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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캠퍼스 복음화 사역이 경남에도 확장되기를”
    Q. 회장 취임소감 부탁드립니다. A. 어려운 시기에 중요한 일을 맡게 되어 심적으로 부담이 됩니다. 그리고 제가 회원들이 주로 있는 부산과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어서 사역에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선교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기에 2020년 임원 교수님들과 협력해서 부울경기독교수연합회(BCPN)가 하나님의 좋은 도구로 사용되기를 기도합니다. Q. 부울경기독교수연합회 소개 부탁드립니다. 회원 및 활동 중인 사역에 대해 궁금합니다. A. 부울경기독교수연합회(BCPN)는 2007년에 부산-울산-경남지역에 있는 26개 대학의 교수선교회들의 연합으로 창립되었습니다. 매년 여름에 열리는 전국교수선교대회 참가, 겨울에 열리는 부울경교수선교대회 개최를 통해 캠퍼스 사역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실제적인 사역은 4개의 분과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4개 분과는 해외선교 및 유학생 분과, 차세대 지원 분과, 바른교육 문화 분과, 그리고 캠퍼스 사역과 영성 분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해외선교 및 유학생 분과에서는 매년 추석 기간에 열리는 중국 유학생을 위한 차이스타대회와 찬양 대회, 성탄절 행사를 통해 유학생들을 복음에 접할 수 있도록 다른 기관과 협력해 사역하고 있습니다. 차세대지원 분과에서는 기독교수 연합회 교수들의 전공을 살려서, 고등학교 학생들에 대한 입시 진로 상담을 통해 학생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른교육 문화 분과에서는 바른 성공관 등 가치관과 오늘날 문제가 되고 있는 동성애, 이단, 퇴폐 문화 등에 대한 세미나를 지원합니다. 또한 캠퍼스 사역과 영성 분과에서는 캠퍼스의 전도와 기도, 신앙과 학문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지원을 합니다. Q. 교수님께서 임기 동안 추진하고자 하는 사역 혹은 더 집중하고자 하는 사역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A. 먼저, 회원 교수님들이 선교와 관련하여 직접 전문적으로 잘 할 수 있는 영역을 중심으로 하고, 다른 분들이 더 잘할 수 있는 영역은 다른 단체와 협력해 지원 사역을 하려고 합니다. 예로서, 고등학교 진로상담의 경우 교수님들이 자신들의 전문분야를 잘 아시니까 직접 사역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중국 유학생 사역의 경우, 전문 선교사님들이 계시기에 그분들과 협력 사역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울경기독교수연합회(BCPN)가 저에게 회장직을 맡긴 것은 단체의 이름에 걸맞게 사역이 부산에만 머물지 않고, 창원지역과 같은 경남지역으로도 확장되기를 원해서입니다. 따라서 현재 연합회가 하고 있는 사역들 중에서 경남지역으로 확장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고 확장하려고 합니다. Q. 창원대 교수님이신데, 창원대 캠퍼스 소식이 궁금합니다. 국립대인 창원대에서는 캠퍼스 복음화를 위해 어떤 사역이 진행되고 있습니까? A. 매주 화요일 점심시간에 기독 교수님들이 모여 찬양과 기도, 그리고 신앙서적을 읽고, 서로 그 내용과 관련된 간증을 나눈 후, 식사를 같이하고 티타임을 가지며 교제합니다. 또한 매학기 개강과 종강 시기에 기독학생들과 각 선교단체 간사님들과 함께 캠퍼스 연합예배를 드립니다. 예배 후에 선교단체 간사님들과 식사교제와 캠퍼스 사역에 대한 의견을 나눕니다. 또한 신임 교수님들이 새로 학교에 오시면 연구실을 방문하여 교수선교회를 소개합니다. 또한 본교 출신 선교사님들과 캠퍼스 간사님들을 교수님들의 기도와 작은 물질로 섬깁니다. 연말에는 한해를 정리하고, 지난 해 기록해서 보관해 두었던 단기 타임캠슐을 함께 열어서, 하나님께서 일년동안 우리들 가운데 행하심을 감사하며, 새롭게 맞이하는 다음 해를 위해 서로 기도하고 축복합니다. Q. 기독교수로서 힘든 점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A. 학생들이 인생의 의미나 목적을 잃고 방황할 때,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자신감을 잃고 있을 때, 자신의 바쁜 일들로 인해 이 젊은 영혼들을 위한 관심이나 영혼 구원을 위해 열정을 다하지 못함을 인식할 때입니다. 또한 믿지 않는 동료 교수들에게 귀감이 되지 못할 때입니다. Q. 끝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A. 미래의 그 나라는 그 나라의 대학을 보면 안다고 했습니다. 이 기사를 보시는 분이 있다면, 지금 짧은 시간이지만 우리의 바로 다음세대인 청년세대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캠퍼스에서 죽어가는 영혼을 저희가 불쌍히 여기는 마음과 생명을 건지는 구조대로서 역할을 다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고, 예수의 생명이 캠퍼스에서 퍼져나가, 하나님께 큰 영광이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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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2020-02-03
  • 부산기독교장로총연합회 대표회장 이춘수 장로 인터뷰
    Q. 먼저 23회기 부산기독교장로총연합회 대표회장에 추대되신 소감을 밝혀 주십시오. A. 미천하고 부족한 종이 이제 부산기독교장로총연합회 대표회장을 맡게 되어 송구스러운 마음뿐입니다.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부족하지만 하나님께서 저에게 출9:16을 주셨습니다. "내가 너를 세웠음은 나의 능력을 네게 보이고 내 이름이 온 천하에 전파되게 하려 하였음이니라" 이 말씀에 힘을 얻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계획하심이 있으신 줄 알고 아브라함의 신앙으로 믿고 따르렵니다. 하나님께서 크게 역사하시리라 믿습니다. Q. 부기장총은 한 해 동안 다양한 사업들을 추진해 오고 있습니다. 금년 준비하고 있는 사업들을 소개해 주십시오. A. 부기장총의 3대 사업은 1) 3.1절 기념예배 2) 6.25구국기도회 3) 부산지역 목사장로 연합 체육대회입니다. 3대 사업을 성실히 수행하면서 올해는 제가 기도하면서 주신 하나님의 비전에 의하여 '소외된 자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소외된 자들을 돌아보는 그런 사업을 할 예정입니다. Q. 부산의 대표기관이 부기총과 부교총으로 나눠져 있습니다. 지난 한 해 장로총연이 두 기관을 하나 되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어 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장로님 임기중에도 이러한 노력을 계속해 나가실 계획이신지 궁금합니다. A. 나누어지는 것보다는 하나로 되어 함께 사역하는 것이 보기가 매우 좋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노력하여 하나로 되어진다면 노력하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기도하며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Q. 부산지역에는 5천 명이 넘는 장로님들이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념갈등, 지역갈등, 세대갈등이 난무한 지금 이 시대 장로님들께서 갈등극복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A.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으로 돌아가 하나님 제일주의로 기도하며 살고, 세상의 가치를 쫓는 것보다 영원한 천국의 삶의 가치로 기도하며 살아가면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고 확신합니다. 하나님께서 갈등극복의 새 길을 열어주시리라 믿습니다. Q. 끝으로 부산지역 교회들에게 당부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A. 요사이 연합사업이 어렵습니다. 기도하며 이 길을 걸어가겠습니다. 많은 기도를 부탁드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부산 온 교회가 하나가 되어 한 마음으로 협조해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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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2020-01-23
  • 서임중 목사, 5년 간의 의혹에 대해 심경을 밝히다
