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Home >  오피니언 >  칼럼
실시간 칼럼 기사
-
-
[역사바로알기]고신대학교 복음병원 설립자, 장기려인가 전영창인가?
-
-
문제 제기
고신대학교 복음병원은 6월 21일 복음병원 설립 70주년 기념행사를 가졌다고 한다. 70년의 역사! 축하할 일이다. 그러나 6월 21일은 복음병원 설립일이 아니다. 설립일이 아닌데도 어떻게 이 날을 설립일로 계속 지키고 있을까? 이미 이와 관련된 글을 몇몇 언론에 기고했으나 일부 미비한 부분들을 수정하고, 추가로 확인된 새로운 자료들을 수정보완하여 다시 기고한다.
아시다시피 고신대학교 복음병원은 고신대학, 고려신학대원과 함께 고신교단의 중추기관이다. 이 ‘복음병원’(1961. 8. 7)의 전신은 ‘복음의원’(1951.12.23)이었고 그 복음의원의 전신은 ‘복음진료소’(1951. 1. 15)였다. 그렇다면 ‘복음진료소’는 누가 언제 설립했을까?
당연히 전영창 선생이 1951. 1.15일 차봉덕 의사를 초빙, 제 3영도교회 별관(창고)에서 설립했다. 미국서 모금해 준 5,000불(seed money)로 대한기독교 '경남구제회'(복지구호단체)와 '복음진료소'(의료기관)를 동시에 설립 개원했다.
그러나 연혁이나 각종 기록에는 전영창 대신 장기려 박사를 설립자로, 초대원장으로 기록하고 있고 대부분 사람들도 장기려 박사를 복음병원 설립자로 알고 있다. 그러나 장기려 본인은 복음병원은 자신이 설립하지 않았으며 설립자는 전영창 선생이라고 몇 번이나 밝혔었다. 그런데도 고신이나 복음병원은 이 사실을 애써 모른 체 하고 있다. 장기려 박사가 설립자가 되고 초대원장이 되면 정체성이나 병원 선전에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잘못된 역사를 그냥 덮고 지나갈 수는 없지 않은가? 어쩌다 복음병원의 역사가 이같이 왜곡되었을까? 어쩌다 설립자 전영창과 초대원장 차봉덕이 복음병원 역사에서 지워졌을까?
연구 동기
필자는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 생활의 순결을 모토로 하는 고신교단의 목사인 것을 늘 자랑으로 생각해 왔다. 그런데 신학은 좋은데 생활은 왜 부족한가라는 문제의식을 늘 가지고 목회현장에 있다가, 복지목회로 전환하여 섬기던 중 교단 내 사회복지 활성화를 위해 손종기, 김세중 목사와 함께 ‘고신전국사회복지협의회’(2012. 4.30)를 조직,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출범하였다.
고신전국사회복지협의회는 기존 교단총회 상설기구인 사회복지위원회 소속 전문위원들로 활동하면서 몇 차례 모임을 가지다가 교단 내 사회복지시설장 및 직원들, 담임목사들에 대한 기독교사회복지 전반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제1회 고신기독교사회복지세미나'(2014. 4.28~29, 경주 코오롱호텔)를 개최했다.
이때 필자는 2년 동안 고신총회 사회복지위원회 전문위원장으로서 교단 내 사회복지 역사 및 현황에 대한 연구조사를 한 후 ‘고신교단의 사회복지역사 소고’라는 제목으로 발표하였다. 이때 조사연구한 결과 평소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고신은 결코 사회복지사역에 무관심했거나 소홀했던 교단이 아니었음을 확인했다. 초창기는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 생활이 잘 조화된 교단이었다. ‘손양원 목사의 애양원’, ‘이약신 목사의 희망의집’, ‘조수옥 전도사의 인애원’, ‘전영창 선생의 복음진료소’(복음병원)...............그런데 여기에서 뭔가 이상했고, 막혔다.
이미 수많은 기록들에서 '전영창'이 지워지고 ‘장기려 박사의 복음병원’으로 바뀌어 있었다. 복음병원 연혁에서부터 각종 저서들, 기록들에서 복음병원은 장기려 박사가 설립했고 초대원장이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왜 그랬을까? 왜 전영창 선생은 복음병원을 설립하고 고신을 떠나야만 했을까? 본 고는 바로 이 불편한 진실을 확인하기 위해 오랜기 간 조사연구 한 결과물이다.(계속)
-
2021-09-03
-
-
[시사칼럼]진보적 보수와 보수적 진보 그리고 개혁보수신앙
-
-
‘기본소득’을 아시나요? 최근 정치권에서 여야 혹은 보수나 진보 할 것 없이 공통적으로 다루고 있는 뜨거운 개념입니다. 조짐은 사실 2012년 대선 당시 벌써 싹텄습니다. 한국 최초의 부분적 기본소득이라 할 수 있는 ‘노인기초연금’ 카드를 당시 진보 성향의 야당이 포퓰리즘 논쟁을 의식하여 만지작거리는 사이에 보수 정당을 자처하던 집권 여당에서 전격적으로 수용하면서 파문이 일었습니다. 사회 복지 영역에서 벌어지는 이와 같은 정치적 수렴(收斂)은 이미 20세기 중반 영국에서 일어났던 현상입니다. 1950년 노동당 정부의 게이츠켈 재무장관은 한국전쟁을 지원하기 위한 재원 마련을 위해 무상을 원칙으로 하던 복지서비스 일부를 유상으로 전환하는 등 정책 변환을 주도하면서 격렬한 반대에 부딪쳤고 결국 이듬해 총선에서 참패하는데, 이어서 들어선 보수당 정부의 재무장관 버틀러는 놀랍게도 노동당의 개혁 기조를 그대로 받아 발전시키는 정책을 취했습니다. 당시 언론은 둘의 이름을 합쳐서 ‘미스터 버츠켈’이라 불렀고 여기서 유래한 말이 ‘버츠켈리즘(Butskellism)’인데, 대처리즘이 등장하기까지 수십 년 동안 보수-진보의 타협과 합의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보수와 진보는 양립불가능한 관계가 아닙니다. 일찍이 ‘보수당의 아버지’라 불리는 벤저민 디즈데일리(1804-1881)는 노동계급의 선거권 확대 등 일련의 사회개혁정책들을 주도했기에 ‘진보적 보수주의자(progressive conservative)’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보수주의자를 자칭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정작 무엇을 의미하냐고 물어본다면 적절한 대답을 할 수 있을까요? 러셀 커크는 보수주의 사상의 핵심 기둥으로 첫째, 초월적 질서 또는 자연법 체계가 사회와 인간의 양심을 지배한다는 믿음, 둘째, 다양성의 확산과 인간 존재의 신비에 느끼는 애정, 셋째, 문명화된 사회는 계급 없는 사회가 아니라 질서와 위계를 요구한다는 확신, 넷째, 자유와 재산은 밀접하게 연결된다는 신념, 다섯째, 관습과 오래된 규범 및 일반화된 지혜를 향한 신뢰, 여섯째, 급진적인 개혁이 아니라 신중한 변화야말로 사회를 보존하는 수단이라고 여기는 정서, 이렇게 여섯을 들었습니다(『보수의 정신』, 65-66). 하지만 전술한 사례들은 이러한 보수주의 터전 위에서도 얼마든지 진보적인 사고 내지 정책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입증합니다.
