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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말씀] 제자의 품격(마태복음 1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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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눈에 확 띄고, 주님 맘에 쏙 들고, 주님 손에 딱 맞는 사람이 있다. 경건의 능력을 얻기 위해서는 경건의 모양부터 먼저 갖추어야 된다. 주님의 제자가 가져야 될 마음가짐이요, 자세요, 복음일꾼의 태도는 무엇일까?
1. 오지랖을 넓히지 마라
마10:5~6에 예수님께서 열둘을 내보내시며 명하셨다. 상반기 사랑과 행복의 초대 대상이 딱 좁혀지는 말씀이다. 주변, 사방팔방, 신변잡기로, 산만하게 간섭하지 말고 잃어버린 첫사랑을 회복하고, 망각한 사명을 부여잡고, 식어버린 사랑의 불씨를 되살리고, 약해 빠진 마음을 추스르고, 구령의 열정을 회복하라. 한 생명에 집중하라. 나와 관계된 가까운 데서부터 복음을 전하라.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복음의 통로가 되게 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믿거나 말거나, 닥치는 대로 복음을 전하라.
2. 사람 눈치 보지 말고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고 선포하라.
사람 비위나 맞추는 달달한 말만 하지 말고 회개의 천국 복음을 선포하라. 힘으로 능으로 깡으로 돈으로 되지 않고 오직 성령의 역사로 된다. 주님 주시는 성령의 권능으로 힘 있게 섬기되 받은 복을 흘려보내라. 주는 자가 복이 있고, 섬기는 자가 큰 자다. 흐르는 강물처럼 거침없이 담대하게 흘러가서 물이 바다 덮음 같이 하라. 은택을 잊지 말라. 나의 나 됨은 만 가지가 하나님의 은혜로다.
3. 설레발을 치지 마라. 호들갑을 떨지 마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준비한다고 설레발을 치지 말라는 것이다. 호들갑을 떨지 마라. 내가 호들갑을 떨지 않아도 주께서 친히 다 준비하신다. 여기까지 도와주신 에벤에셀의 하나님! 지금도 시퍼렇게 살아계신 임마누엘의 하나님! 앞으로도 예비해 주실 여호와 이레 하나님을 믿고 기대하고 의지하라! 주님 앞에 조용히 기도하면 주께서 앞서 행하시며 역사하신다.
4. 입술로 쓴물을 쏟아내지 말고 축복하고 평안하기를 빌라.
어디를 가든지 축복권을 써 먹고, 평안을 기도해 주라. 트러블 메이커가 되지 말고 피스 메이커가 되라. 악의 축이 되지 말고 선한 영향력을 미쳐라. 선으로 악을 이기라.
5. 미련을 떨쳐 버려라.
감정 소모를 지나치게 하지마라. 소탐대실 하지마라. 작은 욕심 때문에 집토끼, 산토끼 다 놓친다. 사소한 미련 때문에 대의를 그르치지 마라. 너희는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라. 겸손하게! 성실 하게! 그러나 당당함을 잃지 마라!
6. 다투지도 들레지도 마라.
예수님은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는 연한 순과 같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었다. 사역을 하면서 자기 의를 내세우거나, 생색을 내거나, 티를 내지마라. 말이 앞서지 마라. 구구한 변명이나 핑계를 대며, 구차하게, 쪽팔리게 살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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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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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임중칼럼] 더 좋은 삶을 위한 거룩한 몸짓(부활 신앙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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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의 최대의 시인 롱펠로우는 미국의 보든 대학 졸업 후 약 3년 동안 유럽에 유학하고, 귀국 후 모교의 근대어학 교수가 되었다. 그 후 1835년 하버드대학 교수가 되기 전에 또다시 유럽으로 갔으며 이때 첫 번째 부인을 잃었다. 스위스에서 ‘프랑세즈 애플턴’을 발견하고 그녀를 산문 이야기 <하이페리온>의 여주인공으로 묘사하였다가 그녀의 반감을 사기도 했으나 43년 드디어 그녀와 결혼하였지만, 이 두 번째 부인도 61년 불행한 사고로 불타 죽었다. 롱펠로우는 그렇게 인생의 쓰라린 경험자였다. 롱펠로우가 75세가 되어 그의 임종이 가까웠을 때 한 기자가 물었다.
"선생님은 두 부인의 사별뿐 아니라 많은 고통을 겪으며 살아오신 것으로 아는데, 그런 환경에서 어떻게 그토록 아름다운 시들을 쓸 수가 있었습니까."
이에 롱펠로우는 마당에 보이는 사과나무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저 나무가 나의 스승이었습니다. 저 사과나무는 몹시 늙었습니다. 그러나 해마다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립니다. 옛 가지에서 새 가지가 조금씩 나오기 때문입니다. 나도 생명의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새 생명을 계속 공급받아 인생의 새로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살아왔습니다.”
그렇다. 그것은 롱펠로우만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도 그렇다. 그리스도 안에 사는 사람은 그 삶이 날마다 새로워지고 풍성해진다. 부활의 세계는 지칠 줄 모르는 생명의 세계다. 그래서 부활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의 삶을 ‘더 좋은 삶을 위한 거룩한 몸 짓’이라 하는 것이다.
