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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기독교이야기] 부산아동자선병원
    6.25 전쟁기 부산에 설립된 의료 기관으로 아동자선병원(Pusan Children's Charity Hospital)이 있었다. 아동병원은 부산에만 있는 자선 병원이었다. 전쟁이 발발하자 미국 제2병참기지 사령부 소속으로 부산에 체류하던 메컨 대위가 1950년 가을 전재(戰災)고아들을 치료하기 위해 부산 서구 아미동의 국립행복산육아원 구내에 의무실을 열었는데 이것이 후일 부산 자선병원으로 발전했다. 의무실은 얼마 후 부산 메소닉클럽의 후원으로 소아과 의원으로 발전했는데 이것이 앞서 소개한 바 있는 ‘부산무료소아과의원’이었다. 이 때의 원장이 내과 전문의 정구현 의사였다. 그러다가 1952년 1월 부산시와 경상남도 사회사업 연합회, 그리고 메소닉 클럽과 일반 유지 대표로 운영위원회를 조직하고 부산아동자선병원으로 개칭하고 부산시 소유 건물인 완월동으로 이전하였다. 1953년 5월에는 사단법인을 구성하였는데 이 당시 장기려 박사가 중심이 되었고, 그는 발기 취지문이 남아 있다. 1955년 8월에는 메소닉 클럽 주관으로 ‘미군대한원조’(AFAK: Armed Forces Assistance to Korea)의 건축자재 제공과 기독교세계봉사회(CWS: Church World Service)의 원조로 부산대학교 병원 구내에 100병상 규모로 건물을 짓고 이곳에서 진료했다. 주된 환자가 고아원에 수용되어 있는 아동들이나 일반 고아들과 극빈 아동들이었다. 이곳 부산아동자선병원을 위해 영국의 아동구호제단인 SCF(Save the Children Fund)은 매달 200파운드를 지원하여 주었다. SCF는 1919년 창설된 구호단체인데, 한국에서는 1953년부터 활동했고, 아동자선병원 외에도 여러 고아원을 후원하고 빈곤아동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였다. 1960년에는 송윤규(宋允奎, 1918-?) 의사가 원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한국의 초기 신학자인 송창근 박사의 장남인데, 함경북도 웅기에서 출생했다. 1944년 대구의전을 졸업하고 흥남질소비료공장 부속병원 소아과(1944), 용산철조병원(1951), 유엔규 야전병원(1951), 영연방아동구호재단 진료실(1953)에서 일하고 1955년 미국으로 가 4년간 내과학을 공부하고 귀국한 후 1960년부터 부산아동자선병원장으로 일하게 된 것이다. 1966년에는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0년대 초 아동자선병원의 현황을 할 수 있는 자료가 남아 있는데, 1963년 11월 1일 당시 미국 메노나이트교회 중앙위원회(MCC)에 보고된 자료이다. 메노나이트 중앙위원회 요원으로 한국에서 일했던 마벨 브랑크(Mabel Brunk)가 작성한 이 문서에 보면 병원 주소는 부산대학교 병원 구내인 아미동 2가 10번지였고, 원장은 송윤규 박사였다. 입원환자는 60-65명 정도이고 외래환자는 일일평균 50여명이었다고 한다. 직원은 총 62명인데, 종교별로 보면, 천주교인이 10명, 개신교 신자가 24명, 나머지는 비종교인이었다고 한다. 부산아동자선병원은 설립된 이후 1968년까지 어린이 27만 명을 치료해 주었다고 한다(중앙일보 1968. 10. 16). 이 해 11월에는 원장인 송윤규 박사는 새싹회가 수여하는 제12회 소파상을 수상했다. 그러다가 1971년에는 부산 아동자선병원은 기독교아동복리회(CCF)가 운영하던 ‘회복의원’과 병합되어 부산아동병원으로 개칭되었고 회복의원이 있던 부산시 서구 암남동 18번지로 이전하였다. 이곳이 바로 암남동 34번지의 송도 고려신학대학과 마주한 곳이었다. 이렇게 됨으로 아미동의 병원 건물은 국유재산관리법에 따라 부산대학병원에 양도되었다. 여기서 기독교아동 복리회의 회복의원에 대한 정리가 필요할 것이다. 본래 1955년 서구 초장동에서 ‘결핵요양소’로 출발했는데, 1957년 7월에는 아미동 2가 126번지로 이전하였고, 1962년 9월에는 서구 암남동 18번지에 4천여 평의 부지를 확보하고 1964년 2월 병원 건축을 시작하여 11월 5일 449평의 건물을 준공하고 1966년 부산아동회복의원으로 개칭했다. 아미동 부산대학병원 구내에 있던 부산아동자선병원은 바로 이 회복의원과 통합한 것이다. 1972년 5월에는 기존 회복의원 부지에 병원을 증축하여 총건평은 800평에 달했다. 이 병원은 여전히 자선병원이었고 사회복지시설에 수용된 아동들의 무료 치료하였다. 그러나 특별한 조원조달이 어려워 경영난에 직면하였고, 아동복리회의 지원 중단으로 재정난은 가중되었다. 1977년 1월에는 의료보호 2차병원으로 지정되고, 1979년 12월부터는 수련의 병원으로 지정되었으나 경영악화로 1992년 9월 30일 결국 폐쇄되고 말았다. 1980년대 이 병원에서 일했던 의사가 부평교회 박영식 장로였다. 그 동안 장기려 송윤규 김동수 박사가 이사장으로 일한 바 있다. 전란의 와중에서 육체의 아픔을 안고 고통당하던 아이들에게 의술을 베풀었던 부산아동자선병원은 40년 간의 사역을 마감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사람도 가고 병원 건물도 사라지고 아파트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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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규교수의 역사탐색
    2021-02-08
  • [교회학교를살린다] “최고의 교육과정, 성경을 알자3”
    요즘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많이 갖는 분야를 찾는다면 부동산과 주식일 것이다. 코로나19사태로 인해 전무후무한 지각변동을 겪으면서 사람들은 생존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어떻게 하면 자산 가치를 높일까 하는데 열중하다보니 단기간에 빠른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여겨지는 부동산과 주식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최근 들어 아파트 값이 천정부지로 올라가다보니 상대적으로 집값이 많이 오르지 않았거나 집이 없는 사람들을 ‘벼락거지’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만큼 부동산이 로또가 되어버린 현상을 나타내는 말일 것이다. 주식은 또 어떤가? 고등학생이 주식에 뛰어들면 주식을 뺄 때라고 하는데, 우리 집 고등학생이 주식에 관심을 갖고 이것저것 공부를 하더니 대학 진학보다 주식을 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얘기를 한다. 차라리 공부를 이렇게 열심히 하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데, 정작 본인은 매우 진지하다. 이처럼 부동산이나 주식이나 너도나도 광풍이다. 우리에게 경제문제는 생존이 걸린 문제이니 민감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사람들은 부를 쌓는데 그 어떤 때보다 관심을 갖고 있으며, 실제로 진지하게 이 분야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 그러나 어떻게 벌까 하는 데에는 눈에 불을 켜고 공부를 하지만 정작 왜 벌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이 많지 않다. 인생은 무조건 모으는데 있지 않고 왜 모으는지에 대한 깊은 사고가 필요하다. 