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1-14(수)

문화
Home >  문화

실시간 문화 기사

  • [김양현목사의 영화이야기]아바타 3 불과 재
    감독 : 제임스 카메룬 주연 : 샘 워딩턴(제이크 설리), 조 샐다나(네이티리), 시고니 위버(키리), 스티븐 랭(마일즈 쿼리치), 우나 채플린(바랑), 브리튼 돌턴(로악), 잭 챔피언(마일스 스파이더) 2009년 사람들은 제임스 카메룬 감독이 스크린에 펼쳐놓은 마법 같은 세상에 감탄했다. 영화 제작의 신기원을 이룬 아바타 때문이었다. 아바타는 여러 가지 면에서 신선한 충격이었다. 사람들은 감독이 그려낸 판도라 행성의 모습에 감탄을 연발했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작업했다고 하지만 너무나 화려하고 입체적이고 신비적이었다. 판도라 행성의 공중의 떠 있는 산, 판도라 행성의 각종 동물들에 대한 묘사, 그리고 에이와라 불리는 신과 신성한 나무의 모습들은 우리를 눈부시게 했다. 스토리 또한 신선한 충격이다. 황폐해 져 가는 지구를 떠나 인류는 판도라로 불리는 행성을 발견했다. 이 행성은 지구와 아주 흡사한 환경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생명체가 다양하게 공존하는 것이 지구와 흡사했고, 나비 족으로 불리는 종족이 존재했으며, 풍성한 광물이 존재한다. 인류는 우선 판도라 행성의 풍부한 광물을 이용하기 원하고, 이어 이주를 행성 이주를 계획하고 있다. 이주를 위해서는 한 가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판도라 행성의 대기가 지구와 다르기 때문에 인류는 산소 마스크 없이 숨을 쉴 수가 없다. 유일한 방법은 판도라 행성에 거주하는 나비족과 같은 신체를 갖는 일이다. 이를 위한 노력이 아바타 프로젝트다. 나비족과 동일한 구조의 신체를 만들고 이에 인간의 정신을 연결하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에 전직 해병대원 제이크 설리가 차출된다. 제이크 설리의 형이 아바타 프로젝트의 연구원이었고 그의 DNA를 복제해서 아바타를 만들었으나 판도라 출발 직전에 사망했기 때문이다. 이에 가장 근접한 DNA를 가진 동생이 선발되었다. 제이크 설리는 판도라 행성에 도착하여 아바타의 몸과 연결하여 나비족의 거주지로 이동한다. 원래 목적은 나비족의 언어와 관습을 배우고, 그들의 환심을 사서 나비족을 이주시키고 그들의 주 거주지인 나무의 뿌리 밑 광물을 캐는 일을 위한 투입이었다. 하지만 제이크 설리는 나비족 족장의 딸인 네이티리와 사랑에 빠졌고 점차 나비족의 일원이 된다. 판도라 행성의 기업 관계자는 나비족을 몰아내고 광물 채취를 하는 것이 목적이기에 강제 진압에 나선다. 엄청난 군사 무기들과 용병들을 앞세워 나비족을 향한 총공세에 들어갔다. 제이크 설리는 이 작전의 끔찍함을 인지하고 나비족을 지키기 위해 행동한다. 나비족 뿐 아니라 타 종족까지 불러 모아 인간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역설한다. 결국 제이크 설리와 네이티리, 그리고 나비족은 판도라 행성의 에이와 신의 도움으로 인류를 몰아낸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기업은 다시 판도라로 향한다. 이번에는 더욱 가공할 무기와 물량 공세로 판도라 행성을 공격해 간다. 지난 공격에 실패한 마일스 쿼리치 대령은 이번에는 판도라 행성의 망콴족의 리더 바랑과 연합작전을 펼친다. 망콴족은 판도라 행성의 주변부의 황무지에 거주한다. 그들로서는 나비족을 몰아내고 자신들이 중심지를 차지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이 욕망과 인간의 목적이 동맹을 맺게 했다. 이 연합 공격에 제이크 설리는 다시 맞서 싸운다. 인류학자 클리포드 기어츠는 신화가 우리 삶의 일상에서 형성되지만 일상을 이끌어가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신화는 삶의 반영이자 삶의 추동이다. 신화가 삶을 이끌어 간다. 오늘날은 영화가 그 역할을 한다. 영화는 우리 삶의 현실을 반영하지만 우리가 가야 할 삶의 방향도 만들어 낸다. 제임스 카메룬 감독이 시도한 것이 바로 이런 부분이다. 감독은 지구의 환경 파괴라는 현실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그는 판도라라는 행성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현실에서 지구와 흡사한 다른 은하계로의 행성 간 이동은 사실 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영화는 스크린 위에서 불가능한 일을 가능한 것으로 묘사한다. 감독이 묘사한 이런 설정이 몇 십년 혹 몇 백년 뒤에 가능해 질지도 모른다. 오래 전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21세기 오디세이라는 영화에서 달 여행을 상정했는데 지금 가능한 시점이 되었으니 말이다. 아바타는 현재 인류가 연구중인 피지컬 AI 기술과 흡사하다. 멀지 않아 인류는 로봇의 몸에 인공지능을 탑재한 피지컬 AI를 만들어 낼 것이다. 또한 인류와 아주 흡사한 존재도 가능해 질 것 같다. 제임스 카메룬 감독이 스크린에서 펼쳐 낸 아바타와 같은 존재가 현실에서도 가능할지 모른다. 이렇게 영화는 우리의 현실에서 출발하여 우리가 가야 할 현실로 이끈다. 이 쯤에서 제임스 카메룬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영화의 메시지를 생각해 보자. 감독은 두 가지 차원의 메시지를 영화에 녹여낸다. 우선 그는 과거 유럽인들의 신대륙 침략을 회상한다. 누군가의 말처럼 아바타는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늑대와 춤을’의 우주 버전이다. 과거 백인들은 신대륙을 발견하고 정착했다. 그 과정에 원주민을 몰아내고 몰살하기도 했다. 자연을 파괴하고 무분별한 개발을 했다. 감독이 그려낸 스크린은 우주 공간 판도라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이것은 신대륙 정착의 새로운 버전이다. 