    Q. 지난 5일 새해를 맞아 포항중앙교회에서 설교를 하셨습니다. 은퇴 후 처음 설교하셨는데 소감이 어떠셨는지요? A. 강단에 섰을 때 우레 같은 박수 소리를 들으면서 첫 인사를 했습니다. ‘이 자리에 서는 것이 그리도 어려운 일이었던가?’라고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되었지요. 설교 후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5년 만에 억울함을 벗은 원로목사가 서릿발 같은 설교를 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그 반대인 십자가 복음의 내용인 이해와 관용과 용서와 사랑을 여전히 강조하는게 인상 깊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포항중앙교회를 바라보시는 지금의 하나님의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마음이 지난 5년 동안 고통과 아픔 속에서 입 한 번 열지 않고 여전이 주어진 농어촌 산골, 어촌교회 등을 다니면서 말씀사역을 한 나의 신앙 나의 목회 나의 삶의 결정체이기 때문입니다. Q. 지난 2014년 10월 9일 은퇴 후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근황이 궁금합니다. A. 은퇴 하는 날 까지는 그 어느 누구와도 불편한 관계없는 행복한 목회 여정이었습니다. 몇몇 사람들로 시작된 불꽃이 화염이 되어 교회에 화마가 지나간 듯 벌판이 되고 원로목사에 대한 온갖 이야기가 SNS와 몇몇 언론을 통해 퍼져나갈 때 처음에는 두 가지 마음이었습니다. ‘이게 뭐지?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과 그럼에도 잠재워지지 않는 교회 행정과 대응방법에 섭섭한 마음이 깊어 내 스스로의 삶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결정적인 상황에서 주님은 저를 찾아주셨고,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새 힘을 얻고 청각장애인처럼, 시각장애인처럼, 언어장애인처럼 5년의 세월을 살았습니다. 다윗의 시를 날마다 암송하고 엎드림의 시간이 깊어지고 그러면서 ‘내가 항상 너와 함께 하리라’는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그야말로 행복한 복음전도 사역으로 ‘5년을 하루같이’ 보낼 수 있었습니다. 국내외에 나의 목회와 인격과 신앙과 삶의 행태는 걸레가 되었고 가족들의 아픔은 치유될 수 없을 정도였지만 갈라디아서 5:22~23절의 말씀처럼 자연스럽게 내 삶은 아홉 가지의 성령님의 은혜로 동행하심을 연주하면서 감사함으로 모든 상황을 바꿀 수 있었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그리고 내일이나 저의 삶은 변함없이 여전히 ‘지금 여기’의 은총을 찬송할 뿐입니다. ▲ 은퇴식 Q. 목사님을 둘러싼 의혹들이 많이 제기 되었습니다. 최근 교회에서 발표한 성명서를 보면 ‘각종 의혹들이 거짓임이 밝혀졌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마음고생이 많으셨겠는데요, 심정이 어떠셨습니까? A. 어떻게 5년 동안 겪은 상황을 한 마디로 접근할 수 있겠습니까? 목회 30여년 동안 단 한번도 분쟁 불협화음 없는 평행감축(平幸感祝)의 목회여정이었고, 더 좋은 교회를 지향하여 5년 조기은퇴를 하였는데 후임목사님 부임하면서 곧바로 일어난 사안들을 겪으면서 한 마디로 유구무언이었습니다. 인간 이성으로는 도무지 해석이 안 되는 일들을 몇몇 사람들을 통해서 겪으면서 영적으로 해석하지 않으면 답을 얻을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에 엎드림으로 일관했습니다. 은퇴한 목사이기에 관여할 수 있는 상황도 여건도 주어지지 않아 5년 동안 변명이든 해명이든 단 한번이라도 기회를 갖고 싶었지만 그것조차도 나에게는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내가 가꾼 그 아름다운교회를 분쟁의 마지막 단계인 분열의 결과를 보고 싶지 않았기에 사필귀정의 이치를 생각하면서 인내하면서 기다림의 은총을 기도하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만감이 교차되는 심정입니다. Q. 목사님께 제기되었던 의혹들에 대한 검찰 조사 결과가 궁금합니다. A. 차마 제 입으로 언급하고 싶지 않습니다. 고소인을 보니깐 더 없이 사랑했던 사람들이었기에 그 충격은 가히 가늠할 수 없었습니다.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야말로 상식이하의 내용들이지만 그래도 고소 고발이 된 상황이니 조사를 받지 않을 수 없기에 몇 차례 경찰, 검찰에서 심문을 받았습니다. 한 사건이 끝나면 또 다른 사건으로 그렇게 수 없이 어려움을 겪었지만 전부 ‘혐의 없음’, ‘기각’ 등으로 종결처리 되었습니다. 그 기간에 사실관계 유무를 떠나 그들은 사건 종결되기도 전에 SNS와 몇몇 언론을 통해 유포하게 됨으로 그런 내용이 마치 사실인 듯 유포되어 그야말로 일어설 수 없도록 지치게 했습니다. 그로 인한 그 동안의 아름다웠던 목회는 걸레가 된 듯 했고, 인격적으로 명예훼손과 온 가족이 겪어야 했던 고충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가까운 동역자들도 친구들도 인터넷에 유포된 내용을 사실관계 확인없이 기정사실화 한 듯 한 언행이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목회 사역과 평생의 삶을 알기에 신뢰하고 사랑하면서 믿고 함께 기도하고 기다리면서 동행해 주신 분들이 더 많았기에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확신하는 믿음과, 요셉과 다윗과 바울의 선으로 악을 이겨낸 교훈을 설교하고 ‘아멘’한 목사이기에 그 걸음을 뒤 따라야 하는 절체절명의 당위성이 나를 지탱할 수 있게 한 힘이었습니다. Q. 의혹을 제기하고 교회를 혼란스럽게 하신 분들에 대한 목사님의 소회를 듣고 싶습니다. A. 질문을 받으면서도 눈물이 납니다. 목사로서의 양심의 고백이지만 아직까지 단 한 번도 그들을 원망하고 불평하고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들 또한 내 목회의 중심에 있었던 내가 사랑하는 교인들입니다. 그러기에 지금도 그들을 다시 안아주고 싶은 것이 정직한 내 마음입니다. ‘왜 이런 일이 내 목회 현장에 일어나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하면서도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라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여기도 하나님의 뜻이 있으려니 하면서 기도만 했습니다. 대부분 사실관계를 이해한 주위 사람들은 명예훼손과 무고로 법적 대응을 하면 간단하게 끝날 사안을 왜 그리 참느냐고 할 때가 가장 괴로운 시간이었습니다. 목사가 성도를 고소 고발하는 또 다른 대응방식은 목사로서 이제까지 설교한 것이 거짓되고 앞으로 설교를 어떻게 할 것인가로 귀결되기에 교회가 바르게 치리할 것을 믿었고, 건강하지 못한 그들의 신앙과 교회생활을 돌이켜 회심하여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만 기도하면서 끝까지 인내했습니다. 가슴 아픈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훼파하고 비 신앙적 비 성경적 언행으로 교회를 어지럽힌 사람들이 마지막까지 회심의 기회를 기다렸지만 불가한 상황에 이르게 되어 교회는 정상화위원회가 구성되고 교회법 사회법으로 법적대응을 하였습니다. 그로인하여 그토록 사랑했던 그들이 면직 출교 등 권징을 통해 교회가 자리매김을 하게 된 것은 지금도 마음이 아픕니다. 그러기에 나의 일평생 목회철학인 ‘누구 때문에’가 아니라 ‘무엇 때문에’를 생각하면서 모든 것이 나의 목회의 부덕함이고 하나님 앞에서 내가 목회를 제대로 잘 하지 못한 것이라는 자책감에 지금도 엎드림으로 하루를 열고 하루를 닫습니다. ▲ 농어촌사역 Q. 은퇴 후 서원하신대로 전국을 다니며 자비량으로 말씀사역을 하신 것으로 압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A. 하나님의 은혜일뿐입니다. 65세 조기은퇴를 하고 주님 앞에 기도한대로 농어촌 산골 개척교회의 부름에 응답하여 말씀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운전을 배우고 아내와 함께 둘이서 교대하면서 사역하는 시간이 지난 5년을 이겨낼 수 있었던 힘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여전히 지금도 그 걸음을 멈추지 않습니다. 대형교회 목사로서 인지하지 못한 농어촌 산골 개척교회의 실상을 보고 듣고 경험하면서 다시 한 번 목회적 관점에서 부분이 아닌 전체를 볼 수 있는 혜안이 열리고 한국교회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볼 수 있는 영안이 열리면서 형언할 수 없는 감동, 행복, 기쁨의 여정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제 2의 소명을 받고 새로운 사명을 수행하는 삶이 되었습니다. 목회현장에서 지쳐 목회는 물론 삶을 포기하고 싶어하던 젊은 목회자가 용기를 얻어 일어서서 힘차게 사역하게 된 H 목사님, 10여명이 안 되는 교인들과 함께 날마다 감사함으로 천국을 바라보면서 사역하신 U목사님, 90% 70대 노인들이지만 그 어느 교회보다 에클레시아의 모습을 연주한 N교회 성도들의 신앙적 지주같은 Y 장로님, 아들 같은 목사를 주님처럼 사랑하고 섬기면서 마을 복음화에 거울이 되신 O 장로님, 집회를 마치면서 거룩한 충격에 빠져 예배 마무리를 하지 못하고 흐느껴 울면서 다시 목자의 마음을 회복하여 품에 안겨 우신 L목사님,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감동이야기가 많습니다. 