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1-23(금)

오피니언
Home >  오피니언  >  다음세대

실시간 다음세대 기사

  • [좌충우돌크리스천자녀양육기]“엄마가 너희의 정서적 지지 기반이 되어 줄게!”
    “엄마, 오늘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초등학교 4학년 딸이 학교에 갔다 와서는 친구들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조잘조잘 이야기한다. “내 친구가 그 일 때문에 엄마한테 엄청 혼나고 벌도 섰대. 진짜 슬펐을 것 같아. 내 친구 너무 불쌍해. 그 엄마 너무 했어.” “친구한테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런데, 이야기를 들으니 은별이 친구도 이런저런 부분에서는 잘못한 것 같은데, 그 엄마도 딸이 그렇게 행동해서 기분이 나빴을 것 같아.”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나의 의견도 말하려는 순간, 아차 싶었다. 아이는 이미 100% 자신의 말에 공감하지 않은 나를 향해 불신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고 나도 “그냥 잠잠히 듣기만 할걸…”이라는 후회가 밀려올 때는 이미 늦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부분적 공감’ 결혼을 하고 아이를 양육하면서 깨달은 나의 한계 중 하나는 “나는 누군가를 온전히 100%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그 상대가 내가 사랑하는 남편이나, 내가 낳은 아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나의 가족은 내게 ‘온전한 공감’ 받기를 원하며 감정을 쏟아 대화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온전히 공감해주는 척 하지만 실제로는 ‘부분적 공감’만 하며 대화의 종착지로 가면 갈수록 내 이야기만 하는 어리석음을 수없이 많이 저지른다. 특히,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정서적 공감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머리’로 알기에 공감하는 척, 마음을 이해하는 척, 100% 경청하는 척 하지만 내 마음 속에는 ‘내 것을 아이들에게 주입’ 시켜야한다는 속셈이 꿈틀거리고 있다. 사람의 내면을 건강하게 만드는데 필요한 결정적인 요소 중 하나는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받는 ‘정서적 지지’이다. 내 편이 되어주는 단 한 사람,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나의 정서를 100% 공감해 줄 수 있는 단 한 사람, 내 마음이 무너져 내릴 때 언제든 기댈 수 있는 단 한사람만 있어도 사람은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특히 내면이 막 자라기 시작한 아이들에게는 가장 가까운 엄마, 아빠로부터 받는 절대적 공감과 수용이 인생을 건강하게 펼쳐갈 평생의 거름이 된다. 그런데, 난 사실 공감과 수용이 쉽지가 않다.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에게는 말처럼 그들의 정서적 지지 기반이 되어주고 싶은데, 실제 삶 속에서는 나의 정서를 읽고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아이들의 마음을 100% 온전히 수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래서 오늘부터 연습하기로 했다.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어도 아이가 부르면 하던 일을 멈추고 즉각 반응하기. 물론 쉽지 않았다. 거품이 잔뜩 묻은 고무장갑을 쉴 새 없이 빼다 끼다를 반복했으며 두부 한 모를 온전히 다 써는데 20분이 걸리기도 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절충점을 찾아 처음보다는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아이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요구를 먼저 들어주는 일은 시간과 희생이 필요했다. 또한, 아이들 한 명 한 명과 하루 10분 정도 대화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아이들이 많아서 엄마와의 둘만의 대화 시간이 필요한데 지금까지는 실천하지 못했지만 지금부터 한 걸음이라도 내딛어 보는 것이다. 나도 엄마가 처음이라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겪는 중이어서 아이들의 온전한 정서적 지지 기반이 되어 줄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아이들에게 버팀목이 되는 존재,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들 편이라는 정체성을 내가 먼저 인식하고 행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 가치를 마음 속에 담고 노력할 때 아이들에게 나의 진심이 조금이나마 전달되리라 기대한다.
    • 오피니언
    • 다음세대
    • 좌충우돌 크리스천 자녀 양육기
    2025-09-05
  • [다음세대칼럼]연애하면 안 되는 때는?
    옷을 입을 때 속옷을 먼저 입고 겉옷을 나중에 입는다. 연애와 결혼은 타인을 제대로 사랑할 수 있을 때 해야 한다. 마치 속옷을 입었을 때 겉옷을 입는 것과 같다. 연애와 결혼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먼저가 자기를 사랑하고 남을 배려하는 성숙이다. 기본적인 것이 안 되는데 더 어려운 것을 하면 더 불행해진다. 연애와 결혼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혼자서도 성숙하고 행복할 때 연애나 결혼하라는 말이다. 자기도 사랑하지 않고 남을 먼저 생각할 성숙 없이 하는 연애와 결혼은 결국 불행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마치 겉옷을 먼저 입고 속옷을 나중에 입은 황당한 일이 된다. 연애 될 수 있으면 다음 3가지 경우에는 하지 말자. 1. 혼자 있는 것이 힘들 때는 연애와 결혼을 하지 마라.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기 때문이다. 혼자서 외로움을 못 견디다 연애하면 지나치게 상대를 의존하면서 불행해진다. 돕는 연애가 아니라 바라는 연애가 되면서 목마름이 훨씬 심하게 된다. 스트레스 해소되지 않거나 성적 욕구가 절제가 안 된다. 그래서, 상대를 수단으로 여기어 갈등이 증폭된다. 자기만의 필요에 집중하고 상대의 필요는 채워주지를 못한다. 결국 혼자 있을 행복하지 않고 자기관리가 힘든 사람은 연애하면 처음 잠깐은 좋지만 연애가 더 외롭고 힘들어진다. 