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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뒷것의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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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전 가수며 연출가 김민기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유명인들 중에서도 동명이인이 많으니 “아침이슬”의 주인공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가 떠나기 석 달 전 어느 공중파 방송에서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라는 3부작 다큐멘터리를 방영한 적이 있었지요. 제목부터 전율을 느꼈습니다. “뒷것”이라니, ‘앞것’이 아니라 “뒷것”이란 말인가? 그렇습니다. 의도했건 그렇지 않았든 간에 분명하게 누렸던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그리 길지 않은 일생을(1951년생) 그는 철저하게 ‘앞것’이 아니라 “뒷것”으로 살고자 애썼습니다. “아침이슬” 탄생부터 그랬습니다. 1971년 어느 날 습작처럼 발표하고 쓰레기통에 던져버린 악보, 현장에서 까닭모를 놀라움을 느꼈던 후배가 주워서 펴고 이어 붙여 연습하며 발표해도 되겠냐고 물었을 때 흔쾌하게 허락해서 세상에 나타나게 된 노래가 바로 “아침이슬”이었기 때문입니다. 원곡자인 그도 훗날 이따금 불렀지만 어느덧 저항의 상징이자 민주주의의 전설이 되어서 수백만의 사람들이 함께 불렀던 이 노래의 앞것으로 후배(양희은)를 세우고 스스로는 기꺼이 “뒷것”을 자처했습니다. 동물원, 들국화, 강산에, 박학기, 장필순, 권진원, 유리상자도 그가 후원한 자들입니다. 고 김광석의 공연장을 제공했으며, 세계적인 재즈 싱어 나윤선도, 대가수 윤도현에도 모두 그의 후광이 서렸습니다. 얼마나 쟁쟁한 앞것들입니까!
뒷것은 뒤에서 그저 서 있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보이지도 않는 무대 뒤편에서 처절하게 희생하고 헌신하는 존재가 아닐까, 김민기 때문에 떠오르는 상념(想念)입니다. 1991년, 그는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그래도 이십 년 노래 인생을 정리하면서 기념 음반을 발매하기로 하고 제법 묵직한 계약금을 받았습니다. 그 돈으로 어려운 형편의 연극인들을 위해 만든 공간이 바로 <학전(學田)>입니다. 그리고는 묵묵하게 뒷것 역할을 감당했는데 그가 만든 이 배움터(학전)을 통해서 마침내 세상에 빛을 보게 된 대표적인 앞것들이 ‘학전 독수리 5형제’라 불리는 설경구, 김윤석, 황정민, 장현성, 조승우 등입니다. 또 얼마나 쟁쟁한 앞것들입니까! 하지만 본인도 잠깐 연극계에서 앞것처럼 자리매김할 때도 있었습니다. 흥행가도를 달렸던 록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의 연출가로서 말입니다. 그러나 공연이 잘 될수록 그는 더 낮은 곳을 바라보았습니다. ‘우리는 친구다’, ‘개똥이’ 같은 어린이극을 잇달아올린 것입니다. <지하철 1호선>을 멈추면서까지 그랬습니다. 이유를 물어보니 “돈 되는 일을 하다 보면 돈 안 되는 일을 못할 것 같아서”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원래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공장에서 함께 일하던 노동자들이 합동결혼식을 부르는 장면을 보면서 만든 노래가 애국가의 대체곡으로까지 거론되는 <상록수>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도대체 그는 왜 그렇게까지 뒷것의 인생을 살고자 했을까요? 수줍은 성격 탓이었을까요? 평생 저항의 사람으로 살았으니 그런 이유 같지는 않습니다. 스스로는 자질이 부족하다 여겼기 때문일까요? 서울대미대를 졸업하고 기타 하나로 당대 음악의 천재들까지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는 그 실력을 보면 또 그것도 아닌 듯합니다. 오히려 그렇게 해서 후대에 더 이름을 남기고자 했을까요? 니체는『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책세상, 2001)에 “수정된 누가복음 18장 14절”이라는 제목으로 “자신을 낮추는 자는 높아지기를 원하는 것이다”라고 써놓았습니다(99 p.). 그럴 수도 있겠지요. 지금은 낮은 곳에 있으나 언젠가는 높아지리라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지 않겠습니까? 아니, 오히려 낮춤을 이용해서 높임을 받으려는 영악한 목적을 지닌 채 살아가는 음험한 자들은 또 없을까요? 그러나 적어도 예수는, 니체가 어떤 의도로 또 날카로운 펜끝을 누구에게로 향했는지는 모르지만, 결코 그런 부진정한 뒷것론을 펼친 적도 없고 또 그런 뒷것을 가장하며 사시지도 않았다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빌 2:8-9), 예수야말로 뒷것 중의 뒷것이요 그가 진 십자가야말로 뒷것의 극치가 아닙니까?
