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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학교를 살린다] “교사가 부모다.”
    필자가 강의를 하러 갈 때면 교회마다 같은 질문을 받곤 한다. “교회학교를 살리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요?” 기독교교육학을 전공하고 교회교육의 현장을 경험을 했던 필자의 대답은 늘 한결같다. 교사다. 좋은 교사가 있어야 한다. 물론 좋은 교역자도 있어야 하고, 좋은 교회시설도 반드시 필요하지만 결정적인 요소로서 좋은 교사들이 많이 있을 때, 교회학교는 부흥한다. 그렇다면 좋은 교사란 어떤 사람일까? 지난 해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기독교교육과 1학년 새내기들과 교육심리학 수업을 함께 할 때의 일이다. 수업 중 좋은 교사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당시 우리 클래스에서는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는 조앤 롤링의 베스트셀러 소설 해리포터 시리즈에 등장하는 교사들을 분석하고 어떤 교사가 과연 좋은 교사인지 연구해서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여러 신입생들의 풋풋하고 재기발랄한 발표가 이어졌다. 그런데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맥고나걸 교수나 루핀 교수처럼 실력 있고 잘 가르치는 여러 교사들을 제치고 거인 해그리드가 가장 좋은 교사로 평가받은 것이다. 그 이유는 해그리드가 비록 실력은 떨어질지 모르나 주인공 해리 포터를 자식처럼 사랑하고 격려하고 위로하는 등 주인공의 인생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얻은 것이었다. 다른 여타의 과목들과는 달리 기독교교육을 수행하는 교사에게 가장 필요한 조건은 ‘사랑’이라는 사실을 이제 막 기독교교육학을 시작한 학부 1학년 학생들도 이미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필자는 매우 안도감을 느꼈다. 일반적으로 교사라 함은 지식과 방법론 등 전문성을 갖춘 프로페셔널한 사람을 떠올린다. 그리고 실제로 사회는 이러한 교사를 좋은 교사라고 지칭한다. 그러나 교회학교 교사는 어떠한가? 교회학교 교사들은 전문가라기보다는 아마추어이다. 그러나 아마추어란 말의 어원이 ‘사랑’이듯이 아마추어 교사들은 열정과 사랑이라는 측면에서는 전문가를 훨씬 뛰어넘는다. 어린 시절 나를 가르쳐주셨던 선생님들은 일주일 내내 직장생활을 하시고도 주일 아침이면 어김없이 성경공부 자료를 가지고 나타나셨다. 뿐만 아니라 주중에는 전화도 주시고, 때로는 선물이나 간식까지 자비로 사주기도 하셨다. 여름성경학교를 위해 일 년 치 휴가를 다 쏟기도 하시고, 무더운 여름 비 오듯 땀을 흘리시며 함께 찬양과 율동을 하시는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수많은 교회의 중직자들이 교회학교 선생님들의 손에 자라서 지금도 교회에 기둥처럼 쓰임 받고 있지 않은가? 실제로 교회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내 인생의 선생님’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좋은 교사에 대한 기억들은 그분들이 가르쳐주신 내용이 아니라 그분들이 베풀어주신 사랑과 관심이었다. 우리는 아이를 입양할 때 ‘가슴으로 낳은 아이’라는 표현을 하곤 한다. 신앙교육 또한 입양과도 같다. 교회학교 교사는 부모이며 교회학교 학생은 가슴으로 낳은 내 아이이다. 예전에는 믿지 않는 가정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았고, 믿는 가정일지라도 부모님이 신앙에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다음세대들이 교회학교 교사들의 헌신적인 사랑과 가르침으로 신앙인으로 바르게 자라게 되었다. 물론 가정에서 철저한 신앙교육이 수행되면 참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라도 절망할 필요는 없다. 교회학교 교사들이 신앙의 멘토가 되어서 반 아이들을 ‘가슴으로 낳은 아이’로 여기고 돌보아줄 때, 교회학교는 스마트폰이나 게임이 줄 수 없는, 재미를 뛰어넘는 사랑과 감동으로 가득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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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5-29
  • [교회법률상식] 제101회 총회 재판국의 현상을 진단한다(1)
    -상소 건의 재판은 반드시 하회 서기가 보낸 서류로 재판해야 -상소 건은 하회가 재판한 사실이 없으면 성립되지 않아 모 신문사가 보도한 기사 내용들을 통하여 오랫동안 말만 무성했던 합동 총회 재판국의 현상을 진단함으로 총회의 개혁을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 이유인즉 총회 재판국이 헌법대로 재판을 하지 않으면 어떤 방법으로도 교단의 개혁은 요원하고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1. 사실 관계 합동 교단 제101회 총회 재판국은 “김제노회 하○○ 씨 외 1인의 김제노회 백○○ 씨에 대한 상소” 건을 재판했다고 하면서 그 “판결문”을 일개 상비부장에 불과한 총회 재판국장의 명의로 치리회장인 김제노회장을 수신인으로 하여 아래와 같이 하달하였다. “문서 번호 : 본부 제101-866호, 시행 일자 : 주후 2017. 4. 21. 