오래전 울산에서 집회를 인도하면서 참으로 귀한 장로님을 만났다. 아직도 그분의 아름다운 신앙과 삶을 잊지 못한다. 그분은 월남전에서 양손을 다 잃은 전상자였다. 전쟁 중에 진지에 포탄이 떨어졌다. 떨어진 포탄을 쓰러 안는 순간 양팔은 날아 가버렸고 배는 터져 창자가 흘러내렸다. 동시에 동료 전우들은 살았다. 누구도 살 수 있다고는 전혀 생각을 못 한 상황에 긴급 후송되어 기적적으로 생명을 구했다. 그 후 신앙생활을 통하여 그 아픔을 신앙으로 극복하고 장로가 되어 모든 사람에게 소망을 주고 생명을 주는 거룩한 몸짓으로 오늘도 사역하고 계셨다. 함께 식사하면서 장로님의 숟가락과 젓가락 움직임을 보았다. 장로님의 양쪽 의수(義手)는 아주 민첩하게 밥과 반찬을 집어 올려 식사하시는 것을 보고 장로님 의수를 잡고 여쭈어보았다. “어떻게 열 손가락처럼 그렇게 민첩하게 손놀림할 수 있습니까?” 장로님은 빙긋이 웃으시면서 의수를 보여 주셨다. 손가락 역할을 해 주도록 만들어진 의수(義手)는 강한 쇠붙이였지만 장로님은 그 의수로 글도 쓰시고 그림도 그리고 못하시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함께 하신 담임 목사님은 한마디 거들어 주셨다. “P 장로님은 모든 생활에 불편함이 없는, 비록 장애인이지만 누구보다 밝고 아름다운 삶을 엮으시면서 교회와 사회에서 존경받는 장로님으로 행복하게 살아가시는 그것은 오직 장로님의 중심에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충만 때문입니다.”
그렇다. 그것이 바로 부활 신앙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오늘의 삶이다. 그것은 진실로 더 좋은 삶을 위한 거룩한 몸짓이었다. 사지백체 건강함을 가지고도 늘 불평할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주는 정신적 인격적 장애인들이 많은 오늘에 P 장로님의 미소는 목사의 가슴에 깊이 남아있다.
비가 많이 쏟아지는 그곳에서는 식물들도 더욱 푸르게 자라난다. 안개가 짙은 섬은 에메랄드가 생성되기에 알맞아 에메랄드의 섬이 된다. 우리 인생에도 고난과 슬픔의 안개가 짙을수록 에메랄드 같은 아름다운 심령을 얻게 될 것이고, 하나님의 사랑 깊이를 깨닫게 된다. 우리는 제비가 겨울 동안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어졌다고 말하지 않는다. 겨울 동안에 꽃나무가 죽어서 꽃이 피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는다. 구름이 태양을 가리고 먹구름이 소나기를 내리게 하며 사방이 어두워 캄캄해진다고 해도 우리는 태양이 사라졌다고 말하지 않는다. 봄이 오면 제비는 다시 오고, 봄이 오면 꽃은 다시 핀다. 이 땅에 새 생명을 키우기 위해 잠시 비가 내렸을 뿐이지 태양은 언제나 하늘에 떠 있다.
나는 뇌신경암 4년차 투병 중이다. 그런데도 1년 52주 한주도 쉼 없이 부흥사경회를 인도한다. 내 삶의 한편에는 아프고 지치고 벅찬 시간도 있지만 그보다는 감사와 평안과 행복한 삶이 현재진행형이다. 그것은 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부활 신앙이 거룩한 몸짓의 삶을 연주하게 한다.
농어촌 산골 개척교회를 방문하여 말씀 사역을 하노라면 잠자리가 불편하고 식사가 만만치 않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운전도 순조롭지 않다. 그러면서 요즈음 내 마음이 흔들리는 일들이 있었다. 사역을 멈추고 싶은 마음이 들어 의욕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작은 교회 목사님의 전화 한 통이 또 나를 다음 마을로 가야 함을 깨닫게 했다. “서목사님, 우리 교회 78세 할머니가 서목사님의 방송 설교를 듣고 저를 찾아와 서임중목사님 설교를 생방송으로 듣고 천국 갔으면 원이 없겠다 하셨습니다.” 순간 가슴이 먹먹했다. 눈시울이 젖었다. 고 방지일 목사님이 101세에 포항중앙교회 주일 설교를 마치시고 목양실에서 “하나님, 말씀의 종 서임중목사는 녹슬어 사용하지 못하는 종이 아니라 닳아서 사용할 수 없는 그날까지 귀히 사용하여 주시옵소서.”라고 축복 기도를 해 주신 시간을 묵상하면서 오늘도 사역의 걸음을 옮긴다. 그것은 ‘더 좋은 삶을 위한 거룩한 몸짓’이리라.
오늘도 롱펠로우의 ‘인생 찬가’의 한 부분을 읊조리면서 주님의 나귀 되어, 또 다음 마을을 향해 걷는다.