김민기가 노래패로 활동을 펼쳤던 곳은 “청개구리의 집”이었는데, 서울 명동에 있던 와이더블유시에이(YWCA) 회관 한쪽에 마련된 무대였습니다. 한국에서는 1922년 시작된 YWCA는 주지하다시피 “Young Women’s Christian Association”의 약자입니다. 수도 없이 노래했을 그곳에서 김민기는 많은 젊은 여성 그리스도인(Christian)을 앞것으로 세우시는 위대한 뒷것의 존재를 만나지 않았을까요? 『상록수』의 실제 모델이었던 최용신도 YWCA 파견 교사였다 하니, 혹시 김민기의 <상록수>라는 제목도 연관이 있지는 않을까요? 누구도 알지 못하는, 예수와 김민기의 신비한 만남은 없었는지, 뒷것 김민기는 어쩌면 예수의 뒷것으로부터 나오지는 않았는지, 자못 궁금합니다. 그 은밀한 접점 가운데서 탄생했을지도 모르는, 고인의 노래 중에서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금관의 예수>를 소개하며 글을 맺습니다. “얼어붙은 저 하늘, 얼어붙은 저 벌판 / 태양도 빛을 잃어 아 캄캄한 저 가난의 거리 / 어디에서 왔나 얼굴 여윈 사람들 / 무얼 찾아 헤매이나 저 눈 저 메마른 손길 /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소서”(1973년, 김지하 글, 김민기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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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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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교육나침반] ALL GENERATION 가정을 품는 여름사역 현장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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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 한국교회의 수많은 교회는 여름성경학교를 통해 다음세대를 믿음의 세대로 세우는데에 진력하였습니다.
특히 올해는 다음세대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다음세대의 가정을 대상으로 하는 성경학교와 수련회가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을 보게 됩니다.
다음세대가 살아가는 현장인 가정을 품지 못하면, 결국 다음세대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은 단지 이론이 아닌 우리 모두가 몸소 경험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러하기에 많은 교회는 점점 더 다음세대의 가정을 품는 사역을 전략적으로 준비하여 실행하고 있습니다.
향기나무교육개발원이 매년 여름 개발하여 보급하고 있는 찬양과 복음설교, 복음놀이는 모두 교회와 가정이 함께하는 신앙교육현장을 위한 온세대 가정사역 프로그램입니다.
올해 많은 교회가 향기나무교육개발원의 <느헤미야> 주제의 복음놀이 프로그램으로 ‘무너진 가정을 교회로 다시 세우자’는 슬로건을 걸고 온가족, 온세대 성경학교와 전교인 수련회를 진행하셨습니다.
과연 교회가 가정을 품는 자리를 마련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온 세대 가정이 느헤미야 말씀에 담긴 창조타락구속의 복음을 성경학교와 수련회 처음부터 끝까지 찬양과 설교, 복음놀이를 통해서 경험하였습니다.
한 손에 모두 고자극 스마트폰을 들고 수시로 스마트폰을 보면서 앉아있는 어린이와 청소년들, 그리고 그들의 부모들은 도무지 긴 시간 동안 복음을 듣고 경험하기 힘들어 보였습니다.
드디어 여름성경학교와 수련회가 시작되고, 찬양과 설교와 복음놀이가 거듭될수록, 부모와 자녀들의 손에 꼭 쥐어져 있던 스마트폰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추상적인 언어로만 전하지않고 온몸으로 경험하는 온세대 복음놀이로 전하자 복음은 스마트폰이 주는 재미를 초월하는 고자극 복음자극이 되었습니다.
MZ세대 부모와 알파세대들의 입술에서 연신 “너무 재미있어요!"가 터져나옵니다.
이번 여름에 실제로 온가족 성경학교와 수련회에 참여하였던 아동, 청소년, 부모세대의 후기를 몇 가지 공유드립니다.
“온가족이 함께 복음을 듣고 놀이하면서 한마음으로 활동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고 행복해요.”
“복음풍선을 날리고, 물총놀이하며 마귀와 서바이벌 게임 한 게 가장 재미있었고, 또 하고 싶다. 여름성경학교를 한 후, 예수님과 한발짝 더 가까워졌다. 예수님은 우리를 너무 좋아하는 거 같다.”
“복음 벽돌을 하나씩 빼면서, “하나님을 떠났어요” “사랑을 잃었어요”..라는 말을 하다보니,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교회의 무너진 곳이 우리의 연약함 때문이었다고 생각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시 무너진 성을 세우고 싶어요.”
“부모님이랑 함께 십자가만들기 놀이를 할 때 활기차고 감동적이었습니다.”
“복음서바이벌놀이를 할 때 말씀과 믿음이 없으면 우리의 삶도 엉망이 된다는 것을 알았고, 너무 활기차게 놀고 갑니다.”
