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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기자수첩 기사

  • 무안 여객기 참사에 통합 교단 교인 7명 희생
    예장통합 총회 사회봉사부(부장 김선우)가 여객기 참사 유가족 지원을 위해 지역노회에 확인한 결과 순천남노회 소속 교인 2명, 전남노회 소속 교인 4명, 광주노회 소속 교인 1명이 이번 여객기 사고로 희생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특히 순천남노회 교인 2명은 노회 부노회장을 역임한 은퇴장로 부부인 것으로 전해졌다. 총회 사회봉사부는 여객기 참사 긴급구호금 500만원으로 지역 목포노회를 통해 유가족과 자원봉사자 물품을 지원했고, 추후 유가족을 위한 위로와 애도 기도회를 준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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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25-01-10
  • 닉 부이치치 목사, “교회가 사교 모임으로 전락했다”
    ‘사지없는 인생(Life Without Limbs)’의 대표인 호주의 닉 부이치치 목사가 요즘의 교회가 본질을 잃은 채 사교 모임으로 전락했다고 쓴소리 했다. 최근 미국의 한 기독교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서구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기보다는 컨트리클럽이나 사교 모임과 더 비슷해졌다”며 2000년대 초반 미국 교회가 젊은 세대를 교회로 이끌기 위해 엔터테인먼트 중심의 접근 방식을 택한 것을 그 원인으로 지적했다. 그는 “미국의 많은 교회가 복음에는 아주 조금 관심을 두고 오락과 재미, 소통에 더 많이 신경을 쓰고 있다”며 “호주의 어떤 교회들은 청소년 담당 목사가 베이비시터로 전락하기도 했다”고 비판했다. 젊은이들을 교회로 끌어들이기 위해 오락과 재미 등 엔터테인먼트적 요소에 무게를 두다 보니 본질에 소흘해져 복음으로부터 멀어지게 됐다는 것. 복음 전파라는 본질에서 벗어난 교회가 다음세대를 제자로 양성하는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또 그로 인해 휴대전화 등 미디어 중독이나 잘못된 성인식 등 사회 문제가 심화됐지만 아무도 그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부이치치 목사는 “교회가 회개하지 않고는 영적 권위와 하나님의 보호를 잃을 위험이 있다. 우리는 단결해야 하고 겸손한 자세로 임해야 한다”며 교회와 기독교인이 회개와 책임, 연합 등 신앙의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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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24-12-23
  • 고신대복음병원 파수꾼으로 자청한 고신 교단 목사, 장로 인사들
    12월 2일 그렇게도 오랜 세월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서로 만나 교제해 왔던 고신 교단 내 핵심 인사 가운데 유독 이분들의 이름을 거명하지 않고는 고신인이라 할 수도 없는 터주대감이 과연 누구일까? 근 3~5년동안 만남이 거의 없었던 고신 은퇴장로 박재환 장로, 신주복 장로를 만났다. 고신대복음병원에 대한 의료기계도입. (풀박스등)과 관련 병원 부도 직전 까지간 배후인물로 속칭 "복음병원 바로 세우기 운동"에 깊이 개입한 인사 가운데 약방 감초처럼 활동한 인사에는 본부장 정주채 목사를 비롯하여 이성구 목사. 안영복 목사, 장로 261명이 복음병원 바로 세우기 운동 본부가 1999년 8월 23일 부산 사직동교회에서 이 운동에 지지하는 많은 교단 인사 261명이 모여 결의했다. 대회를 열고 복음병원이 “의료행위를 통한 이웃 사랑과 의술을 통한 복음 전파”라는 설립 취지에 충실한 병원이 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지는 것과 함께 힘써 기도할 것을 다짐했다. 