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Home >  오피니언 >  칼럼
실시간 칼럼 기사
-
-
[성서연구]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요한복음 1장 13절)
-
-
<냉수 마시고도 이 쑤신다>는 말이 있습니다. 빈속을 냉수로 채웠는데도 남들 앞에서는 마치 고기라도 먹은 듯이 행동한다는 말입니다. 빈털터리 신세를 들키지 않으려는 심정이 측은하게 여겨집니다. 나쁘게 보면 위선으로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차라리 배가 고프니 먹을 것을 달라고 말하는 것이 솔직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자존심 때문이라면 어떨까요? 위선이라고 비난하기엔 좀 숙연해지지 않나요? 오래전에 이런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유럽의 어느 나라 식당에서 노부부가 음식을 주문했는데, 아내가 먹는 동안 남편은 바라보기만 하더랍니다. 같이 먹지 않는 이유는 곧 밝혀졌습니다. 잠시 후 아내가 식사를 마친 다음에 남편이 아내의 틀니를 끼우고 식사를 하더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 모습을 아내는 지켜보았겠지요. 가난해서 부부 모두가 틀니를 할 형편이 못되었던 모양입니다. 그래도 부부는 행복해 보였다니, 틀니를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오랜 세월의 사랑이 두 사람의 치아 구조까지 닮게 했다고 생각하며 마음이 짠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누가 부부의 틀니를 함께 사용하는 것을 지적하고 비난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부부의 자존심은 상처를 받게 될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지키고 싶은 마지막 선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너지면 살고 싶은 생각이 사라질 것입니다. 삶을 버티게 해 주는 마지막 존엄성, 그것이 자존심 아닐까요?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그런데 이유는 천차만별입니다. 가난 때문인 경우가 있는가 하면 부자인데도 비극에 빠지기도 합니다. 가난 때문에 삶을 포기할 생각을 하는 사람은 부자의 태도를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유는 다양합니다만, 공통점은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배후에는 버틸 수 있는 자존감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삶을 지탱하도록 해 주는 최소한의 자존심, 혹은 자존감이 필요합니다.
오늘 지구촌에서 사람답게 살기란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프가니스탄 사태를 보면서 대한민국의 현실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며. 사회적 갈등이 극에 달한 대한민국에 사는 것을 힘들어했었지요.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을 보면서 우리 형편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도 감사하지 못하고, 깊이 절망하고 좌절한 이들이 많은 것은 분명합니다. 더욱이 코로나로 인한 박탈감이 심합니다. 경제적 어려움과 심리적 위축이 극에 달해 있습니다. 목회자도 예외가 아닙니다. 지난 한 해 동안 교세가 많이 줄었습니다. 부흥이란 흥분된 목표를 가슴에 품고 목회자가 된 많은 이들이 위축되어 가는 교회 현실을 보면서 절망합니다.
이런 우리를 버티게 해 주는 마지막 자존감은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은 가장 근원적인 자존감의 이유를 말씀합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우리가 그런 사람입니다. 그런데 13절은 놀랍습니다.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혈통이나, 육정으로, 사람의 뜻과 사람의 방식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낳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근거는 우리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적어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으셨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로 삼으신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사탄이 우리를 죽일 수 없고, 세상이 우리를 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이 우리를 흔들 때, 우리가 마지막으로 외칠 것은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난 하나님의 자녀다>란 외침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마지막 자존심입니다. 질병, 가난, 실패, 상처들이 우리를 흔들어도 하나님으로부터 난 이상, 우리는 패배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낳으신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 최후의 자존감을 붙잡고 어지러운 세상을 이겨나가길 원합니다.
-
2021-09-03
-
-
[서임중 칼럼]父子之情의 牧會
-
-
‘이치(理致)’라는 말이 있다. 이 단어는 사물의 정당한 조리(條理)를 뜻한다. 동의어로는 ‘도리(道理)’ 또는 ‘법칙(法則)’이 있다. 인간관계에서 이치에 어긋나는 언행은 짐승과 다를 바가 없다고들 하는데, 이는 곧 도리와 법칙을 중시하기 때문에 이르는 말이다.
논어(論語) 제4편, 이인편(里仁篇) 제 13장에는 예의와 겸양으로 다스림의 이치를 ‘子曰 能以禮讓 爲國乎 何有 不能以禮讓 爲國 如禮何’라고 설명하고, 14장에서는 인정받을 수 있는 실력과 그에 맞는 행동이치를 ‘子曰 不患無位 患所以立 不患莫己知 求爲可知也’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15장에서는 관계이치를 설명하는데 하나를 가지고 세상 이치를 꿰뚫는 것을 교훈한다. 오늘날과 같이 관계이치가 파괴되어가는 이 시대에 참으로 주목할 만한 교훈 ‘子曰 參乎 吾道 一以貫之 曾子曰唯, 子出 門人 問曰 何謂也 曾子曰 夫子之道 忠恕而已矣’이다.
공자가 증자에게 자신의 道는 ‘一以貫之’라고 했다. 공자가 나간 후 문하생이 무슨 뜻이냐고 물으니 증자는 “선생님의 도는 忠恕일 뿐이다”고 대답을 했다. 더불어 살아가면서 관계이치를 공자는 이것이 자신의 道라고 일깨웠던 것이다. 공자의 도는 仁으로 일관한다. 공자의 仁의 기본 의미는 愛人, 즉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진정한 인간애는 충서(忠恕)로써, 忠은 中+心 즉 마음의 중심으로 마음다운 마음이고, 恕는 如+心 즉 같은 마음으로 진정한 용서는 마음이 하나 됨이다. 이것이 진정한 愛人이요 仁이라고 갈파했다.
