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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모 교회 담임목사, 횡령 혐의로 검찰 송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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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의 모 대형교회 담임목사가 교회 돈 수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경남경찰청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혐의로 창원지역 모 교회 담임목사를 불구속 송치했다고 11일 밝혔다.
담임목사는 교회 돈 약 5억 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교회는 2024년 4월께 2021∼2023년 사이 회계 장부를 확인하기 위한 특별감사를 벌여 약 20억 원이 지출결의서 없이 사용된 것을 알게 되자 지난해 경찰에 고발했다.
경찰은 이 중 약 5억 원이 무단으로 회계용도에 맞지 않게 지출됐다가 이후 다시 교회 통장에 들어온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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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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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사람을 최고라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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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돈화 목사님의 글 가운데 이런 문장이 자주 회자됩니다. “목수는 나무가 최고라고 하고, 석수는 돌이 최고라 하지만, 목사는 사람이 최고라 하고 싶습니다.”
보수적 신학 전통을 가진 고신교회 정돈화 목사님의 이 고백은 처음 들을 때는 다소 의외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곱씹어 생각해 볼수록, 이 문장은 신앙과 교회의 본질을 정확히 짚어 주는 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살아가며 많은 것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일의 성취, 결과, 효율, 성과…. 그러나 신앙의 자리에서 가장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일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나고 있는가?”
아무리 옳은 말이라 해도, 아무리 정당한 주장이라 해도, 그 과정에서 사람이 무너지고 상처 입는다면 우리는 멈춰 서야 합니다.
2026년 우리 교회 청지기 세미나 강사로 오신 목사님이 이런 인상 깊은 말을 하였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잇는 세로 나무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가로 나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세로 나무는 분명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가로 나무가 빠지면 십자가는 사람을 때리는 몽둥이가 되고 맙니다.”
이 말은 오늘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게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열심과 믿음의 고백이 아무리 분명해 보여도, 사람을 향한 사랑과 책임이 빠져 있다면 그것은 복음의 능력을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깊은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믿음은 결코 수직으로만 자라지 않습니다. 하나님께로 향한 믿음은 반드시 이웃을 향해 수평으로 뻗어가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오늘 우리 사회와 교회 안에는 사람을 너무 가볍게 대하는 모습들이 적지 않습니다. 말은 점점 거칠어지고, 평가는 점점 빠르고 단정적이 됩니다. 충분히 알기도 전에 판단하고, 이해하기보다 규정하며, 대화하기보다 낙인을 찍는 일이 너무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가장 쉽게 상처 입는 것은 언제나 ‘사람’입니다.
가수 안치환 씨는 “사람이 꽃보다 더 아름다워”라고 노래했습니다. 배우 김혜자 권사님은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책을 통해, 어떤 이유로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 고백들은 단순히 감성적인 문장이 아니라, 사람의 존엄을 향한 깊은 통찰로 들립니다.
성경은 왜 우리가 사람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지에 대해 더욱 분명한 근거를 제시합니다. 하나님은 죄인 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되, 죄인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시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분명한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가장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마치시고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남기신 마지막 명령 역시 이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줍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마 28:19).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계속해서 나타나셨지만, 제자들 중 일부는 여전히 이 사실을 의심했습니다(마 28:17). 그렇지만 주님은 실수 많고, 믿음이 부족했던 이 제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사실은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일보다 사람을 더 소중히 여기고 있는가?”
“나의 옳음에 앞서 사랑을 먼저 선택하고 있는가?”
