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Home >  오피니언
실시간 오피니언 기사
-
-
[성서연구]비움의 축복
-
-
얼마 전부터 왼쪽 무릎이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30, 40대에 걷기를 많이 했습니다. 쉬는 날에는 등산도 많이 했습니다. 여름휴가 때는 경상도에서 강원도까지 80리터 배낭을 메고 무작정 걷기도 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한두 번 사고를 당하기도 했고, 조난을 겪기도 했습니다. 다리를 많이 사용했습니다.
몇 년 전부터 왼쪽 다리가 조금 시원치 않다고 여겼었는데, 이번에 탈이 났습니다. 디디기 힘들었고, 왼쪽 무릎이 많이 아팠습니다. 병원에서 퇴행성관절염의 시작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성경 말씀을 빌려 표현하면 식탐이 잉태하여 과체중을 낳고, 과체중이 장성하여 무릎 통증을 낳은 것입니다. 해결 방법은 근육 운동과 체중 감량뿐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아는 어느 장로님께서는 의사이신데, 똑같은 경우를 당하셨다면서, 체중 감량 후 아픔이 사라졌다고 하셨습니다. 요즘 특정 주사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고 합니다. 장로님께 여쭈었더니 주사의 효능은 식욕을 감퇴시켜 음식 섭취를 줄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비용도 들지만, 약간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의지로 감량에 도전해 보기로 했습니다. 소식을 했고, 탄수화물 섭취를 줄였습니다. 간식도 먹지 않게 되었습니다. 체중이 조금씩 줄었습니다. 그러던 중 놀랍게도 체중이 어느 지점 아래로 내려가는 순간, 거짓말처럼 통증이 사라졌습니다. 서서히 사라진 게 아니라, 거의 완전하게 사라졌습니다. 이 일을 통해 줄임, 비움의 효능을 체험했습니다. 이 평범한 일이 그동안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결심을 굳게 하자, 가능해졌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상징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어떻게 이루어졌나요? 십자가는 예수님의 비움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빌립보서 2장 7절은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그러나 영광의 보좌를 떠나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오셨고, 보통 사람도 달리지 않는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거기서 죄인을 구원하는 역사가 이루어졌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도 역시 비울 때입니다. 다윗의 생애 중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언제일까요? 골리앗을 이긴 순간일까요?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된 때일까요?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다윗이 늙어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않았을 때, 신하들은 어여쁜 동녀 아비삭을 데려와 왕의 침상에 누워 체온으로 왕이 춥지 않도록 하게 했습니다. 다윗이 아비삭을 취해도 누구도 비난하지 않을 상황이었지만, 다윗은 오히려 아비삭을 멀리했습니다. 저는 다윗의 생애에서 이 장면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과거에 많은 아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욕망을 참지 못해 밧세바를 품에 안았고, 그녀의 남편 우리야 장군까지 죽게 하는 연쇄적 범죄를 행했습니다. 이로 인해 그의 집에 칼이 떠나지 않는 진노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늙은 다윗은 아비삭을 밀어냄으로써 밧세바에게 했던 것과 정반대로 행동했습니다. 과거의 다윗이 움켜쥐는 자였다면, 이때의 다윗은 비우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의 이러한 비움은 말년에 돋보입니다. 압살롬의 반란으로 야반도주하던 그 와중에서도 그렇습니다. 제사장 사독이 언약궤를 메어와서 다윗을 따르고자 했을 때, 그는 사독과 하나님의 궤를 본래 자리로 돌려보냈습니다. 궤가 함께하면 왕권의 정통성을 확보하고, 압살롬의 반란을 제압하는 데 결정적으로 유리할 텐데, 왜 그렇게 했을까요? 이는 다윗의 비움이었습니다. 사무엘하 15장 25~26절입니다. <25 왕이 사독에게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궤를 성읍으로 도로 메어 가라 만일 내가 여호와 앞에서 은혜를 입으면 도로 나를 인도하사 내게 그 궤와 그 계신 데를 보이시리라 26 그러나 그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기뻐하지 아니한다 하시면 종이 여기 있사오니 선히 여기시는 대로 내게 행하시옵소서 하리라>
다윗의 이러한 비움은 우리의 귀감입니다. 목회에서 은퇴할 무렵에 손에 잡은 것을 놓지 못하는 목회자들, 이룬 것을 내려놓지 못하는 많은 이들, 욕망을 억제하지 못하는 우리도 다윗처럼 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아비삭을 밀어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처럼 비워야 합니다. 비우면 비울수록 인생의 절정이 다가올 것입니다.
-
2025-10-24
-
-
[서임중칼럼]절차탁마(切磋琢磨)의 교훈
-
-
서른다섯에 신학을 시작해 3년간 수학한 뒤, 마흔 살에 목사 안수를 받은 그날 아침, 아버지와 나눈 대화는 아직도 내 가슴에서 불꽃처럼 타오른다. “나는 평생 농사를 지으며 모든 이치를 농심(農心)으로 해석하고 살아왔다. 통감(通鑑)의 지혜로 목사로서 이치를 벗어나지 말아라.”
나는 여기서 MIPO(Ministry-Input-Process-Output)목회를 디자인했고, 목회철학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것을 절차탁마 목회(切磋琢磨 牧會)라 정의했다.
