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0-04(금)

오피니언
Home >  오피니언

실시간 오피니언 기사

  • [시사칼럼] 시월을 마지막으로 살다간 사람들
    시월입니다. 노랫말과 비슷하게 최근 시월을 마지막으로 보내고 떠난 분들이 여럿 있습니다. 10월 6일에는 예수전도단(YWAM)의 창시자 로렌 커닝햄(Loren Cunningham)이 8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지난 3월 폐암 4기 진단을 받았지만 이후로도 변함없이 주님과 가족과 친구와 비전 안에 살았노라고 가족들이 전한 바 있었지요?(CT) 청년 시절 바하마 여행 중 다음과 같은 환상을 보고 사역을 시작했다 했습니다. “그날 밤 나는 선교사 사택에 누워 성경을 펼쳤고, 늘 하던 대로 주께서 내 마음에 말씀해 주시도록 기도했다. 그러나 곧 이어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세계 지도를 바라보고 있는데 그 지도가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벌떡 일어나 앉았고, 머리를 흔들고, 눈을 비비며 다시 보았다. 파도가 해변에서 대륙으로 들어왔다가 밀려 나가고 그리고 더 깊이 밀려들어와서 그 대륙을 완전히 덮는 것이었다. 숨을 죽였다. 장면이 바뀌어 그 파도들은 청년이나 더 어린 소년들로 변하여 그 대륙들을 덮고 있었다. 거리나 음식점, 혹은 집집마다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고 사람들을 돌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장면은 사라졌다.”(『하나님 정말 당신이십니까?』중에서) 일평생 생생했던 그 비전을 붙잡고 주권국가든 종속국가든 거의 모든 나라를 방문한 유일무이한 존재였던 그가 이제 여권 말미에 마지막 스탬프를 받았습니다. 굿바이, 로렌! 10월 9일에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한 노인이 92세로 세상을 떠나자 곧바로 “2만 원짜리 시계 차던 억만장자 영면에 들다”, “방 2칸 소형아파트에서 억만장자가 잠들다”와 같은 헌사들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35년 간 10조를 기부한 키다리아저씨”라 일컬어지던 척 피니(Charles Francis Feeney)였습니다. 면세점 사업(DFS)으로 큰돈을 벌었지만 구두쇠요 괴짜라 불리며 기인처럼 살다가 1997년 우연히 정부의 세무조사를 받다가 엄청난 기부왕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15년간 2,900회 40억 달러) 세간의 화제가 되었고, 2016년 마침내 당시 소유하던 거의 모든 재산을 기증했는데 그 총액이 80억 달러 즉 한화로 10조가 넘어 놀라움을 선사했던 장본인입니다. 그는 또 “대부호들의 영웅”이라고도 불리는데, 선하고 막강한 영향력을 끼쳤기 때문입니다. 그를 숭상하던 주식왕 워렌 버핏은 2006년부터 510억 달러(66조)를 기부했고, 역시 그를 흠모하던 컴퓨터왕 빌 게이츠는 2022년 기준으로 자신이 설립한 재단에만 591억 달러(80조)를 기부했습니다. 그렇게 놀라운 일을 피니는 어떻게 시작했을까요? 아일랜드에서 건너 와 가난했지만 독실한 기독교인이자 숨은 봉사자였던 어머니의 영향이 지대했다고 합니다. 평소 그가 남긴 말들입니다. “오늘(today) 하는 기부가 훨씬 좋다(so much good)”, “돈이 필요한 이유는 편하기 위함인데 나는 지금 너무나 평안하니 더 이상 돈이 필요 없다!” 자,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무얼 위해 살아가고 있습니까? 바로 그 다음 날인 10월 10일에는 1927년 생 김남조 시인이 향년 96세로 소천했습니다. 이구동성으로 이분을 ‘사랑의 시인’이라 칭합니다. 평생 사랑을 노래하는 시를 가장 많이 지었고, 2020년 마지막으로 낸 19번째 시집 이름도 『사람아, 사랑아』일 정도니 그보다 어울리는 별명이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보통 사랑이 아니라 신적 사랑을 바탕으로 삼았습니다. 어릴 적 국어교과서에 실렸던 고인의 시들을 별 생각 없이 공부했었는데 이제 알고 보니 기독교인이셨네요. 사랑만 그렸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가 남긴 <겨울 바다> 중 일부를 소개합니다.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미지의 새/ 보고 싶었던 새들이 죽고 없었네..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 바다에 섰었네/ 남은 날은 적지만/ 기도를 끝낸 다음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그런 영혼을 갖게 하소서”, 겨울 바다와 남은 시간을 생각하며 “기도”를 떠올리다니 참으로 신선한 발상이 아닙니까? <너를 위하여>라는 작품도 있는데, “나의 밤 기도는 길고/ 한 가지 말만 되풀이한다.. 너를 위하여 나 살거니/ 소중한 건 무엇이나 너에게 주마/ 이미 준 것은 잊어버리고/ 못다 준 사랑만을 기억하리라..”고 합니다. 이쯤 되면 ‘기도의 시인’이란 별명도 하나 더 붙여드려야 하겠습니다. 그처럼 사랑과 기도로 일관했으니 그보다 더 유의미한 인생이 얼마나 더 있겠습니까? 그러나 모든 이들이 저들처럼 아름답게 스러져갈 수만은 없는 법입니다. 10월 7일에는 축구계의 박종환 감독이 87세를 일기로 사망하였습니다. 1983년 당시로서는 우리나라에서 전대미문이었던 세계청소년축구 4강 신화를 창조했던 장본인입니다. 한국축구에 ‘붉은 악마’라는 타이틀을 안겨다 준 장본인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화려했던 전성기와는 달리 불우한 말년을 보냈습니다. 지인들에게 사기를 당하고 아내를 먼저 보내며 집도 없이 떠돌다가 지독한 생활고 속에 외로움으로 인한 우울증까지 시달렸다 합니다. 그러던 마지막 순간 그를 돌봐 준 사람은 가족도 지인도 아닌 한 기독교인이었네요. “자살하려고 해서 깜짝 놀라 찾아갔다. 저분을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없을까 싶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조선일보 2월 14일 보도). 수많은 사람들을 거짓 뉴스와 악의적인 보도로 괴롭힌 혐의로 조사를 받던 가로세로연구소의 김용호 씨는 10월 12일 해운대의 한 호텔에서 극단적인 선택으로 47년의 짧은 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남의 눈에 피눈물 나게 한 인생을 살다간 고인의 명복을 빌고 싶지 않다’는 피해자들의 글들이 줄지어 올라옵니다. 아, 인생이란 무엇입니까?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가야 합니까? 범상치 않은 생각에 잠기게 하는, 시월입니다.