복음병원의 아킬레스 혁심을 촉구한 이날 참석자들은 “경영진단 결과 이후와 처리 과정에서 보여 준 총회 임원회와 총회장의 처리 방식이 매우 유감스럽다”라고 지적하며 “제49회 총회를 통해 그로 인해 야기되는 모든 혼란과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입장을 밝혀 주목을 끌었다. 25년이 지난 오늘날에 병원 운영이 그렇게 안심할 처지가 못되는 것으로 매우 불안해하고 있는 것이 병원에 근무하는 관계자들의 마음이 지금도 여전하다는 중론이다. 그 당시 병원 부도 직전에 도왔던 교단 교회와 장로들의 눈물 겨운 사연들을 다 열거할 수는 없지만 당시 김민남 관선 이사장이 병원을 서울 명성 교회와 동서대학 측에 넘기려고 시도하다가 교단의 뜻있는 인사들이 나서서 이를 막았던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다. 황창기 고신대학교 총장 재임 시절 김재도 원장 재직 시에 은행권 어음이 돌아와 부도 직전에 놓여 타 교단 장로 기업가(이성만 장로 은성교회 원로)에 밤중에 아파트로 찾아가서 사정과 애원을 하는 덕에 거액의 어음부도를 막아 주었다는 팩트가 있었고 고 이중한 병원장이 의료기 풀 벅스 도입과 관련 20억의 고가 장비를 무려 배나 부풀어 40억에 견적을 막아 내고 21억으로 파격적으로 가격 조정을 시도한 배후 인물이 바로 오늘 오찬을 한 박재환 장로와 신주복 장로가 함께 숨은 비화를 재차 상기 시켰다. 박재환 장로의 과거 그때에 상황을 소상히 나눈 지나간 역사의 현장 이야기를 들었다.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신 은혜이고 숨은 배후 인사 포도원교회를 개척하다싶이 한 조모 장로가 내어 놓은 돈 10억원 거액 얽힌 이야기에 시간가는 줄도 몰랐다. 박재환 장로는 필자와 같은 경남 고성 출신이며 부산고교를 나와 부산 대학 과정을 밟은 교단 엘리트이다. 여든 중반에 살면서 지금도 과거 그때 그 사건의 기억력과 상상력에는 놀라울 정도로 해박하고 두뇌 회전이 빨라 향후 100세도 거뜬할 인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주복 장로 하면 고신 전국장로회연합회 회장을 역임과 동시에 부산 서면교회 개척 설립에 공이 지대 하여 부산 교계에 초교파 부산장로총연합회 회장을 역임한 ‘할렐루야 장로’로 통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칠십 후반기에 접어든 신장로는 서교회를 거쳐 따로 개척한 교회에서도 헌신하다가 또다시 사직동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우여곡절(뒤얽혀 복잡하여진 사연을 겪은)의 사나이 다운 믿음의 동지이다. 오늘 오찬을 하면서 과거 이 두 분이 한 분은 크리스챤 신문 부산지사장이고 다른 한 분은 기독교연합신문 부산지사장으로서 같은 교계 언론인 멤버들이다. 한때 고 김광일 장로 변호사 출신 교회인 부산중앙교회를 매입한 교계인사 사건에 교계 언론사들이 도왔다는 것에 감사하는 뜻에서 러시아 여행 경비 일천만원을 지원한 덕으로 하여 부산기독교언론인협회 회원들이 러시아 소련 땅을 밟아 여행하였던 옛 추억을 서로 간직하여 친목의 화제로 꽃을 피웠던 오찬 시간을 모처럼 갖게 되었다. 이날 나눈 대화에서 공통 분모는 고신대 복음병원은 수많은 고신 교단 목사, 장로, 평신도들이 함께 새벽기도 때도 중보기도하는 분들이 많아 지금도 건재하며 생동하는 복음병원을 직.간접으로 헤치는 분들은 거의 하늘나라에 갔다는 공감을 같이 했다. 고신대복음병원 안에 고신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 직원이 거의 30% 이상을 차지하여 교단 직영병원 타이틀을 벗어날 수도 없는 영원한 교단 소속 의료 복음 기관임에 자타가 공감하고 인정하는 영원한 종합 상급 병원임은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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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현장
    2024-12-23
  • “살아있는 사람의 흉상이라...”
