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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사칼럼] 프로테스탄트
    1618년 5월 보헤미야 개신교 의회는 페르디난트(Ferdinand) 왕이 보낸 2명의 가톨릭 의원을 창밖으로 던져버렸습니다. ‘프라하 투척(Prager Fenstersturz)’으로 알려진 이 사건은 전 유럽을 <30년 전쟁>의 불길에 휩싸이게 한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보헤미야는 자타가 공인하는 종교개혁의 선구자 존 후스(John Huss, 1369-1415)의 고향으로 종교개혁 시대에 그 어떤 곳보다 개신교가 왕성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종교정치학적인 이유 때문에 구교도였던 페르디난트가 왕이 되면서 신교도들을 탄압하자, 이들은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라는 이름에 걸맞게 성경에 기초한 신앙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반발과 저항을 시작했습니다. 다윗과 골리앗을 연상시키는 형세였기 때문에 금방 끝날 것 같던 전쟁은 모든 이들의 예상을 뛰어넘어 30년 동안 지속되었고, 수많은 희생자들이 흘린 피 위에서 결국 신앙의 자유를 공인한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Peace of Westfalen)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1987년 6월 대한민국 국민들은 권위주의 체제에 저항하여 분연히 떨쳐 일어나 유월항쟁이라는 새로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열었습니다. 어린 학생들로부터 넥타이부대에 이르기까지 참여했던 대다수 사람들의 가슴 속에는 오직 민주주의를 향한 뜨거운 목마름과 진정한 자유를 위한 울부짖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30년 세월이 흘러 2017년 5월 장미꽃 피는 계절에 치러지는 대통령선거라 해서 장미대선이라 불리는 역사의 한 페이지 앞에 우리는 다시 섰습니다. 그 “우리” 속에는 보수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있고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이들도 존재합니다. 그 “우리”는 그러나 똑같이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를 소망하며 다음세대들에게 위대한 대한민국을 물려줄 꿈을 공유하는 “우리”인 줄 믿습니다. 30년 전 많은 이들의 거룩한 희생 덕분에 “우리”는 같은 종착점을 향하여 그러나 약간은 다른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자유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서로 이해하고 서로 관용하며 서로 힘을 합쳐서 아름다운 나라를 만들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우리” 중에는 개신교인들도 있습니다. 종교개혁으로 탄생한 ‘우리’ 개신교는 “프로테스탄트”라 불리기도 합니다. “항의자” 혹은 “저항자”라는 뜻입니다. 벌써 50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 본질과 정신은 결코 사라질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유일한 분별과 판단의 기준은 성경입니다. ‘우리’는 먼저 스스로에게 항의(抗議)해야 합니다. 혹시 잘못 걸어가고 있지는 않는가, 부지불식간에 본질에서 멀어져 버린 것은 아닌가, 성경에 투사(投射)하여 자문해 보고 고칠 부분이 있으면 과감하게 고쳐서 다시 근원으로(ad fontes) 돌아가는 것이 개혁주의의 본령(本領)입니다. 그렇게 개혁된(reformata) ‘우리’는 또한 거짓과 불의와 그 배후에 있을 어둠의 세력과 흑암의 권세에도 저항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무엇이 옳고 그른지 성경을 통해 깨닫고 분별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합니다(롬 12:2; 딤후 2:15). 무엇을 고치고 바꿔서 본질을 구현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고민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이것만이 이번 장미대선에서 ‘우리’는 어떻게 투표해야 할지를 물을 때 대답해 줄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이리라 믿습니다. 19세기 초 영국 정치가 윌리엄 윌버포스(1759-1833)는 평생에 걸친 끊임없는 노력으로 영국의 노예무역을 종식시켰습니다. 그것이 성경적으로 볼 때 옳다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20세기 초 네덜란드의 아브라함 카위퍼(1837-1920)는 목사로서 정치에 투신하여 수상이 됨으로 모든 영역의 주권자는 하나님이라는 믿음을 훌륭하게 입증했습니다. ‘우리’는 개신교인입니다. 장미대선 앞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프로테스탄트일 수밖에 없습니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다면, 만발한 장미꽃 향기 속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되찾는 이번 대선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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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4-28
  • [교회학교를 살린다] “가정예배, 부모가 교사다.”