포항중앙교회에서 목회가 꽃피우고 향기를 발하며 열매를 맺어갈 때, 조금은 힘이 있을 때 농어촌 산골 개척교회를 섬기고 싶은 마음에 조기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 후 11년 동안 쉼 없이 부흥사경회를 인도했다. 해외까지 자비량 집회를 인도하며, 파주에서 해남까지 수차례 순회하면서 한국교회의 실상을 보고 듣고 경험했다. 그 과정에서 초대교회 믿음의 선배들의 삶이 얼마나 훌륭했는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고, 작금의 목회현장은 목회(牧會)가 아니라 목회(凩會)가 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엎드림의 시간이 깊어지면서 눈물이 난다.
목회자의 삶이란 언제나 그렇듯,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충만하여 나눔과 베풂이 있는 따뜻한 가슴으로 감격하는 목회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목자는 양을 알고,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는 푸름이 드리워진 목장을 가꾸어야 한다. 고통받는 사람들의 위로의 노래가 되는 목회,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내가 있고, 책망받을 때 감사할 수 있는 마음, 미워함이 있을 때 기도하는 마음, 괴롭힘이 있을 때 사랑하는 마음으로 엮어내는 목회, 걸음마다 아름다움의 윤기가 흐르고, 감격할 줄 아는 눈물로 마르지 않는 눈, 세미하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 꺼지지 않는 사랑으로 불타는 가슴, 많은 이들의 아픔을 쓸어안고도 남을 넓은 가슴으로 목회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을 한마디로 함축하면 ‘절차탁마(切磋琢磨)의 통감목회(通鑑牧會)’다. 절차탁마는 자르고 갈고, 쪼고 닦는다는 뜻으로, 인격도 그렇고 인생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목회에 필요한 교훈이라 생각되었다. 여기서 각론으로 통감목회를 세웠다. 통감목회는 역사(歷史)를 거울로 보는 혜안과, 하나님의 섭리를 보는 영안(靈眼), 그리고 작은 자를 예수님처럼 볼 수 있는 심안(心眼)을 열고 목회하는 것이다. 통감목회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예수님의 마음이 보인다.
첫째는 모심(母心)의 목회다. 모심에는 애심(愛心), 성심(誠心), 관심(關心)이 자리 잡고 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0장에서 강도와 삯꾼과 목자의 교훈을 말씀하셨는데, 모심은 목자에게 있지 강도나 삯꾼에게는 없다. 그들은 모심의 흉내는 낼 수 있지만, 성심과 애심과 관심의 기본이 내재하지 않는다. 일의 경중을 가릴 줄 알고, 사물의 앞뒤를 분별하며, 분수와 염치를 알고, 인내와 절제를 통한 사무량심(四無量心)의 마음에서 연출되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을 목회의 바탕에 깔고 있다. 이것이 또한 모심목회(母心牧會)다. 모심목회는 지각 있는 행동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목회의 기경(起耕)이다.
둘째는 농심(農心)의 목회다. 한 해의 농사를 위한 기경(起耕), 씨뿌림, 가꿈, 거둠의 함축된 용어가 농심이다. 농부의 농심으로 목회할 때, 그 목회 현장은 참으로 윤택하고 아름다움이 열매 맺게 된다. 그 아름다움은 거둠의 시간까지 말할 수 없는 땀과 수고가 전제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목회의 씨뿌림이다.
농사는 항상 추수의 기쁨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일 년 내내 논과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심고, 잡초를 제거하고, 농약을 살포하며, 한여름 내내 비지땀 흘리며 일한다. 수확을 앞두고 풍수해로 인해 모든 것을 잃었을 때도 농부는 포기하지 않는다. 쓰나미처럼 휩쓸고 지나간 들판의 돌을 치우고, 다시 논밭을 일구어 다음 해 농사를 준비한다. 오늘의 아픔을 내일의 희망으로 다시 일어서는 것이 농심이다.
셋째는 예심(藝心)의 목회다. 농심이 씨뿌림이라면, 예심은 가꿈이다.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목사의 마음이 예술가의 심정이 되는 것이 예심목회다. 다양한 화선지에 그림과 글씨를 통해 명작품을 만드는 화가의 마음으로, 다양한 돌을 가지고 걸작품을 만들어내는 조각가의 마음으로,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을 거룩한 성도로 빚어가는 목회를 예심목회라 한다. 어찌 걸작품만 나오랴, 때로는 쓸모없는 졸작품이 나오기도 하지만 예심에는 절차탁마가 기본이 된다.
넷째는 시심(施心)의 목회다. 목회의 기본 틀은 나눔과 베풂이다. 그것은 예수님의 구체적 사역이며, 전도와 구제, 봉사로 나타난다. 여기서 이해와 관용, 용서와 사랑이 연출되는 복음의 생활이 가능하다. 시심(施心)은 성령님의 마음이다. 낮아질 수 있어야 하고, 겸손함이 있어야 하며, 사랑함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 시심이다. 시심목회는 마태복음 25장 40절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는 이치를 깨달아야 한다. 지극히 작은 자는 비교법이 아니라 창조법에서 해석되어야 하며, 누가복음 10장의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에서 작은 자의 개념을 주님은 설명해 주셨다. 즉, ‘지금 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다.
