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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칼럼 기사

  • [은혜의말씀] 무화과 나무가 마르다(막 11:12-14)
    베다니에서 하룻밤을 보내신 예수님은 이른 아침, 다시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십니다. 그런데 배가 좀 고프셨나 봅니다. 멀리 무화과나무 잎사귀가 풍성한 것을 보시고는, 열매를 얻을까 하여 가까이 가십니다. 그런데 잎사귀만 무성하지 아무런 열매가 없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 나무를 저주하십니다. “이제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 오늘 본문은 좀 이해하기 힘지요? 이 본문은, 이스라엘의 대표적 나무인 무화과나무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 필요가 있습니다. 무화과나무의 본격적인 수확기는 6월에서 7월입니다. 그러나 나무에 따라서는 좀 이른 시기인 3-4월에 열매를 맺기도 하고, 반대로 좀 늦은 시기인 9-10월에 열매를 맺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화과나무는 열매가 먼저 맺히고, 잎은 나중에 무성해집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길을 가시다가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열매를 구하러 다가가신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나무를 저주까지 할 필요는 있느냐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예수님이 나무를 저주하시는 것은 하나의 ‘상징적인 행위’입니다. 바로 허울뿐인 이스라엘 백성들의 잘못된 신앙을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의 신앙이 잎만 무성하고, 열매는 하나도 없는 껍데기 신앙과 같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자, 우리가 무화과나무를 통해서 배워야되는 교훈은 이것입니다. 1. 잎만 무성하고 열매는 없는 껍데기 신앙 – 종교 외형주의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시 바리새인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그들은 겉으로 보면 대단했습니다. 종교적 열심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껍데기만 그럴듯하게 포장을 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의식했습니다. 자, 오늘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보여지는 것에 신경을 쓰고, 사람들의 시선에는 집중하지만,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가 멀어져 있다면, 잎만 무성하고 열매는 없는 신앙입니다. 입술로는 ‘주여, 주여’ 하는데, 행동은 도무지 주님의 뜻과는 관련이 없다면, 그게 열매 없는 허울뿐인 신앙, 종교의 외형주의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은 어떻습니까? 혹시 바깥으로 기울어져 있지 않습니까? 저는 여러분의 신앙이, 외형이 아닌 내면이 단단하고 꽉 차 있는 진짜 신앙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2. 무화과나무를 통해서 배우는 교훈은 - 예수님은 우리 삶에 열매를 찾으신다는 것입니다. 무화과나무는 꼭 한 가지 목적을 위해서 존재합니다. 바로 열매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 삶에 정직과 신실함과 의의 열매가 풍성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삶이 예수 향기를 나타내는 거룩한 열매가 풍성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열매를 맺습니까? 아니, 왜? 열매를 맺지 못할까요?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이유는, 주님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의심하지 않고, 그분을 온전히 신뢰하는 것입니다. 기적을 믿는 게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기도가 없기 때문이다. 기도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엎드리는 순간, 기도하는 순간, 살아계신 주님의 능력이 임할 줄 믿습니다. 열심히 기도하는데도, 기도 응답의 경험이 없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기도가 막혔는지도 모릅니다. 인간관계의 갈등입니다. 내 마음속에 이웃을 향해서 미움이 있다면, 그것이 기도를 막는 것입니다. 용서는 하나님의 중요한 성품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해주셨습니다. 복음의 한가운데는 용서가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한없이 하나님의 용서를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도 용서를 실천해야 합니다. 모든 성도님들이, 세상 속에서 날마다의 삶이 거룩한 예배가 되도록 하시길 축복합니다. 세상 속에서 거룩하게 살므로, 풍성한 열매를 맺으며 살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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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01
  • [교회음악칼럼] 찬송(예배)하며 사는 사람들 9
    미국에서 살 때 아들의 성화에 못 이겨 런닝머신을 들여 놓았다. 그것만 있으면 살을 뺄 수 있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살도 못 빼고 머신은 장식품으로 전락했다. 운동을 하면서 느낀 것인데 억지로라도 운동을 하기 위해 머신에 올라갔을 때 제일 힘든 점은 지루함이다. 절박함이나 목표가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좁은 실내공간에서의 운동은 답답하기까지 했다. 비겁한 변명이긴 하지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다. 30분정도 걸으니까 몸이 데워지고 근육과 관절이 부드러워 지면서 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이 지루한 30분이 문제였다. 이것을 극복할 수만 있다면 지속적인 운동이 가능하겠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가 무엇인가는 시작하면 얼마가지 않아 어려움에 봉착할 때가 있다. 나의 전공인 음악분야를 예를 들면 아이들이 피아노를 시작하게 되면 바이엘이라는 교본으로 시작을 하는데 반쯤 진도가 나가면 힘들어 하면서 하기 싫어하는 것을 보게 된다. 나름 힘든 장애물을 만난 것이다. 이 고비를 넘기지 못하면 포기하게 된다. 상당한 수준의 경지에 이르기까지 이와 같은 어렵고 힘든 고비를 수도 없이 견디고 넘어야한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겨내야만 목표한 바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성악도 가르쳐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짧은 시간에 결과를 얻고자 한다. 바꾸어 말하면 길게 인내하며 지속적으로 오래하기를 원치 않는 것이다. 세상에 어떤 열매도 지난한 고난의 시간을 견뎌내지 않고 얻을 수 없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모든 여정가운데 이것은 늘 경험해 온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즉 지속적이고 꾸준함이란 참으로 고통스럽고 힘든 것임에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우리의 신앙생활을 돌아봐도 능히 느낄 수 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푯대를 향한 우리의 걸음이 바르고 꾸준하였는지, 어렵고 힘들어서 주저앉아 걷기를 포기한 적은 없었는지, 또 지금 나는 인내하고 참으며 지속적으로 푯대를 향한 걸음을 계속하고 있는지, 아니면 안개 속에 길을 읽고 헤매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쯤 돌아보며 점검해 봤으면 좋겠다. 시대의, 세월의 흐름에 맡기고 살아도 될 만한 세상이 아닌 거 같다. 찬송과 예배가 강력하게 살아나서 힘들고, 악하고, 유혹이 많은 이 땅위를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소망하는 푯대를 향한 걸음에 멈춤이 없고 변함없는 꾸준함으로 쉼 없이 걸어갈 수 있기를 기도하며 하루하루 주님을 향한 사랑과 감사의 노래가 우리 입술을 통해 끊임없이 고백되고 선포되어지기를 소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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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01
  • [목회자칼럼]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있나?
