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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칼럼] 아쉬움이 없는 세대,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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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게임 중독자였고, 다섯 아이의 아빠, 교회 담임 목사, 나, 이 사역에 깊숙이 들어 가다보니 컴퓨터와 사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아내와 아들 다섯, 모두 초등학생 이하다. 내가 하고 싶은 거 하고 있지만 여전히 나는 외롭다. 특히, 컴퓨터 앞에 오랜 시간, 깊이 몰두하다 현실로 돌아오는 시점에서 느끼는 허전함이 있다. 만약 나에게 가정이 없었다면, 다섯 아이가 없다면 얼마나 공허하고 외롭고 쓸쓸할까? 아마 나이를 먹어갈수록 그것은 더 할 것이리라.
욜로족(You Only Live Once, YOLO), 혼족, N포세대가 만연한 이 시대에, 또한 미래에 그들의 Need는 완벽히 충족될까?
결코 그 만족은 일시적일 수 밖에 없고, 약간의 사고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결국 ‘이건 아닌데...’라는 아쉬움과 세월의 흐름을 안타까워하며 씁쓸함을 느낄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직시하는 순간이 누구에게나 있다. 단지 타이밍이 다를 뿐이다. 히키코모리, 은둔형 외톨이들이 늘어나고 있고, 그들은 그러한 삶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왜? 보고 듣는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본인은 쉽게(?) 결론을 내린다.
그들은 어디로 가야할 것인가? 그들을 위한 공간, 그들을 위한 치료, 그들을 위한 복음이 제시되어야 한다. 아무리 로봇이 발달하고 인공지능이 생활화 되며 급변하는 시대라 할 지라도 힐링에 대한 인류의 갈망은 변함이 없다. 그것도 정신적, 영적 힐링 말이다.
교회는 이러한 힐링에 대해 준비되어야 한다. 교회는 이러한 사회 문제에 대해 희생할 준비를 해야 한다. 그들이 복음이 필요하다고 절실히 알고 있지만 그들 스스로 철저히 교회와 차단하는 그들에게, 교회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하나님의 기관이 되어가고 있다.
1990년 대 pc방 1세대, 청소년들이 교회에서 떠나고 있었지만 교회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2010년 대 말 스마트폰 1세대로 접어 들면서 마치 데칼코마니를 보듯 교회는 답습하고 있다.
교회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 지금까지 쳐 놓은 울타리를 보수할 뿐이다. 양들은 무너진 울타리를 빠져나가면 들어올 길이 없어지는 것을 교회는 인식하지 못하는 듯하다. 그저, 남은 것만 지키는데 급급하다.
교회는 세상의 사회 문제를 책임져야할 하나님의 기관이다. 교회 울타리 넘어 있는 양들을 찾아야 한다. 예수님께서 아흔 아홉 마리 양들을 두고 한 마리를 찾아 나선 것처럼 말이다.
온힐센터(문해룡소장, 010-2818-3927)는 이러한 세대를 위한 나름의 방법을 선택했다. 그것은 중독자들만 모아서 생활하는 공동체다. 이 사역에 함께 기도하고 관심을 가져 줄 기관과 동역자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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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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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법률상식] 합동 교단 사면위원회 설치 운영 언어도단(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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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헌법 어디에도 사면 의식 없고 해벌 의식뿐
-책벌자의 해벌권은 책벌한 원심치리회 밖에 없어
-헌법과 상충되는 상설 위원회 설치 시행은 범죄 행위
필자는 지난 2월 중순 경에 합동 교단에 소속한 P목사가 “총회 기소위원회 상설 조직과 총회 정치부의 상설화는 교회 헌법에 상충되는 것이므로 헌법을 개정하지 않고 총회 결의로는 시행할 수 없는 것 아닌가요?”라는 질의를 받아 답 글을 쓴 바 있다(한국기독신문 제790호, 2017. 2. 18. 참조).
그런데 보다 더 기가 막힌 사건은 제101회 총회가 “7인 위원으로 사면위원회를 설치하기로 가결하다.”(제 101회 총회 결의 및 요람 p.100 참조)라고 결의한 사건이다.
1. 사실 관계
합동 제101회 총회에서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교단 헌법도 외면하면서 총회 사면위원회를 설치한다고 야단법석을 떨면서 대외적으로 망신을 당하고 있다.
1) 제101회 총회가 “7인 위원으로 사면위원회를 설치하기로 가결”한 후 7인 사면위원회는 위원장 김○○ 목사, 부위원장 김○○ 목사, 서기 김○○ 목사, 회계 윤○○ 장로, 총무 김○○ 목사, 부서기 심○○ 장로, 부회계 반○○ 장로 등으로 7인 모두가 임원이 되었고 위원은 한사람도 없는 유별나고 특이한 위원회가 등장하였다.
