(망각의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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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닐 때 꼭 이런 친구가 있었다.
“나, 이번 기말고사, 공부할 시간이 너무 없어서 외우지도 못하고 한 번 읽기만 했어”
그런데, 막상 시험을 치면 90점 혹은 100점. 나는 시험 범위를 몇 번이고 읽고 외워도 80점이고, 영어 단어는 외운 후 돌아서면 잊어버리곤 했는데 한 번 스윽 훑고 시험을 쳤는데도 90점 이상이 나오는 친구가 있었다. 그런 친구들을 보면 정말 부러웠다.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기억력’ 좋은 것은 곧 좋은 성적과 성공의 보장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천재들의 소유물인 기억력을 갖고 싶었다.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어보니, 나에게는 기억력과는 정반대의 은혜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바로 ‘잊어버림의 은혜’ ‘망각의 은혜’이다. 인간에게는 기억하는 능력의 축복도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잊어버리는 은혜의 축복도 있다. 망각이라는 은혜가 없었다면, 우리는 수많은 스트레스 상황 속에서 이상행동과 정신질환으로 어지럽고 혼란스런 세상 속에 놓여지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색다른 은혜는 바로 ‘망각’이라는 선물이다. [망각의 즐거움]이란 책을 쓴 임희택은 대한스트레스학회 정회원으로 스트레스 전문센터를 운영 중이다. 스트레스와 관련된 칼럼을 쓰고, 철학 심리학 인지 과학 등으로 밝혀낸 망각과 몰입의 기술을 소개한다. 그는 망각은 필요 없는 스트레스에 정신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에너지를 현재에 집중시킬 수 있게 도와준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이 책은 모든 기억을 잊어버리라고 말하지 않는다. 단순히 마음 비우기, 명상 용법 등을 다루는 것도 아니다. 망각의 필요성을 인문학으로 접근해 독자들을 설득시키고 동시에 몰입하는 기술을 알려준다.
“기억을 다스리는 자가 행복해진다”
“현대 사회의 모든 심리적 고통은 기억에서 온다”
물질의 음과 양이 있듯, 인간도 기억과 망각 모두 필요하다. 심을 때가 있고 거둘 때가 있으며, 달릴 때가 있고 멈출 때가 있다. 그리고 때로는 기억하는 힘보다 망각하는 힘이 더욱 중요하다. 행복을 기억할 수는 있지만, 망각 없이는 결단코 행복을 얻을 수 없다. 이런 면에서 기억이 축복과 진리라면 망각도 축복과 진리이다.
그러나, 인간의 상처는 이런 원리들을 거슬러 반대로 한다.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잊어버리고, 오히려 꼭 잊어야 할 것들을 기억한다. 신앙인으로 내가 죄인인 것, 구원받은 은혜는 꼭 기억해야 하는데, 이런 사실들을 때때로 잊으면서 기도 응답 받지 못한 것, 공동체로부터 받은 상처는 아주 작은 것까지 다 기억하고 있다.
인간은 하루도 수 천 가지, 수 만 가지 생각을 한다. 그런데 이 가운데 90% 이상이 일어나지도 않을, 걱정할 필요도 없는, 망상 같은 생각이라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생각들을 멈추거나 잊고, 은혜의 기억들을 간직하며 사명자로 살아야하지 않을까?
성경은 모세라는 인물을 통해 우리에게 기억과 망각에 대한 교훈을 제시한다.
모세는 과거의 영광도 많았지만, 영광만큼 아픔 또한 많았던 인물이다. 왕궁에서 왕자로서의 삶을 살았지만, 그 영광을 잊고 민족의 지도자로 부름 받았다. 부름 받은 후, 광야에서의 40년을 보내며 자신의 상처는 잊고, 하나님의 은혜와 부르심은 기억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했다.
모세는 사명의 사람이었고, 사명을 통해 ‘기억의 은혜’와 ‘망각의 은혜’를 잘 사용해 위대한 지도가가 되었다.
내가 속한 공동체를 한번 돌아보자. 잊어야 할 상처와 아픔에 묶여 여전히 한걸음도 나서지 못하고 있는 지체가 있지는 않은가? 혹은 수많은 상처와 고난을 겪었지만 그 경험을 자신의 자양분 삼아 은혜의 기억으로 사명자의 삶을 살아가는 지체가 있지는 않은가?
우리는 망각을 넘어 새로운 미래의 소망, 날 부르신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며 나에게 맡겨주신 사명에 집중해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의 은혜가 내 속에서 샘솟듯 흘러나게 될 것이다.
과거 상처와 아픔에 대한 망각의 은혜가 다시 미래를 향한 사랑과 소망의 항구로 인도할 것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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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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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교수의 역사탐색] 독립운동가 박보렴 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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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알려져 있지 않는 인물 중에 우리의 주목을 끄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중의 한 사람이 여성 독립운동가 박보렴(朴寶奩, 1897-1984) 여사이다. 부산시 동구 범일동에서 박기만과 양주련의 4남매 중 막내로 1897년 11월 8일 출생했는데 박성애 목사의 막내 동생이었다. 박성애(朴晟愛) 목사는 심취명, 정덕생에 이어 부산경남지방 3번째 한국인 목사로 커를 선교사와 같이 호주 장로교 선교부 진주 지부를 개척한 인물이자 진주교회와 항서교회, 제일영도교회, 진주 반성교회 등에서 시무했다. 범일동에 살던 박보렴 여사는 8살 때인 1905년 10월 오빠를 따라 진주로 이주하여 기독교교육을 받았다. 오빠의 도움으로 진주 광림학교(후에 시원여학교)에서 수학했다. 광림학교는 진주 지방 첫 근대학교였는데, 같이 공부했던 동료인 천연희의 회고(<하와이 사진신부 천연희 이야기>)에 의하면, 박보렴은 학업성적이 우수하여 항상 1등을 했고 천연희 자신은 늘 2등을 했다고 한다. 독립운동에 관여하고 후일 의사가 되는 한규상(韓圭相)도 광림학교 동료였고 한규상의 부인 박덕실(朴德實)은 박보렴의 광림학교 후배로서 이들은 광림학교가 배출한 유명 인사들이다.
