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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 최병학 목사의 문화펼치기 ⑨
    1. 사극 영화(드라마) 속의 왕의 모습몇 주 전만 하더라도 서울 강남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영화 <사도>(2015)를 관람하러 가는 것이 유행이었다고 한다. 사춘기랍시고 부모 말 안 듣고 공부를 등한시했다간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고 협박하기에 안성맞춤인 영화가 <사도>이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영화 <사도>의 기표는 일자리(왕좌)를 놓고 부모와 자식 간의 대결을 다룬 것으로 현재 청년 일자리에 대한 부모세대의 양보를 요구하는 정부의 요청이 기의로 깔린 것은 아닐까? 아무튼 영화와 드라마는 현실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 박근혜 정부 탄생인 2012년부터 사극 영화 속에 나타나는 왕의 모습을 어떤가? <광해, 왕이 된 남자>(2012)를 통해 ‘가짜’라도 좋으니 ‘백성의 아픔에 공감하는 공의의 왕’, ‘강대국 사이에 실리 외교를 펼친 왕’을 바라는 민심이, 영화 <관상>(2013)에서는 이제 폭군(수양대군)을 막기 위해 그의 얼굴 관상까지 바꾸려고 했으나 어쩔 수 없이 폭군을 맞을 수밖에 없는 조선의 운명을 그려준다. <명량>(2014)은 이제 왕(선조)에게 의지하지 말고 왕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라고 한다. 왜구의 침입 때 조선의 왕 선조 임금은 백성을 따돌리고 도망을 갔으며 저 살자고 도망간 임금 대신 백성은 이제 이순신 장군을 따르게 되는 것이다. 왕이 아닌 다른 영웅을 백성은 갈구하고 있다. 따라서 이제 왕은 자신의 왕좌를 백성을 돌보는 자리가 아닌 신하들과 경쟁하고, 맘에 맞는 자식(<사도>에서는 손자)에게 물려주는 ‘내 입의 금수저’가 되어 버렸다. 서울 강남 학부모들의 <사도> 열풍은 이런 맥락 하에 그 의문이 풀리게 되는 것이다. 곧, 금수저-은수저-동수저-흙수저 등의 수저론을 견고히 하고자 하는 것이다. 2. 다윗 왕과 솔로몬 왕에 대한 두 가지 시선고대 근동의 모든 역사가 지배자의 입장에서 이루어졌다면(따라서 앗시리아, 바벨론, 이집트 등의 역사는 왕들이 전쟁을 하거나 또는 이웃 나라를 정복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밑에서부터 위로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리고 구약성서 안에는 ‘신명기 역사서(Deuteronomistic History: 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서, 열왕기서)’와 ‘역대기 역사서(Chronicler's History: 역대기, 에스라, 느헤미야)’가 있다. 이스라엘의 역사가 족장시대부터 시작된다고 하는 올브라이드(Albright)학파와 달리 사사시대부터 시작된다는 알트(Alt) 학파의 마틴 노트(Martin Noth)는 ‘4경설(창세기-출애굽기-레위기-민수기)’을 주장한다. 따라서 모세 5경에서 신명기를 떼어 낸 뒤 나머지 뒷부분과 연결하여 이를 신명기 역사서(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서, 열왕기서)라고 부른다. 이 역사서의 최종적인 형태는 바벨론 포로기 때 형성되었으며 이러한 포로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과거를 돌이켜 보면서 그들의 역사를 재정리하였다는 것이다. 그들은 “왜 우리가 야훼의 선언으로 가나안 땅을 유업으로 받았다면 지금 그 땅에서 쫓겨나야만 하는가?”, “야훼는 정말 창조주인가? 아니면 바벨론의 마르둑이 위대한 하나님인가?”, “야훼와 마르둑이 싸우면 누가 이기겠는가?”, “정말 야훼는 죽었는가?”, “정말 우리는 야훼로부터 버림 받았는가?” 등의 질문에 대한 해답(“아니오”)이 바로 신명기 역사서인 것이다. 그렇다면 포로가 된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이스라엘이 야훼를 배신하였고, 야훼가 화를 내어 잠시 동안 바벨론으로 쫓아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으로 불러 올 것이다. 이러한 신명기사가의 대표적인 역사철학의 관점은 다음에 잘 나타나있다. “네가 지금 이 성전을 건축하니 네가 만일 내 법도를 따르며 내 율례를 행하며 내 모든 계명을 지켜 그대로 행하면 내가 네 아버지 다윗에게 한 말을 네게 확실히 이룰 것이요. 내가 또한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에 거하며 내 백성 이스라엘을 버리지 아니하리라 하셨더라(왕상6:12-13).” 또한 신명기 사가의 관점이 잘 반영된 것이 사사기와 열왕기서이다. 사사기는 원래 사사들의 행적에 관한 고대 전승에 신명기 역사가가 재편집하면서 ‘배신-징벌-회개-구원’의 도식을 적용시킨 것이며 열왕기서는 역대왕들의 평가 기준으로 신명기 역사서의 관점을 적용시킨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 제의’와 ‘시내산 계약의 충실’인 신명기 사가의 입장에서 시내산 계약을 잘 지키면 복을 받고 계약을 지키지 않으면 벌을 받는다는 인과응보적 입장에서 역사를 해석한 것이다. 따라서 다윗 왕에 대한 평가도 이러한 가치 기준으로 해석한다. 사무엘하 11장에 나오는 다윗과 밧세바, 그리고 우리아에 대한 이야기(12장의 나단의 책망과 다윗의 회개에 이르기까지)는 위대한 왕 다윗도 ‘배신-징벌-회개-구원’의 도식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는 역사가의 입장이다. 즉 순종하면 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징계와 저주를 받는다는 것이다. 솔로몬 왕도 마찬가지이다. 이방 여인들과 결혼을 하고 그들의 영향을 받아 점차 야훼 종교에서 멀어지는 솔로몬의 악행(왕상 11:1-3)을 신명기 사가는 잘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역대기 역사서는 포로에서 귀환한 공동체가 새로운 희망과 비전을 제시하려고 기록한 것이다. 따라서 포로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하나님께 순종하여 온전한 ‘성전예배를 드리는 신정사회’와 ‘이상적인 왕국의 건설(다윗 왕조 선택 사상)’을 위하여 역사를 재해석한다. 그들은 다윗왕조를 야훼가 다스리는 왕조라고 높이며, 예루살렘성전 제의를 유일하고 합법적인 예배라고 표현한다. 따라서 다윗(은 물론이고 솔로몬 조차)을 이상화했을 뿐만 아니라, 북 이스라엘 왕국의 역사를 기록에서 삭제하기도 하였다. 사무엘하 11장의 다윗의 범죄는 삭제되었으며, 솔로몬 왕의 범죄도 삭제한다. 왜냐하면 솔로몬은 경건한 성전 건축가요 현명한 통치자라는 인상을 길이 남기고 싶었던 것이다. 3. 다양성 찬미신약성서는 3가지 기둥이 있다. 복음서의 기둥을 통해 예수님의 생애를, 서신서의 기둥을 통해 교회를, 계시록의 기둥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안내하는 것이다. 따라서 신약성서의 핵심은 ‘예수님 잘 믿고 교회 생활 하다,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살다가 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가는 것’이다. 그리고 복음서의 기둥으로 들어가는 문이 4가지가 있다. 그것은 각각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의 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각각 다른 예수의 모습을 전하고 있다. 왜 예수의 이야기가 각각 다를까? 다양성이야말로 진리를 보여주는 방편이기 때문이다. 초대교회에 타티안(Tatian, 120년경 출생)이라는 교부가 170년경에 <디아테싸론, Diatessaron>(문자적으로는 ‘through the four’, 곧 사복음서의 조화)라는 책을 통해 사복음서들의 자료들을 종합하여 하나의 연속된 이야기로 엮은 적이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지고 만다. 예수에 관한 하나의 획일적인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흥미를 끌지 못했기 때문이다. 곧 다양성이 진리를 더 잘 보여주는 것이다. 철학자 지젝(Slavoj Zizek)이 포스트모던의 다양성을 ‘시차(parallax)’라는 천문학적인 용어로 설명하며 ‘역동적인 공존’을 이야기한바 있다. 쉽게 이야기하면, 인간이 세계를 보는 관점이 다양한데, 이러한 인간의 조건을 획일적으로 통합하는 것은 폭력이라는 것이다. 