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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칼럼]미세먼지로 인한 알레르기 피해, 이렇게 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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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날이 잦아지자 진료실을 찾는 환자들이 유난히도 힘들다고들 한다. 아토피피부염, 천식이나 알레르기 비염 등 소위 ‘알레르기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 공히 호소하는 목소리다.
최근 가장 큰 이슈는 누가 뭐래도 ‘미세먼지’ 일 것이다. 계절별로는 봄철과 겨울철에 황사 및 미세먼지가 집중되어 있다. 특히 봄철에는 각종 알레르기성 꽃가루가 날리기 때문에 알레르기 질환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최근 몇 년간 부산시 심평원 자료 분석에서는 봄철과 겨울철이 여름철 대비 비염 환자는 약 1.8배, 천식 악화는 약 1.3배 수준으로 대기질 상태가 알레르기 발병과 깊은 연관이 있다. 지역별로는 부산 중서부 지역이 남동부 지역에 비해 미세먼지 주의보 발령 수가 높아 해당 지역 주민과 학생들의 건강에 더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미세먼지는 피부에 흡착되는 것은 물론, 기관지나 폐, 혈관에까지 침투하여 아토피, 비염, 천식, COPD(만성폐쇄성폐질환), 고혈압, 치매 등 여러 만성질환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외부환경에 민감한 ‘알레르기 질환’을 가진 사람들은 미세먼지가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을 가장 빠르게 체감하고 있다.
미세먼지가 알레르기 질환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아토피피부염은 피부가려움을 동반한 습진이 만성적으로 나타나는 염증성 피부질환이다. 이 질환은 피부 장벽이 허술하기 때문에 미세먼지 속 오염물질이 피부 장벽을 잘 침투한다. 미세먼지는 피부 염증을 악화시키고 체내로도 흡수되어 전신의 면역 상태에 영향을 주게 된다. 이로 인해 환자는 가려워서 피부를 긁게 되고 긁은 피부는 상처를 받아 염증이 악화되는 악순환을 경험하게 된다. 이는 외모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수면장애, 집중력 저하, 정서적 불안 등과 같은 삶의 질 훼손을 초래하게 되어 정상적인 생활에 적지 않은 장애가 올 수 있다.
비염과 천식은 또 어떤가? 두 질환은 모두 상하기도 점막에 발생하는 만성 알레르기성 호흡기 질환이다. 흡입된 미세먼지는 호흡기 점막의 염증을 증가시키고 면역 세포 기능 변화를 초래한다. 이로 인해 콧물, 재채기, 가려움증 및 코막힘과 같은 비염 증상이 악화될 수 있다. 한편, 하기도에서는 기관지가 예민해 지고 기침, 천명 그리고 호흡곤란과 같은 천식 증상이 악화되며 지속적인 염증으로 폐활량이 감소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유소아와 노인은 면역력이 떨어져 있고 기관지가 약하여 미세먼지에 절대적으로 취약한 계층이다.
그럼, 미세먼지에 따른 알레르기 악화 예방을 위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요즘과 같이 ‘미세먼지’ 나쁨 단계가 잦은 기간에 개별 대응 방법으로는 실시간 미세먼지 농도를 확인하고 예보 등급이 높을 때는 외출을 자제해야 하거나 외출 전후 관리를 철저하게 해야 한다. 특히 천식을 앓고 있는 환자는 급성 악화를 예방하기 위해 보건용 마스크(식약처 인증-KF80, KF94, KF99) 착용, 천식 발작에 대비한 약물을 항상 소지하고 정확한 사용법을 익혀야 한다. 평소 생활 습관으로는 외출 후 손, 얼굴을 깨끗이 씻고 충분한 수분 섭취를 해야 하며 적절한 휴식을 취하도록 하자. 아토피피부염 환자는 보습제 사용을 게을리 해선 안된다. 실내는 깨끗이 청소하고 청결하게 유지하며 적절한 실내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자.
만약 충분한 관리에도 불구하고 질환이 악화되면 즉시 병원을 찾아 적절한 약물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 아토피피부염의 경우 가려움이나 피부 발진이 심해지면 피부 감염 등 합병증이 생길 수 있으므로 주치의와 상의해야 한다. 한편, 코막힘이 심해지고 누런 코 배출, 심해지는 기침이나 호흡곤란 등 비염 천식 악화 증상은 반드시 치료를 받아야 질환의 진행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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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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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말씀]두려워하지 말라(수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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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하솔을 중심으로 한 가나안의 북부 연합군과의 전투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북부 연합군의 규모가 얼마나 큰지, 4절에서는 ‘해변의 수많은 모래 같고 말과 병거도 심히 많았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당시의 최신예 병기인 ‘말과 병거’로 무장하고 있습니다. 갈수록 심해지는 적들의 연합과 저항은 이스라엘에게는 두려움 그 자체였습니다. 자, 갈수록 심해지는 가나안의 저항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교훈은 무엇입니까?