“내 말과 태도가 누군가를 세우고 있는가, 아니면 상처를 입히고 있는가?”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신앙은 제도가 아니라 관계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와 봉사, 말과 선택의 목적은 결국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사람을 살리는 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사람을 통해 일하시고, 그 사람 속에는 바로 ‘우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시대 한가운데서, 신앙을 가진 한 사람으로 감히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사람을 최고라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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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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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교수의 역사탐색]아우구스티누스와 국가 권력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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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e, 354-430)는 라틴 기독교를 체계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중세 천년의 사상적 기틀을 마련하고 종교개혁의 정신적 원류가 된다는 점에서 그의 사상은 신학논의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특히 그는 은총의 교리를 확립하여 ‘은총의 박사’(Doctor gratiae)라는 칭호를 얻었고, 예정교리를 취급하여 오늘의 칼빈주의 신학의 원조로 지칭되기도 한다. 오늘 우리가 말하는 칼빈주의 신학은 이미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 속에 드러나 있으므로 워필드(B. B. Warfield)는 그를 “칼빈 이전의 칼빈주의자”라고 부르기도 했다. 또 그는 “역사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릴 만큼 역사의 의미를 정신사적으로 파악하는 혜안을 지니고 있었다. 20세기 저명한 교부학자인 알타너(B. Altaner)는 아우구스티누스에 대해 말하면서, “위대한 주교 아우구스티누스는 테르툴리아누스의 창조적 정열, 오리제네스의 영적 풍부함, 치푸리아누스의 교회적 의식, 아리스토텔레스의 예리한 논리를 플라톤의 높은 이상주의와 사변에 결합시킨 인물이다. 그리고 라틴인의 실용적 감각을 헬라인의 영적 유연성에 일치시켰다. 그는 교부시대의 가장 위대한 철학가이며, 전 교회의 가장 주요하고도 영향력 있는 신학자이다.”라고 평한 바 있다. 그래서 그는 서양 기독교 전통에서 중세의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nas, 1225-1274)와 쌍벽을 이루는 인물로 평가되어 왔고, 하르낙은 아우구스티누스는 “사도바울과 16세기 루터 사이의 가장 위대한 기독교 지도자”라고 불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다양한 주제에 관한 광범위한 논설을 전개하였고, 그가 남기 저술은 엄청나게 많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사망 직후인 431-439년에 『아우구스티누스 전기』를 쓴 포시디우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1,030개의 저서명을 열거한 바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이 말년에 쓴 『「재고론』(Retract)에서는 427년까지 저술한 93개의 저서 목록을 열거했다. 이 저서들은 교부문헌의 최대 총서인 『민뉴전집』 32-47권에 수록되어 있는데, 500쪽의 책으로 환산해도 수십 권의 분량이 된다.
흔히 그의 작품은 자서전적 저술, 성경주석에 관한 것, 변증론적 저술, 교리논쟁적 저술, 경건문학류 등으로 구별되는데, 이 작품을 통해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아 인식에서 시작하여 존재, 진리, 사랑, 하나님 인식의 가능성, 인간의 본성, 영원성, 시간, 자유, 역사, 섭리, 정의, 행복, 평화 등 철학적인 분야는 물론 신앙과 이성의 관계, 악의 문제, 하나님의 은총론과 예정론, 삼위일체론 등 다양한 신학적 주제를 취급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 중 신앙과 이성의 관계, 악의 문제, 하나님의 은총론과 예정론, 삼위일체론 등은 가장 많은 관심의 주제였다.
