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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음세대칼럼] 학교생활의 생필품
    우리의 일상생활에 ‘생필품’이란 말이 있다. 말 그대로 생활 필수품을 말한다. 우리에게 물, 전기, 쌀, 소금, 설탕, 기름, 돈 등은 생활 필수품이다. 이것이 없이는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기가 힘들다. 요즘에 와서 이런 것보다 ‘핸드폰’이 얼마나 더 중요하게 생각되는지, 많은 사람들은 잘 때도 핸드폰을 손에 꼭 붙들고 살아간다. 스마트폰 없는 인생은 생각할 수도 없는 듯이 말이다.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침대는 과학입니다.’ 카피처럼 ‘스마트폰은 휴대폰이 아닙니다. 스마트폰은 생필품입니다.’ 이렇게 바뀔지 모르겠다. 실제로 따지고 보면 핸드폰 없이도 살 수 있다. 그것은 우리의 생활을 많이 편리하게 해주지만, 그것 없다고 목숨이 위태로운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핸드폰이 얼마나 중요한지, 눈만 뜨면 스마트폰을 보는 것이 일상이 될 정도이다. 핸드폰은 꼭 필요한 물품은 아니다. 이제 3월이면 학생들이 개학을 한다. 학교 생활하는 데에도 꼭 필요한 것이 있다. 우리 학생들이 학교 생활을 감당하기 위한 필수품은 무엇인가? 필수적인 요소는 무엇인가? 사도 바울은 성경의 서신서에서 우리에게 있어야 할 필수품을 언급한 적이 있다. 고린도전서 13장 13절 말씀이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로마서 12장 9절에서 13절에도 이와 비슷한 원리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속에서 그러니까 성도들 사이에서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 것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는 본문이다. 얼핏 보면 약 12가지 정도의 내용이 보인다. 그러나 정리하면 세 가지 정도로 그룹을 나눌 수 있다. 그것은 곧 사랑, 믿음, 그리고 소망이다. 이것은 우리의 교회 생활과 사회생활, 직장생활, 학교생활에 반드시 있어야 할 필수적인 덕목이다. 다른 말로 하면 생필품이 없으면 우리가 정상 생활을 할 수 없듯이, 이런 필수적인 삶의 요소가 없으면 우리의 생활은 정상적일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먼저, 학교생활의 생필품과 같은 것은 사랑이다. 로마서 12장 9절과 10절은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라고 기록한다. 사도 바울은 먼저 사랑할 것을 이야기한다. 단순히 ‘사랑하라’가 아니다. 어떤 사랑을 감당해야 할지를 말하고 있다. 참된 사랑을 말한다. 참된 사랑이라는 것은 거짓이 없어야 하는 것 곧 위선적이지 않은 것으로 정의를 내리고 있다. 먼저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는데 그것은 악을 미워해야 하고, 선에 속하기를 애써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선에 속한 행동이 어떤 것인지를 바울은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곧 서로 형제 사랑으로 서로에게 헌신하는 일, 서로를 존경하기를 먼저 하는 일이다. 우리 성도들이 일상생활에서 가장 먼저 드러나야 하는 일은 ‘진실한 사랑’이다. 감추려고 하거나 거짓 사랑은 결국은 드러나게 된다. 그 행 한대로, 마음과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 다 드러나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서로를 진실로 사랑하시기 바란다. 친형제 사랑하듯 대하고, 최선을 다해서 주님을 사랑하듯이 모두를 진실로 사랑하시기 바란다. 두 번째, 학교생활의 생필품은 믿음이다. 로마서 12장 11절은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라고 기록한다. 방학을 맞이하여 각종 수련회를 통해 많은 은혜를 받았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렇다면 개학을 앞둔 우리 청소년들이 학교에서도 이 믿음과 은혜를 버리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겨야 한다. 11절은 우리에게 믿음이 무엇인지 분명히 말한다. 믿음은 주를 섬기는 일이다. 주를 섬기는 일에도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열정을 다해 온 영을 다해 주님을 섬기라’라는 것이다. 우리 다음 세대들이 학교 생활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바로 주님에 대한 강력한 믿음을 가지고 주님을 섬기는 것이다. 그럴 때에 하나님의 나라는 든든히 서고,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영광을 받으신다. 주님을 믿고 오직 그를 신뢰하시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교회 생활의 필수는 소망이다. 바울은 학교생활에서 힘써야 할 것을 ‘소망’에 집중시킨다. 우리 기독교의 신앙은 ‘현재성’이 있는 신앙이다. ‘오늘, 여기서 나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하나님의 능력과 인도로 승리하는 그런 살아있는 참 종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의 최종 종착점은 여기가 아니다. 죄 많은 이곳, 멸망 받을 이곳이 우리의 영원한 안식처가 아니다. 그러면 이런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나? 사도 바울은 이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반드시 있어야 하는 소망을 가지고 사는 성도가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를 말하고 있다. 로마서 12장 12절과 13절 말씀은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라고 기록한다. 소망을 가진 자는 환란 중에 참고, 기도에 힘쓰고, 이웃 성도를 공급하고 손 대접하기를 힘쓰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생활은 소망이 있는 삶인가? 그 증거는 무엇인가? 우리 속에 있는 소망을 보여주시기 바란다. 소망 중에 즐거워하고 환란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손 대접하기를 애쓰시는 모습이 바로 우리 속에 있는 소망을 보여주는 것이다. 3월에 개학하는 모든 다음 세대에게 당부한다. 사도 바울이 소개한 생필품 사랑과 믿음과 소망을 소유하고 승리하는 학교생활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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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3-21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이야기] 자녀에게 변화를 가르치려면
