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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교양 읽기36] 한 마리 벌레처럼 오래 걸으니 내 발이 비로소 이 땅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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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마리 벌레처럼 DMZ를 홀로 걷다 이 책은 저자가 강원도 고성 명파초등학교에서 출발하여 인제-양구-화천-철원-연천을 거쳐 경기도 파주 임진각까지 DMZ를 동에서 서로 가로지르는 약 380킬로미터의 길을 열하루 동안 오롯이 걸었던 기록이다. 그것도 유월 하순의 무더위 속에 햇빛 피할 곳도 제대로 없는 아스팔트길을 걸었다. 어떤 때는 생애 최악의 폭우 속에 온몸을 맡기고 걷기도 했다. 생각만으로도 지칠 것 같은 그 고통의 길을, 아름다움을 기도하면서 한발 한발 내디뎠다.
걷는 가운데 많은 것을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길가를 걷는 사람은 생각지도 않고 내달리는 차량을 보면서 ‘무례한 것은 곧 난폭한 것’이라고 느꼈다. 인적 드문 길을 가면서 제 자리에 서 있는 조그마한 표지판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다. 한참을 산 뒤에 뒤돌아보아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도 있음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오래 걸으면서 가장 중요한 것을 체득했다. 내 발이 비로소 이 땅을 밟고 있다는 느낌과 제대로 된 삶의 속도이다. 내가 사랑해야 할 이 땅을 새롭게 느꼈고, 너무도 빨리 변하고 편한 것만 추구하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속도는 걷는 속도와 닮아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왜 하필이면 DMZ를 걸었느냐고 묻는 분이 있을 것이다. 나도 그 길을 걷고 싶다는 분도 있으리라. 중요한 것은 그 길이 기도하는 길이라는 사실을 먼저 깨닫는 것이다.
◈ 《한 마리 벌레처럼 DMZ를 홀로 걷다》 || 저자 한희철 목사는 현재 부천 성지감리교회를 섬기고 있다. 시인이며 동화작가이기도 하다. 지은 책으로는 《하나님은 머슴도 안 살아봤나》, 동화책 《네가 치는 거미줄은》 등이 있다. 꽃자리, 2018. 17,000원.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작은교회 이야기》 / 한희철 / 포이에마
《어느날의 기도》 / 한희철 / 두리반
▌좌담: 김길구, 김수성 경성대 초빙외래교수, 김현호 기쁨의집 기독교서점 대표▌특별손님: 한희철 목사
▲ 한희철 목사는 DMZ 길을 순례하면서 많은 것을 얻었다고 한다. 특히, 두 발로 이땅을 밟으면서 현실을 느꼈고, 삶의 적절한 속도를 찾았다고 한다. <’기쁨의 집’에서 오른쪽부터 한희철 목사, 김길구, 김현호, 김수성>
하나님께 지고 싶어 순례길을 떠나다
김길구 오늘은 《한 마리 벌레처럼 DMZ를 홀로 걷다》를 쓴 한희철 목사님을 특별손님으로 모시고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먼저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왜 하필이면 DMZ 길을 걸었습니까?한희철 두어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오래 전부터 걷고자 다짐했던 길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산티아고 순례길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만, 우리 산하에도 걸어야 할 순례길이 많다고 늘 생각했습니다. 또한 평소 나라를 위해 기도를 한다고는 했지만, 허리 잘린 조국에 대해 항상 빚진 자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직접 현장을 걸으며 동강난 허리를 ‘호는’ 마음으로 걸었습니다. 이후 다른 분들이 좀 더 촘촘하게 꿰맬 수 있기를 기도하면서[‘호다’는 ‘헝겊을 겹쳐 바늘땀을 성기게 꿰매다’는 뜻].김현호 책에 보면, 목사님 스스로도 목회 중 일어난 일로 인한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순례의 길을 나섰다고 하는데….한희철 맞습니다. 교육관 건축과 관련하여 적지 않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논어에 ‘군자는 의를 따르고, 소인은 이익을 따른다’는 구절이 있는데, 왜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돈과 관련된 문제는 소인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안타까웠습니다. 아팠습니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지요. 나 역시방향감각이 무뎌진 것은 아닌가 하고.김수성 아픔은 아픔으로써만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신 거군요?한희철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책에, 그가 한 수도사와 나눈 대화가 나옵니다. 그 수도사는 하나님과 싸우고 있는데, 하나님을 이기려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지고 싶어서 싸우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저도 하나님께 지고 싶어서 길을 나섰던 것입니다.김길구 열하루 내내 걸으면서 기도했다, 그것도 태어나서 나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 모두를 위해 기도했다는 말이 감동적이었습니다.한희철 새해가 되면 전 교인들에게 기도카드를 적게 합니다. 그 카드를 강대상에 올려놓고 매일 새벽기도회를 마친 후 제단 앞에 꿇어앉아 기도를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자세를 좋은 기도 자세라고 여깁니다. 그런데 이번에 걸으면서 기도를 해보니 이 자세도 상당히 좋은 자세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여태껏 나와 인연을 맺었던 분들을 떠올리며 기도하니 더욱 좋았습니다.
“기도는 따뜻한 기억과 든든한 연대”김현호 열하루 동안 걸으면서 모든 분들이 다 생각나던가요? 시간이 모자랐을 것 같은데.한희철 내가 그렇게 많은 분들과 인연을 맺지 않아서 그런지, 열하루 동안 내 기억 속에 있던 모든 분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하다 보니 얼굴이나 이름이 아니라, 먼저 그분들의 아픔과 만나게 되더군요. 즉, 모두가 무엇이든 아픔을 가지고 있었고, 세상에는 아픔 없는 분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기도는 따뜻한 기억과 든든한 연대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나와 인연을 맺은 분을 위해서 기도를 쉬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깨달았습니다.김수성 걸으면서 기도하는 것 못지않게, 자연과 함께 드린 예배도 인상적이었습니다.한희철 예배는 내용과 함께 형식도 중요합니다. 얼마 전 미국에 갔을 때 한 수도원을 방문했습니다. 마침 예배시간이었는데, 그레고리안 성가로 이어지는 수도자들의 예배 자세를 보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진솔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걷는 중에 맞이한 주일, 새소리와 계곡 물소리가 찬송하고, 나무가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고, 계곡을 따라 부는 시원한 바람이 축도를 한 예배는 결코 혼자 드린 예배가 아니었습니다.김길구 준비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는지요?한희철 사실 갑자기 떠나려고 마음먹었기 때문에 준비가 소홀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특히 걷는 연습을 제대로 하지 못해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코스는 함광복 장로님께서 일일이 적어준 로드맵에 의존함으로써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함 장로님은 DMZ에 관한한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전문가입니다. 또한 중간 중간 교회 장로님을 비롯해 여러분들이 기꺼이 동행해주셔서 큰 힘을 얻었습니다.김현호 걷는 동안 날씨 때문에 상당히 많은 고생을 하였다고 하던데.한희철 유월 하순이었는데도 삼복더위 못지않았습니다. 걸핏하면 스마트폰에 무더위 주위보가 날아와 ‘바깥활동은 삼가라’는 메시지가 떴습니다. 뜨거운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복사열은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었죠. 끝이 보이지 않는 오르막길을 걸을 때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특히 진부령을 오를 때는 뇌성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쏟아져 앞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나중에는 우박까지 쏟아졌는데, 내가 여태껏 살아오면서 만났던 가장 심한 악천후였습니다.
걸으면서 ‘삶의 적절한 속도’ 깨달아김수성 저도 걷는 것을 좋아합니다만, 길을 걸으면서 느끼는 것 중의 하나가 약자를 배려하지 않는 길, 사람보다 차를 중시하는 길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라는 것입니다.한희철 DMZ 길도 아찔한 곳이 많았습니다. 인도가 아예 없는 길도 여럿 있었고, 있다 하더라도 주행하는 차의 폭력적인 운전에 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특히 탱크가 내 옆으로 지나갈 때는 머리털이 곤두설 정도로 무서웠습니다. 어떤 곳에서는 이를 피할 곳이 마땅찮아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문득 2002년 경기도 양주 마을도로에서 여중생 두 명이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진 사건이 떠오르더군요.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길에 대해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김길구 오래 걸음으로써 삶의 적절한 속도를 찾으셨다고 했습니다.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우리 사회는 현기증을 느낄 정도로 너무도 빠르게 변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한희철 삶의 속도가 빠르다고 해서 더 많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인생에서 더 중요한 것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이번에 저는 우리 인생은 평생 길을 걷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래 걸으면서 내 발이 비로소 이 땅에 딛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즉, 나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을 몸으로 깨닫게 된 것이지요. 참으로 중요한 경험이라 할 수 있습니다.김현호 순례길을 끝내고 돌아왔을 때, 무언가 변화가 있었나요? 교인들의 반응 같은….한희철 특별히 변한 것은 없습니다. 다만 스스로 깨달은 것이 있지요. 더 이상 상황에 끌려가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나비가 되기를 기도하며 한 마리 벌레 같이 걸었지만, 오히려 번데기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것 같습니다.김수성 그래도 번데기가 되었으니 한 단계는 진전한 셈입니다. 번데기를 거쳐 때가 되어야 나비가 될 수 있으니까요[웃음].김길구 이 책을 처음에는 편하게 읽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와 북한의 관계 등 현실을 생각하면 결코 가볍게 읽을 수 없었습니다. 또한 한사연 목사님의 순교 등과 관련된 ‘바이블루트’는 우리가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바쁘신 가운데서도 이렇게 부산까지 오셔서 자리에 함께해주신 한희철 목사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다음에는 안재경 목사의 《십계명, 문화를 입다》(SFC, 2017)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김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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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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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교양 읽기 35] 정서와 영성은 아날로그 영역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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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날로그의 반격
아날로그는 살아 있다
이 책을 읽으면 온통 디지털로 뒤덮인 이 세상에 아직도 아날로그가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아날로그가 건재하고 있는 이유를 꼼꼼하게 하나씩 제시한다.저자는 새로 이사한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준레코드’라는 상점이 문을 연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CD와 인터넷 다운로드로 시작한 디지털 음악은 차츰 파일로만 유통되다가, 특히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스트리밍으로 언제 어디서나 즐길 수 있게끔 변신했다. 그런데 사라진 줄 알았던 LP 레코드점이라니, 뿐만 아니라 디지털 세대인 젊은이들이 오히려 LP 레코드를 찾는 기현상(?)까지 나타나다니….이 책에는 이외에도 아날로그로서 꿋꿋하게 버티고 있는 종이 수첩과 책, 보드게임, 학교, 오프라인 매장 등을 죽 소개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회심의 일격을 날린다. 디지털의 본거지 실리콘밸리에서 살아 움직이는 아날로그의 현상을 하나씩 적시한다. 내로라하는 IT 기업에서 명상이나 선(禪)을 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허락하고, 종이와 펜을 사용하여 먼저 디자인하는 교육을 시키고, 갈수록 대인 커뮤니케이션을 장려하는 등 아날로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뿐만 아니라 이들 기업의 직원들도 아이들은 손으로 직접 무언가를 만들도록 교육하고 컴퓨터조차도 없는 대안학교에 보낸다.
◈ 《아날로그의 반격》 || 저자 데이비드 색스(David Sax)는 캐나다의 문화 전문 저널리스트이자 논픽션 작가이다. 뉴욕타임스, 뉴요커 등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이 책은 2016년 뉴욕타임스 선정 ‘올해의 책’으로 뽑혔다. 어크로스, 2016. 16,800원.
◇ 같이 읽으면 좋은 책《신국원의 문화이야기》 / 신국원 / IVP《과학의 영혼》 / 낸시 피어시 / SFC
▲ 느리고 불편하지만 아날로그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실리콘밸리의 디지털 업계는 누구보다 아날로그를 중시한다고 한다. 아날로그의 가치에 충실할 때 디지털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림출처: www.nmgncp.com]
이번 시간에는 지난번에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인공지능과 기독교 신앙》과 관련, 디지털 세상에서 우리 기독교회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을 주제로 삼았다. 그래서 택한 것이 ‘아날로그’였다.