<우리가 가야 할 곳, 또한 가는 길은 향락도 아니요, 아픔도 아니다. 저마다 내일이 오늘보다 낫도록 행동하는 그것이 목적이요 길이다. 활동하라. 살아있는 현재에 활동하라. 가슴 속에는 심장이 있고, 머리 위에는 하나님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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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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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연구] 십자가가 복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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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에게 알려진 가장 유명한 예수님의 말씀 중 하나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일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 짐을 벗겨 대신 져 주시는 분입니다. 구약성경 시편 68편 19절도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무거운 인생의 짊을 대신 져 주시길 원합니다. 우리 짐을 주님께 맡기고 살길 원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뜻밖에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짐을 지우기도 하십니다. 이 일을 경험한 대표적인 사람이 구레네 사람 <시몬>입니다. 시몬은 매우 먼 곳에서 예루살렘까지 왔습니다. 구레네는 오늘날의 북 아프리카 리비아 근처입니다. 당시 구레네에는 많은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시몬이 그 먼 곳에서 예루살렘까지 온 이유는 무엇일까요? 당시 흩어져 살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게 예루살렘 순례는 평생 꼭 해보고 싶은 버킷 리스트 중 하나였습니다. 시몬은 오래 준비했을 것입니다. 여행 경비, 하나님께 드릴 예물, 여행에 필요한 물품들, 예루살렘에서 입을 새 옷도 준비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드디어 예루살렘에 도착하던 날 감격의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그는 새 옷을 입고 예루살렘 거리에 나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충격적인 일을 경험했습니다. 시끄러운 소리에 가까이 가 보니, 한 죄수가 힘겹게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죄수가 비틀거리자 로마 군병이 시몬을 끌어내어 대신 십자가를 지게 했습니다. 날벼락이었습니다. 십자가는 모두가 끔찍하게 생각하는 형틀인데, 그것을 지게 되다니, 그것도 벼르고 별러 온 예루살렘 순례에서 그런 일을 당했으니, 그는 정말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는 순간, 십자가에 배인 죄수의 피가 그의 옷에 스며들었습니다. 그 거친 십자가에는 이미 죄수의 피가 배어 있었습니다. 그 죄수는 가시 면류관을 쓰고 있어 이마에서 피가 흐르고 채찍에 맞아 피투성이였습니다. 십자가를 지는 순간, 그의 새 옷은 죄수의 피로 물들었습니다. 옷도 버리고, 영혼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충격적인 일이 시몬에게 복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그 죄수가 예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시몬이 받은 복은 무엇일까요?
그 날 시몬은 예수님께 가장 가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숨결이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가 십자가를 대신 지는 순간, 예수님의 깊은 눈이 그를 사랑으로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와 땀 냄새가 그의 코를 찔렀을 것입니다. 예수님께 가장 가까이 있었다, 그 날 그가 누린 복이었습니다.
또 시몬은 그날 예수님의 보혈에 가장 먼저 닿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우리 죄를 씻는 보혈입니다. 그런데 그 보혈이 그의 옷에, 그의 손에, 그의 몸에 닿았습니다. 당시에는 예수님의 보혈의 의미를 몰랐겠지만, 후에 십자가 보혈의 사죄의 능력을 알았을 때, 시몬은 평생 그 날의 감격을 잊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와 그의 가족 모두가 주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의 가정은 예수님의 가정이 되었습니다. 로마서 16장 13절을 보면 바울 사도는 시몬의 아내를 <내 어머니>라고까지 부를 정도로 그의 가정은 로마에서 믿음의 가정이 되어 있었습니다.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이처럼 예수님 안에서는 십자가도 복이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리에게 구원이 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지고 따르는 십자가도 복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려는 자는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십자가는 질 때는 무겁고 힘들지만, 후에는 복이 됩니다.
오늘 우리는 십자가 없는 그리스도인이 되고 있습니다. 편하게 믿으려고 합니다. 냉난방이 조금만 불편해도 원망합니다. 주차장이 없다고 교회에 오지 않습니다. 교회마다 주방 봉사자가 사라집니다. 힘든 일을 하려는 사람이 없습니다. 심지어 신학생들도 편한 사역지만 찾는다고 합니다. 억지로라도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참된 복이 임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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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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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부활의 달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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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은 ‘부활의 달’입니다. 1900년부터 2050년까지 부활절이 3월에 있는 경우는 33번인데 나머지는 모두 4월이었습니다(117/150(78%), 2025년까지는 97/125(77.6%)). 그렇다면 이 부활의 달에, 특히 부활절 전후해서 이 땅에는 무슨 일들이 있었을까요? 아마도 가장 유명한 사건은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의 도착일 텐데, 부활절 당일인 1885년 4월 5일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사흘 전인 4월 2일 부산에 먼저 당도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한국 개신교 본격적인 선교의 역사는 부활절이 아니라 고난주간에 시작되었던 셈입니다. 같은 고난 주간에 일어났던 가슴 아픈 일도 있었습니다. 2014년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사건입니다. 수요일에 전복되어 금요일에 완전히 침몰해서 304명의 희생자를 내었던 이 사고로 그 해 부활절(4월 20일)은 유난히 슬펐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영원한 부활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1592년 4월에는 부활절을 전후해서 임진왜란이 발발합니다. 4월 13일에는 부산진전투, 그리고 4월 15일에는 동래성전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현장에 있던 일본군은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휘하였는데 붉은 비단 장막에 흰 십자가를 그린 군기를 사용했고 본인 뿐 아니라 다수의 부장과 군사들이 기독교인이었다고 합니다. 일본에 들어와 화승총을 전해주고 포교 활동을 하던 예수회의 영향 때문이었는데, 1593년에는 그레고리오 데 세스페데스라고 하는 신부가 일본군 진중에 거하며 밤마다 미사를 집전했다고도 합니다. 이것이 사실상 최초의 기독교 전래라니, 얼마나 기이한 역사입니까? 또한 임진왜란 중에 포로로 끌고 간 소년 하나가 일본 땅에서 세례를 받고 예수회의 사제가 되었다는 기록을 찾았습니다. 나가사키의 순교자 기념관에 성자(聖者) 다음의 복자(福者)로 이름이 올라 있는 권 빈첸시오(Vincent Caun)라는 인물인데, 이승훈의 첫 수세(1784년)보다 180년 빠른 1600년대 초에 세례를 받았고 김대건의 사제 임직(1845년)보다 220년 빠른 1625년 옥중에서 서원을 했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발견했으니 이 또한 얼마나 역설적인 부활입니까?
