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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목사의 다음세대이야기] 목사가 되게 한 선생님의 한 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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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고3 때까지 꿈이 없었습니다. 너무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아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름수련회에 가서 하나님께 저의 꿈을 받아 오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난관이 있었습니다. 당시 저희 반 담임 선생님이 교회를 매우 싫어하셨기 때문입니다. 당시 교회 수련회에 간다고 자율학습 빠지는 학생들을 쫓아 매를 들고 다닐 정도였습니다. 그분의 별명은 ‘불타는 감자’였습니다. 그분이 저한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야! 홍융희! 너 작년, 재작년에 다 여름방학 때 교회 수련회 갔다면서? 이번에도 가면 내가 너를 죽이던지 퇴학을 시킬 거야!” 이런 상황이 됐습니다. 저는 꿈이 없고, 제가 붙잡을 길은 오직 예수님밖에 없고, 그 예수님을 붙잡을 길인 수련회에 가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을까요? 저는 두 눈 딱 감고 여름수련회를 갔습니다. 무슨 용기를 가지고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첫날 밤 집회 시간에 정말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에게 비전을 주세요.” 응답이 왔을까요? 안 왔습니다. 둘째 날엔 더욱 간절히 “주님! 꼭 진로를 보여 주세요.” 기도했습니다. 그런데도 응답이 안 왔습니다. 자, 이제 셋째 날 마지막 날 밤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제가 온몸이 달아오르는 겁니다. 이제 내일 학교 가면 맞아 죽을 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목숨 걸고 온 수련회인데 이 밤에 응답이 안 오면 나는 끝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야말로 나무뿌리를 뽑는 심정으로 제 안에 있는 모든 힘을 다해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하나님! 알려주세요. 저에게 꿈을 보여 주세요.” 밤새 데굴데굴 구르며 기도했습니다. 목이 다 쉬어버렸습니다. 그 밤에 응답이 왔을까요? 아쉽게도 안 왔습니다. 결국 저는 응답을 못 받고 산을 내려 왔습니다.
그 다음 날 학교에 가는데, 5분 거리가 50년 같았습니다. “나는 이제 죽었구나!” 학교 교문에서 감자선생님이 불타고 계셨습니다. “감히 네가 내 말을 어기고 수련회를 가?” 주체를 못 하실 정도로 화를 내셨습니다. 하지만 학생이 방학 때 종교활동 다녀왔다고 매질을 할 수도 없고 퇴학은 더욱 안 될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방법을 찾던 선생님은 저를 교무실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분은 국어 선생님이셨는데 교사용 500자 원고지 100매를 던져 주시면서 “여기 앉아서 이거 다 채워서 반성문 써서 내고 가!” 그러시는 겁니다. 엄청난 양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안 죽은 것은 다행인데 이걸 쓰다가 정말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한 동안 멍하니 앉아 있다가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정리나 해보자.’ 하는 생각을 하면서 내가 왜 하나님을 믿는지, 왜 교회에 갔는지, 왜 수련회에 가서 하나님께 왜 내 진로를 하나님께 구했는지, 왜 그분이 나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지를 쭉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처음 주님을 만났을 때부터 시작해서 주님이 내게 해주신 모든 일들, 그 감격, 은혜 받은 것, 모든 것을 다 써내려갔습니다. 마치 옥중서신을 적는 사도바울이라도 된 듯 은혜가 충만해졌습니다. 내용을 쭉 다 쓰다가 마지막에는 ‘그러니까 선생님도 예수 믿으세요!’ 이렇게 마무리가 됐습니다.
원고지 100매를 다 채우고 선생님께 갖다 드리니까 선생님이 깜짝 놀라셨습니다. “이걸 정말 다 썼어? 진짜?” 그러더니 쭉 읽어보시는 겁니다. 그런데 읽다가 이분의 눈빛이 진지하게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저를 옆에 앉게 하고는 찬찬히 원고지 100매를 채운 반성문을 다 읽으셨습니다. 그리고 반성문을 딱 덮으시더니 이분이 충격적인 말을 하셨습니다. 교회를 저주하고, 교회 수련회 간다고 자율학습 빠지는 놈들을 죽인다고 하셨던 그분이 그때 하신 말씀은 정말 뜻밖이었습니다. 그 말은 바로 “융희야, 너 목사 되어라! 내가 반성문을 한두 번 받아 본 게 아닌데 내가 보니까 넌 진짜다. 네 글을 읽어 보니까 설득력이 있다. 그리고 아무래도 네가 믿는 하나님은 진짜 같다. 융희야! 너 목사 되지 않을래?” 였습니다.
그 한마디가 바로 수련회 내내 3일 밤을 새우며 매달렸던 제 인생 진로의 응답이었습니다. 기도원에서는 전혀 들리지 않던 하나님의 음성이 바로 그 순간 예수라곤 전혀 믿지 않는, 도리어 제겐 핍박자였던 불타는 감자 선생님 입을 통해 들려온 것입니다. 그 이후에는 선생님이 저희 부모님을 찾아가서 신학대학교 원서를 쓰도록 설득을 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제가 그해 장신대를 갔습니다. 그리고 졸업 후 장신대 신대원을 갔고, 목사 안수를 받았고, 대학원, 박사과정을 거쳐 담임목회를 하는 여기까지 왔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한 가지 확신이 있습니다. 제가 걸어온 길, 제가 붙잡은 길인 예수님은 진리시라는 것입니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생명이란 말은 그분 놓치면 죽는다는 말입니다. 저는 그분 놓치면 죽는 줄 알고 여기까지 왔는데 정말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분홍목사가 된 지금도 오직 예수님만 전하며 사역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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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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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크리스천자녀양육기] 엄마가 그어주는 사랑의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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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가 올해 7살이다. 아이 4명을 양육하면서 가장 놀라운 점은 ‘잊는다’는 사실이다. 막내를 낳고 모유수유를 시작했을 때, 분명 위의 형제들도 수유를 했는데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았다. 조금 먹다 잠들어서 금방 깨는 것도 생소했고, 먹다가 사래가 들려 콜록콜록 거리는 것도 낯설었다. 형과 누나들이 혼자 샤워를 했을 때도 기특했는데, 막내가 혼자 머리를 감고 나올 때는 마치 아이를 처음 키우는 엄마처럼 놀랍고 대견한 마음이 들었다. 먼저 태어난 형과 누나의 육아 시절을 까맣게 잊으며 막내의 모든 행동이 처음인 것처럼 여겨질 때 느끼는 나의 감정은 “막내가 무조건 예쁘고 귀여운” 사랑스런 마음이다.