나는 은퇴 후 12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전국 교회를 다니며 여전히 절차탁마의 목회를 하고 있다. 작금의 목회현장은 목회(牧會)가 아니라 목회(凩會)가 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아파한다. 은퇴 전에는 한 교회의 담임목회를 했지만, 은퇴 후에는 부흥사경회 강사로 초청받아 모든 교회 강단에 서는 그 시간마다 담임목사의 마음이 된다. 그리고 절차탁마의 이치로 말씀을 대언한다. 그 매 순간이 통감목회 현장이 된다. 그곳에 모심과 농심, 예심과 시심으로 성심을 다하고, 또 다음 마을을 향하여 주님의 나귀가 된다.
-
2025-10-24
-
-
어떻게 그런 실수를...?
-
-
“총회장 투표 406명중 찬성 403명으로 당선”
총회장 정태진 목사가 총회 선관위가 넘겨준 개표결과 쪽지를 읽으면서 총회장과 목사부총회장, 장로부총회장, 사무총장 당선자 명단을 발표하고, 강단에서 선포했다. 순간 총회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은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분명 총회 회원점명 시간에 전원 참석(570명)을 발표 했는데, 실제 투표자가 406명이면 164명 정도가 투표를 하지 않고 사라진 결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이상함을 감지 못한 선관위는 다음선거를 바로 실시했다. 나머지 임원과 법인 이사감사 선거를 마치고, 주변에서 이상하다는 반응을 보인 후에야 투표함 1개가 개표되지 않았음을 확인 한 것.
선거관리위원회 오병욱 목사가 총대들에게 사과했지만, 총대들의 원성은 커져갔다. “어떻게 그런 실수를 할 수 있는지 이해가 안된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작년에도 모 법인 이사의 임기중 정년을 확인하지 못했던 선관위가 이번에도 큰 실수를 저질렀고, 또 선관위원장은 금년 4월 경 총회 임원에 출마한 특정 후보 교회에 가서 설교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선관위 입장에서는 6월 3일 등록 전 일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말할 수 있지만, 누가 출마할지 뻔히 아는 상황에서 누구보다 객관적이고 공정성을 가져야 하는 선관위 위원장이 특정 후보자의 교회에서 설교한 것은 비판 받아 마땅하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모 총대는 “선관위가 해마다 공정한 선거를 위해 (총대들에게)협력해 달라는 말을 하는데, 정작 자신들은 왜 공정한 선거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 않는지 궁금하다. 선관위 자체를 신뢰할 수 없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
2025-09-26
-
-
[교회법특강]요한 칼빈(1509-1564)과 교회법
-
-
종교개혁가 요한 칼빈을 우리가 너무나 잘 안다. 그런데 칼빈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교회를 개혁하고 세울 때 교회법을 작성한 것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칼빈이 제네바로 돌아온 후 제일 먼저 한 작업은 교회법이었다. 1541년에 시작해서 1561년에 완성되었다. 모두 173개 조항이다. 제네바 교회법에는 무엇이 담겨 있을까? 이를 지금 우리와 비교해보자.
우선 목사에 관한 조항은 4-42조로 짧지 않다. 목사 임직을 위한 시험, 임직을 주관하는 부서와 권한, 임직 방식이 나온다. 16-19조는 목사의 서약 내용이 나온다. 20조는 성경을 토론하기 위해 주간의 한 날을 정해서 목사들이 교리적 일치와 순결을 지킬 것을 말한다. 이 규정으로 인해 제네바와 인근 지역 목사들은 매주 금요일 목사회로 모였다. 22조에서 30조까지는 목사의 권징을 다룬다. 목사에게 용납될 수 없는 범죄와 형제 사랑의 권면으로는 불가능한 악을 각각 열거한다. 31-42조는 목사 시찰에 관한 조항이다. 1년에 한 차례 모든 목사를 시찰했다. 시찰 목적은 목사가 복음의 순전함을 해치는 교리를 가르치지 않았는지 등을 살피는 것이다. 43-47조는 교사로 불리는 직분과 직무를 말한다. 교사의 직무는 신자에게 바른 교리를 가르쳐서 복음의 순전함이 무지와 잘못된 견해로 부패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48-51조는 장로에 관해서, 52-55조는 장로의 직무가 교인의 생활을 감독하고 형제 사랑의 방식으로 권면하는 것을 제시한다. 장로는 소의회에서 2명, 60인회에서 6명, 200인회에서 6명을, 선하고 정직하며 책망할 것이 없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영적 분별력을 가진 사람을 선출하라고 한다. 52-55조는 장로 서약을 다룬다. 56-68조는 집사를 다룬다.
69-72조는 세례를, 73-77조는 성찬을 다룬다. 성찬은 일 년에 네 번, 즉 성탄절, 부활절, 오순절(성령강림절), 가을철 9월 첫 주일에 시행하도록 했다. 78-79조는 교회찬송을 다룬다.
80-135조는 결혼에 대한 조항이다. 허락 없이 결혼할 수 없는 사람들에 관해(83-91조), 허락 없이도 결혼할 수 있는 사람들(92-94조), 약혼이 취소될 수 있는 경우(95-96조), 소박하게 이뤄져야 할 결혼의 약속에 대해(97조), 약혼 후 결혼까지 6개월 기간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규정(98-102조), 결혼 광고(103-104조), 결혼식(105-106조), 남편과 아내의 별거(107조), 결혼할 수 없는 친족 관계(108-11조), 결혼할 수 없는 인척 관계(112-119조), 결혼이 취소될 수 있는 경우(120-135조)를 각각 다룬다. 136-138조는 장례를 다룬다. 운구 위원은 미신을 피한다는 서약을 하도록 했다(137조). 139조는 병자 심방을, 140조는 죄수 방문을 다루고 있다.