광림학교를 졸업한 박보렴은 박덕실과 더불어 광림학교 교사로 일했다. 이 기간 박덕실과 함께 대한애국부인회와 대한적십자회 진주 지부에 가입하여 활동했는데, 박보렴은 올케인 김순복(박성애 목사의 부인)의 뒤를 이어 제2대 진주지부장을 역임했다. 그런데 서울의 대한애국부인회 한양본부의 활동이 발각되어 진주에 있던 박보렴 여사는 올케인 김순복 여사, 그리고 박덕실과 함께 일경에 체포되었으나 증거 불충분으로 기소유예로 석방되었다. 체포당시 문서에는 박보교(朴寶喬)로 잘못 기재 되어 있는데, 이는 법원 서기가 렴(奩)을 교(喬)로 잘못 읽은 오기로 보인다. 검거 서류의 오기 때문에 대한애국부인회와 대한적십자회 검거자 명단에서도 다른 이름으로 기재되어 있어 박보렴 여사는 독립운동에 관여한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독립유공자로 추서되지 못하고 있다. 박보렴은 신앙생활에도 모범을 보여 조숙모인 김덕례(둘째 오빠인 박자룡의 부인)과 함께 진주교회 첫 권사로 임명되기도 했다.
그런데, 진주교회에서 목회하던 오빠 박성애 목사가 1920년 창원의 창원교회로 이동하게 되자 박보렴도 창원으로 이주하였다. 1921년 6월 27일에는 마산여자야학교에서 ‘마산여자청년회’가 창립될 때 강복순, 김복래, 김필선, 박필련 등과 같이 창립발기인으로 참여하는 등 사회활동 혹은 청년활동에도 적극적으로 관여하였다.
창원에서 지내던 중 신학 공부에 뜻을 두고 일본 고베여자신학교로 유학하였고, 졸업 후 1928년부터 1933년까지 오사까 한인교회에서 전도사로 활동했다. 그 후 서울 성북동에서 목장을 경영하던 조카(박성애 목사의 아들) 박은조(朴殷祚)와 함께 생활하며 감리교 석교교회(현 서대문구 천연동)를 비롯하여 몇몇 교회에서 시무하였다. 해방 후에는 임영신(任永信) 여사와 더불어 ‘대한여자국민당’을 창당하고 부당수가 되어 정계에서 활약했다. 대한여자애국당은 1945년 8월 17일 창당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정당이었는데, 5.16 이후 해체되었다. 이처럼 일제하에서는 독립운동에 투신하고 해방 후에는 사회 운동에 참여했던 박보렴 여사는 6.25 전쟁 당시 남편과 함께 북한군에 납북되었다. 남편 김기우(金基禹, 1911-?)은 당시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장이었다.
박보렴의 혼인 시기는 분명하게 알 수 없으나 남편 김기우는 아동문학가 마해송(馬海松)의 누님의 아들이었다. 경기도 개풍군 남면 수우리에서 출생한 김기우는 독학으로 조선약제사 시험에 합격하여 조선총독부 위생시험소에 근무하던 중 1941년 금강제약 전용순(全用淳) 사장의 후원으로 일본 동경제국대학 약학과에서 유학하고 서울의 경성약전, 곧 서울약대의 교수(1949-1950) 겸 학장서리로 근무하던 중 자택인 종로구 관훈동 84번지 11호에서 납치되었다.
슬하에 아들 하나를 두었는데 그가 김우종(金宇鐘)이다. 그는 서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공대 화공과에 입학하여 1958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12회)한 후 1959년 도미하여 Carnegie Mellon에서 화공학 박사 및 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스토니브룩 대학교(Stony Brook University)에서 35년간 응용수학과 교수로, 그리고 대학원 과정 책임자로 근무했다. 2004년 뇌암으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그의 부인 장유경은 연세대학교 상대학장을 지낸 장희창 교수의 딸인데, 이화여중 1학년 때인 1963년 미국 줄리아드에 유학하였고, 졸업 후에는 스토니부룩 학교(Stony Brook School)에서 교사로 일했다. 장희창 교수도 6.25 때 납북되었다. 그런데 북한으로 끌려간 김기우는 북한에서 조소앙(趙素昻), 엄항섭(嚴恒燮) 등과 더불어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집행위원으로 활동했는데,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북에서 사망했고 북한에서 사망한 남측 저명인사 묘역인 평양 용성구역 용궁1동에 안장되었다고 한다. 그곳에는 62인의 저명인사가 묻혀 있다고 한다. 박보렴 여사는 독립운동가로 그리고 여성 지도자로 일생을 헌신했으나 그의 후손들은 그 시대의 과제를 위해 헌신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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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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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임중칼럼] 사람이 사람답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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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을 닮은 존재로 창조된 피조물이라는 것이다. 무한한 가능성이 있고 무진장의 가치가 있으며 유일한 독특성이 있다. 이것을 깨닫게 되면 무엇을 하든 좌절하지 않고 하고자 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회사에서 신입사원을 채용하는 면접시험 때에 까만 점 하나를 찍은 백지 한 장을 벽에 붙여 놓고 무엇이 보이냐고 시험관이 묻는다. 그 때 대부분의 응시자는 까만 점이 보인다고 답을 한다. 그러나 몇 사람은 백지가 보인다고 답을 하였다. 면접관이 말하기를 “여러분은 왜 이 작은 점 하나는 보면서 이 큰 백지는 보지 못하는가?”라고 교훈하였다.
인생의 싸움에서 패배하는 사람은 흔히 자신의 과거를 본다. 줄곧 남만 따라 다니는 사람은 늘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무슨 일을 하다가 중도 하차하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눈 한 치 앞만 본다. 그런가하면 자신감이 없는 사람은 항상 모든 사물을 대강 보고, 좌절과 절망을 잘하는 사람은 상황을 깊이 보려고 하지 않는다. 보는 것도 훈련이다. “무엇을 보느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물으셨던 질문을 새삼 되새겨본다.