어른들이 “막내는 뭘 해도 막내다. 심지어 혼낼 때도 이쁜 게 막내다”고 말할 때 “그럼 마음이 형제 간 차별을 조장하는데… 내가 낳은 아이들은 하나같이 다 이쁘지, 누군 덜 이쁘고 또 누구는 더 이쁜게 있을까” 싶었는데 사랑의 크기는 같을지언정 사랑의 모양과 색깔은 다른게 분명하다.
막내는 막내다. 최근에 7살 된 막내에게 잊지 못할 일이 생겼다. 날이 조금 풀린 날 아이들과함께 자전거를 타러 갔는데, 두발 자전거를 타는 형을 유심히 보더니 “엄마, 나 이제 네발 안 타. 두발 자전거 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두발 자전거를 타고 쌩쌩 달리는 형이 부러웠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막 7살이 된 어린 아이에게 단번에 보조 바퀴를 뗀 자전거를 주는 것은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위험한 일이어서 쉽게 답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고민하는 그 사이, 그 찰나 같은 순간에 막내는 떼를 쓰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몇 차례 더 어르고 달래 보았지만, 두발을 잘 탈 수 있다는 아이의 말에 오히려 설득 당해 그 때부터 맹훈련이 시작되었다. 약 2시간 정도 열심히 넘어지더니 어느 순간 비틀비틀 거리지만 나름대로 중심을 잡고 혼자 두발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자기도 놀랐는지 아이도 엄청 기뻐하고, 스스로 바람을 가르며 행복한 표정으로 자전거를 타는 아이를 보는 나도 정말 감격스러웠다.
첫째, 둘째가 처음으로 두발 자전거를 탔을 때도 지금처럼 기뻐했겠지만, 생각이 전혀 나지 않고 오히려 막내의 두발자전거가 그저 신기하고 놀랍기만 했다. 내가 막내를 조건없이, 무한히 사랑한다는 것을 나머지 아이들이 눈치챘고, 무엇보다 막내가 사랑받는 자신의 위치를 누리기 시작했다. “엄마는 형아, 누나보다 날 더 좋아해”라는 말을 곧잘 하는 막내가 이제 슬슬 그런 나의 마음을 이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막내 특유의 애교와 귀여움을 발사하며 무조건 자기 뜻대로 일이 되도록 만들었다.
형에게 잘못을 했을 때도 오히려 자기가 피해자인 것 마냥 눈물을 훔치면서 혀 짧은 소리로 “엄마, 형아가 자꾸만 나한테 마음대로 해”라며 자기 잘못은 말하지 않고, 밥을 먹을 때도 “나는 아직 애기니까 조금만 먹을거야”라며 불리할 때 쓰는 막내 카드를 마음대로 막 사용한다.
하루 이틀 그런 모습을 지켜보다 더 이상 두면 걷잡을 수 없을 것 같아 경계를 그어주기 시작했다. 운동 경기를 보면 선수들이 마음껏 기량을 펼칠 수 있도록 그라운드가 그어져 있다. 축구는 가로 120m, 세로 80m의 축구장에서만 경기를 해야 하고, 야구는 1루와 3루 사이에서 오고 가는 공들만 득점으로 인정된다.
마찬가지로 탁구도 규격의 탁구대에서만 경기가 치러지고 농구, 달리기 등 모든 경기는 정해진 경계 내에서만 자유롭게 경기할 수 있도록 정해 놓았다. 이제 우리 막내에게도 그런 경계가 필요한 시기가 온 것 같다. 지금까지는 막내라는 이름으로 혹은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경기장을 조금 벗어나도 이해해줬지만 이제는 더 자유롭게 놀 수 있도록 확실한 경계를 지어줘야 할 때가 되었다.
물론, 아이는 지금까지는 없었던 경계가 생겨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힘들어 할 수도 있지만 곧 알게 될 것이다. 엄마가 만든 사랑의 경계가 구속이 아니라 더 행복한 자유를 준다는 것을. 그리고 엄마인 나에게도 사랑의 경계는 아이를 좀 더 객관적으로 양육하고 치우치지 않도록 도와주는 유익한 방법이될 것이다. 이렇게 하루 하루 아이와 나는 함께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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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충우돌 크리스천 자녀 양육기
2022-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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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목사의 다음세대이야기] 빵돌이에게 찾아온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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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고등학교를 다니기 위해서 학교에서 빵돌이를 했습니다. 당시 학교 매점에서 빵을 파는 아이를 빵돌이라고 불렀습니다. 매 수업시간 마치는 종 치기 5분 전에 저는 일어나서 혼자 교실 문을 열고 나옵니다. 그래도 아무도 저를 쳐다보지 않습니다. 빵돌이가 빵 팔러 가는 가보다 하는 겁니다. 저는 애들이 공부하는 복도를 지나 계단으로 내려갑니다. 그래도 아무도 제게 눈길을 주지 않습니다. 저는 그저 빵돌이니까요. 매점으로 가서 문을 열고 빵을 준비합니다. 드디어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치면 학생들이 매점으로 뛰어오기 시작합니다. “야, 나 빵 줘.” “나, 볼펜 줘.” “나, 우유.” 정신없이 팔다가 다시 수업 종이 울리면 학생들은 다시 교실로 달려갔습니다. 저는 매점 문을 닫고 애들이 공부하는 복도를 지나갑니다. 아무도 절 쳐다보지 않습니다. 수업이 시작된 지 5분이 지나 수업이 한창인 교실 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가도 아무도 절 쳐다보지 않습니다. 빵돌이니까. 저는 그렇게 투명인간처럼 아무도 없는 복도를 지나다니며 수업의 앞뒤 10분을 잘라먹고 독학으로 보충하며 학교를 다녔습니다. 친구들이 축구하는 점심시간에 저는 내내 빵을 팔았습니다. 학생들이 농구하는 방과 후 시간, 저는 내내 빵을 세며 재고를 파악했습니다. 왜 빵돌이를 했을까요? 학비를 못 내서 그랬습니다. 집에 학비를 낼 돈이 없으니까 빵돌이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빵돌이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이 저한테 “야, 너 빵돌이 아니야.” 하는 감동을 주시는 겁니다. “예? 하나님 저, 잘 보세요. 저 빵돌이 맞거든요.” “아니야. 너는 내 자녀야.” 그러시는 겁니다. “내가 이렇게 큰데, 너 내가 안 보이냐? 야, 네가 누구인지 뭐가 중요해? 내가 중요하지. 너 내 자녀야.” 그러시는 겁니다. 저는 놀랐지만 그 자리에서 “아멘!” 했습니다. 전에 없던 용기가 생겼습니다. 학교만 오면 늘 눌려 살던 제게 하나님은 담대함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마음을 가지고 그해 전교 학생회 부회장에 출마했습니다. 