시차적 관점 그 자체를 인정해야 진리를 제대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서로 모순되는 것들이 더 큰 맥락에서는 하나의 통일적 세계관을 구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가령, 부산에서 내가 보는 금성의 위치와 시카고에서 친구가 보는 금성의 위치는 다르지만, 그 다름으로 인해 금성의 거리를 측정할 수 있는 시차, 그 다양성과 차이가 사물의 실체를 좀 더 명확하게 드러낸다는 것이다. 따라서 차이를 강조하면 할수록 진리는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근대 회화의 아버지 세잔(Paul C?zanne)의 화법이 그렇다. 세잔의 정물화는 대상(과일과 같은) 하나하나에 시점들이 들어있다. 이러한 다양한 시점들이 전체 정물화를 구성하는데 이 정물화는 ‘시점들의 다원성’ 속으로 사라지지 않고,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하나의 통일적 세계로 드러난다. 4복음서의 다양성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참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4. 획일적 역사관의 위험성진리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자를 경고한 움베르토 에코의『장미의 이름』의 다음 인용은 지금 우리가 어떻게 신앙의 선배들이 살아왔고 읽어왔던 성서를, 그리고 우리가 살아갈 현실(특히 교과서 국정화 논란으로 역사전쟁이 벌어지고 있는)을 바라봐야하는지를 잘 말해준다. “우리는 숨을 죽이고 불타는 교회를 바라보았다. 수도원은 오래전부터 아비규환의 지옥이었다. ‘오늘 우리는 적 그리스도의 얼굴을 보았다.… 요르게 영감의 얼굴 말이다. 철학자에 대한 증오로 일그러진 그 얼굴에서 나는 처음으로 적그리스도의 얼굴을 보았다. 적 그리스도는, 그 사자(使者)가 그랬듯이 유대 족속에서 나오는 것도, 먼 나라 족속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 적 그리스도는, 지나친 신심에서 나올 수도 있고, 하느님이나 진리에 대한 지나친 사랑에서 나올 수도 있다. 이단자가 성자에서 나오고 신들린 자가 선견자에서 나오듯이 아드소, 선지자를 두려이 여겨라. 그리고 진리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자를 조심하여라. 진리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자는 대체로 많은 사람을 저와 함께 죽게 하거나 저보다 먼저, 때로는 저 대신 죽게 하는 법이다. 요르게가 능히 악마의 대리자 노릇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저 나름의 진리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허위를 타파하는 일이면 물불을 가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상상하는 질서란 그물, 아니면 사다리와 같은 것이다. 높은데 이르면, 거기에서 찾아낸 것이 유용한 것이든 무용한 것이든 일단 올랐으니 사다리는 치워야 한다.… 유용한 진리는, 언젠가는 버려야 할 연장과 같은 것이다.’”지금 교과서 국정화 논쟁은 이미 신명기 사가와 역대기 사가의 다윗, 솔로몬을 보는 관점으로 성서 안에 다 나와 있다. 그리고 사극 영화는 그 마지막을 연도별로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참 진리는 예수의 십자가처럼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라 성서는 말하고 있으며 유용한 진리는 언젠가는 버려야 할 연장과 같은 것이라고 에코는 말하고 있다. 최병학 목사 (남부산용호교회 담임, 경성대 사회과학연구소 학술연구 교수)
    • 문화
    2015-11-05
  • [기독교 교양 읽기 ⑧] “건강한 영성 위해서는 감정 숨기지 말아야”
    “건강한 영성은 현실을 긍정하는 것이다” “여보, 당신과 사느니 나 혼자 사는 게 더 행복할 거 같아요. 이제 롤러코스터 같은 결혼생활에서 탈출하고 싶어요. 당신을 사랑하지만 더 이상 이런 식으로 살지는 않을래요. 많이 기다렸는데…….” 교회 부교역자가 스페인어 예배 출석자 200여 명을 데리고 나가버려 화를 삭이기 힘들었던 때였다. 늦은 밤, 침대에 앉아 책을 읽는데 아내가 들어와 이렇게 통보했다. 그리고 덧붙여 말했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당신이 섬기는 그 교회에도 이제 안 나갈래요. 당신의 리더십은 따를 가치도 없으니까.” 저자는 그때서야 자기의 마음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감성을 찬찬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껍데기만 그럴싸하게 위장한 자기를 발견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남들 보기에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했다. 목사인 그는 더했을 것이다. 이로 인해 가정에서의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비로소 깨달았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기만 할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드러내야 하고, 제대로 관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 책의 제목인 《정서적으로 건강한 영성》은 여기서 비롯되었다. 정서적으로 건강하지 못하면 영성도 병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2부에서 건강한 영성에 찾는 7단계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과거의 자기 자신까지 솔직하게 드러내고, 매일 기도와 안식, 그리고 사랑으로 화평을 이룩하라고 권고한다. ◈ 저자인 피터 스카지로(Peter Scazzero)는 미국 뉴욕 퀸즈에 있는 뉴 라이프 펠로십교회 설립자이자 담임목사로서, 자신의 사역을 책과 세미나를 통해 나누며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원제 Emotionally Healthy Spirituality. 두란노, 2015. 15,000원. [좌담: 김길구 전 부산YMCA 사무총장, 김수성 경성대 외래교수, 김현호 기쁨의집 기독교서점 대표] 이 책은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겪게 되는 갈등을 이야기한다. 가정과 교회 생활에서 신앙과 감정이 상충하는 일이 벌어질 때,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를 어떻게 풀어나가고 극복해야 하는가를 보여준다. 그동안 우리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가능하면 ‘묻어두는’ 게 최선이라고 배워왔다. 그러나 저자는 ‘감정을 드러내라’고 충고한다. #먼저 ‘문제는 바로 나’라고 고백해야김길구 : 목회를 하는 저자의 부인이 어느 날 ‘더 이상 당신이 목회하는 교회에 나가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당신의 리더십은 형편없다’는 말까지 덧붙입니다. 저자는 이 사건을 계기로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김현호 : 저자는 그동안 내면에서 벌어지는 일은 외면한 채 ‘좋은 그리스도인이라는 포장된 이미지’만 보여주려고 한 것을 깨닫게 됩니다. 특히 가정이라는 닫힌 공간에서 일어나는 다툼이나 갈등, 실패 등 우리의 추한 모습이 드러날 때는 더 그러했다고 고백하기에 이릅니다. 교회에서의 모습과 가정에서의 모습이 달랐던 것입니다.김길구 :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졌죠. 지금은 고인된 저명한 목사님의 딸이 ‘하나님의 종이라는 이름 뒤에 감춰진 슬픈 가족사’라는 부제(副題)가 붙은 책을 작년 말에 펴냈습니다. 이 책에 따르면 그 목사님은 오직 연구와 집필 그리고 교회 일에만 매달린 반면, 가정에서는 유교적이고 가부장적인 권위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합니다.김수성 : 이런 모순은 우리 대부분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겪는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문제는 바로 나였다”고 고백하죠. 이러한 고백이 선행되어야 벗어날 길도 찾을 수 있을 겁니다.김현호 : 최근에 열린 ‘바른 신학 균형목회 세미나’에서 장신대 이만식 교수가 교회 청년 2,135명을 대상으로 ‘교회를 떠나는 이유’를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공동체 안에서의 관계적인 문제’를 지적한 응답자가 53.6%나 되었다고 합니다. 즉, ‘교회 내부의 배타적 분위기’나 ‘정서적으로 수용적이지 못한 교회 신자’ 때문에 상처를 받고 교회를 떠났다는 것입니다.