2)사면위원회 활동 상황
기독신문 제2098호(2017. 3. 28.) p.2의 하단에 “총회 사면위원회 사면 신청 접수 공고”라는 광고 내용에 조직과 업무 규정 제1조-12조를 수록하고 사면 신청 내용에는 사면 대상 : 업무 규정 제6조 “권징과 교리가 잘못 적용되어 억울한 일을 당하였거나 정당한 징계라 할지라도 회개하고 용서와 자비를 구할 때 사면 대상이 된다.”에 해당된다고 생각하시는 분, 사면 신청서 : 소정 약식(첨부서류로는 사면 신청을 증빙할 수 있는 서류), 제출기간 : 2017. 4. 28.(연장될 수 있음), 제출처 : 총회 회관 사면위원회 서기 앞, 2017년 3월 13일,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사면 위원회, 총회장 김○○ / 사면 위원장 김○○
이는 헌법을 짓밟을 뿐 아니라 불법을 저질러 놓고 슬그머니 선심을 쓰는 척 하면서 총회의 불법 행위를 덮으려 하는 꼼수에 다름 아니다.
3) 사면 심사 실시
기독신문 2108호(2017. 6. 13.) p.3에 7월부터 사면 위원회가 사면 신청인 10명 중 “정○○, 주○○, 고○○, 송○○ 목사가 1차 심사 대상자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사면위는 “총회에서 징계를 받은 자에 한해서 심의를 진행키로 했다. 다시 말해 노회에서 징계를 받은 자는 심사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의미이다.”라 하였고 “위원장은 ‘사면위원회에 오해가 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허락하신 직임에 대해 사명감을 갖고 혼돈한 총회를 바로 세우는 일을 잘 감당하자’고 위원들을 격려했다”고 하였다.
4) 사면 위원장의 괴변
기독신문 제2105호(2017. 5. 23.) p.25에 “사면위원회 설치 운영 법적 하자 없다”는 제하의 특별 기고를 보도했다.
그 내용은 “사면 정신 담은 합법적 총회 결의 … 성실 활동 의무 크다”는 머리기사로 “교권주의에 졸속 처리된 억울한 사건 제대로 살리는 것이 목적 … 합법적 절차 밟아 활동, 제102회 총회서 총대들의 동의 얻을 것”이라는 소제목 하에 ①사면위원회 설치에 대한 헌의 안은 합법적인 절차로 정치부에 보냈다. ②정치부가 사면위원회 설치 안을 본회에 내어 놓은 것은 절차상 하자가 없다. ③임원회가 관여하거나 위원회가 활동하는 것은 문제가 전혀 없다. ④총회 보고 시에 사면위원회 활동 결과와 운영 규정까지 보고사항이 된다. ⑤법을 주장하면서 법을 어기는 자가당착적인 모순을 범하면 안 된다. ⑥권징조례에 사면이 명시되지 않았지만 사면한 전례는 없는가? ⑦임원회나 사면위원회가 종교개혁 500주년을 훼손한 일이 없다. ⑧결론에서 “총회 사면위원회 운영은 절차나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 그리고 합법적인 절차에 의하여 당연한 치리를 받은 사람을 사면위원회가 전횡(專橫)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총회 치리(노회 치리 제외)에 한하여 교권적 권위주의나 합법적인 절차가 없이 졸속 처리된 억울한 사건에 대하여 살필 것이다. 또한 사면위원회가 사면을 확정하는 것이 아니라 총회장에게 보고하고 제102회 총회에서 총대들의 동의를 얻어 원만한 공감의 분위기가 될 때 선포하는 것이므로 졸속 처리될 염려는 전혀 없다”라고 하였다.
필자는 위원장의 장문의 전단 기사를 3번이나 있어 보았으나 일고의 가치도 없는 괴변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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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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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말씀] 관계의 축복(딤후4장9~1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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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평생 수많은 만남을 통해 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우리가 엮어나가는 수많은 관계는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무인도에서 살아가지 않는 한 여러 가지 다양한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야 한다면 우리는 관계의 축복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인 나를 바로 세워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 주시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바라볼 때 우리는 아름다운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다윗과 요나단의 만남은 다윗이 사울 왕의 마음의 안정을 위해 수금을 타면서 부터입니다. 왕궁에서 함께 지내며 둘은 우정을 키워나갑니다. 전쟁에서 매번 승리하는 다윗의 인기가 높아짐으로써 자신의 왕좌가 위태로울 수 있음에도 요나단은 다윗을 죽이려고 혈안이 된 사울의 손아귀에서 그를 구해줍니다. 다윗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뒷날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요나단이 사망했음을 듣게 된 다윗은 그를 몹시 그리워하며 깊은 슬픔에 잠기어 그를 위해 노래합니다.