    • 오피니언
    • 칼럼
    • 시사칼럼
    2023-10-20
  • [은혜의말씀] 바디매오가 눈을 떴다네!(막 10:46-52)
    여리고 길가에, 한 거지가 앉아 동냥을 구걸하고 있습니다. 그는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입니다. 그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동냥으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의 이름은 바디매오. 오늘도, 찌그러진 동냥 그릇을 앞에 두고 엎드려 있습니다. 그런데 평소와는 다르게 수많은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들립니다. 바디매오가 사람들에게 묻죠? “여보시오, 어딜 그리 바삐 가시오? 무슨 일이라도 있소?” 그러자 사람들은 “나사렛 예수라는 분이 우리 마을을 지나가신다네.”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이라는 말에, 바디매오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는 소리칩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러자 사람들은 조용히 하라고 야단을 칩니다. 그러나 바디매오는 더욱 큰 소리로 예수님을 부릅니다. 이 소리를 들은 예수님은 지나가시던 걸음을 멈추시고, 바디매오를 부르십니다. 바디매오는 벌떡 일어나, 겉옷을 벗어 던지고는 예수님 앞으로 달려갑니다. 예수님께서 인자한 음성으로 물으십니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네 선생님, 보기를 원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능력의 말씀을 선포해 주십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그 시로, 바디매오의 눈이 번쩍 뜨여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자 오늘, 바디매오가 고백한 믿음, 예수님이 칭찬하신 구원 얻는 믿음이 무엇인지 살펴보길 원합니다. 1. 바디매오의 믿음은, 은혜의 때(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47절) 바디매오는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리를 듣자,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만을 기다렸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드디어, 그날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예수님이 오셨을 때 기회는 시작되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기회를 포착합니다. 여러분, 은혜받을 기회를 붙잡으십시오. 오늘, 지금, 이 시간이, 내 인생의 최고의 기회이며, 또한 최후의 기회라는 긴장을 가지고, 믿음으로 움직여야 합니다.(고후 6:2) 2. 바디매오의 믿음은, 최선을 다해 부르짖는 것입니다.(47절) 맹인으로서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부르짖는 것입니다. 바디매오는 자기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문제를 가지고 주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은 부르짖는 자의 탄식을 외면하지 않는 분이십니다. 탄식이 탄식으로 끝나지 않게 하십니다.(렘 33:3) 우리 주님은 우리의 부르짖음 뒤에, 말로 다할 수 없는 아픔, 눈물, 남에게 말하지 못하는 소리도 들으십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기도하십시오. 낙심하지 말고 부르짖으십시오. 우리가 소리쳐 부를 때 주님은 부르짖는 자를 지나쳐 가지 않으십니다. 지금, 바디매오의 기도를 가지고 주 앞에 서십시오. 3. 바디매오의 믿음은, 난관을 돌파하는 것입니다.(48절) 사람들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였지만, 바디매오는 더욱 크게 소리 질렀습니다. 그때 바디매오가 기가 꺾여서 주저앉아 버렸다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기적은 없는 것이지요. 응답이 있을 때까지, 목표를 이룰 때까지, 계속 부르짖어야 합니다. 정말 믿음이 있는 사람은 방해물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주님이 들으신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4. 바디매오의 믿음은, 예수님만이 내 문제의 해결자이심을 확신하는 것입니다.(47절) 바디메오는 '나사렛 예수'라 들었지만, '다윗의 자손'이라고 외쳤습니다. 그는 예수님이야말로 구약시대부터 계속 예언되어 온 “메시야”이심을 확신했습다.(렘 23:5,6) 바디매오는 예수님이 바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구원자로 고백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을 누구라고 이야기합니까?(마 16:16) 예수님만이 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구원자이십니다. 결국 이런 바디매오의 믿음을 보신 예수님은 그를 불러 주십니다. 그리고 그에게 눈을 뜨는 기적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그는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믿음이란 내 삶 가운데 바꿀 수 없는 것을 예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믿고, 나의 인생을 주님께 위탁할 때 응답을 받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결단하며 일어설 때 주님의 주시는 기적이, 여러분의 삶에 나타나시길 기도드립니다.
