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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칼럼] 탈북학생에게 맞는 커리큘럼으로 탈북학생들을 준비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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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독일연방 11대 대통령(2012-2017)을 지낸 요아힘 가우크는 본래 동독출신이다. 동독에서는 신학을 공부하여 루터파교단 목사로서 목회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가우크는 어린시절 소련 시베리아 강제수용소(굴락)로 끌려가 억울하게 숨진 아버지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동독내에서 반공주의자로 성장하였다. 2005년 이래 지금까지 15년 동안 유럽의 영향력 있는 리더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는 앙겔라메르켈 총리도 동독출신이다. 그녀도 동독에서 민주화운동 서클에서 반공주의자로 활동하다가 통일독일을 맞이했다. 통일독일 시대의 대표적인 두 지도자가 모두 동독출신 인재들이라는 점에서, 분단국 한국에 주는 메시지가 적지 않다고 본다.
2015년, 우리 정부초청으로 방문한 가우크는 서울 남산에 소재한 탈북대안학교 여명학교에서 인터뷰하는 중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독일은 통일 전에 서독에 입국한 탈동자들이 차별받거나 낙인 찍힐까봐 따로 모아서 교육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정책은 탈동자들이 서독에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왔지만, 통일의 관점에서는 아쉬운 점입니다. 우리는 탈동자들의 고유한 특성을 추출하여 통일 후 동독지역에 맞는 교육과정이나 시스템을 통일 전에 만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남한은 이점을 고려하여 이곳에 와 있는 탈북주민들과 함께 통일을 준비하기 바랍니다.”
그가 말한 요지는 첫 째, 탈동자(동독에서 서독으로 탈출한 이주민들, 우리나라의 탈북자에 해당)들이 서독에 빨리 정착하고, 차별받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별도의 교육을 시키지 않은 것은 결국, 그들이 서독에 정착하는데는 도움이 되었으나, 동서독 통일의 관점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둘 째, 따라서 한국은 탈북자들의 고유한 특징을 분석하고 개발하여 통일 후 북한에 맞는 교육과정이나 시스템을 만드는 일에 공헌 할 수 있도록 별도의 교육을 시켜야한다. 즉, 탈북자들의 고유한 특징을 추출하여 통일이후 북한지역에 맞는 교육과정이나 시스템을 통일 전에 준비하라는 것이다. 북한에 맞는 시스템과 교육과정 구현은 북한을 잘 아는 탈북자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2019년 현재 한국내 초중고 탈북학생 86%가 한국의 일반학교에 재학하고 있다. 14%만이 맞춤교육이 준비된 탈북학교에 다닌다. 일반학교는 한국사회 정착을 위한 경쟁적 교과과정만이 존재한다. 탈북자로서의 정체성과 개성은 열등한 것이며, 숨겨져야만 차별받지 않는 환경이다. 그러나, 탈북학교는 그들의 정체성과 자존감이 세워지며 상처가 힐링되고, 통일세대로 자랄 수 있도록 맞춤교육이 준비된 곳이다. 이런 탈북학교가 수도권에 9개교, 부산에 1개교(장대현학교)가 있다. 가우크박사의 조언대로, 통일한국을 위해서는 이들 탈북학교를 향한 국가적이고 국민적인, 그리고 교회적인 관심이 더욱 절실하다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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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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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미디어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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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인해 소위 뉴-노말(New Normal) 시대가 도래했다고들 합니다. ‘노말’은 한자말로 ‘범상(凡常)’이라 할 수 있고, ‘뉴’는 문자 그대로 ‘새롭다’는 뜻이니, 요즘 하는 말로 표현하자면 ‘새로운 일상’ 정도가 되겠습니다. 아예 시대 구분부터 새롭게 하자는 이들도 있습니다. 원래 그리스도 이전(Before Christ)을 뜻하는 기원 전(B. C.)과 ‘주(主)의 해’라는 의미의 기원 후(A. D.)라는 시대 구분을 언제부터인가 각각 BCE(Before Common Era)와 CE(Common Era)로 바꾸자고 하더니, 이제부터는 코로나 이전 시대(BCE, Before Corona Era)와 코로나 이후 시대(CE, Corona Era)로 나누어야 하지 않느냐는 우스갯소리도 들려옵니다. 그만큼 코로나는 그 어느 때보다 광범위하고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추정합니다. 지구촌 어느 곳 또한 사회의 어느 영역이라도 피할 도리가 없으니 교회 역시 코로나로 인해 심대한 변화를 맞이하게 되리라 예상합니다.