김수성 : 지난번에 읽었던 《가나안 성도 교회 밖 신앙》에서도 비슷한 지적이 있었죠. 교회를 떠나는 세 가지 이유 중에 하나가 ‘위선’이었습니다.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김길구 : 저자는 ‘건강한 정서’와 ‘관상적 영성’이 해결책이라고 합니다. 분노, 슬픔, 두려움 같은 감정을 무시하지 말고 드러내되, 그 감정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관상적 영성과 통합될 때 우리 삶에 획기적 변화가 일어난다고 충고합니다.김수성 : 폴 에크먼(Paul Ekman)이라는 심리학자는 기본 감정을 표현하는 얼굴은 모든 사회에서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그런데 교인들은 이러한 기본 감정조차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는 문제점을 지적한 것 같습니다. ▲ 무너진 영적 생활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건강한 정서와 관상적 영성을 하나로 통합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우리 삶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심리학자 폴 엑크먼(Paul Ekman)은 기본 감정을 나타내는 얼굴 표정은 인종이나 남녀노소 구분 없이 다 비슷함을 밝혀냈다. 위쪽은 기쁜 표정, 아래쪽은 화난 표정] #치유 위해서는 ‘자기이해’ 선행돼야김현호 : 건강한 정서를 가진 사람은 ‘자신의 슬픔을 표현할 뿐만 아니라, 감정을 인식하고, 다룬다’고 합니다. 즉, 자신의 감정을 피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리고 여기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망가뜨리는 감정 패턴에서 도망쳐 나오는 것입니다.김길구 : 저자는 건강한 영성에 이르는 길을 7단계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이 중에서 ‘과거를 직면하라’는 권고는 인상적입니다. 특히 성경에서 ‘가족’은 보통 3~4대를 포함하는 확대가족을 이야기한다며, 과거의 영향을 결코 무시할 수 없음을 강조합니다. 미국의 경우, 이민사회로서 신앙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상처와 고통 없이 자리 잡은 가정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김현호 : 우리나라 가정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해방 공간의 좌우 대립, 이어진 전쟁의 고난과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왔던 과거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특히 성공지향적인 물질문명 속에서 일에 우선하면서 가정은 뒷전으로 밀어두었던 것이 사실입니다.김수성 : 재독 철학자 한병철 교수는 《피로사회》에서 이러한 병폐를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성과사회, 활동사회는 그 이면에서 극단적 피로와 탈진 상태를 야기한다.” 우리는 과다한 노동과 성과에 내몰리고, 이로 인해 ‘자기 착취’로까지 치달으면서, 결국에는 ‘소진증후군(burn out)’과 같은 신경성 질환에 시달리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는 것이죠.김길구 : 이제 치유가 절실한 시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스스로 한계를 설정해야 합니다. ‘자기 인식’ 또는 ‘자기 이해’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환상에서 벗어나 현실을 직시하라고 합니다. 이를 위해 저자는 ‘관상적 영성’을 해결책으로 제시합니다.김현호 : 그동안 한국 개신교회는 이런 영성적 방식을 거의 경험하지 못했고, 일부에서는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단적인 예로 몇 년 전에 이동원 목사가 진행해 왔던 ‘관상(觀想, contemplation) 기도’ 세미나를 들 수 있습니다. 반발이 심해 결국 세미나를 스스로 중단했죠.김길구 : ‘관상적 삶’은 궁극적으로 ‘느리게 사는 삶(slow life)’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동원 목사는 우리나라 교회의 목회자는 물론, 교인들의 바쁜 삶에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 관상 기도를 보급했다고 합니다. #교회가 목회자의 ‘휴식기’ 제공해야김수성 : 저자가 밝힌 ‘자기 사랑’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이야기라 할 수 있겠죠. 자기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가족을 사랑할 수 있으며, 이웃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조금은 느리게 살면서 먼저 자기를 사랑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김현호 : 이를 위해서 목회자부터 정서적·영성적 건강을 스스로 체크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단순한 휴가 개념이 아닌, 자기성찰 휴식기를 교회가 제공해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 공동체를 기름진 초장으로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김길구 : 영성을 훈련하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지만 저자는 특히 매일 기도와 안식을 중시합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 거룩한 독서라는 뜻으로 말씀 묵상)도 중시해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나라 교계에 성경을 도외시하는 분위기가 자꾸 확산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부교재에 치중함으로써 텍스트의 본래 의도가 왜곡되기도 합니다.김수성 : 잘못된 디지털 문화가 ‘21세기 짐승’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는 언급도 관심을 가질만한 대목입니다. 그렇기에 성경 텍스트와 안식의 중요성은 디지털 사회에서 더욱 절실합니다.김현호 : 이제는 가족에게 존경받는 성도, 팀원들에게 온유하고 수용적인 신도가 영적으로 더 건강한 성도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교회도 이런 성도들이 더 많아지도록 노력해야 하고, 이런 성도들이 교회지도자로 세워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김길구 : 가족이든 조직이든 간에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느냐도 우리에게 던져진 관심거리입니다. 단순히 봉합하거나 축소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드러내고서 적극적으로 해소하도록 해야 합니다.다음에는 게리 채프먼과 알린 펠리케인이 쓴 《스마트폰에 빠진 아이들,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생명의 말씀사, 2015)를 읽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정리: 김수성] ◇ 같이 읽으면 좋은 책《정서적으로 건강한 교회》 / 피터 스카지로, 워렌 버드 / 이레서원《정서적으로 건강한 리더》 / 피터 스카지로 / 두란노《영적훈련과 성장》 / 리차드 포스터 / 생명의말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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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인문학
    2015-10-22
  • [문화] 최병학 목사의 문화펼치기 ⑧
