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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기독교이야기] 전쟁기 부산에서의 신학교육3
    지금의 총신대학교가 ‘총회신학교’라는 이름으로 6.25 전쟁기에 설립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이 많지 않다. 알고 있다 하더라도 어떤 배경에서 설립되었는가를 모르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비록 총회신학교가 대구에서 개교했지만, 전쟁기였고 한국교회와 부산 지역 이야기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에 이번에는 총회신학교 설립과 신학교육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앞에서 기록했지만 1946년 6월 조직된 남부총회는 1940년 설립된 조선신학교를 총회 인준 직영신교로 결의했고, 1948년 6월 설립된 장로회신학교도 1949년 4월 서울 새문안교회에서 열린 제35회 장로교총회에서 총회직영신학교로 인준을 받았다. 결국 총회 안에 두 직영 신학교가 존재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양 학교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이들을 둘러싼 대립이나 경쟁은 불가피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경직 목사의 제안으로 총회에 ‘신학교합동위원회’가 구성되었고, 35회 총회는 장로회신학교와 조선신학교의 합동을 결의하였다. 그러나 합동이 성사되지 못했다. 특히 조선신학교 측의 반대가 컸기 때문이다. 그래서 1951년 5월 부산중앙교회에서 모인 제36회 총회(속회)에서는 조선신학교측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양 신학교를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새로운 총회 직영 신학교를 설립하기로 결의했다. 이 결의는 53:3이라는 압도적 지지로 가결되었다. 이 결정에 따라 제36회 속회 총회기간인 5월 30일 부산 중구 보수동에 위치한 광복교회에서 권연호 목사를 이사장으로, 노진현 목사를 서기로, 김광현 목사를 회계로 하는 이사회를 구성하고 신학교 설립을 협의하였고, 그해 7월 25일 대구고등성경학교에서 모인 제2차 이사회는 총회신학교를 대구에서 개교하기로 결의하였다. 교장과 교수 선임에 대하여는 장시간 논의하였는데, 조선 신학교의 반발을 고려하여 박형룡 대신 감부열 선교사를 교장으로 선임하였다. 교수로는 박형룡, 권세열, 김치선, 계일승, 한경직, 명신홍 목사, 그리고 인톤(William Linton), 조하파(Joseph Hooper) 선교사를 선임했다. 이런 준비를 갖추고 1951년 9월 18일 화요일 ‘총회신학교’가 대구 대신동의 서문교회당 하층에서 개교하였다. 조선신학교가 합동에 참여하지 않음으로서 실제적으로는 박형룡이 교장으로 있던 장로교신학교가 이름만 바뀌어 재 개교한 것에 불과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처럼 총회 결의에 따라 장로회신학교를 해체하고 총회신학교를 설립하게 되자 부산진교회에서 수업하던 신학생들은 다시 대구로 몰려들었다. 강계찬, 손영섭 같은 이들도 부산에서 한 학기 마치고 대구로 갔다. 결국 부산진교회에서 시행된 신학교육은 한 학기로 끝나고 만 것이다. 대구에서 총회신학교를 개교할 당시 신학생 수는 200-300명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500여명에 가까운 많은 학생들이 몰려 왔다. 감부열 교장의 지적처럼 ‘총회신학교는 나면서부터 성인이었다.’ 교사가 부족하여 대구 대신동에 있는 안두화 선교사 쓰던 집을 기숙사와 사무실로 사용하고, 서문교회 외에도 남산교회 건물을 교실로 사용하기도 했다. 개학 당시 상황에 대해 권세열 선교사(교수)는 이렇게 적었다. “새로운 장로회 신학교가 대구에서 약 500명의 학생들과 함께 개교하였다. 그 학생들 중 반수 이상의 학생들의 아버지나 형제들은 순교당하였거나 가족이 이산(離散)된 이들이며 북한에서 내려온 이들이다. 학생들은 교회 건물을 임시교실과 기숙사로 사용하며 공부하고 있다. 학생들은 학과 공부 외에도 교수의 지도하에서 노방전도, 개인전도, 교회심방, 병원과 교도소 방문 등 봉사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또 교회를 개척하고 성경구락부에서 아동들을 가르치고 있다.” 총회신학교가 1952년 5월 개학했을 당시 재학생은 494명에 달했는데, 이중 여학생이 74명이었다. 이를 보면 반 조신(反 朝鮮神學校)의 범 보수적 환경이 압도적이었음을 보여준다. 김재준 목사가 신학적인 문제로 총회에서 제명되자, 결국 조선신학교 측은 1953년 기독교장로회로 분립하게 된다. 대구에서 시작된 총회신학교는 서울 수복 후 서울 남산의 옛 조선신궁 터의 남산교사로 이동했고, 1953년 8월에는 감부열에 이어 박형룡 박사가 교장으로 취임했다. 당면과제는 교육부로부터의 인가와 교사의 건축이었다. 그래서 1954년부터 이를 추진하였고, 이를 위해 박내승을 총무과장으로 임용했다. 그러나 그가 신학교 건축기금으로 모아 둔 3천만 환을 사기한 사건이 발생하여 총회는 내분에 휩싸였고, 결국 1959년 승동측과 연동측으로 분열되는 아픔을 겪었다. 물론 다른 원인도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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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규교수의 역사탐색
    2022-03-18
  • [서임중칼럼]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께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님!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으로 당선됨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축복합니다. 더불어 민주당 대선후보로 함께 달음질하셨던 이재명 민주당 후보께는 심심한 위로를 전합니다. 재론할 것도 없지만 대선후보 모두가 대한민국 헌법 1조(⓵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⓶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의 정신을 가슴에 품고 국태민안을 위한 대통령으로서의 사명을 수행하고자 하는 공통분모를 갖고 달음질하셨기에 당선자나 낙선자 모두가 대한민국 국민의 지도자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고희의 세월을 살아오면서 대통령 선거를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후보의 公約이 당선 이후의 직무수행을 통해 대부분 空約이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디 대통령뿐이겠습니까? 