그것이 인생관이고, 가치관이다.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남들이 하는 대로 무작정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기준점을 갖고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혼란의 때에 그 어느 때보다도 신앙인으로서의 기준과 가치를 갖고 살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생존비법이다. 그래서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우리의 생존비법을 담고 있는 최고의 교육과정인 성경으로 돌아가서 성경을 새롭게 다시 배워야 한다. 성경이 말하는 삶과 신앙의 가치와 기준으로 우리를 바로 세우지 않으면 우리는 여전히 세상적 논리에 이리저리 흔들릴 것이다. 우리가 성경을 보며 가장 많이 겪는 오류는 성경 속에서 인생의 성공 비결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마치 성경이 나의 개인적인 욕심을 합리화시켜주고 내 욕망과 이기심을 뒷받침해주는 책인 것으로 착각하고 내 입맛대로 성경을 가져다가 포장해서 왜곡하곤 한다. 때로는 정말 몰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대부분 그렇게 쓸 수 있는 본문이 아니라는 걸 한 두 번은 들어봤을 텐데도 자신에게 적용할 때는 거의 막무가내식이다. 그 대표적인 성경구절이 빌립보서 4장 13절 말씀이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 사도바울의 선언은 예수를 믿으면 돈도 많이 벌고 유명해지는 슈퍼맨이 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여기에서 ‘모든 것’은 우리가 잘 알 듯이 인간적인 성공이나 욕망성취가 아니다. 때로는 부유한 환경에서도 때로는 곤핍한 상황에서도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가 할 수 있고 견뎌낼 수 있고 감당해 낼 수 있는 ‘모든 것’이다. 이것은 곧 하나님의 능력으로 행하는 신앙인의 인내와 충성, 복음 전도와 형제 사랑이다. 하나님은 항상 일관되게 말씀하시는데, 인간은 자신의 편의대로 해석한다. 그래서 남이야 어찌되든 상관없이 내 인생의 욕망을 향해서 올인 한다. 하지만 신앙을 가지고 있고, 신앙으로 양육하는 우리라면 좀 달라야 하지 않을까. 세상의 부와 성공이라면 마른 낙엽처럼 쉽게 흔들리고 날아가는 우리의 마음을 성경의 가치관에 붙들어 매야 한다. 말씀을 제대로 배워야 한다.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믿음의 인물들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명을 감당한 사람들이지 하나님의 능력으로 세상적인 성공을 이룬 사람들이 아니다. 이 성경의 일관된 가치와 기준을 견지하며 성경을 배울 때 우리는 인생의 목적과 방향에 맞는 바른 길을 걸어갈 수 있게 된다. 신앙의 어른들이 성경을 잘 배워야 우리 다음세대들에게도 성경을 잘 가르쳐줄 수 있다. 성경은 배우고 또 배워도 배울 것이 있는 오묘한 책이다.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다 배웠다 생각하지 말고 계속 배워야 한다. 계속 배우고 계속 따르고 삶으로 구현해내야 한다. 그러면 우리의 모습을 보고 우리의 다음세대들도 저절로 따라오게 될 것이다. 오늘도 기도한다. 신앙과 삶에 괴리가 없기를. 신앙을 삶으로 살아내기를. 신앙이 아닌 것을 자녀에게 가르치지 않기를. 내가 말하듯이, 찬양하듯이 살아갈 수 있기를. 그것이 나의 자녀와 다음세대를 위해 줄 수 있는 최고의 기독교교육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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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2-08
  • [의학칼럼] 당뇨망막병증(2)
    ■당뇨망막병증이란? 당뇨 합병증 중 하나로 당뇨로 인해 망막의 모세혈관이 막혀 저산소증을 일으키고 혈관 주위에 부종과 출혈을 야기하는 안질환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실명원인 중 1위를 차지할 만큼 눈에는 치명적인 안질환입니다. ■망막이 무엇이며 기능은? 안구의 가장 안쪽을 덮고 있는 투명한 신경조직을 망막이라 합니다. 안구 내로 들어온 빛은 망막의 내층을 지나 망막의 시세포에 감지 됩니다. 시세포는 빛 정보를 다시 전기적 정보로 전환하고 이 정보는 망막 내층의 세포를 통해 시신경을 지나서 뇌로 전달 됩니다. 이러한 과정으로 우리는 사물을 볼 수 있습니다. 망막은 카메라의 필름과 유사한 작용을 하나 실제로는 카메라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정교하고 복잡한 과정을 통해 그 기능을 수행합니다. ■주요 증상은? 먼저 비증식성과 증식성 두 가지로 구분해서 볼 수 있습니다. 비증식성의 경우 작은 혈관들이 약화되기 시작하면서 혈청이 세어나오거나 막히게 되어 영양공급이 중단되는 상태가 될 수 있습니다. 이는 시력감퇴의 속도가 유난히 느린편이며, 당뇨망막병증 초기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증식성의 경우에는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못한 곳에서 신생혈관이 증식되는 것으로 이로 인해 출혈이 발생하게 되고 출혈로 인해 시력이 빠르게 감퇴되기 때문에 빠른 발견이 중요합니다. 초기의 경우 거의 증상이 나타나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날파리 같은 것들이 둥둥 떠다니는 듯 한 비문증, 광시증, 변시증, 시야흐림증세, 야간 시력이 떨어지는 증상 등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치료법은? 약물치료, 레이저치료, 유리체내 스테로이드 주입술, 유리체내 항혈관내피성장인자 주사 , 수술적 치료 등 환자의 현 상태에 따라 다양한 방법의 치료법이 적용 될 수 있습니다. 또한 현재는 당뇨망막병증에 대한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어 그 발생기전에 대한 이해가 많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당뇨병에 의해 나타나는 대사 이상을 차단하기 위한 많은 약물들이 연구 중에 있습니다. ■레이저 치료를 하면 시력이 떨어진다고 하는데 사실인가? 레이저광응고술은 시력 저하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시행이 됩니다만 그 부작용으로 레이저 치료 후 일부 환자에서 시력저하가 생길 수 있습니다. 대규모 연구 결과 시력표에서 1줄 이상의 시력저하가 11%, 2줄 이상의 시력저하가 3%로 보고되었습니다. 그러나 시력저하의 부작용보다는 레이저 치료를 해야 할 시기를 놓치고 나면 잃어버리는 시력의 위험이 더 크므로 담당의와 상의하여 적절한 시기에 레이저광응고술이 시행하는 것이 더 큰 이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뇨망막병증이 있는 여자, 임신해도 괜찮나요? 당뇨가 있는 여성은 임신을 하면 망막증이 나빠지거나 생길 수 있습니다. 당뇨가 있는 여성에서 비증식당뇨망막병증이 임신 중 생길 확률은 10%, 비증식당뇨망막병증이 증식성으로 나빠질 확률이 4%정도 됩니다. 임신을 계획하면 임신전과 임신 후 첫 3개월에 철저한 안과 검사를 받아야 하고. 