미국 드류신학교의 석좌교수요 기독교 미래학자로 알려진 레너드 스윗(Leonard Sweet)은 교회의 면모를 ‘4M’으로 분류한 바 있습니다. 첫 번째는 미션 처치(Mission Church)로서, 끊임없이 전도하고 선교하며 복음을 가르치고 전파하는 교회를 의미합니다. 본연의 사명을 다하는 교회의 진면목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두 번째는 목회 처치(Ministry Church)로서, 심방하고 축복하며 교인들을 목양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교회를 의미합니다. 제자훈련에 힘쓰거나 성경공부나 신앙교육에 전념하는 교회들을 가리킵니다. 세 번째는 현상 유지(Maintenance Church)형으로서, 현재 상태를 보수(保守)하는데 급급한 교회를 의미합니다. 아마도 작금의 많은 교회들 모습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네 번째는 박물관 교회(Museum Church)입니다. 땅속에서 파낸 도자기 파편이나 죽은 동물의 뼈들 그리고 박제로 남은 물건들만 가득한 곳이 박물관 아닙니까? 하기야 교회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닙니다. 1911년 사회학자 미헬스는 이미 ‘과두제의 철칙’을 논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뉴-노말 시대를 맞이하여 새로운 ‘4M’의 개념을 정립할 수 있을듯합니다. 첫째는 미디어 처치(Media Church)로서, 코로나로 인해 갑자기 도래한 교회의 모습입니다. 활자 미디어에서 출발해서 전파 미디어를 거쳐 비디오 미디어를 지나 등장한 사물통합형의 뉴 미디어가 바로 뉴-노말(New Normal)입니다. 최근 각종 기기를 이용한 신 개념의 예배나 새로운 소통 방식 등이 바로 미디어 처치의 단면들입니다. 둘째는 매뉴얼 처치(Manual Church)로서, 상황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고 평소 가지고 있던 매뉴얼대로 운영하는 교회를 의미합니다. 기존의 중대형 교회들이 본질적으로는 대부분 이런 유형에 속하지 않나 합니다. 셋째는 미모리얼 처치(Memorial Church)로서, 현대적인 매뉴얼조차 갖추지 못한 채로 전통적인 모습들을 답습하고 있는 교회입니다. 상당히 많은 교회들이 이러한 유형에 해당하리라 봅니다. 넷째는 수도원 처치(Monastery Church)로서, 미디어나 매뉴얼과 같은 시대적인 흐름을 외면하고 과거 속에 안주하는 교회는 필경에는 수도원 같은 모습이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현재 새로운 기로에 서 있습니다. 기존의 4M은 결국 열정이 식어버리고 신앙이 형해화해서 교회가 박물관같이 변해버릴 가능성을 경고하는 20세기 개념이라면, 새로운 4M은 미디어가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시대에 미디어에 대한 바른 성찰과 수용을 마다할 경우 벌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을 경고하는 21세기 개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실은, 교회의 미디어가 무엇을 연결하고 중개할 것인가의 여부입니다. 주지하다시피 오경에서 미디어의 단수형 미디움(medium)을 주로 ‘접신한 자’라고 변역합니다(레 19:31, 20:6; 신 18:11 등). 그렇습니다. 아무리 미디어 시대라 해도 성도들을 우상이나 세속적 가치와 연결시키는 그런 미디어를 교회가 받아들일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잇는 진정한 미디움(medium)은 오직 주 예수밖에 없습니다(딤전 2:5). 신자는 그런 주님과 세상을 잇는 미디어(media)가 되어야 합니다. 첨단 기기(器機)뿐만 아니라, 그러한 참된 미디어가 가득한 이 시대의 교회들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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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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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기독교이야기] 서전병원(瑞典病院, Swedish Red Cross Hospital)의 의료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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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전쟁이 발발하자 16개국이 참전했고, 의무지원국이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이탈리아 인도 등 5개국이었다. 이중 가장 먼저 의료진을 파견했던 나라가 스웨덴이었다. 스웨덴은 의료지원단을 보낸 다섯 나라 중에서도 가장 큰 규모와 가장 오랜 기간 활동한 국가였다. 전쟁이 발발하자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6월 28일 한국에 대한 군사원조를 결의하자, 스웨덴은 7월 5일 5개국 중 가장 먼저 1개 야전병원단의 파견의사를 유엔에 통보했다. 유엔의 승인을 얻은 스웨덴은 의사 10명, 간호사 30명과 기타 기술 행정요원 등 176명으로 구성된 야전병원단을 편성하여 개전 3개월 후인 1950년 9월 23일 부산에 도착했다. 부산에 도착한 이들은 도착 이틀 만에 부산시 부산진구 부전동 503번지, 옛 부산상고(현 롯데백화점 부산본점) 운동장에 200병상 규모의 적십자 야전병원을 세우고 진료를 시작했다. 개원 당시 학교 건물에 2개 병동에 16개의 병실과 진찰실, 수술실을 마련하였고, 운동장에는 조립식 권셋(Quonse) 건물을 세워 간호사. 기숙사. 입원실, 식당 등으로 사용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병원이 서전병원이었고 영문공식 명칭은 Swedish Red Cross Hospital이었다. 개원 당시 의료진 92명, 행정직 76명, 목사 1명을 포함하여 총 169명이 근무하였고, 청소, 잡역, 세탁, 경비 등을 담당한 한국인도 200여명에 달했다고 한다.
당시는 인천상륙작전(9월 15일) 이후 한국군과 유엔군이 서울을 수복하고 반격을 가할 때였다. 이런 과정에서 부상자가 급격히 증가되자 10월에는 450병상 규모로 확장되었고, 후에는 야전병원은 규모를 600병상까지 확대했다. 전선에서 소강상태가 계속되자 1951년부터는 민간인을 위한 의료활동도 병행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서전병원은 1957년 4월 한국에서 철수하기까지 6년 6개월 간 한국 부산에서 봉사했다. 휴전이 되었지만 곧장 철수하지 않고 ‘부산 스웨덴 병원’으로 개명하고 후속 의료활동을 계속하면서 고아나 과부 혹은 극빈자 혹은 전쟁난민을 위해 봉사했다. 그러다가 1955년 5월에는 옛 국립 부산수산대학(현 부경대)으로 자리를 옮겨 의료활동을 계속했고, 1957년 4월 10일 한국에서 완전히 철수 하게 된다. 한국에서 일한 6년 6개월 동안 스웨덴 총 의료진 1,124명은 적군, 아군, 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200만 명 이상을 진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웨덴병원의 의료진들은 부산 철도병원과 적기(우암동)에 위치한 구호병원에 의사와 간호사를 파견하여 한국인 치료를 도왔고, 용호동의 나환자정착촌을 방문하여 인도주의적 의료 지원을 감당하기도 했다. 이들의 헌신을 기념하여 스웨덴야전병원협회와 스웨덴 한국협회가 주관하고, 스웨던 정부가 비문을 제작하여 처음 병원을 열었던 지금의 부산 서면 롯데백화점 부산 본점 옆에 스웨덴참전 기념비를 1971년 10월 1일 건립했다. 비문은 스웨덴어, 한글, 영어로 새겨져 있다.
“1950년 9월 23일, 이곳 부산에 설치되었던 유엔군 산하의 스웨덴 야전병원은 대한민국의 자유수호를 위해 1950-1953년 간 한국전쟁에 참가했다. 이를 기념하고 스웨덴 왕국과 대한민국 양국 국민간의 영원한 친선을 위해서 이 기념비를 바치노라.” 1957년 4월 이후에도 일부 의료진들은 잔류하여 한국인 의사와 함께 결핵퇴치사업을 펼쳤고, 덴마크와 노르웨이와 협조하여 서울에 국립의료원을 설립, 운영하는 등 한국 의학 발전에 기여하였다.