여의도 1번지의 소위 選良이라는 국회의원들은 不良의 언행으로 국민들의 가슴을 치게 하고,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의원들의 후보로서의 公約은 대부분 空約이 되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그래서 이론적 가치보다는 실천적 가치의 진정한 리더십의 지도자를 국민들은 보고 싶은 것입니다. 목사는 정치와는 거리가 먼 사역을 하기에 여야의 개념이 없고 지역갈등이 없으며 진보와 보수의 개념이 없는 中庸의 使役者입니다. 오직 중심에는 하나님의 말씀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기에 정치적, 사회적 관계에서는 항상 원칙을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通鑑하고 해석하며 가르치고, 관계개념으로는 소외계층과 약자의 편에서 이해하며 관용하고, 용서하며 사랑하는 삶을 가르치고 실천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聖職者라 명명합니다. 나는 목사로서 진정한 leadership은 listen에서 나온다는 목회 철학으로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LISTEN은 단순한 들음(hear)이 아닌 ‘경청’이기에 대통령의 리더십은 국민들만 바라보고(Look), 국민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이해하며(Interest), 백성들의 관점을 중립적 위치에서 헤아리고(Staying on Topic), 백성들에게 적게 말하며 많이 들어주면서 소통하고(Talk & Listen), 백성들에게 눈을 맞추고(Eye contact), 백성들의 소리에 진심 어린 반응을 할 때(Nodding) 진정한 리더십이 발휘되어 그제서야 비로소 지역과 세대와 빈부의 갈등이 아닌 통합의 국태민안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윤석열 당선자님의 유세기간 동안 말씀하신 내용의 중심에는 이 내용이 그림처럼 그려져 있음을 보았고, 또한 들었기에 다시 한번 되새겨 드립니다. 그렇게만 하신다면, 그리도 강조하신 국민통합과 자유민주주의의 헌법정신이 이 나라 국민들의 생활에서 꽃피게 될 것입니다. 전직 대통령들의 지난 역사를 되짚어보면 이와 같은 정치리더십을 몰라서가 아니라 행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청와대를 떠날 때는 단 한 분도 백성들이 박수 치는 가운데 떠난 분들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政治가 아닌 痴政의 결과입니다. 본래 政治란 백성들이 바르게 가도록(正) 손에 法의 회초리를 들고 다스리되(攵), 백성들이 호미나 괭이를 들고(厶) 자기 자신의 삶의 몫을 잘 감당하여 입을 채우는(口), 즉 자활 의지가 물 흐르듯(氵) 다스리는 것이 政治인데 오히려 그 반대의 痴政을 하게 되니 국민들은 이리도 가슴이 시린 것입니다. 그러기에 실리콘밸리 리더십 그룹 CEO인 ‘칼 과디노’(Carl Guardino)가 지적한 정부 관료나 모든 기관단체의 지도자의 성공해법은 3L, 즉 경청하고(Listen), 학습하고(Learn), 주도(Lead)해야 한다는 말을 공감합니다. 대한민국 20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윤석열 당선자님의 후보 기간 언행을 망원경과 현미경의 炯眼으로 보고 듣고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언행은 신뢰와 믿음을 갖게 했습니다. 유세 기간의 모든 언어의 중심에 國民이 주제어가 되었고 ‘대통령직을 정식으로 맡게 되면 자유민주주의 헌법 정신을 존중하고 의회를 존중하여 야당과 협치하면서 국민을 잘 모시도록 하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렇게만 한다면…’ 이라는 同意를 하면서 박수를 보낸 것이 나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2017년 5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말씀이 안방에 전달되던 날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박수를 치면서 전율을 느꼈습니다. 이 보다 더 좋은 公約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5년이 지나는 동안 소위 작금의 언론중심의 화두어가 된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일상이 된 현실에, 이 公約은 空約이 되어왔음을 아파하는 것 또한 나만의 아픔이 아닐 것입니다. 2022년 5월 10일은 윤석열 당선자님이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날입니다. 벌써부터 가슴이 뛰며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취임사에서는 무슨 메시지를 역사에 남길 것인가 기대를 해 봅니다. 그리고 취임사의 말씀이 어떤 내용이든 대국민 대통령 취임사가 空約이 되지 않기를 진정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감히 제언하거니와 성경에서 교훈하는 이스라엘의 왕 가운데 사울 왕과 다윗 왕의 통치 역사를 살펴보기를 권합니다. 사울은 왕으로 즉위하기 전에는 위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순종하며 아래로는 하나님을 대신하는 사무엘의 말을 경청하고 순응하였습니다. 그러나 왕이 된 후에는 listen이 아닌 hear로 인하여 하나님도 사무엘도 관심이 없었고, 자기 생각 자기 뜻대로 통치하다가 퇴위가 비참했고, 다윗은 윤석열 당선자님이 자주 언급하신 것처럼 初心을 잃지 않고 하나님과 지도자 사무엘의 말을 항상 경청하고 순종함으로써 역사에 남을 위대한 왕이 되었습니다.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윤석열 당선자께서 앞으로 걸어가야 할 답이 있습니다. 신학적 人間論에서 인간이란 Being이 아니라 Becoming입니다. 存在가 아니라 存在化, 곧 ‘됨이 아니라 되어가는 것’입니다. 2022년 5월 10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님은 그날 취임선서를 함으로 대통령이 되는 것이 아니라 퇴임하시는 그날까지 ‘대통령이 되어간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날을 기다리고, 나아가 2027년 5월 10일, 21대 대한민국 대통령 취임식일 여야, 지역, 세대, 빈부의 갈등이 없이 온 국민이 박수치는 가운데 퇴임하시는 그날, 역사에 남을 좋은 ‘대통령이 된’ 그날 보기를 기도하면서 기다립니다. 그것이 “대통령직을 정식으로 맡게 되면 헌법정신을 존중하고 의회를 존중하고 야당과 협치하면서 국민을 잘 모시도록 하겠다”는 公約이 空約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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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11
  • [소강석칼럼] 겨울은 한 번도 쉽사리 간 적이 없지만...
