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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말씀] 만나(출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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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백성들은 마라를 지나 엘림에서 잠시 안식한 후, 다시 광야로 행진합니다.(1절) 그런데, 음식은 떨어지고 갈 길이 보이지 않게 되자, 급기야 원망이 터져 나옵니다.(2절) 사실 우리는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요. 언제나 현실의 벽 앞에서 쉽게 무너지고 마는 것이 우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불평, 원망하는 사람의 특징을 보면, 과거의 추억에 사로잡혀 현재의 가치를 잃어버린다는 것입니다.(3절) 여러분, 신앙은 과거형이 아닙니다. 현재형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성도님들이 과거에 얽매여 현재의 가치를 잊어버리는 일이 없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자, 이렇게 불평,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4절)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알게 됩니다. 하늘에서 양식을 비같이 내려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얼마나 좋으신 하나님이신지요.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부릅니다.
아침에 이슬이 내리고 마른 후 지면에 작고 둥근 서리 같은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만나였습니다. 만나의 뜻은 ‘이것이 무엇이냐’입니다. 그들이 이 땅에서는 한번도 본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 주신 양식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주신 ‘선물’ 입니다. 그러므로 이 만나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전적인 은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먹고 마시고 살아가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믿으십니까? 오늘 저와 여러분이 누리는 이 땅의 모든 것들은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은혜에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주시는 하늘양식- 만나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1. 날마다 거두라고 하십니다.(4절)
하나님의 주시는 양식은 하루치입니다. 이틀 치도, 한 달 치도, 일 년 치도 아닙니다. 양식은 매일 먹어야 합니다. 날마다 하나님을 만나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만드는 것은 이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줄 믿습니다. 특히 만나는 아침에 거두는 양식입니다. 아침은 하루의 시작입니다. 하루를 시작할 때 하나님을 먼저 만나야 합니다. 당신의 삶에 우선순위가 하나님께 있어야 합니다.
2. 여섯째 날에는 두 배를 거두라고 하십니다.(5절)
만나는 안식일에는 내리지 않습니다. 안식일에는 만나를 거둘 것이 아니라, 만나를 주신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성민에게 베풀어주신 축복의 날이요, 예배의 날입니다. 그래서 예배하는 주일, 여러분은 잠시 일을 멈추고 영혼의 안식을 위해 예배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주일이 얼마나 복되고 아름다운지요. 여러분이 주일을 지키면, 하나님은 여러분을 지켜주십니다. 그리고 나아가 우리에게 영원한 천국의 안식을 주실 것입니다.
3. 대대로 간수하라고 하십니다.(32절)
그들의 자손들에게 만나를 보여줌으로, 광야생활 중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그리고 만나의 의미가 무엇인지 교육하기 위해서입니다. 부모님들의 신앙 교육이 있어야, 우리 자녀 세대들이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부모 여러분, 자녀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십시오. 말씀을 가르쳐 주십시오. 그래서 우리 자녀들이 믿음의 부자가 되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만나에 대한 신약적 의미 즉 구속의 의미를 찾아보겠습니다.(요 6:32-35)
구약에는 모세를 통하여 만나를 주었는데, 만나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샘물도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광야에서 예수님은 떡과 포도주를 베풀어 놓으시고, 지치고 배고프고 상처받은 여러분들을 초대해서 먹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사는 영적인 존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늘양식-만나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매일 매일 마음에 모시고, 예수님과 호흡하고, 동행하므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 축복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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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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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 전신갑주를 통한 패션 테라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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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영적이다. 정신적으로 신경쇠약, 노이로제, 강박관념, 불면증, 우울증, 공황장애는 결국 영적으로 문제가 생긴 것이다.
사람은 나이가 들고, 세월이 흐르면 전신만신 골병이 든다. 영이 혼미해지고, 마음은 너덜너덜할 만큼 곤핍해지고 몸은 만신창이가 된다. 그야말로 기진, 맥진, 탈진 상태가 된다.
환자가 온 몸이 병들어서가 아니라 한 곳만 아파도 그것 때문에 합병증이 생기고, 전이가 되어, 결국 온몸에 탈이 난다. 치통 하나만 생겨도 온몸이 아파서 치를 떨게 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혈압이 올라가고, 두통이 생기고, 소화불량이 되고, 불면증이 오고, 입맛, 밥맛, 살맛이 떨어진다.
사람이 아무리 조용하고 원만하게 살고 싶어도 사탄마귀가 간계(간사하고 교활한 꾀)를 부린다.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고, 밀 까부르듯이 치대고, 광명한 천사와 같이 미혹하고, 호시탐탐 성도를 노리고, 간계를 써서 미혹하고, 궤계(속이는 간사한 꾀)를 부려서 속이고, 계략을 꾸미고, 거짓의 아비인 마귀는 밥 먹듯이 거짓말을 해서 선동하고 선전한다. 악하고 음란하고 패역하고 강하고 조직적인 군대 같은 세력이 분명코 있다.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에베소서5장을 보면 속으로 성령 충만하고, 6장을 보면 겉으로 전신갑주를 입어서 속사람, 내공이 강해지며 겉 사람이 반듯해진다. 문무를 겸비하고, 안팎이 고침받고, 균형과 조화를 갖춘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운동을 하거나 노동을 통해서 풀고 육체적인 피로는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은혜와 감동을 받을 때 풀어진다.
