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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말씀] 이 때를 위함이 아니냐(에4: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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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성경말씀 에스더서는 한 고아가 왕후의 자리에 오르고 왕의 눈에 들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민족을 구원한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망하고 예루살렘 성전이 불타고 백성들이 포로가 되어 잡혀가 있는 포로시대가 배경이지만 ‘최악에서 최상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일하심을 통해 하나님 백성들을 영원히 보호하시기 위해 한 사람 에스더를 쓰십니다. 또한 에스더는 부모 없이 자랐지만 기도해서 나라를, 민족을 구합니다. 한 사람의 개인적인 기도와 신앙입니다. 사람은 스펙이나 상황, 배경, 조건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환경을 원망하고 배경과 조건을 탓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에스더 4장 13절 말씀에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 시대의 문제는 이기주의입니다. 한 두 사람만 조심해도 되었을 일이 한 사람의 부주의와 실수로 온 나라가 혼란하고 불안해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 이기주의가 아니라 이타주의로 살아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시기를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자기 의를 추구하던 사람이 예수를 믿고 나면 이제 내가 죽어도 주 위해 죽고 살아도 주 위해 사는 삶의 가치관이 바뀌어 버립니다. 자기를 나타내고 자기를 자랑 하던 사람이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게 됩니다. 가나안농군학교 김용기 장로님처럼 산꼭대기에 기도의 굴을 만들어 항상 조국과 민족을 위해 기도하시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나의 하나님께서 나의 가는 길을 아시고 내게 복을 주시는 나의 하나님도 되시지만 우리 하나님이시라는 걸 기억해야 합니다. 공동체 영성을 가져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동족이 구원 받을 수 있다면 자신은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져도 괜찮다고 했습니다(로마서 9장 2절 말씀). 대한민국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1.5%일 때가 있었습니다. 2%가 부족한 1.5%때 안창호, 남강, 이승훈, 고당 조만식, 송재 서재필, 백범 김구 그분들이 믿음을 지켰던 때 말입니다. 그때는 ‘예수 믿는 사람=애국자’였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병원 짓고. 고아원 짓고, 신문사 만들고, 학교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시대보다 대한민국에 성도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운명공동체입니다. 나라가 잘 되어야 교회가 있고 직장이 있고 백성이 있고 가정이 있지 않겠습니까? 신앙의 축을 옮겨야 됩니다. 이기적인데서 이타적으로, 개인적인 것에서 공동체적으로 자기 의를 주장하는데서 나라와 민족을 구하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기도의 제목이 달라져야 됩니다. 조국과 민족을 품고 열방을 품고 기도해야 합니다. 에스더4장 14절 말씀에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라고 합니다. 에스더가 왕후의 자리에 오른 것은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함이 아니라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 민족의 구원을 위해 목숨을 걸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밤낮 삼일을 금식(에스더4:16)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도 이 시대를 살아갈 때 순간을 쓰임받기 위해 평생을 준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 한 사람을 통해서 축복의 통로로 역사하실 수 있도록 나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필요충분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시대마다 사람을 찾으시고 준비된 자가 쓰임 받습니다. 주님 부르실 그때에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때를 위해 기도로 준비되었기에 하나님께서는 부모 없이 자란 에스더도 가문의 영광이 되고 나라의 왕후가 되고 민족의 구원 투수가 되었던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내가 먼저 다른 것은 못 해도 “기도의 시간이라도 메우자! 기도의 분량을 채우자!”