141-147조는 주일 정오에 교리문답 교육을 위해 부모가 아이들을 보내야 할 규정이다. 충분히 교육을 받은 후 교리문답의 요지를 엄숙하게 낭송하여 교회 앞에서 자기 신앙고백을 하도록 하는 것, 이 문답이 있기 전에는 성찬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 이를 어길 시에는 합당한 징계가 있을 것을 말하고 있다. 148-153조는 교회의 바른 질서를 지키기 위해서 위정자들이 지켜야 할 규칙을 말한다. 154-159조는 권징을 자세하게 말한다. 은밀한 죄는 은밀하게 훈계해야 한다는 내용이 눈에 띈다. 특히 성찬 받는 것을 멸시하는 자들에 대한 권징을 160-166조에서 볼 수 있다. 출교에 관한 권징은 167-172조에 나온다.
173조는 마지막 조항으로 법령 준수에 대한 것으로, 3년마다 6월 첫 주일에 생피에르 교회당에 모여 모든 사람 앞에서 공개적으로 읽도록 했다.
-
2025-09-26
-
-
[임창호 목사]북한 동족 구원과 북한인권 운동은 함께 가야 한다
-
-
북한 정권은 1970년대에 들어 기독교를 체제의 적으로 규정하고, “더 이상 기독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식의 선전을 서슴지 않았다. 국제 기독교박해조사기구(ICC)의 보고에 따르면 현재도 정치범수용소에는 5만에서 7만 명에 이르는 성도들이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수감되어 있다. 태영호 전 외교관의 증언, 탈북자들의 간증, 그리고 북한 당국의 내부 교육 영상까지 종합하면, 오늘도 북한 지하교회 성도들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순교의 각오로 살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북한 스스로가 지하교회의 존재를 부인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친다. 사도 바울은 동족의 구원을 위해서라면 자신이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는 아픔도 감수하겠다고 고백했다(롬 9:1-3). 모세 또한 자기 백성의 구원을 위해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지라도 감수하겠다고 했다(출 32:32). 바울과 모세, 구약과 신약을 대표하는 두 믿음의 거장이 보여준 심정은 곧 우리의 자세가 되어야 한다. 오늘 우리에게도 그와 같은 절절한 기도의 대상이 있다. 바로 2천3백만 북한 동족이다.
한국교회는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 대동강변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에서 시작된 한국 복음의 불길은 평양 장대현교회의 대부흥으로 타올랐고, 평양 산정현교회 주기철 목사의 순교를 통해 신앙의 순결과 애국의 모범이 세워졌다. 그러나 김일성 정권의 교회 탄압으로 수많은 성도와 목회자가 남하하면서, 그들의 눈물과 믿음이 남한 교회의 부흥의 씨앗이 되었다. 남한교회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은 북한 성도들의 피와 눈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북한 동족 구원과 북한 인권 개선은 다르지 않다. 교회는 지난 수십 년간 북한을 위해 기도해 왔고, 탈북자를 구출하고 돕는 일에도 앞장서 왔다. 정치가들은 북한인권을 정쟁의 도구로 삼기도 했지만, 교회는 순수하게 동족애로써, 신앙의 책무로써 북한인권을 붙들어야 한다.
오는 10월 22일부터 24일까지, 서울광장과 플라자호텔에서 “2025 서울 북한인권세계대회”가 열린다. 9개국 76개 북한인권 단체와 미국 인권재단(RHF)이 함께 주최하며, 전 세계 30개국의 탈북자 대표들이 서울에 모인다. 정부 지원 없이 오직 성도들의 기도와 헌금으로 준비되는 이번 대회는 북한 동족 구원과 자유를 향한 간절한 외침이 될 것이다. 북한 지하성도들의 필사성경 원본, 지하성도들의 신앙일지 원본, 6명의 북한억류 선교사 특별 부스전시, 남북한 예술가들의 함께하는 음악회, 국제적 저명한 북한인권전문가들의 초청되었다. 토털 컨벤션으로 펼쳐지는 한국 최초의 민간단체 주관 북한인권세계대회이다.
한국교회는 이 대회를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바울과 모세의 심정으로 기도하고, 참여하고, 도와야 한다. 북한 동족이 자유와 복음을 누릴 그날은 우리의 기도와 순종을 통해 더 앞당겨질 것이다.
