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1-29(금)

오피니언
Home >  오피니언  >  칼럼

실시간 칼럼 기사

  • [교회음악] 한국교회 예배음악의 갱신과 회복을 소망하며(2)
    오늘날 희미해져가는 예배와 찬양의 소중함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어쩌면 이러한 부분에 대한 지적을 무척 부담스러운 판단쯤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현실임을 인정하지 않으면 새로워질 방법은 찾기 힘들다. 기본적으로 인간의 한계는 종합적으로, 복합적으로 생각한다고는 하나 그렇지 못하고 편협하거나 단편적인 자기중심적 사고를 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향한 예배와 찬양에 관하여서는 끊임없는 고민과 변화를 해 나가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원하시는 예배와 찬양이 있다. 어떻게 하면 그러한 예배와 찬양을 드릴 수 있을까? 정확한 답은 성경에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의식행위 즉 예배와 찬양을 위하여, 이것을 제대로 바르게 행할 수 있도록 아예 한 지파를 통째로 그 일에만 전념토록 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한다. 하나님께서는 피조물들이 당신을 예배하고 찬양하는 것을 얼마나 귀하게 또 중하게 여기시고 좋아하셨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성경의 많은 부분에서 하나님을 향한 예배와 찬양(다양한)을 강조하고 이를 행할 것을 권고하시고 명령하셨는데 사실 이것 또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임을 조금이라도 이해해야 한다. 이것을 바르고 진실되게 행하였을 때 인간이 얻게 되는 것이 너무나도 크고 많다는 사실이다. 인간에게 주어진 마땅한 의무이자 책임인데 더할 수 없는 축복이 된다는 말이다. 따라서 예배만 잘 이뤄진다면 속된 표현일지 모르나 개인은 물론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만사형통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거룩한 백성으로 풍성함을 누리며 우아하게 이 땅위를 살아가게 된다는 말이다. 잠깐 시간을 되돌아보면 음악적으로 바로크시대, 고전시대를 지나면서 예배에도, 그 속에서 행해지는 음악 즉 찬양의 경향도 많은 변화와 함께 시대적 흐름을 따라 자연스럽게(?) 이어져왔다. 의식에서나 음악의 스타일이 많이 바뀌어졌음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낭만시대를 거치고 현대에 와서는 더 급격한 변화를 맞게 된다. 문제는 이 모든 일들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의 삶이 영적으로 윤택하여졌으며, 믿는 자의 수가 나날이 더하여지고, 세상은 주의 뜻대로 바르고, 정의롭고, 평안하여졌는가? 그 반대의 시간들이 흐르고 있음에 주목하고 긴장하는 것이다. 축약한 시대현상의 요약이지만 실로 수많은 일들이 교회공동체 내외로 일어났다. 긍정적인 일들도 있었지만 부정적이고 교회답지 못한 사건들도 실로 많았다. 지금으로서는 한마디로 교회의 선한 영향력을 거의 상실했을 정도가 아닌가 생각되어지는 상황이다. 종교개혁시대의 예배를 잠시 들여다보면 이들의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이 어떠했는지 단적으로 느낄 수 있는데, 혹이라도 하나님을 만홀히 여길까 고심한 흔적들을 볼 수 있다. 하나님과 영적 코드가 맞지 않는 것이 그럴듯한 탈을 하고 교회공동체로 들어와 전체를 오염시키는 일이 역사적으로 많이 있었다. 매우 중요한 문제로 심각성을 가지고 오늘날 반듯이 유념하고 경성하여 주의해야할 일이다. 영적으로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닌가? 지금 곰곰이 생각해 보면 보기에 따라 이해와 해석의 차이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으나 분명한 사실은 종교개혁자들이 영적으로 매우 지혜롭고, 맑았음은 능히 짐작할 수가 있다. 생각해 보라. 어떻게 그들이 죽음을 불사하고 그 어렵고 힘든 사명에 뛰어들 수 있었을까? 신실한 예배자들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 확신한다. 예배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그분이 주시는 힘과 능력을 받았으니 무엇이 무섭고 두려웠겠는가? 오늘날 우리는 어떤가? 너무나 나약하고, 맥없고, 힘없는 크리스챤들은 혹 아닌가? 이 시대에도 변화와 개혁이 필요하다. 아니 지속되고, 계속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특별히 예배와 찬양의 갱신은 반듯이 있어야겠다. 그런 의미에서 예배형식의 변화를 포함한 예배 속 음악의 사용도 심도있게 고려되어야 하겠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어떤 변화가 가능할까? 어떻게 하면 모든 교인들이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집중할 수 있을까? 성령께서 주시는 지혜가 절실하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 베푸시기를 소원한다.