    1. 사극 영화(드라마) 속의 왕의 모습 최근 영화 <사도>에 이르기까지 사극 드라마, 혹은 영화가 인기가 있다. 사극의 형태를 빌려 현실정치의 코드를 풀어내는 영화와 드라마는 늘 시청자의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이러한 사극 드라마와 영화의 인기는 영화 내용에 당대 대중의 욕망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극 작품 속에서는 현실 정치의 사례를 풍자하고 그것을 간접적인 코드로 녹여낸 사례가 많다. 따라서 사극에는 시대별로 늘 큰 흐름이 있다(이하, 이털남 198회 문화평론가 하재근, <영화·사극 속의 정치코드 분석> 참조). 1980년대까지는 권력을 잡기 위한 암투와 치정이 사극의 주된 내용이었다. 힘센 자가 권력을 잡고 그렇지 못하면 당연히 죽게 되는 구조를 그려, 당시 군부 권력의 쿠데타 등을 정당화 하였다. 이후에는 변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말 유행했던 <용의 눈물>(1996~1998)이라는 사극은 그 당시 난립하던 수많은 대권을 잡으려는 잠룡을 빗댄 작품이었으며 2000년대에는 권위주의가 어느 정도 타파되면서 사극을 통해서 국민의 정치적 열망이 드러나게 되었다. <왕건>(2000~2002)이라는 드라마는 김대중 정부 시절 지역감정 회복이라는 주제를, 노무현 정부 때는 정조 왕과 이순신 장군이 박정희 시대(그때 전국 초등학교에 이순신 장군이 세워졌다. 장군의 이미지와 자신을 결합하려는 의도였다)와는 다르게 역설적으로 부각되었다. 가령, <불멸의 이순신>(2004~2005)이라는 작품은 여소야대로 정책 추진을 제대로 이뤄내지 못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리게 했고, 강력한 개혁 군주 정조의 이야기를 담은 <이산>(2007~2008)이라는 작품은 노무현 정부 말기부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기까지 엄청난 인기를 얻었는데, 당시 국민이 보기에 노무현 대통령이 거대 야당인 한나라당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고 있으니 연약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강력한 개혁 군주였던 정조의 모습은 그의 비극적인 운명과 함께 노무현과 오버랩 되었고, 대중은 강력한 CEO대통령을 갈구했다. 따라서 직선제 도입 이후 사상 최대 득표차로 당선된, 강력한 실용주의적 지도자 이미지의 이명박 대통령의 등장은 사극의 판단이 옳았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시간이 지날수록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고, 지지율은 바닥을 쳤다. 비록 윤리적으로 하자가 있을지언정 강력한 지도자인 이명박 대통령이 우리 고통을 씻어주겠거니 했는데, 대중은 국민과 소통하지 않고 편협한 인사, 일방적인 정책운영에 실망하게 된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에서는 세종대왕이 강력하게 조명됐다. 백성의 삶을 억압하지 않고 잘 어루만져 주는 온건한 관리자의 상이 화제가 된 것이다. 이것은 웰빙(wellbeing)이 아니라, 힐링(healing)으로 시대적인 화두가 바뀐 것을 잘 보여준다. 따라서 이 당시에는 <대왕 세종>(2008), <뿌리 깊은 나무>(2011) 등 세종대왕을 주인공으로 한 사극이 인기를 끌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명박 정부 시기의 사극에서 반드시 나타나는 ‘토론’이라는 코드이다. 가령 <선덕여왕>(2009)의 미실과 덕만도, <뿌리 깊은 나무>의 밀본의 수장과 세종도 꼭 토론을 하는데, 이처럼 소통을 통해 국정을 운영해 나가는 지도자 상이 인기를 끌었던 것은 당시 이명박 정부의 불통이미지 때문이라 할 수 있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사극들에 나타나는 지도자들은 자신을 세일즈 하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신의>(2012)라는 작품을 보면 최영 장군과 신진 사대부들조차 공민왕에게 “내가 왜 당신 신하여야 하는지”를 묻는다. 그러면서 왕과의 대화를 통해 설득당하여 왕의 편이 하나둘씩 늘어난다. 작품 안에서 지도자가 되어야 하는 정당성을 설명하는 과정이 동반되는 것이다. 또한 <대풍수>(2012)는 조선의 태조 이성계를 우스꽝스럽고 즉흥적이고 가벼운 성격으로 묘사하지만, 호탕하고 의리가 있어, 자신을 지지하는 현자들의 말을 듣고, 지도자로서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위화도 회군을 결심하는 이로 그리려 하고 있다. 결국 대부분의 사극은 영웅들 이야기이고, 국가를 다스리는 이야기이니 리더십의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사극을 통해서 국민들이 원하는 리더십의 방향, 지도자의 상이 자연스럽게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 이후 사극 분석은 다음 호에) 2. ‘신-왕’ 예수 그렇다면 성서는 어떤가? 요한복음의 저자인 요한공동체는 당시 로마제국의 ‘신-왕 일치’ 사상에 ‘신-왕 예수’에 대한 깨달음과 믿음이야말로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이해라고 생각하였다. 즉, 요한공동체는 자신들의 신앙의 대상인 예수를 신이며 왕으로 고백하였다. 로마 제국의 신-왕 일치 사상이 제국의 통일성을 확보하기 위한 식민 통치 이념의 일환이었다면, 요한공동체의 신-왕 일치 사상은 로마 제국에 대한 저항적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영생은 제국 로마가 주는 것이 아니다. 오직 예수를 믿는 이들에게 하나님은 영생을 허락하는 것이다. 따라서 요한공동체가 전하는 예수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3:16-17)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20:31)에 잘 나와 있다. 그러나 이 말씀들을 로마라는 세상 제국을 배제하고 읽는다면 말씀의 구체적인 의미를 상실한다. 요한공동체는 세상(로마제국)에 대해 적대적이었다. 가령, 요한복음에서 현저하게 사용되고 있는 ‘영광’이나 ‘은혜’, ‘진리’, ‘길’, ‘이름’, ‘자유(롭게 하다)’, ‘생명’과 같은 단어들은 당시 그리스-로마 사회에서 로마 황제를 표상하는 언어였다. 그러나 요한공동체는 이러한 용어들을 비교급이나 최상급으로 사용하여(‘은혜와 진리가 충만’, 1:14, ‘은혜 위의 은혜’, 1:16, ‘참으로 자유롭게 하다’, 8:36 등) 황제보다 비교 우위로 표현함으로 로마에 대한 저항 의지를 우회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거짓된 세상 제국과의 대결, 거짓된 종교를 벗어나 참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만 진정한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예수의 이미지는 요한 18:36절에 두 번이나 반복되는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라는 언급으로 인하여 정치적 함의를 갖지 않은 것으로 오해되어 왔다. 그러나 이는 당시 아우구스투스의 연설문과 비교하여 “너희는 세상 왕국(kingdom on earth)의 백성이다”와 비교하여 읽어야 한다. 따라서 예수의 말에서 ‘내 나라’는 초월적인 나라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인 로마에 대한 소속을 거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거부는 이적 사건에도 나타난다. 가령, 예수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임으로써 황제의 급식을 능가한다(요6:1-15). 북한에서도 김일성이나 김정일 생일 때, ‘이밥과 고기국’을 인민들에게 베푸는 것처럼 로마는 새로 황제가 즉위하면 백성들에게 급식을 나눠준다. 그러나 예수의 급식은 황제보다 양이 많고, 남은 것이 열두 바구니였다. 이러한 비교는 예수의 십자가 처형에도 나타난다. 요한공동체는 로마 황제의 대관식 장면과 예수의 죽음을 빗대어 묘사하는 것으로 예수의 정치와 로마 황제로 대표되는 세상 권력의 정치를 대조한다. 로마 황제가 ‘로마의 머리 언덕’(카리톨리노)에서 세상 제국의 황제 자리에 등극했듯, 예수도 ‘예루살렘의 머리언덕’(골고다)에서 죽음과 부활을 통해 온 우주의 황제 자리에 등극하였다. 이를 표로 만들어 보자. 여기서 예수가 빌라도 심문 당시 입었던 ‘자색 옷’과 가시‘관’은 황제의 복장과 금관의 상징으로, 당시 도미티안(Domitian A.D 81-96년) 황제가 대중들 앞에 나갈 때 자신을 쥬피터(Jupiter, 그리스의 Zeus) 신으로 드러내기 위해 입었던 의상이다. 따라서 권력의 상징인 자색을 황제가 아닌 다른 사람이 입을 경우는 처벌당하기도 하였다. 특히 금관은 로마 황제들이 일반적으로 착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신적 표상을 담고 있다. 마가도 ‘자색 옷’이라 하고 있으나(막15:20), 마태는 ‘주홍색 옷(홍포)’으로 기록하여 왕적 표상을 손상시키고 있으며(마27:28, 31), 누가는 이러한 보도를 아예 생략하여 예수의 왕적 표상을 드러내는데 소극적이다. 이러한 상이한 관점은 각각의 복음서를 산출한 공동체들이 당면하였던 다양한 정황과 그들 나름대로의 정체성 추구와 관련이 있다. 곧 공동체는 자신들의 삶과 신앙의 핵심이었던 예수에 대한 고백 안에 자신들이 처한 정황에 대한 그들의 의지를 투사함으로 그들만의 사회적 세계를 구성하였고, 자신들의 독특한 정체성을 추구해 나간 것이다. 3. 예수의 정치, 교회의 정치 로마 황제로 대표되는 세상의 정치는 한 사람의 정치적 욕망을 위해 모든 사람의 생명과 권리를 짓밟고 제거하는 식의 무한 경쟁에서 승리한 방식으로 나타나는 것이라면, 예수의 정치는 모든 이의 유익과 복지를 위해 자신의 존재 전체를 십자가의 희생 제물로 바치는 것이다. 예수의 정치, 곧 예수를 머리로 고백하는 교회의 정치란 타자의 유익을 위해 끊임없이 자신의 욕망과 이익을 부인하며 자신을 제물로 바치는 정치라 할 수 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담임, 경성대 사회과학연구소 학술연구 교수)