    교회학교를 살리자, 교회학교가 위기다, 요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다음세대를 살리고 신앙을 전승하는 길은 저 멀리 우주에서나 날아와 줘야 하는 신기하고 놀라운 비책이 필요한 일일까? 필자가 속한 성민교회에서는 올해부터 각 가정이 매주 한 번 가정예배 드리기 캠페인을 시작했다. 교회학교를 살리기 위해서는 가정이 먼저 신앙교육의 자리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매주 가정예배 순서지를 만들어서 가정예배를 돕고 있다. 각 가정은 매주 예배를 드린 후 인증샷을 교회 홈페이지에 올리면 한 달에 한 번 추첨을 통해 가족식사권을 선물하는 이벤트도 열고 있다. 그리하여 담임목사 가정부터 모범을 보이고자 우리 가정도 토요일 밤마다 사춘기 두 아들과 가정예배를 드리고 있다. 벌써 네 달째이니 이제는 수월할 만도 한데, 매번 에베레스트산을 넘는 것처럼 힘들다. 누가 고2, 중2 아니랄까봐 두 아들의 사소한 말싸움, 작은 부딪힘이 분위기를 냉랭하게 만들기도 하고, 못마땅한 이들의 모습에 포기하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지만 어쨌든 모든 것을 극복하고 매주 가정예배를 드리고 있다. 그러나 교회 안의 많은 가정들이 가정예배를 통하여 신앙뿐만 아니라 부모와 자녀가 진지한 소통의 장을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에 힘을 얻는다. 우리 보다 먼저 침체기를 겪었던 미국에서는 이미 20여 년 전부터 기독교 교육적 대안을 고심하면서 이를 교단차원에서 연구해서 “왜 기독교교육인가?”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하였다. 이 책은 신앙교육이 살아나려면 가정교육이 살아나야 함을 일관성 있게 강조했다. 이 책은 신앙의 가정에 대해서 다양한 조사를 하였는데, 가장 눈에 띄었던 점은 부모가 신앙인이라고 해서 자녀가 저절로 신앙인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부모가 교회생활에 적극적이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다하더라도 자녀의 교회생활과 신앙생활에 무관심하다면 자녀가 신앙인으로 자라는 확률이 낮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부모가 자녀와 신앙적인 활동을 지속적으로 함께 할 때 비로소 자녀가 신앙인으로 자라난다는 사실을 실질적인 데이터로 보여준 결과였다. 이제는 부모가 자녀를 교회학교에 한 시간 보내는 것으로 자신의 신앙적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교회에서의 신앙 활동에 자녀와 함께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가정에서도 신앙적인 활동과 이야기를 자주 나눌 때 신앙의 유산이 잘 전승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중요한 깨달음을 실천하는 가장 효과적인 일은 무엇일까? 나는 단연 가정예배라고 생각한다. 성민교회의 가정예배 순서는 간단하다. 온 가족이 한 주에 한 번 모여서 순서지를 따라서 사도신경, 찬양, 공동기도를 한 후 주일예배 본문 말씀을 읽는다. 그리고 어른 중 한 명이 순서지에 있는 주일예배 설교말씀 요약을 읽으며 간단한 느낌을 첨가해서 말씀을 전한다. 그 후에 가족구성원이 돌아가면서 왼쪽 사람을 위해 축복기도를 하고, 주기도를 한 후 마지막으로 서로서로 안아주며 “사랑합니다.” 등의 간단한 덕담을 하며 예배를 마친다. 그리고 순서지의 마지막에 있는 간단한 활동을 한다. 약 10분의 예배이지만 일주일을 살아낸 가족들이 주님과 함께 힘을 얻고 서로서로를 격려하며 축복하는 시간이다. 나는 그 짧은 시간이 우리 가정을 살리고, 자녀의 신앙을 살리고, 결국 교회와 교회학교를 살린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가정예배를 통하여 이제 부모가 신앙교육의 제일 첫 번째 교사가 되어보자. 부모의 모범을 따라 자녀가 자연스럽게 신앙이라는 보물을 소유한 그리스도의 제자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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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4-28
  • [은혜의 말씀] 일어나서 함께 가자(아2장10~13절)
    아가서는 솔로몬의 우아하고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된 낭만적 사랑에 대한 노래이며 하나님의 우리를 향하신 사랑의 표현이고 예수님이 교회를 이같이 사랑하신다는 비유이기도 합니다. 솔로몬의 뜻은 평화이고 아가서에 등장하는 여자 주인공 술람미의 뜻도 평화입니다. 아가서를 쓸 당시 솔로몬에게는 60명의 왕비와 80명의 후궁이 있었습니다. 정치적 이유로 이웃나라의 공주들과 정략결혼을 많이 한 솔로몬에게 시골 양치기 소녀 술람미는 특별했습니다. 솔로몬이 꿈꾸고 바라던 여인으로 그의 마음을 완전히 빼앗아 버립니다. 꿈과 현실을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그녀에게 푹 빠져버린 솔로몬은 상사병마저 생깁니다.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는 음부 같이 잔혹하며 불길 같이 일어나니 많은 물로도 끌 수 없다고 노래합니다. 솔로몬은 그녀의 순수하고 청순한 욕심 없는 꾸밈없는 모습에 반하여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여 함께 가자며 그녀의 아름다움을 노래합니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하고픈 마음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골 처녀에게는 미래를 약속한 사랑하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제 아무리 솔로몬이라도 그가 가진 부귀, 영화, 권세, 지혜, 지식이 많음에도 그녀의 사랑은 그를 향하지 않았습니다. 