    • 오피니언
    • 칼럼
    2022-06-24
  • [목회자칼럼] 감정과 행동 사이에는 ( 괄호 )가 있다
    신약과 구약 사이에는 신구약 중간사가 있고, 눈과 눈 사이에는 미간이 있다. 그렇다면 사건과 행동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감정과 행동 사이에 무엇이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먼저 감정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회사를 마치고 막 집으로 돌아온 남편이 들어오자마자 아내에게 짜증을 내면서 투정을 부린다. 이런 상황일 경우, 아내의 행동은 크게 두 가지 정도로 나타난다. 하나는 “아니, 하루 종일 밖에서 잘 있다가 집에 오자마자 아무런 이유 없이 왜 짜증을 내요? 내가 집에서 얼마나 힘들었는지도 모르고... 내가 당신의 짜증을 받아주는 사람이에요?”라며 오히려 더 큰 소리로 화를 내는 경우이고, 또 다른 하나는 “회사에서 속상한 일이 있었는가보네요. 일단 내가 준비한 맛있는 저녁 먹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차근차근 이야기 해봐요”라며 남편의 마음을 읽고 감정을 풀어주는 경우이다. 전자의 경우, 아내가 더 큰 소리로 화를 내자 남편은 마음의 문과 함께 자신의 방문도 닫아버리며 화가 난 행동을 보였고, 후자의 경우, 감정이 풀어지자 다시 온화한 모습으로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일상의 저녁으로 돌아왔다. 이 예시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감정을 받아주면 행동이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물질, 시간과 같은 환경이 달라져서가 아니라 단지 화나고 억울한 감정을 읽어주고 풀어주는 것만으로도 행동이 달라짐을 알 수 있다. 의미치료(logo therapy)의 주창자는 빅터 플랭크는 자신의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공간이 있고, 그 공간에는 반응을 선택할 힘, 자유 의지 등의 선택이 있으며 우리가 성숙해 가는 과정에 행복이 결정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다시 처음에 던져진 명제 앞에 돌아가 생각해보자. 빅터 플랭크가 말한 것처럼 자극과 반응 사이에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수많은 것들이 있고, 결국 그 선택으로 인해 인간이 행복해 진다면, 감정과 행동 사이 역시 선택이 존재해 그 선택으로 우리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 어린 자녀를 키우는 엄마가 온 종일 아이 기저귀를 갈아주고 분유를 먹이며 자신의 시간은 전혀 없이 아이를 위해 희생하며 “내가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지?” “앞으로 내 인생은 어떻게 될까?”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나?” 등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복잡해 질 때, 즉 슬픔과 절망이라는 감정과 앞으로 살아야 할 행동 그 사이에는 자신이 택할 수 있는 선택 사항이 수없이 많이 있다. 슬프기 때문에 ‘더 슬퍼하고 더 괴로워 할’ 것을 택하면 행동 또한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슬프고 절망적이기 때문에 오히려 ‘지금 이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발전적인 무언가를 할 것’을 택하면 행동 또한 건설적인 방향으로 바뀔 것이다. 감정을 떼어낸 후, 현재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수많은 선택들을 생각한 후, 행동을 내린다면, 즉 감정과 행동 사이에 선택을 넣고 그 선택에 따라 행동이 결정되어진다면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 것이다. 나는 젊은 시절, ‘청소년 교육과 치유’란 뜻을 세웠다. 그리고 어떤 상황 앞에 감정과 행동 사이에 갈등할 때마다 청소년의 뜻을 생각한다. 목회가 힘들어 쉬고 싶을 때에도 ‘청소년 교육과 치유’라는 선택을 생각하고, 앞을 향해 한창 달려가고 있을 때도 틈틈이 ‘청소년 교육과 치유’라는 선택을 돌이켜본다. 결국, 이 선택이 상황을 뛰어 넘어 내일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든 힘의 원동력이었다. 여러분들은 어떠한가? 감정과 행동 사이에 있는 이 괄호( )가 여러분들의 내일을 결정지을 수 있음을 알고 바른 선택의 분별력을 가지길 바라본다.
    • 오피니언
    • 칼럼
    • 목회자칼럼
    2022-06-24
  • [부산기독교이야기] 전쟁기 부산 교계: 기도운동
    6.25전쟁 기간 중 부산에서 시작된 두 가지 사역은 회개와 자숙을 포함한 거 교회적 구국기도회였고, 다른 한 가지는 대한민국을 공산지배로부터 보호하며 전쟁의 승리와 통일을 이룰 수 있도록 후원하는 구국운동이었다. 또 이 시기 시작된 군목 활동은 그 이후의 한국교회 성장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이런 점에 대해 순차적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피난지 부산에서 거 교회적 기도운동 그리고 회개운동이 일어났다. 수도 서울을 적에게 빼앗긴 후 후퇴를 거듭하여, 대전(1950. 6. 27), 대구(7. 16)를 거쳐 8월 18일부터 부산이 임시 수도가 되었다. 대구와 경상남도의 일부지역을 제외한 전 국토가 공산당의 수중에 들어가자 부산에는 각처로부터의 피난민이 몰려들어 피난민들의 도시가 되었다. 1951년 8월 당시 정부가 집계한 피난민은 380만 명, 가옥과 재산을 잃은 전재민은 402만 명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이들의 대표적인 피난처가 부산이었다. 부산은 피난민들의 도피처였고 신자들에게는 이른바 ‘의의 피난처’였다. 그런데 부산의 초량교회와 중앙교회 등에서 기도회가 개최되고 회개운동이 전개되었다. 한상동 목사가 시무하던 초량교회에는 한상동 목사와 친분 있는 목회자들이나 성도들, 그리고 해방 후 교회 쇄신운동을 지지하던 이들이 주로 회집했고, 부산중앙교회에는 한경직 목사를 비롯한 그 외의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목회자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 이런 전란의 와중에서 회개와 자성이 일어났고 자연스럽게 기도회 혹은 구국기도회가 개최되었다. 이때는 서울이 함락된 후 인민군이 파죽지세로 남하하여 부산과 그 인근지역만이 적의 수중에 놓이지 않았던 위난한 때였다. 이때의 기도회를 혹은 ‘회개기도회’ ‘회개운동’ 혹은 ‘구국기도회’라고 말하지만 따지고 보면 두 가지 형태였다. 첫째는 목회자만이 아니라 각처에서 피난 해 온 성도들, 그리고 피난교역자들이 포함된 회개집회 및 기도회였고, 다른 한 가지는 이름 그대로 전란(戰亂)에서 나라를 구해 달라는 ‘구국기도회’였다. 전자의 경우 중심지역이 초량교회였고, 후자의 중심교회가 부산중앙교회였다. 물론 이 두 기도운동을 구분하기 어려운 점이 없지 않다. 전시 하에서의 기도회가 위기에 처한 국가를 위한 기도가 제외될 수 없었고, 구국기도회에서도 회개와 자성 그리고 성령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초량교회 양성봉(梁聖奉) 경남도지사가 부산 초량교회 장로였으므로 초량교회에는 많은 신자들이 모여들었고 이곳을 중심으로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운동이 일어났다. 기도회는 1950년 8월 말 시작되었는데, 집회시간은 일주일로 하되 새벽기도, 낮 성경공부, 저녁 집회로 진행되었다. 김치선, 박윤선, 박형룡, 한상동 목사가 강사였다. 오종덕 이학인 목사 등도 설교자로 동참했다. 이 집회의 모든 경비는 밥 피어스(Bob Pierce, 1914-1978) 목사가 부담했다. 이 비상기도회에서 특히 박윤선 목사가 일제하에서의 신사참배 강요와 이에 대한 저항의 과정을 설명하자 신사참배에 대한 회개와 해방 후의 교회 분열과 대립, 그리고 신자답게 살지 못한 일에 대한 회개와 통회 운동이 일어났다. 박윤선은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이날 새벽기도회 담당이었던 나는 설교도중 한부선 선교사의 신사참배 반대투쟁에 대해, 즉 그가 총회석상에서, 만주에서, 옥중에서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운 사실을 증거 하였다. 그 시간에 나는 한부선 선교사에게 직접 들었던 말을 거의 그대로 소개하였다.” 이 때 강력한 회개의 역사가 나타났다고 한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교역자들이 한 사람씩 한 사람씩 회개하는 기도로 이어져서 그 집회 분위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이때에 성령의 도우심으로 설교하는 나 자신부터 내 죄를 회개하면서 증거 하게 되었으니 감사한 일이었다. 즉 나도 단 한번이지만 신사참배를 한 범과가 있으므로 나는 언제나 이 일로 인하여 원통함을 금할 수 없었는데, 이때에 그 죄를 회중 앞에 공적으로 고백하였던 것이다.” 원래 기도회는 1주일간 예정되어 있었으나 참석자들은 집회의 연장을 원했다. 그래서 집회는 일주일 연장되었다. 이때는 부산만이 아니라 울산과 온산 지방 교역자들도 합류한 가운데 계속되었다. 부산중앙교회에서의 기도회 또한 비슷한 시기에 진행되었고, 박형룡은 이곳에서도 강사로 활동했다. 초량교회에서의 약 2주간에 걸친 기도회가 끝나는 날 신문 호외가 배포되었는데, 인천 상륙작전 성공을 알리는 호외였다. 그래서 기도회에 참석했던 이들은 성공률 5천분의 1이라는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한 것은 성도들의 간절한 기도의 결과라고 믿었다. 1.4 후퇴 이후에도 부산에서는 기도운동이 일어났고, 초량교회에서의 나라를 위한 기도회는 수일간 계속되었다. 1951년 4월 마지막 주일 이승만 대통령이 초량교회 주일 예배에 참석하여 위기에 처한 나라를 위해 기독교인이 기도해 줄 것을 부탁했다.