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윗이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시편 56:8 말씀)라고 기도 했듯이 지금이야 말로 우리가 기도할 때 인줄 알고 하나님께서 주신 여러분의 기도의 자리를 뺏기지 마십시오. 그 기도의 자리가 축복의 자리입니다. 우리가 이때 울고 부르짖으면 하나님은 보좌를 움직이셔서 이 나라 역사를 이 땅을 얼마든지 새롭게 하시는 능력의 분이십니다. 한 사람 내가 기도의 자리에서 에스더처럼 기도하여 축복권을 당기시는 성도님들 되시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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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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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칼럼] 예약된 행복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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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이발을 하기 위해 이발소를 찾았다. 그런데 거기 이런 팻말이 붙어 있는 것이었다. “오늘은 현금, 내일은 공짜” 공짜로 이발을 하고 싶었던 그는 하루를 기다리기로 작정했다. 다음 날을 기다렸다. 그리고 일찌감치 이발소를 찾아보았더니 역시 팻말이 붙어 있었다. “오늘은 현금, 내일은 공짜” 그래서 내일 다시 나가 보기로 했다. 다음날이었다. 여전히 거기에는 같은 팻말이 붙어 있었다. 그 사람은 투덜거리면서 “또 내일이란 말이지” 그리고는 또 돌아서고 말았다. 이런 증상을 가진 바이러스를 뭐라 이름 붙일 수 있을까? 빈둥빈둥 바이러스 한다. 그 증상이 이렇다. 제작지: 지옥 발견 장소: any time, any where 기억 장소: 그 모양 그 꼴형 감염 방법: 기생형 감염 증상: ① 의욕 상실 ② 만사태평 ③ 비디오가게 아저씨와 친밀 ④ 늦은 기상 ⑤ 실천되지 않은 수많은 계획 감염결과: ① 열등감, 패배감 ② 자기 자책 ③ 때로 비만증상
전도자는 이른다.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눕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잠6:10-11) 빈둥거리다 많은 것을 놓치고 뒤늦게 가슴을 쥐어뜯지만 소용없는 일이다. 지옥은 다른 게 아니라 ‘껄껄껄’이라고 한다. “진즉 선택할 걸” “진즉 행동에 옮겨 놓을 걸” “진즉 나서 볼 걸” 그래서 바보는 항상 결심한 한다. ‘화해해야지’ 하면서 화해를 미루고 ‘사랑한다고 말해야지’ 그러면서 또 미룬다. 그러다가 정작 사랑하는 이가 떠나가고 없을 때 땅을 치지만 소용이 없다. 더 이상 예약된 행복은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꾸만 미룬다. 내가 오늘 헛되이 보내버린 하루가 어제 죽어갔던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가지고 싶어 했던 내일이었다는 것을 모른다. 때문에 지혜로운 사람과 지혜롭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시간의 차이일 뿐이다. 지혜자는 미리 깨닫고 어리석은 자는 나중에야 깨닫는다. 지혜자는 시간을 관리하며 살고 어리석은 자는 시간을 끌며 산다. 그러므로 이렇게 다짐하자. 할 일이 생각나거든 지금 하라./ 오늘 하늘은 맑지만 내일은 구름이 보일는지 모른다./ 어제는 이미 당신의 것이 아니니 지금 하라./ 친절한 말 한마디가 생각나거든 지금 말해라./ 내일은 당신의 것이 안 될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은 언제나 당신 곁에 있지는 않는다./ 사랑의 말이 있거든 지금 하라./ 미소를 짓고 싶거든 지금 웃어라./ 당신의 친구가 떠나기 전에/ 장미는 피고 가슴이 설레 일 때/ 지금 당신의 미소를 지어라./ 불러야 할 노래가 있다면 지금 불러라./ 해가 저물면 노래 부르기엔 너무나 늦다. /나의 노래를 지금 불러라./ 너무 늦어서 할 수 없는 것은 결코 없다./ 내가 해야 할 일을 시작할 수 있는 시간은 바로 지금이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말한다. “인생을 사랑한다면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왜냐하면 인생이란 시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놓치지 말자. 가정이야말로 ‘지금’이란 시간으로 쌓아 올려진 성(城)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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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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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칼럼] 두이레통곡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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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이레통곡기도회 지난 6월 22일(월)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나설 때에 문정순 권사(엘림중보기도사역팀 사역장)가 담임목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날 한국교회와 남과 북의 상황을 바라볼 때에 간절히 기도해야할 필요성을 느낀다는 이야기와 함께, “사랑하고 존경하는 목사님”-16절지 앞뒤를 깨알같이 가득 쓴 장문의 편지를 받았다. 