영어 속담에 ‘The parade passes and dogs bark(행렬은 지나가고 개들은 짓는다)’는 말이 있다. 일하는 사람과 비평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뜻도 되고, 몇몇 말꾼들이 시끄럽게 해도 역사의 행진은 멈추지 않는다는 뜻이 담긴 속담이기도하다. 역사의 키를 잡고 이끌어 가는 사람은 떠버리가 아니라 자기의 길을 조용히 걸어가는 사람이다. 신학교수 ‘버클러’ 박사가 학교에서 재직할 때 시각 장애를 가진 학생이 헬라어 최고점을 받았다고 한다. 그에게 최고점을 받을 수 있었던 비결을 묻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서4:13).”고 대답을 했다.
나는 스무 살에 예수님을 영접했고, 서른이 넘어 야간 대학을 다녔으며, 나이 사십이 되어 목사 안수를 받았다. 많은 동역자들이 “어떻게 그렇게 늦게 신학을 하였는데 목회 성공을 하게 되었느냐”고 묻곤 한다. 그때마다 나는 긍정적 삶의 교훈을 이야기한다. ‘목회는 성공’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지만 10년 늦게 출발하면서 오늘에 이르도록 행복한 목회를 할 수 있었던 힘은 시편 18편 1절이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하나님이 나의 힘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 나는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기에 오늘에 이르도록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아픔과 고달픔이 밀려올 때도 원망, 불평, 비판, 정죄 대신 감사로 달음질했다. 신학교 시절 먹지 못하고 병들어 쓰러질 때 나는 나의 존재에 대하여 회의(懷疑)를 느꼈었다. 내가 벌레만도 못한 존재라는 사실 앞에 통곡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런 절박한 상황에도 어둠을 밀어내는 빛의 말씀이 들려오면 나는 다시 내 존재에 대한 기쁨에 몸을 떨며 감격했다.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이사야43:1).” 내가 하나님의 것이 된 것, 나를 구속하신 하나님이 나를 지명하여 불렀다는 사실, 그 앞에서 나는 무가치한 존재가 아님을 깨달았다. 나는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하나님의 자녀 됨을 확신하면서 삶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병든 몸은 강건하게 되었고 가난한 삶은 마음의 부요에서부터 삶의 부요로 나아가게 되었다.
그 누가 자신의 눈을 1억 원에 팔며, 그 누가 자신의 심장을 10억에 팔겠는가. 누가 자신의 사지백체를 나누어 수 천 만원, 수 억 원에 팔겠는가? 역설하면 이미 내 몸은 가치로 환산할 수 없는 무진장의 가치 자체라는 말이다. 게다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다는 주님의 말씀이 있지 않은가. 이를 묵상하면 오늘도 내일도 날마다 감사와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다.
나의 칼럼 가운데 인간의 성품론이 있다. 보편적으로 인간의 성품을 도형화 하면 △ □ ○ 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형의 사람은 성품이 급하면서 솔직하다. □ 형의 성품은 느긋하면서 미련하며, ○형의 성품은 온화하고 유약한 편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면서 선호하는 성품은 물론 ○형 성품일 것이다. 어느 목회자가 △성품의 교인에게 너무 시달려 “왜 하나님은 예수 믿는 사람의 성품을 하나같이 ○성품으로 변화시키지 않으실까?”라고 탄식을 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이 △ □ ○ 세 성품을 하나님께서 만드셨다는 사실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모든 성품이 어느 하나 좋고 나쁠 수 없는 하나같이 하나님의 걸작품이라는 것이다. 생각 해 보라. 교인들의 성품이 모두 △형이면 날마다 자기주장이 앞서 시끄러울 것이다. 모두 □형이라면? 그러면 답답해서 지쳐 나가떨어질 것이다. 만약 모두가 ○형이라면 추진력이 없어 어느 것도 진행되기 어려울 것이다. 어떤 일이 전개될 때 △성품의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밀어붙이면 □성품은 다시 한 번 생각하는 느긋함으로 일의 내용을 검토할 수 있고, ○성품은 순종형이라 일을 시작하면 잘 협력하여 무슨 일이든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가는 것이다. 이렇듯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은 선하고 아름다워 버릴 것이 없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깨달을 때 인간관계는 아름답게 연결되어진다. 거기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인 이해와 용서, 관용과 사랑이 실천될 수 있다. 내가 잘났든 못났든, 많이 배웠든 배우지 못했든, 지식이 뛰어나든 모자라든, 돈이 많든 적든 그런 것은 문제가 아니다. 나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하나님이 만드신 목적 있는 존재다. 그러므로 감사할 것밖에 없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창조 섭리에 순복하는 삶, 그것이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그것이 사람이 사람답다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답지 못하다는 말은 무엇이겠는가? 바로 짐승과 다를 바 없다는 말씀이다.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과 같으니라(시편4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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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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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연구] 누가 하나님 나라에서 떡을 먹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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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예수님께서는 샤람들이 높은 자리에 앉으려 하는 것을 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낮은 자리에 앉으라고 하셨습니다. 처음부터 높은 자리에 앉았다가 낮은 자리로 옮기게 되면 망신스럽지만, 낮은 자리에 앉았다가 높은 자리로 옮기면 영광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낮은 자 의식, 약한 자 의식을 가지고 살라는 말씀입니다.
낮은 자, 약한 자 의식을 가지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강자가 되려고 합니다. 그래야 세상에서 인정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약자가 되고 싶은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는 약자를 사랑하시고, 은혜를 베푸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잔치를 베풀려면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고, 가난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야 그들이 갚지 못하고, 나중에 천국에서 주님께서 갚으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셨을 때 예수님과 함께 먹던 어떤 이가 감격하여 화답했습니다.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15)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의 말을 들으시고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정중하게 청했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밭을 샀기 때문에, 소를 샀기 때문에, 장가들었기 때문에 올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밭과 소를 사고, 장가들 수 있는 이유는 여건이 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강자이기 때문입니다. 강한 자는 주인의 초대에 응하지 않습니다. 화가 난 주인은 종을 보내서 길거리에서 연약한 자들을 청해 오도록 했습니다.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21) 결국 그 잔치의 떡을 먹는 영광은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에게 주어졌습니다.