    • 오피니언
    • 칼럼
    • 이상규교수의 역사탐색
    2022-06-24
  • [서임중칼럼] 무엇을 중히 여기는가?
    제 8대 6.1 지방선거가 끝났다. 언제나 그렇지만 선거도 희비의 쌍곡선을 긋는다. 이즈음이면 먼저 떠오르는 사자성어 새옹지마(塞翁之馬)가 있다. 승패야 선거의 결과지만 과정을 지켜보면 헛웃음이 나오는 경우가 흔하다. 이기기 위하여 분수를 잊고 도를 넘어 난장판이 되는 경우는 이젠 식상하기까지 하다. 8대 지방선거의 선거운동도 이맛살을 찌푸리게 하는 추태는 여전했다. 그러기에 역대 가장 낮은 투표율을 기록했고 언론은 ‘정치무관심증의 국민정서’라고 평했다. 4년전 지방선거결과의 지형은 한반도가 ‘파란색’으로 뒤덮였었다. 그런데 4년이 지난 오늘에는 붉은색으로 그 지형의 색상이 바뀌었다. 그냥 모든 것이 헛웃음만 나오는 한국정치의 단면도를 보면서 마음이 슬프다. 여러 평론 가운데 패자에 대한 언론보도의 머리글들이 눈에 들어왔다. <명분 없는 출마, 이변 없는 패배, 빛바랜 희생론, 반성 없는 사과>라는 내용의 제목들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부분의 내용은 <내 탓이오>는 보이지 않고 <네 탓이오>였다. 선거 결과는 승패를 따라 희비가 이어지겠지만 승자가 패자를 위로하고 패자가 승자를 축복하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꽃은 아직도 피지 않음에 국민은 아파한다. ‘명분(名分)’이란 ‘신분이나 이름에 걸맞게 도덕적으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뜻한다. 명분을 거꾸로 읽으면 분명이다. 분명이란 틀림없이 반듯하다는 뜻이다. 여기서 정시(正視), 정사(正思), 정언(正言), 정도(正道), 정행(正行)이 일상이 된다. 사람마다 삶에서 중히 여기는 것이 있다. 그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일생이 좌우될 수도 있다. 곧 흥망성쇠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시간을 중히 여기는 사람은 촌음(寸陰)을 아껴 쓴다. 신용을 중히 여기는 사람은 자신의 범사가 힘들어도 신의(信義)를 생명처럼 여긴다. 돈을 중히 여기는 사람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라면 부모도 팔아먹는다는 속언(俗言)이 있다. 사랑을 중히 여기는 사람은 사랑을 위해 죽는 것 또한 행복으로 여긴다. 권력을 중히 여기는 사람은 권모술수(權謀術數)를 당연시한다. 명분을 중히 여기는 사람은 대의(大義)를 생명처럼 여긴다. <명분 없는 출마, 이변 없는 패배, 빛바랜 희생론, 반성 없는 사과>를 읽으며 가슴 아픈 싸한 통증을 쓸어내린다. 어느 때보다 이순신 장군의 <필사즉생 필즉사생(必死卽生 必卽死生)>의 명언이 생각난다. 공자보다 약 100여년쯤 후의 인물로서 맹자처럼 전국시대에 활약한 사상가 장자는 호방자재(豪放自在)한 명문(名文)으로 장자 33편을 남겼다. 각의편에서 장자는 이렇게 깨우쳤다. ‘衆人重利 廉士重名 賢士尙志 聖人貴精, 즉 대중들은 이익을 중시하고, 청렴한 사람들은 자기 이름을 존중하여 남에게 손가락질 받지 않도록 명예와 염직(廉直)을 중시하며, 현인들은 높은 뜻을 세우고 그 뜻을 중시하며, 성인들은 정(精) 곧 정신이 순수무잡(純粹無雜)하며 깨끗하고 맑고 참되고 높은 경지에 도달한 것을 뜻하는 문장으로써 이를 중시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무엇을 중히 여기며 살고 있는가? 무슨 일에든지 유혹이 있다. 유혹을 이겨내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명분을 중시함으로 유혹을 극복하지만 명분을 중시하지 않으면 온갖 유혹에 스스로의 삶을 무너뜨리게 된다. 가인은 장자의 명분보다 팥죽 한 그릇을 중시했고, 엘리는 제사장의 명분보다 패역한 아들들을 중시했다. 삼손은 사사의 명분보다 들릴라의 악한 꾐에 넘어갔고, 발람은 발락의 물질에 현혹되어 넘어졌으며, 웃시야는 직분의 명분보다 분향에 유혹 되었고, 가룟 유다는 제자도의 명분보다 은 30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여 넘어졌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도 명분을 중시했던 노아는 세상즐거움을 거절했고, 요셉은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거절했으며, 다니엘은 고량진미(膏粱珍味)의 유혹을 거절했고, 사도 바울은 세상적인 부귀영화를 거절했다. 무엇을 중히 여기는가에 따라 인생의 성패가 판가름 난 역사의 교훈이다. 은퇴 후 농어촌 산골 개척교회 자비량집회를 인도하면서 후배들의 목회현장 아픈 이야기들을 많이 듣는다. 즉 명분 없는 논쟁에 지치고 사사로운 감정에 대의를 접어야 하는 일들을 겪을 때는 성의(聖衣)를 벗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컨대 십일조라면서 매월 1천원을 하면서 목회걸림돌 역할을 하다가 항존직분 피택 조건에 교인의 의무조항에서 십일조를 했다는 경우, 설교하고 강단을 내려오는데 국문학적으로 볼 때 어순도 맞지 않아 듣기 힘들었다는 경우, 봉고승합차를 운행할 때는 열차의 운임은 거리의 함수를 이야기하면서 매월 주행거리와 주유금액을 계산하는 경우, 교인들 가정 심방이나 길흉사를 집례한 후 사례비를 받은 것은 목자가 아니라는 경우,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명분 없는 논쟁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답이 없다는 아픈 이야기들이다. 소리 없는 한숨과 젖어드는 눈을 보면서 나는 언제나 동일한 한 마디로 권고해 준다. “그래도 목사는 채찍질 당하면서, 얼굴에 침 뱉음의 수모를 당하면서, 피범벅이 되어 쓰러져도 또 일어나서 골고다를 향해 한 걸음씩 올라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이 가신 길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목사의 명분입니다.” 듣는 목사님들 대부분은 흑- 하면서 엎어지기도 하고 유구무언이 되어 멍하니 천정을 올려다보기도 한다. 그렇다. 세상적인 모든 것을 가지고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자기 義가 기준이 되어 살다가 예수님을 만나 자신의 명분을 깨닫는 순간 그 모든 것을 분토처럼 버리고 오직 예수만 중히 여기는 삶을 살았던 바울처럼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 잠깐 후면 아무것도 아닌 좁쌀만 한 작은 무엇 하나를 갖고 안하무인, 오만불손, 경거망동의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주님의 가르침을 중히 여겨야 한다. 이해하고 관용하며 용서하고 사랑하는 복음의 삶이 바로 그것이다. 그것이 명분을 중히 여기는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 오피니언