편지내용에는 우리 교회, 재건교회, 한국교회, 우리나라의 총체적 위기들, 92명으로 구성된 엘림중보기도팀 중심으로 다니엘의 ‘세이레기도회’(단10장)를 6월 29일(월)부터 21일 동안 갖고 싶다는 바램, 부르짖을 기도제목들, 그리고 교회적인 협조를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나 역시 교회 지도자로서 늘 동일한 위기감과 영적 부담을 가져오던 차라 공감이 갔고 다니엘의 세이레기도회 제안이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으로 다가왔다. “권사님, 기도해 봅시다. 당회와 상의해서 가능한 기도회를 갖도록 하지요.” 나는 그날 전화로 당회의 동의를 얻고, 효율적인 기도회를 위해서 묵상에 들어갔다. 단10:2~3, “그때에 나 다니엘이 세 이레 동안을 슬퍼하며 세이레가 차기까지 좋은 떡을 먹지 아니하며 고기와 포도주를 입에 대지 아니하며 또 기름을 바르지 아니하니라”. (이레=일주일, 혹은 7년) 기도회의 명칭, 주제, 25가지 기도제목-의견을 제시하고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가게 되었다. 명칭: ‘두이레통곡기도회’(Two Weeks Crying Prayer Meeting) / 주제: “살려 주시옵소서!” / 기간: 6월 29일(월)~7월 11일(토), 밤 8시, 2층 중고등부실 / 주관: 엘림중보기도사역팀 / 주된 기도제목: “남녘땅 대한민국을 살려 주시옵소서, 북녘땅 어둠의 땅을 살려 주시옵소서. 한국교회를 살려 주시옵소서. 전국재건교회를 살려 주시옵소서. 마산재건교회를 살려 주시옵소서. 나의 가정, 우리 지체들의 가정을 살려 주옵소서. 제대로 쓰임 받는 성도, 가정, 교회되게 하옵소서.” 예배이든, 기도회이든 영적 분위기가 있고 나름대로 느끼기 마련인데 금번의 ‘두이레통곡기도회’, 비록 준비기간은 짧았으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회임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매일 밤 뜨겁게 간절하게 진행되는 “찬양/20분-말씀/10분-통성기도/40분”, 참석자 모두가 성령의 임재하심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금번의 ‘두이레통성기도회’는 마산재건교회 설립 이래 가장 긴 기도회로 기억될 것이다. 담임목사로서 받은 은혜가 커서 온 성도와 함께 그 은혜를 마무리할 필요성을 느껴 주일오전예배에서, 설교를 했다. 그리고 설교말미에 온 성도가 함께 한 목소리로 “살려 주시옵소서!” 간절히 부르짖는 통성기도회를 가졌다. 필요적절한 시기에 “두이레통성기도회”의 귀한 도구로 쓰임 받은 ‘엘림중보기도사역팀’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지난 주일 오전예배에서 나눈 ‘25가지 기도제목을 요약한 기도문’을 소개한다. 그래서 한국교회 많은 성도들이 함께 기도하길 소망한다. 1. 남녘땅, 북녘땅, 한국교회의 죄악들을 회개하며 부르짖자! “오, 주여 회개하오니 용서하여 주옵소서. 남녘땅 대한민국을 살려 주시옵소서! 북녘땅, 어둠의 땅을 살려 주시옵소서! 한국교회를 살려 주시옵소서. 위정자들의 죄악, 백성들의 우상승배, 이기주의, 성공주의, 동성애, 사회 분열을 용서하옵소서. 북녘땅의 세습독재정권, 폭정, 무력도발, 핵위협, 인권탄압, 굶주림, 정치수용서의 죄악을 용서하옵소서. 세상을 닮아가는 교회의 세속화, 교회지도자들의 죄악, 교회영향력의 상실, 교회침체, 주일성수와 다음세대의 위기를 용서하옵소서”
2. 우리의 가정과 마산재건교회를 위해 간절히 부르짖자! “오, 주여! 회개하오니 용서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가정을 살려 주옵소서. 제대로 쓰임받게 하옵소서. 가정의 복음화, 가정의 화목, 건강, 생업, 교회사랑, 주일성수, 교회헌신, 자녀들의 믿음, 교회생활, 학교생활, 직장생활, 믿음의 결혼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우리 마산재건교회를 살려 주옵소서. 제대로 쓰임받게 하옵소서. 예배의 부흥, 교회사역들의 활성화, 다음세대의 부흥, 넉넉한 교회재정, 온전한 교회헌당, 교회지도자들(목회자, 장로, 권사, 안수집사)성령충만하여 존경받는 지도자 되게 하옵소서”
3. 감사의 기도! “오, 주여! 감사드리나이다. 7월 5일-전교인출석주일, 본당을 가득 채워 주심을 감사드리나이다. 빈자리가 채워지고, 계속 성장하고, 주일성수 신앙으로 무장받게 하옵소서. 두이레통곡기도회-살려주옵소서!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심에 감사드리나이다. 우리의 두손이 기도하는 거룩한 손이 되게 하옵소서. 자신과 교회와 교단과 한국교회와 민족을 위해 늘 기도하는 성도와 교회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이 민족을 축복하사, 사방에 복을 흘려 보내는 사명자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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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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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교회여 테르모필레에 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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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우스 1세의 뒤를 이어 페르시아 왕이 된 크세르크세스(Xerxes, B. C. 485~465, 성경의 아하수에로 왕, 에스더 1:1)는 10년 전 선왕(先王)의 치욕스런 패배를 되갚아주기 위해 528만 대군을 이끌고 노도(怒濤)처럼 그리스로 진격했습니다(Herodotus, Historiai). 