여기 잔치는 천국 잔치를 말합니다. 요한계시록 19장 9절을 보면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라고 했습니다. 천국 잔치에서 떡을 먹는 영광은 약자들의 몫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떡을 먹길 원한다면 약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세상과 하나님 나라의 차이입니다. 세상에서는 강자가 떡을 먹고 약자는 그 아래서 부스러기를 얻습니다.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를 보면 부자는 날마다 잔치를 즐기지만, 병든 거지 나사로는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구걸합니다. 비참합니다. 그러나 죽은 후에 하나님 나라에서는 역전되었습니다. 부자는 음부에 떨어지고,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떡을 먹는 영광은 나사로의 몫이었습니다.
강자는 교만하여 하나님 은혜를 사모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약자는 유일한 희망을 하나님께 둡니다. 기도가 간절합니다. 눈물로 매달립니다. 그래서 기적은 약자에게 일어납니다. 제가 살아온 과거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적인 은혜를 경험한 때는 제가 가장 약했을 때입니다. 많아 아팠을 때, 교회가 힘들었을 때였습니다. 그럴 때 기도는 간절했고, 하나님께서는 기적처럼 응답하셨습니다. 점점 편안해지고, 모든 것이 형통할 때 느끼는 두려움은 저도 모르게 강자가 되어 하나님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게 심각한 병입니다. 이런 이들에게는 아무런 기적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자기가 차린 상에서, 자신이 만든 떡을 먹느라고 하나님 나라의 떡을 먹을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었으나, 늘 약자의 의식으로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시편 여러 곳에서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나는 가난하고 슬프오니>라고 기도했습니다. 기억합시다.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를 부르셨지, 남에게 짐을 지우고 거들먹거리는 자를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약자, 그는 하나님 나라에 가까운 사람이요, 그 떡을 맛볼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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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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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뱅크런과 처치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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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사이버 뱅크런, 우리는 안전한가”란 제목의 금융 포럼이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지난 3월에 미국 내 자산 기준 16위 규모의 실리콘밸리은행(SVB) 은행이 ‘디지털 뱅크런’ 현상으로 인해 단 36시간 만에 파산한 충격적인 사건의 여파였습니다. 여기서 “뱅크런(Bank-run)”이란 예금 대량 인출 사태 곧 어떤 이유로 인해 은행이 부실해져 예치된 돈을 모두 되돌려줄 수 없다는 소문이 돌면서 그 은행 앞으로 예금주들이 먼저 돈을 되찾기 위해 달려가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리고 ‘사이버 뱅크런’ 혹은 ‘디지털 뱅크런’은 직접 은행에 가지 않아도 얼마든지 입출금은 물론이요 주식이나 대출 같은 각종 금융 거래가 가능한 시대에 파격적으로 등장한 새로운 개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실리콘밸리은행(SVB)에 돈을 맡긴 예금주들이 당일 금융기관이 문을 닫는 시간까지 예금 인출을 시도한 금액은 420억 달러(약 55조 6,000억)에 달했습니다. 우뚝 서기까지 40년이 걸린 은행이 그렇게 고작 하루 만에 파산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번 사태의 근원적인 이유로 금리 인상과 경기 침체를 꼽습니다. 2022년 3월 이후 미연방준비위원회는 10회 연속으로 금리를 인상했고, 안정적인 자산이라 여겼던 미국 국채 가격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여기 집중적으로 투자했던 SVB 은행이 엄청난 손실을 입었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원인으로 비보장성 예금 비율을 거론합니다. 은행 위기가 발생했을 때 보험으로 보장해 줄 수 있는 예금이 있는데, 미국은 현재 25만 달러(약 3억 2,700원)가 상한선입니다. 문제는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기업들이 주로 거래하는 SVB 경우 비보장성 예금 비율이 93.9%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만일의 경우 다 잃어버릴 수도 있는 고액의 예금주들이 너도 나도 돈을 빼는 바람에 대규모 뱅크런 사태가 발생해 버렸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예금보호한도는 얼마일까요? 최근 SVB 사태의 영향으로 2001년 이후 5,000만원으로 묶여 있던 것을 1억 이상으로 상향 조정하는 안을 예금보호공사를 중심으로 논의하고 있는 정부는 늦어도 8월까지는 결론을 낸다고 했으니 기다려 볼 일입니다.
뱅크런은 우리나라와 전혀 무관한 경제 현상이 아닙니다. 2011년 저축은행 문제가 공론화되면서 금융당국이 일부 부실 저축은행에 대해 영업정지 결정을 내리자 예금주들이 일제히 은행으로 쇄도하여 2월 21일 하루에만 전국에서 약 5,000억 가까운 돈이 인출되면서 대혼란에 빠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보호한도를 초과하는 예금주들은 물론이요 높은 금리를 보장하는 유혹에 넘어가 후순위채권으로라도 가입하고자 했던 많은 서민층이 큰 피해를 보았습니다. 한국의 저축은행 사태는 거슬러 가면 2008년 당시 일주일 만에 500억 달러(약 65조)가 빠지는 뱅크런 속에 파산하고 범세계적인 금융 공황을 야기한 리먼 사태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금번 실리콘밸리은행 파산 역시 파급력이 대단했습니다. 사고 발생 이틀 만에 뉴욕 시그니처은행도 폐쇄조치를 당했고 며칠 뒤에는 자산 규모로 세계 9위에 해당하는 글로벌투자은행 크레디스위스에서도 주가가 폭락하면서 뱅크런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다 보니 벌써 이로 인한 한국 금융권의 위기를 주장하는 견해들이 앞 다투어 등장하고 있습니다.