-
2025-09-26
-
-
[목회자칼럼]담을 쌓으면 손해다
-
-
나는 촌에서 태어나고 촌에서 자랐다. 어릴 적에 뒷집과 앞집은 그냥 우리 집과 마찬가지였다. 앞집에서 부침개를 하면 고소한 냄새와 함께 따뜻한 부침개가 우리 집의 담을 넘어 온다. 뒷집에 손님들이 오면 시끌벅적한 소리와 함께 아주 맛있는 인절미가 우리 집의 담을 넘어 온다. 그래서 우리 집 앞뒤에 사는 분들의 모든 것들을 거의 다 알 수 있었다. 그 집 식구들과 그들이 그 날 저녁에 먹은 음식까지도 웬만하면 다 알았다. 심지어는 부부가 싸우는 소리까지 다 들리니 싸움의 이유도 알았고, 깨어진 그릇의 개수나 종류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이유는 서로의 경계를 확인하는 담이 낮았기 때문이다. 키 작은 내가 발의 뒤축을 들지 않아도 충분히 넘나다볼 수 있을 만큼 담이 낮았다. 학업의 문제로 내 고향의 담장 낮은 집을 떠나기 전까지 우리 집의 앞뒷집은 공간적, 시각적, 후각적, 감정적, 관계적으로 그냥 우리 집이었다.
그런데 학업을 따라 시작 된 도회지의 삶은 그렇지를 않았다. 내가 사는 집의 앞집에는 누가 사는지, 뒷집의 사람들은 무엇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담이 높은 것이 아니라 아예 담이 없었다. 모든 것이 다 벽으로 둘러 싸여 있었다. 그냥 벽이었다. 어느 곳 하나 소통 할 수 있는 틈이 없었다. 아주 작은, 그러나 언제나 굳게 닫힌 철문만이 우리 집 앞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우리 앞집이나 뒷집에서 볼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집에도 아주 싸늘하고 감각 무딘 철문이 존재할 뿐이었다. 직장을 따라 그 집을 떠날 때까지 내 집은 내 집, 앞집은 앞집, 뒷집은 그냥 뒷집이었다. 아직도 나는 모른다. 그 집들의 식구와 그들이 즐겨 먹은 음식을. 높은 담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높은 담보다 더 높은 벽이 사방팔방으로 철옹성을 이루고 있었기에. 아마 그들도 자기들의 옆집에 있었던 나를 인식하지도 기억하지도 않을 것이다.
세월이 지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일들을 감당하면서 느끼게 되는 감정의 흐름은 아픔과 슬픔과 외로움이다. 세상살이에 지혜(영악)로울수록 마음의 담은 높아진다. 나이가 들수록 관계의 담은 단절의 벽이 된다. 세월이 흐를수록 스스로 만든 감옥의 철옹성 안에서 늙은 사자처럼 자신의 그림자와 함께 배회한다. 그로인해 점점 주변에 사람이 없고, 우정이 없고, 의리가 없고, 삶의 향기가 없어진다. 존재하는 낮은 담도 허물어야 우리가 있는데, 오히려 낮은 담을 높이고, 높은 담을 벽으로 만드니까 모두가 다 외롭다. 그렇게 하고서는 또 서로가 서로를 향해 “사람이니까 외롭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고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자위한다.
원래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는 담이 없었다. 에덴에서 대화하고 동행했다. 서로를 완벽하게 알았고 허물없이 교제했다. 그런데 미혹과 교만이 들어오는 순간 인간이 스스로 나무 아래에 숨어 잎사귀로 자신의 몸을 가리는 낮은 담을 만들었다.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대화할 때 그들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이에 제법 높은 담을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과 소통하지 아니하였고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하고 피하였다. 그 결과 돌이킬 수 없는 벽을 만들었고, 그것은 결국 인간에게 고통의 원인이 되었다. 시간이 흐른 후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담을 허시고 굳은 벽을 파하셨다. 예수님께서 파담자, 파벽자가 되셨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놀라운 구원의 은총이다.
파벽자 되시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놀라운 은혜를 받은 우리들이 교회와 세상 속에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수많은 담과 벽을 만들어서 자신과 많은 사람들에게 손해를 끼치고 있다. 예수님은 담을 허셨는데 우리는 담을 쌓고 있는 것이다. 담을 쌓으면 안 된다. 그것은 모두에게 손해다. 시대는 예수님처럼 막힌 담을 허무는 자를 요청하고 있다.
-
2025-09-26
-
-
[이상규교수의 역사탐색]6.25 전쟁의 기적: 기적으로 살아남은 대한민국(6)
-
-
6.25전쟁은 무엇을 남겻는가? 앞에서 전쟁은 세계사적으로 팽창하던 공산주의 세례을 물리쳤다고 지적했는데, 둘째는 6.25전쟁은 공산주의와 공산당, 그리고 북한의 정치체제가 어떤 이념과 제도인가를 적실하게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비록 전 국토가 황폐화되고 수백만 명이 고통을 겪었지만 일인 일당 독제의 공산당이 얼마나 무서운 반인륜적 집단인가를 깨닫게 한 것이다. 6.25 전쟁을 통해 공산주의의 실상과 실체, 그리고 공산정권의 참혹한 살육의 역사를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후 2017년까지 100년간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자가 1억 명에 달한다고 한다. 공산주의이념, 공산주의 이데올로기 때문에 1억명의 사람이 죽음을 당한 것은 공산주의가 얼마나 반 인간적인 집단인가를 보여준다.
공산주의는 인간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 유물론자들이니 인간은 한갓 물질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고 있으니 인권, 인간의 가치, 생명의 소중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니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살상을 합리화 한다. 주변에 사람이 죽어도 게이치 않는다. 전쟁을 통해 우리는 공산주의의 실체와 실상을 알게 된 것이다.