    우리가 바른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굳어버린 우리의 옛모습에서 탈피하여 새 사람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자녀에게 변화를 가르치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들의 자녀에게 변화의 중요성을 알려주고 새로운 삶으로 그들을 이끌어 갈 수 있을까요? 이를 위해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해주신 씨 뿌리는 자의 비유이야기를 주목해보려 합니다.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세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짐에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였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게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막4:3-8) 여기에는 네 가지 땅이 나오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두 가지 땅이 나옵니다. 첫 번째 그룹인 길가 밭, 돌짝 밭, 가시떨기 밭. 이 세 밭의 공통점은 결실이 없다는 겁니다. 우리가 길가 밭은 어떻고, 돌짝 밭은 어떻고, 가시밭은 어떻다고 하면서 이것들을 구별하지만 사실 이 세 가지 밭은 밭이지만 마땅히 있어야 할 결실이 없습니다. 그럼 왜 없을까요? 이게 중요한 거죠.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이 밭들은 변화를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변화를 거부하고 원래부터 있던 본래 모습 그대로 사는 거예요. 길가 밭은 길가 밭 그대로 씨앗을 튕겨내는 밭으로 계속 삽니다. “나 길가 밭이야! 야, 씨앗이 어디 떨어져?” 그러면서 씨앗을 튕겨내면 새들이 와서 먹어버리는 거예요. 돌짝 밭은 “나 이 돌 하나도 안 치울 거야. 야! 씨앗 떨어졌어? 살짝 뿌리내리겠지만 너 금방 죽어버릴걸! 아이고, 또 죽었네!” 이러고 계속 사는 거예요. 그렇게 사는 게 맞는 줄 알고 그렇게 계속 자기 속에 있는 돌들을 하나도 안 치워요. 가시떨기 밭은 그 안에 있는 가시떨기가 떨어지는 씨앗마다 기운을 다 잡아먹어서 다 죽여버려요. 그러는데도 그게 잘못된 줄 몰라요. 그렇게 세 밭 모두 아무런 결실이 없는 삶을 반복하고 사는 것입니다. 이 세 밭처럼 그냥 가만히 그 어떤 변화도 거부하고 살면 변화가 없습니다. 고통도 아픔도 없습니다. 그런데 결국에는 아무 열매가 없습니다. 다 죽고 맙니다. 이것을 우리가 분명히 말씀을 통해서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나를 위해 사는 것은 고통 없이 사는 길입니다. 아픔도 없고, 아무런 변화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면 결국 아무도 못 살리고 끝납니다. 결국 나도 그렇게 살다가 죽고 맙니다. 그런데 전혀 다른 길도 있습니다. 바로 좋은 땅입니다. 이 좋은 땅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결실이 30배, 60배, 100배로 점점 커집니다. 즉, 나는 상상하지 못했던 내 삶의 열매가 너무너무 아름답습니다. 너무너무 풍성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 지으신 걸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그런데 좋은 땅이 이렇게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갈아엎었기 때문입니다. 길가 밭이었던 땅을 곡괭이로 다 내리찍어서 호미로 갈아엎고 쟁기로 갈아엎어서 흙이 완전히 뒤집어진 땅으로 만든 것입니다. 그렇게 완전히 뒤집어서 아프고, 눈물 나고, 파헤쳐진 땅은 땅의 입장에서 볼 때는 기분 나쁘죠. “나 멀쩡한 땅인데 왜 나를 이렇게 괴롭혀? 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해? 왜 나를 이렇게 계속해서 불편하게 만들어?” 그런데 그렇게 갈아엎어졌더니 그 결과로 그 땅에 떨어지는 씨앗마다 열매를 맺는데 30배, 60배, 100배가 되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말씀을 그냥 아이들 동화 읽듯이 “그냥 그런 일이 있었나 보다.”라고 넘어가면 안 됩니다. 이게 천국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꿈꾸는 천국은 어떻게 옵니까? 내가 살던 대로 살고, 만나던 사람 만나고, 내가 좋은 대로만 살면 우리는 여전히 길가 밭이고, 돌짝 밭이고, 가시밭일 뿐입니다. 결국은 나한테 다가오는 사람 다 튕겨내고, 내 주변 사람 다 메마르게 하고, 내 주변 사람 다 힘들게 해서 결국은 다 죽여버리는 길가 밭, 돌짝 밭. 그게 나라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걸 모르고 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살면서도 나는 잘 사는 줄 압니다. 그래서 공부 1등 하는 길가 밭 되고 싶어 하고, 사람들에게 인기끄는 유명한 돌짝 밭이 되고 싶어 하고, 남들이 알아주는 존경받는 가시떨기 밭이 되려고 합니다. 그렇게 돼도 결국에는 다 죽고 다 끝나고 다 망할 뿐입니다. 그런데 그 길을 가는 게 우리는 성공인 줄 알고 삽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 밭을 갈아엎기를 원하십니다. “얘들아! 얘들아! 이제는 너 혼자 사는 길가 밭으로 성공하는 그거 포기하면 안 되겠니? 너 혼자 큰 돌덩이 상처 끌어안고 살아서 너한테 다가오는 사람마다 그 상처 때문에 메말라 죽는 거 이제 안 하면 안 되겠니? 이제 세상의 근심과 걱정 때문에 너도 죽고, 남도 죽는 그러한 상처받는 삶을 안 살면 안 되겠니?”라고 하나님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이거 다 갈아엎고 나면 너 한번은 아프겠지만, 너 이거 불편하겠지만, 그러나 그렇게 갈아엎어진 너의 마음 가운데 내가 보내주는 너의 가정마다 살아나고, 너의 직장 동료마다 살아나고, 교인마다 살아나는 그러한 새로운 밭 옥토 밭 되면 안 되겠니?”라고 주님 말씀하십니다. 우리 모두 새로워져야 합니다. 내가 새로운 사람, 새로운 밭이 되어야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고 새 해가 밝아오는 것입니다. 이 변화의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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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 이야기
