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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사칼럼]나는 쉬고 싶다, 그래 우리는 쉬어야 한다
    최근 대권주자 한 사람의 ‘120시간’ 발언으로 논쟁 아닌 논쟁이 격화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말은 일종의 비진의표시(非眞意表示)에 해당한다고 봅니다(민법 107조). 요즘 세상에 어떻게 그런 노동이 가능하겠습니까? 당사자의 의도도 그렇진 않았을 것이고, 듣는 이 대부분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진 않았을 터, “스타트업 청년들을 만났더니, 주52시간제 시행에 예외조항을 둬서 근로자가 조건을 합의하거나 선택할 수 있게 해달라고 토로하더라. 게임 하나 개발하려면 한 주에 52시간이 아니라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왜 사람들은 앞부분만 집중하고 그 뒷말 즉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는 크게 주목하지 않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산업혁명과 근대화를 거치는 동안 일하는 자체를 중시하던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 접어들면서부터 점차 쉼과 안식을 노동 못지않게 중시하기 시작합니다. 1948년 제정된 세계인권선언은 이미 이와 관련된 규정을 두었습니다. “모든 사람은 노동 시간의 합리적인 제한과 장기적인 유급휴가를 포함하여, 휴식할 권리와 여가를 즐길 권리가 있다”(24조). 우리 헌법은 아직은 이러한 “휴식권”과 “여가권”을 명시적으로 규정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최근 근로기준법이 동일한 방향성을 가지고 개정되었습니다. 먼저 ‘선택적 보상휴가’ 제도를 두어서 사용자와 근로자가 연장, 야간, 휴일 근무에 대해 보상 대신 휴가를 택할 수 있도록 했고(동법 55조의 2), 또한 ‘휴가 촉진’ 규정을 만들어서 근로자 역시 적극적으로 이러한 휴가를 사용하도록 하는 제도를 마련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59조의 2). 그간 우리는 정신없이 달려오기만 했습니다. 성장과 발전이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잠시 멈추고 쉴 때도 있어야 하는 법입니다. 창조주께서 인간에게 안식을 명하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기만 할 때, 때로는 신적인 강제 조치가 뒤따르기도 합니다. 바벨론유수 사건이 그러했고, 지금의 감염병 사태도 ‘하나님의 강제적 안식 조치’라는 측면에서 본질은 같지 않나 생각합니다. 얼마 전 작고한 여성신학자 마르바 던(Marva Dawn, 1948.8.20-2021.4.18)이 일평생 강조했던 바가 바로 이 ‘멈춤과 안식’이지 않았습니까? 누구나 쉼 없이 하던 일을 멈추는 순간이 필요하며, 잠시라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안식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안식』(2001)은 이와 같은 과정을 네 단계 곧 ‘그침(ceasing)’, ‘쉼(resting)’, ‘받아들임(embracing)’, ‘향연(feasting)’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우리 사회를 상징하는 중요한 말들 중 하나가 바로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인데, 요즘은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한 ‘스라밸(study and life balance)’까지 등장했다고 하니 가끔은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직 교회는 이러한 현대적이고 본질적인 흐름에서 저만큼 빗겨나 있는 듯해서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주40시간근무제나 주5일제는 누구도 토를 달 수 없는 대세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서두에 언급했다시피 이는 이미 70여 년 전 인류가 선포한 본질적 인권의 시대적 구현으로 보아야 합니다. 하지만 교회의 현장에서는 여전히 알게 모르게 이른바 ‘열정페이’가 난무합니다. 대부분 교회의 사역자들에게 일 년에 한 차례 여름휴가를 제외하고 연월차나 생리휴가 혹은 육아휴직은 언감생심 꺼내기조차 어려운 말들 아닙니까? 우리가 쉬어야 하는 이유는 멈춤 자체를 목적으로 해서도 아니고 인권적인 배려를 위해서만도 아니라, 이것이 영적인 측면에서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뿌리를 깊이 내리라 하셨고(막 4:17)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눅 5:4) 하시지 않았습니까? 여기서 ‘깊음’은 시-공간적인 개념입니다. 인간은 노동하는 기계가 아닙니다. 때로는 일을 그치고 쉼을 통해 내면을 들여다보고 피안을 생각하는 시공간의 체험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입니다. 하물며 영적 사역을 감당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러한 체험이 더욱 밀도 있고 빈도 있게 이루어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본격적인 휴가철을 맞았습니다. ‘나는 쉬고 싶다’는 애달픈 외침이 줄어들기를 바랍니다. 동시에 ‘나는 쉬어야 한다’는 선언이 더 많아지기를 바라며, 나아가 ‘우리는 쉬어야 한다’는 엄숙한 선언이 교회를 비롯한 삶의 모든 분야에서 터져 나오기를 고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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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8-13
  • [부산기독교이야기]전쟁기 구호단체들: 기독교세계봉사회