    • 문화
    2015-10-07
  • [기독교 교양 읽기 ⑦] “순례는 영원한 삶을 위한 큰 투자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길 위에서 완성된다” 《여행》이란 제목만 보고 이 책을 선택하면 후회할 수도 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여행이나 관광에 관한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신학적이고 정치적인 관점에서 여행을 이야기한다.저자는 여행은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난 것을 비롯해 사도 바울의 전도 여행에 이르기까지 기독교 전통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음을 전제한다. 그래서 서두에 ‘기독교 신앙은 길 위에서 완성된다’며, 기독교는 ‘길 위의 신학’임을 강조한다.저자가 이야기하는 여행의 범주는 관광에서부터 피난에 이르기까지 그 폭이 상당히 넓다. 여행, 관광, 이주, 순례, 방랑, 선교여행, 단기 집중여행 등 다양한 형식의 여행에 대해 언급한다. 그러나 여행의 목적은 분명하다. 단순히 관광하며 즐기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숨어 있는 권력관계까지 들여다 볼 것을 요구한다.특히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제국주의의 연성(軟性) 권력에도 휘둘리지 말아야 하고, 궁극적으로 신학적, 정치적 저항 행위가 되어야 제대로 된 여행이 된다고 주장한다. 그렇기에 ‘순수한 신학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신학자는 결코 중립적일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한다.그러나 일반인들이 이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힘겹다. 그렇기에 여행을 떠나되, 지금부터라도 좀 더 보람 있는 여행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자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싶다.◈ 저자인 요르그 리거(Joerg Rieger)는 미국 달라스에 있는 남감리교 대학교 퍼킨스 신학대학의 구성신학 교수이다. 독일 태생으로 신학을 전공하기 위해 미국으로 이민했다. 원제 Traveling. 포이에마, 2015. 9,800원. [좌담: 김길구 전 부산YMCA 사무총장, 김수성 경성대 외래교수, 김현호 기쁨의집 기독교서점 대표] 여행! 언제 들어도 가슴 설레는 낱말이다. 최근 뉴스에 따르면, 메르스 사태 이후 해외여행이 봇물 터지듯 급상승했다고 한다. 이제 우리의 삶에서 여행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은 것 같다.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곳에서 이색적인 것을 접할 때 느끼는 신선함이 우리를 떠나게 하는 건 아닐까. 그런데 이번에 읽었던 책, 《여행, 관광인가 순례인가》는 그것만으로는 모자란다고 역설한다. #여행은 구약-기독교 전통과 연결돼김길구 : 이 책을 열자마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위대한 여행의 모험에 관해 얘기하면서 이 세상은 거대한 책이라 했고 여행자만큼 이 책을 많이 공부한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꼼짝 않고 자기 집에만 박혀 있는 사람은 이 책을 한 페이지만 읽은 것이다.” 상당히 인상적인 말입니다.김현호 : 저자는 기독교 신앙에 있어 여행이란 구약-기독교 전통과 깊이 잇대어 있으며 신앙을 실천하는 현장은 바로 길 위에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순례로서의 여행은 ‘길 위의 신학’이라고 정의합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신학과 관련지어 표현한 것 같습니다.김길구 : 아브라함이 우르를 떠난 것에서부터 광야 생활, 바벨론 포로 생활, 예수의 사역과 바울의 전도 여행 등 모두가 정적인 신앙이 아니라 끊임없는 길 위의 신앙입니다. 그렇기에 여행은 ‘나를 따르라’는 초대의 말씀을 다시 들을 수 있게 된다고 강조합니다.김수성 : 그런데 이 책에서는 ‘여행’을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여행이나 관광보다는 훨씬 넓은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단순한 관광보다는 순례, 방랑, 이주, 피난 등 자의적 여행은 물론 어쩔 수 없이 정주지를 떠나 이국땅에 머무는 것까지도 포함합니다.김길구 : 저자는 ‘길 위의 신학’과 ‘사유화(思惟化) 신학’을 대립시켜 여행을 이야기합니다. 궁극적으로 여행은 ‘좁은 길로 들어가는’ 여정이라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 정주하는 신학은 자칫 안정을 유지하는 ‘넓은 길’이 될 수도 있음을 언급합니다.김현호 : 교회가 일정 지역에 자리를 잡더라도 안주할 것이 아니라, 안디옥교회와 같이 끊임없이 인근 지역에 복음의 씨를 뿌리고 지원하는 동적인 모습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최근 교계에서는 선교사를 지원하는 젊은이들이 대폭 줄어 걱정입니다. 헌신보다는 안주를 원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는 거라 할 수 있습니다.김길구 : 여행은 장차 들어갈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임을 새삼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실의 안락함을 버리고 길에서 만남 사람들과 함께하는 신앙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죠. ▲ 여행은 구약-기독교 전통과 깊이 잇대어 있다. 신앙을 실천하는 현장은 바로 길 위에서 일어나는 것이기에 순례로서의 여행은 ‘길 위의 신학’이라 할 수 있다. 〈그림은 Rene Magritte의 ‘The pilgrim’(1966)〉 # 길에서 자기를 찾고 하나님 만나야김수성 : 사실 저자가 강조하는 여행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즐기는 여행과 많은 차이가 납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패키지관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저자가 이야기하는 것은 자유여행 스타일입니다.김길구 : 우리나라도 조금씩 변하고 있죠. 여태까지 구경꾼에 그쳤다면, 최근에는 직접 체험하는 순례나 트레킹으로 변하고 있고, 특히 젊은 층에서는 벌써부터 자유여행이나 배낭여행 붐이 불고 있습니다.김현호 : 문화관광부 통계에 따르면, 이스라엘 인근으로 성지 순례를 다녀오는 사람이 연간 2만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성지 순례를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의문을 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단순히 관광에 치우친 면이 많다는 것이죠.김수성 : 조지 리처의 책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에 보면, ‘맥도날드화된 관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행사는 관광지의 사람, 문화, 제도와의 접촉을 최소화하도록 하고, 자유시간은 거의 없도록 빡빡하게 일정을 짠다는 것이죠.김길구 : 그렇더라도 주위에서 성지 순례를 다녀와 달라졌다는 분이 많은 것을 보면, 너무 부정적으로만 볼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달라져야 할 부분도 많지만, 현재의 흐름을 보면 머지않아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순례는 ‘영원한 삶을 위한 큰 투자’라는 말이 실감나는 날이 올 것입니다.