    • 오피니언
    • 칼럼
    • 은혜의 말씀
    2023-10-20
  • [교회음악칼럼] 찬송(예배)하며 사는 사람들 8
    아직 다소 이르긴 하지만 차를 타고 다니다 보면 가을이 성큼 다가왔음을 금방 느끼게 된다. 아직 푸르름이 남아있지만 그 가운데 작은 변화를 통해 우리는 그것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나의 눈이, 귀가 그리고 감각이 반응하며 변함없이 주께서 이루어 가시는 섭리를 깨달아 알게 하심에 감사하며 찬송을 드린다. 마트를 가면 햇과일들로 넘쳐 난다. 이 수확의 계절에 내가 거둬들일 열매는 얼마나 될까? 사람은 누구나 주변의 여러 것들이 자신에게 무엇인가를 기대하는 만큼 해 주기를 바라는 존재인 것 같다. 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주목받고, 인정받기 또한 원한다. 세상에서만 아니라 교회공동체 내에서도 다를 바 없이 똑같은 기대를 하며 살아간다. 사실 씨를 뿌리지 않고 얻을 열매는 없다. 더욱이 베풀지 않고 나에게 올 것을 기대하기만 한다면 그것은 염치없는 일이다. 우리가 말씀과는 달리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긴 하나 아직 덜 성숙하여 그러노라고 하면 달리 무어라 할 말이 없지만 언제까지나 그럴 수는 없지 않은가? 주께서 우리에게 그러했듯이 내가 누군가에게 베풀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한번쯤 생각해 볼 수만 있다면 오히려 불평, 불만, 서운함을 갖기 보다는 격려, 배려, 위로를 줌으로서 그 가운데서 얻게 될 기분 좋은 기쁨을 맛보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결국 남을 나보다 더 생각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의 원초적 실천을 의미하는 것인데 최소한 우리가 이것만 삶속에서 이룰 수 있다면 개인의 행복은 물론이거니와 주변을 변화시키고 진정 성숙한 삶의 노래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을 것이다. 세계가 매우 힘들다. 우리가 살고 있는 주변 모두가 어렵다. 그래서 도무지 그런 영적인 여유를 부릴 수 없을 만큼 우리의 삶이 팍팍하고 고달플지라도 변함없으시고, 신실하신 주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 옛날 하박국 선지자가 노래하였듯이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이 노래가 우리의 고백이 되어 주께 드려지기를 소망해 본다.
    • 오피니언
    • 칼럼
    2023-10-20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이야기] 다음세대가 주인공이 되는 교회
    요즘 다음세대 사역에 대해서 관심이 많아지면서 온세대가 함께 드리는 예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아이들은 이 예배에서 주인공이 아닙니다.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그냥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럼 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 아이들이 우리 교회의 기둥이 되고 핵심 인력이 됩니다. 저희 교회도 역시 이따금씩 어린이들을 본당에 초대해서 어른들과 함께 예배드리곤 합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담임목사님이 설교할 때 아이들은 주인공입니까, 아니면 회중입니까? 회중입니다. 단순히 이야기를 듣고 있죠. 수천 년 전 애굽 이야기를 듣고 있는 회중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주인공을 만들까요? 간단합니다. 강단에 큰 그림을 프린트해서 붙여놓습니다. 어린 모세가 졸졸 나일강으로 떠내려오고 그 갈대상자를 바로의 딸이 줍습니다. 그 옆에는 누이 미리암이 있습니다. 이 장면은 수천 년 전 애굽에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여기까지는 우리랑 관계없는 이야기죠. 애들은 관심 없어요. 근데 여기에 얼굴을 파요. 얼굴을 다 파서 탕! 치면 떨어져요. 그러면서 모세 얼굴에 어린 우리 아동부 어린이 얼굴이 딱 나와요. 그러면서 바로의 딸 얼굴에는 그 어린이의 엄마입니다. 그리고 그 옆에 미리암 자리에는 그 아이의 언니 얼굴이 딱 나와요. 미리 대형 그림 뒤에 세 사람을 준비시켜 놓은 거죠. 그러면 그 순간부터 이야기는 달라지는 거예요. 이 이야기는 이제 지금 우리 가정의 이야기로 바뀌는 겁니다. 그래서 수천 년 전 애굽이 아니라 지금 우리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이냐가 우리의 과제가 되고 지금 우리 아이가 어떻게 성장하느냐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명과 목적이 되는 거죠. 여러분, 이 큰 대형 그림은 이 예배 끝나자마자 어떻게 쓰일까요? 온 교인들이 나와 사진 찍습니다. 