당시 저희 학교의 학생회장, 부회장 선거는 학생들이 직접 투표하는 직선제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 선거에 나갔을 때 제일 반대한 게 누구였을까요? 바로 저희 친형이었습니다. 한 살 위의 형이 제게 한 말은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빵돌이는 빵 팔아라.” 네 자신을 알라는 말이었습니다. “누가 빵돌이를 찍어 주냐? 너 빵돌이인 걸 전교생이 아는데 누가 너를 찍어 주냐? 빵돌이는 빵 팔아라.”라고 했습니다. 맞는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단순한 빵돌이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 학교에 보내주신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말에 수긍하고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 내가 빵돌이인 줄 전교생이 다 알아. 맞아. 그런데 나는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항상 정직하게 빵을 팔았어. 한 번도 내가 애들한테 짜증 낸 적 없고, 한 번도 속이거나 잔돈 적게 준 적 없고, 바꿔 달라고 한 것을 안 바꿔 준 적도 없어. 나는 정직하고 성실했어. 나는 하나님의 자녀야. 나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부끄러움 없이 당당하게 사는 걸 보여줄 거야. 그래서 나는 이번 선거 꼭 나갈 거야.” 그리고 이어서 말했습니다. “형, 나는 선거 운동이 필요 없다. 애들이 나한테 매시간 와. 내가 가는 게 아니라 그 아이들 와서 나한테 부탁해. 빵 좀 달라고. 우유 좀 달라고. 아이들이 늘 줄을 서, 내 앞에. 나를 만나려고. 나 명찰 달고 있잖아? 전교생이 내 이름을 안다구. 형! 나는 이번 선거 나가면 이길 수밖에 없어! 나 이거 안 나갈 수가 없어.” 그리고 선거에 나갔습니다. 어떻게 됐을까요? 저는 현직 빵돌이 신분으로 그해 학생회 부회장에 당당히 당선되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 해에 저는 학교에서는 전교 학생회 부회장이 되었고 교회에서는 고등부 회장이 됐습니다. 그 당시에 교회에서 고등부 회장은 학교에서는 별 볼일 없었습니다. 또 학교 회장들은 교회 오면 예배드리고 나면 다들 바로 내빼기 일쑤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중요한 게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제가 학교에서는 학생회 부회장 잘하게 도와주시고 교회에서는 고등부 회장 잘 해낼 수 있게 도와주세요. 시간 부족해도 공부할 때 집중력 주시고 교회에서는 잘 봉사할 수 있게 믿음 더해주세요. 하나님, 도와주세요.” 그랬더니 하나님이 그 기도를 응답해주셔서 저는 학교에서는 부회장으로, 교회에서는 회장으로 둘 다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 년 후에 다시 출마한 학생회장 선거에서 당당히 당선되어 학생회 부회장에 이어 전교 학생회장이 되었습니다.
그때의 경험은 저에게 잊을 수 없는 확신을 주었습니다. 아무리 가난해도, 아무리 부족해도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구인지를 바로 아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사람이요,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신한다면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저를 통해 역사하시고 영광 받으신다는 것을 믿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오늘날 다음세대들이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세상을 향해 도전하며 살아가기를 꿈꾸며 아이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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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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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교육나침반] 온 가족이 복음에 감탄하는 시간, 우리집 성경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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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상교회 유치부, 유년부, 초등부 가정이 요즘 수상하다. 한 달에 한번, 각자 방으로 들어가 정적이 흘렀던 거실이 시끌벅적한 대화와 웃음소리가 가득한 놀이터로 바뀐다. T 익스프레스를 탄 것도 아닌데, 스릴 넘치는 “꺅!” 소리와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것도 아닌데, 멈추지 않는 “깔깔깔!” 소리가 집안을 가득 메운다. 과연 무엇이 한 달에 한번, 온 가족을 즐겁게 마주하게 하였을까? 그것은 바로 향기나무 ‘우리집 성경놀이터’이다.
1월(하나님의 형상대로 나를 만드셨어!)에는 찰흙으로 그릇을 만들고, 그 안에 사랑과 생명 스티커를 채워 넣으며 하나님의 형상자가 어떤 의미인지 경험하였다. 가족의 온 몸을 주무르고, 자신과 가족의 몸에 사랑과 생명 스티커를 붙이며 서로를 축복하였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해야 서로 사랑할 수 있으며, 우리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가득해야 서로 살려낼 수 있음을 온 몸으로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온 가족이 놀이하는 동안, “비우자! 비우자! 나를 비우자!”“, “하나님을 담자! 하나님을 담자!”, “사랑이 쏙! 생명이 쏙!” 과 같은 향기로운 멘트가 가득 울려 퍼졌다.
2월(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어!)에는 초콜릿으로 죄의 속성을 경험해보았다. 초콜릿을 맛보고 칠해보면서, 죄와 어떤 점이 닮았을지 생각하며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죄의 반복된 습관이 얼마나 우리의 영혼을 더럽히는지 직접 경험하고,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그 모든 죄가 깨끗해졌음을 놀이를 통하여 깨닫게 되었다. 초콜릿, 크래커, 스프링클을 이용한 요리활동은 예수님 보혈의 능력을 두 눈으로 생생히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왔다. 온 가족이 놀이하는 동안, “예수님의 십자가는 사랑이란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생명이란다.” 과 같은 향기로운 멘트가 가득 울려 퍼졌다.