    지난 2월 8일에 인천에서 전국 17개 광역시도기독교연합회 회장과 사무총장 모임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제가 이 모임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저는 경기도기독교총연합회 회장을 하면서 어떤 특별한 의도를 갖지 않고 그냥 정기적인 모임을 주도하였습니다. 그래서 당시는 회장도 없었고 그냥 지역 별로 돌아가면서 초청을 하는 모임을 갖도록 했습니다. 다만 제가 그 모임의 운영경비를 대부분 후원하고 섬길 뿐 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갑자기 종교소득과세 문제가 대두되며 한국 교회가 들썩들썩할 때 17개 광역시도 기독교연합회가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때 교계 연합기관은 서로 세 다툼을 하느라 신경 쓸 여유도 없었고 17개 광역시도 연합회 대표회장과 사무총장들이 당시 여당의원들에게 항의를 하고 설득을 해서 ‘종교인소득과세’로 바꾸게 된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포괄적차별금지법을 막고 너무 래디칼하게 가려고 하는 지방 인권조례를 균형 있게 연착륙하도록 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인천기독교총연합회 윤보환 대표회장님의 초청으로 인천에서 모였는데, 제가 상임의장 자격으로 가서 설교를 했습니다. 저는 설교를 하고 다음 일정 때문에 조금 일찍 이석을 해야 했는데 어느 지역의 대표회장님께서 잠깐만 저를 좀 만나자고 하며 할 얘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저에게 어려운 부탁을 하려고 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저에게 가까이 오셔서 이런 얘기를 하시는 것입니다. “소 목사님, 교계의 절대다수의 목사님들이 소 목사님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일하다 보면 이런 말도 듣고 저런 말도 들을 수 있습니다. 또 생각이 다른 극소수의 사람들로부터 비난도 받고 공격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목사님은 절대 상처받으면 안 됩니다. 그런 소리에 절대로 마음 쓰지도 말고 일체의 반응도 하지 마십시오. 그냥 목사님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십시오. 그리고 마음의 건강도 중요하고 육체의 건강도 중요합니다. 목사님이 건강해야 계속해서 한국교회를 섬길 수 있습니다. 영육간의 건강을 위하여 마음 관리, 몸 관리를 잘하셔야 합니다.” 생각해 보니 그분의 말씀이 너무 고맙게 느껴지고 큰 위로와 힘이 되었습니다. 돌아오면서 생각해 보니, 저도 지난 날 힘든 겨울 광야 길을 걸어온 것 같았습니다. 아니, 아직도 제가 걸어가야 할 겨울 광야길이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자 이런 문구가 떠올랐습니다. “겨울은 한 번도 쉽사리 간 적이 없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정말 그랬습니다. 어느 해도 봄이 한 번도 쉽게 온 적은 없었습니다. 봄이 오는 듯하더니 또다시 추워 지고 봄이 다 온 듯하더니 또 꽃샘추위가 오고요. 오죽하면 봄이 온 줄 알고 속아 미리 피어난 매화나 목련꽃잎들이 추위에 언채 눈물되어 떨어지기도 했지 않습니까? 저의 삶과 사역의 겨울도 아직은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연합기관을 하나 되게 하는 사역을 쉬지 않고, 한국의 공교회를 위한 공적사역을 멈추지 않는 한 제가 걸어가야 할 겨울 광야길은 끝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겨울이 한 번도 쉽게 간 적이 없지만, 그 어떤 겨울도 가지 않는 적은 없었습니다. 아니, 아무리 매서운 겨울도 새봄을 이기지는 못하죠. 그래서 저희 교회가 섬기는 전철 이미지 광고에도 이런 글자를 새겨놨습니다. “그 어떠한 겨울도 새 봄을 이길 수 없지요.” 그렇습니다. 겨울이 한 번도 쉽게 간 적은 없지만 한 번도 안 간 적이 없습니다. 아무리 추운 겨울도 새봄을 한 번도 이겨 본 적이 없습니다. 올해도 꽃샘추위가 얼마나 기승을 부릴지 몰라도 새봄은 반드시 오고야 말 것입니다. 그런 것처럼 우리 앞에 있는 겨울 광야도 언젠가는 반드시 사라질 것이고 들녘에서 피어나는 푸른 잎새들의 잔인한 생명의 찬가와 합창소리가 대지에 메아리치는 날을 맞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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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04
  • [성서연구] 요한에서 예수님으로
    신학교에 다닐 때부터 가장 부러운 인물 중 하나는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당시나 지금이나 주목을 받으려면 사람들이 밀집된 곳에서 외쳐야 합니다. 예수님의 아우들도 예수님께 갈릴리에 있지 말고 예루살렘에서 사역하도록 권했던 적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7장 3~4절을 보면 <3 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이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4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인적이 없는 유대 광야에서 외쳤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유대 광야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는 사람을 찾아다닌 설교자가 아니라,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사람이 많은 곳을 기웃거리는 요즘 사역자들과 비교됩니다. 또 그는 무엇에도, 완전한 자유인이었습니다. 구약 시대 제사장들은 제사하러 오는 이들이 드리는 것으로 먹고살다보니, 많은 제물을 드리는 이들에게 매였습니다. 아무래도 왕들이 가장 많은 제물을 바치다보니, 제사장들은 권력의 눈치를 보게 되었습니다. 반면에 스스로 생활을 해결했던 선지자들은 비록 가난한기는 했지만,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왔습니다. 그들은 권력에 매이지 않고 소신있게 하나님의 말씀을 외칠 수 있었습니다. 요한이 그러했습니다. 그는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약대 털옷을 입었습니다. 이것들은 하나님이 주신 것들이었습니다. 이는 오늘날의 설교자들이 사람에게 매여 소신있게 말씀을 전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과 비교됩니다. 그러면서도 요한의 메시지는 강력한 폭탄 같았습니다. 강포한 군인들과 물질에 눈먼 세리들도 죄를 고백하고 회개했습니다. 그의 설교는 칭찬하고 축복하면서 간지러운 곳을 긁어주는 설교가 아니었습니다. <회개하라>고 외쳤고, 바리새인들에게는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외쳤습니다. 