포토월로 사용이 됩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모세가 “돌격! 앞으로!” 하는 홍해를 건너는 장면을 준비합니다. 역시 모세의 얼굴을 뻥 뚫어놨습니다. 탕! 치면 떨어집니다. 거기에 1학년짜리 어린이가 얼굴 내밀면 다 같이 “와!” 하고 웃어요. 그러면서 뭘 깨달을까요? 지금 우리 아이가 하나님이 우리나라와 민족을 구원하시는 방법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거예요. “이 아이를 하나 잘 키우는 게 정말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구나!” 깨닫게 되는 거죠. 여러분, 이 간단한 장치 하나로 해서 아이들은 모두가 주인공이 되고, 이 자리에 다 나와 사진을 찍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이 시대의 모세로 자리매김을 하는 거죠. 또 많은 분들이 궁금해합니다. “분홍 목사님은 설교를 어떻게 하시길래 애들이 이렇게 좋아해요?” 저는 아이들한테 마이크를 넘겨요. 제가 설교 다 하지 않아요. 이렇게 가서 애들한테 마이크 주면 애들은 너무 얘기를 잘해요. 다음 세대 사역의 노하우는 이겁니다. 아이들한테 물어본다는 거예요. 여러분, 제가 소위 다음 세대 전문가 아닙니까? 왜 전문가입니까? 물어봤으니까. 여러분은 왜 전문가가 아니에요? 안 물어봤으니까. 여러분, 저는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교회에 나올 건지, 어떻게 하면 교회 학교가 부흥하는지 압니다. 어떻게 알아요? 물어봤으니까. 아이들한테. 제가 처음 갔더니 저희 교회 학교 예배가 다 9시였어요. 9시. 여러분, 9시에 나오려면 적어도 8시에 일어나야 하고요. 집이 먼 애들은 7시에 일어나야 하고요. 머리 감아야 하고요. 그거 너무너무 힘들어요. 그 전날 토요일에 유일하게 12시, 1시까지 넷플릭스 보고, 핸드폰 하다 자는 애들이 어떻게 일어나냐고요? 그래서 제가 물어봤어요. “얘들아! 어떻게 하면 교회 학교 열심히 나올 수 있겠냐?” 애들이 다 하는 소리가 뭐냐 하면 “목사님! 9시 너무 일러요. 목사님! 11시에 모이면 안 돼요. 어른들은 11시 예배드리잖아요.” 그래서 제가 바꿨습니다. 바꿨더니 어떻게 됐는지 아세요? 이것들이 10시면 일어나더라고요. 사람이라면. 지가 사람이라면 10시에 일어나요. 11시에 교회를 와요. 여러분, 잃어버린 영혼 다 찾았어요. 잃은 양 다 찾고, 부서마다 부흥했어요. 저희는 그래서 이름을 붙였어요. 유치부 대 예배 11시. 어린이부 대 예배 11시. 청소년부 대 예배 11시. 청년부는 아예 1시로 미뤘어요. 왜? 청년들이 더 못 일어나니까. 푹 자고 와서 예배해라. 그래서 저는 물어봐서 아이들의 마음을 아는 목사가 되었고, 이 아이들이 얼마나 기가 막힌 얘기를 하는지요. 정말 아이들이 입을 열 때마다 온 교인이 놀라고 교사들이 으쓱으쓱합니다. 제일 좋은 건 어린아이입니다. 4살, 5살 이런 아이들에게 마이크를 주면 기가 막힌 얘기를 합니다. 여러분, 한번 해보세요. 아이들을 모아놓고, 아이들에게 마이크를 넘기는. 불안하시잖아요? 아니요. 불안할 거 없어요. 얼마나 좋은데요. 아이들이 자기 나름대로의 상상력을 펼치면요. 이 자리에 있는 성령의 역사는 너무너무 완벽해집니다. 여러분, 한번 해보시길 바랍니다. 저희 교회는 새로운 사역을 준비하면서 “무엇을 바꿀까?”를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뭘 고민했냐? “안 되는 거 빼고 다 바꾼다! 전부 다 바꾼다!” 그 정도의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그래서 담임 목사 호칭대신 분홍 목사로 바꾸고 옷도 가운 벗고 아이들이 좋아할 차림으로 강단에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요즘 6월부터 9월까지 반팔 티셔츠 입고 올라와서 설교합니다. 저희는 각 부서의 교사 티가 다 있거든요. 그 교사 티를 입고 설교해요. 그러면서 그 부서를 지지하는 거예요. 제가 응원하는 거예요. 그러면 온 교인이 저와 함께 그 부서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거예요. 다 바꿨어요. 여러분, 바꿨더니 다음 세대가 많아지기 시작했는데 이것과 함께 30~40대가 같이 많아집니다. 부모 세대와 같이 숫자가 같이. 멀리서 차 몰고 오시는 거예요. 그리고 인원이 전체적으로 늘게 되고. 재정이 늘게 되고. 저희는 지금 매년 최고치를 찍고 있습니다. 역대 최고치. 너무너무 기쁘더라고요. 그리고 자신감도 올라가요. 교인들이 자신감이 넘쳐요. 어디를 가나 입이 근질근질하답니다. 성민교회 얘기하고 싶어서요. “사람들이 나 어느 교회 다니는지 물어봐야 하는데, 왜 안 물어보지?” 자꾸 그런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나 성민교회 다녀!” 하는 순간 분위기가 달라지면서 “정말? 분홍 목사님 교회? 다음세대 사역으로 부흥하는 교회? 그 교회 다닌단 말이야?” 분위기가 달라지는 거예요. 그러면서 이 교인들이 자신감이 하늘을 뚫어요. 다음세대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주세요. 교회가 달라집니다. 우리의 삶도 달라집니다.