수신 : 김제노회장, 제목 : 총회 재판국 판결문 교부 (첨부 : 판결문) 판결문 (김제노회 원평교회 하○○ 씨 외 1인의 김제노회 백○○ 씨에 대한 상소) 1. 김제노회는 피상소인 백○○ 씨의 목사직을 면직하고 출교하라. 2. 김제노회가 이를 순종하지 아니 하거나 부주의로 처결하지 않을 시는 총회가 직권으로 주문 1행대로 처결하고 김제노회의 총대권을 3년간 중지토록 한다. 주후 2017년 4월 20일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재판국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재판국장 직인) 재판국장 윤○○ (인) 서기 배○○ (인)”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김제노회는 하○○ 씨 외 1인이 김제노회 백○○ 씨에 대한 고소장에 대하여 김제노회는 노회를 소집하여 재판국을 설치하려고 토의하는 중에 재판국을 설치하지 않고 고소장을 반려하였는데 본 건 고소인들은 총회에 고소장을 제출하였고, 총회가 파한 후에 하회가 재판도 하지 아니한 사건을 제101회 총회 파회 시에 없어진 헌의부(아무리 총회 결의 운운해도 헌법 권징 조례 제134조와 상충되므로 총회 결의는 시행할 수 없다.)가 재판국으로 보낸 것을 총회 재판국은 제101회 총회의 위탁을 받지도 않은 사건이요 재판할 수도 없는 사건에 대하여 재판을 했다고 하면서 판결문을 작성하였다. 보다 더 엄청난 총회 재판국의 부패 현상은 재판국 내부의 금품수수에 관계되는 전화 통화 내용으로서 다음은 이○○ 목사와 김제노회의 증경 노회장인 김○○ 목사와의 대화 중 요약된 내용은 아래와 같다. “여보세요, 예예 이○○ 목사님 맞으시지요? 나 김○○ 목사거든요 원평교회 목사님을 설득했어요. 그러니까 하겠다고 말하더라고요. 얼마 선을 하면 될까 하는 것을 목사님 지도를 받고 싶어요, 저는 재판국원을 하면서 정치의 흐름을 압니다. 국장님과 서기는 아무리 어려워도 영향력이 있어요. 국장하고 서기에게 전화를 걸어가지고 만나자면 안 만날 거예요. 어디냐고 물어서 직접 만나세요. 보통 국장하고 서기는 반값을 주셔야 합니다. 최저로 이야기하면 3 정도는 생각해야 할 거예요., 도시 교회 같으면 5천 이상해야 할 텐데 여기는 농촌이라 2천정도 이렇게 말을 해 보았어요., 예예 고 선에서 국장을 직접 만나서 하나를 딱 내 놓으세요. 딱 밀어버리세요., 무슨 말입니까?, 하나, 아아아아, 천, 예 알겠습니다., 나머지는 나중에 쓰고 수표를 주면 안 됩니다. 현금으로 딱 내 놓으시고 죄는 주시되 이 사람이 이 곳에서 근신하면서 일을 하게 해 주세요 그러면 감을 잡습니다. 그 사람이 우리에게 정치를 합니다. 윤○○ 씨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내가 또 알아서 할게요, 배○○ 목사에게는 어떻게?, 그것은 나중에 하고요., 예예 알겠습니다., 우리 소위원들이 5명 아닙니까? 그들에게도 교통비라도 쓰세요. 하고 20만원씩이라도 돌리면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윤○○한테 먼저 추라이하고 그리고 소위원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예예 감사해요,” 이상과 같은 녹음 파일이 필자에게도 전달이 되었으니 정치권에도 이미 알려졌으리라고 짐작이 된다. 위의 전화 내용대로 금품 수수에 관한 사실 여부에 관계없이 어떤 방법으로든지 본 건은 철저히 조사 처리할 대상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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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5-29
  • [중독칼럼] 짝퉁을 명품보다 더 값비싼 댓가를 치르는 세대
    지난 칼럼 내용 중 ‘게임은 많은 시간을 빼앗기는 것을 넘어서서, 이상하리만큼 한국에서 현질(현금을 지르다의 준말)을 유도하여 엄청난 이익을 남기고 있다. 지난 달 삼성이 1분 순수 이익이 11조였는데 규모가 1만분의 1도 안되는 게임 회사가 1년 동안 벌어들인 수익이 1조원이 넘습니다. 약 3조의 매출을 통해 그들은 어디에 지출을 했을까요? 거의 대부분 광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배를 불리고 있습니다.’ 이번 대선 결과로 게임 산업에 변화가 온다. 이제 더 이상 사행성처럼 조장되는 매월 적게는 몇 십만원 많게는 몇 억씩 쓰는 게임 소비자들이 줄어 들 전망이다. 왜냐하면 로또 복권식 아이템 등급 조정에 대한 법적 제재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 소식은 오랫동안 기도해 오던 부모들의 가장 큰 골칫거리를 해소해주는 법안이다. 그러나 법안이 통과 되고 게임사들이 어떤 방식으로 소비자들에게 다가 가는지를 확인해야할 사안이다. 왜냐하면 핸드폰 보조금 제재 법안도 결국 의미 없었으며 회사만 배불리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리니지 레볼루션, 이달에는 리니지M이라는 이름으로 스마트폰용 새로운 게임이 매달 출시되고 있다. 그리고 연간 출시되는 스마트폰 게임 앱은 50만개 넘는다고 한다. 이 통계는 2-3년전 통계다. 인디게임이라는 산업을 통해 더 많이 출시 될 것이다. 그러나 사업자들은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광고 투자와 정치적 로비 등을 통해 사회 잇슈를 만들어낸다. 소송도 그 방법 중 한가지이다. 즉, 노이즈 마케팅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술에 청소년들은 노출 되어 있고 자신들이 짝퉁을 명품보다 더 값비싼 댓가를 치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다.) N포세대, 혼족문화, 그리고 요즘 유행하는 것은 YOLO족이다. You Oly Live Once의 약자다. 한번 뿐인 인생 내 마음대로 살아 보겠다는 의미가 깊게 박혀 있는 철학이다. 