그런데, 2003년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의 스웨덴 대표로 한국에 부임한 라르스 프리스크 씨는 서전 병원의 활동에 대해 알게되자 2014년 다큐멘터리 제작을 시작했고, 한국에 왔던 스웨덴 의료진들을 면담하고, 또 야전병원에서 치료받았던 한국인들을 면담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전쟁 중 트럭에 치여 다리를 다쳐 서전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던 소년을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할아버지가 되었지만 그를 통해 서전 병원의 자애로운 봉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소년은 병원에서 다리를 절단했고, 스웨덴 의사들은 목발을 만들어 선물했는데 점차 건강을 회복했고 지금은 노인이 되었지만 스웨덴 의사들의 헌신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다큐멘터리, ‘한국전쟁과 스웨덴 사람들’은 한국과 스웨덴 수교 60주년이 되는 2019년 2월 스웨덴에서 최초로 상영되었다고 한다. 지난 2917년 9월 13일부터 30일까지 동대신동의 동앙대학교 석당미술관에서는 ‘스웨덴 참전용사의 눈으로 본 피난수도 이야기’라는 이름으로 서전병원 사진전이 개최된 바 있다. 영도구 태종대유원지 입구에는 ‘의료지원단 참전기념비’가 서 있는데, 노르웨이, 덴마크, 인도, 이탈리아, 스웨덴, 독일 등 6개 의료지원국 의료진들의 희생과 공헌을 기리기 위해 1976년 9월에 건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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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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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학교를살린다] “응답하라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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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창세기 말씀을 묵상중이다. 그런데 묵상하면 묵상할수록 오늘날 우리의 상황과 참 닮았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특히 노아의 홍수사건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인간은 본질적으로 참 어리석다는 것이다. 노아의 가족이 홍수를 대비하여 묵묵히 방주를 만드는 기나긴 시간동안 하나님은 높은 산에 만들어져가는 방주를 사람들에게 보여주시며 곧 위기가 다가온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려주셨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의 두 눈으로 방주를 보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파악하지 못했고 결국은 다가오는 위기를 전혀 대비하지 못한 채 홍수에 비가 오기 직전까지도 먹고 마시며 자신의 쾌락을 따라 살던 대로 살다가 비참한 종말을 맞았다. 위기는 급작스럽게 찾아오는 것 같지만, 그 전부터 하나님의 예고편이 계속 있었다. 다만 인간의 나약함과 자만이 스스로의 눈을 가려서 못 본 것이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예상치 못했던 전염병의 경고는 예전부터 있어왔다. 신종 플루, 메르스, 사스 등 최근 들어서 대형 전염병들이 국내 뿐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서 계속 이어져왔고 급기야 2020년에 코로나19의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전염병의 상황도 난감한데 더욱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신앙인들에 대한 사회의 비난하는 시선과 편견이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계속 퍼져나간다면 전도도 다음세대 양육에도 치명타가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여전히 교회와 교회학교가 이 위기를 위기로 느끼지 못한다면 더욱 절망적인 일일 것이다. 우리는 이 위기에 신앙으로 응답해야 한다. 먼저는 위기가 위기라는 사실을 인식할 때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올해는 사상초유의 해이다. 전교인이 온라인예배를 드리는 경우가 많았고, 다음세대 부서의 출석률은 곤두박질쳤다. 교회에 모여서 신앙 생활하던 일상이 그리워질 정도였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위기가 또다시 오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심각한 성찰과 그에 따른 만반의 준비가 필요하다. 다시 이렇게 손 놓고 펀치를 맞을 수는 없지 않은가?
11월까지 많은 교회가 내년을 준비하는 회의를 할 것이다.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일단은 위기의 상황이 장기화될 것에 대비해야 한다. 교회와 교회학교는 공동체 안의 신앙인 개개인들이 각자도생하도록 방치할 것이 아니라 위기의 상황에 최적화된 신앙교육의 콘텐츠들을 계발해야 할 것이다. 어떤 교회는 모여서 기도하기 어려워진 이 상황에 온라인기도실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리고 많은 교회들이 줌을 활용하여 소그룹 교육과 만남을 온라인으로 실시하고 있다. 위기를 겪으며 교회학교 부서마다 예배영상이나 성경공부 자료 등 온라인 콘텐츠들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이러한 새 시대에 적합한 방식과 동시에 신앙의 기본으로 돌아가는 시간을 계획해보는 것은 어떨까? 성민교회는 연말연시에 신앙의 본질을 다시 붙잡기 위해 종교개혁의 핵심가치들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어른부터 아이까지 전교인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함께 참여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이를 통해 어른들은 그동안 바쁘게 살아왔던 삶을 되돌아보고 다시 한 번 신앙의 어버이이자 교사로 재무장하는 시간을 갖고, 다음세대들은 신앙의 고상한 가치를 마음에 심고 예수 믿는 자부심을 고취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이처럼 코로나 이후의 신앙교육은 기본으로 돌아가려는 노력과 새로운 시대에 맞는 교육을 찾아가는 노력들이 함께 가야할 것이다. 그래서 2020년이 위기 속에서 변화의 의지를 갖고 신앙 안에 재무장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참 좋겠다. 위기의식이 절망으로 이어지지 않고 희망의 사인이 되어 이전에 해보지 못했던 새롭고 참신한 노력들이 속속 나오기를 바란다. 다시 창세기로 돌아가서, 노아의 시대를 생각해보라. 그는 평생을 위기에 반응하는 삶을 살았다. 그래서 그는 또 한 번의 인류탄생을 여는 도구로 쓰임 받았고, 그의 응답을 통해 위기는 다시 한 번 기회의 시간이 되었다. 하나님께 신앙으로 응답하는 믿음의 시간이었다. 우리에게 2020년은 어떤 한해로 마무리 될 것인가? 어떻게든 믿음으로 살아보려고 애를 썼고, 우리의 다음세대들에게 교회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신앙교육을 하려고 애쓴 한 해,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그 어느 때보다도 진하게 체험했던 의미 있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오늘날 한국교회와 교회학교가 지금의 이 시기를 되돌아보며 하나님이 함께 하신 기회의 시간이었음을 고백하는 날이 반드시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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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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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칼럼] 당뇨망막병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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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막이 무엇이며 기능은?