셋째, 6.25전쟁은 우리나라의 국제화의 계기기 되었다. 1945년 독립하고 1948년 건국한 대한민국은 아시아의 가난한 저개발 국가이자 무명의 나라였다. 그러나 전쟁을 통해 유엔의 지지를 받는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었다. 유엔 협약을 통해 직접적으로 군사를 파병한 나라는 16개국 이었고(참전군 인원 순으로 보면, 미국 영국 캐나다 터키 호주 필리핀 태국 네델란드 콜롬비아 그리스 뉴질랜드 프랑스 에치오피아 벨기에 암아프리카 룰셈부르크), 물자지원국은 38개국에 달했다. 버바 캄보디아 코스타리카 쿠바 에콰도르 헝가리 아이슬란드 이스라엘 자메이카 라이베리아 멕시코 파키스탄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오스트리아 온두라스 인도네시아 이란 레바논 대만 사우디아라비아 베트남 칠레 도미니카공화국 이집트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파나마 스위스 시리아 아이티 모나코 파라과이 페루 우루과이 일본 리히텐슈타인 바티칸시국 등이다. 그리고 의료지원국은 인도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이탈리아) 등 5개국에 달했다. 이렇게 볼 때 60개국이 한국을 도왔음을 알 수 있다. 전체국가의 72%에 달한다. 이를 계기로 한국은 이들나라와 교류하게 되었고 아시아의 소국 한국이 드러나게 되었다. 결국 전쟁은 한국의 국제화에 기여하게 된 것이다.
넷째, 미국 주도의 자유민주주의 진영에 합류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전쟁을 통해 반공주의가 심화되었고, 미국 중심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확고히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전쟁기 미국은 가장 먼저 가장 많은 연인원 1,789,000명의 군인을 파견하였고, 이중 3만6천 명이 전사했다. 알지 못하는 나라를 위해 미국의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은 것이다. 또 휴전에 앞서 한국과 미국 간의 한미상호방위조약(Mutual Defense Treaty between the Republic of Korea and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체결이 논의되어 1953년 10월 1일 체결되고 1954년 11월 18일 조약 제34호로 조약이 발표됨에 따라 한국은 미국 중심의 자유민주주의 진영에 합류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한미관계는 동맹 수준으로 격상되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굳건히 다지게 된다.
다섯째, 6.25 전쟁은 국방력의 강화를 가져와 결과적으로 한국의 사회발전과 산업화의 기초가 되었다. 6.25 전쟁은 동족상잔의 민족적 비극이었지만 전화의 아픔을 극복하고 폐허가 된 이 나라를 다시 세우려는 자강의지가 1960년대 이후 국가 재건의 기초가 되었다. 특히 한미동맹의 결과로 국사력이 강화되었고 이를 기초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룰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6.25 전쟁은 한국사회 발전의 동기를 부여했다고 할 수 있다.
우리 대한민국은 전란의 폐허 속에서도 기적으로 살아남은 나라이고 뒤돌아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다. 과거에 우리나라를 지원해주고 후원해준 나라에 감사하고 이제 우리나라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피흘려 지킨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켜가고 한미동맹의 굳건한 토대 위에서 더욱 자유, 민주, 정의, 평화, 복지가 이루어지는 건실한 나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우리의 의무를 다하고 기도해야 할 것이다.
-
2025-09-26
-
-
[교회건축칼럼]교회대수선 및 리모델링에 대한 건축법
-
-
최근에 건설경기 부진에의해 신축보다는 기존시설을 성능개선하여 교회공간을 재배치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성능개선에는 두가지 법적 사항이 다르게 적용된다 이 차이와 내용을 알면 대수선을 할지, 아니면 공간의 재배치를 할것인지가 결정된다. 대수선행위는 사전에 건축허가를 득해야된다 대수선 행위는 단순히 공간을 재배치하는 것을 초함해서 건축물의 주요 구조부재를 해체하거나 변경하는 행위이다
그 내용은 주계단을 해체하거나 변경하는 행위이며 구조벽체를 해체하거나 변경하는 행위, 기둥의 이동이나 해체등이 대수선 행위이다. 또 기존의 층수를 더하거나 감하는 행위, 주요보를 이동하거나 변경하는 행위도 대수선에 포함된다. 대수선에 포함이되면 건축허가를 득하고 공사를 해야한다.
리모델링(공간재배치)은 노후화된 내부의 성능개선을 위해 마감과 비내력벽체등을 변경하거나 재배치하는 행위이며 이경우에는 인허가 행위 없이 신고사항이다 대수선 행위도 리모델링 범위에 들어가지만 건물의 주요구조체를 변경하는 차이이다. 대수선행위는 건축의 동선이나 내부공간을 전반적으로 고치는 행위이며 리모델링은 주요 구조부위는 그대로 존치하는 것이 차이점이다.
대수선 행위시 주요 건축법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건축물의 구조안전에 대한 기준이 강화되었다. 내진기준이 과거와 달리 강화되었고 기둥과 기둥사이거리가 20m 이상일 경우 건축구조심의를 득해야한다. 또 건축물외벽에서 3미터 이상 돌출되어진 구조물도 구조심의 대상이 된다. 내력벽, 기둥, 피난계단. 지불틀변경등의 행위는 심의 대상은 아니고 허가 대상이다.