1) 믿음의 삶에는 항상 사단의 공격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4절)
그것도 갈수록 더 거세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이러한 적의 공격을 잘 파악해야 합니다. 우리는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코로나를 겪으면서, 사단은 이러한 상황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우리의 영적인 본질을 흩트리고 삶에 대한 두려움으로 우리를 움츠리게 만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 우리의 위기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기회라는 것입니다.(6절)
두려움 가운데 찾아오셔서 위로하시며 새 힘을 주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가진 것이나 나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무어라 말씀하시는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이는 상황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과 능력을 붙들어야 합니다. 인생의 위기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일하시는 기회입니다.
자, 그런데 하나님께서 가나안 군대를 여호수아의 손에 넘겨주시겠다고 하면서 여호수아에게 특별한 일을 지시하십니다.(6절) 여기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지요.
1) 이스라엘이 가장 두려워하는 말과 병거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해결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께서 해 주십니다. 우리에게 무엇이 가장 두려운지 아시는 주님께서 근본 원인을 제거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 하나님의 능력을 붙드시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2) 말과 병거를 남겨 그것을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시 20:7)
말과 병거는 능력의 상징이요 승리의 보증 수표입니다. 그러나 군사력을 믿게 되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내 힘을 자랑하게 될 때 하나님과의 관계는 끝이 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병거를 불태우라 말씀하십니다. 세상에 의지하는 것을 내려 놓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 바라보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나누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진짜 두려워 할 자를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두려움은 세상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눅 12:4-5) 여호수아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악의 세력을 진멸하였습니다. 능력이 어디서 옵니까? 순종에서 옵니다. 모든 성도님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역사의 주인공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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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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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 준비하는 과정이 복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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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가 행복이 되기 위해서는 과정의 축복이 필요하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다보면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게 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다소곳하고 얌전하게 하려고 한다. 신앙생활에서 제일 나쁜 것은 가만히 있는 것이다. 가만히 있는 사람은 은혜 받을 일도 없고 시험당할 일도 없이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식으로 서서히 무너지고 만다.
신앙생활에서는 소극적인 것은 비극적으로 결론 나기가 쉽다. 믿음의 사람들은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서 주님을 찾는 자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으면서 담대하게 나아가야 된다. 비전을 보고 무한 도전하며 적극적으로 응전해 나가야 된다.
믿음의 사람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고 정복하고 다스려야 된다. 가서 제자를 삼아야 된다. 일어나 건너가야 된다. 한계를 뛰어넘고 도약해야 된다. 우물 안의 개구리가 아니라 열방을 품는 우물 밖의 개구리가 되어야 된다. 그래서 두려워말고 무서워말고, 놀라지 말고, 염려하지 말고 낙심치 말고 적극, 담대, 용맹하게 부닥쳐 나가야 된다. 피하지 말고 정공법으로 나아가면 주께서 피할 길도 열어주시고 그때그때 일마다 때마다 감당할 새 힘도 주신다.
행사를 하게 되면 지레 부담을 느끼기 쉽다. 그러나 부담이 축복이고 스트레스가 양념이고 긴장감이 시간표를 팽팽하게 만들어 준다. 늘 마감시간에 쫓기면서 밤을 새워 준비하는 과정에서 작품이 만들어진다.
사람들이 함께 모여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를 모으고 구상, 착상, 발상, 상상력을 발휘하면 명품이 나온다. 수많은 날들을 연습을 하고 훈련을 하고 리허설을 하다 보면 시행착오 가운데 단련이 되고 조련이 되어서 작품이 탄생하는 것이다. 시간에 쫓기면서 부대끼며 행사를 준비할 때 정이 나고, 힘이 난다.
그 일이 주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사방에서 돕는 자들이 일어나고 물질이 지남철처럼 붙는다.
이번에 부산시 부활절연합예배를 준비하면서 하나님의 손길을 느꼈다. 부산 교계가 하나 되는데 다른 이유가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한 마음으로 밀고 나갔더니 사방에서 많은 분들이 도와주셔서 마침내 하나의 부활절 행사를 할 수 있었다. 두 달 가까이 밤잠을 설치며 고심하며 기획하고 연출한 결과 코로나 시국 한복판에서 치러진 부활절 연합행사는 전국에서 가장 풍성하게 진행되었다고 본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걱정거리도 많았지만 주께서는 합력해서 선을 이루셨다. 참으로 누가 부산시를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는지? 일꾼인지 말썽꾼인지? 보게 해 주신 것은 또 하나의 축복이다.
강한 사람은 훈련과정에서 만들어진다.
디모데후서 2장에 보면 은혜 안에서 강한 세 종류의 사람이 등장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병사와 면류관을 얻도록 경기하는 운동선수와 수고하는 농부이다.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은 엄청난 훈련과 노력이 동반된다는 것이다. 군인은 상당한 시간들을 훈련에 투자한다. 군에 입대를 하면 훈련소부터 들어간다. 하사관이나 장교가 될수록 훈련양이 많아진다. 그야말로 훈련 때의 땀 한 방울은 전쟁 시 피 한 양동이와 같다고 하지 않는가?