    1397년 5월 15일, 지구의 한 곳에 한 생명,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그 후 약 150년이 흐른 후 1545 4월 28일, 지구의 한 곳에 한 생명,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이 두 사람은 현재 ‘경제규모 13위 부유국가, 7위 소비국가’인 대한민국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첫 번째 한 생명, 아기는 잘 자라서 훌륭한 공무원이 되고, 두 번째 한 생명, 아기는 잘 자라서 군인이 되었습니다. 여기까지 말씀드리면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은 다들, 눈치를 채셨겠지요? 아니면 아직도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예상을 못하고 있는지요? 첫 번째 한 생명, 어린 아기는 자라서 훗날 한글을 창제한 조선 4대 왕인 세종대왕이 됩니다. 그리고 두 번째 한 생명, 어린 아기는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어려움을 당할 때, 바다를 지키며 임진왜란을 승리를 이끌고 23전 23승이라는 기적같은 전직을 세운 이순신 장군입니다. 만약, 이 두 생명, 두 어린 아기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세종대왕은 한글을 만들면서, 훗날 조선을 넘어 대한민국의 후손들이 한글을 자랑스러워하며 민족의 정신이 담긴 글로 받아들이며 잘 사용할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고 만들었을까요? 이순신 장군 역시, 500년이라는 긴 시간이 흐른 후 지긋지긋한 일본의 괴롭힘 속에 벗어나 이제는 일본과 경제, 문화 분야에 어쩌면 더 뛰어난 성장을 이룰 것을 알고 치열하게 싸운 것이었을까요? 아마, 아닐 것입니다.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 모두, 100년 후 혹은 500년 후를 미리 알고 그 일들을 한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을 의미를 찾아내서 했기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세종대왕이 중국의 눈치를 보며 한글을 창조한 이유는 ‘백성을 향한 사랑’이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오자병법과 손자병법을 뛰어 넘는 전술로 전쟁을 했습니다. 이순신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적의 숫자가 아군보다 더 많으면 절대로 싸우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지만, 이순신은 13척의 배를 갖고 명량해전을 치루었습니다. 오자병법, 손자병법을 넘어서는 결정을 하며 해전을 치룬 이유는 무엇인가요? 바로 어려움을 겪는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 이었습니다. 이제 시선을 돌려 나를 향하여 바라봅시다. 지금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요? 혹,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결과가 나오지 않고, 별다른 성과가 없어 힘들어 하고 있지는 않는가요? 연말을 맞이해 일년을 결산하면서 날씨도 춥고 경제도 추운데 이뤄놓은 것도 없어 마음까지 추운 분은 없는지요? 지금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느 곳에서 이름도 없이 묵묵히 자기의 일을 감당하며 뚜벅뚜벅 걷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비록 빛도 없고, 이름도 없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갖고 다가서는 그 자리에 100년 후, 500년 후에 대한민국과 하나님 나라가 있을 것입니다. 2000년 전, 1월 1일에 태어난 한 생명 예수가 오늘날 전세계 75억 가운데 30억의 가슴 속에 하늘 나라의 사랑을 심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중 한 명이 바로 나이고, 나같은 사람을 그분의 사랑으로 변화시키셨습니다. 뉴턴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도 사랑이라는 바다에 한 발 조차 담그지 못한, 모래 밭에서 놀고 있는 어린 아이와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바다를 눈과 가슴에 품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내 눈동자와 가슴 속에는 바다가 넘실거리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나는 그 바다에 나 자신을 내던질 것입니다. 나 스스로를 사라이랑는 바다에 던지려는 순간, 무수히 많은 사람이 곁에 있지 않을까요?” 사랑으로 시작했는데 지쳐버린 영혼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이 걷고 있는 그 길이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당신이 걷고 있는 그 길이 미래와 하나님 나라를 만들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이 바로 미래의 출발점임을 아는 것, 지금 내가 섬기고 있는 단 한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의 시작점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2023년을 보내며 다시 한 번 점검해야 할 나의 태도와 자세일 것입니다. 2023년, 마지막 한달을 남겨 놓고 있는 이 시점, 다시 사랑에 물들고 싶고 사랑으로 견디고 싶고 사랑으로 승리하고 싶습니다. 지쳐버린 영혼이 있다면 다시 사랑으로 일어나길, 다시 하나님의 소망으로 세워지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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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01
  • [이상규 교수의 역사탐색]호주선교부의 미우라 고아원 출신 김순복 여사