내 평생의 삶에도 기본 철학과 목회의 기본 이치가 있다. 첫째가 만남이고 둘째는 나눔이며 셋째가 관계이다. 만남의 내용에는 善緣과 惡緣이 있다. 그러기에 좋은 만남은 하나님의 은총이 아닐 수 없다. 인생여정에 있어 예수님과의 만남보다 더 큰 은총이 어디 있겠는가. 나눔은 축복이다. 있어도 나눌 수 있는 마음이 없거나 나누고자 하는 마음은 있어도 나눌 수 있는 것이 없다면 그것을 어찌 축복이라 하겠는가. 그런데 나눌 수 있는 마음도 있고 요건까지 함께 갖추고 있다면 이 어찌 큰 축복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혈연, 지연, 학연의 관계로 얽혀 살아간다. 그러나 그 보다 귀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십자가 사랑을 공유하는 것이다. 이보다 지고한 관계는 없다. 이것이 나의 삶이고 목회 이치이다.
30여년의 목회를 마무리하고 은퇴를 하면서 포항중앙교회 원로목사로 추대를 받았다. 후임 목사님은 내가 많이 아끼고 사랑하는 후배로 기도 중에 택하였고, 성도들의 만장일치로 청빙청원을 받아 위임목사로 奉職하고 있다. 돌아보니 벌써 7년의 세월이 흐르고 있다. 원로목사로, 또 위임목사로 7년을 하루같이 서로 신뢰하고 사랑하며 父子之情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잠깐 어둠의 세력에 카오스 현상을 경험하는 시간도 있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聖域의 이치를 통해 비온 뒤 땅이 더욱 굳어지는 자연이치와 같이 교회는 더더욱 평행감축의 행진을 하고 있다.
얼마 전 담임목사님이 우리 집을 방문하셨다. 선임과 행정을 맡은 두 분 부목사님들과 장로님, 권사님들과 함께였다. 이유는 나도 잊고 지나쳐버린 원로목사 생일을 기억하여 찾아온 것이다. 꽃다발과 케익에 금일봉까지 우리 내외 품에 안겨주며 축하하고 축복기도를 해주셨다. 해마다 잊지 않고 챙겨주는 그 마음과 섬김 받는 내 마음이 忠과 恕로 어우러졌다. 그러지 말라고 해도 여전히 그렇게 챙겨주시는 관계는 父子之情의 관계다.
공자가 증자에게 吾道 一以貫之를 일깨웠을 때 부차적 설명을 따로 하지는 않았음에도 증자는 문하생들에게 夫子之道 忠恕而已矣라고 공자의 가르침을 헤아려 설명했는데, 이는 말없이도 많은 것을 일깨우고 말없이도 많은 것을 깨닫는 忠恕의 관계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원로목사인 나와 후배 담임목사는 마음 중심으로 진정 서로를 이해하고 관용하며 용서하고 사랑하는 복음의 삶을 연주하며 사역하고 있다. 이러한 우리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 관계의 이치인가 생각하며 감사한 중에 더욱 감사할 뿐이다.
은퇴를 하면서 후임 목사님에게 2가지 약속을 했다. 하나는, ‘원로목사’는 은퇴 후 헌법이 정한 바에 따라 사역 기간을 귀히 여겨 교회에서 예를 갖추어 우대하는 것일 뿐, 목회에서는 은퇴이기 때문에 담임목사님이 묻지 않는 한 절대로 목회와 연관하여 단 한마디도 간섭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누가 뭐라 해도 원로목사와 담임목사는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한 忠과 恕를 통한 진정한 愛의 관계로 살아가자는 것이었다. 여기의 忠은 마음다운 마음, 즉 거짓 없는 마음이며, 恕는 헤아리고 깨닫고 밝게 하는 이치로써 같은(如) 마음(心으)으로 지고한 관계이치를 뜻하는 것이며, 愛는 인간적 사랑이 아니라 보혈로 맺어지는 십자가 사랑을 뜻한다. 그리고 오늘에 이르도록 나는 이 이치를 벗어나지 않았다.
은퇴 후에도 하나님께서 나의 사역이 녹슬지 않고 닳아서 사용하지 못할 때까지 聖役으로 사용하시라고 축복하며 안수기도를 해 주셨던 故방지일 목사님의 기도에 대한 응답처럼 지금도 나는 매주 전국 방방곡곡으로 다니며 말씀 사역을 하고 있다. 그렇게 전국을 다니며 듣고 보고 느끼는 것이 있다. 원로목사와 담임목사의 관계이치가 忠恕(마음을 다한 하나됨의 관계)로 연주될 때는 교회가 평행감축을 노래하지만 그 관계가 怨誤(원망과 잘못된 관계)로 연주되면 교회는 카오스 현상을 벗어날 수 없고 벌판이 되는 것이다.
아무리 곱씹어보아도 나는 참으로 복에 복을 받은 사람이다. 시편 92:14~15절 ‘그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니, 여호와의 정직하심과 나의 바위 되심과 그에게는 불의가 없음이 선포되리로다.’의 축복 메시지인 말씀을 옷 입고 평행감축을 노래할 수 있음은 원로목사와 담임목사의 父子之情의 관계이치가 忠恕로 연주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고희의 삶을 사는 오늘도 주야로 기도하는 것은 오로지 아비의 마음으로 아들 같은 담임목사님의 목회가 平幸感祝이기를 축복하는 것이다.
