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Home >  오피니언 >  칼럼
실시간 칼럼 기사
-
-
[교회학교를 살린다] “신앙의 집에 활동을 확보하라 1”
-
-
우리는 신앙의 집인 교회에서 다음세대에게 가장 필요한 기독교교육의 요소들로서 시간과 공간, 활동에 주목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많은 경우, 사람들이 필자에게 교회학교의 부흥을 위해서 문의해오는 분야는 거의 100% ‘활동’에 관한 것이다. 흔히 기독교교육을 공과와 동일시하거나 어떤 교육프로그램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학교를 살리자고 하면 너도 나도 뭔가 획기적인 아이템이나 예배 형식, 교육프로그램, 훈련 프로그램, 효과적인 전도방법 등을 떠올리곤 한다. 유행하는 프로그램에 사람들의 눈과 귀가 쏠리게 된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가져온 프로그램들이 생각보다 정작 교회의 현실에 맞지 않아 난감한 경우도 많다. 그리고 또 다른 프로그램을 기웃거리게 된다. 사실 이런 것들은 신앙교육에 있어서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그것보다는 보다 폭넓은 장기적인 교육적 안목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것이 바로 시간과 공간의 인프라가 먼저 준비된 뒤에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활동과 변화이다.
새해를 맞이하며 내가 소속된 성민교회에서는 다음세대들에게 신앙의 집을 만들어주고자 노력하면서 무엇보다 먼저 시간과 공간의 배치를 고민하고 더욱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경했다. 먼저 다음세대를 위한 최적의 배려로서 그들이 교회오기 편한 시간대로 예배시간을 과감히 바꾸고 좀 더 오랜 시간 머물 수 있도록 놀이 공간, 체육시설 등을 제공하였다. 그러자 점차 흥미로운 일이 벌어졌다. 아이들이 그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오랜 시간 머물며 자유롭게 자신들만의 놀이와 활동을 만드는 것이었다. 어린 아이들은 작은 집 모형 하나만으로도 재미있는 놀이와 게임을 개발해냈고, 청소년들은 어른들 틈에서 탁구를 치며 세대 간에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다. 다음세대를 위한 시간과 공간의 배려가 변화의 시작이 된 것이다.
기독교교육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학문이다. 미국 프린스턴신학교에서 기독교교육을 가르치는 오스머 교수는 기독교교육의 목적을 “신앙이 일깨워지고, 지원받고, 도전받을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즉, 기독교교육이란 신앙이 형성되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일이다. 각 부서에서 이루어지는 공과와 교육프로그램은 그중 한 부분이며 이것보다 더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은 전교회적인 그리고 가정 전체가 신앙의 시간과 공간의 환경을 만드는 일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활동은 교육부서에서 주일 한 시간 안에 이루어지는 잘 고안된 프로그램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활동은 말 그대로 ‘생명체의 활기찬 움직임’이다. 이것은 시간과 공간의 환경이 형성되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아이들에게 놀이공간과 체육공간을 마련해주고 언제든 환대해주었을 때, 아이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그 공간에 오래 머물며 다양한 세대 속에서 함께 공동체 활동을 누리는 것이다. 함께 시간과 공간을 나누고 누리며 이루어지는 소소한 활동들이 모두 기독교교육이 되는 것이다.
나의 어머니는 교회에서 밤새 기도하고 새벽에 집에 들어오시면 제일 먼저 자고 있는 사춘기 딸의 발을 잡고 기도해주시곤 했다. 사춘기 자녀를 키우는 이제야 나는 그 작은 신앙적인 활동이 자녀의 신앙을 형성하는데 가장 큰 힘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나도 어머니의 모범을 따르게 되었다. 다음세대가 머물고 싶은 신앙의 집을 만드는 것은 따뜻한 어머니의 품과 같은 시간과 공간의 배려가 있는 교회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그림 속에는 분명히 우리를 저절로 웃음 짓게 하는 아이들의 즐겁고 활기찬 움직임이 있을 것이다.
-
2017-03-23
-
-
[중독칼럼] e스포츠 프로게이머 사업이 양성화 되고 있는 시점에서 교회는 언제까지 음성화 해야하는가? (1)
-
-
지금 현재, 서울과 광주에는 프로게이머 가능성이 있는 청소년들을 돈으로 사는 사업채들이 성행하고 있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젊은 중고생들을 돈으로 사서 숙소만 제공하고 키워서 팔아먹는 형식, 광고 수익을 내는 형식으로 그들을 이용 중 이랍니다. 그리고 실력이 없으면 버려지는 인생들이 99.99% 입니다. 또한 게임 종류가 바뀌거나 군대 갔다 오면 나이 때문에 갈 곳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게임 중독은 또 다른 중독으로 빠지고 마는 악순환의 삶을 살게 됩니다.