오늘날 이루어지는 우주로의 여행, 화성으로의 여행, 소위 테라포밍이 추구하는 것 역시 과거 신대륙의 발견에 다름 아니다. 감독은 이런 침략과 정착 이면에 인간의 무분별한 환경 파괴 행위를 다룬다. 아바타에서 인류는 판도라 행성의 동식물을 무분별하게 불태우고 개발한다. 그런 과정에서 생태계가 신음한다. 판도라 행성의 나무와 식물, 동물 등은 인간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고 하나로 묶여 있다. 나비족은 자연으로부터 에너지를 잠시 빌려와 쓰다 자연으로 돌아간다고 가르친다. 오직 인간만이 자연과 별개로 여기며 대상화하고 타자화해서 파괴한다. 생태계의 파괴는 인류에게 재앙으로 돌아온다. 이제 성경적 묵상으로 연결해 보자. 영화 아바타에서 나비족은 인류를 향해 하늘에서 온 사람들로 묘사한다. 그들이 보기에 우주선을 타고 판도라 행성에 도착했기에 인간은 하늘에서 온 존재다. 제이크 설리는 하늘의 사람으로 판도라 땅에 정착한다. 그는 아바타의 몸으로 나비족으로 들어가며 그들과 거주하며 결국은 그들의 메시야로 세워진다. 예수는 하늘에서 땅으로 온 존재시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과 같이 되셨다. 사람의 몸을 잠시 입으시고 이땅에 태어나고 거주하셨다. 이 땅에 거주하는 동안 사람들의 친구가 되셨고, 외로운 자, 병든 자, 가난한 자와 더불어 먹고 마시며 그들을 고치셨다. 그리고 로마 제국에 맞서 싸우셨고 십자가를 지셨다. 제이크 설리와 오버랩된다. 아니 제이크 설리는 영화에서 그려낸 예수, 메시야와 다름 아니다. 아바타가 기독교인에게 던져진 숙제가 있다. 곧 우리를 둘러싼 자연, 환경은 타자가 아니라 우리와 연합되어 있다는 점이다. 대상화하고 구별화해서 마구잡이로 개발하고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신학적으로 자연도 하나님의 창조의 본질이다. 하나님의 선한 창조물이다. 또한 하나님의 창조 단계에 있어서 인간과 연결선상에 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며 또한 인간을 창조하셨다. 이 세상을 돌보고 가꾸라는 명령을 주시고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세우셨다. 따라서 우리 인간은 최소한의 사용을 해야 하며, 지구라는 환경을 하나님의 선한 창조물로 여겨 잘 가꾸어야 한다. 영화 아바타가 던지는 주제들과 질문들에 응답하는 책임있는 기독교인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 문화
    • 영화
    2026-01-09
  • [김양현목사의 영화이야기]마리아, 마더 오브 지저스(2024)
    감독 : D.J. 카루소 주연 : 노아 코헨(마리아), 이도 타코(요셉), 안소니 홉킨스(헤롯) 성탄, 거룩한 분의 탄생이다. 2천여년전 하나님의 아들은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 우리 가운데 계시면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이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것, 신학적으로 성육신이다. 기독교의 핵심은 이 것에 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것, 즉 가장 높으신 분이 가장 낮아지셨다. 가장 낮아지심으로 낮은 자를 구원하신다. 아타나시우스는 이렇게 표현했다. “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로 오셔서, 사람의 아들들을 하나님의 아들들로 만드셨다. ” 하나님의 아들은 역사적으로 가장 어두울 때 오셨다. 예수님이 태어나실 즈음 세상은 로마라는 제국이 통치하고 있었다. 당시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분열된 로마를 통일했다. 원로원은 그를 신적 존재로 칭송했고, 제국의 시민들은 그를 숭배했다. 아우구스투스는 ‘팍스 로마나’ 즉 로마의 평화를 선언했다. 다시는 전쟁이 없는 상태, 평화의 제국이 세워졌다는 뜻이다. 하지만 로마의 시민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팍스 로마나는 헛된 말에 불과했다. 로마는 강력한 군사력으로 정복 지역을 통치했고, 높은 세금을 부과했다. 강제 부역에도 동원했다. 혹여 로마에 반기를 들면 가차없이 처벌했다. 로마의 지배 하에 살아갔던 피정복국의 사람들은 암흑 그 자체였다. 더욱이 팔레스타인 지역은 로마 황제의 호의를 받은 헤롯이 통치했다. 헤롯은 포악한 왕이었다. 그는 권력에 눈이 멀었고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아들조차 처형할 정도로 잔인했다. 헤롯은 성전을 재건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했고 자신의 왕궁을 건축했다. 당연히 이스라엘 사람들은 온갖 부역에 동원되었고 높은 세금을 내야 했다.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어둠이자 절망 그 자체였다. 바로 이런 시기에 한 줄기 빛이 비취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속하기 위한 일을 하셨다.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야를 보내셨다. 그런데 하나님의 계획은 당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의 기대와 사뭇 달랐다. 하나님은 화려한 왕궁에 속한 자가 아닌, 이름 없는 한 여인을 선택하셨다. 그것도 결혼하지도 않는 처녀를 선택하시고 그녀의 몸을 통해 인류의 구원자가 잉태되고 탄생하게 하셨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D.J. 카루소 감독은 이런 부분을 스크린으로 풀어냈다. 그가 만든 ‘마리아, 마더 오브 지저스’는 마리아라는 여인에게 집중한다. 감독은 성경을 바탕으로 하지만 성경이 말하지 않는 부분을 상상력으로 보완한다. 