    한국에서 전쟁이 발발하자 열러 외원 단체들이 한국 특히 부산에서 구호활동에 참여하게 되는데, 약 50여개의 민간단체 중에서 기독교 관련 단체는 40여개에 달했다. 말하자면 한국에서 구호활동을 펼친 외국의 구호 기관의 80% 이상이 기독교 관련 단체였음을 알 수 있다. 교파별로도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를 비롯하여 메노나이트, 퀘이커 등 다양했다. 국가별로는 미국과 캐나다 독일 호주 영국 아일랜드 스위스 벨기에 이탈리아 등이었다. 국가별로 볼 때 미국이 가장 많았다. 이중 가장 큰 규모의 외원조직이 세계기독교봉사회인데(Church World Service)인데 흔히 CWS로 불렸다. CWS는 미국교회협의회(미국 NCC) 산하단체로 미국 NCC와 WCC의 지원과 협력을 받으며 구호활동을 전개했다. CWS는 1946년 조직되었는데, 1950년 미국 NCC가 결성되자 NCC의 협력단체가 되었고, 감리교 선교사 빌링스(Bliss W. Billings, 1881-1969)의 책임 하에서 한국에서 구호 활동을 시작했다. 그 후에는 북장로교 선교사 플레처(Archibald G Fletcher, 1881-?)가 책임자가 되었다. CWS가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중국에서와 마찬가지로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박해 받는 그리스도인들을 보호하고 후원해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이었다. CWS는 1947년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박해를 피해 월남한 인구를 200만 명 이상으로 추산하고 이들을 구호하기 시작했다. 이들 대부분은 기독교 신자들이라고 보았고, 이들을 위해 식품과 의류품을 지원했다. 즉 6.25 이전까지는 월남한 이들을 구호대상으로 했다. 그러다가 전쟁이 발발하자 하고, 전재 난민을 구호하기 시작하는데, 이를 구체적으로 그리고 조직적으로 실해하기 위해 한국교회 대표들을 초청하여 한국위원회를 조직하게 된다. 1951년1월 25일 부산 대청동의 부산중앙교회당에서 각교파 대표자들이 모여 감리교 선교사 찰스 사우어(Charles A. Sauer, 1891-1971)의 사회로 기독교세계봉사회 한국위원회(KCWS: The Korea Church World Service)를 구성하게 된다. 조직을 갖춘 후 한국위원회는 북장로교선교부 대표인 안두화(Edward Adams) 선교사를 미국 본부에 파송하여 한국의 난민 상황를 보고하고 구호물자 지원을 요청하도록 했다. 또 다른 많은 선교사들은 한국을 떠나거나 일본으로 피신했는데 한국에 남아 있던 안두화 선교사는 부산 창고에 남아 있던 구호물자 사용 승인을 얻고 이를 난민에게 보급하였다. 그 동안은 안두화 선교사가 책임자(president)로 일했으나 1951년 2월에는 초대 선교사 아펜젤러의 아들인 1948년 재입국한 헨리 아펜젤러(Henry Appenzeller, 1958-1953)가 CWS의 사무총장으로 활동했다. 이때 아동복지 담당자가 캐나다인 앤 데이비슨이었고, 산파훈련담당자가 미국인 에디스 골트(Edith J. Galt)였다. 고미옥으로 불린 그는 미국 회중교회(Congregational Church of America) 선교사 딸로 중국에서 출생하여 그곳에서 성장했는데, 미국으로 돌아가 간호사가 되어 중국 꿍밍으로 돌아 가 일하다가 다시 한국으로 오게 된 선교사였다. 이런 조직을 갖춘 CWS는 의료, 농업기술, 전재민을 위한 간호, 과부와 고아 후원 등 여러 분야에서 후원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다가 1952년부터는 외국민간원조단체연합회(KAVA: The Korean Association of Voluntary Agencies)의 관할 하에서 활동했다. 연합회를 조직할 당시 처음에는 7개 단체에 불과했으나 후에는 49개 단체로 증가되었다. 또 1953녀부터는 주한유엔민간원조사령부(UNCACK: The United Nations Civil Assistance Command in Korea)의 통제 하에서 활동하였다. 이렇듯 CWA 전쟁 전 후 한국에서 피난민과 전재민을 위해 봉사했던 대표적인 구호단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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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규교수의 역사탐색
    2021-08-13
  • [목회자칼럼]국가대표 배구선수, 국가대표 크리스천
    4년 마다 지구촌을 들썩이게 하는 올림픽이 코로나로 인해 한 해 연기되었다 올해 일본 도쿄에서 열렸습니다. 양궁의 김제덕과 안산 선수, 체조의 여서정, 신재환 선수 등 이번에도 새로운 올림픽 스타들이 탄생하면서 코로나로 인해 힘든 국민들에게 즐거움과 위로를 주었습니다. 많은 올림픽 경기 중, 온 국민을 긴장하게 했던 경기를 꼽으라면 아마 7월 31일 한국과 일본의 조별리그 마지막 여자 배구 경기가 떠오를 것입니다. 올림픽 경기에 앞서 한국 팀의 주장인 김연경 선수는 다른 경기는 몰라도 “일본과의 경기만은 꼭 이기고 싶다”며 굳은 각오를 보일만큼 일본과의 경기는 그 어떤 경기보다 무게가 달랐습니다. 선수들의 굳은 의지 때문인지, 일본과의 경기에서 세트 스코어 3-2로 겪고 8강에 진출했습니다. 한일전 배구의 승리로 인해 대한민국의 분위기는 고취되었고, 이후에 이어지는 올림픽의 다른 경기에서도 상대가 일본이면 경기를 하는 선수들은 물론이고 국민들까지 더 힘을 내서 응원의 열기를 더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왜 이토록 일본과의 경기에서는 꼭 승리를 해야 할까요? 그것은 아마 오랫동안 역사적인 관계에서 비롯된 국가의 자존심과 억울함의 표현이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단순한 경기가 아닌 그 이상의 의미가 숨어 있다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올림픽에서 한일전 여자 배구 경기를 지켜보며 기독교인으로 다양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째, 자존심입니다. 한일전 경기의 핵심은 자존심이었습니다. 대한민국 배구팀은 선수 한 명의 자존심과 더불어 대한민국 국민의 자존심을 안고 경기에 나섰습니다. 그렇다면, 코로나19로 인한 기독교인의 자존심은 어디에 있습니까?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우리가 지켜야 할 성경적 정체성과 자존심은 어디에 두고 지금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바벨론 포로 시대에 다니엘은 자신의 자존심을 걸고 해야 할 일을 감당했습니다. 