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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교수의 역사탐색]진 페리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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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빅토리아장로교회의 한국선교는 1889년 10월 데이비스(Joseph Henry Davies, 1856-1890)와 그의 누나 메리(Mary, 1853-1941)의 내한으로 시작되었다. 데이비스 남매는 1889년 10월 2일 부산을 거쳐 4일 제물포에 도착하였고, 5일 서울로 이동하였다. 서울에서는 언더우드와 함께 지내며 조선말을 공부했고, 내한 5개월이 지난 1890년 3월 14일에는 누나 메리는 서울에 남겨둔채 남쪽으로 전도여행을 떠나 약 20일간 483km의 여행을 마치고 목적지 부산에 도착했으나 여행 도중 천연두에 감명되었고 폐렴까지 겹쳐 부산 도착 다음 날인 1890년 4월 5일, 3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첫 선교사의 예기치 못한 죽음으로 큰 충격을 받은 호주교회는 후속 선교사 파송을 결의하고, 1891년 5명의 제2진 선교사를 다시 한국으로 파송했는데, 그들의 매카이 목사(J. H. Mackay)와 그 부인 사라(Sarah), 그리고 멘지스(Belle Menzies), 퍼셋(Mary Fawcett), 진 페리(Jean Perry, 1863-1935) 등 세 사람의 미혼 여선교사들이었다.
즉 진 페리는 호주 빅토리아장로교회 여전도회연합회(PWMU)가 조선에 파송한 제2진 선교사 5명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는 본래 1863년 영국 런던 근교 세인트 메리스 크래이(St. Mary’s Cray)에서 출생했는데 19세가 되던 1882년 부모를 따라 호주 퀸즈랜드로 이민하였고, 가족과 함께 생활하던 중 1891년 여전도회연합회 파송으로 내한하게 된 것이다. 페리는 동료 4사람과 함께 1891년 9월 5일 시드니를 출발하여 40여 일간의 긴 여행을 마치고 1891년 10월 12일 부산에 도착했다. 이때부터 진 페리는 호주 빅토리아장로교 소속 선교사로 일하게 된다. 그런데 페리는 호주빅토리아장로교 소속 선교사로 약 2년 6개월간 일한 후 1895년 6월 말로 호주장로교 여전도회연합회 선교사직을 사임했다. 그가 사임한 이유는 교리적인 문제에 있어서 플리머스 구룹의 입장을 따랐기 때문이었다. 부산을 떠나 일본으로 갔던 페리는 7월 1일자로 장로교회의 특정교리에 대한 견해차를 수용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일본에서 사임서를 보낸 것이다. 이 사임서는 두 달 후인 1895년 9월 1일 멜버른의 여전도회연합회 접수되었다. 여전도회연합회는 페리의 사임에 대해 매우 당황했고 그의 사임서를 수리하지 않고 임명 자체를 종료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그런데 이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호주장로교 선교부를 떠난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필자는 이 점에 대해 궁금하여 여러 문헌을 검토하였으나 단지 ‘신학적 견해 차이 때문’이라는 기록뿐이었다. 그렇다면 견해차가 무엇이었을까? 북장로교의 사무엘 마펫의 기록을 보면 그 ‘신학적 견해차’를 알 수 있는데, 마펫이 엘린우드에게 보낸 1895년 8월 21일자 편지에서 페리가 호주장로교 선교부를 떠난 것은, “그가 일본을 한 차례 여행하면서 몇 사람과 접촉했는데, 플리머스 형제단에 가입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장로교에 속했던 페리는 반교권적 반성직주의를 지향하되 원시 교회를 이상으로 여기는 플리머스 형제단에 매력을 느꼈고 결국 호주장로교 선교부를 떠나기로 한 것이다. 신학적 차이는 결국 교회관의 차이였다고 할 수 있다. 호주 선교부를 떠난 그는 일본에서 1896년 9월 호주로 돌아가 선교 후원자를 찾아 지원을 호소하고, 다시 내한하여 서울에서 엘렌 패쉬(Ellen Pash)라는 여성과 새로운 선교사역을 시작했다. 엘렌은 일본에서 만난 여성인데, 영국 켐브리지 길턴대학(Girton College) 출신으로 인도에서 사역하던 중 건강 때문에 일본으로 가 요양하고 있었다. 이때 일본을 방문한 페리와 만나게 된 것이다. 많은 점에서 의견을 같이했던 이들은 걸인, 유랑자 혹은 고아와 맹인 소년 소녀들을 위해 독립적으로 사역하기로 하고 두 사람은 1897년 ‘영국복음주의선교회’(BEM: British Evangelistic Mission)를 조직했다. 이들이 서대문 밖 정동에서 시작한 첫 사업이 고아원(孤兒園, Garden for Lonely Children) 사업이었다. 이때 영국에 있는 친구들의 재정지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1899년에는 맹인들을 위한 ‘훈민학당’을 설립하고 점자교육을 실시했다. 이처럼 페리는 고아와 맹인, 여성 등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1915년까지 사역하고 52세의 나이로 은퇴했다. 곽안련(C. A. Clark) 선교사에 의하면, 페리는 1915년 한국에서 은퇴할 때 고아원과 모든 구호 시설들을 구세군에게 넘겨주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은퇴하고 노후를 보내던 페리는 72세 때인 1935년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페리는 문필력을 겸한 인물로 한국 체재기에 한국선교와 관련된 Chilgoopie The Glad,
The Man in Grey: or More About Korea, Uncle Mac The Missionary: or more News from Korea, True Stories by a British Missionary Woman, Twenty Years a Korean Missionary와 같은 여러 권의 책을 출판했는데, 초기 한국사회와 한국교회적 상황을 헤아려볼 수 있는 수중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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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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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건축칼럼]교회건축의 에너지 절약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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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건축시에 에너지절약은 완공후 교회 운영에서 관리비 절감과 직결되어진다 최근에는 석탄연료의 사용절감과 신재생에너지의 확대로 바뀌어 가고 있다. 교회도 수도권에서 건축되어지는 경우 녹색인증을 받아야 사용승인이 허락된다.