마리아의 어린 시절을 복원해 낸다. 유년시절의 마리아는 누구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들에게 친절하다. 성전에 갔다가 배고파 구걸하는 사람을 보고는 지나치지 않고 빵을 나누어준다. 이런 행동은 감독의 재구성이지만 충분히 공감이 된다. 그녀의 이런 삶, 즉 하나님을 향한 깊은 기도와 사람을 향한 사랑이 그녀가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하도록 선택받은 이유가 될 것이다. 그녀의 사랑과 자비,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하나님께서 눈여겨 보신 것이다. 이어 영화는 마리아의 순종에 주목한다. 생각해 보면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 선언한 계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남자를 알지 못하는 여성이 아이를 갖게 된다니, 어떻게 이런 일을 믿을 수 있겠으며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또한 마리아가 살던 시대에는 처녀가 결혼하지 않은 채 아이를 갖게 되면 즉시 마을 공동체 앞에 끌려나가 심판받을 가능성이 컸다. 마리아가 살던 갈릴리 지역은 씨족 공동체가 모여 살던 곳이므로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갈 것이다. 즉 그녀는 한 마디 변명도 하지 못한 채 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영화가 보여주는 대로 마리아는 천사의 말에 순종했다. 마리아는 이해할 수 없는 천사의 말에 순종했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네가 성령으로 아들을 잉태하고 낳을 것이며, 그 아들을 예수라 하라고 했을 때 마리아는 즉시 순종했다.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이 순종이 세상을 바꾸었다. 하나님의 아들이 마리아의 신앙 고백을 통해 잉태되었고, 탄생하게 되었다. 이어 영화는 순종의 여인 마리아를 집중해서 보여준다. 마리아는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잉태하는 것에도 전적으로 순종하고, 헤롯의 학살을 피해 애굽으로 피신하는 일에도 순종한다. 자신의 뜻과 계획을 추구하지 않고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에 맡긴다. 이후에 어린 예수님을 키우는 일에도 철저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다. 이어 예수께서 공사역을 하시며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실 때도 그녀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다. 아니 아들이지만 하나님의 메시야이신 예수님의 말씀에도 순종한다. 이런 순종은 그녀가 하나님의 뜻을 존중하고 그 뜻에 헌신함을 보여준다. 바로 이것이 그녀의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다. 그 사랑이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가 이 땅에 오시는 통로가 되었다. 그래서 신학은 전통적으로 그녀를 ‘신을 잉태한 자’(Theotokos)로 존중해 왔다. 이 영화는 마리아 뿐 아니라, 마리아의 부모들, 마리아의 남편 요셉, 그리고 무엇보다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난 예수님까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해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이런 것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다. 사랑은 형용사가 아니라 동사라고 했다. 즉 사랑은 느낌이나 감정을 넘어 행동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때 우리의 감정이나 느낌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에 절대적으로 순종하신 분은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의 삶은 순종 그 자체셨다. 그 분은 십자가를 지셔야 할 상황 앞에서도 이렇게 기도하셨다. “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 예수님의 이런 순종은 누구에게 배웠을까? 물론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하나님에게 순종한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인간으로 살아가셨던 예수님은 어린 시절 어머니 마리아에게서 이러한 순종의 삶을 배우셨음에 틀림없다. 역사적으로 가장 암흑의 시기에 순종의 여인을 통해 구원자가 오셨다.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믿음으로 반응한 여인을 통해 세상에 구원이 이루어졌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순종이 아닐까? 어떻게 보면 2천년전처럼 오늘 우리 사회도 어둡기는 마찬가지다. 소망이 점점 사라지고 분열과 대립이 가득하다. 교회는 그 어느때보다 세상으로부터 질타와 비난을 받고 있다. 그러하기에 오늘 마리아와 같은 순종의 사람이 필요하다. 어둠을 다시 비출 사람, 세상에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 하나님의 구원과 회복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드릴 수 있는 사람, 그 한 사람 순종의 사람이 바로 나이길 간절히 소망한다.
    • 문화
    • 영화
    2025-12-19
  • [기독교인문학]“작은 교회가 아름답다!”
