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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말씀] 언약은 신실합니다.(수1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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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브온이 이스라엘과 화친 조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이를 괘씸하게 여긴 가나안 서쪽의 왕들이 연합군을 일으켜 기브온을 치러 올라옵니다. 그러자 기브온 사람들은 즉시 여호수아에게 사람을 보내 도움을 요청하지요. 그런데, 기브온이 이렇게 당당하게 여호수아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화친조약”입니다. “언약”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누구와 언약을 맺었습니까? 온 우주의 통치자이신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누구의 중재로요. 예수님이시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흘리신 보혈의 피는 언약의 피라고 했습니다. 마 26: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언약이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복 주시기 위하여 세운 약속입니다. 좀더 성경적 정의를 내린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피로 맺은 약속'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변하지 않는 약속의 증거, 피로써 우리와 언약의 관계를 맺으셨습니다. 그러면 이 언약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1. 언약의 특징 : 언약은 신실하게 유지됩니다.(7절, 9:19,20)
비록 기브온이 속임수를 통해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었지만 한번 맺은 언약은 신실하게 유지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언약의 특징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는 온 군대를 동원하여 하나님 앞에서 기브온과 한 약속에 책임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언약의 신실성이 중요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와 언약을 맺으실 때 우리가 불성실하고 믿음으로 살지 못하면 언약을 파기하십니까? 아니지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맺어진 언약은 영원불변합니다. 그러므로 의심하지 마십시오. 불안해하지 마십시오. 신학적으로 이것을 “견인교리”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맺으신 구원의 언약은 이렇게 신실하게 유지된다면 우리도 하나님과의 약속을 신실하게 지켜야 하겠지요?
2. 언약의 특징 : 언약은 보호를 약속합니다.(8절, 시 121편)
하나님은 전투에 나가는 이스라엘에게 두려워 말라 말씀하십니다. 적들을 여호수아의 손에 넘겨주겠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이스라엘과 언약한 기브온을 보호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언약 속에는 보호의 약속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과 언약한 우리들을 끝까지 지키고 보호해 주십니다. 오늘 가나안 연합군과 전투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호하고 계십니까? 크게 세 가지 방법으로 보호하고 계십니다.
1)사람을 통하여(10절) 2)자연을 통하여(11절) 3)초자연을 통하여(13,14절)
말씀을 맺기 전에 또 하나 나누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여호수아를 격려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고 선택에서 실수한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격려와 용기를 주십니다.(8절) 하나님은 우리가 저지른 실수마저도 고치시고 회복시켜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 한마디가 여호수아에게는 얼마나 큰 위로와 힘이 되었을까요? 여러분의 말 한마디가 인생을 바꿉니다. 서로 칭찬하고 격려하십시오. 약점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약점을 자꾸 보지 말고 장점을 보십시오. 그러면, 칭찬하고 격려할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 성도님들이, 서로 칭찬하고, 서로 격려하고, 서로 사랑할 수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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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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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임중 칼럼] 축복과 저주의 부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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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메랑 효과’(boomerang effect)란 용어가 있는데 선진국이 발전도상국에 원조를 하거나 자본을 투자하여 생산한 물품이 현지의 수요를 웃돌아 도리어 선진국으로 역수출되어 해당 산업과 경쟁하게 되는 일을 부메랑 효과라 한다.
직장에서 남편이 화가 나서 집에 들어왔다. 아내에게 이유 없이 화를 낸다. 아내는 화가 나서 아들에게 신경질을 냈다. 억울한 아들은 강아지를 발로 찼다. 강아지도 화가 나서 닭들에게 화풀이를 했다. 강아지가 덤벼들자 닭은 놀라서 장독 위로 뛰어오르다가 그만 장독을 넘어뜨려 버렸다. 그 결과로 장독 속에 소중하게 담아 두었던 고추장이 다 밖으로 쏟아졌다. 결국 남편의 분노가 모든 가족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고, 그 피해는 남편에게까지 다시 돌아왔다. 신경질 부메랑 효과 이야기다.
이솝이야기의 하나다. 생쥐가 사자에게 잡혀 죽게 되었을 때 생쥐는 살려주면 은혜를 갚겠다고 하여 사자는 생쥐를 살려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자가 덫에 걸렸을 때 생쥐가 그물을 갉아서 풀어주었다. 생명과 사랑의 부메랑효과다.
사무엘하 16장에는 다윗이 아들 압살롬에게 반역을 당하고 신발도 신지 못하고 울면서 피난길을 가는 상황에 설상가상으로 답잖은 신하 시므이의 저주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왕을 향해 ‘사악한 자여’ ‘피흘린 자여’ 하면서 악담하고 저주를 하면서 지근에 따라오는 것이다. 600 여명의 따르는 자들이 있었지만 시므이 한사람을 통제시키려는 사람이 없는 현실이었다. 이러할 때 한 사람, 아비새가 등장한다. “아비새가 왕께 여짜오되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청하건대 내가 건너가서 그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 그렇다. 그 누구도 나서지 않는 상황에 아비새가 나선 것이다. 어느 공동체이든 위기 때는 두 사람이 등장 한다. 한 사람은 ‘시므이’ 같은 사람이다. 한 사람은 ‘아비새’ 같은 사람이다. 시므이 같은 한 사람 때문에 교회가 뿌리 채 흔들린다. 아비새 같은 한 사람 때문에 교회가 질서를 유지하고 안정이 되어 간다. 이와 같은 상황은 정치현장이나 목회현장이나 다를 바 없다. 아비새가 나서서 시므이를 단칼에 목을 베겠다고 했을 때 다윗이 한 말은 축복을 부르는 부메랑효과를 생각하게 한다.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삼하16:11~12)” 다윗은 자기 입으로 시므이를 저주하지 않았다. 이 일로 다윗은 축복을 받게되고 시므이는 저주를 받게 되었다. 다윗을 통해 축복의 부메랑을, 시므이를 통해 저주의 부메랑을 생각한다.