김현호 : ‘관광객은 요구하고 순례자는 감사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돈만 지불하면 되는 관광은 편리함과 돈에 따른 대가보다 더 많은 것을 누리려고 합니다. 이에 비해 순례 정신으로 길을 떠나는 사람은 조그마한 것에서도 감사하게 됩니다.김수성 : 산티아고 순례를 다녀오신 분들의 말을 들으면, 엄청난 고생을 하였지만 기회만 된다면 또 가고 싶다고 합니다. 길 위에서 자기를 찾고 하나님을 만나기 때문이 아닐까요.김현호 : 저는 가끔 제주도 올레길을 걷습니다. 이 길을 만든 서명숙 씨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독일인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올레길을 만들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성지가 따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갈맷길, 초량 산복도로 길이라도 순례의 정신이라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김길구 : 최근 부산에서도 기독교 순례 길을 개척하는 노력이 꾸준히 전개되고 있습니다. 부산장신대에서 ‘부산의 기독교 유적지’ 가이드북을 만들어 순례길을 안내하는가 하면, 부산기독교총연합회에서는 몇 년째 부산의 선교 역사를 돌아보는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광복로 입구에 초기 선교사 첫 기착지 표지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부산의 신앙 성지 순례길 만들어야김현호 : 저는 몇 해 전부터 타 지역 기독인들과 부산의 청소년들에게 부산의 기독교역사를 간직한 초량교회, 장기려기념관, 부산진교회, 일신여학교기념관과 일신병원, 수정동성결교회, 삼일교회 등을 연결하는 지역 순례길을 몇 차례 안내해 왔습니다. 누군가가 나서 이런 순례를 정례화하고 좀 더 전문화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항상 가지고 있습니다.김길구 : 김현호 대표의 노력에 큰 박수를 보냅니다. 그리고 그동안 우리 교회가 이런 노력을 제대로 기울이지 않았던 것을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초기 부산에서 활동했던 선교사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선교여행이나 순례를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전개할 필요가 있을 겁니다. 그것이 우리 길을 성지로 삼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김현호 : 필요하다면 도시 교회가 기독교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지역의 농촌이나 어촌 교회와 연계하여 순례하는 방법도 모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책 한 권 들고 떠나는 신앙의 유적 탐사도 좋은 순례길이 될 것입니다.김수성 : 저는 교회의 여름학교가 이런 프로그램으로 방향을 바꾸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실내에서 벗어나 길 위에서 하나님을 찾는 순례 프로그램 같은 것으로 말입니다. 개 교회에 부담이 된다면 지역 교회가 공동으로 이런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김길구 : 어떤 분은 일본의 저력을 소위 ‘오타쿠’ 문화에서 찾기도 합니다. 개개의 민간인들이 하나의 주제나 관심사에 대해 평생 파고들어 전문가보다 더 깊이 있는 공부를 하는 문화이죠. 북유럽의 힘도 이와 비슷한 민간인들의 평생공부에서 비롯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열풍이 불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합니다.다음 달에는 피터 스카지로가 쓴 《정서적으로 건강한 영성》을 읽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김수성] ◇ 같이 읽으면 좋은 책《흔들리며 걷는 길》 / 김기석 / 포이에마《信行여행, 한국기독교유적지 137》 / 이성필 / 세줄《부엔 카미노! 산티아고를 걷다》 / 구철헌 / 예영커뮤니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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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인문학
    2015-09-24
  • 교회개척의 새로운 패러다임
    교회개척의 새로운 패러다임 최영기 지음 / 요단출판사 / 2015.08.01. / 10,000원 2009년에 국제가정교회 사역원에서 출판한 가정교회를 개척하여 잘 정착시킨 목사님들의「개척교회 사례집」을 증보 수정한 책이다. 교회를 개척해야 할 사명이 있는 목사님들을 위해 좀 더 오늘날의 개척 상황에 맞는 사례집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발간하였다. 이 책은 가정교회 개척 사례이지만 일반 교회를 개척하는 분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저자 최영기 목사는 휴스턴 서울교회 원로목사이다. 한국 전쟁 시 순교한 최석모 목사의 손자로서 독실한 기독교가정에서 성장했다. 목회자로서 그의 꿈은 '신약적인 가정교회'를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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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8-27
  • 신약교회 사관에 의한 중세교회사 1
    신약교회 사관에 의한 중세교회사 1 정수영 지음 / 쿰란출판사 / 2015.08.25. / 23,000원 저자는 중세교회사 1, 2권을 통해 1000년 동안 유럽 세계를 암흑으로 이끌어 간 타락과 부패의 역사를 밝히는데, 기존의 중세교회사들과는 다른 시각으로 과거를 바라보았다. 1부 교황의 역사, 2부 유럽교회의 역사, 3부 주류교회와 다른 소수 교회 역사를 신약교회 사관에 의해 알아보고 교황들이 과연 신앙에 부합한 무리들이었는지 살펴보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약 260여 명의 교황 중 그리스도의 종다운 교황은 10명 안팎이었다. 교황들의 삶을 살펴보는 것으로도 중세교회사가 한눈에 읽혀지고, 교회와 우리 신앙을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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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8-27
  • 나는 믿습니다
    나는 믿습니다 김승욱 지음/ 규장출판사 / 2015.08.17. / 15,000원 할렐루야교회 김승욱 목사의 깊고 풍성한 사도신경 강해를 담은 『나는 믿습니다』. 성경적이고, 힘이 있는 김승욱 목사의 강해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가 과연 무엇을 믿고 있는지,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알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사도신경 외우는 것을 그저 예배 순서 중 하나라고만 생각한다. 그래서 얼른 외구고 끝내버린다. 그러나 믿음을 고백하고 선포하는 것 자체가 예배이다. 우리가 이것을 안다면 아무 생각 없이 입으로만 외우고 넘어갈 수는 없을 것이다. 신앙고백 그 자체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이기 때문이다.
    •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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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8-27
  • 은혜, 은혜, 하나님의 은혜
    은혜, 은혜, 하나님의 은혜 리 스트로벨 지음 / 두란노서원 / 2015.08.18. / 14,000원 은혜는 종교 언어에 불과한가? 은혜란 과연 무엇인가? 하나님 은혜가 진정 사람들의 삶을 새롭게 바꾸어 놓을 수 있는가? 『은혜, 은혜, 하나님의 은혜』는 저널리스트 출신의 리 스트로벨 목사가 하나님 은혜의 수수께끼를 풀어 가는 자신의 신앙 여정을 담은 책이다. 그리고 그 길에서 만난 구체적인 은혜 사건들을 통해 은혜의 개념을 정의해 간다. 리 스트로벨은 우리 시대 실재하는 은혜의 현장을 인터뷰하며 한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의 증거를 만났다. 내 인생에 이미 찾아오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게 하고 세상을 보는 눈을 열어 준다.