그러면 우리의 속사람은 어떻게 강건해 질 수 있을까?
속에 있는 더럽고 악한 것은 토설하고 신령한 은혜와 진리로 채워야 된다. 그것이 회개와 충만이다. 믿음은 죄악을 회개하고 성령충만으로 나타난다. 기도는 들숨 날숨과 같다. 독한 것은 토해내고 산소는 들이마신다.
세월이 흘러가면 땅도 지력이 떨어지고 황폐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묵은땅을 기경해야 된다.
기경한다는 영어 단어, 컬티베이터(cultivate)에서 파생된 단어가 컬쳐(culture), 문화라는 단어다. 마음 밭을 깊이 기경한 사람이 문화인이고 교양인이다.
마음 밭은 길가 밭, 돌밭, 가시밭, 좋은 밭이 있는데 길가 밭은 새들이 와서 먹어버리고, 돌밭은 해가 나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라죽고, 가시밭은 가시가 자라고 기운을 막았고, 좋은 땅은 삼십 배, 육십 배, 백배의 결실을 맺는다.
땅을 깊이 갈아엎고, 피와 땀과 눈물을 쏟을 때에 마침내 좋은 땅이 된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때문에 삶의 우선순위가 분명하다. 그런 사람은 정으로 살지 않고 뜻으로 살고, 사익이 아니라 공익을 우선한다. 나라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한다. 바른 신학, 바른 마음, 바른 생활에 따라서 반듯한 사람이 된다.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식 습관, 수면 습관, 운동 습관, 정서 활동이 중요하다.
아깝다고 음식물 쓰레기를 내 몸에 버리지 마라. 과식으로 살이 찌고, 과로가 만병의 원인이고, 과속이 교통사고의 주범이다. 사람은 인풋이 되는대로 아웃풋이 된다. 그러므로 좋은 물을 마시고, 신선한 야채와 과일을 먹고 맑은 공기를 마시고, 필요한 영양을 골고루 보충해야 된다.
억지로라도 시간을 내어서 산보를 하고, 작정을 하고 운동을 해야 된다. 새벽기도를 날마다 하면 저녁시간을 함부로 보낼 수가 없다. 주일을 성수하면 6일이 교통정리가 되어져서 준비된 일상을 살 수 있다.
마음속을 헛된 것, 거짓된 것으로 채우지 말고 신령한 것으로 채워라. 성령을 훼방하지 말고, 성령을 근심되게 하지 말고, 성령을 소멸치 말라. 성령을 사모하고, 성령을 환영하고, 성령에 민감하고, 성령의 인도를 따르라.
그리고 겉으로, 외부적으로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완전무장을 해야 된다.
군인은 엄청난 훈련을 받고, 완전무장을 하고 전투에 대비, 준비, 유비무환한다. 사탄 마귀는 어김없이 빈틈을 파고든다. 그래서 완전무장을 해야 된다. 워커화를 신고, 방한복을 입고, 벨트를 차고, 방탄조끼를 입고, 썬그라스를 끼고, 헬멧을 쓰고, 방독면과 수통과 무기를 차야 된다. 그야말로 패션 테라피이다. 힘들어도, 무거워도, 답답해도 이 모든 것이 필요, 충분한 것이다. 무좀이 생길만큼 발에 땀이 차도 워커화를 신어야 산길, 강행군을 견디어낸다. 썬그라스는 겉멋을 부리려고 쓰는 것이 아니다. 강렬한 햇빛으로부터 눈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다. 헬맷을 쓰면 답답하고 무겁지만 유사시에 머리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필수 장비이다. 면류관을 쓴 자는 그 무게를 견뎌야 된다.
전신갑주 중에, 하나라도 문제가 생기면, 최소량의 법칙에 따라서 바로 그곳으로 치명적인 공격을 받게 된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전체를 망가뜨린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문제가 복합적이듯이 치료도 유기적이다. 병원에 가면 내과, 외과, 안과, 비뇨기과, 흉부외과, 신경정신과 등이 연합해서 치료를 한다. 토탈 힐링, 전인치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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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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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기독교이야기] 전쟁기 부산 교계: 군목제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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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의 결과로 시작된 이 군목제도의 시행은 한국기독교회에 대한 특혜였다는 비판도 있지만, 이 제도는 “한국 역사상 유래가 없는 선교의 전환점이 되었고,” 그 이후 군선교에 끼친 영향을 고려한다면 군종제도는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획기적인 사건이라는 김양선의 평가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김양선은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한국교회가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었으나 잃은 것 못지않게 얻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백만의 국군장병에게 복음을 전하여 확고한 정신무장을 시킬 수 있는 종군목사 제도의 실시라고 할 것이다. 이 사업은 실로 한국교회 반세기 사상에 있어서 가장 중대하고 위대한 획기적인 사실일 것이다.”