코로나 시대, 오늘 나는 신앙의 자존심으로 해야 할 일을 감당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둘째, 정체성입니다. 올림픽에 나선 배구 선수들은 무엇보다 올림픽이라는 국제 무대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국가 대표로서의 정체성이 있었습니다. 그 정체성이 정신력이 되고 결국 어려운 상황에서도 승리를 이끌어 냈습니다. 혼란스러운 시대 사탄은 우리의 정신력을 흔들며 교묘하게 싸움을 걸고 있습니다. “기독교인 너희들, 하나님만으로 살 수 있어? 돈도 필요하고 마음도 편해야지 하나님을 섬기지...”라며 조롱 섞인 말투로 지금도 나를, 우리를 우롱하고 있습니다. 흔들리기 쉬운 시대, 유혹당하기 좋은 환경에서 기독교인의 정체성을 새기고 살아가는 것이 더없이 중요한 때입니다. 셋째, 가치관입니다. “돈을 많이 벌면 뇌가 바뀐다”는 말처럼 어느새 우리 머릿속에는 물질, 편안함, 성공 등의 가치관이 뿌리 내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나라 배구 선수들은 배구 외에는 다른 것이 몸에 배지 않도록 밤낮 배구 생각, 배구 연습만 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독교인들에게는 무엇이 몸에 배어야 할까요? 우리의 뇌는 무엇으로 가득차야 할까요? 국가대표 배구선수는 배구 말고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듯, 국가대표 기독교인 또한 신앙 생활 말고는 세속적인 가치관이 스며들지 않게 훈련해야 할 것입니다. 넷째, 관용과 사랑입니다. 스포츠 정신의 화합과 사랑을 생각해 봅니다. 승리하기 위해 경기 내내 긴장하며 상대방의 약점을 이용하지만 경기가 끝난 후에는 일본 선수라 하더라도 서로 용납하고 포용하는 자세를 보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에게 꼭 필요한 자세가 바로 이것이 아닐까요? 원수라 할지라도 용서하고 용납하는 신앙 자세로 목양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올림픽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메달의 유무가 아닌 경기 그 자체를 즐긴 선수들의 태도였습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올림픽 경기 중계의 핵심은 메달을 따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였습니다. 그런데 이번 올림픽에서는 메달보다는 경기를 즐기며 행복해하는 선수들이 유독 많았습니다. 그만큼 선수들도 국민들도 성숙되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신앙 생활도 이와 비슷합니다. 목표나 정상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닌 매 시간 하나님과 관계하며 그 주님으로 인해 즐거워하는 삶, 이것이 바로 국가 대표급 성도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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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8-13
  • [은혜의 말씀]수가 성에서 만난 한 여인(요 4:3-18)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사마리아 여인은 상처로 얼룩진 사람입니다. 남편을 다섯이나 가졌던 여자입니다. 동네 사람들도 그 여자를 사람 취급 안 합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낮 12시가 다 되어 우물에 물을 길으러 왔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므로 치료를 받았습니다. 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오늘 이 기적 같은 회복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우리 안에도 남모르는 상처와 아픔이 치유되는 은총이 일어나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1. 우리의 상처 한 가운데로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만나십시오. 왜 예수님께서 사마리아로 가셨을까요? 보통 유대인은 예루살렘에서 갈릴리로 갈 때 요단강을 건너 우회하여 가거나, 아니면 지중해로 둘러갑니다. 사마리아를 지나지 않기 위해서이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일부러 사마리아로 가십니다.(4절) 왜 그러실까요? 답은 하나지요. 예수님은 한 영혼을 만나주시기 위해, 한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 일부러 사마리아로 가셨습니다. 우리가 상처와 아픔 가운데 있어도 소망이 있는 이유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찾아오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면 상처 속에 계속 머물지만, 예수님을 만나면 우리의 상처는 치유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여러분을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만나시길 바랍니다. 2. 예수님을 만나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우리의 실존을 고백하게 됩니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수님은 남편을 불러오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가장 감추고 싶은 문제를 들추어 내어 고백하도록 하셨습니다.(16,17절)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 앞에서 내가 제일 감추고 싶은 것을 고백하십시오. 우리 모두에게는 사마리아 여인 같은 부끄러운 과거가 있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털어놓을 때 치유가 일어납니다. 