간혹 임신으로 인해 레이저 광응고술을 받아야 할 정도로 망막증이 진행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따라서 임신 중에는 안과 전문의를 정기적으로 찾아 망막증의 진행여부를 꾸준히 확인해야 합니다. 잘 치료 받은 증식당뇨망막병증은 진행되지 않는 것으로 되어있으므로 임신 전에 레이저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혈당조절을 잘하면 당뇨망막병증을 늦출 수가 있나? 최근의 보고에 의하면 혈당 조절을 잘한다면 당뇨망막병증의 발생을 현저히 늦춘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당뇨환자들은 본인들의 혈당을 정상범위 안에서 잘 관리해야 당뇨망막병증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 환자들은 혈당조절이 잘 이루어짐에도 불구하고 당뇨망막병증이 진행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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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2-08
  • [성서연구] 이게 훈련입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도착했을 때 칠십오 세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후손과 땅의 복을 말씀하셨지만, 오래 기다려야 했습니다. 기다리다 지친 그가 사라의 제안을 받아들여 여종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은 것은 그가 팔십육 세 때였습니다. 그리고 약속의 자녀인 이삭을 낳은 것은 그가 백세가 되었을 때입니다. 정말 오래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삭도 자녀를 금방 얻지 못했습니다. 이삭은 사십 세 때에 리브가와 결혼했는데, 리브가가 쌍둥이 아들인 에서와 야곱을 낳은 것은 그가 육십 세 되었을 때였습니다. 본문에서 <이삭이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라고 했는데, 이십 년 동안 자녀를 기다리는 고통이 무척 컸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상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과 모리아산에서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드리려고 제단에 결박하여 눕혔을 때, 이삭의 심정이 어떠했는지에 대해 성경은 침묵합니다. 어쨌든 하나님께서 수풀에 준비하신 숫양으로 제사를 드리면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람들을 위해 미리 준비하시는 분임을 알았을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그곳을 <여호와이레>라 불렀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말씀하셨는데,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라고 하셨습니다. 이삭은 하나님께서는 미리 준비하시는 분이시고, 후손의 축복을 약속하셨으니, 자신에게 자녀를 즉시, 많이 주실 것이라고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리브가와 결혼한 후에도 이십 년을 기다려야 했으니, 왜 하나님께서는 즉시 자녀를 주시지 않으셨을까요? 첫째로, 기다림을 통해 믿음을 훈련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다림은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기다림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을 기르는 중요한 훈련입니다. 기다림을 통해 어떤 사람은 믿음의 줄이 끊어져 버리지만, 어떤 이들은 더 견고해집니다. 고통을 통해서 어떤 이는 탕자가 되고, 어떤 이는 성자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반드시 그대로 될 줄 믿고 기다리는 것, 이것은 믿음의 사람에게 필수입니다. 이삭은 기다림을 통해서 믿음으로 끝까지 하나님을 바라보는 삶의 방식을 터득해 나갔을 것입니다. 둘째로, 기다림을 기도로 승화시키고,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체험하도록 하기 위함이라 생각됩니다. 이삭은 리브가가 임신하지 못하자, <여호와께 간구>하였습니다. 만약 결혼하자마자 자녀가 태어났다면, 이런 간구는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기다림은 간절함이 되고, 간절함은 간구가 되어 하나님께 올려졌습니다. 이를 통해 이삭은 하나님의 사람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는 것임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성도의 삶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응답받고, 다시 기도하고, 다시 응답받으면서, 하나님과 깊은 교제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께서는 어려운 일이 생기면 <아, 하나님께서 나랑 대화하고 싶어 하신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여호와께 간구했더니 리브가가 임신했습니다. 이 일은 이삭이 하나님을 경험한 최초의 사건입니다. 모리아산의 체험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중심이었다면, 본문은 이삭이 중심이 된 하나님 체험이었습니다. 이삭은 이렇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기 시작했고, 이렇게 해서 믿음의 사람으로의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삭은 그 후에도 많은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흉년을 만났고, 그랄로 내려갔고, 그랄의 목자들이 우물을 빼앗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나중에는 에서와 야곱 사이의 갈등으로 마음의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온유한 마음으로 묵묵히 하나님 앞에서 살아갔습니다. 그가 이렇게 살 수 있었던 것은 영적 훈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도 기다리게 하시고, 간구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몰아넣으십니다. 거기서 하나님을 체험하게 됩니다. 기도를 체험하고 은총의 맛을 봅니다. 그 체험과 힘으로 성도의 삶을 지켜나가게 됩니다. 코로나19도 그런 의미에서 멋진 훈련장이 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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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20
  • [시사칼럼] 눈사람