연애와 결혼은 혼자 잘 지내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혼자서도 완벽하진 않아도 대체로 행복할 때 연애와 결혼을 해야 하나님의 나라로 풍성하고 자유로워진다. 2. 가족과 교회, 선교단체 중에 한 곳이라도 잘 지내지 못하면 연애와 결혼을 하지 마라. 연애와 결혼은 공동체를 이루는 능력이 있어야 잘하게 된다. 소위 연애 세포, 사랑 세포는 공동체에서 길러지기 때문이다. 연애로 연애를 배우지 못한다. 따라서 자기 가정이나 교회, 선교단체에서 잘 적응하지 못하면 연애와 결혼이라는 새로운 공동체가 힘들다. 최소 한 개, 권장은 두 가지나 세 가지 공동체에 잘 소속할 때 연애나 결혼을 하자. 마치 집에서 고기 못 먹는 사람이 외식으로 다른 식당에 가도 고기는 못 먹는 것과 같다. 최소한 자기 가정이 너무 좋아서 잘 살아야 한다. 아니면 자기 가정이 어려움이 있어도 부모와 형제들을 잘 이해하고 살아야 연애와 결혼을 해야 한다. 가정이 어려움이 커서 적응이 힘들다면 교회에서라도 몇 년 이상 잘 적응해야 연애와 결혼을 잘할 준비가 되었다. 물론 가정에서도 잘 지내고 교회에서도, 선교단체에서도 잘 지내면 최고로 좋다. 아울러 자신도 그러한 사람이어야 한다. 자신은 안 되면서 상대는 좋은 사람을 기대하는 것은 망상이다. 실현되지도 않는다. 3. 발전과 성숙이 없는 삶을 살 때는 연애와 결혼을 하지 마라. 자신의 발전과 성숙은 연애나 결혼을 이루어 가는 중요한 힘과 지혜를 준다. 연애와 결혼하기 전에 자신도 물론, 만나는 상대도 발전하고 성숙한 사람인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본인은 물론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에게서 상대의 공동체 생활정도를 잘 확인하고 연애와 결혼을 해야 한다. 느낌이나 필이 꽂혀서, 그냥 호감과 편안함을 주어서, 그냥 그가 나를 많이 좋아해 주어서 연애하거나 결혼하면 안 된다. 느낌과 필은 미숙하거나 상처가 많은 사람일수록 특히 믿을 것이 못 되기 때문이다. 당신은 발전적인 삶을 사는가? 그리고 그것을 위해 무엇을 계획하고 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 나라와 이웃들에게는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은 맞는가? 이렇게 본인도 성숙도를 확인해야 한다. ※ 정리하면, 연애와 결혼 이럴 땐 하지 마라 1. 혼자 있는 것이 힘들 때는 연애와 결혼, 하지 마라. 2. 가족과 교회, 선교단체 세 가지 중에 하나라도 잘 지내지 못할 때는 연애와 결혼, 하지 마라. 3. 발전과 성숙이 없는 삶을 살 때는 연애와 결혼하지 마라. 이러다 보니 제가 마치 연애와 결혼을 막는 것 같다. 아니다. 그 반대이다. 연애와 결혼을 더 사모하고 더 잘하게 하기 위함이다. 부디 연애와 결혼은 너무 중요하니 성급하고 함부로 하지 말자. 혼자서도 풍성하고 행복하게 하나님 나라를 이루며 살자. 연애와 결혼을 하면 행복할 사람이 사정이 있어 혼자 살아야 비로써 행복하다. 그러나 자신이 부족하고 사람을 싫어하고 게으르고 자녀 양육이 그냥 버거워 혼자 살고 싶은 것이라면 혼자 살아도 불행하다. 잠깐의 기간에 혼자 있는 것이 힘들고 외롭다고 너무 급하게 연애와 결혼을 하면 더 외롭고 힘들다.
    • 오피니언
    • 다음세대
    • 다음세대 칼럼
    2025-09-05
  • [분홍목사의다음세대이야기]새 학기를 맞이하는 다음세대들에게
    얘들아, 안녕? 무더웠던 2025년 여름방학이 드디어 끝나고, 벌써 9월이 되었네. 오랜만에 학교 갈 생각 하니 설레기도 하고, 아마 개학이 그다지 반갑지 않은 친구들도 있을 거야. 이 마음은 너희들에겐 아빠뻘인 목사님도 잘 알아. 나도 학창 시절에 여름방학이 끝나면 그렇게 아쉽고, 다시 빡빡한 시간표를 따라야 하는 게 좀 부담스럽기도 했거든. 그래도 지난 여름성경학교와 수련회에서 큰 은혜 받은 너희들에게는 이번 2학기가 정말 중요한 시간이야. 그날 밤 눈물로 찬양하고 기도하면서 결단했던 믿음의 다짐을 실천할 좋은 기회가 생긴 거니까. 얘들아, 우리가 이제 다시 학교생활을 시작하면서 딱 한 가지, 아주 중요한 것을 기억하면 좋겠어. 그건 바로 공부와 친구 관계, 숙제와 시험, 이 모든 학교생활이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선물이라는 거야. 성경 말씀 열왕기상 4장 29-30절에 보면 다윗왕의 아들이었던 솔로몬이라는 왕 이야기가 나와. 솔로몬 하면 뭐가 제일 먼저 떠올라? 그래, 맞아. 지혜의 왕.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많이 주셨는데, 얼마나 많이 주셨냐면 "바닷가의 모래 같이 하시니"라고 했어. 바닷가에 가서 모래를 세어본 사람? 아무도 없지? 그만큼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셀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지혜를 주셨다는 거야. 그리고 그 지혜가 '애굽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났다'고 했어. 당시는 애굽이 전 세계의 수학과 과학을 이끌어가던 때였어. 그러니까 지금으로 치면 MIT나 하버드, 옥스포드 같은 전 세계 최고의 지성인들보다 솔로몬이 훨씬 더 똑똑했다는 뜻이야. 그런데 말이야, 솔로몬은 이 지혜를 어떻게 얻었을까? 자기가 노력을 많이 해서 얻었을까? 과외를 하고 학원을 가서 남몰래 비결을 배웠을까? 아니었어. 솔로몬은 왕이 되자마자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렸어. 그때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하고 물으셨지. 솔로몬은 돈이나 명예, 적을 이길 힘을 구한 게 아니라, 오직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는 지혜"를 구했어.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하고 싶어서 지혜를 구한 거야. 얘들아, 학교생활도 똑같아. 우리는 공부 잘하고 시험 잘 보고, 좋은 성적 받기 위해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잖아. 물론 그것도 중요하지만, 솔로몬처럼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우리가 교횡서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겠다고 기도해보는 건 어떨까? 특히 이 글을 읽고 있는 초등학생 친구들아, 하나님이 주신 넓은 마음으로 반 친구들을 아끼고 사랑해주렴. 혹시 혼자 있는 친구가 보이면 먼저 다가가서 손잡아 주고, 솔로몬의 지혜처럼 바닷가 모래알만큼 많고 넓은 마음으로 친구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거야. 그게 바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학교에서 보여줘야 할 모습이야. 목사님은 너희들의 학교생활을 기대하며 기도할게. 그리고 중고등학생 친구들아, 이제 공부의 압박이 더 심해질 거야. 성적 때문에 스트레스받고, 친구 관계도 복잡해질 수 있지. 그럴 때마다 솔로몬의 지혜를 구해보렴. 