만약 요즘 이런 설교를 하면 그날로 쫓겨날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의 설교에는 권위가 있었고, 많은 사람이 그 앞에 무릎 꿇었습니다. 이처럼 요한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구약성경에 그의 탄생과 사역이 예고되었을 정도로, 탄생부터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매우 늙은 사가랴와 엘리사벳 부부에게서 기적적으로 탄생했을 정도로 대단한 인물이었습니다. 때로 저는 한국교회에 세례 요한 같은 이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본문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정신을 차리게 합니다. 그것은 요한은 우리에게 <나를 보라>고 말하고 있지 않고, <예수님을 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한계와 함께 예수님의 하실 일을 증거했습니다. 3장 11~12절입니다. <11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12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요한은 자신은 기껏해야 회개를 위한 세례를 베풀 뿐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고, 후회하게 하고, 고백하게 하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노라고 결심하게 하는 것까지가 요한이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거기까지였습니다. 지은 죄 자체를 없앨 수는 없고, 사람을 구원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오직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분이며, 심판하실 분이었습니다. 결국 요한은 <내가 대단해 보이지만, 나를 보지 말고, 진정한 구원자인 예수님을 보라>고 외친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분은 오직 예수님이십니다. 대단한 설교자, 선교사, 사역자들이 있지만, 우리 구주는 오직 예수님뿐이십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 같은 사역자가 없다고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가 예수님만 바라볼 때, 거기 희망이 있습니다.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오직 예수님으로만 충만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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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04
  • [시사칼럼] 신자가 선거를 대하는 자세
    바야흐로 선거의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올해에는 스무 번째 맞이하는 대통령선거가 있고, 여덟 번째 맞이하는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있습니다. 선거에 즈음하여 부쩍 시민들이 많이 하는 넋두리가 있습니다. 이번 선거에는 뽑을 사람이 너무 없다는 푸념입니다. 특히나 이번 대통령선거전만큼 ‘차악(次惡) 논쟁’이 벌어졌던 경우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만일 그 시민이 그리스도인이라면, 가중적인 고민에 빠져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체로 그리스도인들만이 가지고 있는 투표의 기준이 하나 더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인가?’라는 질문과 대답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에도 부합하는 후보가 없는 실정인데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를 고를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다 보니 각자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이 사람을 보라’를 외치고 자연스럽게 부모와 자녀 및 형제와 자매간 혹은 교우들 사이에도 정치적 분쟁이 발생하여 관계가 서먹해지기도 합니다. 신자가 선거를 대하는 자세에 몇 가지 오해가 있기에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첫째, 세속적인 선거에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를 선택하려는 자체가 모순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번 선거에서 누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입니까? 대답은 ‘없습니다!’ 나름대로 일세를 풍미하고 각 분야에서 탁월한 성취와 식견을 가진 후보자들을 폄하하려는 마음은 조금도 없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기준이 어떠합니까? 성경 속에서 이와 같은 기준을 만족시킨 사례가 얼마나 있었습니까? 직접적으로는 다윗 한 사람밖에 없지 않았던가요?(행 13:22) 더군다나 세속적인 선거에서 대부분의 후보자들은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설령 그가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더라도 유권자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기 때문에 기독교 정당의 이름으로 나오지 않은 이상 표를 의식해서라도 자신의 신앙적 신념을 공식적으로 표방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를 후보자 군(群)에서 찾아낼 수가 있겠습니까? 결국 신자는 신앙이 아니라 후보자의 공약이나 정견 그리고 인품이나 행동거지를 잘 판단해서 투표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라고 하나님께서 지혜와 명철을 믿는 자들에게 부여하시는 것입니다. 둘째, 선거를 두고 하는 신자들의 기도에 혁신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대부분의 신자들은 선거에 즈음하여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을 뽑을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해 왔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선택을 기도 응답의 결과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제임스 스미스의 표현을 빌자면, 선거는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세속적 예전”입니다. 