    • 문화
    • 도서
    2015-08-27
  • [문화] 최병학 목사의 문화펼치기 ⑦
    1. 셰프 전성시대바야흐로 셰프 전성시대이다. 요리 강좌에 남성 수강생들이 몰리고, 여성들은 ‘요섹남(요리하는 섹시한 남자)’을 이상형 1위로 꼽고 있으며 하다못해 귀신도 셰프를 좋아한다(tvN 16부작 드라마 <오 나의 귀신님>). 상처 입은 우리들에게 먹을거리 하나로 위로를 베풀고 바쁘고 슬프고 힘겨운 현대인들에게 힐링의 전도사 역할을 하는 셰프야 말로 이 시대 생명의 전도자이다. 예능의 대세도 ‘먹방(음식을 먹는 장면이 나오는 방송)’에서 ‘쿡방(음식을 조리하는 요리 프로그램)과 셰프테이너(셰프+엔터테이너)’, 곧 먹는 것과 요리사로 바뀌었다. 입고 살 만해졌기 때문에 먹는 것이 중요해졌을까? 먹방은 혼자서 밥을 먹는 사람들이 마음의 허전함을 채우기 위한 대리만족으로 인기를 끌었으며 그 먹방의 지루함을 해결한 것이 바로 쿡방이었다. 혼자 밥 먹는 사람들, 혹은 먹고 살기 힘든 우리네 이웃의 일상을 방송 화면은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바야흐로 셰프 전성시대이다. 요리 강좌에 남성 수강생들이 몰리고, 여성들은 ‘요섹남(요리하는 섹시한 남자)’을 이상형 1위로 꼽고 있으며 하다못해 귀신도 셰프를 좋아한다(tvN 16부작 드라마 <오 나의 귀신님>). 상처 입은 우리들에게 먹을거리 하나로 위로를 베풀고 바쁘고 슬프고 힘겨운 현대인들에게 힐링의 전도사 역할을 하는 셰프야 말로 이 시대 생명의 전도자이다. 예능의 대세도 ‘먹방(음식을 먹는 장면이 나오는 방송)’에서 ‘쿡방(음식을 조리하는 요리 프로그램)과 셰프테이너(셰프+엔터테이너)’, 곧 먹는 것과 요리사로 바뀌었다. 입고 살 만해졌기 때문에 먹는 것이 중요해졌을까? 먹방은 혼자서 밥을 먹는 사람들이 마음의 허전함을 채우기 위한 대리만족으로 인기를 끌었으며 그 먹방의 지루함을 해결한 것이 바로 쿡방이었다. 혼자 밥 먹는 사람들, 혹은 먹고 살기 힘든 우리네 이웃의 일상을 방송 화면은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2. 야훼의 마지막 날 잔치모든 종교는 의식(예배 혹은 제사)과 먹는 것(밥)이 연결되어 있다. 기독교도 마찬가지이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에게 바치는 제물은 곡식, 떡, 양, 염소, 소, 비둘기 등 인간이 먹을 수 있는 것이었다. 이것으로 번제와 희생제, 감사제와 요제를 드리게 된다. 그리고 제사 이후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하나님 앞에서 함께 제사 음식을 먹는다.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번제물과 희생 제물들을 하나님께 가져오매 아론과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와서 모세의 장인과 함께 하나님 앞에서 떡을 먹으니라(출18:12).”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계약을 맺고 나서도 모세와 이스라엘 장로들은 하나님 앞에서 먹고 마셨다. 이스라엘의 축제일인 유월절, 무교절, 추수절, 초막절 역시 모두 먹는 것과 관련이 있다. 유월절과 무교절은 애굽의 종살이에게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축일로 제물고기와 누룩 없는 떡을 먹었으며 추수절과 초막절은 밭 곡식과 포도의 추수에 관련된 축일로 가난한 이들(노비, 레위인, 떠돌이, 고아, 과부)까지도 함께 즐겨야 했다(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되, 신16:14).이사야가 선포하는 야훼의 마지막 날의 모습도 먹고 마시는 잔치이다. 시온 산에서 모든 사람의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씻어 주고 죽음을 영원히 없애고 모든 민족들에게 잔치를 베푸는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사25:6)”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도 먹는 잔치로 묘사된다. 이 땅에 하나님 나라의 모습인 초대 교회 공동체는 어떤가? 사도행전은 초대 교회의 생활상을 다음과 같이 그려준다.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며 그들의 모든 것을 공동 소유로 내어 놓고 재산과 물건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한 마음이 되어 날마다 열심히 성전에 모였으며 집집마다 돌아가며 같이 빵을 나누고 순수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먹으며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이것을 보고 모든 사람이 그들을 우러러 보게 되었다. 주께서는 구원받을 사람을 날마다 늘려 주셔서 신도의 모임이 커 갔다(행2:44-47). 그러나 고린도교회에서는 이러한 밥상 공동체가 깨어졌다. “그런즉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 이는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 사람은 시장하고 어떤 사람은 취함이라(고전11:20-21)”고 전한다. 곧 부자들은 취하도록 배불리 먹고 가난한 자들은 굶주린 상태에서 에배와 성찬에 참여하게 되었다. 따라서 바울은 해결책으로 공동식사인 애찬과 성찬을 분리시켰고 결국은 성찬만 남게 되었다(“만일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을지니, 고전11:34a). 사실 사회적 신분(주인과 노예)의 차이와 빈부의 차이를 그대로 두고 교회에서 함께 식사하는 것은 예수의 밥상 공동체의 본질적인 모습은 아닌 것이다. 이후 요한복음은 성찬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예수의 삶으로 이끌고자 종교적 의식 행위에서 오늘의 현실 속에 예수의 정신을 되살리는 것으로 해결책을 제시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서 살고 나도 그 안에서 산다(요6:56).”이를 구현한 이가 교회사에 등장한다. 지난 2015년 7월 6일은 체코의 종교개혁자 얀 후스(Jan Hus)의 화형 60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후스는 성찬식을 개혁했는데, 성찬식은 실제로 굶주린 사람들과 함께 먹을 것을 나누는 밥상공동체 운동이다. 이러한 후스의 개혁운동을 더욱 확산시켰던 후스파 운동은 ‘이종성찬(빵과 잔 둘 다 허용)’을 진행했는데, 이는 사제와 평신도 사이의 위계질서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만들었다. 당시 성찬 집례시 잔은 사제들에게만 주어졌다. 그러나 후스파는 평신도들에게까지 잔을 베풂으로 평등 공동체를 구현했다. 성찬을 통해 사제계급의 특권을 파괴한 것이며 성찬을 공동식사(애찬)로 바꾸어 굶주린 많은 사람들을 먹이는 잔치가 되었다. 3. ‘멋, 맛, 못’의 말씀 요리사인 설교자설교자는 말씀의 셰프이다. 최현석 셰프와 같이 요리하는데 멋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선포하기에 대행자로서 멋이 있어야 한다. 개그맨이 되어서는 안된다. 또한 설교자는 그의 설교에 맛이 있어야 한다. 백주부(백종원 셰프)의 솜씨와 같이 지식인이든 어린 아이든, 여자든 남자든 누구나 할 것 없이 맛있게 먹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감칠 나게 요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설교자의 설교에는 못이 있어야 한다. 어머니의 손맛과 같은 그리움이 있어야 한다. 찔림이 있어야 한다. 본향에 대한 그리움, 예수 그리스도를 처음 만난 첫사랑에 대한 찔림, 미래의 희망에 대한 저 내면 깊숙한 곳에서의 외침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렇지 못하거든 요리를 배워야 한다. 그럴 수 없다면 함께 더불어 먹기라도 해야 한다. 부활한 예수도 이념이나 정신 속에서 만난 것이 아니라, 말씀 요리와 밥을 나눠 먹는 자리에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저희의 가는 촌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하는 것같이 하시니 저희가 강권하여 가로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 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저희와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저희와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매 저희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저희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곧 그 시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사도와 및 그와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는지라.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눅24:28-35).”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담임, 경성대 사회과학연구소 학술연구 교수)
    • 문화
    2015-08-27
  • [기독교 교양 읽기 ⑥] 광복 70주년, 교회공동체가 화해 사역에 앞장서야