1951년 2월부터 1953년 4월까지 270여 명의 한국인 목사가 군목으로 투입되었는데, 6개월 이상 참전한 군목 중 2015년 5월 말 당시 기준으로 볼 때 생존자는 30여명에 불가했다고 한다(국민일보, 2015. 6. 2)
6.25 참전 미군 군목들: 한국전쟁 당시 연합군에 속한 군종장교는 140명이었다고 한다. 이중 13명이 순직하고 26명이 부상당했다. 연합군에 속한 군종 장교들 가운데 저래 다수가 미군에 속한 군종목사들이었는데, 한국전쟁에 제일 먼저 투입된 미군 군목은 일본 오끼나와에 주둔하고 있던 칼 허드슨(Carl R. Hudson) 목사였다. 그는 1950년 7월 5일 이른 아침 오산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전사한 군목은 미 제24보병사단 제19보병연대 소속의 헤르만 G. 펠호엘터(Chaplain Herman G. Felhoelter) 목사였다. 그는 대전 금강전투에서 미군 방어선이 무너지자 낙오된 부상병을 안고 기도하다가 북한군 수색대에 잡혀 30여명의 병사들과 함께 현장에서 총살되었다. 37세 때였다. 그는 한국서 전사하거나 포로로 잡혀 죽은 12명의 군목 중 첫 번째 희생자였다.
제25보병 사단 제35보병연대 군목 바이런 리(Byron D. Lee) 목사는 1950년 7월 인민군 격투기 폭격으로 사망했다. 이처럼 한국 전쟁시 희생된 미군 군목은 12명에 달하는데, 제19보병연대 케네스 히슬러(Kenneth C. Hyslop), 제2보병사단 제2보병대대 웨인 버듀(Wayne H. Burdue), 32보병연대 7보병대대 로렌스 브런너트(Lawrence F. Brunnert) 목사 등 군목들은 포로가 되었고, 3연대의 에밀 카폰(Emil J. Kapaun, 1916-1951) 신부는 중공군의 포로가 되어 수용소 병사들을 돌보던 중 사망했고, 다른 군목 포로들은 생사가 확인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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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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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연구] 칠천 명이 일어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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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이 한국교회의 위기를 말하고 있습니다. 위기는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요? 교회 외적인 사회적 요인도 있고, 교회 내적 요인도 많겠지만, 저는 그중 하나가 교회 리더쉽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목사님들께서 <교회는 목사 이상으로 자랄 수 없다>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교회는 목회자의 크기만큼 자라고 성숙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교회의 위기는 목회자 위기라 하겠습니다.일전에 현재 각 교단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계신 목사님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일치된 말씀은 한국교회의 미래 지도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교단장이나 연합기관의 책임자는 제도에 따라 선출하면 되겠지만, 교회를 영적으로 이끌 수 있는 지도자는 선거에 의해 선출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세워집니다.
저는 몇 해 전부터 한국교회에 있어서 엘리사의 시대가 끝나고 있다는 위기 의식을 느껴왔습니다. 아합과 이세벨이 우상을 숭배하면서 다스리던 북 왕국 이스라엘은 암흑 천지였습니다. 그러나 그 때도 등불을 밝힌 인물이 있었으니, 다름아닌 엘리야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갈멜산에서 우상 선지자들과 대결하여 여호와만이 참 살아계신 하나님이심을 온 세상에 선포했습니다. 또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었지만, 삼 년 육 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게 하기도 하고, 비가 오도록 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었습니다. 이 표현은 엘리야가 회오리바람 가운데 승천할 때 그 제자인 엘리사가 외쳤던 말입니다.
그러나 엘리사가 승천한 후에는 그 제자 엘리사가 이 희망을 이어갔습니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능력을 이어 받았습니다. 그 역시 요단강을 갈라 건넜고, 아람에 맞서 이스라엘을 수호했고, 아람의 군대장관 나아만이 왔을 때도 그의 나병을 고쳐 아람의 기를 꺾었습니다. 엘리사가 살아있는 동안 북 왕국 이스라엘은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사 이후 그 뒤를 계승하는 선지자가 없었습니다. 북 왕국은 점점 악해지고 약해지다가 결국 앗수르에게 멸망했습니다. 엘리야와 엘리사는 북 왕국의 버팀목이었으나, 그 후대가 없었습니다.
한국교회에 대해서도 비슷한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엘리야 시대가 있었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을 위시한 당시의 목회자들의 시대로서 교회들이 크게 부흥했습니다. 그 뒤를 이어 하용조, 옥한흠 목사님 같은 분들의 시대가 있었는데, 엘리사 시대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 분들 뒤를 잇는 지도자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윗대 어른들의 특징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고, 사역 현장에서 하나님께 매달리면서 부흥을 경험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뒤를 이은 세대는 좋은 교회 토양에서 성장했고, 스펙이 매우 뛰어나고 세련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교회들이 과거만 못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앞선 세대 목회자들 때보다 많이 약해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능력과 부흥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영적 야성이 부족합니다. 이들이 목회하는 교회에서 현재 부교역자로 일하는 이들, 조만한 교회의 담임목회자가 될 분들 역시 부흥을 경험하지 못한 채로 담임목회자가 될 것이고, 그때 한국교회는 더 약해질 것입니다. 지도자가 하나님의 능력과 영적 부흥을 경험하지 못한 교회가 어떻게 성령님의 역사를 드러낼 수 있겠습니까? 부흥을 경험한 세대가 점점 사라지는 현실이 너무도 아쉽습니다. 영적 능력과 부흥을 경험한 엘리사 같은 이가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칠천 명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제는 그 칠천 명이 영적 부흥을 경험하고 앞장 설 때입니다. 