그 외에 또 한 가지 주제가 국가권력의 범위를 다룬 글이다. 그는 위대한 사상가이자 신학자였고 역사철학자였지만 그의 주장이 다 정당하고 다 옳은 것은 아니었다. 그의 교회관과 성례관은 중세 기독교, 곧 로마가톨릭 교리 발전에 유효한 근거가 되었다는 점 때문에 그는 개신교와 로마가톨릭 양자에 의해 존경과 칭송을 받아왔다. 그의 사상에서 한 가지 잘못된 주장이 국가권력의 한계에 대한 인식이었다. 그는 이단징벌에서 국가권력이나 경찰력을 이용할 수 있다고 보았는데 이것은 종교적 강제와 박해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후에 커다란 문제를 야기하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단과 대결하면서 국가권력의 구속력과 강제력을 이용하고자 했는데, 이 이론을 꼼뻴레 인뜨라레(Compelle intrare)라고 말한다. ‘들어오라고 강요하라,’ 혹은 ‘억지로라도 들어오게 하라’라는 의미인데 ‘강제권 이론’으로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신약성경 누가복음 14장 23절에 근거한 이론이었다. 즉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에 근거하여 이 논리를 폈다. 즉 아우구스티누스는 누가복음 주석에서 두 동사를 사용한다. 즉 'coge intrare'(들어오라고 강제하라. 아프리카 텍스트)와 ‘compelle intrare'(들어오라고 강요하라, Vulgate)를 사용하면서 억압의 이론을 발전시켰다(게리 윌스, 『성 아우구스티누스』, 186). 이것을 보면 아우구스티누스가 활동했던 5세기 당시 교회와 국가가 분리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콘스탄틴의 기독교 공인(313) 이후 황제는 교회와 신앙문제에 대한 사법권을 행사했고, 공의회를 소집하고(325) 정통과 이단 시비를 가리기도 했다. 이단자들에 대한 벌금, 재산몰수, 고문, 사형 등의 형벌을 가하는 것을 정당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핍박받았던 도나티스트들(Donatists) 조차도 이단을 반대하는 법과 강제력에 도전하지 않았다. 단지 이런 법이 자기들의 집단에 적용되는 것을 반대했을 따름이다. 교회 규율문제(권징의 문제)에 있어서만 정통신앙과 다르다는 입장이었고, 그 결과로 분리주의적인 자기들의 집단이 이단이 될 수 없다는 인식이었던 것이다. (다음 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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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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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말씀]기적을 부르는 일상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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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이어의 기적에 대한 본문 말씀을 살펴본다. 날은 저물어 먹을 것을 얻고자 하되 거기는 아무것도 없는 빈 들이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다. 네가 문제를 해결해 보라는 것이다. 안드레가 한 아이에게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왔다. 남자만 오천 명이었으니 여자와 어린이를 합치면 거의 2만 명이었다고 한다. 예수님께서는 50명씩 앉히라고 하셨다. 모든 것은 질서가 있다. 사랑에도 질서가 있다고 한다.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고,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경천애인).
예수님께서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나누어 주니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만 열두 바구니시에 거두었다. 예수님께서는 버리는 것이 없이 모으라고 하였고 열두 광주리는 완전수이다. 그만큼 주님의 은혜는 풍성하고 넘치는 것이다. 오병이어 기적은 4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 믿는 자에게는 누구에게나 기적이 일상이 된다. 건강의 기적, 자식 농사의 기적, 날마다 말씀 안에서 기적같은 일상에 감사하고, 기적의 연속을 원하고 바라고 기도해야 한다. 다들 안 된다고 포기하는 순간에 안드레와 한 아이의 헌신은 기적의 마중물이 되었다. 작은 것에 감사할 때 큰 것이 온다. 소박한 데서 대박이 나고 평범한 데서 비범한 것이 나타난다.
한낱 어린아이의 감사라도 약육강식, 무한경쟁, 승자독식의 세상에서 힘없고 가진 것이 없지만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 있게 한다.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사용되는 사람은 잘난 사람, 예쁜 사람이 아니다. 성경을 보면 주께서는 소자, 약자, 빈자를 들어 쓰신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를 미천한 종, 작은 자로 여겼기에 하나님께서 그를 존귀하게 들어 쓰셨다. 달란트 비유에서는 적은 일에 충성하면 많은 것을 주신다. 안드레는 그저 보잘것없는 음식을 내놓는 어린아이를 앞으로 인도했고, 본인이 믿는 대로 형 베드로를 전도하는 순수함이 있었다. 먼저 믿었다고 텃세를 부리지 않고 형을 데리고 와서 예수님의 수제자가 되게 하였다.
오병이어 기적은 민생고를 해결하였다. 주님은 말씀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실제로도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사랑하는 자녀들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이다. 기적 이후에도 예수님께서는 버리는 것이 없게 하셨다. 부족함이 없고 틀림이 없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다. 교회는 다양성 가운데 일치를 이루는 다일공동체이므로 어린아이와 어른, 약자와 강자가 공존한다. 열두 광주리가 남은 것은 하나님이 쩨쩨한 분이 아니라 풍성한 은혜를 베푸시는 영광의 주님이기 때문이다.