-
2021-09-03
-
-
[은혜의 말씀]일어나 걸어라(요 5:1-9)
-
-
명절을 맞아 예루살렘으로 오신 예수님은 양문을 지나 가까이 있는 베데스다라는 연못으로 발걸음을 옮기십니다. 당시 베데스다 연못에는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었습니다. 그 못에는 한 번씩 밑바닥으로부터 물이 끓어오르는 현상이 있는데, 그것은 천사가 와서 물을 휘젓고 가는 것이라는 믿었습니다. 그래서 물이 끓어오를 때 제일 먼저 뛰어들면 무슨 병이든지 낫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못에는 전국에서 병자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베데스다는 긍휼, 자비의 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그 뜻과는 다르게 인간이 당면한 모든 문제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고통의 장소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자리에 오셨습니다. 그 수많은 병자들 틈에서 홀로 누워 하염없이 하늘만 바라보며 고개 숙인 38년 된 한 병자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의 능력의 말씀이 그에게 선포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8절) 우리 주님이 말씀하시자 성령의 능력이 그를 일으킨 것입니다. 이 병자는 벌떡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갔습니다. 38년 된 병자처럼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문제를 안고 신음하는 우리들, 또 오랫동안 짊어지고 있는 육체의 연약함들, 도저히 우리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고질적인 문제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38년 된 병자의 문제를 해결해주셨던 것처럼 나의 문제도 예수님 안에서 깨끗하게 치유 받는 역사가 일어나길 축복합니다.
그러면, 우리 주님이 주시는 은혜의 특징을 몇 가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주님이 주시는 은혜는 값없이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지금 이 38년 된 병자는 구원받을 만한 무슨 조건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편에서 그냥 아무 조건 없이 찾아오셔서 값없이 구원을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주님의 주권적인 택하심이요 사랑입니다. 은혜는 나는 아무 한 것이 없는데도 주님이 그저 값없이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은혜의 주님이십니다.
둘째, 주님이 주시는 은혜는 우리의 아픔을 다 아신다는 것입니다.
6절 보세요.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세상에는 38년 된 병자를 알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지만, 우리 주님은 그 아픔을 다 아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문제를 다 아십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것만 고백하면서 매달리면 됩니다. 주님 다 아시기 때문에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시고, 우리의 문제를 풀어 주십니다.
셋째, 주님이 주시는 은혜는 소망을 통해 역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38년 된 병자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지만, 꼭 한 가지 물으신 게 있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주님은 이 질문을 던지시면서 소망의 불꽃이 사그라진 그에게 작은 불씨를 심어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소망의 끈을 붙드는 것, 그것이 모든 치유의 첫걸음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베데스다를 바라보지 마세요. 온전하신 주님의 구원을 바라보시고, 능력의 주님 의지해서 기어코 일어서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
2021-09-03
-
-
[목회자 칼럼]도도한 신앙인
-
-
요즘 젊은 세대 언어로 “까도남”이라고 있다. ‘까칠한 도시 남자’를 줄여 이르는 말로, 성격이 까다롭고 쌀쌀맞은 분위기의 세련된 젊은 남자를 말한다.
사람들은 까칠한 사람을 싫어한다. 그런데 원만하고 성질 좋다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무능하게 보이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똑똑하면서도 따뜻한 카리스마가 있는 사람이 좋지만 그렇게 문무를 겸비한 사람이 드물다.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기보다는 뱀같이 간사하고 비둘기같이 멍청하기가 쉽다.
일을 할 때마다 까칠을 떨고 예민하게 굴면 자신의 마음도 불편해진다. 세월이 지나면서 까칠함은 디테일이었고 예민한 것은 철두철미한 것으로 해석을 하게 되었다.
온유의 뜻은 거칠게 날뛰는 야생마가 길들여져서 명마, 준마가 된 상태라고 한다.
사역 현장, 복잡한 인간관계에서 좋은 게 좋은 식으로, 대충대충, 얼렁뚱땅, 구렁이 담 넘어 가듯이,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하면 당장은 원만하지만 일은 되는 게 없다. 그래서 스케일과 디테일, 철저함과 따뜻함, 강함과 부드러움이 조화를 이루면서 까칠하고 도도한 사람이 더 신뢰가 된다.
신앙 세계에서 가장 나쁜 사람이 교만한 사람이다. 도도하고 까칠하고 시건방진 사람이다. 성경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라고 한다.
오늘은 도도한 크리스찬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윗물은 더러워도 네가 샘의 근원이 되면 된다.
일을 못하는 사람의 결정적인 차이는 원망, 핑계, 변명, 이유가 많다는 것이다.
일을 못하는 사람이 연장을 나무라는 법이다. 아담 이후로 사람들은 남을 탓하고, 희생양을 찾고, 변명 거리를 찾아서 이유를 갖다 붙였다.
아브라함은 아빠 찬스를 쓸 게 없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우상을 만들어 파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윗물은 더러워도 조상 탓을 하지 않았고 자신이 복의 근원이 되었다.
윗물은 더러워도 네가 깊은 산속 옹달샘이 되면 물 근원이 되어서 물길따라, 꽃길따라 실개천이 도랑이 되고 시내를 이루고 천을 이루고 강을 이루고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되는 것이다. 샘은 자정능력이 있다. 흙탕물도 흘려보내며 이파리도 떠내려 보내고 맑아진다. 흘러가면서 주변의 산천초목을 유익하게 한다.
아브라함 한 사람이 강의 뿌리가 되고 원천이 되고 근원이 되었다. 일꾼은 어떤 경우에서도 환경, 배경, 조건을 탓해서는 안된다. 부흥은 나로부터 시작된다.
갈 바를 알지 못하여도 주께서 지시하는 곳으로 가면 된다.