목회를 하면서 이런 경우를 흔히 겪는다. 시므이처럼 모든 기준이 자기 자신이다. 상대방의 입장을 조금도 이해하려 하거나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 생각이 의요 선이다. 그것은 저주를 불러오는 부메랑이 된다. 다윗처럼 자기를 저주하는 시므이를 향해 불평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맡긴다. 언어로 표현 할 수 없는 고통이었지만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철저한 하나님 중심의 신앙이며 인격이며 삶의 모습이다. 그것은 축복을 불러오는 부메랑이 된다.
부부가 길을 가다가 아내가 다리가 아파지면서 남편에게 업어달라고 했다. 남편은 아내를 등에 업었다. 아내가 미안하여 “무겁지?”라고 말하자 남편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럼 무겁지. 돌대가리지, 철면피지, 강심장이지 당신은 무거울 수밖에 없어” 조금 가다가 남편이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좀 전에 내가 업어주었으니 나도 조금만 업어주라.” 아내는 남편을 업었다. 남편이 조금 미안해하면서 “생각보다 가볍지?”라고 물었다. 아내가 말했다. “가벼울 수밖에요. 머리에 든 것이 없지, 허파에 바람이 들었지, 속은 비었지, 양심도 없지 가벼울 수밖에요” 말의 부메랑효과다. “여보 무겁지?” 하면 “아니야 솜털처럼 가벼워, 천사를 업은 것 같어, 날마다 업고 걸었으면 좋겠다.” “여보, 생각보다 가볍지?” 하면 “응, 정말 그러네. 당신 너무 허약한 거 아니야, 괜스레 내가 잘못 섬긴 것 같아 미안하네, 보약 한재 지을까 여보?” 이 얼마나 사랑과 축복의 부메랑 대화인가.
누가복음 6:38절도 축복의 부메랑효과다. 마태복음 7:12절도 축복의 부메랑효과다. 그러나 마태복음 27:25절은 무서운 저주의 부메랑효과를 가져왔다. 성경은 온통 부메랑효과의 기록이다. 섬기면 섬김 받는 것, 사랑하면 사랑받는 것, 축복하면 축복 받는 것, 저주하면 저주 받는 것, 미워하면 미움 받는 것, 모두가 부메랑 효과다. 남의 말 나쁘게 하는 사람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나쁜 사람으로 입 돋음에 오른다. 불평 잘하고 원망 잘 하는 사람은 그 생활이 항상 불평과 원망의 울타리로 둘러쳐 있는 것을 본다. 그러나 감사하는 사람을 범사가 감사로 충만하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울 사도를 통하여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은 축복의 부메랑효과다. 마귀의 궤계는 저주의 부메랑효과다.
은퇴 전 나의 목회 현장은 ‘마카리오스’가 인사 용어였다. ‘평행감축’이 인사말이었다. 어느 하루도 행복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사랑과 감사로 웃음꽃이 피었다. 교회가 축복받는 이유는 이해와 관용과 용서와 사랑의 부메랑효과 때문이다. 교회가 카오스현상이 되는 것은 믿음 없는 마음의 원망 불평 비판 정죄의 부메랑효과다 잠언 6:2절에서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고 하신 것처럼, 민수기 14:28절의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는 말씀처럼 축복과 저주는 내 입의 말을 통해 불러 오는 부메랑효과가 되는 것을 깨닫게 된다. 축복하면 축복이 온다. 저주하면 저주가 온다. 사순절 절정의 기간인 고난주간에 축복과 저주의 부메랑효과를 생각하면서 깊은 묵상을 통해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고 부활의 아침을 맞이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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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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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 칼럼] 발달성 고관절 이형성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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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벅지 주름이 달라요”, “엉덩이 주름이 달라요”, “사타구니 주름이 달라요”, “다리 길이가 다른 것 같아요”
이런 이유로 많은 부모님들이 아이와 병원을 찾습니다. 이는 발달성 고관절 이형성증이 의심되는 증상이지만 양 허벅지 및 엉덩이 부위의 피부와 연부조직들이 약간씩은 차이가 날 수 있기 때문에 정상에서도 얼마든지 발견되는 증상입니다. 그러나 진단이 늦어지는 경우, 치료 방법이 어렵고 복잡해지는 경우가 많으며 장애를 남길 수도 있으므로 빨리 발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발달성’이란 발달하면서 생기는, 아이가 성장하면서 생긴다는 뜻이며, ‘고관절’은 우리 몸의 여러 관절 중에서 엉덩이뼈와 허벅지뼈를 연결하는 관절을 말합니다. ‘이형성증’이란 ‘이=이상하다’, ‘형성=만들어짐’ 즉, 이상하게(비정상적으로) 만들어진다는 뜻으로 발달성 고관절 이형성증은 성장하면서 고관절이 비정상적으로 형성되는 질환을 말합니다.
발달성 고관절 이형성증은 조기 발견, 조기 치료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국내에서는 2006년부터 영유아 검진 사업에 포함돼 생후 4개월부터 시작합니다. 이보다 이른 시기에 발견하면 치료가 더 간편하고 결과가 좋기 때문에 생후 2개월로 검진시기를 앞당겨야 한다는 전문의의 의견도 적지 않습니다. 발달성 고관절 이형성증은 아이들에게 매우 중요한 검진인 만큼 부모님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필요합니다.
발달성 고관절 이형성증을 그냥 방치하게 되면 심한 정도와 나이에 따라 고관절의 심한 통증, 파행(저는 증상), 아탈구(고관절이 일부 빠짐), 퇴행성 관절염으로의 진행 등의 현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특히 발달성 고관절 이형성증을 진단받은 가족이 있는 경우 혹은 첫째 아이, 여아, 둔위 태향(태아가 산모 자궁 속에서 앉은 자세로 있는 것), 자궁 내 압박으로 발생되는 변형과 동반된 경우, 양수 과소증의 경우에는 발달성 고관절 이형성증의 고위험군으로 볼 수 있습니다.