내가 왜 이 공부를 해야 하는지,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나님이 기뻐하실지 지혜를 구하는 거야. 공부는 성공의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달란트를 발견하고 개발하는 과정이야. 너희의 노력이 쌓여서 멋진 미래를 만들어줄 거야. 너희의 미래는 분명 멋지고 행복할 거란다. 또한 대학생 친구들, 이제 너희는 캠퍼스의 주인이자, 또 다른 사회생활을 경험하게 될 거야. 아마 수많은 가치관과 유혹이 밀려올 거야. 이 속에서 솔로몬이 구했던 지혜를 너희도 구해야 해. 대학 졸업장을 얻기 위해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이 너희를 그곳에 보내신 이유를 발견해야 해. 동아리, 학과 활동, 아르바이트 모든 것이 하나님이 너희를 통해 일하시길 원하시는 사역의 현장이야. 너희의 지혜로 동기와 선후배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거룩한 영향력을 끼쳐보렴. 아마 너희의 지금의 수고는 미래의 멋진 신앙인이 되는 훌륭한 밑거름이 될 거란다. 이제 새로운 학기가 시작돼. 우리 모두 바닷가의 모래처럼 넓고 깊은 마음, 그리고 지혜를 구하자. 공부와 친구 관계, 모든 학교생활 속에서 하나님이 너희를 통해 일하실 거야. 솔로몬의 지혜가 애굽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났던 것처럼,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멋지게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다음 세대가 되기를 바란다. 새 학기 파이팅!
    • 오피니언
    • 다음세대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 이야기
    2025-09-05
  • [좌충우돌 크리스천 자녀 양육기]몸으로 경험하며 가슴으로 느끼는 교육을 꿈꾸며⋯
    <땀을 뻘뻘 흘리고 산을 오른 후 시원한 물 한 잔 벌컥벌컥 마시기, 해가 질 무렵 모래를 밟으며 시원한 바닷가의 공기 느끼기, 놀이터에서 술래잡기를 하다 엄마를 발견한 후 와락 안기기, 보조바퀴를 뗀 후 신나게 두 발 자전거로 달리기> 요즘 텔레비전에 자주 등장하는 육아 프로그램들을 보면 두 가지를 느낀다. 하나는 ‘내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맞구나!’이고, 또 하나는 ‘사람을 특히 어린 아이를 키우는 것은 돈이 전부가 아닌 다른 것이 필요할텐데…’라는 생각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화려하게 세팅된 키즈카페에서 노는 아이들이 바닷가 모래를 만질 때 느껴지는 오묘한 촉감과 약간의 지저분함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아이가 필요를 느끼기도 전에 부모가 알아서 제공하면 아이는 무엇으로 성취감을 느끼고 경험할 수 있을까? 세상은 물질만 있으며 뭐든지 다 이룰 수 있고,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다고 줄기차게 말하지만, 사실 인간이 인간되는 가장 기본적인, 예를 들어 사랑, 자존감, 배려, 충만과 같은 마음의 자양분들은 물질 만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무엇이 필요하다. 그 다른 요소 중 하나는 대체 불가능한 자신만의 경험이다. 9년 전인 2016년에 1년 동안 제주도에 살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 큰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막내가 100일 정도 될 무렵이었다(막내는 제주도에서 태어났고 외출이 가능한 한 달 후부터 여기저기 함께 다녔다). 그 때 나의 하루 일과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과 함께 밖으로 나가기’였다. 내가 본 제주도는 발을 딛는 모든 곳이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차를 타고 10분 정도만 가면 환상적인 바다가 눈 앞에 펼쳐지고, 또 차를 타고 10분 정도 더 가면 저기 오름직한 동산이 반기고 있었다. 절물자연휴양림같은 곳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매일 매일 다른 매력을 뿜어내기에 언제든 가도 새로웠다. 집 안에서 장난감을 갖고는 한 시간 이상 지속적으로 노는 것을 지겨워하는 아이들이 밖에 풀어 놓으면 한 두시간은 물론이고 한 나절 내도록 놀고 또 노는 것을 보면서 ‘아이들을 키울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밖’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밖에 나갔을 때 마음껏 상상하며 어디든 뛸 수 있는 자연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럴싸한 자연이 아니어도 괜찮다. 아이들이 직접 경험하고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는 따뜻한 햇살과 시원한 바람만 있으면 어디든 최적의 교육 장소이다. 최근에 오랜만에 바닷가를 찾았다. 이른 저녁을 먹고 아직 해가 떠 있는 것을 보며 “오랜만에 아이들과 바닷가에 가서 시원한 바람을 맞자”며 온 가족이 갑자기 바다로 간 것이다. 바닷가에 도착 후 처음에는 그 주변을 산책했다. 새롭게 꾸민 구름다리(?) 같은 것도 건너고, 돌도 몇 개 주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 아이들이 모래 위를 걷고 싶다고 해 양말을 벗고 본격적으로 바다 곁에서 맴도는 순간 아이들의 숨은 의도가 드러났다. “엄마, 바닷물에 발만 살짝 담그면 안될까요?” 아이들을 키우면서 바닷가에 가기로 마음 먹었다는 것은 그 순간 이미 아이들이 바닷물에서 놀고 있으며 결국 옷이 다 젖을 것을 경험적으로 예상해야 한다. ‘그래, 너희들이 여기까지 왔으면서 어찌 그 말이 나오지 않나 싶었다’를 마음 속으로 생각하며 “아직 날이 추우니 10분 정도, 발만 담그자”라며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받아내고 아이들을 물로 보냈다. “오빠, 진짜 시원하지. 우리 안으로 더 들어가자”부터 시작해 “우리 물이 오면 4명이 동시에 뛰는 거 하자”까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장난치고 웃고 떠들며 달이 저 멀리 보이지 않을 깜깜한 밤이 될 때까지 그렇게 놀았다. “엄마, 코로나가 빨리 끝났으면 좋겠어요. 오늘처럼 매일 밖에 나가서 놀게”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이들은 한결같이 밖에서 또 놀고 싶다며 다음을 기약한다. 그리고 그 날 아이들의 일기장에는 “너무 재미있었다” “또 가고 싶다” “바다가 너무 좋다” 등 기분 좋은 단어들로 가득 차있었다. 큰 돈을 들이지 않아도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밖에서 놀기’. 나는 앞으로도 상황이 되는 한 이 교육 방법을 추구하며 몸으로 경험하고 가슴으로 느끼는 아이들로 키우고 싶다.