기회되면 후학들에게 좋은 교회의 거룩한 동행이 어떤 것인가를 책으로 출간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Q. 말씀사역 외에 앞으로의 특별한 계획이 있으십니까? A. 원래 은퇴 후에는 후학들을 위한 목회연구소를 설립하여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영적 권위를 바르게 행사할 수 있는 목회 현장이 되게 하는데 남은 생애를 기여하고자 했습니다. 90% 계획이 진행되는 과정에 걸림돌 하나가 발견되었는데 그것을 치우고 행보해야 했어야 할 상황이라서 포기를 했습니다. 지금도 그 결정이 잘한 것인지 잘못한 것인지는 제 자신도 고민하는 부분입니다. 은퇴 후 10여명의 적은 교회를 시작하여 수만명의 대형교회를 다니면서 말씀 사역을 하는 동안 보고 듣고 느낀 것은 여전히 이 사역을 해야 할 절체절명의 사명을 느끼기에 다른 방법으로도 다음 세대 목회자를 위한, 초대교회를 지향하고자 하는 진정한 에클레시아 운동을 하고 싶습니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고 어느 손길을 통해서라도 제가 아니면 다른 누구를 통해서라도 이 사명이 수행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목회와 선교와 문화는 떼 놓을 수 없는 시대적 복음선교의 관계성을 갖고 있기에 남은 생애는 이 일에 모든 것을 바치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러나 이 또한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지금처럼 주님 앞에 서는 그 날까지 마치 김삿갓처럼 두루마리를 들고 복음의 신을 신고 이르는 곳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주님 앞에 가고 싶은 마음 하나뿐입니다. Q. 끝으로, 포항중앙교회 성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시무할 때나 은퇴 한 이후에도 한결같이 당부하는 말입니다. '일이 아니고 사람이어야 하고, 사람이 아닌 주님이어야 합니다'라는 말입니다. 일 때문에 사람 잃고 사람 때문에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신앙의 正道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5년 동안 힘들고 아픔을 겪었지만 그래도 모두가 자기 자리를 지켰고 벅찬 여정 가운데서도 당회장 목사님이 중심을 지키고 거룩한 리더십을 잘 발휘하여 주셨기에 여전히 포항중앙교회는 좋은 교회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1월 5일 설교하러 갔을 때 가슴을 아리게 하는 고백을 들었습니다. '오늘이 있을 줄 믿었고 원로목사님이 가르치신 신앙 교육 때문에 우리 모두는 흔들리지 않고 각자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어떤 경우도 원망 불평 비판 정죄하지 말고 믿음을 지키라 하셨기에 우리 모두가 지금 여기 그대로 있습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대목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한 마디 더 남기고 싶습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 주님의 십자가 복음을 바르게 이해 한 사도 바울의 고백입니다. 포항중앙교회가 바울의 이 고백을 손에 손잡고 함께 읊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것이 날마다 평행감축을 찬송하는 포항중앙교회 본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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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23
  • [신년대담] 부산기독교장로총연합회 대표회장 이충엽 장로
    Q. 먼저 독자들에게 새해 인사 부탁드립니다. A. 새해가 밝았습니다. 지난 한해 저의 삶을 돌아보더라도 참 다사다난 했었습니다. 저 뿐만이 아니라 독자 여러분들도 한 해 많은 수고를 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새해를 기점으로 다시금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히 누리는 한 해가 되시길 기도합니다. Q. 1년간 부기장총 대표회장으로 섬기면서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입니까? A. 1년이라는 시간이 길다고 할 수 있겠지만, 참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부족한 제가 회장을 맡아 혹 누가 되지 않았나 걱정입니다. 많은 선배님들의 격려와 동료 장로님들의 지지가 있었기에 달려올 수 있었습니다. 임기가 끝날 때가 되어 돌아보니 감사한 일 뿐입니다. 특히 지난해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였습니다. 평소 100여 명이 모였으나 이번에는 100주년이라는 기념적인 해가 되어서인지 300여 명의 회원들이 모였습니다. 단지 나라의 독립을 위해 외친 3.1운동을 기념하는 것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기독교가 다시 일어서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임원들과 함께 준비했는데 마치고 나서 많은 분들로부터 호평을 받았습니다. 특히 강사로 오신 전호헌 총장님의 강의가 인상 깊었다며, 애국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고 평가해 주셨습니다. 6.25구국기도회는 권오성 장로님께서 강사로 오셨는데, 군인정신에 투철한 독실한 크리스천이라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Q. 혹시 아쉬운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A. 부기장총이 더 활성화되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것 같아 아쉬울 따름입니다. 부산지역 교계 전체적으로 본다면 그동안 부기장총과 부기총이 협력해 함께 나아갔었습니다. 그러나 부기총이 분열되면서 협력 자체가 어려웠죠. 여기도, 저기도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양측에서 참여를 권유했지만 입장이 곤란해 양측 다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또 아쉬운 점을 꼽으라면 나라가 힘든 이 시기에 장로님들과 함께 기도의 자리를 마련하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장로들이 먼저 무릎을 꿇어야 하는 이때에 나라를 위한 기도의 자리를 마련하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Q. 부기총 이야기가 나와서인데,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A. 부기장총은 임원들과 협의한 대로 중립에 서 있기로 했고, 중립에 서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두 곳 모두 신년하례회에 기도는 하지 못하겠지만, 참석은 했고 화환도 동일하게 했습니다. 또 제게 직책을 맡겼으나 양측 다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양측 다 제게 섭섭함을 토로하지만 저희는 중립을 지키려 노력했습니다. 사실 드러나지 않았지만 매우 바빴습니다. 1년이 지나면서 제 수첩을 훑어보니 부기총과 관련해 20-30회의 만남을 가진 것을 보았습니다. 부기총이 하나될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비록 곧 있을 총회에서 대표회장직에서는 물러나지만 부기총이 하나되어 함께 부산지역 성시화를 위해 동역하길 기도하겠습니다. 새해에는 부기총이 화합하는 복된 소식이 들려오길 기대해 봅니다. 많은 분들이 원하고 노력하고 있기에 희망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Q. 부기장총을 비롯해 교계에서도 다양한 활동을 하고 계신 것으로 압니다. A. 주변 많은 분들의 사랑과 도움으로 교계를 섬길 기회를 주셨습니다. CBMC, 기드온캠프, CTS운영위원장, 브니엘총회 부총회장, 총회 장로연합회 회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현재 브니엘신학교 이사, 중아선교회 이사로 섬기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부족한 제게 섬길 기회를 많이 주셨습니다. 섬기면서 많은 믿음의 동역자들을 만나게 된 것이 무엇보다 행복했습니다. Q. 교계 활동을 하다 보면 어른 세대와 젊은 세대 간의 대립을 종종 보게 됩니다. A. 네. 당연히 대립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서로의 가치관이 다르니까요. 