부활의 달에는 굴곡진 역사들이 더 있습니다. 1948년 부활절은 3월 28일이었는데 바로 그 부활주간의 끝자락인 4월 3일에 제주도에서 사건 하나가 발생합니다. 남로당 제주위원회 주도로 350명의 무장대가 12개 경찰서와 서북청년회 등 우익단체를 습격하여 시작된 ‘4·3 사태’였습니다. 1948년 11월 17일에는 제주도에 비상계엄이 선포되었고 대대적인 토벌작전이 시작되었지만, 결국에는 이념과 관련 없는 무고한 많은 시민들까지 목숨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오랜 세월 묻혀 있다가 2003년 국가 차원의 진상보고서가 채택되면서 부활하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아픈 부활과 슬픈 부활도 있는지를 알았습니다. 십여 년 뒤의 부활절 무렵에는 아픔과 슬픔을 넘어 영광의 부활이 된 일이 발생합니다. 1960년 부활절은 4월 17일이었는데, 이틀 뒤 ‘4·19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시위대로 인해 전국적으로 계엄령이 발포되었고 경찰이 발포를 감행하면서 130명이 죽고 1,000명 이상이 심각한 부상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혁명은 일종의 부활을 이끌어냈으니, 권위주의 체제 하에서 눌려있던 자유의 부활이었고 제한되어 있었던 민주주의의 부활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부활의 달인 4월 초입에 우리는 또 하나의 중요한 서사를 역사의 서판에 남기게 되었습니다. 작년 ‘12·3 비상계엄’으로 말미암아 촉발된 사태들이 일단락되면서 4월 4일에 사상 두 번째로 현직 대통령을 파면하는 탄핵 결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계엄과 탄핵이라는 데자뷰를 바라보면서 마음이 그리 편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분열과 다툼과 미움과 배제가 기승을 부리는 시간들을 보냈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부활의 역사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가득합니다. 돌아오는 부활절을 기점으로 하여 다시 한 번 이 세상에도 혼란을 딛고 모든 사람과 모든 일들이 새롭게 태어나는 부활의 역사가 펼쳐지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예수 부활의 증인인 그리스도인들이 앞장서서 악의와 저주의 말들 대신 관용과 격려의 말들이 되살아나도록, 분열과 다툼 대신 화해와 일치의 마음들이 되살아나도록, 의기소침과 퇴행보다는 격려와 상승의 분위기가 되살아나도록, 부활의 믿음과 능력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부활의 기도를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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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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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건축칼럼] 교회건축의 과정과 시행착오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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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건축은 목회자와 성도가 그 추진과정 자체가 축제이어야 한다. 교회건축이 은혜가운데 축제 지향적으로 추진되어 가려면 많은 준비와 전략이 수립되어야 한다. 준비와 전략은 교회내 의사결정이 일부에 의하거나 주관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합리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교회건축과정에서 결정되어야 할 수많은 내용들이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결정해야할 내용들에 대해서 합리적 평가기준이 수반되고 이 기준에 의해서 결정되어지면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이루어졌다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평가기준의 요소들을 전략적 기준이라 하여 크리테리온(criterion)이라 한다. 이 크리테리온은 교회마다 다 차이가 있으며 교회가 위치한지역마다 다를 것이다. 또 목회자의 목회철학과 비젼, 교회크기, 교회프로그램, 교회형태 등 여려가지 요인에 따라 다양한 요소들이 대응 될 수 있다. 이 다양한 요소들을 많이 나열하고 그것이 교회건축 과정에서 의사결정을 수행하는 판단기준의 준거들로 사용해야 한다. 하나의 결정사항을 여러가지 판단기준 요소들로 평점을 주어 평가하면 의외로 감정적으로 결정했을 뻔한 사항이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결정되어져 감을 알 수 있다. 가령 예를 들면 교회부지 매입에 대해 의사결정을 내려야 할 때 많은 목회자들이 범하기 쉬운 일중에 하나가 평당 부지 가격이 싼 곳을 서둘러 사는 것 같은 의사결정을 지적할 수 있다. 감정적으로 부지가격이 낮다는 것이 의사결정 크리테리온의 전부가 되어서 이와 다른 여러 크리테리온의 판단기준이 결여되므로 합리적 의사결정이 되지 못하므로 매입 후 발생되는 여러 시행착오 요인(risk factor)에 의해 많은 어려움과 시련을 겪는다. 부지가 싸다는 이면에는 부지에 건축하기위한 수도, 전기, 하수도시설, 가스등과 같은 기간 인프라시설이 없어서 별도의 부대비용이 상승된다든지, 진입도로가 좁아서 건축허가시 일정규모이하 밖에는 건축할 수 없다든지(건축법에는 6M이하의 도로와 접한 부지는 604평 이하로 건축해야함) 형진변경이나 개발행위허가 등의 허가가 수반되거나, 아예 교회허가를 득할 수 없는 부지를 매입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교회건축과정에서 많은 의사결정은 순간적으로 이루어 질것이 아니라 합리적 의사결정 크리테리온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며, 교회 내 이 기구를 두는 것이 건축위원회일 것이다. 건축위원회는 교회건축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의사결정기구이다. 그러나 건축위원회가 명목상 위원회가 되거나 형식적 위원회가 되면 오히려 교회건축과정에서 비생산적여론만을 양산하는 비효율적 기구가 되어 교회건축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합리적인 건축위원회가 되려면 몇 가지 운용에 있어서 개선 방향이 요구된다.