뱅크런(bank-run)을 생각하다 보니 갑자기 ‘처치런(church-run)’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예금주들이 은행에서 돈을 빼듯 신자들이 교회에서 발을 빼는 현상을 이렇게 부를 수 있지 않을까요? 가나안 성도와 노마드 신자의 증가는 새삼스럽지 아니합니다. 최근에는 무종교인의 비율마저 폭등하는 바,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가 지난 3월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국민의 63%가 특히 조사 대상 가운데 30대는 75.5% 그리고 20대는 80.9%가 자신을 무종교인이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더군다나 코로나 팬데믹으로 말미암아 많은 교회가 인터넷 등으로 운신의 변화를 꾀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사이버(디지털) 처치런’이 일어날 가능성도 높아지지 않겠습니까? 마우스 하나로 클릭 한두 번만으로도 얼마든지 교회를 떠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뱅크런이나 처치런 사태의 핵심은 공히 ‘신뢰’에 있습니다. 은행이 신뢰를 잃으면 예금주가 떠나갑니다. 교회가 신뢰를 잃으면 신자가 떠나갑니다. 교회는 지금 신뢰를 많이 잃었습니다. 지금도 세습이나 물질 혹은 성 문제 등으로 신뢰를 급격하게 잃고 있는 중입니다. 계속 이러다간 돌이킬 수 없는 처치런 현상이 발생하여 교회도 영적 파산 상태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무엇보다도 지금은 무너진 교회의 신뢰를 회복해야 합니다. 중지를 모아야 할 때입니다. 시급합니다. 기나 긴 시간도 각오해야 합니다. Gott hilfe u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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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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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말씀] 잠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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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누리는 복이 많이 있지만, 그중에 가장 큰 복이 ‘평안’의 복이 아닐까요? 아무리 재물이 있어도, 명예가 있어도, 평안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매일의 삶 속에서 평안을 누리고 계십니까? 오늘 본문을 보면, 평안을 잃어버린 제자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예수님과 함께 갈릴리바다를 건너가던 제자들의 배에 ‘광풍’이 불어 닥쳤습니다. 파도가 사정없이 들이치고, 배는 추풍낙엽처럼 요동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비명’을 지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우리도 인생을 살다 보면, 뜻하지 않은 광풍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자 그럴 때, 어떻게 하면 나를 짓누르는 ‘불안과 두려움’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요?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주님이 배에 함께 계심에도 광풍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나면, 만사가 형통하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알듯이, 신앙생활 하면서도 어려움이 다가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광풍을 어떤 시각으로 볼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풍랑 속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예수님이 함께 계심을 보아야 합니다.(36절)
지금, 제자들의 잘못이 무엇입니까? 주님이 배에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들이치는 파도만 보고, 함께 계시는 주님은 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 그 현실에만 시선을 고정시키면, 우리는 위축 당합니다. 우리는 낙심합니다. 그럴 때 여러분, 보려고만 하지 말고, 들으려고 하세요. 무얼 들어야 합니까?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이 시련과 역경의 현장 속에서 주님의 뜻은 무엇일까? 주님의 음성을 들어 보세요.(사 41:10) 인생의 광풍은 내 경험과 지식으로 극복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바라보고, 그분의 말씀을 들으므로 극복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제자들이 두려워 떨고 있는 것이 잘못인 이유가 또 있습니다. 갈릴리바다를 건너가자고 하신 것은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래서 ‘순종’해서 가는 길이라면 잘못될 것이 없습니다. 이 광풍도 그분의 계획의 한 부분일 수가 있습니다. 제자들은 이 사건을 통하여 예수님에 대해 새롭게 깨닫게 된 것입니다.(41절) 다시 말하면, 이 광풍으로 인하여 제자들의 믿음이 한층 더 견고하게 서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주무시던 예수님을 깨우지만, 사실은 예수님이 제자들을 깨우신 것이었습니다. 자고 있던 제자들의 믿음을 흔들어 깨우신 것입니다.
2. 예수님을 깨우는 것입니다. 즉 기도하는 것입니다.(38절)
염려와 두려움을 떨쳐버리는 ‘최고의 비결’은 기도입니다. 빌 4:6절은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순간에도 감사함으로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주님이 주시는 평강을 맛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눈에 보이는 상황에 눈을 감으면, 우리 주님은 하늘의 평안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라갈 때도 광풍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광풍 앞에서 너무 당황하지 마십시오. 위기의 때가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는 좋은 때입니다. 광풍 속에 주님이 함께 계심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기도로 주님을 깨우십시오. 그러면, 광풍이 극복되는 놀라운 역사가 여러분의 삶 속에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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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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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 융합형 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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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 부르시고 교회가 필요로 하는 통합형 인물
주께서는 그 시대에 그 땅에서 그 사람을 들어쓰신다.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교회가 필요로 하고 시대가 요청하고 내면의 절규에 응답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세계적인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며 대한민국은 격동의 세월을 헤쳐 나가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 인구절벽, 지방소멸의 시대가 눈앞에 펼쳐지고 초등학교들이 폐교, 분교의 길을 걷고 있다. 사람들은 혼밥, 혼영을 즐기며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있다. 1인 가구 5인중 하나는 고독사 위험군으로 분류된다.
교회도 예외 없이 예배인원이 줄어들고 주일학생이 급감하고 중․고등부가 없는 교회가 많다. 신학교가 미달되고 젊은 사역자들이 전도사로 매이는 것을 싫어하고 차라리 알바를 한다고 한다. 교회마다 봉사할 일꾼이 부족하여 사람을 찾고 있지만 앞으로 시간이 더 지나도 개선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 암담한 현실이다.
코로나를 지나며 소그룹이 강한 교회는 든든하다
영상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었던 코로나를 지나며 그나마 소그룹 모임이 활성화 된 교회는 코로나의 부작용이 적은 것을 볼 수 있다. 어쩔수 없이 대면 모임이 폐지되고 축소되고 통폐합이 되었다.
주일학교가 소멸되어 가는 지경에서 다음세대의 중요성을 목 놓아 강조하지만 그 사이에 실버세대는 훨씬 더 큰 소외감을 느낀다. 그 동안 교회를 건축하고 몸 바쳐 헌신했던 기성세대가 지금은 뒷방 노인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이다. 노인들을 위한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된다.
삼일기도회 찬양대를 온가족 찬양대로 구성하니 할머니와 어머니와 자녀들이 함께 찬양한다. 금요기도회도 온가족 기도회로 진행을 해서 3대가 함께 참여한 가정을 축복하고 주일학교 찬양팀이 나서고 청소년들을 응원하고 특별간식을 주니 교회 분위기가 사뭇 생기와 소망이 넘치게 된다.
농어촌 교회를 통폐합할 수는 없다. 효율을 따지며 역사를 지우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된다. 사람이 적다고 문을 닫을 수는 없다. 비록 작아져도 모교회는 역사와 전통을 이어가는 못자리판이다. 명절에 고향교회 사랑하기 운동을 펼치고 휴가철에 1년 동안 준비한 선물과 학용품을 가지고 모교회를 찾아가서 여름성경학교를 섬겨주면 의미심장한 휴가가 되고 농어촌 미자립교회는 소박하지만 성경학교를 열 수 있다. 도심교회와 지방교회가 자매결연을 통하여 농수산물을 직거래하는 선교바자회를 할 수 있다. 인적, 물적 교류와 은혜 프로그램을 공유할 수가 있다.