    2025-03-04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이야기] 자녀에게 기도를 가르치려면
    부모의 가장 큰 사명은 자녀에게 기도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하지만 부모부터 기도의 응답을 확신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기도의 응답을 잘 경험해보지 못한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기도의 응답이 어떻게 임하는지 생각해 보고, 이를 우리의 자녀들에게는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나눠보겠습니다. 사무엘상 7장에 보시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한번 잘 믿어보겠다고 미스바에 모여서 금식도 하고, 하나님 앞에 마음을 가다듬으려고 노력하는데 그러려고 할 때 꼭 시험 거리가 생깁니다. 블레셋이라고 하는 나라가 옆에서 호시탐탐 보고 있다가 쳐들어온 것입니다. 사무엘상 7장 7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모였다 함을 블레셋 사람들이 듣고 그들의 방백들이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 온지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듣고 블레셋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삼상 7:7) 지금 미스바에 모여서 금식하고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살아보려고 노력을 하는데 블레셋 사람들이 듣고 치러 올라왔어요. 그랬더니 이스라엘 백성이 두려워하는 거예요. 이게 인간의 마음이에요. “이제 하나님을 의지하자!” 하고 모였는데도 적들이 “와!” 하고 오면 두려워요. 너무너무 두려우니까 어떻게 해요? 8절에 이렇게 부탁을 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우리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 하니” (삼상 7:8) “사무엘 선지자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주세요. 기도해 주세요!”라고 하는 거예요. 다급하니까 지금 무엇도 준비할 수가 없어요. 금식해서 배는 고프죠. 무기도 없죠. 싸울 수가 없는데 적은 쳐들어와요. 그러니까 사무엘에게 “빨리 기도해 주세요. 빨리빨리! 이거 119예요!” 긴급 기도를 부탁한 거예요. 그러면 사무엘이 어떻게 해야 해요? 그 자리에서 바로 옷을 쫙 찢고 엎드려서 “주여!” 그렇게 기도해야 할 것 같잖아요. 그런데 사무엘이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이 다급한 순간에 백성들은 그에게 쉬지 말고 부르짖어 달라고 부탁하는데 어떻게 합니까? 이어지는 9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양 하나를 가져다가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 (삼상 7:9) 우리 생각으로는 사무엘이 곧바로 부르짖어야 할 것 같아요. 그런데 어떻게 해요? 먼저 젖 먹는 어린양 하나를 가져다가 온전한 번제를 드려요. 여러분, ‘온전한 번제’는 어떻게 드리는 건지 아세요? 그냥 “어디 가서 어린양 하나 가져오세요!” 해서 드리는 게 아니에요. 온전한 번제를 드리려면 그 양들을 한 마리 한 마리 다 살펴서 그 가운데 어떤 양이 온전한 양인지를 찾아야 해요. 흠이 없고 온전한 어린양 한 마리를 찾는 것도 수고이고 찾으면 데리고 와서 거기다가 안수를 합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그 위에 안수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그다음에 그것을 직접 잡죠. 각을 뜨고, 껍질을 벗기고, 그 안에 내장은 내장대로 분류를 다 하고, 그리고 어떻게 해요? 피를 뿌려요. 그다음 불로 태워서 하나님 앞에 향기를 드립니다. 이 온전한 번제를 드리는 게 시간이 어마어마하게 걸리고, 정말 번거롭고 힘든 일이에요. 그런데 이거를 먼저 하는 거예요. 왜요? 예배가 먼저니까요. 다급하다고 해서 그냥 나오는 대로 부르짖는 게 아니라 하나님 앞에 먼저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 앞에 먼저 주님을 찬양하고, 주님을 높이고, 영광을 돌립니다. 그런 다음에 마지막에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하십니다. 아멘!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우리의 예배에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에 응답하시고, 예배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그래서 우리가 교회를 지킨다는 건 굉장히 중요한 일이에요. 우리가 교회를 붙잡고 교회를 지켜낸다는 건 너무너무 소중해요. 그런데 오늘날 가고 싶은 교회, 신뢰할 만한 교회가 사라지는 게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눈물로 기도해야 하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 정말 우리가 예배 때마다 “하나님! 이 예배가 하나님이 진정 역사하시는 거룩한 예배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이 자리에서 예배한 우리 모두가 인생이 변화되고,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의 삶을 주께 온전히 드리는 거룩한 예배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갈등하며 흔들리는 마음이 하나님 앞에 정돈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기도하여 우리도 살고 이 지역도 함께 살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또한 이렇게 응답받는 예배자가 될 때 우리는 자녀들에게 기도를 가르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이 찾으시는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들이 될 때 그들의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의 합한 기도가 되고 그들의 기도가 비로소 응답받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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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 이야기
    2025-02-07
  • [다음세대칼럼] 우울증으로 아픈 청소년들에게 답하다(1)