    • 오피니언
    • 다음세대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 이야기
    2023-10-20
  • [다음세대칼럼] 다시 아빠 해주세요
    “도움 따윈 필요없으니깐 제발 내 인생에서 사라져 주세요. 왜 저를 진심으로 위하고 걱정을 해요? 그딴 감정들도 필요없으니깐 낭비하지 마시고요. 저 말고 다른 애한테나 그러세요. 내가 어떻게 살든 내 인생이니깐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세요. 이젠 내 인생에 나타나지 마요. 알아서 살거니까요” 얼어붙은 땅도 녹아내리고 꽃이 피며 생기가 돋는 어는 봄날. 따따이는 소년원에서 온 편지를 한 통 전해 받았다. 편지를 보낸 아이는 지원이였다. 지금껏 둥지를 거쳐간 수 많은 아이들 중 가장 마음이 아린 녀석 중 하나이다. 지원이의 부모님은 지원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이혼하였다. 사업실패 후 가정을 외면한 채 바깥을 떠돌며 알코올 중독자가 된 아버지와 이단 종교에 빠져 광적인 신앙생활을 하던 어머니마저 집을 나가 소식이 없었다. 지원이는 부모님이 이혼한 후 언니 2명과 함께 생활했다. 가끔 술에 취해 집에 들어오는 아버지는 딸들에게 폭행을 휘둘렀다. 이를 못 견딘 큰 언니가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자 독립을 선언하고 서울로 직장을 구해 먼저 떠나버렸다. 고등학생이던 둘째 언니마저 가출하여 집에 안 들어오는 날이 잦아지면서, 아직 중학생으로 어렸던 지원이만 홀로 남았다. 거의 매일 술 냄새를 잔뜩 풍기며 들어오는 아버지와 단 둘이 있는 시간이 견디기 힘들만큼 너무 싫었다. 결국 지원이도 가출을 하기 시작하였고 거의 1년 정도 가출팸들과 생활하며 지내다가 돈이 없으면 편의점에서 음식을 훔쳐 먹기도 했는데 결국 발각되게 되었다. 그 절도사건으로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따따이가 국선보조인을 맡으며 처음 만나게 된 것이었다. 재판을 앞두고 있지만 지원이의 보호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결국 지원이는 보호자 없이 홀로 법정에서 재판을 받아야 했고 판사님은 안정된 환경에서 생활하면서 학교도 다시 다닐 수 있도록 둥지센터 처분을 내렸다. 그리고 국선보조인이었던 따따이와 함께 둥지센터에서 지내게 되었지만, 가출이 습성화된 지원이는 센터를 이탈하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시설내처우인 6호 처분을 받고 아동치료보호시설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 곳에서 일주일에 한 번 주어지는 전화시간에도 지원이는 전화를 걸 사람이 없었다. 그때마다 지원이는 생각나는 사람이 따따이 밖에 없었다. 그렇게 따따이에게 전화를 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주절주절거렸다. 그리고 6개월간의 6호 처분 이후 따따이는 지원이를 위해 따로 원룸을 마련해주고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잘 지내기로 손가락을 걸고 약속하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곳에서도 지원이는 도망가 버리고 다른 비행에 연루되다가 보호관찰소에서 구인장이 발부되어 다시 도망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재판을 받아 가장 중한 10호 처분으로 2년간 소년원에 가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잔뜩 독이 올라 원망과 저주가 가득한 말을 편지에 가득하게 써서 따따이에게 보냈던 것이다. 따따이는 한 순간 그 동안의 노력과 수고가 물거품이 되는 것 같아 온 몸에 힘이 빠졌다. 그렇게 안타까운 마음만 품고 시간을 흘러갔다. 유난히 더웠던 여름이 지나고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 되었다. 세찬 비바람이 몰아쳐 태풍 경보까지 내려진 날 오후. 따따이에게 다시 편지가 왔다. 자기 인생에 나타나지 말라며 원망을 쏟아낸 지난 번 편지 때문인지 따따이는 무거운 마음으로 지원이의 편지를 열어보았다. “어.... 안녕하세요..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먼저 죄송해요. 지난 번 편지에 너무 모진 말들만 썼죠. 정말 힘든데 쏟아낼 때가 없어서 그랬나봐요. 솔직히 들어온지 얼마 안됐을 때 편지 받고 많이 울었어요.... 저 여기 오면 아무도 찾아와 줄 사람이 없다는거.. 많이 힘들고 외로울거라는거 아시잖아요? 그렇게 목 맸던 친구들은 8개월 째 소식이 없고 면회 오는 사람도 없고 혼자 버티려니깐 너무 버거워요. 저 진짜 잘못 살았나봐요.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그렇게 조심스럽게 적어 내려간 지원이의 편지를 읽다가 따따이는 그만 마음이 멎는 듯 했다. “따따이를 진짜 아빠라고 생각했었어요. 가족보다 더 보고 싶은 사람이었어요. 내가 이렇게 모질게 굴어도 따따이는 달래주실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했어요. 죄송해요. 진짜 죄송해요. 따따이는 저를 많이 도와주셨는데 은혜를 갚지도 못할망정 상처를 드려서 죄송해요. 제발 저 여기서 혼자 힘들어하게 하지 말아주세요. 따따이. 다시 아빠해주세요... 작년에 가족도 안 챙겨주던 제 생일날 바쁘신데 와주시고 그랬는데.. 아빠보다 더 아빠같이 생각했었는데 제가 왜 그랬을까요? 죄송해요. 아빠. 그리고 보고 싶어요” 따따이는 진하게 커피를 한 잔 내려 마시면서 창가에서 바깥을 내다 봤다. 어제 폭우와 강풍을 동반한 태풍이 우려한 것보다는 큰 피해가 없이 비켜갔다. 아침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화창한 날씨에 밝은 태양이 떠올랐다. 따따이는 모진 비바람을 겪은 지원이의 짧은 인생 같아 괜히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지난 번 그렇게 심한 말에 상처를 받기도 했지만 이렇게 편지 한 장에 다시 마음이 녹아내리는 것이다. ‘이제 태풍이 지나갔으니...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찾겠지. 다음 주엔 녀석을 만나러 가야겠다’ 이제 며칠 후면 지원이의 생일. 다시 서글픈 축하의 노래라도 불러주러 가야 하지 않을까. ※ 이 글의 원문이나 자세한 내용은 저자의 책 “다시 아빠해주세요”(엠마우스출판사)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 오피니언