다음은 두 달 동안 우리집 성경놀이터를 경험한 부모님들의 리얼 후기이다.
* 가정 안에서 이렇게 성경적 놀이를 할 수 있음이 감사합니다.
* 너~무 재밌고 유익하고 좋았습니다. 딸아이와 점토그릇을 만들면서 자신의 마음속에 무엇이 채워져 있는지 이야기를 나누고, 오늘 우리 죄와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초콜릿과 스프링클로 표현해보면서 복음을 쉽고 깊이 있게 다시금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오래 기억이 남을 것 같습니다
* 초콜릿으로 죄를 표현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애들이 너무 좋아했어요.
* 1월 찰흙으로 만드는 활동 너무 애들이 좋아했고, 2월 쿠키와 초코펜 활동으로 죄와 복음에 대해 나누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매달 창의적이고 새롭고 유익한 활동으로 채워주셔서 기대가 됩니다.
* 복음 안에서 가족 간 하나 됨이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 온 몸으로 놀이 하는 것이 좋았고, 부모와 함께 하여 유익하고 추억이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 놀이를 통한 성경적 접근이 무척 의미 있었습니다.
* 자녀와 함께 하며 부모의 신앙도 돌아보고 서로의 공감대도 알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 부모와 자녀들이 함께 할 수 있는 놀이여서 좋았습니다.
* 아이와 함께 활동하며 말씀 안에서 즐거운 시간 가졌습니다.
* 가족과 즐거운 성경놀이 할 수 있는 키트가 있어서 좋습니다.
* 가족과 함께 하는 성경 놀이 정말 즐거워요.
* 아이와 함께 예수님 십자가의 의미를 떠올리며 아주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 안 움직이는 아빠도 함께 참여할 수밖에 없는, 말 그대로 우리집 성경놀이터를 만들어줍니다.
* 아빠와 함께 찰흙으로 작품도 만들어보고 그러다보니 서로 칭찬하는 말을 많이 해주는 시간이었어요. 부모는 자녀에게, 자녀는 부모에게!
* 놀이와 여러 활동으로 아이와 함께 성경을 접하니 새롭고 즐거웠습니다. 6학년이라 혹시나 안하고 싶어 하면 어쩌나했는데 즐겁게 참여해서 좀 놀랐습니다.
* 줌 끝나고도 아이들끼리 스스로 계속 활동하면서 각자 설교자가 되어 보기도 하고, 성경말씀 설명도 하면서 유익하게 보냈습니다.
* 아이들이 정말 즐거워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 아이가 너무 재미있어 했고 저 또한 아이와 함께 즐거운 성경놀이시간이 되었어요. 엄마와 함께라 더 좋았다고 하네요.
* 아이와 온몸으로 활동하며 성경 내용을 나눌 수 있어 좋았습니다.
* 죄의 속성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시간이어서 감사했습니다.
* 함께, 즐겁게 말씀을 나눌 수 있어 행복했어요.
* 이렇게 예수님의 십자가와 죄를 고백할 수 있구나 감탄했어요.
* 성경을 놀이로 풀어서 아이와 하나님을 더 가까이 하기 좋았습니다.
* 아이가 즐거워했습니다. 성경을 더 가까이 느끼는 경험이 된 것 같습니다.
* 놀이키트가 너무 알차고 좋습니다. 놀이 끝나고도 다시 또 해보기도 하고, 기도하며 아이들과 나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3월과 4월에도 향기나무 우리집 성경놀이터가 열린다. 3월의 주제는 “예수님의 부활로 새사람이 되었어!”, 4월의 주제는 “성령님의 능력으로 증인이 되었어!”이다. 2022년 사순절기, 제발 가만히 있지 말자. 온 가족이 복음에 감탄하는 시간을 꼭 마련하여, 평생 하나님이 감탄할만한 가정으로 세워지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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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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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목사의 다음세대이야기] 가난해서 스타가 된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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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서울의 삼광국민학교를 다녔는데 빨간색 체육복이 아주 멋진 학교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체육복이 없었습니다. 집에 돈이 없어서 삼천원짜리 체육복을 사 입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체육이 있는 날이면 삼촌이 입던 츄리닝을 입고 학교에 갔는데 그러다 운동회 날이 되었습니다. 전교생 앞에서 저 혼자만 다른 츄리닝을 입고 서야 하는 시간이 온 것입니다. 그래서 엄마한테 울며불며 체육복 안 사주면 나 학교 안 갈 거라고 떼를 썼습니다. 그래서 엄마가 꾸깃꾸깃 감춰뒀던 비상금을 주셨습니다. 정말 기뻤습니다. 그래서 들고 뛰어나가는 데 문앞에서 아버지에게 그 돈을 빼앗겼습니다. 아버지는 그날도 술을 드셨습니다. 저는 결국 체육복을 못 사고 보라색 츄리닝을 입은채 운동회를 갔습니다.
그날의 제 심정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 창피하고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순간 교회학교에서 듣던 전도사님의 설교말씀이 떠오르면서 제 안에 작은 믿음이 생겨나는 것이었습니다. “야, 너 하나님의 자녀 아니냐? 옷 한 벌 가지고 네가 이렇게 기죽어? 야, 그러면 하나님은 뭐가 되냐? 야, 기 펴! 어깨 펴! 고개 들어!” 이런 마음이 생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고개를 들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자신감을 가지고 어깨를 펴고 섰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날, 생각도 못했던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당시는 핸드폰이 없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운동회 날 점심시간이 되면 엄마, 아빠는 자기 아이를 찾아 가서 만나야 합니다. 그런데 전교생이 다 똑같은 옷을 입고 있는 상황 아닙니까. 아이들이 다 비슷비슷하게 생겨서 구별이 잘 안 됩니다. 여기서부터 문제였습니다. 부모마다 자기 아이를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저만 다른 색 옷을 입고 있었잖습니까. 그래서 엄마들이 자기 자녀에게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야, 점심시간이 되면 보라색 쟤 옆에 가 있어라. 그러면 내가 널 찾아갈게.” 그리고는 점심시간이 되자 친구들이 제 옆으로 몰려오기 시작한 겁니다.