    • 칼럼
    • 서임중 칼럼
    2022-06-10
  • [성서연구] 은혜가 숙성되기까지
    예수님께서는 한 나병환자를 치료하셨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4절을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시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혹시 당신께서 고치신 것을 비밀로 하기 위함이었을까요? 그건 아닙니다. 이미 많은 무리가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1절은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니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고 했습니다. 또 제사장에게 입증하러 가면 어차피 알려질 일이 아닙니까? 그러니 비밀 유지를 위한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혹시 너무 많은 환자가 몰려올까 염려하셨기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부르신 분이시며, 마태복음 8장 16~17절은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주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고 기록하고 있는 바, 예수님께서는 병자를 환영하셨고, 연약한 것과 병을 짊어지는 것은 메시아 사역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환자가 올 것은 염려했기 때문이라는 것도 이유는 못됩니다. 오히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신 데는 본문에 드러나지 않은 숨은 이유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이 사람이 제사장에게 찾아가 병이 나았음을 확인받고 제물을 드려 입증하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먼저 집에 가서 가족에게 자신의 몸을 보이고, 이젠 격리되지 않고 함께 살 수 있음에 감사하고, 제물을 준비하여 가족과 함께 제사장에게 가는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가 먼 동네 사람이라면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 시간 동안 그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대신 그는 자기 자신과 대화를 나누어야 합니다. 특히 <왜?>라고 물어야 합니다. <사랑이 구주를 죽게 했네 왜 날 사랑하나 겸손히 십자가 지시었네 왜 날 사랑하나>로 시작하는 찬양이 있습니다. 그도 이렇게 물어야 했습니다. <왜 이런 놀라운 은혜를 주시는가, 이제 어떻게 살아 은혜에 보답할 것인가>라고 질문하고, 그에 대한 답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은혜를 받은 후의 삶을 결단해야 합니다.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한 주정꾼을 만나셨는데, 그는 과거에 예수님께 저는 다리를 고침받은 자였습니다. 그는 다리가 회복된 후 직업을 얻지 못해 타락했다고 말했습니다. 그 다음엔 창녀를 만났는데, 예수님께 용서를 받은 여인이었습니다. 여인은 창녀 생활을 청산했지만, 고독하고 생계가 막막하여 다시 그 길로 들어섰다고 했습니다. 또 이웃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그는 맹인이었다가 예수님에 의해 눈을 뜬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막상 눈을 뜨니, 자신을 분노하게 하는 것이 너무 많아 참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은혜를 받았으나, 은혜에 대한 응답의 방법을 알지 못했습니다. 은혜를 받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은혜를 받은 후에 가질 태도와 삶을 깨닫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았다고 생각없이 가볍게 떠버리면 안 됩니다. 그동안 개척하여 교인이 좀 늘면, 능력을 좀 받으면, 프로그램 하나가 성공하면, 대단한 것을 이룬 것처럼 사방으로 떠버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금방 유명해졌으나, 종말도 빨리 왔습니다. 은혜는 받았는데, 오히려 그것 때문에 교만해져 종말을 재촉했습니다. 히스기야는 15년의 생명이 연장되는 은혜를 입었으나, 교만하여 바벨론 사신 앞에서 하나님 영광 대신 자신의 부유함을 자랑하다가 유다가 바벨론에게 멸망하게 되는 불행의 씨앗을 뿌렸고, 그 15년 동안에 태어난 아들 므낫세가 유다를 완전히 수렁에 빠지게 했습니다.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아야 합니다. 은혜를 받았다면, 침묵하고 깊이 기도하면서 은혜를 내면에서 숙성시켜야 합니다. 은혜를 받았다면, 깊은 묵상과 겸손한 엎드림이 필요합니다. 은혜를 받을수록 침묵하고, 기도하고, 더 깊어져야 합니다. 풍성한 은혜를 받길 원합니다. 그리고 은혜의 이유를 깊은 기도 중에 발견하고, 은혜에 보답하는 겸손하고 경건한 삶을 살길 원합니다.