아브라함과 그의 종 엘리에셀의 관계는 어떠했을까요? 아브라함은 늙도록 자식이 없자 그의 종 엘리에셀을 후계자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라로 아들을 얻게 될 것을 약속하십니다. 이삭이 장가갈 나이가 지나자 아브라함은 며느리를 얻기 위해 그와 오랫동안 함께 한 종 엘리에셀을 자신의 고향으로 보냅니다. 그만큼 엘리에셀은 그가 신뢰하는 자였습니다. 이삭이 없다면 주인의 모든 것이 자신의 차지가 되었을 것을 그는 압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정확히 알았고 기도함으로써 나아갑니다.
나오미와 룻의 관계는 어려운 관계임에도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남편이 죽고 두 며느리 오르바와 룻을 맞이하면서 살아 갈만 하자 두 아들마저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젊은 며느리들의 새로운 출발을 위해 자신을 떠날 것을 귄유합니다. 룻은 어머님의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 되신다며 어머님과 함께 어디든 가겠노라 합니다. 이삭으로 목숨을 연명하며 지내던 가운데 룻이 가는 밭의 주인이 자신의 친족 보아스임을 알고 룻이 행할 것을 가르쳐 줍니다. 시어머니의 말씀을 순종한 룻으로 인해 보아스를 데릴사위로 맞이하면서 집안은 다시 일어나게 됩니다. 비록 이방 여인이었으나 시어머니가 섬기는 하나님을 믿은 룻이었기에 그녀의 후손으로 다윗 왕과 예수님이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바나바와 바울은 위대한 만남을 통해 위대한 전도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바나바의 조카 마가는 수행원으로 동참합니다.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마가는 여행 중에 돌아가 버립니다. 전도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후 그들이 다시 여행을 떠나고자 했을 때 마가를 데리고 가고자 한 바나바로 인해 둘은 심히 다투게 됩니다. 의견이 좁혀지지 않고 대립되자 전도팀은 두 개로 나눠지게 됩니다. 훗날 마가는 바나바와 함께 다니며 유익하고 훌륭한 사람으로 변화되었고 바울이 가택연금 당하여 갇혀 있을 때 찾아와 그를 위로하였습니다. 지난날 바울의 질책이 그를 더욱 유익한 자로 만들어 갔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관계 속에서 우리를 더욱 성장시켜 나가십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의 축복을 통해 우리의 삶은 더욱 풍요롭습니다. 각박한 우리 삶에 오아시스처럼 소중합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먼저 바로 세우고 축복의 통로가 되어 우리의 수많은 관계 가운데 사역을 사람을 사명을 감당하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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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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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칼럼] 40년 전의 휴전선 추억(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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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아가는 한 평생에서 〈누구를, 어떤 사람을 만나는가?〉 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사건이다. 〈군목 軍牧〉으로 군에 재직하면서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는 인생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줄 곧 학생의 신분으로만 살아 왔다.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중, 고, 대학 그리고 신학대학원까지 만19년 동안 한 해도 쉬지 않고 학교에서만 줄 곧 지내왔다. 그리고 주말에는 교회에서 〈교역자 ; 전도사, 강도사〉의 신분을 가지고 ‘성경’을 가르치기만 하였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만나는 사람, 교제하는 사람은 언제나 같은 그리스도인들이었다. 그러다가 모든 신학의 과정을 다 필하자 군종장교 훈련을 받고서 장교로 임관 되어(육군 중위) 군대 사회로 들어 온 것이다.
그러므로 내게 있어서 〈군대 사회〉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경험하고 공부하게 되는 첫 번째 무대가 된 것이다. 〈사람을 만나고, 사람을 겪어 보면서〉 인생을 공부하는 것은 학교에서 학문을 공부하는 것 못지않게 소중한 의미와 가치가 있었다. 먼저 우리 부대 지휘관인 신 아무개 대령을 추억한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위에서 출발하여 대한민국 군대의 대령까지 진급하였다는 것은 〈군인으로서〉 성공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별을 다는 장군이 되어야 성공한 것으로 보겠지만 군에서 장교로 봉직 해 본 사람들은 ‘대령’으로 진급한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수고와 인내, 연단과 치열한 경쟁 그리고 엄격한 자기 관리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귀하게 여기고 높이 평가하는 것이다. 거기다가 대령 계급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연대장〉 보직을 받아 3천명의 장병을 책임지고 지휘 통솔한다는 것은 남자로서 꿈꾸어 볼 만한 귀중한 일이다. 우리 연대장은 몇 가지 면에서 군목인 나의 마음에 감동을 남겨 주었는데 첫째로 그 분은 말과 행동(言行)이 매우 신사적이었다. 부하 장병들을 아주 인격적으로 대하는 모습을 만 2년 동안 지켜 볼 수 있었다.