신학생들은 큰 교회를 바라보지 말고, 스펙 쌓기에 매달리지 말고, 그 전에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목숨을 걸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해야 합니다. 사역 현장에서 성령님을 의지하여 충성함으로써 부흥을 경험해야 합니다. 이제는 우리 각자가 엘리야, 엘리사가 되려는 일념으로 하나님께 엎드려야 합니다. 칠천 명이 모두 엘리사가 된다면, 한국교회는 살아날 것입니다, 그때를 사모하며 오늘도 주님 앞으로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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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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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칼럼] “낮은 모습으로 하늘을 우러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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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우리 교회 건물을 준공한 이후부터 교회 안에 있는 서재 안 방에서 거해 왔습니다. 저희 집이 이사한 지도 1년이 다 되어 가지만 아직 집에 가서 하룻밤을 자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제 방은 동굴과 같습니다. 창문이 두 개가 있는데 둘 다 이중창으로 되어 있거든요. 그래서 어지간한 천둥이 쳐도 천둥소리가 안 들릴 정도입니다. 그렇다고 화장실 쪽에 있는 창문을 열어놓으면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가 크게 들리고 반대쪽을 열면 환풍기가 있어 지하에서 뽑아 올린 좋지 않은 공기가 제 방으로 들어옵니다. 그래서 문을 닫고 환풍기로 강제 통풍을 시킵니다. 그러다 보니까 가끔 본당으로 가는 통로 쪽에 작은 공간이 있는데 거기서 글을 쓰고 설교를 준비할 때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창문을 열면 뒷산의 맑은 공기가 그대로 들어오고 새 소리와 매미 소리도 들립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곳에서 여름수련회에서 할 설교를 준비하고 있는데 요란하게 “웨엥~~”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입니다. 밖을 보니 누군가가 교회 벽 위에서 잔디를 깎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무리 불러도 쳐다보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급히 비서까지 불러서 둘이 함께 소리를 쳤습니다. 그 이유는, 조금만 있으면 들꽃이 만발해 있는 곳까지 다 깎아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목청을 다해 둘이 소리를 질렀더니 그제야 저를 쳐다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거기서부터는 풀을 깎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저렇게 예쁘게 피어있는 꽃들을 어떻게 잘라내려고 하십니까?” “저야 교회 요청에 따라 시킨 대로 일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제가 담임목사이니까 제 말을 따라 주시면 고맙겠어요”. 그렇게 해서 다행히 들꽃들이 피어있는 곳은 깎지를 않았습니다.
저는 교회 담 위에 피어있는 꽃들의 이름도 몰랐습니다. 하얀 꽃이지만 손톱만 하게 피어있는 꽃이었거든요. 그러나 저 꽃들도 아름답게 피어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했겠습니까? 그런데 애처롭게 피어난 이름 모를 들꽃들을 제초기로 깎아버리면 얼마나 무참하게 쓰러져버리겠습니까? 꽃이란 유명하고 화사한 꽃만 소중한 것이 아닙니다. 이름 모를 들꽃이라 하더라도 꽃망울을 여는 순간 그리움이 되고 연인이 되는 것입니다. 연모함을 찬사하는 사랑이 되고 순결한 고백과 같은 존재이지요. 그러니까 꽃은 바라보기만 해도 애처롭거나 행복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꽃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은 저에게 사랑의 손짓을 하는 모습과도 같이 느껴졌습니다.
며칠 후 다시 와서 보니까 꽃은 어엿하게 서 있습니다. 아주 작은 꽃이지만 그 난폭한 여름의 폭우를 맞고도 끝까지 고고하고 순결한 자태로 서 있었습니다. 물론 얼마 있으면 저 꽃도 지게 되겠죠. 하지만, 아직은 곱고 순결한 자태로 오롯이 서 있었습니다. 저 손톱만 한 하얀 꽃을 보노라니 가까이 가서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담벼락에 올라 깎여지지 않은 들꽃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어리고 여린 개망초 꽃이었습니다. 이름 모를 작은 들꽃도 있었습니다. 바람이 불었습니다. 꽃들이 흔들리며 저에게 이런 소리 없는 외침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당신 때문에 무참히 꺾이지 않고 이렇게 작지만 지금까지 순결한 모습으로 피어있습니다.” 저 여리고 한없이 부드러운 꽃을 꺾지 못하게 한 것이 무척이나 다행이라고 여겨졌습니다. 문득, 밤에 별빛을 사모하는 마음처럼, 아니 그 마음이 꽃잎에 어리는 듯했습니다. 갑자기 낮은 모습으로 하늘을 우러르고파졌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 지구촌 속에 저 역시 너무나 작은 존재에 불과합니다. 그렇지만 살아 있는 동안 이름 모를 저 들꽃처럼 바람이 불면 흔들리다가 아침이면 이슬 한 모금 축이며 저녁이 올 때까지는 작은 향기라도 풍겨내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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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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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각자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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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간에 “각자도생(各自圖生)”이란 말이 유행입니다. 이른바 ‘과학방역’ 논란으로 급격히 퍼지기 시작한 듯한데, “각자도생 방역 오해, 의미 전달 부족했다”는 질병관리청장의 공식적인 해명이 나올 정도가 되었습니다(7. 26). 115년 만이라는 최악의 폭우로 한강 이남이 물바다로 변한 며칠간의 혼란상 속에도 “직장인들은 알아서 각자 도생하라는 말로 들려 씁쓸하다”는 반응이 터져 나왔습니다(세계일보, 8. 10). 사실 이 말은 코로나 시대에 진입하면서 심심찮게 등장하곤 했는데, 이제는 정치판에서도 집권여당의 난맥상을 두고 “정부 힘든데 당까지 각자도생”이라 하고, 연예계에서도 “뿔뿔이 흩어진 걸그룹 출신들이 각자도생하며 연예 활동의 2막을 열고 있다”고 썼으며, 어느 목사는 “이제 크리스천은 각자 도생해야 한다”고까지 했습니다(cafe.daum.net/s.shool). 벌써부터 ‘각자도생 사회’라는 개념을 제시한 이도 있었는데, 이년 전 발간된 책의 제목이기도 합니다(전영수, 2020. 3).