민주주의 역사가 오래된 영국에서는 ‘보수적 진보주의자(conservative progressive)’가 나타난 적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토니 블레어 전 총리입니다. 노동당 출신인 그는 전임자였던 보수당 정권 마거릿 대처의 노선을 결코 무시하지 않고 수용하면서 ‘제3의 길’을 모색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블레처리즘(Blacherism)’이라 비아냥거리기도 했습니다만, 거기에는 고질적인 영국병을 치료하고 안정 속에 성장이라는 중용과 포용의 가치를 추구한다는 선한 의미도 내포되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떨까요? 진보주의를 표방하는 경우 사전적이고 역사적인 의미의 진보를 여전히 주창하는 이들은 얼마나 되겠습니까? 진보를 부르짖고는 있지만 사실은 보수적 진보주의의 길을 자신도 모르는 채 걷고 있는 지도 모르고, 좌파라 비판 받는 많은 경우도 역시 기실은 좌파도 우파도 아닌 삼파(三波)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최근의 재난지원금, 출산지원대책, 공공의료에 관한 논의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적용 대상이나 지급 금액에 관해서만 의견이 갈릴 뿐, 그 자체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보수와 진보를 가릴 실익이 거의 없지 않습니까?
신학(神學)에 입문하면 여러 가지 생경한 개념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보수개혁신앙’이라는 말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어떻게 신앙이 보수이면서 동시에 개혁일 수가 있을까요? 보수적 개혁이거나 혹은 개혁적 보수가 아니라 보수와 개혁이 동등가치로 존재할 수가 있습니까? 사람이나 과학이 아니라 신이나 신학의 영역이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은 자신을 세계 속에 드러내지 않으며, 따라서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Abhandlung, 6, 7). 오늘날 특히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괴델 역시 “증명할 수 없지만 참인 명제가 존재하며, 따라서 진리는 명제를 초월한다”고 선언한 바 있습니다(incompleteness theorem, 1). 그리스도야말로 말(증명)할 수 없는 존재이며, 명제를 넘어선 진리입니다. 그러한 그리스도 안에서 보수니 진보니 하는 구별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세상도 진보적 보수니 보수적 진보니 하는 판국에, 교회 안에서 보수니 진보니 편을 가르거나 교회가 세상과 등을 지고 진지한 대화가 아니라 무모한 독백만 일삼고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교회나 세상이나 무슨 주의(主義)가 아니라 오직 주(主)만 드러나고 높아지기를, 폭풍 같은 현실을 잠잠하게 하실 오직 주님만 바라봅니다.
-
2021-09-03
-
-
[성서연구]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요한복음 1장 13절)
-
-
<냉수 마시고도 이 쑤신다>는 말이 있습니다. 빈속을 냉수로 채웠는데도 남들 앞에서는 마치 고기라도 먹은 듯이 행동한다는 말입니다. 빈털터리 신세를 들키지 않으려는 심정이 측은하게 여겨집니다. 나쁘게 보면 위선으로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차라리 배가 고프니 먹을 것을 달라고 말하는 것이 솔직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자존심 때문이라면 어떨까요? 위선이라고 비난하기엔 좀 숙연해지지 않나요? 오래전에 이런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유럽의 어느 나라 식당에서 노부부가 음식을 주문했는데, 아내가 먹는 동안 남편은 바라보기만 하더랍니다. 같이 먹지 않는 이유는 곧 밝혀졌습니다. 잠시 후 아내가 식사를 마친 다음에 남편이 아내의 틀니를 끼우고 식사를 하더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 모습을 아내는 지켜보았겠지요. 가난해서 부부 모두가 틀니를 할 형편이 못되었던 모양입니다. 그래도 부부는 행복해 보였다니, 틀니를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오랜 세월의 사랑이 두 사람의 치아 구조까지 닮게 했다고 생각하며 마음이 짠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누가 부부의 틀니를 함께 사용하는 것을 지적하고 비난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부부의 자존심은 상처를 받게 될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지키고 싶은 마지막 선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너지면 살고 싶은 생각이 사라질 것입니다. 삶을 버티게 해 주는 마지막 존엄성, 그것이 자존심 아닐까요?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그런데 이유는 천차만별입니다. 가난 때문인 경우가 있는가 하면 부자인데도 비극에 빠지기도 합니다. 가난 때문에 삶을 포기할 생각을 하는 사람은 부자의 태도를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유는 다양합니다만, 공통점은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배후에는 버틸 수 있는 자존감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삶을 지탱하도록 해 주는 최소한의 자존심, 혹은 자존감이 필요합니다.