    김순복, 결혼 후에는 남편의 성을 따라 박순복으로 불린 한 여성의 삶의 여정은 초기 경남지방 교회 역사의 한 단면이자 한 여성의 변화된 삶의 행로를 보여주는 역사의 흔적으로 남아 있다. 김순복은 어떤 여성이었을까? 1892년 10월 12일 내한한 호주장로교 제2진 5명 중 여선교사 멘지스와 진 페리, 그리고 퍼셋은 부산진 죄천동에 거주하면서 한국인들과 접촉하기 시작했고, 전도하기 시작했지만 이들의 첫 번째 사역은 고아원의 운영이었다. 처음부터 의도한 사업은 선교사 집에 버려진 아이 때문에 1893년 고아원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 고아원이 부산경남지방 최초의 사회복지시설이라고 할 수 있는 미우라(Myoora)고아원이었다. 버려진 한 아이로 출발했으나 점점 수가 증가되어 2년 후에는 13명으로 늘어났다. 그 중의 한 아이가 김순복(金順福, 1887-1942)이었다. 6살 혹은 7살 정도 되었을 때 이 고아원에 오게 된 것으로 보이는데, 그의 부모도 알 수 없고, 어떤 환경에서 고아원에 수용되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미우라에 와서 서양 선교사들을 만난 덕에 신앙교육을 받게 되었고, 멘지스가 시작한 일신여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이렇게 성장한 김순복은 1905년 호주선교부를 도우며 매서전도인으로 활동하던 박성애(朴晟愛, 1877-1961) 라는 청년과 혼인하게 되었다. 이때가 1905년 2월 15일이었고 18살 때였다. 남편 박성애는 28세였으니 순복이 보다 10살 연상이었다. 박성애의 혼인은 약간 늦었으나 당시에 기독교 신앙을 가진 처녀를 찾기 어려웠다. 이런 상황에서 맨지스는 자신이 양육한 순복이와의 혼인을 주선한 것이다. 결혼 예식을 주례한 이는 왕길지 선교사였다. 이때의 예식은 호주장로교 휘하의 주일학교를 위한 잡지인 「레코드 The Record」 18권 2호(1906. 2) 표지와 내지(10쪽)에 게재되었고, 신부 김순복이 에벤에셀교회 주일학교에 보낸 짧은 편지도 소개되어 있다.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그간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저는 여러분들이 베풀어 주신 후원에 힘입어 평안하게 살고 있습니다. 저는 가련한 소녀였으나 여러분들의 자상한 도움으로 좋은 음식과 좋은 옷을 입고 잘 살고 있고, 주야로 여러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무엇보다도 주님을 알게 된 점에 대하여 더 큰 감사를 드립니다. ... 비록 우리가 서로 얼굴을 보지 못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하나가 되어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항상 주의 은혜를 누리시기를 간절히 기대하며, 이 세상에서도 여러분들의 얼굴을 보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저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십시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박순복.” 이때부터는 남편의 성을 따라 박순복으로 불렸다. 남편은 1877년 5월생으로 부산진구 범일동에서 4남매의 장남으로 출생했는데, 한문 사숙에서 수학하고 가업에 종사하던 중 내한한 서양 사람들에 대한 관심에서 지금의 부산 동구 좌천동의 호주선교부를 방문하게 되는데, 이것이 그의 삶의 행로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청년 박성애는 호주 선교사들과 접촉하게 되고 결국 기독교 신앙을 받아드리게 되지만 처음에는 서양에 대한 호기심뿐이었다. 선교사들과 접촉하게 되지만 자기를 들어내려 하지 않았기에 여선교사들은 그를 ‘니고데모’라고 불렀다. 그러나 24세가 되던 1901년 초에는 분명한 기독교 신자가 되었고, 부산진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1901년 2월 10일에는 왕길지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게 되는데, 자신의 아내가 될 김순복도 이 때 세례를 받았다. 그후 왕길지 선교사의 주선으로 대영성서공회 매서인으로 활동하게 된다. 그리고 부산진교회 수요 예배 인도자로 임명되었다. 이렇게 변화된 길을 가자 호주선교사 멘지스와 왕길지는 그를 순복이에게 소개하고 혼인하게 이끌어 간 것이다. 그런데 박성애는 호주의 첫 의료선교사인 휴 커를의 조수로 채용되었고, 커를 이사는 의사나 병원이 없는 서부 경남의 진주에 가서 일하고자 했다. 그래서 커를은 박성애 부부에게 진주로 같이 가서 일하자고 제안했고, 이 제안에 따라 이들은 1905년 10월 18일 부산을 떠나 진주로 향했다. 고아소녀였던 김(박)순복은 호주장로교선교부의 진주지방 개척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이때 부산을 떠난 이들로는 커를 의사와 그 부인 앤스티, 부산에서 얻는 큰 딸 사라와 둘째 딸 프란시스, 박성애 가족으로는 어머니 양주련, 박성애와 부인 김순복, 박성애의 남동생 박자룡 두 여동생 박은실과 박보렴 등 6 사람이었다. 선교사 가족 4사람과 총 10 사람이 늦은 가을 낙엽이 거리를 부산을 뒤로 하고 진주로 향한 것이다. 마산까지는 기차로 갔고 마산에서는 가마꾼의 도움을 받아 진주로 향해 20일 저녁 9시 30준 진주에 도착했다. 이날이 음력으로 9월 22일이었다. 이들 일행은 진주 성내면 4동 북만 안에 있는 정경철씨 소유 초가집에 임시로 거주하게 되었다. 김순복의 인생에 있어서 두 번째 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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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규교수의 역사탐색
    2023-12-01
  • [서임중칼럼] 인생의 초겨울을 느낀다
    가을 단풍이 좋다는 지인들의 노래를 따라 한나절 산행을 했다. 그렇게 가을이구나! 했는데 겨울바람이 어느 새 문풍지를 흔든다. 이제는 단풍도 빛바랜 풍광을 보며 만상(萬象)이 떠오른다. 이전엔 법주사 앞을 지나려면 통행세를 내야만 했다. 그러나 그것이 폐지된 지 반년이 지나면서 법주사 방문객과 등산객이 15% 증가했다는 보도를 듣는다. 자연이 무상으로 국민의 품으로 돌아온 것은 참으로 감사할 일인데 그곳의 불법주차와 쓰레기도 함께 늘었다는 뉴스를 듣자니 우리의 문화생활은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에 대한 우리 국민정서가 여전히 곱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의 문화생활, 공중 생활이 질서정연하다는 것을 부인할 순 없다. 35년 전 한일 역사 연구를 위해 3주간 일본에 체류할 때였다. 공중전화통 위에 지갑을 놓고 깜빡 잊고 나온 것이 생각나 4시간 만에 다시 가 보았다. 지갑은 놓아둔 그대로 있었다. 무척 감동을 받았던 터라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대중목욕탕에서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수건을 2장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다음 사용자를 위한 배려로 자기가 사용한 곳을 말끔하게 정리정돈 하는 모습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대중식당에서나 공공장소에서는 큰소리 내는 일이 없고, 대화도 옆 사람에게 결례되지 않도록 조용조용 하는 것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일본의 한 모습이다. 스위스에서 본 일례로 비가 오는 날이었다. 식당에 일본인 단체 손님이 들어오는데 우산을 순서대로 줄을 세워 보관하는 것이었다. 