정작 저희 부모님은 이날 장사하시느라 못 오셨습니다. 그런데 제 덕분에 아들을 찾은 엄마들이 저한테 고마워하시며 연신 사진을 찍어주셨습니다. 네 덕분에 우리 아들을 찾았다구요. 제가 일종의 랜드마크, 깃발이 되었던 겁니다. 그러면서 내 친구들이 이렇게 말하기 시작햇습니다. “융희야, 나 그 옷 부럽다. 나도 한번 입어보면 안 되냐?” “야, 우리는 똑같은데 너만 특별해 보여.” 저는 가난해서, 돈이 없어서 체육복을 못 입었는데 그날 저는 학교에서 완전히 스타가 됐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겁니다. 저는 그날 깨달았습니다. “난 특별하구나. 나는 가난하지만, 체육복도 못 사 입지만, 아빠한테 빼앗긴 술값으로 내 체육복은 날아갔지만 나는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나는 특별한 존재구나.” 그리고 저는 완전히 새로워졌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든 저를 쓰실 거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무리 가난하고 형편이 어려워도 기가 죽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건 전적으로 이날의 경험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분홍목사가 된 지금도 만나는 다음세대들에게 이렇게 말해줍니다. “너희들 중에 집에 돈이 없어서 체육복을 사 입지 못하고 츄리닝을 입고 학교에 가본 아이가 있니? 없다면 너희는 목사님보다 훨씬 더 나은 환경에서 살고 있는 거야. 그렇다면 너희가 목사님보다 더 위대한 인생을 살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할 수 있기를 바래. 하나님은 그 시절 그 가난한 아이였던 내게도 다가와주셨단다. 지금 너희들에게도 동일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꼭 붙들기를 바래. 하나님은 너희들의 앞날을 인도해주시고 너희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길 원하신단다. 우리 하나님의 손을 잡고 우리에게 맡겨진 삶의 사명들을 하나씩 감당해 보자. 힘을 내렴. 하나님이 함께하실 거야!” 그렇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다음세대들에게 아름다운 미래를 열어주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사랑하고 보살피고 양육합시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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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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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교육나침반] 코로나시대, 이 땅의 쓰러진 부모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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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는 이집트에서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집트의 노예의 신분으로, 죽음의 위험가운데 태어났다. 하지만 하나님의 놀라운 인도하심으로 이집트 왕궁에서 자라게 되었다. 그는 이집트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들의 언어와 모든 일에 능통하게 되었다. 그는 공주의 양자로서 백성을 다스리고 재판하는 일을 하였다. 그는 그 누구보다 뛰어났으며, 그 누구보다 높은 자리에 있었다. 모든 사람은 그를 우러러봤으며, 그의 자리를 부러워하였다. 하지만, 그는 반짝이는 대리석이 아닌, 거친 모래바닥을 지탱하며 하루 종일 고된 일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면 분노가 치미는 것을 날마다 느껴야했다. 그러던 어느 날 모세는 기어이 인내의 한계선을 넘고야 말았다. 이집트 사람은 지칠 데로 지쳐 더 이상 일어서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쓰디쓴 채찍을 휘둘렀고, 모세는 그 순간을 참지 못하고 그를 죽였다. 그는 바로를 피하여 머나먼 미디안으로 달렸다. 왕자의 자리에서 한순간에 도망자의 자리로 내려온 순간이다.
이제 그는 더 이상 누군가를 지휘하거나 재판하지 않는다. 그가 자랑했던 이집트의 지식은 그가 살아가는 광야에서는 더 이상 쓸모없는 지식이다. 그는 날마다 모래바람 속에서 양들과 씨름하는 목자일 뿐, 한숨과 원망으로 하루하루를 겨우겨우 살아갔다. 모세는 ‘나’를 완전히 잃어버린 자리에 있었다. 나의 존재도, 나의 사명도 완전히 사라져버린 상태였다. 그때 하나님이 그에게 오셨다. 불꽃 가운데 임하신 하나님은 그를 부르셨다.
“모세야! 모세야! 내가 이집트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보고, 그들의 부르짖음과 근심을 알고 내가 그들을 이집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려 한다. 이제 가라!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인도해낼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이 왜 자신에게 이렇게 원대한 말씀을 하시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이렇게 말씀드렸다.
“하나님, 저는 이제 왕자가 아닙니다. 다스리는 자리에 있지 않습니다. 누군가를 이끌어낼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저를 좀 보세요.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저를 보세요. 저는 이제 양을 돌보는 일만으로 충분히 바쁘고 분주합니다. 하나님의 원대한 일을 맡을 만한 사람도 아니고, 그런 일을 맡을 만한 능력도 없어요. 하나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인도해낼 수 있겠습니까?”
모세는 하나님께 ‘존재가치를 잃어버린 나’를 분명히 보여드렸다. ‘사명의 자리를 떠나버린 나’를 정확히 보여드렸다. 존재가치를 잃고, 사명의 자리를 떠나버린 자리에 선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모세의 물음에 하나님이 대답은 전혀 예상 밖이다. 모세의 물음에 대한 성실한 답변이라면, 모세의 존재가치를 회복시키는 말씀이 어울린다. 모세가 잃어버린 사명의 열정을 다시 불태울 수 있는 말씀이 적합하다. 예를 들면, “모세야, 너를 다시 왕자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게 해줄게. 다시 백성을 다스리고 재판할 수 있는 지도자가 되어서 이집트 백성을 멋지게 구출하도록 하여라!”와 같은 말씀일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전혀 예상치 못한 말씀을 하신다.
“모세야,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나님은 자신을 잃어버린 모세에게 참된 자아를 분명히 알려주셨다.
“모세야, 나와 함께하는 네가 바로 참된 너란다!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사랑받지 않아도, 사명을 잃어버려도 나와 함께한다면 너는 너란다!”
코로나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부모들은 아마도 모세와 비슷한 경험을 할지도 모른다. “하나님, 제가 너무 힘듭니다. 제가 이런데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존재가치를 잃고, 사명의 자리를 떠나버린 자리에 선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대부분의 부모들은 이와 같이 체념하며, 어린 자녀를 기르는 힘들고 분주한 육아의 자리에서 존재와 사명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부모들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너라는 사람은, 사람들로부터 너의 존재가치를 인정받거나 중요한 일을 해낼 능력과 힘이 있어야 되는 것이 아니란다. 너라는 사람은, 나와 함께 할 때 비로소 너란다!”