회복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우리의 연약함을 고백하고, 우리의 과거를 맡기면, 주님의 보혈의 은총으로 우리는 새 사람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일을 하러 오신 분이십니다. 우리를 새롭게 해주러 오신 분이십니다. 예수님 안에 구원이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소망이 있습니다. 저는 우리 사직동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과거의 상처를 묵상하지 말고, 새로운 미래와 소망을 안고 힘차게 달려나가는 기적이 일어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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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8-13
  • [의학칼럼]불면증 극복하기(1)
    1. 불면증은 무엇인가요? 불면증은 왜 생기게 되고 어떤 종류가 있나요? 잠을 충분히 잘 수 있는 상황임에도 지속적으로 수면 개시, 지속 시간, 수면 구조 통합 및 수면의 질 저하와 함께 주간기능 장애를 일으키는 경우를 불면증이라고 합니다. 불면과 주간 증상이 3개월 이상 지속 유무에 따라 만성불면증과 단기불면증으로 크게 분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불면증은 크게 일차성과 이차성 불면증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여러 종류의 스트레스에 의하여 시작된 불면증이 환자 스스로 악화시켜서 만성화되는 정신생리학적 불면증, 스트레스에 의한 일시적 불면증 등이 일차성 불면증에 속합니다. 반면에 이차성 불면증은 다른 원인에 의한 불면증으로 수면 무호흡증, 하지불안증후군 같은 다른 수면장애에 의한 불면증, 우울증 같은 정신과적 원인, 위 식도 역류 같은 내과적 원인에 의한 불면증, 알코올에 의한 불면증 등이 이차성 불면증에 해당됩니다. 2. 일차 불면증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고 하셨는데요. 어떤 종류가 있고 어떤 상태를 말하는 지 자세하게 설명해 주세요. 일차성 불면증의 대표적인 질환으로 정신생리불면증을 들 수 있습니다. 가장 흔한 일차불면증으로서 스트레스에 의하여 시작된 불면증이 환자 스스로 악화시켜서 만성화되어 수면방해연상으로 불면증이 생기는 질환입니다. 환자는 자려고 하면 머릿속에 온갖 잡념이 든다라고 표현하는데요. 잠을 자려고 노력할수록 환자는 더 흥분하고 잠을 더 못 자게 됩니다. 수면방해연상은 처음에는 우울증이나 통증, 나쁜 수면환경에 의해 불면증이 생겼다가 지속되어 학습이 되는 경우가 흔합니다. 환자는 잠을 자려고 지나치게 노력하면서도 잠을 잘 수 없으나, 잠자려는 노력이 없이 단조로운 일을 하면 쉽게 잠이 들 수가 있습니다. 두 번째로 모순불면증이 있습니다. 환자들은 오랜 시간 전혀 못자거나 거의 못 잤다고 표현하지만 이와 같은 심한 수면 부족에 합당한 주간기능저하나 졸림이 거의 없는 불면증입니다. 특징적으로 환자는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고 말하지만, 수면다원검사에서 보면 잠을 충분히 잔 것을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세 번째로 부적절수면위생으로 인한 불면증인데요. 잦은 낮잠, 매우 불규칙한 취침시간 및 기상시간, 너무 많은 시간을 잠자리에서 보내는 것, 잠자기 전에 술, 니코틴, 카페인의 정기적인 섭취, 잠자리에서 수면 외에 다른 일, 즉 TV시청이나 독서, 공부 등과 같은 적절하지 않은 수면 위생으로 불면증이 생기는 것을 말합니다. 3. 내가 불면증인지 자가 진단할 수 있는 방법도 있나요? 환자 본인 스스로 불면증이 있는지 자가진단을 위해서는 최근 약 2주간에 걸쳐서 정확한 실제 수면패턴을 파악해야 합니다. 이를 알기 위해서는 취침시간, 기상시간, 잠드는 데 걸리는 시간, 자다가 깬 횟수, 낮잠 유무와 시간을 수면일기의 형식으로 최소 2주간 작성해야 합니다. 작성한 수면일기를 통해 불면증의 네 가지 증상인 잠들기 어렵거나, 자주 깨거나, 새벽에 일찍 깨서 잠이 오지 않거나, 만성으로 아침에 일어나도 개운하지 않는다거나 하는 이중에서 어떤 항목이 본인에게 해당되는지 확인하면 됩니다. 다양한 수면설문지를 이용하는 것도 유용한 방법인데요. 환자의 실제 수면패턴을 파악하기위해 취침시간, 기상시간, 잠드는 데 걸리는 시간, 자다가 깬 횟수, 잠이 들었다가 깨서 자지 못한 시간을 매일 작성하는 수면일기를 최소한 일주일 이상 작성해 오도록 하면 환자의 수면패턴을 살펴보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객관적으로 수면 패턴을 확인하기 위해서 액티그래피(actigraphy)라는 센서를 손목에 착용을 한 채로 1-2주간 집에서 생활하면서 검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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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8-13
  • [성서연구]어떻게 빛이 나는가(출애굽기 34장 29절)
    미국 소설가 너새니얼 호손의 <큰 바위 얼굴>이란 작품을 아시지요? 남북전쟁 직후에 한 시골 마을에 살던 어니스트란 소년은 어머니로부터 바위 언덕에 새겨진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아이가 태어나 훌륭한 인물이 될 것이라는 전설을 듣게 됩니다. 어니스트는 그런 사람을 만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자신도 큰 바위 얼굴 같은 부드러운 모습을 가진 사람이 되기를 기대하면서 진실하고 겸손하게 삽니다. 많은 세월이 흐른 후 돈이 많은 부자, 전공을 많이 세운 장군, 유명한 정치인, 글 잘 쓰는 시인들을 만났지만, 큰 바위 얼굴처럼 훌륭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니스트의 설교를 듣던 시인이 어니스트가 바로 큰 바위 얼굴이라고 외칩니다. 하지만 어니스트는 자기보다 더 현명하고 나은 사람이 큰 바위 얼굴과 같은 용모를 가지고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작가는 위대한 인생은 돈이나 명예나 권력 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언행이 일치하는 진실한 삶에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본문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큰 바위 얼굴 같은 사람이었음을 말씀합니다. 