출생 후 육아 방식에 따른 요인도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나라처럼 아기를 업고 있으면 고관절이 안정적으로 발달하게 됩니다. 아기의 고관절이 굽히고 벌린 자세(고관절 굴곡 및 외전)로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고관절을 펴고(신전) 다리를 모은(내전) 자세로 아기를 고정하는 관습이 있는 국가나 종족에서는 발달성 고관절 이형성증이 더 많이 발생합니다.
집에서 흔히 해주는 ‘쭉쭉이’는 고관절 형성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키 크는 데도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답니다.
발달성 고관절 이형성증이 의심되는 우리아이를 위한 간단한 신체검사 방법을 알려드립니다.
* 피부 주름이 달라요! (피부 주름 비대칭)
부모님들이 병원을 찾는 가장 흔한 원인이 허벅지의 양측 피부 주름이 다른 것입니다. 고관절이 빠진 쪽의 가랑이의 피부 주름은 깊고 뒤쪽으로 길게 연장되어 있습니다. 일반인이 발견하기 쉽지만 특이도가 대단히 낮기 때문에 피부 주름만으로 발달성 고관절 이형성증을 진단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리가 잘 안 벌어져요 (고관절의 외전 제한)
다리가 잘 벌어지지 않는 증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생후 3개월 이후 나타나며, 기저귀를 갈아주면서 발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리 길이가 달라요!(하지 부동)
탈구되어 있는 쪽의 다리가 짧아 보이며 특히 고관절을 90도 굽히고, 슬관절을 최대한 굽혔을 때 탈구된 쪽 무릎의 높이가 낮은 증상을 보입니다.
*다리를 절고 자세가 이상해요!(파행 및 자세 변화)
걸음마를 시작하면서 발견되는 경우는 진단이 좀 늦어진 경우로 빠진 다리를 바깥쪽으로 돌리고 다리를 저는 증상을 보이기도 합니다.
발달성 고관절 이형성증의 치료로는 생후 6개월(또는 그 정도의 환아 체구일 때)까지는 간단한 보조기만으로 치료가 가능한 경우가 많습니다.
영아기에 발견된 경미한 이형성증은 이중 또는 삼중 기저귀로 다리의 위치를 벌려서 유지해 주는 것만으로 치료할 수 있는데,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사용되고 효과적인 보조기 치료법은 파블릭(Pavlik Harness) 보조기입니다.
6개월 이후에는 체구가 커져서 보조기만으로는 치료가 어렵고 수술이 필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6개월 이내에 발견하더라도 기형성 또는 선천성 탈구의 경우에는 수술이 필요합니다.
수술 방법은 빠진 고관절을 제자리에 맞추는 단순한 정복술부터 심한 경우에는 허벅지뼈나 골반뼈를 자르는 복잡하고 큰 수술까지 다양합니다.
고신대병원 정형외과 최영 교수는 “발달성 고관절 이형성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조기 발견과 조기 치료”라면서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속담이 있듯이 빨리 발견되는 만큼 치료법도 간단하고 나중에 후유증도 적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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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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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칼럼] 부활을 준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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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딩(Wedding)을 준비하지 말고 메리지(Marriage)를 준비하라는 말이 있다. 드레스 맞추고 사진 찍는 결혼식 준비보다 영적 혼수감을 준비해서 만남의 축복을 누리라는 것이다.
죽음을 기억하고 부활을 대비하라. 꽃은 떨어지고, 잎은 마르고, 풀은 시들고, 모든 것은 지나간다. 한번뿐인 인생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니 심판을 대비하라. 라틴어 “메멘토 모리”는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옛날 로마에서는 원정에서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행진을 할 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 소리로 외치게 했다고 한다.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오늘은 개선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행동하라. 이런 의미에서 생겨난 풍습이라고 한다. 인생은 웰빙이 아니라 웰다잉이다. 잔치집이 아니라 초상집에 지혜가 있다.
사람은 죽을 때에 장례식에서 그 사람의 진가가 드러난다.
몇 년 전에 소천하신 장성만 목사님 장례식 때에 큰 감동을 받았다. 어느 목회자는 “장례식 때에 설교할 내용이 있도록 살아라”고 평소에 강조하였고 한다. 34년 동안 투병 생활을 하신 길원평 교수님은 설레이는 죽음을 대비한다고 하였다. 우리 몸은 죽으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찬란하고 영광스러운 천국이 있기 때문이다. 믿는 자에게는 영생의 복락이 있다. 부활 전에 무덤이 있고, 무덤 전에 십자가 죽음이 있다. 부활절 전에 고난 주간이 있다. 사람은 고난을 통해서 비로소 깨닫게 되고 고난을 거친 후에 일체가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알게 된다.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고난 없기를 기도하지 마라. 오히려 고난을 자취하라. 성령 충만 받기 전에 먼저 된 일들이 있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다리고, 다함께 모이고, 더불어 마음을 같이 해서 오로지 기도에 힘쓸 때 마침내 성령이 임하시고 초대 교회가 탄생되었다. 풍성한 열매를 맺기 전에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는다.
어두운 세상에 빛은 촛대가 타들어가면서 빛을 내고, 썩은 세상에 소금은 형체도 없이 녹아지는 자기해체와 자기희생의 과정을 거친 후 방부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아프리카 우간다에 수많은 학교와 교회를 설립한 유니온 비전 선교는 한 사람 최슬기 자매의 순교가 시작이었다. 슬기 있는 다섯 처녀들은 기름병을 미리 준비하였기 때문에 혼인 잔치에 들어갔다.