    재편, 건강한 작은 교회의 꿈! “교회 대형화에 따른 신학적, 윤리적 타락의 반작용으로 건강한 교회 회복을 위해 가정교회, 이머징처치, 미셔널처치 등 새로운 교회 운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들이 꿈꾸는 건강한 작은 교회의 핵심가치는 성경적 공동체, 일상의 제자도, 민주적 운영, 공공의 공공성, 거룩한 공교회성의 회복이다.” ■ 하나님이 주인 되시는 김길구 「강북제일교회」 (이상대 목사)는 아파트 단지 내 교회로 250여 명까지 늘었던 교회가 내부 문제로 목사가 갑작스레 사임하고 후임인 이 목사가 부임하고 보니 남은 교인은 30여 명에 불과하고, 교회의 재건을 위해 특정 개인의 생각, 경험, 비전에 좌우되지 않는 하나님이 주인이 되는 교회를 만드는 것이 시급한 과제가 되었죠. 류지원 교회의 사유화, 세습, 교회매매 등의 악습을 없애기 위해 공동체적이고 민주적인 운영을 위한 정관을 만들고, 교인이 120명이 넘으면 분립개척을 준비하고 150명이 되면 실행토록 하고, 관행처럼 이어온 선거 잡음이 없도록 임직 헌금, 선거운동, 결과에 불복하는 3무 캠페인 을 실시했어요. 김현호 사람을 늘이기 위한 프로그램이나 행사를 없애고 성경공부를 통한 전도와 선교적 삶을 일상에서 실천케 했다고 해요. 어려운 일이죠. 우리는 너무나 쉽게 큰 교회도 건강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말 뒤에는 큰 교회를 지향하는 우리들의 욕망이 숨어 있어요. ■ 상처 입은, 다시 배우는, 다시 써 내려가는 류지원 「그십자가교회」 (손영국 목사) 위 슬로건은 부교역자 시절 교회의 내분을 거치며 겪은 아픈 경험을 통해 깨달은 교회란 건물이 아닌 사람 중심의 교회공동체로 선교적교회 모델을 따르게 된 과정을 표현한 것 같아요. 김현호 전통적 예배모임과 헌금제도를 성경적으로 바꾸고 가족이 교회 되는 공동체성을 회복하기 위해 세대 통합예배를 드리며, 젊은 세대에 맞는 경배와 찬양, 개인적 영성을 세우고 나누는 큐티푸드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김길구 특이한 것은 마을 이장으로서 이웃과의 소통을 위해 예배당이자 도서관인 작은 도서관을 개설하여 마을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열린 공간으로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전개하고 있어요. 지역의 단체들과 함께 활발한 사회적 활동과 교회갱신을 위한 작은교회운동에도 열심히 참여하고 있어요. ■ 알콩달콩 으랏차차 김길구 「나무교회」(홍선경 목사)는 여성이죠. 클래식 음악 전문 잡지 ‘음악춘추’에 근무한 이력답게 감성이 풍부한 목회자입니다. 남성의 가부장적 리더십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섬세하고 수평적이며 경청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탁월한 것 같아요. 나무를 주제로 50페이지에 달하는 그의 목회 얘기를 풀어내는 글솜씨와 목회현장에서 일어나는 애환을 ‘알콩달콩 으랏차차’ 단 두 단어로 표현하는 감정의 섬세함이 돋보이는 리더라는 생각이 드네요. 김현호 그 예로 ‘나무에게 부탁했네, 하나님에 대해 얘기해 달라고, 그러자 나무는 꽃을 피웠네’-타고르. … 쉼이 필요한 그대, 숨 쉬고 싶은 그대,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소개합니다.- 타고르의 시를 인용한 나무교회의 전도지 문구들입니다. 여성 특유의 감성이 목회 전반에 촉촉이 배어있는 감성 목회를 해서 교계의 가부장적 문화와 확실히 차별화돼요. 류지원 주중에 1명, 혹은 2명, 많으면 4명이 목회자와 함께 주중 모임을 갖는데 직장 때문에 주일 예배를 못 드리는 교우를 위한 것이죠.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작은 교회의 장점이겠죠. 책과 영화, 특강 등을 통해 세상을 만나고 시대를 만나는 시간도 가져 다양한 접촉점을 통해 소통을 이어 간다고 합니다. ■ 말씀이면 충분한 김현호 「말씀의빛교회」(윤용 목사)는 학원을 운영하다 전임목사가 된 경우예요. 2002년 ‘교회개혁실천연대’ 출범시 집행위원으로 정관 갖기 운동과 성직자 과세운동 등에 관심이 많던 그는 목회현장에 적용, 운영위원회 5명 중 여성 2명을 두는 등 민주적으로 운영하고 있고요, ‘오산시 한 지붕 두 목회자’로 한 건물에 두 교회가 사이좋게 지내는 기사가 언론을 타기도 했어요. 류지원 슬로건 답게 성경을 교인들이 스스로 읽고 이해하고 실천하게 하는데 중점을 줘요. 6년 동안 성경 전체를 묵상할 수 있는 성서유니온의 <매일성서>를 채택, 주일예배 설교는 물론 주일예배 후의 소그룹 모임, 주중 기도회와 심방 설교에서도 활용함으로써 말씀의 흐름을 일관성 있게 유지합니다. 김길구 봉사도 전문사역단체와 연대 전문화하되 단순화해요. 도움이 필요한 청소년과 어른 멘토를 1:1로 연결하는 멘토링 사역을 17년간 펼친 (사)러빙핸즈와 협력하여 ‘초록리본도서관’을 개관하고, 도서관을 준비하면서 또 다른 단체인 ‘청소년부모지원 킹메이커’와 청소년시절에 임신과 출산을 경험한 이들을 지원하는 사업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 건강한 작은교회를 꿈꾸며 김길구 「세나무교회」(이진오 목사) ‘나는 작은 교회를 주장하지 않고, 건강한 작은 교회를 지향한다’며 프랜차이즈화된 한국교회를 건강한 작은 교회로 재편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책으로 알려진 그는 기윤실의 사무처장을 등 기독교NGO 출신으로 현재 ‘건강한작은교회동역센터’ 공동대표이기도 합니다. 김현호 쉼과 환대가 있는 공동체를 이루고, 스스로 성경을 읽고 따르는 신자가 이웃과 함께하는 하나님나라를 이루는 것이 비전입니다. 교회보다 도서관을 먼저 만들고, 청장년 3백명이 넘지 않도록 하여 교회가 커지면 분립하는 규약을 만들어 혁신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류지원 교회의 민주적 운영도 돋보입니다. ‘한국독립교회선교단체회’(CAICAM)에 교회 등록을 한 뒤 교인들의 주도로 운영위원회를 구성하고 새로 설립한 교회임에도 자신이 먼저 교회규칙대로 선임 절차를 밟고 초빙된 후 업무협약을 통하여 6년 임기를 시작함으로써 교회 운영의 투명성을 높혔습니다. ■ 노인대학이던 교회이야기 김길구 「청운교회」(임병열 목사)는 전임목사가 교인들의 약속헌금을 믿고 건축을 진행하는 가운데 부담을 느낀 교인들이 하나 둘 떠나고 마지막에는 30여 명만 남는 먹먹한 얘기와 완공 후 남는 공간의 활용을 고민하다 30여 교인들이 자원봉사자가 되어 2백 명의 노인대학 어르신을 섬기는 얘기, 매리츠와 코로나 사태 때의 좌절과 극복하는 과정을 통하여 느끼는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의 감동이 이 책에 담겨있어요. 