군 지휘관도 저렇게 〈신사적으로〉 지휘를 할 수 있구나! 〈신사적으로〉 지휘를 해도 우수한 군대가 될 수 있구나! 나는 그런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렇다면 하물며 나는 목회자로서 〈목회 현장에서〉 〈신사적인 목회〉를 해야 마땅할 것이라는 깨달음과 각오를 단단히 가지게 되었다. 申 연대장은 꾸준히 공부하는 지휘관 이었다. 틈만 나면 연대장 실에서 독서를 한다. 군종업무 보고를 위해 연대장 실에 들어가면 책을 주제로 자주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지휘관의 그 모습이 아름답게 보여져 서울로 출장 나가는 길에 종종 〈종로서적〉에 들러 신간 서적을 구입하여 선물 하였다. 인품과 실력과 지휘력, 이 삼박자를 갖춘 연대장 신 대령 같은 지휘관이 우리 군대에 많이 건재하고 있으므로 나는 대한민국 군대는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 하더라도 우수하고 강한 군사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믿는다. 여기다가 군종 장교(군목)들이 연대급 이상의 부대에 배치 돼 영적 파숫꾼의 사명을 신실하게 감당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금상첨화 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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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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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교수의 부산기독교이야기 10] 베어드의 사랑방(사랑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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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1년 9월 초 부산으로 이주한 베어드는 일단 초량 왜관의 하디 의사 집에 거주하면서 부산선교를 시작하게 되는데, 베어드의 선교방식은 순회(巡行) 전도, 사랑방 전도, 문서전도, 그리고 교육선교로 정리될 수 있다. ‘사랑방 전도’는 베어드가 부산에서 시작한 독특한 전도방식이었지만 이것이 베어드의 고유한 선교방식으로 볼 수는 없다. 이미 서울에서 언더우드가 1891년 2월 27일 북장로교선교부 총무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에서 사랑채 건축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곳에서의 복음전도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사랑방을 이용한 전도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사랑방 전도란 선교사의 거주지 인접한 곳에 별채를 건축하고 한국인들의 자유로운 출입과 방문, 그리고 담화의 기회를 제공하고 이를 접촉점으로 전도하는 방식이다.
리차드 베어드는 그의 아버지의 사랑방 사역의 의미를 이렇게 정리한다. “사랑방은 한국인들의 독특한 제도이다. 그것은 초창기 복음전파에 있어 중대한 요인이었다. 모든 한국 양반들은 손님들이 머무는 곳이며 ‘남성들의 구역’이라 할 수 있는 사랑방을 갖고 있었다. ... 신문이나 다른 뉴스를 전하는 다른 매체가 없던 때에 사랑방 제도는 개인을 통하여 소문을 퍼트리는 통로가 되었고, 사랑방을 통해 새로운 소식들이 전 지역에 놀랍도록 빠르게 전파되었다.” 사랑방이 대화와 정보교환의 장이었다는 지적이다. 그는 이어서, “초기 선교사들은 모두 사랑방을 갖고 있었다. 모든 선교지부 건물에는 사랑방을 갖고 있었는데, 선교사 숙소와는 떨어져 있었으나 길거리 입구에서 가까이 있었다. 이곳에 선교사들이나 한국인 조사들은 복음에 관심을 보이는 방문객이나 탐문자들을 만나기 위해 항상 머물로 있었다. 베어드의 집이 완공된 후선교회가 요청한 첫 번째 사업이 사랑방 건축을 위한 기금 마련이었다. 사랑방은 베어드가 지역답사여행을 하지 않을 때 모든 활동의 중심지였다.”
리타드 베어드의 설명처럼 사랑방은 선교사들이 피선교지 사람들과 교류하고 접촉하는 공간이었다. 서울의 언더우드와 거의 동시적으로 베어드는 사랑방 전도를 구상했고, 자신의 거주지와 인접한 곳에 별도의 건물 곧 사랑채를 건축했다. 자신의 주택은 1892년 6월초 완공되었는데, 이때부터 사랑방 혹은 사랑채를 생각했다. 그러다가 1893년 2월 10일, 베어드는 북장로교선교본부에 사랑채 건축을 위한 자금을 요청하였고, 4개월 후 건축이 완성된다. 사랑채는 1893년 5월말 완공했다. 규모가 작은 한옥 주택이었기에 오랜 시일이 요구되지 않았다.