오늘 지구촌에서 사람답게 살기란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프가니스탄 사태를 보면서 대한민국의 현실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며. 사회적 갈등이 극에 달한 대한민국에 사는 것을 힘들어했었지요.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을 보면서 우리 형편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도 감사하지 못하고, 깊이 절망하고 좌절한 이들이 많은 것은 분명합니다. 더욱이 코로나로 인한 박탈감이 심합니다. 경제적 어려움과 심리적 위축이 극에 달해 있습니다. 목회자도 예외가 아닙니다. 지난 한 해 동안 교세가 많이 줄었습니다. 부흥이란 흥분된 목표를 가슴에 품고 목회자가 된 많은 이들이 위축되어 가는 교회 현실을 보면서 절망합니다.
이런 우리를 버티게 해 주는 마지막 자존감은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은 가장 근원적인 자존감의 이유를 말씀합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우리가 그런 사람입니다. 그런데 13절은 놀랍습니다.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혈통이나, 육정으로, 사람의 뜻과 사람의 방식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낳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근거는 우리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적어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으셨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로 삼으신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사탄이 우리를 죽일 수 없고, 세상이 우리를 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이 우리를 흔들 때, 우리가 마지막으로 외칠 것은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난 하나님의 자녀다>란 외침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마지막 자존심입니다. 질병, 가난, 실패, 상처들이 우리를 흔들어도 하나님으로부터 난 이상, 우리는 패배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낳으신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 최후의 자존감을 붙잡고 어지러운 세상을 이겨나가길 원합니다.
-
2021-09-03
-
-
[서임중 칼럼]父子之情의 牧會
-
-
‘이치(理致)’라는 말이 있다. 이 단어는 사물의 정당한 조리(條理)를 뜻한다. 동의어로는 ‘도리(道理)’ 또는 ‘법칙(法則)’이 있다. 인간관계에서 이치에 어긋나는 언행은 짐승과 다를 바가 없다고들 하는데, 이는 곧 도리와 법칙을 중시하기 때문에 이르는 말이다.
논어(論語) 제4편, 이인편(里仁篇) 제 13장에는 예의와 겸양으로 다스림의 이치를 ‘子曰 能以禮讓 爲國乎 何有 不能以禮讓 爲國 如禮何’라고 설명하고, 14장에서는 인정받을 수 있는 실력과 그에 맞는 행동이치를 ‘子曰 不患無位 患所以立 不患莫己知 求爲可知也’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15장에서는 관계이치를 설명하는데 하나를 가지고 세상 이치를 꿰뚫는 것을 교훈한다. 오늘날과 같이 관계이치가 파괴되어가는 이 시대에 참으로 주목할 만한 교훈 ‘子曰 參乎 吾道 一以貫之 曾子曰唯, 子出 門人 問曰 何謂也 曾子曰 夫子之道 忠恕而已矣’이다.
공자가 증자에게 자신의 道는 ‘一以貫之’라고 했다. 공자가 나간 후 문하생이 무슨 뜻이냐고 물으니 증자는 “선생님의 도는 忠恕일 뿐이다”고 대답을 했다. 더불어 살아가면서 관계이치를 공자는 이것이 자신의 道라고 일깨웠던 것이다. 공자의 도는 仁으로 일관한다. 공자의 仁의 기본 의미는 愛人, 즉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진정한 인간애는 충서(忠恕)로써, 忠은 中+心 즉 마음의 중심으로 마음다운 마음이고, 恕는 如+心 즉 같은 마음으로 진정한 용서는 마음이 하나 됨이다. 이것이 진정한 愛人이요 仁이라고 갈파했다.
내 평생의 삶에도 기본 철학과 목회의 기본 이치가 있다. 첫째가 만남이고 둘째는 나눔이며 셋째가 관계이다. 만남의 내용에는 善緣과 惡緣이 있다. 그러기에 좋은 만남은 하나님의 은총이 아닐 수 없다. 인생여정에 있어 예수님과의 만남보다 더 큰 은총이 어디 있겠는가. 나눔은 축복이다. 있어도 나눌 수 있는 마음이 없거나 나누고자 하는 마음은 있어도 나눌 수 있는 것이 없다면 그것을 어찌 축복이라 하겠는가. 그런데 나눌 수 있는 마음도 있고 요건까지 함께 갖추고 있다면 이 어찌 큰 축복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혈연, 지연, 학연의 관계로 얽혀 살아간다. 그러나 그 보다 귀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십자가 사랑을 공유하는 것이다. 이보다 지고한 관계는 없다. 이것이 나의 삶이고 목회 이치이다.
30여년의 목회를 마무리하고 은퇴를 하면서 포항중앙교회 원로목사로 추대를 받았다. 후임 목사님은 내가 많이 아끼고 사랑하는 후배로 기도 중에 택하였고, 성도들의 만장일치로 청빙청원을 받아 위임목사로 奉職하고 있다. 돌아보니 벌써 7년의 세월이 흐르고 있다. 원로목사로, 또 위임목사로 7년을 하루같이 서로 신뢰하고 사랑하며 父子之情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잠깐 어둠의 세력에 카오스 현상을 경험하는 시간도 있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聖域의 이치를 통해 비온 뒤 땅이 더욱 굳어지는 자연이치와 같이 교회는 더더욱 평행감축의 행진을 하고 있다.