“예수님이 우릴 위해 십자가에 목숨을 바쳤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다. “
“찬양과 복음설교, 여러 놀이를 하면서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
“부모님 분들이 저희를 지켜주신 것처럼 저도 이 다음에 부모가 되면, 말씀으로 무장해서 우리 자녀를 지켜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교회만 다니는 부모가 아니라, 말씀으로 무장한 믿음의 부모가 되어 우리 딸을 지켜주어야겠다. “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가장 귀중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임을 다시 개닫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믿음의 유산을 자녀들에게 온전하게 전하여 믿음의 자녀로 바르게 설수 있기를 기도하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
“우리 아이들을 유혹하는 것이 많은 세상을 느꼈고, 말씀무장과 기도로 아이들에게 믿음의 본을 보이며, 우리 아이들에게도 말씀과 기도를 심어주어야겠다고 결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
“우리 아이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다른세대가 아닌, 신앙을 이어가는 다음세대가 되기를 더욱 열망하게 됩니다. “
“부모와 자녀가 함께 복음을 받고, 복음의 은혜를 경험하는 시간들이 너무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추억이 될 거 같아요. “
“이제는 나 자신만을 위한 말씀이 아니라, 다음세대를 타락한 세상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말씀으로 무장해야하는 큰 책임감을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덤으로 너무나 즐거웠습니다. “
“오늘 자녀들과 귀하고 따뜻한 시간을 보낸 거 같습니다. 말씀으로 회복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말씀과 기도로 가정을 지키며 회복하는 경건한 가정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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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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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세대칼럼] 엘리 가정이 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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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4장 12절부터는 엘리 가문 몰락에 대한 기록이다. 13절 말씀에는 전쟁에서 달려온 베냐민 사람이 언약궤를 빼앗긴 것과 홉니와 비느하스가 죽은 소식을 전한다. 그러자 온 성읍이 떠들썩하고 공포와 부르짖음으로 가득했다고 기록한다. 이로 인해 엘리가 죽었다. 그리고 그 소식을 들은 그의 며느리도 죽었다. 이것은 멸망의 도미노이고 부메랑이다. 부패하고 타락한 제사장 집안에 저주가 한꺼번에 몰려온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지금 우리가 행동하는 모든 것이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한 씨 뿌림과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엘리 제사장과 그의 두 아들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선하게 살고 의롭게 행동했더라면 이 가정과 이 나라에 이런 재앙이 일어났겠는가?
엘리의 두 아들은 삼상 2:12에 보면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라고 했다. 제사장의 아들들이 여호와를 몰랐다고 기록한다. 누구보다도 하나님에 대하여 잘 알고 있어야만 했던 그들이 하나님을 몰랐다. 그들에게는 체험적 신앙을 통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없는 자들은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제멋대로 행동하는 불법자들이다. 이들은 제사를 멸시했고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을 욕보였다. 이런 자식들을 아버지 엘리는 제대로 교육을 시키지 못했다. 아들들의 악행을 듣고도 ‘왜 그런 일을 저질렀느냐? 그러지 말아라, 주변에서 들리는 너희에 대한 소문이 좋지 못하다’라는 그 정도로 꾸짖고 말았던 것이다. 이렇게 아버지가 책망해도 그 아들들은 듣기를 거부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은 이들을 죽이기로 작정하셨다고 사무엘상 2장 25절은 기록하고 있다.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음이더라.’ 하나님 앞에서의 바른 신앙생활의 모습을 가르치기에 엘리 제사장은 소홀했다. 말씀을 가볍게 여기고 제사를 멸시한 삶의 결과가 바로 오늘 성경에 기록된 대로 전장에서의 비참한 최후로 나타났다. 이 아들들의 죽음과 언약궤를 빼앗겼다는 말을 듣는 순간 엘리 제사장도 넘어져서 죽었다. 출산을 앞두고 있던 그 며느리도 태어나는 아이에게 ‘이가봇’이라는 이름이 붙여주고 죽었다. 이것은 성경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의 저주스러운 한 가정의 몰락 장면이다.
요즘 다음 세대가 교회를 떠나는 현상을 보게 된다. 중직자의 자녀들도 교회를 떠난다. 우리가 행한 삶에 대한 결과를 반드시 보게 될 것이다. 선한 행실을 한 사람은 선함과 의로움과 생명의 열매를 거두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악한 행실을 일삼는 사람은 실패와 두려움과 궁극적으로는 죽음의 열매를 거두게 될 것이다. 로마서 2:6-8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믿음의 다음 세대에게 진리의 말씀을 따르도록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께 예배자로 살도록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런 선한 행실을 한 사람은 선함과 의로움과 생명의 열매를 거두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6:7에서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신다. 여러 사람이 부인하고, 유력한 인사와 뛰어난 학자들이 부인하더라도 우리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많은 나라와 민족이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더라도 하나님은 그 소리를 다 들으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그들의 말과 행실과 마음속 생각까지 읽고 계신 분이시다. 오늘 하루의 삶과 예배를 보시고 받으시고 기록하시고 기억하시는 분이시다. 선한 것은 선으로 악한 것은 아픔으로 갚으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심고 있는가? 머지않아 그 심으신 것의 열매를 거두게 될 날이 반드시 이를 것이다. 다음 세대에게 선한 행실을 심고, 진리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도록 가르치는 우리가 되길 기도한다.
우리는 엘리 가정을 통하여 말씀이 희귀하고 이상이 없던 시대,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던 그 시대를 보면서 요즘 시대를 읽을 수 있다. 그리고 무능한 지도자 엘리 제사장의 모습을 보았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잃어버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가게 만들었던 그 모든 책임이 사실상 엘리 제사장에게 있었다. 그의 실패한 삶을 통하여 오늘 우리가 교훈을 받아야만 한다. 우리가 오늘 심는 것은 내일과 모래, 우리 혹은 우리의 자손들이 거두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게 하실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잘 심어야 한다. 바르고 옳은 것을 심어야 한다. 아름다운 열매를 거둘 수 있는 것으로 심어야 한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영광을 받으실 만한 것으로 심어야 한다. 선한 행실을 심고, 진리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우리가 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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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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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다닌다’는 사실을 숨기는 청소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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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데이터연구소가 최근 기독 청소년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학교에서 크리스천임을 드러내고 신앙 얘기를 하는 편’이라는 응답이 43%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고, ‘교회에 다니는 것을 말하는 것이 꺼려짐’, ‘기독교인이라는 것 때문에 비난이나 놀림을 받은 적이 있음’이라고 응답한 비율도 각각 19%, 17%로 조사됐다.