아날로그, 디지털 만능 속에 살아남다김길구 먼저 지난 시간에 우리가 나누었던 이야기를 간략하게 정리하고 시작하도록 합시다. 인공지능이 앞으로 일상화되면 일자리 문제는 물론이고, 우리의 신앙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이 우세했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이런 흐름 속에서 우리 교회가 나아갈 길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시간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김현호 아날로그가 하나의 답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은 디지털 세상에서 아날로그가 틈새시장으로서 버티고 있는 다양한 품목과 현장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우리 교회가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적절하게 활용하면 좋은 대안의 하나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김수성 사실 디지털 세상에 대한 반응에 있어서, 우리나라와 서구 사회는 분명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대체로 디지털을 산업적 측면에서만 소개하고 홍보하는 측면이 강합니다. 그래서 뒤떨어지면 죽는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이에 비해 서구 사회는 문제점도 직시하면서 대안을 모색하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이런 부분을 우리도 충분히 살펴봐야 합니다.김길구 LP레코드판의 보급을 보면, 분명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책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LP 판매량이 2007년 99만 장이던 것이 2015년에는 1200만 장 이상으로 늘었고, 연간 성장률도 20%를 웃돈다고 합니다. 세계적으로는 2015년에 새로 생산된 레코드판이 3000만 장 정도 될 것으로 추산합니다. 더구나 이 LP판을 사는 소비자층이 20대를 주축으로 10대까지 가세했다는 사실입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아직 미미한 실정이죠.김수성 LP판의 경우 가격 문제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음악을 인터넷을 통해 무료로 또는 염가로 다운로드하든지 스트리밍하여 듣는데 익숙해진 젊은 층이 기기를 구입하려면 적지 않은 돈이 들기 때문이죠. 외국에서는 요즘 디지털로도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저가의 턴테이블이 많이 보급되고 있는데, 이런 것이 우리나라에도 조금씩 소개되고 있습니다.김현호 저는 서점을 하고 있기 때문에 무엇보다 종이와 관련된 내용이 더 눈에 들어옵디다. 종이 수첩이 아직 건재하고 있고, 종이책은 전자책에 전혀 밀리지 않고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사실 몇 년 전 전자책이 등장했을 때만 해도 학자들은 곧 종이책이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자료에 따르면 전자책 리더 판매가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고 합니다.
‘관계는 아날로그’라는 의미 되새겨야김길구 아날로그가 아직도 건재하는 이유에 대해 ‘실재감’ 때문이라는 말에 동감합니다. 스트리밍한 음악은 듣고 나면 사라지죠. 전자책도 내용만 스크린을 통해 글을 읽는 것에 불과합니다. 아날로그는 불편하고 더디더라도 ‘내’가 그것을 직접 만지고 조작하고 느낄 수 있습니다. 오감을 통해 ‘내것’이라는 실재감을 느끼는 것이죠.김현호 디지털의 가장 큰 특징은 빠르고 간편하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이 효과라는 측면에서는 뒤떨어질 수도 있다고 합니다. 뇌 과학자들에 따르면, 특히 전자책을 볼 때와 종이책을 볼 때 뇌의 활동에 차이가 많다고 합니다. 즉, 종이책을 볼 때 뇌가 더욱 활발하게 움직이고 이로 인해 더 오래 내용을 기억하게 된다는 것이죠.김수성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내용만 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종이책은 그 책을 드는 순간부터 오감이 작동하죠. 책의 크기와 두께, 종이의 질감, 표지 그림과 제목의 서체 등 모든 것이 독서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리고 읽으면서 줄을 긋는다든지 간단하게 메모를 하는 등, 이 모든 것이 책을 읽는 것에 속하는 동작입니다.김길구 이 책에 의미심장한 말이 나옵니다. “관계는 아날로그입니다”라는 말입니다. 많은 학자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디지털 시대에 사람들이 가상공간에서 SNS 등으로 많은 관계를 맺고 있지만, 정작 필요할 때는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게 현실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일상생활은 물론, 교회 공동체에서도 되새겨야 할 말인 것 같습니다. 김현호 우리 교회와 예배가 디지털화되면 어떻게 될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마 교회 공동체가 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본성에 심어준 독특성은 모두가 아날로그일 것입니다. 느리고 불편한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영성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강단 뒤편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은 자칫 성도들을 예배를 ‘보는’ 사람으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김수성 스크린을 통해 성경말씀과 찬송가 가사를 보여주고 교인들은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게 현실이죠. 성경봉독할 때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전 교인이 성경 구절을 찾고, 마찬가지로 찬송가도 함께 찾는 과정이 예배에 있어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두의 마음을 모으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디지털안식일 운동 전개하길김길구 “정서와 관련된 모든 단어가 아날로그 영역에 있었어요”라는 말도 의미심장합니다. 디지털의 특징은 무미건조합니다. 우리 교회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속성입니다. 그런데도 교회가 이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에 비해 아날로그는 따뜻합니다. 웹진과 종이로 만든 소식지가 신자들에게 훨씬 더 감동을 줍니다.김현호 디지털 시대를 맞아 일반적으로 종이잡지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도 언급했고, 얼마 전 〈중앙일보〉에서도 보도했듯이, 오히려 소수의 마니아들을 위한 독립잡지는 훨씬 활성화되고 있다고 합니다. 즉, 잡지가 다양화되고 전문화되고 고품질화되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종이잡지가 사람들에게 신뢰감을 주기 때문이지요.김수성 몇 년 전 서구사회에서 일어난 ‘디지털안식일’ 운동을 우리나라 교회에서도 적극적으로 전개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즉,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아예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지 않든지, 최대한 절제하는 운동입니다. 비슷하게 ‘디지털 다이어트’ ‘디지털 금식’이란 말도 사용합니다. 이 책의 저자도 신자는 아니지만 자기 나름대로의 디지털안식일을 만들어 지키고 있다고 고백합니다.김현호 주일에 교회에 올 때 아예 스마트폰 등을 집에 놔두고 오는 운동을 하면 어떨까요? 처음에는 불편하겠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에 따른 준비를 미리 하게 되고, 부수적인 효과도 극대화될 것입니다. 단적인 예로 예배시간에 폰을 쳐다보는 일은 사라지겠죠. 또한 교인들 간에 대화가 늘어남으로써 신앙이 ‘이야기’로 계속 전수될 수 있을 것입니다.김길구 디지털은 우리가 멈출 수 없는 흐름인 것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유발 하라리가 언급했듯이, 디지털 사회는 궁극적으로 우리가 이때까지 중시해온 ‘가치’를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우리 교회가 이 ‘가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앞으로도 이 사회에서 굳건히 설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에는 한희철 목사가 쓴 《한 마리 벌레처럼 DMZ를 홀로 걷다》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정리: 김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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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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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교양 읽기 34] AI, 로봇, 빅 데이터, 생체공학 등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기독교회, 4차 산업에 적극 대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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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공지능과 기독교 신앙
이제 교회가 응답할 때
이 책은 잡지처럼 편집되었다. 전문가 ‘대담’에 이어, ‘인공지능과 기독교 신앙’에 관해 전문가 4명의 글을 실었다. 그리고 뒷부분에 ‘북 리뷰’ 페이지를 두어 5권의 책에 관한 소개로 책을 마무리하였다. 단행본이라기보다는 전형적인 잡지 스타일이다.2016년 3월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로 사람들의 관심이 급격하게 인공지능에 쏠렸다. 이어서 인공지능과 로봇으로 인해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잇따랐다. 그동안 기독교 신앙이 외면해오던 과학이, 엄청난 파워로 산업계는 물론 우리 일상생활에까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 것이다. 이제 기독교회가 대답해야 할 때이다. 아니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응답해야 한다.이 책에서 필자들은 교회가 지성적 신앙을 더 이상 회피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과학을 경원시할 것이 아니라 받아들임으로써 시대와 동행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인공지능을 비롯한 첨단 기술이 이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킬지를 교회가 먼저 고민하고, 그에 대해 신앙적 대응책을 마련해야 함을 강조한다. 그리고 관련된 도서 《과학시대의 도전과 기독교의 응답》 《종교적 중립성의 신화》 《호모 데우스》 《슈퍼 인텔리전스》 《지능의 탄생》 다섯 권을 소개한다.◈ 《인공지능과 기독교 신앙》 || 편저자 한국교회탐구센터는 ‘하나님나라를 위한 교회, 한국 교회를 위한 탐구’를 모토로 2011년에 설립되었다. 2016년부터 ‘과학과 신앙’에 대한 시리즈 기획물로서 《뇌과학과 기독교 신앙》 《외계인과 기독교 신앙》 등을 출판했다. Ivp, 2017. 12,000원.
◇ 같이 읽으면 좋은 책《인공지능 시대가 두려운 사람들에게》 / 리처드 왓슨 / 원더박스《호모 데우스》 / 유발 하라리 / 김영사
▲ 우리 사회에 인공지능이 성큼 들어온 지도 제법 되었다. 그런데 교회는 아직도 못 본 척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현실을 직시하고, 이에 대한 대비책을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한다. [출처: www.regmedia.co.uk]
AI, 로봇, 빅 데이터, 생체공학 등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기독교회, 4차 산업에 적극 대응해야
세계경제포럼(WEF) 창립자이자 회장인 클라우스 슈밥의 《4차 산업혁명》이 2016년에 출판된 후, 전 세계의 IT업계는 물론, 국가적으로도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4차 산업혁명에서 뒤처지지 않아야 국가경제를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는 인식이 팽배하였다.
인공지능, 일상생활 속으로 뛰어들다
김길구 2016년 이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회자되었던 낱말 중 하나로 인공지능(AI)을 들 수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적인 기술로서 AI와 함께 로봇, 빅 데이터, 생체공학 등이 거론되고 있는데, 이런 첨단 과학기술의 일상화가 우리 기독교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김현호 인공지능이 일반인들에게까지 각인된 계기는 아무래도 2016년 3월에 벌어졌던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AlphaGo) 간의 바둑대결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인공지능이 무엇인지에 관심조차 없던 사람들까지, 이 바둑대결을 계기로 AI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으니까요.
김수성 ‘알파고 쇼크’ 이후 뉴스를 타고 불길한 전망이 이어졌죠. 사람을 위해 설계한 인공지능이 오히려 역작용을 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AI도 ‘강한 지능’과 ‘약한 지능’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하는데, 현재 거론되거나 실용화되고 있는 것은 ‘약한 지능’이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김길구 정말 ‘쇼크’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이긴 직후,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문학상 공모전인 제3회 ‘호시신이치상’ 일반부문에 인공지능이 집필한 소설 11편이 출품돼 최소 1편 이상이 1차 심사를 통과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일반부문에서만 1450편의 소설이 출품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인공지능이 신문 기사도 작성하고, 작곡을 한다든가 그림을 그린다는 발표도 잇따랐죠.
김현호 알파고의 발전 속도도 놀랄 정도입니다. 이세돌과 맞붙은 알파고는 ‘알파고 리’였습니다. 이후 ‘알파고 마스터’ ‘알파고 제로’로 발전을 거듭했죠. 그런데 발표에 따르면 ‘리’가 ‘제로’와의 바둑대결에서 0:100으로 완패했다고 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리’가 이세돌과의 대결 이전에 학습한 시간이 7개월이었는데, 2017년에 개발한 ‘제로’는 바둑을 하나도 모르는 밑바닥(zero)에서 이 경지에 도달하는 데 고작 사흘이 걸렸다고 합니다.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김수성 알파고 이전에도 1997년 IBM의 ‘딥블루’와 체스 챔피언의 대결, 2011년 IBM의 ‘왓슨’과 텔레비전 퀴즈 쇼 ‘제퍼디’ 챔피언의 대결 등이 있었습니다. 이후 ‘왓슨’은 병원의 암센터와 연결되어 암 진단 등에 활용되고 있는데, 몇몇 우리나라 병원에서도 왓슨 프로그램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AI가 전문직 일자리까지 넘보는 현실
김현호 최근 TV를 보면 인공지능 도우미에 관한 광고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통신회사에서 내놓은 것으로, 음성으로 다양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디지털 기기들입니다. 한마디로 인공지능이 우리 생활에 개입하기 시작했다는 느낌을 받게 합니다.
김길구 인공지능이 우리 일상생활에 들어왔다는 사실은, 곧 우리의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우선 거론할 수 있는 것으로 일자리 부족을 들 수 있습니다. 컴퓨터 도입과 자동화 시스템으로 벌써부터 일자리가 크게 부족한 게 현실입니다. 그런데 인공지능이 일상화되면 상당수 일자리가 사라질 거라는 전망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김수성 이에 관해서는 이미 많은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여태까지는 단순 반복 노동과 관련된 일자리가 대폭 줄어들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앞으로는 소위 전문직까지도 위협할 것이란 전망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김길구 작년에 ‘아마존’ 유통창고의 ‘키바’ 로봇시스템 동영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넓은 창고에 사람은 몇 명 없고, 그나마 로봇의 보조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인공지능화된 로봇으로 처리되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기업에서도 이 비슷한 시스템을 속속 도입하고 있습니다. 또한 ‘아마존 고’라는 무인 편의점은 곧 우리 주변에 나타날 것 같습니다.