    온천천을 걷다가 얼어붙은 연못 위로 아이들이 썰매를 지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우리 고장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 아닙니까? 북극 한파라 부를 만큼 차디 찬 날씨였지만 신나기만 한 아이들은 겨울왕국 동화나라 속 주인공들처럼 보였습니다. 묵묵히 그 모습을 바라보자니, 어릴 때 잠시 살았던 시골에 눈 내리던 어느 겨울날 꼬마였던 내 모습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마치 빙하마냥 영원히 녹을 것 같지 않던 얼음강물 위로 제대로 철사를 감아 만든 튼튼한 썰매를 타며 손발이 부르트도록 놀던 아득한 기억들. 그러다 보니 잊고 지냈던 추억들이 줄줄이 소환되었습니다. 뜻밖에 신학생이 되어 전도사 사역을 시작하면서 겨울이 오면 강이 얼어붙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시절도 있었더군요. 몇 번을 싸락눈이 내리고 새벽 차창 서리가 두꺼워져 가다 보면 홀연 강바닥에 얼음 카펫이 두껍게 깔리고, 그러면 아이들을 데리고 골목대장같이 썰매 타러 출정하던 재미가 제법 쏠쏠했었는데 말입니다. 눈이 내리지 않는 날에도 얼음썰매라 하지 않고 굳이 눈썰매라고 하는 걸 보면 우리네 마음속에는 눈(雪)에 대한 묘한 애착 같은 것이 있나봅니다. 그러한 일종의 ‘눈사랑’이 절묘한 ‘눈사람’을 만들어 내곤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폭설에 가까운 눈이 내리자 곳곳에 난데없는 오리들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알고 보니 오리 모양의 집게를 가지고 찍어낸 ‘눈오리’들이었는데, 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하는 유명 연예인들도 인증 사진을 찍어 올리자 순식간에 품절 사태를 빚었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경주에 있는 첨성대 모양의 조각도 등장했고, 앤디 워홀(1928-1987, 팝아트의 거장)의 오마주인지 모르겠으나 변기 모양의 작품도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뭐니 해도 설경의 백미는 눈사람 아니겠습니까? 바이올리니스트 모양의 눈사람도 등장했고, 때가 때이니만치 마스크 쓴 눈사람은 물론 페이스 쉴드(face shield) 쓴 눈사람 등 재치가 번득이는 다양한 설인들이 사람 사는 동네 곳곳에 나타났습니다. 올해 눈사람 중 압권은 ‘엘사’(겨울왕국)였습니다. 대전의 어느 카페 앞에 5시간에 걸쳐 만들었다는 이 눈사람 사진은 인터넷으로 순식간에 퍼져 나가 많은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이 걸작을 부수고 말았고, 이번에는 그야말로 난리가 났습니다. 어딜 가나 그런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지만, 가수 이적이 남긴 글은 잔잔한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폭설이 내린 다음날 거리를 걷다가, 길가에 놓인 아담한 눈사람을 사정없이 걷어차며 크게 웃는 남자친구를 보고, 결별을 결심했다... 저 귀여운 눈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파괴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고,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모습이 소름끼쳤으며, 뭐 이런 장난 가지고 그리 심각한 표정을 짓는냐는 듯 이죽거리는 눈빛이 역겨웠다. 눈사람을 파괴할 수 있다면 동물을 학대할 수 있고 마침내 폭력은 자신을 향할 거라는 공포도 입에 담지 않았다. 단지 둘의 사이가 더 깊어지기 전에 큰눈이 와주었던 게 어쩌면 다행이었단 생각이 들 뿐이었다.” 아이들은 눈사람이 추울까봐 목도리를 둘러주고 손에는 장갑을 씌워주기도 합니다. 동심(童心) 때문에라도 눈사람은 겉은 비록 차가울지 몰라도 속은 따뜻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반대로 겉은 따뜻할지라도 속은 차디 찬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른바 출국금지 조작 사건으로 나라가 시끄럽습니다만, 현재 실형을 선고 받고 수감 중인 검찰 세도가였던 당사자는 정작 반성한다거나 피해자들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한 적이 없습니다. 그뿐입니까? 생후 16개월밖에 되지 않은 아이를 알고 보니 다른 속셈으로 입양하여 학대하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 양부모 이야기로 온 세상이 들끓고 있습니다. 겉은 멀쩡한 사람이로되 속은 눈사람 아닌가, 그런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 모두 목사 가정의 자녀들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이번에는 그리스도인 전체가 이면적 눈사람이 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롬 2:29). 게다가 그 부모들의 정치적 성향 탓이라고 비방하는 일부 목회자들을 볼 때, 지금이라도 “큰눈이 내려주어서 다행”이라는 사람들이 속출할까 두려운 마음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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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20
  • [목회자칼럼] 돌려막기 사역이 아닌 돌아가기 신앙으로
    교계에서 사역을 탁월하게 잘 한다는 목사님들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한 교회에서 30년 이상 목회를 했고 괄목할만한 교회 성장과 건축을 이룬 분들이었다. 하나같이 말세에 고통의 때가 왔고 목회의 한계를 느낀다는 것이다. 사역의 욕심이 앞서고 현실은 열악하다보니 더 좋은 프로그램과 시스템을 찾게 되고 더 유능한 일꾼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본질적인 부분에 집중하기보다 무언가 색다른 것을 찾아 다니다보니 소위 돌려막기 사역이 된다는 것이다. 이 일을 하다가 잘 안되면 저 일을 하고 이 사람 하고 안 맞으면 저 사람하고 해 보고...... 돌려막기를 하게 되는데 경험상 돌려막기 사역은 시행착오만 늘고 반드시 망한다는 것이다. 아랫돌 빼서 윗돌괴기가 소용없다. 심각한 병인데 박카스 한병 마신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일회용 반창고를 붙인다고 중병이 고침 받는게 아니다. 조선명태 별것 없다는 말이 있다. 사람 별 사람 없고 교회 별 데 없다. 그래서 사람을 찾아서, 비법을 찾아서 다니는 것은 방황의 연속이요 돌려막기일 따름이다. 밖에서 답을 찾고, 사람을 원망하는 고약한 습성을 버려라. 잔머리 굴리지 말고, 효율을 따지지 말고 느려도 정도를 걸어라. 유사품을 사용하지 말고 정품을 사용하라. 엉뚱한 데 힘을 쓰지 말고 본질을 붙잡아라. 신변잡기에 정신을 빼앗기지 말고 핵심에 집중해라. 식당에 가서도 메인 메뉴가 나오기 전에 허접한 음식에 헛배를 불리고 나면 정작 맛있는 것은 먹을 수가 없다. 군살을 빼고 날씬하게 몸을 단장해라. 인생은 한번뿐이다. 재방송이 없다. 연습용이 아닌 생방송이다. 날마다 실제상황인 인생을 어떻게 엉터리로 보낼 수 있겠는가? 농담으로라도 헛소리를 주절대지 말고 진리를 찾고 정곡을 찔러라. 사람 눈치 보지 말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라. 