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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다음세대 기사

  • [다음세대 이야기] 다음세대의 고민은 모든 교회의 관심(2)
    이 비유의 배경은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목이었습니다. 이 지역은 악이 서식하기에 최상의 환경적 요건을 지닌 지역이라 보는 것도 틀리지 않은 관점이라 봅니다. 그렇다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목, 그 환경을 개선한다면 강도 만난 사람이 생겨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목에 방범초소를 설치하고, 가로등을 설치한다면, 그렇게 환경을 개선해 간다면 선한 사마리아인이 없어도 이 사회는 더 살기 좋은 환경이 되지 않을까? 이런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드리기 위해 지역교회의 당위성이 됩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이 많은 사회라고 할지라도 사회구조상 여전히 강도 만난 사람들이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더욱 아름다운 사회를 원한다면 강도가 없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입니다. 이 역할을 하는 교회가 지역교회(Local Church)의 사명인 것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이 없는 사회를 만드는 방법은 무엇인가? 예수님의 사역을 통하여 그 해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 가운데 많은 사람들과 제자들에게 삶을 통하여 딱 한 가지 공통적으로 보여주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분의 마음이 들켜지는 것입니다. 예수님 마음은 바로 사랑입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온몸으로 예수님은 그 사랑을 들키고자 십자 가의 사랑까지 보여 내셨지요. 그 방편으로 예수님은 교회라는 공동체를 지역 가운데 두셨습니다. 지역에 주님의 몸 된 교회를 통하여 바로 예수님이 그토록 들켜보이고자 했던 사랑을 보이고자 함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지역사회에 사랑의 광체입니다. 교회가 있는 주변은 교회를 통하여 정화되어져야 합니다. 사랑이라는 방법을 통해서 말이지요. 그래서 교회가 있는 곳에는 교회를 통해 살만한 세상이 되어져야합니다. 이것이 선한 사마리아인이 없는 아름다운 세상의 모토입니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그 길을 정화하는 교회가 되려고 지속적인 시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강도 만난 사람들이 더 이상 발생하여 선한 사마리아인이든, 강도 만난 사람이든 모두가 힘들고 아프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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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5-07
  • [좌충우돌 크리스천 자녀 양육기]아이의 아픔에 대처하는 참을 수 없는 부모의 가벼움
    “엄마, 나 갑자기 다리가 가려워. 그리고 온 몸이 뜨거워, 열나는지 한번 봐줘” 중학교 1학년인 첫째가 주일 저녁 샤워를 끝내고 나오면서 힘이 없는 얼굴로 아프다고 말을 했다. 초등학교 고학년 이후로 크게 아픈 적이 없던 아이라 아프다는 한 마디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철렁하며 얼른 아이의 몸을 훑어 보았다. 아이의 말대로 온 몸은 뜨거웠고, 가렵다던 다리는 붉은 반점들이 빼곡히 올라와 있었다. 의사는 아니지만 10년 넘게 아이 4명을 키우며 크고 작은 병과 함께 살아왔기에 겉으로 드러난 증상만으로 어렴풋이 추측해볼 수 있는 병명들이 몇 가지 있는데, 지금 이 상황은 ‘알러지 반응으로 인한 두드러기’ 같았다. 그리고 열을 재보니 38.4도. 걱정스런 수치였다. 일단, 집에 있는 비상약을 먹인 후 상황을 보고 아이에게 물었다. “너무 힘들면 지금 응급실에 가고, 참을 수 있을 정도이면 오늘 밤만 지나고 내일 아침에 일반 병원 갈 수 있어. 어떻게 할래?” 아이는 처음에는 견뎌보겠다고 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붉은 반점이 커지고 더 가려워지는 것을 느끼더니 도저히 안되겠다며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는다. 밤 11시 30분. 