이러한 예전(禮典)에서 신자의 정치적 기도는 이제 변화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즉, 이번에 선출되는 후보자가 변화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란 속담도 있지만, 그리스도인의 신념은 하나님께서 인생을 변화시킨다는데 있지 않습니까? 또한 선거판 자체가 변화하게 해 달라고 구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조차 선거를 통한 “민주주의 이행론”(Adam Przeworski)을 주창합니다. 신자들은 더욱 그런 기도를 해야 마땅합니다. 앞으로 더 이상은 ‘차악을 위한 선거’가 재현되지 않게 하시고, 좋은 후보자들이 많이 나와서 짐 월리스(Jim Wallis)의 말처럼 “공동선을 위한 정치”가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정치적 주권을 굳건하게 신뢰해야 합니다. 세속 군주가 신자일 경우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무엇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풀어주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성경에 드러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 가운데 다리오와 아하수에로와 아닥사스다 왕들의 이름이 연이어 등장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신약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대의 왕 헤롯이 야고보 사도를 죽이고 베드로까지 처형하려다가 실패한 직후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공교롭게도 당시 예루살렘에는 바울이 구제금을 전달하러 와 있었죠(행 12:13, 25). 훗날 로마서에 바울은 이렇게 썼습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롬 13:1). 유대 왕이 그러했지만 로마의 황제라고 다를 바가 있겠느냐는 준엄한 선포가 아니었을까요? 우리 시대에도 같은 정치적 원리가 작동합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누가 선출되든 이후에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그를 사용하시고 다스리신다는 사실을 신뢰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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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04
  • [은혜의말씀] 출애굽의 서막(출1:8-14)
    출애굽기는 모세오경의 두 번째 책으로 ‘출발’ 혹은 ‘탈출’이라는 뜻의 헬라어 <엑소도스>가 명칭이 되었습니다. 출애굽기의 주제는 ‘구속-구원’ 입니다. 하나님의 종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노예에서 구속하시고, 그들을 인도하셔서 결국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먼저, 1장에서 보아야 할 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번성입니다.(7절) 본문에 보면, 인구 증가를 표현하는 단어가 다섯 번이나 반복하여 나오는 것을 봅니다. 이러한 중첩의 표현은 이스라엘의 번성이 하나님의 언약에 기초한 약속의 성취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창 15:5, 46:3) 그들은 애굽으로 내려갈 때만 해도 70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400년 전 약하디 약한 야곱의 12 아들을 부르셔서 이스라엘이라는 강한 민족으로 만들어 역사의 무대에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여러분,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그대로 이루어지는 줄 믿습니다. 우리 교회는 앞으로도 하나님의 꿈을 이루기 위해 불타는 사명을 가슴에 안고 계속 전진해야 할 줄 믿습니다. 이 동래와 부산 그리고 민족과 열방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흘려보내는 축복의 통로, 복음의 구조선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두 번째,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해진 학대입니다.(8절)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조는 점점 불어나는 이스라엘에 일종의 위기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고된 노동으로 생활을 괴롭게 하고 심지어 산파들을 시켜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죽이라는 명령까지 내립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갈 뿐 아니라 강해져 갑니다.(12절) 여러분, 세상은 하나님의 계획을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방해하는 사단의 음모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결코 사단의 공격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고난을 통해 연단 받으므로 더욱 믿음의 사람으로 강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고난은 하나님의 숨겨진 선물이요, 은혜의 방편입니다. 세 번째, 참으로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한 믿음의 여인들입니다.(17절) 노동을 통한 억제 정책이 실패로 돌아가자 바로는 산파들에게 태어나는 남자 아기는 다 죽이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태양의 아들이라 자처하는 바로의 명령은 얼마나 무거운 것입니까? 그러나 산파들은 하나님을 더 두려워했기 때문에 바로의 명령을 어깁니다. 그들에게는 이 세상 왕의 말보다 하늘나라 왕이신 하나님의 말씀이 더 중요했던 것입니다. 성도는 매일 매일의 삶 가운데 입술로 행동으로 또 물질로, 신앙고백을 하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참믿음은 진짜 두려워해야 할 분을 두려워하며 사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그런 분에게 하나님께서 하늘의 놀라운 복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20절, 21절) 여러분의 신앙이 여러분의 가족, 자녀들을 믿음으로 세우는 길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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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04