    • 오피니언
    • 칼럼
    • 성서연구
    2022-06-10
  • [시사칼럼] 이십 대는 요리사다?
    최근 아주 유명해진 이십 대 여성이 한 명 있습니다. 야당의 공동비대위원장으로 활약했던 박지현 씨가 그 주인공인데, 1996년 3월생이라고 하니 한국 나이로 만 26세에 해당합니다. 그녀는 소위 ‘n번 방 사건’을 추적해서 그 전모를 밝혀낸 성과로 약관의 나이에 70년 역사를 자랑하는 민주당의 수장이 되었고, 최근 치러진 지방선거를 진두지휘하면서 공개적으로 586 세대의 퇴진을 요구하여 한국사회에 일대 충격을 안겨다 주기도 했습니다. 물론 작년에 이준석 씨가 30대의 나이로 당내 선거를 통해 당시 야당의 대표에 취임하고 또 대통령선거까지 승리하게 함으로써 정계를 넘어 한국사회 전체에 먼저 충격파를 던진 사례가 있습니다. 하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을 비롯해서 이십 대의 나이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경우는 종종 있어도 공당(公黨)의 대표성을 가진 자리에 이십 대가 등용된 일은 없었습니다. 정치 영역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기적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최근 이십 대의 기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이십 대와 관련해서 등장한 신조어를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각기 다른 영어 단어들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든 ‘CHEBB’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요리사를 뜻하는 말로 이제는 하나의 고유명사처럼 사용되는 ‘셰프(chef)’를 잘못 쓴 것 아니냐고 되묻는 분들이 많을지 모르겠습니다. 이십 대를 앞에 붙이면 ‘이십 대는 요리사다?’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을 듯합니다. 실상은 이러합니다. “글로벌 주류 겨눈 90년대생... ‘쳅(CHEBB)’에 걸었다, [90년대생 창업자가 온다]”와 같은 기사(중앙일보 5월 3일)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 말은 이십 대가 주로 창업에 뛰어드는 새로운 영역들을 상징하는 축약어입니다. ‘커머스(Commerce)’, ‘헬스케어(Healthcare)’, ‘에듀테크(Edu-tech)’, ‘B2B SaaS’, ‘블록체인(Block chain)’, 이렇게 다섯 분야에서 최근 이십 대들의 활약이 눈부십니다. 하기야 이 단어들을 제대로 제시한들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는 기성세대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알만한 분야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고 나머지만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먼저 ‘커머스’는 ‘깊고 뾰족한 상거래’라는 ‘딥버티컬 커머스’(deep vertical commerce)의 줄인 말로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의미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음식 사업을 해도 간편식 시장을 노린다거나 인테리어 영역에 뛰어들 때도 동남아시아 인테리어 사업을 구상한다든지 이런 식을 의미합니다(간편식 커머스 윙잇, 동아시아 식기 커머스 서울번드 등). 한편 ‘B2B SaaS’는 태생적으로 디지털에 익숙한 이십 대(디지털 전환 루키)들이 기업에서 업무용으로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구독서비스 형태로 제공하는 사업을 의미합니다. 마지막으로 ‘블록체인’이라는 말은 이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블록체인의 핵심은 역시 가상화폐라 할 수 있는데, 최근 비트코인 폭락 사태가 한국에서 촉발되어 화제가 되었습니다. 애플 엔지니어 출신인 권도형 씨가 이십 대 시절부터 준비해서 발행한 ‘루나와 테라’가 한때 상종가를 치다가 최근 가치가 99% 폭락하면서 주된 거래자인 수많은 청춘들이 일대 혼란에 빠졌고(“천만 원 잃고 떠난다”, “원금은 못 찾더라도 이혼은 막아야지”..), 이 여파는 세계가상화폐 시장에도 미쳐서 하루만에 257조가 증발하는 사태가 발생해 외신들 사이에 ‘코인런’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핵심은 이들 신종 사업을 주도하는 주류가 이십 대들이라는 사실입니다. 경제적인 의미에서만 이들이 신인류로 자리 잡아 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번 지방자치선거에서 19세의 천승아 당선인을 포함해 80여 명의 이십 대들이 당선되어 풀뿌리민주주의 현장에서 활약하게 되었습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이 더 이상 지금의 이십 대에 어울리지 않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회에서 이십 대의 형편은 어떠할까요? 최근 네 번째로 추기경을 배출해 경사가 난 천주교계는 연이어 발표한 소식으로 충격에 빠졌습니다. 작년에 신규 사제 숫자가 111명에 불과했고, 최대교구에 위치한 서울 소재 신학교에 입학한 학생은 고작 7명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정치경제문화체육 분야의 전 방위에 걸쳐 세계적으로 이름을 드높이는 이십 대들이 속출하고 있는 이 때 유독 교회에서만 이십 대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다 하지 않습니까? 이십 대들이 문제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20대 당대표와 스타트업 창업자가 속출하는 현실을 자각하고 교회가 먼저 이십 대처럼 변해야 합니다. 망설일 시간이 없습니다. 작은 일부터 빨리 시작해야 합니다.