운동선수들은 순간을 위해서 평생을 훈련한다.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 경기에 출전을 하려면 평생을 준비하며 분초를 다툰다. 체중을 감량하고 엄청난 훈련양을 소화하며 근육을 만들고 기량을 일취월장 시켜야 된다. 한 가지만 문제가 생겨도 실격이 되고 메달을 박탈당하고 만다.
먹는 것, 자는 것, 움직이는 것, 모든 것을 훈련 프로그램에 넣어서 엄청난 하드 트레이닝, 파워 프로그램을 통과하며 선수가 양성되는 것이다.
농부는 춘하추동을 보내야 열매를 추수할 수가 있다. 이른 봄에 씨를 뿌리고 한 여름 무더위에 김을 매고 가을철에 추수기가 되면 분주하게 보낸다. 한창 일철에는 부지깽이도 일을 한다고 한다. 겨울철에도 농한기로 쉬지 않고 객토를 하며 묵은땅을 기경하고 거름을 넣어서 지력을 붇돋운다. 여름철 무성하게 자란 나무의 가지치기를 하며 세력 조절을 하고 나무의 형태를 이루어서 5년 뒤, 10년 뒤에 나무의 틀을 만들어 간다. 농부는 사시사철 땀 흘려 수고하는 것이다.
신부는 신랑을 위하여 꽃단장을 한다.
결혼식을 앞둔 신부는 몇 년 동안 웨딩사진을 찍고 드레스를 맞추고 피부관리를 하고 혼숫감을 장만하고 그야말로 꽃단장을 한다. 성경에 보면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기름병을 준비해서 도적같이 오실 신랑 되신 주님을 예비하였다. 이 모든 것을 준비하는 신부는 아름답다. 싱그럽다. 꽃단장이다.
신앙생활의 결론은 다시 오실 주님을 예비하는 것이다.
신앙생활의 마지막 축복은 재림이다. 환난과 풍파가 많은 이 세상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면 고통은 끝이 나고 천국이 열린다. 그래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신앙생활의 종결이 재림이다. 이 세상에 모든 문제를 벗고 천국이 열리는 것이다. 성도는 고난의 현실에서 천국 소망을 가지고 인내할 수 있다.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은 우리를 데리러 다시 오시마 약속하셨다.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그때에는 부끄러움 없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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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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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기독교이야기]구호활동에 나선 선교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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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기간동안 전선에서는 물리적인 전투가 벌어졌지만, 후방에서는 ‘기아와 질병’에 맞서는 피난민 구호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전투라고 말한 것은 생존의 갈림길에서의 치열한 현장이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은 주택과 가족을 잃었고 삶의 터전을 상실했다. 건강한 남자들은 전쟁에 징집되었고, 나이 든 어른들은 남아 있는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하루하루 노동현장을 찾아야 했다. 여자들과 아이들은 보호받지 못한 채 주리고 기아와 질병에 노출되어 있었다. 이런 현실은 기독교회에는 전례 없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인도주의적인 활동은 시급한 과제였다. 바로 이런 현장에서 인도주의적 구호활동을 전개한 이들이 주한 선교사들이었다. 이들은 구호에 필요한 해외 자금을 모금할 수 있었고, 국제적인 혹은 미국의 여러 구호단체와 결연하여 민간 구호 활동을 전개할 수 있었다. 그 중심 지역이 부산이었다. 처음에는 서울을 떠난 피난민은 대전으로 집결하여 대전에는 최대의 난민보호소가 있었다. 그러나 전세가 불리하게 전개되어 대전이 함락되자 다시 대구로, 그리고 부산으로 이동하여 부산이 피난민의 마지막 안식처가 되었다. 따라서 선교사들의 구호활동의 중심지가 된 것이다. 정부도 이들을 관리하고 보호할 능력을 상실했다. 이런 현실에서 외국 선교사들의 활동은 시급한 요청이었다.
남민 문제에 유엔이 처음 관심을 표명한 것은 개전 한 달이 지난 7월 31일이었다. 유엔은 지원을 결의했고, 그로부터 한 달 후인 9월 1일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맥아더 장군에게 서한을 보내 비상식량, 의복, 임시거처를 제공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런 지원이 시급한 현실에서 다소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기독교계의 외원 단체나 구호 단체의 기여가 큰 역할을 감당했다. 배귀희 교수는 『옥호열』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썼다. “이 무렵 미국 선교사들의 존재는 한국인들의 삶과 기독교도 피난민들의 운명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비록 미국선교사 수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들은 피난민들이 필요로 하는 다양한 자원과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차량을 가지고 있었고, 외부의 지원 수단을 확보하고 있었으며, 지역교회들과 관계를 통해 구호 인력을 조직할 수 있었고, 미군 내에서의 영향력을 바탕으로 전시 활동에 대한 특별허가를 얻을 수 있었다.”