    • 오피니언
    • 다음세대
    • 좌충우돌 크리스천 자녀 양육기
    2025-08-15
  • [다음세대 칼럼]다음 세대를 세우는 일, 교회의 미래를 세우는 일
    최근 한 작은 교회 목회자는 안타까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중·고등부가 한 명도 없어요. 예배당에 어린이들 웃음소리가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이것은 결코 한 교회의 문제가 아니다. 주일학교 폐쇄, 청년층 이탈, 가정에서의 신앙 전수 약화… 우리 모두가 직면한 현실이다. 그러나 위기 속에서도 길은 있다. 몇 해 전, 서울의 한 교회는 ‘토요 드림스쿨’이라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고 한다. 매주 토요일, 성경 공부와 음악·미술·코딩 같은 재능 수업을 함께 진행했더니, 지역 아이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교회에 나오지 않던 가정까지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몇몇 부모는 아이를 따라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예로, 부산의 한 중형 교회는 ‘세대 통합 예배’를 도입했다. 어른 예배 속에 어린이와 청소년이 함께 찬양하고, 설교 중에 세대별 적용 시간을 두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은 어른들의 신앙을 보고 배우고, 어른들은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법을 다시 배우게 되었다고 한다. 다음세대 교육은 이렇게 ‘함께하는 사명’이다. 성경은 신앙 교육의 1차 책임을 가정에 둔다(신 6:6-9). 그러나 교회는 가정이 감당하지 못하는 부분을 채워주는 ‘공동체적 교육의 장’이 되어야 한다. 방향은 분명하다. 첫째, 성경적 세계관 교육으로 아이들이 세상 속에서도 말씀으로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둘째, 진로와 소명 교육이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와 재능을 발견하게 하고, 삶의 자리에서 사명을 실천하도록 안내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디지털·문화 감수성 교육이다. 미디어와 SNS의 홍수 속에서 분별력을 키우고 그리스도인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교육해야 한다. 이를 위한 실천 방안도 어렵지 않다. 먼저, 하루 10분 가정예배 회복과 아이들과 어른이 함께하는 세대 통합 사역이다. 그리고, 믿음의 선배와 다음세대를 연결하는 멘토링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학교와 지역 기관과 손잡는 지역사회 연계가 필요할 것이다. 다음세대를 잃는 것은 곧 교회의 미래를 잃는 것이다. “한 아이를 세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말처럼, 한 영혼을 세우기 위해 온 교회가 필요하다. 오늘 우리가 심는 믿음의 씨앗이 내일 교회의 숲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 함께 노력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간절히 기도한다.