얼마 전 담임목사님이 우리 집을 방문하셨다. 선임과 행정을 맡은 두 분 부목사님들과 장로님, 권사님들과 함께였다. 이유는 나도 잊고 지나쳐버린 원로목사 생일을 기억하여 찾아온 것이다. 꽃다발과 케익에 금일봉까지 우리 내외 품에 안겨주며 축하하고 축복기도를 해주셨다. 해마다 잊지 않고 챙겨주는 그 마음과 섬김 받는 내 마음이 忠과 恕로 어우러졌다. 그러지 말라고 해도 여전히 그렇게 챙겨주시는 관계는 父子之情의 관계다.
공자가 증자에게 吾道 一以貫之를 일깨웠을 때 부차적 설명을 따로 하지는 않았음에도 증자는 문하생들에게 夫子之道 忠恕而已矣라고 공자의 가르침을 헤아려 설명했는데, 이는 말없이도 많은 것을 일깨우고 말없이도 많은 것을 깨닫는 忠恕의 관계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원로목사인 나와 후배 담임목사는 마음 중심으로 진정 서로를 이해하고 관용하며 용서하고 사랑하는 복음의 삶을 연주하며 사역하고 있다. 이러한 우리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 관계의 이치인가 생각하며 감사한 중에 더욱 감사할 뿐이다.
은퇴를 하면서 후임 목사님에게 2가지 약속을 했다. 하나는, ‘원로목사’는 은퇴 후 헌법이 정한 바에 따라 사역 기간을 귀히 여겨 교회에서 예를 갖추어 우대하는 것일 뿐, 목회에서는 은퇴이기 때문에 담임목사님이 묻지 않는 한 절대로 목회와 연관하여 단 한마디도 간섭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누가 뭐라 해도 원로목사와 담임목사는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한 忠과 恕를 통한 진정한 愛의 관계로 살아가자는 것이었다. 여기의 忠은 마음다운 마음, 즉 거짓 없는 마음이며, 恕는 헤아리고 깨닫고 밝게 하는 이치로써 같은(如) 마음(心으)으로 지고한 관계이치를 뜻하는 것이며, 愛는 인간적 사랑이 아니라 보혈로 맺어지는 십자가 사랑을 뜻한다. 그리고 오늘에 이르도록 나는 이 이치를 벗어나지 않았다.
은퇴 후에도 하나님께서 나의 사역이 녹슬지 않고 닳아서 사용하지 못할 때까지 聖役으로 사용하시라고 축복하며 안수기도를 해 주셨던 故방지일 목사님의 기도에 대한 응답처럼 지금도 나는 매주 전국 방방곡곡으로 다니며 말씀 사역을 하고 있다. 그렇게 전국을 다니며 듣고 보고 느끼는 것이 있다. 원로목사와 담임목사의 관계이치가 忠恕(마음을 다한 하나됨의 관계)로 연주될 때는 교회가 평행감축을 노래하지만 그 관계가 怨誤(원망과 잘못된 관계)로 연주되면 교회는 카오스 현상을 벗어날 수 없고 벌판이 되는 것이다.
아무리 곱씹어보아도 나는 참으로 복에 복을 받은 사람이다. 시편 92:14~15절 ‘그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니, 여호와의 정직하심과 나의 바위 되심과 그에게는 불의가 없음이 선포되리로다.’의 축복 메시지인 말씀을 옷 입고 평행감축을 노래할 수 있음은 원로목사와 담임목사의 父子之情의 관계이치가 忠恕로 연주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고희의 삶을 사는 오늘도 주야로 기도하는 것은 오로지 아비의 마음으로 아들 같은 담임목사님의 목회가 平幸感祝이기를 축복하는 것이다.
-
2021-09-03
-
-
[은혜의 말씀]일어나 걸어라(요 5:1-9)
-
-
명절을 맞아 예루살렘으로 오신 예수님은 양문을 지나 가까이 있는 베데스다라는 연못으로 발걸음을 옮기십니다. 당시 베데스다 연못에는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었습니다. 그 못에는 한 번씩 밑바닥으로부터 물이 끓어오르는 현상이 있는데, 그것은 천사가 와서 물을 휘젓고 가는 것이라는 믿었습니다. 그래서 물이 끓어오를 때 제일 먼저 뛰어들면 무슨 병이든지 낫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못에는 전국에서 병자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베데스다는 긍휼, 자비의 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그 뜻과는 다르게 인간이 당면한 모든 문제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고통의 장소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자리에 오셨습니다. 그 수많은 병자들 틈에서 홀로 누워 하염없이 하늘만 바라보며 고개 숙인 38년 된 한 병자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의 능력의 말씀이 그에게 선포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8절) 우리 주님이 말씀하시자 성령의 능력이 그를 일으킨 것입니다. 이 병자는 벌떡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갔습니다. 38년 된 병자처럼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문제를 안고 신음하는 우리들, 또 오랫동안 짊어지고 있는 육체의 연약함들, 도저히 우리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고질적인 문제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38년 된 병자의 문제를 해결해주셨던 것처럼 나의 문제도 예수님 안에서 깨끗하게 치유 받는 역사가 일어나길 축복합니다.
그러면, 우리 주님이 주시는 은혜의 특징을 몇 가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주님이 주시는 은혜는 값없이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지금 이 38년 된 병자는 구원받을 만한 무슨 조건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편에서 그냥 아무 조건 없이 찾아오셔서 값없이 구원을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주님의 주권적인 택하심이요 사랑입니다. 은혜는 나는 아무 한 것이 없는데도 주님이 그저 값없이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은혜의 주님이십니다.