류지원 책 말미에 노인대학의 진로에 대하여 고민하는 부분이 있어요. 노인대학은 한국교회가 개발한 프로그램으로 이제는 일반화 되었고, 어르신에 대한 고립감을 해소하고 세대를 통합시키며, 교회의 지역 섬김과 사회적 신뢰 형성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점차 정부주도의 사회복지가 보편화 되면서 비중도 줄어드는 추세로 규모가 작은 교회에서는 재정적 요인도 부담이 되겠죠. 김현호 대형교회의 식당 운영도 자원봉사자가 적어 폐지하는 곳도 생기고 있는데, 본문에 ‘노인대학은 남은 힘으로 감당하는 것이 아니다. 전력을 다해서 하는 일이고 남겨둘 힘 따위는 없다’는 대목에 이르면 결기가 느껴지기도 해요. 서로 상생의 해법을 찾아야겠죠. ■ 함께하는 교회 이야기 류지원 「함께하는 교회」(박창렬 목사)를 만들려면 성도 간의 원활한 소통과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소외가 없도록 민주적이고 투명한 환경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도입한 것이 계급장 떼고 목회자 외에는 호칭에 ‘씨’를 붙이게 하고 재정은 카카오 모임통장을 개설 공개토록 했어요. 김길구 이 교회는 간판도 전용공간도 없이 주일만 학원을 빌려 예배를 드려요. 전용공간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는데 재정적인 이유만이 아니라 공간이 필수라는 생각은 아니라고 해요. 또 하나의 특징은 한 달에 한 번씩 성찬식을 하고, 통합교단인데 개역개정 대신 읽기 편한 새번역성경을 쓴다고 해요. 김현호 박목사는 20대부터 신장이 안 좋아 이식수술을 받은 내부장기 장애인이라고 해요. 그런 연유인지 소외된 이들을 혐오하거나 포장하여 보는 것 모두를 차별이라 생각하고 예수처럼 배제 없는 사회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정리 김길구】 이상대 목사 외 6인 《 건작동 7교회 이야기 》 올 6월 돌아가신 신학자 월터브루그만의 대표작 ‘예언자의 상상력’이 절실한 이때 그 해법이 ‘건강한 작은교회’라고 주장하는 7교회의 알콩달콩한 목회 얘기를 담은 본서는 그동안 더 크고 높고 많은 것을 쫓던 한국 교계에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이 위기의 시기에 언감생심 개척이라니~ 이 책은 크지 못해 작은 교회가 아닌 지향성의 차이에서 오는 성경적 공동체, 일상의 제자도, 민주적 운영, 공의의 공공성, 거룩한 공교회성의 핵심적 가치를 공유하는 ‘건강한작은교회동역센터(건작동)’ 멤버들의 7인 7색의 육필 개척교회 체험기이다. 급변하는 이때 저 멀리 떨어진 섬 갈라파고스처럼 점차 고립되어 가는 한국교회에 이 작은 교회 운동이 희망의 불씨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 유쾌한 반란에 격려를 보낸다. ◇ 저자소개 건작동 이상대 목사외 6인 공저∥ 이 책은 건작동 소속 7인의 목사들이 공저자로 참여했다. 이들은 전국에 흩어져 있는 ‘건강한작은교회동역센터’(줄여서 전작동) 소속 멤버들이다. 이 책은 그 흔한 저자들의 학력이나 경력에 대한 프로필이 없다. 찾아보면 한 사람 한 사람 다 한 가닥 하는 분들인데~ 그들에겐 아름다운 건강한 작은 교회를 꿈꾸며 기도와 고심 끝에 지었을 사랑하는 교회 이름과 사역자 이름 석자 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서다. 경기도 양주-강북제일교회(이상대 목사), 경기도 광주-그십자가교회(손연국 목사), 서울 태능-나무교회(홍선경 목사), 경기도 오산-말씀의빛교회(윤용 목사), 인천 논현동-세나무 교회(이진오 목사), 부산 덕천-청운교회(임병열 목사), 대구 범어동-함께하는교회(박창렬 목사)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재편》 이진오 / 비아토르 / 2017 《작은교회운동》 양민철외 30인 지음 / 동연 / 2024 《예언자적 상상력》 월터 브루크만 / 복있는 사람 / 2015
    • 문화
    • 기독교인문학
    2025-11-21
  • [영화]얼굴(2025)
    감독 : 연상호 출연 : 박정민(임동환), 권해효(임영규), 신현빈(정영희), 한지현(김수진) 기독교인이 가지고 있는 거대한 착각 혹은 착시가 있다. 바로 예수님의 얼굴이다. 성화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얼굴은 다 가짜다. 16세기 이후 유럽인들이 르네상스 시대에 자신들의 이상향을 그린 것이다. 실제로 예수님은 1세기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태어나시고 자라셨다. 게다가 그 분은 목수의 일을 하셨다. 그러니 얼굴은 검게 그을렸을 테고 손은 고된 노동으로 거칠었을 것이다. 오죽 하면 바리새파 사람들이 논쟁하던 중 "네가 오십이 안 되었는데 아브라함보다 먼저 있었냐?"고 했겠는가? 이사야서는 이렇게 예언했다.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그는 주 앞에서 자라 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예수님은 볼 품이 없으셨다.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지 않으셨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버림 받고 외면 당하셨다. 사람들이 그 분을 외면한 이유는 자신들보다 더 아름답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스-로마의 신들은 아름답고 우람하다. 로마의 황제들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황제를 숭배하고 따랐던 이유는 자신들보다 뛰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렇지 않으셨던 것 같다. 그 분은 욕망하고 따를 외모가 아니셨다. 