모세는 시내산에 올라가서 하나님과 함께 있으면서 십계명을 비롯한 율법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모세가 십계명 돌판을 받아 내려올 때 모세의 얼굴에서는 광채가 났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자신의 얼굴에서 광채가 나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후에 그는 백성 앞에 나갈 때는 얼굴을 수건으로 가리게 되었습니다.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면서 많은 후보가 얼굴을 내밀고 있습니다. 후보들은 국민에게 큰 바위 얼굴처럼 보이길 원할 것입니다. 얼굴에 빛이 나길 원할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장점과 지금까지의 다양한 경력을 자랑합니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되면 국민을 위해 많은 정책으로 훌륭한 봉사를 하겠다고 다짐합니다. 과연 국민들은 그들의 얼굴에서 광채를 볼 수 있을까요? 이들의 모습은 모세의 경우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첫째는 후보들은 스스로 자기 얼굴에 빛이 나게 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모세는 자기 얼굴에 빛이 나게 하려는 노력 따위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백성 앞에 내려올 때까지 자기 얼굴에 빛이 나는 것을 알지도 못했습니다. 출애굽기 34장 29절 후반부를 보면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고 되어 있습니다. 얼굴에 빛을 내려고 노력하지 않고 자신도 모르게 빛이 날 때, 그게 진짜입니다. 둘째는 후보들은 자신에게서 빛이 나게 하려고 여러 가지 신경을 씁니다. 넥타이 하나까지도 세심하게 준비합니다. 말도 품위 있게 해 보려고 노력합니다. 국민의 귀에 닿는 공약을 준비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모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난 것은 여호와와 말하였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34장 29절을 보면 <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모세의 손에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하였음으로 말미암아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호와와 말하였음으로 말미암아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는 것>이 진짜입니다. 하나님의 빛이 모세의 얼굴에 옮겨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빛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빛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언제부터인지 한국교회 안에 외모를 보는 경향이 많아졌습니다. 목회자를 청빙할 때도 가문, 학벌, 외모, 경력 등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인지,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만 중시합니다. 저는 종종 매우 훌륭한 조건을 갖춘 목회자가 부임했음에도 교회와 목회자가 어려워지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여호와와 말하는 것>, 즉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가 핵심입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의 빛이 그의 인격과 삶에서 배어나고, 하나님의 향기를 풍길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을 드러내지도 않고 모세처럼 가릴 것이며, 그것을 자랑하지도 않고, 늘 하나님만 바라볼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런 성도가 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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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7-23
  • [시사칼럼]남겨진 시간을 위하여
    그분이 떠났습니다. 마지막 붙잡았던 손의 온기가 아직 남아있는 것 같은데, 시간은 참 무심히 흘러 벌써 달포가 지났습니다. “2001년 5월 31일, 꼭 기억해주세요. 제가 새롭게 태어난 날입니다.” 그랬습니다. 예전 나이로 치면 환갑을 지나 중생을 체험한 그는 20년 세월을 한결같이 살다가 새롭게 얻은 고귀한 두 번째 생일을 며칠 더 넘긴 어느 날 홀연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세상은 그를 잘 몰라도, 몇 차례 급습했던 병마의 가공할 기세조차 어찌할 수 없었던 불굴의 사람 장 집사님, 일천 명의 영혼을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비장한 사명을 이제는 우리에게 맡겨둔 채로 어쩌면 홀가분한 마음으로 천국 소풍을 떠나셨겠지만, 우리는 그가 몹시 그립습니다. 역사학자 피터 래슬릿(Peter Laslett)은 인생 단계들이 보통은 시간 순으로 진행되지만 반드시 살아온 햇수로 나뉘는 것은 아니라면서 ‘제3연령기(Third Age)’라는 표현을 제시했습니다. 