둘째, 주님이 주시는 은혜는 우리의 아픔을 다 아신다는 것입니다.
6절 보세요.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세상에는 38년 된 병자를 알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지만, 우리 주님은 그 아픔을 다 아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문제를 다 아십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것만 고백하면서 매달리면 됩니다. 주님 다 아시기 때문에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시고, 우리의 문제를 풀어 주십니다.
셋째, 주님이 주시는 은혜는 소망을 통해 역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38년 된 병자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지만, 꼭 한 가지 물으신 게 있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주님은 이 질문을 던지시면서 소망의 불꽃이 사그라진 그에게 작은 불씨를 심어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소망의 끈을 붙드는 것, 그것이 모든 치유의 첫걸음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베데스다를 바라보지 마세요. 온전하신 주님의 구원을 바라보시고, 능력의 주님 의지해서 기어코 일어서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
2021-09-03
-
-
[목회자 칼럼]도도한 신앙인
-
-
요즘 젊은 세대 언어로 “까도남”이라고 있다. ‘까칠한 도시 남자’를 줄여 이르는 말로, 성격이 까다롭고 쌀쌀맞은 분위기의 세련된 젊은 남자를 말한다.
사람들은 까칠한 사람을 싫어한다. 그런데 원만하고 성질 좋다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무능하게 보이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똑똑하면서도 따뜻한 카리스마가 있는 사람이 좋지만 그렇게 문무를 겸비한 사람이 드물다.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기보다는 뱀같이 간사하고 비둘기같이 멍청하기가 쉽다.
일을 할 때마다 까칠을 떨고 예민하게 굴면 자신의 마음도 불편해진다. 세월이 지나면서 까칠함은 디테일이었고 예민한 것은 철두철미한 것으로 해석을 하게 되었다.
온유의 뜻은 거칠게 날뛰는 야생마가 길들여져서 명마, 준마가 된 상태라고 한다.
사역 현장, 복잡한 인간관계에서 좋은 게 좋은 식으로, 대충대충, 얼렁뚱땅, 구렁이 담 넘어 가듯이,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하면 당장은 원만하지만 일은 되는 게 없다. 그래서 스케일과 디테일, 철저함과 따뜻함, 강함과 부드러움이 조화를 이루면서 까칠하고 도도한 사람이 더 신뢰가 된다.
신앙 세계에서 가장 나쁜 사람이 교만한 사람이다. 도도하고 까칠하고 시건방진 사람이다. 성경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라고 한다.
오늘은 도도한 크리스찬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윗물은 더러워도 네가 샘의 근원이 되면 된다.
일을 못하는 사람의 결정적인 차이는 원망, 핑계, 변명, 이유가 많다는 것이다.
일을 못하는 사람이 연장을 나무라는 법이다. 아담 이후로 사람들은 남을 탓하고, 희생양을 찾고, 변명 거리를 찾아서 이유를 갖다 붙였다.
아브라함은 아빠 찬스를 쓸 게 없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우상을 만들어 파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윗물은 더러워도 조상 탓을 하지 않았고 자신이 복의 근원이 되었다.
윗물은 더러워도 네가 깊은 산속 옹달샘이 되면 물 근원이 되어서 물길따라, 꽃길따라 실개천이 도랑이 되고 시내를 이루고 천을 이루고 강을 이루고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되는 것이다. 샘은 자정능력이 있다. 흙탕물도 흘려보내며 이파리도 떠내려 보내고 맑아진다. 흘러가면서 주변의 산천초목을 유익하게 한다.
아브라함 한 사람이 강의 뿌리가 되고 원천이 되고 근원이 되었다. 일꾼은 어떤 경우에서도 환경, 배경, 조건을 탓해서는 안된다. 부흥은 나로부터 시작된다.
갈 바를 알지 못하여도 주께서 지시하는 곳으로 가면 된다.
아브라함은 75세 영감님 때에 익숙한 곳, 정든 곳인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갈 바를 알지 못하여도 주께서 지시하신 약속의 땅으로 떠났다. 멋진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은 자기가 계획한 것보다도 뜻밖에 주께서 강권적으로 인도하신 것이 좋게 되었다. 아브라함에게는 나이에 상관없이 개척정신, 도전정신, 모험정신, 창의정신이 충만했다. 그것이 청춘이다. 사업은 상당한 위험부담을 안고 하는 모험이다. 위기가 기회이다. 부담이 안되는 것은 사명도 아니다. 막연한 미래가 두서도 없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주께서 이루실 기이한 축복으로 인한 설레임의 시간이 되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은 없어도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다.
사람들은 안전 위주의 일을 하려고 한다. 그러나 믿음은 눈에는 보이는 것이 없고 손에는 잡히는 것이 없어도 바라고 나아가면 실제 상황이 된다. 인생은 안전판을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한 미래를 도전하는 것이다. 믿음이 좋은 사람들은 뻥이 심하다. 당장 보기에는 헛소리하는 것 같지만 세월이 지나면 꿈꾼대로, 소원대로, 말한대로, 심은대로, 믿음대로 기적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꿈이라도 빵실하게 기도라도 거창하게 소원이라도 앗사라게 가져야 된다. 꿈은 이루어지고 말이 씨가 되기 때문이다.
아브라함과 조카 롯의 목자들이 다툴 때에 롯은 눈에 보기에 여호와의 동산 같은 소돔과 고모라를 선택하고 마침내 타락하고 망했다. 아브라함은 선택권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권이 중요했기에 좌우 선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께서 주시는 것이 최고이기에 조카에게 양보할 수 있었다. 조카 롯이 떠난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네 눈에 보이는 것을 다 주겠다 하고 종과 횡을 행하여 보라 네 발로 밟는 곳을 다 주겠다며 그야말로 사통팔달의 복을 주었다.