    경복대학교(총장 전지용)가 지난 11월 11일 교내에 극동방송 이사장 김장환 목사의 흉상 제막식을 개최했다. 대학측은 “개교 32주년을 기념해 학교 발전에 큰 기여를 한 초대 명예이사장 김장환 목사의 업적을 기리고자 이번 흉상을 제작했다”고 전했다. 이 자리에는 김장환 목사를 비롯한 전지용 총장 등 약 400여명이 참석했다. 하지만 이번 흉상제막식을 지켜보는 교계의 시선은 곱지 않다. 살아 있는 사람의 동상을 세워 기념하는 자체가 기독교 신앙에 위배 되는 행위라는 지적이다. 특히 제막식 순서에서 ‘김장환 목사는 완전무결한 신화적 영웅이다’, ‘빌리 그레이엄 설교보다 김장환 목사 통역이 더 은혜롭다’, ‘김장환 목사 흉상은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다’, ‘경복대 학생들은 김장환 목사를 거울삼아야 한다’ 등 김장환 목사를 찬양하는 발언들이 이어졌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우려를 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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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24-11-29
  • 이영훈 목사 불륜설 유포한 장로 ‘법정구속’
    여의도순복음교회 이영훈 목사의 불륜설을 유튜브로 유포한 장로가 법정구속됐다. 지난 10월 30일 의정부지방법원 남양주지원은 명예훼손죄로 기소된 강남순복음교회 A 장로에게 징역 1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재판부는 A씨가 유포한 이 목사 관련 내용이 모두 허위이며 이를 신뢰할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또 종교인의 명예가 심각하게 훼손된 점, 범행이 장기간 반복된 점, 유튜브를 통해 전파된 점 등을 들어 징역형을 선고했다. 또한 A씨가 반성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 점도 양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이 사건으로 인해 교회와 담임목사의 명예가 훼손되고 성도들에게도 상처가 됐으며, 전도와 선교 활동에 악영향을 미쳤다고 전했다. 교회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허위사실로 인한 논란을 정리하고 한국교회와 세계교회의 부흥에 매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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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24-11-29
  • 이단 구원파 박옥수씨 딸에게 검찰 무기징역 구형
    구원파 기쁜소식선교회 소속 인천 모 교회 여고생 학대살해 사건과 관련해 검찰이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아동학대 살해)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교회 합창단장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또 공범인 교회 신도 A씨와 또 다른 40대 여성 신도 B씨에게는 각각 징역 30년을 구형했다. 정신과 치료를 해야 할 딸을 병원이 아닌 교회에 보내 유기하고 방임한 혐의로 기소된 피해자의 어머니(52)에게도 징역 5년이 구형됐다. 검찰은 “합창단장은 자신을 맹종하는 A씨 등에게 모든 범행을 보고 받고 지시했다”며 “현재도 범행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구형 이유를 밝혔다. 합창단장과 A씨, B씨 등은 지난 2월 인천 남동구 기쁜소식선교회 소속 교회에서 생활하던 여고생 C(17)양을 합창단 숙소에 감금한 채 양발을 결박하는 등 26차례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한편, 중형이 구형된 합창단장은 국내 주요 교단이 이단으로 규정하고 있는 기쁜소식선교회 설립자 박옥수 씨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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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24-11-29
  • 133년 된 부산진교회와 117년 전에 개척한 대연교회가 공동예배를 드리다