방송사들은 이 욜로족의 의미를 잘 포장하여 전달하려 한다. 그러나 인간은 죄인이다. 거룩한 의미에서 인생을 살아가려 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새로운 가치관의 변화는 결국 말씀을 듣지 않으면 그들은 기회를 놓치게 될 것이다. “엑사고라조메노이(엡5:16)” 댓가를 치르고 기회를 붙잡아야한다. 젊은이들은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삶인 10대와 20대의 삶을 방종으로 치닫고 있다. 이 문제의 대한 해답은 우리가 그들에게 얼마나 슈르드하게 다가가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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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5-29
  • [은혜의 말씀] 틈새 신앙(막16장9~16절)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어떤 사람들에게 나타나셨을까요? 예수님의 죽음 이후 낙심하고 실의에 빠진 사람들은 자신들이 있던 곳으로 돌아갔습니다. 예수님께서 과연 자신들이 바라던 메시야가 맞는지 의구심마저 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 앞에 떳떳치 못한 자신들의 모습이 부끄럽고 죄송합니다. 능력이 많으신 예수님이 그렇게 처참하고 허망하게 돌아가신 것이 어쩐지 석연치 않습니다. 예수님 옆에 있으면서 출세도 명예도 기대했건만 하루아침의 물거품이 되어 버린 현실이 믿기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헛된 시간을 보낸 것이 아닌가 하며 낙심하며 낙망해 있을 때 주님은 그들을 찾아오셨습니다.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질책치 않으시고 함께 음식을 잡수시고 얘기 나누시며 부활을 확증시켜 주십니다. 그제야 예수님이 진실한 구세주이심을 확신하게 된 제자들은 예수님의 승천하시기 전 당부대로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하며 제자를 삼고 주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지키게 하는데 자신들의 목숨조차 아까워하지 않고 사역을 감당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 이후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그들이 알아 볼 수 없는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주님의 고난과 부활과 그로 인해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셨음을 설명하며 슬퍼하며 낙심하고만 있지 말라고 하십니다. 마음의 위로를 주시고 기쁨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실의에 빠져 주저앉아 있는 이들을 찾아오셨습니다. 언제까지 슬퍼하고 낙심해 있을 거냐며 그들을 일으켜 세우십니다. 희망이 사라진 이들에게 절망가운데 소망을 되어 주셨습니다. 이처럼 주님의 부활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감격과 기쁨 이상이고 살아갈 이유이며 그들로 주님을 전하지 않고 그냥 있을 수 없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 영광을 버리시고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죽음으로 우리를 향한 사랑을 확증하셨고, 부활하심으로 의로 우심을 취하셨으며, 믿는 우리를 의로 우심에 동참케 하십니다. 이보다 더 복되고 기쁜 소식이 어디 있을까요? 오늘 이 시대 많은 사람들이 낙망에 빠져 지쳐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 숨 쉬는 날 동안 누구나 크고 작은 힘든 일들을 겪게 됩니다. 수고와 슬픔이 많습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현실 앞에 낙심하여 주저앉아 헤맵니다. 사람이 싫고 하나님이 원망스럽습니다. 내 마음의 감정 속 틈새가 벌어지면 사소한 것이라도 천당과 지옥을 갈라놓습니다. 내 마음의 신앙의 틈이 생길 때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두루 찾듯이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해 사력을 다합니다. 마귀에게 틈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암담한 현실 너머 부활의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부활하시어 낙심한 제자들을 찾아주신 주님께서 오늘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떨치고 일어나 힘을 내어 주님을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주님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때 쉼을 얻음으로 평안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감격과 기쁨이 오늘 우리의 삶 가운데 회복되어 이 암담한 시대에 굴하거나 두려워 말고 슬픈 기색과 우울함은 떨쳐 버리고 부활의 찬란한 빛을 감당하는 우리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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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5-29