기도는 길어도 응답은 순간이다.
아브라함 집안은 기도 응답이 늦기로 유명하다. 아브라함은 75세에 약속을 받고 100세에 아들을 낳았다.
100세가 되도록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이전에 죽을 것이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환갑이라는 늦은 나이에 비로소 아들을 낳았다.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은 처가살이만 20년을 살며 칠년을 수일같이 보냈다.
하나님의 물레방아는 천천히 돌아간다. 그러나 모든 것을 가루로 만드는 것이다.
크리스찬은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믿고, 기다리고, 감사하는 사람들이다.
-
2021-09-03
-
-
[부산기독교이야기]전쟁기 구호단체들: 메노나이트중앙위원회
-
-
메노나이트교회(Mennonite)는 16세기 종교개혁기 메노 시몬스(Menno Simons, 1496-1561)에 의해 화란에서 시작된 재세례파 그룹의 교회인데, 화란 외에도 스위스 남부독일 등지에서 일어났고, 점차 은밀하게 여러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이들은 평화주의에 입각하여 전쟁과 군복무를 반대하여 국가와 로마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들로부터 탄압을 받았다. 이들은 신교의 자유를 찾아 프러시아, 남부 러시아인 우크라이나로 그리고 1780년대 이후에는 미국으로, 1870년대에는 캐나다로 이주하였다. 이들은 자기들의 신앙과 신념을 지키기 위해 어디든 자신들을 받아주는 곳이면 기꺼이 이주하였고, 주로 농업에 종사하며 집단적으로 생활하였다.
그러든 중 우크라이나의 메노나이트교도들이 기근으로 커다란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메노나이트교회와 그리스도 형제교회(Brethren in Christ), 아미쉬(Amish) 등 북미의 15개 교단 의 34명의 대표들이 1920년 9월 27일 미국 시카고에 모여 러시아 전역에 사는 굶주린 이들을 구호하기 위한 후원연합체를 조직했는데, 이것이 오늘 MCC라고 부르는 메노나이트중앙위원회(Mennonite Central Committee)였다. MCC의 3대 사역은 구제, 봉사, 평화사역인데, 본부는 미국의 경우 펜실베니아주의 애크론에, 캐나다는 매니토바 중 위니펙에 있다. 메노나이트교도들은 신명기 14:29절, “너의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는 말씀을 구호의 지침으로 받아드렸는데, MCC는 이 정신에 따라 1920년 조직 이후 세계도처의 핍절한 이들에게 구호사업을 전개하여 왔다. 1920년에서 25년 어간에는 우크라이나의 기근상태에 있는 이들을 후원했으나 그 후에는 파라과이, 프랑스, 폴란드 등 도처의 메노나이트 공동체에 도움을 베풀었고, 6.25 전쟁 중에는 한국에서 구호사업을 전개하게 된 것이다.
한반도에 전쟁이 발발하자 MCC는 한국을 지원하기 위해 준비했고 한국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한국입국을 신청하여 1950년 10월 MCC 요원 한 사람을 부산으로 보내 피난민 구호에 대한 기초 자료를 조사하게 했다. 이 조사에 근거하여 1952년 10월 27일 첫 MCC 요원이 내한했는데, 그가 달라스 보란(Dallas C. Voran, 1920-2002)이었다. 그는 부산으로 입국한 이후 1953년 3월까지 1년 6개월 간 한국에 체류하면서 피난민 구호와 봉사 사업에 관여하였다. 메노나이트계의 벧엘대학(1938-1943) 출신인 그는 1946년 MCC 선교사로 중국으로 파송되어 ‘세계교회 봉사회’(CWS) 소속으로 4년간 난민구호 활동을 전개한 바 있다. 그러든 중 한국에 전쟁이 발발하자 MCC 본부는 달라스 보란을 영입하고 그를 한국에 파송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1951년 9월 동경으로 와서 기다리던 중 입국 허락을 받고 10월 27일 입국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때까지 MCC가 한국에서의 활동인가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주한유엔민간원조사령부(UNCACK: The United Nations Civil Assistance Command in Korea) 휘하에서 일하게 된다.
이때부터 1971년까지 2년 간 MCC 요원 75명이 한국에서 일했다. 이들은 휴전 이후에도 계속하여 구호, 교육, 재건 사업을 전개한 것이다. 이들은 주로 대구(경산)와 부산지역에서 구제사업, 교육 사업, 가족-어린이 프로그램, 전쟁 과부들을 위한 재봉교육, 그리고 농촌개선 및 지원 사업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했는데 이 사역을 주도한 조직이 MCC였다. 참고로 부연하면 MCC는 1995년부터는 북한을 돕기 위한 사업을 시작하였고, 2018년 4월부터 2019년 3월까지 1년간 북한에 14만 4천 개의 고기 통조림을 지원하였는데 이는 전 세계에 지원한 고기통조림 67만899개의 20%를 차지했다. 메노나이트교회는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는, 그가 동족이던 타국인이든, 아군이든 적군이든 구별하지 않았고, 필요한 이들에게는 아낌없이 베풀었다. 이런 정신으로 6.25 전쟁기 한국에서 일한 것이다.
-
2021-09-03
-
-
[의학칼럼]불면증 극복하기(2)
-
-
3. 내가 불면증인지 자가 진단할 수 있는 방법도 있나요?
환자 본인 스스로 불면증이 있는지 자가진단을 위해서는 최근 약 2주간에 걸쳐서 정확한 실제 수면패턴을 파악해야 합니다.
이를 알기 위해서는 취침시간, 기상시간, 잠드는 데 걸리는 시간, 자다가 깬 횟수, 낮잠 유무와 시간을 수면일기의 형식으로 최소 2주간 작성해야 합니다.