    • 다음세대
    • 다음세대 칼럼
    2023-10-20
  • [신앙교육나침반] 10월 31일은 종교개혁기념일(Holy Win)? 할로윈(Halloween)? (2)
    1517년 10월 31일은 종교개혁이 시작된 역사적인 날입니다. 이 날에 루터는 로마카톨릭 교회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잘못된 관습에 대항하며, 복음에 근거한 95개조의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성당문에 게시하였습니다. 부모세대는 10월 31일에 우리의 자녀세대가 사탄의 형상을 입는 할로윈 축제에 어떤 모양으로도 참여하지 않도록 보호해야 합니다. 이 날은 빛나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형상인 ‘그리스도’의 옷으로 자신을 새롭게 하는 날로 삼아야 합니다. 종교개혁주일과 10월 31일에 교회와 가정에서 온 세대와 함께 다음의 복음활동을 진행해보세요. 활동에 대한 생생한 영상은 유튜브채널 [향기나무 성경놀이터]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 면죄부 □ 준비물: 다양한 색깔의 종이, 펜, 풀, 종이상자(두꺼운 종이), 빨간색 색종이 또는 시트지 □ 방법 종이장자를 이용해서 커다란 십자가를 만듭니다. 면죄부를 상징하는 종이에 모든 죄를 고백한 후에 찢습니다. 완전히 찢은 죄를 십자가 종이 위에 모자이크 방식으로 붙입니다. 죄가 가득한 십자가 위에 빨간색 색종이 또는 시트지를 덮습니다. ❶ 면죄부에 나의 죄 적기 여러분, 이 종이는 여러분을 천국에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면죄부입니다. 여러분을 천국에 가지 못하도록 하는 모든 죄를 이곳에 모두 적어보세요. ➋ “없어져라!”외치며 면죄부 잘게 찢기 자, 이제 “없어져라!” 외치면서 모두 찢어봅시다. (모두 찢은 후) 우리의 노력으로 여기에 적어놓은 죄가 없어질까요? 아무리 잘게 찢는다고 해도 죄는 절대로 없어지지 않아요. ➌ 십자가 위에 죄 종이 붙이기 우리의 죄를 완전히 없앨 수 있는 곳은 바로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예요.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십자가로 가지로 오라고 하십니다. 십자가에 우리의 죄를 붙여봅시다. ❹ 빨간색 종이로 죄 덮기 예수님만이 우리의 죄를 십자가의 피로 깨끗하게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를 상징하는 빨간색 종이로 모든 죄를 덮어봅시다. 그리고 예수님께 우리의 죄를 입술로 고백해봅시다. “예수님, 예수님의 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주세요. 죄가 나의 입술과 몸과 마음에서 완전히 떠나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오피니언
    • 다음세대
    • 신앙교육 나침반
    2023-10-20
  • [좌충우돌 크리스천 자녀 양육기] 책맹인류 시대에 책 읽는 아이들로 양육하기(1)
    EBS 다큐멘터리 ‘책맹인류’ 프로그램이 화제입니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대한 진단과 여러 나라의 국가적 대안 등 세계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책맹인류’에 대한 문제점들을 심도 있게 밝히고, 설득력 있게 구성했습니다. 특히 1부에서는 ‘읽기’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읽기’를 시작할 때 뇌의 반응을 분석적으로 보여줌으로 읽기가 단순히 읽는 수준을 넘어 전인지적으로 인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실험자가 어떤 문자를 읽기 시작하는 순간, ‘해독, 인식, 구도, 문해, 지식, 추론’ 등 뇌의 대부분의 영역이 활성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읽기는 뇌의 모든 영역이 서로 도와야지 완성할 수 있는 작업임을 증명한 것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더 나아가 인간이 책을 읽지 않았을 경우 어떻게 되는지, 또한 10분만 책을 읽어도 어떤 효과가 나타나는지도 영상으로 보여주고 있어, 흐름을 따라가다보면 자연스럽게 놓았던 책을 다시 집어 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책맹인류’란 프로그램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습니다. 책이 ‘정보, 지식, 재미, 정서적 만족’ 등을 준다고 하더라도 더 재미있고 자극적인 여러 매체 앞에 책은 제일 마지막 순위로 밀리고 맙니다. 이 프로그램을 보다보면 중간 중간에 초등학생 아이들이 나와 인터뷰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 애들이 하나같이 “책이 재미없어요” “책보다 게임하는 게 더 재미있어요”라는 말로 책을 읽지 않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맞습니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가만히 앉아서 딱딱한 문자를 읽는 것보다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더 나아가 스마트폰에서 보여지는 화려한 영상은 훨씬 더 몰입감이 강하고 재미있습니다. 감히 비교가 안됩니다. 