사랑은 부귀나 권세나 지혜 등 그 어느 것 보다 가치 있는 것입니다. 세상 그 무엇을 다 가진다 한들 자신이 바라던 사랑을 얻지 못한 솔로몬은 삶의 허무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사랑이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은 제 아무리 많은 것을 가졌다 하더라도 불행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을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그 희생적 사랑이 있었기에 우리는 다시 태어 날 수 있습니다. 만물이 약동하는 이 따듯한 사랑의 계절에 새로운 생명이 자라고 새들은 노래하며 꽃들이 향기를 토하는 이 아름다운 날들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의 사랑을 보이십니다. 우리에게 이 아름다움을 만끽하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아름다운 날 우리와 함께 하고 싶어 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자들은 하나님께로 나아와 그 분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해져 다른 이들을 사랑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우리는 하나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이 땅의 세상적인 자랑, 헛된 마음 버리고 빛 되신 아버지께로 나아와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배워서 이 땅에서 열매 맺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어두움의 권세를 파하고 우리를 구하실 전능자, 구세주 왕 되신 그분께서 우리를 부르십니다.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 함께 가자... 주님의 초청을 받아들이고 일어나 주님 지으신 이 아름다운 봄날을 봄길 따라 꽃길 따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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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4-28
  • [교회법률상식] 교회 재판 시벌에 “제명”이란 벌은 없다
    [질의] 권징 조례 제35조에 “제명”이라는 벌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교회법에 관한 참고서에는 “제명”은 없다고 하니 이에 대한 문제가 궁금합니다. 1930년도 판 헌법 책에는 제명이 없는지 궁금하고 또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합동 서울 D장로) [답] 질의자가 합동 측 장로이므로 합동 교단 헌법으로 답한다. 1. 당회 재판에 애매한 “제명” 규정 정치 제9장 제5조 6항에 “범죄 한 증거가 명백한 때에는 권계, 견책, 수찬 정지, 제명, 출교” 등 5가지의 시벌만 명시하였고, 권징 조례 제35조에는 “당회가 정하는 책벌은 권계, 견책, 정직, 면직, 수찬 정지, 제명, 출교 등 7가지 시벌을 명시하였다. 이에 관하여 결론부터 정리하면 재판 판결로 시벌할 수 있는 책벌은 “권계, 견책, 정직, 면직, 수찬 정지, 출교, 등 6가지뿐이요 정직과 면직은 수찬 정지를 겸하여 할 수 있다.” 그런데 정치에는 정직과 면직이 누락되어 있고 제명이 추가되어 있으며, 권징 조례에는 “제명”이 법적 근거도 없이 끼어들었다. 이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웨스트민스터 헌법을 번역한 1922년도 판 최초의 장로교 헌법과 비교해 보아야 하고, 그 후 출판한 모든 헌법 책에 새로이 등장한 시벌 명칭에 대하여는 헌법 개정의 근거 유무를 총회 회의록을 검토하여 반듯이 찾아내어야 한다. 즉 당회 재판에만 헌법 개정의 근거 없이 “제명”의 벌이 끼어든 것이 흠결이다. 2. 1922년도 판 정치와 권징 조례 규정 조선예수교장로회 헌법 정치 제9장(당회) 六(당회의 직무) 중 “범죄 한 증거가 명백할 시에는 권면하거나 책망하거나 책벌(수찬 불참케 함)하거나 출교하기도 하며 회개하는 자를 해벌하기도 하느니라.”고 하여 “제명”이라는 벌이 없고, 권징 조례 제5장(당회에서 재판하는 특별 규례) (35)에 “당회가 정하는 벌은 권면, 책망, 정직 혹 면직, 수찬 정지와 출교는 종시 회개치 아니하는 자에게만 쓸 것이니라”고 하여 권징 조례 역시도 “제명”이라는 벌이 없다. 3. 1930년도 판 정치, 권징 조례 규정 대한예수교장로회 헌법 정치 제10장(당회, 필자 주: 제7장 제직회가 추가되어 있어서 10장으로 되어 있다) 제6조(당회의 직무) 중 “범죄 한 증거가 명백할 때에는 권계나 견책이나 수찬 정지나 제명, 출교를 하며 회개하는 자를 해벌하느니라.”(1930년도 판 p.96)고 하였고, 권징 조례 제5장(당회 재판에 대한 특별 규례) 제35조에 “당회가 정하는 책벌은 권계, 견책, 정직, 면직, 수찬 정지, 제명 출교니 출교는 종시 회개치 아니하는 자에게만 하나니라”(1930년도 판 p.171)고 하여 제명과 출교를 띄어 썼다. 여기에서 제명은 “제명, 출교”가 아니라 “제명출교”의 하나의 단어로서 출교가 되면 자동적으로 제명이 된다는 의미로 붙여진 것인데 정치에서는 “제명, 출교”로 잘못 인쇄된 것으로 이해하고 시행함이 옳아 보인다. 4. 출판 과정에서 “제명” 용어의 변천 과정 (1) 1922년도 판 헌법은 “제명” 시벌이 없다. (2) 1930년도 판의 정치: 제명, 출교, 권징조례: 제명출교. (3) 단기 4291년도 판 정치: 제명 출교. (4) 단기 4293년도 판 정치: 제명 출교, 권징조례: 제명출교, (5) 현행 헌법 정치: 제명, 출교, 권징조례: 제명, 출교,이다. 즉 권징 조례는 하나같이 제명출교이었으나 현행 헌법만 제명, 출교로 잘못 되어 있고, 정치에서는 (제명, 출교) (제명 출교) (제명 출교)로 띄어 썼다가 부쳐 썼다했고, 점을 찍었다 떼었다 하다가 결국 현행 헌법은 (제명, 출교)로 하여 몹쓸 법조문이 되어 버렸다. 5. 