작성한 수면일기를 통해 불면증의 네 가지 증상인 잠들기 어렵거나, 자주 깨거나, 새벽에 일찍 깨서 잠이 오지 않거나, 만성으로 아침에 일어나도 개운하지 않는다거나 하는 이중에서 어떤 항목이 본인에게 해당되는지 확인하면 됩니다.
다양한 수면설문지를 이용하는 것도 유용한 방법인데요. 환자의 실제 수면패턴을 파악하기위해 취침시간, 기상시간, 잠드는 데 걸리는 시간, 자다가 깬 횟수, 잠이 들었다가 깨서 자지 못한 시간을 매일 작성하는 수면일기를 최소한 일주일 이상 작성해 오도록 하면 환자의 수면패턴을 살펴보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객관적으로 수면 패턴을 확인하기 위해서 액티그래피(actigraphy)라는 센서를 손목에 착용을 한 채로 1-2주간 집에서 생활하면서 검사하게 됩니다.
4. 불면증이 계속되는 경우, 어떤 후유증이 있나요?
잠의 여러 가지 장점을 생각해볼 때 불면증은 우리 몸에 크나큰 후유증을 남깁니다. 불면증 환자들은 밤잠의 어려움뿐만 아니라 주간 기능의 장애, 피로, 주의력, 집중력, 기억력 저하를 유발해 다음날 직장 및 사회생활에서 업무 효율을 떨어뜨리게 됩니다.
또한 불면증은 성장부진과 근력저하를 유발시키며 정서 불안, 의욕상실 및 우울증 증세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심장질환이나 소화기계 증상도 더 높아 질수 있다는 통계결과가 있기도 합니다.
5. 불면증은 어떻게 치료하나요?
불면증 치료하는데 있어서 원인을 정확하게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차성 불면증인 경우에는 원인질환을 함께 치료해야 합니다. 불면증 치료 중 약물치료는 효과가 즉각적이고 빠르다는 장점이 있지만, 장기간 복용 시 내성으로 효과 감소 및 소실, 약물 의존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최근에 불면증의 원인에 심리 및 인지 요인이 관여한다는 점이 알려져 여러 가지 비 약물치료가 있으며 그 중 인지행동치료는 만성불면증의 표준 치료로 권장되는데, 불면증에 대한 잘못된 생각과 습관을 교정하는 것으로 4-8주의 치료 기간이 필요합니다.
6. 불면증을 극복하기 위해 도움이 되는 생활습관은 어떤 것이 있나요?
불면증을 치료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잘못된 수면습관을 고치는 것입니다. 낮잠을 될 수 있으면 피하고 정말로 졸릴 경우 10~15분 정도로 제한합니다. 잠자리에 들기 2시간 이내 30분 정도 더운물에 목욕해 체온을 올려주는 것도 수면에 도움이 됩니다. 수면을 방해하는 카페인 음료나 담배 등은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침실은 어둡고, 조용하고, 공기소통이 잘되고 편안한 실 내온도가 유지되도록 하고 침실에서 15분 이상 잠이 안 오면 일어나 단순작업을 반복 하는 다른 일을 하면서 잠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 도움이 됩니다.
-
2021-09-03
-
-
[소강석 칼럼]파파게노 효과를 일으켜야 할 때
-
-
우리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끝이 보이지 않는 광야를 걸으며 모두 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정부가 예배를 간섭하는 일은 사상 초유의 일이었습니다. 전염병 창궐이라는 특수적 상황만 아니라면 한국교회가 예배를 축소하고 온라인예배로 전환할 이유가 없습니다. 한국교회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합니다. 예배의 존엄성을 지키고 방역에도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한국교회가 주도적으로 자율 방역을 하면서 현장예배를 드리도록 하는 것입니다.
저는 작년에 코로나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한국교회가 선제적으로 자율방역 시스템을 구축하고 정부가 예배를 간섭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때 부총회장 때라 발언권이 약해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미 제가 총회장이 되고 한교총 대표회장이 되었을 때는 예배의 주도권을 정부에 빼앗기고 제재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한국교회가 방역 매뉴얼을 만들어 놓고 안전한 예배운동을 전개해 나갔어야 했는데 선제적 대응을 하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앞으로는 그 어떤 바이러스가 와도 한국교회가 자체적으로 철저한 방역 매뉴얼을 지키면서 안전한 예배를 드리는 길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종교개혁자 칼빈이 그랬지 않습니까? 중세 사제들은 흑사병이 창궐할 때 공간의 권위를 지키며 믿음의 힘으로 이겨보자고 했지만 오히려 성당이 감염의 온상이 되어 버리고 말았지 않습니까? 그때 칼빈은 제네바에서 쿼런틴(quarantine) 즉 격리 시스템을 시작하였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창의적 상상력인 하이 콘셉트와 감성적 공감 능력인 하이 터치의 새 길을 모색한 것입니다. 오히려 칼빈은 구빈원을 만들어 전염병 환자들을 돌보며 정부 관리들에게 손을 떼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감염에 노출이 많은 분들은 교회로 모이지 말고 성직자들이 조심스럽게 가서 심방을 하고 예배를 드려주도록 했습니다.
당시 제네바 시민들이 볼 때 전염병을 대처하는 칼빈의 모습이 중세 사제들과 너무 비교가 되니까 칼빈을 응원하고 박수를 쳐 준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역사를 보면 흑사병이 결코 예배를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가톨릭처럼 무조건 모이라고 해서 이기자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칼빈을 비롯한 종교개혁을 하였던 성직자들이 솔선수범하여 방역의 모범을 보이면서도 예배의 본질과 정체성을 지켰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개혁주의의 전통을 따라 방역을 철저히 하면서도 예배를 지켜가야 합니다.