그렇게 나는, 열이 펄펄 나는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도착해 응급실 앞에 앉았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이용하던 병원이라 이 시간에 응급실에 오면 어떤 절차를 밟는지 미리 알고 있었는데 그날따라 응급실 앞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꽤 길다고 느끼던 순간, 간호사가 나와 몇가지 설명을 해주었다. “지금 부산에 코로나 환자가 증가하고 있어서, 열이 나는 경우 진료를 보려면 코로나 간이 검사를 먼저 해야 합니다. 앞에 환자도 코로나 검사를 받는다고 지금 대기 시간이 길어진거거든요. 보니까 학생이 열이 나는거 같은데 한번 재볼께요.” 간호사는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열을 재보더니 38도가 나온다며, 이럴 경우 코로나 검사를 해야지 진료를 받는다며 보호자인 내게 동의를 구했다. 아이의 치료와 회복을 위해서는 당연히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코로나 검사를 해야하는 것이 당연한데, 순간 나는 망설이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오늘 교회에 다녀왔고, 물론 방역 수칙을 다 지키고 거리 두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첫째는 어른 예배, 청소년부 예배를 다 드렸고 마치고는 친구들과 잠시 운동을 하기도 했다. 지금 열이 나는 것은 알러지 반응 때문이지만 설마, 혹시, 만의 하나 코로나이면… 눈 앞이 캄캄했다. 그렇지 않아도 교회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한 명이라도 나오면 비난의 대상이 되고 교회는 온갖 곤란을 다 겪게 되는데, 만약 우리 아이 때문에 그런 일을 겪게 된다면… 너무 끔찍하고 생각하기도 싫었다. 1분 정도의 시간 동안 난 이미 지옥을 경험하고 온 것만 같았다. 그래도 아이가 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혹시… 혹시… 부모로서 한없이 무너지는 순간에 첫째가 “엄마, 나는 진짜 코로나 검사는 하기 싫어요. 면봉을 코 끝까지 넣는단 말이에요. 그리고 나는 지금 두드러기 때문에 열이 나는 거에요”라며 집에 돌아가자고 재촉하는 것이 아닌가! 상황이 이렇게 되면 엄마는 그래도 정신을 차리고 아이를 위해서 코로나 검사를 받자고 권유해야 하는데, 나 역시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머릿속이 너무 복잡하고 두려웠다. 그리고 난 아이를 핑계대며 마치 죄인인 것 마냥 응급실을 빠져 나왔고, 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차에 올랐다. ‘지금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거지. 코로나 검사가 뭐라고. 그리고 만약 진짜 코로나라면 확실히 검사받고 치료해야 하는데 나는 엄마인데 왜 겁쟁이처럼 도망치듯 병원을 나온거지’라는 생각과 ‘그래, 일단 오늘은 안돼. 아이가 하루 종일 교회에 있다 왔는데 혹시라도… 오늘은 절대 안돼’라는 두 마음이 계속 갈등하면서 죄책감 자괴감 등 온갖 나를 정죄하는 감정들이 몰려왔다. 이날의 끝은 어떻게 되었을까?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한 시간이 채 못되어 다시 그 병원을 찾았다. 큰 아이는 가려워서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고, 본인 스스로 코로나 검사를 받겠다고, 그래서 진료 후 간지럼증이 없어질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나섰다. 아이는 코로나 검사도 했고(물론 나는 이 때도 마음이 쿵덕쿵덕, 폭풍 불안감이 밀려왔다) 당연한 결과지만 음성으로 나와 두드러기 치료 주사 한 대를 맞고 언제 그랬냐는 듯 증상이 싹 사라져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길고 깊었던 밤이었다. 나는 그날 밤 아이의 치료보다 더 큰 나의 두려움과 불안을 마주했고, 그 무엇보다 내가 제대로 된 기독교인인지, 아니 나는 상식적인 사회인인지에 대한 물음도 흔들리고 있었다. 은혜라고 불러도 될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그날 밤 나는 오랜만에 엄마로서 하나님을 깊이 찾고 소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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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충우돌 크리스천 자녀 양육기
    2021-05-03
  • [신앙교육 나침반]당신의 가정을 성경놀이터로 만들라!