가끔 우리 아이들을 데리러 학교 앞에 갈 때가 있습니다. 마치는 종소리가 들리면 아이들이 우르르 운동장을 빠져 나오며 마치 기다렸다는 듯 핸드폰을 켭니다. 어떤 아이들은 엄마에게 마쳤다고 전화하기도 하고, 또 어떤 아이들은 문자나 카톡을 확인하기도 합니다. 그 애들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으면 전화나 문자를 확인한 후 결국 유튜브 동영상을 보거나 삼삼오오 모여 앉아 핸드폰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식사를 하러 식당에 가도 이런 모습은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부모님이 아직 식사를 하고 있는데도 아이들이 식사를 다 했다 싶으면, 개의치 않고 핸드폰으로 자신들 만의 세상 속으로 들어갑니다. 저는 첫째 아이가 중학교 1학년이 될 때, 처음으로 핸드폰을 사 주었습니다. 처음 사줄 때 스마트 기능이 없는 ‘전화와 문자’만 되는 핸드폰을 사줬다가 학교에서 반톡을 만들어 소통해야 하는 상황이 빈번히 생겨 결국 6개월 만에 스마트폰으로 바꿨습니다. 그리고 아직 초등학교에 다니는 나머지 아이들은 핸드폰이 없습니다. 집에 TV도 없습니다. 아이들이 학원도 많이 다니지 않아 집에 오면 당연히 심심해합니다. 하지만 심심하면서도 결국 자신들이 놀 것, 읽을 것은 스스로 찾습니다. 물론 엄마는 글이 많이 있는 책을 읽기를 바라지만, 이 아이들이 선택하는 것은 대부분 만화책입니다.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늘 책을 가까이 하고 읽는 것을 멈추지 않습니다. 가능하면 중학생이 되어서야 핸드폰을 사주고, 집에서 영상매체를 (가급적이면)보지 않는 것 등의 원칙은 내가 첫째를 임신하면서부터 가졌던 교육관이자 동시에 책 읽기에 대한 중요성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책맹인류’ 시대에 양육자들이 먼저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책 읽기의 중요성을 강하게 깨닫기를 바랍니다. “에이, 책 좀 안 읽으면 어때? 다른 곳에서 지식과 정보를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데…”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은 꼭 EBS 다큐멘터리 ‘책맹인류’ 프로그램을 시청하시기를 권합니다. 책은 지식 취득 이상의 큰 의미가 있는 전인격적 활동이라는 것을 방송에서 끊임없이 말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깨달음이 있어야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듯, ‘책맹인류’ 시대에 우리 자녀들이 책 읽는 아이로 자라기를 원한다면 시대의 심각성과 책읽기의 중요성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다음 글에서는 ‘아이들이 책과 친해지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 오피니언
    • 다음세대
    • 좌충우돌 크리스천 자녀 양육기
    2023-10-20
  • [목회자칼럼] 시계형 VS 나침반형
    시계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시와 분을 아껴 부지런히 초바늘을 움직입니다. 혹시라도 구멍난 시간이 있으면 그 틈을 참지 못하고 다른 일로 채우며 하루 24시간, 일주일 168시간을 쉬지 않고 살아갑니다. 순간 순간 파도처럼 거대한 일이 밀려오더라도 거뜬히 일들을 처리하며 일상을 묵묵히 이겨냅니다. 반면, 나침반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나침반이 목적을 향한 방향을 가리키듯, 인생에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일관성있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목적이 분명하기에 철학이 있고, 길이 있으며, 그 길 위에서 자신만의 은사를 펼치고 살아갑니다. 유명한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는 “인류는 지식의 작용으로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더 나은 시대를 열어간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더 나은 미래를 향해 꿈을 꾸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방법이 모두 다릅니다. 오늘도 열심히 지식을 쌓아가는 시계형 사람과 지식이 나아가는 방향을 보고 살아가는 나침반형 사람 모두 더 나은 세상을 꿈꾸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으로 볼 때, 현재 우리나라는 어떠한가요? 먼저, 시계형으로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한국은 세계 10위 내외의 경제 성장과 수출입 7위의 규모, K팝과 K한류 문화로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잘 사는 국가가 되었습니다. 열심히 살았고 ‘빨리 빨리’ 문화답게 빨리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전쟁 후 70년 동안 괄목한 만한 성장을 이끌며 선두 그룹에서 리드하고 있습니다. 반면 나침반형으로 한국을 보겠습니다.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 저출산율 1위, 교통사고율 1위입니다. 자살률, 출산율 등은 인간의 삶의 질과 관련된 지표입니다. 자살률과 저출산율 1위는 “지금 대한민국은 살만한 곳이 아닙니다”라는 것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수치입니다. 