  • [성서연구] 산 같은 사람(다니엘서 6장 25-28절)
    주전 626년에 나보폴라살은 신 바벨론 제국을 세웠고, 주전 605년에 이 나라를 이어받아 주전 562년까지 43년 동안 통치하면서 전성기를 연 사람은 느부갓네살이었습니다. 그러나 초강대국 바벨론은 느부갓네살 이후 4대만인 주전 539년, <나보니두스> 때에 메대와 바사에 의해 무너졌습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나보니두스가 나오지 않고 <벨사살>이 등장하는데, 일반 역사 기록에 벨사살이 없다 보니 일부에서는 성경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9세기에 고고학자들은 나보니두스가 17년 동안의 재위 기간 중 10년 정도의 시간을 <아라비아의 테이마>에 거주하면서 통치를 맏아들인 벨사살에게 맡겼다는 증거를 찾아냈습니다. 다니엘서 5장은 벨사살이 다스리던 바벨론 제국이 메대와 바사의 연합군에게 무너지고, 나라가 다리오에게 넘어가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때가 주전 539년 10월 12일이었습니다. 본문은 이 다리오가 다스리던 때의 일입니다. 다리오는 전국의 백이십 도를 세 명의 총리로 관할하게 했는데, 이 제도를 바꾸어 군계일학인 다니엘에게 전국을 다 맡길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나머지 두 총리와 신하들이 다니엘을 제거할 음모를 꾸미게 되었고, 아무리 뒤를 캐도 고발거리를 찾지 못하자 그들은 다니엘의 신앙을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대개 영웅은 교만으로 인해 어리석기 쉬운데 다리오도 그러했습니다. 간교한 신하들은 삼십 일 동안 그 어떤 신에게도 기도하지 말고 다리오에게만 기도하게 하고, 어기면 사자굴에 넣게 하자고 아부했고, 다리오는 그만 이 어리석은 법에 어인을 찍어 반포하였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은 그들의 음모대로 걸려 들었습니다. 다니엘 6장 10절은 그 모습을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고발을 받은 다리오는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아끼는 신하를 죽이게 된 것을 탄식했습니다. 그런데 왜 다니엘은 왕명을 어기고 하나님께 기도했을까요? 그 이유는 <다니엘에게는 왕이 따로 계셨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은 다리오 왕을 섬겼지만, 그의 진정한 왕은 여호와 하나님이셨습니다. 다니엘은 메대와 바사 제국에 살았지만, 그가 속한 진정한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그는 믿음의 지조를 꺾어서라도 권력을 유지하기 원하는 불나방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지상의 법보다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길 원했습니다. 그는 왕궁 옥좌에 앉아 있는 왕이 아닌, 하늘 보좌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생각과 결정과 행동의 기준을 세상 나라에 두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에 두었습니다. 그는 세상 나라의 법을 어겨 죽임을 당하더라도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삶을 얻길 원했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를 사자굴에서 지키셨고, 그 결과로 본문에서 보듯이 다리오왕이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신이며, 그의 나라만이 무궁함을 찬양하게 되었고, 다니엘 자신은 네 나라와 여덟 왕이 바뀌는 역사의 소용돌이 한 복판에서도 태산처럼 우뚝 서서 형통하였습니다. 새 대통령과 새 정부가 들어섰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일희일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지상의 통치자와 나라보다 더 높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에 마음을 두고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상의 정부가 어떻게 변화되든지 우리는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때로 이로 인해 사자굴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우리의 기준은 하나님이십니다. 부디 지금도 우리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그 분께 모든 것을 맡기고 초연하게 살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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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5-29
  • [소강석 칼럼] 전쟁은 살리는 것이다