    지금까지 대부분의 가정은 신앙교육의 주도권을 교회학교에 일임하였습니다. 가정은 교회학교의 신앙교육을 따르고 돕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는 펜데믹 시대를 맞이하였습니다. 코로나19는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외출할 수 없는 세상, 온라인으로 학교 수업을 듣는 세상,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는 세상 등 우리의 일상을 완전히 뒤바꾸어놓았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는 정작 신앙교육의 주체를 바꾸어놓지는 못하였습니다. 부모들은 여전히 수동적인 위치에 서서 교회학교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2020년 5월경, 믿음의 부모들은 그렇게 무기력하게 쓰러져있었습니다. 석 달 넘게 지속되는 펜데믹과 굳게 닫힌 교회 문 앞에 서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였습니다. 코로나19 앞에 향방을 정하지 못하는 교회와 가정, 그 가운데 우리의 자녀세대들은 인생의 골든타임을 놓친 채 방치되고 있었습니다. 그때 부족함 많은 제가 겁도 없이 “하나님, 저요!”하고 손을 들었습니다. “하나님, 저요! 제가 뭐라도 해볼게요.” 그리고 향기나무교육개발원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특별히 제게 향기나무교육개발원을 향한 비전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시편 1편 2-3절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날마다 하나님 말씀을 즐거워하고 묵상하는 가정은 어떤 환경 속에서도 시들지 않고 생명의 향기를 발하는 향기나무 가정이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크리스천 가정은 하나님 말씀 앞에 마주 앉는 것이 어색하고 부끄러운 현장입니다. 이러한 가정이 날마다 하나님 말씀에 즐겁게 반응하는 성경놀이터가 된다면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형통할 수 있습니다. 향기나무교육개발원은 이러한 비전을 품고 작년 5월부터 지금까지 [우리집 성경놀이터] 컨텐츠를 쉼 없이 개발하여 보급하고 있습니다. 우리집 성경학교와 성경놀이터를 경험해본 부모님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많은 부모님들은 교회에서 여름성경학교를 할 수 없는 상황에 절망하였는데, 가정에서 이렇게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우리집 성경학교’를 열 수 있는 것 자체가 축복이라고 하십니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많은 가정이 우리집 성경놀이터를 통하여 온 가족이 하나님 말씀 앞에 마주하며 놀이하는 것이 일상이 되도록 달려가고 계십니다. 내가 가장 편안하게 느끼고 익숙한 곳, 바로 우리집 내 방과 거실을 성경놀이터로 만들어보시길 바랍니다. 자녀에게 일방적으로 훈계하고 가르치는 딱딱한 교실이 아닌 온 몸으로 하나님 말씀을 함께 경험하고 반응하는 시간을 마련해보세요. 우리의 자녀들은 비로소 하나님 말씀 속으로 신나는 여행을 떠나며 예수님을 온 몸으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온 가족이 연령에 상관없이 복음을 신나고 즐겁게 흡수하면서 말씀 앞에 “우와!” 감탄하게 될 것입니다. 부모와 자녀들이 모두 함께 하나님 말씀을 보고, 듣고, 만지고, 냄새 맡고, 맛보는 오감을 활용한 다양한 놀이를 통해 “놀다보니 하나님!”, “놀다보니 예수님!”, “놀다보니 성령님!”을 경험하게 되시리라 믿습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마주하며 복음을 경험하는 시간은 평생 잊지 못할 생명의 자극이 되어서 자녀들의 영혼을 일으켜 세울 것입니다. 향기나무교육개발원은 아직 사무실이 없는 미자립 기관입니다. 그럼에도 저희는 작년 여름성경학교부터 추수감사절기, 성탄절기, 그리고 사순절기에 꾸준히 우리집 성경놀이터 컨텐츠를 보급하였습니다. 현재는 'Godly Family'(경건한 가정)를 주제로 한 2021년 우리집성경학교를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많은 기대와 기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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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앙교육 나침반
    2021-04-26
  • [다음세대 칼럼]학교는 매력적인 곳입니다
    우리 학교(브니엘예술고) 교문을 들어서게 되면 문 앞에 새겨져 있는 돌비에 새겨진 교훈을 보게 된다. 우리 학교 교훈은 아주 길다. 1. 나는 하나님과 사람과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련다. 2. 나는 마음껏 자라며, 마음껏 생각하며, 마음껏 일하는 사람이 되련다. 3. 나는 웃는 자와 같이 웃고, 우는 자와 같이 우는 사람이 되련다. 4. 나는 조국과 인류가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잊지 않는다. 학생들은 교훈에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우리 학교 교훈을 보는 순간 가슴이 뛰었다. 교훈은 그 학교의 정체성을 결정한다. 따라서 교훈을 통해 우리 학교가 어떤 정신에서 출발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60여 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여러 굴곡을 지나온 우리 학교지만, 다른 미션 스쿨과는 달리 아직도 종교라는 교과목을 통하여 신앙 교육을 하고 있고, 아이들이 싫어하든 좋아하든 상관없이 ‘중생회’(BORN AGAIN)라는 이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기독교에 대해 거의 안티 수준으로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학생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생회 때마다 회심하는 아이들이 수십 명씩 나온다는 점이다.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깨닫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며 항복하고 엎드리는 아이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여전히 일하고 계시다는 것을 눈으로 보게 된다. 나는 학교에 부임한 첫날부터 지금까지, 매일 아침마다 책상 앞에 앉아서 이렇게 기도한다. “하나님, 우리 브니엘이 이 땅에 있는 또 하나의 학교로 멈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실 때에 유일한 학교로 사용되게 해 주십시오!” 나는 우리 학교 아이들이 학교의 교훈대로만 산다면 시대에 영향을 미치는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우리 학교 학생뿐 아니라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우리 학교의 교훈대로만 살아도 이 땅에 미치는 영향력은 엄청날 것이다. 나는 다시 이 땅에 있는 미션 스쿨들이 설립 당시의 ‘처음 정신’으로 돌아가 신앙의 정체성을 다시 세워 나가기를 소망한다. 나는 아직 학교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시대의 흐름상 종교 교육을 마음껏 할 수 있거나 학교에서 복음을 마음껏 전파할 수 있는 구조는 아니다. 이유는 학교의 생명은 진학의 결과에 달려 있기 때문에 종교교육이 본질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고등학교의 존재 목적이 단순히 대학 진학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학교는 진학만큼이나 중요한 기능이 있다. 