엘리사는 불쌍한 과부에게 그릇을 빌리라, 기름병을 채워라,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생활하라고 했다.
어느 식당에 손님 맞을 준비에 대한 글이 있었다.
손님은 저의 은인이십니다. 예쁜 딸 고운 꽃신 사주셨고 홀로계신 어머니 용돈도 쥐어주셨고 저의 장래를 위한 적금까지 부어주시는 손님은 저의 은인이십니다. 오시는 길 빗질하고, 문간대청 닦아놓고, 그릇그릇 정성을 담고, 몸과 마음 또한 정갈히 다스렸으니 어서 오소서. 준비되지 않은 사람은 쓸데가 없다. 준비된 만큼 쓰임 받는다. 순간을 위해 평생을 준비한다.
행사가 행복이 되려면 준비에 달렸다. 호수의 백조는 수면위의 모습은 우아하나 수면 아래 실상은 요란하다. 아버지의 땀, 어머니의 눈물이 훌륭한 자식을 만든다. 엄마가 새벽에 일어나 더운밥을 지어주고 아빠가 새벽 출근길에 나서야 자녀들이 복을 받는다.
목회데이터연구소 자료에 의하면 중등부 때 신앙생활을 떠난 경우가 가장 많았다. 그리고 신앙생활에 최고의 영향을 끼친 사람은 엄마였다.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한 사람들이 있다. 마리아는 일년치 봉급인 삼백 데나리온이나 되는 값비싼 향유옥합을 깨트려 예수의 머리에 부었다. 가룟 유다는 아까운 것을 가난한자들에게 주지 않고 허비했다고 책망했지만 예수님께서는 힘을 다하여 예수님의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다고 칭찬하였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님이 돌아가신 결정적인 순간에 산헤드린 의원이요 부자였기에 빌라도 총독에게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했고 깨끗한 세마포로 싸서 새 무덤에 장례하였다.
창세기 마지막 50장은 요셉의 장례식 출애굽기는 요셉의 해골을 파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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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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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기독교이야기] 포로선교사 해롤드 보켈(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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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군이 참전하면서 1950년 10월 25일 첫 중공군 포로가 생겼다. 10월 28일에는 평양에 2개의 포로수용소가 설치되었고, 인천 수용소도 11월 말까지 5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로 확장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중공군의 총공세에 밀려 후퇴하게 되자 평양에 수용되었던 2만4천여 명의 포로가 인천으로, 다시 후퇴하게 되자 다시 부산으로 이송되었다. 그래서 1950년 12월 3일 기준으로 부산에 집결된 포로 수는 14만6천135명에 달했다.
포로 관리 문제는 심각한 현안이 되었다. 미 제8군 사령관 리지웨이(Matthew B. Ridgway) 장군은 맥아더 사령관에게 보낸 1951년 1월 6일자 편지에서 전장(戰場)으로부터 멀지 않는 곳에 14만 명의 포로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우려스러운 상황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적과 싸우기도 모자라는 병력을 포로경비와 관리에 투입해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점, 그리고 수송과 물자의 이동과 관리 등의 문제를 지적하였다. 결국 증가하는 포로들을 안전하게 관리하고, 또 분산하여 관리하기 위한 논의가 진행되어 처음에는 제주도로 이전을 검토하였으나 거제도가 적합한 포로수용지로 부상했다. 거제도가 섬이기 때문에 포로 관리가 용이하다는 점과 부산으로부터 이동거리가 멀지 않다는 점, 급수 및 식량재배가 가능하다는 점 등이 고려되었다. 그래서 거제도 고현을 중심으로 22만 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수용소를 설치하게 된 것이다. 수용소(Camp)의 하부구조는 ‘구역’(Enclosure), ‘동’(棟, Compound)으로 나눠지는데, 60, 70, 80, 90으로 나누어지는 ‘구역’과 그 휘하에 28개 ‘동’으로 구성되었는데, 1개 ‘구역’에 약 6천명을 수용할 수 있게 했다. 부산에 있던 포로들은 이 거제 수용소로 이송되기 시작하여 1951년 2월 말에 5만 명의 포로가 이곳으로 이송되었다. 3월 1일에는 주요 본부 및 부대도 거제도로 이동하였고, 3월말까지 거제도에 이송된 포로는 10만 명에 달했다. 5월 말에는 11만 5천명, 6월 말에는 수용 포로 수가 14만 명을 넘었다. 영등포 수원 원주 재천 대전 하양 등지에 분산되어 있는 포로들은 부산으로 집결되었고, 다시 거제도로 수송된 것이다. 결국 부산에는 병원수용소만 남고 나머지 포로들은 거제도로 이송된 것이다. 제1포로 수용소라는 이름도 거제도 수용소로 넘어갔고, 이곳이 최대 수용소가 되었다. 이곳에 가장 많이 수용된 인원은 17만 명에 달했다. 포로경비대대도 거제도로 이동하였는데, 3개의 경비대대(31, 32, 33대대)를 통합하여 포로경비연대를 창설했다. 당시 거제도 인구는 약 10만 명 정도였는데, 포로 수까지 합하면 30만 명에 달하는 인구가 거제도에서 살게 된 것이다. 이런 포로들을 위해 전도했던 선교사가 해롤드 보켈 목사였다.