보기 드문 모습에 말문이 막혔다. 산행을 하며, 불법주차에 불법 쓰레기 투여, 시골 장터 같은 카페 등 얼굴이 화끈거리다 못해 속까지 참담해지는 장면들을 흔히 볼 수 있는 우리의 모습을 다시 한번 돌아본다. 가을 단풍이 아름답다는 표현처럼 우리의 삶도 아름답게 물들었으면 좋겠다. 가을이 익어간다는 말처럼 우리의 삶도 성숙하게 다듬어져 갔으면 좋겠다. 문득 내 나이를 생각한다. 인생의 초겨울을 맞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겨울이 깊어 가면 푸름을 자랑하던 모든 식물은 그 빛을 아주 잃고 생존한 일이 없는 듯하다. 그러나 봄이 오면 얼어붙던 땅을 헤집고 새로운 움을 틔우며 새 생명으로 탄생한다. 그 한 포기 풀을 통해서도 내 삶을 반추한다. 내 인생 또한 겨울을 맞이하면 이 땅에서의 내 삶도 마무리될 것이다. 나는 부활의 아침을 확신하는 믿음으로 그 나라에서의 삶을 기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땅에서의 내 삶은 초겨울을 느낀다. 초겨울의 오늘을 나는 어떻게 보내야 할까? 계절의 겨울이 깊어 가듯 인생의 겨울도 깊어 가는데 더 많이 이해하고 사랑하며 축복하고 감사하는 말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포항중앙교회에서 시무하던 때였다. 주일 예배를 마치고 퇴근할 무렵이면 예배당 마당 한켠에서 나를 기다리는 분이 계셨다. 어느 한 주일도 예외가 없다. 입고 있는 옷은 1년 365일 똑같은 옷, 역사에 관한 것이라면 천재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해박한 사람, 그러나 아이들 말로는 항상 2% 부족함을 드러내는 분이다. 내가 현관에 나타나면 한달음으로 달려와 반갑게 인사를 한다. 그러면 나는 지갑에서 만원을 꺼내 그분 손에 쥐어드리고 어깨를 한 번 감싸 두드려 주며 “밥 잘 잡숫고, 항상 감사하고, 아셨지?” 하면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면서 쏜살같이 돌아서 달음질하곤 했다. 목사를 보고 싶어 하는 그분, 손에 만원을 쥐어 드리면 금방 얼굴이 환해지면서 천진스럽게 어린아이처럼 인사하고 돌아서는 그 분의 모습은 수천만 원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인간애(人間愛), 순수함 그것이다. 나는 주일마다 그렇게 그분을 만났다. 말 한마디 없는 그 분은 수천만 마디를 눈빛과 표정으로 목사에게 말한다. 그러던 분이 어느 주일에 보이지 않았다. 덜컥 가슴이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혹여 늦나 싶어 차 안에서 잠깐 기다려 보지만 나타나지 않았다. ‘어디 편찮으신가?’ ‘설마…?’ 그러다가 다음 주일에 나타난 그 분을 보면서 괜스레 눈시울이 젖었다. “아픈 데 없지? 괜찮지?” 그러면서 그날은 2만 원을 손에 쥐어 드렸다. 목사는 그렇게 주일만 되면 만원으로 행복을 경험했다. 그분은 나에게 있어서 오늘의 예수님이었다. 그래서 그분이 나를 보고 싶어 한걸음에 달려올 때 나는 주님을 보듯 반기고, 그것이 매 주일의 행복한 시간이 되었고 나도 매 주일 그분을 주님처럼 생각하며 보고 싶어진 것이다. 은퇴 후에는 그분을 다시 만나지 못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당부, 갇힌 자들을 돌아보고, 목마른 자에게 한 잔의 냉수라도 내어주며, 헐벗은 자를 입히고, 아픈 자를 찾아 위로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해 주는 것은 유별난 행동이 아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다. 그것이 따뜻한 위로의 한 마디일 수도 있고, 때로는 문안 전화 한 통화일 수도 있으며, 흔히 쓰는 문자 메시지 한 줄일 수도 있다. 내가 기도할 때 한 마디의 중보일 수도 있고, 내가 먹는 것을 함께 나누는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이 사랑의 연주다. 그것이 나눔의 축복이다. 그것이 행동하는 믿음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유별난 계획을 세워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다. 그 때 우리는 날마다 오늘의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 계절의 겨울이 깊어 가듯 우리네 인생의 겨울도 깊어 간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사랑하며 사는 것이 아니겠는가. 언젠가 갔었던 동경의 ‘고시래’ 식당이 떠오른다. 수많은 손님이 식당 주인 배우 욘사마, 배용준 씨를 그리워하면서 ‘그분은 언제 오실까?’ 고대하는 마음으로 그 비싼 음식을 주문하여 먹고 있었다. 계절의 초겨울에 내 인생의 초겨울을 생각한다. 계절의 겨울이 깊어 가듯 인생의 겨울도 깊어 가는데 더욱 사랑하면서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그러다가 다시 오시는 그 분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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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10
  • [시사칼럼] 디아스포라가 우리의 희망입니다
    지난 주간에 중국의 동북부에 위치한 헤이룽장성(黑龍江省)에 충격적인 한파가 밀어닥쳤습니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늦여름 날씨가 지속되다가 돌연 기온이 영하 25도까지 떨어지면서 폭설이 내려 도시 전체가 마비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세간의 화제가 된 이 지역을 한민족이라면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바로 이곳이 ‘간도’ 지방이기 때문이고, 그 중심에 안중근 열사의 의거가 일어났던 하얼빈 시가 있기 때문이며, 지금도 많은 동포들과 그 후손들이 터를 잡고 살아가고 있는 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 ‘간도’ 땅을 향해 요즘만큼 한국인들의 관심이 집중된 적이 드문듯합니다. 홍범도 장군도 관련이 있습니다. 육사 교정에 있는 흉상 철거 문제로 여전히 논란의 중심에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덕분에 엄청난 홍보 효과가 있었습니다. 1920년 6월 7일에 일어났던 봉오동 전투 말인데, 소수의 대한독립군 부대를 이끌고 일본군 제19사단 월강추격대대를 무찌르고 큰 승리를 거두었던 이곳은 오늘날 지린성(吉林省)으로 불리지만 역시 대표적인 ‘간도’ 지방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당시 이 일대에 거주하던 한인들의 규모는 『백범일지』에도 소개되어 있는데, 독립자금과 관련해서 김구 선생은 “동북3성(흑룡강, 길림, 요녕)에 250만, 러시아에 150만, 일본에 40-50만 명의 동포가 있으나 각각의 사정으로 기댈 수 있는 형편이 아니고 오직 미국 본토와 하와이, 멕시코, 쿠바를 아우르는 일만 명의 동포 성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토로한 바 있습니다. 