바로 ‘삶의 변화’이다. 그리고 내가 모든 관심을 쏟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나는 우리 학교에 온 아이들이 성적 향상과 함께, 다른 학교에서는 배우지 못하는 것을 가르쳐 주고 싶다. 그것은 ‘세상을 보는 눈’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이것이 기독교 세계관이이며 소명 의식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누구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미션 스쿨에 속한 교사들만 해야 하는 일도 아니다. 한국 교회와 성도들이 같이 해야 한다. 과거 미션 스쿨들의 영광을 회복하고, 신앙의 전성기를 다시 맞이할 수 있도록 미션 스쿨을 위한 관심과 기도가 계속 이어져야 한다. 학원 선교는 학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교회와 믿음의 가정이 같이 해야 한다. 나는 90퍼센트의 학생이 불행한 교육적 상황에서 90퍼센트 이상의 학생이 행복한 학교를 만들고 싶다. 다시 한 번 미션 스쿨의 영광을 회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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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음세대 칼럼
    2021-04-26
  • [다음세대 이야기] 다음세대에 고민은 모든 교회의 관심
    다음세대에 고민은 모든 교회의 관심일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교회는 오늘보다 내일이 좋은 교회를 꿈꾸기 보다는 오늘에, 또는 부가적인 사역과 관심에만 집중해온 것이 사실일 것입니다. 그래서 지역에서의 리더쉽보다는 지역과 대립적, 또는 초월적인 존재로만 있어왔습니다. 그러나 지역과 무관하게 존재해 온 교회공동체에게는 다음세대에 대한 문들은 많이 좁아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눅10:25-37절에 우리들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이 말씀을 들으며 이와 같은 결단을 하게 됩니다. 물론 본문의 핵심은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가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눅10:26-28절에서의 결론은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그래서 우린 사랑이 이유가 되는 삶을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자는 그런 결단으로 마무리 합니다. 이것은 분명 아름다운 목표이긴 합니다. 이 비유 속의 등장인물은 강도만난 사람을 제외하면 세 부류의 사람입니다. 이들의 강도 만난자에 대한 행동은 많은 생각에 여지를 남깁니다 먼저 제사장입니다. 예수님께선 이 강도당하고 죽게 된 사람을 도와줄 인물로 제일 먼저 제사장을 등장시키십니다. 당시 제사장들은 24반차로 나누어서 일년에 2주씩 성전에 가서 봉사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봉사하는 주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에는 자신의 집에서 지낼 수 있었지요. 그래서 예루살렘에서 그렇게 멀지 않으면서도 부유한 도시였던 여리고에 머물기를 선호했다고 합니다. 1세기의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에 따르면, 이 여리고 성은 약 5000명 정도의 제사장들이 거주했던 부유한 도시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예수님께서 이 비유의 첫 등장인물로 제사장을 등장시키신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제사장은 강도당하여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 이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눅10:31)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두번째 지나가는 인물로 등장시키신 레위인도 역시 제사장과 함께 성전에서 봉사하는 부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레위인도 역시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눅10:32). 당시의 가장 영적으로 존경받던 지도자인 제사장도, 성전에서 봉사하던 레위인도 모두 이 강도당해 죽어가는 남자를 보고도 도와주지 않고 그냥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러자, 이제 청중들은 예수님께서 이 이야기에 등장시킬 다음 사람을 궁금해하며 머리속으로 누구일지 상상해 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다음 등장인물로 청중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한 사람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청중들이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한 부류의 사람: 사마리아인을 등장시키십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사마리아인"이라는 단어는 입에 담고 싶지도 않은 부류의 사람이었습니다. 구약시대에도 존재했었지만, 1세기 말에 확정된 18개의 유대인의 기도문 중에서 12번째 기도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마리아 인들이 이방인들과 함께 한 순간에 멸망당하게 하시고, 저들의 이름을 생명록에서 제거해 주시옵소서" 지금과 같은 시대에는 위와 같은 내용을 기도문에 포함시켰다는 사실은 정말 믿기 어려울 정도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경멸하고 저주한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인이 이렇게까지 경멸하는 부류의 사람이 등장하여, 거룩한 제사장과 레위인마저 하지 않은 선행을 베푸는 모습을 예수님께서 유대의 청중들에게 말씀하고 계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는 것도 좋겠지만, 본질적으로 선한 사마리아인이 필요하지 않은 사회가 더 아름다운 사회가 아니겠는가 하는 가지가 우선하는 가치가 아닐까 합니다. 이 비유의 배경은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목이었습니다. 이 지역은 악이 서식하기에 최상의 환경적 요건을 지닌 지역이라 보는 것도 틀리지 않은 관점이라 봅니다 그렇다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목, 그 환경을 개선한다면 강도 만난 사람이 생겨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목에 방범초소를 설치하고, 가로등을 설치한다면, 그렇게 환경을 개선해 간다면 선한 사마리아인이 없어도 이 사회는 더 살기 좋은 환경이 되지 않을까? 이런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드리기 위해 지역교회의 당위성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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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4-26
  • [좌충우돌 크리스천 자녀 양육기] 고난주간, 아이들과 함께 새벽을 환하게 열기!