이 사랑채에서 처음 예배를 드렸을 때가 1893년 6월 4일 주일이었다. 이날 일기에서 베어드는 이렇게 썼다. “처음으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사랑방에 모였다. 어학선생들과 하인들을 제외하고는 오직 한 사람의 남자가 예배에 참석했다. 어학선생은 서서방과 고서방과 그의 형제, 안서방, 하인들로는 용규, 세기, 인수, 그리고 게일선교사의 하인인 김용기가 참석했다. 방문한 이는 손씨인데, 그는 과거에 우리 예배에 참석했던 인물이다. 그래서 참석한 한국인 총수는 9명이다. 서 씨는 성경의 몇 구절을 설명했다. 그러나 분명한 요지가 없어서 염려스럽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집을 바치는 헌신의 기도를 드렸다.” 여기서 말하는 서서방은 서경조를, 고서방은 고학윤을 의미하고 용규는 황해도 출신인데, 2년반동은 베어드 집의 고용인이었다. 1893-94년 부산선교부 보고에서 배위량은 이렇게 썼다. “일 년 내내 우리는 사랑채에서 매일 아침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사랑채에 오르간이 설치된 이후 예배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아내는 가능할 때가 되면 언제나 찬양을 인도하기 위해 참석했습니다. 수개월 동안 남자만이 아니라 여성도 예배에 참석했는데, 서로 따로 분리된 방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최근 이 예배에서 그들과 함께 요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을 자세히 공부하였고, 지금은 다시 사도행전을 읽고 있습니다. ... 정기적인 출석율은 10-20명 이내이고 가끔식 집 전체를 가득 매우는 때도 더러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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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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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연구] 기도하지 말라 하실 때(예레미야 7장 1-1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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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대책을 강구합니다. 그 대책이 유효하면 무사히 곤경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백약이 무효라는 말처럼 그 어떤 대책도 먹히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아직 마지막 한 가지 방법이 남아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최후의 수단이요, 동시에 가장 효과적인 수단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 마음을 무척이나 답답하게 만듭니다. 그 이유는 최후의 수단인 기도마저 아무 쓸모가 없게 되는 것을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기도마저 소용없다(?)는 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요? 하나님께서 갑자기 무능해지신 것입니까? 갑자기 기도를 듣지 못하시게 된 것인가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듣지 않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에 대해 우리에게 충격적인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은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 멸망해가던 남 왕국 유다 백성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 16절을 보니 <그런즉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그들을 위하여 부르짖어 구하지 말라 내게 간구하지 말라 내가 네게서 듣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범부의 기도를 듣지 않겠다고 하신 게 아니라, 예레미야의 기도를 듣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도대체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에 대해서 무척 화가 나셨기 때문입니다. 유다 백성들은 자신들이야말로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부했는데, 그럴 만도 했습니다. 그들은 늘 예배하러 성전에 드나들었습니다. 2절을 보면 <여호와께 예배하러 이 문으로 들어가는 유다 사람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성실한 예배자였습니다. 또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성전이 있었습니다.(4절) 게다가 10절의 말씀처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라고 고백할 정도로 구원의 확신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믿음의 노력과 확신들이 다 소용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이들을 위해 기도하지 말라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진노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들이 비록 예배자요,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삶은 전혀 하나님의 자녀답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가나안에 계속 평안하게 살 수 있는 비결은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는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3절) <이웃들 사이에 정의를 행하며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아니하며 무죄한 자의 피를 이곳에서 흘리지 아니하며 다른 신들 뒤를 따라 화를 자초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이곳에 살게 하리니>라고 하셨습니다. 결국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은혜라도 얻으려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도 반드시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도 늘 예배하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들은 몰라도 우리만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것이라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기도하지 말라 하신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정말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자리에 떨어지지 않으려면 삶이 뒤따르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천국은 입술로 주님을 부르는 것만으로 들어가는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는 나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7장 21절에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하셨습니다.