교회 건축의 에너지 절감은 크게 세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시스템 구축에의한 에너지 절감방안이다. 저전력 고효율에너지 운영 방식이다. 휴일 및 심야시간이나 장기간 부재시에 불필요한 대기전력을 차단되는 대기전력 차단콘센트나 심야시간의 미사용 기기들의 대기전력차단 타이머 콘센트의 설치와 같이 능동적 시스템 구축에 의해 에너지를 절감하는 방식이다. 스마트폰에 교회 전기, 냉난방 ON, OFF와 가튼 인텔리전트 구축도 증대되고 있다.
둘째, 에너지 절약을 위한 건축기기나 소재의 적용에 의한 절감이다. 전등이나 조명은 고효율 LED 내장형 기구의 사용으로 효율과 수명을 늘릴 수 있다. 요즘은 에너지 저소비형 램프도 다양하게 생산되고 있으며 전력부하를 저감시킨다 건축의 냉방이나 난방을 경제적으로 운용하려면 건물외벽에 단열재를 고효율 제품을 적용해야한다. 단열재는 건물의 부위별로 각기 다르게 적용된다. 지붕이 가장 두껍고 고성능재를 적용하며 그다음 벽체와 바닥순이다. 지하층의 외벽도 단열이 잘 유지되면 결로 현상이 많이 감소되어진다.
셋째, 패시브에너지 절감이다. 패시브 에너지는 자연현상의 수동적 형태의 방법이다 건물내에 바람길을 형성하게 하면 결로나 내부곰팡이와 같은 요인은 많이 제거되며 환기에도 유리해진다. 외부에 창은 내부에 브라인드나 커튼을 설치하여 여름과 겨울에 적절한 태양광을 자동조절해서 유입시킬 수 있게된다. 화장실의 기기도 차례식 수도꼭지나 초절수형 양변기를 설치하면 물소비량이 많이 절감되어진다. 건축시에 지하에 저수탱크를 설치하여 빗물를 저장했다가 청소용수나 식재용으로 재 사용할 수 있다. 지붕층은 태양열에 의해 에너지 부하가 크게 증대된다. 따라서 지붕은 조경을 설치하거나 채양있는 구조등을 설치하면 에너지 절감에 크게 기여한다. 태양의 복사열에 의해 내부에너지의 절약은 외벽 부근에 차수림이나 녹화를 조성하면 내부열부화를 절감시킬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보듯이 에너지 절감은 다양한 기법과 부위별에 적합한 절감방안을 통해 건물은 친환경적이고 쾌적한 공간으로 건축되어진다. 건축시에 에너지 절감에 대한 심도있는 분석과 적용을 계획하여 완공후에 유지비나 에너지를 절감해야한다.
교회주차장을 잔디블럭으로 포장하면 교회주차장은 마치 공원처럼 녹지공간으로 바뀌게 되며 마을장터나 바자회장과 같은 소통과 기능의 공간이 된다. 에너지도 절약하고 기능은 극대화되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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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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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애]‘어울림’이라는 말이 교회에 어울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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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초중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장애인식개선교육을 하러 다닌다. 그런데 지난 9월부터는 교육을 다니면서 교육 마지막 즈음에 본인이 다니는 대학원 동기들과 찍은 사진, 그리고 누누서포터즈 단원들과 찍은 사진을 나란히 놓고 보여준다. 그리고 그 밑에 써 놓은 한 문장을 읽어주며 어울림을 강조한다. 그 문장은 이렇다. “장애인의 건물의 접근성을 보장하는 것은 정부의 법적 요구 사항이지만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태도를 바꾸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어울림이 중요하다”(크리스 H. 헐쇼프, 예수와 장애, 대장간)
이 문장에 동의하는가?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떤 이들과 어울리며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자신과 다른 생각이나 성향을 가진 사람들과도 편견 없이 차별하지 않고, 배제하지 않고 어울리며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는가? 아니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교회 내에서만 외치는 구호로 남겨 놓고, 교회 밖에서는 끼리끼리 어울리는가? 왜 우리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외치면서 실생활에서는 자신과 다른 이들과 어울리지 못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그건 우리가 어릴 때부터 받아온 가정교육, 학교교육, 교회교육 영향에서 비롯되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자신 보다 경제 형편이 좋지 못하거나, 배움이 덜 하거나, 신체에 장애가 있는 자들과는 어울려 놀지 말라는 교육을 받고 자라왔다. 그러다 보니, 자신과 다른 사람들과의 어울릴 방법을 모르는 것이다. 그 어디에서도 함께 어울리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함께 어울리는 교육을 직장을 다니는 어른들과 유치원이나 학교를 다니는 어린이들과 학생들은 의무적으로라도 받고 있다. 본인이 강의를 하러 전동휠체어를 타고 학교에 가면 학생들이 멈칫하며 피하기보다는 신기하게 생각하며 먼저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 장애인을 마주할 때에 어른들에게서 볼 수 있는 처량하고 불쌍한 눈빛과 말은 아이들에게서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세상은 의무교육을 통해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울려가고 있다.