각자 도생하며 모두들 힘겹고 외롭게 살아가는 시대에 아름다운 융합, 통합사역을 기대한다.
통합예배의 필요
코로나 때 억지로 떠밀려서 영상예배를 드렸지만 뼈아픈 후유증이 남았다. 영상예배를 드린다고 핑계 대던 많은 성도들은 코로나가 끝나가는 지금도 여전히 출석을 하지 않고 있다. 코로나 기간에 대면예배와 영상예배도 드리지 못한 교회는 맥이 끊어져 회복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영상예배에 맛을 들인 성도들은 유튜브에 중독이 된 것처럼 전국, 아니 세계 교회를 훑어보면서 수많은 메시지를 접하다 보니 이 또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생기고 예배의 무게감과 말씀의 진지함이 현저히 떨어지게 되었다. 온라인예배에 계속 투자하기에도 무리가 있고 중단을 하자니 그나마 소수의 인원도 단절이 된다. 대면예배를 강조하고 영상예배를 무시한들 성도들은 이미 영상예배에 익숙해져 버렸다. 어쩔 수 없이 영상예배와 대면예배를 병행해 나가야 된다. 대면예배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통합예배를 드려야 된다. 온 세대가 참여하여 자녀들과 부모들이 함께 예배하며 성경봉독, 성경암송, 특송에 어린이들을 동참시켜 통합예배를 드려야 된다. 주일예배를 몇 부로 드리는 교회의 봉사하는 성도들은 예배 두 번 드리기를 통하여 원만한 봉사활동과 예배 집중력을 높일 수가 있겠다. 온 세대가 참여하면 예배 분위기도 역동적이고 활기차게 될 것이다. 어린이가 예배순서를 맡으면 할아버지, 할머니도 나온다.
교회학교 통합반
많은 교회들은 나이별로나 학년별로 반을 편성할 수 없을 정도로 주일학생 숫자가 적다. 그 동안 한국 교회가 주일학생을 너무 세부적으로 갈라놓아서 부모와 자녀들이 함께 예배드리지 못하고 주일학생들이 한 교회라는 공동체 의식이 희박하다. 옛날 주일학생이 만 명이 모였던 부산 서부교회는 통합반을 운영하였다. 학년이나 나이, 거리에 상관없이 반 편성을 하였다. 지금은 어쩔 수 없이 통합반을 운영해야 된다. 교사 중심으로 반 목회를 할 수 있다. 한 교사를 중심으로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한 반으로 구성하니 한 반이 곧 주일학교다.
통합교육
교회마다 전도사 숫자가 적고 주일학교 교사가 부족하다. 배울 학생도 적지만 가르칠 교사도 늘 모자란다. 지도자가 없으니 학생이 없고, 학생이 없으니 지도자를 모실 수도 없다. 교인이 적으니 시설 투자도 못하고 시설이 뒷받침이 안 되니 사람들도 오지 않는 악순환이 되고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고착화 된다. 교인도 적고 일꾼도 없고 돕는 자도 없고 동역자도 없고 목회자 혼자서 해내자니 점점 지치고 힘이 빠진다. 중직자들이 은퇴를 하고 젊은 일꾼들이 수급이 안 되니 점점 고령화가 되고 지방소멸이라는 말이 남의 말이 아니다. 전문가가 필요한 시대에 교회에는 오히려 신학을 전공한 목회자 수급은 비상이 걸려있다.
이러한 답답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라도 평신도를 깨워야 된다. 교회에 신앙이 좋고 은사가 탁월한 성도가 있으면 일정 교육을 시켜서 각 교회에서 교육전도사 수준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평신도 일꾼들을 일으켜 세워야 된다. 훈련된 평신도를 전진 배치시킴으로 은사가 활용되고 예산이 절감되고 교회가 활성화 되고 아름다운 동역이 이루어짐으로 통합사역이 가능하겠다.
어떤 교회는 중․고등부, 청년회 모임을 토요일에 하고 주일은 중등부 이상 학생들은 교사로 투입해서 주일학교가 활성화 되었다고 한다. 학부모와 어린이와 교사, 가정과 학교와 교회가 유기적으로 연결, 연합이 되어야 된다. 사도바울이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고 한 것처럼 올라운드 플레이어, 전천후 크리스천이 되어야 된다. 모든 성도가 가르치든지 배우든지 섬기든지 기도하든지 후원하든지 전도하든지 한 가지는 동참해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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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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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교수의 역사탐색] 상해임시정부 군사부장 도인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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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익숙치 못한 인물이지만 독립운동에 투신하고 공산주의와 싸웠던 기독교계 인물이 있다. 그가 감리교의 도인권 목사(都寅權, 1880-1969)이다. 오늘은 그가 걸어갔던 자취를 소개하고자 한다.
1880년 1월 17일 평안남도 용강(龍岡)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 한문교육을 받으며 성장했으나, 10살에 아버지를 잃고 스스로의 길을 개척하여 14세 때는 평양으로 이주하였다. 24세가 되던 1904년 대한제국 기에 무관학교 군사특별과에 입학하였고 졸업 후 교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런데 1907년 군대가 해산이 되자 교육운동에 투신하였다. 용강에 충일학교를 설립하고 황해도 재령(載寧)의 문창학교와 안악(安岳)의 양산학교에서 교직생활을 시작하였다. 여기서 김구(金九)와 만나면서 독립운동에 더 적극적으로 가담하게 된다. 1910년 국권피탈이 되자 기독교에 소망이 있다고 판단하여 기독교에 귀의하였고 미국북장로교회 선교사 밀러(F. S. Miller, 민노아)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는 1892년 11월 내한하여 언더우드가 설립한 예수교학당(후에 경신학교로 발전한다)에서 일했고, 서울 연못골 일대, 황해도와 충청도 일대에서 사역했던 인물이다.