6.25전쟁을 전후해서 많은 구국기도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것일까요? 기도회를 열기 전에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살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부디 이 나라와 민족을 향한 우리의 기도가 허공에 맴돌다 사라지지 않길 열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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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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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칼럼] 분노사회와 한국교회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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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어느 신문사의 요청으로 인터뷰를 했다. 내가 경험한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고 했다. 당시 나는 광주신학교 신학생이었다. 그래서 내가 목격하고 느꼈던 사실을 있는 그대로 얘기했다. 교 회에서 설교할 때도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몇 차례나 간증했고 ‘꽃씨 심는 남자’라는 에세이집에도 썼다. 그런데 기사에 달린 몇몇 댓글을 보니 ‘시대가 바뀌긴 바뀌었나 보다. 소목사가 언제부터 이런 이야기를 했는가’ ‘진작 그런 이야기를 하지 그랬냐’ 등 부정적 어투와 빈정거림이 담겨 있었다. ‘이렇게 사람을 왜곡하고 공격할 수도 있구나’ 싶어 안타까웠다. 현 시대를 규정하는 단어들 중 하나가 ‘분노사회’라는 말이다. 정치지도자들 뿐만 아니라 학계, 문화예술계 등도 ‘ 분노하라’고 외친다. 지난겨울 대통령 탄핵 이후 촛불과 태극기로 나뉘어 얼마나 많은 분노와 분노가 충돌했는가. 다행히 새로운 대통령을 중심으로 신속하게 안정과 평화를 찾아가는 모습은 감사할 일이다. 우리는 사회의 불의와 부정, 모순, 불평등에 대해 분노하고 싸워야 한다.
그러나 반대를 위한 반대, 분노를 위한 분노가 되면 사회적 공멸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이런 현상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해보면 선택적 지각과 확증편향성이 그 원인이다. 주변에서 어떤 이야기를 해도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만 흡수하고 보고 싶은 대로만 보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이치에 맞는 이야기를 해도 삐딱하게 보고 왜곡된 시각으로만 판단하며 공격한다. 이런 사람은 자기의 편협한 패러다임에 갇혀 호미질만 하는 ‘호미적 사고’ 만 한다. 그러나 이젠 하늘을 나는 드론과 같은 ‘드론적 사고’를 하며 폭넓게, 멀리 볼 수 있어야 한다. 이 시대 인터넷상에서는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익명으로 상대를 조롱하고 끌어내리며 갖은 모욕으로 인격살인을 한다. 심지어 이를 즐기며 낙으로 여긴다. 이것이 우리의 비극이다. 다른 사람들을 서슴없이 비난하고 조소하는 것은 대부분 자기 안에 있는 상처와 콤플렉스 때문이다. 어떤 부족함 혹은 과도하게 억압된 트라우마가 자기 안에서 해결되지 못하고 부정적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분노와 공격의 표출이 정의의 이름으로 나타난 다는 것이다. 현대인은 누구나 ‘정의의 태양’만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누구나 태양과 광채만 원하며 정의만 부르짖는다면 그 정의의 폭양 아래 다 타서 말라 죽어버릴 것이다. 이런 때에 한국교회는 먼저 분노사회의 화염 속에 그늘이 돼줘야 한다. 하나님께서 광야 길을 걷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름기둥과 그늘이 돼주신 것처럼 끝까지 품고 축복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들과 여러 방법으로 소통하려 노력하고 인내하며 설득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한국교회는 정치적 성향이나 노선에 편승하거나 줄을 서선 안 된다. 한국교회의 코드나 공익에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고 해서 정치적 파트너가 돼서도 안 된다. 한국교회는 모든 진영과 소통하고 아우르며 품을 수 있어야 한다. 분노의 시대와 사회를 치료하고 양극의 진영을 통합해야 한다. 이것이 한국교회가 안고 있는 시대적 책임이요 사명이다. 진리를 지키는 영적 전투를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정체성과 본질을 확고하게 지키면서 모든 진영과 소통하고 그들을 아우름으로써 분노사회를 화해사회로 바꾸자는 것이다. 검투사와 정원사는 똑같이 손에 칼을 들고 있지만 검투사는 사람을 죽이고 정원사는 꽃밭을 가꾼다. 한국교회 역시 진리를 지키고 영적 전투를 할 때는 검투사의 심장을 가져야 하지만 분노를 화해로 바꾸기 위해서는 정원사의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분노로 찢긴 사회를 하나로 통합하는 한국교회의 통합과 화해의 리더십이 절실히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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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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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생각해 봅시다] 널리 알려지지 않은 미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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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배려와 따뜻한 말 한마디가