    • 오피니언
    • 칼럼
    • 시사칼럼
    2022-06-10
  • [은혜의말씀] 애굽에 내린 재앙(2) (출8:20~24)
    우리는 지금 애굽에 내린 10가지 재앙에 대해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네 번째 재앙입니다. 네 번째 재앙은 ‘파리’가 애굽 전역을 덮는 것입니다.(24절) 여기서 말하는 파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밥상 위에 앉아서 “워이워이” 하면 도망가는 순한 파리가 아니라, 사람이나 짐승의 피까지 빨아먹는 아주 독한 ‘쇠파리’를 말합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침실에 순한 파리, 몇 마리만 있어도 밤잠을 설치는데, 새까만 쇠파리 떼가 무수히 날아와서 사람에게 들러붙어 피를 빨고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끔찍합니까? 애굽 사람들은 날아다니는 파리가 자신의 운명을 지배하는 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케프리’라는 신입니다. 그들은 파리 모양의 ‘신상’을 만들어 놓고 숭배까지 했는데, 그 숭배하던 신이 자신들을 공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네 번째 재앙에서 독특한 것이 발견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는 고센 땅을 구별하여 파리가 없게 하겠다고 하십니다.(22절) 이로 인해 여호와가 참 하나님이신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때로 그리스도인들도 이 세상에서 불신자들과 똑같이 어려움을 당합니다. 불경기에는 똑같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당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떤 ‘결정적인 때’는 구별하십니다. 특히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순간에는 구별하십니다. 이런 구별이 가장 잘 나타난 것이 바로 열 번째, 죽음의 재앙에서 이집트의 장자들을 죽이시고, 이스라엘 장자는 살린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람은 누구나 저주를 받고 심판을 받는 것이 당연합니다.(롬 3:23) 그런데, 롬 3:24에 뭐라고 말씀합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다시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죄값을 치러주심으로, 우리는 구별되어 의롭게 되어서, 영원한 심판에서 영원한 저주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심판의 날에 불신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떨어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구별되어,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가는 줄 믿습니다. 그런데, 이제 신분이 바뀌었다면 우리의 수준도 바뀌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백성과 구별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뭘 하길 기대하셔요? ‘예배’하길 원하십니다. 출애굽 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있습니다.(20절) 이제, 우리 삶의 목적은 구원받은 자 답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로 사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서 예배하고 있다는 것이 세상과 구별되었다는 것이요. 그런데, 바로의 반응이 어떻습니까? 25,28절을 보면, 이 땅에서 예배드리라고 합니다. 너무 멀리는 가지 말라고 합니다. 이 말을 오늘로 바꾸면, 삶의 원리. 가치관은 여전히 세상적으로 가지고 있으면서, 주일 예배만 드리면 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어도 너무 깊이 빠지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예배가 어떤 예배여야 합니까?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 여호와를 예배하는 것입니다.(신명기 6:4-5) 하나님께서는 바르게 예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요 4:23-24) 모든 성도님들이, 우리 삶의 목적인 예배자로 삶의 제자리를 찾아, 하나님이 찾으시는 한 사람, 신실한 예배자가 다 되시길 축복합니다.
    • 오피니언
    • 칼럼
    • 은혜의 말씀
    2022-06-10
  • [교회와세금] 교회의 부가가치세 납부와 면세 기준
    부가가치세(value added tax, VAT)란 재화나 용역이 생산・제공되거나 유통되는 단계에서 창출된 부가가치에 대해 과세표준을 계산해 부과하는 소비과세를 말한다. 즉 어떠한 물품에 대한 구입이나 판매가 이루어질 때 그 거래액에 대해 10%를 세금으로 납부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통상 사업자가 세무서에 납부하는 세금 부담이 거래상대자에게 전가되어 소비자가 세부담을 지는 구조로, 세금을 납부하는 납세의무자와 부담하는 담세자가 다른점에서 간접세이다. 2020년 우리나라 부가가치세 징수액은 64.9조원으로 전체 국세수입 285.5조원의 22.7%를 차지한다. 부가가치세의 납세의무자는 사업자 또는 재화를 수입하는 자로서, 개인 및 법인을 포괄한다. 개인 납세의무자 중 연간 공급대가 합계액이 8,000만원 미만인 경우는 간편 방식을 적용하는 간이과세자로 분류된다. 부가가치세 납부세액은 전단계 세액공제 방식에 따라 매출세액에서 매입세액을 공제하는 방식(VAT=매출세액(매출액*세율)-매입세액(매입액*세율)으로 결정된다. 즉 매출세액은 과세표준인 매출액에 세율을 적용한 금액이고, 매입세액은 공급받은 전단계의 재화 또는 용역에 세율을 곱한 세액이다. 매출세액을 초과하는 매입세액은 환급세액으로 한다. 부가가치세 세율은 10% 단일세율을 적용하고 있다. 다만, 수출 등의 경우 세율을 0%를 적용하는 영세율제도와 미가공식료품 등의 생필품 등에 대하여 과세하지 않는 면세제도가 있다. 2019년 개인사업자 신고를 보면 일반과세가 2019년 425만건(72.6%), 간이과세는 160만건(27.3%)이었다. 간이사업자 중 공급대가가 8,000만원 미만으로 127만건(79.3%)이 납부면제를 받았다. 그러면 이러한 부가가치세를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Church)에 적용할 경우, 어떤 특징이 있는가? 그 내용은 크게 다음과 같다. 첫째, 교회는 종교 등 공익을 목적으로 하는 비영리법인으로, 고유목적을 위해 재화를 취득한 경우 매입세액 부가가치세를 납부해야 하나, 공급 매출세액에 대해 세금을 면제함으로 환급이 적용되지 않는다. 둘째, 공급 매출세액에 대한 기준으로, 교회는 고유목적의 사업을 위해 재화나 용역을 실비 또는 무상으로 공급하는 경우 세금이 면제된다. 또 고유목적을 위해 사용하던 건물 등을 매각하는 경우도 과세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 그러나 소유부동산의 임대 등 수익사업과 관련된 공급은 세금을 납부하여야 한다. 또 학사관, 선교원, 스포츠센터, 청소년수련관, 기도원 등을 운영하며 실비를 받았거나, 신용카드 가맹점으로 등록 후 도서, 성물 등을 실비 판매한 경우 면세대상이 되는지 판단이 요구될 수 있다. 수익사업으로 판단이 되는 경우 세금을 납부하여야 하며, 또 때로는 이전년도까지 세금을 소급하여 교회에 큰 부담이 되는 경우가 있으니 주의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셋째, 재화의 매입세액에 대한 기준으로 고유목적에 사용하기 위해 물품을 해외에서 수입하는 경우 면세된다. 그러나 교회가 건축을 하며 부가가치세 매입세액을 부담한 경우 공제를 받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차량운반구, 비품 등 자산을 구입하는 경우도 매입세액을 부담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예를 들어 교회가 고가의 방송장비 등 자산을 구입하며 현금 지급조건으로 부가가치세액 만큼 할인을 받는 것이 가능한지 문의를 받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매입자가 부담해야 할 세금 부분을 매출자에게 떠넘기는 결과가 되며 탈세 조장 행위로 간주될 수 있으므로 주의를 해야 한다. 교회란 무엇인가? 신앙이란 무엇인가? 종교개혁자 존 칼빈(John Calvin)은 하나님의 주권사상을 강조하며, 그리스도의 신앙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삶의 전영역에서 이루어질 것을 제시하였다. 이는 곧 교회와 신앙이 국가와의 관계를 포함, 세상의 모든 영역에서 빛과 소금이 될 것을 당부하는 것으로 모든 그리스도인이 귀 기울여 할 교훈임이 틀림없다.