    최근 어느 방송과의 6.25 참전용사 다큐를 촬영하기 위하여 도미를 하여 장진호 전투에 참가했던 참전용사들을 만났다. 그들이 버티고 싸워주지 않았더라면 중공군의 인해전술은 삽시간에 우리 대한민국을 점령해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말할 수없는 추위와 굶주림 속에 서 중공군과 싸우고, 버텼다. 이어서 흥남 철수 작전을 마지막으로 수행했던 레인 빅토리호를 견학하였다. 나는 그곳에서 내내 가슴이 울컥하였다. 그곳엔 피난민들이 숙식을 했던 닭장 같은 숙소를 그대로 보존해 놓았다. 사람들의 비명소리와 아기 우는 소리 들도 그대로 재현해 놨다. 그곳에 가려면 험한 사다리를 타야하는데, 어떻게 아녀자들이 사다리를 타고 오르락내리락 했을 것인가, 그 안에서 어떻게 변을 보고 살았을 것인가... 여러 생각이 맴돌았다. 그들은 살기위해서, 먹고 자는 자리에 변을 보며 살았다. 그래도 그곳에 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들이었다. 갑판위에 서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추웠겠는가? 더구나 한배에 7천명이 넘는 사람이 타다보니, 화장실이 턱없이 부족해서 배 난간에 변을 보도록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갑판에서도, 해산이 임박한 임산부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빅토리아호의 올슨선장 이 갑판에 있는 임산부들을 선장실로 데려 다가 아이를 낳도록 배려를 해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선장실에 가보니 더 놀라운 것을 발견했다. 선장실 책상에 오래된 성경이 있었는데 그 성경에는 많은 손때가 묻어있었다. 안내원의 말에 의하면, 선장은 항상 이 성경을 보았고, 그 성경이 선장의 모든 것을 결정하게 해주었다 한다. 그런데 선장이 갑판위로 올라가 보니, 이미 임산부들은 갑판에서 아이를 줄줄이 낳아버렸다고 합니다. 애만 낳은 것이 아니라 임산부가 그 추위에 아기를 보듬고 걸어 다니고 있었다는 것이다. 선장은 그 모습을 보고 감탄에 감탄을 하면서 그 아이들의 이름을 김치 1호, 김치 2호, 김치 3호, 김치 4호, 김치 5호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나는 그곳에서 함께 동행한 전 육군대장 이철휘 장로님께 여쭈어 보았다. “장로님, 대한민국 육군 대장 출신으로서 이 배를 보고 어떤 소감이 드십니까?” 그랬더니 이렇게 말씀을 하셨다. “가장 위대한 전쟁은 생명을 살리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과거에 저도 젊었을 때는 적을 어떻게 죽이고 궤멸을 시키는 가에 대해서만 생각했죠. 물론 전쟁은 국민의 안위를 지키고, 적을 물리치는 것이 분명하죠. 그러나 더 나아가 참으로 위대한 전쟁은 얼마나 많은 국민의 생명을 살리는 것인가를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과연 아몬드 소장의 결단으로, 배에 있었던 수많은 군수품을 바다에 던져버리고, 피난민들을 태운 것이다. 그러나 전쟁 중 배에 있는 군수품을 버렸다는 것은 전쟁을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몬드 소장은 군수품보다 중요한 것이 사람의 생명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진정한 전쟁은 생명을 살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의 선장과 선원들은 지금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에 의해 남쪽으로 피난을 왔던 사람들은 악착같이 삶을 개척했고, 대한민국의 자유와 번영의 역사를 피로 쓰고, 눈물로 꽃피우게 된 것이다. 그런 것을 생각할 때, 흥남 철수 작전을 이끌었던 아몬드 소장과 마지막으로 레인 빅토리아 호를 이끌었던 올슨 선장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슴이 울컥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우리의 영적 전쟁도 사람을 살리기 위한 것이며 교회 생태계를 회복하고 사상전, 영전을 하는 것 모두가 생명을 살리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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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칼럼
    2017-05-29
  • [함께 생각해 봅시다] 무엇이 다른가?(4)
    천주교는 기독교의 탈을 쓰고 있을 뿐 천주교엔 비성경적인 것이 너무 많아 기독교와 천주교는 무엇이 다른가. (8) 기독교와 천주교는 성례관이 다르다. 기독교에서는 세례와 성찬, 이 두 가지만을 성례라고 인정한다. 하지만 천주교에서는 세례와 성찬 외에 혼인식을 비롯한 다섯 가지의 성례가 더 있다고 한다. 입교, 고해, 성직자 임직, 병자도유 등이다. 혼인식을 어찌 성례라고 할 수 있는가. 불신자도 거행하는 예식이 아닌가. 말이 안 된다. 이같이 기독교와 천주교는 성례관도 다르다. (9) 기독교와 천주교는 내세관이 다르다. 기독교에서는 사후에 천국에 가든지 지옥에 가든지 가는 곳이 두 곳뿐이라고 믿고 있는데 천주교에서는 천국과 지옥 외에 연옥이라는 곳이 있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단 연옥에 들어가서 일정한 기간 단련을 받은 후에 천국으로 옮겨간다고 믿고 있다.(1439년에 연옥설을 확정했고 그들의 요리문답 63문답에 있음) 성경 어디에 연옥이 있다는 말이 있는가. 사후에 가는 곳은 천국 아니면 지옥, 지옥 아니면 천국, 가는 곳은 두 곳뿐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 두 강도가 함께 십자가에 달렸는데 그 중 하나가 숨지기 직전 자기의 죄를 회개하면서 예수님에게 구원을 요청하지 않았는가.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그랬다. 그때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뭐든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이렇게 말씀하지 않았는가. 