일상의 감사를 회복하라. 일용할 양식을 감사하라. 하루 삼시 세끼에 감사하라. 잠언의 말씀처럼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바울처럼 내 은혜가 족하도다, 다윗처럼 내 잔이 넘치나이다, 하박국처럼 아무것도 없을지라도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고 기뻐하리로다 하는 것이 진정한 성도의 모습이다. 비록 신통치 않더라도 내게 있는 작은 것에 감사하고, 기꺼이 주님께 올려 드릴 때 기적이 일어난다. 매일 감사의 깃발을 높이 들 때 하루하루 일상의 기적이 나타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가정을 위하여 내게 있는 작은 것을 들 때 기적이 일어난다. 다윗의 물맷돌, 모세의 지팡이, 라합의 붉은 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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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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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법특강]장로직의 시무 기간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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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는 교파를 불문하고 장로직의 시무 연한을 대부분 만70세까지로 정하고 있다. 그런데 역사에서 교회법은 장로의 시무(봉사) 기간에 대해 어떻게 말할까? 우선 성경은 장로의 시무가 종신인지 한시적인지에 대해서 명확하게 말하고 있지 않다. 장로가 종신으로 선출되었다는 인상을 성경에서 받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이유로 많은 교회가 직분이 종신이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종교개혁가 칼빈의 원리를 따라서 형성된 개신교회는 다음 이유로 한시적 봉사를 더 선호했다: 교회 내부에서 일어날 수 있는 독재와 교권주의를 예방하기 위해, 둘째, 교회 치리에 교인의 영향을 더욱 늘이기 위해 셋째, 교회에 잠재한 다양한 능력과 은사가 가능하면 더 많이 드러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16세기 종교개혁 당시를 보면 교회마다 장로 시무 기간이 조금씩 달랐다. 제네바교회는 임기 1년이 원칙이었다(1541년). 제네바는 시의원처럼 매년 12명 장로를 2월에 임명하고(한 해의 시작 이전) 임기는 1년으로 정했다. 재임명 될 수도 있었으나 시무가 끝날 수도 있었다. 프랑스 교회 역시(1559년) 칼빈의 노선을 따라 장로의 봉사가 종신이 아니라고 규정했다. 네덜란드 교회는 엠던 총회(1571년)와 돌트 총회(1619년)에서 장로 임기를 2년으로 정했다.
한편 유럽의 신앙 박해로 영국 런던과 인근에 거주하면서 세워진 난민교회(불어, 네덜란드어, 이탈리아어를 사용하는 난민교회)에서는 장로 임기를 종신으로 규정했다(1555년). 교회에 유익하고 성경에 더 가깝고 직분에 합당하는 등 11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사도들이 장로를 임시로 세웠다는 성경적 근거가 없다는 점, 무엇보다 현실적으로 임기제를 시행할 경우 양을 모르는 목자, 목자를 모르는 양이 나오는 상황을 우려했다.
스코틀랜드 장로교회는 처음에는 장로 임기를 1년으로 정했으나(1560년), 1578년 교회법에서는 기본적으로 장로 시무를 종신으로 규정하면서도 윤번제를 도입했다: “장로들은 그 직무를 행하기에 적합한 하나님의 은사를 가지고서 그 직분에 한 번 부름을 받았다면, 다시는 그 직분을 떠날 수 없다. 일정한 수의 장로들이 각 회중에 의해 선출될 수 있으나, 그들 중 일부는 적절한 기간 다른 사람으로 교체할 수 있다. 마치 율법 아래에서 성전을 봉사할 때 규례를 따랐던 레위인처럼 말이다. 회중마다 장로들의 수는 제한될 수 없으나, 사람들의 범위와 필요를 따라서 이루어져야 한다.”