의인의 길을 똑바로 걸어가라. 이리 갈까, 저리 갈까 방황하지 말고 주의 길을 가라. 쉬운 길, 편한 길, 유익한 길을 찾아서 기웃거리지 마라. 샛길을 찾지 마라. 지름길을 찾지 마라. 곁길로 빠지지 마라. 주의 길은 좁은 길이요, 협착한 길, 영문 밖의 길이다. 쉽고, 편하고, 넓은 길은 성도가 다닐 길이 아니다. 쉽고, 싸고, 좋은 것은 없는 법이다. 효율을 따지다가 하나님의 은혜를 다 쏟아버리지 마라. 부하려 하는자마다 올무에 걸리기 쉽다. 인생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끄심이 중요하다. 욕심과 두 마음과 의심은 버려야 될 마음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능력의 마음, 사랑의 마음, 절제하는 마음이다. 믿음의 근육을 길러서 믿음 찬 마음, 능력의 마음을 키워라.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아 사랑의 마음을 만들어라. 세월이 흘러갈수록 더욱 더 삼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근신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지나간 시절 많이 기웃거렸다. 충분히 방황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앗수르, 바벨론, 메데파사, 로마 제국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방황을 했다.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방황은 끝이 없다. 하나님 한분만 사랑하고 그 분 한분만으로 만족하고 그 분으로 즐거워하기까지 안정은 없다. 마음을 다하여 힘을 다하여 뜻을 다하여 하나님 한 분만을 사랑하기 전에는 참된 사랑을 알 수가 없다. 여러 가지 조건상, 없는 것이 많지만 그래도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기까지는 허무한 세월을 보낼 것이다. 하나님 한 분만으로 즐거워하기 전에는 행복도 안정도 없다. 헛된 일에 골든타임을 다 허비하고, 에너지를 소모한 것에 원통해 하라. 주의 일을 해야할 사명자가 엉뚱한데 힘을 소모해 버린다면 얼마나 안타깝겠는가? 사탄 마귀의 미혹에 빠져서 헛된 것에 매여 있음을 애석하게 생각하고 회개해야 된다. 언제까지 잘 몰라서 그랬다고 변명할 것인가? 경험이 없었다고 변명 할 수가 있는가? 어린애처럼 젖병이나 빨고 유치하게 투정이나 하는가? 시행착오를 줄이라. 반복적인 실패를 멈추어라. 코로나를 핑계대지 말라. 네가 해라. 직접 해라. 바로 해라. 사람을 찾아서, 일을 찾아서 돌려막기는 이제 그만하라. 본질적인 부분으로 돌아가라. 어려울 때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된다. 내 힘과 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새 힘을 주시고 지혜와 명철을 허락하실 때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사역을 감당할 수가 있다. 일마다 때마다 사명자는 곁길로 빠지지 않도록 정신을 차리고 주의 길을 걸어야 된다. 더 이상 사람을 찾아서 기웃거리지 마라. 더 좋은 것을 찾아서 방황하지 마라. 말씀과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면 주께서 좋은 것으로 채우실 것이기 때문이다. 돌려막기 사역이 아니라 주께로 돌아가는 신앙이 되어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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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20
  • [부산기독교이야기] 전영창과 복음병원의 설립
    6.25 전쟁기 설립된 또 하나의 의료기관이 복음병원이다. 처음에는 고신교회와 무관하게 전영창 선생에 의해 부산시 영도의 전차종점 인근의 제2영도교회 창고에서 시작되었으나 후에 대한예수교 장로회 고신총회로 편입되었고, 1957년에 현재 위치인 송도 암남동 34번지로 이전하였다. 1977년에는 종합병원으로 인가를 받았고, 1980년 고신대학교 의과대학이 설치되면서 대학병원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복음병원은 전쟁이 발발한지 6개월가량 지난 1951년 1월 15일 ‘복음진료소’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어 그해 말 곧 12월 23일 ‘복음의원’으로 개칭되었고. 꼭 1년 후인 1961년 8월 7일부터 ‘복음병원’으로 불리게 된다. 이 병원은 전영창 선생의 ‘경남구제호’로부터 시작된다. 전라도 무주 출신인 전영창(全永昌, 1916-1976)은 미국남장로교의 보이어(Elmer Boyer, 保伊烈, 1893-1976) 선교사의 도움으로 전주 신흥학교에서 수학하고 그 학교 교장이던 윌리엄 린튼(William Linton, 1891-1960)의 주선으로 일본 고베신학교에서 공부하게 된다. 해방 후 주한미국 군종실에서 근무하던 중 미 군목의 도움으로 1947년 미국 필라델피아의 웨스트민스터신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이 학교에서 1년간 수학 한 다음 미시간 홀란드에 위치한 웨스턴신학교로 옮겨가 신학을 공부했다. 이 학교는 미국개혁교회(RCA: Reformed Church in America)가 운영하는 학교였다. 졸업을 불과 두 달 앞두고 있을 때 조국의 전쟁 발발 소식을 듣게 된 그는 졸업을 포기하고 귀국을 결심하게 된다. 당시 학교는 졸업한 후 귀국토록 종용하였으나 전영창은 전화의 고통 속에 있는 조국을 외면할 수 없다며 자기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는 마치 라인홀드 니버 집에 체류하며 공부하던 중 전운이 감도는 독일로 돌아갔던 본훼퍼의 경우와 같다. 전영창의 애국심을 보고 큰 감명을 받은 웨스턴신학교는 그의 졸업을 인정해 주고 필요한 곳이 사용하라며 5,000불을 모금해 주었다. 전영창은 주변을 정리하고 미국을 떠나 1951년 1월 9일 미군 수송기를 타고 부산 수영비행장으로 귀국했다. 귀국한 그는 1월 15일 ‘경남구제회’를 조직하고 부산 제3영도교회에서 구호활동을 시작했는데, 부둣가에서 병든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가난한 피난민을 목격하고 병원설립을 결심했다. 이 때 전영창은 노르웨이의료지원단장인 넬슨 의사를 만나게 되는데, 그의 충고가 병원 설립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었다. 넬슨 의사는 5,000불로 항생제를 사서 피난민들에게 나누어 주면 얼마못가서 재정이 바닥이 나고 더 이상 일할 수 없으니 그 기금으로 병원을 설립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충고하고, 그럴 경우 매일 50인분의 약을 원조해 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는 또 대형 군용 천막 3개를 지원해 주었다. 그래서 전영창은 1월 15일 부산시 남항동 2가 46 제3영도교회 구내에 작은 진료소를 세웠는데 이것이 복음병원의 시작이었다, 이때 의사로 초빙된 이가 초량교회 출석하던 여의사 차봉덕 여사였다. 사실상 그가 첫 원장인 샘이다. 평남 평원군 출신인 차봉덕(車鳳德, 1921-?)