예수님은 올바른 말씀을 하셨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욕망을 드러내셨다. 위선을 드러내셨다. 사람들이 교묘하게 감추고 있던 마음 속 깊은 욕망을 폭로하셨다. 사람들은 부끄러워 하고 회개하는 대신 폭로자를 제거하려 했다. 진실을 마주하려 하지 않는 게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그 분이 가르친 내용은 본능과 상반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외면 당하셨다. 연상호 감독의 의도는 분명하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욕망을 얼굴 뒤에 감추고 산다. 사람들은 잘 생긴 얼굴을 추앙하고 권력이 있는 자들을 욕망한다. 자신들이 되고 싶은 바를 그들에게 투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실은 그 얼굴 너머에 있다. 사람들이 보고 있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 겉모습이다. 자신들의 욕망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주인공 영규의 독백이 흐른다. "사람들이 착각하는 데 앞을 못 보는 사람도 아름다운 게 무엇인지 알 수 있어." 시각장애인인 영규는 평생 도장을 새겼다. 도장 전각의 장인이 되었다. 그가 입버릇 처럼 말하듯 자신이 누구보다 아름다운 것을 알고 있다. 그의 작품이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그는 손으로 아름다움을 창조한다.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분명하다. 시각 장애를 가지고 있는 영규는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외면 당하지만 그 조차 자신의 욕망에는 인정 받고 아름다워지고 싶었던 것이다. 반면 오래전에 실종된 아내 영희는 얼굴이 없다. 40년 만에 아파트 공사장에서 유골로 나타난 영희는 얼굴이 없다. 장례식을 치르지만 영정 사진이 없다. 그녀는 얼굴이 없다. 영희를 알고 지냈던 사람들은 한결같이 증언한다. "너무 못 생겼었어." "추했지. 정말 그렇게 생긴 사람이 있었을까?" 사람들이 기억하는 영희는 못난 존재다. 자신들이 함부로 할 수 있는 존재다. 적어도 영희보다는 나은 존재라는 자기 만족을 줄 수 있는 존재였다. 영규가 영희를 선택한 이유도 여기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규를 무시했지만 영희는 그를 인정해 주었다. 영규는 영희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우위에 있다. 영희 앞에서는 자신이 더 낫다는 우월감을 가질 수 있었다. 영규가 생각할 때에 영희는 자신보다 더 못난 존재였고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여자였다. 문제가 생겼다. 영희는 진실을 말하는 여자라는 점이다. 자신이 본 것을 감출 수 없는 사람 이었다. 그녀는 어릴 때 아버지가 다른 여자랑 한 방에서 바람 피우는 것을 목격했다. 어린 영희가 볼 때 분명히 잘못된 일이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사실을 말했지만 그녀에게 돌아 온 것은 침묵 강요와 아버지의 매질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집을 나갔다. 집을 나간 후 피복 공장에 작업보조로 취직했다. 공장 사람들은 모두 영희를 우습게 여기고 놀려댔다. 하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는다. 그러다 사장이 재단사 여성을 성추행하는 일이 벌어진다. 영희는 이 사실을 항의하러 사장 방에 들린다. 하지만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침묵 강요와 해고 협박이었다. 영희는 이에 굴하지 않고 사장의 불륜을 폭로한다. 그 대가는? 오히려 성폭행 당한 당사자인 재단사가 영희의 뺨을 때리며 분노를 퍼붓는다. "네가 뭔데? 네 까짓게 뭔데?" 그렇게 영희는 사람들에게서, 공장에서 추방당한다. 추방 당할 뿐 아니라 멸시 받고 제거당 한다. 피해자들이 기분 나빴던 이유는 영희가 진실을 말할 때 자신들보다 영희가 더 돋보였기 때문이다. 자신은 아무 말 하지 못하는데 나보다 못난 영희는 용기있게 진실을 말한다. 그게 더 기분 나빴다. 나보다 못나야 하는데, 아무 말 하지 않고 있어야 하는데 그녀가 진실을 말한다. 그래서 더 미움받았다. 유일하게 자신이 편을 들어줄 것으로 기대했던 남편 영규에게도 그녀는 버림 받는다. 시각 장애인 영규는 분노하며 말한다. "내가 모를 줄 알아? 너가 못 났다는 것을 모를 줄 알아? 알지만 결혼한거야. 그러니 조용히 지내라고. 응?" 영규가 폭발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영희는 나보다 더 못난 존재여야 하고 아무 말 하지 않아야 하는 존재여야 한다. 그런데 그녀가 진실 앞에서 용기를 가진다. 영규의 분노가 치미는 지점이다. 영화는 욕망의 민낯을 폭로한다. 소위 잘 난 사람들, 돈 있는 사람들, 권력있는 사람들의 위선을 폭로한다. 아니 그들을 욕망하는 못 난 사람들의 위선도 말이다. 오로지 영희만이 진실을 드러내고 세상을 바로 보는 존재다. 그래서 그녀는 사람들에게 버림 받는다. 영화를 보는 내내 예수님이 오버랩되었다. 예수님이 버림 받은 이유는 그들의 욕망에 어긋났기 때문일 것이다. 제자들조차 예수님을 통해 자신들의 욕망과 기대를 이루고자 했다. 그 욕망과 기대가 허물어지자 모두 버려두고 도망갔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자신의 작품들에 유로지비를 등장시킨다. 못난 사람, 천대받는 사람, 사회의 가장 밑바닥 사람 말이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진실을 가지고 있다. 라스콜리니코프로 하여금 진실을 마주하게 한 소냐처럼. 백치의 미쉬킨 처럼. 이제 우리의 민낯을 마주할 때다. 번지르한 얼굴 뒤의 진실을 마주할 차례다. 우리의 욕망을 투사한 예수가 아니라 실제의 예수를 마주할 때다. 나의 얼굴은 누구인가? 누구를 드러 내는가? 욕망을 내려놓고 진짜 예수님의 얼굴을 본 받을 준비가 되었는가? 그 분처럼 진실을 폭로함으로 버림 받을 용기가 있는가? 그 분 앞에서 당신의 얼굴은 어떠한가?