세상을 살맛나게 만든다고 생각해
한 시골학생이 고등학교 3년 내내 자취를 했다. 월말쯤 집에서 보내준 돈이 떨어지면 라면으로 저녁을 해결했다. 그러다 허기지면 학교 옆에 있는 ‘밥할매집’에 가서 밥을 사먹었다. 거기는 언제나 가마솥에 누룽지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할머니는 “오늘도 밥을 태워 누룽지가 많다. 모두 밥 먹고 배가 안차거든 누룽지 이것 퍼다가 실컷 먹어라”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 학생은 돈을 아끼기 위해 친구와 둘이 달랑 밥 한 그릇 사먹고 누룽지로 배를 채웠다. 그런데 하루는 깜짝 놀랐다. 할머니가 너무 늙은 탓인지 거스름돈을 원래 드린 돈보다 더 많이 주신다. ‘돈도 없는데 잘 됐다. 한번만 눈감고 넘어가자. 할머니는 돈이 많으니까’ 이렇게 생각하며 받아 챙겼다. 할머니의 서툰 계산은 계속되었다. 학생은 당연한 것처럼 잔돈을 받아 주머니에 넣었다. 그렇게 하기를 몇 달 계속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밥할매집’ 셔터가 내려졌고 올라가지 않는다. 며칠 후 조회시간에 선생님이 “모두 눈을 감아라. 밥할머니집에서 음식 먹고 거스름돈을 더 받은 학생은 손들어” 순간 이 학생은 가슴이 뜨끔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절반 이상이 손을 들고 있다. 선생님이 침울한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밥집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그가 그의 아들에게 남긴 유언장에 의하면 그의 전 재산을 학교장학금으로 쓰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의 아들한테 들은 얘기인데 거스름돈은 돈이 없어 보이는 학생에게는 일부러 더 주었다고 하더라. 그리고 새벽에 일어나 그날 끓일 누룽지를 만들기 위해 밥을 일부러 태우셨다고 하더구나”
그날 공부를 마치고 교문을 나섰는데 이날은 ‘밥할매집’ 간판이 유난히 크게 눈에 들어왔다. 이 학생은 닫힌 셔터 앞에서 그만 주저앉아 엉엉 울고 말았다. “할머니 할머니 할머니께서 만드신 누룽지는 세상에서 최고였습니다. 할머니...”
이어 한 사과장사(행상)에게 “이것 얼마죠?” “천원에 두 개 드립니다” 손님이 삼천 원을 내고 작고 못생긴 것만 여섯 개를 골라 담아간다. 며칠 후 그 손님이 다시 와서 전과 같이 상처 있는 것, 못생긴 것만 골라 담아간다. 세 번째 와서도 전과 같이 하기에 “손님, 이왕이면 좋은 것을 고르시지요” 손님이 빙그레 웃으면서 “그래야만 남은 사과가 잘 팔리지 않겠습니까. 저도 어렵게 살기 때문에 힘들게 사는 사람의 사정을 어느 정도는 압니다. 힘내세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장사의 눈에 이슬이 맺혔다. 작은 배려와 따뜻한 말 한마디가 세상을 살맛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독자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지요. 함께 생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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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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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교수의 부산기독교이야기9] 베어드의 서양식 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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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드는 1891년 1월 29일 부산에 도착하였고, 제물포를 거쳐(2.1) 서울에 도착한 날은 2월 2일이었다. 그는 곧장 미국북장로교연례회의(2.3-7)에 참석했는데, 이 회의에서 베어드는 부산지부개척자로 임명되었다. 서울에서 독신이었던 마펫의 집에 거주 하던 베어드는 1891년 2월 25일에는 부산지부 개척을 위한 부지 구입차 부산으로 왔으나 실패하고 상경했고, 그해 9월 초 베어드 부부는 다시 부산으로 와 선교부지 구입을 위해 노력하던 중 24일에는 미국공사관의 허드(Augustine Heard)의 도움으로 영선현의 일본인 거주지의 땅을 매입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앞에서 언급하였다. 선교부지를 확보한 베어드는 인천과 ㅇ리본에서 수송한 자재를 가지고 중국인 건축업자와 인천에서 데려온 업자들에게 건축공사를 맡겼다. 그 결과 1892년 1월 13일에는 지붕을 얹고, 2월 5일에는 지붕에 기와를 얹었다. 아직 완성되지 못했으나 4월 15일에는 이곳으로 이주했다. 선교관이 완성된 때는 그해 5월 말 혹은 6월 초였다. 건축과정에 어려움이 많았고 계약을 위반하고 공사기일도 지키지 않는 등 곡절이 많았고, 건축인부들은 행패를 부리기까지 했다. 어렵게 지어진 이 주택이 부산지방 두 번째 서양식 건물이었다. 이 주택의 외형은 어떠했을까? 베어드의 아들 리차드 베어드는 이렇게 썼다. “안타까운 사실은 베어드 박사의 부산 주택 사진이나 그림 혹은 건물의 도면이 보존되지 못한 점이다.”라고 (William Baird of Korea, A Profile, 23). 그런데 놀랍게도 125년이 지난 작년 연말 이 주택 사진이 발견되었다. 이 사진은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의사학 교실의 박형우 교수가 발굴했다.