바로 이 윤번 제도가 미국 장로교회에 영향을 끼치고, 한국장로교회에 도입된다. 미국장로교 총회는 우여곡절 끝에 1857년 임기제나 다름없는 장로 윤번제(rotary eldership)를 도입한다. 장로직은 항존이나 시무 기간은 개체교회 재량에 맡겼다. 개체교회가 공동의회를 통해 장로의 시무 기간을 종신으로 혹은 임기를 정해 세우고, 임기제 경우에는 3년으로 규정했다. 현재 이 전통을 이은 교회는 미국정통장로교회다. 윤번제 규정은 핫지(J.A. Hodge) 목사가 쓴 “교회정치문답조례”(1882년)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이 책은 1917년 곽안련 선교사가 한글로 번역하여 1919년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 참고서적으로 채용되었다: “치리장로는 임기를 정하여 선출할 수 있는가? 지교회가 무흠입교인 투표에 의하여 일정 기간 시무할 치리 장로를 선출하는 것이 가능하다. 장로직은 항존이나 직분과 직무의 이행과는 엄연히 구별이 있고 시무장로와 직무를 이행하지 않은 장로와의 구별도 있다. 얼마 동안의 임기를 가지고 선출하는가? 장로의 임기는 3년을 넘지 못한다”(541-542문답).
한국장로교회는 1960년 초반까지는 장로 윤번제를 시행했다. 그러다가 이후 대부분 만70세로 시무 연한을 정했다. 지금까지 본대로 역사에서 장로의 시무 기간은 다양하게 이해되었다. 시무 기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장로의 항존 직무를 우리가 어떻게 바르게 알고 봉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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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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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성 목사] 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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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담임목회를 할 때 약 7년 동안 하루 3시간을 자며 사역을 했다. 일주일에 제자훈련을 4팀, 한번에 5시간씩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잠에서 깨어났는데, 몸이 말을 듣지를 않았다. 아픈 곳은 없는데 온몸에 힘이 없고, 일어날 수가 없었다. 산호세(San Jose)에 중국 할아버지 한의사가 유명하다고 해서 찾아갔다. 맥을 짚더니 85세보다 더 기력이 없다고 했다. 주일 설교만 겨우 감당하고 거의 2년을 누워 지냈다.
휴가 가는 것을 성도들에게 죄송하게 생각해서 말도 못 꺼냈다. 쉬는 것을 부끄러워한 시간들이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건강을 다 상할 정도로 사역하는 것을 과연 충성이라 하실까? 사역하다 누워 있는 사역자를 기뻐하실까?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아담과 하와에서 허락한 첫날은 놀랍게도 안식일이었다.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에서 쉬고, 즐기고, 누리도록 하신 것이 첫 선물이다. 일이 먼저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누리고 즐기는 것이 먼저였다.
쉰다는 것은 하나님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사역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며 영적인 것이다. 사역이 내 손에 달려 있지 않음을 인정하신 시간이며, 맡기고 쉬는 것이 사역을 더 잘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오래 전 이정석 교수(플러신학교)가 수련회 강사로 온 적이 있다. 그런데 “대체 잠은 언제 자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휴가를 가라, 휴가를 가되 기도회, 세미나 가지 말고 책도 읽지 말고 그냥 빈둥빈둥 놀아라”고 강력히 권한 적이 있다. 쓰러지고 나서야 그것이 얼마나 필요한 시간인지, 노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다.
독일에서 사역할 때는 휴가가 한 달이었다. 첫 휴가를 앞두고 권사님 한분에게 “10월 중에 휴가를 가려는데 괜찮을까요?” 상의했더니 버럭 화를 내셨다. 교회에서 휴가를 주었으면 언제 갈지, 어디로 갈지, 무엇을 할지는 목사님의 고유한 영역이지 누구도 뭐라 할 수 없다며 운영위원들에게 통보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정말 교회 성도 누구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다.
현재 교회를 부임하며 아무 것도 요구한 것이 없다. 다만 휴가를 20일 달라고 했다. 옛날 같으면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제는 쉼이 너무 중요해졌다. 멀리 떠나서, 평소에 만날 수 없었던 지인들을 만나고, 가고 싶은 곳을 다녀온다. 평소에 읽지 못했던 분야의 책을 읽고 영화도 본다.
사역지를 옮길 때 미리 하나님께 2달의 여유시간을 가지고 싶다고 기도한다. 새로운 사역지에 가면 한동안은 정신없을 텐데 미리 충분히 쉬어야 사역에 집중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지친 몸과 마음을 가지고 새로운 사역지로 가게 된다.