보켈 선교사는 부산과 거제도 포로수용소를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이들에게 설교하고 전도했다. 보켈이 처음 거제도로 간 때는 1950년 성탄절 직후였다. 그 이전에 포로로 잡혀왔던 임한상(任漢祥) 목사가 포로들을 위해 신앙지도를 하고 있었는데, 1950년 성탄절에는 비기독교인들을 포함한 4천 명의 포로들과 함께 성탄 예배를 드리기도 했다. 이때의 상황에 대해 보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1950년 크리스마스 직후 임한상 목사가 속해 있는 포로수용소 켐프를 처음 방문했다. 그 때 이미 임 목사는 미군을 설득하여 텐트를 준비해 예배처소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정기적으로 예배를 드리고 성경공부를 하는 한편 불신자를 초청해 모임을 가졌다. 대화 중에 나는 임 목사가 크리스마스에 4천명의 포로를 모아놓고 야외에서 아름답고 감동적인 예배를 드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성경책과 찬송가들이 임 목사에게 제공되었고, 임 목사의 사역은 계속적으로 커지게 되었다. 후에 임 목사는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수많은 포로들이 예배를 드리고 성경을 공부하는 일에 임 목사는 핵심 인물이었다. 그는 특히 6개월 동안 포로수용소 병원에서의 사역을 통해 특별하게 열매 맺는 전도를 하였다. 그의 신실하고도 도전적인 리더십 때문에 모임에 참석해 복음에 대한 관심을 보이는 포로들의 숫자가 점차적으로 증가하게 되었다.”
보켈 선교사와 임목사의 활동에 고무된 유엔 당국은 거제도 포로수용소 내에서의 종교활동에 대해 호의적이었다. 수용소는 일종 또 다른 전쟁터였다. 좌익과 우익의 이데올로기적 대립은 때로 폭력을 동반하였고 살인에 이르기까지 험악한 단계로 발전하기 때문에 적절한 종교교육은 필요한 일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에서 보켈의 역할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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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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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 이럴 때 난 갈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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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무리 애를 써도 변화가 없을 때 난 갈등한다.
목회 초년 시절 또는 개척할 때, 있는 힘껏 애쓰고 힘써도 사람은 변화되기 힘든 것일까? 양적 변화로 성도 수의 부흥이 있든지, 아니면 질적 변화로 삶의 변화가 있든지 둘 중 하나의 결실은 있어야 하는데 아무 것도 없을 때, 이 때 우리는 좌절감으로 얼마나 많은 갈등을 했나? 계속 해야 하는지, 어떤 변화를 찾아야 하는지...
2. 경제적 어려움이 계속 될 때 난 갈등한다.
적은 수입으로 감사하고 만족하며 살아가다가도 너무 오랫동안 힘듦이 지속될 때 우리는 갈등한다. 과연 이 일을 계속해서 하는 것인지, 다른 길을 가야 하는 것인지...
3. 나의 문제는 참을 수 있는데 자녀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때 난 갈등한다.
이 땅의 모든 아빠, 엄마들이 나름대로의 어려운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그 중 목회자라는 직업은 자녀와도 연관이 있기에 더욱 힘겹다. 나는 목회자이고, 사명자이기에 참을 수 있지만 목회자의 자녀라는 이유만으로 아이들이 온갖 소문과 좋지 않은 이야기에 엮일 때 부모는 갈등한다.
4. 중년기는 마음이 전쟁터라고 하는데,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내 안에서 싸우는 나를 발견할 때, 난 갈등한다.
좌절과 탈진이 반복될 때, 중년기 남자의 고민은 깊어만 간다. 반복된 갈등으로 에너지가 상승하거나 유지되기는커녕 성과 없이 끝도 없이 아래로 내려갈 때 어려운 마음은 갈등의 전쟁터가 된다.
5. 직장 상사와 마음이 맞지 않을 때 난 갈등한다.
남자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직장인데, 그 속에서도 상사와 마음이 맞지 않을 때, 하루에서 수십 번 사표를 꺼낼까 말까 고민하며 참고 또 견딘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퇴근길을 걸을 때면 “언제까지 이 회사를 다녀야 하나?” 고민하고 갈등한다. 미래를 생각해서는 지금 그만두어야지, 라고 생각하지만 현재 상황을 봐서는 당장 행동에 옮기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머리와 마음이 매일 싸우는 상황에서 어떤 것이 정답인지 알지 못한 채 아침 출근길에서 매일 갈등한다.
6. 오늘 아침 이불 속에서 난 갈등한다.
기온이 내려간 추운 아침, 따뜻하고 포근한 이불 속에서 5분만 더, 3분만 더, 머물고 싶은 유혹에서 난 갈등한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중에 5분이라도 더 안식하고 싶은 마음과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움직여야 하는 삶 앞에서 갈등한다.
이럴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인간은 누구나 갈등 속에 살며, 갈등하는 것이 곧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또한 갈등을 하며 생각의 발전, 인격의 성숙을 이뤄간다. 갈등이 없으면 생각의 싸움이 일어나지 않고, 생각의 싸움이 일어나지 않으면 나의 모습을 바로 직면하기가 어렵다. 갈등을 통해 내 모습을 객관적으로 봄으로 ‘나의 정체성은 무엇’이며, ‘나는 어떤 사명자’인지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갈등이 생겼을 때, 어떤 사람은 그 갈등을 빨리 해결하고픈 마음에 온갖 방법을 동원해 답을 찾는다. 반면에 또 다른 사람은 갈등 앞에 “이 갈등이 왜 생겼는지” 고민하고 “갈등에 반응하는 나의 모습”을 바라본다. 사건을 통해 내 모습을 보면서 나의 정체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고, 과연 내가 정체성에 맞는 삶 다시 말해 사명을 깨닫고 살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우리는 갈등 앞에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
문제 해결에 급급한 나머지 갈등이 주는 유익을 놓치고 현상에만 전전긍긍하지는 않는지, 아니면 갈등을 기회로 삼아 내 모습을 바로 보는 계기로 삼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갈등의 현상과 깊은 의미를 파악해보면 갈등이 결코 피하고 싶은 숙제가 아니라 나의 정체성과 사명을 발견하는 감사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오늘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정체성으로 실존하는 우리가 크고 작은 갈등 앞에 사명을 발견하고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 앞에 갈등이 있는가? 예상하지 못한 갈등을 실패의 걸림돌로 생각하지 말고 성장의 디딤돌로 여기는 건 어떨까? 같이 나누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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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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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말씀] 다시 시작하십시오(수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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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사람에게 가장 아름다운 말은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시의 기회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한 번도 실패하지 않는 인생이 어디 있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실패의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는 것입니다. 어떻게 실패의 자리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요? 바로 말씀을 받을 때입니다. 하나님은 두려움 속에 있는 여호수아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주십니다. 1절/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말씀이 없는 사람은 낙심과 좌절이 그를 사로잡습니다. 그러나 말씀이 있는 사람은 강하고 담대해집니다. 하나님께서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말씀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말씀의 채널이 회복되고 말씀이 펼쳐지는 순간, 우리의 삶은 다시 시작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말씀이 임할 때 우리는 어떻게 변화됩니까?