아브라함은 75세 영감님 때에 익숙한 곳, 정든 곳인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갈 바를 알지 못하여도 주께서 지시하신 약속의 땅으로 떠났다. 멋진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은 자기가 계획한 것보다도 뜻밖에 주께서 강권적으로 인도하신 것이 좋게 되었다. 아브라함에게는 나이에 상관없이 개척정신, 도전정신, 모험정신, 창의정신이 충만했다. 그것이 청춘이다. 사업은 상당한 위험부담을 안고 하는 모험이다. 위기가 기회이다. 부담이 안되는 것은 사명도 아니다. 막연한 미래가 두서도 없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주께서 이루실 기이한 축복으로 인한 설레임의 시간이 되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은 없어도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다.
사람들은 안전 위주의 일을 하려고 한다. 그러나 믿음은 눈에는 보이는 것이 없고 손에는 잡히는 것이 없어도 바라고 나아가면 실제 상황이 된다. 인생은 안전판을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한 미래를 도전하는 것이다. 믿음이 좋은 사람들은 뻥이 심하다. 당장 보기에는 헛소리하는 것 같지만 세월이 지나면 꿈꾼대로, 소원대로, 말한대로, 심은대로, 믿음대로 기적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꿈이라도 빵실하게 기도라도 거창하게 소원이라도 앗사라게 가져야 된다. 꿈은 이루어지고 말이 씨가 되기 때문이다.
아브라함과 조카 롯의 목자들이 다툴 때에 롯은 눈에 보기에 여호와의 동산 같은 소돔과 고모라를 선택하고 마침내 타락하고 망했다. 아브라함은 선택권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권이 중요했기에 좌우 선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께서 주시는 것이 최고이기에 조카에게 양보할 수 있었다. 조카 롯이 떠난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네 눈에 보이는 것을 다 주겠다 하고 종과 횡을 행하여 보라 네 발로 밟는 곳을 다 주겠다며 그야말로 사통팔달의 복을 주었다.
기도는 길어도 응답은 순간이다.
아브라함 집안은 기도 응답이 늦기로 유명하다. 아브라함은 75세에 약속을 받고 100세에 아들을 낳았다.
100세가 되도록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이전에 죽을 것이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환갑이라는 늦은 나이에 비로소 아들을 낳았다.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은 처가살이만 20년을 살며 칠년을 수일같이 보냈다.
하나님의 물레방아는 천천히 돌아간다. 그러나 모든 것을 가루로 만드는 것이다.
크리스찬은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믿고, 기다리고, 감사하는 사람들이다.
-
2021-09-03
-
-
[부산기독교이야기]전쟁기 구호단체들: 메노나이트중앙위원회
-
-
메노나이트교회(Mennonite)는 16세기 종교개혁기 메노 시몬스(Menno Simons, 1496-1561)에 의해 화란에서 시작된 재세례파 그룹의 교회인데, 화란 외에도 스위스 남부독일 등지에서 일어났고, 점차 은밀하게 여러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이들은 평화주의에 입각하여 전쟁과 군복무를 반대하여 국가와 로마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들로부터 탄압을 받았다. 이들은 신교의 자유를 찾아 프러시아, 남부 러시아인 우크라이나로 그리고 1780년대 이후에는 미국으로, 1870년대에는 캐나다로 이주하였다. 이들은 자기들의 신앙과 신념을 지키기 위해 어디든 자신들을 받아주는 곳이면 기꺼이 이주하였고, 주로 농업에 종사하며 집단적으로 생활하였다.
그러든 중 우크라이나의 메노나이트교도들이 기근으로 커다란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메노나이트교회와 그리스도 형제교회(Brethren in Christ), 아미쉬(Amish) 등 북미의 15개 교단 의 34명의 대표들이 1920년 9월 27일 미국 시카고에 모여 러시아 전역에 사는 굶주린 이들을 구호하기 위한 후원연합체를 조직했는데, 이것이 오늘 MCC라고 부르는 메노나이트중앙위원회(Mennonite Central Committee)였다. MCC의 3대 사역은 구제, 봉사, 평화사역인데, 본부는 미국의 경우 펜실베니아주의 애크론에, 캐나다는 매니토바 중 위니펙에 있다. 메노나이트교도들은 신명기 14:29절, “너의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는 말씀을 구호의 지침으로 받아드렸는데, MCC는 이 정신에 따라 1920년 조직 이후 세계도처의 핍절한 이들에게 구호사업을 전개하여 왔다. 1920년에서 25년 어간에는 우크라이나의 기근상태에 있는 이들을 후원했으나 그 후에는 파라과이, 프랑스, 폴란드 등 도처의 메노나이트 공동체에 도움을 베풀었고, 6.25 전쟁 중에는 한국에서 구호사업을 전개하게 된 것이다.
한반도에 전쟁이 발발하자 MCC는 한국을 지원하기 위해 준비했고 한국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한국입국을 신청하여 1950년 10월 MCC 요원 한 사람을 부산으로 보내 피난민 구호에 대한 기초 자료를 조사하게 했다. 이 조사에 근거하여 1952년 10월 27일 첫 MCC 요원이 내한했는데, 그가 달라스 보란(Dallas C. Voran, 1920-2002)이었다. 그는 부산으로 입국한 이후 1953년 3월까지 1년 6개월 간 한국에 체류하면서 피난민 구호와 봉사 사업에 관여하였다. 메노나이트계의 벧엘대학(1938-1943) 출신인 그는 1946년 MCC 선교사로 중국으로 파송되어 ‘세계교회 봉사회’(CWS) 소속으로 4년간 난민구호 활동을 전개한 바 있다. 그러든 중 한국에 전쟁이 발발하자 MCC 본부는 달라스 보란을 영입하고 그를 한국에 파송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1951년 9월 동경으로 와서 기다리던 중 입국 허락을 받고 10월 27일 입국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때까지 MCC가 한국에서의 활동인가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주한유엔민간원조사령부(UNCACK: The United Nations Civil Assistance Command in Korea) 휘하에서 일하게 된다.