정부가 예배를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는 것이 얼마나 자존심 상하고 기분 나쁜 일입니까. 그래서 앞으로는 한국교회가 자체 방역 매뉴얼을 잘 만들어서 자율 방어의 길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든지 코로나는 이겨낼 것이 아닙니까? 방역도 애쓰고 기도를 함으로써 코로나는 아웃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코로나가 종식되면 정말 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한국교회가 예배와 교회 운영에만 몰두했지 환경문제, 자연문제 등에 관심을 안 가졌습니다. 교회마저도 관심을 안 갖다보니까 자연이 분노해서 코로나 바이러스들이 왕관을 쓰고 우리에게 쳐들어 온 것이죠.
코로나를 종식시키고 난 다음에는 한국교회가 앞장서서 환경문제, 자연 생태계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우리만의 이너워십이나 카르텔을 벗어나서 행복 바이러스, 파파게노 효과를 이웃에게 퍼뜨려야 합니다. 파파게노 효과는 모차르트가 작곡한 오페라 <마술피리>에 나오는 '파파게노'라는 인물에게서 유래된 말입니다. 주인공 파파게노는 연인인 파파게나가 죽자 같이 자살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요정들이 나타나 파파게노에게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 주자 파파게노는 자살을 하지 않고 다시 힘을 내어 남은 삶을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흔히 파파게노 효과는 베르테르 효과와 대비되어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유명한 연예인들이나 정치인들이 자살을 하면 동조 자살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베르테르 효과와 대비되어 파파게노 효과는 절망과 실의에 빠진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어 행복한 삶으로 인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코로나라는 전염병 때문에 얼마나 힘들어하고 실의에 빠져 있습니까? 이러한 때, 한국교회가 행복 바이러스, 파파게노 효과를 일으켜야 합니다. 이것이 앞으로 한국교회가 가야할 길이 아닐까요.
-
2021-08-13
-
-
[성서연구]자유, 그 다음(갈라디아 5장 1-6절)
-
-
광복 76주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일본 군국주의의 지배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시편 126편 1-2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라고 했는데, 광복은 우리에게는 꿈꾸는 것 같은 일이었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큰일이었습니다.
광복에서 빼놓을 수 없는 화두는 자유입니다. 광복으로 우리는 자유를 얻었습니다. 신사참배와 강제징용에서 자유를 얻었습니다. 자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다양한 억압에서 벗어나는 자유>입니다. 일반적으로 벗어나는 자유만을 생각합니다.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은 1941년 1월 6일, 의회 연설에서 인간의 기본적인 네 가지 자유를 언급했습니다. 첫째는 언론과 표현의 자유, 둘째는 신앙의 자유, 셋째는 건강하고 평화로운 삶을 위한 결핍으로부터의 자유. 마지막은 공포로부터의 자유였습니다. 이것은 <벗어나는 자유>의 대표적 예라고 하겠습니다.
또 하나의 자유는 <자유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이것은 자유를 자유보다 더 높은 가치를 위해 스스로 포기하는 자유입니다. 더 고귀한 것을 위해 자유를 포기하지만, 이것은 자원하는 마음으로 이루어지기에 거기 기쁨이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우상의 제물을 먹어야 하는 상황에서 성도들의 신앙을 위해서라면 평생이라도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했는데, 이것이야말로 고기를 먹을 수 있는 자유를 성도들을 위하여 스스로 포기한 것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삶과 사회를 위해서는 이상의 두 가지 자유가 모두 필요합니다. 벗어나는 자유만 추구하면 점점 욕망에 빠지게 됩니다. 처음에는 세끼 밥도 부족한 결핍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세끼를 먹게 되면 다음에는 간식을 원하게 되고, 나중에는 식도락을 추구하게 되는데, 이것은 배를 채우고 건강을 위하여 먹는 게 아니라, 먹기 위하여 먹는 타락입니다. 그때 굶주리는 사람 옆에서 더 맛있는 것을 먹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죄악입니다. 그러므로 이때는 더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지만 굶주리는 사람을 위하여 소박한 음식으로 바꿀 수 있는 자유, 자신의 세 끼 음식이라도 줄여 세 끼 모두를 굶는 이에게 나눠주는 자유가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유롭게 먹을 수 있는 자유를 포기해야 합니다. 이웃을 위하여 스스로 배고픔의 노예가 됩니다. 이때 그의 마음에는 주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기쁨이 있습니다. 바울은 이런 기쁨을 아는 분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이것은 죄와 죽음과 마귀의 억압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다음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절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하셨는데, 이는 자유를 얻은 사람이 다시 종의 멍에를 메게 될 위험이 있음을 전제합니다. 주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아 자유를 누리게 된 사람이 다시 예전처럼 할례나 율법에 매이게 되면 그것은 또 다시 종의 멍에를 메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광복을 맞이했습니다.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우리는 두 번째 자유를 알지 못했습니다. 모두 더 많은 것을 얻으려는 욕망으로 이기적 자유를 주장했습니다. 다른 이들을 위해, 국가의 미래를 위해 자신의 자유를 포기하는 자유를 알지 못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 모두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얻어 누리는 자유만 주장할 때, 서로 충돌하게 되었고, 사회는 갈등으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진정한 광복을 위하여 자신의 자유를 포기하는 자유를 배워야 합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기쁨으로 포기해야 합니다. 국민은 더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미래와 통일된 미래를 위해 각자의 자유와 권리를 포기해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비로소 성숙한 자유인이 될 수 있습니다. 자유를 누릴 줄 아는 성숙이 없다면, 진정한 자유인이라 할 수 없습니다. 참 자유를 누리길 소원합니다.
-
2021-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