    3월 마지막 주 첫 월요일, 봄은 왔지만 아직 공기가 찬 이른 아침 4시 10분. 평소 같으면 아이들이 한창 꿈나라에 있을 시간이지만 그 날은 엄마인 나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아이들 이름을 하나 하나 부르며 깨우고 있다. “은성아, 일어나야 해. 오늘부터 고난주간 특새 기간이야. 일어나기로 했지” 첫째가 부스스 일어나서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는다. 눈이 떠지지 않아 몸은 따뜻한 이불 속으로 다시 들어가고 싶지만, 오늘부터 일주일 동안은 새벽에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아는 첫째는 꾸역꾸역 아침을 깨운다. 둘째는 어젯밤부터 요란하게 새벽을 기대하고 있었다. 워낙 교회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라 새벽기도에 가면 친구들이 많이 올 것이라 기대해 전날부터 알람을 맞춰놓고 옷도 미리 다 입고 자는 등 만반의 준비를 다했다. 물론, 일어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알람이 울리자, “엄마, 오늘 고난주간 맞지? 지금 바로 일어날게” 라며 대견스럽게 스스로 준비하며 눈을 감은 채 거실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문제는 셋째와 넷째이다. 아직 어린 두 아이는 몇 번을 흔들어 깨워도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한참을 깨워도 반응이 없자 급기야는 “새벽기도 갔다 오면 젤리 사줄게. 아이스크림도.”라며 겨우겨우 달래서 차에 태웠다. 아직도 어둑어둑한 새벽 4시 40분. 아이들은 잠이 덜깬 채 몽롱한 상태로 무작정 아빠 엄마를 따라 교회로 나선다. 비록 이 아이들이 평소와 달리 일찍 일어나 새벽기도를 간다고 해서 갑자기 성령의 은혜가 부어져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되는 것도 아니고, 고난주간의 의미를 엄청 깊이 생각해 스스로 십자가를 묵상할 수 있게 되는 것도 아닌데 남편과 나는 왜 힘들게 아이들을 깨워 새벽 기도회에 참석하게 할까?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아이들에게 남기고픈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이미지’고 ‘추억’이다. 물론, 우리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 이맘때를 기억할 때,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던 봄날에 고난주간을 맞아 엄마 아빠와 함께 간 특별새벽기도회 때 들었던 목사님의 말씀이 내 인생을 바꾸어 놓았어요!”라고 생각해주면 가장 보람되고 좋을 것이다. 그런데 나도 신앙생활을 통해 여러 경험들을 해 보니 그런 일은 극히 드물고, 어릴 때 아이들에게 남는 것은 ‘이미지’와 ‘추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비록 아침에 눈뜨기가 버겁고, 일어나기 위해서는 수만번의 다짐과 각오가 있어야 하지만 그 힘듦을 꺾고 나가는 것이다. 어린 시절, 고난주간에 아빠와 엄마와 함께 새벽에 일어나 온 가족이 교회에 갔다는 이미지와 스토리를 남겨주기 위해서이다.(물론, 고난주간과 부활절의 의미에 대해서 아이들에게 알려주기 위함도 있다.) 매해 고난주간에 새벽기도를 간 경험이 쌓이면 먼 훗날 아이들이 자랐을 때, 고난주간만 되면 아주 자연스럽게 이 장면이 떠오르게 될 것이다. 교회에 대한 좋은 이미지와 함께. 일주일 동안, 새벽기도를 완주하기까지 많은 장애물이 있었다. 목요일 새벽에는 우리 부부도 일어나기가 버거웠으며, 아이들은 첫날의 호기로움은 사라지고 ‘자고 싶다’며 1분이라도 더 이불 속에 있으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마지막 날, 새벽기도를 마치고 돌아오며 남편과 나는 아이들에게 완주했다는 기쁨과 성취를 주기 위해 햄버거를 아침으로 사주었다. 아이들은 좀처럼 아침에는 먹을 수 없는 햄버거를 손에 쥐며 일주일의 힘듦과 괴로움은 다 잊은 채 “엄마, 너무 좋아. 언제 또 새벽기도 가는 거야? 나 또 갈래”라며 내년을 기약한다. 그래, 어렵게 생각할 게 있을까? 아이들에게 즐거움과 행복을 주며 하나님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 지금 부모로서 할 수 있는 것은 이것 뿐임을 또 한번 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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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충우돌 크리스천 자녀 양육기
    2021-04-09