다르다넬스 해협을 지나 파죽지세로 마케도니아를 경략한 170만 페르시아 육군은 기원전 480년 여름, 테르모필라이(Thermopylae) 협곡에 도착합니다. 남쪽으로 산맥이, 북쪽으로 바다가 버티고 선 넓이 15m, 길이 7.2km의 좁은 통로를 스파르타 왕 레오니다스(Leonidas)와 그가 이끄는 정예부대 300명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3일 간의 총력을 기울인 전투에서도 페르시아 군은 이들을 꺾지 못했습니다. 에피알데스(Ephialtes)의 배신이 아니었다면 더 버틸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결국 이들은 왕을 포함하여 전원 장렬하게 최후를 맞이했지만, 결과적으로 페르시아 전쟁을 그리스가 승리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2015년 여름 현재, 교회는 또 하나의 테르모필레 협곡에 서 있습니다. 2월 26일 대한민국 헌법재판소는 간통제가 한국 헌법에 위배된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6월 16일 미합중국 연방대법원은 동성애 결혼을 막는 주법이 미국 헌법에 위배된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우연히 비슷한 시기에 벌어진 해프닝이 아니라 이미 무너진 성도덕(sexual morality)의 하한선을 실증하는 사건입니다. 미국 대통령, 유엔 사무총장 등 파워엘리트(power elite)들이 환영 의사를 밝혔습니다. 스타벅스, 구글, 맥도날드 등도 앞 다투어 지지 의사를 발표했습니다. 이는 특히 젊은 층이 주로 이용하는 기업들이기 때문에 그 실질적인 여파나 영향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당장 이러한 기류에 편승하여 성소수자들이 주관하는 퀴어 축제(Queer festival)가 큰 논란 속에 지난 달 28일 서울광장에서, 그리고 이달 5일에는 대구 동성로에서 열렸습니다. 아직은 반대 여론이 우세하지만 퀴어 축제가 처음 열렸던 2,000년과 비교하면 성소수자들과 그들을 지지하는 세력은 증가일로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가 제헌절로 기억하는 지난 17일, 이슬람 2대 축제 중 하나인 ‘이드 알 피트르’를 맞아 1,000여 명의 무슬림(Muslim)이 김해 구도심에 모였습니다. 라마단이 끝난 다음 날 모여서 이슬람 식 집회를 열고 함께 음식을 나누는 행사가 한국 땅에서 이제는 이렇게 버젓이 열리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이 날 이들이 모인 장소는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김해중앙교회 건물이 서 있던 터였습니다. 한 술 더 떠 지역 뉴스의 한 기자는 이 날의 풍경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무슬림들은 모두 밝은 표정으로 예배를 드렸다. 임시 예배당에서는 하나님을 부르고 무슬림을 모으는 육성의 외침인 ‘아잔’이 낮고 평온하게 울려 퍼졌다. 차분한 아잔 덕분에 공터는 진짜 이슬람 사원이 된 듯 경건한 분위기가 흘렀다.” 현재 이슬람의 팽창은 두렵기까지 합니다. 영국의 데이빗 캐머런(David Cameron, 1966~) 총리는 20일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퇴치를 위한 5개년 계획을 발표할 정도입니다. 우리도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닙니다. 한국 사회의 반기독교 정서를 틈타 이슬람 세력이 어느새 우리 문턱 앞까지 진출해 있습니다. ‘테르모필레’라는 말은 뜨거운 물이 분출되는 지명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2,500년 전 여름, 300명밖에 되지 않는 스파르타 용사들의 펄펄 끓는 열정은 수천 배에 달하는 대적들의 발을 묶었습니다. 어떤 이는 이를 두고 “숫자가 아니라 집중력이다”라고 썼습니다(김종춘, 『너는 전략으로 싸우라』). 그런데 결코 만만치 않은 현대 사회의 이러한 대적들 앞에서 한국 교회는 혹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계 3:15) 라오디게아 교회의 모습으로 안주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영향력 없는 허수(虛數)의 다수(多數)가 아니라 집중력 있는 실수(實數)의 소수(小數) 교회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교회여, 이제 다시 테르모필레에 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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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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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연구] 연평해전 후기(에베소서 6장 10-1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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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해전>이란 영화가 개봉되어 관객수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연평해전이 있은 후 십 수 년이 지난 이제야 영화를 통해 그 날의 비극을 접하게 되었는 바, 너무 때늦은 감이 있습니다. 