    부산 교계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라 하는 부산진교회(담임 신충우 목사)는 133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부산진교회가 117년 전 1907년 11월 13일 부산 남구 대연교회를 개척했는데, 이 두 교회가 한 자리에 모여 함께 예배를 드린 바 있다. 3년 전 2022년 11월 13일(주일) 대연교회에서 동구 좌천동 부산진교회까지 무려 4키로 걸어서 1차로 연합예배를, 2회는 2023년 11월 5일(주일) 대연교회에서 믿음의 길을 걸어서 남녀노소 영유아까지 유모차에 태워서 1시간 30분동안 걸어서 연합 예배를 드렸고. 3회는 지난 2024년 11월 10일(주일) 부산진교회 교우들이 대연교회를 심방 형식으로 연합 합동 예배를 은혜롭게 드려 양 교회 교우들이 서로 감격과 감동으로 믿음의 선조들을 기리며 하나님께 감사 예배를 드렸다.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오랜 시간 걸어 교회를 갔던 믿음의 선배들을 따라 행해졌던 기념행사는 교우들 모두에게 예배의 간절함과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기회였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장 4절) 지난 11월 17일 대연교회에서 예장통합 부산노회장로회 정기총회가 개최됐다. 이날 설교를 위해 강단에 선 대연교회 담임 전승만 목사는 연합예배를 드렸던 영상을 보여주며 ‘사도 바울의 손수건’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대연교회 교우 중 남편을 먼저 떠나 보낸 세 아이를 둔 어머니의 사연을 전했다. 어머니가 암에 걸려 세 아이들을 두고 하늘 나라로 먼저 가게 되었는데, 교회가 이 아이들의 어머니가 되고 오빠, 삼촌이 되어 대연교회 교우들이 서로 맡아 양육하였다. 어머니의 장례 예배에서 여기 저기 애곡하고 탄식하는 소리가 마치 바울의 눈물의 젖은 손수건 마냥 함께 울어야만 했던 하늘의 기적과 같은 소식을 전함으로서 감동 받아 장내가 숙연하게 되었다. 지금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터로 끌려간 북한 병사들의 어머니들이 애통하며 탄식하는 소리가 귓전에 울려야만 한 이웃 나라 전쟁의 아픔을 들려주어 장로들 모두가 감격스런 은혜의 도가니로 가슴에 눈물의 손수건을 닦아야 했다. 필자가 여든이 넘도록 무수히 설교를 들어 왔지만 이날처럼 감격과 감동이 넘치는 마치 한편의 드라마 같은 설교를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부산진교회 신충우목사와 대연교회 전승만 목사는 50대 초반 부산노회를 이끌 훌륭한 목회자로 전망이 밝은 차세대 지도자로 우뚝 서기에 충분한 목회자들임에 자타가 인정하고 있다. 대연교회에서 고 배준기 장로 노회장을 비롯하여 김봉희 장로 원로(세계국제와이즈멘클럽 총재 역임)과 정경식 원로장로(부산노회원로장로회 회장 역임)과 박희두 원로장로(부산YMCA 이사장 역임)과 김병표 장로(부산노회장로회 회장 역임)과 제71회기 부산노회장로회 회장으로 취임한 박남을 장로(부산지역기독실업인연합회 회장 역임) 등 유능한 인재가 대연교회에서 나왔다. 그동안 좋은 일도 있었지만 가슴 아픈 사연도 두 교회가 경험하는 가운데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아니할 수 없다고 전승만 목사는 말하고 있다. 대연교회는 특히 못골 동네 이웃과 함께하는 교회로서 교회 벽을 허물었다. 좋은 소문이 동네 사방에 퍼져 매 주일마다 교우들이 등록하는 미래지향적이고 부흥하는 교회로 우뚝 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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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현장
    2024-11-29
  • 세계로교회, 전광훈 측에 성명서 발표