1. 실패의 자리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7:10을 보면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일어나라”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 1절에서도 “일어나라” 말씀하십니다. 실패의 자리에 머물러 있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실패의 자리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으면 패배의식과 낮은 자존감이 나를 괴롭히게 됩니다. 여호수아는 말씀에 순종해서 일어나게 됩니다.(3절) 나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그 실패의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일어나라! 히브리어로 뭐라고요? ‘쿰’ ‘다시 시작하다. 새롭게 시작하다.’의 의미입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십시오. 실패 가운데서도 말씀이 임하면 다시 일어설 줄 믿습니다.
2. 올라가게 됩니다. 즉 행동하게 됩니다.
3절 “이에 여호수아가 일어나서 군사와 함께 아이로 올라가려 하여” 했습니다. 말씀을 받은 사람은 움직이게 됩니다. 말씀이 임하면 비로소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행동해야 합니까?
1)하나님의 지시를 따르는 것입니다.
2절 “너는 아이성 뒤에 복병을 둘지니라 하시니” 이번의 방법은 여리고성의 방법과는 사뭇 다릅니다.
하나님은 상황에 따라 필요한 방법으로 새 역사를 창조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가 사람마다 다르고, 작전도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지시를 따르는 것입니다.
내 계획과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정확합니다.
2)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여호수아는 어떻게 순종하고 있습니까? 5절을 보면 모든 군사와 함께 아이로 올라갔습니다. 10절, 백성에 앞서 아이로 올라갔습니다. 또 아침에 일찍이 일어났습니다. 아이성은 작은 성에 불과했지만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최선을 다해 최선의 전략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원리는 “심은 대로 거둔다.”는 것입니다.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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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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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기독교이야기] 포로선교사 해롤드 보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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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기 부산과 거제도 등지에서 포로들을 위해 활동한 선교사가 헤롤드 보켈(Harold Voelkel, 1898-1984) 목사였다. 옥호열(玉鎬烈)이라는 한국이름을 널리 알려진 보켈은 무디 성서학원에서 2년간 성경을 공부했는데 이때 한국선교사였던 스왈른(소안론)을 만나게 되어 한국 선교를 결심하게 된다. 이런 인연으로 스왈른의 딸 거투르드 스왈른(Gertrude Swallen)과 1928년 8월 결혼하게 된다. 무디성경학교를 졸업 한 후에는 선교사 자격을 얻기 위해 사우스 다코다에 있는 후론대학을 졸업하고 프린스톤신학교에 입학했다. 이때의 동료가 한경직 목사였다. 후의 일이지만 밥 피어스가 1950년 봄 한국에 왔을 때 그가 아는 이는 보켈 뿐이었다. 이때 보켈은한경직 목사를 피어스에게 소개하여 두 사람의 선린관계가 형성되게 한 것이다. 1929년 5월에는 프린스톤신학교를 졸업하게 되는데, 졸업생들이 가장 많은 해였고 미국의 경제공항으로 선교사 후원도 어려운 시기였다. 그럼에도 신학교를 졸업하고 3개월이 지난 8월 아내와 함께 미국북장로교 선교사로 내한하게 된다. 처음에는 안동지역에서 개척 전도 활동을 전개했다. 그러다가 1941년 6월 일제에 의해 강제로 한국을 떠나게 된다. 본국으로 돌아 간 그는 공군군목으로 봉사했다. 그러다가 1946년 11월 10여명의 동료선교사들과 함께 다시 내한하여 안동선교부로 돌아가 교회 복구사업을 전개했다. 1948-9년에는 안식년을 보내고 선교지로 돌아온 그는 1949년 서울로 이동하여 NCC사업을 후원했다.
1950년 전쟁이 발발하자 잠시 일본으로 피신했으나 미국 군목의 신분으로 인천상륙작전에 동참하였고, 인천상륙작전 성공 이후 북진하여 그해 10월 29일 평양서문교회에서의 감격적인 예배에 참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후퇴한 이후 보켈은 부산과 거제도를 중심으로 포로 선교에 깊이 관여하게 된다.
여기서 전쟁포로와 포로 수용시설에 대해 소개하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전쟁이 시작된 후 7월 초 국군이 최초로 5명의 포로를 잡았는데, 이들은 7월 8일 대전형무소 내에 설치된 포로수용소에 수용되었다. 이것이 첫 포로수용소라고 할 수 있다. 전세가 불리하게 전개되자 대전 포로수용소는 7월 14일 대구로 이동하여 달서구의 효성초등학교에 설치되었는데, ‘제100 포로수용소’라고 불렸다. 미군이 운영하는 최초의 포로수용소는 대전에 설치된 미군 제24사단의 임시포로수용소였다. 그 후 영천의 제25사단 포로수용소(7월 16일), 영동의 제24사단 포로수용소(7월 19일)가 설치되었고, 이곳의 포로들은 후에 대구에 있는 미8군 포로수용소로 이송되었다. 그런데 국군지휘부는 전세의 변동에 따라 포로수용시설을 이전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판단하여 8월 1일에는 부산영도 해동중학교에 포로수용본소(捕虜收容本所)를 설치하고 대구에 있던 포로들을 이곳으로 집결시켰다.