이 주택은 부산을 오가는 외국인 여행객들의 임시 거주지였다. 일본을 거쳐 부산에 도착하여 서울로 가기 전에 베어드의 이 집에서 몇일을 묵었고, 서울을 떠나 부산으로 어면 어김없이 이 집을 방문한 후 다시 기운을 차리고 일본으로 떠났다. 말하자면 외국인이나 선교사들이 묵을 수 있는 기착지였다. 이 주택이 건축되고 꼭 한 달이 지난 후 7월 5일 베어드의 첫 아이 낸시 로즈(Nancy Rose)가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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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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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칼럼] 환경을 생각하는 그리스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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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YWCA 자문위원들과 함께 통영의 연대도를 방문했다. 약 80명 정도가 사는 이 섬은, 구석구석을 참 아름답게 꾸며서 볼거리도 많았지만, 무엇보다 화석에너지가 전혀 없이 오직 자연에너지로 자급자족하는 친환경마을로 잘 알려졌다. 특별히 폐교를 개조해서 만든 ‘연대에코아일랜드 체험센터’는 아주 인상적이었다. 자전거, 운동기구등이 모두 전기를 생산하도록 만들어져 있고, 태양의 반사광을 이용해 오징어 등 음식을 구워먹을 수 있게 했다.
더욱 놀란 것은 센터 내부 시설의 냉난방을 자연에너지로 사용하는 것이었다. 우선 건물 자체가 에너지를 절약하는 패시브하우스로 건축되어 벽을 아주 두껍게 하고 단열재를 잘 써서 외부의 차거나 더운 공기가 내부로 유입되지 못하게 지어져 있었다. 천장에서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지하 100m를 파서 그곳의 약 16~18℃ 정도 되는 공기를 끌어올려 여름에는 냉방으로 겨울에는 난방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핵이나 화석에너지를 대체할 수 있는 자연 에너지 개발이 정말 가능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환경의식이 높은 유럽에는 이런 에코 마을들이 많이 형성되어 있다. 탄소제로 도시로 불리우는 독일 남부 프라이부르그에 위치한 보봉(Vauban)마을이 가장 대표적이다. 5천명정도가 사는 이 마을은 각 집을 패시브하우스로 짓고 태양광을 설치하여, 에너지사용을 최대한도로 줄이면서, 전기를 자체 생산하여 외부에 팔아 수익을 올리고 있다.
지금 세계 곳곳은 환경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미래에 반드시 오게 될 환경재앙에 대한 염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우리 역시 과거와 달리 공기와 땅과 물 모두가 오염이 되면서, 숨쉬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식수와 식자재 문제에 예민해지고 지구가 더워지는 현상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환경학자들은 앞으로 지구온난화현상은 가속화될 것이며, 이로 인해 우리가 속한 동아시아의 경우 21세기 말에는 평균기온이 2.4℃ 상승하고 강수량은 7% 증가할 것이라고 한다. 이런 기후변화로 인하여 홍수로 인한 사회기반시설 파괴, 가뭄으로 인한 물과 식량 부족, 폭염으로 인한 피해가 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2008년 영국의 경제·환경·에너지 전문가 10명으로 구성된 '그린 뉴딜 그룹'은 오늘날 지구 온난화와 같은 위기를 뚫고 인류가 생존하려면 75년 전 대공황에서 세계경제를 구한 미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보다 급진적이고 포괄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들이 제시한 해법의 핵심이 되는 것은, 화석연료를 줄이고, 재생과 자연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바람들이 확산되어 2015년 195개국이 모여, 온실가스배출을 감소하여 지구온도가 산업혁명 이전보다 2도 이상 높아지지 않도록 하자는 파리 협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온실가스배출량이 많은 미국의 트럼프가 자국이익을 앞세우고 탈퇴를 선언하면서 환경을 위한 인류의 노력은 다시금 어려움을 맞게 되었다. 정말 무책임한 일이다.
환경문제는 지금 이 환경 속에서 사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후손을 위한 문제이다. 우리의 편리와 욕심을 앞세우면서 자연을 오염시키고, 자원을 낭비할 때에, 그것은 우리의 자녀, 손자, 후손들을 비참한 환경 속으로 밀어 넣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이 우연히 생겨난 ‘자연물’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손으로 창조하신 ‘창조물’임을 고백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하나님은 세상만물을 만드신 뒤에 “좋았더라”말씀하시며 가장 아름답고 완벽한 창조의 세계임을 선포하셨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의 형상을 따라 만든 우리 인간에게 이 모든 창조세계를 보살피고 돌보는 일을 위탁하셨다. 이것은 우리의 소중한 사명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이 환경위기의 시대에 어느 누구보다도 환경에 대한 관심과 책임의식을 갖고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보존해가기 위해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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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