김현호 아까 왓슨을 이야기했지만, 의사나 약사 업무도 인공지능이 처리할 것이란 이야기도 나옵니다. 2016년에는 ‘인공지능 변호사’가 뉴욕 로펌에서 ‘근무’를 시작했다는 외신 보도가 있었습니다. 특기는 법률문서 검토로서, 초당 1억 장의 판례를 검토해 사건에 맞는 가장 적절한 판례를 추천한다고 합니다. 도저히 사람이 따라갈 수 없는 속도죠. 그러자 1년여 만에 수십 곳의 로펌이 이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김수성 인공지능이 발달함으로써, 이제는 패턴화된 업무는 모두 처리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단순한 예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공지능으로 인해 대체되기 어려운 직업 중 하나로 심리 상담을 꼽았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오히려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더 심리 상담을 잘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심리 상담도 패턴화할 수 있는 업무라는 것이지요.
유발 하라리, “‘데이터교’ 일반화될 것”
김길구 이런 흐름이 곧 기독교회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태까지 교인에 대한 목회상담은 목회자들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인공지능이 이러한 목회상담까지 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유발 하라리는 《호모 데우스》에서 앞으로 우리 사회에는 기술휴머니즘과 데이터교가 일반화될 것이라는 전망을 합니다. 즉, 인간의 삶이 기술과 데이터에 종속되는 세상이 온다는 것이죠.
김수성 이로 인한 소득의 불균형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한때 20대 80의 사회라는 공식이 정보사회로 들어서면서는 10대 90의 사회로, 이제는 1대 99, 심지어는 0.01대 99.99의 사회가 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는 현실입니다.
김현호 앞으로 기독 과학자들이 여기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문제점을 충분히 고려한 연구를 해야 할 것입니다.
김수성 문제는 자본입니다. 자본의 후원을 받아 연구하는 과학자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레이첼 카슨은 《침묵의 봄》에서 이와 같은 문제점을 정확하게 지적합니다. 1960년 현재 전체 응용곤충학자의 2퍼센트만이 생물학적 방제 분야에서 일하고, 나머지 98퍼센트는 화학 살충제 관련 연구에 몰두했다고 합니다. 즉, 자본의 지원을 받아 연구하는 학자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지요. 지금 상황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김현호 외국에서는 ‘사이언톨로지’라는, 과학을 신으로 섬기는 종교도 있습니다. 우리 일상에 종교처럼 파고든 스마트폰이나 인터넷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성도들은 대세라고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기보다 더디더라도 본질을 추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편리함을 따르다 보면 영혼과 정신세계는 허약해질 수밖에 없지요. 교회는 거대한 흐름을 선순환 구조로 바꾸는 노력을 사회적 선교개념으로 접근하여야 합니다.
김길구 결국 교회가 팔짱만 끼고 바라볼 것이 아니라, 적극 나서서 연구할 인력을 지원한다든지, 템플턴(Templeton) 재단 같은 재단을 설립한다든지 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가 이 거대한 4차 산업혁명의 물결에 휩쓸려 존재가치를 잃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음에는 데이비드 색스(David Sax)가 쓴 《아날로그의 반격》을 읽고, 오늘 나눈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김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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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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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교양 읽기 33] 성탄은 하나님의 아픔에서 태어난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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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아픔의 신학
일본 신학자가 쓴 '아픔의 신학' 책
까다로운 책이다. 단어도 낯설고 문장도 한 번 더 읽게 만든다. 그래서 쉽게 책장이 넘어가지 않는다. 그런데도 집중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하나님의 속성을 가리켜 ‘아픔’이라고 누누이 강조한다.일본인을 위한 신학 책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일본인들만이 알 수 있는 국학의 심상, 불교 용어, 비극적인 내용의 가부키에서 드러나는 쓰라림 등으로 하나님의 아픔을 설명한다. 그러면서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아픔은, 진노의 대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임을 이야기한다.저자는 조직신학자이다. 모든 것을 꼬치꼬치 따지고 설명하면서 아픔을 이야기한다. 한편으로는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고, 또 한편으로는 고개가 갸우뚱해지기도 한다. 몰트만에 의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고, 많은 신학자들이 지금도 이 ‘하나님의 아픔’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87년 박석규 목사에 의해 번역되어 출판되었는데, 2014년에 이원제 목사가 다시 번역하여 출판하였다.평신도는 뒤쪽에 있는 ‘해제’를 먼저 읽고 본문을 읽을 것을 권한다. 번역자인 이원제 목사가 이 책의 내용을 전체적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글을 잘 써놓았다. 그리고 말미에는 ‘아픔의 신학’를 넘어 생각해야 할 문제에 대해서도 세월호 사건 등을 예로 들어 지적해놓았다.◈ 《하나님의 아픔의 신학》 || 저자 기타모리 가조(北森嘉藏, 1916~1998)는 이 책 한 권으로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친 일본 신학자이다. 도쿄신학대 조직신학 교수 등을 역임했고, 저서로는 《구원의 논리》 《일본인과 성서》 등이 있다. 원제 ‘神の痛みの神學’. 새물결플러스, 2017. 17,000원.
◇ 같이 읽으면 좋은 책《끙끙 앓는 하나님》 / 김기석 / 꽃자리《긍휼: 예수님의 심장》 / 하재성 / SFC
▲ 기타모리 가조의 ‘아픔의 신학’은 예레미야 31장 20절을 내세운다. “에브라임은 나의 사랑하는 아들, 기뻐하는 자식이 아니냐. 내가 그를 책망하여 말할 때마다 깊이 생각하노라. 그러므로 그를 위하여 내 창자가 들끓으니 내가 반드시 그를 불쌍히 여기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개역개정).” [그림은 폴 고갱의 ‘황색 예수’]
성탄은 하나님의 아픔에서 태어난 복음!
아픔은 용서받을 자의 책임까지 짊어지신 하나님의 사랑
▌좌담: 김길구, 김수성 경성대 초빙외래교수, 김현호 기쁨의집 기독교서점 대표
한때 우리나라에도 ‘민중신학’이 한창 연구되었던 적이 있다. 박정희 정권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민주화된 후로는 더 이상 발전하지 못했다. 이에 비해 1946년에 발표된 기타모리 가조의 ‘아픔의 신학’은 오늘날에도 세계적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패전 직후 일본에 등장한 ‘아픔의 신학’
김길구 신학은 그 시대의 산물입니다. 고트족 침입 시 로마의 위기 앞에서 선 아우구스티누스, 중세를 닫은 마틴 루터, 히틀러 치하의 정치범 사형수 본 회퍼, 자유주의의 광풍 속에서 칼 바르트가 그러했습니다. 그 시대가 던지는 질문에 대한 신앙적 응답이 곧 신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시대적 배경을 알고 나면 신학이 나름 친근하게 다가옵니다. 최근 많이 거론되는 ‘하나님의 아픔’과 관련된 신학도 이런 맥락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김현호 그동안 우리는 서구 신학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에 익숙했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 인간과 같이 희로애락을 가지신 하나님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는, 자칫 편향된 모습의 하나님만을 생각하는 경향도 있었습니다. 하나님도 우리와 같이 고통을 겪는 분이라는 측면에서 본 ‘아픔의 신학’은 우리에게 또 다른 성경의 세계를 열어줍니다.
김수성 그동안 이 자리에서 두어 번 이와 관련된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아프다》 《세월호, 희망을 묻다》 등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들 책은 고통당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고통을 이야기한 것이었죠.
김길구 맞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아픔에 관한 연구입니다. 즉, 높은 곳에 계시면서 무소부재(無所不在)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낮게 내려와서 인간처럼 고통을 겪는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특히 그동안 대부분의 신학이 서구 중심으로 전개되었는데, 이 ‘아픔의 신학’은 아시아, 특히 패전 일본에서 나타났다는 점에서 더욱 관심을 끌었습니다.
김현호 ‘아픔의 신학’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부서진 현실을 하나님께서 끝까지 감싸 안으시는 구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저자는 이야기합니다. 이로 인해 우리의 아픔이 해결되고 우리의 상처는 치유된다는 것이죠. 그렇기에 여기서도 모성적 하나님의 속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김길구 저자는 하나님의 아픔은 진노의 대상을 사랑하시려는 하나님의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즉,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를 죽음에 내주었다는 것이죠. 예레미야 31장 20절 “내 마음이 아프다”는 구절을 “내 창자가 아프다”로 번역한 일본어 ‘문어역성서’를 인용하면서 하나님의 아픔을 구체화합니다.
너무나도 ‘일본적인’ 신학으로 표상화
김수성 기타모리의 신학이 서구사회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몰트만이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1972)에서 언급하면서부터라고 합니다. 한편, 칼 바르트는 기타모리의 신학이 너무도 일본적이라고 비판합니다.
김길구 기타모리의 신학이 일본적이라는 것은 우선 불교 용어를 그대로 사용한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즉, 일본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절복(折伏)’ ‘섭수(攝受)’ 등 많은 불교 용어로써 아픔의 신학을 전개합니다. 이는 외래종교를 일본화시키는 특유의 국민성에 기인합니다.
김현호 불교 용어를 차용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부자연스럽기는 하지만, 자기 나라 사람들이 어려운 신학적 용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김수성 자칫 본래의 의미가 왜곡될 가능성은 있을 것입니다. 한 예로,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에 나오는 초창기 일본 그리스도인들을 들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일본의 ‘오오히(大日)’로 인식하고 신앙했다는 것입니다. 즉, 형식은 기독교를 받아들였지만 신은 하나님이 아닌 일본의 신을 믿었던 것이지요.
김현호 불교 외에 일본 국학(國學)도 거론합니다. 특히 여기서는 일본인의 감정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모노노아와레’를 언급합니다. 이 말 뜻은 ‘어떤 사물이나 상황에 접했을 때 마음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절절한 느낌’을 가리킨다고 하는데, 다른 나라 사람들은 느낄 수 없는, 일본인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감정인 것 같습니다.
김수성 기타모리는 일본인들이 ‘하나님의 아픔’을 느끼게 하기 위해 몇 편의 가부키도 동원합니다. 특히 예로 든 가부키의 내용은, 은혜를 입은 옛 주군의 자식을 지키기 위해 자기 자식을 희생물로 내놓고, 그 아이가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결코 내색하지 않는다는, 상당히 비극적인 이야기들입니다. 그러면서 이 아픔을 ‘쓰라림’이라는 단어로 표상화합니다.
김길구 이에 대해 기타모리는 헤겔 철학을 원용하여 일본의 신학을 내세웁니다. 먼저 그리스-로마적인 그리스도교를 이야기합니다. 그러다 로마 가톨릭교회가 갈수록 복음의 진리에서 퇴락하자, 게르만 민족인 루터를 통한 종교개혁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루터의 하나님의 모습에서도 ‘하나님의 아픔으로서의 은총’에는 나아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가부키 등을 언급하며 일본의 비극의 근본인 ‘쓰라림’을 통해 하나님의 아픔을 파악하게 된다는 다소 국수주의적인 주장을 펼치기도 합니다.
김현호 너무도 일본적이라는 것이 장점도 되고 단점도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타모리가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으로서의 아픔입니다. 곧, 용서하는 자가 용서해야 할 죄인의 책임을 짊어지고 그 아픔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의 사실은 단순한 사실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복음으로서의 사실이었다고 강조합니다.
가해자-피해자 관계에도 적용될까?
김수성 그런데 이런 복음을 신앙하고 있음에도 무고한 죽음과 같은 사건에 맞부딪칠 때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딜레마에 빠지는 게 현실인 것 같습니다. 세월호 참사 때도 이와 관련한 이야기가 나왔지만, 아픔을 당한 사람들에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신정론(神正論)으로서도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하는 게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느니, 하나님도 그들과 함께 슬퍼하신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김길구 기타모리의 신학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아픔의 신학’은 패전 후 공황 상태에 빠진 일본인들에게 위로가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가해자로서 피해자에 대한 뼈저린 반성을 촉구하는 데는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현호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정치적·사회적 문제로 인해 고통을 당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신자들은 아가페 사랑의 시금석입니다. 크리스마스가 불의와 배신, 하나님의 법을 떠난 자들에 대해 손 내미신 미라클이라면… 가해자가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손 내미는 사랑으로 이 고리를 끊어야겠지요. 어렵겠지만 이것이 산상수훈의 정신이고 하나님의 애달픈 마음일 겁니다. 물론 사회적으로나 법적으로는 정의를 요구해야하지만 이 땅을 사람 살만한 세상으로 만들어갈 책임을 진 그리스도인들이 세상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하나님의 아픔을 자신의 삶에 구체화함으로써 끝내 크리스마스 기적을 이룰 수 있다고 봅니다.