첫째, 위원회의 구성에 있어서 현재의 모습은 교회 내에서 일부장로나 교회건축 관련 종사자와 같은 단순한 형식에 의해 구성되어진다는 점을 개선해야 한다. 왜냐하면 비전문가들로 구성되다보니 교회건축과정에서 합리적 결정을 내릴 수 없게 되고 감정에 치우칠 수 있게 된다. 개선된 위원회의 구성은 교회 내 전문가를 최대한 참여 시키는 것과 외부 자문위원을 영입해야 한다. 교회건축에서 음향, 설비, 인테리어, 금융행정, 법등은 전문가의 조언이 필요한 분야이다.
둘째, 위원회의 활동에 있어서는 기존의 모습은 주일이나 평일 교회 내에서 회의 정도가 전부이다. 건축위원회의 활동은 교회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위원회는 현지답사와 항목별 연구 분석 현장대안 분석 등 현장위주로 활동해야하고 교회 내의 활동은 이것의 보고와 전략회의이어야 할 것이다. 또한 건축위원회의 활동구성은 인원수에 의함보다 소위원회 별로 활동해야 한다. 예를 들면 전문 분야별로 나누어야 한다. 부지매입위원회(행정 법률전문가 초빙), 교회비젼위원회, 교회설계위원회, 건축시공위원회, 음향.영상.인테리어 위원회, 유지관리위원회 등으로 세분화해서 각 위원회가 각 분야에서 활동해서 종합회의를 통해 결정해 나가야 의사 결정에서 세부적이고 전문 영역화 될 수 있다.
셋째, 정기적인 스케줄 관리가 이루어져야 한다. 위원회는 교회에서 필요시 모이는 것이 아니라 정기적인 모임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 경우 위원회는 각자가 회의에 필요한 자료를 분석하고 회의에 대비해 나름 데로 활동할 것이다. 위원회는 교회건축과정의 전체일정을 숙지하고 단계별 활동스케줄이 명확히 수립되어야 한다. 이것은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예측된 리스크를 미리 점검할 수 있게 해준다. 건축위원회는 시계를 보는 영역에서 시계를 만다는 영역으로 진화돼야 한다.
교회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또 있다면 건축기간의 수립이 될 것이다. 대부분 교회건축의 기간은 교회의 상징적 일정(교회창립일, 부활절, 크리스마스 등)에 맞추어 완공일정을 수립한다. 또는 기간을 대단히 촉박하게 수립하여 많은 요쇼들을 충분히 점검하지 않고 다음공정을 진행하여 많은 시행착오를 겪는다. 한국의 빨리 빨리 문화는 교회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설계도 1개월 시공도 6개월 등 의미 없는 기간수립은 완공 후 많은 문제점을 야기 시킨다. 촉박한 설계와 시공은 부실을 초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교회건축의 기간은 시간대별로 수립해서는 안 되고 단계별로 수립해야한다. 교회건축의 과정이 몇 개월 내로 맞추는 것에서 1단계는 교회건축의 비젼수립단계, 2단계는 부지매입단계, 3단계는 설계. 시공 4단계는 인프라 점검단계 5단계는 우지관리단계 등 단계별로 수립해야 각 기간에 대한 점검과 확인을 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전략이 필요한다. 이를 때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시행착오를 줄이는 가장 큰 지혜는 부지매입단계부터 건축사의 조언을 받고 각종 건축법이나 전문영역, 인허가, 기술적사항을 확인 해 나가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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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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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교수의 역사탐색] 이승만의 반공주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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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셰비키 혁명(1917. 10)으로 소련이 공산화되자 공산주의 사상은 동유럽으로 확산되고 동쪽으로는 몽골까지 확장되었다. 지식인들은 실험되지 않는 허황된 유토피아 사상을 환호했다. 중국이나 러시아 등지에서 활동하던 우리나라 독립운동가들도 공산당과 연계하여 독립자금 지원이라는 사탕발린 독약을 받아먹게 된다. 이동휘와 박진순이 중심이 되어 1918년 5월 31일 창당한 ‘한인사회당’은 동아시아 최초의 공산당이라고 할 수 있는데(중국 공산당은 1921년에, 일본공산당은 1922년에 창당된다), 볼셰비키의 지원을 받아 항일투쟁을 전개한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이승만이 쓴 공산주의에 대한 논설은 당시 한인 사회에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중요한 사실은 이승만은 독립운동의 근거지를 대륙 세력인 중국이나 러시아를 택하지 않고 해양 세력인 미국을 택하여 독립운동을 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에게는 공산주의에 대한 이념적 연계(ideological chain)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 이후에도 이승만은 공산주의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두 편의 논설을 남겼는데, 「태평양 잡지」 1924년 7월호에 쓴 “사회공산주의에 대하여”와 「태평양잡지」 1925년 7월호에 쓴 “공산주의”가 그것이다. 그는 전자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일변(一邊)으로는 우리 사람들이 이런 새 주의(主義)를 들을 적에 우리의 오늘 경우가 다른 것을 미처 생각지 못하고 다만 남이 좋아하니 우리도 좋아하자고 덮어 놓고 따라 나가다가 영향을 받을까 염려함이라. 물론 우리 내외지(內外地)에 모든 인도자들이 응당 앞을 보아 지혜롭게 인도할 줄 믿는 바이지만, 그중에 몇 사람이라도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일시(一時) 풍조에 파동(波動)되면 그 손해가 장차 전체에 미칠까 하는 근심이 없지 아니함이라.”
도처에서 공산주의 운동이 흥기할 때에 쓴 이글은 “공산주의의 폐해를 이론적으로 명쾌하게 논증한 세계 최초의 논설”로 평가받고 있다. 이런 반공정신은 팽창주의를 지향하던 러시아에 대한 경계라고 하는 측면을 부인할 수 없지만, 따지고 보면 이승만의 반공사상은 그의 정신세계를 관통하는 기독교 신앙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승만의 반(反) 유물론적 이념체계가 자유민주의를 지향하고 공산주의를 거부하는 반공사상의 기초가 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승만의 반공주의는 ‘자유주의적 반공주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승만은 자유민주주의를 가장 이상적인 정치 체계로 인식하게 한 것이다.