1910년 12월에는 안중근(安重根)의 동생 안명근(安明根)의 독립운동자금모금사건이 탄로되자 도인권은 김구 및 해서교육총회 지도자들과 함께 투옥되었다. ‘해서교육총회’란 1908년 황해도 지역의 교육을 위해 조직된 교육계몽단체인데, 황해도 각처에 설립되어 있는 구식 서당을 근대적 학교로 전환시키고 교육기관을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교육활동을 촉진하자는 것이 설립 목적이었다. 이 조직의 학무총감이 김구였다. 그런데 안명근이 군자금 모금을 빌비로 민족지도자들과 접촉했다는 이유로 황해도 일대의 민족지도자들을 체포하거나 구금했는데, 해서교육총회 지도자들도 이 사건으로 모두 검거된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해서교육총회사건인데, 안악사건(安岳事件)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때 도인권은 10년 형을 언도받고 6년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그가 감옥에 있을 때 일본 경찰관이 불당(佛堂)을 건축하고 모든 죄수들에게 분향배례(焚香拜禮)를 요구했으나 도인권은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하여 구타를 당하기도 했다. 가출옥 조치를 허락했으나 출옥시키지 않으면 나가지 않겠다고 고집하여 형기를 다 채우고 풀려났다.
출감한 도인권은 평양교회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계속하다가 1918년 상해(上海)로 망명하여 상해임시정부 군사국장, 무관학교 교관·학도대장, 임시의정원 부의장, 상해거류민단장 등을 역임하였다. 1921년에는 고려혁명위원회에 가입하여 시베리아로 가서 공산주의자들과 대결하고 독립운동을 하였다. 1922년 10월부터 남감리교회에 소속하여 외수청(外水淸) 구역을 담임하였고, 이후 시베리아지방의 선교사업에 투신하였다. 1929년에는 소련 공산정권의 종교 핍박을 피해 교인들과 함께 중국 훈춘(만주 간도)의 동흥진으로 도피하여 여기서 6개의 교회와 5개의 학교를 설립하는 한편 동흥진교회의 담임으로 시무하였다. 1931년 만주사변 당시에는 무장을 하고 떠를 지어 다니던 공산당 비적(匪賊)들에게 잡혀 사형 직전까지 갔다가 일본군 토벌대장의 도움으로 석방된 일도 있다. 이때 도인권 목사와 교회는 도인권 목사를 구해준 토벌대장인 다케모도(竹本) 헌병대장에게, ‘일본 황군 헌병대장 다께시모(竹下)에게 감루(感淚)를 금치 못하며’ 라는 제목의 감사장을 보낸 바도 있다. 이를, 일제의 가혹한 정치보다 공산당의 잔혹이 더 심했다는 의미라고 민경배 교수는 해석했다. 또 일본 감리교 신자로서 훈춘 영사관 부영사로부터 파괴된 예배당 재건비 60만 원을 받아 교회당을 재건축하였다고 한다.
만주에서 공산주의를 경험한 도인권 목사는 반공주의자였다. 그는 고난 중에서도 구령사업을 계속하여 많은 신자를 얻었고, 그가 관여한 동흥학교도 크게 발전하였다. 10년간 동흥진에서 일한 도인권 목사는 1939년 6월 간도의 연길구역으로 파송되어 연길교회와 유치원을 설립하여 해방 당시까지 시무하였다. 해방되던 해 10월 귀국한 그는 3.1동지회를 조직하여 대표로 일하다가 황해도 옹진으로 가 한국독립당 옹진지당부 지도책임,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옹진지부장으로 봉사했고 또 옹진중학교도 설립하였다. 1947년에는 옹진읍교회를 담임하며 목회하다가 1950년 6.25전쟁 당시 공산학정을 피해 월남하였다. 감리교의 제주도 선교사업이 시작되면서 제주도로 이동한 그는 1957년 4월까지 7년간 시무하면서 제주중앙교회 등 7개 처에 교회를 설립하였고 제주지방 감리사로 재직하였다. 민족의 수난기에 한국과 만주, 황해도와 제주도에서 반공주의 신념으로 살았던 한 목회자의 여정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 민족과 교회의 역사를 헤아리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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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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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칼럼] 오야마 레이지를 추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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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과거사 사죄 운동에 앞장서 온 오야마 레이지 목사가 하나님의 품에 안겼다. 그의 나이 96세. 그의 삶은 한·일 간의 진정한 용서와 화해를 위한 한 알의 밀알과 같았다. 새에덴교회는 3·1절이나 8·15광복절이 되면 일본의 양심적인 인사들을 초청해 함께 예배를 드렸다. 오야마 목사님은 두 번이나 우리 교회를 방문해 사죄의 절을 했다. 뿐만 아니라 2015년, 30만명 넘게 모인 광복절 집회에도 참석해 엎드려 사죄의 절을 했다.
필자가 초청할 때마다 기꺼이 한국을 찾아준 그에게 빚진 마음이 가득하다. 이런 훌륭한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분이라고 왜 민족애와 조국애가 없겠는가. 그러나 그는 일본 기독교의 양심이고 최후의 보루였다. 그렇기에 수많은 오해와 수모, 박해를 감내하면서도 일본의 진정한 반성과 사죄를 위해 노력해 온 것이다. 별세 소식을 듣고 조전이나 조화로 대체할 수 있지만 직접 찾아뵙는 것이 그분에 대한 예의이고 보답이며 한·일 간 화해의 징검다리를 놓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필자는 일찍이 김영진 전 국회의원과 함께 한·일 간 화해와 평화를 위해 한일기독의원연맹 지도목사로 섬겨왔다. 당시 만난 분이 도이 류이치 의원이었다. 그는 일본 민주당 원내대표이자 7선 국회의원을 지낸 유력 정치인이었다. 그런데 그는 2011년 3·1절에 우리 교회를 방문해 독도의 한국 영유권 주장을 담은 한·일 공동선언문을 낭독하고 서명한 사건 때문에 큰 고초를 겪고 정치생명뿐 아니라 모든 것을 잃어야 했다. 그리고 그때 받은 충격과 극심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힘든 나날을 보내다 결국 고인이 되셨다. 그러나 그분은 마지막까지 조금도 원망하는 마음 없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작게나마 실천했을 뿐”이라고 고백했다.