안구의 가장 안쪽을 덮고 있는 투명한 신경조직을 망막이라 합니다.
안구 내로 들어온 빛은 망막의 내층을 지나 망막의 시세포에 감지 됩니다.
시세포는 빛 정보를 다시 전기적 정보로 전환하고 이 정보는 망막 내층의 세포를 통해 시신경을 지나서 뇌로 전달 됩니다.
이러한 과정으로 우리는 사물을 볼 수 있습니다.
망막은 카메라의 필름과 유사한 작용을 하나 실제로는 카메라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정교하고 복잡한 과정을 통해 그 기능을 수행합니다.
■망막질환의 종류는?
최근 망막이상으로 치료를 받는 환자가 매년 12%씩 증가할 정도로 망막질환 발병율이 높아지는 추세라 각별한 주의가 요구됩니다.
황반변성, 근시성 맥락막신생혈관, 결절맥락막혈관병증, 중심장액맥락망막병증, 황반원공, 황반이상증, 당뇨망막병증, 망막박리, 망막종양, 외상에 의한 망막손상, 빛에 의한 망막손상 등 여러 가지 망막질환 등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황반변성, 망막박리, 당뇨망막병증 등이 대표적인 망막질환이라 할수 있겠습니다.
■당뇨망막병증이란?
당뇨병은 미세혈관계에 병변을 일으키는 대사성 질환으로 눈을 포함한 전신 조직에 광범위한 장애를 일으킵니다. 눈의 합병증으로는 당뇨망막병증, 백내장, 외안근마비, 신생혈관녹내장, 각막감각저하 및 상피손상, 시신경병증 등의 이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당뇨가 있는 환자에서 특유한 망막의 순환장애가 생기는데 이를 ‘당뇨망막병증’이라 하며, 당뇨병성 신경병증, 당뇨병성 신증과 함께 당뇨병에서 3대 미세혈관합병증 중 하나입니다.
당뇨망막병증은 시력저하를 일으키고, 심하면 실명에까지 이르게 할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 나타나는 변화는 혈관이 약해지는 것이며, 약해진 혈관에 의해서 출혈이 발생하거나 혈액 속의 지방성분이 혈관을 빠져나가 망막에 쌓일 수도 있습니다.
■고혈당이 계속 유지되면 어떻게 되나?
고혈당이 유지되면 당뇨망막병증은 빠르게 악화될 수가 있고 망막에 신생혈관이 생길 수 있습니다. 새로운 혈관이 생긴다는 이야기는 좋은 현상으로 오해 할 수 있지만, 신생혈관은 정상적인 기능과 구조물을 가지고 있는 혈관이 아니며 매우 약해 쉽게 파괴될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수면 중에도 혈관이 파괴되어 출혈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런 출혈에 의해 시력 변화가 발생되며, 망막에 상처를 만들고, 섬유화 증식이 발생하여 망막 조직을 당기게 되면 망막조직이 떨어지는 견인 망막박리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또한 당뇨망막병증은 황반이라는 중심시력을 관장하는 부위를 붓게 만들 수 있으며, 이를 당뇨황반부종이라고 하고 이로 인해 심각한 시력저하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주요 증상은?
당뇨망막병증의 망막 병변은 망막혈관의 투과성 증가와 폐쇄로 나타나며, 가장 초기의 변화는 경도의 정맥 확장과 망막 후극부의 미세동맥류 발생입니다. 초기 당뇨망막병증의 경우에는 증상이 없는 경우도 있지만, 비문증, 광시증, 시야 흐림, 야간 시력 저하, 독서 장애 등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혈관 투과성의 증가로 황반부 망막이 붓게 되면 황반부종이라고 하여 심각한 시력저하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상당히 진행된 당뇨망막병증에서도 황반부에 장애가 없다면 좋은 시력을 유지할 수 있으나, 경도의 당뇨망막병증에서도 황반부종 발생시 시력 저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시력은 당뇨망막병증의 정도를 파악하는 지표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당뇨병을 진단 받았다면 증상 유무에 상관없이 정기검진과 추적관찰이 중요합니다.
■치료법은?
약물치료, 레이저치료, 유리체내 스테로이드 주입술, 유리체내 항혈관내피성장인자 주사 , 수술적 치료 등 환자의 현 상태에 따라 다양한 방법의 치료법이 적용 될 수 있습니다.
또한 현재는 당뇨망막병증에 대한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어 그 발생기전에 대한 이해가 많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당뇨병에 의해 나타나는 대사 이상을 차단하기 위한 많은 약물들이 연구 중에 있습니다.
■레이저 치료를 하면 시력이 떨어진다고 하는데 사실인가?
레이저광응고술은 시력 저하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시행이 됩니다만 그 부작용으로 레이저 치료 후 일부 환자에서 시력저하가 생길 수 있습니다. 대규모 연구 결과 시력표에서 1줄 이상의 시력저하가 11%, 2줄 이상의 시력저하가 3%로 보고되었습니다. 그러나 시력저하의 부작용보다는 레이저 치료를 해야 할 시기를 놓치고 나면 잃어버리는 시력의 위험이 더 크므로 담당의와 상의하여 적절한 시기에 레이저광응고술이 시행하는 것이 더 큰 이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뇨망막병증이 있는 여자, 임신해도 괜찮나요?
당뇨가 있는 여성은 임신을 하면 망막증이 나빠지거나 생길 수 있습니다. 당뇨가 있는 여성에서 비증식당뇨망막병증이 임신 중 생길 확률은 10%, 비증식당뇨망막병증이 증식성으로 나빠질 확률이 4%정도 됩니다. 임신을 계획하면 임신전과 임신 후 첫 3개월에 철저한 안과 검사를 받아야 하고. 간혹 임신으로 인해 레이저 광응고술을 받아야 할 정도로 망막증이 진행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따라서 임신 중에는 안과 전문의를 정기적으로 찾아 망막증의 진행여부를 꾸준히 확인해야 합니다. 잘 치료 받은 증식당뇨망막병증은 진행되지 않는 것으로 되어있으므로 임신 전에 레이저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혈당조절을 잘하면 당뇨망막병증을 늦출 수가 있나?