놀랍게도 각자도생은 순수한 우리말 사자성어라고 합니다. 조선왕조실록에 다음과 같은 실례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殺戮之禍 使之各自圖生也(살륙지화 사지각자도생야)’ 곧 ‘살륙지화(에) 각자 자기 살기를 도모하게 하라’는 임진왜란 기간의 기록입니다(선조 27년 9월 6일, 1594년). 다음으로 ‘臨亂遺君 各自圖生 罪實非細(임란유군 각자도생 죄실비세)’ 곧 ‘난리를 맞아 임금을 버리고 각자 살기를 도모하는 것은 실로 작은 죄가 아니다’, 이는 병자호란 때의 기록입니다(인조 5년 10월 4일, 1627년). ‘今焉離井去里 各自圖生(금언이정거리 각자도생)’ 곧 ‘지금은 정리(마을)를 떠나 각자 살기를 도모합니다’는 흉년의 실상 속에 올린 상소문에 등장하는 문구입니다(순조 9년 12월 4일, 1809년). 이들만 보아도 각자도생이란 말을 어떤 경우에 사용했는지 금방 알겠습니다. 전란 속에서 기근 속에서 각종 고난 가운데 정부를 비롯한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우리네 선조들은 각자도생이라는 인생판의 외통수에 내몰리곤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각자 살기를 도모해야 하는 사람들은 저들만이 아닙니다. 각자도생이란 작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어렴풋하게라도 느끼고 있는 필연적인 좌우명일지도 모릅니다. 케임브리지에서 수학하고 가르쳤던 노리나 허츠(Noreena Herts)는 『고립의 시대(The Lonely Century)』(웅진, 2021)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그 결과 오로지 승자만을 위한 이 사회에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아주 오래전부터 자신은 남에게 뒤처진 패자라고, 결국에는 우리 모두 각자도생해야 한다고 느끼고 있다. 이제는 전통적으로 일과 공동체를 단단히 묶어주던 밧줄이 썩어가고 있고 사회안전망이 잠식되어 사회적 중요성이 축소되고 있다.”(29) 코로나 광풍전야였던 2019년 연말을 맞아 직장인들이 선택한 올해의 문구가 벌써 각자도생이었습니다(인쿠르트 설문조사).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노후를 책임지는 각자도생의 길로 빠질 것이다”, 일찍이 경제학자 로버트 머튼(MIT)이 했던 말입니다. 여기서 잠시 한번 자신을 돌아보기 바랍니다. ‘그래, 나밖에 없어, 나를 도와줄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이런 생각을 한번쯤 해보지는 않았습니까?
그렇다고 각자도생이 무조건적으로 해롭다는 말은 아닙니다. 다시 방역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요? 근자에 질병관리청장이 남긴 말의 일부입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필요하다. 다만 정부의 조치로 갈 것이냐 국민의 자발적인 참여로 갈 것이냐의 문제”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자발적”이란 말은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대단히 중요합니다. 각자도생이란 결국 자발성이나 자율성의 극성이라 볼 여지도 있는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극성’이라고 했습니다. 공동체적인 돌봄과 온정으로 보완해야 할 절대적인 필요성이 있다는 뜻입니다. 신앙적으로는 더욱 그러하지 않겠습니까?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요 15:4). 신자가 각자도생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물론 신이 방관하고 침묵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각자도생해야 하는 건가, 이런 의문이 들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막스 피카르트(Max Picard)의 이 말을 기억합시다. “신의 침묵은 인간의 침묵과는 다르다.. 신의 침묵은 사랑을 통해서 말씀으로 변한다. 신의 말씀은 스스로를 비치는 침묵, 인간에게 스스로를 바치는 침묵이다.”(침묵의 세계, 266-26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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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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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음악칼럼] 교회음악의 새로운 이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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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예배와 찬양의 갱신에 대한 절박함을 개괄적으로 제법 긴 시간을 통해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감당해야할 현실이 너무나 어렵고 무거워서 생각하기조차 힘들었을 수 있다. 이를 잠시나마 위안으로 삼았다면 이제 다시금 일어나 나를, 가족을, 교회공동체를 생각하며 재정비를 시작해야 한다. 나는 부족하여 전혀 가능하지 않지만 성령께서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힘을 내어 보는 것이다.
성경에서 이야기하듯이 우리의 영적무장의 핵심은 성경 말씀이다. 즉 올바른 지식에 대한 이해는 영적인 삶을 살아가는데 이정표가 된다는 말이다. 따라서 교회음악, 예배음악에 대한 바른 이해는 예배자로서의 삶을 바르게 인도해줄 것이 분명하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축복은 부정한 입술을 회복 시키셔서 영화로우신 하나님을 찬송케 하신 것이 아닐까? 예배에서 분리할 수 없는 음악이 영감 있고, 열정과 감격으로 충만할 때 예배의 새로움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제 보다 구체적인 관점에서 교회음악의 새로운 이해를 통하여 예배음악의 비전을 제시하고 변화를 모색해 보고자 한다.