이때부터 1971년까지 2년 간 MCC 요원 75명이 한국에서 일했다. 이들은 휴전 이후에도 계속하여 구호, 교육, 재건 사업을 전개한 것이다. 이들은 주로 대구(경산)와 부산지역에서 구제사업, 교육 사업, 가족-어린이 프로그램, 전쟁 과부들을 위한 재봉교육, 그리고 농촌개선 및 지원 사업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했는데 이 사역을 주도한 조직이 MCC였다. 참고로 부연하면 MCC는 1995년부터는 북한을 돕기 위한 사업을 시작하였고, 2018년 4월부터 2019년 3월까지 1년간 북한에 14만 4천 개의 고기 통조림을 지원하였는데 이는 전 세계에 지원한 고기통조림 67만899개의 20%를 차지했다. 메노나이트교회는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는, 그가 동족이던 타국인이든, 아군이든 적군이든 구별하지 않았고, 필요한 이들에게는 아낌없이 베풀었다. 이런 정신으로 6.25 전쟁기 한국에서 일한 것이다.
-
2021-09-03
-
-
[의학칼럼]불면증 극복하기(2)
-
-
3. 내가 불면증인지 자가 진단할 수 있는 방법도 있나요?
환자 본인 스스로 불면증이 있는지 자가진단을 위해서는 최근 약 2주간에 걸쳐서 정확한 실제 수면패턴을 파악해야 합니다.
이를 알기 위해서는 취침시간, 기상시간, 잠드는 데 걸리는 시간, 자다가 깬 횟수, 낮잠 유무와 시간을 수면일기의 형식으로 최소 2주간 작성해야 합니다.
작성한 수면일기를 통해 불면증의 네 가지 증상인 잠들기 어렵거나, 자주 깨거나, 새벽에 일찍 깨서 잠이 오지 않거나, 만성으로 아침에 일어나도 개운하지 않는다거나 하는 이중에서 어떤 항목이 본인에게 해당되는지 확인하면 됩니다.
다양한 수면설문지를 이용하는 것도 유용한 방법인데요. 환자의 실제 수면패턴을 파악하기위해 취침시간, 기상시간, 잠드는 데 걸리는 시간, 자다가 깬 횟수, 잠이 들었다가 깨서 자지 못한 시간을 매일 작성하는 수면일기를 최소한 일주일 이상 작성해 오도록 하면 환자의 수면패턴을 살펴보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객관적으로 수면 패턴을 확인하기 위해서 액티그래피(actigraphy)라는 센서를 손목에 착용을 한 채로 1-2주간 집에서 생활하면서 검사하게 됩니다.
4. 불면증이 계속되는 경우, 어떤 후유증이 있나요?
잠의 여러 가지 장점을 생각해볼 때 불면증은 우리 몸에 크나큰 후유증을 남깁니다. 불면증 환자들은 밤잠의 어려움뿐만 아니라 주간 기능의 장애, 피로, 주의력, 집중력, 기억력 저하를 유발해 다음날 직장 및 사회생활에서 업무 효율을 떨어뜨리게 됩니다.
또한 불면증은 성장부진과 근력저하를 유발시키며 정서 불안, 의욕상실 및 우울증 증세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심장질환이나 소화기계 증상도 더 높아 질수 있다는 통계결과가 있기도 합니다.
5. 불면증은 어떻게 치료하나요?
불면증 치료하는데 있어서 원인을 정확하게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차성 불면증인 경우에는 원인질환을 함께 치료해야 합니다. 불면증 치료 중 약물치료는 효과가 즉각적이고 빠르다는 장점이 있지만, 장기간 복용 시 내성으로 효과 감소 및 소실, 약물 의존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최근에 불면증의 원인에 심리 및 인지 요인이 관여한다는 점이 알려져 여러 가지 비 약물치료가 있으며 그 중 인지행동치료는 만성불면증의 표준 치료로 권장되는데, 불면증에 대한 잘못된 생각과 습관을 교정하는 것으로 4-8주의 치료 기간이 필요합니다.
6. 불면증을 극복하기 위해 도움이 되는 생활습관은 어떤 것이 있나요?
불면증을 치료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잘못된 수면습관을 고치는 것입니다. 낮잠을 될 수 있으면 피하고 정말로 졸릴 경우 10~15분 정도로 제한합니다. 잠자리에 들기 2시간 이내 30분 정도 더운물에 목욕해 체온을 올려주는 것도 수면에 도움이 됩니다. 수면을 방해하는 카페인 음료나 담배 등은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침실은 어둡고, 조용하고, 공기소통이 잘되고 편안한 실 내온도가 유지되도록 하고 침실에서 15분 이상 잠이 안 오면 일어나 단순작업을 반복 하는 다른 일을 하면서 잠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 도움이 됩니다.
-
2021-09-03
-
-
[소강석 칼럼]파파게노 효과를 일으켜야 할 때
-
-
우리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끝이 보이지 않는 광야를 걸으며 모두 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정부가 예배를 간섭하는 일은 사상 초유의 일이었습니다. 전염병 창궐이라는 특수적 상황만 아니라면 한국교회가 예배를 축소하고 온라인예배로 전환할 이유가 없습니다. 한국교회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합니다. 예배의 존엄성을 지키고 방역에도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한국교회가 주도적으로 자율 방역을 하면서 현장예배를 드리도록 하는 것입니다.