당시 벌써 500만 명이 넘는 한인 디아스포라(diaspora)가 있었다는 얘기인데, 정확한 수치는 누구도 알 수 없으나 가난과 압제와 구직 등 이런 저런 사정으로 고국을 떠나 낯선 땅에서 그래도 한민족의 정체성을 간직한 채 살아가던 숱한 동포들이 존재했던 것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기념일에 관한 규정에 의거하여 10월 5일을 ‘세계 한인의 날’(World Korean Day)로 지정하고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미국(260만), 중국(235만), 일본(82만), 캐나다(24만) 등 현재 세계 각국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들은 약 730만 명이라고 합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한국인 5,100만과 비교할 때 거의 15%에 달하는 수치입니다. 올해 초에 부산 지역의 청년 인구에 관한 유의미한 통계조사 결과가 처음으로 나왔습니다(2023. 2. 22, 부산시). 이에 따르면 2011년 11월 기준 만 18세에서 34세까지의 부산 인구는 총 68만 9천 명으로 전체 인구의 20%를 차지했고 전년도에 비해 2.1% 감소한 수준으로 2015년 이후에는 계속해서 감소하는 추세입니다. 이대로라면 20년 후인 2040년대에는 40만 명대가 예상됩니다. 일자리를 좇아 수도권으로 이동하는 비율도 높지만 혼인율 자체가 낮고 특히 해당 연령대 청년 출산율은 0.476명으로 심각한 수준이라 앞으로 반등의 기대가능성조차 별로 없는 실정입니다. 물론 부산 지역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날이 갈수록 인구절벽의 전망이 불안한 심리에서 기정사실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전체 인구가 감소하는 자체가 문제입니다. 이제는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대신 ‘인구는 경제력이고 국력이다’라는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할 때입니다. 더군다나 생산가능연령의 인구가 줄어들고 있으니 산업현장에 인력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을뿐더러 사회 각 분야에서 ‘일할 사람이 없다’라는 아우성이 울려 펴지게 생겼습니다. 그렇다면 희망은 없을까요? 문제 해결의 단서를 우리는 성경 속 이스라엘을 통해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나라가 망하고 어쩔 수 없이 거대한 디아스포라가 되고 말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느 곳에 거하든 민족과 신앙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때가 차면 그들 중 일부는 기꺼이 다시 돌아와 조국과 성전의 재건을 위해 헌신하였습니다. 주전 6세기 바벨론에 살고 있던 백성들 중 5만에 가까운 이들이 귀환하여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놀랍게도 현대에 와서도 같은 현상이 발생합니다. 1882년부터 1948년까지 유대인 디아스포라 가운데 50만 명 이상이 다시 돌아와 현대 이스라엘 국가를 건립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한인 디아스포라는 그 규모와 영향력에 있어서 결코 유대인 못지않습니다. 만일 이들 중 일부만이라도 통일된 조국으로 돌아온다면, 그래서 현재 51,430,000명인 대한민국과 25,750,000명으로 파악되는 북한의 인구에 합쳐진다면 물경 8천만에 가까운 세계 20위권의 인구 대국으로 일어설 수 있습니다. 더욱 고무적인 사실은 고향으로 되돌아오는 대부분의 인구는 청년을 비롯한 생산가능연령대일 거라는 점이지요. 그렇다면 소멸하는 인구 문제로 걱정하는 우리에게도 한 줄기 빛이 보이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답을 바로 이번 간도 땅 ‘디아스포라’를 통해서 바라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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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10
  • [은혜의말씀] 나귀를 타신 이유(막 11:1-10)
    유월절을 앞두고 전국에서 모여든 순례자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이 예수님을 보기 위해 길거리로 나왔습니다. 드디어 예수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안으로 들어오십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겉옷을 벗어 길에 펴고, 종려나무 가지를 길에 깔거나 흔들며,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하며 예수님을 맞이합니다. 여러분, 왜 예수님께서는 백마가 아니라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을까요? 스가랴 선지자는 예수님이 오시기 500년 전에 이 일을 예언하였습니다.(슥 9 : 9) 오늘, 예수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신 이유를 살펴봅시다. 1.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신 것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신 것입니다. 모든 것이 구약의 예언된 바에 따라 움직이고 계십니다.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하는 것만이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발걸음 하나하나가 말씀에 대한 순종의 본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에 너무 많은 생각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말씀이 무엇이라 하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우리 삶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쓰여지는 인생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 땅에 우연히 던져진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그분의 말씀 안에 이루어지는 특별한 존재들입니다. 2. 겸손의 왕으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한번 상상해보세요. 뒤뚱거리는 어린 나귀 위에 앉으신 주님, 얼마나 볼품없는 초라한 모습입니까? 세상의 왕은 가능한 자신이 가진 권력을 극대화합니다. 