연옥이 있다면 장차 낙원으로 오되 일단 연옥에 들어가서 단련 받고 오라고 말씀하지 않았겠는가. 천국도 지옥도 아닌 연옥이 있다는 말은 언어도단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럼에도 천주교 신도들은 연옥이 있다고 믿도 연옥에서 고생하고 있는 가족을 하루라도 빨리 천국으로 옮겨가도록 하기 위해 헌금을 하며 기도한다. 필자가 우연한 기회에 인쇄소에서 그들의 헌금봉투를 보니 ‘연옥에 가있는 OOO를 위해 헌금하오니 저의 정성을 보사 하루 빨리 천국으로 옮겨가게 하옵소서. OOO 드림’ 이렇게 되어 있었다. 참 어이가 없었다. 기독교와 천주교는 내세관이 이만큼 다르다. (10) 지금까지 말한 것 외에도 천주교애는 비성경적인 주장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예를 들면 마리아에겐 원죄도 자범죄도 없다고 한다(요리문답 46문답). 마리아는 평생 동정녀라고 믿고 있다. 언어도단이다. 성경에 보면 예수의 동생이 여럿이 있다. 천주교에서는 조상에게 제사드리는 것을 용인한다. 묘 앞에서도 절을 한다. 천주교는 기독교의 탈만 썼지 기독교가 아니다. 독자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지요. 함께 생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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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5-29
  • [목회자칼럼] 40년 전의 휴전선 추억(1)
    1977년 4월, 육군 보병학교에 입교하여 만 4개월 동안 고도의 수준 높은 대한민국 장교 훈련을 이수하였다. 모든 교육과 훈련이 그러하듯이 <장교후보생>으로 훈련받는 동안 그 긴장감과 고충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4개월이라고 하는 기간이 시한부로 정해져 있기에 망정이지 만일 입교하는 날짜만 있고, 끝나는 날짜가 없다면 힘들고 지쳐서 좌절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해 8월 중순, 나는 휴전선을 지키는 강원도의 모 부대로 배속을 받아갔다. 경기도 운천 부터는 비포장 흙길이었다. 여름인지라 자주 내리는 장맛비로 말미암아 흙길은 여기저기 깊게 파여 있어 의정부에서 점심을 먹고 출발하였음에도 백골사단에 도착했을 때는 어둑어둑하였다. 부대 명칭이 백골이요 부대 깃발도 백골(하얀백골) 그림이요, 곳곳에 세워져 있는 입간판에도 백골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전투복의 휘장에도 온통 백골 그림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경례 구호가 큰 목소리로 “백골” 하고 외치는 것이다. 그러니 이 구호를 외칠 때 마다 비장한 각오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부대 명칭이나 구호를 가지고 품평을 한다면 내가 근무하였던 「백골부대」가 대한민국 최강의 군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군종장교, 일명 군목(軍牧)으로 육군 중위 계급장과 십자가 표식을 달고 근무하였다. 말 그대로 군인이면서 목회자이다. 그러니 다소 어정쩡하다. 훈련과정에서는 사격훈련을 당당히 받고 합격까지 하였으나 임관 후 전역할 때까지 총기를 소지해본 적이 없다. 군 성직자이므로 총기 소지가 면제되는 것이다. 이 사실을 기뻐해야 할까 말까 고민한 적이 있다. 만일 전투가 발생하고, 군인은 <승리>가 목표인데 내가 영적으로 책임 맡은 부대의 장병들이 치열하게 전투를 하다가 일반 지휘관이 희생되고 내가 살아남은 유일한 장교라면 나 역시 총기를 소지하고 장병들을 지휘해야 하지 않을까? 성직지라고 해서 지휘관을 잃고 우왕좌왕하는 군사들을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다면 원치 않는 상황이지만 어쩔 수 없는 비상사태의 경우에는 군목도 대한민국 장교로서 군사를 지휘할 수 있어야 한다는 판단을 해 보았다. 당시 군 의무복무 기간이던 만 3년 동안 숱한 사건, 상황, 사연들이 있었지만 지금도 강렬한 추억이 돼 떠오르는 몇 가지를 회상해보고 싶다. 당시 연대군목으로서 내가 돌아보아야 하는 부대는 모두 다섯 개였다. 그러다 보니 교회 또한 다섯 곳이었다. 연대본부 교회와 네 곳의 대대 교회이다. 주일 오전에는 내가 위치하고 있는 연대본부 교회에서 예배를 인도하고 오후에는 네 곳의 대대 교회 중 한 곳을 방문하여 예배를 인도한다. 대개 대대장을 비롯하여 일부 장교들도 예의를 차리느라고 연대 군목을 맞이해 준다. 그러니 그 때만해도 군목이라고 해서 <예우>를 받던 좋은 시절이었다. 어느 여름 주일날이었다. 연대본부로부터 멀리 떨어진 대대교회의 <오후예배>를 잘 인도하고 저녁 무렵 쯤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계속되는 지루한 장마로 예(例)의 비포장도로는 여기저기 깊이 파여 작은 웅덩이들이 많이 생겨져 있었다. 대대교회를 행해 오토바이를 타고 갈 때는 다소 밝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그 중에서 특히 크게 만들어져 있는 몇 웅덩이는 그 지점을 머릿속에 입력시켜 두었다. “나중 돌아올 때 이 웅덩이들을 조심해야지~~” 그런데 돌아오던 시간에는 깜빡 잊어 버렸다. 아내와 두 아이가 저녁식사를 위해 나를 기다리고 있으므로(오랜 경험으로 습관이 돼 있음!) 나는 <주일 예배 인도>를 잘 마쳤다는 홀가분함과 젊은 나이에 <군종장교>로서 나라를 지킨다는 자부심을 느끼면서 비포장도로를 신나게 달려오는데 그 웅덩이를 발견했을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 분명히 빗길의 비포장도로이므로 <과속>은 아니었음에도 오토바이는 그 웅덩이에 큰 소리로 ‘털컥’ 하더니 심한 충격으로 내 몸과 함께 6-7미터 높이의 언덕 밑으로 튕겨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당연히 나는 <의식>을 잃고 말았다. 