고통의 긴 터널을 지나는 수많은 부모들에게 하나님의 이 놀랍고 강력한 메시지를 꼭 전해주면 좋겠다. 이 땅의 쓰러진 기독 부모들이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자신의 존재와 사명이 아닌 하나님과의 함께함 속에서 진정한 자아를 찾고 회복하며, 그것을 일상의 원동력으로 삼는 부모로 세워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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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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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목사의 다음세대이야기] 최고의 전도사님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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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저희 집은 꽃을 파는 꽃집이었습니다. 장미와 튤립, 아네모네, 프리지아, 백합... 학교 다녀오는 길에 가게 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서면 좁은 길 양쪽으로 형형색색의 꽃들이 온통 가득했습니다. 천장에는 색색의 리본이 다발로 매달려 있고 여기저기 바구니와 스티로폼이 쌓여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꽃집은 기본적인 꽃다발과 꽃바구니 뿐 아니라 결혼식 부케도 잘 만든다고 소문이 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집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아버지가 손수 만드신 신부용 결혼사진에 쓰이는 부케를 선전하는 어린이 부케 모델이 되었습니다. 모델은 튀어야 눈에 띈다며 초등학교 1학년짜리였던 제게 당시 흔치 않던 파마까지 해주셨던 아버지의 센스가 인정을 받았는지 부케는 찾는 이들이 참 많았고 꽃집은 나날이 번창했습니다. 하지만 한참 잘 되던 시기는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군사정권이 들어선 이후 나라에서 꽃집을 사치산업으로 지정해서 금지시키는 정책을 펴는 바람에 운영이 잘 되던 꽃집은 하루 아침에 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로 아버지는 술을 드시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모아놓았던 돈도 모두 떨어지자 아버지는 당시 건설붐이 일던 중동의 리비아라는 나라로 돈을 벌러 가셨고 어머니는 조그마한 옷가게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이사를 다니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이 집에서 정이 좀 들라치면 또 이사를 가고, 그 동네에 익숙해질 때쯤이면 또 이사를 가야 했습니다. 그래서 형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에 또 큰 길을 넘어 옆 동네로 이사를 하는 바람에 한 살 차이인 형과 제가 다른 초등학교를 들어가게 된 것은 지금까지도 큰 아쉬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렇게 가난을 온몸으로 체험하고 살아가던 시절, 저는 집에 텔레비전도 없어서 길거리에 나와 혼자 내리쬐는 햇살을 맞으며 시간을 보내던 날이 많았습니다. 그 날도 지나가는 개미떼를 지켜보며 여름방학의 오후를 보내고 있던 제가 삐에로 선생님의 북소리를 따라서 교회 여름성경학교에 가게 된 것은 어찌보면 기가 막힌 하나님의 섭리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노방전도의 열매로 나가게 된 교회학교는 제게 완전히 새로운 세계였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잘 해야 칭찬을 받지만 교회는 나오기만 해도 착한 어린이였습니다. 성적을 매기는 것도 아니고 집이 얼마나 잘 사는지도 필요치 않았습니다. 부장님은 못난 모습 투성이인 저를 늘상 예쁘다, 예쁘다 하시며 반겨 주셨고, 선생님들은 항상 맛있는 간식을 두둑이 챙겨주셨습니다. 이런 넉넉한 사랑은 저의 마음을 완전히 교회에 빠져들게 했습니다.
그때 제가 처음 나갔던 교회는 서울 후암동에 자리한 통합측 서울서노회 소속의 염천교회였습니다. 당시 염천교회의 아동부를 담당하시던 이춘수 전도사님은 훤칠한 키에 늘 호탕한 웃음으로 우리들을 무장 해제시키던 최고 멋쟁이셨습니다. 이춘수 전도사님은 후에 목사 안수를 받고 평택 동산교회의 담임목사로 사역하시면서 동산교회를 경기지역의 가장 모범적인 교회로 키우셨고 은퇴 후에도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큰 본을 보이시는 존경받는 사역자의 모델이 되셨습니다. 처음 나간 교회에서 그런 훌륭한 전도사님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전도사님은 설교시간마다 우리의 현실을 넘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계획에 대해서 늘 강조하셨습니다. 지금 부족한 내 모습을 보고 실망하지 말고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높여주시고 멋지게 사용하실 그 모습을 그려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나부터 지금의 나를 사랑하고 존중해야 나중에 우리가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 되었을 때 남들도 우리를 귀하게 여겨줄 거라고, 그러니 힘을 내라고, 어깨를 펴라고 하셨습니다. 어린 저희들이 들으면서 다 이해는 못했지만 그래도 참 좋은 말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속으로 ‘기죽지 말자,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생각을 늘 몇 번씩 하며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가려고 노력했습니다.
집에 가면 늘 춥고 배가 고픈 현실이 변함없이 저를 기다렸지만 그래도 교회만 오면 어린 제 어깨를 하나님이 꼭 붙잡아주시는 든든함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이 마치 저를 다니엘처럼, 요셉처럼 멋지게 사용해주실 거라는 영화 같은 미래가 그려졌습니다. 오늘까지 다음세대 사역을 포기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가 있다면 아마도 그때 그 어린 시절, 저의 가난을 이기게 해준 복음, 바로 그 능력과 감격 때문일 것입니다. 저처럼 초라한 아이까지도 품어주셨던 전도사님의 품을 통해 만난 하나님의 사랑을 저도 분홍목사로서 우리의 다음세대에게 언제까지나 힘차게 전하며 살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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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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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세대칼럼] 눈높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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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2월까지, 14살짜리 중학생이던 나는 감정과 의지의 밑바닥을 계속 반복적으로 경험하면서 완전히 무너져버린 상태였다. 끝도 없이 추락하는 성적과,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 중독으로 인해 무너져가는 의지, 그로 인해 점점 커져가는 나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과 좌절감... 나를 인정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은 내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청소년에 불과했던 내게 그런 삶은 스스로에 대한 마지막 희망의 끈도 놓아버리게 만드는 필요충분조건이었다.