사역자들이여! 쉬는 것을 부끄러워 말라. 일상 속에서 틈틈이 여유시간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께 다 맡기고 잠시 떠나가는 것도 너무 중요하다. 사역과 휴식의 균형, 사역영성 못지않게 쉼의 영성, 사역자들이여! 휴식을 부끄러워하지 말라. 휴식을 누리고 즐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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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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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A교회 사태, 교단탈퇴까지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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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4년 9월 노회로부터 ‘담임목사 6개월 정직처분’을 받은 A교회가 또다시 혼란스럽다. A교회가 소속된 B노회는 작년 12월 19일 전권위원회를 구성하고 수습에 나섰지만, 사실상 수습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전권위원회는 지난 12월 23일 “교회헌법 정치 제9장 제106조에 의거, A교회 당회장 및 당회원의 모든 권한을 2025년 12월 23일 오전 10시부로 일시 정지한다”며 ‘권한 정지 및 예외 사항에 관한 결의문’을 통보하고, 교회내 결의문을 부착했지만, A교회는 결의문을 강제로 제거하고, 대신 공동의회 개최 공고문을 부착했다. 이 공고문에는 2025년 1월 4일 공동의회를 개최한다는 것과 안건이 정관개정, 교단탈퇴, 장로 권고 휴무 건을 담고 있다. 하지만 1월 4일 임시당회장 불출석으로 공동의회는 안건을 다루지 못했고, 대신 ‘공동의회 개최 및 임시당회장 선임’을 위한 법원 제출용 교인 서명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 2차 전권위원회 출석 요청에 참석하지 않았던 C 목사는 1월 8일 3차 통보에 참석하여 “(교단탈퇴를)성도들이 원하고 있다”며 교단탈퇴를 준비하고 있음을 인정했다. 노회 전권위원장은 “판례상 제적 2/3 이상이 서명한다면 법원에서 임시당회장 선임과 공동의회를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 전에 전권위원회가 수습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현재 상황은 솔직히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전권위원회도 교단 고문변호사를 통해 법적 자문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B노회 재판부는 2024년 9월 C 담임목사에 대해 ‘횡령’과 ‘직권남용’으로 정직 6개월을 처분했다. 당시 재판부는 “교회 부속건물의 임대료 및 관리비 명목으로 7년 2개월 동안 1,450만원을 받았는데 이 사실을 교회에 알리지 않고, 임의로 관리하고 지출하였으며, 코로나 지원금 잔액 135만원도 재정부에 반환하지 않고 임의로 지출하였다. 비록 사무간사를 통해 관리해 왔고, 선한 목적을 위해 사용했다고 하나 이는 횡령에 해당하며 교회법에 위배되는 일”이라고 판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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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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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병원, 에코델타시티 시대 열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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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병원(최종순 원장)이 본격적으로 에코델타시티 스마트 병원 건립에 나설 예정이다. 복음병원은 지난 12월 15일 법인이사회(이사장 이상일 목사)에서 에코델타시티 스마트병원 건립 추진 현 상황에 대한 보고를 했다. 이사회는 토지 분양 공급의 차수의 조건에 따라 복음병원의 조건에 가장 부합하는 차수에 입찰하도록 지시했다.
에코델타시티 부지 소유주인 한국수자원공사는 지난 12월 10일 ‘에코델타시티 분양공고(헬스케어클러스터, 기간 12월 10일 - 24일)’를 발표했다. 하지만 이 입찰에는 지원자가 없어 유찰됐다. 그동안 경쟁자로 알려진 부산대 병원이 사실상 입찰을 포기한 것으로 알려져 복음병원이 유일한 입찰자가 될 전망이다. 하지만 복음병원도 현 부지(1만 8천명)에 대한 땅값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몇 차례 유찰 될 경우 부지 크기가 현재보다 작게 조정될 수 있기 때문에 적절한 부지 입찰이 공고될 경우 입찰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만약 입찰에 성공할 경우 3년 내 건축에 나서야 한다. 복음병원 집행부는 향후 예상 건축비 등을 포함한 구체적인 사업 계획을 이사회에 보고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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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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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들의 정교유착 비리 밝혀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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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 통일교와 신천지 등 종교단체의 정치 개입 의혹 수사를 위한 검경 ‘정교유착 비리 합동 수사본부’가 출범했다. 대검찰청은 6일, "정교유착은 민주주의의 미래를 위협하는 중대한 사안이므로, 검찰과 경찰이 협력해 의혹을 신속하고 철저하게 규명하기 위해 합수본을 구성했다"고 밝혔다.