이에 대해 목회데이터연구소측은 “크리스천임을 드러내는 것에 떳떳하지 못하고, 심지어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이 친구들 사이에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은 그만큼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학교 문화권에서도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기독 청소년들에게 신앙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는 인물은 목회자가 아닌 어머니 인 것으로 나타났다. ‘신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누구인가’라는 조사에서 ‘어머니(30%)’를 꼽은 청소년들이 가장 많았고, ‘지도 목회자/사역자(25%)’, ‘아버지(14%)’, ‘교회 친구/선후배(10%)’, ‘교회학교 선생님(8%)’, ‘학교 친구/선후배(5%)’, ‘형제 자매(4%)’ 등의 순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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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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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석 추가 구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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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MS 정명석이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는 가운데, 구속 심문을 마친 뒤 도주우려로 인해 추가 구속됐다. 국민일보 보도에 따르면 정명석은 지난 15일이 항소심 구속기간 만료였으나,
‘불구속 상태일 경우 도주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추가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구속기간은 2개월 단위로 2차에 한해 갱신할 수 있어 최대 6개월 연장이 가능하다.
1999년 정명석은 여신도 성추문 사건에 휘말리자 해외 도피 생활을 전전했다. 2007년 5월 중국 경찰에 의해 검거되어 10개월간 조사를 받다가 한국과 중국 간의 범죄인 인도조약에 따라 2008년 2월 한국에 들어와 강간치상, 강간, 강제추행 등으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2018년 2월 형 만료로 대전교도소에서 전자발찌를 차고 출소했으나 불과 4년 만인 2022년 또다시 여신도를 성폭행하고 강제 추행한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 정명석은 1심에서 징역 23년을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과거 해외 도피 생활을 한 이력이 지금에 와서 ‘추가 구속’으로 귀결되었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정씨는 22일 항소심 6차 공판이 예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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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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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교계 언론 5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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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 모이면 필연이 되고 필연이 모이면 역사가 된다”고 한 말은 대한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김구가 사형 집행 사흘 전 고종 황제에만 부여된 낡고 처음 설치된 전화기로 사형 집행을 정지하라는 고종의 한 통의 전화가 그의 일생을 바꿔 놓았다.
생전에 언론이란 낱말도 생소한 언론과는 거리가 먼 맨땅에서 헤딩하는 것이나 다름없이 첫 발을 딛고 시작한 교계 언론 초년생이었던 1969년 8월 초여름 날 삼복 더위 속에서 우연한 교계 지인(이관동씨)의 소개로 광복동 입구에 위치한 작은 3층 자리 건물 안에 마련된 ‘교회연합신보 부산지사’ 수습기자로 들어 갔다가 6개월 만에 현재 동서대학의 전신인 부산실업전문학교 교장 장성만 목사에게 학교 탐방 취재 목적으로 방문하여 취재한 다음 차를 나누는 시간에 장 목사님이 잘 아는 김연준 장로(한양대학 설립자이자 그의 부인 백경숙 여사가 교회연합신보 이사장 겸 발행인)에게 소개 추천장을 써 준 관계로 서울에 직접 본사 방문 후 지금의 (주)기독교신문 사장 장충협 장로로부터 부산 주재 기자 발령을 받은 것이 첫 교계 기자의 출발점이었다. 정말 우연한 계기가 필연으로 역사의 현실적인 삶의 변화로 55년 세월의 오늘까지 이어 온 것이다. 지자제로 지방화 시대 열었던 1995년 4월 11일 ‘부산기독교신문’으로 첫 교계 지방지 신문 발행으로 부산 코모도호텔에서 지금의 명예이사장 박선제 목사를 창간 축하 예배 설교자로 장충협 교회연합신문 사장의 축사와 당시 부산시장 문정수 시장의 축사, 부산교계 인사 150여명 내빈들이 참석하여 거창하게 지방화 시대를 열었던 부산 교계신문 창간호를 발행했다. 그 후 몇 년 뒤 신문 제호를 부울경을 커버할 뿐아니라 한국교회 전 지역을 배포하는 의미에서 신문 제호를 ‘한국기독신문’으로 바꿔 발행하여 지금은 인터넷 신문과 종이 신문을 동시에 발행한지 무릇 29년이 흘렀다.
이제 나이도 80세를 넘겨 한계가 와서 아들(신상준 국장)에게 회사 운영권을 넘겨주고 조용히 지나간 교계의 역사 현장 칼럼만 쓰면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연재 된 ‘역사의 현장’ 1권, 2권과 ‘부산예수’란 연재물을 책으로 출판하였다.