김길구 자칫 가해자는 가해자로서 남고, 피해자는 계속 피해를 당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면, 그 고리가 더 견고해질 수도 있음을 우려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크리스마스를 맞아 교회 역시 이런 문제에 대해 심도 있게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음에는 한국교회탐구센터에서 편저한 《인공지능과 기독교 신앙》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김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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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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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교양 읽기 32]진화가 무신론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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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과 과학은 양립할 수 있다
재미있다. 그리고 그동안 그리스도인들이 말 못하고 마음속으로만 꿍꿍 앓던 문제점에 대해 속 시원한 해결책을 이야기한다. 그것도 뚜렷한 근거를 제시하면서.이 책에서도 사례로 들었지만,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빅뱅과 진화론 등을 배운 후 교회에서 들었던 창조이야기와 어떻게 조화시켜야 할 것인가에 대해 상당히 고민하는 것이 현실이다. 즉, 과학과 신앙의 갭이 너무도 큰 것이다. 그런데도 교회는 이에 대한 해결책은 물론, 제대로 된 대답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해결책은 간단하다. 하나님의 창조에는 과학이 밝혀내는 진화도 포함된다는 것이다.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경이라는 책과 자연이라는 책을 주셨는데, 성경은 하나님이 창조주라는 사실과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알려준다면, 자연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창조하셨는가를 알려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어떻게’를 구체적으로 연구하는 것이 바로 과학이므로, 과학을 결코 배척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기독교회가 과학을 품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창조과학자들이 주장하는 ‘젊은 지구 창조론’의 오류도 구체적으로 적시한다. 한국 교회가 좀 더 넓은 시각으로 창조 신앙의 길로 나가기를 바라는 마음 가득한 책이다.◈ 《과학시대의 도전과 기독교의 응답》 || 저자 우종학은 현재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교수로서, 과학과 신학의 대화를 모토로 연구하고 교육하는 단체인 ‘과학과 신학의 대화’ 설립자이다. 저서로는 《블랙홀 교향곡》 《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 《기원》 등이 있다. 새물결플러스, 2017. 16,000원.
◇ 같이 읽으면 좋은 책《예수와 다윈의 동행》 / 신재식 / 사이언스북스《신의 언어》 / 프랜시스 S. 콜린스 / 김영사
진화가 무신론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진화론적 유신론’에 관해서도 좀 더 관심 기울이길
▌좌담: 김길구, 김수성 경성대 초빙외래교수, 김현호 기쁨의집 기독교서점 대표
지난 9월 11일 국회에서 개최된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에서 한 국회의원이 이런 질문을 던졌다. “후보자 본인의 생각으로는… 지구의 나이가 몇 살이라고 생각 하시나요” 이에 대해 박 후보자는 “창조신앙을 믿는 입장에서는… 지구의 나이가 6천년이라고 신앙적으로 믿고 있습니다”고 답했다.
과학은 자연을 통해 ‘창조의 방법’ 밝혀
김길구 : 결과적으로는 자진사퇴했지만, 당시 박성진 장관 후보자의 청문회를 지켜보면서 자녀를 둔 교인들은 마음이 편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미 기독교 선진국들이 겪었던 진화론 논쟁이 우리나라에서도 재현되는 것은 아닌지, 신앙과 과학의 양립은 불가능한 것인지 하는 의문도 들었을 것입니다.
김현호 : 박 후보자에 대한 논란은 창조과학회라고 하는 ‘젊은 지구 창조론’과의 관련성에서 비롯되었죠. 창조과학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우주 창조가 6천여 년 전에 이루어졌다고 주장하며, 이를 과학적으로 증명하려고 하는 단체입니다. 이 단체는 그동안 미국에서는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김수성 : 이 책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창조과학을 주장하는 과학자들 중에는 천체물리학이나 진화생물학 등 우주와 생물의 탄생을 밝혀줄 학문을 전공한 학자들은 거의 없다는 점에서 이미한계를 드러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주장해온 내용도 과학적인 근거가 거의 없거나 일부분만 침소봉대한 것이 많았다고 합니다.
김길구 : 기독교계에서도 이와 관련해서 입장이 나뉘는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창조신앙과 과학적 성취 간에 간격이 좁혀지지 않는 가장 큰이유는 창세기의 창조기사를 어떻게 읽느냐 하는 관점의 차이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문자주의에 입각하여 성경의 창조기사를 과학적 사실로 인식하고자 합니다. 그러니 현대 과학이 연구한 성과와는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김현호 : 신학자들은 창세기 1장은 유대교의 전형적인 찬양시로 봐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있는 그대로를 사실적 또는 과학적으로 표현 한 것이 아니라, 주위 이민족이 섬기는 많은 신들도 결국은 우리 하나님이 창조한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선포한 것이라는 주장이죠.
김길구 : 성서를 읽는 방법은 다양하다는 주장은 오랜 기독교의 전통이기도 합니다. 초대 교부들을 비롯해 아우구스티누스, 루터나 칼뱅 같은 종교개혁자, 그리고 현대의 신학자들도 문자주의적 해석 못지않게 역사적, 교훈적, 은유적 해석 등 다양한 시각이 있다는 걸 인정하고 있습니다.
김수성 : 저자는 “하나님은 성경과 자연이라는 두 가지 책을 주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성경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음을 선포하는 것이라면, 자연은 과학을 통해 하나님이 ‘어떻게’ 이 세상을 구체적으로 창조하였는가를 보여준다고 언급합니다. 즉, 같은 창조를 언급하지만, 성경과 과학은 각각 다른 측면에서 이야기한다는 것이죠.
‘진화론적 무신론’은 하나의 이념이다
김길구 : 저자는 과학자답게 과학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이미 정설로 굳어진 우주 진화와 생물 진화 등 자연현상에 대한 다양한 과학적 성취를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이를 우리가 수용해야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과학적 사실을 근거로 창조주를 믿는가, 믿지 않는가는 별개라는 것입니다. 자연현상으로서의 진화와 ‘주의’로서의 진화주의는 전혀 다른 영역이므로 이를 구분하자는 것이죠. 즉, 진화론은 ‘진화생물학’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생물들이 어떻게 생겨나고 발전해왔는가를 진화를 통해 설명하고자 하는 ‘과학’입니다. 이에 비해 진화주의는 진화이론을 바탕으로 신적 존재를 긍정하거나 부정하는 ‘이념’또는 ‘신념’입니다.
김현호 :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은 대표적인 진화주의에 따른 무신론적 저서라 할 수 있습니다. 즉, 자기가 진화론을 연구해 보니 신의 존재는 찾을 수 없더라고 주장하는 책입니다. 여기서 진화론을 연구한 것은 과학이지만, 신이 없다고 판단한 것은 개인적 이념이나 신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진화주의에 따른 개인적 판단입니다. 그래서 학자들 사이에서도 이 책에 대해 많은 비판이 쏟아졌다고 합니다.
김수성 : 그래서 도킨스를 가리켜 진화론적 무신론자라고 합니다. 거꾸로 이 책의 저자인 우종학 교수처럼 진화론적 유신론자도 있습니다. 우주진화론을 연구하는 과학자지만, 그는 이러한 우주의 탄생과 진화도 하나님의 창조섭리 속에 포함된다고 믿습니다.
김길구 : 전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친 진화론적 유신론자가 있죠. 바로 프랜시스 S. 콜린스입니다. 그는 진화를 증명하는 ‘인간게놈프로젝트’를 총지휘한 과학자지만, 오히려 유전학의 중요성과 가치를 깨달은 후 하나님을 믿어 도킨스의 독설이 허구임을 증명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가 쓴 책이 《신의 언어》입니다.
김현호 : 이 시점에서 우리가 염두에 둬야 할것은 이러한 무신론자들의 공격에 대해 교회가 무대응으로 일관하거나 회피하는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특히 창조기사를 문자주의적으로 해석함으로써, 교인들도 딜레마에 빠져 과학을 백안시하고, 어떤 때는 진화라는 말을 언급하는 것조차 두려워하는 경향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성경 해석하는 이가 오히려 오류 범해
김길구 : 문자주의에 집중하는 사람들의 경우 항상 성경무오설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성경에는 오류가 결코 있을 수 없다는 것이죠.
김현호 : 맞습니다. 성경은 오류가 없습니다. 다만 이를 해석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오류를 범하고서는, 자기들의 주장이 절대적으로 맞는다고 주장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창조과학회의 주장이 아닐까요? 이들은 자신의 신념을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내세우는 오류를 범하는 것 같습니다.
김수성 :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최근 들어 과학이 너무도 빨리 많이 발전함으로써 이를 받아들이기에 힘든 점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구약성서에 언급된, 하늘은 궁창으로 되어 있고, 그 궁창에 해와 달과 별이 달려 있고, 땅은 편평하고, 땅 끝에는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이 있다는 내용을 지금 시대에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는 당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성서를 기록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중세시대 때까지 믿어왔던 천동설 대신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정설이 되기까지도 몇 백 년이 걸렸습니다.
김길구 : 오늘날 널리 알려진 빅뱅이나 진화도 그러한 것 같습니다. 현재 과학적으로 진실이라고 할 만큼 입증된 사실이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데는 분명 개인차가 있을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이 6일 만에 세상을 창조했다는 것을 과학적 사실로 신앙하는 사람들의 경우 더욱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입니다.
김현호 : 앞으로 더 시간이 필요하겠죠. 이럴수록 교회가 열린 마음을 가지고 과학을 바라봐야 할 것입니다. 문자주의에 집착하여 과학적 사실을 무조건 거부할 경우, 교회가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김길구 : 이언 바버라는 학자는 종교와 과학의 관계를 갈등, 독립, 대화, 통합이라는 네 가지 범주로 나눕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하나님의 창조적 질서를 상보적으로 위치하기 위해서라도 신앙과 과학 간의 대화가 필요함을 역설합니다. 다음에는 일본인 신학자 기타모리 가조가 쓴 《하나님의 아픔의 신학》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정리: 김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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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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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교양 읽기 31] ‘오직 성경,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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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오늘, 우리 이야기!
책을 읽는 내내 분량에 비해 내용의 알참에 감탄한다. ‘교양으로 읽는…’이라는 제목과 책 부피를 보고 가볍게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웬걸 방대한 이야기보따리가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먼저 종교개혁의 의미를 거론한 후, 루터 이전의 종교개혁자들의 족보(?)를 죽 나열하며 그들의 투쟁을 이야기한다. 들어보지도 못한 이름에서부터 그냥 귀동냥했던 이름까지 등장한다. 12세기에 이미 가톨릭교회의 세속화와 타락에 대해 항의했던 이탈리아 브레스치아 수도원장이었던 아놀드에 이어, 프랑스의 피터 왈도, 파리의 존, 이탈리아의 마르실리오와 영국의 윌리엄 옥캄, 그리고 존 위클리프, 프라하의 얀 후스와 제롬까지.뿐만 아니다. 독일의 루터에서 시작한 개혁 이야기는 스위스의 츠빙글리, 칼빈을 거쳐 스코틀랜드의 존 낙스로 이어진다. 그리고는 프랑스로 건너가 르페브르를 비롯해 고난의 길을 걸었던 인물들의 인생역정까지 이야기한다. 영국 국교회에 얽힌 이야기도 자세하게 설명한다. 여기에 더하여 당시 권력자들에 대해서, 그리고 재세례파 이야기도 빠뜨리지 않는다. 마치 중세 유럽사를 공부하는 것 같다.책을 다 읽고 나면, 종교개혁이 500년 전 유럽에서 벌어졌던 하나의 역사적 사실로만 그치는 게 아니라, 바로 오늘 우리의 이야기임을 깨닫게 된다.◈ 《교양으로 읽는 종교개혁 이야기》 || 저자 이상규는 호주 장로교신학대학에서 교회사를 연구하고 호주신학대학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고신대학교 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부산지방 기독교전래사》 《해방 전후 한국장로교회의 역사와 신학》 등이 있다. 영음사, 2017. 11,000원.