연평해전의 개요는 다음과 같습니다. 1999년 6월 북한 고속정들이 계속 북방한계선을 넘어 도발하던 중, 6월 15일 오전 8시 45분경 북한 경비정 7척이 우리 해군 고속정에 충돌공격을 실시하고, 우리 해군도 충돌공격을 가하였고, 이 와중에서 북한이 먼저 사격을 가해옴에 따라 우리도 즉각 대응사격을 가하였고, 그 결과 북한은 어뢰정 1척이 격침되고 5척이 크게 파손되어 도주하였습니다. 반면에 우리 해군은 고속정 5척이 경미한 손상을 입었습니다. 흔히 이것을 제1차 연평해전이라고 합니다. 제2차 연평해전은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이 막바지에 이르러 우리나라와 터키의 3,4위전 경기가 열리던 6월 29일에 발발하였습니다. 이 날 북한은 다시 북방한계선을 침범했고, 이날 오전 북한 경비정들은 10시 25분부터 우리 해군 참수리 357호에 대해 집중사격을 가함으로써 교전이 시작되었습니다. 교전은 31분간 진행되었는데, 북한 군함은 대파된 채 도주하였습니다. 제2 연평해전으로 우리 해군은 참수리 357호가 예인 중 침몰했고, 정장인 윤영하 소령을 비롯해 한상국· 조천형· 황도현· 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 등 6명의 전사자와 18명의 부상자를 낳았습니다. 북한군은 약 30여 명이 사상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연평해전으로 이런 피해를 입은 이유는 소극적인 교전수칙 때문이었습니다. 햇볕정책으로 북한의 문을 열려고 노력하던 당시 정부는 전쟁을 염려하여 상대방이 먼저 발포하기 전에는 절대 발포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우리 병사들의 희생이 컸습니다. 그러나 연평해전을 계기로 교전규칙을 소극적 대응에서 적극적인 응전 개념으로 수정하였습니다. 북한의 북방한계선 침범 시 <경고방송·시위기동·차단기동(밀어내기 작전)·경고사격·조준격파사격>의 5단계 대응에서 <시위기동·경고사격·조준격파사격>의 3단계 대응으로 개정되었습니다. 상대방이 쏠 때까지 기다리는 소극적 대응으로는 적을 막을 수 없고 아군의 피해가 커진다는 것을 체험한 결과입니다. 종종 경기를 해설하는 이들이 <공격이 최선의 수비>라고 말하는 것을 듣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공격이 최선의 수비입니다. 적이 쏠 때까지 기다려서는 적을 능률적으로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인생과 신앙의 영역에서도 선제공격이 중요합니다. 사탄은 우리를 쓰러뜨리기 위해 쉴 새 없이 틈을 노리고 있습니다. 성경 에베소서 6장 10절 이하에서는 영적 싸움의 승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말씀하면서 우리가 입어야 할 것들을 말씀합니다. 그 중에는 방어와 수비를 위한 것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전신갑주에는 사탄을 선제공격할 무기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말씀의 검입니다. 6장 7절을 보면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탄을 이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탄을 공격할 수 있는 예리한 검과 같습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죄 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라고 했습니다. 말씀보다 더 예리하고 강력한 무기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사십 일을 금식하신 후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을 받으실 때 말씀으로 이기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십시오. 그 말씀이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줄 뿐만 아니라, 우리를 무너뜨리려는 적을 이기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사단이 공격하기 전에 먼저 말씀의 검으로 공격하십시오. 적극적 대응으로 영적 승리를 거두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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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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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산] 고향 산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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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색 산하에 산들바람 불고 날빛 찬란한 오월에 존경하는 선배 시인 장로님께서 시문 선집 “부활연습”을 출판하고 한권을 보내 주었다. 우선 책 이름이 좋았다. 이 땅을 오고갈 모든 사람은 날마다 새롭기 위해 헌 것은 버리고 새 것으로 채우는 희망의 자세로 살아야 하는 뜻을 담아 신앙의 마음으로 승화시킨 글이라 생각하였다. 그 분은 20여 년간 시를 쓰고 수필을 쓴 문인인데 풀잎, 야생화, 호박꽃, 겨울나무, 도시비둘기 등, 약한 것들을 소재로 하여 글을 썼다. 