이제 교회도 e스포츠 문화에 교회는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초등학교 졸업자 중 약 10%의 학생들의 꿈이 프로게이머인 세상에 접어들었습니다. 아이들의 문화가 바뀌었습니다. 우리 자녀들의 문화, 통제가 되지 않는 시대에 접어 들었습니다. 더 자극적 것에 많은 것을 잃어버리기 쉬운 시대 문화에 맞서 우리 부모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현 시점과 미래를 위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이제는 양성화해야할 시점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예레미야 29:11
쓰나미처럼 덮치는 중독 문화에 뒤덮여 망하는 것이 아닌, 서핑 하여 그 에너지를 전환 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화 해야합니다. “거룩한 에너지로 전환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방 안에 틀어박혀 은둔 생활하는 N포 세대들에게 꿈과 희망을 제시하여야 합니다.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마11:19
교회는 더 낮아지고 문턱을 낮춰서 더럽다고 피할 문제가 아닙니다. 더 이상 음성화된 문화가 아닌 밝은 빛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N포세대를 위한 선교의 정의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시점입니다.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를 만났던 과정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할렐루야 축구팀”을 아시나요? 골목에서 축구하는 아이들에게 면박을 주던 30년 전 문화 속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스포츠 스타들이 이제는 선망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무릎으로 기도하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스포츠 스타처럼 키워야 합니다. 방 안에 틀어박혀 은둔 생활하는 N포 세대들에게 꿈과 소망을 심어주는 사역을 하는 것이 교회의 목적입니다. 사업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
2017-03-23
-
-
[은혜의 말씀] 초대교회(행 9장 31절)
-
-
사람이 옷을 입을 때 첫 단추가 중요하고 농사를 지을 때도 첫 열매가 중요합니다. 교회도 초대교회가 있습니다. 사도행전적인 교회, 그 원형적인 처음교회의 모습은 과연 어떠했을까요?
예루살렘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날마다 모이기를 힘쓰고 말씀을 배우며 서로 교제하고 기도하며 예수님을 증언하였습니다.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함께 합니다. 주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정치, 경제도시로 유대교에서 출교된 자들이 살아가기 힘든 곳입니다. 그러하기에 교회의 성도들은 서로가 가진 것을 나누고 도와가며 더불어 살아갑니다. 바울과 바나바로부터 개척교회 안디옥이나 고린도, 에베소 등으로 부터 연보를 받기도 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에 눌린 자를 자유케 하였고, 예수님의 복음을 전함으로 인해 협박과 핍박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옥에 갇혔으나 놓이는 신비한 기적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스데반은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의 주되심을 전하다 돌에 맞아 순교하였고 그리스도인들은 사울과 유대인들의 점점 심해지는 박해와 핍박으로 인해 흩어져야만 했습니다. 이 때문에 복음은 더 멀리 여러 지방 곳곳으로 전파되게 됩니다.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파되고 에티오피아 내시는 복음을 듣고 세례를 받았고, 바나바와 회개한 바울로 인해 소아시아와 헬라 그리고 로마에까지 복음이 전파 됩니다. 죽음을 각오한 전도의 열정입니다. 말씀을 가르치며 교제하고 기도하기를 쉬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진정 구세주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기에 그 분의 곁에서 배운 가르침과 사랑을 전하기에 그들의 목숨조차 아까워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성령님은 함께 해주셨고 믿는 자들이 많아져 이들이 지나는 곳곳에 개척교회가 탄생하게 됩니다. 주님과 동행한 사도들의 목숨을 건 사역위에 복음은 생명력을 갖고 널리 퍼져나가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킨 것입니다. 모이기를 힘쓰고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치며 기도하고 교제함으로 교회는 든든히 서 갔습니다.
“그리하여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여러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행9장 31절
주님께서 피 흘려 세우신 교회입니다. 교회 안에서 미워하거나 판단하거나 주장하거나 다투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성숙되고 성화되어 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주께 연합된 우리는 초대교회 뜨거운 열정의 첫사랑을 회복하고 초대교회 정신을 배워 예수님께서 머리 되신 교회를 통해 영성과 정성과 야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건강하여 든든히 서가는 생명력 넘치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셔서 이 시대에 쓰임 받는 한 사람, 행복한 가정, 건강한 교회, 선교하는 교회 그래서 주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살아 움직이는 생명력 넘치는 교회와 성령 충만함으로 날마다 성화되어 가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
2017-03-23
-
-
[교회법률상식] 헌법재판소 구성은 반드시 9인이어야
-
-
[질의] 목사님은 교회법 전문 상담자이신데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어떻게 될지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부산 원로 L목사)
[답] 필자는 교회 법률 상담자로서 특이하게 최근 국가의 헌법재판소의 심리와 결정에 관한 예외의 질문을 받고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해당 법조문은 법조인들이 잘 아는 것이니 법적 근거 제시는 생략하고 법이 정한 법리만 정리하여 이해를 돕고자 한다.