그 순간이 매우 짧았을 것이라고 판단되지만 <의식을 잃은 그 순간>이 매우 길게 느껴졌다. 눈을 떴을 때 사방은 어둑어둑하였고 오토바이는 언덕 밑 시궁창 이에 나뒹굴어져 있었다. 꼭 40년 전의 사건이다. 차량도 이미 끊겼고 어떤 통신 수단도 없었다. 꽤 먼 거리를 어떻게 집에까지 올 수 있었는지 지금도 그 과정은 기억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작동하지 않는 망가져버린 90cc 오토바이를 무슨 힘으로 끌어 올렸는지 여하튼 온 몸으로 처절하게 끌어안다시피 씨름하면서 결국 길바닥으로 끌어올려 그것을 힘으로 질질 끌면서 집에 까지 돌아온 것이다. 나는 40년이 지난 지금도 어떻게 멈추었던 의식이 돌아왔지? 어떻게 무슨힘으로 6-7미터 높이 언덕 위로 오토바이를 끌어안고 올라올 수 있었던지? 그 오토바이를 힘으로 질질 끌고 고갯길 비포장 장마길 1킬로미터 거리를 걸어서 집에까지 올 수 있었던지? 이 세 가지 궁금증은 풀리지 않는다. 실로 초인적인 힘이었다. 이런 힘이 내게는 없다. 그러니 설명할 길은 <하나님의 은혜>였다. (시편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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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5-29
  • [이상규 교수의 부산기독교이야기 7] 에비슨이 본 부산
    에비슨(Oliver R. Avison, 1860-1956)은 제중원 원장으로 제중원을 선교병원으로 개편하고 한국에서의 의료 및 교육, 혹은 의학교육을 실행했던 위대한 인물이었다. 한국에서 42년간 체류했던 그는 1893년 내한하여 1885년 4월 10일 개원한 광혜원(제중원)의 의사로 선교사역을 시작했는데, 이 병원을 모체로 의학교육을 실행하게 된다. 제중원에서 의학교육은 1886년 3월 29일 제중원의학교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다. 1904년 9월 세브란스 씨의 후원으로 새로운 병원건물을 신축하게 되자 제중원은 세브란스병원으로 개칭되었고, 제중원의학교는 자연스럽게 세브란스병원의학교로 개칭된다. 1908년 6월에는 첫 졸업생 7명을 배출했는데, 이들이 우리나라 정부, 곧 대한제국이 의사면허를 준 첫 의사들이었다. 세브란스병원의학교는 후일 세브란스연합의학교, 세브란스연합의학전문학교로 개칭된다. 그런데 제중원 의학교에서 물리(物理)를 가르친 바 있는 언더우드는 1915년 3월 조선기독교대학(Chosen Christian College)를 설립하고 자신은 교장에 에비슨은 부교장에 임명했다. 그러나 언더우드가 1916년 10월 12일 57세의 나이로 사망하자 에비슨은 이 학교 교장이 된다. 그는 각고의 노력 끝에 1917년 4월 조선총독부로부터 재단설립과 연희전문학교 설립을 인가받게 된다. 그리고 언더우드의 형 존 언더우드(John Underwood)의 후원으로 현재의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134번지 일대 송림이 울창한 29만 320평을 매입하였는데, 지금의 연세대학교 부지가 된 것이다. 언더우드의 형 존은 ‘언더우드 타자기’ 창업자이자 실업인이었다. 에비슨는 세브란스와 연희 두 학교 교장으로 일하면서 양 학교의 합동을 생각했으나 이 일은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이루어지게 된다. 즉 양 학교는 6.25 전쟁 후 복구과정에서 합동을 결의하고 연희의 ‘연’자와 세브란스의 ‘세’를 조합하여 1957년 1월 연세대학교로 발전했다. 이 일을 보지 못한 채 에비슨은 1956년 8월 사망했다. 물론 에비슨은 이보다 앞서 1934년 세브란스의전 교장직에서 물러났고, 1935년 12월 은퇴하고 본국으로 돌아갔으나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타계한 것이다. 그는 진정한 의사이자 의학교육가였고 대학교육자였다. 그는 김명선 김필순 홍석후 홍종은 등 의사를 배출했을 뿐만 아니라 백낙준 백남운 유억겸 이관용 이원철 이춘호 정인보 조병욱 최현배 등 당대 최고의 인재를 연희전문학교 교수로 초빙하여 한국에서의 대학 교육의 터전을 마련했다. 그런데 토론토의과대학 교수였던 에비슨은 보장된 삶을 포기하고 한국선교를 자원하였고, 임신한 부인 제니와 3아이, 장남 로렌스(Lawrence, 1887-1962), 장녀 레라(Lera, 1889-1969), 차남 고든(Gordon, 1891-1967)를 데리고 1893년 4월 조선으로 향하는 장도에 올랐다. 즉 토론토를 떠나 밴쿠버를 거쳐 요코하마에 도착하여 6주를 지낸 후 다시 승선하여 고베로 갔다 거기서 작은 증기선 히고마루(Higo Maru, 肥後丸)을 갈아타고 나가시끼를 거쳐 대한해협을 지나 부산으로 상륙했다. 에비슨은 이날 부산의 광경을 이렇게 기술했다. “우리는 마치 키가 큰 파수꾼처럼 바위기둥들이 양쪽에서 지키고 서 있는 해협을 통과해 들어갔다. ... 곧 바로 넓은 항구가 한 눈에 들어왔는데 크고 높은 산들이 배경을 이루고, 폭이 좁고 긴 저지대의 땅은 해변을 따라 늘어져 있었다. 이곳 부산 촌락은 해안을 따라 퍼져 있으며 일본인들이 최초로 정착한 곳으로, 적어도 그 시기는 144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다수의 작은 초가집들이 좁고 긴 육지를 따라 마을에 모여 있었다. 높은 언덕과 더 높은 산들은 사람들이 거주한 흔적이 없고 벌목도 하지 않고 경작되지 않는 상태로 뒤편에 놓여 있었다. 전체적으로 볼 때 근사한 전경은 아니었다. 드디어 언덕 위에 보이는 작은 서양식 단층집이 한눈에 들어왔는데, 바로 우리가 찾고 있던 집이었다. 가족은 배에 남겨두고 거룻배를 타고 해안으로 가서 울퉁불퉁하고 구부러진 길을 따라 그 집까지 갔다. 그 때가 1893년 6월 16일 주일 오후였다.” 에비슨이 영선현에 위치한 베어드 집에 도착했을 때, 외국인들이 그곳에 모여 예배드리고 있었다. 참석자들은 베어드 목사 부부, 휴 브라운 의사 부부, 선교회 사람들, 그리고 2-3마일 떨어져 사는 호주장로교선교사들이었다. 이때의 모습이 매우 쓸쓸해 보였다고 에비슨은 기록하고 있다. 배가 몇 일 부산에 체류했으므로 다음날 에비슨은 아내와 아이들을 베어드 집으로 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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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규교수의 역사탐색