얼마 전 한 매체에서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한국의 현실을 바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해 소위 선진국이라 하는 미국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가족, 관계, 행복, 건강” 등을 답으로 꼽았는데, 한국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물질” 즉 돈으로 꼽았습니다. 이와 같은 지표가 계속 보이면, 우리는 한번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시계형 속도인지, 아니면 나침반형 방향인지를 말입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 알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속도도 방향도 모두 중요하지만, 이제는 속도가 아니라 방향을 다시 점검해야 할 때라는 것을. 우리 사회와 비슷한 우리 인생도(삶) 한 번 점검해 봅시다. 지금까지의 ‘내’가 만들어지기 까지 수많은 교육, 미디어를 통한 메시지 등은 부흥, 성장, 열심, 열정의 시계형 속도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진짜 ‘내’가 누구인지, 나는 어디에 목적과 가치를 두고 살아가야 하는지 나침반형 방향이 필요합니다. 한국교육, 한국 기독교 교육은 어떤가요? 지배욕과 호기심, 혹은 지적 욕구만을 채우는 결과 중심의 교육, 즉 시계형 교육이 아니었나요? 교육의 목적이 사랑하며 섬기고 배려하는 인간을 만들어가는 가치와 철학이 있는 나침반형 교육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38년 동안 청소년들을 섬기는 십대의벗을 하다보니 한 해 한 해 보이는 것이 다른데, 특히 올해는 사회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 교회가 추구해야 하는 방향이 나침반으로 정확히 보이는 듯합니다. 나이가 들면서 철도 함께 드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벌레만도 못한 인간을 사랑해서 지금까지 사랑의 나침반으로 인도하신 주님이 앞으로도 그 사랑의 나침반으로 인도하실 것이라 믿습니다.
    • 오피니언
    • 칼럼
    • 목회자칼럼
    2023-10-20
  • 총회가 참여 금지키로 했는데...
    이달 말 부산에서 열리는 교계 연합행사가 있다. 이 행사는 목회자들이 먼저 회개운동을 전개하자는 취지의 행사로, 교계지도자들의 많은 호응과 공감을 얻고 있는 행사다. 그런데 일부 목회자들은 이 행사 강사로 선정된 A 목사 문제로 참석 여부에 대해 고민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교계 모 목사는 “행사의 취지는 너무 좋은데, 총회 결의 때문에 눈치가 보인다”고 전했다. A 목사의 경우 지난 2018년 합신 교단으로부터 ‘참여 및 교류금지’, 2020년에는 예장합동 교단으로부터 ‘참여금지’가 결의됐기 때문이다. 당시 합동 교단은 “A씨의 신학사상은 이단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으나, ‘유사논리 구조’와 ‘완전주의 경향’을 주의해야 하고, 알미니안 주의에 빠질 우려가 있으므로 교인과 젊은이들이 그의 주장에 현혹되지 않도록 경계하고, 집회와 훈련프로그램 참여를 금지하기로 하다”고 이대위의 보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예장고신의 경우도 2020년 당시 이대위에서 ‘불건전한 이단으로 규정하고 참여 금지해야 한다’고 보고했으나 총대들이 “당사자를 불러 조사하고 신중하게 결정할 일”이라며 이를 기각시킨 바 있다. 신중론 때문에 이대위 보고가 기각 되었지만, A 목사에 대한 논란이 종식된 것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부산성시화운동본부도 2024년 행사에 A 목사를 강사로 선정해 놓고 있다. 이사장 이규현 목사(수영로교회)가 예장합동 소속이기 때문에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 오피니언
    • 기자수첩
    • 광야의 소리
    2023-10-20
  • ‘부산세계박람회’를 위해 민간외교 감당하는 소강석 목사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가 지난 10월 4일 케냐에서 열린 ‘2023 한국 아프리카 고위급 회담’에서 ‘2030 세계박람회’가 부산에서 열릴 수 있도록 지지해 달라는 연설을 하는 등 민간외교 사절단 역할을 감당했다. 이 행사는 케냐는 물론 탄자니아, 잠비아, 소말리아 등 30여 개국 정관계 및 재계, NGO 인사 200여명이 참석했다. 소 목사는 “여러분, 부산 해운대를 와보셨는지요? 부산의 기장 앞바다를 보셨는지요?”라는 말로 강연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저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교회 지도자로서 여러분이 부산으로 꼭 오시면 좋겠다는 마음이 강렬합니다”며 2030 부산엑스포 유치를 위해 지지를 호소했다. 소 목사는 대한민국 발전에 대한 기독교의 역할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140여 년 전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학교와 병원을 세워주셨다. 이같은 헌신이 없었다면 오늘날 대한민국의 발전과 번영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한국의 눈부신 성장에 기독교의 역할이 컸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이 소식을 접한 부산교계지도자들은 “목회 사역지가 부산도 아닌 분이 부산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에 감사하다”며 “우리도 부산세계박람회 유치를 위해 더 기도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 오피니언
    • 기자수첩
    • 광야의 소리
    2023-10-20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