◇ 같이 읽으면 좋은 책《루터의 재발견》 / 최주훈 / 복있는사람 / 2017. 9.《교회개혁》 / 장 칼뱅 / 새물결플러스 / 2017. 9.《종교개혁》 / 폴커 렙핀 / 한국신학연구소 / 2017. 9.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한국 교회도 그 의미를 되새겨야
▌좌담: 김길구, 김수성 경성대 초빙외래교수, 김현호 기쁨의집 기독교서점 대표▌특별손님: 이상규 고신대 신학과 교수
종교개혁 500주년의 의미가 이렇게도 무겁게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은 무슨 연유인가? 우리 교회를 향해 또 한 번의 종교개혁이 일어나야 한다는 말이 회자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의 저자 이상규 고신대 교수를 모시고 종교개혁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평상시보다 한 시간 이상 더 늦게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종교개혁은 1300년대 초부터 움터김길구 바쁘신 가운데서도 일부러 시간을 내주신 이상규 교수님께 먼저 감사드립니다. 이 책은 평신도들도 읽기 쉽게 정리한 종교개혁 개론서입니다. 마르틴 루터로 촉발된 종교개혁은 책을 덮으면서 ‘종교개혁들(The reformations)’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부제로 ‘종교개혁은 교회개혁이다’고 하셨는데…, 이 책을 집필하게 된 계기가 있었는지요?이상규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17년, 유럽에는 종교개혁 400주년을 맞아 상당히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습니다. ‘루터 르네상스’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죠. 이제 500주년을 준비하면서 우리나라 학계에서는 10여 년 전부터 루터 당시의 서적을 번역하는 등 움직임이 활발합니다. 이런 가운데 주위에서 일반인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 한 권 있으면 좋겠다는 권고가 있어 이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김수성 책 마지막에 ‘종교개혁 연표’를 넣으셨더군요. 그런데 루터의 종교개혁보다 훨씬 이전인 1302년부터 시작해 1678년 존 버니언이 《천로역정》을 출판한 것까지 정리하셨습니다.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요.이상규 정리하느라 조금 애를 먹고 시간도 제법 걸렸습니다만, 일부러 연표를 정리해 넣었습니다. 1302년부터 시작한 것은 루터의 종교개혁이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최소 200여 년 전부터 그런 움직임이 있었고, 그 영향으로 종교개혁이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종교개혁에 따른 직접적이든 간접적인 영향 또한 150년 이상 지속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의미였습니다.김현호 종교개혁을 교회개혁으로 본 것은 매우 적절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당시 대부분의 종교개혁가들은 가톨릭교회의 개혁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이상규 연표에 있는 것처럼, 늦어도 14세기 이후의 가톨릭교회의 상황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대부분 교회와 성직자들의 부패와 타락은 공공연한 사실이었습니다. 특히 교황을 비롯한 고위직 사제들은 더욱 그러했습니다. 교회의 부패는 교리의 변질로 나타났고, 성직자들의 부패는 성적 타락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당시 라틴어로 이런 말이 나돌기도 했습니다. “성직자의 바른 삶은 평신도의 복음이다.”
#교회의 권력지향, 성직자 양산이 문제김길구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면서 구조적으로 많은 문제를 드러낸 것 같습니다.이상규 종교개혁 때 제기된 문제는 교황 그레고리1세 때부터 계속되어 온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먼저 권력지향적인 교회의 문제입니다. 교회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계속 권모술수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고, 돈도 필요하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교리를 마음대로 뜯어고쳤고, 면죄부를 판매하게 된 것입니다. 또 하나는 성직자의 양산입니다. 독일의 어떤 지역에는 주민 30명당 사제가 1명이었다고 합니다. 특히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한 성직자들이 마구 배출됩니다. 한마디로 제도적 문제였습니다. 그렇기에 이들의 타락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습니다.김현호 당시 교회의 재산도 상당히 많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도 면죄부를 판매하는 등 부정한 돈을 모으기 위해 없는 연옥까지 만들었습니다.이상규 한 자료에 따르면 당시 교회의 재산이 그 지역의 3분의 1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각종 헌금을 강요하고 여기에 더하여 면죄부를 판매하는 등 농민을 착취하였습니다. 독일에서 농민전쟁이 일어난 이유 중 하나도 사제가 너무 많아, 그로 인해 농민들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웠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김수성 종교개혁이 일어난 이유가 교회의 부패 외에도 있을 것입니다. 특히 당시의 정치적 사회적 분위기도 충분히 고려해야 할 것 같습니다.이상규 맞습니다. 당시 유럽사회에는 르네상스의 분위기가 계속되었습니다. 르네상스란 한마디로 인문 사상의 부흥입니다. 즉, 인간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던 때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에 의해 억압되기는 했지만 자연과학이 발전하였습니다. 단적인 예로 천동설이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패러다임으로 변화하던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세속 군주들의 교회 권력에 대한 불만도 눈여겨봐야 할 부분입니다.김길구 종교개혁의 결과, 유럽을 한 가족처럼 묶었던 기독교가 민족국가종교 형태로 분화되면서 교회개혁만 가져온 것이 아니라 사회개혁에도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루터가 주장했던 ‘만인제사장’은 단순히 교회에만 적용되는 내용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삶에도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이상규 만인제사장이란 가톨릭교회에서 주장하듯 중보자로서의 교회 또는 사제의 역할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고해성사와는 달리, 사제를 거치지 않고 누구든 직접 하나님과 대화하고 죄 사함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개신교의 두드러진 교리 중의 하나로 부각됩니다. 이 만인제사장 교리는 누구든 하나님 앞에서는 동등하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민주주의 발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칩니다. 민주주의가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은 동등하다는 사상에서 비롯되는 것이니까요.
#2세기 때부터 서서히 변질되기 시작김현호 종교개혁 내용 중에는 성만찬과 관련해서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당시 가톨릭에서는 화체설을 이야기하면서 신자들에게는 빵만 나누어주었습니다. 이것도 초대교회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이상규 당시 가톨릭교회는 성만찬에 참가하여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면,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화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를 ‘화체설’이라 합니다. 이것은 성만찬의 효과를 과장하여 교리화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반 신자들에게는 빵만 주었습니다. 이에 대해 종교개혁자들은 화체설은 잘못된 교리라고 주장하였고, 현재 우리 개신교회가 인정하고 있는 ‘상징설’ 혹은 ‘기념설’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김길구 초대교회 당시는 일반적인 식탁에서 함께 둘러앉아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하며 온몸으로 만나는 성찬의식이 있었는데…. 개혁자들이 성례전 문제를 중요시한 까닭은 무엇이죠?이상규 교회사를 공부해보면, 2세기쯤부터 성찬식의 본래적인 모습이 서서히 변질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성직제도가 생기고, 성찬식이 의례화하면서 그 의미가 왜곡되기 시작했고, 은혜 교리가 교회를 매개로 행위 구원 교리로 바뀌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가톨릭이 로마제국으로부터 공인받는 4세기 이후부터는 이러한 왜곡 현상이 심화되는 양상을 보입니다. 결국 성경의 가르침에서 크게 이탈하였고, 개혁자들은 바른 성찬관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죠.김수성 초대교회의 직분이란 궁극적으로 ‘섬김’을 바탕으로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성직 제도화되면서 계급화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이상규 성경에는 ‘장로’라는 직분과 ‘감독’이라는 직분이 나오는데, 우리는 동의어로 봅니다. 그런데 3세기 이후 점차 이를 구분하여 감독은 장로보다 상위의 직분으로 보아 직분을 계층화하였습니다. 이것이 결국 중세 기독교에서 보는 바처럼 직분을 계급화한 것이지요. 한국에서도 목사와 장로를 계급으로 보는 견해가 있는데, 본래 칼빈의 직분관은 그렇지 않습니다. 목사는 집례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자였고, 장로는 신자들이 가르침받은 것을 제대로 시행하는가를 감독하는 역할로 보아 상호보완적 관계로 이해했습니다. 즉, 목사는 성경 말씀을 가르치는 자였고, 장로는 심방 등을 통해 신자들을 성화에 이르도록 독려하는 역할을 감당한 것입니다.김현호 그런데 이러한 제도가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는 권위주의 현상으로 왜곡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이상규 두 가지 요인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교회구조나 교회관 자체에 오해의 소지가 있고, 다른 하나는 유교의 영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 목사와 장로, 집사와 같은 직분을 유교적 신분 개념으로 받아들인 면이 없잖아 있습니다. 역할이 다르다는 것을 신분이나 계급이 다른 것으로 잘못 인식한 것이죠.
#종교개혁으로 가정의 소중함 깨닫기도김길구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면서 성직자의 독신주의를 깬 것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초대교회에서는 결혼을 금하는 규정이 없었던 것으로 압니다.이상규 가톨릭에서 독신주의는 금욕주의의 대두와 함께 2세기 때부터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성직제도와 관련이 있다고 봐야겠죠. 그러다가 1073년 그레고리 7세에 의해 독신주의가 다시 강조되고 법제화됩니다. 그러나 종교개혁 당시, 가톨릭 사제들의 도덕적 문란은 말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루터는 독신주의의 성경적 근거가 없다고 보아 이를 타파하고 수녀 출신의 부인을 맞아 결혼합니다. 독신으로 인해 오히려 더 많은 죄에 노출되는 현실의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없애버리려 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김현호 그런데 우리나라 교회에서는 오히려 가족으로 인해 목회자들이 금전적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례도 나타납니다. 이런 경우 오히려 독신이 더 낫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이상규 가족 부양 문제는 다른 시각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습니다만, 루터는 결혼 후 여섯 자녀를 두었는데, 여기에 더하여 여섯 명의 어린이를 입양하여 키웠습니다. 당시 전염병 등으로 인해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었습니다. 물론 루터가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가정의 소중함을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김수성 ‘가정’이라는 개념이 제대로 정착하기 시작한 것이 16세기 이후 교회로부터라고 합니다. 이것 역시 종교개혁의 영향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김길구 최근 종교인 과세와 관련하여 설왕설래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종교개혁자들의 입장은 어떠했습니까?이상규 마르틴 루터도 세금을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종교개혁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당시 교회는 국가를 벗어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비해 가톨릭교회는 별도의 바틴칸 시국이 있어 별도의 세금 제도를 운영하였습니다. 한 예로 ‘초세수입법’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신부가 되면 첫 1년간의 봉급을 교황에게 바쳐야 한다는 법입니다. 한편, 유럽에 서서히 민족국가가 성립되면서 교회로 들어오는 수입이 상대적으로 줄어듭니다. 그래서 가톨릭교회가 면죄부 등으로 수익을 올리려 했던 것입니다.
#개혁자들, 성경의 자국어 번역에 앞장서김현호 당시 국가와 교회와의 관계에 있어 재세례파에 대한 재해석이 부각되는 것 같습니다.이상규 재세례파는 스위스의 츠빙글리와 종교개혁에 동참했던 그레벨과 만츠 등이 ‘신자의 세례’를 제창함으로써 시작되었습니다. 이들은 유아세례를 인정하지 않고, 성인이 신앙고백을 하고 다시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재세례파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은 한마디로 급진적이었습니다. 교회에 대한 국가의 간섭을 거부하고, 전쟁 자체를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징집에 불응하는 등으로 국가, 가톨릭교회, 개신교 모두에게서 탄압을 받았습니다.김수성 종교개혁의 역사를 보면 종교개혁의 성공 여부를 좌우했던 것은 궁극적으로 국가나 시의회 등 정치세력이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습니다.이상규 그렇습니다. 국가나 관료의 지원을 배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메지스터리얼 리폼’이라고도 합니다. 루터가 작센의 프리드리히 3세의 도움을 받은 것이나, 개혁운동이 취리히나 제네바 의회의 결의에 따른 것 등이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책에서도 언급했듯이, 개혁이 들불처럼 번질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총이라 할 수 있고, 시기적으로 볼 때 인쇄술의 영향이 지대했습니다.김현호 그래서 종교개혁을 ‘미디어 사건’이라고도 하는군요. 책에도 나와 있듯이 루터의 작품들은 “판매되었다기보다는 빼앗겼다”고 할 만큼 인기가 있었고, 이런 점에서 프랑소와 랑베르는 “인쇄술은 하나님의 준비였다”고 했습니다.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종교개혁자 대부분은 라틴어 성경을 자신들의 언어로 번역하여 대중들에게 전달했습니다.이상규 중세교회 때 이미 프랑스어로 성경을 번역했던 피터 왈도가 있습니다. 이어서 영국의 위클리프가 영어로 성경을 번역하고 종교개혁의 깃발을 높이 들었습니다. 이후 루터가 독일어로 번역하였습니다. 이렇게 자국어로 번역한 성경은 인쇄되어 대중들에게 보급됨으로써 가톨릭교회의 잘못된 교리를 바로 인식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기도 했습니다.김길구 종교개혁의 핵심은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라는 세 가지로 나타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최근 우리나라 교계에는 성직주의, 성장주의, 승리주의가 만연함으로써 제2의 종교개혁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높은 것도 사실입니다. 이에 대해 교수님께서 간략하게 언급하고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상규 오늘 우리의 개신교회가 종교개혁 당시의 가톨릭교회를 닮았다는 지적이 적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목회자의 양산과 일부 목회자들의 도덕적 탈선이 문제입니다. 교회 혹은 성직구조의 권력화, 돈, 권력, 명예에 대한 탐심이 문제이지요. 그동안 개신교회는 역사를 바르게 가르치지 못한 경향이 있습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역사를 되돌아보고, 그 정신을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김길구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행복하였습니다. 오늘 이야기를 나눈 《교양으로 읽는 종교개혁 이야기》는 종교개혁의 역사를 유럽 역사와 함께 통사적으로 알 수 있도록 정리하였고, 숨겨진 이야기까지 빠뜨리지 않은 역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부러 시간을 내주신 이상규 교수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다음에는 우종학 교수가 쓴 《과학시대의 도전과 기독교의 응답》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최근 논란이 된 ‘창조과학’과 관련하여 읽어봐야 할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정리: 김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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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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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교양 읽기 30] 과연 초대교회로의 회귀는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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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기 교회의 예배 모습은?