은성교회 장로 시무 18년 은퇴 후 주일 날은 1부 9시 예배 드리고 2부 11시는 집 근처 개척교회나 다름없는 작은 교회(부민드림교회)를 은퇴장로로서 조용히 출석하며 자리를 메우며 신앙 생활을 하고 있다. 지난 7월 마지막 주일은 ‘시련과 성숙’(야고보 1:1~4)이란 제목으로 8월 4일 첫째 주일 주기철 목사(고신대 신학 교수)가 맡아 설교하는 제목은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않으시는 하나님’(야고보 1:5~8) 제목으로 설교하시는데 주목사 자신이 10년 동안 영국 유학 생활동안 온갖 고생과 알바로 시련을 겪어 온 과정을 지낸 젊은 시절을 연상하면서 “시련은 헛된 것이 아니고 믿음을 테스트하는 것이며 이를 통과하면 성숙과 인내가 주어 진다”는 메시지가 나의 과거 힘들었던 생각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듯했다. 보편적으로 교계신문 발행은 종합대학 기독교 대학이나 대형교회에서 운영을 하는 경향이 있어도 일개의 개인이 운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는 일인데도 용하게 29년의 세월을 견디어 온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요 뒤에서 헌신과 숨은 뒷바라지를 한 아내 김해옥 권사의 지원과 가족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늦은 70대에 우연히 부산디지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전공을 배운 결과 요양보호사 자격증과 상담심리자격증을 취득한 덕에 척추 협착증 수술로 아픈 아내를 케어하는 일과로 보내고 있는 것도 하나님께 감사한 일이고 우연이 필연이 된 역사의 현실이 담겨있는 것이다.
시련은 야고보가 말해듯이 기쁨으로 여기며 성숙단계로 이어 간다는 것이 진리인 것을 여든이 되었어야 깨닫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지혜’가 아니겠는가?
모 일간지에 실린 기사 중에 기자와 나눈 대화가 인상 깊었다. 코로나 백신으로 노벨 생의학상을 2023년 받은 커털린 커리코 헝거리 세게트 대학 교수는 “실험을 통해 단서를 찾아가는 과학자는 마치 형사 콜롬보처럼 계속 질문하고 추적하는 것이 과학자 직업과 같다” 말한 것처럼 그는 코로나19. 모더나, 화이자 백신을 개발하기 전까지 미국 페실메니아대에서 주임 교수로부터 괄시 받고 교수에서 연구원으로 강등 되어 실험실에서 강제 폐쇄되는 수모를 받아가면서도 원망도 후회도 없이 기쁨으로 견디어 왔다는 그의 진실한 고백이 감동을 주었다.
비전공자로 교계 언론에 몸담아 온 지난 55년은 보잘것없은 도전 정신이었고, 앞만 바라보고 작지만 꾸준한 인내와 습관이 인생을 바꾸어 준다는 교훈을 인생 후반절에야 알았지만 기자 생활을 하면서 각계 각층에서 목회에 성공한 대형교회 목사와 기업에 성공한 기독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교계 언론 생활에서 쳐진 것은 물질이 아니고 교계의 인맥이었고 그들의 열정으로 확실한 목표를 갖고 시간과 인맥을 관리하면서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주인공들을 추적하며 역사의 현장에 담기로 마음 먹고 써 온 것이 29년 세월이 흘렀다. 비록 물질은 벌지 못해도 한국교계의 역사적인 과거와 현재를 보면서 미래를 전망할 수 있는 안목이 나에게 주어졌던 것이다.
그 흔적들을 담은 ‘부산노회 장로 70주년사’(통합)를 집필할 수 있었고 여러 교계 인사들의 자서전, 회고록을 쓸 수 있는 여유를 주는 것만이라도 감사할 수 있었다.
한번 뿐인 내 인생 이제까지 소홀했던 가정과 가족을 돌보며 잘못했던 과거를 회상하며 새벽제단에서 하나님께 회개하는 것과 한국교회가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데 꾸준히 기도하는 길 밖에 없었다. 원망도 후회도 없이 무서운 현실의 삶 속에서 남은 인생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 밖에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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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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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 새롭게 시작하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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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는 이륙해 하늘을 날 때 가장 많은 에너지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출발과 시작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방식과 성격이 다르지만 첫 발을 내딛을 때 너무 많은 고민과 염려로 시작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인생은 늘 시작입니다. 자발적으로 시작하지 않으면 떠밀려서라도 시작하는 게 인생의 걸음입니다. 망설이고 안될 것이라는 핑계 때문에 행동으로 옮기기 힘든 시작. 작심삼일로 끝날 것 같아 도전하기 시작. 그러나 의외로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힘이 있습니다. 시작하기 전까지는 수많은 고민들로 힘이 빠지지만 막상 시작하고 그 일을 이어가면 할 수 있는 힘이 생기고, 시행착오와 실수를 통해 발전하는 나를 만나게 됩니다.
시작을 멈추게 하는 불안, 게으름, 과거의 습관을 버리로 일단 시작해봅시다. 일단 같이 출발해봅시다. 시작하는 순간 뭔가 달라져있을 것입니다.
첫째, 시작하면 새로운 일을 넘어 새로운 희망이 생깁니다.
주위에 365일 다이어트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이어트를 한다고 말은 하지만 식단, 운동 그 어느것하나 제대로 하지 않고 매번 걱정만 합니다. “해야 하는데... 해야 하는데...” 이런 사람들은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말을 했으니 실천하고 있다고.
공부하는 학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제로는 책상 앞에 앉아 있기만 하면서 공부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학생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시작하려면, 일단 움직여야 합니다. 거대한 것이 아닌 사소한 것들이라도 시작해야 새로운 일이 생기고, 새로운 희망도 생깁니다.
처음부터 거창한 책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자주 글을 쓰는 실천을 할 때, “나도 작가가 되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둘째, 실천할 때 흔적이 남습니다.