은 평양 정의여학교를 졸업하고 1948년 경성의전(서울여자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이화여대 부속병원에서 수련의로 훈련을 받고 1948년 부산교통병원 산부인과 과장으로 일한 바 있다. 1950년 초에 초량동에서 ‘차산부인과 의원’을 개원하여 운영하던 중 전쟁이 발발하였고 다음 해 1월이 1.4후퇴로 엄청난 피난민들이 부산으로 밀어 닥치게 되자 전영창의 간곡한 요청을 받고 복음진료소에 가담하게 된다. 전영창은 뛰어난 영어실력으로 유엔군과 미군을 찾아 다니며 의약품과 각종 의료용품들을 조달하였고, 또 옥수수와 밀가루, 분유 등 구호품을 얻어 와서 텐트 밖에 솥을 걸고 끓여서 전재민들을 구제했다. 차봉덕 여사는 후에 역시 의사인 황영갑을 만나 혼인하고 진주로 이거하여 의료활동을 계속했고, 황영갑은 진주교회 장로가 되어 활동하던 중 부인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하였다. 황영갑은 ‘작은 불꽃’이라는 자신의 회고기가에서 부산 차봉덕이 전영창과 더불어 복음진료소에서 일한 첫 의사였음을 밝히고 있다. 울산의 고명길 목사는 이런 여러 자료를 근거로 복음병원의 역사를 재검토하여 잊혀진 사실을 바르게 정리한 바 있다. 전영창은 경남구제회 활동과 더불어 복음병원 설립자로 중요한 기여를 하였으나 모종의 고신교회의 지도적 인사와의 모종의 불화로 1953년 여름 복음의원을 떠나 거창으로 갔고 거창고등학교를 인수하여 교장으로 일하면 사회적 신망을 얻는 명문학교로 육성하였다. 필자는 1988년 멜버른의 장로교신학대학에서 유학할 당시 초빙교수로 왔던 웨스턴신학교 은퇴교수 유진 오스터하벤(Eugene Osterhaven) 교수를 만났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점을 알게 되자 그의 첫 마디가 “영창전을 아느냐?”고 물었다. 자기의 학생이었다고 했다. 그가 어떤 학생이었느냐고 물었더니 특히 스피치를 잘 했다고 대답했다. 37년이 지났지만 그는 한국인 제자 전영창을 기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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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규교수의 역사탐색
    2021-01-20
  • [교회학교를살린다] “우리의 딥스를 위하여”
    2021년 새해부터 코로나19로 인해 피폐해질 때로 피폐해진 우리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는 사건이 있었다. 소중한 한 아이가 양부모의 학대로 인해 숨진 사건이 TV를 통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보고 공분을 금치 못했다. 무엇보다도 기독교 가정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데서 기독교교육 학자 이전에 두 아이의 부모로서 충격과 슬픔을 가눌 수가 없었다. 여러 가지 감정과 분노를 일으키는 이 사건 앞에서 깊은 고뇌에 빠졌다. 과연 신앙생활이란 무엇이고, 신앙교육은 무엇인가 하는 기본적인 질문과 함께, 제일 많이 들었던 생각은 나는 과연 정말 좋은 부모인가 하는 반성이었다. 우리는 코로나19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러나 정작 자녀들과 함께 하는 이 소중한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며 자녀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가? 우리는 누구나 좋은 부모, 좋은 어른이 되기를 원한다. 그런데 아이를 잘 키운다는 게 도대체 뭘까? 배운 바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좋은 부모라 함은 자녀에 대해 집중하고, 자녀의 요구에 적절히 반응하며 자녀에게 필요한 것을 제 때 공급하는 부모, 자녀와 자연스럽게 대화하며 소통할 줄 아는 부모를 좋은 부모라고 생각한다. 참 이상적인 이야기이다. 그러나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인 사람이 어디 있는가?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완벽한 부모는 없다. 모두들 시행착오를 겪으며 부모가 되어간다. 한 소중한 아이가 목숨을 잃은 이 사건을 겪으면서 학부 때 읽었던 ‘딥스’라는 책이 생각났다. ‘딥스’는 당시 유아교육의 교과서와 같은 책이었다. 교육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부모라면 꼭 한 번은 읽어봐야 할 책이었기 때문에 수업시간에 과제로 읽었다. 이 책에는 어른들의 시선으로 볼 때 비정상이란 낙인이 찍힌 다섯 살 남자 아이 딥스가 놀이치료를 통해서 드라마틱한 변화를 겪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 처음에는 누가 봐도 이상한 행동 투성이였던 아이가 놀이치료과정을 겪으면서 자신을 이해해주는 상담교사와의 대화를 통해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게 된다. 그 과정에서 밝혀진 바는 이 아이가 매우 비범한 아이였고, 부모는 그 사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이전에 아이 부모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아이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고, 부모들이 먼저 상담 받아야 할 문제가 많은 이들이었다는 것이었다. 아이보다 사실은 부모가 치료가 더 필요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결국은 부모가 조금씩 변화될 때, 아이의 변화도 극적으로 일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후 15살이 된 아이가 단단한 소년이 되어 타인의 문제에 공감하며 적극적으로 나서는 용기 있는 모습을 보였다는 이야기를 아이를 치료했던 선생님이 듣고 뿌듯해 하며 이 책은 끝난다. 20살 남짓한 나이에 읽을 때는 탁월한 놀이치료 선생님이 눈에 띄었다. 부모가 역할을 못할 경우를 대비하여 탁월한 교사가 되어 어린 영혼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그 부모를 보며 혀를 차며 애 하나를 그렇게 못 키우나 비난의 화살을 날렸었다. 그런데 막상 부모가 되어 다시 이 책을 읽으니 스무 살 어린 나이에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커다란 두려움이 가슴을 내려치는 것 같은 고통으로 다가왔다. 너무나 두려웠다. 한 아이를 키우는 일이 이렇게 무서운 일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부모가 된다는 게 참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마냥 해맑게 자라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부모로서 본의 아니게 상처를 남기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 두려웠다. 그리고 지금, 다시 딥스가 떠오르는 날에 다시 한 번 부모 됨을 생각해본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선물인 사랑스럽고 총명한 딥스를 오해하고 잘못 키우고 있지는 않은가? 부모뿐만 아니라 신앙의 부모 된 교회공동체는 과연 우리의 다음세대들에게 충분히 좋은 부모로서 순기능을 다하고 있는가 돌아봐야 할 때이다. 