잠시 쉬면서 전쟁기 일화 한편. 부산에서의 구호활동 과정에서 생겨난 말이 ‘개판 5분전’이라는 말이다. 이 말을 개(犬)들이 뒤엉켜 혼잡한 사태를 말하거나, 상태, 행동 따위가 무질서하고 난잡한 것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전쟁의 아픔이 서려 있는 피난지 부산에서 생겨난 말이다. 구호 단체는 밀크 스테이션을 설치하고 영양 결핍으로 고통당하는 아이들에게 우유를 공급한 일도 있지만, 중앙동에서 보수동으로 이어지는 난민촌 주변에 큰 솥을 걸어놓고 때로는 죽을, 때로는 밥을 해서 무료 급식했다. 굶주림에 지친 피난민들은 아침 일직부터 그 주변에 죽 치고 앉아 급식시간을 기다렸다.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난투가 벌이저기도 했다. 그런데 급식소에서 조리가 다 되어 음식을 급식할 대가 다 되면, 급식소장은 “개판 5분전”이라고 외친다. 여기서 개판이란 밥솥의 뚜껑을 열기(開板) 5분전이라는 뜻이다. 곧 급식이 시작되니 줄을 서라는 신호였다. 이쯤 되면 지루하게 기다리던 주린 피난민들은 서로 먼저 밥을 타려고 아우성치며 혼잡한 무질서가 아비규환에 가까운 난장판을 이루었다. 이런 혼란이 개판 5분전부터 시작된다. 가난과 배고픔에 시달렸던 피난지 부산에서의 일이었다.
부산에서 구호활동에 매진했던 대표적인 선교사들이 아담스(Edward Adams, 1895-1965), 켐벨(Archibald Campbell, 1890-1977), 그리고 킨슬러(Francis Kinsler, 1904-1992) 선교사였다. 한국이름이 차례대로 안두화, 감부열, 권세열이었다. 이들은 모두 미국북장로교 선교사들이었고, 전쟁기 구화활동을 전개했던 중심 인물이었다. 안전을 위해 가족은 모두 일본 후쿠오카로 보내고 본인들은 한국에 남아 구호활동을 전개한 것이다. 이들은 긴급구호 프로그램을 만들고 실행했다. 이제 이들의 활동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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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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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연구] 나는 여호와이니라(레위기 22장 31-3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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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두개인들은 이성주의자이면서 현실주의자였습니다. 이들은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내세나 부활을 믿지 않았고, 당연히 이 세상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현실주의자였습니다. 이 세상밖에 없다고 생각하니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하려고 노력했고, 예루살렘의 부유한 지역에 주로 거주했습니다.
어느날 이들이 예수님께 이상한 질문을 했습니다. 한 사람이 후사가 없이 죽은 후 시동생이 형수와 결혼하여 또 후사가 없이 죽었고, 계속 동생들이 형수와 결혼했고, 결국 일곱 형제와 여인까지 모두 죽었는데, 부활이 있다면 나중에 여인은 누구의 아내가 되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이었습니다. 현실성이 전혀 없는, 단지 예수님을 곤란하게 만들 마음으로 한 질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대답하시면서 마태복음 22장 32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이 말씀은 본래 미디안 광야의 떨기나무에서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셨던 말씀입니다. 출애굽기 3장 6절을 보면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매>라 했습니다. 아브라함과 모세는 대략 7백여 년의 차이가 있습니다. 모세의 입장에서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수백 년 전에 죽은 조상들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었다...>라고 과거형으로 말씀하시는 게 맞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다>라고 현재형으로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영원히 살아계신 현재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도 죽은 아브라함이 아닌, 살아 있는 아브라함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즉 수백 년 전에 죽어서 사라진 아브라함이 아니라, 살아 있는 아브라함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는 말씀이 바로 이 뜻입니다. 사두개인들은 죽은 후에는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생각했지만, 아브라함은 죽은 후에도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현재형으로 말씀하시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세 번을 반복해서 말씀합니다. <나는 여호와이니라, I am the Lord.> 하나님께서는 <나는 여호와였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현재형으로 영원히 존재하십니다. 존재하셨던 분이 아니라, 존재하시는 분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신앙을 <사건의 모음>으로 이해하지 말고, <존재와 관계>로 이해해야 합니다. 사건으로 모음으로 이해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 일으켜 주신 특별한 일들을 모은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증거가 무엇일까요?>라는 질문에 대해 어떤 이는 자신이 경험한 기적 같은 몇 가지 일을 나열합니다. 간증집회에서 이런 현상을 많이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일으키신 놀라운 일들은 <과거>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자니>라고 했는데, 이것은 지나간 과거입니다. 출애굽, 홍해를 건넌 일, 아말렉을 이긴 것 등은 다 과거입니다. 중요한 것은 현재 내가 존재하고, 하나님께서 존재하시고, 그 사이에 사랑의 관계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 자체입니다. 예수님께서 유월절 만찬을 폐지하신 것도 그것이 과거의 출애굽을 기억하는 데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만찬은 예수님께서 몸과 피로 우리에게 현재적으로 임하여 계신 것입니다.