그렇다면 교회는 어떤가? 교회는 여전히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분리한다. 다른 부서들도 분리했다고? 분리한 것은 맞다. 대신 연령대별로, 성별로 나뉘어 놓았다. 그런데 유독 통합해서 만든 부서가 있다. 언제부터인가 사랑부라고 명명된 장애인부다. 장애인부에 대해 생각해 보자. 교회 내 다른 부서들은 연령별, 성별로 나뉘어져서 연령과 성별에 맞게 예배도 드리고, 교육도 하고,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그리고 담당 교역자도 가급적 부서 전문 사역자를 찾아 세운다. 그런데 장애인부는 어떤가? 몇 교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장애인부에는 연령대 구분도, 성별 구분도, 심지어 장애 유형 구분도 없이 하나로 통합되어 운영되어 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교육도 없다. 그러다보니 장애인에게 말로써 상처주는 사람들 중에 교인들이 제법 많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들었다는 소리를 들으면 본인이 미안해진다.
세상은 장애인이 지역에서 비장애인과 함께 어울려 살아갈 존재임을 인식하고, 이에 따른 법률을 제정하고 시행되어 가는데, 교회에서는 여전히 장애인은 비장애인에게서 분리 할 대상이며, 나이와 성별을 고려하지 않은 하나의 묶음으로 존재한다. 학교와 사회는 장애인과의 어울림을 강조하는 데, 교회에서는 어울림 보다는 분리를 유지하고 있으니 교회를 다니는 아이들은 혼란스러워하지 않을까? 이제 교회 내에 장애인부가 존재하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고마워해야 하는 시대는 지났다. 교회는 이제 장애들만을 따로 분리하는 것을 멈추고, 이들 역시 다른 성도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준비를 해나가야 할 것이다. 그래야 ‘어울림’이라는 말이 교회에 어울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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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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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말씀]여호와를 의뢰하고 기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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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때문에 불평, 시기하지 말고 여호와를 송축하라. 정 때문에 울고불고 반응하지 말고, 주님 안에서 선명한 뜻을 정하고 감사, 노래하라. 한 입으로 인간을 저주하지 말고 하나님을 찬송하라. 한 입으로 쓴물과 단물을 동시에 낼 수가 없다. 조건반사적인 ‘때문에’의 삶을 살지 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삶을 살라. 원망, 불평, 핑계, 이유, 변명, 미움, 시기의 삶을 살지 말고 용서, 감사, 사랑, 인정, 존경의 삶을 살아라. 풀은 시들고 잎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기 마련이나, 그런 유통기한이 짧은 것을 바라보지 말고 영생복락을 기대하라.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염려하지 말고 천국 소망을 가지고 인내를 이루라.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뢰하라. 세상을 살아가며 사람을 마주하고 상대하지만, 사람을 보고 세상을 보면 반드시 실망하게 된다. 그러나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고 사랑하고 섬겨야 할 대상이다. 할 수만 있으면 선으로 악을 이기라. 지는 게 이기는 것이고, 내려놓을 때 자유가 온다. 주는 자가 복이 있다. 이 땅에서 나그네 세월을 지나며 성경의 가치를 따라 성실, 겸손, 거룩을 감당하면 원수도 그 사람을 건드리지 않는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힘이다. 기뻐, 바뻐, 예뻐하라. 사람 때문에 울고불고 하지 말고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라. 사람을 사랑하면 상처받고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 하박국에서도 악을 행하는 자들이 형통함을 보고 불평하지 말라 하였다. 악인들은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다.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없을지라도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고 즐거워하라. 환난 풍파 많은 세상에서 주께서는 먼저 평안을 주셨다. 그래서 고요한 가운데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신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시편 37:5,6). 무거운 짐을 지고 혼자 끙끙거리지 말고 하나님께 맡겨라. 의지하라. 신뢰하라. 위탁하라. 던져 버려라. 주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에게 안식을 주신다.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잠언 16:1,3)
진인사대천명이다. 하나님100%, 사람100%이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되 결과는 모두 하나님 손에 맡겨라. 하나님의 확실한 언약을 붙들고 그저 우리의 할 바, 구하고 찾고 두드리고 애를 쓰면, 결국 믿음대로 말한 대로 심은 대로 거두게 된다. 엉뚱한 헛심을 쓰지 말고 진짜 핵심가치를 붙잡아라. 행사가 행복이 되려면 모든 행사를 여호와께 맡겨야 된다. 철저히 계획하고 최선을 다해서 준비하되 일을 되게 하시고 성취하시는 분은 여호와이시다. 준비는 철저히! 전투는 치열하게! 떠날 때는 말없이! 언행심사가 하나가 되고 신행이 일치하는 사람이 영혼이 잘되는 사람이며 범사에 형통하고 온몸이 강건하게 된다. 이 어렵고 복잡한 시대에 천국 소망을 바라보며 여호와를 찬송하고, 여호와만 의지하고, 오직 여호와로 인해 기뻐하고, 모든 일을 여호와께 맡기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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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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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독도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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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노회수련회 장소로 울릉도를 물색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울릉도 자체로도 훌륭하지만 진짜 목적은 다른 데 있었지요. 바로 곁에 있는 작은 섬 하나 때문이었습니다.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이백 리 외로운 섬 하나 새들의 고향”인 바로 그 섬, 독도 말입니다. 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여정이란 걸 알았습니다. 일단 기상(氣象) 관계로 접안이 가능한 날이 기본적으로 연간 40% 가량입니다. 운이 좋아서 배편을 얻었다 해도 풍랑이 심해서 상륙은 하지 못하고 돌아오는 일도 허다하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3대가 덕을 쌓아야 독도에 갈 수 있다’고들 하겠습니까? 그래서인지 우리도 독도는커녕 울릉도조차 갈 수 없었습니다. 또 하나의 복병이 등장해서였는데, 예전에 다녀오신 분들이 그 당시 혼을 쏙 빼놓았던 뱃멀미의 고통을 그렇게 이리저리 간증하고 다니셨거든요.