    • 오피니언
    • 다음세대
    • 다음세대 칼럼
    2025-08-15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 이야기]자극보다 반응이다
    요즘 다음세대들의 삶을 보면 예전보다 많이 충동적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순간적인 감정을 억누르지 못해서 학교폭력에 연루되기도 하고 각종 사건 사고의 가해자, 피해자로 엮이는 사건들이 참 많아졌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의 자녀들을 감정적 존재가 아니라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존재로 키울 수 있을까요? 이것을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 자극과 반응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참 많은 자극들을 받게 되지요. 우리는 보통 자극이라는 말을 들으면, ‘전기 자극’, ‘열 받게 함’, ‘화남’ 그런 것들을 떠올립니다. 그렇지만,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삶은 긍정적, 혹은 부정적인 자극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새로운 하루’라고 하는 자극에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시나요? 기지개를 펴면서 “아이고, 죽겠다!” 하면서 반응하지는 않는지요. 아침에 울리는 알람 소리에 핸드폰을 툭 치면서 “일어나기 싫다, 아 짜증나!” 하면서 일어나지는 않는지요. 이처럼 우리의 삶은 시작부터가 자극과 반응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선물같이 주시는 하루에 대해서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하십니까? 우리의 삶에 찾아오는 많은 자극들에 대한 우리의 매순간의 반응이 우리의 습관을 만들고, 그 습관이 우리의 인격을 만들고, 그 인격이 우리의 운명을 만드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과연 우리에게 찾아오는 여러 가지 말과 행동, 또 압박들에 어떻게 반응하며 살아갈까요? 본성대로 할 수도 있고, 기질대로 할 수도 있고, 성질대로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지혜롭게 조절해야 되겠지요. 자극과 반응에 대한 아주 중요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빅터 프랭클’이라고 하는 유태인이며, 오스트리아의 의사였던 분이 해 준 것인데요. 이분은 오직 유태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갑니다. 그리고 폴란드에 있던 유태인 수용소에서 아주 비인간적인 삶을 살게 되지요. 이러한 삶은 분명 그가 원했던 자극이 아니었어요. 그는 최고 엘리트의 자리에서 하루 아침에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져 버리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그 곳에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데요. 그것은 사람들이 똑같은 자극에도 완전히 다르게 반응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치 수용소에서 주어졌던 건 하루에 빵 하나와 물 한 컵뿐이었어요. 그는 거기서 매일 동일하게 주어지는 빵 하나와 물 한 컵의 자극을 어떻게 사용하며 반응하는가가 그 사람의 하루를 만들고, 또 그 사람의 인격을 만드는 것임을 발견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냥 배가 고프니까 바로 먹고 마셔버리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조금씩 천천히 먹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자기 것을 금방 먹고 남의 것을 빼앗아 먹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 와중에도 자기의 빵과 물을 남겨서 자기 옆에서 죽어가는 다른 사람을 살리고 돕기도 하였다는 것이지요. 비록 빵 하나, 물 한 잔이었지만 그것으로 할 수 있는 인간적인 반응이 이렇게도 아름답고 숭고한 것을 그는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빅터 프랭클은 그때 한 가지를 결정합니다. “나는 이런 처참한 자극에도 비인간성을 선택하지 않겠다. 나는 인간다움을 선택하겠다.” 그래서 그 얼마 안 되는 한 컵의 물을 나눠요. 나눠서 조금은 마시고, 또 조금은 세수도 하고, 조금은 면도도 하였어요. 그러니까 이 사람은 누가 봐도 달라 보이는 거예요. 이 사람은 누가 봐도 이분은 특별해 보이고, 이 사람은 의지할 수 있어 보이고, 자기들이 기댈 수 있는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했다는 거죠. 이 빅터 프랭클이라는 사람이 그 깨달음 가운데 아주 의미 있는 말을 남겼습니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 공간을 만들어라.” 자극이 찾아왔을 때 곧바로 반응하지 말고, 그 자극과 반응 사이에 공간을 만들라는 아주 유며안 말입니다. 이 ‘공간’이라는 것이 뭘 의미할까요? 이것이 우리의 영성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믿음을 가졌다고 하는 것은 우리 삶에 찾아오는 똑같은 자극에 내가 과연 어떻게 남들과 다르게 반응할 것인가,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묵상해 내고 이 묵상을 통해 더 나은 사고의 과정을 통해 더 아름다운 결론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믿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으로서, 그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우리는 그 공간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있을 때 우리의 반응은 이전과는 전혀 새롭게 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자극에 대한 우리의 부정적인 반응을 하나님을 향한 선한 믿음의 반응으로 바꿔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반드시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 인생이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 인생이 아무리 새로워지려고 해도 우리는 우리에게 계속해서 찾아오는 부정적인 자극에 스스로 옳게 반응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찾아오셔서 임재하실 때 비로소 우리 삶에는 자극과 반응 사이에 공간이 만들어져서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이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무한하신 긍휼과 하나님이 주시는 그 변함없는 사랑이 우리의 모든 부정적인 자극에 대해 긍정적이고 은혜로 반응하는 우리의 삶이 되도록 변화시켜 주십니다. 이러한 하나님께 우리와 우리 자녀들의 모든 문제를 아뢰고 하나님의 온전한 인도하심을 구하며 믿음으로 나아갑시다. 자극보다 반응입니다. 현실보다 믿음입니다.
    • 오피니언