정말 얇은 책이다. 크기도 조그마한데다, 앞에 나오는 서문과 곳곳에 삽입된 그림을 제외하면 본문은 60쪽 분량도 안 된다. 그런데 행간을 읽으면 저자는 참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펼쳐놓는다.이 책의 번역자가 후기에다 그 내용을 죽 나열하였다. 그대로 옮긴다.“이 책은 얼마 안 되는 분량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담아야 할 매우 다양한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종과 주인, 여자와 남자, 가난한자와 부자, 아이와 어른과 노인, 가족과 독신, 해방과 자유, 세상과 교회, 직업 소명과 신분, 성만찬과 세례, 논쟁과 조정, 상황과 말씀, 식사와 성찬, 일상과 초월, 공간과 시간, 의외성과 규칙성, 참여와 권위, 본질과 형식, 치료와 치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덩치만 크지 단조롭기 그지없는 오늘날의 어떤 대형 교회보다도 열아홉 명으로 이루어진 이 작은 공동체에서 우리가 오랫동안 잃어버린 교회의 본질과 다양하고 풍성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1세기 가정교회의 모습을 우리는 성경에 나타난 단편적인 내용으로 상상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이 책에서 언급한 가정교회의 예배 등은 스스로 밝히듯이 저자가 재구성한 것이다. 즉, 나름대로 역사적 자료에 기초했다고 하지만, 당연히 픽션이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가볍지 않다.◈ 《1세기 교회 예배 이야기》 || 저자 로버트 뱅크스(Robert Banks)는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신약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신학자로서, 다양한 분야에서 저술과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바울의 공동체 사상》 《일상생활 속의 그리스도》 등이 있다. Ivp, 2017. 6,000원.
▌좌담: 김길구 전 부산YMCA 사무총장, 김수성 경성대 초빙외래교수, 김현호 기쁨의집 기독교서점 대표
마케도니아 빌립보 출신의 로마군인 푸블리우스가 잠시 로마에 머물면서 오랜 친구들을 따라 외곽 뒷골목에 있는 기독교인의 집을 방문했다. 그리고 돌아와서 당시의 분위기와 느낌 등을 회고한다. 식사를 하면서 음식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 자체가 예배였다.
#초대교회의 또 다른 모습 보여주는 책김길구 저자는 이 책에서 AD 60년경의 한 가정교회 예배 모습을 통해 당시 기독교인들의 사상과 삶의 모습 등 다양한 것을 이야기합니다. 저자 스스로 밝혔듯이 이 책은 《바울의 공동체 사상》 등을 바탕으로 했기에, 이들 책을 먼저 봐야 좀 더 쉽게 이해가 될 것 같습니다.김현호 이 책은 약 30년 전에 번역 출판되었는데, 그때 이 책을 읽으면서 가슴이 마구 떨렸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초대교회 모습이 이 책으로 인해 상당히 구체화되었습니다.김길구 여기에 등장하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고린도교회와 에베소교회를 한동안 목숨을 내놓고 섬겼던 충실한 사역자였습니다. 저자가 이들 가정을 배경으로 설정한 것은 당시 가장 모범적인 가정교회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라고 생각합니다.김수성 그동안 우리는 ‘초대교회’ 하면 종말론과 관련해서만 생각했던 게 사실입니다. 성령의 역사로 뜨겁게 타올랐던 신앙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했죠. 이 책은 우리에게 초대교회의 다른 모습을 구체적이고도 심도 있게 보여준다는 면에서 의미가 있습니다.김현호 오늘날 교회 지도자들이 초대교회로 돌아가자고 강조하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그 초대교회가 어떤 모습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합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일어났던 ‘성령의 역사’만을 이야기하고는 끝입니다. 마가의 다락방이 교회의 시작은 될지언정 초대교회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는 할 수 없죠.김길구 초대교회의 본래적인 모습을 알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관계와 예배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즉, 어떤 사람들이 모였고, 그들의 상호 관계는 어떠했으며, 그들이 드린 예배의 모습은 어떠했는가, 주관심사는 무엇이었는가 하는 것을 좀 더 촘촘하게 파악해야 초대교회의 뭉뚱그린 모습이라도 드러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1세기 당시의 예배 모습을 살펴봅시다.김현호 먼저 평신도 중심의 교회라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당시는 지금과 달리 어느 누구도 직분을 가진 자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직 조직이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겠지요. 루터가 강조했던 ‘만인제사장’이 구체화됐던 예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역예배, 초대교회 모습과 가장 닮아김수성 저는 코이노니아가 상당히 강조되는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는 이런 코이노니아를 찾기 어렵죠. 식탁에서 함께 둘러앉아 음식을 나누며 자연스럽게 드리는 예배에서 진정한 친교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요즘 교회에서도 음식을 나누기는 하지만 이런 모습은 기대하기 어렵죠.김길구 이들이 나눈 대화가 실제 삶과 전혀 분리되지 않은 부분도 눈여겨봐야 할 것입니다. 즉, 삶의 현장에서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일을 서로 이야기하고 구체적인 대안을 찾는 모습입니다. 우리가 초대교회로 돌아가려면 우선 사변적이거나 교리적인 논의에 앞서, 신자들이 살아가면서 겪는 일에 대해 이야기해야 합니다.김현호 성만찬을 어떻게 할 것인가도 고민해봐야 할 부분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성만찬은 신자들에게 형식적인 모습으로 비춰져 피동적으로 성례전에 참여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예수님의 고난이 피상적으로만 여겨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김길구 교회가 가정교회에서 교회 건물로 바뀐데 이어 실제 식사에서 성만찬이란 상징적인 식사로 바뀐 것이 이채롭네요. 당시 공동체적인 식사는 종교적이기도 하고 사교적이기도 했습니다. 저자는 《교회, 또 하나의 가족》에서 그 대안으로 가정교회를 제시합니다.김현호 우리가 초대교회의 본래적인 모습, 즉 예배나 모임의 진정성을 얼마나 회복하느냐가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최근 다시 부각된 셀(cell)교회도 초대교회를 닮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교회가 교역자 중심이라면 셀교회는 평신도 중심, 가정예배 중심입니다. 한편, 구역예배가 소극적인 모임이 아닌 하나의 ‘작은 교회’로서 이웃을 향한 열린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목회자들은 목회의 일부를 위임하고 재원을 지원해주어야 합니다. 구역 공과나 큐티 나눔 정도를 넘어설 수 있도록 하는 지원이 필요합니다.김수성 초대교회 당시와 지금은 모든 면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특히 사회환경적으로 상당히 변했죠. 단적으로 현대에 사는 우리는 자본주의를 떠나서 존재할 수 없는 삶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가족공동체의 모습도 바뀌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초대교회를 꿈꾸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요? 구태여 이런 환경에서 적용 가능성을 이야기한다면, 얼마 전에 필립 얀시의 《교회, 나의 고민 나의 사랑》에서 언급했던 ‘라살 스트리트 교회’가 모범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개인의 신분이나 형편에 관계없이 모두가 한데 어울릴 수 있는 교회의 모습이죠.
#누구든 진정으로 ‘환대’하는 모습 보여야김길구 초대교회의 가장 큰 강점은 남녀, 신분, 빈천, 지위를 막론하고 한데 어울렸던 사실을 들 수 있습니다. 이 책에 나와 있듯이 주인과 노예가 같은 자리에 앉아 똑같은 대우를 받았습니다. 신분사회라는 당시 상황에서 보면 이는 가히 혁명적인 마인드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초대교회를 닮아야 한다고 외치는 오늘날 교회에는 아직도 이러한 다양한 차별 인식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식을 없애는 것도 초대교회를 닮아가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김현호 이와 관련하여 또 하나 생각할 것은 ‘환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든 상관없이 진정으로 이들을 맞이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찌릿한 느낌을 받았습니다.김길구 상당히 중요한 지적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익명성이라는 현대인들의 어두운 이면에 숨어 형식적인 환영에 그치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김수성 교회가 커지면서 환대가 점점 사라진 것 아닐까요? 아직도 조그마한 교회에서는 누구든 한 사람이 오면 상당히 귀한 대접을 받는 것 같습니다. 그야말로 환대를 받지요.김현호 환대 역시 교회의 본질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책에서 노예들을 귀히 여기는 모습과 같은 것입니다. 비록 19명에 불과한 사람들이 모였지만 오늘날 우리 교회가 본받아야 할 대부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김길구 사학자들에 따르면, 3~4세기경에 벌써 교회의 모습이 집합적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한 저항으로 4세기 이후 수도원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오늘날에는 초대교회의 모습이 거의 사라지는 안타까운 현실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 책의 출판이 우리에게 초대교회의 모습을 조금씩이라도 되찾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합니다. 다음에는 고신대 이상규 교수의 《교양으로 읽는 종교개혁 이야기》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정리: 김수성]
▲ 위르겐 몰트만 등에 따르면, 우리는 교회에 대한 개인적인 이해나 조직적 이해에서 벗어나 새로운 종류의 함께하는 삶을 형성해 나가는 공동체적 이해로 옮겨가야 한다. 초대교회는 이러한 공동체적 이해를 중심으로 모인 것으로 보인다. [Judith Clingan 그림]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교회, 또 하나의 가족》 / 로버트 뱅크스 외 / Ivp
《바울의 그리스도인 공동체사상》 / 로버트 뱅크스 / 여수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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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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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교양 읽기 29] “일터사역이 개인적 차원에서부터 사회적·제도적 차원으로 확산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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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경영 실천하는 치과의사 이야기
참 별난 치과의사다. 일터를 사역지처럼 생각하고, 일하는 것을 목회처럼 하려고 한다. 지나치게 상업화되어 가는 의료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신학대학원에 가서 종말론적 윤리를 공부했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현장에서 실천하려고 노력한다.그의 신앙고백이다. “주신 은혜대로 살고 싶다는 소망이 생기면서부터 의료 현장에서 관행처럼 해왔던 일들이 죄로 보이기 시작했다. 직원과 환자를 대하던 태도, 거래처를 다루던 거친 매너, 자신을 변호하기 위한 습관적인 변명과 과장 등 내 삶의 모든 부분이 내가 받은 은혜와는 접점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그가 변하기 시작했다. 먼저 직원들에게 그동안 군림했던 자세를 진정으로 사과하고, 함께 진료실을 청소하는 것으로부터 변화를 꾀했다. 그리고 진료실의 작은 부분 하나하나를 투명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환자에 대해서도 손해를 보더라도 진실을 이야기하였다.그는 부활 신앙을 핵심으로 하여, 현재의 삶도 입으로만 아니라 행동으로 믿음을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지금은 손해를 보더라도 원칙을 지키고 숨기지 않고 사실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 진정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기독 경영’이라고 한다.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가치와 원리에 따라 행하고,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오늘을 그날처럼》 || 저자 이철규는 개업한 치과의사로서,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에서 성경신학을 전공했다. 치과의 선교사로 중국에서 사역하기도 했고, 현재 치과의료선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새물결플러스, 2017. 15,000원.
▌좌담: 김길구 전 부산YMCA 사무총장, 김수성 경성대 초빙외래교수, 김현호 기쁨의집 기독교서점 대표
“그릇의 앞면이 믿음이라면 그릇의 뒷면은 행동과 생활이라 할 수 있다. 앞면이 나를 쓰시고자 하는 주님과의 관계라면 뒷면은 내가 속한 공동체와의 관계다. 그릇을 앞뒤로 나눌 수 없듯이 믿음과 생활은 하나이고, 하나님 앞에서의 믿음은 삶의 현장에서 만나는 공동체 구성원들과의 관계를 통해 구현된다.”