    • 오피니언
    • 칼럼
    2022-06-10
  • [목회자칼럼] 일상 회복
    사람들은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으면 심한 부담감과 스트레스를 받는다. 잠도 못자고, 밥을 먹어도 소화를 잘 못한다. 또 큰 일을 치루고 나면 감정소모가 심하고, 온 몸이 지치고 상해서 유의미한 일을 못하고, 멍하게 있거나 그저 쉬려고만 한다. 의욕을 상실한 채로 멍하게 있거나 재밌고 달달한 것만 찾는다. 그러니 일은 밀리고 마음은 더 곤고해지고 일상이 무너지고 건강이 나빠질 수밖에 없다. 일상의 루틴이 깨어지고 마음은 평정심을 잃고 산만해지고 스트레스가 가중되니 컨디션도 점점 최악으로 흘러가게 된다. 분명히 편리하고 수월한 문명의 발달은 많지만, 삶의 질은 점점 팍팍해진다. 정신건강이 나빠져서 정신줄을 놓은 사람들도 많아진다. 멀쩡한 사람이 돌연변이처럼 괴물이 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이 혼돈한 시대의 문제를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요? 성경 사도행전에서 그 해답을 찾아본다. 사도행전16장에서 사도바울의 일정을 보면 누구보다도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힘든 과정을 거친 사람이 바울이다. 고소를 당하고, 체포가 되고, 매를 많이 맞고, 깊은 감옥에 갇히고 차꼬에 채였다. 그러한 상황에서 한밤중이 되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신세타령이나 하고, 팔자소관을, 넋두리를 하거나 분노에 치를 떨텐데 바울은 한밤중에, 그 고통의 시간인데도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였다. 탈출 기회가 왔는데도 감옥에서 도망치지를 않고 오히려 자결을 하려는 간수를 말리고, 그와 그의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세례를 베풀고 그 온 집안이 예수님을 믿게 하였다. 바울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② 결론적으로 바울의 미션은 자기 몸을 보전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자기 기분이나, 자기 몸의 컨디션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오로지 말기찬섬(말씀, 기도, 찬양, 섬김)이 관심사항이었다. 그것이 바울의 베이직이다. 사람은 혼란할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기초가 튼튼한 사람이 실력이 있는 사람이다. 손흥민은 어릴 때 슈팅연습을 하기 전에 드리블 연습만 6년을 했다고 한다. 초지일관, 처음처럼, 첫사랑을 회복해야 된다. 첫사랑은 계산을 하지 않는 순수한 사랑이다. 사람은 초심을 잃지 말아야 된다. 초심을 잃은 사람은 이미 변질이 된 것이다.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되는데 살다보면 어느 순간 한 눈 팔고, 간에 바람이 들어서 딴 짓을 하기 쉽다. 마음이 한결같지가 않고 의심과 두 마음과 욕심이 생겨서 사람이 엉뚱해 지는 것이다. 그래서 교만한 마음을 낮추고, 헛된 마음은 버리고, 얼른 회개해야 된다. 회개하고 돌이켜서 첫사랑을 회복해야 된다. 바울이 몸이 피투성이가 되고, 마음이 만신창이고, 시간이 오밤중일 때도 그가 기도와 찬양과 전도를 한 것은 그것이 바로 사명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명을 찾으면 힘들어도, 아파도, 무서워도, 죽어도 그 일을 하게 된다. 사명이란 것은 이 일을 하다가 내가 죽어도 좋은 것이다. 사명자는 수명자다. 사명자는 그 일을 끝마치기까지 죽을 수가 없다. 사명자가 사명을 까먹으면 문제가 생긴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지 갈잎을 먹으면 죽는다. 사명감이 없는 사람은 작은 시험에도 쉽게 넘어진다. 이 시대에 무엇보다도 잃어버린 사명을 회복해야 된다. 바울이 한밤중에 기도와 찬송과 전도를 한 것은 그것이 일상이기 때문이다. 일상이라는 것은 아침에 눈 뜨면 해야 되고, 저녁에 눈 감기 전까지 해야 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밥 먹듯이 하는 것이다. 마셔도 마셔도 물리지 않는 것이 물이다. 삼시세끼 일용할 양식이 지겹지 않고 입맛, 밥맛, 살맛이 나는 것이 건강한 사람이다. 하나님께서는 건강을 주시기전에 입맛을 먼저 주신다. 사람은 밥심으로 살아간다. 열 번만 밥을 먹으면 친구가 된다는 중국 속담이 있다. 밥상머리에서 가정의 대화와 자녀교육이 이루어진다. 이 시대에 가짜뉴스가 많고 정보는 풍년인데 생명의 말씀은 기근이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삶이 예배가 되고, 기도보다 앞서지 않으며, 호흡이 있는 자마다 찬송을 하고 할 수만 있으면 사랑하며 섬기는 삶이 성도의 일상이다. 코로나 때문에 일상이 흐트러졌다. 일상을 회복해야 된다. 성도의 일상은 말기찬섬이다. No Bible, No Blackfast라는 말이 있다. 성경말씀을 먹기 전에는 아침식사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복을 주시기 전에 말씀을 먼저 주신다. 그래서 성도는 성경으로 돌아가서, 그 곳에서 길을 찾고 답을 얻고 약을 구한다. 일용할 양식으로 충분하고, 주께서 주시는 것으로 만족하고 한 날의 괴로움도 족하다. 건강한 성도는 새벽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금요철야기도로 한 주간을 마무리한다. 기도를 쉬는 죄를 범치 않고 쉬지 말고 기도한다.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있어 기도한다. 기도를 멈추는 순간 마귀가 틈을 탄다. 찬송은 천국 가서도 계속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마귀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찬송 소리이다. 그래서 호흡이 있는 자마다 숨 쉬듯이 찬송을 불러야 된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대접을 받으러 오신 분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듯이 성도는 밥 먹듯이 나눔과 섬김을 행하는 사람이다. 주는 자가 복이 있고 섬기는 자가 큰 자이다. 복음을 전하고, 은혜를 나누고, 사랑의 손길을 베푸는 것이 모두 섬김이다. ④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 기본이요 사명이요 일상이기 때문에 어떤 일을 당하여도 결국은 복음 전하는 쪽으로 나아간다. 그래서 한밤중에도 기도하고, 매를 맞고도 찬송하고, 감옥에 갇혀서도 전도를 하였다.