교회음악을 조금 장황하게 정의해보면 모든 장르와 연주형태를 통하여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주제로 하거나 복음과 성경 말씀을 소재로 한 음악 그리고 선진들이나 성도들의 삶을 통해 경험한 하나님의 역사와 은혜에 대한 감사를 노래한 모든 음악을 우리는 교회음악이라 부를 수 있다. 여기에 제시한 교회음악의 정의는 앞으로 계속해서 이야기할 찬양에 대한 폭넓은 이해에 중요한 잣대이자 기준이 될 것이다.
사실 음악사를 이야기할 때 교회음악을 빼 놓을 수 없다. 하나님을 찬양한 것에서 음악은 시작되었고, 변화하고 발전해 왔기에 그렇다. 음악은 시대와 나라, 문화 그리고 민족에 따라 각기 다른 방식으로 변화하고 발전해 왔다. 물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인류의 모든 역사가 그렇듯이 새로움에는 늘 힘든 갈등과 고통이 수반되었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과정 속에서 나름의 방법과 치유의 성숙함도 함께 진행된 것 같다. 뒤를 잠시만 돌아보아도 알 수 있을 만큼 나와 우리의 주변은 큰 변화를 격으며 나아왔다. 변화는 거부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이다. 물론 신앙의 본질인 성경 말씀은 조금이라도 변할 수 없고, 변해서도 안된다. 그러나 비본질적인 것은 변할 수 있고 또 변하며 발전해야 한다.
하나님을 향한 찬양은 구약시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쉼 없이 이어져왔고, 변화를 거듭해 왔다. 찬양의 방식 또한 각 시대와 지역, 전통과 신학에 따른 다양한 변화가 있어온 것도 사실이다. 기독교 리더들은 시대의 흐름을 민감하게 읽고 본질을 흐리지 않으면서 새롭게 변화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다시 한번 더 강조하자면 음악을 통한 변화, 변화를 통한 새로움 이러한 진행은 끊임없이 힘있게 반복되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그 생명력으로 인해 놀라운 역사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는 이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과감하고 창조적으로 하여 보다 아름답고 거룩함으로 주님을 높이는 일에 열심을 다하여야 한다.
우리의 부족과 무지, 안일함으로 관습과 문화에 젖어서 우리들이 만들어 놓은 울타리 안에 갇혀 빠져 나올 생각조차 못하고, 아집과 교만으로 승부한다면 이것은 당신이 창조하신 모든 것들로 다양하고 무한한 영광과 칭송을 받으시기 원하시는 광대하신 하나님을 우리가 제한하는 우를 범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 된다. 이제 우리는 겸손하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렬한 헌신으로 생명의 주를 지치지 않고 찬양하며, 존귀케 하기를 원한다. 더불어 특별히 바라기는 그 옛날 교회음악이 모든 음악을 주도하고 이끌었듯이 이러한 부분의 회복도 이뤄지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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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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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말씀] 유월절을 지키라(출 1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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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10번째 재앙이 애굽에 임합니다. 하나님께서 밤중에 애굽에 들어가셔서 사람이든 짐승이든 처음 난 것은 다 죽이겠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자손은 개의 혀도 움직이지 않는 평안함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특별한 일을 지시하십니다. 바로 유월절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이 유월절을 지킴으로 죽음에서 구원해 주시겠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유월절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이 유월절을 지키는 방법을 통하여 유월절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1. 유월절은 어린 양을 준비합니다.(3,5절)
한 가족이 하나님께 바치기에 가장 적합한 일 년 된 어린 양을 취하여 4일 동안 보관하며, 양이 흠은 없는지 충분히 살핍니다. 나아가 양을 바라보면서 나 대신 ‘희생제물’이 될 ‘대속’의 의미를 새기며,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더욱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 대신 피 흘려줄 하나님의 어린양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어린양을 친히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유월절 어린양' 이십니다.(요 1:29, 벧전 1:19)
2. 유월절은 어린양을 죽여 피를 문에 바릅니다.(6,7절)
14일 저녁 어린 양이 죽습니다. 죽음의 값을 치러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에 죄를 그냥 넘어가지 못하십니다. 그 값은 생명은 생명입니다. 죽음으로 죄의 값을 치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라고 하셨습니다. 피를 바른다는 것은, 죗값으로 죽어야 할 나 대신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의 은혜를 깨달아, 마음으로 십자가 보혈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은혜만을 의지하는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애굽을 심판하실 때에 넘어가겠다고 하십니다.(13절)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 Passover, 이것이 바로 유월(逾越)입니다. 따라서 이 유월절 어린 양의 피는 죽음을 통하여 생명을 탄생시키는 구속의 피입니다. 구원을 결정하는 것은 죄의 크기가 아니라 피의 유무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든 어떤 일을 했던 상관이 없었습니다. 문제는 예수님의 보혈의 피가 있는가, 없는가에 있습니다.
3. 유월절은 고기를 먹습니다.(8절)
왜 고기를 먹으라고 하실까요? 애굽에서 나오면 바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광야를 지나가야 합니다. 광야를 지나가려면 힘이 있어야 합니다. 고기를 먹으면 힘을 얻습니다. 광야를 지날 힘을 얻습니다. 이 고기는 예수님의 몸을 의미합니다.(요 6:51-56) 우리가 성찬에서 그리스도의 몸을 기념하는 떡과 잔을 나누지요. 우리가 예수님을 먹는다는 것은 주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고, 예수님과 연합되고 하나 되어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내 안에 계셔야 영적인 힘을 얻습니다. 그래야 광야와 같은 이 세상을 승리의 찬송을 부르며 지나갈 수 있습니다.