합수본은 김태훈 서울남부지검장을 본부장으로 총 47명 규모로 꾸려지며, 정관계 인사에 대한 금품 제공과 특정 정당 가입을 통한 선거 개입 등 정교유착과 관련된 의혹 일체를 수사할 계획이다. 통일교와 신천지의 불법 로비의혹에 대한 고강도 수사가 전망되면서 이단 사이비와 정치권력 사이 정교유착의 실체를 밝혀 낼 수 있을 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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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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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연구]길 떠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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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에 아름다운 시작이 있길 원합니다. 이스라엘은 사백삼십 년 동안 살던 애굽을 떠나 위대한 역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노예로 노역을 하던 라암셋(고센의 다른 이름)을 떠나 숙곳을 거쳐 광야 끝 에담에 장막을 쳤습니다. 20절입니다. <그들이 숙곳을 떠나서 광야 끝 에담에 장막을 치니> 그들은 마라톤 출발선에 선 선수들 같았습니다. 그들은 가나안을 향해 광야로 접어들기 직전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광야가 초행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도 광야를 경험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이 살던 고센은 기름진 나일강 유역의 삼각주 지역이므로, 광야와 전혀 다른 곳이었습니다. 그들은 거기서 노예였지만, 풍요로웠습니다. 그러나 광야는 거주지도 없고, 척박한 곳입니다. 광야를 경험한 유일한 사람은 모세였습니다만, 그가 경험한 미디안 광야는 이스라엘이 통과할 광야와 여러 상황이 전혀 달랐습니다. 미디안에서 모세는 이드로의 사위로 정착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수백만 명이 함께 먹고 자고, 이동해야 했습니다. 모세가 경험한 광야 생활과는 전혀 다른 광야 생활일 게 뻔했습니다. 미지의 세계였고, 백성들은 두려워했을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그렇습니다. 우리도 미래를 모릅니다. 두렵습니다. 2026년을 시작했지만, 한 치 앞도 모릅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의 형편을 잘 아셨습니다. 애굽을 떠나 가나안으로 가라고 하시는 분이 그들을 방치하실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무책임하신 분이 아닙니다. 반드시 길을 인도하시고, 도우십니다. 이스라엘을 도우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도 도우실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를 아는 것보다 하나님깨서 우리를 더 잘 아십니다.
본문은 광야로 나가는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도우셨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본문에서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그들 앞에> 가셨습니다. 21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기까지 도우신 에벤에셀의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미래를 위해 미리 준비하시는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이십니다. 모리아 산에 먼저 오셔서 아브라함과 이삭을 위해 숫양을 준비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도 우리보다 먼저 가셔서 준비하실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형편에 꼭 맞게 인도하셨습니다.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2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광야의 낮은 뜨겁습니다. 햇볕을 가릴 구름이 필요하기에 구름 기둥으로 차일을 펴셨습니다. 광야의 밤은 캄캄하고 춥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불기둥으로 따뜻하고 밝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낮에 불기둥, 밤에 구름 기둥을 보내는 일은 없습니다. 정확하게 처지에 맞게 은혜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다른 이가 우리보다 더 좋아보여도, 부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의사는 밥을 먹어도 될 환자에게는 밥을, 죽을 먹어야 할 환자에게는 죽을 주십니다. 죽에 감사하며 살면, 후에 더 좋은 것을 먹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맞춤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22절은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낮에도, 밤에도 그들과 함께하셨습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이 되어 주셨습니다. 백성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낮에도, 밤에도 전진할 수 있었습니다.
2026년도에 한국기독신문의 독자 여러분 모두에게 이러한 하나님의 선한 인도가 함께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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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