    • 오피니언
    • 칼럼
    • 목회자칼럼
    2022-06-10
  • [부산기독교이야기] 전쟁기 부산에서의 신학교육5
    감리교회신학교: 지금 감리교신학대학교로 불리는 감리교회의 신학교육이 시작된 것은 1893년부터라고 한다. 한국에서의 감리교 선교는 아펜젤러의 내한으로 시작되는데 그가 1885년 8월에 설립한 ‘배재학당’은 조선에서의 최초의 선교학교였다. 1887년에는 배재학당 내에 ‘신학부’를 설치했는데, 이것이 감리교회의 신학교육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신학부가 계획대로 발전하지 못했다. 1888년에 일어난 ‘영아소동’ 때문이었다. 영아소동이란 근대화 정책에 반감을 가진 수구세력들이 퍼트린 거짓에서 비롯된 폭력 소동인데, 서양인들이 조선 아이들의 눈을 뽑아 사진기 렌즈를 만들고 아이의 간(肝)을 약으로 쓴다는 소문을 퍼뜨려 분노한 민중들이 서양인들을 폭행하는 소동을 말한다. 이런 소동이 일어나자 고종은 서양인들의 활동을 잠시 중단시켰다. 배재학당과 이화학당도 잠정 폐쇄 되고, 배재학당 내에서 이루어졌던 신학 교육도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1893년 겨울에는 ‘본처(本處) 전도인 양성과정’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신학반’(Theological class)을 열었는데, 이것이 한국에서의 감리교 신학교육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1899년 2월에는 ‘신학반’이 ‘신학회’으로 개칭되었다. 이 무렵 공부했던 이들이 김기범과 김창식인데 이들은 1901년 한국 감리교 첫 목사가 된다. 1893년부터 한국선교를 시작한 남감리교가 북감리교회와 공동으로 신학교육을 시행하자고 제의하여 남북감리교 선교부는 이에 합의하여 1907년부터 신학교를 ‘감리교 협성성경학원’(Union Theological Seminary)로 개칭하였다. 1910년에는 ‘감리교회 협성신학교’로 발전했다. 이때 서울 서대문구 냉천동 31번지에 부지를 확보하고 교사를 신축했다. 1931년 12월에는 전문학교령에 준하는 4년제 ‘감리교회 신학교’로 개칭된다. 그런데 이화학당을 세운 스크랜튼 여사가 여전도사 양성을 위하여 서울 종로에서 감리교여자성경학원을 시작했는데, 이 학교가 1920년에는 최초의 여자신학교인 ‘협성여자신학교’로 발전했다. 이 학교가 1932년에는 감리교협성신학교와 통합되어 남녀공학의 신학교가 되었다. 이 감리교신학교가 일제 말엽 학교가 잠정폐쇄된 일도 있으나 해방 후 1946년 3월 다시 개교하였고, 1959년에는 ‘감리교신학대학’으로 개칭되었다. 그러다가 1993년 대학명 자율화 조치에 따라 ‘감리교신학대학교’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렇게 볼 때 감리교신학대학은 130여년의 역사를 지닌 신학교육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앞에서 말했지만 1940년 학교가 잠정 폐쇄 되었다가 해방 이후 다시 개교한 감리교신학교는 1948년에 45명, 1949년에 40명, 1950년에는 38명의 졸업생을 배출하며 안정을 누리게 되지만, 1950년 전쟁이 발발하자 임시휴교하게 된다. 학생들과 교직원들은 피난을 가거나 고향으로 돌아갔고 1951년 봄 학기 서울 교정에서 개강할 수 없었다. 결국 피난지 부산에서 신학교 개교를 논의하게 된다. 부산에서의 첫 감리교회는 1948년 동대신동 대티턴널 인근에 설립된 부산제일감리교회였는데, 이 교회를 비롯한 부산 감리교계 지도자들의 협조를 얻어 감리교신학교는 부산시 동구 수정동 551번지의 민가를 구입하였다. 이곳은 지금의 수정초등학교와 경남여자고등학교, 부산진세무소 중간 쯤 되는 곳인데 이곳에 판자로 임시교사를 짓고 1951년 5월 4일 이곳에서 전시 신학교를 개교하게 된다. 교사는 강의실이자 강당이었고 야간에는 학생들의 숙소로 사용되었다. 수정동 임시교사에는 우물이 있어 여기서 학생들이 취식도 할 수 있었다. 당시 학제는 예과 2년, 본과 3년 총 5년 과정이었다. 부산 임시 신학교 당시 교장은 유형기 박사였고 교수는 김용옥, 송정률, 윤성범, 장기수, 홍현설 등이었다. 이곳에서 1951년 43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이들은 서울 냉천동 교정에서 수학했던 이들이었다. 1952년부터는 홍현설 박사가 교장으로 봉사했는데, 그해에는 6명, 1953년에는 6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1952년에 입학한 이들로는 김경숙, 김경섭, 안평호 등이 있었고, 1953년에 입학한 이가 이성삼이었는데 그는 후일 교회사가가 된다. 임시교사 시절인 1953년 7월 27일 휴전이 이루어지지만 곧장 서울로 돌아가지 못했다. 1953년 11월 5일 보수감리교회에서 피난기 부산의 임시 신학교 마지막 졸업식이 거행되었다. 이때 졸업한 이들이 곽종옥, 김희태, 박봉배, 변선환, 이인석, 이희정, 조영칠 등이었다. 부산에서 3년간 임시 교육을 마감하고 1954년 4월 2일 부산을 떠나 서울 서대문의 본래 교사로 돌아갔다. 부산을 떠나기 꼭 20일 전인 1954년 3월 13일 촬영한 마지막 사진이 남아 있다.
    • 오피니언
    • 칼럼
    • 이상규교수의 역사탐색
    2022-06-10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