둘째, 소방법이 강화되었다. 화재시에 스프링쿨러가 과거보다 많이 설치하게 되어있다. 또 천정내부가 1.5미터 이상이면 상하향식 스프링쿨러를 설치해야한다. 이것을 만족시키려면 천정공사는 전체다 이루어 져야하며 소방용수의 증대로 저수로가 커져야한다. 이런 요인은 대수선 공사비가 증대되는 요인이 되고있다.
셋째, 피난기준이 강화되어있다. 교회내부에 화재와 같은 위급한 상황이 발생될경우 일시에 많은 인원이 대피하려면 계단의 설치기준이 이에 대응하게 설치되어야한다. 최근 개정된 피난법은 주계단과 피난계단을 건물 대각선 길이의 1/3 이상 띄어서 설치하게 되어있다. 계단의 설치기준은 바닥면적이 60평이상일 경우 주계단과 피난계단을 설치해야한다. 그리고 계단과 계단사이를 이격하여 배치해야 되며 반드시 계단과 계단은 복도로 연결해야한다. 이 사항은 공간의 동선과 연계되는 내용으로 대수선 공사시 중요한 체크 사항이다.
넷째, 단열재의 설치기준과 에너지 절약설계 내용도 현행법기준에 맞게 설치해야한다. 과거 건축된 건축물은 지금에 비해 단열재가 효율이 많이 낮게 되어있어 외벽의 단열재 재배치 공사가 이루어져야한다. 에너지 절약설계의 경우 일정규모이상의 면적 대수선 행위시에는 대상이되며 별도의 전문 업체가 설계해야한다.
대수선, 리모델링에 대한 구분이 명확하기 때문에 그것에 따른 인허가나 설계의 내용이 다르다. 따라서 그범위부터 선정해야하며 대수선은 안전에 대한 사항이 수반되어지므로 진행전에 기준 건축물에 대한 구조안전진단을 선행해야한다. 구조기술사가 기둥이나 보등에 대한 안전진한후 대수선의 구체적볌위가 결정되어진다. 사전에 이런 내용들을 미리 전문가의 조언과 컨설팅을 받고 시행해야 리스크와 시간을 절감할 수 있다. 단순히 인테리어의 개념뿐아니라 건축법과 인허가 안전진단등이 결부되어지므로 폭넓은 분석이 전제 되어져야 한다.
-
2025-09-26
-
-
[다음세대칼럼]씨앗이 자라듯, 다음세대 속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
-
-
오늘날 한국 교회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는 다음 세대의 신앙 계승이다. 교회의 미래는 자라나는 세대 안에서 어떻게 신앙의 씨앗이 뿌려지고, 또 어떤 열매로 맺히는가에 달려 있다. 성경 속에서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두 가지 비유, 곧 네 가지 밭의 비유와 씨가 자라는 비유는 다음 세대 사역의 본질을 다시금 돌아보게 만든다.
말씀 전파가 하나님 나라의 핵심
첫 번째 공통점은 하나님 나라의 핵심이 말씀 전파라는 점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막 4:26)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사람”은 복음을 전하는 성도들을, “씨”는 하나님의 말씀을, “땅”은 세상을 가리킨다. 오늘의 다음세대 역시 수많은 정보와 가치관 속에서 흔들리고 있다. 스마트폰과 미디어 문화에 익숙한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심겨지는 경험이다. 교회와 가정이 말씀의 씨앗을 뿌리는 역할을 포기하지 않을 때, 그 씨앗은 반드시 생명력으로 싹트게 될 것이다.
시간 속에서 자라나는 신앙
두 번째 공통점은 하나님 나라가 시간을 두고 완성된다는 사실이다. 성경은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자라되”(막 4:27)라고 말한다. 신앙은 단번에 성숙하지 않다. 아브라함이 25년 만에 약속의 아들을 얻은 것처럼, 모세가 80세에 비로소 사명을 감당한 것처럼, 신앙은 기다림과 인내의 시간 속에서 자라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늘 “빨리빨리” 문화 속에 조급하다. 교회 안에서도 청소년들이 곧바로 믿음의 거목이 되기를 바라며 서두르곤 한다. 하지만 씨앗이 자라듯, 신앙도 시간이 필요하다. 부모와 교회는 조급함을 내려놓고, 청소년들이 실패하고 넘어지는 과정조차 하나님의 시간 안에 있음을 믿고 기다려야 한다.
하나님의 신비한 역사와 열매
세 번째 공통점은 신앙의 열매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역사라는 점이다. 농부는 씨를 뿌리지만, 씨가 자라는 과정은 이해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께 달려 있다.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막 4:28)라는 말씀은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임을 강조한다.
다음세대를 향한 사역도 마찬가지이다. 부모의 열심, 교사의 수고, 교회의 프로그램이 필요하지만, 그 자체가 열매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말씀의 씨앗을 충실히 뿌리고, 성령께서 자라나게 하심을 믿으며 맡기는 것이다. 그러할 때 하나님께서 친히 열매를 거두신다.