결론 교인을 “제명”하는 경우는 재판으로는 할 수 없고, 오직 권징 조례 제53조에 “입교인이 이명서 없이 다른 교파에 가입하면 본 당회가 제명하고”와 동 제54조에는 “목사가 장로회의 관할을 배척하고 그 직을 포기하거나 자유로 교회를 설립하거나 이명서 없이 다른 교파에 가입하면 노회는 그 성명을 노회 명부에서 삭제만 하고”라는 규정대로 행정 처리를 할 수 있을 뿐이요, 그 외에는 사망 시, 이명서 접수 통지서 접수 시, 출교 시 등에만 제명 하는 경우이다. 본 건에 관하여 당회 재판에만 “제명”이란 시벌이 끼어있고 노회, 재판인 권징 조례 제6장 (직원에 대한 재판 규례) 제41조에는 오직 “권계, 견책, 정직, 면직, 수찬 정지(정직과 면직은 수찬 정지를 함께할 수도 있다), 출교, 뿐이요 ”제명“이라는 시벌이 없다. 더욱 중요한 것은 동 제47조에 “장로 및 집사에 대하여 재판할 사건이 있으면 본 장 각 조에 해당한 대로 적용할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권징 조례 제35조 “제명”의 벌은 없는 것으로 여겨도 무방하다고 하겠다. 만일 당회가 교인을 재판하여 제명 판결한다면 그 교인의 소속 교회는 어느 교회이겠는가? 교인으로서 교회의 소속이 없는 교인은 있을 수 없는 것이 법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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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4-28
  • [중독칼럼] e스포츠 프로게이머 사업이 양성화 되고 있는 시점에서 교회는 언제까지 음성화 해야하는가? (2)
    이미 부산시는 지스타의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프로게임 대회를 치루는 한국, 아니 전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를 모으는 행사를 치룹니다. 그리고 게임 산업은 날로 발전하여 일반 스포츠처럼 대중화를 선언하고 각 게임업체들 마다 여기에 초점을 두고 게임을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게임은 많은 시간을 들이는 정도를 넘어서, 이상하리만큼 한국에서만 현질(현금을 지르다의 준말)을 유도하여 엄청난 이익을 남기고 있습니다. 지난 달 삼성이 1분 순수 이익이 11조였는데 규모가 1만분의 1도 안되는 게임 회사가 1년 동안 벌어들인 수익이 1조원이 넘습니다. 약 3조의 매출을 통해 그들은 어디에 지출을 했을까요? 거의 대부분 광고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배를 불리고 있습니다. 게임을 통해 청(소)년들은 무분별한 사상을 배우고 나쁜 것을 접하며 음성화 된 문화속에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고 욕설과 폭력, 음란물에 빠집니다. 그들은 배만 고프지 않으면 아쉬운 것이 없고 모든 귀를 닫고 사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문화를 개혁 시키지 않으면 더 어두워져 갈 것입니다. 내 아이만 지킨다고 지켜지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결국 환경에 지배 당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환경은 기독인들이 똘똘 뭉쳐야만 합니다. 예전에는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며 교회로 오게 하던 시대였지만, 이제는 재미난 꺼리를 만들어 주지 않으면 그들은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영은 메말라 갑니다. 그들에게 건전하고 새로운 게임 문화를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이 교회와 말씀을 통해 나타나야 합니다. 바울이 전도 할 때 도시 한 가운데로 들어갔던 것 처럼 청소년들의 문화 한 가운데로 들어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 문화의 최고 우두머리를 말씀으로 변화시키면 가장 쉽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인이 되고 기도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친구와 후배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며 자신의 시행착오를 통해 타산지석으로 가르칠 수 있도록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2단계 작전은 쉬워집니다. 우리는 항상 밑에서부터 올라가는데 이것은 성경의 방식이 아닙니다. 최고 위에 대장부터 잡아야 합니다. 온라인 세계에 머리는 프로 게이머 세상입니다. 이들은 똑똑하고 재능이 많고 판단력이 빠릅니다. 그들이 말씀을 접하면 가장 먼저 바뀔 것이며 그들이 바뀌면 고구마를 케어내듯 올라 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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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4-28
  • [성서연구] 외로움에서 고독으로(마가복음 1장 35-39절)