같은 연령대여도 개인마다 다른데 살아 온 환경이 다른 세대간의 갈등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 개인적 견해를 조심스레 말한다면, 어르신들은 은퇴했으니 무조건 물러나 계시라고 하는 것보다 함께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제 주변을 보더라도 교회에서 은퇴한 후 활동을 전혀 하지 않는 분들과 여전히 활동하는 분들을 봅니다. 은퇴 후에도 활동하는 분들을 보면 젊게 사시는 모습이 좋아 보였습니다. 젊은 세대들이 어르신들을 대우하고 그들의 경륜을 배워야 한다고 봅니다. Q. 믿음의 가정이라고 들었습니다. 소개 부탁드립니다. A. 감사하게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나 자랐고, 후대에도 믿음의 유산을 물려줄 수 있어 감사합니다. 저도 5대, 처가도 5대를 이어 온 기독교 가정입니다. 특히 장인, 장모님의 기도로 동서 4명 모두가 장로입니다. 첫째 모자이크교회 신기식 장로, 제가 둘째, 셋째는 온천교회 임종익 장로, 넷째는 캄보디아에서 평신도 선교사로 활동 중인 강재호 장로입니다. 그리고 제 아들 둘 역시 결혼해 믿음의 가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Q. 끝으로 당부의 말씀이 있다면? A. 연합회에 대해 회의적인 분위기가 많습니다. 요즘은 독불장군이라는 게 없죠. 한 교회만 잘 되어 지역이 복음화 되지 않습니다. 장로님들 시간상, 경제상 여건이 어려워 활동하시기 어렵다면 어쩔 수 없지만, 혹여 가능하시면 적극적으로 연합회에 참여하시길 권면합니다. 또 참여하지 못한다고 비판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연합회를 부정적인 시각보다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봐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부산지역 복음화가 조금이지만 상승하고 있을 때, 더 탄력적으로 가속도를 높여 하나가 되어서 일을 추진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작은 것으로 다투지 말고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함께 달려갑시다. 감사합니다. ▲ 이충엽 장로의 가족들 ▲ 부산기독교장로총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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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담/대담
    2020-01-10
  • 제14회 기독교문화대상 교육부문 수상자 황동한 목사(함께하는교회 담임, 십대의벗 원장)
    Q. 수상소감 부탁드립니다. A. 먼저, 부족한 저에게 말씀을 전하고 청소년을 섬길 수 있도록 허락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21세기포럼을 설립하시고 부산 교계를 위해 큰 헌신의 인생을 보내고 하늘 나라에 가신 故 장성만 박사님과 21세기포럼 이사님들, 관계자 분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제가 21세기포럼에서 주관하는 문화대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32년 동안 저와 함께 같은 비전과 사명으로 달려 온 십대의벗 간사님들의 섬김 덕분입니다. 그들의 희생이 없었으면 오늘의 십대의벗도 생각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제가 섬기고 있는 함께하는교회 성도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교회가 선교 단체를 섬기는 마음과 지원이 있었기에 십대의벗이 원활하게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상은 제가 대표해서 받았지만, 수상의 의미는 십대의벗을 섬기는 모든 분들과 함께 합니다. 그 동안 십대의벗이 32년 동안 쓰러지지 않고 한 길로 달려올 수 있도록 함께 하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리며, 이런 노력에 위로해 주시는 21세기포럼에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Q. 32년간 소책자 <십대들의 편지>를 제작해 배포해 왔습니다. 어떤 내용들이 담겨 있는지 궁금합니다. A. 십대들의 편지는 현재 소통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제가 대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 우연히 아픔과 힘듦을 겪고 있는 학생으로부터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 편지를 읽고 진심으로 돕고 싶은 마음에 내가 아는 모든 지식을 동원해 열심히 답장을 써서 보냈습니다. 그 후 몇 달이 지나 다시 그 학생에게 답장이 왔습니다. “그 때, 그 편지로 인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고. “어려움이 있었는데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얻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때, 제가 느꼈습니다. ‘아, 이것부터 시작해야겠다. 그래, 말로 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의 고민을 편지로 상담해줘야겠다.’ 이렇게 시작한 것이 당시의 십대들의 편지입니다. 1987년 8월부터 시작해 오늘까지 쉬지 않고 발행되고 있습니다. 내용은 청소년들의 마음을 읽어주는 상담, 희망적인 메시지, 진로 체험 등을 담고 있습니다. 지금도 많은 청소년들이 소통을 읽고 피드백을 해주고 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저도 감사하고 감동이 됩니다. Q. ‘십대의벗’ 사역 소개 부탁드립니다. A. ‘다음세대에게 성경적 세계관을 전수하고 그들에게 변화, 회복, 성숙, 소통, 섬김의 리더십 실현’을 목적으로 설립한 십대의벗은 다음세대들과 그들의 지도자들을 위해 ‘청소년 문화’와 ‘지도자 훈련’이라는 두 기치로 운영됩니다. ‘청소년 문화’ 측면에서는 여름과 겨울에 열리는 캠프를 비롯해, 찾아가는 진로체험, 광복동 청소년 문화 축제 등을 열고 있습니다. 매년 방학 때 청소년과 청년들을 대상으로 열리는 캠프(1993년부터 시작)는 희망을 잃은 다음세대들에게 비전의 말씀을 선포하고, 공동체 생활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며, 개인별 진로 상담을 통해 학업 부분을 보완하기도 합니다. 매 캠프 때마다 200~300명의 참가자들이 모여 2박 3일 동안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고 가며 이들 중 미자립교회와 농어촌교회 학생들은 무료로 참여합니다. 십대의벗은 이 뿐만 아니라 청소년 문화 육성을 위해 광복동 용두산공원에서 문화 축제를 열어 건전한 청소년 문화 진흥에 앞장서기도 하고, 찾아가는 진로체험을 통해서는 다양한 직업군 소개를 통해 학생들이 자신의 적성에 맞는 진로를 찾는 것에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지도자 훈련’ 측면에서는 다음세대를 양육하고 가르칠 ‘크리스천 지도자’ 양성 훈련을 시행하는 것입니다. 십대의벗은 다음세대를 위한 청소년 문화 육성은 물론 그들을 양육해야 할 지도자 교육에도 힘을 쏟고 있습니다. 청장년을 대상으로 하는 ‘교사대학’은 청소년 이해를 비롯 예배, 묵상, 기도와 같은 신앙 훈련을 중심으로 한 프로그램으로 1년에 두 차례 총 6학기 과정으로 진행되고 현재 약 7800여 명의 수료생을 배출했습니다. 또한 ‘부모교실’과 ‘성경대학’ 등 다양한 지도자 양육 프로그램으로 교회에 일꾼들을 양성하고 있습니다. Q. 담임목회도 함께 하고 계신 것으로 압니다. 선교 단체와 교회의 융합을 통해 지역 교회를 섬기는 것에 가치를 두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을 해주신다면? A. 십대의벗은 1987년에 시작했고, 함께하는교회는 2015년 12월에 개척했습니다. 선교 단체와 교회를 함께 하다 보니 이 두 기관이 잘 연합하면 지역 교회에 큰 힘이 된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실제로 십대의벗은 1년 내내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 되어 있습니다. 청소년, 청소년 지도자, 일반 평신도 등 교회를 다니는 성도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강좌, 행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십대의벗에서 훈련받아 자신이 섬기는 교회에서 배운 것들을 잘 활용한다면 긍정적인 효과들이 많이 나타날 것이라고 봅니다. 또한, 십대의벗 사역들 대부분은 지역 교회와 함께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청소년 캠프를 말씀드리자면, 매년 여름과 겨울 수십 개의 교회들이 연합해서 함께 수련회를 합니다. 이 중 농어촌, 미자립교회들은 무료로 참가할 수 있어 매년마다 참가 문의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처럼 오랜 기간 동안 청소년과 지도자들을 섬긴 경험을 십대의벗이 갖고 있기에, 이 소중한 경험들이 지역 교회와 융합되어서 영혼과 지역 교회를 살리는 일에 쓰이길 바랍니다. Q. 