    “화해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저자는 이 책 《화해의 제자도》 머리말에서 “화해는 전문가의 영역이 아니다”며, “이 책은 당신을 위한 책이다”라고 선언한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는 누구나 화해에 앞장서야 한다는 것이다.화해가 전문가 영역이 아니라는 말은, 화해의 본질과 관련이 있다. 전문가들은 분쟁이나 분열의 현장에서 갈등을 해결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것은 급한 불을 끄는 소방수 역할에 그친다.진정한 화해는 새로운 창조라는 하나님의 선물에 토대를 둔, 기독교적 비전에서 출발하는 긴 여정이다. 일상적인 모임에서, 일상의 공동체에서, 가장 분열이 심한 바로 그곳에서, 보통 사람들에 의해 서서히 일어나는 조용한 혁명이다. 그렇기에 화해하기 위해서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우리가 먼저 변화된 백성이 되어야 한다.히브리서 11장에 믿음으로 살았던 많은 이들은, ‘아직 보이지 않는’ 미래의 비전을 믿고 오늘 비합리적인 삶을 살았다. 성경은 이런 믿음의 증인들을 통해 아직 성취되지 않은 약속의 소망이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준다.그렇기에 심각하게 깨어진 세상에서 교회가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을 향한 부르짖음, 즉 탄식의 기도이다. 그래야 진정한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교회 공동체가 현실 너머에 있는 새로운 세상을 우리 삶에서 상징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이방인과 적과 친구가 될 수 있다.◈ 저자인 에마뉘엘 카통골레는 우간다 출신 사제로서 듀크대 신학대학원의 연구교수, 크리스 라이스는 〈어반 패밀리〉 편집자면서 ‘화해자협회’ 공동 설립자이다. IVP, 2013. 10,000원. [좌담: 김길구 전 부산YMCA 사무총장, 김수성 경성대 외래교수, 김현호 기쁨의집 기독교서점 대표] 이 책 끝 부분에 ‘하나님의 선교로 화해를 회복하기 위한 10가지’가 있다. 앞서 언급했던 내용을 10가지로 간략하게 정리한 것이다. 첫 번째는 이렇다. ‘화해는 하나님이 이 세상에 주시는 선물이다. 세상의 깊은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나 우리의 행위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새로운 창조라는 그분의 선물에서 시작된다.’ #갈수록 심화되는 우리 사회의 갈등김길구 : 2010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사회 갈등이 OECD 회원국 중 두 번째로 높게 나타났고,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최대 240조원에 달한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종교 분쟁으로 인한 터키를 제외하면 우리나라가 가장 심각한 수준이라고 합니다.김현호 : 우리나라에서 나타나는 갈등을 저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눠 생각했습니다. 교회, 사회, 그리고 남북관계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갈등이 오랜 세월 동안 지속되었고, 날이 갈수록 깊어졌다는 사실입니다. 김길구 : 사회 갈등이라는 측면에서만 보아도 세대간, 지역간, 빈부간 갈등을 들 수 있죠. 여기에 더하여 최근 들어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밀양 송전탑과 핵발전소, 세월호 문제 등 정부정책 등과 관련한 갈등이 심각하게 표면화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제시하는 기독교적 해결방안은 상당히 의미가 있다고 할 것입니다.김수성 : 이 책에서 가장 공감했던 바는 ‘화해는 전문가 또는 운동가의 영역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사역이다’라는 전제입니다. 전문가들의 노력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화해 노력은 급한 불을 끄는 소방수 역할에 그친다는 것이죠.김길구 : 화해의 여정은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일상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화해에 관한 기독교적인 매뉴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김현호 : 먼저 화해가 ‘하나님의 선물’ 또는 ‘하나님의 비전’이라는데 주목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동안 우리나라 교회의 갈등과 분열, 그리고 그 해결과정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어떤 때는 편향적이었고, 어떤 때는 극단적이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갈등이 해소되기는커녕 더욱 심화되는 양상을 드러냈습니다.김수성 : 지난번에 이 자리에서 논의했던 ‘슬로처치’가 생각납니다. 화해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일상생활 속에서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변해야 하고, 새로운 창조를 향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과정’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변할 수 없는 사실이라 할 수 있습니다. #화해의 여정은 회개로부터 시작해야김길구 : 이 책의 강점은 사회적 고통을 외면하는 도피처로 전락한 일부 교회뿐 아니라 다른 사회단체나 NGO 활동이 기독교적 화해와 무엇이 다른지를 구체적인 사례를 통하여 제시한다는 점에서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습니다.김현호 : 그런 의미에서 교회의 지도자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화해의 사역에 나서야 합니다. 이 책에서 사례로 제시했듯이 르완다에서 인종 학살이 일어났을 때, 자기가 근무하는 호텔에 피신한 투치 족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그 호텔의 매니저인 폴 루세사바기나가 목숨을 걸고 민병대와 협상하는 모습을 우리도 배워야 할 것입니다.김수성 : 이 책은 근본적으로 인종갈등과 그에 따른 빈부갈등을 기본으로 하여, 화해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경우는 각종 이데올로기에 따른 갈등, 정부 정책과 관련한 갈등이 유독 심각합니다. 교회 내에서조차 입장을 정리할 수 없는 갈등이라 할 수 있습니다.김길구 : 그럴지라도 교회가 방관할 수는 없겠죠. 독일 통일의 씨앗이 되었던 것은 서독 교회연합회의 동독 교회 지원과 그에 따른 청소년 교류 등이었다고 합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화해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물인 ‘새로운 창조’가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겠죠.김현호 : 기독교 선교의 잘못된 비전 중 하나가 과거를 배제한 화해, 값싼 은혜라 할 수 있습니다. 책에서도 언급했듯이 화해를 위해서는 모두가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은혜에 관한 진리를 드러내는 표지이자 누룩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진정한 화해의 여정이 시작될 것입니다.김수성 : 우리나라에서 갈등이 심화되는 근본적인 이유의 하나로 물질만능주의의 팽배를 들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비 성향이 높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빈부격차가 커지고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물질적·심적 여유가 점차 사라짐으로써 갈등이 더욱 첨예화되기도 합니다. ▲ 화해의 길은 멀고 험하다. 그러나 교회 공동체가 하나님의 선물임을 믿고 앞장서 나갈 때, 평화는 새로운 창조로서 이루어질 것이다. 〈그림은 John A. Swanson의 ‘Celebration’〉 #교회는 진정한 평화, ‘샬롬’ 추구해야김길구 : 기독교적인 입장에서의 화해, 여기서 언급하는 평화는 상대적 평화, 소극적 평화가 아니라 절대적인 의미에서 평화, 샬롬(Shalom)을 의미합니다. 전쟁이 잠시 멈춘다고 평화라고 할 수 없고, 억압된 분위기에서 갈등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평화롭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김현호 : 요즘 교회에서는 ‘평화’보다는 ‘평안’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단순한 뉘앙스 차이가 아닌 근본적인 차이로 볼 수도 있습니다. 평안은 상대적이고 소극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현실 만족적입니다. 개역개정판 성경의 ‘평안’이란 단어는 대부분 ‘평화’로 번역해야 할 단어입니다.김수성 : 저널리즘에서는 시민을 속이는 완곡한 표현에 유의하라고 강조합니다. 즉, ‘가격 인상’을 ‘가격 현실화’로, ‘경찰병력 투입’을 ‘공권력 투입’으로 말로 바꿔서 사용하는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기름 저장탱크를 ‘오일농장’이라는 말로 미화했던 기업도 있었습니다.김현호 : 평화의 반대는 폭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갈등도 물리적·언어적 폭력에서 비롯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인간간의 평화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했다는 사실을 신앙고백하는 사람들인 만큼, 우리의 삶의 터전에서부터 화해를 일궈내야 할 것입니다.김수성 :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에 앞장섰던 송강호 박사가 생각나더군요. 밀양과 마찬가지로, 같은 마을주민들이 서로 반목하면서 원수 대하듯 하는 현실이 두렵기만 합니다.김현호 : 송강호 박사는 강정마을에서 평화운동을 하다가 구속되기를 수차례 반복하였는데, 지금은 마을주민들의 화해를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화해의 제자도는 자신을 이처럼 화해의 제물로 드릴 때 성령의 열매들이 나타난다는 점에서, 크리스천들과 교회 지도자들이 세상의 피스메이커로 부르심을 받았음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김길구 : 이 책에서는 화해를 위해 교회 공동체가 나서야 함을 강조합니다.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였지만, 일본에 대한 감정의 골은 깊어만 갑니다. 일본의 한국에 대한 분위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에 대해 우리 교회가 할 일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독일의 사례를 본받아, 한국 교회도 일본 교회를 적극 지원하면서 양국 국민이 화해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다음 달에는 요르그 리거가 쓴 《여행, 관광인가 순례인가》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무더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건강에 더욱 유의하기 바랍니다. [정리: 김수성] ◇ 같이 읽으면 좋은 책《종교의 두 얼굴-평화와 폭력》 / 박충구 / 홍성사《화해와 평화의 좁은 길》 / 홍정길 외 공저 / 홍성사《크리스천의 화해와 일치》 / 오야마 레이지 / 쿰란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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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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