이승만의 반공주의는 그의 모스코바 방문 이후 심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1933년 제네바에서 개최된 국제연맹 회의 참석차 유럽을 여행하고, 7월 19일과 20일에는 모스코바를 방문했는데, 이때 공산주의 치하의 국민 생활의 실상을 보게 되었다. 또 제2차 대전 이후 소련의 팽창주의 정책을 보면서, 그리고 1949년 중국의 공산화 이후 한국이 공산화될 위험이 있다고 보아 크게 우려하였다.
제2차 대전 이후(1944-45) 소련이 동독을 비롯하여 동유럽의 약소국가들, 곧 헝가리 유고슬라비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알바니아 폴란드 등을 점령하고 공산주의를 이식하여 소련의 위성국으로 만들었고, 1948년 2월에는 마지막으로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쿠데타로 공산당 독재국가를 수립함으로써 공산화를 마무리 지었다. 이보다 앞서 1947년 9월에는 국제공산당(Cominform)이 결성되면서 동유럽의 공산화는 두 번째 단계에 접어들었다. 인접한 중국에서는 1949년 마우쩌둥(毛澤東, 1893-1976)이 장제스(蔣介石, 1887-1975)의 국민당 정부를 몰아내고 중화인민공화국을 선포하게 되자 국제정세에 민감했던 이승만은 공산주의 체제를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강한 의지를 갖게 된다. 그래서 이승만의 반공주의는 해방 이후 건국투쟁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게 된 것이다. 해방 후 귀국한 이승만은 정략적 고려에서 박헌영(朴憲永, 1900-1956)의 조선공산당에 대하여 관용적인 태도를 보여준 바 있다. 1945년 10월 21일 행한 중앙방송 연설에서, 그리고 11월 21일 ‘공산당에 대한 나의 관념’이라는 제목의 연설에서 공산당에 대한 포용적 입장을 피력한 바 있지만, “절불굴(折不屈)하고 배일항전(排日抗戰)하던 공산당원들,” 혹은 “경제방면으로 근로대중에게 복리를 줄 목적으로 공산주의를 주장하는 인사들과는 협조할 용의가 있다”는 식의 제한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시사는 정략적인 의도였다. 그는 한번도 공산주의를 용인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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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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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 부활을 이상하게 보는 현대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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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보는 관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한 작품을 ‘아름답다’고 할 때, 작품 속에 그러한 속성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는 ‘플라톤의 미의 대이론’입니다. 작품 속에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미의 객관적인 속성이 있다는 이론입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작품 자체에 객관적으로 좋고, 아름답고, 훌륭한 속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감상자는 작품을 ‘아름답게’ 보게 됩니다.
그러나 철학자 칸트는 반대의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감상자가 작품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이유는 감상자 내면에 ‘아름다운’ 속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즉, 칸트의 이론에서는 작품 자체에 아름다운 속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감상자에게 아름다운 속성이 있기 때문에 작품을 아름답게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아름다움은 작품의 객관적 속성이 아닌, 보는 감상자 내면에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에 주관적 감정에 따라 작품을 아름답게 보게 됩니다.
아름다움은 작품의 객관적 속성일까요? 관객의 주관적 감정일까요? 절대표현주의는 두 가지 모두를 이야기합니다. 이에 따르면 작품에도 객관적인 속성이 있고, 보는 감상자에게도 주관적인 감정이 있습니다. 두 가지가 서로 상호작용하여 작품을 ‘아름답게’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독일의 철학자 슐라이어마허는 작품, 즉 본문을 보는 두 가지 방법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본문을 문자 그대로 분석하는 문법적 이해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본문을 적은 저자의 상황과 시대, 정신세계 등을 포함한 본문의 맥락과 이면의 뜻, 의미 등을 분석하는 심리·정서적 이해입니다. 문법적 이해는 본문에 나타나 있는 것을 분석하는 객관적 이해력이고, 심리·정서적 이해는 본문 이면의 의미를 분석하는 주관적 이해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본문의 바른 이해는 본문을 문법적으로만 이해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저자의 상태와 환경에 따라 심리·정서적으로만 이해해서도 안됩니다. 문법과 심리·정서 즉, 객관과 주관을 함께 사용하여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두 가지가 상호 소통하여 이해할 때, 본문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 만에 살아나시고, 부활하신 것, 기적을 베푸신 것을 역사적 사실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독일의 신학자 불트만은 부활이 역사적 사실인지 신화인지 구별하는 것은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고대의 세계관과 현대 21세기 세계관이 서로 생각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사실이냐 아니냐를 생각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문법적 해석을 이해하고 사실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이러한 사실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부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활에 대한 문법적 이해와 더불어 부활에 대한 심리·정서적 이해가 함께 상호작용하여, 객관과 주관이 상호작용하여 부활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2025년 4월, 부활절을 맞아 우리는 부활의 사건을 어떻게 사실 그대로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또한 어떻게 의미를 이해하고 나 자신의 주관으로 이해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다음세대에게 복음의 전승, 언약의 전승이 일어날 것입니다.