이번 수상 소식을 들은 가족과 성도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A. 저는, 이 상을 받고 며칠 동안 십대의벗 간사님들과 함께하는교회 성도들의 반응에 많이 놀랐습니다. 수상한 저도 굉장히 영광스럽고 기뻤는데, 십대의벗과 교회에서 동역하는 분들이 저보다 더 큰 위로와 격려를 받은 느낌이었습니다. “그 동안 우리가 한 길을 달려온 것이 헛된 일이 아니구나. 하나님이 우리의 수고를 아시고 이렇게 위로해 주시는 구나. 우리 앞으로도 다음세대를 살리고, 지도자를 양성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자” 함께 섬기는 대부분의 분들이 이런 반응이었습니다. 수상으로 인해 저에게도 감사와 기쁨이었지만 수많은 동역자들에게도 위로이자 힘이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Q. 수상금 및 향후 계획이 있으시다면? A. 저희 교회가 금정구 내에 독거노인들을 위해 반찬 사역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구청 직원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밥은 있는데 반찬이 없어 식사를 제대로 못하는 노인들이 많다고 하여 성도들과 힘을 모아 이 사역을 시작하기로 한 것입니다.(독거노인 반찬 사역은 함께하는교회 성도들, 브니엘고등학교 학생들, 구청 직원 등이 함께 합니다) 그래서 이 수상금 전액은 반찬 사역에 마중물로 쓰일 계획입니다. 귀하게 받은 상금을 값진 곳에 써야겠다는 오랜 생각 끝에 이웃들에게 사랑을 전하는 일에 사용하려고 합니다. 십대의벗은 수상에 감사드리며, 앞으로 더 열심히 뛰어라는 의미로 알고 지금까지 한 다음세대 살리는 사역을 비롯해 지역 교회와 한국 교회를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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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2019-12-24
  • 제14회 기독교문화대상 봉사부문 수상자 김종세 장로 인터뷰
    Q. 수상소감 부탁드립니다. A. 그동안 큰 과오 없이 최선을 다해 소임을 다할 수 있도록 건강과 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고진감내라는 말처럼 막상 큰 상을 받고 보니 감격스럽기도 하고, 솔직히 다소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35년간의 긴 세월 동안 박봉과 한직에서만 근무한 못난 사람을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저를 지지해주며 직장생활을 함께 해 준 아내와 가족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Q. 공직 35년간 사회봉사업무만 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요? A. 제 나이 3세 때 광복과 함께 일본에서 아버님을 따라 선친의 고향인 경북 달성군 논공면 시골 작은 마을에 정착하였습니다. 어렵게 살아오던 중 다섯 살 때 어머니께서 갑자기 사고로 돌아가셔 큰 슬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 몹시 힘들었던 것은 또래들과 어울리면서도 말이 통하지 않았던 것과 가난 그리고 외로움이었습니다. 13세 때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는데 그러던 중 16세 때 제가 열병에 걸려 병원에서 수혈을 받았습니다. 죽음을 직감하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를 살려주시면 저와 같은 불우한 아동과 청소년들을 위해 한평생 봉사하며 살겠습니다”며 서원의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2주 뒤 병이 완치되어 퇴원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제가 하나님께 한 이 약속이 시작인 것 같습니다. Q. 한 길만 걷기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A.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게 되었고 졸업 후 1968년 6월 1일부로 3급 아동상담원 발령을 받았습니다. 문제가 많은 아동·청소년들을 상담 지도하는 업무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막상 한 사람 한 사람 상담하다 보니 눈물겨운 사연이 많았습니다. 오히려 저의 어린 시절보다 불행한 아동, 청소년들이 의외로 많은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제가 저들의 힘이 되고, 버팀목이 되기로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의욕을 갖고 했지만 많은 문제를 지닌 아동·청소년들과 여러 해 상담을 하다 보니 너무나 힘이 들고 지쳤습니다.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들어 많은 갈등과 고민을 한 것도 사실입니다. 때마침 부산대학교 사회복지학과가 신설되면서 서주실 총장님께서 교수채용 제의를 해 주신 적이 있습니다. 그 이듬해에는 성결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서도 교수채용 제의가 있었습니다. 당시 많은 갈등과 고민 끝에 결국 사양하고 하나님께 서원한 약속을 지키기로 다짐했습니다. Q. 처음 전문아동상담원으로써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A. 가출부랑아동 전담 아동보호시설인 ‘재생원’을 중심으로 5년간 약 6만명의 아이들을 상담했습니다. 개별상담지도 및 조치를 하는 업무였습니다. 매일 30~50명의 아이들을 상담했는데, 5년간 지속하다보니 너무 힘들었습니다. 특히 가출 아동들은 거짓말을 많이 하기 때문에 상담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어린 나이인데도 이성에 지나치게 밝은 걸 보면서 회의가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힘든 환경에서도 살아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하나님께 “이 일을 하라고 저를 살려주신 것이죠? 그럼 가겠습니다”며 매일 새롭게 다짐했습니다. Q. 그간 어떤 직책을 거쳐오셨는지요? A. 35년간 아동복지사업소 교육계장과 아동청소년회관 청소년부장, 근로청소년회관장을 역임했습니다. 새로운 업무개발과 수혜 대상자를 넓혀가기 위해 제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해 왔습니다. 근로청소년회관장을 역임하던 시절에는 사하구 다대동에 근로자임대 아파트를 건립해 미혼근로여성들의 주거 안정을 도왔습니다. Q. 홑트아동복지회 부산사무소 개설을 추진하신 것으로 압니다. A. 보호자로부터 버려진 아동을 기아, 길을 잃어 떨어지게 된 아동을 미아라고 합니다. 제가 근무하던 1968년 당시에는 기・미아 아동이 750~800명으로 고아가 너무 많았습니다. 지금은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과거에는 비일비재 했습니다. 당시 30대 청년이 저를 찾아와 연인과 동거 중 아이를 출산했는데 아이 엄마가 도망을 갔고 보름된 아기가 집에 방치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급히 직원과 함께 집을 찾아가 보니 참혹한 상황에 할 말이 없었습니다. 오물과 울음에 찌든 아기를 안고 데려왔습니다. 아기가 입을 옷이며 먹을 음식이며 양육에 필요한 물건들이 급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를 전문으로 하는 기관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찾던 중 홀트아동복지회에 연락해 협의한 끝에 부산사무소를 개설하게 되었습니다. 3세 미만 기・미아 전담 기관으로 보호자를 찾아주고 힘들 경우 국내외 입양을 도와주는 기관입니다. Q. 어린이집 4개소를 설립하셨다고 들었습니다. A. 영유아복지를 위해 또한 근로 중인 여성들을 위해 어린이집이 필요했습니다. 이를 확산시키는 것이 중요하도 생각되어 근로청소년회관 내 시립어린이집 1개소(정원 131명), 아동복지사업소 2개소(어린이집 180명, 지능개발실 40명), 동백아파트 복지동 내 국공립어린이집(정원 60명)을 설치했습니다. Q. 전국 최초 아동신고센터를 개설하셨는데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A. 1972년 전국 최초 가출아동신고센터를 설치 운영했고, 아동학대신고센터를 설치 운영했습니다. 아동복지사업소, 부산역, 부산진역에 개설해 운영했습니다. 서무계, 교육계, 상담지도계를 조직해 주도적인 일을 했습니다. 과거 육교나 거리에서 돈을 구걸하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구전, 도벽, 걸식하는 아이들이 많았고, 이 아이들을 착취하는 넝마주의집단이 28곳 있었습니다. 경찰들과 함께 아이들을 꺼내오기 위해 집단에 뛰어들기도 했습니다. 사복을 입은 경찰 두어 명과 함께 들어가 아이 한 명을 데려 나오는 게 절대 쉽지 않았습니다. 데려온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고 용돈을 주고 상담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Q. 