이는 앞선 두 단계와 달리 생물학적 나이나 개인적인 성취를 초월하는 몇몇 행동 요소를 기준으로 삼는데, 앞선 사례와 같이 비교적 노년의 때에 극적으로 맞이하는 신앙적 회심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 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제3연령기가 점차 부각되고 있지만 모든 사람이 이 단계를 유의미하게 거치지는 못하고 있고, 현대사회 역시 새로운 이 개념에 부합하는 구체적인 지침이나 제도를 내놓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한 노인의 죽음을 계기로 이 문제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이유가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 사회가 이미 고령사회(Aged Society)로 진입했기 때문입니다. 65세가 넘은 인구가 전체의 14% 이상을 차지할 때를 말하는데, 대부분의 제3연령기가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재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시기를 선용하지 못하고 허송세월하기 일쑤입니다. 둘째는 ‘코로나 블루(Corona Blue)’” 현상 때문입니다. 한 바이러스가 초래한 세상은 특히 노년층에 심대한 타격을 주었습니다. 훗날 제대로 된 학술적 조사가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개인적으로 최근 노년층의 일반 장례를 상당히 많이 치렀습니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사회분위기와 외부 활동의 저하 그리고 교류 단절로 인한 고독감 등도 영향을 끼치지 않나 생각합니다. 사실 요즘 모두가 ‘실버 쓰나미’를 두려워합니다. 유례없이 길어진 인간 수명과 그로 인한 인구 초고령화 현상이 우리 사회를 한 순간에 무너뜨릴 거라는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1980년 서구에서 처음 사용된 이래 오늘날 이코노미스트, 워싱턴 포스트 같은 언론지나 뉴잉글랜드 메디슨 저널 같은 학술지는 물론 정부 문서에까지 하루가 멀다 하고 등장하는 개념입니다(루이스 애런슨, ‘나이듦에 관하여’(Being)). 물론 우리 모두는 언젠가 인생의 마지막 국면인 “제4연령기”에 도달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준비하는지가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나이듦이 마냥 두려운 쓰나미만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아직도 눈에 선한 장면을 추모의 마음으로 회상하면서 글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감염병 사태가 발생하기 직전까지 먹을거리들을 잔뜩 챙긴 채로 인근 중학교 하교 시간에 매일 출근하다시피 손주뻘 아이들에게 사랑과 복음을 전하시던 장 집사님께서 마지막으로 제게 남긴 말씀은 이랬습니다. “이제 나 대신 맡아주시겠습니까? 그리고 슬퍼하지 마세요. 나는 천국으로 갑니다. 거기서 다시 만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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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7-23
  • [부산기독교이야기]구호활동에 나선 선교사들 7, 최의손
    부산 거제리에서 포로들을 대상으로 구호 및 선교활동을 전개한 또 한 사람이 윌리엄 치솜(William H. Chisholm, 1885-1951), 곧 최의손 선교사였다. 미국 미시간주 에머슨(Emerson)에서 1894년 2월 1일 출생한 최의손은 치과의사가 되어 샌프란시스코 해군병원에서 근무하던 중 한국에 의료선교사가 필요하다는 소식을 듣고 미국북장로교 해외선교부에 의료선교사를 자원하였고, 1923년 10월 9일 부인 베르타(Bertha Cowell)와 함께 북장로교 의료선교사로 내한했다. 평북 선천지부로 배속된 그는 미동병원(美東病院, In His Name Hospital) 제3대 원장으로 부임하여 1940년 3월 한국에서 떠나기까지 16년간 활동했다. 미국에서 1920년대 이후 신학논쟁이 일어나고 그 결과 북장로교에서 분리하여 1936년 6월 ‘정통장로교’(OPC)가 조직되었는데, 최의손은 1940년 3월 북장로교를 탈퇴하고 정통장로교로 이적하면서 병원장직을 사임하게 된다. 그는 사회적 약자에게 관심을 가졌던 의사였고, 직접적인 복음전도에 관심을 가졌던 선교사였다. 그래서 그는 선천과 그 주변을 순회하며 전도활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전운이 감도는 시기, 출국을 권고 받고 1940년 3월 한국을 떠나 본국으로 돌아갔다. 그는 미동병원에서 일하는 기간 동안의 자신의 의료 활동 경험을 나누기 위해 뉴욕에서 발행되던 주일학교신문(Sunday School Times)에 한국에서의 의료 활동에 대한 연재를 한 바 있는데, 이 원고는 1938년 한권으로 묶어 출판되었다. 그 이후 이 책은 여러 판본으로 거듭 출간되었는데, 그것이 ‘한국에서의 생생한 경험’ Vivid Experiences in Korea이란 책이다. 이 책은 2006년 『청진기와 상경에 담긴 새 생명』이라는 제목으로 역간되었다. 1940년 한국을 떠난 이후 다시 돌아오지 못했던 그는 1947년 다시 독립선교사로 내한하였고 부산에서 활동하게 된다. 이 기간 동안 고려신학교와 부민동의 고려고등성경학교에서 가르쳤다. 그러던 중 6.25 전쟁이 발발하였는데, 이 기간 동안 부산에서 포로선교에 헌신하게 된다. 그에게 있어서 구제활동은 물질적 측면에서 볼 때는 미약했다. 도리어 의료지원이 그의 중심 사역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 포로들을 진정한 형제애로 대하면서 그들의 필요를 체워 주고자 노력했다. 그의 포로전도에 대해서는 대한예수교장로회 계약 측의 서울 신촌 창광교회의 이병규 목사의 증언이 남아있다. 창광교회의 ‘빛의 소리’ 1996년 5호에 게재된 그의 증언에 의하면, 그가 부산에 체류할 때 최의손 선교사와 더불어 포로들을 위해 전도했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6.25 사변 때 포로수용소가 두 곳 있었는데 거제도 거제리라는 곳에 하나 있었고 또 부산 동래 거제리라고 하는 곳에 하나 있었다. 부산 거제리 포로수용소에 최의손 선교사와 목사님 몇 분이 약 2년간 전도 했다. 그중에 처음에는 다 인민군으로 나왔으니까 믿는다고 하지 못하고 나왔지만 우리가 전도하는 가운데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또 성경책도 많이 배부를 했고 수용소 안에 들어가서 성경공부도 시켰다. 그래서 그분들이 이승만 대통령이 포로 석방할 때 한국에 많이 석방돼서 신학교 하고 목사 된 사람도 많다. 포로수용소에서 전도한 보람을 느끼고 있고 여자들도 포로가 있었는데 그분들도 석방이 되어서 전도부인(전도사)으로 일하며 교회에 충성하는 사람도 많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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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규교수의 역사탐색