    세계로교회(손현보 목사)가 한국교회 200만 연합예배와 관련해 예배를 방해한 전광훈 측에 성명을 발표했다. 세계로교회는 연합예배 다음날인 28일 성명서를 통해 “집회 및 시위법 상 같은 장소에 두 단체 이상이 집회를 신청할 경우, 먼저 사용하던 단체에 우선권을 주게 돼 있다. 그래서 광화문 지역 중간에 위치한 동화면세점 앞은 이미 전광훈 측이 사용하고 있어 여러 차례 찾아가고 연락해 전광훈 측은 주일 오후에는 그 장소를 사용하지 않는다며,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집회를 열고 이후 우리 연합예배가 가능하도록 약속했다”고 전하면서 “그러나 약속과 달리 전광훈 측은 한국교회와 전 세계에 흩어진 성도들이 함께 예배를 드리는 시간 도중, 예배가 끝날 때까지 한 시간 넘게 본인의 정치 집회 영상으로 화면을 변경하고, 음향을 110데시벨 이상으로 더 높여, 더 멀리까지 들리도록 큰 소음으로 예배를 방해했다”고 주장했다. 세계로교회 당회는 ‘오늘(11월 28일) 이후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방해하고 하나님을 모독한 전광훈 측 정치집회에 참여하는 사람은 정관에 따라 당회 결의로 출교 및 제명에 조치한다’, ‘이 단체에 정치 자금이나 헌금 명목으로 기부하는 사람 역시 동일하게 출교 및 제명 조치한다’, ‘고신총회 이단대책위원회에 전광훈에 대한 이단성 조사를 재개할 것을 요구하며, 그동안 중단되었던 이단성 조사가 신속히 진행되도록 촉구한다’는 결의문까지 채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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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24-11-08
  • 언제 떠날지 모를 내 삶, 떠날 때는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싶다
    아주 젊었을 때는 미래를 모르고 하루하루 그날만을 위해 살아 왔다. 그야말로 형편과 처지에 따라 그날 그날 만을 위해 살아 온 셈이다. 인생에 목표가 있고 꿈과 비전을 위해 달려 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냥 되는대로 방향과 비전도 없이 환경에 주어진대로 살아 온 지난 날이 몹시도 후회스럽다. 30대 결혼하고 40대 생활의 기반을 잡아야 하는데 될대로 되어라 하고 하루 살이 인생으로 살아 온 것이 한번 뿐인 인생 실패작으로 세월과 나이만 먹어 허송세월로 지나 온 것이 너무 가소롭고 허망하기 그지없다. 왜 내가 그 때에 마음먹고 정신차리고 목표를 향하여 열심을 다하지 못했을까 생각하니 너무 창피하고 후회스럽다. 결혼 하기 전 20대에 폐결핵으로 몸이 무너져 내린 것이 주요 원인으로 모든 것이 허망하고 이렇게 되고 나서부터는 죽는 날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만 같았다. 그러니 무슨 희망과 꿈이 있었겠는가. 그저 세월아 네월아 그때 그 순간 세월만 흐르고 인생 낙오자처럼 살았으니 무슨 꿈이 있고 앞날에 희망을 품고 살았겠는가? 첫 단추가 건강을 잃고 살아가니까 매사에 용기와비전 없이 살아지고 만 것이었다. 겨우 닥치는대로 뱀탕이며 몸에 좋은 것은 다 먹고 나니 그 몹쓸 결핵도 떨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나서는 결혼을 30대 초반에 하고 생활에 매달려 하루 하루 먹고 살기가 바빴다. 직장도 없이 월급 한번 받아 온 적이 없는 하루 살이 인생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처가집 생활 아니었다면 벌써 거지나 방랑자로 인생 폐품으로 남아서 인생 종지부로 갔을 것이었다. 한번 뿐인 인생인데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아야 되는데 그렇게 못하고 살았으니 실패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재미교포였던 김영봉 목사가 쓴 책에서 ‘죽음은 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 주님 앞에 가기 위한 통로’라고 했다. 인생의 시작과 끝이 모두가 주님께 속한 질서로 받아들여지는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이제 여든이 되고 보니 불과 10년 전후로 밖에 살지는 못할 것인데 다가 올 죽음을 어떻게 잘 준비해야 될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날마다 참되게 살기는 살아야 되는데, 말과 같이 잘 되면 오죽 좋으련만 그렇게 되기 어렵지않을까 싶은 기우다. 항공기 사고가 나면 골든타임 90초 룰이 있다. 사고 발생 직후 90초 안에 비행기로부터 벗어나야 생존율이 높아진다. 순식간에 비행기 안은 지옥을 방불케 된다. 평상시 훈련 받은대로 메뉴얼 대로 행동하여 비상구 위치 탈출 요령을 설명할 사이 없이 비행기 안은 아수라장이 되고 만다. 우리 인간이 살아 가는데 우선 순위가 무얼까? 생각하니 첫째가 뭐니 뭐니 해도 건강이고 그 다음이 잠언 4:1~9에서 지혜이다고 했다. 옛 어른들은 지식은 부족해도 지혜는 배운 공부와 상관이 없다고 했다. 지혜는 어디서 얻을 수가 있을까? 