많은 아동청소년들을 만났는데, 특히 기억에 남는 사연이 있습니까? A. 숱한 사연들이 제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28번째 가출을 하고 저를 만난 명호(가명), 안동에서 부산진역으로 오게 된 선우(가명), 그리고 지금도 가끔 인사를 건네는 영희(가명)가 기억에 남습니다. 한번은 아동학대신고센터에 문현동에 부모 없이 3남매가 있다며 이웃집 아주머니의 신고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조사를 위해 찾아가보니 방 한칸은 주인이 사용 중이고, 다른 방 한칸에는 고2 여학생과 두 남자아이가 있었습니다. 남자아이들은 허름한 옷을 입고 있었고 누나는 각혈을 해 급히 보건소로 데려가 입원을 시켰습니다. 폐병 3기로 생명까지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제 돈을 털어 약을 샀습니다. 6개월간 약을 먹고 병이 고쳐졌고 영희가 학업과 취업을 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복지사로 취업한 후 떨어져 지내던 남동생들과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미국에서 살며 나이가 60이 넘었는데도 가끔 제게 안부를 전하며 감사인사를 합니다. Q. 앞으로의 바람이 있으시다면? A. 이번 기독교문화대상을 준비하면서 참 많은 일들을 하며 살아왔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지칠 때도 있었지만 보람을 느낄 때도 많았습니다. 제가 만약 하나님께 서원하지 않았다면 결단코 힘든 이 길을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웃음) 그러나 지금 돌이켜 보니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남은 여생도,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불우한 아동청소년들을 돌보면서 살아가고자 합니다. 옛날처럼 많은 일들을 할 수는 없겠지만 지친 이들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 줄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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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2019-12-23
  • “마산재건교회에서 30년 목회는 참 행복했습니다”
    먼저 제1회 경남기독문화상(목회자부문)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 시상식 몇일 전에 통보받았을 때 무척 놀랐고, 그리고 송구스러움이 많았습니다. 교회와 교단적으로 볼 때 작은 공동체를 섬겨 온 평범한 목회자에 불과한데, 그럼에도 분에 넘치는 수상은 개인과 교회와 교단적으로 위로가 컸습니다.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고 여러모로 부족이 많은 목회자 가족임에도 오랜 세월을 변함없이 품어주신 마산재건교회와 지역 교계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경남기독문화상은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하여 아름답게 헌신하고 기독교문화발전에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친 분’들에게 주는 상으로 들었습니다. 목사님은 그동안 지역교계에서 많은 연합운동을 주도해 오셨습니다. 활동해 오신 이력 등을 소개해 주십시오. - 10년 가까이 영국에서 신학공부를 하고 목회경험을 쌓아 오면서 받은 도전중의 하나는 ‘교회만 아니라 모든 영역의 주가 되신 하나님, 교회의 시야를 넓히며 섬겨나가자. 그리고 사역보다 사람을 중시하는 인격목회에 힘쓰자’, 그래서 마산재건교회에 부임했을 때 첫해에 내 놓은 교회표어가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는 교회”(벧전 2:21), 제시한 비젼은 “교육, 빛과 소금, 선교”였습니다. 교회와 소속 교단을 위해 최선으로 섬겨 나오면서 지역의 교회연합사역에 꾸준히 동참하면서 초교파적으로 선교사, 선교단체, 기독교적 NGO단체들을 후원하며 동역해 나왔습니다. 그 열매로 점차 우리 마산재건교회는 교단에서 중심적인 교회로 성장하면서 지역에서도 좋은 교회로 인정받으면서 지도자로 섬길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교단적으로 총회장, 총회신학원장을 엮임했고 지역에서는 마산기독교연합회 대표회장, 경남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IVF경남지방회 이사, 한국라브리 이사, 하나의코리아 고문...등 섬기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제 아내 역시도 상담의 은사가 있어서 창원극동방송에서 초창기때부터 지금까지 ‘소망의 기도’ 진행자로 쓰임 받고 있음에 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가장 보수적인 교단이라고 할 수 있는 재건교회 목사님이 지역 연합운동을 주도해 오셨다는게 놀랍습니다. 그동안 교단 안팎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 그렇습니다. 재건교회의 유별난 보수적 특성으로 인해 상당 기간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한가지 예로 타 교단 출신이여서 노회와 총회에서 이런 저런 어려움을 당할 때가 많았는데 그때마다 당회가 담임목사 방패막이 역할을 감당해 주셨고, 담임목사의 목회비젼에 적극 호응해 주심으로 점차 교단적으로나 지역교계에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7:20), 물론 10여년 가까운 세월을 요구받았지만 교단적으로 재건교회 목사로 인정해 주셨고, 지역에서는 연합사역에 힘써 나오면서 재건교회의 좋은 뿌리를 알리면서 위상을 높이는 기회를 갖게 되었지요. 그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특히 장로님들과 성도들이 담임목사 가족을 가슴에 품어주고 신뢰하고 동역해 주었기에 가능했던 열매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6월 6일, 원로목사 추대 감사예배에서 나는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마산재건교회에서 30년 목회는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은퇴 후 활동에 대해서도 듣고 싶습니다. 앞으로 계획이 있으시면 소개해 주십시오. - 아직은 특별히 말씀드릴 활동이나 계획은 없습니다. 다만 지난 30년 목회가 가치있고 보람을 갖기 위해서는 은퇴 이후 마산재건교회가 은혜가운데 더욱 성장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은퇴를 앞두고 교회 앞에 부탁드린 기도제목이 있었습니다. “새로 부임한 목사님 중심으로 교회가 안정가운데 더욱 역동적으로 부흥케 하옵소서”, 그리고 아내와 저를 위해서는 이런 기도제목을 갖습니다. “오랜 세월을 주위의 시선들을 의식하며 살아왔습니다. 이제는 그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 주님 안에서 자유함을 누리며 감사와 소망가운데 살아가게 하옵소서”. 끝으로 지역교계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 오늘날의 한국교회와 대한민국의 처지를 바라보며 우리 모두는 염려하며 탄식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이래서는 안되는데, 특히 교회지도자들이 이래서는 안되는데, 우리 국민들 마음이 이처럼 찢겨지서는 안되는데 특히 정치지도자들이 이래서는 안되는데...”, 위기의식을 갖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정치, 경제, 사회, 안보가 아무리 절망적일지라도 교회가 살아있다면 그래도 여전히 희망은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마저 본질에서 벗어나고 타락한다면 그때는 끝장이요 희망은 사라지고 언제 하나님의 진노의 매가 임할는지 참으로 두렵습니다. 대강절기를 보내고 보내면서 “하늘엔 영광, 땅에는 평화”(눅2:14), 그런 은혜를 바라면서 그 누구보다 부디 우리가 섬기는 교회와 한국교회가 부단히 갱신하면서 시대적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간절한 바램이요 기도 제목 일 것입니다. 그동안 오랜 세월을 마산을 중심으로 지역의 복음화와 선한 일을 위해 함께 사역할 기회를 주신 지역교계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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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2019-12-18
  • “고통받는 이웃들을 위해 희생하고 섬기겠다”