4. 마지막으로, 유월절은 새로운 시작입니다.(2절)
하나님께서는 기존의 날짜 계산법을 초월하여 새로운 월력을 제정하십니다. 왜냐하면, 이 유월절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의 해방과 더불어 새로운 삶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우리에게 적용한다면, 우리 인생의 시작은 예수님을 만난 날인 줄 믿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시간에 새로운 피조물로 살게 되시길 바랍니다.(고후 5:1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신앙의 유월절을 갖게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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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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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 35년이 지난 지금, 난 사업가인가? 사역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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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20대 시절,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십대 사역에 뛰어 들었고, 벌써 35년이 지났다. 35년이 지난 지금 가끔 난 내가 사업을 하고 있는지 사역을 하고 있는지 하나님 앞에 진지하게 물을 때가 있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열심히 사역을 하고 있는 듯 하지만,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사업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본다. 그러면서 다시 되묻는다.
“나는 청소년 사업을 하고 있나? 사역을 하고 있나?”
사업과 사역의 차이는 무엇일까? 사업은 인간이 뜻을 갖고, 인간이 계획을 세우고, 인간의 노력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고, 사역은 하나님이 뜻을 세우고, 하나님이 인도하고, 하나님이 통치하며 인간이 그 일에 동참하는 것을 말한다.
사업과 사역의 의미가 결정적인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주체이다.
“일의 주체가 누구인가?”
사역을 하려고 할 때, 나의 죄성 때문에 사업을 하기도 했고, 사업을 하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사역의 중심으로 돌아서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지난 35년 간 부단히도 많은 노력을 해왔던 것 같다. 사업이 아닌 사역을 하고 싶어서… 진정한 사역자가 되고 싶어서…
지난 세월을 돌아보며 진정한 사역자가 되기 위해 하나님 앞에서 몸부림쳤던 나의 작은 깨달음들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첫째, 나의 계획, 나의 뜻을 내려놓아야 한다.
이 말이 쉬우면서도 어렵다.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우리의 지성과 경험을 사용하신다. 하지만 진정한 사역 속에서는 나의 모든 것을 내려놓기 원하셨다. 이 한 문장을 깨닫는 것이 그렇게 어렵다.
둘째, 하나님과의 동행이 참 사역이 된다.
내 뜻이 얼마나 앞섰는가? 그래서 하나님의 사역이 얼마나 원했는가? 청소년의 우울, 청소년의 변화, 모두 좋다. 그러나 난 항상 주님보다 먼저였다.
셋째, 주님이 앞서고 난 동역할 때, 열매가 나타난다.
어떤 때는 그렇게 열심히 사업해도 열매가 없었다. 어느 때는 그렇게 내려놓아도 주님이 일하심에 열매가 풍성했다. 먼저, 과거에 하나님이 어떻게 일했고,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보아야 사역의 개념을 이해할 수 있다.
한국교회를 예로 들어보자.
북한의 경우, 1907년에 평양 대부흥을 주셨다. 그러나 공산 정권으로 김일성의 주체사상과 함께 우상이 득세했다. 누가 더 강한 우상을 무너뜨릴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고난의 행군을 통해 우상을 무너뜨렸다. 지금 북한은 하나님이 새롭게 일하고 있다. 천천히, 천천히 지하 속에서 순수성을 가진 성도를 세우며 다시 영혼을 살리고 계신다.
남한의 경우, 경제 부흥과 동시에 교회 부흥을 주셨다. 세계 10대 교회가 한국이 있을 정도로 한국 교회는 큰 부흥을 경험했다. 그러나 세속화로 인해 교회가 힘을 잃어가고 있다. 지금 하나님은 남한 교회에 남긴 순수한 사역자를 세우고, 찾아내고, 훈련시키고 있다.
나는 과연 교회 사업가인가? 교회 사역자인가?
말은 교회 사역자, 청소년 사역자라고 하지만 나도 모르게 청소년 사업가로 변질되어 가고 있지는 않은가?
십대의벗을 하다 20년 전부터 다음세대를 외쳤지만 지금까지 변한 것은 없다. 교회마다 다음세대란 말은 그럴듯하게 하지만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16년 전에 개척을 했고, 교회를 통해 다음세대를 회복이라는 사명을 감당하고 있지만, 이 사역을 하면서도 마음이 아프다.
“주님께서 어떻게 일하실지? 다음세대를 위해 주님이 원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지?”
한국 교회의 청소년 사역자들이여! 같이 고민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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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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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기독교이야기] 전쟁기 부산 교계: 군목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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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목제도의 시작
6.25전쟁은 한국군 내의 군목(軍牧) 병과를 설치하는 계기가 된다. 이렇게 시작된 군목 제도는 이후 한국교회 성장에 상당한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된다. 한국에서의 군목 제도는 전적으로 미국의 것을 그대로 모방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전쟁으로 미군과 함께 군목이 복무하게 됨으로서 한국군에도 군목 제도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군 선교를 제일 처음 고려한 이는 해군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손원일(孫元一, 1909-1989) 제독이었다. 감리교 손정도(孫貞道, 1882-1931) 목사의 아들이기도 한 손 제독은 전쟁 전인 1948년 해군에서 정훈 장교 형식으로 착수하게 한 바 있으나 공식적인 병과를 고려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전쟁이 발발하여 국가가 존망의 위기에 처해 있을 때 교회지도자들의 기도운동이 일어났고, 이 기도운동과 함께 군에서의 목회 혹은 정훈활동의 필요성을 인식한 손원일 제독과 교회 지도자들은 군목제도를 청원하게 된다.