저는 작년에 코로나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한국교회가 선제적으로 자율방역 시스템을 구축하고 정부가 예배를 간섭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때 부총회장 때라 발언권이 약해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미 제가 총회장이 되고 한교총 대표회장이 되었을 때는 예배의 주도권을 정부에 빼앗기고 제재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한국교회가 방역 매뉴얼을 만들어 놓고 안전한 예배운동을 전개해 나갔어야 했는데 선제적 대응을 하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앞으로는 그 어떤 바이러스가 와도 한국교회가 자체적으로 철저한 방역 매뉴얼을 지키면서 안전한 예배를 드리는 길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종교개혁자 칼빈이 그랬지 않습니까? 중세 사제들은 흑사병이 창궐할 때 공간의 권위를 지키며 믿음의 힘으로 이겨보자고 했지만 오히려 성당이 감염의 온상이 되어 버리고 말았지 않습니까? 그때 칼빈은 제네바에서 쿼런틴(quarantine) 즉 격리 시스템을 시작하였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창의적 상상력인 하이 콘셉트와 감성적 공감 능력인 하이 터치의 새 길을 모색한 것입니다. 오히려 칼빈은 구빈원을 만들어 전염병 환자들을 돌보며 정부 관리들에게 손을 떼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감염에 노출이 많은 분들은 교회로 모이지 말고 성직자들이 조심스럽게 가서 심방을 하고 예배를 드려주도록 했습니다.
당시 제네바 시민들이 볼 때 전염병을 대처하는 칼빈의 모습이 중세 사제들과 너무 비교가 되니까 칼빈을 응원하고 박수를 쳐 준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역사를 보면 흑사병이 결코 예배를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가톨릭처럼 무조건 모이라고 해서 이기자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칼빈을 비롯한 종교개혁을 하였던 성직자들이 솔선수범하여 방역의 모범을 보이면서도 예배의 본질과 정체성을 지켰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개혁주의의 전통을 따라 방역을 철저히 하면서도 예배를 지켜가야 합니다.
정부가 예배를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는 것이 얼마나 자존심 상하고 기분 나쁜 일입니까. 그래서 앞으로는 한국교회가 자체 방역 매뉴얼을 잘 만들어서 자율 방어의 길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든지 코로나는 이겨낼 것이 아닙니까? 방역도 애쓰고 기도를 함으로써 코로나는 아웃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코로나가 종식되면 정말 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한국교회가 예배와 교회 운영에만 몰두했지 환경문제, 자연문제 등에 관심을 안 가졌습니다. 교회마저도 관심을 안 갖다보니까 자연이 분노해서 코로나 바이러스들이 왕관을 쓰고 우리에게 쳐들어 온 것이죠.
코로나를 종식시키고 난 다음에는 한국교회가 앞장서서 환경문제, 자연 생태계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우리만의 이너워십이나 카르텔을 벗어나서 행복 바이러스, 파파게노 효과를 이웃에게 퍼뜨려야 합니다. 파파게노 효과는 모차르트가 작곡한 오페라 <마술피리>에 나오는 '파파게노'라는 인물에게서 유래된 말입니다. 주인공 파파게노는 연인인 파파게나가 죽자 같이 자살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요정들이 나타나 파파게노에게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 주자 파파게노는 자살을 하지 않고 다시 힘을 내어 남은 삶을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흔히 파파게노 효과는 베르테르 효과와 대비되어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유명한 연예인들이나 정치인들이 자살을 하면 동조 자살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베르테르 효과와 대비되어 파파게노 효과는 절망과 실의에 빠진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어 행복한 삶으로 인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코로나라는 전염병 때문에 얼마나 힘들어하고 실의에 빠져 있습니까? 이러한 때, 한국교회가 행복 바이러스, 파파게노 효과를 일으켜야 합니다. 이것이 앞으로 한국교회가 가야할 길이 아닐까요.
-
2021-08-13
-
-
[성서연구]자유, 그 다음(갈라디아 5장 1-6절)
-
-
광복 76주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일본 군국주의의 지배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시편 126편 1-2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라고 했는데, 광복은 우리에게는 꿈꾸는 것 같은 일이었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큰일이었습니다.
광복에서 빼놓을 수 없는 화두는 자유입니다. 광복으로 우리는 자유를 얻었습니다. 신사참배와 강제징용에서 자유를 얻었습니다. 자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다양한 억압에서 벗어나는 자유>입니다. 일반적으로 벗어나는 자유만을 생각합니다.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은 1941년 1월 6일, 의회 연설에서 인간의 기본적인 네 가지 자유를 언급했습니다. 첫째는 언론과 표현의 자유, 둘째는 신앙의 자유, 셋째는 건강하고 평화로운 삶을 위한 결핍으로부터의 자유. 마지막은 공포로부터의 자유였습니다. 이것은 <벗어나는 자유>의 대표적 예라고 하겠습니다.