    먼저 부산NCC 회장으로 연임되신 소감을 밝혀 주십시오. - 지금 우리 사회는 중차대한 커다란 변화의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중대한 시기에 부산 NCC 회장에 연임이 된 것에 다시 한 번 막중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일치와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한반도에 평화를 주시고 이 땅에 하나님의 질서가 세워지도록, 제가 가진 소임을 다해 부산 NCC를 세우고 부산 교회를 세워나가는 일에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회기 부산 NCC 활동과 사업등을 평가해 주신다면 .....? - 지금도 문제가 되고 있지만 김용균 추모 예식을 들 수 있습니다. 특히 12월 25일 성탄절날 부산지역기독교단체연합으로 고 김용균 추모 예식은 1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사회에 청년들이 죽고 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에 여전히 교회가 아무것도 못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또한 작년에 이어 미 8부두 세균무기실험 진행 관련 기도회와 남구시민대책위에 참여하여 활동한 것이 있습니다. 방위비분담금 문제와 관련하여, 지금 미국에 우리가 현금으로 주는 방위비가 우리를 헤칠 수도 있는 세균무기를 만드는 것에 활용된다면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이겠습니까? 지역에서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함께 해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으로 일본그리스도교 교회 한국 신학원인 호도스신학원에서 함께 연대하여 전야제를 한 적이 있습니다. ‘3.1독립운동과 그 재판 결과에 No!를 외치면서 걸어온 한 일본인의 삶’이라는 주제로 일본 메이지 법대 사사카와 노리카츠 교수를 모시고 세미나를 진행했는데, 당시 우리 신앙의 선배들의 생생한 법정 증언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 잘 아시겠지만, 제 9회 부산반핵영화제 조직위원회에도 참석하고 후원하였으며, 일본의 역사왜곡, 경제침략, 평화위협 아베규탄 비상시국회의에도 함께 하였습니다. 기후위기비상행동-in부산과도 연대하였으며, 11차 방위비분담 협상중단 촉구 시민사회 공동 대응에도 연대하며 활동하였습니다. 아쉬운 것은 올해에 박효섭 목사님과 유성일 목사님께서 하늘나라에 간 것입니다. 두 분 다 우리 교계의 큰 인물이셨는데, 하나님께서 너무 일찍 데리고 가셨습니다. 금년 주제가 ‘평화를 이루기 위해 있는 힘을 다 하여라’ 라고 들었습니다. 주제에 맞는 어떤 활동계획을 계획하고 계십니까? - 하나님의 평화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꿈입니다. 그러나 평화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자기희생과 섬김을 통하지 않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고통 받는 이웃들을 위해 희생하고 섬기는 일을 멈추지 않겠습니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 소수자, 이주민들과 난민들을 향한 시대와 사회적 폭력에 대해 주시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소외된 이들의 이웃으로 소외로 고통당하는 이들의 아픔에 침묵하지 않고 함께 연대하고 적극적으로 동행하겠습니다. 나아가 기후변화와 생태위기에 대응하는 고통당하는 지구적 삶의 회복을 위해서도 최선을 다해 동행하겠습니다. 우리 사회가 보수와 진보, 지역, 세대 간의 갈등 등이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인데요. 이제는 교회와 사회 안에 존재하는 갈등을 극복하고 화해하는 일에 교회가 앞장 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NCC 차원에서 어떤 노력을 하실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일에는 진보 보수가 따로 없습니다. 비록 서로의 섬기는 위치가 다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하나님나라를 세워나가는 일에는 합력하여 선을 이룰 수 있습니다. 진보적 색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보수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하나님나라를 꿈꾸는 일이 세상으로부터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지역교계에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 지난 해와 같이 한반도의 정의 평화 인권과 환경 통일운동 및 그리스도교 일치에 힘써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사랑의 연대를 이루고 계셨듯이 모든 그리스도인들 역시 한 지체로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연대하며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도구로 쓰임받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함께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평화를 이루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하여’ 나간다면, 땅에 떨어진 교회들의 신뢰를 회복하고 이 땅에 그리스도의 계절을 이루게 할 것이라 굳게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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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2-09
  • 조의금을 선교헌금으로 낸 故 배경숙 권사 가족들
    ▲ 이송학 장로와 故 배경숙 권사 지나간 자리에는 흔적이 남듯이 한 사람의 인생이 다녀간 자리에도 흔적이 남는다. 한 평생 살면서 어떤 흔적을 남기느냐가 중요하다. 배움에 대한 열정, 선교에 대한 헌신, 가족의 사랑을 남긴 이가 있다. 지난 11월 5일(화) 소천한 故 배경숙 권사(부산영락교회)이다. 가슴의 열정을 행동으로 故 배경숙 권사는 신앙의 개척자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예수님을 믿고 늘 말씀을 읽고 외우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족들이 믿도록 기도했다. 이를 본 배 권사의 자녀들 역시 외가 식구들과 친척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배 권사의 남편 이송학 장로는 “신앙의 개척자에겐 의로운 영적인 부담이 있다. 가족과 친척들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야 한다는 사명의식을 늘 지니고 살았다. 그래서 자녀들까지도 이 일에 동참하게 교육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들이 고등학교 3학년 때 여름수련회를 갔는데 시험을 잘 치게 해달라는 기도는 하지 않고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예수님을 믿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하는 것을 교회 교사들이 듣고 신기하게 여긴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이 장로는 “그리고 그 후 믿지 않는 친척과 처가의 형제자매 중 많은 분이 주님을 영접했다”고 덧붙였다. 이송학 장로는 부인 배 권사를 회상하며 “아내와 결혼하고 산지가 벌써 49년이 되었다. 그 세월 동안 자식을 낳고 업을 이루면서 머리는 맞대고 의논하면서 열심히 살았다. 아내는 책을 좋아하고 성경 말씀을 늘 가까이 했다. 그래서 어떤 해는 말씀을 10독하기도 했고 영어성경 전권을 써서 그 성경책 위에 손을 얹고 아들이 결혼할 때 혼인서약을 했다”고 말했다. 서로 아주 다른 성정을 가졌지만 각자의 인생을 세상 권이나 지성, 인기, 시류 등에 두지 않고 철두철미하게 하나님의 말씀 위에 자신의 전 존재, 즉 사고나 생각, 행동, 믿음을 두기 위해 노력했다. 故 배경숙 권사는 늘 돕는 배필로 살기를 원했다. 자녀들을 돕기 위해 많은 책을 읽고 그 사상들과 성경의 말씀에 근거해 자녀들을 양육했다. 그러면서 부정적이거나 희망적이지 않은 것은 어떤 것도 자식에게 주지 않으려고 했다. 이 장로는 “특히 자녀들이 스스로를 부족하게 생각하거나 실망하는 것을 소망으로 바꾸어 놓는 일을 아주 잘했다. 전 그런 모습을 보는 것이 참 좋았다”고 말했다. 지식이나 재물이나 재능을 아무리 많이 가져도 자녀들과 부모가 서로의 마음을 터놓고 자유롭게 대화할 수 없다면 슬픈 일이다. 그러나 이 장로의 자녀들은 많은 것을 서로 이야기하고 나누려고 했으며, 손자들과 손녀들도 그러했다. 특히 배 권사와는 더욱 친밀했다. 이송학 장로와 배경숙 권사 슬하에는 1남 2녀가 있다. 아들은 현재 경희푸른한의원을 경영하고 있고 경희대 한의대에서 임상외래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큰딸은 보스턴 뉴잉글랜드 컨설바토리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해 뉴잉글랜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작은딸도 같은 학교를 나와 보스턴대학교에서 반주학 박사를 받고 국내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늘 배움의 끈을 놓지 않았던 배 권사는 대학생들을 오랫동안 가르쳤다. 