1. 헌법재판소의 구성 요건에 대하여
교회 재판에서 최종심인 총회 재판은 15인이 구성 정원으로 법이 규정한바 만약 1명이라도 결원이 발생하여 14인으로 구성된 재판국으로는 어떠한 심리도 판결도 할 수 없는 것이 교회법의 법리이다. 그래서 총회가 파한 후에 결원이 발생하면 예외적으로 공천부가 아닌 총회장이 임명하여 차기 총회 시까지 시무하게 한다.
결석과 결원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결석의 경우는 구성원 15인 중 11인 이상이 출석하면 심판을 할 수 있으나 결원의 경우는 단 1인만 발생하여도 판결은 물론 심리조차도 할 수 없는 것이 법리이다. 그 이유는 재판의 엄격한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하물며 한 국가의 헌법상 위헌에 관하여 최종 심판을 하는 헌법재판소의 구성원 정수가 9인으로 법에서 정해져 있는바 2017년 1월 17일 자로 박한철 소장의 임기가 만료되어 재판관 1인이 결원된 상태 그대로 8인이 심리하여 선고한다면 기각이 되어도 인용이 되어도 효력이 없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헌법재판소는 법률적 구성원 1인의 재판관이라도 임기가 만료되어 결원이 발생하면 임기 만료 즉시 심리를 중지하고 만료된 재판관의 후임자를 임명받아 반드시 법정 정수인 9인으로 구성하여 심리해야 한다.
그 이유는 교회 재판에서 보듯이 결원과 결석은 근본적으로 달라서 만일 2인의 재판관이 결석일 경우에는 7인 이상의 재판관이 출석하면 심리와 판결이 가능하지만 법이 정한 구성원의 정수는 9인으로 정하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만일 8인으로 구성된 헌법재판소가 지금 이대로 심리와 판결을 한다면 그야말로 헌법재판소의 중대한 흠결 구성으로 위헌적인 재판이 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헌법재판소 재판관 9인의 정원 구성은 3권 분립의 원칙에 의하여 행정, 입법, 사법의 상징인 대통령, 국회, 대법원에서 각 3인씩 지명하고 임명함으로 3권 분립의 취지에 맞게 균형과 견제를 통한 공정한 재판을 도모함이 마땅할진대 국회와 법원에서 임명한 제판관은 3인씩인데 대통령이 임명한 재판관은 2명만으로 심판을 한다면 헌법재판소 구성의 대원칙이 무너졌을 뿐 아니라 재판의 공정성이 무너지는 또 하나의 심각한 위헌적인 재판이라는 말이다.
2. 탄핵 소추 절차상의 문제점에 대하여
교회 재판에서도 고소 절차는 반드시 죄증 설명서에 증인, 물증, 서증 등이 갖추어진 고소장을 접수하여 심리한다. 뿐만 아니라 세상 법원에서도 증거제일주의로 재판을 하는 것이 법치주의 근본이 요, 대법원은 증인은 물론 원피고도 소환하지 아니하고 철저히 법률심으로 최종 판결을 한다.
하물며 대통령의 탄핵 소추권을 행사한다고 하는 국회가 대통령의 헌법상 법률 위반 증거 조사나 절차도 없이 탄핵소추안을 규모의 숫자와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결의하였으니 팔순의 촌뜨기가 생각해도 과연 저들이 법치 국가인 대한민국의 국회가 맞는지 심히 의심스럽다. 박 대통령이 헌법을 위반한 죄가 무엇인지 국회는 이제라도 증거를 중심으로 제시해야 한다. 일반적 법률 위반을 헌법 위반 운운하면서 몰아붙이는 억지는 성숙하지도 적절하지도 않다.
3. 국회와 헌법재판소의 심리상의 문제점에 대하여
교회 재판에서도 죄증 설명서의 각 항에 대하여 하나하나를 심리하고 일의제의 원칙에 따라 각 항마다 합의 투표로 결정한다. 그런데 금번 국회에서 탄핵 소추안을 의결할 때와 헌법재판소의 심리는 법적 성격이 각각 다른 13개 항의 탄핵 사유에 대하여 각 항마다 심의 표결을 하지 않고 일괄로 묶어서 표결하고 심리를 했다고 하니 일의제의 원칙상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위헌적이다. 뿐만 아니라 헌법 재판소는 180일의 재판 기간이 법에 정해져 있는바 아직도 120일의 재판기간 여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에게 쫓기는 것처럼 정당한 사유를 들어 제출한 재판관 기피 신청도 거부하고 피청구인에게는 중요한 열쇠가 되는 다수의 증인 채택 신청도 거부하였으며 특히 이정미 재판관의 임기 만료일인 2017년 3월 13일 이전에 기어코 선고하려는 의지를 피력하고 기정사실화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이것 역시도 재판의 공정성 훼손에 다름 아니다.