문을 열어야 볼 수 있고, 담은 넘어가야 나갈 수 있습니다. 시작하지 않으면 아주 작은 기회조차 얻을 수 없습니다. 저 망망대해를 지나는 배를 본 적이 있습니까? 배를 지나는 자리마다 물결의 흔적이 남습니다. 저 끝이 보이지 않는 산을 오르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습니까? 산을 오르는 땅을 밟는 자리마다 발자국의 흔적이 남습니다. 윤동주 시인은 어두운 시절을 시로 남겼기에 그의 흔적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오늘을 “그냥 보내고 있는지” 아니면, “무언가를 시작하고 실천하고 있는지”는 돌아서서 나의 흔적이 남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셋째, 바라보고 있다고 되어지지 않습니다.
밀가루만 본다고 빵이 되지 않습니다. 강물을 바라보고만 있다고 건널 수는 없습니다. 숲을 이루기 위해서는 오늘 작은 나무 한 그루라도 심어야 합니다. 시작해야 시간 속에 존재하고, 시작해야 생명이 보입니다. 시작해야 오늘의 열정이 식어지지 않으니, 결국 시작이 반입니다.
넷째, 시작의 두려움이 무엇입니까? 변하는 세싱입니다. 이미 세상은 달려가고 있습니다. 나도 같이 출발해서 변하고 있습니다. 두려움이 가득한 나의 모습을 보면 감히 시작할 엄두조차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에게 손을 뻗어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바로 우리 주님입니다. 연약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우리의 손을 잡아 주시며 무엇이든 할 수 있게 새 힘을 주시는 분이 바로 우리 주님입니다. 바로 그 주님에게 나의 미래를 맡긴다면 시작도 출발도 거침없이 내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다섯째, 일을 시작해야 경험이 생깁니다.
시작은 도전입니다. 시작은 미래의 모를 일에 대한 모험입니다. 미래는 알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동행해봅시다. 같이 경험해봅시다. 같이 경험할 때 하나님과 친밀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동행할 때 역동성이 생깁니다. 순종이 무엇인줄 알고 음성이 무엇인줄 알게 됩니다.
이제 시작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습니까!
다시 기억하십시오. 시작이 반이자, 시작이 곧 희망입니다. 주님 안에서 용기를 가지고 시작할 때 그 분이 하시는 일을 기대해보십시오. 그렇게 하면, 내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 나라가 내 안에서 확장되고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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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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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교수의 역사탐색] 부산경남지방에서의 서양음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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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경남지방에서 서양음악 전파에 기여한 두 교회는 부산진교회와 초량교회였다. 물론 두 교회 다음으로 설립된 제일영도교회나 항서교회 등도 기여한 바 있지만 첫 두 교회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컸다. 우선 호주장로교 선교부 중심으로 소개하면, 호주선교부 제2진 5명은 1891년 10월 12일 입국하게 되는데 이들은 1892년 봄 부산시 동구 좌천동으로 이주하여 한옥에 거주하면서 집회를 시작했다 이것이 부산진교회의 시작이었다. 호주 여선교사 중에 1892년 8월 3일 내한한 베시 무어(Bessie Moore)는 오르간을 연주할 수 있고 음악적 소양이 깊었던 여성으로 부산진교회에서 풍금 반주자로 활동했다. 정확하게 언제 부산진교회에 풍금을 설치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1893년에는 반주용 악기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예배용으로 찬양 반주로 그리고 일신여학교 음악 수업에 사용되었는데 현재까지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풍금으로는 일신병원 내의 메캔지 기념관에 보관되어 있는 39건 풍금이다. 그 후 교육용으로 일신여학교에서 사용한 풍금이 61건 풍금인데, 현재 일신여학교 기념관에 보관되어 있다.
왕길지 선교사는 교회 음악 발전에도 영향을 끼친 인물인데 그는 1900년 10월 29일 내한하여 11월 4일 부산진교회 첫 예배에 참석했는데, 이때 풍금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이 있다. 그해 12월 9일 새로 매입한 한옥에서 첫 예배를 드렸는데, 이날 자 일기에서 왕길지 목사는 공간이 좁아 4,5명 앉을 수 있는 자리를 오르간이 차지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오르간을 밖으로 내어놓고 예배드린 일을 말하고 있다. 1900년 당시 예배를 위한 서양 악기 풍금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왕길지는 음악적 재능을 인정받아 후일 장로교공의회의 찬송가위원으로 활동했고, 마틴 루터가 1529년에 작시 작곡한 ‘내주는 강한 성이요’(Ein feste Burg)를 한국어로 번역하여 1905년 판 ‘찬셩시’에 수록되게 했다. 이 찬송은 1935년판 신편창송가에 다시 실리게 된다. 그는 피아노, 오르간, 바이올린을 연주할 수 있었고, 개인적으로 자신의 풍금을 갖고 있었다. 그가 한국에서 은퇴하고 1937년 3월 호주 멜버른으로 귀국할 때 한국에서 사용하던 그 풍금을 가지고 돌아갔는데, 1987년 나는 이 풍금을 본 일이 있다. 꼭 50면이 지난 때였다. 그의 아들이 멜버른대학 주변인 파크빌 82번지 스토리 가(82 Story St, Parkville)에 살고 있었는데, 나는 그의 집을 방문하고 왕길지 선교사가 늘 연주했던 그 빛바랜 풍금을 볼 수 있었다. 세어보지는 않았으나 61건 정도의 크기로 보였다.