오야마 목사 역시 진정한 용서와 화해를 위해 일생을 바치신 분이다. 그는 목회자가 된 후 일본인 최초로 아시아 각국에 사죄운동을 전개했다. 제암리학살사죄위원회를 발족해 1000만엔을 모아 제암리교회 재건과 순교기념관 건립을 지원하면서 사죄의 마음을 행동으로 옮겼다. 우리 교회를 방문했을 때도 사죄의 절을 하며 이런 말을 남겼다.
“여러분의 조상을 고통에 빠뜨린 데 대해 아무리 사죄의 말씀을 드려도 부족합니다. 여러분들이 ‘이젠 됐어요’라고 말씀하실 때까지 사죄하겠습니다.” 그분의 생애를 생각하면 저절로 머리가 숙여지고 숙연해진다. 그래서 월요일 첫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갔다. 친구인 하요한 선교사의 안내로 상주인 오야마 세이지 목사를 찾아 조의를 표했다. 그리고 귀빈에게만 공개하는, 특별안치실에 가 고인의 잠든 얼굴을 뵈었다. 가슴이 울컥했다.
고인의 환한 안빛과 웃는 모습이 참으로 평안하게 보였다. 나는 그곳에서 먼저 기도를 하고 상주인 세이지 목사님이 기도를 했다. 우리는 포옹하며 약속했다. 그는 끝까지 아버지의 유훈을 이어받아 일본 안에서 올바른 역사 인식이 세워지도록 노력하고 한국을 향해서는 끊임없이 사죄하는 운동을 전개하겠다고 했다. 나는 그 사과와 사죄를 받아들이며 한·일 간 화해와 평화의 다리를 놓는 운동을 하자고 제안했다.
우리 둘 다 눈물을 훔쳤다. 살아 있는 자는 서로 울컥했지만 정작 잠든 분의 얼굴은 너무나 환하게 웃고 있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할 일을 다 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주일예배를 다섯 번 인도하고 월요일 새벽에 일어나 일본에 간 나의 결단도 컸지만, 그냥 조문만 받지 않고 부친이 잠들어 있는 특별안치실로 인도해 주신 상주 세이지 목사님의 특별한 배려도 고맙게 느껴졌다.
일본은 역사를 왜곡해서는 안 된다. 한국을 향해 사과하고 사죄하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 동시에 한국은 과거에만 매여 있지 말고 미래로 나가야 한다. 특별히 한국교회는 오야마 목사님의 정신과 가치를 존중히 여기면서 양국에 화해의 징검다리를 놓고 대한해협에 ‘피스 브리지’(peace bridge)를 놓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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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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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연구] 대주재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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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요즘의 한국교회가 위기라고 합니다. 각 교단에서 발표하는 교인이 줄고, 신학교 입학생이 줄고, 분규를 겪는 교회가 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사회적 영향력도 급감하고 있습니다. 정부를 비롯한 여러 사회 단위들이 기독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이나 사학법 개정과 관련한 우리의 호소를 무시합니다. 구한말에서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한국교회는 교인은 적었지만, 민족의 견인차였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교회가 감당하던 교육, 봉사 등의 모든 영역을 정부와 기타 사회단체에 넘겨준 채,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독교인의 자부심도 위축되고 있습니다. 자신이 기독교인임을 자신 있게 밝히지 못하고 얼버무립니다. 왜 이렇게 마음이 약해졌을까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시시한 신이기 때문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본문은 예루살렘 교회의 믿음의 선배들이 가진 신앙을 보여줍니다. 오순절에 있었던 성령강림 사건은 정말 놀라운 열매를 가져왔습니다. 예수님의 사람들은 예루살렘 전체 주민에 비하면 극히 소수였지만, 성령이 임하신 후에 그들은 권능을 받았습니다. 권능이란 뒤나미스, 즉 다이너마이트 같은 폭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도들은 겉으로는 계란처럼 약해 보여도, 속에는 폭탄을 품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도들의 기도와 말씀 선포 앞에서 예루살렘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런 와중에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 미문의 앉은뱅이 장애인을 일으키는 엄청난 이적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했습니다. 그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일어서지 못한 불쌍한 사람이었는데,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이들은 놀라서 모인 사람들에게 솔로몬 행각에서 설교했습니다. 자신들이 일으킨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걷게 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을 전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산헤드린 공회 사람들이 사도들을 가두었고, 이튿날 이들은 공회 앞에 끌려갔습니다.그러나 공회원들도 이들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워낙 담대하게 외쳤을 뿐만 아니라, 걷게 된 사람이 사도들 옆에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공회원들은 할 수 없이 다시는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위협하여 풀어주었습니다.
풀려난 사도들은 동료들에게 갔고, 이들은 합심하여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기도의 첫 부분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시여>라고 시작하지 않고, <대주재여>라고 시작했습니다. 여기 <대주재>로 번역된 단어는 <데스포테스>로서 주인, 소유자, 통치자를 의미하며, 그보다 더 큰 이를 상상할 수 없는 가장 크고, 가장 위대한 절대 존재를 말합니다. 그러면서 성도들은 대주재를 창조주로 고백했습니다. 24절은 이렇습니다. <그들이 듣고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이르되 대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은 이시요>
우리는 하늘과 땅과 바다를 알지 못합니다. 그 가운데 존재하는 만물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우리 입의 침 한 모금에 무려 5억 이상의 미생물이 있고, 우리 몸에는 3킬로 이상의 미생물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 미생물들을 평생 몸안에 가지고 있습니다. 연세대학교 김응빈 교수님은 이들을 <반려 미생물>이라고 우습게 표현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아주 미세한 것부터 광대한 우주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지으신 가장 위대한 분입니다.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이 <대주재여>라고 부르면서 기도를 시작한 배경은 아무리 예루살렘에 빌라도 총독과 헤롯 왕과 이방인들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연합하여 주님을 대적하더라도, 하나님이 최후의 승리자가 되실 것을 고백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시시한 신을 믿는 게 아니라, 대주재이신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당당해야 합니다. 현재의 한국교회 상황이 어렵더라도 주눅 들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뒤에는 대주재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기억하고 당당합시다. 우리는 대주재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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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