    청소년들이 가지고 있는 정신질환은 고유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 특징에 맞게 정확하고 바르게 도와주어야 한다. 독감인데 비슷하다고 감기약을 자꾸 먹이면 효과는 없고 당사자와 돕는 사람 모두 고생만 하는 것과 같다. 우울증은‘우울장애’(depressive disorder)가 정확한 표현이다. 우울장애는 다른 질환과 공존질환으로 오는 경우와 우울장애 단독질환일 때 상담과 도움이 다르게 해야 한다. 특히 우울장애와 조울증을 구분하자. 10대 중반 이후 많이 생기는 청소년 우울장애는 실제 80%는 양극성 장애(조울증)이다. 우울장애로 치료하면 효과가 떨어진다. 이 구분을 잘해야 한다. 먹는 약부터 다르다. 사춘기의 예민성과 폭력성, 반항은 우울장애보다는 조울증에 더 가까운 증세이다. 우울장애는 인지치료로 생각의 구조를 바꾸어 주어야 한다. 먼저 침투사고에서 성찰사고로, 비합리에서 합리적, 비논리에서 논리적으로 개선하자. 진리요법은 바른 십자가 복음으로 충분히 젖어야 한다. 그리고 성령충만과 말씀충만을 일상성의 영성으로 회복하자. 사명치유는 은사를 찾아 개발하고 섬기는 것을 통해 사명을 감당하며 의미를 찾자. 행동치료는 햇빛에 평균 30분 이상 노출하고 꾸준히 운동하자. 대인관계를 넓히고 깊게 하자. 가족상담을 통해 가정이 수용적 공동체가 되고 교회 공동체에도 잘 소속하고 교회 지도자에게도 적극 도움을 구하자. 우리나라 우울장애 환자가 처음으로 100만명을 넘어섰다. 2024년 7월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최근 5년간(2018∼2022년) 국회에 보고한 우울장애 진료 현황 자료에 따르면, 우울장애 진단 인원은 2023년 기준 100만744명으로 100만명 넘었다. 2018년에 비해 32.9% 증가했다. 이제는 청소년도 점점 우울장애가 더 많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스마트폰 중독이나 흡연중독, 게임중독, 성중독, 품행장애, ADHD 청소년들에게는 더욱 우울장애와 조울증이 동반되고 있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대면 관계가 어려운 청소년들에게 더욱 많이 늘어나는 것이 더욱 이 질환을 잘 알고 도와주어야 할 필요를 가지는 것이다. 우울장애, 특히 조울증의 증가율은 10대에서도 불안과 스트레스가 더 심해지면서 매우 가파르게 많아졌다. 제가 만나는 상담이나 강의에서 그런 변화를 실감한다. 2달만 잘 도와주어도 70%는 개선할 수 있다. 청소년 우울장애와 조울증은 짜증, 반항이 많다. 등교를 거부한다. 성적 저하가 나타난다. 여러 가지 신체 증상이 나타난다. 약물남용이 생긴다. 청소년 비행이 생긴다. 고3병, 중2병, 초4병이 생긴다. 사실 사춘기 심한 증상은 우울장애나 조울증 초기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청소년 우울장애는 자살에 대한 상담을 바짝 신경을 써야 한다. 우울장애는 2/3은 자살을 생각한다. 이 중에 10~15%는 자살 시도한다. 1/100명은 자살한다. 우울장애의 공존질환은 불안장애, 공황장애, 사회공포증, 강박증, 완전주의, 결백증, 신경성 식욕부진증, PTSD, 특정 공포증, 망상장애이다. 우울장애 극복, 이렇게 도와주자. 우울장애 환자의 80% 정도가 수면장애를 호소한다. 불안 증상도 90%가 가지고 있다. 성욕도 저하된다. 우울장애 환자는 정기검진은 필수이다. 신체화가 되기 때문이다. 우울장애로 인해 면역력이 떨어지며 활성산소가 쌓이게 되면서 각종 질병에 대한 노출도 쉽게 되기 때문에 내과적 검사를 해야 한다. 약물치료도 의사처방에 따라 잘하자. 약물치료(Pharmaco- Therapy)도 병행하여야 한다. 약물치료를 하면서 상담, 행동치료가 병행하면 우울장애 치료가 훨씬 빠르고 완치도 쉽다. 성경적 치료 관점으로 주로 하면서 인지행동치료 + 약물치료 + 심리정서의 원인을 잘 찾아 해결하기+ 칼라테라피 + 명상치료 + 운동치료 등을 개인에 맞게 고루 적용하며 종합적으로 치료하면 효과가 빠르고 완치율도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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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2-07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이야기] 자녀 때문에 힘들어하는 부모들에게
    다음세대를 양육한다는 것이 교회에서나 가정에서나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매년 연말마다 교사를 계속해야 하나, 고민하는 교회학교 교사들이 많습니다. 그래도 교회에서의 교사는 그만둘 수라도 있죠. 가정의 부모들은 그만둘 수도 없는 육아의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그래서 정신없는 날들을 보내고 있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오늘은 그런 분들에게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아마 지금 어린아이들을 키우는 어머니들이 그런 생각을 많이 하실 거예요. “우리 애가 어느 날 갑자기 쑥 좀 안 크나?” 어느 날 갑자기 “어머니! 제가 밥을 차리겠습니다!” “오늘 피곤하시죠? 제가 아침을 차려놨습니다.” “오늘은 양식이 좋으시죠? 얼른 일어나 드세요.” 이런 날이 오길 바라는 부모들이 있어요. “아휴! 저게 언제 커서 사람 노릇을 하려고 저러나?” “언제까지 기저귀를 갈아줘야 하나?” “언제까지 내가 돌봐줘야 하나?” “언제쯤이면, ‘어머니! 월급 받아 왔습니다. 빨간 내복입니다.’ 이런 날은 언제 오나?” 이런 분들이 계실 거예요. 아이들 키우는 이 시간이 마치 아무 의미 없고 그냥 힘들기만한 시간 같아요. 그런데 여러분, 잘 생각해 보세요. 우리의 기억을 한번 되짚어보세요. 애들이 어렸을 때 어떻게 생각했나요? 우리가 “이거 여기서 안 크면 얼마나 좋을까?” “이대로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이 너무 예쁜데! 요거 지나면 어떡하지?” 그랬던 마음이 있지 않았습니까? 너무 예뻐서 “이거 크면 안 되는데!” “요거 커서 시집 장가 가버리면 이거 아쉬워서 어떡하나?” 하는 날들이 있었단 말이에요. 지금 애들 옛날 사진 보세요. “야! 이렇게 예뻤는데! 내가 왜 그때는 얘를 그렇게 예뻐하지 못하고 키우기 힘들어하고 괴로워했던가?” 후회가 되시잖아요? 여러분, 그 시간이 너무 힘들고, 잠 못 자고, 나 못 먹고 아이 먹여야 하고, 나 못 쉬고 아이 챙기던 그 시간들이 그때는 마치 불필요한 시간 같고, 불행같이 여겨졌지만,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그 시간이 정말 내가 받은 사랑을 되돌려주는 시간이었고, 또 내가 이 아이들 때문에 성숙해지고, 내가 부모가 되어 가면서 하나님 마음을 알아갔던 그 시간들 아니었습니까? 여러분, 우리에게 찾아오는 이 고난이라는 시간이 그런 의미라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67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시편 119:67)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잘못 행했대요. 