갑자기 독도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가 있습니다. 근자에 일본 측에서 또 다시 독도영유권 문제를 건드리고 나섰기에 그러합니다. 다카이치 사나에(高市草苗) 신임 일본총리는 원래가 극우 인사로 유명한 인물로, 야스쿠니 신사참배는 물론 특히 자신들이 매년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다케시마 행사의 날(2월 22일)을 적극적으로 언급해 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한국의 특수비행단(블랙이글스)이 두바이 에어쇼 참석을 위해 오키나와 기지에서 중간급유지원을 받게 해 달라고 요청하자, 일본 정부는 독도 상공을 비행했다는 이유로 기왕에 이루어졌던 합의를 뒤집고 거부한 바 있습니다. 아니, 자국 영공을 자국 비행기가 날았다는 사실을 저들은 왜 문제로 삼을까요? 1905년 당시 일본 내각이 독도를 무주지로 선언하고 일방적으로 자기네 행정구역(시네마현)에 편입한 다음부터 줄곧 독도영유권을 주장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런 주장이 말도 되지 않는다는 근거는 선교 차원에서도 입증이 가능합니다. 일본이 편입을 주장하든 말든 1909년 강원도 삼척의 감리교 매서인이었던 김병두가 울릉도에 최초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웠습니다(나리교회). 또한 놀랍게도 부산을 기지로 삼았던 호주 출신의 매켄지 선교사가 1910년부터 1917년까지 5회에 걸쳐 울릉도를 방문했다고 합니다(1927년에도 방문). 이들이 과연 울릉도만 목표로 했겠습니까, 아닙니다. 우여곡절 끝에 2022년 세워진 울릉도 내 선교관의 명칭은 ‘울릉도·독도 선교 100주년 기념관’입니다. 벽안의 선교사들조차 독도를 별개의 섬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외국의 영토라는 사실은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1735년 프랑스 선교사 뒤 알드(Du Haude)의 지도나 1869년 당시 조선교구장이었던 리델(Félix Clair Ridel) 주교가 제작한 지도에조차 독도가 우리 영토로 뚜렷하게 표시되어 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독도는 부산의 교회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1953년 여전히 독도를 제집처럼 드나들었던 일본인들을 막아선 전설적인 독도의용수비대(대장, 홍순칠) 33인 가운데 울릉도 출신인 오일환 집사가 부인 백묘숙 권사와 함께 정착한 곳이 바로 영도교회였기 때문입니다(강영길, 「밥보다 예수」(홍성사, 2014) 참고). 이 두 분의 ‘젊어서 독도사랑 늙어서 예수사랑’과 ‘내사마 예수 안 믿으면 죽습니다’의 부창부수(夫唱婦隨)가 참 아름답지 않나요? 또한 전술한 맥켄지 선교사는 2~3일이나 걸리는 그것도 당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험난한 여정을 무릅쓰고 울릉도를 여러 차례 방문하여 세례를 베풀고 집회를 인도하고 직분자를 임명하고 교회를 세우는 활발한 활동을 펼쳤습니다. 1915년에는 부인도 동행했는데 임신한 몸으로 섬에 도착해 부인과 소녀들을 가르치고 믿음을 전수했다고 했습니다(당시 뱃속의 아기가 훗날 일신병원의 설립자). 이러한 사역은 부산 지역 성도들의 이해와 기도와 후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하지 않았을까요?