4. 결론
헌법재판소는 헌법에 관계된 판결을 위한 재판임은 상식에 속한 법의 정한 바이다. 박 대통령은 대한민국 헌법의 원리나 원칙을 부정하거나 반대한 사실이 없고 현재까지도 뇌물을 얼마 받았다는 수사의 결과도 나타나지 않았다. 옹색하게 “뇌물 공범”이라는 굴레를 씌운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런데 국회는 혹 단편적인 법률 위반이나 부적절한 업무 집행에 대하여 확증도 없이 언론의 의혹 보도 심증만으로 특검의 수사도 시작하기 전에 헌법 위반이라고 주장하면서 탄핵 소추권을 행사하였다. 본건은 세상 법에 문외한 필자가 생각해 보아도 마땅히 기각도 아닌 각하를 해야 할 사건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 이후의 문제는 언론과 국회가 국가의 위기와 국정의 혼란과 경제적 손실 등에 대한 책임을 통감해야 할 것이다.
-
2017-03-23
-
-
[목회자칼럼] 같아 보이나 다르다(2)
-
-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이지만 심각한 우려를 금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필자는 고신대학교 신학과에 입학하여 공부하던 중 대한민국 남자라면 당연히 해결해야 할 병역 의무 즉 군복무 문제를 생각 할 기회가 왔다. 중고등학교를 기독교 학교(김해 진영 한얼중고등학교)에 다닌 덕분에 어느 해 추수감사절 예배에 김해 공병학교 군목(대위)께서 강사로 오셔서 설교하였다. 계산 해 보니 50년도 더 됐으므로 그때 들었던 설교의 내용은 물론 지금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출중한 외모에 대한민국 장교 정복을 입고 설교하던 군목님의 그 모습은 감수성 예민하던 시골 소년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어린 마음에도 “대한민국 남자로써 국방의 의무는 당연히 감당해야 하는 것, 기왕이면 저 멋진 목사님처럼 <군목 軍牧>으로 가야지!” 하면서 꿈을 품기 시작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시편 37:4을 통하여 “주께서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라”고 약속해주셨는데 내가 고신대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아직 우리 대학에는 정부에서 허락하는 정규 군종 장교 양성 과정이 없었다. 나의 소박한 해석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나의 소박하지만 확고하기 그지없는 그 소원을 이루어 주시고자 서둘러서 국방부에서 우리 대학으로 ‘심사단’을 내려 보내 엄격하게 실사(実査)를 한 후 특히 일제시대 <신사참배 반대운동>에 순교정신으로 저항하였던 우리 고신 총회의 역사적 유산을 귀하게 발견하여 마침내 「국방부 군종장교 후보생 양성 지정대학」으로 인가를 받게 하셨다.
그 결과 우리 대학은 첫 시험에 응시하여 당당 여섯명이 합격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덕분에 나는 대학 2학년 때 서울을 처음 가보는 놀라운(?) 경험을 하였다. 국방부 청사, 감리교 신학대학, 수도육군병원 이렇게 세 곳을 거치면서 <군종장교후보생 시험>을 치루었다. 대학과 신학대학원 7년 과정을 졸업하고서 결국 우리 대학은 정규과정 군종장교로서 4명(김철봉, 류영기, 정병재, 최갑종)이 광주 상무대로 입교하여 무려 만 4개월 동안 정말 길이 길이 추억에 남을 만한 강렬한 <장교 군사 훈련>을 이수하였다. 우리는 군종장교(군목)로서 임무를 수행할 자원들임에도 대한민국 국방부는 ‘장교의 자질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하여 군목으로 사역하게 될 우리들을 조금도 배려해주지 않고 <육군보병학교>에 위탁하여 사관생도들 틈에 섞여서 훈련을 시켰다. 특히 한 주간 과정의 <유격 훈련>을 사관생도들 조직 속에 끼워 넣어 20대 초반의 청년 장교들이 이수하는 강도 높은 수준을 일괄적으로 적용시키는데 내 평생 그런 극한 상태의 신체적 훈련은 다시는 경험할 일이 없을 것이다. 정말 힘들었고, 그 과정들 하나 하나가 매우 위험하였으므로 “아, 이러다가는 장교계급장을 어깨에 달아 보기나 하겠는가?”하고 불안한 마음이 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마침내 그 첩첩산중의 고된 장교 훈련이 다 끝나고 우리는 ‘육군 중위’로 임관하여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군종장교가 되었다.