최근의 보고에 의하면 혈당 조절을 잘한다면 당뇨망막병증의 발생을 현저히 늦춘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당뇨환자들은 본인들의 혈당을 정상범위 안에서 잘 관리해야 당뇨망막병증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 환자들은 혈당조절이 잘 이루어짐에도 불구하고 당뇨망막병증이 진행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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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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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임중칼럼] 聖衣를 벗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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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향기가 짙다. 계절의 변화를 보면 하나님의 창조섭리가 얼마나 놀라운지 신묘막측(神妙莫測)이라는 한마디 말로는 부족하다. 부쩍 많아지는 생각 속에 오늘을 살면서 나 자신의 존재가치에 대한 자괴감이 일어 읽던 책을 덮었다. 그리고 속리산엘 다녀왔다. 국보 915호로 지정된 법주사 대웅보전 석축에 잠시 앉아 목사와 승려에 대하여 묵상을 해 보았다. 소위 종교계 지도자인 목사와 승려들은 지금 이 나라 이 국민들에게 어떤 위치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을까? 시류에 합류하고, 이기적 주판을 굴리며 야합에 발 빠르고, 마땅히 해야 할 말은 입안으로 삼켜버리는, 걸어야 할 걸음은 취보(醉步)처럼 뒤뚱거리며 역사가 혼돈할 때 희망적인 메시지 하나 내 놓지 못하는 종교지도자를 그 어찌 시대의 마지막 보루인 참된 종교 지도자라 할 수 있겠는가.
목사로서 성직의 시무를 다하고 은퇴를 하였지만 목사의 성의(聖衣)를 벗고 싶을 때가 있었다. 신명(身命)을 다해 주님이 맡겨 주신 성도들을 사랑하며 그야말로 평행감축으로 목양하고 은퇴를 했다. 그러나 예수님이 가룟유다의 배반의 입맞춤을 당한 것처럼 사랑한 사람들의 배반의 잔을 받아들고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을 당할 때는 심파(心波)를 가누지 못할 정도로 힘들고 영파(靈破)까지 느끼는 혼돈에 허덕일 때는 정말 성의를 벗고 싶었다.
그리고 작금에 이르러 세상이 혼돈하고 백성들이 지치고 방황할 때 희망 메시지를 내 놓지 못하는 부평초 같은 현실 앞에서 성직수행의 한계를 느끼며 자괴감에 성의를 벗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입고 싶어 입은 옷이 아니라 주님이 입혀 주신 옷이기에 스스로 벗을 수가 없다. 그런 자괴감과 복잡함으로 서재를 벗어나 산행에 올랐던 것이다.
울창한 삼림을 걷다가 도토리 하나를 주웠다. ‘도토리 키 재기’라는 말이 섬광처럼 지나갔다. ‘정도가 고만고만한 사람끼리 서로 다툼을 이르는 말’이 도토리 키 재기다. 대동소이(大同小異), 막상막하(莫上莫下), 반근팔량(半斤八两)이 같은 의미로 상용된다. 은퇴 후 말씀사역을 하면서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한 것이 소위 자칭 교회를 위한다는 교인들의 다툼의 언행들이다. 그것은 도토리 키재기 수준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여의도 1번지 선량(選良)들의 쏟아내는 위정(爲政)의 언행을 보고 들으면서 도토리 키 재기가 생각났다. 가수 나훈아 씨가 “국민이 힘이 있으면 위정자(僞政者)들이 생길 수가 없습니다.” 라고 했다. 이 대목에서 국민들이 쾌감을 느끼는 것은 작금의 정치지도자들은 爲政者가 아니라 나훈아 씨가 일갈한 僞政者로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자리는 좋아하면서 그에 합당한 직무는 수행되지 않는 것이다.
나훈아 콘서트가 방송된 후 온 나라가 나훈아 신드롬(syndrome)에 빠진 듯하다. 모든 방송과 SNS는 <테스형>으로 국민들의 마음에 마치 가을단풍 물들 듯 딱히 무엇이라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물들이고 있다. 모든 음원사이트에는 나훈아 노래가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74세의 노당익장(老當益壯)에 젊은이들도 열광한다. 식당, 카페, 저잣거리에서도 대화의 화제는 나훈아, 테스형이다. 구태여 시청율은 접어두고라도 74세의 가수가 콘서트 막간에 한 말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일까? 나훈아 씨가 한 말의 몇 가지를 정리해 보면 이렇다. “국민이 힘이 있으면 僞政者들이 생길 수가 없다” “역사책에서 왕이나 대통령이 국민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는 사람은 못 봤다. 바로 여러분들이 이 나라를 지켰다.” “KBS가 여기저기 눈치 보지 않는, 국민을 위한 방송이 됐으면 좋겠다. KBS가 거듭 날거라 믿는다.” 그야말로 경천동지할 우회적 메시지였다. 바로 여기에 전 국민들이 공감하면서 나훈아 신드롬이 일어나는 것이다. 묘할 정도로 수위가 조절된 시국비판과 언행의 진정한 자유함의 포효에 시청자들은 열광했으리라. 그리고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테스형>이 존재가치를 회복하는 희망메시지가 되어 국민들의 아프고 지친 현실을 바로 보게 한다. 전곡에 흐르는 음색의 애잔함과 그에 내재된 슬픔이 베어 나와 그냥 저절로 눈시울이 젖어드는 것이 테스형이다. 그것이 지금의 국민정서다.
사랑하는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문안 인사를 한 후 망설이듯 친구가 입을 열었다. “나훈아 콘서트 보셨는가?” “생방송은 못보고 유튜브를 통해 부분 부분 보았네.” “2시간동안 시청하면서 내내 나는 그 아픈 세월 다 감내하면서 여전히 고난의 행보를 하면서도 기쁨으로 말씀사역 하시는 서목사 자네를 생각했네.”