코로나19 상황과 함께 맞이하는 2021년 새해는 우리에게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더욱 열심을 내어 서로 사랑하고 서로를 돌아보고 다음세대를 정성으로 양육하지 않으면 우리의 공동체는 쉽게 무너질 수 있다. 이 시국에 더더욱 신앙교육의 장으로서의 가정을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란다. 가정과 교회학교가 순기능을 할 수 있도록 교회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총동원하여 영양분을 공급해주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새해를 시작하면서 성민교회는 온라인 교육을 강화하기 위한 스튜디오 시설을 갖추고 성민가족TV를 시작하였다. 이를 통해 온라인에서 성도들을 만나고, 좋은 교육 자료를 제작,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교회는 부모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성숙한 양육자가 될 수 있도록 돕는 신앙의 어머니 역할을 해야 한다. 신년 벽두에 맞닥뜨린 끔찍한 사건이 신호탄이 되어 교회와 교회학교가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랑스런 딥스를 믿음 안에서 잘 양육하는 신앙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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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20
  • [의학칼럼] 위암의 예방과 조기 진단, 그리고 내시경치료(2)
    위암의 진단 위암은 1983년부터 시작된 국가암등록 통계에서 줄곧 발생률 1위를 차지하고 있고, 지금도 가장 흔히 발생하는 암입니다. 위암은 남자가 여자보다 2배 정도 많이 걸리며, 40세 이전에는 드물고 50세 이후에 발생하는데 주로 60대와 70대에 많이 발생합니다. 인구의 고령화에 따라 암 발생률이 비례하여 증가하지만, 한국인의 암 발생률이 3년 연속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우리나라는 국가 암 검진 사업으로 40세 이상 국민에게 위내시경 또는 상부위장관조영술을 2년마다 한 번씩 받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환자대조군 연구의 메타분석에서 위내시경 검진은 위암 사망률을 약 54% 감소시켰으며, 코호트연구 메타분석에서도 위암 사망률을 65% 감소시켰습니다. 하지만 상부위장관조영술의 국내 연구를 포함한 분석에서는 사망률을 감소시키지 못하였습니다. 선별 검사의 정확도를 분석한 연구 결과를 살펴 보면 위내시경의 경우, 민감도, 특이도는 69.0%, 96.0%로 상부위장관조영술의 36.7%, 96.1%에 비해서 높았습니다. 또한 사망률이나 장기 예후에 중요한 국소적 위암에 대한 위내시경 검사의 민감도는 65.7%로 상부위장관조영술보다 높았으며, 양성예측율도 위내시경이 6.2%로 상부위장관조영술보다 3.4배 높았습니다. 특히, 이러한 위암검진의 의의는 바로 예후가 좋은 조기위암의 진단 비율이 매우 높다는 점입니다. 2001-2007년 국립암센터에서 시행한 건강검진 대상자 18,414명 중에서 위암이 총 81명(0.44%) 진단되었는데, 이 중에 80%가 조기 위암이었습니다. 또한 증상이 없는 상태에서의 조기 위암 발견 분율이 약 40% 정도 더 많은데, 무증상 위암환자는 증상이 있는 위암환자보다 진행성 병변이 있을 확률이 더 낮고, 근치적 수술의 기회가 더 많고 생존율 또한 더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면 위 내시경을 언제부터 하는 것이 효과적인지 확인한 연구 결과, 40세부터 74세까지 무증상 성인을 대상으로 위내시경을 이용한 위암 검진을 2년 간격으로 시행할 것을 권고하고 있고, 75세부터 84세의 경우에는 연구결과로는 위내시경 시행의 이득과 위해의 크기를 비교평가할 만한 근거가 불충분하지만 실제 나이보다, 신체 나이를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며, 우리나라의 위내시경 접근성, 고령의 위암 환자에서 내시경절제술이나 외과적 수술(로봇수술이나 복강경 수술)을 고려할 때 위내시경을 시행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이득이 될 것으로 판단되며 10-20년 후면 가이드라인은 바뀔 것으로 판단됩니다. 검사 간격의 측면에서 살펴보면, 위암 발생률 위험도가 더 높은 집단에서 2년의 같은 검진주기를 일률적으로 적용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위암의 고위험군에 대한 관리가 다를 필요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위암 발생의 가장 대표적인 고위험군인 50세 이상 남성에서 장상피화생이 동반될 경우나 위암의 직계가족력이 있는 경우에는 1년 주기의 검사 간격을 고려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위암의 내시경 치료 위암의 치료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위암의 병기에 대해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특히 조기 위암과 진행성 위암에 대한 개념이 필요합니다. 위의 구조는 4층으로 나눠져 있는데, 이 중 2층인 점막이나 점막하층까지만 침범하고 근육층이나 장막층은 침범하지 않는 경우에는 우리가 조기 위암으로 정의합니다. 위암이 빨리 발견되었거나 선종에서 천천히 진행된 경우에는 내시경적 치료(내시경하 점막하 박리술)로 완치가 될 수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조기 위암의 경우에는 건강 검진 위내시경으로 진단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증상이 없는 경우가 많고, 증상이 있다하더라도 기능성 소화불량증이나 위식도역류질환의 증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내시경에서 조기 위암으로 진단이 되더라도 치료하기에 앞서 복부 컴퓨터 단층 촬영(CT)을 포함한 영상의학 검사와, 때에 따라서는 내시경 초음파(EUS) 검사를 통해서 주위 림프절 전이나 조기 위암의 침범 깊이를 확인하고 내시경적 절제술을 시행하게 됩니다. 내시경적 절제술 이후에도 뿌리가 깊게 나오거나 병리학적인 조직의 형태에서 따라서 추가로 수술을 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내시경적 절제술을 시행 받고 치료가 종결된다면 환자의 삶의 질 측면에서 거의 일상생활의 제한이 없기 때문에 환자의 만족도와 회복 속도가 빠른 장점이 있습니다. 결론 위암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암으로 예방과 조기 진단이 매우 중요하겠습니다. 헬리코박터의 감염이나 소금의 섭취가 위암의 원인으로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헬리코박터 제균치료와 저염식이가 위암 예방에 효과적입니다. 또한 우리나라 국가 암 예방 검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위내시경을 시행 받는 것이 조기 발견의 지름길입니다. 특히 크기가 작은 점막층에 국한된 분화형 조기 위암으로 진단된 경우에는 내시경 치료로도 완치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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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20