지난 시월에 민락수변공원 일대에서 “독도를 달리다 부산” 행사가 개최되었습니다. 두 가지 코스가 있었는데 각각 1025m, 5411m 코스였습니다. 전자는 ‘독도의 날’인 10월 25일을, 후자는 1954년 11월 21일에 벌어진 치열했던 ‘독도대첩’을 기념해서 정했다고 합니다. 대한국민이라면 ‘독도는 우리 땅’ 노래 정도는 다 압니다. 최근에는 ‘독도야 간밤에 잘 잤느냐’라는 가사가 들어있는 ‘홀로아리랑’도 상당수가 좋아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독도의 날’도 ‘독도대첩’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별로 없습니다. 목숨을 걸고 독도를 지켰고, 가깝지도 않은 섬에서 치열하게 헌신했던 신앙 선배들의 족적에 대해서도 솔직히 무지합니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이렇게 한번 외쳐라도 봅시다. ‘독도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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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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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연구]내가 나 된 것이 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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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에 채널 A에서 방영된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0%대의 시청률이었으니, 드라마로서는 참패했지만, 감동을 주는 드라마였다고 생각합니다. 시골 벽촌 출신의 주인공 강여름은 특별히 발탁되어 걸그룹에 들어갈 기회를 얻었고, 피나는 노력을 통해 데뷔하지만 성공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함께하던 멤버 중에는 최고 스타가 된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여름은 그렇게 못된 것에 실망합니다. 그녀는 TV 예능 프로그램에 단역으로 출연하는데, 그 경력마저 끊기는데, 그녀가 특정 상품명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그녀는 단역도 끊기는 좌절에 빠지고, 다시 고향으로 가야 하는지 고민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전혀 모르는 미국 교포로부터 동봉하는 팔찌를 끼고 충남 부여 여행을 대신해 달라는 부탁이 전달됩니다. 여름은 화가 났습니다. 작가나 카메라 기사도 없이, 혼자 부여를 다녀오라니, 화가 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억지로 떠난 여행은 뜻밖의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녀의 팔찌를 보고 놀란 주민 한 사람을 만났고, 미국의 교포와 그녀가 쌍둥이임이 밝혀져 자매가 상봉하는 보람 있는 열매였습니다. 그 후에도 또 다른 여행 부탁을 받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날 여름의 마음에 <왜 내가 남의 여행을 대신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그녀는 자기 여행을 하기로 마음먹습니다. 자신의 길을 걷기로 합니다. 드디어 그녀다운 그녀가 된 것입니다. 이 드라마는 '여행을 대신해 드립니다'입니다.
우리에게는 각기 <나의 길, my way>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21장에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 물으시고, 베드로가 세 번 대답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 후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장차 어떻게 될지를 말씀하셨습니다. 21장 18~19절입니다.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이 말씀처럼 후에 베드로는 끌려가서 거꾸로 십자가에 달려 순교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베드로는 곁에 있는 요한의 미래가 궁금해서 질문했습니다. 21장 21~23절입니다. <21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23 이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 예수의 말씀은 그가 죽지 않겠다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하신 것이러라> 예수님께서는 요한의 미래에 대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면서, 베드로는 베르도의 삶을 살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궁금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우리 삶을 살면 충분합니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남의 인생과 우리 인생을 비교하는 것입니다. 많은 이가 <~~처럼>, <~~만큼>이란 구조 안에서 고통받습니다. 남처럼 되지 못한 자신을 원망합니다. 남만큼 이루지 못한 것에 열등감에 빠집니다.
그러나 바울은 본문에서 놀라운 고백을 했습니다. 본문을 <새번역성경>으로 보면 이렇습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의 내가 되었습니다. 나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헛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베드로처럼 일찍 제자가 되지 못한 것 등을 두고 주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현재 모습에 만족하고 감사했고, 그것을 은혜라고 했습니다.
<오늘의 나>에 감사하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이것은 현재를 기쁘게 살게 해 줍니다. 그러나 오늘 감사하고 만족하다 해서 자신이 완벽함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오늘의 나에게 부족한 모습은 내일을 위한 끊임없는 도전을 가져옵니다. 미래를 향해 꿈을 품고 노력하게 만듭니다. <오늘의 나>에 대한 감사는 과거에 베푸신 하나님 은혜와 미래에 베푸실 은혜를 이어주는 끈입니다. <오늘의 나에 대한 감사>가 가득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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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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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칼럼]흙수저였기에 더 간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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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화요일 모처럼 명성교회 원로 목사님이신 김삼환 목사님과 오찬을 하였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에티오피아에 갔다 오신 지가 며칠밖에 안 됐기 때문에, 제가 찾아가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해서 명성교회로 갔습니다.
사실 제가 문재인 대통령 집권 시기에 국가조찬기도회 때 설교를 하면서 김삼환 목사님께서 설립하신 ‘에티오피아 MCM기독병원’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제가 월드비전과 함께 에티오피아에 봉사활동을 하러 가서 보니까, 명성교회에서 600억 원을 넘게 들여 엄청나게 큰 병원을 짓고 의과대학을 설립하여 아프리카를 섬기는 것을 봤습니다.
그래서 에티오피아 사람들이 우리 대한민국을 향해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말을 많이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아마도 김삼환 목사님께서도 선교사들의 영향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사님과 배석자 없이 단둘이 식사를 나눴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시다가 “소 목사, 소목사나 나나 한 가지 특징이 있어. 그게 뭔지 아는가? 우리는 모두 흙수저 출신이데이. 누가 뭐라 해도 흙수저래이. 나나 소목사나 금수저 출신이었다면 지금 이런 교회를 섬길 수가 없데이. 나는 소 목사를 볼 때마다 너무나 나와 비슷하고 나를 닮은 것 같아서 너무나 자랑스럽다
네.”
“저도 목사님을 큰 바위 얼굴로 생각하지 않습니까? 제가 가락동에서 개척을 하고 분당으로 교회를 이전했을 때, 명성교회 대형버스가 우리 교회 앞에서 교인들을 실어 나르기 위해 정차하고 성도들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볼 때, 제가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주여, 이 버스가 가득가득 차게 하여 주옵소서. 명성교회가 부흥해야 우리 교회도 부흥하고 우리 교회도 부흥해야 한국교회가 부흥합니다.’ 목사님, 저도 이런 정도의 마음 그릇을 갖고 있었던 사람 아닙니까? 그래서 목사님, 아직은 그림자를 밟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목사님 흉내라도 내고 있는 것 아닙니까?”