이송학 장로 역시 교육에 관심이 많아 시의원 시절에도 교육 분과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교육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인지 며느리와 사위들 역시 교육현장에 있는 이들이다. 며느리는 대학에서 불문학을, 큰사위는 보스턴 버클리음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작은사위와 작은딸도 연세대와 성신여대, 백석대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아들 이진신 씨는 “어린 시절이나 지금이나 어머니는 늘 책과 함께하셨다. 물론 강인한 생활력으로 아버지를 뒷바라지하시고, 교회생활도 열심이셨다. 특히 선교에 열정이 많으셨지만 어머니에 대한 기억의 첫 장은 어머니의 서재이다. 방에는 책으로 가득 차 있었다”면서 “특히 철학과 신학, 이성과 종교에 대한 책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어린 시절에는 펴서 읽을 만한 쉬운 책은 없었지만, 고등학생 때부터는 아주 유익한 책들을 찾아 읽곤 하였다”고 말했다. 아름다운 일들을 남겨 故 배경숙 권사는 대구 경북여자고등학교를 졸업, 계명대학교, 부산영남신학교, 동아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철학박사)를 전공했으며 대학에서 철학개론, 사상사 이해, 현대사회와 철학, 논리학, 과학과 종교, 과학론, 과학철학, 현대신학, 종교철학, 교양영어 등을 강의했다. 저서로는 <세계종교의 이해>, <진리와 자유 그리고 은혜>,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남편과 함께 쓴 <그 나라로 가는 길에>가 있다. 평소 선교에 관심을 갖고 교회에서도 앞장서 섬긴 배 권사의 삶을 기리며 가족들은 조의금 3천만원을 선교헌금으로 냈다. 가족들의 뜻이 모이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지만 남편 이송학 장로를 비롯해 자녀들 모두가 한마음으로 선뜻 선교헌금을 내며, 배 권사의 삶을 기억하기로 했다. 한 사람의 생명이 사라졌지만, 그로인해 세계 곳곳에 영적 생명을 얻는 이들이 바라는 마음에서다. 부산영락교회 윤성진 목사는 “아름답게 살다가 아름답게 가신 분이다. 가족들이 아름다운 일들을 남겨놓고 싶어서 그랬다고 말했다”면서 “간호사 출신으로 신학도 배우고 철학박사 학위를 배우며 늘 공부하는 분이었다. 남편 이송학 장로님과 함께 교회에서도 늘 배우고 연구하는 부부였다. 고인의 뜻을 잘 기려서 가족들이 큰 결심을 했다. 많은 성도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는 기회였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고인의 뜻을 이어받아 앞으로도 계속해 선교에 관심을 갖고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인물
    • 크리스천파워
    2019-12-04
  • “50년사 화보집 발간 계획 중”
    제50회 전국장로회 회장으로 추대되셨습니다. 소감을 밝혀 주십시오. - 부족한 종에게 전국장로회연합회를 섬기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추대해 주신 총대 장로님들 그리고 기도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어느 때보다도 교회가 사회로부터 비판과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때라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금년 50회기에 이르기까지 회기마다 수고하신 선배님들에게 누가되지 않고, 고신교회의 책임있는 기관으로서의 장로회가 되도록 한 회기동안 최선을 다해 섬길 수 있도록 기도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금년 전국장로회 주제를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주제를 그렇게 정한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 금년 회기의 주제는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벧전 5:5)입니다. 전국장로회연합회 50회기 희년의 의미를 살려 장로님들 모두가 장립시 초심으로 돌아가서 겸손한 마음과 자세로 새로운 50년을 준비하자는 의미로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전국장로회는 매년 1월 신년하례회, 4월 목사장로 기도회, 8월 장로부부수련회, 11월 총회를 갖고 있습니다. 이 사업 외에 장로님께서 특별히 계획하고 계신 사업이나 정책 등이 있으면 소개해 주십시오. - 그동안 계속되어 온 사업은 그 의미와 성과를 분석하여 미비점들을 보완하여 계승하고자 합니다. 대신 매 사업마다 50회기의 의미를 살리거나 이번 회기에서 강조하고 싶은 순서가 있다면 병행하여 추진할 계획입니다. 특별히, 이번 회기는 다음세대 신앙계승을 위한 수직선교에 향후 장로회의 역량을 결집시키는 시작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현재 해외선교는 교단의 KPM을 중심으로 전국남여전도회와 교회와 각 기관들이 헌신적으로 훌륭하게 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음세대에 대한 신앙전수는 교회마다 노력은 하고 있으나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수직선교영역은 결혼을 통한 믿음의 가정 만들기부터 시작하여, 믿음의 자녀 많이 낳기, 가정예배 살리기, 주일학교활성화, 신앙교재개발, 교회SFC살리기, 전문지도자 양성 등 많은 분야가 있습니다. 아직은 저의 개인적인 구상입니다만, 앞으로 저희 장로회는 이를 위해서 총회교육원, 전국주일학교연합회, 전국SFC 등과 협의하여 지원방법을 찾고, 전문지도자 양성을 위해 고신대와 신학대학원과 의견을 교환하여 지원방안들을 찾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전장연 정관에 의해 설립된 결혼정보센터와 고신장학회가 그 역할의 일부를 담당했으면 합니다. 이런 수직선교는 수평적이고 공간적인 선교인 해외선교와 달리 시간적인 선교라 이번 한 회기만 노력해서는 안되고 오랜기간 지속이 되어야하기 때문에 전국장로회에서 내부토론 등 공감대가 필요하고 전략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이를 위한 노력의 시작이 되는 한 회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전국장로회가 50회를 맞이 했습니다. 희년과 관련된 특별한 계획이 있으십니까? - 희년은 자유, 회복, 쉼 등의 의미와 함께 기본으로 돌아가서 다시 50년을 시작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전국장로회연합회의 지난 50년을 돌아보며 새로운 50년을 준비하는 의미로 50년사 화보집 발간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지난 50년의 자료정리와 평가, 향후 방향설정 등 간략한 내용도 포함될 수 있을 것입니다. 장로회 일부에서 합동이나 통합 장로회가 실시하는 ‘지역순환제’ 목소리가 있습니다. 특정지역에서 3회 연속으로 회장에 선출되거나, 특정인이 4회 연속으로 수석부회장에 출마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한 대책의 목소리들이 제기되고 있는데요. 회장님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 전국단위의 조직이라 최근의 현상은 바람직하지는 않습니다. 최소한의 규정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다만 ‘지역순환제’는 역동성을 저하시키는 면도 있고, 출마횟수 재한 등은 내부 논의가 필요합니다. 끝으로 교단 산하 장로님들께 당부의 말씀이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 우리 장로님들이 교회와 교단을 위해 봉사와 헌신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어머니 같은 교회가 오늘의 우리장로와 장로회를 길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전국장로회연합회는 정관에 명시된 대로 노회장로회와 지역별 장로회협의회와 유대를 공고히 하고 교단 및 전국교회의 발전과 복음사업에 기여함을 주요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점은 관심과 참여일 것입니다. 노회장로회와 지역장로회를 통해 결집되는 힘이 전국장로회를 움직인다고 생각합니다. 부족한 점이 있으면 언제든지 지도해 주시고, 힘과 격려,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인물
    • 인터뷰
    2019-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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