    • 다음세대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 이야기
    2025-08-15
  • [다음세대칼럼]청소년들에게 건강한 경계선을 가지게 하자.(1)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유난히 질문한 것 같은 종류의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많다. 유교와 체면문화, 생존경쟁, 감정표현이 부족한 문화 배경이 결국 이런 경계성 인격장애를 더 많이 생기도록 했다. 경계성 인격장애 진단까지는 아니더라도 심리.정서적인 경계선이 건강하지 않은 분들이 주변에는 물론 교회 안에도 너무 많다. 그래서, 건강하지 못한 경계선 일부분이라도 찾아서 수정하고 고쳐야 대인관계가 자유롭다. 특히 혼자서도 행복해진다. 신앙에서도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바른 신앙, 풍성한 신앙이 된다. 미국의 연구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약 2% 정도가 경계선 인격장애를 가지고 있다. 정신과 외래 진료를 받는 사람 중에서는 약 10%, 입원 환자 중에서는 약 20%가 이 장애에 해당이 된다. 인격장애로 진단받은 사람 중에서도 40~60% 정도가 경계선 인격장애를 가지고 있다. 다른 인격장애들보다 훨씬 많다. 전반적으로 여성에게서 이 장애가 훨씬 더 많다. YouGov가 2023년 9월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국인의 89%가 (57% 매우, 32% 다소 중요) 인간관계, 특히 연애 관계에서 경계 설정을 중요하게 여겼다. 한국은 높은 정신 장애 유병률과 청소년의 심각한 정신적 고통 지표가 나타나고 있다. 놀라운 것은 건강한 경계 설정 미비가 이를 더 악화시킨다. 특히 경계성 인격장애로 진단까지는 아니지만 건강하다는 사람에게도 심리 정서적인 경계선이 건강하지 못한 부분이 제법 많다는 점이다. 한국교회가 심리.정서적인 경계선을 건강하게 하는 것을 잘 해결한다면 좀 더 하나님 나라 본질을 이루는 신앙이 될 것을 믿는다. 대인관계도 매우 개선이 된다. 행복과 불행을 다른 사람에게 결정하게 않게 할 수 있어 혼자서도 행복하게 된다. 함께 살아가는 교회 공동체도 활발하게 회복된다. 건강하지 않은 경계선은 공존 질환을 생기게 한다. 경계선에 어려움을 가진 사람들의 핵심 특징은 자기 정체성, 즉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감각이 불안정하다. 이런 관계 패턴은 종종 공동의존(codependency)이나 관계중독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경계선 인격장애를 가진 사람은 다른 문제(공존 질환)들도 함께 겪는다. 집착, 강박, 완전주의, 결백증, 조현병, 충동조절 장애, 분노조절 문제, 우울증, 조울증, 공황장애, 스마트폰중독, 게임중독, 물질 중독(술, 약물 등), 성중독, 화병, 종교중독, 관계중독, 관계중독, 일중독, 극단적 사고와 감정을 표출, 감정 기복이 심함, 한 사람에게 지나치게 의존, 자학적 감정과 행동, 신앙 성장이 멈춤,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함, 건강한 대인관계가 어려움 등으로 다른 병도 많이 걸리게 된다. 경계선이 건강하지 못한 예가 우리 주변에 많다. 신앙생활을 오래 해도 성장이 되지 않거나 감정 기복이 심한 사람은 대부분 건강하지 않은 경계선을 가지고 있다. 대인관계가 힘든 분들도 공동체 생활이 힘든 분들도 대부분 건강하지 않은 경계선을 가지고 있다. 특히 목회자나 중직, 헌신하는 사람이 좀 더 심하게 경계선이 건강하지 않다. 심하면 경계선 인격장애가 된다. 우리 안에도 교회 안에도 너무 많고 흔하게 있다. 그렇게 어둡게 많이 덮고 있는 것에 비해 제일 잘 모르고 잘 대처하지 못하는 것이 건강한 경계선을 가지는 노력이다. 연애에서 경계선이 건강하지 않은 경우는 상대방을 처음엔 이상화하다가 조금만 실망하면 “넌 날 버릴 거야!”라며 관계를 단절한다. 또한 너무 쉽게 나쁜 연인에게 빠져든다. 또 쉽게 헤어지고 금새 다른 연인을 만난다. 연애 중이든 연애 없이든 혼자서는 행복하지 않다. 예수님이 하신 건강한 경계선을 유지하는 방법이 있다. 사람들이 계속 예수님을 따라다녀도 때로는 사람들을 떠나 조용히 기도하러 가셨다(막 1:35). 모든 사람의 요구를 다 들어주지 않으셨다. 요 6장에서 떡을 달라는 무리를 떠나신 것이 그것이다. 마리아와 가족의 요구에도 자신의 사명을 분명히 하셨다(마 12:46-50). 사람의 요구를 기준으로 살지 않고, 사명과 정체성에 따라 삶을 조율하심으로 경계선을 잘 유지하셨다.
    • 오피니언
    • 다음세대
    • 다음세대 칼럼
    2025-07-25
  • [분홍목사의다음세대이야기]여름성경학교, 온 교회의 축제입니다
    해마다 여름이 되면 교회는 ‘여름성경학교’와 ‘여름수련회’로 뜨겁게 달아오릅니다. 교회학교마다 그해의 주제에 맞춰서 환경꾸미기를 하고 주제 현수막을 걸고 교사들은 벌써 공식 티셔츠를 입고 분위기를 띄웁니다. 교회학교의 여름행사가 중요한 이유는 아이들이 교회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 자체가 얼마 되지 않는 현실 속에서 보통은 2박 3일, 짧아도 1박 2일을 교회에서 집중적으로 교역자들과 교사들, 아이들과 만나고 함께 생활하면서 정해진 주제와 말씀에 흠뻑 빠질 수 있는 기회를 얻기 때문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일주일 내내 공부와 진로문제로 시달리는 걸 생각해 볼 때 일주일을 이루는 168시간 중 교회 와서 예배드리고 공과 공부하는 1시간만으로 훌륭한 신앙인이 될 거라는 생각은 168:1이라는 비율을 무시하는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하지만 이 168:1의 싸움이 역전되는 자리가 바로 여름성경학교나 여름수련회 등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 찬양과 교제 속으로 아이들이 순식간에 빨려 들어가는 다음세대 여름행사입니다. 지금의 기성세대 신앙인들도 대부분 어린 시절 교회에서 떠났던 이 여름행사를 통해서 교회생활의 기쁨을 알았고 더운 여름의 물놀이를 하면서 함께함의 즐거움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무더위 속에서 긴 시간 바닥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목이 터져라 찬양하고 기도했던 그 저녁집회의 기억은 우리의 삶을 하나님 앞에 헌신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다음세대의 여름행사는 그 옛날의 기억들보다 효과가 미미한 것이 사실입니다. 아이들이 그만큼 시간을 충분히 내기가 어려워졌고 부모들도 적극적으로 여름행사에 자녀들을 챙겨서 보내지 않습니다. 교회 입장에서는 다음세대 숫자가 점점 줄다보니 여름행사에 대한 예산편성도 점점 줄이고 있고 충분한 의미와 재미를 충족시켜줄 여름행사를 해낼 만한 교역자나 교사들의 숫자도 계속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쉽게 외부 수련회 행사에 회비를 내고 참여하거나 별도의 여름행사를 하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이럴 때에 정말 필요한 것은 다음세대 여름행사를 교사들이나 부모들만의 몫으로 넘기지 않고 온 교회가 함께 나서는 자세를 가지고 현실적인 협력을 이루는 일입니다. 