    데이비드 리즈먼은 1950년에 『군중 속의 고독』이란 책을 출판했습니다. 리즈먼은 현대 사회의 특징 중 하나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인구와 그 안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인간을 꼽았습니다. 리즈먼의 진단대로 지금 많은 사람들이 군중속의 고독을 느끼고 있습니다. 사람은 넘쳐나지만 마음을 나눌 사람이 없어 외로움을 타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사람은 많으나 친구는 없습니다. 군중 속에 있지만 사랑을 나누는 이는 적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 학자들은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의 특징 중 하나로 해체를 들고 있습니다. 사회라는 것은 단지 사람들이 많은 것만으로 형성될 수는 없습니다. 그 사람들 상호간에 연결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연결고리를 통해 사랑이 흐를 때 사회는 유지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개인주의가 극대화되면서 사회가 해체되고 있습니다. 누가 어떤 행동을 하든 관심이 없고, 심지어 사람이 죽어나가도 나 몰라라 합니다. 이 와중에서 군중속의 고독은 모든 사람들의 고통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때때로 아주 특이한 일들이 있었는데, 그것은 스스로 고독을 찾는 이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앞에서 언급한 고독을 외로움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남들이 떠나감으로써 홀로 남겨지는 것, 그래서 고통을 받는 것은 외로움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반면에 스스로 떠나감으로써 홀로 있게 되는 것을 고독이라고 구분해서 부르고 싶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스스로를 사람들로부터 격리시키려 노력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사람이 만들어내는 말들과 생각들로부터 자신을 떼어 놓으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람들의 소리로부터 자신을 격리시킬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세계로부터의 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당신의 사람들에게 당신의 소리를 들려주시기 위해 그들을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부르시곤 했습니다. 예를 들면 사람들의 소음과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음모가 넘쳐나던 애굽의 궁궐에서 사십 년을 살던 모세를 인적이 없는, 세상의 소리로부터 격리된 미디안 광야로 부르신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모세는 거기서 떨기나무 불꽃 중에 나타나신 하니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엘리야는 호렙산 동굴에 홀로 있던 중에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세례 요한 역시 세상 앞에 자신을 드러내기 전에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약대 털옷을 입고 하나님만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도 <한적한 곳으로> 가셨음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한적한 곳으로 가신 이유는 기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말씀드리고, 그 음성을 듣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께서는 온갖 소음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아직 깨어일어나기 전에,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깨어 일어나셨습니다. 바로 이런 것이야말로 거룩하고 축복된 고독을 찾는 모습이라 하겠습니다. 새벽 아직 밝기 전에 한적한 곳에 가신 예수님의 모습은 오늘 우리가 반드시 배워야 할 모습입니다. 도시는 소란스러운 곳이며 소돔과 고모라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 안에서 하루 종일 만들어지는 죄악의 소음들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 한 복판에 있습니다. 그 욕망과 욕망이 부딪히는 곳에 살면서 우리의 욕망에 박수를 보내는 이들이 없다고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이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이제 우리는 그런 외로움 따위는 초월해야 합니다. 그 대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고독을 찾아 즐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외로우십니까? 사람들이 없어 느끼는 외로움을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고독으로 바꾸십시요. 외로움은 하나님을 만날 기회입니다. 사람들이 말을 걸어오지 않는다면 지금도 늘 말씀을 걸어오시는 하나님께 귀를 여시기 바랍니다. 외로움에서 고독으로! 이렇게 함으로 주님을 향해 더 열린 귀와 마음을 가진, 더 깊은 영성을 가진 그리스도인이 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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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4-28
  • [소강석 칼럼] 분노시대를 껴안을 가슴