  • [목회자칼럼] 나의 목회 평가를 주님께 맡기며...
    2022년 중국 베이징에서 동계 올림픽을 했다. 쇼트트랙에서 심판 판정의 문제로 모두들 한 소리를 한다. 간혹 심판은 선수들에게 오판을 내릴 수 있지만, 하나님은 오판하지 않는다. 목회에 성공과 실패를 나눌 수 있는 지점이 없지만, 가끔씩 난 과연 하나님이 원하는 방향대로 가고 있는 ‘하나님 중심의 목회’를 잘하고 있는지 고민할 때가 있다. 물론, 오롯이 혼자 갈등을 하며 그 답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도 없지만 가끔은 스스로 나의 목회를 판단하며 괜스레 기분이 좋지 않기도 한다.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지금보다 더 잘하고픈 마음이 들고, 나의 약점을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서 야박한 평가를 하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기도 한다. 이런 나의 생각과 평가가 올바른 것일까?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서도 역시 마음 한편에는 하나님의 평가가 바른 평가라는 것을 알고 있다. 세상 사람은 나의 목회를 성도를 모은 숫자로 평가한다. 세상 사람은 나의 목회를 교회당 건축 크기로 평가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평가 기준은 다르다. 예레미야의 목회는 성공 했을까? 예레미야의 메시지는 망해가는 나라를 바꾸지도 못하고 부흥시키지도 못했고 회복시키지도 못했다. 백성들, 지도자들을 회개시키지도 못했다. 오히려 자기의 설교 때문에 감옥에 갇혔고 포로로 잡혀갔다. 이쯤되면 실패 아닌가? 그러나 어느 누구도 예레미야를 실패자로 부르지 않는다. 오히려 신실한 주의 종으로 여긴다. 결과가 없는데도 말이다. 모세는 과연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는가? 비스가산에서 임종을 맞이했다. 그렇다면 모세가 실패한 인생인가? 그렇지 않다.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결코 그를 실패자라고 부르지 않는다. 왜일까? 평가 기준이 세상과 다르기 때문이다. 모세는 자신의 사명대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꾸준히 인도하였기 때문에 성공한 삶이다. 그 힘든 광야 길을, 모래 바람 속에서, 모진 원망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한 것이 성공이다. 하나님이 그렇게 평가했다. 엘리야는 성공했을까? 엘리야는 불을 땅에 끌어내기도 한 능력의 선지자이지만 한 사람을 변화, 회개시키지 못했다. 그래서 실패자인가? 아니다.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나타날 때 모세와 함께 보인 사람이 바로 엘리야이다. 비록 나의 세상적인 비전과 꿈은 좌절되어도 오히려 나를 변화시키고 자금도 사용하시는 분이 바로 주님이다. 주님은 나의 작은 신음에 지금도 반응하고 계시지 않는가? 오늘도 말없이 주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 오늘도 변함없이 주인공이 아닌 단역 배우라도 감당하며 사용되는 것, 쓰임 받는 것이 감사 아닌가? 영화의 주인공만 있다면 영화가 되겠는가? 많은 단역 배우와 엑스트라들이 함께 힘을 모으기에 영화가 만들어진다. 나는 인생의 영화에서 단역 배우이지만 혹은 엑스트라지만 나의 사명을 감당할 때 하나님은 나의 인생을 성공이라 부른다. 하나님은 지금도 날 그렇게 평가하고 있다. “오늘도 묵묵히 그 일을 감당해 주어서 고마워!” “오늘도 묵묵히 그 사역을 통해 나를 찾아 주어서 고마워!” 지금도 갈등하는 목회자를 향한 하나님의 따뜻한 위로의 음성이 귓가에서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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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04
  • [부산기독교이야기] 전쟁기 부산에서의 신학교육(2)
    6.25 전쟁기에도 신학교육은 계속되었는데 앞에서는 고려신학교와 조선신학교의 피난지 학교에 대해 소개하였다. 그렇다면 장로회신학교는 어떠했을까? 장로회신학교는 1948년 6월 3일 서울 남산에서 개교했다. 학교의 설립일에 대해서는 3일, 9일, 20일 설이 있으나 20일은 주일이므로 이날은 아닌 것 같고, 3일(목) 혹은 9일(수)일 것이다. 학교를 설립하게 된 배경은 이러하다. 1946년 9월 20일 고려신학교가 박윤선 목사를 임시교장으로 하여 부산진 좌천동에서 개교했는데, 교장으로는 만주에 계시던 박형룡 박사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송상석 목사는 사지를 넘어 만주로 가서 박형룡 목사 가족을 안전하게 귀국하게 하였고, 박형룡은 부산으로 와 1947년 10월 14일 고려신학교 교장으로 취임했다. 그러나 고려신학교 설립자 한상동과 박형룡 교장 사이에는 이견이 제기되었고 결국 박형룡은 교장으로 취임한지 불과 5개월이 지난 1948년 초 고려신학교를 사임하고 서울로 돌아가 새로운 신학교를 설립했는데, 그것이 1948년 6월 개교한 장로회신학교였다. 개교하기에 앞서 5월 20일에는 서울 창동교회에서 새로운 신학교 설립을 결정하고 이사회를 조직하였고, 개교식은 6월 3일 혹은 9일 서울 남산의 과거 조선신궁 터 자리에 있던 성도교회에서 개최되었다. 개교식 이후 성도교회당이 장로회신학교 임시교사로 사용되었다. 장로회신학교는 1회 졸업생 25명, 2회 졸업생 38명, 3회 졸업생 35명을 배출하고 전쟁의 발발로 1950년 9월 학기를 개교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9.28 서울 수복 후 늦게나마 개강했으나 어수선한 가운데 두 달을 채웠다. 그러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피난길에 올랐다. 1.4 후퇴였다. 1951년 1.4 후퇴 때 교수와 학생들이 다 피난길에 올라 수업은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부산에서 다시 장로회신학교가 개강하게 되는데 그 때가 1951년 5월 1일이었다. 임시교사를 수색하던 중 부산진교회 당회의 허락을 얻고 부산진교회당을 사용하게 되었다. 당시 부산진교회 담임목사는 김성여(金聖與) 목사였는데, 당회 기록에는 장로회신학교 임시교사 건에 대한 아무런 기록도 없다. 일반적으로 피난지 부산에서 개강한 날을 ‘1951년 봄’이라고 말하는데, 당시 교수이기도 한 권세열(Francis Kinsler) 선교사는 1951년 6월 16일자로 선교본부에 보낸 편지에서 5월 1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때 등록한 학생은 275명에 달했다고 한다. 권세열 선교사의 기록은 아래와 같다. “장로회신학교는 1951년 5월 1일, 부산진교회 건물에서 피난민학교로 다시 개학하였다. 우리들은 한 100여명 정도의 학생들이 오리라고 생각했었는데, 현재 등록된 학생 수는 275명이나 된다. 사실 신학교에 온 대부분의 청년들은 전쟁터에 가 있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학교에 올 수 있었다.” 