그래서 필자가 섬기는 부산 성민교회는 매년 6월 첫째주일부터 셋째주일까지 장년주일예배 시간에 ‘어른성경학교’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어른성경학교’란 어린이들이 그해 여름성경학교에서 배울 주제와 말씀, 주제찬양과 율동, 성서학습 1,2,3과의 공과 내용을 어른들이 주일예배를 통해서 먼저 만나보고 성경학교를 누리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을 통해 온 교우들이 올해 아동부 여름성경학교의 내용을 먼저 만나보고 관심을 갖고 후원을 할 수 있게 되고 자녀들도 더욱 적극적으로 여름캠프에 참여시키는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올해는 “가스펠탐험대와 함께하는 부흥대작전”이라는 주제로 여름성경학교를 하는데 이에 맞춰서 담임목사가 탐험대장처럼 옷을 입고 탐험대 모자를 쓰고 쌍안경을 들고 지도를 펼치면서 설교단에서 온 교우들을 탐험대원으로 여기고 말씀을 전하며 부흥대작전에 함께 참여하도록 독려했습니다. 이 때 주제찬양 율동은 저희 교회 어린이부 율동팀이 맡아서 강단에 나와 율동지도를 했는데 이를 보면서 찬양과 율동을 따라하는 온 교우들의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가득 넘쳤습니다. 또한 단순히 말씀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 사람들과 만나서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진 사람이 이긴 사람의 얼굴에 칼라 스티커를 붙여주는 게임도 했는데 정말 모두가 어린 아이들처럼 기쁘게 게임에 참여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는데도 얼굴에 14개~15개의 스티커를 붙인 교우들이 1등상품을 받았고 2등과 3등도 12개에서 11개의 스티커를 붙이고 나와 모두의 박수를 받았습니다. 전체 교우들을 분단별로 나눠서 1과, 2과, 3과의 주제를 외치는 활동의 게임도 했는데 정신없이 각 과의 주제를 외치는 가운데 각과의 핵심내용을 자연스럽게 학습하는 효과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7월에는 수요기도회의 컨셉을 ‘다.모.여.기도회’로 바꿉니다. ‘다.모.여.기도회’란 ‘다음세대’ ‘모든’ ‘여름행사를 위한 기도회’의 줄임말입니다. 올 여름 다음세대가 치러내는 여름성경학교와 여름수련회, 단기선교를 위해서 온 교인들이 다같이 모여서 함께 기도하는 이 자리는 2019년에 시작되어 6년째 우리 성민교회의 여름 루틴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첫 주에는 교장인 담임목사가 올 여름 전체 교회가 추구하는 여름행사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는 설교를 하고 기도제목을 주어 온 교인들이 이 기도제목을 읽으면서 기도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주일에는 유치부가 주관하여 유치부 담당목회자가 올해 유치부 여름행사의 주제와 활동을 소개하고 핵심내용을 설교합니다. 이날은 기도회 안내도 유치부 단체티셔츠를 맞춰입은 유치부 교사들이 하고 특송은 유치부 교사들과 아이들이 함께 나와서 합니다. 기도제목도 유치부 여름행사에 맞춰서 합니다. 세 번째 주일에는 어린이부, 네 번째 주일에는 청소년부, 다섯 번째 주일에는 청년부, 여섯 번째 주일에는 단기선교팀이 주관이 되어서 각기 같은 방법으로 기도회를 인도합니다. 이렇게 하면 온 교회가 다음세대 여름행사에 대한 관심을 갖고 기도하게 되어 다음세대 여름행사가 교육부만의 행사가 아니라 온 교회의 축제가 됩니다. 다가오는 올해의 여름성경학교와 수련회는 일부 교사들만, 부모들만 수고하여 소수의 아이들만 누리는 여름행사가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다 함께 참여해서 준비하고 기도하여 함께 치러내고 다같이 은혜받고 기뻐하는 행복한 온 교회의 여름잔치가 되길 기대하며 축복합니다.
    • 오피니언
    • 다음세대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 이야기
    2025-07-25
  • [좌충우돌 크리스천 자녀 양육기]“그래서, 엄마가 도와줄게!”
    세 명의 남자 아이와 한 명의 여자 아이를 키우고 있는 나는 둘째인 여자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육아의 한 파트가 시작되었다. 중3인 첫째 남자 아이는 사춘기라고 할 것도 없이 약간씩 혼란을 겪더라도 곧 제자리로 돌아오면서 어린이에서 청소년으로 통과하고 있는 반면, 초6인 둘째 여자 아이는 ‘혼란+예민+감정의 기복+괴리’ 등 질풍노도의 시간들을 지나고 있다. 첫째가 중학교에 입학하고 급격하게 짜증이 늘어날 때, 이런 말들을 자주 했었다. “은성아, 사춘기는 생각의 변화, 가치관의 정립 등을 하는 시기이지 무작정 엄마한테 짜증내는 시기가 아니야. 물론 호르몬의 변화로 그럴 수 있지만, 무례함이 사춘기의 표현방식은 아니라는 것을 잘 기억해.” 첫째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확실히 인정하지는 않더라도 가만히 앉아 듣는 척이라도 했는데, 최근에 둘째에게 비슷한 이야기를 하니 반응이 완전 다르다. “아, 몰라. 그냥 짜증이 난단 말이야. 몰라.” 감정이 자기 마음대로 안 되는 둘째 마음도 이해가 가지만 무엇보다 자녀의 이런 반응을 처음 겪는 나 또한 당황스럽고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안되겠다 싶어, 아이들이 어렸을 때 한참 읽었던 ‘감정’에 관한 책들을 다시 꺼내들었다. 덧붙여 이제는 감정을 담당하는 뇌에 대해서도 공부해야겠다 싶어 뇌과학에 관련된 책들도 구매해서 읽었다. 여러 책을 훑어보는데, 공감이 되고 설득력이 있는 구절을 발견했다. “청소년기에는 편도체가 활발하게 작동하면서 온갖 부정적 정서와 충동성을 유발하는 데 반해 전전두피질은 아직 미성숙해서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다. 이러한 간극이 가장 크게 벌어지는 것이 중학교 2학년 때쯤이다. 전전두피질은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데 편도체만 날뛰는 이 시기의 아이들은 술을 마시지 않더라도 감정적으로는 만취 상태에 빠진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내면소통]의 일부 / 김주환 지음 우리 아이가 겪고 있는 감정의 변화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단락이었다. 뇌속에 편도체가 강하게 활성화되고 있어 감정은 폭발하는데 깊은 사고, 절제할 수 있는 능력, 판단할 수 있는 분별력은 아직 없기에 본인 스스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시기가 바로 지금이라는 것이다. 평소에 아이를 많이 이해한다고 생각했는데, 한발 떨어져서 타인이 진단하는 나의 아이의 객관적인 모습을 보니 엄마인 내가 무엇을 해야하는지 깨달아졌다. “그래서, 엄마가 도와줄게!” 아이가 어릴 때는 이 말을 많이 했었는데,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부터 뭐든 스스로 한다는 아이를 대견하게 바라볼 뿐, 도와준다는 말을 한 기억이 거의 없다.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이 말을 자주 해주려고 한다. “엄마가 도와줄게!” 아이를 키우면서 나무에 마디가 생기듯 짙은 흔적이 남겨지는 시기가 있는 듯하다. 처음에는 잘 몰랐지만, 요즘에는 조금 알 것 같다. 이 때가 바로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는 순간이라는 것을. 그래서 하나님을 향해서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고, 아이에게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해보려고 한다. “그래서, 엄마가 도와줄게!”라는 이 마음을 계속 품고 말이다.