하지만 2월 5일 오전, 난생 처음 교회에 발을 내딛고,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서 나의 삶은 완전히 변화되기 시작했다. 하나님을 만나고 새로운 꿈이 생기면서 공부할 이유를 발견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걸작품으로 만들어진 자아상을 성경 속에서 발견하면서 나 자신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독 증세가 내 삶 속에서 서서히 사라지게 되었다. 청소년 시절, 브레이크 없이 바닥으로 치닫던 인생이 역전되어서, 하늘을 향해서 달려가는 삶으로 변화된 것이다.
지금 돌아볼 때, 이는 나를 향한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그 가운데는 나로 하여금 하나님 안에 거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친구가 되어주신 교역자, 교사들이 계셨기에 가능했던 것을 깨닫게 된다. 그분들은 삐뚤어지고 모난 내게 찾아와 내게 친구가 되어주셨다. 그분들은 내가 먼저 찾아가기를 기다리지 않고 늘 내게 먼저 찾아오셨다. 학교 앞에 찾아오셨고 집에 찾아오셨으며 내 인생 자체에 관심을 가지고 다가오셨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인정해주지 않았던 나의 꿈을 인정해주시며 이 꿈의 언젠가는 너의 현실이 될 것이라고 응원해주셨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그 때의 꿈대로 목회자로 살아가고 있다. 나는 그분들을 통해 나 같은 사람도 교회에서는 사랑받는 존재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되었다.
이천 년 전, 성자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인간이 거하는 땅에 내려오셨다. 그리고 인간과 함께 33년을 거하시면서 당신의 사랑과 헌신을 보여주셨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심으로 이루어진 하늘과 땅의 만남, 그것을 성육신(incarnation)이라고 한다.
나는 청소년 사역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원리 중 하나가 바로 성육신의 원리라고 생각한다. 인간을 만나기시 위해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신 예수님처럼, 청소년들의 만나기 위해서는 우리가 청소년들의 수준으로 내려가야 한다. 그들의 언어로서 함께 이야기하고, 그들의 문화로서 함께 호흡하고, 그들의 고민 속에서 공감해주고, 함께 아파해주는 것이 성육신적인 청소년 사역이다. 지금 돌아볼 때 나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셨던 분들의 사역 역시 성육신적인 사역이었으며, 성육신하신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이었음을 이제야 깨닫게 된다. 나는 이 성육신적인 사역을 ‘눈높이 사랑’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우리의 눈높이에 그들의 눈높이를 맞추도록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눈높이에 우리의 눈높이를 맞추어 주는 것이다.
청소년 사역을 하기 위해서는 청소년들과 눈높이를 맞춰줄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의 언어, 생각, 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며, 이해에서 그치지 않고 그 삶 속으로 뛰어드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주일 오전에 교회에서 기다렸다가 일주일에 딱 한번 만나는 사역이 아니라, 주중에 학생들의 삶 속에 찾아가야 한다. 학교의 교문 앞에 찾아가서 점심시간에 잠시 얼굴 보고 하이파이브 한번 하고 간식 하나 쥐어주고 오더라도 우리가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아이들도 안다. 주일날 만나서 “보고싶었다.”는 교역자, 교사의 말이 진심인지 그냥 하는 말인지 안다. 주중에 연락 한번 없고, 만나려는 노력 조차 없었으면서, 주일날 만나서 보고싶었다고 말하는 것은 그들에게 아무런 감동도 줄 수 없다. 학생들은 그런 말보다는 주일까지 기다릴 수 없어서 주중에라도 그들에게 연락하고 찾아가는 마음의 발걸음을 원하고 기다린다.
나는 지난 25년간 청소년 사역을 하면서 평일에는 거의 매일 제자들이 다니고 있는 중고등학교에 점심시간마다 찾아가거나 밤늦게 학원 앞에서 만나왔다. 그곳에서 기도회를 하거나 예배를 드리는 건 아니지만, 잠시 얼굴 보고 싶어서 등 한번 두드려 주고 싶어서 찾아가는 나의 발걸음이 그들에게는 눈에 보이고 가슴으로 느껴지는 복음이 되었음을 돌아보게 된다.
사랑은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다. 주님께서 우리의 눈높이에 당신의 시선을 맞춰주심으로 우리가 그분의 친구가 될 수 있었듯이, 누군가의 사랑과 관심을 필요로 하는 청소년들에게 이제는 우리가 눈높이를 맞춰줘야 할 시기이다. 교역자, 교사로 사역하는 사랑하는 동역자들의 눈높이가 청소년들의 눈높이와 수평을 이루고 함께하는 올 한해가 되길 소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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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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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교육나침반] 2022년 온가족 형통공식 “하나님 + 가정 = 하나님 담는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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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장 26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말씀은 우리의 존재목적을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자로 설계되었다. 하나님의 형상자로 살지 못하면 우리는 망가지는 인생이 된다. 하나님의 형상자로 사는 것은 어떤 삶일까? 하나님의 형상자는 하나님을 드러내는 삶을 사는 사람이다. 어떻게 하나님을 드러낼 수 있을까? 하나님처럼 말하고, 하나님 닮도록 흉내 내면 하나님을 드러낼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하나님을 담아야, 하나님을 드러낼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 담는 그릇으로 만드셨다. 우리는 내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비워내고, 하나님으로 채워야 하는 존재이다. 하나님의 생명을 담고, 하나님의 사랑을 담아야 한다. 하나님의 생명을 담는 부모는 자녀를 살리고, 이웃을 살리는 부모가 된다. 하나님의 사랑을 담는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부모가 된다. 반대로 하나님의 생명을 담지 않는 부모는 죽이는 말과 행동을 서슴없이 하며, 이웃을 아프게 하는 부모가 된다. 하나님의 사랑을 담지 않는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지 못하며, 이웃을 품지 못하는 부모가 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담을 수 있을까? 요한복음 1장 14절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말씀은 우리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담아야 하는지 해답을 가르쳐준다. 하나님을 담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담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문자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안에 가득 담는 순간, 내 안에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이 가득하게 된다. 하나님과 말씀을 담는 하루는 하나님을 담는 하루가 된다. 그 하루는 가족을 살리는 하루, 가족을 사랑으로 품을 수 있는 하루가 된다. 그 하루는 이웃을 살리는 하루, 이웃을 사랑을 품을 수 있는 하루가 된다.