우리 신앙에 가장 큰 축복은 과거에 경험한 특별한 기적적 사건들이 아닙니다. 가장 큰 복은 <현재 하나님께서 나의 하나님으로 계시다>는 그 자체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있는 모든 곳에 함께하시고, 모든 상황에 우리를 도우십니다. <나는 너의 하나님이다>, 이것이 최고의 복입니다. 이 복을 누리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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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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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칼럼] 교회 부흥의 씨앗, 순교의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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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8일 김제 광활교회에서 열린 고 최원귀 집사님 순교자 등재 감사예배 설교를 하였습니다. 최원귀 집사님은 김익두 목사님의 부흥성회에 참석하여 은혜를 받고 예수님을 믿기 시작하셨습니다. 그 후, 일사각오 순교자의 믿음으로 1948년 7월 4일에 광활교회를 설립하고 오직 교회와 자유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사셨습니다.
그러던 중 6.25전쟁이 일어난 1950년 8월 15일 김제경찰서에서 온갖 폭행과 고문을 당하다가 철사줄에 묶인 채로 생매장을 당하여 순교를 하셨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얼마나 참혹한 삶입니까? 최원귀 집사님은 생전에 4남 2녀를 낳았는데 장남인 최대진 장로님이 동생들을 다 키웠습니다.
저는 그 분을 보면서 주기철 목사님의 아들 주광조 장로님을 만나는 것처럼 감격스러웠습니다. 최원귀 집사님의 아들들은 장로님이 되고 딸들은 권사님이 되어 다들 신앙의 명문가정을 이루었습니다. 그 자녀분들과 성도들 앞에서 설교를 하려고 하니 눈물이 울컥거려서 몇 번을 참았습니다. 이윽고 제가 순교자 기념등재증서를 드린 후에 차남 최광진 장로님이 인사말씀을 하시면서 아버지를 향한 글을 써서 읽으셨습니다. 그 글을 읽는데 제 가슴에서 끊임없이 눈물이 흘러 내렸습니다. 그 글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버지, 꿈에도 잊지 못할 6.25, 민족의 가슴에 아픈 상처를 냈던 6.25, 시간이 지나도 빈자리는 크고 가슴은 시리기만 합니다. 아버지 없는 빈자리에 때로 외롭고 때론 힘들었지만 돌이켜 보니 오늘의 우리를 여기까지 지킨 것은 아버지의 순교였습니다. 지나간 70년, 가난과 풍요, 고난과 성공이 수없이 교차했지만 가난 속에서도 비굴하지 않고 풍요 속에서 물질이 하나님이라 믿지 않고 고난 속에서도 끝까지 견뎌온 것은 아버지가 말없이 가르친 순교의 정신 때문이었습니다. 그동안 교회도 어지러워 곁길로 가고 우리도 세속화, 물질화, 영적 전쟁으로 힘들어할 때 그래도 주님의 몸이라 무너진 교회의 기둥을 붙들며 눈물로 지새워온 것도 아버지가 우리 가슴에 새겨준 순교의 교훈 때문이었습니다. 죽으면 살고 죽어야 살며 살아서 죽으면 죽어도 살고 죽어서 살면 영원을 사는 진리를 몸으로 가르친 아버지,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숲을 이루고 그 숲에서 많은 열매를 맺는 복음의 진리를 죽음으로 가르쳐 주신 아버지, 우리도 아버지처럼 살아 매일 순교적 삶으로 살고 아버지처럼 죽어 매일 순교자의 영광으로 사는 복되고 아름다운 후손들이 되겠습니다. 부디 하늘나라에서 평안히 영원한 생명을 누리시고 아직도 다 오지 않은 부활의 아침을 위해 조국과 교회를 위해 도고해 주소서...(하략)”
이러한 내용을 들으면서 그 분들께 너무 감사하였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실망하지 않고 각 교회에서 장로로, 권사로. 또 장손은 헝가리의 선교사로 간 집안을 이루었기 때문이죠. 초대교회 교부 터툴리안은 “순교는 교회 부흥의 씨앗”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청년시절의 소원이 순교였는데 그렇지 못해서 항상 빚진 자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우리가 순교를 하고 싶어도 순교할 수 없는 시대입니다. 그렇다고 순교를 너무 쉽게 이야기 하거나 아무데나 적용해서도 안 됩니다. 분명한 것은 이럴 때일수록 순교의 정신과 가치가 더 고귀하게 여겨져야 합니다. 우리 모두 진정한 순교의 정신을 회복하고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최원귀 집사님의 모든 후손들에게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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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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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신인류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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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혁명으로 촉발된 급속한 변화에 코비드의 비자발적 충격이 가해진 결과 현세에 거대한 격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신인류'가 생성되는 중입니다. 학술적으로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상식적인 관찰을 통해서도 무언가 새로운 인간형이 출현하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인지할 수 있습니다. 과연 현생 인류(호모 사피엔스)에게 어떤 일이 벌이지고 있을까요? 그렇게 해서 등장하게 될 궁극적인 인간형은 과연 무엇일까요?