그 이후 양악 보급에 크게 기여한 호주선교사가 1905년 4월 내한한 켈리, 1913년 내한하여 진주와 마산에서 일한 안란애(A. W. Allen)와 1916년에 내한한 허대시(D. Hocking), 그리고 1918년에 입국한 위대서(M. Withers) 등이었다. 켈리는 음악적 소양을 갖춘 여성으로 오르간 연주자이기도 했는데 1912년에는 매켄지(매견시)와 혼인하게 된다. 안란애는 멜버른대학에서 음악, 특히 피아노를 전공한 목사로서 진주광림학교와 마산 창신학교 교장을 역임했다. 그가 창신학교에서 일할 당시 7가지 악기로 구성된 기악단을 만들고 연주회를 열었는데, 이것이 마산에서의 첫 서양악기의 소개였다고 한다. 그는 매일 아침 정한 시간에 하루도 빠짐없이 피아노를 연주했다. 사람들은 그 피아노 소리를 들으며 시간을 추정했다. 그런데 어느 하루 그의 연주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이상하게 여긴 주민들이 그의 집을 방문했을 때 그는 심장마비로 죽어 있었다. 미혼 목사로 혼자 살았기에 그의 주변에 사람이 없었다. 응급 조치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날이 1934년 7월 26일이었다. 허대시는 음악에 깊은 식견을 가진 여성으로서 부산 마산 통영에서 교회 한양대를 지도하고 서양음악을 소개했다. 위대서는 처음에는 마산에서 짧은 기간 일했으나 1923년부터 한국을 떠나던 1941년까지 일신여학교 교장으로 일하면서 부산진교회 찬양대를 지도하고 반주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런 여러 사람의 영향으로 1920년 7월 부산진교회에는 ‘청년찬양대’가 조직되고, 대원들은 일본에서 구입한 여러 악기를 소지하고 있었다. 청년찬양대의 음악 지도자가 허대시 선교사였다. 그래서 1921년 4월 초에는 첫 번째 음악회가, 그해 12월 9,10일에는 두 번째 음악회가, 1922년 6월 8일에는 세 번째 음악회가 개최되었다. 이때의 일은 ‘동아일보’(2021. 12.16, 1922. 6.5, 14)에 보도되었다. 이때 피아노, 풍금, 바이올린, 만도린 등이 악기가 동원되었다. 따지고 보면, 부산경남에서 일했던 초기 선교사들에 의해 교회 찬양대를 통하여 서양음악이 소개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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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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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범 목사] 사회학적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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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세상과 분리된 깊은 숲속이 아니라 세상 한가운데 세워졌다. 그리고 그 세상은 개개인이 모래알처럼 흩어져서 살아가는 곳이 아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만들어 사회적 존재로 시작하게 한 세상은 다양한 사회로 구성되어 갔다. 그 사회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면, 사회학자 퇴니스의 말처럼 이익 추구와 상관없는 친족, 이웃, 종교 집단 등의 ‘공동체’(Gemeinschaft)와 회사나 정당 등 이익을 목적으로 한 ‘결사체’(Gesellschaft)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두를 포괄하는 국가라는 복합체가 있다. 그래서 신학자 요더는 성경이 말하는 세상은 실질적으로는 국가를 가리키는 것이라 했다.
이곳은 개인과 달리 사회구조와 시스템이 있고 그것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이념(이데올로기)이 있다. 우리는 삼권분립, 자유와 인권, 자유 무역, 시장과 물가 그리고 의료보험, 복지혜택 등을 말하지만, 그러한 사회구조와 시스템들은 민주주의, 자유주의, 자본주의, 사회주의, 그리고 오늘날의 신자유주의 등 다양한 이념들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 임한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면서 동시에 세상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들이 모여 형성된 교회 공동체 또한 이 사회의 빛과 소금으로 세워졌다. 그 말은 모이는 교회라는 조직체가 사랑과 의와 성결의 모습으로 세상에 선한 도전을 주어야 한다는 뜻임과 동시에, 흩어지는 교회로서 교인 각 사람이 자신이 몸담은 사회 속에서 선한 영향력을 미치면서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를 위해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속해있는 사회를 잘 알고 이해해야 한다. 사회를 이해할수록 우리는 어떤 사건이나 현상을 개인적인 관점만이 아니라, 사회적 관점을 갖고 보다 객관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처한 빈곤의 원인이 그 자신에게 있기도 하지만, 사회구조나 정치가 직간접적인 원인이 되기도 한다. 1996년에 라이프매거진에 나이키 축구공을 바느질하는 12세의 파키스탄 소년 사진이 실렸다. 그는 하루 10시간씩 217일을 일해야 나이키 신발 하나를 살 수 있을만큼 저임금에 혹사당하고 있었다. 이를 계기로 나이키 불매운동이 일어났고, 사람들은 제 3 세계 가난의 원인이 이윤추구에만 혈안이 된 기업들과 유통구조에도 있음을 보게 되었다. 오직 복음만을 전하기 위해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로 간 한 선교사는 시간이 지나면서 그 나라의 가난과 정치적인 혼란의 배후에 자신의 이속만 챙기려고 하는 과거 식민지 종주국인 프랑스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미국의 사회학자 밀스는 인간과 사회, 개인의 일생과 역사, 자아와 세계 사이의 상호작용을 파악하는 능력을 ‘사회학적 상상력’(sociological imagination)으로 부르고, 이것이 빈약할수록 사람들은 일상적인 삶의 모습을 개인적인 것으로만 간주하면서 역사적 변동과 사회구조적, 제도적 모순과 연결하여 생각하지 못한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다양한 집단 가운데 이 사회학적 상상력이 가장 빈곤한 곳이 교회가 아닐까 한다. 우리의 신앙이 너무 개인과 교회의 울타리 안에 갇혀있고, 그 울타리 넘어 세상을 어둠의 영역으로 여기면서 무관심하다 보니, 역사와 사회에 대한 이해가 빈곤하다. 더 나아가 사회구조를 뒷받침하는 여러 다양한 이념들에 대해서는 더욱 이해가 부족하다 보니, 오히려 특정한 정치 경제적 이념을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시키며 신앙적 확신으로 삼는 우를 범하게 된다.