김삼환 목사님도 흙수저로서 젊었을 때 얼마나 고생을 많이 하셨는지 모릅니다. 그분이 스펙이 화려한 것도 아니고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분에게 지혜를 주시고 또 목회의 천재적 은사를 허락해 주셔서 사람이 모일 뿐만 아니라 그 어느 석·박사도 생각하지 못하는 순간순간의 지혜를 터득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어르신의 장신대 동기 가운데 총회장이 6명인가 나왔다고 합니다. 그분이 직접 그런 말씀은 안 하셨지만, 제가 보기에는 김 목사님의 후원을 받고 총회장이 되셨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가 목사님의 배웅을 받고 돌아오며, 차에서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 역시도 얼마나 초라한 흙수저였는가. 흙수저였기 때문에 더욱 간절한 마음이 마음속에서 일렁거렸지 않았던가. 하나님을 향한 간절함, 성도들을 향한 간절함, 말씀에 대한 간절함, 또 목회에 대한 간절함이 얼마나 가득했는가….”
‘시크릿’이라는 책에서 간절하게 원하는 만큼 이루어진다고 했다죠. 저는 그 책을 보기도 전에 간절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신학생 시절부터 그 간절한 마음을 채플에 쏟고, 무등산기도원에 쏟고, 또 가락동 시절 그 지하 예배당에 쏟고, 그 간절함이 축적되고 또 무르익어서, 부족하지만 오늘의 소 목사가 된 것 같습니다.
저는 지난 수요일 생전 처음으로 유송근 장로님과 함께 골프장을 간 적이 있습니다. 연습한지 한 달도 안 된 사람이 필드에 가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 너무나 죄송하기도 하고 감격하기도 했습니다. 필드에 가서 공을 치는데 왜 이렇게 간절한 마음이 생기는지요. “만약에 값비싼 시간을 내어서 와 가지고 공도 안 맞고 또 제가 원하는 만큼 이루어지지 않으면 나는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다. 그리고 저녁예배 때 어떤 얼굴로 교인들을 볼 것인가….”
유 장로님이 순간순간 코치도 하셨지만 저 역시 정말 간절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이것을 마치 목회인 것처럼, 또 저의 사역인 것처럼 간절했습니다. 그래서 “주여”를 몇 번을 부르며 공을 치고 또 “생명나무”를 몇 번을 주문 외우듯 하면서 공을 쳤습니다. “하나님, 이 흙수저 출신 종이 드디어 골프장 필드까지 와서 잔디를 밟네요.”
저는 카트도 거의 타지 않고 잔디를 밟는 것도 너무 죄송해서 잔디를 뛰어갔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향한 저의 간절한 마음이고 애절한 마음을 고백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옆에서 신 프로님과 유송근 장로님이 잘 코치를 해 주셔서 그렇지만, 저도 열과 성의를 다하고 어떻게 집중력을 발휘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비록 완전 초짜였지만 공 한 타 한 타를 칠 때도 간절함을 넘어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공을 쳤습니다. 그 결과 88타라는 믿기지 않을 점수가 나온 것입니다. 저는 돌아오면서 생각했습니다. “주님, 이제 여한도 없습니다. 더 이상 골프장 안 가도 됩니다. 이제 주님이 저에게 감동을 주실 때 하도록 하겠습니다. 처음 나와서 88타점을 얻었으니, 오늘 예배 마치고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그럴 때 제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이런 감동을 주셨습니다. “그래, 너는 끝까지 흙수저라는 사실을 잊지 말거라. 올챙이 시절을 기억하거라. 너의 간절함이 살아있을 때 너의 사역도 더욱 더 아름다운 꽃을 피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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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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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말씀]새 시대, 새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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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소망, 사랑이 생기면 마음이 설레고 머리에 꿈을 꾸게 된다. 발상, 착상, 구상, 상상의 나래가 펼쳐진다. 강원도 태백에 삼수령이 있는데, 같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세 개가 하나는 서쪽으로 한강, 하나는 남쪽으로 낙동강, 하나는 동쪽으로 동해로 흘러가는 발원지가 된다. 아브라함은 깊은 산속 옹달샘처럼 복의 근원이 되었다. 샘은 작지만 물이 솟아나오고 흘러가서 도랑, 내, 천, 강을 이루어 물이 바다 덮음 같이 된다.
에스겔 47장에는 성전 문지방에서 물이 흘러나와 강을 살리고 강 주변이 살아나고 그 강물이 들어간 바다가 살아난다.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 것은 강함이 아니라 잦음이다. 물장구를 치면 파장을 일으키고 그 물살이 물결을 일으킨다.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데, 고인 물은 썩고 만다. 흐름을 맑고 힘차게 해야 된다. 바다가 썩지 않는 것은 하루에도 수많은 파도가 치기 때문이다. 큰물에서 노는 마도로스는 파도를 타고 파도를 즐긴다. 베드로는 바다에 몸을 던지는 헌신자였기 때문에 주께서 쓰셨다.