그러나 그 글은 애잔하면서도 광야에서 외치는 말씀처럼 마음을 울렸다. 약한 것이 반드시 약한 것이 아니고, 강한 것이 반드시 강한 것이 아니며, 화려한 것이 반드시 화려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 닳고 이를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약하고 부족하다는 것 때문에 실망하고 위축되고 분노하며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작은 힘이라도 보태려는 마음도 읽었다. 낙담하는 사람에게 “너는 작고 무가치한 사람이 아니고 천하보다 귀한 존재”임을 일깨우는 힘찬 소리가 담겼었다. 마침 나는 유월 첫 주가 되면 고향을 찾는데, 한 때 대우받았던 뽕나무가 세월에 밀려 산천에 버려졌지만 오디를 검붉게 익혀놓고 오라 부르기 때문에 간다는 말을 되뇌며 찾아간다. 그리고 여러 지역에 떨어져 사는 동생들을 권하여 함께 오디를 따러 간다. 물론 그 일만은 아니다. 그 곳 언덕숲속에 유택을 정한 부모님도 뵙고 옛날을 회상하며 노래도 부르고 소풍날처럼 함께 식사를 하고 혈육의 정을 나누기위해서기도 하다. 뽕나무, 양잠하던 때는 뽕밭이 따로 있었다. 넓고 큰 뽕잎을 얻기 위해 거름을 주면서 또 아무나 접근하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치는 주인의 보호와 특혜를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문명화에 밀려 용도가 폐기되니 결국 귀족이 천민이 되어 성 밖으로 쫓겨나듯 비탈진 언덕이나 큰 나무들의 너울진 숲 속으로 이사하였다. 그 나무들은 현실에 순응하여 메마른 땅에서도 뿌리내려 자리를 잡고 사람들이 마음껏 올라갈 수 있을 만큼 큰 나무가 되어 무성한 잎과 많은 오디를 달고 있었다. 그래서 가지를 잡고 삭게오처럼 나무에 올라 사랑스런 어머니 가슴가린 적삼처럼 손을 넣고 싶은 충동에 푸른 잎을 젖히고 잘 익은 오디를 한줌씩 딴다. 그 맛은 비할 수가 없다. 그 추억 때문에 매년 이맘때를 정하여 모이고 즐기게 되었다. 고향의 산, 소먹이고 풀 베든 시절에는 삭막하기 그지없었는데 지금은 푸르게 욱어진 숲을 이루고 새들을 불러 흥겹게 노래 부르도록 부활하였으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산봉우리나 골짝이 울창하여 낯설었지만 넓은 그늘이 펼쳐져 있고 그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주니 가슴마저 확 트인다. 이것이 휴식, 치유, 회복, 재충전이라는 용어들을 모아놓은 공간이리라. 또한 정신적 치유라는 힐링의 장소가 분명함을 느끼게 하니 마음으로부터 감사가 솟는다. 유월, 고향을 가보라. 분명 맛난 것도 주지만 잊은 옛이야기와 소박했던 감성을 되찾게 될 것이다. 한 때 대접받든 뽕나무가 잡나무들 자리에 서서 자존감을 꺾고 자생력으로 오디를 익혀놓고 출향한 사람들을 기다리는 당당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그 나무에서 느낀 오디 맛 때문에 어느새 오디 물로 얼룩진 옷을 보다가 뽕밭 주인의 호통에 놀라 설익은 오디를 따먹다 도망친 옛일이 되살아나니 빙그레 웃는 웃음도 달콤했다. 수목도 천한 것이 따로 없고 모두 귀하다. 제가 선 위치에서 꽃으로, 열매로, 또 아름다운 모습으로 존재가치를 십분 발휘한다. 인생도 한 때 설치든 자존감보다 현실을 어떻게 장식할까 생각해야 한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핀잔 받든 사람이 노력하여 큰일을 했다는 이야기처럼 결과가 좋아야 한다. 고향의 벌거숭이산들이 푸르게 부활한 유월, 검붉은 오디는 물론 산딸기와 산나물을 들고 지나온 날을 회상하는 고향은 한껏 푸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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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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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룡 장로] 내게 맡긴 직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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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교회와 성도들이 이웃에 선행한 사실을 공식화된 것만을 보아도 불교 신문에서 조차 불교보다 수 십 배로 많다고 불교인의 각성을 촉구한 기사를 본적이 있었다. 그러나 근년에 들어 기독교가 극히 소수 종교지도자들의 잘못으로 인하여 세상 사람들의 부정적인 시각들이 기독교를 개독교란 불명예스런 별명을 낳게 되었다. 기독교의 부패가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은 직분을 받기 전의 세상적인 사고나 사명 의식 없이 시작한 것이 문제가 된다. 부쩍 2000년대에 들어 교회의 지도자인 소수의 직분 자들이 일 만 악의 뿌리인 돈을 하나님 위에 두는 것을 현실화 시켜 버렸다. 돈이면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다는 물질제일주의가 교회 내에 들어와 확실하게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다. 