주후 1977년 8월 13일, 나는 부산에서 서울로, 그리고 서울 마장동에서 그 추억속에 깊이 새겨져 있는 파란 색상의 시외버스 <영종여객>에 몸을 싣고 강원도 철원에 위치하고 있는 부대로 향하였다. 의정부와 포천을 지나면서 부터는 비포장 도로였다. 그러니 버스는 속력을 제대로 낼 수 없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강원도 산악지대 계곡 길이었다. 내가 소속될 부대 본부에 도착하니 벌써 해가 저물었고 산 중에는 사방으로 어둠이 밀려오고 있었다.(계속)
-
2017-03-23
-
-
[성서연구] 영광을 얻는 비결(요한복음 12장 20-24절)
-
-
예수님께는 적도 많았지만 열광하는 무리도 많았습니다. 수만 명이 예수님께 모여들 때도 있었고(눅 12:1), 심지어는 예수님을 임금으로 추대하려고까지 했습니다.(요 6:15) 요즘 대선에 뜻을 둔 후보들이라면 이런 예수님의 인기가 매우 부러울 것 같습니다.
본문 말씀도 예수님의 인기를 보여줍니다. 명절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는데, 그 중에는 유대교로 개종한 헬라인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예루살렘에서 예수님 소문을 들었고, 예수님을 만나길 원했습니다. 그들은 빌립에게 가서 뜻을 전했고, 안드레와 빌립은 예수님께 전했습니다. 아마 제자들은 예수님의 소문이 외국인들에게까지 퍼진 것을 알고 매우 흥분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기뻐하시면서 그들을 만나주실 것으로 기대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라고 말씀하실 때만 해도 <예수님께서도 기뻐하시는구나. 이번 기회에 예수님의 소문이 이방인들에게 널리 퍼지면 우리에게 더 좋은 일이 있을 거야.>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그 다음 말씀이 문제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영광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영광도 전혀 다름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영광은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고 박수를 받는 게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영광이란 <많은 열매를 맺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열매를 맺는 비결은 <죽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헬라 사람들을 만나는 데 관심이 없으셨고, 제자들의 인간적인 기대는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영광을 얻는 비결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고 박수를 받는 식의 영광을 추구합니다. 정치인들뿐만이 아니라, 목회자와 성도들도 그렇습니다. 이러다 보니 예수님의 마음에서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여기 심각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6장 24절에서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도 십자가를 지고 따르며 죽을 것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일시적으로 존재하다 사라지는 허무한 영광이 아닌 영원한 생명의 영광을 얻길 원하신 것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십자가를 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콘스탄틴 대제가 십자가 깃발을 들고 나가 승리한 이래로 십자가는 승리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본래 거친 나무였던 십자가 대신에 아름답게, 값지게 장식된 십자가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십자가는 더 이상 죽음의 형틀이 아닌 승리의 상징으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십자가를 지려는 사람들은 없어지고 십자가로 승리하려는 사람만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교회는 십자가 신앙을 벗어나 영광의 신앙으로 옮겨가게 되었고, 신앙은 기복적이고 세속적으로 부패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진정으로 영광을 얻는 방식이 아닙니다. 먼저 십자가에서 죽은 후에 부활하고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영광을 얻는 길입니다. 사순절을 보내는 우리가 할 일은 십자가를 지고 죽는 것입니다. 고집, 욕망, 교만, 정욕을 다 죽여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참 영광을 얻게 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고 십자가를 지는 문제를 묵상해야 할 때입니다.
-
2017-03-23
-
-
[소강석 칼럼] 국화빵을 굽는 집사님
-
-
미금역 길가에서 여름에는 찰옥수수를 쪄서 팔고 겨울에는 국화빵을 구워 파는 집사님 부부가 있다. 두 분이 우리 교회 나오면서부터 제 식탁에 맛있 는 찰옥수수를 자주 공급해 주었다. 그래서 언젠가 가 봐야지, 가 봐야지 하면서도 못 가봤다. 정확한 위치도 몰라 분당 미금역을 지나치면서도 한 번도 못 들렀다.
그런데 한번은 근처 병원에 갈 일이 있어서 그곳을 찾아가봤다. 말로만 듣던 우리 교회 집사님의 노점을 찾아갔을 때 문득 가락동 개척교회 시절에 노점을 심방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곳에 가자 두 분이 깜짝 놀라며 너무 황송한 모습으로 대하시는 것이다. “목사님께서 어떻게 이 누추한 곳까지 오셨습니까?” 나는 두 분의 손을 잡고 인사 드렸다. “집사님, 진작 한 번 오고 싶었는데 이제 와서 죄송합니다. 꼭 들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노점에는 국화빵만 구워서 파는 것이 아니라 나의 설교 CD와 새에덴교회 주보를 잔뜩 갖다 진열해 놓고 찾아오는 손님과 지나가는 사람에게 설교 CD와 주보를 주면서 전도를 하신다는 것이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가슴이 울컥하여 콧등이 시큰해지고 눈시울이 젖었다. 그래서 성대가 상하여 잘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로 간절히 기도해 드렸다. 다른 손님들도 오고해서 오래 머무를 수는 없었지만, 감격하며 돌아와야 했다.