전화를 끊고 산행 길에 주워들었던 도토리 생각이 났다. 인생여정의 모든 이들의 삶의 몸부림은 도토리 키 재기인 것을... 그리고 나훈아 씨가 부른 <테스형> 첫 소절이 생각나서 흥얼거려 본다. “어쩌다가 한바탕 턱 빠지게 웃는다. 그리고는 아픔을 그 웃음에 묻는다.” 그래 맞다. 그것이 인생이다. 나훈아 씨가 “가수는 꿈을 파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꿈이 고갈되면 노래를 접고 가는 것이라”고 했다. 목사는 주님에 대한 믿음이 고갈되면 꿈을 심어줄 수 없는 삯군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친구의 과분한 격려가 내 마음에 말씀하시는 주님의 목소리로 다시 들렸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목사로서 가치개념이 부서질 때 聖衣를 벗고도 싶었지만 목사로서 Calling과 Mission을 생각하며 다시금 聖衣를 여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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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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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연구]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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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를 펼치면 제일 먼저 나오는 것은 예배 찬송입니다. 송영, 경배, 찬양 등의 소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이 부분의 찬송은 대개 예배가 시작되는 첫 부분에서 부릅니다. 그리고 그게 끝입니다. 그 외엔 잘 부르지 않습니다. 한국교회 성도들의 애창곡은 거의 자신의 생애와 관련이 있습니다. 인생길에 동행하시는 주님, 고난 중에 도우시는 주님, 기도를 들으시는 주님, 평강을 주시는 주님 등에 관한 찬송가를 좋아합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는 찬송가들은 그다지 자주 부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 갑자기 하나님께서 매우 섭섭해 하시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늘 하나님께 구하기만 합니다. 우리 문제만 가지고 나갑니다. 찬송도 우리의 인생과 안타까운 사연과 관련된 은혜를 구하는 찬송을 주로 부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섭섭해하지 않으실까요? 코로나와 여러 어려운 사회적 상황 때문에 우리의 기도와 찬송은 더욱 우리 중심적으로 흐릅니다. 우리를 돕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대한 원망만 늘어놓는 것 같습니다.
이런 모습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본래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께서는 상황과 관계없이 영원히 찬양받아 마땅하신 분입니다. 영원 전부터 계신 분이며, 온 세상의 창조주이시며, 능력과 지혜가 무궁하십니다. 설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고 돌보지 않으셨다 해도 우리는 하나님을 높여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되, 독생자 예수님을 주시기까지 사랑하셨고, 그 사랑은 한이 없으십니다. 더욱이 우리가 사랑을 받을 아무 자격이 없음에도 사랑하십니다.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께 대항하고 반역한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당신의 자녀로 삼으셨으니, 그 은혜는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이사야 43장 21절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목적을 말해 줍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아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지으신 목적, 택하시고 인도하시고 사랑하시고 구원하신 목적은 당신을 찬송하게 하여 영광을 받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나 엉뚱한 우상을 찬송했고, 그 앞에 엎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우상 숭배를 그토록 미워하신 이유는 당신께서 받으셔야 할 찬송을 우상에게 돌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 하나님을 찬양하길 원합니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해야 한다고들 말하고, 선교, 봉사에 힘을 씁니다만, 그 전에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 자체가 가장 위대한 주님의 일입니다. 이제부터 찬송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한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일찍 혼자되셨지만, 재혼하지 않으시고 남자의 손으로 긴 세월 동안 자녀들을 키우셨습니다. 집을 얼마나 깔끔하게 정리하고 사셨는지요. 집사님은 교회에서 컴퓨터 교육을 받으시고 신구약성경 전체를 타이핑하셨습니다. 말년에 자녀들에게 짐이 되지 않겠다면서 요양병원에 가셨는데, 매일 옥상에서 스무 장 이상 찬송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양 병원 옥상에서 홀로 부르는 찬양을 통해 영광을 받으셨으리라 믿습니다. 지금은 천국의 찬양대원이 되셨겠지요.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 감옥에서 채찍에 맞은 몸으로 고통을 받으면서도 한밤중에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이제부터 찬양의 삶을 살도록 합시다. 621장 찬송을 읊조려 봅니다.
찬양하라 내 영혼아 찬양하라 내 영혼아
온 맘과 정성 다하여 주 찬양하라
경배하라 내 영혼아 경배하라 내 영혼아
온 맘과 정성 다하여 주 경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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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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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얼룩날개 장군이 납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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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찬바람이 조석으로 불어대는 계절입니다. ‘어디에 두었더라?’ 깜빡하기 일쑤인 전기장판을 찾고, 옷장 깊숙한 곳에 갈무리해두었던 두꺼운 옷들을 꺼낼 시점입니다. 그러다 보니 한 가지 좋은 소식도 있습니다. 여름 내내, 아니 어쩌면 오늘 새벽까지도 누군가를 귀찮게 하고 힘들게 했을지 모르는 불청객들이 이제 물러갈 때가 되었다는 소식입니다. 이들은 무엇을 가리킬까요? 힌트 하나를 드린다면,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최근 대담에서 환경의 변화로 인해 뎅기열(Dengue Fever)을 유발하는 ‘이것’들이 이미 대만까지 도달했고 한반도에도 상륙할 날이 멀지 않았다 예언했습니다(『코로나 바이러스』, 인플루엔서). 생태전문가요 통섭의 대가로서 괜히 하는 우려가 아닙니다. 2015년 아사히(朝日)신문은 일본 땅에도 열대성 열병을 유발하는 매개체들이 발견되기 시작했고 이미 정착 단계에 있는 것은 아닌지 보도한 바도 있습니다. 눈치 채셨겠지만 그 주인공은 바로 ‘모기’입니다.
이들은 언제부터 존재했을까요? 영화 <주라기 공원>은 공룡의 피를 섭취한 모기 화석이 이야기의 시발점인데, 원 소설의 저자 마이클 크라이튼(Michael Crichton)이 의사 출신이라 그런지 그럴듯하게도 들립니다. 적어도 ‘역사 시대’를 모기는 인류와 함께 했다는 점만은 분명합니다. 이집트의 룩소르(luxor)에서 발굴된 람세스 3세의 신전에 모기의 모습이 새겨진 상형문자판이 발견되기도 했으니까요. 단순한 역사의 동반자에 그치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옥스퍼드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티모시 와인가드(Timothy C. Winegard)는 최근 ‘모기’라는 책에서 <인류 역사를 결정지은 치명적인 살인자>라는 부제를 달고 이렇게 서문을 썼습니다. “우리는 모기와 전쟁을 벌이고 있다. 110조 마리의 게걸스러운 모기 군단에 남극 대륙, 아이슬란드, 세이셸,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일부를 제외한 전 지구를 샅샅이 훑고 있다. 이 윙윙거리는 곤충 집단 중 최소 열다섯 종류 이상의 생화학 무기로 무장한 공격자들은 그 효과가 의심스럽거나 오히려 해가 되는 방어책만을 동원하는 인간들의 건강을 위협한다.”