#일상생활에서 신학적 성찰 동반해야김길구 이 책의 전체적인 흐름은 ‘온전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의 저자는 개인생활은 물론이고 직장 등 모든 면에서 ‘온전한 기독교인으로서의 생활’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김현호 비슷한 말이지만 저는 ‘신실함’으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이 책의 내용으로 보면, 그는 철저히 복음주의적 신앙인입니다. 그래서 복음주의적 신실함에 충실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김수성 저자 스스로 ‘인테그리티(integrity)’를 이야기한 부분이 있죠. 서양 교육의 핵심 가치 중 하나라며, 우리말로 번역하기는 애매한데 자기는 ‘진정성’으로 받아들이고 싶다고 합니다. 온전함, 신실함, 진정성, 어느 것을 사용하든 같은 맥락의 용어인 것 같습니다.김길구 이 책은 일터 사역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먼저 ‘일터신학’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터를 바라보는 시각이 몇 개 있는데, 일터신학은 기본적으로 일터와 선교현장을 별개로 보지 않습니다. 즉, 일터가 곧 선교현장이 된다는 입장입니다.김현호 폴 스티븐스 목사의 ‘노동신학’과도 연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는 ‘망치를 든 목사’라는 말에 어울리게 일터와 목회에 구분을 두지 않고, 모든 일상생활 속에서 신학적 성찰을 동반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김길구 일터신학은 개신교의 구원론과 관련이 있습니다. 교회나 사제를 거치지 않고 개개인 누구나 예수님을 통해 직접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개인이 곧 교회가 되고, 그가 일하는 현장이 사역의 현장이 되는 것입니다.김현호 저자가 어려울 때마다 그를 버티게 해준 성경구절도 사변적이지 않고 실제적이라는 점도 눈에 띕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반적인 생각에서 점차 구체적이고 능동적인 성경구절을 떠올리게 됩니다. 아마도 그가 끊임없이 큐티와 성경공부를 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입니다.김길구 한편으로 저자의 변화과정을 보면 단계적인 성장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일과 신앙을 일치시키는 단계를 보면 ▷일을 선교사업의 일환으로 생각하는 단계, ▷일터에서 영성을 유지하는 단계, ▷도덕적이고 제도적인 변화를 모색하는 단계, ▷신학적 자기정체성 확립 단계로 나아갑니다. 저자 역시 이러한 변화 과정을 밟은 것으로 보입니다.
▲ 일터신학은 일터도 하나의 사역 공간임을 강조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온전함, 신실함, 진정성을 가져야 한다. [출처: knsfinancial.com]
#교회가 ‘깨끗한 富’에 관심을 가져야김수성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개인이나 하나의 일터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이고 제도적 변화로 널리 확산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김길구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공직자가 한 명 있죠. 최근 새로 선임된 공정거래위원장입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 만연했던 소위 ‘갑질’을 없애기 위한 노력이 시민들에게 바람직하게 비쳐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동안 시민들을 분노케 했던 ‘땅콩 회항’을 비롯해 프렌차이즈 본부의 횡포 등을 바로잡겠다고 나선 것이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김수성 그동안 부당한 대우를 당했던 가맹점들의 요구사항이 표면화되는 등 소위 생활민주주의가 부각되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겠죠. 거꾸로 생각하면 그만큼 우리 사회가 기득권층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김현호 사회의 갑질 못지않게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 교회에서의 갑질입니다. 직분을 가진 분들이나 교회에 오래 다니신 분들이 알게 모르게 갑질 행세를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던 분이나 새로 교회에 출석한 분들이 상처를 받는 일이 있습니다.김길구 교회의 기본적인 시각도 바뀌어야 할 때입니다. 그동안 교회는 열심히 출석하는 교인, 헌금을 잘 내는 교인을 ‘좋은 교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일터에서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서는 무관심했습니다. 도덕적 불감증, 갑질과 같이 일터에서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모른 척했습니다. 또한 가끔 강단에서 예로 드는 록펠러나 카네기 같은 부호들에 대해서도 올바로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김수성 록펠러나 카네기는 당시 ‘황제’로 불렸죠. 소규모 기업은 물론, 사업을 확장하는데 방해가 되는 기업에 대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흡수합병했습니다. 소속 근로자 착취와 노동조합 방해도 다반사였습니다. 심지어 이들이 낸 헌금을 거절한 선교단체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김현호 저자가 원장으로서의 권한을 내려놓은 것이 좋은 사례가 될 것 같습니다. 그동안 직원들에게 권위적이었던 것을 진심으로 사과하고, 함께 진료실을 청소하고, 신입직원 선정에 직원들을 참여시켜 민주적으로 선발하는 등, 갑으로서의 권한을 모두 직원들과 함께 하였습니다.김길구 막스 베버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이야기했던 ‘청부(淸富)’에 대해 우리 기독교회가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사회적으로 개혁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기독교가 이에 앞장서야 합니다.
#‘기독 경영’은 지속가능한 운동이다김수성 한편,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유수한 대학 출신인데다, 직업도 안정적인 치과 원장입니다. 그래서 혼자서 결단만 내리면 충분히 일터사역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월급쟁이 직원들에게 일터사역을 하라고 한다면 가능할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회사에서 요구하는 사항을 ‘양심껏’ 처리할 수 있을까요?김길구 일터사역은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사회적이고 제도적인 차원으로 확산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교회가 크리스천 CEO들이 먼저 올바로 설 수 있도록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김현호 저자도 자기 병원에서의 일터사역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독치과의사회 등 단체를 통해 사역을 널리 퍼뜨리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차원이라고 하기보다는 모든 치과의사들에게 이렇게 해야 하지 않느냐고 압력(?)을 넣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김수성 저자가 하고 있는 사역도 경영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이윤의 극대화에서 적정이윤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으로 변화했던 것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신자유주의 물결로 인해 이런 긍정적인 흐름이 급격하게 퇴색하고, 자본주의 부정적인 측면이 더욱 부각되는 시대가 되기는 했지만….김현호 경영학적 흐름은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으로 ‘기독 경영’을 한다면 그것은 지속가능한 운동이 될 것입니다. 생활에서부터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일터의 생활이 곧 예배의 차원으로까지 완성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김길구 당장 우리 사회에 커다란 화두로 던져진 최저임금 1만원을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도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에는 초대교회의 집회 모습을 재구성한 로버트 뱅크스의 《1세기 교회 예배 이야기》(IVP, 2017)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정리: 김수성]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일의 신학》 / 폴 스티븐스 / CUP
《월요일의 그리스도인》 / 최영수 / 생명의말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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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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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교양 읽기 28] “하나님은 우리가 즐거워할 때 더 크게 기뻐하는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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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쾌락’ 누리시길…
그동안 교회에서 부정적으로, 심지어는 죄악시했던 ‘쾌락’에 대한 생각을 180도 바꿔준다. 저자가 언급했던 내용을 그대로 제시하는 것만으로도 그 의도를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거룩한 쾌락’을 누리기를 강조한다.■의무와 훈련만 말하는 복음은 하나님에게서 기쁨을 앗아간다. 하늘 아버지는 우리가 즐거워할 때 기뻐하시는 분이다. 우리의 즐거움은 그분이 상상을 초월하는 비싼 대가를 치르고 사주신 것이다.■우리는 쾌락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이다.■거룩함이야말로 쾌락의 가장 진정한 친구이다.
■복 자체도 은혜지만 그 복을 누리는 능력도 그분의 은혜라 할 수 있다.■당신에게 즐거운 일이라면 그 자체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될 수 있다.■다들 긴 한 주간을 보내고 모인 교회에 건강한 웃음이 있다면 그 또한 큰 유익이 될 것이다.■우리는 쾌락에도 위계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맨 위에 하나님이 계시고 그밖에 다른 쾌락들에도 다 질서가 있다. 이 위계가 깨지거나 뒤틀리면 덜 중요한 쾌락들이 가장 중요한 쾌락을 상대로 싸움을 벌인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쾌락은 그리스도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쾌락》 || 게리 토마스(Gary I. Thomas)는 ‘복음주의영성센터’ 설립자 및 대표로서 작가이자 사역자이다. 저서로 《영성에도 색깔이 있다》 등이 있다. 원제 Pure Pleasure(2009). 윤종석 역. CUP, 2012. 15,000원.
▲ 여유 있게 즐기는 한 끼의 맛있는 식사가 쾌락이 될 수도 있다. 기쁨은 없고 훈련만 있으면 결국 우리의 마음이 냉혹해지고 교만해져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게 된다. [Dinner. 출처: primer.com]
▌좌담: 김길구 전 부산YMCA 사무총장, 김수성 경성대 초빙외래교수, 김현호 기쁨의집 기독교서점 대표
“쾌락을 경멸하는 태도는 고차원의 영성이 아니라 오히려 교만한 죄이다. 쾌락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더 인식하게 하고, 그분께 더 깊이 감사하게 하고, 내세의 더 풍요로운 쾌락에 소망을 두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친히 설계하신 것이다.” - 제임스 패커.
#당신의 ‘쾌락 필요지수’는 얼마인가?김길구 : 이 책의 저자 게리 토마스는 영성과 관련하여 널리 알려진 분입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쾌락을 누리라’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그러면서 29쪽에 ‘쾌락 필요지수 진단지’를 만들어놓고는 스스로 한 번 테스트해보라고 권합니다.김현호 : 우리 모임에서 회원들을 상대로 테스트를 해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대체로 외향적으로 살아가는 분은 지수가 높게 나오는 반면, 내성적인 분들은 낮게 나옵디다. 여기에 더하여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분들은 위험한 수준까지 떨어졌습니다.김수성 : 저는 이런 테스트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해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위험한 수준이 나온 분들은 주로 어떤 일에 종사하는 분인가요?김현호 : 교회에서 목회를 하거나 사역을 하는 분들입니다.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이 분들은 가끔 쾌락의 시간을 가져야 할 필요가 절실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역을 하는 분들이 스트레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개인은 물론, 가정과 교회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김길구 : 저는 좀 낮게 나옵디다. 대체로 본인의 성격과 관계가 있는 것 같더군요. 그리고 사역을 하는 분들에게 그러한 결과가 나타나는 것은, 중세 이후 교회가 쾌락보다는 절제를 강조한 흐름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심지어 수도원에서는 경건성을 강조하기 위해 내적 기쁨까지도 절제하고 자학을 하는 경우도 있었죠. 이러한 흐름이 오늘날까지도 이어져 오는 것 같습니다.김수성 : 저는 이 책을 보면서 제목이 선정적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쾌락’이라고 하면 긍정적 의미보다는 부정적 의미로 많이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원제는 ‘순수한 즐거움’ 또는 ‘순결한 즐거움’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김현호 : 우리가 살아오면서 이데올로기 등으로 인해 잃어버린 좋은 말이 많습니다. ‘동무’라는 말이 공산주의와 맞물리면서 거의 사용하지 않게 된 것과 같이, 쾌락이란 말도 ‘종교적 거룩’에 반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말을 많이 사용해서 본래의 자리로 되돌려놓아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김길구 : 저자가 인용한 성경 구절을 보면 시편이나 아가서 등이 많은데, 전도서 8장 15절에 “이에 내가 희락을 찬양하노니 이는 사람이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해 아래에는 없음이라.”는 구절에서 사용한 ‘희락’이라는 말이 어울릴 것도 같습니다.김수성 : 그게 상당히 적합한 단어일 것 같네요.김현호 : 히브리어 ‘마카리오스’라는 말에는 ‘쾌락이 넘쳐흐르는 삶을 누려라’라는 뜻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쾌락이라는 말을 우리도 자주 사용하면 익숙해지리라 봅니다.