왜요? 이 말씀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모르고 그냥 나만 생각했었으니까요. 그땐 어렸으니까요. “하나님! 저 힘들어요. 하나님! 저 지금 귀찮아요. 하나님! 저 죽겠어요. 그런데 왜 자꾸 말씀을 주세요?” 그 말씀을 내가 지킬 의지도, 능력도 없었어요. 그런데 고난의 터널을 통과하면서 내가 더 깊어지고, 더 넓어지고, 더 새로워졌어요. 그래서 이제는 내가 주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되었단 말이죠.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무엇을 깨달았나요? 이어지는 68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주는 선하사 선을 행하시오니 주의 율례들로 나를 가르치소서.”(시편 119:68)  그전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도 선한 것 같지 않았어요. “왜 이렇게 힘든 말씀을 주시나?” “왜 이렇게 벅찬 말씀을 주시나?” 그런데 이제 고난 가운데 내가 그 터널을 지나며 내가 성숙해지고, 내가 치유되고, 내가 회복되고 나니까 하나님이 얼마나 선하신 분인지를 깨닫게 되고, 하나님은 선을 행하시는 분이구나! 주의 말씀이 내게 얼마나 양약이 되는지를 깨닫고 나니까 이제는 더 원하게 되는 거예요. “주의 율례들로 나를 가르치소서! 주님! 더 주세요! 더 주세요! 더 주세요!” 여러분, 말씀을 더 원하고, 말씀을 더 구하는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새해는 찾아왔는데 지금 애타게 기도하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이 고난의 시간이 과연 우리에게는 어떤 시간인가?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온전하심을 깨닫고, 그분을 찬양하는 시간이 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고난의 시간을 지내고 있는 분들께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이것을 한번 고민해 보시길 바래요. “이 고난의 시기, 이 아픔의 시기에 과연 하나님은 내게 어떤 고백을 찾으실까?” 이 시기에 하나님이 나에게 찾으시는 고백, 이 고난의 때에 내가 드릴 고백은 무엇인지를 여러분, 꼭 한번 생각해 보시길 바래요. 그리고 또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이 시간을 지나서 내가 다시 도전할 과제가 있다면 무엇일까?” 고난의 시간이 지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항상 재도전의 기회를 주십니다. 그 재도전을 기뻐하시는 하나님께 내가 과연 다시 도전하여 하나님께 올려드릴 과제가 무엇인지를 꼭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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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 이야기
    2025-01-10
  • [다음세대칼럼] 다음세대를 세우라
    역사학자들은 인류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나라를 로마라고 한다.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까지 3개 대륙에 걸쳐 가장 광활한 영토를 지배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법이나 통치체제, 도로와 사회기반이 잘 갖춰져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게 1,000여년을 흥왕하던 로마가 어느 시점부터 쇠퇴하기 시작하다가 결국 멸망했다. 역사학자들의 오랜 관심사 가운데 하나가 이 로마 제국의 멸망 원인을 찾는 것이다. 영국의 역사학자가 로마 멸망 원인을 ‘인구감소’라고 하였다. 로마가 제국이 되어 당시 세계의 패권을 장악하게 되면서 로마인들은 안락한 삶을 살았다. 고통스럽게 아이를 낳아서 육아하는 일을 꺼리게 되었고, 쾌락에 빠져들었다. 다음 세대를 세우는 일을 등한히 하게 되었다. 그래서 점차 노동력이 줄어들게 되었고, 노예들로 이를 대체하게 되었다. 그리고 군대에 나갈 사람이 줄어들자 당시 야만족이었던 게르만족을 용병으로 고용했다. 그래도 안 되겠다 싶어서 국가가 강력하게 출산정책을 썼다. 결혼을 의무화하고 자녀를 낳지 않는 것을 법으로 금했다. 그리고 38세 이상 독신자들에게 세금을 거두었다. 게다가 3자녀 이상의 가정에 큰 혜택을 주었다. 그러나 저출산을 막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로마인의 비율이 줄어들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 야만인이었던 게르만족에게 정복당하게 되어 멸망하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오늘 우리나라가 이런 전철을 밟기 시작했다. 실제로 통계청 발표를 보면 상황이 심각하다. ‘2023년 출생·사망통계(잠정)’에 따르면, 지난해 출생아 수는 2023년 출생아 수는 23만명으로 전년(24만9200명)보다 1만9200명(7.7%↓) 감소했다. 출생아 수는 2015년 이후 8년 연속으로 줄고 있다. 최근 10년 동안 2015년(0.7%)을 제외하고 매년 감소 추세를 보인 것으로, 2013년 43만6000명을 넘던 출생아 수는 감소세를 지속해 10년만에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나타내는 합계 출산율은 0.72명이다. 2022년 0.78명으로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으나, 1년 만에 0.06명 감소해 ‘바닥의 바닥’을 보여준 것이다. 문제는 이런 인구절벽은 앞으로 더욱 가파르게 나타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앞으로 노년 세대가 급증하게 될 것이고, 출산율은 점점 더 떨어져서 노령화가 가속될 것이다. 결국, 각종 경고가 말해주듯 나라가 소멸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한 것 같아서 보통 걱정이 아니다. 그런데 한국교회 상황은 이것보다 더 심각하다. 우리나라의 다음 세대가 지난 10년 동안 20%가 감소했는데, 교회의 다음 세대는 35%가 감소했다는 통계를 접한 적이 있다. 무려 15%나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25년 뒤인 2050년에 21세 이하의 연령층은 총인구가 1485만 명에서 932만 명으로 오늘과 비교해서 37%가 감소한다고 한다. 이에 비해 21세 이하 교인은 318만 명에서 111만 명으로 무려 65%가 감소할 것이다. 그러니까 앞으로 25년 뒤에 교회 내의 21세 이하의 교인은 무려 2/3가 줄어들 것이다. 요즘 필자는 25년 뒤의 한국교회의 미래를 상상해 본다. 우선 대부분의 교회가 노인들만 남게 될 것이다. 