실제로 일어났던 역사의 한 자락을 살펴볼까요? 주전 480년 부왕 다리우스의 꿈을 이루겠다며 40만 군대를 이끌고 그리스를 침공한 크세르크세스(아하수에로)를 결정적으로 패퇴시킨 것은 뒤늦게 합류한 새로운 항공부대(모기)였습니다! 늪지대와 습지를 횡단하던 페르시아 군사들을 모기떼가 덮쳐 40퍼센트에 달하는 병사들을 말라리아와 이질로 쓰러뜨렸기 때문입니다. 모기는 성경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처음 고쳐주신 “왕의 신하”의 아들이나 베드로 장모는 모기와 무관하지 않았을 열병을 앓았습니다(요 4:52; 막 1:30). 바울도 타우르스(Taurus) 산맥을 넘기 전 심한 병에 걸렸다고 하죠? 해안가 모기가 옮긴 풍토병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모습을 본 마가가 떠나버렸으니, 모기는 선교 역사에도 실력행사를 한 셈입니다. 사도행전 28장을 보면 표류 끝에 구사일생으로 도착한 멜리데 섬에서 바울이 “열병과 이질”에 걸린 보블리오의 부친을 안수하여 낫게 해주는 장면이 등장합니다(행 28:8). 모기를 통해 감염되는 전형적인 질병인 말라리아와 이질로 추측할 수 있겠습니다.
‘님은 갔습니다’라는 시도 있지만, 모기만큼은 지금 잠시 떠나는 듯해도 결코 우리 곁을 떠나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제는 더 광폭한 친구들을 데리고 돌아온다 하니 걱정입니다. 동남아시아 선교여행을 떠날 때 제일 먼저 맞는 것이 뎅기열 예방주사였는데, 이제는 우리가 사는 동네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백신이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 하는 목소리도 있겠지만, 문제는 백신이 있고 없고의 여부가 아닙니다. 왜 뎅기열 모기가 북반구 중위도까지 진출하게 되었는가 하는 질문이 더 중요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백신 개발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입니다만, 정작 문제는 앞으로 새로운 변종 바이러스가 얼마든지 출현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최재천 교수의 처방이 옳습니다. 현재 인류에게 절실한 것은 그때마다 땜질하듯 처방하는 백신이 아니라, ‘생태백신’이요 ‘환경백신’이라는 대안 말입니다. 그것만이 위험으로부터 인류를 지키면서 모기를 비롯한 자연과 공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공감대가 이번 기회에 널리 확산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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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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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인물탐구] 새로 뽑힌 예수님의 제자 맛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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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라는 말은 헬라어로 아포스톨로스로서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따르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열두 명을 세우셨는데, 이 제자들을 가리켜 사도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친히 세우신 열두 명 중에 한 명인 가룟 유다가 주님을 배반하였고 회개할 기회도 갖지 못한 채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이후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사도들과 성도들은 부족한 한 명의 사도를 충원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그리하여 사도를 뽑기로 하고 뽑는 기준을 정하였습니다. 그들이 우선 내세운 기준은 항상 자신들과 함께 다니던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신앙생활이 얼마 되지 아니한 사람은 신앙의 진면목을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 처음에는 열심이 있어서 다른 사람을 앞서는 것처럼 보이지만 얼마 못 가서 용두사미처럼 희미해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금이 정련을 통해 순금이 되듯이 신앙도 연단을 통하여 깊어지고 성숙되어집니다. 새 사도의 선택 기준에 있어 항상 함께 다니던 사람이 되어야만 예수님에 대해서 잘 알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부족한 한 사도를 충원하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증거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로 선택함을 입은 사도는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십자가신앙과 부활신앙이 없이는 사도의 직분을 감당할 수 없음을 뜻합니다. 우리는 초대교회의 복음의 핵심이 예수님의 부활이었던 것을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즉 베드로와 제자들은 죽음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 살리신 이 일 곧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모든 제자들은 다 부활의 증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항상 함께 다니던 사람 가운데서 부활을 증거 할 사람을 뽑기로 하였습니다. 그들은 두 사람을 무리 앞에 추천하였습니다. 한 사람은 유스도라고 하는 요셉이고 또 한 사람은 맛디아였습니다. 두 사람을 추천한 것은 보다 객관적으로 주께 합당한자를 뽑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두 사람을 추천한 다음에는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사도들은 <뭇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의 택하신바 되어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를 보이시옵소서> 라고 간절히 기도드렸습니다. 그들의 이러한 행동은 매우 지혜로웠으며,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였습니다.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하나님께 기도한 것은 그들이 기도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습관을 좇아 기도하셨으며, 중요한 일을 앞두고 기도에 힘쓴 것을 성경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받는 중요한 무기입니다. 기도한 후에 사도들은 항아리 속에 이름이 적힌 돌멩이 둘을 넣었습니다. 그리고 돌멩이 하나를 선택하였습니다. 그 돌멩이는 맛디아라는 이름이 적힌 돌멩이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맛디아를 열한 사도의 수에 가입시켰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제비뽑기를 하나님이 하시는 일로 생각하였습니다. 제비뽑기는 구약 시대에 자주 사용되었던 방법으로, 새로 정복한 땅을 나눌 때, 금기를 어겼던 죄인을 찾아낼 때, 왕을 뽑을 때도 사용되었습니다. 제비로써 사도를 선출한 이유는 제자들 마음에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라고 확신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일꾼은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언제 어느 곳에 있든지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일꾼, 교회에서 인정을 받는 일꾼, 모든 사람에게 인정을 받는 경건한 성도가 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아무리 많은 재능을 지녔어도 인정을 받지 못한다면 그것들을 썩힐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뜨거운 열심이 있어도 인정을 받지 못한다면 그 열정은 가치가 없게 됩니다. 