인간 삶의 모든 영역이 만유의 주재이신 그리스도의 것이라 했던 카이퍼의 말처럼, 교회뿐 아니라 사회 역시 우리 주님의 통치 영역이다. 그 사회를 주님의 뜻에 합당하게 보다 의로운 사회, 평화로운 사회, 건강한 사회로 만들어 가야 할 책임이 그의 제자들에게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보다 더 풍부한 사회학적 상상력을 배양해서 우리 사회를 객관적으로 올바르게 이해하고 주님이 원하는 방향으로 개혁시켜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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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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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연구] 끝나는 것과 계속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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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영원이란 단어는 오직 하나님께만 해당합니다. 죄가 들어온 후 사람의 모든 것은 유 한함에 갇혔습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일시적인 것입니다.
언젠가 요양병원에 심방을 갔습니다. 그곳에서 어느 교회 장로님을 만났습니다. 연세가 구순이신 장로님은 움직이지 못하고, 의식도 미약한 가운데 다른 이들의 손에 인생을 맡긴 채 누워 있었습니다. 상당한 재력가에 박사님이라고 하는 장로님에게는 남은 게 별로 없었습니다. 절반 정도 남은 베지밀 박스에, 기저귀 두어 세트, 그분 이름이 적힌 빨대가 달린 플라스틱 물병, 갑 티슈 서너 개가 전부였습니다. 그분이 입은 환자복은 나중에 누군가 다른 이의 몸을 가져 주겠지요. 간호사님과 돌보미들은 그분이 신체가 커서 씻기고 옷을 입히는 게 힘들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장로님은 몸조차 남에게 맡겨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게 우리의 상황인데, 영원이 우리에게 가당하기나 하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유한한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원을 허락하셨습니다. 전도서 3장 11절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는 것은 우리가 영원한 하나님과 연결되도록 허락하셨다는 뜻입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있습니다. 하나는 현세적이고 일시적인 것을 향해 사는 삶입니다. 다른 하나는 영원을 향하여 사는 삶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사두개파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사두개파는 사독의 후예로서 성전을 장악한 제사장의 무리를 지칭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내세나 부활을 부인하고, 현세만 인정했습니다. 현세만 인정하다 보니, 그들은 현세에서 성공하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았습니다. 이들이 예수님께 후손이 없이 죽은 한 남자의 아내가 남편의 여섯 동생과 모두 결혼한 후 다 죽었으니, 부활이 있다면 여인은 누구의 아내가 되어야 하느냐는 엉뚱한 질문을 한 이유도 이들이 부활과 내세를 부인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날도 사두개파처럼 사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바라봅니다. 현세에 매달려 삽니다. 보이지 않는 가치, 영원한 가치에 관심이 없습니다. 이런 이들은 대개 돈과 지위와 건강과 쾌락만 추구합니다. 한국교회를 병들게 한 기복주의 신앙 역시 이런 맥락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영원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자신의 생애에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영원한 가치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본문을 보면 야곱이 그러했습니다. 야곱은 130세에 애굽으로 이주했습니다. 야곱이 애굽에 간 이유는 죽은 줄 알았던 요셉이 살아있을 뿐 아니라, 애굽에서 총리가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서운 흉년이 두 번째 덮쳤을 때, 야곱의 모든 가족은 애굽으로 이주했습니다.
야곱은 애굽에서 십 칠 년을 살았습니다. 본문은 야곱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요셉에게 남긴 말씀입니다. 그는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니와>라고 했습니다. 야곱은 자신은 죽는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유한함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계속 이어가실 일, 즉 그의 후손에게 가나안을 주실 일을 언급했습니다. 자신은 유한한지만, 하나님의 일은 계속 이어질 것을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유한합니다. 우리 인생은 머지않아 끝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영원하시고, 당신의 일을 계속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짧은 인생을 하나님의 영원하신 일을 위해 드려야 합니다.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기 위해 헌신하는 일, 선한 일을 위해 물질을 드림으로써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는 일, 우리 유한한 시간을 사랑에 쏟는 일은 매우 소중합니다.
어떤 교회에서 집회를 하면서 그 교회 역사를 감명 깊게 들었습니다. 초대 목사님에 이어 여러분의 목사님들이 이어 교회를 섬겼고, 모두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는 건재하고, 여전히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사람은 떠났지만, 그 교회를 통해 예배를 받으시고,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는 여전합니다. 우리도 영원히 이어질 일에 우리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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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