    2006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당시는 노무현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이었다. 그리고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사건 등으로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되고, 더구나 미국이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대해서 달갑지 않게 생각했던 때였다. 그래서 짧은 만남이지만 정상회담 이전에 우리나라 대통령께 조금 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부지런히 영어 연습을 했다. 부시 대통령 에게 말하고자 한 요지는 이것이었다. “미국이 보기에는 한국이 미국과 멀리하면서 친 북한 정책만 펴는 것처럼 오해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일본과의 긴장 관계를 조성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대통령이 오시면 융숭하게 대접해 주시길 정중하게 부탁드립니다.” 이런 영어를 달달 외워서 갔다. 그런데 짧은 만남이었기에 그 분 앞에서 준비한 영어가 거의 생각나지 않았다. 그 대신 본능적으로 손짓, 발짓하면서 막장 영어를 막 쓰고 가슴까지 고개를 숙이며 감사의 인사를 하였다. 이 모습을 보고 동행한 아들이 나를 조롱하고 구박하는 것이다. “아빠는 한국을 대표할 정도의 목사님이면서 체통도 없어요? 반미감정을 가지고 있는 젊은이들은 그렇게 하는 것 좋아하지 않아요. 자존심을 지키셔야죠.” 이렇게 말하는 아들 앞에서 내 모습은 더 초라하고 작아 보였다. 하지만 나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아빠라고 해서 자존심이 없고 체통이 없겠느냐. 그러나 나의 힘없고 작은 조국의 안녕과 민족의 평화를 위해 서라면 소아적인 자존심이나 체통 같은 것은 언제든지 벗어 던질 수 있단다. 국민의 생명을 지켜내는 일이라면 구두라도 핥겠다.” 당시는 거의 준 전시체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계속 북한이 핵 실험을 했고, 부시는 김정일 위원장을 악의 축이라고 명명하며 전운이 감도는 삼엄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물론 한미관계와 외교관에 있어 다양한 견해가 있겠지만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시키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이다. 그리고 아들에게 그 말을 했던 것은, 지금 아빠가 부시에게 아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라도 해서 대한민국의 전란을 막고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애쓰고 몸부림을 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해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당시로서는 상황적 최선을 다했다고 본다. 부시 대통령을 만나고 난 후 이러한 이야기를 목양칼럼에 쓴 적이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나의 글을 읽고 트위터를 비롯해 포털 사이트에 서 소강석이는 종미주의자라고 비난하면서 자존심도 없고 미국에 아부나 하는 생각 없는 목회자인양 비아냥거린 적이 있다. 그 분은 목회자의 아들인데 항상 대형교회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현 시대를 규정하는 단어들 중에 하나가 분노 사회라는 말이다. 정치 지도자들 뿐만 아니라 학계, 문화예술계 등도 분노하라고 외친다. 물론 사회의 불의와 부정, 모순, 불평등에 대해서는 분노하고 싸워야 한다. 그러나 반대를 위한 반대, 분노를 위한 분노가 되어서는 사회적 공멸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상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해보면, 선택적 지각과 확증편향성 때문이다. 자기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대로만 믿는다. 그러니까 아무리 이치에 맞는 이야기를 해도 삐딱하게 보고 균형적인 사고를 안 하려고 한다. 이런 사람은 계속해서 자기 이념과 진영의 패러다임에 갇혀 호미질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젠 호미적 사고에서 벗어나 하늘을 나는 드론적 사고를 하며 폭넓게, 멀리 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본질을 위해 싸우고, 믿음을 위해 싸우는 것에 대해서는 검투사의 심장을 가져야 하지만, 사람을 바라보고 품을 때는 정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분노를 부추기는 사회 속에서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구하는 데는 검투사와 같지만, 국민을 하나로 통합하고 화해하는 일에는 정원사와 같은, 분노시대를 껴안을 가슴을 지닌 지도자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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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4-28
  • [함께 생각해 봅시다] 무엇이 다른가?(2)
    천주교는 구원관마저 기독교와 달라 종교는 뭐든 선을 행하면 구원받는다고 기독교와 천주교는 무엇이 다른가. (2)기독교와 천주교는 신앙의 기준이 다르다. 기독교에서는 신앙의 기준이 성경이라고 믿고 있다. 신구약 66권만이 신앙의 기준이라고 믿는데 천주교의 신앙의 기준은 성경이 아니라 교황의 가르침이다. 기독교에서는 누가 뭐라고 해도 성경을 따르는데 천주교에서는 누가 뭐라고 해도 교황의 가르침을 따른다. 천주교에서는 교황 무오설을 믿고 있다(1870년부터). 교황의 교시엔 전혀 오류가 없다는 뜻이다. 천주교에서는 성모 마리아가 예수님처럼 부활하여 승천했다고 믿고 있다. 어째서 그렇게 믿는가. 성경엔 그런 말이 없지만 교황청에서 그렇게 믿으라고 시달했기 때문이다(1950년). 이같이 기독교와 천주교는 신앙의 기준이 전혀 다르다. (3)기독교와 천주교는 성경관이 다르다. 기독교에서는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66권만이 성경이라고 믿는데 천주교에서는 66권외에 토비아서 등 7권을 더 참가하여 성경을 73권이라고 한다. 실은 7권은 정경이 아니고 가경(외경)이다. 