새 시대, 새 땅의 새 물결이 있다. 작은 물방울이 모여서 물결을 치고 마침내 물이 바다 덮음 같이 큰물을 이룬다. 성경에 샘물, 은택, 물댄 동산은 사막에 강을 내시는 우리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말한다. 작은 불꽃 하나가 큰 불을 일으키듯이 초대교회의 역사를 보면 큰 핍박을 당하니 오히려 들불이 번지듯이 세계로 흩어지게 되어 복음이 널리 전파되었다. 환자가 맥박이 뛰지 않고, 숨결의 파장이 없으면 죽는다. 운동을 해서 피가 돌고 심장이 뛰게 하라. 성도는 운동하는 사람들이다. 새벽기도운동, 큐티운동, 전도운동, 성경통독운동.......
부흥의 역사를 보면 체코 프라하의 얀 후스가 화형을 당했지만 종교개혁의 선구자격이었다. 이후에 요한 칼빈, 마르틴 루터, 츠빙글리를 통하여 종교개혁을 하고, 독일에서 17,18세기 경건주의운동을 통해 교수와 학생들이 성경 읽고 기도하다가 부흥이 일어났다. 또 영국에서 대부흥운동이 일어났고, 미국에도 대각성운동이 일어나서 140년 전에 한국으로 복음이 들어왔다. 군불을 지필 때는 아랫불이 중요하다. 한국복음화에 있어서도 부산, 마산, 양산,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중요했다.
평양 대부흥운동, 해운대 성령대집회도 그러하고, 포도원교회 주관 농산어촌청소년초청 작심삼일 수련회, 그리고 더 웨이브 부산 학교기도불씨운동도 그러하다. 마마클럽이 부산에서 시작되었듯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집회와 기도모임을 이어가는 학교기도불씨운동은 부산의 319개 학교 중 165개 학교의 기도모임을 세웠다. 3500명의 학생, 학부모, 교사가 포도원교회에 모였다. 우리는 학교에서도 기도합니다. 포도원교회는 덕천성전, 화명성전, 비전센터, 드림센터, 양산미션센터, 내년 아프리카 우간다 포도원교회까지 전도와 선교의 물결을 펼쳐나간다.
우리는 이 시대에 선한 물결을 일으키고 복음의 바람, 파장을 일으키고, 아름다운 향기를 퍼뜨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고, 살아 움직이는 믿음으로 나비효과를 일으키면서 새 생명의 역사를 세워가는 사람이 되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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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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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법특강]요한 칼빈(1509-1564)과 교회법(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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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10월 31일은 종교개혁 기념일이다. 16세기 종교개혁은 교회법을 수단으로 교회를 개혁했다. 개혁가 칼빈은 스위스 제네바교회에서 목회하며 교회법을 작성했고, 이를 도구로 교회를 개혁했다. 제네바교회법령(1561년)이 바로 그것이다. 지난 호는 제네바교회법령 전체(173 조항)를 개관했다. 이번 호는 제네바교회법령의 특성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 제네바교회법령은 성경(복음)에서 비롯된 교회법령이다. 제네바교회법령 서문은 교회법령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비롯되었음을 분명하게 밝혔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도시와 영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비롯된 다음과 같은 교회법령을 따르고 지킬 것을 제정하고 명령하였다.” 교회법은 오직 성경이라는 원리에서 비롯되었다.
둘째, 교회법령 상당 부분(4-68조)은 네 직분, 목사, 교사, 장로, 집사에 관해 할애하고 있다. 이 점에서 교회법령은 직분의 법이다. 눈에 띄는 것 하나는 장로직에 관한 조항이다. 장로는 모든 교인의 생활을 감독하며, 넘어지는 자들과 무질서한 생활을 하는 이들을 권면하는 직무를 맡았다. 필요한 때 형제 사랑에서 나오는 책망과 징계를 위해서는 회(會)에 보고하여 다른 장로들과 함께 이 일을 했다.
개혁가 루터는 장로직의 명예는 회복했으나 정작 장로직은 세우지 못했다. 그런데 칼빈은 교회에서 장로를 세워서 권징(勸懲)의 일을 맡김으로 교회를 개혁했다. 목사와 함께 시행하는 권징은 교회적인 성격을 가져야 했고, 교회 법정은 세상의 법정과는 다르게 기능을 해야 했다. 권징은 목사만의 직무가 아니라 장로의 회에 속한 일이었다. 장로는 시의회의 의원이자 모범적인 교인 중에서 선출했다. 소의회에서 2명, 60인회에서 4명, 200인회에서 6명 등 12명을 선출했다. 임기는 원칙적으로 1년이다. 일 년 후 시의회 선거가 마친 후 직무를 계속할 것인지 아니면 교체할지를 결정했다. 신실하게 직무에 전념했다면 이유 없이 자주 교체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셋째, 22조에서 30조는 목사의 권징을 엄중하게 다룬다. 목사에게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범죄 17개와 형제 사랑의 권면만으로는 그칠 수 없는 범죄 17개를 각각 열거하고 있다.
첫째 부류에 속한 것은 다음과 같다: 이단, 분리, 교회질서에 대한 거역, 민사 처벌에 합당한 명백한 신성모독, 성물 매매 및 모든 부패한 선물들, 다른 목회자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술책, 합법적인 휴가가 아님에도 교회를 방임하는 것, 사기, 위 증, 음란, 절도, 음주벽,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할 싸움, 고리대금, 법에 금지되고 추문을 일으킬 만 한 놀이, 춤과 그 유사한 풍기문란, 국가 비방죄, 다른 이로 하여금 교회를 분리하게 하도록 하는 범죄.