또 하나의 자유는 <자유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이것은 자유를 자유보다 더 높은 가치를 위해 스스로 포기하는 자유입니다. 더 고귀한 것을 위해 자유를 포기하지만, 이것은 자원하는 마음으로 이루어지기에 거기 기쁨이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우상의 제물을 먹어야 하는 상황에서 성도들의 신앙을 위해서라면 평생이라도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했는데, 이것이야말로 고기를 먹을 수 있는 자유를 성도들을 위하여 스스로 포기한 것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삶과 사회를 위해서는 이상의 두 가지 자유가 모두 필요합니다. 벗어나는 자유만 추구하면 점점 욕망에 빠지게 됩니다. 처음에는 세끼 밥도 부족한 결핍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세끼를 먹게 되면 다음에는 간식을 원하게 되고, 나중에는 식도락을 추구하게 되는데, 이것은 배를 채우고 건강을 위하여 먹는 게 아니라, 먹기 위하여 먹는 타락입니다. 그때 굶주리는 사람 옆에서 더 맛있는 것을 먹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죄악입니다. 그러므로 이때는 더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지만 굶주리는 사람을 위하여 소박한 음식으로 바꿀 수 있는 자유, 자신의 세 끼 음식이라도 줄여 세 끼 모두를 굶는 이에게 나눠주는 자유가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유롭게 먹을 수 있는 자유를 포기해야 합니다. 이웃을 위하여 스스로 배고픔의 노예가 됩니다. 이때 그의 마음에는 주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기쁨이 있습니다. 바울은 이런 기쁨을 아는 분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이것은 죄와 죽음과 마귀의 억압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다음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절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하셨는데, 이는 자유를 얻은 사람이 다시 종의 멍에를 메게 될 위험이 있음을 전제합니다. 주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아 자유를 누리게 된 사람이 다시 예전처럼 할례나 율법에 매이게 되면 그것은 또 다시 종의 멍에를 메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광복을 맞이했습니다.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우리는 두 번째 자유를 알지 못했습니다. 모두 더 많은 것을 얻으려는 욕망으로 이기적 자유를 주장했습니다. 다른 이들을 위해, 국가의 미래를 위해 자신의 자유를 포기하는 자유를 알지 못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 모두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얻어 누리는 자유만 주장할 때, 서로 충돌하게 되었고, 사회는 갈등으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진정한 광복을 위하여 자신의 자유를 포기하는 자유를 배워야 합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기쁨으로 포기해야 합니다. 국민은 더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미래와 통일된 미래를 위해 각자의 자유와 권리를 포기해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비로소 성숙한 자유인이 될 수 있습니다. 자유를 누릴 줄 아는 성숙이 없다면, 진정한 자유인이라 할 수 없습니다. 참 자유를 누리길 소원합니다.
-
2021-08-13
-
-
[시사칼럼]나는 쉬고 싶다, 그래 우리는 쉬어야 한다
-
-
최근 대권주자 한 사람의 ‘120시간’ 발언으로 논쟁 아닌 논쟁이 격화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말은 일종의 비진의표시(非眞意表示)에 해당한다고 봅니다(민법 107조). 요즘 세상에 어떻게 그런 노동이 가능하겠습니까? 당사자의 의도도 그렇진 않았을 것이고, 듣는 이 대부분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진 않았을 터, “스타트업 청년들을 만났더니, 주52시간제 시행에 예외조항을 둬서 근로자가 조건을 합의하거나 선택할 수 있게 해달라고 토로하더라. 게임 하나 개발하려면 한 주에 52시간이 아니라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왜 사람들은 앞부분만 집중하고 그 뒷말 즉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는 크게 주목하지 않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산업혁명과 근대화를 거치는 동안 일하는 자체를 중시하던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 접어들면서부터 점차 쉼과 안식을 노동 못지않게 중시하기 시작합니다. 1948년 제정된 세계인권선언은 이미 이와 관련된 규정을 두었습니다. “모든 사람은 노동 시간의 합리적인 제한과 장기적인 유급휴가를 포함하여, 휴식할 권리와 여가를 즐길 권리가 있다”(24조). 우리 헌법은 아직은 이러한 “휴식권”과 “여가권”을 명시적으로 규정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최근 근로기준법이 동일한 방향성을 가지고 개정되었습니다. 먼저 ‘선택적 보상휴가’ 제도를 두어서 사용자와 근로자가 연장, 야간, 휴일 근무에 대해 보상 대신 휴가를 택할 수 있도록 했고(동법 55조의 2), 또한 ‘휴가 촉진’ 규정을 만들어서 근로자 역시 적극적으로 이러한 휴가를 사용하도록 하는 제도를 마련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59조의 2).
그간 우리는 정신없이 달려오기만 했습니다. 성장과 발전이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잠시 멈추고 쉴 때도 있어야 하는 법입니다. 창조주께서 인간에게 안식을 명하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기만 할 때, 때로는 신적인 강제 조치가 뒤따르기도 합니다. 바벨론유수 사건이 그러했고, 지금의 감염병 사태도 ‘하나님의 강제적 안식 조치’라는 측면에서 본질은 같지 않나 생각합니다. 얼마 전 작고한 여성신학자 마르바 던(Marva Dawn, 1948.8.20-2021.4.18)이 일평생 강조했던 바가 바로 이 ‘멈춤과 안식’이지 않았습니까? 누구나 쉼 없이 하던 일을 멈추는 순간이 필요하며, 잠시라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안식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안식』(2001)은 이와 같은 과정을 네 단계 곧 ‘그침(ceasing)’, ‘쉼(resting)’, ‘받아들임(embracing)’, ‘향연(feasting)’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우리 사회를 상징하는 중요한 말들 중 하나가 바로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인데, 요즘은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한 ‘스라밸(study and life balance)’까지 등장했다고 하니 가끔은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직 교회는 이러한 현대적이고 본질적인 흐름에서 저만큼 빗겨나 있는 듯해서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주40시간근무제나 주5일제는 누구도 토를 달 수 없는 대세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서두에 언급했다시피 이는 이미 70여 년 전 인류가 선포한 본질적 인권의 시대적 구현으로 보아야 합니다. 하지만 교회의 현장에서는 여전히 알게 모르게 이른바 ‘열정페이’가 난무합니다. 대부분 교회의 사역자들에게 일 년에 한 차례 여름휴가를 제외하고 연월차나 생리휴가 혹은 육아휴직은 언감생심 꺼내기조차 어려운 말들 아닙니까?