    2017-05-15
  • [목회자칼럼] 그리스도인의 선택
    5월 9일 대통령선거가 치러지고 새로운 대통령에 세워졌다. 이번 대선에 더욱 관심이 모아졌던 것은, 4년 전에 선출한 대통령이 대다수 국민들의 찬성 가운데서 탄핵당하고 심지어 구속 기소되는 등 초유의 참사를 겪으면서, 새삼 국가 지도자를 제대로 세우는 일의 중요성이 공감되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국민들에게 국가 문제라는 것은 당장 피부에 와 닿지 않기에 자신의 개인사나 가정사처럼 민감하게 느끼지 못하고 무관심해지기 쉽다. 그러나 국가정치는 사회구조적인 문제라는 점에서 보이지 않게 현재와 미래 삶의 틀을 만들고, 특별히 신앙인들에게는 “경건하고 품위 있게, 조용하고 평화로운 생활”(딤전2:2)을 할 수 있는 환경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임을 간과할 수 없다. 그리고 이것을 좌우하는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은 당연히 최고의 통치자와 그를 견제하고 입법활동을 하는 국회의원들일 것이다. 고대와 달리 우리가 사는 현대는 이런 권력자들을 국민이 선택하고 세우는 국민주권의 시대이다. 어떤 사람들을 선택해서 권력을 부여하느냐의 권리와 책임이 국민들에게 있다. 특별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현실정치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안목을 갖고 올바른 지도자를 선택해야 할 책임을 갖고 있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세상나라는 나와 무관하다고 생각하면서 오히려 비신자들보다 더 국가의 일에 무관심하기 쉽다. 이것이 갖는 문제는 심각하다. 가령 예를 들어보자. 어떤 후보자가 기독교 활동을 제한하고 박해하려는 의도를 분명히 한다고 한다면, 그동안 정치에 무관심했던 그리스도인들은 분연히 일어나 투표장으로 달려가 다른 후보를 찍으려 할 것이다. 기독교를 탄압까지 아니더라도, 기독교의 교리나 도덕성과 어긋나는 정책방향을 갖고 있는 후보자에게도 그리하려고 할 것이다. 그 후보자의 정치여정이 어떠하고, 인격이 어떠하고, 정치, 경제, 교육, 외교등 다방면에서 어떤 정책을 지향하는 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온 교인들의 핸드폰에 “교회를 지키고 살리기 위해서 투표장으로!”라는 문자가 돌 것이고, 투표행위는 신앙행위처럼 여겨질 것이다. 과연 그것이 바람직한 것인가를 돌아보자. 교회의 권리를 지키고 기독교 교리와 도덕성을 사수하는 것만이 국가가 해야 할 일인가? 국가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로서 우리가 국가에 요구할 것이 그것뿐인가? 하나님이 국가의 통치자들에 요구하시는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정의가 아닌가? “내가 또 이르노니 야곱의 우두머리들과 이스라엘 족속의 통치자들아 들으라 정의를 아는 것이 너희의 본분이 아니냐” (미 3:1) 이와 유사한 구절은 성경 여기저기에 담겨져 있다. 복음적인 신앙을 정치 속에 실현하려 했던 지미 카터가 1977년 대통령 선서를 하면서 낭독한 성경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 6:8) 이번에 대통령이 탄핵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난 것도 결국은 정의의 문제가 아닌가? 대통령의 불의한 통치에 대한 국민의 저항이 아니었나? 헌법재판소의 준엄한 심판이 아니었나? 앞으로도 우리는 대선, 총선, 지방선거등을 통해서 올바른 국가지도자를 세우는 자리에 서게 된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히 교회를 보호하려고 하고, 하나님이 가르치는바 가정의 가치와 성적인 도덕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동성애를 반대하고 낙태도 반대한다. 그러나 그것만을 잣대로 국가지도자를 선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도덕적인 문제와 아울러 그가 나라를 정의롭게 다스릴 수 있는 자인가를 보아야 한다. 정의를 추구하며 살아온 사람인가? 재판의 공정함을 지킬 줄 아는가? 빈부격차를 줄이고 더불어 사는 삶을 이루려고 하는 사람인가? 평화를 지키려고 하는 분명한 의지를 갖고 있는가도 같이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그리스도인은 이 사회를 밝히는 빛과 부패를 막는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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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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