그럼에도 천주교에서는 1546년부터 교황청이 가경을 정경으로 공인하였다. 그 이유는 연옥설 등 그들의 교리를 정당화하기 위해서였다. 천주교에서는 교황청의 결정은 뭐든 그대로 믿고 따른다. (4)기독교와 천주교는 구원관이 다르다. 기독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이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고 믿는데 천주교에서는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얻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선행이 병해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심지어 하나님의 은혜보다 인간의 선행을 더 강조하는 경향마저 있다. 실례를 든다. 고 김수환 추기경이 도올 선생과 함께 TV에 출연했다. 거기서 김 추기경이 말하기를 “기독교를 믿든지 불교를 믿든지 무슨 종교를 믿든지 행실만 선하게 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이렇게 말했다. 이건 내가 그 시간에 직접 보고 들었다.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힌다. 2014년도에 교황 프란치스코가 한국에 와서 더 어이가 없는 말을 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기에 예수를 믿지 않아도 심지어 무신론자라도 선을 행하기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말했다. (크리스찬다이제스트 25페이지) 이같이 기독교와 천주교는 가장 중요한 구원관마저 이만큼 다르다. 그 때문에 필자는 처음 서두에서 기독교와 천주교는 흑과 백이 다르듯 아니 그보다 더 다르다는 말을 했다. 독자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지요. 함께 생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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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4-28
  • [이상규 교수의 부산기독교이야기 5] 알렌(H. N. Allen)의 눈에 비친 부산
    항구도시 부산은 한국현대사를 오롯이 품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작은 어촌인 ‘부산포’에 불과했으나 세월과 함께 중요한 포구로 자리 잡았다. 임진왜란을 겪은 뒤 부산은 대일본 교섭창구였고, 강화도조약으로 부산은 개항장이 됐다. 이후 일제 강점기에는 대륙침략의 교두보가 되어 해양과 대륙이 만나는 접점이기도 했다. 이런 여정에서 부산은 선교사들을 포함한 이국인들이 조선으로 향하는 첫 기착지였다. 이국인들은 대체로 요코하마를 거쳐 부산으로 입국하였고 다시 제물포를 거쳐 입경했다. 초기 선교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비행기가 없던 시절의 당연한 여정이었다. 광복동 롯데점 맞은편 남포동 5번 출구쪽에는 부산을 거쳐 간 초기 선교사들을 기념하는 기념석이 세워져 있다. 이 기념석 설치를 위해 부기총과 박수웅 목사가 많은 수고를 했고 부산 중구청은 이를 지원했다. 필자는 기념석에 들어갈 글을 썼다. 내용이 길다하여 줄였지만 부산이 선교사들의 첫 기착지라는 점을 밝혀 두었다. 부산을 거쳐 간 첫 선교사가 바로 미국북장로교회의 알렌(Horace Newton Allen, 1858-1932)이었다. 상하이에서 일하던 알렌이 1884년 9월 14일 상해를 떠나 그날 부산을 거쳐 재물포로 입국하여 9월 20일 서울로 갔는데, 그는 본래 중국 상해에 파송된 선교사였다. 그가 오하이오주 델라웨어를 떠나 임지인 중국으로 떠난 날은 1883년 8월 20일 월요일이었다. 9월 4일에는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일본 요코하마로 향했고, 상해에 도착한 날은 10월 11일 목요일이었다. 중국에 온지 채 일 년 안 되 그는 임지를 바꾸어 1884년 9월 14일 조선으로 향하게 된다. 그날 일기에서 이렇게 썼다. “나는 단신으로 상해를 떠나 난징(S.S. Nanzing)호로 조선으로 향했다. 멀미약 브롬화물을 먹지 않았더니 배 멀미가 심했다. 나가사키(長崎)와 부산 중간 해상에서 태풍을 만났다. 많은 작은 선박이 태풍에 휩쓸려 유실되었지만 우리가 탄 난징호는 무사했다. 부산은 완전히 왜색(倭色)도시이다. 도시 변두리로 가지 않고는 조선 사람이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이다. 일본인은 아주 우아한 흰 건물을 영사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서양 사람으로는 부산세관장 로바트(W. N. Lovatt), 항무관(港務官) 파스튜니우스(Pasthunious), 레이놀즈(Reynolds), 저지(Jersey), 크로브스(Crobs)씨와 그의 이탈리아인 보조원 정도이다. 부산은 북로전선(Northern Telegraphic Lines)과 연결되어 있다. 부산은 훌륭한 항구이다. 그러나 전기가 없고 편의시설이 없다.” 이것이 알렌이 본 부산의 첫 모습이었다. 그가 본 곳은 부산항 중심지였는데, 부산은 왜색도시라는 것이 그의 관찰이었다. 9월 20일 토요일 제물포에 도착한 그는 22일 월요일 오전 8시 서울로 향했고, 공식적으로 조선에 거주하는 첫 선교사가 된다. 그런데 그는 조선에 온지 2주가 지난 10월 1일 북장로교선교부 총무 엘린우드에게 도착보고 서한을 보내는데, 이 편지에서 부산에 대해 이렇게 썼다. “지난 가을에는 아담한 증기선이 상해와 조선의 몇몇 개항장을 운행했습니다. 우리가 처음 도착한 곳은 조선 남쪽의 일본인 항구인 부산입니다. 그곳에는 지난 200여 년 동안 지속된 일본 무역 거류지가 있다는 것 외에 특별히 흥미 있는 곳이 없습니다. 지금은 세 채의 외국식 가옥과 외국 세관 직원들이 있습니다.” 10월 8일자로 엘린우드에게 쓴 편지에서도 부산을 언급하는데 왜색도시라는 점을 말하고 있다. “약 한달 전 상해를 떠나 조선에 왔습니다. 