  • [신앙교육 나침반] 믿음의 부모를 일으켜라3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에베소서 2장 8절 말씀은 믿음이 인간의 조건과 노력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주시는 선물임을 명시하였습니다. 자녀세대의 미성숙한 발달이 신앙의 미성숙함과 비례한다는 논리는 이제 우리의 머릿속에서 지워야 합니다. 구원은 신앙의 연령과 지적수준과 능력을 초월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운 선물입니다. 자녀세대는 교회와 가정이 지금 당장 복음의 생명으로 시급하게 살려내어야 할 실제적 성도입니다. 그렇다면 인지수준과 언어능력이 완전히 발달하지 않은 어린 자녀들에게 교회와 가정은 어떻게 복음을 전하고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교회와 가정은 학교식 교육체제의 영향으로 인하여 지식전달 위주의 교육과정과 방법으로 자녀세대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제가 2019년에 연구자로 참여한 신앙교육 실태조사에서(예장 고신교단 21개 교회 대상) 교역자, 부모, 교사 모두 동일하게 교육과정의 개선점에 대해 ‘교육과정의 수준적합성’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하였습니다. 교육과정의 방법을 분석한 결과 80%이상이 단답식 문답과 조형활동의 인지적 활동중심으로 이루어져있었습니다. 과연 이러한 언어적, 논리적 정보전달 방법을 통해서 어린아이들이 제대로 배울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자신이 속한 환경으로부터의 경험을 통해서만 세상을 배울 수 있습니다. 세상을 향한 아이의 이해는 오로지 직접 경험하는 지각과 대상에 한정됩니다. 이 아이들은 감각처리기계인 오감각을 통해서 세상을 보고, 맛보고, 듣고, 접촉하고, 냄새 맡으며 주변의 정보를 흡수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교회와 가정현장은 이런 아이들에게 책상에 앉아서 공과책을 펼쳐놓고 빈칸을 채우고 암기하고 설명을 듣게 하며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엄숙하고 딱딱한 교실환경에서는 결코 하나님 말씀이 제대로 마음밭에 뿌리내리기 힘듭니다. 신앙교육현장은 자녀세대들이 자신만의 오감을 사용하여 하나님 말씀을 만나고 체험할 수 있는 생기 넘치는 놀이터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비로소 아이들은 하나님 말씀 속으로 신나는 여행을 떠날 수 있습니다. 복음을 신나고 즐겁게 흡수하면서 “우와!” 탄성하며 빠져들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감각과 놀이를 통로로 그 어느 때보다 즐겁게 몰입하면서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 교회와 사랑, 희생에 관한 설명이나 가르침을 언어와 논리로 이해시키려하기보다 그것을 온 몸으로 경험할 수 있는 감각적 놀이 경험이 일어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녀세대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보고, 듣고, 만지고, 냄새맡고, 맛보는 오감을 활용한 다양한 놀이 경험을 제공해야 합니다. “놀다보니 하나님!” “놀다보니 예수님!” “놀다보니 성령님!”이 될 수 있는 신앙교육환경을 조성해주어야 합니다. 현재 소수의 교회가 방역지침을 준수하면서 주일학교 문을 조심스레 개방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대다수의 자녀세대들은 1년이 넘는 시간동안 코로나로 인해 매주일 가정에서 온라인예배를 시청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미디어 시청에만 의존하는 신앙교육환경은 매우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온라인 예배를 마친 후에는 반드시 가족이 마주하며 온 몸으로 하나님 말씀을 경험하는 시간이 뒤따라야 합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마주하며 복음을 경험하는 시간은 평생 잊지 못할 생명의 자극이 되어서 자녀들의 영혼을 일으켜 세울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다음 시간에 좀 더 구체적인 방법을 중심으로 나누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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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4-09
  • [다음세대 칼럼] 청소년 사역은 나이가 아니라 마음이다
    미션스쿨에서 교목(목사)들에게 1학년들의 종교과목 첫수업은 아주 중요하고 의미가 있는 시간입니다. 첫인상이 3년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수업에 대한 첫 느낌이 안 좋으면 ‘종교’라는 수업 시간은 버리는 시간이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지난 14년동안 3월 새로 입학한 신입생들에게 첫 수업은 사활을 걸다시피 승부를 거는 마음으로 교실에 들어갔습니다. 역시 교실에 들어가면 ‘종교’라는 교과목 앞에서 아이들의 표정이 그렇게 좋지는 않습니다. 심지어 교회를 다니는 아이들 조차도 ‘학교에서 무슨 종교 수업이야?’하는 마음으로 앉아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런 아이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하는 것은 정말 벽에 대고 고함을 치는 그런 느낌입니다. 그래서 1학년들의 종교 시간 첫 수업은 목사나 학생이나 서로가 긴장을 하는 시간입니다. 종교가 기독교가 아닌데 종교 수업이라니... 올해도 162명의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한 주간 수업을 마치고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수업은 들을만 했어?” “목사님, 종교 수업을 그렇게 하실 줄 몰랐어요. 지금까지 수업 중 제일 재미있었어요.” 아이들은 ‘재미있고, 감동있는 수업’이었다고 말하지만 이 첫 수업을 위해 현장에 있는 교목들은 3월 첫 수업에 모든 것을 걸어 놓고 교실에 들어갑니다. 