    • 오피니언
    • 다음세대
    • 좌충우돌 크리스천 자녀 양육기
    2025-07-06
  • [다음세대칼럼] “문제아”가 아니라 “한 영혼”입니다
    필자는 11년 전부터 위기 청소년 사역을 하고 있다. 가출 청소년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학업중단 위기의 학생들을 학교로 돌려보낸다. 무엇보다도 교회를 그만둔 청소년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하고 있다. 며칠 전, 필자의 센터에서 만난 한 아이의 말이 가슴에 깊은 울림으로 남아있다. “센터장님, 교회는 제가 오면 싫어해요. 제가 문제아 같아서요.”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떨구던 그 아이의 눈빛엔 슬픔과 분노, 그리고 아주 작은 기대가 섞여 있었다. 교회는 과연 이들의 마지막 안식처가 되고 있는가? 아니, 처음부터 환영했는가? ‘위기 청소년’이라는 말은 흔히 비행 청소년과 혼용되곤 하지만, 그 의미는 훨씬 더 깊고 넓다. 협의적 개념으로는 폭력, 강도, 절도, 음주, 흡연, 가출, 약물 남용, 성비행 등 반복적으로 비행을 저지르는 청소년을 말한다. 그러나 광의적 개념은 더 본질적인 위기를 포함한다. 즉, 사회가 부여한 가치관과 충돌하거나, 청소년 자신이 삶의 존엄과 정체성이 위협받고 있다고 느끼는 상태에 있는 이들을 말한다. 오늘날, 위기 청소년의 문제는 더욱 복합적이고 가속화되고 있다. 중독(게임, 도박, 약물), 성 문제, 자해와 우울, 가족 해체, 경제적 빈곤, 정서적 방임, 학교 부적응 등 다양한 위기가 얽혀 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내면은 무너져 있는 청소년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이들은 목소리를 내지 않으며, 때로는 조용히 ‘사회적 실종’ 상태로 빠져든다. 최근 사회적으로 뜨거운 감자인 ‘촉법소년’ 제도 역시 위기 청소년을 둘러싼 오해와 분노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만 10세에서 14세 미만의 소년은 형사책임을 지지 않고 보호처분의 대상이 되는데, 사람들은 이를 ‘처벌받지 않는 범죄자’로 인식한다. 그러나 이 제도의 본질은, 아직 미성숙한 아이에게 형벌보다 교화의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문제는, 교화와 회복을 위한 실질적인 사회 시스템이 없다는 데 있다. 부모의 책임은 강화되지 않았고, 가정환경은 여전히 열악하며, 재범 방지를 위한 교육도 찾아보기 어렵다. 결국, 비난은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향하고, 아이들은 점점 더 구석으로 밀려난다. 이쯤에서 다시 물어야 한다. 교회는 지금 위기 청소년 곁에 있는가? 현실은 다소 냉소적이다. 많은 교회는 위기 청소년을 환영보다 ‘관리’하거나 ‘배제’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다. 예배 시간에 늦게 오고, 예배 중에 떠들거나 휴대폰을 하거나, 머리카락을 염색하고 문신을 한 청소년을 보면 우리는 이렇게 속으로 말한다. “다른 아이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어.” 결국, 이들은 조용히 공동체에서 소외되고, ‘문제아’라는 이름표만 남는다. 하지만 예수님은 세리와 창기, 병든 자와 죄인을 먼저 찾아가셨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필요하니라.” (마가복음 2:17) 예수님의 공동체, 곧 교회는 가장 연약한 자가 가장 먼저 안식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교회가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서는 예수님의 발걸음을 회복해야 할 때다. 위기 청소년 사역은 선택이 아닌 사명이다. 교회는 이들을 상담하고, 격려하고, 믿어주며, 무엇보다 지지해주는 어른들이 있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실천 가능한 방법은 생각보다 많다. 교회 공간을 청소년 쉼터로 열자, 전문 상담가, 지역 연계 멘토링 프로그램을 도입하자, 소그룹, 문화체험, 미술·음악 치유 활동을 운영하자, 그리고 모든 성도가 한마음으로 청소년의 지지자가 되는 문화를 만들어가자, 우리는 그들의 상처를 다 알 수 없지만, 그 상처 곁에 함께 있어 줄 수는 있다. 예수님은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떠나셨다. 오늘날 교회가 잃고 있는 그 ‘한 마리 양’은 위기 청소년들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손 내밀지 않는다면, 세상도, 학교도, 가정도 그들을 품어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교회가 먼저 손 내밀 때, 세상은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자라날 것이다.
    • 오피니언
    • 다음세대
    • 다음세대 칼럼
    2025-06-29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