바로 어릴 때부터 부모 공경으로부터 얻는다. 부모는 우리에게 돈이 재산이 아니라 지혜 곧 효를 통해 생명을 물려 주는 것이다. 인생 선배로서의 가치가 가장 지혜로운 가치가 아니겠는가? 사람은 누구나 쉰 살이 넘으면 철학자가 된다고 한다. 어느 시골 농부가 어머니를 지개에 얹고 깊은 산골짜기를 가고 있는데 어머니는 자식이 집에 못 돌아갈까봐 가는 길마다 나뭇잎으로 표시를 해 두었다는 것을 알고 난 후 아들은 지개를 내려 놓고는 “어머니 잘못했습니다”라고 하고 후회한 이후로 고려장이 없었졌다고 한다. 잠언 4:1~10에 있는 것 같이 “너는 내 말을 잘 들어라 내 말을 잊어 버리지 말라 소중히 여기라. 그리고 사랑하라 지혜를 사랑하라”고 했다. 영어에 philosophy 헬라어에서 나왔는데 필로는 사랑한다, 소피아는 지혜라는 말로 ‘지혜를 사랑한다’는 말이고 지혜를 사랑하면 철학자가 된다고. 곧 부모의 교훈을 소중히 여겨 지혜가 너를 지키고 너를 높이고 너를 영화롭게 한다는 것이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은 절대로 인생 낙오자가 되지도 않고 자살하는 법이 없을 뿐 아니라 문제아가 되는 법이 없다. 바로 효자가 효자를 낳는 이치이다. 하나님은 지혜와 장수와 능력을 약속해 주고 있다.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이 땅에서 장수하리라”는 ‘지혜가 해답이다’라고 가르쳐 주고 있다. 옛말에 ‘보약을 잡수려 하지 말고 효도하십시오’라고 했다. 부모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를 기쁘게 하면 바로 행복해지고 지혜의 길이 열린다는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 땅의 모든 자식들아 내 말이 아니고 성경에서 당부하는 하나님의 첫째 약속이라는 것을 잊지를 말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은 “너무도 감사했습니다”라는 말을 하고 하늘 나라로 떠나고 싶다. 우리 모두가 돈 드는 것도 아니고 순종하면 이런 좋은 선물을 안겨 준다니 이 얼마나 기쁜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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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1-08
  • 10월 부마 민중 항쟁 사건이 오늘에 미친 영향은...
    지금으로부터 45년전 10월 부마항쟁이 있기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여러 형태로 전개 되지만 실제 당시 눈과 귀로, 피부로 와닿았던 민주인사는 거의 하늘나라로 갔다. 금년 10월 16일은 (재)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제3대 이사장에 박상도 이사장(전 부산YNCA 이사장)이 새로 취임했다. 박 이사장이 필자에게 모처럼 연락이 왔다. 축하인사와 함께 박이사장 왈 “형님 지금 그때 당시 부산중부교회 관계했던 청년들과 재야 인사들 대부분이 하늘 나라에 가고 형님과 저만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라고 말할 때 하나님께 생명과 호흡을 연장시켜 주신 만군의 주 여호와께 거듭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부마민주항쟁 기념일은 국가가 10월 16일 행자부 주관으로 부산시청 광장에서 거행되고 있다. 10월 부마 민주항쟁은 어떻게 전개 되었나? 오늘날 대한민국에 민주주의 꽃을 피게 한 것은 부마민주항쟁이란 씨앗이 뿌려졌기에 싹이 나고 열매를 맺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5년전 1979년 10월 암울했던 군사독재와 유신정권을 종식시켰던 것이 부산과 마산 민주인사들의 피 맺힌 몸부림과 희생의 제물이 된 민주 인사들이었다. 관계했던 주요 인사들 대부분은 지금 하늘 나라에서 이 나라를 지켜 보고 있을 것이다. 부산중부교회(당시 기장교단 경남노회 소속) 담임했던 고 최성묵 목사와 심응섭 목사(부산중부교회 직전 담임), 고 임기윤 목사(기감, 제일감리교회 담임), 고 김광일 변호사(부산중앙교회 장로 당시), 고 이흥록 변호사(카톨릭 평신도), 송기인 신부 (남천성당 주임신부 당시), 고 김동수 장로(부산영락교회, 부산대학병원 교수 의사), 고 우창웅 장로(부산진교회 장로, 부산교육대 해직교수), 박상도 이사장(부산중부교회 집사, 부산YMCA 이사장 역임), 고 유기선 장로(당시 부산영락교회 장로, 유기선의원 원장), 김정광 목사(당시 부산YMCA 총무), 김형기 목사(당시 부산중부교회 집사. 