다른 교과목 수업은 다음 시간에 만회할 기회가 있고, 평가를 위해서는 반드시 들어야 하기에 어떻게든 수업에 참여하지만, 종교라는 교과는 학교에서 없어도 그만인 교과이기에 3년의 첫 시간을 그렇게 준비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올해도 수업 전 긴장했던 아이들의 얼굴이 호감의 얼굴로 바뀌는 것을 보면서 또 책임져야 할 녀석들이 늘어남을 느낍니다. 지금 학교 현장은 교육과정상 종교와 철학, 종교와 심리학, 종교와 교육학 중 택1을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몸부림은 아이들이 교과목을 선택함에 있어서도 나타납니다. 99%가 종교 수업을 선택합니다. 간혹 철학이나 심리학을 선택한 제자들이 “목사님, 종교 수업 거부가 아니라 정말 철학과 심리학을 배우고 싶어서 선택한거에요. 목사님이 수업해주시면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어요”하고 미안해하며 갑니다. 올해로 열네번째 3월을 보냈습니다. 30대 후반에 부임해서 이제 50중반을 보고 가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청소년 사역에 유통기한이 있다는 생각을 하고 살았던 나로서는 여전히 이 아이들과 놀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할 뿐입니다. 그래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청소년 사역은 나이가 아니라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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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4-09
  • [다음세대 이야기] 다음세대를 육성하기 위한 선제조건
    (Local community church; 지역공동체교회) 다음세대를 육성하기 위하여 먼저 선제되어야 할 조건은 단연코 Local community church; 지역공동체교회이다. 이는 교회가 미래에 지향할 방향이기도 하다. 교회는 지역에서 이제 생존의 문제를 넘어서 지역을 복음적 가치로 선도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역동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역이 교회의 가치를 따를 수 있도록 이에 대한 납득할 만한 영향력을 보여 내야 한다. 그것이 바로 Local community church; 지역공동체교회의 가치이고 방향이다. 이를 위해 교회는 지역의 필요성을 이해하고 함께 공유하여 지역이 복음적 가치로 나아갈 수 있는 다양한 가치관을 제시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로 지역의 필요성을 연구하고 데이터화해야 한다. 우리 주변에는 어떤 가치로 무엇을 추구하고 이를 위해 어떤 것일 선행적으로 갖추어지고 필요한지를 정확히 시장조사하여 이를 수치로 데이터화 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로 지역의 필요성 조사가 계획대로 끝나고 데이터화 하면 이를 바탕으로 교회가 복음적 가치를 수밀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준비한다. 이것이 바로 프로그램이다. 즉 지역의 필요성을 하드웨어라고 한다면, 이를 실현하기 위한 소프트웨어를 준비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교회의 복음적 가치를 담되, 오히려 교회의 중요성만 강조한 나머지 복음사역에 역행하는 지역의 반대를 가져올 수 있기에 정말 신중하고도 함께 융화 될 수 있는 방법을 고려해야한다. 셋째로 협의 혹은 공유(swearing)이 필요하다. 지역의 대표부터 지역민 개개인에 이르기까지 함께 논의하고 협의하여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이를 통해 지역은 교회에 대한 색안경을 제거하고 교회는 정말 지역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그리고 교회가 지역에 속에서 어떠한 사명을 감당해야 할지를 알 수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거침없는 실현이다. 모든 계획이 완벽히 준비되었다 할지라도 교회가 이에 대하여 거리낌을 가지거나 율법주의적으로 해석을 하면 되는 일도 되지 않는다. 따라서 소신을 가지고 지역공동체 교회로서의 사명을 완수하여 정말 다음세대를 위한 초석을 다지기 위해서는 거침없는 실현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충분한 교회내의 홍보, 교육, 설득이 필요하고 이에 교회는 적극적자세로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 이상의 내용은 다음세대를 위한 선제적 조건인 Local community church; 지역공동체교회에 대한 이론적 도입부분이다. 다음호에서는 Local community church; 지역공동체교회에 관한 정의와 적용점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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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4-09
  • [크리스천 자녀 양육기]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에게 기독교 세계관을 심겨줄 수 있을까?