향기나무 우리집 성경놀이터의 1월 주제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나를 만드셨어!”이다. 온 가족이 모여 앉아 찰흙으로 각자의 그릇을 만들어본다. 하나의 덩어리에 무언가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되게 하려면, 엄지손가락으로 찰흙의 도톰한 곳을 힘껏 꾹꾹 눌러서 옴폭하게 만들어야 한다. “비우자! 비우자! 나를 비우자!” 가족들은 이렇게 말하며, 찰흙으로 그릇을 만든다. 속에 가득 찬 것을 꾹꾹 누른 후 이렇게 외친다. “하나님을 담자! 하나님을 담자!” 가족들은 그릇의 옴폭한 곳에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이 기록된 사랑 스티커와 요한일서 5장 12절 말씀이 기록된 생명 스티커를 가득 붙여 담는다. 그리고 가족들은 나와 서로의 신체에 “하나님의 생명이 쏙, 하나님의 사랑이 쏙!”이라고 말하며,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 스티커를 붙여준다. 지치고 힘든 우리 아빠에게도 “하나님의 생명이 쏙, 하나님의 사랑이 쏙!”, 우울한 우리 엄마에게도 “하나님의 생명이 쏙, 하나님의 사랑이 쏙!”, 학업 스트레스로 늘 긴장하는 첫째에게도 “하나님의 생명이 쏙, 하나님의 사랑이 쏙!”이라고 힘차게 외친다.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은 우리를 형통하게 하는 형통버튼이다. 가족들이 서로의 몸에 붙어있는 형통버튼 스티커를 누르며 박장대소하며 웃어본다.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이 가득하면, 이렇게 모든 자극에 “하하하”로 화답할 수 있다. 어떠한 환경에도 “하하하”로 감사할 수 있다. 2022년을 시작하는 지금, 온 가족이 마주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의 형통버튼으로 가득 채워지는 뜻 깊은 시간을 꼭 마련해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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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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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목사의다음세대이야기] 교회에서 자란 아이가 교회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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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저는 초등학교 1학년 때 교회에 처음 나간 이후로 항상 교회에서 살았습니다. 학교가 끝나면 너무도 당연하게 매일같이 교회로 갔습니다. 그리고는 가방을 던져놓고 교회 선배들과 어울려서 놀았습니다. 그때는 찬양하는 것이 가장 즐거웠고 기도회도 놀이나 다름없이 즐거웠습니다. 형들에게 기타 코드를 배우고 누나들에게 어깨너머 배운 피아노를 뚱땅거리면서 놀다가 어떤 때는 혼자 작곡을 해서 노래를 만들어 부르곤 했습니다. 그렇게 하루 종일 놀다가 배가 고프면 교회 식당에서 남은 찬밥을 꺼내서 먹고, 운 좋은 날에는 계란을 득템하여 라면을 끓여먹으면서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렇게 교회에서 하루 하루를 보내면서 자연스럽게 학생회 임원을 하고 문학의 밤이나 수련회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일들을 맡게 되었습습니다. 그러면서 성극 대본도 쓰고 연출과 연기도 하고 교회에서 성경암송대회, 성경퀴즈대회를 하면 당연히 대표로 나가곤 했습니다. 노회에서 중고등부 찬양대회나 중창대회를 한다고 하면 당연히 연습해서 출전했습니다. 그러면서 저의 숨겨진 재능도 발견했습니다. 학교에서 알 수 없었던 재능을 교회활동을 통해 알게 된 것입니다. 저는 성극 대본을 쓰느라 제가 글쓰기에 재능이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남들 앞에 서는 것을 좋아한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그때 찬양을 좋아하던 친구는 지금도 교회에서 찬양인도를 하고 있고, 인간관계가 좋던 친구는 지금도 영업일을 하며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저희 친구들은 각자 그때 발견한 재능으로 다 살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자연스럽게 꿈을 찾은 것입니다.
지금도 저에게 요한복음 15장은 특별한 말씀입니다. 초등학교 때 성경암송 대회에 나가서 외웠던 말씀입니다. 늘 일하시느라 퇴근 후 밤이면 다리가 아프시던 어머니 종아리를 두드려 드리면서 말씀을 외우던 그 시절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러다 교회 행사 있으면 나가서 자연스럽게 현수막 걸고 포스터 붙이고 토요일이면 교회 사무실에 주보 나오면 주보 접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저의 친구들은 우리를 농담삼아 ‘교숙자’라고 불렀습니다. 교회에서 먹고 자는 노숙자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렇게 교숙자들이 다 같이 옹기종기 앉아서 누가 주보 예쁘게 빨리 접나 내기하며 시간을 보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렇게 교회를 집처럼 여기던 제게 매주 수요일 저녁에 돌아오는 수요예배는 당연히 참여해야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제게 그때 담임 목사님의 수요 성경 강해설교가 다 이해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돌아보면 그 딱딱한 교리 설교가 지금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몰랐는데 계속 교안을 받아 적으면서 매주 듣다보니까 말씀하시는 내용이 조금씩 이해가 되고 들으면 들을수록 재미있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궁금해지고 성경을 읽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성경을 학교 갈 때도 가져가서 쉬는 시간마다 꺼내서 읽었습니다. 그래서 제 별명이 ‘성경 읽는 아이’였습니다. 그 당시에 저희 반에 새로 전학 온 친구가 새로 나갈 교회를 찾다가 학교에서 성경 읽는 제 모습을 보고 너희 교회 가고 싶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전도까지 한 일화도 있습니다. 그렇게 저는 학교 공부보다 성경이 더 재미있고 성경이 계속 읽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성경 읽다가 궁금한 점이 생기면 수요일에 교회에 가서 수요예배 시간에 담임목사님 강해 중에 하시는 말씀을 잘 들으면서 말씀 해석의 원리를 배우고 나름대로 적용해보면서 막힌 부분을 풀어가곤 했습니다.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수요예배를 빠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 혼자 매주 개근을 했습니다.
지금도 저는 수요예배 설교를 준비할 때면 본당 뒤편에 혼자 앉아있던 어린 시절의 제 모습을 떠올립니다. 교회를 말씀으로 세워가는 저의 바탕이 되어준 그 시절의 제가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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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