그것도 그럴 것이 좋은 대학을 졸업하여 직장에 적응하지 못한 소수의 젊은이들이 사명감 없이 목사의 길을 택한 것이 문제가 되고 사회에서 제대로 활동하지 못한 분들이 교회 지도자의 직분을 맡은 것이 더 문제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걱정스러운 것은 21세기에 들어 젊은 직분자들은 목사사례를 보통 회사 사장월급으로 생각하고 장로는 무급 상무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교회의 직분자를 세우는 것도 믿음은 뒤로하고 돈을 많이 번 사람이나 세상 학문을 많이 수학한 사람을 직분자로 세우는 것이 상례가 되어 버렸고 직분을 신분 상승으로 여기는 것이다. 과연 이렇게 직분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교회의 모든 일을 사명감을 갖고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생길 때가 많았다. 또한 학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학생이 사명감 없이 신학을 전공하여 목사가 되는 것도 문제가 된다. 물론 하나님에게서 능력을 받아 잘하는 목회자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20세기에 교회의 직분을 받은 자와 현재 21세기의 직분자들의 믿음은 생각하는 관점이 다르고 헌신하는 것도 엄청난 괴리가 있음을 발견하고 정말 놀랄 때가 많다. 오늘날의 직분자들이 옛날처럼 목회자를 존경하고 주의 사명을 헌신적으로 감당한다는 것은 기대할 수 없게 된 것이 작금의 교회의 현실이라 하겠다. 말씀대로 살고 보수적인 신앙을 자랑하는 장로교 총회의 면면을 살펴보아도 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극히 소수의 직분자지만 자기의 명예를 위해 금권을 발동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이웃 총회에서는 총회장직을 맡기 위해 공탁금을 엄청 내어 놓아야 한다니 일반 사회와 무엇이 다른가! 교회는 목사이면 충분한데 박사에 목매여 국내에서 아주 쉽게 박사를 취득한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 교회나 상회의 책임을 맡은 직분자들은 교인들이 헌금한 돈을 공짜 돈처럼 함부로 쓰는 것이 상습화 되어 버렸다. 교회당 부지를 구입하는 데 직분자가 이면계약을 하여 차액을 챙기는 불미스러운 일들도 생긴다. 큰 교회로 성장시킨 은퇴목사는 교회에서 자기가 맡은 직을 자녀에게 세습하기 위해 갖은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목적을 달성한다니 정말 한심스러운 일이 아닌가! 그리스도인이 650만도 안 된다고 한다. 이제는 나이가 많은 성도로 채워져 있고, 주일학교가 없는 교회가 많아지고 세례 받는 교인이 날로 적어지고 있는 것은 정말 걱정스럽다. 이렇게 진행되면 잠시 뒤에는 유럽이나 미주 교회처럼 교회당은 텅텅 비고 연세 많은 교인으로 명맥을 이어나가는 안타까운 현실이 바로 우리 눈앞에 도래하겠다는 생각에 불안감이 더해 온다. 거기에다 거대한 이슬람의 침략이 더 무섭다. 그런데도 직분자들은 교회당을 자꾸만 높이 그리고 크게 지으려는 경쟁심으로 하나님의 집은 빚더미 위에 앉아있게 만들어 놓았다. 감당할 수 없이 지은 매머드 교회당을 내어 놓아 이단에 헐값에 처분하는 불행한 사태가 눈앞에 전개되고 있는데도 남의 일로 생각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이렇게 빚에 쪼들려 이단에 헐값에 팔려나가는 교회당을 바라보시는 우리 주님의 마음은 어떠하실까? 나에게 맡긴 귀한 직분을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고 확실히 믿고 주님이 우리에게 마지막 부탁하신 일을 제대로 감당한다면 세상 사람들이 왜 손가락질을 한단 말인가? 비록 시작은 잘못 되었더라도 내가 받은 직분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 믿고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해 사명을 잘 감당해야만 한다. 직분을 맡은 자는 누구든지 내가 모든 일에 주인공이라고 착각하지 말고 주님을 최고의 자리에 좌정하시도록 해야 한다. 이제는 우리가 살고 다음 세대가 대대로 살아갈 이 땅에 하나님의 은혜가 떠나지 않게 하는 방법은 오직 기도 밖에 없다. 지도자인 직분자가 크게 입을 벌려 우리의 죄악을 용서해 달라고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어야만 한다. 직분자들이 말씀을 떠나면 분명히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떠나신다. 그래서 내게 맡기신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직분을 두렵고 성실한 마음으로 제대로 수행해야만 한다. 그리하면 가정의 모든 문제, 교회문제, 국가사회문제가 저절로 해결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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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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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교회만 조용하면 한국교회 평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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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어느 목회자가 그랬다. “대형교회만 사고 치지 않고 조용하면, 한국교회가 조용하다. 대형교회 때문에 한국교회가 ‘개독교’라는 말을 듣는 것”이라고 말이다. 이어서 “특히 수도권에 있는 대형교회들이 문제를 일으킨다”고 콕 찍어서 이야기 했다. 오늘날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정말 마음에 남는 말이다.