부산Y 간사), 차선각 목사(KFCF 간사) 등 부산중부교회 청년 대학생 및 문부식, 김은숙(고인, 당시 부산중부교회 주일학교 교사, 고신대 교육학과, 신학과 학생, 미문화원 방화사건 관련 주동자), 김희욱 집사(양서협동조합 총무. 부산영락교회 집사). 잘 훈련된 부산중부교회 기독청년 대학생 고 김영일, 이태원, 조성삼 장로(당시 청년. 작고) 20~30여명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된 대학생 청년들이었다. 무엇보다 부산도시산업선교회 총무로 맨 앞에서 나섰던 박상도 이사장. 이를 뒤에서 물질과 변호로 법적 뒷받침을 해 주었던 김광일 변호사, 민주인사들을 결집시켰던 대부 고 최성묵 목사(부산YMCA 총무, 부산중부교회 담임)가 없었다면 물거품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부마 항쟁의 불씨는 보잘 것 없는 부산 중구 보수동 헌책방 골목 2층 벽돌 건물에 자리 잡고있던 부산 중부교회. 이 교회에서 매주 1~2차례씩 민주인사 석방 기도회로 부산 대학가 당국과 온 경찰서 정보과 형사, 정보부 부산 분실 관계자, 보안사 삼일공사 기관원들이 총 동원 하다싶이 매일 주시하고 관찰한 곳이 이곳 부산중부교회 요시찰지로 여겨왔다. 필자는 이곳에서 근 10여년 간 집사 평신도로서 주일학교 부장으로 지켜 보고 온 산 증인으로 남아 있었던 교계신문(교회연합신보) 기자로 활동했다. 김광일 변호사를 교회연합신보 신문지사장으로 모시고 있던 관계로 더욱 이들의 재야 활동을 일일이 주시하고 가슴에 담아 두고 기록하고 있었다. 언론 통제로 기사화 할 수도 없었던 시절이라 메모하는 수밖에 없었다. 보안사 담당팀장으로부터 부산중부교회를 나와 다른 교회로 가지 않으면 친동생이 육사(27기) 연대장 대령에서 장군 별자리는 달 수 없다는 협박과 회유로 할 수없이 지금의 부산 은성교회로 교회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이를 뒷날에 ‘부산 예수. 한국교회 역사의 현장’이란 책에 수록하고 발간한 것 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이곳 부산중부교회야말로 수도권에서 일어난 재야 인사들의 탄압사건은 하루, 이틀 만에 모두 정보가 알려져 있을 만큼 부산 재야 인사들의 고향이자 민주화 성지였다. 중부교회는 부산 민권운동의 원동력이자 민권운동 소식을 접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 구실을 한 정보 산실이기도 했다. 동시에 부산 YMCA가 뒤에서 밀어 주고 함께 힘을 모아 준 것도 연합적인 공유로 지렛대 역할을 감당해 민주항쟁을 이루어 낸 합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들 재야 기독인사들 대부분이 하늘나라로 가고 없지만 지금도 살아 활동하는 박상도 이사장이 부산민주항쟁기념재단 이사장(3년간, 직무)을 할 수 있는 것이 모두 다 과거 몸으로 헌신 한 결과이고 열매라 할 수 있다. 오늘날 민주화를 이루게 했던 부산 민주항쟁은 영원토록 자유대한민국에 길이 남을 자랑스런 역사의 대명사로 자리 잡아 갈 것이다. 당시 대한민국의 정치적 인물(김대중, 김영삼 장로)들은 부산중부교회와 깊은 연관성을 갖고 있었다. 김대중씨가 진주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을 때도 이를 면회하러 간 인사도 중부교회 청년들이고 김영삼 장로가 재야 운동의 근원지 부산중부교회 배후에서 기도회를 열어 주고 영적 힘을 실어 주어, 국회의원 출마했던 부산 서구, 중구 지역 민중들이 지원하고 밀어준 혜택을 가장 많이 본 인물이 김영삼 장로이다. 서구 대신동교회(여동생, 동서 출석), 남부민중앙교회(손상률 목사 담임)도 2003년 10월 21일 부산롯데호텔에서 김영삼 장로 초청 부산 기독교계 지도자 간담회를 열어 준 것도 부산 교계 지도자들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부산 교계 숨은 역할과 결집도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45년이 지난 오늘날 부마 민중항쟁의 일지는 지금도 여전히 진행한다는 것이 역사적 영향권을 행사하며 살아 숨 쉬고 있는 산 표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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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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