반면 그리스도는 왕이신데, 전혀 그런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왕 중의 왕이 오히려 더 작아지고, 낮아지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의 전반적인 메시지는 능력의 길은 겸손에서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을 낮추고, 오직 겸손하게 섬기고, 봉사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겸손히 섬김’의 삶을 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 본성이 원하는 것하고는, 반대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님은 우리의 욕망을 내려놓으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우리 삶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처럼 우리의 겸손한 섬김이 누군가에게 쉼을 줄 수 있습니다.(막 10 : 45) 마지막으로, 주의 일에 쓰임 받았던 나귀 주인의 순종을 살펴봅시다. 나귀 주인은 주께서 쓰신다는 말에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여기서, ‘주’라는 단어가 중요합니다. 원어로 ‘아도나이’인데, 하나님의 주권, 권한을 강조하는 단어입니다. 이 말은 나귀 주인의 것을 가져간 것이 아니고, 그동안 주님의 것을 나귀 주인이 쓰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랫동안 쓰고 있으면 착각하는 것은 이것이 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것이 아니고 주님의 것입니다. 모든 만물은 주님에게서 나왔고, 주님의 의해서 돌아가고, 주님께로 돌아갑니다.(롬 11:36) 여러분, 우리는 소유의식을 가질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을 잠시 맡았다는 청지기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주께서 쓰시겠다고 하는 이 음성에 귀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그 음성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한 영혼을 작정하는 것, 내 영혼의 VIP를 가슴에 품고 기도하여, 그가 구주이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섬기는 일에 쓰임받을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 큰 복은 없을 것입니다. 모든 성도님들은, 겸손한 순종의 섬김을 통해, 주의 일에 귀하게 쓰임 받는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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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10
  • [목회자칼럼] 한적한 곳, 기도하사
    예수님의 일정을 보면 놀랍다. 저물어 해가 지도록 모든 병자들을 고치고 많은 귀신들을 내쫓았다. 다음날 새벽, 날이 밝기도 전에 일어나 한적한 곳으로 가서 하나님께 기도했다. 밤늦도록 여러 병든 자들과 귀신 들린 자들을 치료하는 일을 하셨다. 분주한 일정과 수많은 사람을 상대한다는 것이 얼마나 피곤한 일인가? 그 다음날 새벽에는 피로에 지쳐서 일어나기가 힘들텐데 예수님은 새벽미명에 사람들이 없는 한적한 곳으로 나가서 하나님과 단둘이 만났다. 움직이는 거리를 보면 온 동네를 두루두루 다니시며 각종 병든 사람들을 고치시고, 많은 귀신을 내쫓았다. 일이 많아서 피곤한 것이 아니고, 관계가 불편할 때 힘이 든다. 거리가 멀어서 힘든 게 아니고, 마음이 멀 때에 몸도 멀어진다. 예수님은 경천애인 하셨다.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각종 병자들을 고쳐주시고, 많은 귀신을 내쫓아 주셨다. 예수님의 3대 사역이 복음을 전파하고, 가르치고, 고치시는 것이었다. 복음이 들어가면 사람이 바뀌고, 가정이 회복되고, 문화가 변혁된다. 예수님께서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해야 된다(마28:20). 예수님은 못 고치시는 병이 없었다. 모든 병자들을 고쳐주셨다. 악하고 더러운 귀신에게 시달리는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내쫓아주셨다. 그렇게 수많은 환자들을 상대하며 육체적으로 시달리고, 감정소모가 극심했지만 예수님은 짜증내지 않고 본심으로, 사명으로, 기쁨으로 일하셨다. 사람들을 만나, 일들을 쳐내는 것보다 하나님 아버지와 단둘이 만나 기도의 시간을 갖는 것이 휴식이요, 회복이요, 배터리 충전이었다. 제자들에게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고 하셨다(막6:30,31). 다윗의 라마나욧 같은 한적한 곳에 가서 성령 충만 받아야 한다. 우리가 매여 안식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으로 착각해서 내가 모든 것을 관여하지 않으면 세상이 안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잠시라도 일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맡겨 버리라. 기도는 하나님과의 사귐이고, 교제다. 모든 관계의 시작과 끝이 아버지 하나님이시다. 아버지 하나님을 만나야 해결이 된다. 내 컨디션, 내 일정이 우선되면 안 된다.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고, 하나님 역사하심을 기대하고 기다리라. 하루의 골든타임에 사람들을 만나기 전에 주님을 독대, 직고, 대면하라. 하나님과 통친합락(通親合樂)하라. 돌려막기로 땜방을 하지마라. 일보다 중요한 것은 관계이다. 분주한 일정을 따라 움직이다 보면 나를 잃어버리기가 쉽다. 예수님은 사역보다도 아버지와 단 둘이의 만남을 소중히 여겼다. 아버지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야 주의 일을 할 수 있다. 제목을 두고 기도하라. 내 컨디션이 중요하고, 내 일정이 중요하면 하나님의 뜻을 물어볼 틈이 없다. 내 컨디션보다 하나님의 역사가 먼저이기 때문에 힘들수록 기도해야 된다. 일을 해도 힘이 빠지고 감정이 소비되는 일이 있고, 해도해도 지치지 않는 일이 있다. 그것이 헛된 일과 사명의 차이다. 예수님의 일정과 사역을 보면 영혼구원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최우선시 하셨다. 우리도 세월을 아끼고, 알찬 생활을 하고, 복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복음전파와 말씀과 기도에 집중해야 된다. 사람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핵심이다. 연민의 눈길을 가지고 이웃의 사람들을 바라보라. 그때 사랑의 손길을 절실하게 필요한 곳이 있을 것이다. 기도가 사역이다. 