집사님은 차타는 곳까지 따라와 최고의 예우를 갖추며 배웅인사를 하였다. 나는 집사님의 거친 손을 잡고 “집사님, 열심히 사세요. 그리고 건강하세요.”라고 인사를 했다. 교회로 오는 길에 하나님께 이런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저에게 이런 성도를 붙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하나님을 사랑하고 목양일념으로 살아가겠습니다. 더 투명한 목회를 하며 검소한 삶을 살아가겠습니다.”
교회로 돌아와서 그 분을 누가 전도했는가 알아 봤더니, 손성경권사님이 하셨다는 것이다. 손권사님은 우리 교회에서 할렐루야 아줌마일 뿐만 아니라 춤 잘 추기로 유명한 천사 같은 권사님이시다. 20년 이상 권사님을 겪어 봤지만 설교 시간에 가끔 졸기는 하시지만 단 한 번도 불평을 하거나 누구하고 다퉈본 적이 없는 분이시다.
그런데 손권사님이 이 분들을 전도하는 일은 순탄치가 않았다. 매일같이 노점을 찾아가셔서 새에덴교회 한 번 나와 보시라고 했다는 것이다. “아저씨, 예수 믿으세요. 우리 새에덴교회 한 번 와 보세요. 우리 교회 목사님은 세계적인 목사님이세요. 우리목사님 설교 한 번만 들어보세요.” 그러자 하루는 노점을 하시는 집사님이 화가 머리끝까지 나버렸는지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다시는 오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얼마나 무서웠으면 권사님께서 한 달 동안 그 길을 다니지 않고 다른 길로 피해 다니셨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한 달 후에 또 찾아가서 전도를 하셨다는 것이다. 결국 두 부부가 감동을 받고 전혀 생짜배기로 우리 교회에 나오시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은혜를 받고 몇 년 후 십일조를 하는 집사님이 되셨을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그 집사님 부부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전도를 하고 교회를 홍보했는지 모른다. 그곳에 찾아오는 목사님에게까지도 주보를 주면서 교회를 홍보했다고 한다. 그 부부야말로 미금역에서 축복의 통로자일 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 오셔서 많은 복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국화빵을 굽는 노점 집사님 부부를 보면서 깨닫게 되었다. “아, 큰 기업 회장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축복의 통로자가 될 수 있구나. 비록 작은 노점이라 할지라도 거기서 주님을 왕으로 모시고 영업을 하며 복음을 전하면 그곳이 바로 축복의 진원이요, 통로가 되는구나. 그리고 그 진원은 사랑의 전도자 손성경권사님이 만들어 주신거야.”
-
2017-03-23
-
-
[함께 생각해 봅시다] 왜 영예로운 대통령은 없는가?
-
-
대통령 되겠다는 자는 많으면서
왜 영예로운 대통령은 없는지
우리 헌정사 70년을 뒤돌아보면 대통령 가운데 비운의 대통령뿐이고 영예로운 대통령은 한사람도 없다.
초대 이승만 전 대통령은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4.19형명에 밀려 하야한 뒤 하와이로 망명해 먼 이국땅에서 별세했다. 윤보선 전 대통령은 5.16쿠데타로 인해 물러났으며 최규하 전 대통령은 말 그대로 임시 대통령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장기 집권 끝에 지기 신복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시해 당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은 퇴임 후 반란죄, 수뢰죄 등으로 감옥살이를 했으며, 김영삼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외환위기 책임론과 관련해 검찰에서 조사를 받았고, 그의 차남은 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두 차례 구속되었다. 김 대통령은 초기에는 지지율이 최고에 달했으나 임기 마지막에 6%대로 추락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북송금 특검의 수사 대상이었으나 통치행위로 인정되어 소환되진 않았다. 그러나 그의 차남과 삼남이 알선수재와 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두 차례 구속되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박연차 사건과 친인척의 비리로 인해 검찰 수사를 받던 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형을 비롯한 친인척의 비리로 인해 불명예스런 일이 많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최순실 게이트 등 이런 저런 일들로 인해 임기 중 탄핵돼 대통령직이 파면되었다.
이같이 우리나라 대통령은 하나같이 불행한 대통령뿐이고 영예로운 대통령이 없다. 그 이유가 뭔가. 제도에 문제가 있는가. 사람이 문제인가. 아니면 국민이 문제인가.
우리는 비교적 짧은 기간 안에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룩하고 세계 속에 우뚝 솟은 민주국가로 발돋움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때로는 대통령이라도 잘못하면 감옥에 보내는 나라라고 자화자찬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점을 자랑하기에 앞서 우리나라는 어찌하여 대통령마다 하나같이 불행하게 되는지 근본적인 접근을 해봐야하지 않겠는가.머잖아 새로 대통령을 뽑는다고 해도 과거와 현재에 비춰 미래를 말한다면 그 대통령 역시 비운의 결말에서 벗어날 수 없을는지 모른다.