자율적 인간(homo autonomous)을 먼저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최배근). 칸트가 말한 자율적 주체 개념이 아닙니다. 급속한 자동화 세상에 적응하는 신인(新人)이라는 의미입니다. 요즘 입장할 때 큐알(Q. R.) 코드를 입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핸드폰으로 비교적 쉽게 할 수 있는 과정이지만 이마저도 버거워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가게마다 늘어가는 키오스크(kiosk)는 어떻습니까? 커피 한 잔 아이스크림 하나 주문하려고 해도 기괴한 조형물 앞에서 겁부터 덜컥 나는 아날로그 세대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자동화에 익숙한 신인류들은 새로운 조류에 완벽하게 적응해서 온오프라인 공히 파도타기(surfing)를 만끽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스스로를 세상의 중심으로 여기고 스트리밍(streaming) 라이프를 즐기며 소비에도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fanshumer) 날마다 스스로를 업데이트(update)하며 살아갑니다. 오죽하면 이들이 만들어가는 경제를 '미코노미(miconomy)'라고 부르겠습니까?
유목민 인류(homo nomad)가 다음 차례입니다. 가축과는 무관한 신유목민을 뜻하는 이 말은 질 들뢰즈(Gille Deleuse)로부터 시작해서 최근 자크 아탈리(Jacques Attali)의 새로운 정의를 거쳐(L'homme Nomade) 이른바 '디지털 유목민'으로 수렴하고 있는 개념입니다. 과학기술문명의 발전으로 이전과 달리 시공의 제약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인류는 이제 컴퓨터와 인터넷의 엄청난 발전으로 인해 등장한 초연결사회(hyper connected society)에서 어느 시대 어느 장소든 마음대로 갈 수 있는 능력을 구비했습니다. 김난도 교수는 이렇게 등장한 신인류의 정체성은 더 이상 단수(myself)가 아니라 복수(myselves)로 존재하며 직장에 있을 때와 퇴근 후 그리고 일상에서와 SNS 상의 모습이 각각 다른 '멀티 페르소나(muli persona)'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늘 그러하듯 여기에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공존합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해묵은 질문이 공허와 불안과 함께 찾아오기 마련이니 말입니다.
공감형 인간(homo emphaticus)을 강조하는 추세는 따라서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근대 이후 해체와 탈구조화 현상 속에서 점차 피상적이고 파편적으로 변해가는 인관관계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급증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율적 유목민이 되어갈수록 고립감과 소외감은 심화되기 마련입니다. 인간은 결코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아니, 어찌 인류만이겠습니까? 환경생태학자 라이히홀프(Josef Reichhof)는 '모든 고등생물의 기본 토대는 공생이다"라고 강변합니다(Symbiosen, 8). 그러나 정보화혁명은 공감혁명을 수반하고 있습니다. 최근 선한 치킨집 주인을 "돈쭐내자"는 바이콧(buycott) 운동, 배구 선수에서 시작해 사회전분야로 엄청나게 파급효과를 일으킨 "학폭" 문제, 그리고 인천국제공항 정규직 전환 문제를 놓고 특히 MZ 세대를 들끓게 했던 이른바 "인국공 사태" 등은 모두 공감과 공정이라는 가치가 빚어낸 신인류의 자화상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의 출현입니다! 2015년 3월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스마트폰의 행성"이라는 기사를 통해 '포노 사피엔스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선언한 바 있습니다. 스마트폰이 뇌이고 손인 사람들, 이들은 2007년 1월 9일 탄생했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들고 나타난 바로 그 날입니다. 이들을 표현하는 말에서 마침내 무언가가 떨어져 나갔다는 사실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즉, 이들은 "호모"로 명명되어 왔던 구인류를 대체할 '포노'로 상징되는 신인류를 일컫습니다(최재붕). 미래학자 호세 코르데이로(Hosé Cordeiro) 역시 '포스트휴먼(posthuman)'과 '트랜스휴먼(transhuman)'이란 말을 선호합니다. 아, 그렇다면 이제 이들이 만들어 갈 세상은 도대체 어떤 모습일까요?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진리가 있습니다. 인류는 결코 진정한 창조주(Creator)가 될 수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설령 창조하는 능력이 있더라도 창조의 근원이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하기야 <호모>든 <포노>든 인류의 존재 자체가 절대적 창조주로부터 기인했음을 어찌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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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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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말씀] 십자가, 하나님의 능력(고전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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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이 되면 십자가를 떠 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십자가는 복음의 핵심이요, 기독교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시대가 변하고 사상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인데, 하나님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를 통하여 구원을 이루십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십자가에 대한 교리적 지식이 아니라, 십자가의 은혜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십자가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1. 십자가는 우리의 저주가 얼마나 큰지를 보여줍니다.(눅 23:33)