이어서 학생들의 기도생활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나는 오늘 이른 아침, 학생들의 새벽기도회에 참석하였다. 학생들이 매일 자신들의 새벽기도회를 스스로 인도하고 있으며, 교수들은 별로 참석하지 않는다. 학생들은 찬송을 부르고 성경말씀을 봉독하고, 말씀을 증거한 후 기도를 드린다. 그들은 한목소리로 약 30분 이상 기도를 드리며, 많은 이들은 눈물로서 하나님께 호소한다. 저들은 음식이나 집 같은 저들에게 핍절한 물건들을 구하지 않고 자신들의 보다 나은, 진실된 신앙생활과 한국교회와 전체 한민족을 위하여 기도드리는 것이다. 우리 서방 세계에서는, 여기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주님을 간절히 사랑하고, 위하여 헌신하는 것을 찾아보기 어렵다.” 당시 교장은 박형룡 박사였고 한경직 권세열 등이 교수였다, 그해 7월에는 제4회 졸업식이 거행되었다. 졸업생은 66명이었다. 평양 출신으로 제주도에서 피난하던 임인식은 가족은 제주도에 남아 있고 본인만 부산으로 와 공부하고 4회로 졸업했다. 전쟁 중 부산에서의 제4회 졸업식이 마지막 졸업식이 되었다. 장로교회는 조선신학교와 장로회신학교 문제로 갈등하였고, 두 신학교를 통합하여 총회신학교를 설립하기로 결의했기 때문이다. 비록 조선신학교는 이에 불응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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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규교수의 역사탐색
    2022-03-04
  • [성서연구] 해석보다 중요한 것
    요셉은 꿈을 잘 해석한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그의 꿈 해석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였습니다. 그는 꿈을 잘 해석함으로써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요셉이 처음으로 꿈을 해석한 것은 감옥에서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주인인 보디발 장군의 아내를 겁탈하려 했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얼마 후 바로 왕의 술 맡은 관원과 떡 맡은 관원이 감옥에 투옥되었고, 옥사장은 요셉으로 하여금 두 사람을 뒷바라지하게 했습니다. 어느 날 두 사람이 꿈을 꾸었고, 그 의미를 알지 못하여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아침에 이들의 근심을 알아차린 요셉이 질문했습니다. 창세기 40장 6~7절입니다. <6 아침에 요셉이 들어가 보니 그들에게 근심의 빛이 있는지라 7 요셉이 그 주인의 집에 자기와 함께 갇힌 바로의 신하들에게 묻되 어찌하여 오늘 당신들의 얼굴에 근심의 빛이 있나이까> 두 사람은 요셉에게 자신들의 고민을 이야기했고, 요셉은 두 사람의 꿈을 들은 후 해석해 주었습니다. 꿈의 결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술 맡은 관원의 꿈은 사흘 후 석방될 것이라는 고무적인 내용인 반면, 떡 맡은 관원의 꿈은 사흘 후 처형될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사흘 후 요셉이 해석한 대로 이루어져 술 맡은 관원은 복직했고, 떡 맡은 관원은 죽었습니다. 두 사람의 꿈은 그들에게 주어진 미래의 상황이라 하겠습니다. 누구에게나 미래가 있고, 그 미래는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어떤 이에게는 축복으로 여겨질 미래가 열릴 것이고, 어떤 이에게는 고통의 미래가 주어질 것입니다. 자, 이 상황을 암시하는 꿈을 꾸었다고 해 봅시다. 꿈을 꾼다고 달라지는 게 있습니까?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저 미래에 대해 약간의 암시를 받을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 꿈을 누가 해석해 주면 어떨까요? 물론 꿈의 의미를 알지 못해서 두 관원처럼 고민하는 것보다는 누군가에 의해 해석되는 것이 도움이 될 때도 있을 것입니다. 술 맡은 관원은 요셉으로부터 해석을 들은 후 사흘 동안을 기대감에 부풀어 지냈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흘 후 복직되었으니, 그는 인간적으로 볼 때 엄청난 행운아입니다. 그러나 꿈의 의미를 아는 것이 무슨 유익이 있을까요? 떡 맡은 관원은 요셉의 해석으로 인해 사흘 동안을 죽음 같은 고통 속에서 보냈을 것입니다. 해석이 없었다면 꿈의 의미를 몰라서 불안하기는 했지만, 그다지 절망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흘 후에 처형될 것을 알고 보내는 사흘은 그에게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안겨 주었을 것입니다. 그에게 요셉의 해석은 아무 도움도 되지 못했습니다. 그는 그 사흘 동안에 자신의 죽을 운명을 바꾸지 못했습니다. 깊은 고통 중에 몸부림치다가 속절없이 죽었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해석의 한계를 생각하곤 합니다. 해석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해석은 대책을 세울 수 있도록 도와줄 수는 있습니다. 이년 후 바로 왕이 꿈을 꾸었을 때, 요셉은 꿈을 해석하여 다가올 풍년과 흉년을 예고했고, 대책을 세워 애굽 사람들이 굶어죽지 않게 했으니, 이때는 해석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대책을 세울 수 없는 경우엔 해석은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해석보다 중요한 것은 인생의 진로를 바꾸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즉 죽을 자였는데 살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인생의 미래를 바꾸는 것은 우리 소관이 아닙니다. 죽을 사람을 살게 하는 것, 망할 사람을 부흥하게 하는 것은 사람의 노력에 달린 게 아니라, 절대적인 하나님의 차원의 은혜의 일입니다. 결국 꿈과 그 해석만으로는 희망이 없습니다. 근본적으로 우리 인생을 붙잡고 인도하시고 방향을 바꾸시는 인생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꿈이나 해석하고 앉아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 엎드려 인생을 바꾸고 인도해 주시도록 기도 해야 합니다. 우리 삶을 송두리째 하나님께 맡기고 부르짖어 기도하면서 나아가는 2022년이 되길 원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로 나아가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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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2-11
  • [서임중칼럼] 그래도 3월 9일 투표장으로 가야한다.