부활은 기독교에만 있는, 예수의 복음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핵심입니다. 부활을 사실로만 이해하는 것은 한 단면만 이해하는 것입니다. 부활의 사실을 모른채 의미만 파악하는 것도 바르다고 할 수 없습니다. 부활의 객관적 사실과 함께 그 사실 너머의 의미를 알고, 부활이 우리에게 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복음을 다음세대에게 전하는 부활절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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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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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법 특강] 교회법과 장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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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법은 장례에 대해 무어라고 말할까? 대부분 한국장로교회 헌법은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시나 찬송을 부르고 합당한 성경을 낭독하며 설교를 하고, 특별히 비참한 일을 당한 자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하며 저희의 슬픔이 변하여 영원한 유익이 되게 하며, 위로를 받도록 해야 한다. 또 유족들을 위로하는 데 힘쓰고 신앙이 없이 생활하다가 별세한 자에 대한 소망은 언급하지 않아야 한다.”
첫째, 장례에서 먼저 생각할 점은 찬송을 부르며 성경을 읽고 설교를 통해 슬픔을 당한 이들이 위로와 은혜를 받게 하는 일이다. 성도에게 죽음이 복된 것이고 또 고인이 장수하여 치르는 호상이라 할지라도 장례식은 유족에게 애도와 위로의 시간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둘째, 신앙이 없이 생활하다가 별세한 자에 대한 소망은 언급하지 않아야 한다. 고인의 지난 삶이나 죽음에 관해 판단하는 자세를 가져서는 안 된다. 자살했으니 지옥에 갔다고 섣불리 말해서도 안 되지만 거꾸로 성도는 자살해도 천국 갈 수 있다는 말도 쉽게 해서는 안 된다.
셋째, 고인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세상의 관습이나 미신이 들어오는 것을 피해야 한다.
한국 장로교회의 예배지침의 원형인 <웨스트민스터예배지침>(16456)이 이에 대해 잘 지적했다: “누가 이 세상을 떠나면 시신은 장례식 날 집에서 매장지까지 규율에 따라 옮겨가고 즉시 묻을 것이다. 시체 앞에 무릎을 꿇거나 그 옆에 서서 시신을 향하여 기도하는 것은 미신적이며, 찬송이나 기도, 성경을 봉독하는 것도 불필요하게 남용되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떠난 사람의 친구나 친척들과 함께 말씀을 상고하고 위로하는 것은 매우 필요하다. 목사가 참석하였으면, 그런 경우 가족을 잃은 사람들을 자주 찾아 그들의 상처를 씻고 그들이 맡겨진 의무를 잘 이행하도록 인도한다.”
이런 규정은 모두 미신적인 관습을 염두에 두고 제정되었다. 과거 교회에서 시신 앞에서 죽은 자의 영혼 안식을 위하는 기도를 하고 소위 거룩한 물과 함께 축성된 땅에 매장하는 일이 있았다. 장례식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감사하는 것보다는 죽은 자를 칭송함으로 사람의 영광이 나타나고 이로 인해 죽음의 엄숙함이 살아 있는 자들에게 선포되지 못하기도 했다. 그런데 종교개혁을 통해 이 모든 미신이 개혁되었다.
고인을 위해 기도하거나 고인의 무덤이나 관 앞에 촛불을 켜거나 향을 피우거나 배례하는 행동은 경계해야 할 세상 관습이다. 입관 시에 고인의 부장품을 넣지 않는 것이 좋으며 고인이 사용하는 찬송가나 성경 등 유품은 잘 보관하고 고인을 추모함이 좋다. 화장의 경우 화장을 한 후 분골은 납골당이나 기타 적당한 장소에 안치하면 되나 이 경우는 가급적이면 가족 중심으로 진행하는 것이 좋다.
넷째, 장례식 때 기도와 설교는 어떻게 해야 할까? 교회 역사에서 많은 토의가 있었다. 17세기 웨스트민스터 총회는 이 문제를 가지고 6일 동안 토의했다. 상황마다 다르겠지만 기도는 원칙적으로 출생 이후 지금까지 고인을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드리는 감사의 기도와 유족을 위로하는 간구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설교는 주일설교에 부담이 가지 않는 범위에서 준비하도록 했고, 특별히 부자와 가난한 신자를 구별해서 부자를 위해 설교를 남용하지 말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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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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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말씀] 여김의 축복 (야고보서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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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힘든 것은 여러 가지 시험이 동시다발적으로, 복합적이고 다중적으로 일어난다는 점이다. 설상가상,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연속되는 시험이 더욱 어렵다. 인생이 힘든 것은 정신을 차릴 틈이 없을 만큼 문제가 혼란하다는 것이다. 또한 어떤 결과가 나와도 감정적으로 인정할 수 없는 것이 불편한 일이다.
야고보 사도가 대단한 것은 예수님의 친동생이면서도 자기를 소개할 때 예수님의 종이라고 스스로를 일컬을 만큼 겸손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행함을 강조하는 야고보서는 의외로 기도를 강조하는 말씀들이다. 그가 얼마나 기도에 힘썼는지 별명이 낙타 무릎이었다.
의심하지 말고 믿음으로 기도해야 된다(약 1:6).
두 마음을 버리고 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된다(약 1:8).
욕심을 버리고 기도해야 응답받는다(약1:15).
그러므로 의심, 두심, 욕심은 버리고 힘써 기도하면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니님께서 지혜를 주신다. 기도가 행함이고, 기도가 사역이며 기도가 역사를 일으킨다. 간절히 부르짖음으로 마음이 새로워지고, 신의 한수를 둘 수 있게 된다.