    • 문화
    • 영화
    2025-10-24
  • [기독교인문학]"차별과 혐오의 시대,「환대의 신학」절실”
    환대(philoxenia)= 사랑 + 나그네의 합성어 “나그네에 대한 사랑 즉 환대는 지난 2,000여 년 동안 기독교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어였습니다. 복음이 세계 곳곳으로 전파되는 과정에서 환대가 없었다면 교회는 새로운 종교를 경계하던 이방 땅에서 뿌리내리기 힘들었을 겁니다. 교회는 낯설다 못해 때론 적대적이기까지 했던 환경에서 오히려 타자를 환대하며 교회됨의 의미를 몸소 보여 주었습니다.” 왜 지금 《환대의 신학》인가? 김길구 최근 서울 도심가에서 한류의 붐을 타고 방문한 중국 여행객들을 상대로 혐중 시위가 고조되고 있어 모처럼 되살아나던 한류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대두되고 있어 당국이 단속에 나선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미국 조지아 주에 짓고 있는 현대와 LG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 450명 불법노동자 중 300여 명이 체포, 구금, 귀국한 굴욕적인 사건도 있었습니다. 지구촌 시대 상호 배려가 아쉬운 대목입니다. 이번 호에는 김진혁의 《환대의 신학》을 통해 기독교인들이 가져야 할 타인에 대한 환대의 신학적 의미를 되새겨 보는 시간을 가져 보겠습니다. 김현호 우리는 기독교의 정수교리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고 알고 있지요. 저자는 랍비 조너선 색스의 말을 인용. 히브리 성경에 보면 ‘이웃 사랑’을 단 한 번 언급하는데 비해 ‘나그네를 사랑하라’는 말은 서른여섯 번이나 명령했다며 헬라어로 나그네(χenos)와 사랑(philia)의 합성어인 ‘환대(philoxenia)’가 기독교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어라고 주장합니다. 류지원 신명기 26:5에 보면은 ‘내 조상은 방랑하는 아람 사람’으로 떠돌며 사는 나그네였다고 술회합니다. 구약을 이러한 ‘나그네들이’ 한 국가를 만들어 가는 여정의 기록으로 본다면 나그네란 의미는 히브리민족의 정체성 형성에 중요한 개념임이 분명합니다. 환대는 기독교의 핵심 사상 김길구 저자는 다문화 주의, 이주민 정착, 난민 수용, 빈자 구제 문제 등에 대해 각국이 법과 제도는 정교해지는 반면 우리가 체감하는 사회적 갈등과 폭력이 우려되는 현실에서 어떻게 사랑을 실천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환대’ 라는 개념의 프리즘을 통하여 신학적 모색을 시도하고 있어 주목됩니다. 류지원 들어가기에 앞서 세계의 첨예화 된 이념의 블록화와 더불어 트럼프 2기의 출범과 함께 최근 미국의 지도자 찰리 커크의 암살로 이 문제가 더욱 격화되고 있어 이 책이 시사하는 바가 많아요. 이 책에서 말하는 환대의 개념이 이웃 사랑의 실천 같은 개념과 어떻게 다른지 알아보죠. 김현호 이 책 뒤 각주에 있는 ‘환대’와 다른 입장 차이를 요약한 글이 있는데 저자가 말하는 환대의 개념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환대는 타인이 머물고 자신을 드러낼 공간을 마련해 주기에 배제, 차별과 다르다. 주체가 아니라 타자를 우선시하는 만큼 동화, 관용과도 구별된다. 상대를 포용하면서도 나와 너 모두가 변화할 가능성에 열려 있기에 인정과도 차이가 있다” 삼위일체로서의 환대 김길구 저자가 주장하는 환대신학이 기존 환대와 다른 점은 환대가 사회적 명령이거나 윤리의 실천이 아니라 기독교의 하나님은 성부와 성자, 성령의 위격이 서로 구별 되지만 완전히 하나로 계신다는 삼위일체의 신비의 관계의 ‘페리코레시스’-상호 내주 즉 서로 받아들이고 내어주는 궁극적 환대의 모습으로 하나님 존재 자체가 환대라는 것으로 성부 하나님은 사랑과 교제에서 흘러나오는 본질적인 신학적 행위로 나그네 된 우리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김현호 성자이신 예수의 환대는 죄인, 세리, 이방인과 함께 식사하며 기존 사회•종교적 경계를 허무셨을 뿐 아니라 십자가의 고난으로 원수까지 품어주는 환대의 극치를 보이셨다는 것이죠. 류지원 바울과 초대교회의 환대는 가정교회 식탁에서의 평등으로 유대인과 이방인의 화해, 새로운 인간 공동체의 지향이 환대의 실천으로 나타났으며, 이같이 성령은 지금도 교회와 세상 안에서 이 환대의 능력을 확장시킨다는 것입니다. 환대는 수단이 아닌 복음의 본질로 교회의 본질도 환대의 모습으로 구현되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환대의 한계와 경계 김길구 환대가 중요하기는 한데 막상 하려고 하면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한계에 부딪히게 됩니다. 현실적으로 사역을 수행할 사역자들, 타인을 영접하고 대접할 공간의 문제, 운영할 재정적 한계, 그리고 물리적 자원의 부족 등을 들 수 있겠지요. 김현호 말씀 선포와 환대 사이의 긴장도 문제가 돼죠. 교회의 기능을 말씀 선포와 성도의 교제 등으로 좁게 보는 교회는 환대 자체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일이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환대의 공동체라는 견해에 쉽게 수긍하기 어려운 측면도 간과해선 안 돼요. 