부산과 제물포를 봤는데, 선교 사역에 그다지 중요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부산은 일본 도시이고 제물포는 외국인 거주지로 눈에 뜁니다.” 이 편지를 쓰고 3일이 지난 10월 11일 알렌은 상해에 남아 있던 가족을 데리러 상해로 향했다. 이번에도 난징호를 타고 나가사키를 거쳐 17일 상해에 도착했고, 20일 부인과 아기, 중국인 유모를 데리고 조선으로 향했다. 조선으로의 귀환은 역순이었는데, 부산은 조선으로 향하는 관문이었다. 그는 1884년 9월 내한하여 선교사로 일하는 한편, 주한미공사관의 서기, 대리공사, 전권공사 등을 역임하였고, 1905년 5월 루즈벨트에 의해 공사직에서 해임되어 귀국할 때까지 21년간 한국에서 선교사 혹은 외교관으로 살았기 때문에 한국현대사의 산 증인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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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규교수의 역사탐색
    2017-04-10
  • [목회자 칼럼] 전쟁과 평화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의 황태자부부가 한 세르비아 청년에 의해 저격되었다. 이 사건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지배를 놓고 세르비아와 오스트리아와 갈등이 첨예된 가운데 일어난 것이다. 이 두 나라의 배후에는 범슬라브주의를 앞세우는 러시아와 범게르만주의를 앞세우는 독일의 제국주의가 있었고, 비스마르크 이후 유럽의 맹주로 군림하는 독일을 견제하려 했던 영국과 프랑스제국주의가 자리 잡고 있었다. 결국 이 사건을 계기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3,000만명에 이르는 사상자를 내었다. 그러나 이 비참한 전쟁의 교훈을 제대로 읽지 못한 유럽에서는 불과 한 세대가 지나기도 전에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전 세계가 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끌려들어가면서 약 6억명이 목숨을 잃는 전무후무한 비극을 경험하게 되었다. 돌아보면 세계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쟁이 일어날 때, 거기에는 항상 명분과 정당성이 강조되었다. 정치인들은 영토, 민족, 이념, 자국의 안전, 전략적 가치 등등 나름대로 명분을 내세우면서 이 전쟁이 꼭 필요한 것처럼 선전을 했지만, 대부분이 해서는 안 되는 전쟁들이었다. 어거스틴이 게르만족의 침입을 방어하는 전쟁을 “의로운 전쟁”(bellum iustum)이라고 칭한 이후 서양제국들은 전쟁을 일으킬 때마다 이 용어를 사용하였지만, 대부분이 ‘의로운 전쟁’이 아닌 ‘불의한 전쟁’이었고, ‘거룩한 전쟁’이 아닌 ‘추악한 전쟁’이었다. 그리고 그 전쟁의 피해자는 군인보다도 오히려 선량한 시민들이었다. 대개 전쟁이 발발할 때는 어떤 특정한 사건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지만, 대부분은 그보다 본질적인 동기를 갖고 있다. 그것은 호전적인 정치인들이고 평화의 가치를 모르는 극우세력들이다. 평화주의자들의 목소리가 작아지고, 이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거짓말과 선동이 난무하고 언론이 여기에 부화뇌동하면서 일반국민들도 점차로 분별력을 잃어가게 된다. 지금 세계에서 가장 전쟁의 잠재적인 가능성을 가진 곳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이다. 남한과 북한은 지구상의 유일한 한민족이지만 이념으로 대립하면서 총부리를 겨누고 있다. 남한과 북한은 적이면서 동시에 하나가 되어야할 민족이다. 이 두 가지의 어느 하나도 무시할 수 없지만, 어느 쪽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생각은 달라진다. 북한은 말할 나위도 없고, 우리나라 안에도 호전적인 사람들이 많다. 북한을 철저한 적으로만 여길 뿐, 같이 공존해야할 평화의 대상자로 여기지 않는다. 특별히 기독교인들 중에는 일반인들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북한정권을 마귀집단으로 치부하는 사람들도 많다. 마귀집단일진대 이것은 전쟁과 타도의 대상이지 타협과 대화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우리국민 모두는 한반도에서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분명한 원칙에 서있어야 한다. 전쟁도 불사한다는 사고방식에서는 작은 군사적 충돌이 전면전으로 발전할 수 있다. 그러나 전쟁은 우리와 우리 자녀세대 모두를 불행하게 하는 길이다. 우리가 전쟁하지 않으려면 평화공존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것은 끊임없이 대화와 교류를 해나가는 것이다. 상대방을 대화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지혜를 모아 교류의 채널을 확대해 가야 한다. 그동안 정부는 군사적인 정치적인 사건을 빌미로 민간교류를 단절시키는 일을 반복했다. 그러나 장기적인 평화통일을 위해서는 정치적인 사안과는 별도로 민간교류의 창구는 닫는 일이 없이 지속시켜야 한다. 한국교회는 평화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누구보다도 깊이 생각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평화의 왕이시기 때문이다. 독일교회가 동서독 갈등의 화해자로 서면서 평화로운 통일의 주역이 된 것 같이, 한국교회도 한반도에 내재하는 무수한 갈등의 화해자로 서면서, 평화로운 통일을 이루는 평화의 사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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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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