    지혜롭지 못한 곰 이야기가 있다. 남극에 사는 백곰이 어느 날 시베리아에 있는 호전적이고 당돌한 흑곰의 방문을 받았다. 저녁 식사 후에 시베리아 곰이 남극 백곰에게 말했다. “남극은 이 지구상에서 가장 추운 지방이 아닙니까? 이런 곳에서는 햇볕을 다 흡수하여 따뜻하게 해 주는 검정 털이면 더 좋은데 남극 곰님의 털은 이게 뭡니까. 하얀 백색이니 이 추운 지방에서 더욱 춥겠습니다.” 유식한 척, 거만하게 그리고 딱하다는 듯 흑곰이 말했다. 순진하게 생긴 남극 곰은 흰털을 갖고 있다는 것이 부끄럽다는 듯 두 눈을 껌벅거리며 작은 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태어날 때부터 이런 털을 갖고 태어났으니 어쩌겠습니까.” “남극 곰님도 참 딱하십니다. 검정색 물을 들이면 될 텐데,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남극 곰은 자기의 흰털을 검정색으로 염색을 했다. 그러고 나니 북극곰처럼 참 따뜻하고 좋았다. 그렇게 염색을 한 얼마 후 총소리가 나면서 사냥꾼이 남극 곰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남극 곰은 평소처럼 잽싸게 하얀 눈과 얼음 사이로 달아나 숨었다. 그러나 이미 자신의 몸은 검정색으로 온 몸이 염색 되어 있어 흰눈과 얼음 사이에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고 결국 남극 곰은 사냥꾼에게 잡히고 말았다. 이 이야기를 통해 여의도 1번지를 보는 듯해서 씁쓸하다. 나는 古稀 중반의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수많은 선거에 참여했다. 그때마다 후보들의 동일한 구호는 “내가 적임자이고 동시에 내가 당선이 되면 이렇게 하리라”며 공약을 내걸곤 했다. 한 해 두 해 지나면서 公約은 空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이번에는 속지 말고 투표를 잘 해야지 했으나 수포로 돌아갔다. 그래서 公約을 보지 말고 인성과 그가 살아온 세월을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 개인적인 선택 기준이 되었다. 그것은 백곰이 검은색으로 염색한 후 낭패를 당한 슬픈 이야기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2022년 3월 9일은 20대 대통령 선거일이다. 그리고 석 달이 못 지나는 6월 1일은 지방선거일이다. 이 나라는 온통 선거이슈가 1년 365일 어느 날도 그치지 않는다. 대선, 총선, 지방선거, 보궐선거... 그야말로 선거천국인지 선거지옥인지 모를 판이다. 참으로 미안한 표현이다. 그렇지만 정말 ‘깜도 안 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겠다고 20대 대선에서도 20여명이 넘게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그리고 여전히 후보들은 ‘나 아니면 이 나라는 희망이 없다’고 자아도취적 목청을 높이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그런 사람들 덕분에 이 나라가 태평성대를 맛 본 역사는 없기에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도 민망하다. 그래도 투표장으로 가지 않으면 그것이 역사의 물줄기를 엉뚱한 곳으로 돌리는 우를 범하기 때문에 우리는 대한민국의 내일을 생각하면서 투표장으로 가야 한다. 정당이나 후보의 정치적 修辭에 속아서도 안 된다. TV 오래 된 광고 문구 중 “순간의 선택이 십년을 좌우합니다.”라는 것이 있는데 그 글귀는 백번이라도 맞는 말이다. 대선을 앞두고 후보 진영의 선거유세를 들어보면 아직도 국민들을 우매한 것으로 인식하는 듯한 공약들이 남발되는 것을 볼 수 있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뻔히 알지만 이제는 그런 말장난에 이력이 나서 무감각해지는 것에 슬픔을 느낀다. 약속 파기와 거짓말을 물마시듯 하는 정치 지도자일수록 나를 믿어달라는 뻥치기 수법이 능수능란하다는 것도 이제 국민은 다 안다. 그러기에 진정한 일꾼을 선택하는 것은 유권자들인 국민에게 달려 있다. 대부분 정치인들의 듣기 민망한 언어구사 가운데 하나가 걸핏하면 ‘국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왜 그 말이 마음에 와 닿지를 않는가? ‘내가 말할 때의 국민’과 ‘네가 말할 때의 국민’이 다르게 느껴지는 언어구사는 하지 말아야 한다. 그야말로 대한민국 국민은 하나인 것이다. 그러기에 자유 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지역과 세대를 아우르며 미래 지향적인 대한민국을 책임질 정책, 곧 국방・경제・교육・사회・복지에 관하여 평소의 언행이 신뢰를 줄 수 있는 후보를 우리는 가려내어야 한다. 이런 때에 아직도 오늘의 유권자들의 의식이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국가 흥망성쇠가 걸린 이 나라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뽑는데 나라야 어찌되든 상관없이 지극히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사고에 치우쳐 소위 학연(學緣)・지연(地緣)・혈연(血緣)은 물론 금권(金權)에 자신의 고유한 권리를 넘겨 버린다면 그보다 더 서글픈 일이 없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민주주의의 신봉자 링컨은 “투표는 탄환보다 강하다”는 명언을 남겼다. 탄환을 영어로 벌리트(bullet)라 하고 투표용지를 벨러트(ballot)라 한다. 두 단어는 철자와 발음이 비슷하다. 그래서 이 단어가 갖는 의미가 더욱 크다. 그렇다. 우리가 선택하는 후보자들의 이름이 기록된 투표용지는 탄환보다 강하다. 그 탄환보다 강한 투표용지를 전혀 쓸모없는 납 조각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은 무서운 범죄행위나 다를 바 없다. 투표를 포기하는 것, 이도 저도 싫어 무효표 만드는 것, 인물 중심이 아니라 이기적인 욕심에 치우쳐 타락된 투표 행사를 하는 것이 바로 범죄다. 대선 후보들의 면면을 보면 소위 그 나물에 그 밥이란 말이 생각나지만 그래도 “투표는 탄환보다 강하다”는 링컨의 말을 생각하면서 대한민국 제 20대 대통령을 선택하기 위하여 우리는 3월 9일 반드시 투표장으로 갈 수 있어야 한다. 2022년 3월 9일은 대한민국의 미래가 결정되는 역사적인 날이라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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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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