시간이 있을 때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바쁘고 힘들 때, 시간을 뚝 잘라서, 한적한 곳으로 나가서, 오히려 사람들을 피하고, 주님과 나만의 오붓한 시간을 가져야 된다. 주님과 나의 관계가 멀어지거나 느슨해지면 마귀가 틈을 타기 때문이다. 시간이 남아돌 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바쁠 때 기도하면 하나님의 본심을 깨닫게 되고, 하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진다. 일에 치이고 사람들에게 부대끼며 흐트러진 마음을 하나님중심, 성경중심, 교회중심으로 마음중심을 잡게 된다. 바쁠수록 기도해야 허둥거리지 않는다. 기도가 사랑이다(시109:4). 인간적인 열정으로 사랑하면 상처받고, 기대하면 실망하고,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게 된다. 그런데 도끼는 믿음의 대상이 아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상대방의 반응에 목을 맨다면 얼마나 가련한가? 기도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부어주신다. 기도 없는 사랑은 절반이다. 우리가 부모님의 눈물의 기도 덕분에 살아가는 것이다. 기도는 전쟁이다. 출17장 이스라엘과 아말렉이 르비딤에서 싸울 때 모세가 산꼭대기에서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겼다. 모세의 팔이 피곤할 때, 아론과 훌이 양쪽에서 모세의 손을 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하고 여호수아가 아말렉을 쳐서 무찔렀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기도를 쉬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이다. 가정에 위기가 오고, 일하는데 심각한 문제가 생기면 골든타임을 놓치기가 쉽다. 마귀는 어떻게 해서든지 내가 기도하는 것을 방해한다. 성경에서 새벽기도의 모범을 보이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믿음의 용사들은 한결같이 기도의 사람들이다. 얍복강에서 야곱의 씨름, 산꼭대기에서 모세의 두손, 다니엘의 기도, 죽으면 죽으리라는 에스더의 금식기도, 죽을병이 걸린 히스기야의 면벽기도, 성벽을 재건한 느헤미야의 기도, 한나의 기도, 많이 구제하고 항상 기도한 고넬료... 시편57:8에서 다윗은 새벽을 깨웠다. 학개서 1장을 보면 사람들이 아프고, 병들고, 가난하고, 한재가 든 이유가 나타난다(학1~6,9~11). 믿음이 부족한 부모가 예배를 소홀히 하니 자녀들도 하나님을 떠나고 구멍이 뚫어진 전대와 같이 돈이 모이지 않고, 세상적인 방법으로 자녀교육을 하니 가뭄이 들어 수고하는 모든 일에 열매가 없다. 일보다, 사역보다 하나님을 만나는 새벽기도 시간을 가장 먼저 챙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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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10
  • [이상규 교수의 역사탐색] 한국기독교여자절제회와 여귀옥 여사
    대한여자절제회는 1923년 9월 조직된 이래로 비교적 자유롭게 활동했으나 1939년 일제의 간섭으로 ‘절제회’를 ‘교풍회(矯風會)’로 개칭하게 된다는 점을 앞에서 지적했다. 절제운동은 사실상 계몽운동이자 정신적 갱신운동으로 일종의 민족운동의 성격이 있었다. 일제는 술과 담배는 물론 아편까지 허용하고 있었는데, 여자절제회가 금주 단연운동을 전개하는 일에 대하여 내심 불만이었다. 저들의 우민정책에 반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절제’라는 용어 대신 ‘교풍’이라는 용어로 명칭을 변경하게 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1945년 해방을 맞아 절제회의 전통을 따라 다시 활동하기 시작했고, 1950년에는 미국에서 열리는 절제회세계대회에 홍 에스더 여사를 파송하는 등 활동을 재개했다. 1952년 2월 24일에는 서울시 절제회를 조직한 이래 여자절제회 부산지회(3월 3일), 대구지회(8월 21일), 제주도지회(9월 27일), 인천지회(11월), 청주지회(12월 12일), 대전지회(12월 14일), 천안지회(12월 16일), 수원지회(12월 18일) 등이 조직되어 전국규모로 확산되었다. 그 결과 1953년 1월에는 대한여자절제회연합회 창립30주년 기념식과 제1회 전국대회를 개최하게 된다. 전국대회는 ‘힘차게 재건하라’는 주제로 부산 보수감리교회에서 개최되었는데, 참가인원은 1,647명에 달해 대성황이었다. 이때 회장은 홍에스더, 유각경, 부회장은 남궁함라, 최활란 여사였고 총무는 황애덕 여사였다. 이때 절제회보 제1호가 다시 발간되었고, 보다 적극적인 절제운동을 전개하게 된다. 전쟁 유가족을 위한 희망원을 설립하였고, 적극적인 금주 운동을 전개하고, 축첩 반대, 국산품 애용운동 등을 전개했다. 이 당시 금주운동 표어가 “술 냄새 없는 곳에 민족의 향기가 있다”, “남은 피 흘리는데 그대는 술 마시는가?”, “술잔 깨뜨리고 새살림 빚어내자”, “생활 혁신은 금주로부터” 등이었다. 1955년 이후에는 생활간소화운동, 복장 간소화 운동, 소년절제회 육성, 절제회 청소년 지도자 수양회, 전국남여 중고등학교 학생 금주 웅변대회 개최, 서독과 캐나다 밴쿠버에서 개최된 세계절제회대회 대표단 파송, 기독교여성 선거계몽 강연회 개최 등을 실시했다. 1957년에만 서울 부산대구 광주 전주 마산 청주 등 전국적으로 56회의 절제강연회를 개최했다. 1960년대에도 이런 사업은 계속되지만, 특히 절제회보를 발간하고 축첩자 반대운동, 신생활운동을 전개했고, 양주 제조장 허가 반대 진정서 65통을 정부 요로에 전달하였고, 미신타파운동을 전개하였다. 따지고 보면 여자절제회는 정신계몽운동이자 민족개조 운동이었다. 이런 여자절제회를 이끌어 온 역대 회장은 홍에스더(1대), 신형숙(2대), 최활란(3대), 유각경(4대), 최활란(5대), 홍에스더(6대), 김성무(7대), 최금봉(8대), 여귀옥(9대) 여사 등이었다. 해방 이후 여자절제회 운동에 크게 기여한 이가 여귀옥(1923-2006) 여사였다. 대구 출신으로 신명여고를 거쳐 1939년 평양여자신학교를 졸업한 그는 1941년 청년사업가인 김수근 씨와 혼인하였다. 그가 여자절제회에 관여하기 시작한 것은 1950년 초였다. 1952년에는 여자절제회 대구지회 이사가 되었고, 1957년 6월 11일 서울기독교연합회 회의실에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라는 주제로 열린 제20회 절제회연합회 전국대회에 여귀옥 여사는 김순해, 한재동 여사와 같이 대구지회 대표로 참석했다. 절제운동의 이념과 정신에 깊이 동감했던 여귀옥 여사는 1959년에는 사비로 대구절제회관을 구입하였다. 1962년부터는 대한기독교여자절제회연합회 이사로 봉사했다. 