십자가는 원래 로마 사람들이 중죄인을 사형하는데 사용하던 형틀입니다. 이 십자가에 달린 사람은 저주를 받은 것으로 인식됩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 이 저주의 상징인 십자가에 달리셨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죄의 결과로 영원한 죽음이라는 벌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죄지은 인간이 받아야 할 벌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줍니다. 바로, 가장 고통스럽고, 가장 잔인하고, 가장 저주스러운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그 저주의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볼 때, 나는 죄 때문에 저 십자가에서 영원히 저주를 받고 죽어야 할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2. 십자가는 우리의 저주가 끝났음을 보여줍니다.(갈 3:13)
예수님께서 우리가 달려야 할 그 십자가에 우리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저주를 받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속량하셨습니다. ‘속량’ 이라는 말은 ‘값을 지불하고, 자유하게 하다’ 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값을 지불하시고, 우리를 자유케 하신 것입니다. 이제 십자가에서 우리의 저주는 끝났으며, 이제 우리는 죄인이 아니라 의인이며, 죽음이 아니라 생명이며, 지옥이 아니라 천국이 기다리고 있는 줄 믿습니다.
3. 십자가는 나의 정욕을 못 박는 곳임을 보여줍니다.(갈 5:24)
이제 중요한 것은, 그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하고, 나의 주인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체험한 성도는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삽니다. 무엇이든지 주님의 뜻에 맞추어 삽니다. 여전히 정욕대로 살고, 교만하고, 자기중심적이고, 내 생각대로 산다면 십자가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아는 사람은 주님 앞에 겸손히 엎드립니다. 무엇보다 성령으로 살아갑니다. 그 사람이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 아래 있는 성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이, 십자가에 자신의 정욕과 탐심은 못 박고, 오직 주님의 은혜로, 오직 주님의 사랑로, 오직 주님께 충성으로 살아가시는, 십자가의 사람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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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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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 칼럼] 빠르게 찾아오는 노안, 백내장 한 번에 치료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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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장시간 컴퓨터와 스마트폰 사용이 일상화 되어있는 현대사회에서는 나이가 들수록 시력이 빠른속도로 나빠지고 있다. 그리고 중.장년층에게 찾아오는 노안과 함께 백내장질환이 고령화 노인성질환이 아닌 전 연령층의 문제로 점점 이어지고 있다.
백내장은 시력이 나빠지면서 노화가 진행될수록 본래 정상적인 투명한 수정체에 이상이 생겨, 혼탁해진 수정체로 인한 눈앞에 시야가 뿌옇게 보이면서, 빛을 제대로 통과하지 못하고 사물의 가까운 곳과 먼 곳의 초점을 맞추는 수정체의 조절근육의 탄력을 잃게되어 초점이 흐려지는 노안과 함께오는 일반적인 노화질환 중 하나라고 볼 수있다.
백내장 증상이 의심되면, 빠른 조치를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눈부심과 눈의 침침함을 느끼는 백내장 초기증상에는 서둘러 반드시 전문의 진료를 받아 완벽한 치료를 우선적으로 해야한다. 노안과 백내장치료는 초기,중기,말기 등으로 발생시기나 질환증상에 따라 수술법이 다르며, 연령층 대상별 환자 각각 개인의 진단 후 전문적이고 알맞은 수술시행이 필요한 부분이다.
이전의 백내장 치료의 일반적인 수술방법은 단초첨 인공수정체를 사용해 원거리나 근거리 중 한곳만 초점을 정해 맞추는 방법으로 수술 후에도 돋보기안경을 착용해야하는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100세시대 현대사회에서는 단초점 수술방법의 단점을 보완한 다초점렌즈 인공수정체를 사용한 수술방법이 개발되어 원거리,중간거리,근거리를 동시에 볼수있고, 별도로 돋보기안경착용이 필요없이 노안까지 한번에 해결되어 중,장년층의 시력회복으로 활발한 사회활동으로 삶의 질을 더욱 높일 수 있다.
부산 밝은눈안과병원 정지원 병원장은 “ 최근 발생연령이 낮아지고 노안과 백내장환자가 점차 증가하게 되면서 다초점인공수정체 수술방법으로 노안과 백내장치료를 한번에 해결하게 되어 단축된 회복시기와 더욱 정확한 시력교정을 가능하게 된 수술법이 다양해져, 차별화된 전문적 진단과 케어가 더욱 필요해졌다. 특히 백내장환자들에게 증상에 따른 알맞은 수술의 최상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도록 세부적인 정밀검진과 종합적인 케어로 눈과 관련된 모든질환의 풍부한 수술경력을 갖춰진 병원을 잘 선택하는 것과 특히 백내장수술 후 눈의 안정을 취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장소가 중요하다”라고 전했다.