교회학교가 있는 교회가 열 교회 중에 두 세개 정도 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많은 교회당이 텅 빈 채로 예배를 드리게 될 것이다. 주변에서 문 닫는 교회들을 어렵지 않게 보게 될 것이고, 교회 건물이 팔려서 다른 용도로 쓰이는 교회도 등장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 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앞으로도 여전히 오늘처럼 좋은 교회로 든든히 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답은 분명하다. 다음 세대를 세우는 일을 잘하는 것이다. 교회학교가 감소하지 않게 지켜내고, 가정의 자녀들을 믿음으로 잘 양육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다음 세대를 믿음의 세대로 세워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오늘 우리 자녀들이 살아가는 교육환경을 보면 안타깝다. 우리 자녀들은 한 주 168시간 동안 세상의 이야기를 주로 듣는다. SNS나 유튜브와 같은 미디어를 통해서, 그리고 학교에서 수업과 친구를 통해서 하나님과 무관한 세상 정보와 지식에 노출되어 있다. 단지 1시간 교회에 와서 말씀을 듣는다. 1/168의 이 열악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신앙을 지켜갈 수 있나? 우리 부모들이 나서야 한다. 집에서 부지런히 말씀을 듣게 해주어야 한다. 가정예배, 베갯머리교육, 밥상머리교육, 자녀와 대화 등으로 말씀을 듣게 해 주어야 한다. 신명기 6장은 자녀들이 말씀을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하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문설주에 메주자(문설주)라는 것을 달아놓아서 자녀들이 집에서 나갈 때 말씀을 읽고 나가게 했다. 그리고 손과 머리에 테필린이라는 것을 부착하게 해서 어디에 있든지 말씀을 읽을 수 있게 했다. 부모들이 말씀 교육에 최선을 다한 것이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녀들이 성적이 떨어지거나 공부하는 것을 힘들어하면 학원이나 과외를 통해 보충해 준다. 그런데 신앙생활에 어려움을 당한다고, 신앙교육을 위해 과외하는 부모는 거의 찾아보기가 힘들다. 교회의 소망은 다음 세대이다. 이 악하고 패역한 세상 속에서 우리 자녀들과 교회의 다음세대를 믿음의 세대로 양육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행여라도 우리 다음 세대가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다음 세대들에게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쳐야 한다. 주님께서 맡겨주신 다음 세대를 믿음으로 말씀으로 잘 세워가는 한해가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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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1-10
  • [신앙교육나침반] 십계명 복음놀이로 온세대 믿음의 가정을 일으켜세우다!
    2025년 1월에는 향기나무 복음놀이코디네이터과정이 열립니다. 본 과정을 수료한 이들은 교회와 다양한 사역 현장에서 [향기나무 복음놀이터] 프로그램을 통해서, 온세대 믿음의 가정을 복음의 능력으로 일으켜세웁니다. 올해 첫 번째 복음놀이코디네이터과정의 주제는 “열마디 사랑의 외침, 십계명”입니다. 십계명은 타락한 세상을 살아가는 이 시대 믿음의 가정에 꼭 필요한 생명의 복음을 담고 있습니다. 십계명의 서문은 다음과 같습니다(출애굽기 20:2). “나는 너를 애굽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십계명의 대상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십계명은 하나님과 구원받은 백성의 언약관계에서 출발합니다. 하나님은 ‘나와 너’의 인격적 관계를 맺은 자기 백성에게 사랑의 열마디 말씀, 곧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십계명은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믿음의 가정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첫 번째, 믿음의 가정은 십계명을 통해서 ‘나’의 정체성을 발견합니다. ‘나’라는 존재는, 하나님이 사랑의 관계맺기를 원하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구원받은 백성이 하나님 한 분만을 사랑하길 갈망하시며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1-10계명은 모두 하나님의 사랑을 담은 열마디 외침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백성아! 너희는 십계명을 지킴으로 나와 사랑하자!” 두 번째, 믿음의 가정은 십계명을 통해서 구원받은 백성의 사명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은 십계명을 통해서 구원받은 백성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살아야 할 삶을 보여줍니다. 십계명은 하나님 자녀의 인생 설명서입니다. 세 번째, 믿음의 가정은 십계명을 통해서 예수그리스도만이 길이요 진리이며 생명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는 결코 십계명을 완전하게 지킬 수 없습니다. 우리는 십계명을 통해서, 하나님이 구원받을 아무 자격이 없는 나를 구원하셨다는 은혜를 만나게 됩니다. 동시에, 오직 예수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이 요구하신 의에 도달할 수 있음을 깨닫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들게 됩니다. 2025년에 다음의 교회를 주목해주십시오. 이 교회에는 믿음의 가정을 복음의 능력으로 일으켜세울 수 있는 ‘온세대 복음놀이 전문 코디네이터’가 있습니다. 가음정교회(고신), 고성중앙교회(합동), 구미상모교회(합동), 군산성광교회(기장), 대구대일교회(고신), 동래제일교회(고신), 더향상교회(고신), 바이탈교회(합신), 부산명성교회(백석), 부산중앙교회(합동), 부산효광교회(고신), 삼척소명교회(합동), 새언약교회(고신), 서울중앙교회(고신), 서도교회(고신), 서울한신교회(기장), 수원고색평강교회(백석), 시냇가에심은교회(고신), 양산교회(고신), 양양중앙교회(합동), 여량교회(합동), 연지교회(고신), 오색교회(합동), 울산성산교회(고신), 은평시민교회(고신), 은항교회(고신), 정선중앙교회(합동), 지구촌교회(합신), 푸른숲성산교회(기장), 흥덕향상교회(고신), 향상교회(고신), 해운대제일교회(합동) 담임목사님, 사모님, 부목사님, 전도사님, 집사님, 권사님, 장로님 등 다양한 직분, 다양한 연령,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이 모두 하나의 소망을 품고 본 과정에 참여하셨습니다. “복음의 능력으로 다음세대 가정을 품자! 