다음세대를 향한 교회의 과제
이 비유는 우리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준다. 다음세대를 위한 사역의 본질은 화려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말씀을 뿌리는 일이다. 또한, 그 말씀이 뿌리내리고 자라도록 인내하며 기다리는 공동체의 사랑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심을 믿고, 교회는 충실히 말씀을 전하는 농부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오늘 교회는 위기를 말한다. 주일학교가 사라지고,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간다고 걱정한다. 그러나 역사의 어느 시대든, 하나님 나라의 성장은 사람의 열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비한 역사였다. 지금 필요한 것은 위기를 기회로 삼아 다시금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가정과 교회가 힘을 합쳐 다음세대의 마음 밭에 말씀을 심을 때, 하나님께서 그 씨앗을 자라게 하시고, 풍성한 열매로 거두실 것이다.
씨앗은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그 안에 생명이 있다. 마찬가지로 오늘 뿌려진 작은 말씀의 씨앗이 우리 다음세대의 가슴 속에서 싹트고 자라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게 될 것이다. 교회와 부모, 교사와 성도 모두가 말씀을 뿌리는 농부의 마음으로 다음세대를 품을 때, 한국 교회의 미래는 희망으로 채워질 것이다.
“씨가 자라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신비한 역사다.” 이 고백이 다음세대 사역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
2025-09-26
-
-
[분홍목사의다음세대이야기]다음세대 교육의 핵심, 5C를 아십니까?
-
-
많은 교회가 다음세대로 신앙전승이 잘 이루어질지에 대해 위기를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해 보기 위해서 관심을 가지고 대안 마련을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필자가 섬기는 성민교회로도 많은 연락이 옵니다. 하지만 단기적인 미봉책으로 교회학교가 살아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의 리더들이 교육의 가장 기본적인 핵심을 이해하고 다음세대를 만나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교육학자 하워드 핸드릭스는 그의 저서 '가르치는 것 이상의 가르침(Teaching to Change Lives)'에서 효과적인 교육을 위한 5가지 원칙을 5C로 강조했습니다. 이는 확신(Conviction), 교통(Communication), 대면(Confrontation), 책임(Commitment), 자신감(Confidence)을 의미하며, 이는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학생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데 필요한 요소들입니다. 이 원칙들은 교회 교육에 그대로 적용되는 핵심 개념들입니다.
1. 확신 (Conviction)
확신은 가르치는 사람이 자신이 가르치는 내용에 대해 깊이 있는 믿음과 열정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신념을 바탕으로 학생들에게 감동을 주고 변화를 이끌어내는 힘이 됩니다. 확신을 가진 교사는 학생들에게 배우는 내용의 중요성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며,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교회교육은 하나님을 영적으로 만나 실존적인 하나님을 경험한 교사들이 확신 가운데 ‘나와 하나님’의 이야기를 전할 때 비로소 생명력과 운동력이 있는 교육이 이루어집니다.
2. 교통 (Communication)
교통은 교사가 학생들과 효과적으로 소통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이는 일방적인 정보 전달이 아니라, 학생들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공감하며 상호작용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핸드릭스는 교통이 '다리'와 같아서, 교사와 학생 사이의 간극을 좁히고 신뢰를 쌓는 데 필수적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진정한 교통은 학생의 필요와 질문에 귀 기울이고, 그에 맞는 방식으로 소통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질문을 던지시고 그 질문에 다시 질문을 이어가시는 방법으로 제자들과 문답식 교육을 하셨습니다. 교회교육은 일방적인 전달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나눔입니다.
3. 대면 (Confrontation)
대면은 학생이 자신의 삶에 배운 내용을 적용하도록 도전하고 격려하는 과정입니다. 이는 학생의 태도, 행동, 가치관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를 담고 있습니다. 단순히 지식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이 내용을 너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와 같은 질문을 통해 학생 스스로가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핸드릭스는 이 대면을 통해 학생의 성장이 진정으로 일어난다고 보았습니다. 믿음이란 내 삶에 다가오는 문제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믿음으로 맞서는 영적 훈련입니다. 죄의 고리를 끊고 신실한 삶을 살겠다는 분명한 다짐과 이에 대한 구체적인 결단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4. 책임 (Commitment)
책임은 학생이 배운 내용을 삶에 적용하겠다는 의지를 갖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학습을 넘어, 배우고 깨달은 바를 실천하겠다는 결단을 요구합니다. 교사는 학생들이 이러한 책임을 질 수 있도록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그 과정을 함께 지지하고 격려하는 역할을 합니다. 책임은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인 삶의 변화를 이루는 데 필수적인 단계입니다. 성도는 하나님 나라에 이를 때까지 맡은 바 자리를 지켜내는 책임이 중요합니다. 주신 말씀을 붙잡고 순종하며 나아가는 책임 있는 모습이 주님을 신뢰하는 신앙인의 자세입니다.
5. 자신감 (Confidence)
자신감은 교사가 학생에게 배우는 내용과 그들 자신의 잠재력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핸드릭스는 교사의 역할이 학생들에게 '너는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고, 그들이 스스로의 능력을 신뢰하도록 돕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자신감은 학생들이 하나님을 의지하여 새로운 도전에 맞서고, 성장하며, 결국에는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게 하는 중요한 동기가 됩니다.
이 5C는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효과적인 교육이 이루어지기 어렵다고 핸드릭스는 강조했습니다. 그는 교육이 단순히 정보를 제공하는 행위가 아니라, 학생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심오한 과정이라고 본 것입니다. 이러한 5C를 바탕으로 우리의 교회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입체적인 복음의 진수가 전해지는 교육이 이루어지길 소망해 봅니다.
-
2025-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