무슨 일에든지 적임자가 있게 마련이어서 사람이 많다고 모두가 이에 기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일꾼을 기용하실 때도, 교회나 사회가 일꾼을 쓸 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무슨 일에든지 하나님의 요구에 부응하는 일꾼이 될 수 있도록 경건 훈련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일을 맡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충성을 요구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달란트의 분량에 관계없이 각자가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작은 일이라고 업신여겨서는 안 되며, 큰일이라고 뒤로 미루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일들은 그 분량이나 크기에 관계없이 주어진 사명으로 받아드리고 충성을 다할 때, 하나님과 사람에게 인정을 받고 크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 받고 성공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공하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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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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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학교를살린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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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42>는 1940년대 초창기 미국 프로야구 최초의 흑인타자였던 재키 로빈슨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남북전쟁이 끝난 지 80여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흑인들에 대한 차별이 존재하던 시대 속에서 사회의 편견과 부조리를 극복하고 훌륭한 야구선수로 성장하는 한 인물과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중에서도 참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관중석에서 흑인을 비하하는 수많은 어른들의 소리를 자연스럽게 따라 외치던 한 백인 어린 소년이 그라운드에서 주인공 곁으로 같은 팀 백인선수가 저벅저벅 걸어와 주인공과 어깨동무를 하며 말없이 주인공을 지지해주는 모습을 보고는 입을 다무는 장면이었다. 그동안 생각 없이 주변 어른들을 따라 흑인을 조롱하던 그 백인 소년은 또 다른 백인 선수의 의로운 행동을 보며 새롭게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피부색을 가지고 공공연히 비하하고 차별했던 일이 벌어진 게 불과 80여 년 전의 일이다. 지금 이런 인종차별이 일어난다면 엄청난 사회적 지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그때는 용인되던 일들이 지금은 완전히 틀리다고 비난받는 일들이 오늘날 비일비재하게 되었다. 그러나 좀 더 생각해보면 사실은 이러한 인종차별과 관련된 사례들은 그때도 틀리고 지금도 틀린 일들이다. 그것을 그때는 감지하지 못했고 오늘날은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극단적인 예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과거를 돌아보며 그때는 그래도 되었던 일들이 지금은 그러면 안 되는 일이 되어버린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시대가 바뀌었다는 것은 또한 우리가 현재 살아가는 방식과 생각을 오늘의 시대에 맞게 바꾸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대가 바뀌면 바뀐 시대에 걸맞게 살아가야 하는데 여전히 예전의 시대에 살던 방식대로 산다면 시대에 맞지 않고 도태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신앙인들이 이러한 경우에 적용하는 성구가 있지 않은가? “새 술은 새 부대에!”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너무나 필요한 말이다. 시대가 완전히 바뀌었지 않은가? 세상이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흘러가고 있다. 예전에 유망 직종이었던 항공 여행 산업이 이렇게까지 곤두박질 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언택트라는 말도 처음 들어보는 신조어이다. 지금 세계는 코로나 이후의 시대를 예상하고 대비하는 일들로 바쁘다. 시대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히려 교회와 교회학교는 시대가 바뀌었음을 잘 인식하고 잘 대비하고 있는지 매우 우려가 든다. 혹자는 코로나만 끝나면 이전으로 되돌아갈 것이라는 지극히 순진한 생각을 갖고 있다. 사람도 예산도 모두 회복될 거라 안일하게 생각하는 교회 중직자들이 예상외로 많다. 그러나 역사의 시계는 뒤로 가지 않는다. 우리는 결코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이미 우리의 다음세대들은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신앙의 교육공백을 맞이했다. 이 타격을 어떻게 최소화하고 극복할 것인가 하는 것이 관건이다. 성민교회는 지난 9월에 다음세대를 비롯하여 전교인을 대상으로 문고리심방을 기획하고 실행하였다. 심방에 필요한 말씀과 정서적 돌봄 등을 비대면으로 할 수 있도록 설교집과 마스크, 손 편지와 수제 선물 등으로 가득 채운 선물을 각 가정별로 문고리에 걸어놓는 방식으로 진행된 이번 문고리심방은 코로나시대의 목회적 대안으로 많은 교계 매체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처럼 코로나 상황 속에서도 새로운 대안을 찾아갈 수 있다. 이 외에도 교회마다 다양한 방식들로 대처해나가며 고군분투하고 있을 것이다. 시대가 달라졌기 때문에 그 시대에 걸맞는 방법을 교회와 교회학교는 나름대로 열심히 찾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우리는 오히려 코로나 학습효과로 교회와 교회학교에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일주일에 한번 한 시간으로 모든 신앙교육을 퉁치던 이전의 시대는 사라졌다. 그때는 맞았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틀린 방식이다. 교회학교는 이제 우리 다음세대들의 일주일동안의 신앙교육을 책임지는 곳이 되어야 할 것이다. 가정예배 순서지를 제공하고, 가정에서 신앙 활동, 성경공부를 할 수 있는 컨텐츠와 챌린지를 계속해서 공급하는 일도 이제 교회학교의 몫이다. 교회 뿐 아니라 가정과 사회 속에서도 네트워크상에서 소통과 대화, 교제가 일어날 수 있도록 공동체를 연결해주는 일도 교회학교가 할 일이다. 필요하면 비대면으로 문고리에 걸어놓고, 다양한 신앙교육 컨텐츠를 온라인으로 제공하고 사이버세상에서 서로를 연결해주고 소통하는 이 모든 일들은 이전의 시대에는 자주 활용하지 못했거나 실행하지 못했던 일들이다. 새 시대에는 이렇게 신앙교육의 장과 활동범위가 광범위해져야 한다. 새로운 시대에는 다양한 창의적인 사고들이 교회학교에 일어나기를 바란다. 우리 다음세대들을 위한 신앙교육이 폭넓어지기를 바란다. 간절함이 길을 만들어낼 것이다. 하나님이 길을 열어주실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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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