    2021-07-23
  • [은혜의 말씀]성전된 자기 육체(요 2:13-22)
    갈릴리 가나에서 물이 포도주 되는 기적을 행하신 예수님께서 유월절을 맞아 예루살렘에 오셨습니다.(13절) 그런데, 본문에 나타난 예수님의 모습은 평소의 이미지하고는 너무 다릅니다. 분노하시며, 채찍을 휘두르시고, 사람들을 내쫓고, 상을 뒤엎고, 큰 소리로 야단을 치시는, 무서운 예수님으로 나타납니다. 왜 그러실까요? 당시의 유월절 모습을 보면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14-16절) 유월절은 이스라엘 전역은 물론이고, 다른 나라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까지 다 예루살렘 성전을 찾아옵니다. 그런데, 먼 지역에서 오는 사람들이 자기 집에서부터 제사 드릴 짐승을 끌고 오기란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성전에서 제사에 쓸 짐승을 사고파는‘매매’가 성행하게 되었습니다. 또 하나는, 성전에 입장하려면 ‘종교세’를 내어야 하는데, 세겔이라고 하는 유대 돈만 받습니다. 그러니, ‘환전상’이 성전 안에 진을 치고 앉아서 장사를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부패 구조를 보시면서 참을 수 없으셨던 것입니다. 예배를 드려야 할 거룩한 곳이 욕심을 채우는 시장 바닥이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돈 벌기에 눈이 멀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의 이 모습이 오늘날 교회에도 있습니다. 바로 편의주의입니다. 요즈음 날씨가 조금만 안 좋아도 예배 숫자가 확 줍니다. 주일 낮 예배에 한 번 참석하는 것으로 예배생활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교인들이 왜 대형교회를 선호합니까? 또, 가나안 신자가 급증한다고 합니다. 그런 편의주의는 우리의 영을 죽이는 것입니다. 두 번째, 잘못된 점은 물질주의입니다. 유대교는 제사장들의 돈 욕심 때문에 망했습니다. 한국 교회가 교단이 이렇게 난립하고 장로교단만 백 개가 넘는 이런 부끄러운 일이 왜 발생합니까? 결국은 지도자들이 눈이 어두워서 틈만 있으면 쪼개어 나갔기 때문입니다. 돈 때문에 교회 안에서도 내분이 일어나고, 그래서 이웃 주민들에게서 손가락질을 받고, 전도의 문을 닫아버리는 그런 일은 정말 하지 말아야 합니다. 유대교의 부패상을 보면서 우리가 깨닫는 것은 교회가 교회다운 본질을 잃지 말아야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교회는 이런 잘못을 범하는 교회, 편의적이고 물질적인 교회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사모하는 교회, 복음의 본질을 회복하는 교회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 성전을 깨끗케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님께 묻자(18절),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19절) 그리고 이 말씀의 진의가 무엇입니까?(21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이제는 구약의 성전이 아니라 신약의 교회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교회라고 하니까 자꾸 건물을 생각합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교회는 바로 여러분입니다. 이렇게 예배로 모인 모임이 교회입니다. 교회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그리고 교회인 우리는 이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하는 증인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모신 성도는 이 시대를 책임져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여러분은 성령의 전입니다. 여러분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께서 임재해 계십니다.(고전 3:16) 우리 몸이 성령의 전이기에,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기에, 예수님을 닮은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번 한 주간도 세상 속에서 참 그리스도인으로, 작은 예수로,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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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7-23
  • [서임중 칼럼]이슬은 밤에 내린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이슬이 하늘에서 비처럼 내리는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이슬은 지표면(地表面) 가까이의 풀이나 물체에 공기 중의 수증기가 응결되어 생긴 물방울인 것을 우리는 익히 잘 알고 있다. 즉 야간의 복사냉각(輻射冷却, radiational cooling)에 의하여 기온이 이슬점 이하로 내려갔을 때 생기는 것이다. 그런 이슬은 비록 그 양이 많지는 않지만 식물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특히 사막지역 등지에서는 식물의 생육에 지대한 공헌을 한다. 성경에서 비유적으로 이슬(Dew, 露)이 사용될 때도 몇 가지 의미를 갖는다. 첫째는 축복의 의미로 조용히 내린 이슬이 갈한 식물을 적셔 초목에 생명을 줌과 같다. 