지키자! 보존하자!” 이들의 뜨거운 열정이 한국교회를 넘어 전 세계 교회의 열망이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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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1-10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이야기] 우리에게 성탄절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올해도 성탄절이 다가옵니다. 성탄절의 대표적인 이미지 중 하나는 마굿간의 구유에 누워있는 아기 예수님과 그 곁에서 사랑스럽게 예수님을 바라보는 마리아와 요셉, 그리고 그들 곁에 선 목자들과 여러 동물들, 그리고 각자 황금과 유향, 몰약 등의 예물을 들고 경건하게 서 있는 세 명의 동방박사들입니다. 요즘은 교회나 성당, 또는 호텔 로비에 이런 조형물을 만들어 놓은 곳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올 겨울에 개봉해서 많은 성도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영화 <저니 투 베들레헴>의 하이라이트 장면도 바로 이 장면이었습니다. 영화 속 가상의 인물인 헤롯왕의 아들 안티파테르가 성탄절의 밤에 베들레헴 마굿간에서 마리아, 요셉, 동방박사들과 마주치는 이 장면은 관객들이 손에 땀을 쥐고 지켜봤던 이 영화의 백미였습니다. 그런데 2천 년 전 베들레헴의 마굿간의 모습을 후대에 누가 재현해서 성탄을 기리게 되었는지, 그래서 우리가 성탄절이 되면 이 형상을 만들고 이를 통해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돌아보고 성탄의 의미를 되새기게 되었는지 아는 분들은 많지 않습니다. 오늘은 그 분을 소개해 볼까 합니다. 1992년 ‘타임’지는 지난 천 년간 가장 중요한 10대 인물을 선정하면서 종교인으로서는 종교개혁을 주도한 독일의 마틴 루터와 함께 이탈리아 아시시의 성인 프란체스코를 선정했습니다. 같이 선정된 발명가 구텐베르크나 탐험가 콜롬버스, 과학자 갈릴레오 갈레이나 화가이자 조각가였던 미켈란젤로에 비해서 대중적인 지명도가 크지 않았던 그가 이름을 올린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그의 삶 그 자체가 복음서의 가르침을 그대로 실천한 모범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삶의 모델로 삼아 기쁨으로 그분을 본받아 살았고, 자신을 따르는 이들에게도 주님의 말씀과 행적을 통해 사람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끄는 삶을 권했습니다. 프란체스코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건은 성탄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과 하나 되시기 위해 아기로 태어나신 성육신 사건에 감동받아 그는 성탄절을 특별히 엄숙하게 기념했습니다. 1223년 그레치오 마을에서는 베들레헴의 첫 크리스마스를 재현해 마구간, 짚, 소와 나귀를 마련하고 사람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며 성탄의 의미를 나눴습니다. 그는 성육신의 겸손을 따라 자신의 삶에서도 철저한 가난을 실천하며, 가난 속에서 오히려 기쁨과 힘을 발견했습니다. 저도 2022년과 2023년에 아시시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예수님의 마굿간 형상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고, 그래서 우리 교회의 다음세대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흰색 도자기로 제작된 마굿간 형상 세트를 직접 구입해서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프란체스코는 가난을 단순한 물질적 결핍이 아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마음의 자세로 이해했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억울한 일을 겪어도 인내하며, 자신에게 닥친 고통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심한 병고를 겪으면서도 그는 “주님, 이 모든 고통에 감사드립니다. 원하신다면 더 많은 고통을 허락하셔도 좋습니다.”라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복했습니다. 프란체스코가 마구간의 크리스마스를 재현한 일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을 새롭게 일깨웠습니다. 이후 유럽에서는 크리스마스 구유와 아기 예수상을 집과 교회에 두는 관습이 자리 잡았습니다. 이처럼 성탄절이 되면 우리는 우리를 위해서 저 높고 높은 별을 넘어 이 낮고 낮은 땅으로 내려오신 하나님의 독생자, 마굿간의 아기 예수를 떠올리며, 그 가난한 왕을 따라 사는 거룩하고 소박한 삶의 열망을 점검해야 합니다. 프란체스코는 단순히 말로 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실천하며 복음서의 삶을 살아냈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2024년 성탄절을 맞이하는 우리에게도 오늘날 우리의 사회적 혼돈과 변혁의 삶 속에서 예수님을 따라가는 발걸음이 무엇인지 묻고 있습니다. 교회는 마땅히 우리의 다음세대들에게 예수님의 사랑과 헌신, 그리고 구원하시는 능력과 세상을 바른 길로 인도하시는 공의에 대해서 알려주고 따라가도록 지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다음세대가 이 시대를 살리는 오늘날의 작은 예수로 설게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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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 이야기
    2024-12-23
  • [다음세대칼럼] 스마트폰 중독을 바로 알고 지도하라