전쟁이 계속되자 포로는 점차 증가하게 되는데, 7월 18일에는 부산시 동래구 거제리에 포로수용소를 설치하였다. 이 시설은 유엔군 사령부 하의 미 제8군 사령부가 운영하였고, 포로들을 장기적으로 수용하고 관리하기 위한 의도였다. 7월 26일부터 주한 미제8군 사령부 제1포로수용소(Camp EUSAK No.1)라고 명명되었다. 이 포로수용소를 통상 제1포로수용소(POW Enclosure 1)이라고 불렀다. 처음에는 24인용 천막을 치고 포로를 수용했으나 점점 확장되어 1만 명까지 수용할 수 있게 되었다. 8월 당시 포로는 1천명에 달했는데, 이들을 이곳에 수용했다. 포로들은 최고의 정보원이었으나 이들을 심문하여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통역관이 필요했는데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이런 상황에서 부산을 피난처로 삼은 선교사들의 자원봉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까지는 한국군과 미군이 별도의 수용소를 운영했으나 한국군의 작전권이 유엔군 사령관에게 이양되자 포로수용소도 통합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그리하여 8월 12일에는 한국군이 운영하던 영도의 수용소가 폐쇄되고 거제리에 있는 미8군 수용소로 통합되었다. 수용소가 단일화 되면서 수용소도 5만 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시설로 확장되었다. 곧 임시포로수용소에 있던 포로들을 다 이곳으로 집합하여 부산 거제리의 포로수용소는 국군 및 유엔군이 획득한 포로들을 수용 관리하는 시설이 된 것이다.
그런데, 전쟁이 계속되자 포로수가 증가했다. 인천상륙작전 후 인민군 포로가 5만 명이 넘었고, 1950년 10월 말까지 국군 및 유엔군이 관리하는 포로수는 11만7천여 명에 달했다. 이중 6만2천697명이 부산에 있었다. 1950년 12월 3일 기준으로 포로 수는 14만6천135명에 달했다. 부산과 거제에 분산 수용하였으나 시설이 턱없이 부족했고 식량도 부족했다. 당시 거제에는 28개의 수용동(棟)이 있었고, 각 수용동에는 500-800여명의 포로들이 수용되어 있었다. 포로수가 아군의 수용 및 관리 한계를 초과하는 상황이었음으로 미8군 사령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2군수사령부(2nd Logistical Command)를 창설하고 포로 관리를 위하 인력과 장비를 보강하였다. 이때에도 인천에 임시포로수용소가 있었고, 서울 마포형무소도 포로수집소가 있었으나 이곳에서 절차를 마친 이들은 부산으로 보내졌다. 9월 하순부터 포로들이 집결하게 되자 거제리의 수용소가 확장되었고 그래도 다 수용할 수 없어 수영에 대밭 제1, 제2, 제3 수용소와 가야리에 가야제1, 제2, 제3 수용소를 증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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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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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연구]아는 것보다 중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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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7년은 평양대부흥 100주년이었습니다. 한국교회는 제2의 부흥을 기대하면서 많은 집회를 열었으나, 찬물을 끼얹는 일이 있었는데, 분당샘물교회 성도들이 중심이 된 선교단이 아프카니스탄의 탈레반 반군에게 피랍된 일이었습니다. 이때 배형규목사님과 다른 청년 한 명이 순교했고, 나머지 생존자들이 귀국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일단락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위험한 줄 알면서 왜 갔느냐>며 교회를 공격했습니다. 사는 동안 우리는 <안 되는 줄 알면서도 하는 경우>와 <되는 줄 알면서도 하지 않는 경우>를 경험합니다. 안 되는 줄 알면 안 하면 되고, 되는 줄 알면 하면 되는데, 왜 우리는 그 반대로 행동할 때가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해 다니엘이 좋은 답이 됩니다. 다니엘은 페르샤의 다리오 왕 시대에 세 명의 총리 중 한 사람이었는데, 그가 신실하고 재능이 뛰어났기에 다리오는 나머지 두 명의 총리를 폐하고 다니엘이 전국을 다스리게 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자 다니엘을 시기하는 자들이 그를 죽이려고 어리석은 다리오를 부추겨서 삼십 일 동안 다리오 외의 다른 신에게 기도하면 사자굴에 넣는 법을 공포하게 했습니다. 이때 다니엘의 행동이 어떠했습니까? 다니엘 6장 10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그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았습니다.> 정적들이 자신을 죽이려고 획책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니엘이 그 모든 정황을 알았다면 어떻게 행동했어야 할까요? 상식대로라면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을 중단하거나 다리오에게 하소연했어야 할 것입니다. 한마디로 살길을 찾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전에 하던 대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죽음의 길로 걸어갔습니다.
다니엘은 왜 그렇게 했을까요? 그것은 그의 마음에는 지식보다 더 위에 있는 가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가치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신앙이 최고의 가치였습니다. 지식과 정보는 그 아래였습니다. 신앙으로 지식을 다스렸습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의 지식은 부패한 지식으로 전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죽을 줄 알고도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많은 지식과 정보를 쌓도록 도와주면 부모 역할을 잘한 것이라 여깁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지식이 오히려 자식을 망치는 경우도 많습니다. 지식과 정보가 많은 사람이 법망을 피하는 범죄를 하고, 해킹을 시도합니다. 모르는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을 합니다. 그러므로 아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아는 것보다 신앙이 최고입니다.