둘째는 덧없는 표상으로서의 이슬로 해가 돋으면 금새 증발하여 사라짐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바알과 우상을 섬길 때 하나님은 그들이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이슬과 같으리라고 경고하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축복의 이슬이 되신다는 말씀이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오늘 우리의 삶에도 하나님의 은혜는 이슬과 같다.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은혜는 살리는 생명이 된다. 초목이 자라는 데는 물이 필수적이다. 그러므로 비가 내리지 않는 메마른 광야에서 이슬은 없어서는 안 될 필요 불가결한 요소이다. 팔레스틴 지방의 식물과 초목에 있어 이슬은 그야말로 생명과도 같은 것이다. 이슬은 낮에 내리지 않고 밤에 내린다. 이와 같은 자연의 섭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우리 인생도 밤 같은 어두운 때가 있다. 역경과 환난, 고난과 아픔, 슬픔과 실패를 만나는 때가 그것이다. 이 때 우리가 기억할 것이 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이와 같은 때에 임하신다는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고난과 역경의 때는 그 자체만으로 볼 때는 불행이며 절망이다. 그러나 결코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시냇물 소리가 아름답게 들리는 것은 그 물 아래 미처 보지 못한 수많은 크고 작은 돌들이 있기 때문이다. 돌이 없는 골짜기를 흘러가는 시냇물은 소리가 없다. 안개 짙은 섬은 에메랄드가 생성되기에 가장 좋은 환경이다. 먹장구름이 하늘을 덮었다고 태양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구름이 걷히면 태양은 다시 온 대지에 빛을 뿌린다. 제비가 보이지 않는다고 모든 제비가 죽은 것이 아니다. 겨울이 가면 제비는 봄과 함께 다시 돌아온다. 추운 겨울이라고 앙상한 모든 나무들이 죽은 것이 아니다. 봄 돌아오면 앙상한 가지마다 새순이 돋고 새 생명이 약동한다. 세상살이가 날마다 좋기만 하겠는가? 아니다. 곤고한 날, 실패의 날, 외로운 날, 아픈 날, 고통의 날도 있다. 그런 날은 우리 인생의 밤이다. 이 밤 같은 때에도 하나님의 은혜는 이슬처럼 내린다. 캄캄한 밤일수록 빛이 더욱 찬란하듯 우리 인생도 캄캄한 밤일 때에 하나님의 광명한 진리의 빛이 더욱 보인다. 내 영혼이 어두울 때 은혜의 빛이 보인다. 내 삶이 지쳐 어두운 밤 같을 때에 하나님의 은혜의 이슬이 내리는 것이다. 안동에서 목회를 할 때 대학교수로서 한국 농학(農學)의 권위자인 조 박사님이라는 분이 계셨다. 어느 날 갑자기 그가 쓰러져 반신불수가 되었다. 그와 그의 가족들에게 있어 이 일은 어두운 밤과 같은 상황이었다. 대학 강단에도 설 수 없는 처절한 상황에 앞이 보이지 않고 살 소망이 끊어졌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절망의 때에 조 박사가 하나님의 품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의 아내는 주님만을 의지하며 오직 믿음으로 남편을 내조했다. 예배 시간이면 눈물이 얼굴을 적셨다. 축도를 마치고 내려가면 나는 왼손으로 그의 어깨를 감싸고 오른손으로 머리에 안수를 했다. 은혜의 이슬이 메마른 그의 영혼을 적셨고 예수 안에서 새 생명의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메마른 광야 같은 삶의 현장에 하나님의 은혜가 이슬처럼 임하며 기적이 일어났다. 그는 걷고 말하며 다시 강단에 설 수 있게 되었다. 모든 것이 회복되면서 잃었던 영적 생명을 다시 찾았다. 칠흑 같던 잠깐의 어두움은 새 빛에 물러갔고 그들은 안수집사님으로 권사님으로 아름답게 교회를 섬기며 교수로서 존경받는 사명도 잘 감당하셨다. 필요악이란 말이 있다. 파괴는 건설의 어머니란 말도 있다. 파스칼의 병약함은 모든 사람의 심혼을 정화시키는 ‘팡세’를 세상에 내놓게 했다. 십여 년을 결핵성 골수염으로 투병한 미우라 아야꼬의 고통은 인간의 본질을 깊이 파헤친 ‘빙점’의 명작을 쓰게 했을 뿐 아니라 병상에서 영생할 수 있는 신앙을 얻게 했다. 부서진 질그릇 같은 훼니 제인 크로스비, 남의 실수로 눈이 멀어 평생 시각장애인이 된 그 가냘픈 여자는 하나님의 은혜의 이슬을 맞으면서 수많은 찬송시를 썼다. 질고의 대명사 송명희는 공평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했다. 육신이 병들고 눈물을 음료로 대신하던 고난의 때를 지나며 살 소망마저 끊어졌던 나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이슬이 내렸다. 우상을 섬기는 가정의 아들인 내가 목사가 되었다. 목양길 걸으며 한 걸음도 더는 앞으로 내딛지 못할 것 같은 그 밤 같은 때에도 하나님은 이슬 같은 은혜를 내려주셨다. 그 속에서 나는 용서를 배웠고, 감사를 배웠고, 사랑과 소망을 배웠으며, 기도와 겸손을 배웠다. 그렇다. 우리의 삶이 상처투성이로 소망이 없을지라도, 오늘을 살아가는 삶의 자리가 메마른 땅일지라도, 비록 육신은 깨어진 옹기 같을지라도, 삶의 자리가 칠흑 같은 밤일지라도, 이슬처럼 내리는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살아가는 성도의 삶은 날마다 축복을 노래할 수 있다. 인생들 누구나 경험하게 되는 고난의 날들은 어두운 밤과 같지만 그 밤이 계속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어두운 그 밤에도 이슬은 내린다. 그러나 이슬이 내리지 않는 밤이 있다. 구름이 낀 날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죄악의 구름이 끼여 있으면 은혜의 이슬은 내리지 않는다. 이슬은 밤에 내린다. 구름이 없는 맑은 밤에 이슬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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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임중 칼럼
    2021-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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