끝으로 한마디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해도 해도 너무하지 않는가. 나락에 떨어진 듯 비통함을 삭이고 있을 사람에게 “왜 청와대에서 빨리 나가지 않느냐?”하며 야권과 언론은 몰아세웠다. 한 언론인은 그들을 보고 “육식동물의 냄새가 난다”고 했다. 독자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지요. 함께 생각해봅시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2017-03-23
-
-
[이상규 교수의 부산기독교이야기 3] 부산을 방문한 첫 서양인은 누구였을까?
-
-
부산 앞바다와 오륙도가 훤히 보이는 연구실 창문 넘어 넘실거리는 바다 위에 한척의 배가 길을 떠난다. 어디로 가는 배일까? 무엇을 싣고 가는 것일까? 그 선박에는 누가타고 있을까? 이런 저런 의문과 함께 수많은 선박들이 오고갔을 부산 앞 바다를 보며, 잊혀진 역사를 생각하게 되었다. 수많은 이양선(異樣船)이 지나갔을 그 뱃길을 따라 이곳 부산을 방문한 첫 유럽인은 누구였을까? 오늘은 이 주제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보자.
이탈라아인으로 일본에서 선교사로 일했던 안토니오 쁘레네스띠노(Antonio Prenestino)는 한국 땅을 밟은 최초의 유럽인은 1578년 이전 조선에 온 포르투갈 상인들이라고 말한다. 포르투갈 상선 산 세바스치안(San Sebastian)호의 선장 도밍고스 몬떼이로(Domingos Monteirro)가 바로 그 사람이다. 그는 태풍에 휘말려 조선해안의 한 곶(串)에 닿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이 중국을 조선으로 착각했을 수도 있다는 주장도 있다. 그래서 기록으로 볼 때 실제로 조선을 방문한 첫 인물은 이보다 약 15년 후인 1593년 조선을 방문한 그레고리오 데 세스페데스(Gregorio de Cespedes, 1551-1611) 신부라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
그런데, 세스페데스가 조선으로 오게 되는 것은 그 연원을 따진다면 일본에서 선교활동 하던 예수회 신부들로부터 시작된다. 프란시스코 데 자비에르(Francisco de Xavier), 꼬스매 데 또레스(Cosme de Torres), 후안 페르난데스(Juan Ferna'ndez) 등 예수교신부가 1549년 일본에 도착하여 ‘전교활동’을 시작했는데, 이들은 이미 조선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래서 조선에 대한 소식은 1549년 7월에는 리스본에, 그해 9월에는 로마에까지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에 체류하던 천주교 신부들은 조선 선교를 의도했는데, 실제로 실현된 것은 40여년 뒤였다. 1592년(임진년) 4월 13일 도요또미 히데요시는 조선을 침공했다. 임진왜란이었다. 전쟁은 1598년(선조 31)까지 7년간 이어진 전쟁인데, 왜군은 개전 초반에 한성을 포함한 한반도의 상당 부분을 점령하였으나 개전 1년 여만에 창원 이남으로 패퇴하였으며 결국 조선군과 의병의 강렬한 저항, 명나라의 조선 지원, 조선 수군의 대 활약에 의해 7년 만에 패배하여 완전히 철수하게 된다. 그러나 이 전쟁을 계기로 조선은 천주교와 접촉하는 기회가 되었고, 조선이 서양에 알려지는 중요한 기회가 된다.
임진왜란 때 약 20만 명의 왜군이 부산에 상륙했는데, 이 중 약 2천여 명은 천주교도로 알려져 있다. 이들의 주둔지가 진해 인근 웅천(熊川)이었다. 천주교도로서 아우구스띠누스라는 세례명을 가졌던 왜장 고시니 유끼나가(小西行長)는 조선출정 천주교도들을 위해 예수회의 코메즈(Pierre Comez)에게 신부파견을 요청하였고, 이 요청에 의해 내한한 신부가 세스페데스(Gregorio de Cespedes)였다. 종국 신부로 내한하게 된 것이다. 스페인 신부였던 그가 조선의 남해안에 도착한 날이 1593년 12월 27일이었고, 웅천에 도착한 것은 다음날인 28일이었다. 그는 일본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었고, 일본의 고위층과도 폭넓은 교분을 나누었다. 그는 약 1년간 체류하면서 부산을 방문하였고, 경상도 일대의 해안지방에 머물면서 당시의 상황에 대한 4통의 서간문을 남겼는데, 이 편지는 한국외국어대학교 박철 총장에 의해 발굴되어 당시의 정황을 헤아리는데 있어서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세스페데스는 그 후 일본으로 돌아가 고꾸라(小倉)에서 여생을 보내다가 뇌출혈로 쓰러졌고, “하나님 감사합니다.”는 등 몇 마디를 남기고 1611년 12월 어느 일요일 오전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임진왜란을 통해 천주교, 그리고 천주교 신부와 접촉하게 되었지만 그 이상의 접촉이나 발전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이때부터 조선의 상황은 극동으로 진출했던 예수회 신부들에 의해 서구사회에 점차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또 조선에서도 서양에 대하여 그리고 서양 기독교에 대해 점차 눈을 뜨기 시작한다.