마태복음 21장 45절에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의 비유를 듣고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포도원 주인의 비유를 비롯해서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는 말씀을 하시고, 심판도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던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자신들을 가리키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잘 알았습니다. 지식과 정보가 있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그들은 어떻게 행동했나요? 그 다음 46절을 보면 <잡고자 하나 무리를 무서워하니 이는 그들이 예수를 선지자로 앎이었더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예수님을 <잡으려> 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자신들을 향한 것임을 알았다면 그들은 <회개>했어야 합니다. 알면서도 그들은 오히려 더 큰 악을 행하였습니다. 무리들도 그렇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선지자로 알았는데, 예수님을 믿은 게 아니라, 후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 소리질렀습니다. 아는 게 다가 아닙니다. 신앙으로 지식을 다스려야 합니다. 신앙 없는 지식은 멸망으로 인도할 뿐입니다. 신앙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살아가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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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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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영화의 상상이 현실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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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었습니다(2013). 약간 패러디해서 '영화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라는 말을 한번 만들어 보았습니다. 2004년 방영된 <투모로우>라는 영화가 최근 다시 역주행을 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기후가 급강하하여 지구가 얼어붙는다는 내용입니다. 환경 문제의 심각성에는 공감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설마 그렇게까지 되겠는가, 영화는 영화일 뿐, 상영 당시에는 이런 느낌과 감상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영화 속 그 장면들이 현실이 되어 나타날 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신년을 맞아 겨울 폭풍과 대설이 덮친 미국은 국토의 70% 이상 지역이 피해를 입었다고 합니다. 따뜻한 기후로 인해 한파에 취약한 남부 텍사스 같은 곳은 상황이 더욱 심각한데, 수도와 가스와 전기가 끊겨서(요즘 같은 세상에!) 멀쩡한 실내 가구를 태워 난방을 하고 식수를 얻기 위해 눈과 얼음을 끓이는 정도였다고 하니 어안이 벙벙합니다. 하기야 3월 초입에 펑펑 내린 눈으로 강원도 산간도로에 갇혀 몇 시간을 오도 가도 못한 채 결국은 의지하던 자동차 기름마저 떨어지자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영화 같은 현장을 며칠 사이 우리도 목격하지 않았습니까?
1995년 개봉된 <아웃브레이크>라고 하는 영화의 사례는 더욱 극적입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더스틴 호프만과 미투 운동으로 체면을 구긴 모건 프리만이 주연하고 극 속에서 한국인과 한국말이 부정적인 뉘앙스로 등장할 때는 불쾌해 하면서 보았던 이 영화는 1976년 아프리카 자이르에서 발견된 에볼라 바이러스가 미국에 상륙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를 상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과 7년 뒤인 2013년 아프리카 기니와 시에라리온 등지에서 에볼라 바이러스가 무서운 기세로 번져 수많은 사상자를 냈고, 올해 2월 다시 콩고와 기니 일대에 발생하여 비상이 걸렸습니다. 에볼라 바이러스 빈발의 상상이 현실이 된 자체도 놀랍지만 소름 돋을 만큼 인상적인 장면은 바로 의료진과 관계자들이 착용하고 있는 복장이었습니다. 영화 속에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감싸고 눈만 볼 수 있도록 한 특수복을 입은 사람들이 가득합니다. 그때는 영화라 과장이 심하다 생각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하지만 25년이 흐른 지금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모습 그대로를 전 세계 곳곳에서 매일 각종 미디어를 통해 목격하고 있으니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미래에 일어날 각종 재앙을 다룬 영화가 급증하고 있는데 주로 그 원인을 환경 문제에서 찾으려는 경향입니다. 환경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이고, 환경 문제야말로 작금의 인류가 겪고 있는 많은 재앙의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성찰이 많은 공감을 얻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1년 동안 지구촌 전체를 힘들게 하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의 본질도 결국은 환경 문제로 수렴합니다. 서울대학교 홍윤철 교수는 최근 <팬데믹>이라는 저서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무서운 전염병들은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사람을 공격했다기보다는 사람이 세균의 생태계를 교란한 후 사람과 병원균 사이에 새로운 생태학적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다". 팬데믹을 비롯한 각종 바이러스와 감염병의 근본적인 원인은 세균이나 바이러스의 횡포가 아니라 인간의 탐욕에 있다고 보는 견해입니다. 아마존 밀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대규모 벌목, 홍수 조절을 명분으로 감행되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댐 건설, 간척 사업을 명분 삼아 덮어버린 갯벌 등과 그로 인해 초래되고 있는 생태계 교란과 환경 파괴를 생각해 보십시오. 진짜 문제는 바이러스가 아니라 사람이 아닐까요?
요즘 들어 사순절을 지키는 교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본래 개혁파는 성경에 없는 절기나 예식을 거부하였습니다만, 아무튼 사순절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금식이나 절식 혹은 기호품이나 세속적 활동을 자제하며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자는 주장을 펼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경 문제를 거론하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환경이야말로 오늘날 가장 심각한 고난의 현장인데도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녹색기독교십계명>을 다시 한 번 소개해 볼까 합니다. 하나, 일회용품을 쓰지 맙시다. 둘, 대중교통을 이용합시다. 셋, 합성세제를 삼가합시다. 넷, 중고용품을 사용합시다. 다섯, 물과 전기를 아껴 씁시다. 여섯, 육식을 줄이고 음식을 절제합시다. 일곱, 시간에 쫓기지 말고 쉼을 누리며 살아갑시다. 여덟, 불필요한 소비를 줄입시다. 아홉, 작고 단순하고 불편한 삶을 추구합시다. 열, 십자가 정신으로 가난한 이웃을 도웁시다. 해마다 이맘때면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라는 영화가 소환되지 않습니까? 이번에는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는 사람들이 고통당하고 있는 생태계를 위해 기도하고 행동하는 상상을 해 봅니다. 누가 알겠습니까? 언젠가는 이런 상상이 현실이 되어 피조물이 고대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가득한 교회들이 이 땅 가운데 속출할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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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