둘째 부류에 속한 것은 다음과 같다: 성경을 이상하게 다루어 소동을 일으키는 태도, 쓸데없는 문제들을 추구하는 호기심, 어떤 다른 교리를 꺼내 놓거나 교회에서 인정되지 않는 교리를 만들어내는 태도, 성경 연구와 성경읽기에 태만한 것, 아첨에 가까운 악덕들을 책망하는 일에 게으른 것, 직무에 요구되는 일을 하지 않는 태만, 천박한 농담, 거짓말, 중상모략, 음담패설, 욕설, 경솔함, 나쁜 간책, 인색함과 지나치게 검소함, 상식을 벗어난 분노, 소란과 싸움, 의복이나 몸짓 및 행동에서 목회자에게 합당치 않는 문란함. 30조는 이러한 권징을 위해 3개월마다 한 번씩 돌아보며 서로 간에 권면할 것이 있는지를 결정하여 적절하게 고칠 것을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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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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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하나님이 마침표를 찍기 전, 마침표를 찍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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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공황 시절, 권투 선수인 짐 브래독의 실화를 다룬 영화 ‘신데렐라 맨’이 있다. 그는 한때 라이트 헤비급의 유망주로 촉망받던 선수였다. 그러나 경기 중 부상으로 오른손이 부러지고, 그는 더 이상 링 위에 설 수 없게 되었다.
그의 삶은 순식간에 추락했다. 권투 선수로 더 이상 살 수 없게 된 그는 부두 노동자가 되어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았고, 아내와 아이들을 먹여 살리는 일조차 버거웠다. 대공황의 혹독한 겨울, 불을 피울 연료조차 구할 수 없어 아이들은 추위에 떨어야만 했다. 감기와 폐렴으로 기침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그는 “이제 정말 끝인가?”라는 절망 속에 놓였다.
그는 자존심을 내려놓고 정부의 구호소를 찾아갔다. 실업자들이 길게 줄을 서 있던 그곳에서, 그는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서류를 내밀었다. 그날 그는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리에서, 아버지의 이름으로 서 있었다. 그러나 바로 그 바닥이 새로운 출발선이 되었다. 아이들과 함께 살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포기했던 그의 삶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나에게는 시간이 없어!” 그는 그렇게 스스로를 다그쳤다. 나이는 많았고, 몸은 망가졌으며, 오른손은 여전히 완치되지 않았다. 누구도 그의 복귀를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는 다시 글러브를 끼고 링 위에 섰다. 그순간 그의 곁에는 뜻밖의 사람들이 있었다. 친구는 재산을 팔아 장비를 마련해 주었고, 부두에서 함께 일하던 노동자들은 자신의 일당을 모아 그를 응원했다. 절망의 시대, 남의 성공을 시기하기보다 함께 울고, 함께 밀어준 이들이 있었다. 그들의 사랑과 헌신이 짐 브래독의 두 번째 인생을 지탱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헤비급 챔피언 결정전에서 초강타자 맥스 베어를 상대로 15라운드까지 버텨 끝내 판정승을 거두었다. 사람들은 이런 그를 ‘신데렐라 맨’이라 불렀고, 그의 승리는 대공황 속에서 희망을 잃었던 이들에게 “아직 끝이 아니다”라는 메시지가 되었다.
이 이야기가 던지는 여운은 단순한 스포츠의 감동을 넘어선다. 인생의 진짜 실패는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마침표를 찍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좌절하고 실패한다. 그러나 문제는 실패가 아니라, “이제 다 끝났다”고 스스로 문장을 닫아버리는 것이다. 때로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쉼표를 찍으신다. 그 쉼표는 멈춤이 아니라, 숨 고르기와 새로운 방향 전환의 시간이다. 인생의 문장이 멈춘 듯 보일 때, 사실은 하나님이 새로운 이야기를 쓰고 계신 것이다.
성경 속 인물들도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 모세는 40년간의 이집트 왕궁에서의 화려한 시간을 보낸 뒤, 또 다른 40년을 광야의 목자로 살았다. 인간의 눈에는 실패로 보였던 그 시간이 하나님께는 사명을 준비하는 시간이었다. 요셉은 애굽의 보디발 집에서의 종살이와 특히 누명으로 감옥에 가야만 했던 철저히 잊힌 존재가 되었지만, 바로 그곳에서 애굽의 총리가 될 토대를 다졌다. 다윗은 쫓기는 도망자였으나, 그 절망의 골짜기에서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며 왕의 심장을 갖췄다. 인간의 눈에 마침표로 보이던 그 순간이 하나님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다. 지금 가정이 흔들리고, 자녀의 길이 보이지 않으며, 일의 열매가 없어 보일 때가 있다. 하지만 하나님이 여전히 우리를 부르시고 있기에 그것은 끝이 아니다. 그분은 쉼표 뒤에 또 다른 문장을 준비하신다. 우리가 생각하는 실패가 하나님의 손에 들려 있을 때 그것은 새로운 문장이 된다. 그러므로 지금의 멈춤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오늘의 쉼표를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마침표를 찍을 권한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 그분은 여전히 우리의 인생을 써 내려가고 계신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가 그 문장을 다시 읽게 될 때 깨닫게 될 것이다. “아, 그 쉼표가 멈춤이 아니라, 은혜의 쉼표였구나.” 끝이라고 생각했던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이미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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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