    2024년 여러 중고등부 집회와 상담을 하면서 스마트폰 중독이 무려 95%가 넘었다. 충격이다. 스마트폰 지도만 잘해도 청소년들의 예배와 공부와 미래는 잘 지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좋은 부모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성가족부·교육부가 2014에 발표한 것에 따르면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인터넷중독보다는 스마트폰 과의존이 더 심각한 모습을 보인다. 스마트폰은 연령이 낮아질수록 더 높은 중독의 경향성을 보인다. 매우 중요한 문제로 볼 수 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중독 위험군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다른 연령보다 청소년이 스마트폰 중독 위험군이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1) 스마트폰의 피해가 너무 크다. 스마트폰은 전자파로 뇌, 특히 전두엽의 시냅스를 70% 가까이 석화하거나 죽인다. 그래서, 학습이나 감각이나 공감 기능, 절제와 바른 선택 기능, 행복을 느끼는 기능이 급격하게 떨어진다. 스마트폰의 전자파로 인하여 전두엽의 시냅스가 2/3정도나 굳거나 죽는다는 것이다. 디지털 치매증후군이 생긴다. 성중독이 70%나 공동질환으로 생긴다. 거기다가 책을 읽거나 공부하거나 예배드리며 설교를 이해하는 기능이 최소 70%-95% 가까이 없어진다. 2) 스마트폰 3가지 대안을 제시한다. 첫째, 부모만 지도해서는 안 된다. 청소년들이 스마트폰을 조절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가정, 교회, 학교, 국가 4군데서 같이 규칙을 제정하여야 한다. 협력하여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여야 한다. 스마트폰 사용하지 않기 서명 운동을 해야 한다. 스마트폰의 해악을 더 정확하게 미디어로도 알리고 그에 따른 협의를 할 필요가 있다. 둘째, 부모와 교회 지도자가 전문성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 일찍 그냥 폰을 주는 건 자녀를 다 망치게 만드는 나쁜 일이다. 하지만 그냥 일방적으로 안 된다고 하는 방식도 자녀에게 상처가 되거나 거절감을 느낄 수 있다. 《중학생 뇌가 달라졌다》책을 통해서 부모와 교회가 아이들과 같이 토론하고 협의하여 규칙을 같이 정하는 협의 문화로 지도하자. 개인pc로 전환하는 것이나, 사용 차단 앱을 쓴다든가, 아예 자기관리 기능이 70% 넘을 때까지 주지 않는 방법이 좋다. 최대 빨리는 중학교 늦게는 고3 이후가 좋다. 학교나 교회에서 부모가 스마트폰을 쓰도록 오히려 알림과 교육을 하는 것도 협력 없이 잘못된 사용을 부추기는 것 중에 하나이다. 청소년 스마트폰 중독 3요소를 부모와 교회 지도자와 학교 교사들은 제대로 알아야 한다. ① 조절실패(Self-control failure)이다. 스마트폰을 없이 생활하는 것이 안 되는 것이다. ② 현저성(Salience)이다. 개인 삶에서 폰에 대한 여러 가지 형태의 집착과 관심이 두드러지게 가장 중요한 것이 되어 있는 상태이다. ③ 문제적 결과(Serious consequences)이다. 지나친 폰 사용이나 잘못된 폰 사용으로 인해 신체적, 심리적, 경제적, 대인관계적, 사회적, 영적으로 부정적인 결과를 경험하는데도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셋째, 불안과 스트레스를 제거해 주자. 스트레스와 불안 관리와 해결이 스마트폰 중독해결에 중요한 요인이다. 십대 우울증이 2.5배나 증가하는 원인이 ‘스마트폰 중독’때문이다. 이제 스마트폰 중독만 잘 지도하고 해결해도 교육과 예배의 70%는 이상을 다 한 것 같다고 할 만큼 스마트폰 중독은 청소년 삶에 치명적이다. 신앙에도 치명적이다. 교회와 부모와 상담가들이 비상을 걸고 먼저 노력하고 법으로 필요한 것도 나라에 정책 건의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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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음세대 칼럼
    2024-12-23
  • [신앙교육나침반] 온세대와 함께 복음을 놀이하는 크리스마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립보서 2:6-8) 하나님은 죄악 가운데 죽어가는 자기 백성을 구하고자, 하나뿐인 아들 예수님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중대한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가장 어둡고 죄악 가득한 나무 십자가로 향하셨습니다. 빛나고 높은 하늘 보좌에서 죄와 고통 가득한 저주의 자리로 급강하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왕이신 그 분의 첫걸음은 급락하는 포물선을 따라 인간이 되는 것부터였습니다. 모든 영광을 내려놓고, 자신을 온전히 비우신 후에, 종의 형체를 입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는 것, 그것이 십자가로 향하는 첫걸음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하지만, 결코 성육신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면에서 완전한 인간이 되셨습니다. 그의 피부 아래에는 인간의 뼈와 장기가 있었으며, 인간의 혈관을 따라 피가 흘렀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악에서 구하기 위해, 우리와 완전히 같은 본질을 입는 고통을 선택하셨습니다. 구유로의 낮아짐이 시작되어, 예수 그리스도는 구유로부터 계속 아래로 떨어지는 그 길에서 마침내 십자가까지 도달하셨습니다. 교회는 이번 성탄절에, 이 놀라운 복음을 온세대가 함께 감탄하며 경험할 수 있는 자리를 꼭 마련하길 원합니다. [복음놀이리부트50]의 40번부터 45번의 내용은 온세대가 함께 성탄의 복음을 경험할 수 있는 복음놀이입니다. 복음색깔 탁구공과 검은색 종이컵을 이용해서 복음의 기쁜 소식을 받고, 온세대 교회공동체가 함께 전하며, 경험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좋은 대학에 가고, 큰 회사에 취업하고, 돈을 많이 벌고, 성공하는 것에 기뻐하고 감탄합니다. 하지만 믿음의 사람들은 그들과 다른 것에 기뻐하고 감탄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날마다 어떤 환경속에서도 변함없이 기뻐하는 소식은 바로 이것입니다.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나를 뜨겁게 사랑하며 함께하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흘린 보혈로 나의 모든 죄가 사함을 받았습니다!” “부활생명으로 새사람이 되어 성령님의 다스림을 받습니다!” “나는 빛의 갑옷을 입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올해 성탄절에는 온세대, 온성도가 함께 복음의 기쁜소식을 말로만 듣지말고, 온 몸으로 놀이하며, 복음의 놀라운 능력을 경험하시길 소망합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상처입고 주저앉은 수많은 다음세대와 부모들이 복음의 능력으로 참된 정체성을 발견하여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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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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