철저하게 성경중심적으로 사셨던 여귀옥 여사는 신앙생활도 모범을 보이셨고 1965년 서울 영락교회 권사가 된다. 1966년 1월 서울 동자동의 절제회관 부지 구입 때는 가장 많은 800,000환을 기부하였고, 1969년에는 절제회의 강단 단상의 책상을 헌납했다. 1970년 절제회관을 건축할 당시에는 건축위원장으로 봉사하면서 172평의 대지에 건평 262평의 회관을 건축하게 되는데, 여귀옥 여사의 헌신의 결과였다. 1971년 1월 25일 신축된 절제회관에서 모인 총회에서 여자절제회연합회 제11대 회장으로 선임되어 30년이 넘는 기간동안 회장으로 봉사했다. 특히 절제회관 건립 후에는 절제장학재단을 설립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이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기 시작했는데 이 장학사업은 그 후 50년간 계속되어 각종 전문직 종사자들과 목회자들을 배출했다. 그가 회장으로 재임하는 기간동안 통상적인 절제회 사업 외에도 1980년 세계기독교여자절제회 세계대회에 참석하면서 세계절제 운동에도 동참하여 국제적으로 헌신했다. 그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2006년 하나님의 부름을 받게 되는데, 뒤돌아보면 그가 절제회를 위해 일한 기간은 60여년에 달한다. 무엇보다도 그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온전한 믿음으로 일생을 살았고, 믿음으로 자녀를 양육하여 저명한 화가인 김영주 여사,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연세대학교 특임교수를 역임하신 김정주 박사, 제28대 대한적십자사 총재를 역임하신 김성주 회장, 대성그룹의 김영훈 회장이 그 선대의 신앙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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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규교수의 역사탐색
    2023-11-10
  • [소강석칼럼] “당신의 가을이 더 행복하길...”
    “주여, 때가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길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으십시오. 들에다 많은 바람을 넣으십시오. 많은 과실들을 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극의 햇볕을 주시어 그들을 완성시켜 마지막 단맛이 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하략)” 이는 릴케의 ‘가을날’이라는 시입니다. 여름이 그토록 길고 폭염의 나날들이었지만 정작 가을 문턱에 서니까 그래도 남극의 여름의 햇빛을 그리워하고 있는 시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폭염으로 얼굴을 찡그리고 어떻게든지 여름 햇빛을 피하려고 하였지만, 아직도 푸른 나뭇잎들은 여름 햇빛에 환호성을 지르고 있습니다. 햇빛이 강렬할수록 더 부지런히 광합성 작용을 하며 과일들은 단맛을 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뜨거운 햇빛이 여름의 꽃들을 피어나게 하였습니다. 지금 어디를 가든지 길가엔 과꽃, 패랭이, 초롱이 꽃들로 한창입니다.아니, 제가 산행하는 길에는 벌써 앙증맞게 코스모스꽃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웬 시골 처녀가 분홍색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수줍은 듯 서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화려하고 흠모할 만한 미의 자태를 갖춘 모습은 아니지만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순결한 작은 몸짓으로 저에게 이렇게 말을 하는 듯 느껴졌습니다. “지난, 8월의 뜨거운 햇빛이 없었더라면 나는 이렇게 시원하게 될 수 없었노라고... 살아있는 모든 이들은 여름을 사랑해야 한다. 가을이 오면 올수록 지난 여름이 그리워질 것이라고...” 산행을 한 후 책상에 앉아 아까 전에 본 코스모스의 모습을 생각해 봅니다. 아니, 산 녘에 피어난 이름 모를 작은 꽃들의 모습을 생각해 봅니다. 초가을에 피어난 꽃들의 미소가 제 가슴속에 다가왔습니다. 그들이 말을 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이 주신 침묵의 모국어로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지난 여름이 폭염의 계절이었다면 지금 맞는 가을은 당신에게 정염의 계절이 되기를 바래요. 지난 여름의 폭염이 오늘의 우리들을 아름답게 피어나게 하듯이 이번에 맞는 가을은 당신에게 꼭 행복한 계절이 되기를 바래요. 가을을 행복하게 지낼 수 있어야 다시 오게 될 불볕더위도 사랑할 수 있을 거라고... 그리고 마침내 그 불볕더위가 그리워지고 그 더위 속에서도 얼굴을 찡그리지 않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갑바도기아 대교부 중 한 사람인 닛사의 그레고리가 했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산상 보훈을 보면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했는데(마5:8), 닛사의 그레고리는 이 청결한 마음이란 에덴동산에서 창조되었을 때의 본래 마음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마음을 회복하면 자연과 교감하게 될 뿐만 아니라 저절로 아름다운 시가 나오고 음악이 나오며 천재적 예술성을 발휘하는 영감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 신학자의 말이 아니었으면 어떻게 감히 이런 글을 쓸 수가 있겠습니까? 제가 다시 산행을 한다면 이번에는 제가 꽃들에게 말을 건네고 싶습니다. “그래, 너희들도 여름을 잘 견뎌냈지. 지난 여름에 불볕더위가 있었기에 오늘의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지 않았느냐. 너희들도 가을이 오면 지난 여름을 더 그리워하게 될 거야. 그러나 짙은 가을이 온다고 아쉬워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거라. 아직은 가을이지만 여전히 폭염을 일으키는 저 태양의 불꽃처럼 너희들도 이글거리는 삶을 살거라. 우리 모두 함께 가을이 행복했으면 좋겠구나.” 정말 올 가을은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여름 햇볕으로 인해 모두에게 가을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히고 좋은 소식의 열매를 따 먹는 계절이 되면 좋겠습니다. 특별히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가을이 행복한 계절이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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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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