-
2017-03-03
-
-
[목회자칼럼] “3.1운동 98주년을 맞이하면서”
-
-
한국개신교회는 130년의 짧은 역사에서 많은 부흥과 성장을 경험했고, 그 과정에서 세계교회에 모범이 될 만한 일들과 아울러 또한 다양한 시행착오도 겪었다. 선교초창기 한국교회는 교회사에 길이 남을 두 가지 사건을 겪게 되었다. 그 하나는 평양대부흥운동이다. 1907년 평양 에서 시작된 성령운동은 회개를 통한 성결운동과 아울러 말씀과 기도, 전도운동으로 이어졌고 이것은 20년밖에 안 되는 어린 개신교회가 한국에 뿌리내리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또 다른 하나는 1919년에 일어난 3·1운동이다. 을사조약과 한일합방 등 암울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성령운동은 자칫 역사를 외면하고 사회현실에서 도피하는 신앙운동으로 흘러가기가 쉬웠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그런 길로 가지 않았다. 이미 1907년에 기독교지도자 안창호와 이승훈 등은 신민회를 만들어 항일운동을 벌렸고, 독립선언문에 서명한 33인중 16명이 기독교인이었고, 교회당이 만세운동의 전초기지로 사용되는 등 한국교회는 3.1운동에 가장 앞장서는 집단이었다. 그래서 많은 기독교인들이 희생을 당했고, 많은 교회당이 파괴되었다.
평양대부흥운동과 3.1운동은 무슨 보수와 진보가 나뉘어져서 일어난 운동이 아니었다. 이 3.1 운동에 앞장선 사람 중에는 길선주 목사와 같이 평양대부흥운동의 주류에 있던 사람들이 많았다. 이것을 통해서 진정한 성령운동은 하나님나라 운동이요, 역사와 민족의 문제에 책임 있게 행동하는 신앙운동임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3.1운동에서 실패한 이후, 교회는 사회와 역사의식을 가진 많은 지도자들을 잃어버렸고, 살아있는 권력에 대항하는 것이 얼마나 혹독한 값을 치러야 하는가를 직시했다. 그러면서 사회현실에서 물러서서 개인구원과 인격성장, 영적체험과 내세에 집중하게 되었고, 신앙생활은 주로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 머물게 되었다.
대외적으로는 우리의 신앙이 정치와의 무관함을 선포하면서 일제통치에 순종적인 집단이 되었고 이로 인해 교회는 불의한 일제의 정치적인 도구로 전락하게 되었다. 교단 지도자들은 나선일체의 민족말살 정책을 적극 선전하고, 교인들에게 황국시민이 될 것을 가르쳤고, 일본이 일으키는 전쟁정책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일제는 더 나아가서는 애국심을 앞세워서 신사참배까지 수용하게 하므로 교회신앙의 본질까지 훼손하게 했다.
그리고 이것은 광복이후 70년간 한국교회의 전형적인 모습이 되었다. 한국교회는 정교분리와 철저한 이원론적인 신앙 아래서 모든 역량을 개인구원, 교회성장에만 집중시켜 커다란 부흥을 경험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교회는 사회와 국가에 대해 무관심하면서 우리 사회에서 고립된 게토와 같았다. 그러면서 오랜 세월 군사독재정권에 의해서 자행된 온갖 불법과 불의 그리고 인권유린에 침묵했다. 반공과 국가안보를 기치로 내걸면, 권력자의 어떤 비인간적이고 비민주적인 행태도 문제 삼지 않았다. 일제 말기처럼 교단지도자들은 독재 권력의 왜곡된 통치 행위를 정당화하는 데 앞장서면서, 그들의 정치적 도구가 되고 말았다.
이제 열린사회가 되면서 우리 국민들은 다양한 정보를 접하고, 사회비판의식을 키워가고 있다. 그러면서 여전히 자기 울타리 안에 머물러 있는 한국교회의 민낯을 보게 되었다. 개신교회의 사회적인 영향력은 매우 커져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에 대한 책임의식은 여전히 유아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교계지도자들의 정치적인 발언은 너무 현실과는 동떨어진 유치한 것으로 치부되면서, 그런 것들이 통하는 교회를 도리어 의아해 하고 있다. 그러는 가운데 한국교회는 이전보다 사회적인 신뢰를 상실했고 그것은 고스란히 복음전도에도 커다란 장애가 되고 있다.
이제 3.1절 98주년을 맞이하면서 과거 우리 믿음의 선진들이 보여준 소중한 전통을 다시 회복하자. 우리는 ‘again 1907!’만 외쳐서는 안 된다. 그것과 아울러 ‘again 1919!’를 외쳐야 한다. 여기에 우리 한국교회와 우리 사회의 미래가 있다.
-
2017-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