약1:2에서 말하는 ‘형제들’은 예수 안 믿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믿음이 좋은 집사님, 권사님, 장로님이 시험에 든다는 것이다. 또 시험이 들 되, 여러 가지로, 컬러풀하게, 시리즈로 시험이 든다는 것이다. 사람이 계속해서 어려운 일을 당하면 우울해지고 대인기피증, 공황장애가 온다. 그러나 야고보는 내 형제들아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한다. “온전히”는 대충대충, 얼렁뚱땅, 건성건성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올인 하라는 것이다. 여러 가지 시험이 드는 것은 결국 우리의 인격을 연단해서 온전한 사람을 만들고자 함이다. “연단”이란 단어 뜻이 천 번 맞은 것이 연이고, 만 번 맞은 것이 단이다. 수없는 담금질을 겪어야 정금 같은 믿음이 나온다.
문제가 생기고 시험당하는 것이 반가운 사람은 없다. 그런데 왜 야고보는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하였을까? 사도바울의 옥중서신인 빌립보서의 주제는 기쁨이다. 동안을 가지려면 동심을 가지면 된다. 부름 받고 쓰임 받고 사랑받는, 일복이 많은 것이 복이 많은 것이다.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는 것은 보통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억지로라도 기쁘게 여기라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기쁨을 빼앗기지 않는 크리스천의 역설적인 태도가 축복이 된다.
여김의 축복이 있다. 분명히 골치 아프고 복합적인 문제인데도 온전히 기쁘게 여기면 쓴물이 단물 되고, 문젯거리가 간증거리가 된다. 불안한 현실이지만 믿음으로 미래를 바라보면 주께서 역사하신다. 사건보다 해석이다. 해석의 힘이 바로 믿음이다. 팩트보다 해석능력이 중요하다. 나라가 망하고 포로로 끌려 간 상황에서도 선명한 뜻을 정했던 다니엘, 형들에게 배신당하고 애굽에 노예로 팔려갔지만 생생한 꿈을 꾸었던 요셉을 보라. 꿈꾼 대로 뜻한 대로 형통하게 되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최상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반드시 복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라. 모든 고통에는 뜻이 있고, 여러 가지 시험은 나를 정금같이 단련하는 과정이니 감사함으로 받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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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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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연구] 가버나움에 오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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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부르던 어린이 찬송가 중에 갈릴리를 소재로 한 찬송이 있었습니다. 가사 일부가 생각납니다. <갈릴리야 갈릴리야 너의 이름 아름답다 소리 높여 노래하자 아름다운 갈릴리> 어린 동심에 갈릴리 마을들로 다니시며 가르치시고 이적을 행하시던 예수님의 모습에 신이 났었습니다.
갈릴리에는 익숙한 여러 지역이 있습니다. 나사렛, 막달라, 벳새다 등입니다. 그중에서 으뜸의 자리는 나사렛과 함께 가버나움이 다툴 것이라 생각합니다. 나사렛은 예수님께서 자라나신 곳이고, 가버나움은 예수님께서 메시아 사역을 시작하시 직전에 이사하신 곳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사하신 것에 대해서는 마태복음 4장 13절에서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라고 했고, 마태복음 9장 1절은 <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네에 이르시니>라고 했습니다. <본 동네>라고 할 정도로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동네였습니다. 지금도 가버나움에 가면 <예수님의 도시, Tte Town of Jesus>라는 팻말이 붙어 있습니다.
가버나움은 예수님 당시에 갈릴리의 중심지였습니다. 로마군인이 주둔할 정도로 요충지였고(로마군 백부장의 하인의 중풍병을 고친 기사 참조), 세관이 설치되어 있을 정도로 물동량이 많았습니다.(세리 마태를 부르신 곳) 가버나움은 갈릴리 북동쪽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두로와 시돈으로 이어주는 요지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으로 가신 이후에 그곳은 <위로의 마을>이 되었습니다. 가버나움이란 <나훔의 마을>이란 뜻인데, 구약의 나훔 선지자와는 아무 관련이 없고, 나훔이 위로이므로, 위로의 마을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가버나움의 위로는 거짓이었습니다. 경제활동을 잘 하는 사람, 세관에 근무하는 사람, 로마 군인, 성공한 일부 사람에게는 권력과 돈이 위로였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거짓 위로였습니다. 회당장 야이로도 딸의 죽음 앞에서 울어야 했고, 백부장도 사랑하는 종의 중풍병 앞에서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그들의 성취도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지 못했습니다.
가버나움이 진정으로 위로의 마을이 된 것은 예수님께서 오신 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위로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위로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으로 이어지는 참 위로였습니다. 본래 성부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이신데, 하나님 아들로 오신 예수님께서도 위로를 가져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이후 가버나움에는 놀라운 일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나병환자, 중풍병 걸린 백부장의 하인, 지붕을 뜯고 달아내려진 중풍병자, 열병으로 고생하던 베드로의 장모,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인,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셨고, 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죽은 것과 진배없던 세리 레위를 불러 제자를 삼으셨는데, 그가 바로 마태복음을 기록한 마태입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가버나움에서 놀라운 진리를 선포하셨습니다. 요한복음 6장 54~59절을 보면 이렇습니다. <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58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59 이 말씀은 예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하셨느니라>
가버나움 사람들은 예수님을 기다렸고, 환영했습니다. 누가복음 8장 40절을 보면 <예수께서 돌아오시매 무리가 환영하니 이는 다 기다렸음이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오자마자 야이로가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8장 41절입니다. <이에 회당장인 야이로라 하는 사람이 와서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려 자기 집에 오시기를 간구하니>
가버나움은 오늘 우리 삶의 터전을 상징합니다. 우리 삶의 자리에도 예수님께서 오셔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환영해야 합니다. 예수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가버나움에도 예수님으로 인한 이적이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 가정과 교회, 사회가 욕망과 좌절이 공존하는 가버나움이 아니라, 예수님으로 인한 기쁨으로 충만한 가버나움이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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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