크리스천이든 넌크리스천이든 모두가 아는 사랑의교회 문제부터 전병욱 목사 등 국내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의 대형교회들이 매번 큼지막한 사건을 터뜨려 한국교회를 향한 비난도 이어지고, 심각해 지고 있는 실정이다.
믿는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가 교회지만, 결국 죄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곳이기에 당연히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선이라는게 있지 않는가? 사랑의교회 문제는 식을 줄 모르고, 전병욱 목사 사건은 홍대새교회 측에서 성명서를 발표해 “도저히 침묵할 수 없게 되었다. 사건의 민낯은 어떤 것인지 이야기하겠다”고 말해 사건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기독교의 필수도서 중 하나가 리처드 포스터의 <돈 섹스 권력>이다. 1989년 발매 되었지만 지금까지도 꾸준히 읽혀지는 책 중의 하나다. 제목만 들어도 깨닫게 되는 뭔가가 있다. 실제로 교계에 있다 보면 목사나 장로들, 혹은 성도 등 교회에서 벌어지는 이유가 저 3가지로 압축된다. 재정 문제이거나, 성 문제, 권력을 위한 자리싸움이 교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다. 이 책이 이렇게 오랫동안 읽혀진다는 것은 가장 인간의 본능적 죄악을 다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날마다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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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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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신과 고려의 통합 움직임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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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제26회 총회시 ‘신자간의 사회 법정 소송에 대한 이견’으로 분열된 고신과 고려가 39년만에 하나로 통합된다는 훈훈한 소식들이 들려오고 있다. 비록 절차들이 남아 있지만, 두 교단 총회장의 의지와 통합추진위원들의 대화 소식은 훈훈함 그 자체다. 금년 총회에서 분명 좋은 소식이 들려 올 것으로 확신한다.
고신총회는 지난 21일 대구성동교회당에서 총회 운영위원회를 열어 고려총회와의 통합추진위원회 보고를 받고, 금번 65차 총회에 통합 안을 총회에 상정하기로 가결했다. 이날 통합합의문도 공개됐다. 통합합의문에 따르면 1. 고신총회와 고려총회는 2015년 9월에 개회되는 제65회 총회 시에 통합을 하기로 한다. 통합 시, 양 총회의 모든 역사(총회회기, 교회역사, 신학교졸업기수 등)는 병합한다.
2. 고려총회의 노회는 그대로 유지하고 통합총회의 행정 개편과 함께 지역노회로 편성한다.
3. 양 총회 소속의 목사, 선교사, 교역자의 신분은 헌법대로 보장하며, 항존직을 비롯한 교회의 직분은 그대로 유지된다. 교회(당)는 가급적 유지재단 가입을 권장하고, 목회자에게 은급(연금) 제도 혜택 및 계속 수학의 기회 등은 양 총회 공히 동등하게 제공한다.
4. 고려신학교 신학원(M.Div 과정)은 고려신학대학원의 역사와 병합하며, 졸업자의 학적은 고려신학대학원에서 관리하고, 재학생은 신입생으로 입학(특례)하게 한다. 고려신학교 여자신학원은 고신대학교의 병설과정으로 하여 총회 직영으로 한다.
5. 통합에 따른 경과조치와 추후 필요한 사항은 양 총회 통합위원회가 합의해서 처리한다 등이다. 고신과 고려는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에 따라,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와 공산주의자들의 만행에 순교로 대처해온 순교 교단들이다. ‘신자간의 사회 법정 소송에 대한 이견’으로 교단이 분열하였지만, 두 교단은 고린도전서 6장 1-10절의 말씀에 의지하여 ‘성도간의 사회법정 소송은 원칙적으로 불가하다’고 믿고 있다. 두 교단의 통합이 한국교회 분열의 역사를 종식시키고 통합과 화합의 역사의 시작임을 알리는 좋은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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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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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신대 총장선출, 다음 달로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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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신학대학교(이사장 김수읍 목사)는 지난 20일(월)에 가진 이사회에서 제7대 총장 선출을 다음 달인 8월 14일로 연기하기로 했다.
당초 이날 이사회에서 새 총장을 선출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총장인선위원회는 인선의 폭을 넓히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에 따라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이사회는 후보로 등록했던 이춘길 교수, 최무열 교수, 최인기 교수에게 동의를 받아 총장초빙 재공고를 내기로 했다.
김수읍 이사장은 “동문회비상대책위와 이사들이 새 총장을 자유롭게 추천, 인사의 폭을 대폭 넓혀 일괄적으로 선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영남신대 법인이사회 관계자는 “학내 문제가 아직 수습되지 않은 상황에서 분열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렇게 결정 한 것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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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