한국에서의 군목제도의 기원에 대해서는 상의한 견해가 있지만, 전쟁 기간 중 군목제도에 대한 복수의 청원이 결국 군목 병과를 시작하는 배경이 된다. 군목 제도는 1950년 11월 21일 이승만 대통령의 훈시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 이전인 1950년 8월 피난지 부산에서 교계 대표들, 곧 한경직 박종율 박치순 유형기 목사 등이 모여 군목 임명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고, 이 사실을 이승만 대통령에게 진언하였다. 1950년 9월에는 선교사 신분으로 미군 군종부 문관으로 임명된 캐럴(George Carroll) 신부와 감리교 선교사 윌리엄 쇼(서위렴, William Show) 목사는 이승만 대통령에게 군종 제도 창설을 건의하였다. 그리고 미군 극동사령부 군종과장 이븐 베넷(Ivan L. Bennett) 목사는 미군과 한국정부 사이의 가교역할을 했다.
그 결과 1950년 8월 1일부터 미군 군종부 문관으로 활동한 이들은 신성모 국방장관, 그리고 국무총리를 방문하여 군종제도의 필요성을 역설하여 적극적인 협력을 얻었고 9월 5일에는 이승만 대통령을 면담하고 군종제도 창설에 대해 청원하였다. 9월 18일에는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구세군 대표들로 ‘군종제도 추진위원회’를 결성하여 천주교의 캐럴 신부와 장로교의 한경직, 감리교의 유영기 목사를 대표로 선출하였다. 이들 대표들은 19일 대통령을 면담하고 6.25 전쟁은 사상전이므로 정훈활동이 필요하고 미군이나 유엔군과 같은 군종제도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교회 지도자들의 요청에 따라 그 필요성을 공감하고 1950년 11월 21일 육군참모총장 정일권 소장에게 군목제도 설치 훈시를 내렸다고 한다.
대통령의 훈시에 따라 정일권 육군참모총장은 군목제도를 창설하게 했고, 결국 1951년 2월 7일 군목제도가 시작되었다. 당시 군 예산이 부족하여 피복 식량 등 병참 관계는 군에서 담당하되 군종활동 경비는 파송하는 각 교단이 부담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첫 군목이 박대선, 전종옥, 박치순, 김형도, 윤창덕, 김윤승 등 39명의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목사와 천주교 신부들이었다. 이들은 4주간의 교육을 받고 1951년 4월부터 각 일선부대와 병원 등에 배치되었다. 제1기 군목인 박치순은 제주 훈련소에서 일했는데, 그가 여기서 처음으로 군인교회를 세우고 군인들의 정신생활을 지도하였다고 한다. 1951년 2월부터 군목 제도가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독립된 병과로서의 군종 병과라기보다는 민간인 목사 신분으로 전쟁 중 군선교 활동을 할 수 있는 허락을 받은 정도라고 할 수 있다. 군종의 신분은 현역 군인보다는 문관이 더 바람직하다는 이 대통령의 의견을 따른 것이었다.
이와는 별도로 김영환(金英煥), 지송암(池松岩) 두 목사는 전쟁이 발발하자 광주에 있던 제3육군병원을 방문하여 전도하기 시작했는데 병원장인 장희섭(鄭熙燮) 대령은 이들에게 ‘종군 목사’라는 직함을 주었다고 한다. 정희섭 대령은 목사의 아들로서 군선교 활동을 가능하게 했는데, 김인서는 이것이 군목 활동의 시작이라고 보고 있다. 그 후 장로교의 권연호(權連鎬) 목사와 각 교파 지도자들과 주한 외국 선교부 관계자가 연합하여 외국에서와 같은 군목 제도 창설을 이승만 대통령에게 공식적으로 진언하였고, 대통령은 이를 허락하여 육군 안에 문관의 자격으로 군목 업무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종합적으로 판단해 볼 때 전쟁이 발발하자 복수의 교계 인사들에 의해 군선교를 위한 시도가 있었지만, 교회 지도자들과 외국 선교부 관계자들이 군 선교차원에서 군목 활동을 대통령에게 진언하여 민간 차원의 문관 신분의 군목 제도가 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앞에서 지적한 바처럼 처음에는 무보수 문관 신분으로 군목 활동을 시작했으나 1952년 6월에는 유급 문관으로 격상되었고, 1954년 1월 12일에는 군종을 독립된 병과(兵科)로 인정함으로서 군종감실이 설치되었고, 12월 13일에는 육군에서 군목을 현역 장교로 임관하여 이 제도가 확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1952년 초까지 80명의 군목이 각 부대에 배치되었는데, 이중 51.9%가 예수교 장로회 소속 목사였다. 1954년 4월 당시 군목 수는 199명으로 증가했고, 1955년 8월에는 352명을 증가되었다.
**혹 길면 마지막 부분 짤라 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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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