우리가 쉬어야 하는 이유는 멈춤 자체를 목적으로 해서도 아니고 인권적인 배려를 위해서만도 아니라, 이것이 영적인 측면에서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뿌리를 깊이 내리라 하셨고(막 4:17)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눅 5:4) 하시지 않았습니까? 여기서 ‘깊음’은 시-공간적인 개념입니다. 인간은 노동하는 기계가 아닙니다. 때로는 일을 그치고 쉼을 통해 내면을 들여다보고 피안을 생각하는 시공간의 체험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입니다. 하물며 영적 사역을 감당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러한 체험이 더욱 밀도 있고 빈도 있게 이루어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본격적인 휴가철을 맞았습니다. ‘나는 쉬고 싶다’는 애달픈 외침이 줄어들기를 바랍니다. 동시에 ‘나는 쉬어야 한다’는 선언이 더 많아지기를 바라며, 나아가 ‘우리는 쉬어야 한다’는 엄숙한 선언이 교회를 비롯한 삶의 모든 분야에서 터져 나오기를 고대합니다.
-
2021-08-13
-
-
[부산기독교이야기]전쟁기 구호단체들: 기독교세계봉사회
-
-
한국에서 전쟁이 발발하자 열러 외원 단체들이 한국 특히 부산에서 구호활동에 참여하게 되는데, 약 50여개의 민간단체 중에서 기독교 관련 단체는 40여개에 달했다. 말하자면 한국에서 구호활동을 펼친 외국의 구호 기관의 80% 이상이 기독교 관련 단체였음을 알 수 있다. 교파별로도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를 비롯하여 메노나이트, 퀘이커 등 다양했다. 국가별로는 미국과 캐나다 독일 호주 영국 아일랜드 스위스 벨기에 이탈리아 등이었다. 국가별로 볼 때 미국이 가장 많았다. 이중 가장 큰 규모의 외원조직이 세계기독교봉사회인데(Church World Service)인데 흔히 CWS로 불렸다. CWS는 미국교회협의회(미국 NCC) 산하단체로 미국 NCC와 WCC의 지원과 협력을 받으며 구호활동을 전개했다.
CWS는 1946년 조직되었는데, 1950년 미국 NCC가 결성되자 NCC의 협력단체가 되었고, 감리교 선교사 빌링스(Bliss W. Billings, 1881-1969)의 책임 하에서 한국에서 구호 활동을 시작했다. 그 후에는 북장로교 선교사 플레처(Archibald G Fletcher, 1881-?)가 책임자가 되었다. CWS가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중국에서와 마찬가지로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박해 받는 그리스도인들을 보호하고 후원해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이었다. CWS는 1947년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박해를 피해 월남한 인구를 200만 명 이상으로 추산하고 이들을 구호하기 시작했다. 이들 대부분은 기독교 신자들이라고 보았고, 이들을 위해 식품과 의류품을 지원했다. 즉 6.25 이전까지는 월남한 이들을 구호대상으로 했다.
그러다가 전쟁이 발발하자 하고, 전재 난민을 구호하기 시작하는데, 이를 구체적으로 그리고 조직적으로 실해하기 위해 한국교회 대표들을 초청하여 한국위원회를 조직하게 된다. 1951년1월 25일 부산 대청동의 부산중앙교회당에서 각교파 대표자들이 모여 감리교 선교사 찰스 사우어(Charles A. Sauer, 1891-1971)의 사회로 기독교세계봉사회 한국위원회(KCWS: The Korea Church World Service)를 구성하게 된다. 조직을 갖춘 후 한국위원회는 북장로교선교부 대표인 안두화(Edward Adams) 선교사를 미국 본부에 파송하여 한국의 난민 상황를 보고하고 구호물자 지원을 요청하도록 했다. 또 다른 많은 선교사들은 한국을 떠나거나 일본으로 피신했는데 한국에 남아 있던 안두화 선교사는 부산 창고에 남아 있던 구호물자 사용 승인을 얻고 이를 난민에게 보급하였다.
그 동안은 안두화 선교사가 책임자(president)로 일했으나 1951년 2월에는 초대 선교사 아펜젤러의 아들인 1948년 재입국한 헨리 아펜젤러(Henry Appenzeller, 1958-1953)가 CWS의 사무총장으로 활동했다. 이때 아동복지 담당자가 캐나다인 앤 데이비슨이었고, 산파훈련담당자가 미국인 에디스 골트(Edith J. Galt)였다. 고미옥으로 불린 그는 미국 회중교회(Congregational Church of America) 선교사 딸로 중국에서 출생하여 그곳에서 성장했는데, 미국으로 돌아가 간호사가 되어 중국 꿍밍으로 돌아 가 일하다가 다시 한국으로 오게 된 선교사였다.
이런 조직을 갖춘 CWS는 의료, 농업기술, 전재민을 위한 간호, 과부와 고아 후원 등 여러 분야에서 후원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다가 1952년부터는 외국민간원조단체연합회(KAVA: The Korean Association of Voluntary Agencies)의 관할 하에서 활동했다. 연합회를 조직할 당시 처음에는 7개 단체에 불과했으나 후에는 49개 단체로 증가되었다. 또 1953녀부터는 주한유엔민간원조사령부(UNCACK: The United Nations Civil Assistance Command in Korea)의 통제 하에서 활동하였다. 이렇듯 CWA 전쟁 전 후 한국에서 피난민과 전재민을 위해 봉사했던 대표적인 구호단체였다.
-
2021-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