#교회가 이제는 ‘쾌락’을 처방했으면김길구 : 이 책 첫머리에 양치식물 비유가 나옵니다. 양치식물은 고사리 같은 식물인데, 주로 경사진 곳에 많이 서식한다고 하는군요.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는 식물이 무성해서 위험을 느낄 수 없다고 합니다. 저자는 이럴 때 ‘주의하라’고 강조합니다. 즉, 밑으로 미끄러져 떨어지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라는 것입니다.김현호 :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놓치지 쉬운 소소한 즐거움을 무시하면 안 된다는 말인 것 같습니다. 앞에서 말씀했듯이 중세적 경건함이 개신교에는 청교도적 금욕주의로 이어져 그것이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생활 속의 쾌락마저도 억압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김수성 : 지난달에 읽었던 필립 얀시의 책에서도 이런 것이 강조되었죠. 특히 사역자들이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가끔 ‘달콤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이 책에서는 커피를 예로 듭니다. “사람들이 굶어 죽는 나라도 있는데 내가 어떻게 커피 한 잔에 3달러를 쓴단 말인가?”라며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사람도 있지만, 일을 하는 사람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달콤한 휴식이라고.김길구 : ‘종교적 중독자’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의무만을 생각하고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죠. 저는 ‘누리다’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참 좋은 낱말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끔은 맛있는 음식의 즐거움을 누리고, 또한 자유를 누려야 새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의무에만 매몰되면 심각한 문제를 불러올 수 있죠.김현호 : 저자는 ‘쾌락의 비용은 낭비가 아니다’고 강조합니다. 교회가 이제는 ‘쾌락’을 처방하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사역자들이 즐겁게 일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성도들도 이러한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동참해야겠죠.김수성 : 저는 한국 교회의 예배가 너무 경건을 강조함으로써 교인의 즐거움을 금기시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 자체가 기쁨이 되어야 하고, 예배가 축제의 장으로 승화될 수 있도록 예배 순서 등을 적절하게 조절했으면 좋겠습니다.김길구 : 교회는 개인의 기쁨을 나눔으로써 공동체의 기쁨이 되도록 하라는 말과 같은 맥락이라고 봅니다. 이 책에서 좋은 예가 하나 나옵니다. 목사 청빙위원회 일원으로 참석했을 때, 계속해서 인간의 죄성(罪性)과 회개를 촉구하는 설교만 하는 분을 거부했다는 것입니다. 강단에 선 목회자는 희망과 쾌락도 충분히 전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김현호 : 그런 의미에서 저는 교회의 절기에 따른 설교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절기에 따라 회개와 기쁨, 의무와 희망 등 균형 잡힌 메시지를 골고루 전달할 수 있으니까요.
#하나님 나라 확장이 궁극적인 즐거움김길구 : 저자는 일상의 쾌락을 이야기하면서도 쾌락에도 위계가 있음을 강조합니다. 즉, 맨 위에 계신 하나님을 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쾌락이 중요하기는 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다. 쾌락을 우리가 통제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쾌락이 우리를 통제하게 된다고 경고합니다.김수성 : 우리가 누려야 할 쾌락을 ‘거룩한 쾌락’이라고 이름붙인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봅니다. 절제하지 못하면 쾌락 자체가 우상이 된다는 것이지요.김현호 : 균형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일과 쉼, 놀이 사이에 적절한 균형을 유지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쾌락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또한 쾌락을 책임감 있게 수용하라는 말도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쾌락의 중요성을 이야기합니다. 세속적으로 이야기하는 쾌락과의 차이가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김길구 : 위르겐 몰트만은 “우리는 자신이 얻은 구원을 신나게 놀이로 수용해야 한다”면서도 “해방된 사람들 안에는 부활절의 웃음과 십자가의 슬픔이 둘 다 살아있다”라는 말로 균형을 이야기했습니다. 이런 균형을 유지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것이 우리에게 궁극적인 즐거움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에는 일터신앙을 이야기한 치과의사 이철규의 《오늘을 그날처럼》(새물결플러스, 2017)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정리: 김수성]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7일간의 기쁨 회복》 / 김창현 / 이레서원
《하나님을 기뻐하라》 / 존 파이퍼 / 생명의말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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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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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교양 읽기 27] 교회는 모두 비슷한 죄인들이 모인 곳이기에 서로 위로하고 곁길로 빠지지 않게 도와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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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공동체는 가족과 닮았다
120쪽밖에 안 되는 얇은 책이다. 책 크기도 작다. 그런데 알차다. 내용도 옹골지고 필력도 뛰어나다.저자는 자신의 어린 시절 교회 이야기를 하며 교회와 교인들의 문제점을 드러낸다. 어렸을 때는 “교회는 파도가 넘실대는 거친 세상에서 나를 싣고 가는 구명보트”라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우리는 은혜를 말하면서 율법으로 살았고, 사랑을 말하면서 미움을 흘렸다”고 회고한다. 그러면서 “전에 나는 비판적인 소비자 정신으로 교회를 대했고, 예배를 공연으로 보았다.” 하지만 “교회에서는 하나님이 예배의 관객”이시므로, “예배를 마치고 떠날 때 우리가 해야 할 질문은 ‘하나님이 기뻐하셨는가?’이다”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교회로 다시 돌아오는 순례 여정에서 나는 교회의 역할이 중요한 정도가 아니라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다”고 고백한다.이어서 ‘라살 스트리트 교회’에서 지역사회를 섬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고, ‘익명의 알코올 중독자 모임’에서 겸손과 절대 정직, 절대 의존의 필요성을 배웠다고 이야기한다. 그다지 필요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복음이 줄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또한 교회 공동체는 가족과 같고, 통일성과 다양성이 균형을 이루는 곳이어야 한다며, 사역자가 현장에서 사역하는 중에 절망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모한 책임감에서 벗어나 평온함을 유지해야 함도 강조한다.◈ 《교회, 나의 고민 나의 사랑》 || 필립 얀시는 영미권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복음주의를 대표하는 지성인이다. 저서로 《그들이 나를 살렸네》 등이 있다. 원제 Church: Why bother?(1998). IVP, 2010. 8,000원.
▌좌담: 김길구 전 부산YMCA 사무총장, 김수성 경성대 초빙외래교수, 김현호 기쁨의집 기독교서점 대표
저자 필립 얀시는 ‘나의 교회 방랑기’로 글을 시작한다. 순례 여정을 되돌아보면서, 자기와 교회 사이를 가로막은 장벽이 무엇인지 하나씩 찾아냈다. 첫째는 위선이었다고 고백한다. ‘교인이 다 나 같다면 교회가 어떻게 될까?’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고 한다.
# 읽고서 ‘참 아름다운 책’이라는 느낌
김길구 : 이 책을 열면 첫머리에 의미심장한 저자의 인사말이 나옵니다. “전 세계적인 규모와 역동성을 자랑하는 한국교회에도 … 교회에 대한 회의에 빠진 젊은이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굳이 교회라는 조직에 소속될 필요가 있을까?’ ‘종교 없이도 영적인 삶은 살 수 있는 거 아닌가?’…”김현호 :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 1월에 출판되었습니다. 저는 그 다음해에 읽었는데, 상당한 도움을 받았습니다. 당시 저는 교회와 목회자들에 대한 실망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낼 때였습니다. 저자의 솔직하고 속 깊은 이야기를 접하면서 교회를 다시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김수성 : 저는 읽으면서 ‘참 아름다운 책이다’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저자의 필력도 대단하지만, 그가 교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너무도 따뜻했습니다. 좀 더 열심히 교회에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였습니다. 문제는 교회가 아니라 바로 ‘나’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습니다.김길구 : “기독교는 삶이 수반되는 종교이며, 그 삶은 오직 공동체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공동체의 삶이 먼저 이루어지면 갈등 해결이나 평화가 더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스캇 펫의 말도 같은 의미이죠.김수성 : 저자가 언급했듯이, 전에는 비판적인 소비자 의식으로 교회를 대했고, 예배를 하나의 공연으로 본 것 같습니다. 그러니 불편하고 부족한 점만 눈에 띌 수밖에 없었죠.김현호 : 사실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의 모습이 통제된 환경과 경직된 문화, 정죄만 가득한 것으로 비쳐질 때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니 젊은이들에게는 숨이 콱 막힐 정도죠. 어디서도 진정성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느낌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결국 ‘가나안 신자’로 교회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김길구 : 교회에서는 하나님이 예배의 관객이라는 말에 동감합니다. 그래서 예배를 마치고 나올 때, 우리가 무엇을 얻었는가가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할 예배를 드렸는가’를 돌이켜보아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초대교회가 국적, 인종, 계급, 나이, 성별을 초월해서 모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저자는 교회 공동체는 가족에 가깝다고 지적합니다.
#교회가 공동체로서의 역할 감당해야김현호 : 저자가 소개한 러셀 스트리트 교회의 모습에서 그런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물론이고 노숙자들, 언제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를 사람들과도 함께 예배드리는 교회. 성찬식을 위해 기도하는 목사를 향해 럭비공을 던진 남자도 안고 가는 그런 교회입니다.김길구 : 헨리 나우헨이 공동체를 가리켜 ‘가장 함께 살기 싫은 사람들이 반드시 살고 있는 곳’이라고 정의한 것과 맥을 같이 하는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교회 구성원 모두가 이런 공동체 정신으로 서로를 섬기고, 지역사회를 섬기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김현호 : 교회는 거름과 같다는 비유는 적절한 것 같습니다. 거름은 쌓아두면 온 동네에 악취를 풍기지만, 골고루 잘 뿌려주면 세상을 풍요롭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교회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자원봉사라고 강조합니다.김수성 : 그 부분에서 문득 보카치오의 《데카메론》 첫날 둘째 이야기가 생각납디다. 한 유대인이 로마 교황청에 가서 그들의 부정부패를 보고서 오히려 기독교로 개종하고자 합니다. 그들의 부패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신자가 더 불어나고, 성령이 더 찬연히 빛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교회 공동체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잘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김길구 : 유진 피터슨의 말처럼 교회에는 신비로움과 함께 어수선함도 대등하게 공존하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이런 어수선함이 더 교회다운 모습이 아닐까요? 다 같은 죄인들이 모였기에 서로서로 위로하고 곁길로 빠지지 않도록 도와줄 수 있을 것입니다.김현호 : 교회 공동체의 참모습은 교우들이 사회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상처입고 무리로부터 배척당하는 영혼들을 감싸 안고자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자기도 그러한 상처를 가지고 왔지만 서로를 생각하고 아껴주는 가운데 스스로도 치유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김수성 : 이 책을 가나안 신자들이나 교회와 자꾸 멀어지는 사람들에게 선물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교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씩 달라짐을 느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선교훈련 못지않게 공동체훈련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김현호 : 사실 교회 구성원 상당수가 따뜻한 배려와 보살핌, 그리고 적절한 교육과 훈련을 통해 어른이 된 것이 아닙니다. 그냥 부딪치며 살다보니 어른이 된 것이지요. 당연히 세련되지 못하고 투박합니다. 자칫 상처를 받으면 교회를 벗어나려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교회가 공동체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만 가나안 신자도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사역자들에게 충전할 기회 제공해야김길구 : 이 책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상처 입은 치유자가 치명상을 입지 쓰러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이야기도 의미심장합니다. 실제로 우리 주위에서 남의 아픔에 헌신하다가 오히려 자기가 축나서 중도에 포기하는 사례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김현호 : ‘구세주 콤플렉스’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경고합니다. 사람 자신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데, 그 사람의 고통을 다 떠맡으려는 증상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그 고통을 치유하려는 강박감에 시달리는 현상이지요. 김수성 : 존 던이 했던 말인데, 책 가운데 아주 명쾌한 말이 나옵디다. “다른 사람들의 십자가는 내 십자가가 아니다.”김길구 : 사역자들도 가끔은 값비싼 외식이나 음악회 등 ‘호강’을 누려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계속되는 고생과 외적 억압에서 벗어나 새로운 힘을 얻는 기회를 마련해야만 다시 일선에서 일할 수 있다는 주장이지요.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이러한 것을 잘못된 것으로만 치부하는 교인들의 시각도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김현호 : 이제 교회도 병원과 같이 영혼이 병들고 아픈 환자들이 득실대는 곳이라고 인식해야 합니다. 그곳에서 서로 위로하고 위안을 받으면서 위를 올려다보고 주위를 둘러봐야 할 것입니다.김수성 : 이 책 결론 부분에, 교회가 실패하고 과오를 범하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영광에 미달할 수밖에 없는 인간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고, 그것이 하나님이 감행하신 모험이라는 말이 강하게 와 닿더군요.김길구 오늘은 상당히 책에 충실하게 이야기를 나눈 것 같습니다. 다른 분에게 적극 권하고 싶은 책이라는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음에는 게리 토마스의 《쾌락, 하나님이 주신 순전한 즐거움》(CUP, 2012)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정리: 김수성]
▲ 교회 공동체는 하나의 기관이라기보다는 가족에 더 가깝다. 그렇기에 서로를 감싸주고 안아주는 곳이어야 한다. [Church-Self-Portrait. 출처: annaflowers.org]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세상을 위한 교회, 세이비어 이야기》 / 엘리자베스 오코너 / IVP
《교회를 꿈꾼다》 / 김형국 / 포이에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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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