  • [성경인물탐구] 빌레몬의 노예, 오네시모
    본래 <유익하다>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오네시모는 빌레몬 집의 노예였습니다. 골로새에 사는 빌레몬은 부유한 사람이었고, 사도 바울을 통해 예수그리스도를 믿게 되고 온 가족이 독실한 신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집은 교회로 사용되었을 정도로 바울의 전도의 힘이 되어 준 사람으로 경제력이 풍부한 사람이었습니다. 노예 제도가 있었던 당시 사회에서의 노예는 그 사회의 중요한 노동력으로 모든 산업 활동에 그 기초를 이루고 있었고, 노예는 주인의 소유물로서 재산 목록에 들어가 있었으므로 주인은 노예를 마음대로 매매할 수도 있었고 사형시킬 권한도 있었습니다. 빌레몬의 가정에 노예 생활을 하던 오네시모는 주인 몰래 도망을 갔습니다. 당시 기독교인들도 노예를 소유하고 있었으나 일반 사람들과의 생활이 분명히 달랐습니다. 그들은 노예라고 할지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이것은 당시 사회를 배경으로 한 여러 가지 문학 작품들의 증언을 통해서도 알 수가 있습니다. 또한 당시 노예들이 도망할 때는 주인의 재산을 도적질하거나 주인의 처를 강간, 또는 주인의 자녀를 살해하는 일이 흔했다고 합니다. 독실한 신앙을 가진 빌레몬의 노예로 있던 오네시모는 주인 빌레몬의 돈이나 재산을 도적질하고 도망간 것 같고, 그런 근거들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빌레몬에게 <저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진 것이 있거든 이것을 내게로 회계하라>는 말을 통해서 분명히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빌레몬1:11에 보면 오네시모가 빌레몬에게 무익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오네시모가 빌레몬의 노예로서 무익한 존재일 뿐만 아니라 많은 손해를 끼쳤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빌레몬의 노예인 오네시모는 그 주인의 재산을 훔쳐 달아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는 로마로 갔습니다. 그때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서 죄수의 몸으로 있었습니다. 바울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로마의 옥중에서도 그는 비교적 많은 사람들을 만나 전도를 했는데 그때 로마로 피신한 오네시모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바울과 오네시모가 만난 곳은 로마의 감옥 이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만난 경위는 달랐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종으로, 오네시모는 주인의 집에서 재산을 훔쳐 도망친 종으로 만난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경위로 만났든지 그들의 만남을 인도하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신분의 차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게 되지는 않습니다. 바울이 부자유한 몸으로 있으면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는데, 복음을 전한다고 해서 모두 다 믿지는 않았습니다. 로마의 옥중에서 바울을 만난 오네시모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진심으로 회개하여 구원을 받았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말씀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의 구주로 영접하면 구원을 받게 됩니다. 오네시모는 바울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그의 생명의 구주로 영접하여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그의 믿음은 복음의 사역자인 바울에게 인정받을 만큼 크게 성장하였습니다. 그리고 바울에게 있어서는 꼭 필요한 충성된 일꾼이었습니다. 그가 전에는 무익한 존재로 살았으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고 나서 유익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성장하지 못하는 나무는 소용이 없고 성장하지 못하는 자녀는 부모의 근심거리가 되는 것같이, 성도의 신앙도 자라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그러므로 오네시모와 같이 성장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에는 어떤 차별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신분에 따라, 외적인 조건에 따라 다른 사람을 차별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유명한 석학인 사도 바울과 골로새의 부자인 빌레몬과, 낮고 천한 노예 신분인 오네시모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실을 통해 차별이 없음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인간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부분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때문에 아무도 그분 앞에서 무엇을 아는 것처럼 생각하거나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바울 같은 석학도 은혜의 깊은 경지에 들어갈수록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이 얼마나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인지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방법은 참으로 놀랍고 오묘합니다. 그것은 마치 광야에서 모세가 만든 놋 뱀의 역사와도 일치하는 신비한 일입니다. 어떻게 불뱀에 물린 사람들이 장대 위의 놋뱀을 쳐다봄으로 구원받을 수 있었는지는 믿음이라는 방법 이외의 다른 것으로는 풀 수가 없습니다. 예수를 영접하여 노예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주인과 동등한 신분이 된 오네시모의 새로운 사람이 된 변화처럼 우리 모두도 코로나로 기후의 온난화로 경제의 위기와 생명의 위기에서도 새해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의 능력으로 이기고 승리하시기를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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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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