백내장∙노안수술을 한번에 해결을 가능하게 하는 진화된 수술방법으로 인해 가벼운 질환으로 생각하고 단순하게 넘기기엔 바람직하지 않다. 우선적으로 질환의 근본적인 치료개선 외 다른 합병증 또는 부작용확률을 줄이고 회복시기도 중요하기 때문에 수술 받기 전 환자들이 올바르게 선택하고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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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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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칼럼] 미투 – “너가 아니, 내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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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도 더 된 일이지만, 저는 그 날을 어제 일처럼 생생히 기억합니다. 그 친구는 그날도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고 있는 저를 학교 뒷문에서 조금 떨어진 골목길로 불러 온갖 욕설을 하고 머리를 때린 후 돈을 받고 보내줬습니다. 그런 일들을 종종 있었고, 그럴 때마다 저는 두렵고 수치스러운 마음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자연스럽게 그 친구와 멀어졌는데, 어느 날 TV에서 익숙한 그 아이의 얼굴이 보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10년도 더 지났고, 오랫동안 그 친구를 보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TV에서 그 아이의 얼굴을 보자마자 몸이 먼저 기억했습니다. 갑자기 그 때의 두려움과 수치심이 물밀 듯이 몰려오고 분노의 마음까지 생기는 것입니다. TV에서 그 아이를 볼 때마다 이런 감정이 생기고, 나는 아직까지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저 친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살고 있는 것이 너무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어 어렵게 용기를 냈습니다”
얼마 전, 한창 활동하고 있는 아이돌 가수를 상대로 학창 시절의 학교 폭력을 밝힌 ‘미투’ 폭로자의 증언입니다.
최근 우리 사회는 공직자 혹은 유명 연예인들의 ‘성문제’와 같은 주제의 미투를 넘어 학창 시절의 학교 폭력, 혹은 운동부들의 선수 폭력과 같은 주제의 미투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미투는 2006년 미국 사회 운동가 타라나 버그(Tarana Burke)가 성범죄에 취약한 유색 인종 여성, 청소년을 위해 제안했으며, 2017년 10월 폭로된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폭력 사건을 계기로 빠르게 확산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공직, 연예계, 직장, 학교 등에서 일어난 것을 SNS를 통해 자신의 피해 경험을 연달아 고발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미투(Me Too)는 “나도 고발한다”는 뜻으로 성폭력 피해 경험을 공유하며, 피해자들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며, 우리는 함께 연대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사건의 피해자들은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요?
아마 이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너가 내 마음을 알아? 아무도 모를거야, 찢기고 상한 내 마음을.”
당해보지 않은 자의 아픔을 누가 알 수 있을까요? 특히 어린 청소년 때에 생긴 마음의 상처, 집단 구타와 왕따로 인하 상처는 오래 갑니다.
여기서 우리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더 이상 이런 일들이 반복해서 일어나지 않기 위해 어떤 방법을 구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논의해야 합니다.
먼저, 가장 우선되어 생각해야 할 것은 ‘피해자 입장’입니다. 비록 시간이 지난 일이라 하더라도 상처와 아픔으로 남아 있는 피해자를 어떻게 돕고 치유해야 할 것인지,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동료들과 부모들의 입장도 고려해야 합니다. 학교 폭력이나 이와 비슷한 사건을 겪은 사람이 바로 내 옆에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사실 이들도 방법을 잘 알지 못할 수 있습니다. 내 자녀 혹은 동료가 이런 일을 겪었다면 무작정 분노하며 감정적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사회 기관이나 상담을 통해 도움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사회 구성원 모두가 미투로 인해 발생한 일들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나의 사건’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관심을 갖고 사회 구조화 시켜야 합니다.
미투 운동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명확하며, 피해자가 직접 용기를 내어 잊혀진 과거의 사실을 밝힌다는 점에서 결국 ‘사람’에 집중해서 ‘사람’을 살리고 회복시키는 데 힘을 쏟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고, 내면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아픈 감정을 읽어서 치유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한 가해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죄성과 사회 환경에 대한 문제점들도 짚어서 바로 세워야 할 것입니다.
결국 치유와 회복은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짐으로 일어나고, 그들의 아픔을 동의하고 이해하며 동시에 안아줄 수 있는 공동체가 있을 때 살아날 수 있습니다.
오늘 나의 주변에서 생겨나는 일들에 관심을 갖고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나 한 사람이 든든한 공동체가 될 때, 10년 후 일어날 수 있는 미투와 같은 사건을 오늘 미리 막을 수 있는 힘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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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