    “왜요? 그거 맞아요? 네이버 지식에서 그렇게 말해요?” 순간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중학생이 되면 초등학교 때와는 완전히 다른 아이로 변한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막상 내 아이가 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엄마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뜻의 말을 하자 머릿속이 멍해졌다.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부모의 말에 큰 거부 없이 “알았어요” 혹은 “하기 싫은데.... 그래도 알겠어요”라고 말하던 아이가 중학교 입학과 동시에 “왜요?”라는 말을 하루에도 수십번씩 한다. 그리고 뒤따라 오는 말은 “친구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던데요” “내가 읽은 책에서는 이렇게 쓰여져 있던데…” “엄마, 말이 맞아요?” 등의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 혹은 책의 표현을 대신해 이야기한다. 일주일 정도 중학생이 되어 갑작스럽게 달라진 아이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자아가 생기고 사고가 넓어지면서 겪는 자연스런 성장과정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내 시각에서는 아이가 좀 버릇 없어진 것 같고, 따박따박 엄마 말에 반론하는 것 같아 당황스럽지만 아이는 지금 밀착되어있던 엄마의 생각에서 나름대로의 거리두기를 하고 있는 단계인 것이다. 아이가 내 품에 있을 때는 언제든 나의 가치관을 아이에게 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아이의 생각이 자라고 독립할 시간이 가까워졌다고 생각하니 당장 신앙 부분에서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보기에 우리 아이는 아직 신앙이 어린 아이 수준인데 혹시 믿지 않은 친구들을 만나서 세상적인 것에 마음을 다 뺏기는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물론, 부모로서 아이에 대한 기본적인 믿음은 있기에 엄마 품을 떠나 약간의 방황을 하더라도 큰 걱정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아이의 세계관, 가치관, 사고 부분에서는 진지하게 고민을 시작해야 하는 시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중학생이 된 아이에게 어떻게 하면 기독교 세계관을 자연스럽게 알려줄 수 있을까?’가 나의 큰 숙제가 되었다. 미디어를 비롯한 세상에서는 “혼자살아라. 너가 편한대로 행동하라”고 끊임없이 이야기 할 때, “우리는 공동체를 이뤄야 한다. 이웃을 생각하며 함께 살아야 한다”는 정서를 심어주는 것, “어차피 세상은 금수저 흙수저로 나뉘어졌어. 이 세상에서는 물질이 최고야”라고 말할 때 “이 세상에 태어난 목적이 있고, 나에게 맞는 가치있고, 의미있는 일들이 있다”는 사상을 새겨주는 작업을 시작할 때가 된 것 같다. 이에 대한 첫 작업으로 아이에게 책을 한 권 선물했다. 아주 쉬운,(이건 내 생각일까? 아이는 이 책을 지겨워할까?) 청소년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기독교 사상에 관한 책을 조심스럽게 건네며, 엄마와 함께 읽고 2주 후에 이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고 했다. 물론 아이는 그리 반기지 않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수긍하며 책을 펼치는 모습에 한결 안심이 되었다. 가만히 두면 세상의 기류에 휩쓸려 가기 쉬운 청소년 시기에, 아이와 함께 읽고 생각하고 나누면서 천천히 기독교인의 길을 찾고, 더불어 함께 성장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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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충우돌 크리스천 자녀 양육기
    2021-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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