물론 이 문제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지만… 류지원 그 외에도 교회의 불법 이민자 지원의 사례로 본 국가의 법과 교회의 환대 사이의 갈등, 행15:16-17에 나오는 구약 율법의 급진적 재해석으로 본 말씀과 말씀 사이의 간극에 대한 초대교회 사례 등 다양한 사례가 소개되고 있어요. 본문 속으로~ 김길구 저자의 생생한 주장을 본문을 통해 들어보죠. (환대의 한계와 경계 中에서) 교회를 “복음이 올바로 선포되고 성례가 올바로 집례되는 성도의 교제”로 정의하는 종교개혁 신학에 따르면 환대를 설교처럼 본질적 사명이라고 간주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성경에 따르면 환대 자체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일이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환대의 공동체이며, 이웃사랑은 구약과 신약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명령입니다. <206p> 김현호 (타인을 향한 무한한 책임 中에서) 타인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책임이 일어나는 궁극적 근원은 성경의 계명도 아니고, 타자의 얼굴도 아니며, ‘우리를 위한’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자기를 버리는 사랑으로 인하여…무죄성을 벗어던지고 인간의 죄 속으로 들어와 친히 그 죄를 짊어”지셨습니다. ‘죄 없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죄 있는 자’가 되셨다면, ‘죄 용서 받은’ 그리스도인도 타인을 위한 무한한 책임을 지려는 ‘죄 있는 자’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본회퍼의 윤리학을 인용하면서-<227p> 류지원 (비관주의와 이상주의 사이에서) 종말에 이르기 전까지는 폭력의 질서와 환대의 질서가 세상에 공존하며 갈등을 일으킬 것입니다. 이런 현실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는 환대를 가로막는 장애물을 단번에 ‘날리는’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령은 불확실함과 긴장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는 환대를 가로막는 장애물을 단번에 ‘날리는’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령은 불확실함과 긴장 가운데서 우리가 ‘슬픔 대신 기쁨’을 누리고 ‘근심 대신 찬송’을 하도록 희망을 일구는 방법으로 일하십니다.<242p> 김길구 독서의 계절 가을입니다. 그 뜨겁던 한 여름의 뙤약볕도 자연의 순리를 마냥 거슬릴 수 없는 모양입니다. 삶의 자리에서 타인에 대한 환대를 하다가 상처 입은 그리스도인에게 이 책은 많은 위로를 줍니다. 이 가을, 사랑의 종교인 기독교가 사회적으로 혐오와 배제의 종교로 여겨지는 최근의 상황 속에서 한국교회에 던지는 사랑의 메시지인 김진혁의 《환대의 신학》을 통하여 교회 본연의 모습을 되찾고 희망을 노래하는 계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김길구】 김 진 혁 의 《 환대의 신학 》 히브리 성경을 보면 나그네에 대한 사랑이 이웃 사랑보다 더 많이 언급되고 있다. 저자는 이웃을 사랑하기도 벅찬 우리들에게 떠돌이를 사랑-즉 환대하라고 말한다. 환대는 도덕적 행위 이상의 의미로 기독교의 본질이 환대이기 때문이다. 삼위일체론에 기반한 ‘환대 신학’은 성부 하나님은 사랑과 교제에서 비롯된 환대가 본질이며, 성자 예수는 죄인, 세리, 이방인과 함께 차별 없이 사회·종교적 경계를 허물고 십자가를 통하여 환대의 극치를 보여 주었고, 바울과 초대교회는 가정교회 식탁을 통해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 없는 평등한 공동체를 만듦으로써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 잔치를 미리 맛보는 환대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지구촌이 하나가 될 것이라는 허상이 깨어진 지금, 각자생존을 위한 차별과 혐오가 만연한 사회와 교회에 던지는 사랑의 메시지. ◇ 저자소개 김진혁 ∥ 현재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철학, 윤리를 가르치고 있다. 연세대학교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하버드대학교에서 목회학 석사,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철학 박사 학위.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에큐메니칼 연구소 연구원 및 영국 런던 대학교 헤이스롭 칼리지 박사 후 연구원과 C.S. 루이스 연구소 상주 연구원을 역임하였다. 기도의 신학, 미학적 신학 등 종교와 문학, 현대 신학과 정치신학 등의 주제에 관심을 갔고 강연과 저술 활동으로 대중과 소통 중이다. ◇ 저 서 ∥ 《순전한 그리스도》(IVP), 《신학의 영토》(비아), 《질문하는 신학》, 《우리가 믿는 것들에 대하여》와 《예술신학 톺아보기》(공저) 등 다수가 있다.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공정한 환대》 레티. M. 러셀 / 대한기독교서회 / 2012 《사람 장소 환대》 김현경 / 문학과 지성사 / 2015 《환대와 구원》 조슈아 W. 집/ 새물결플러스 / 2019
    • 문화
    • 기독교인문학
    2025-09-26
  • [영화]좀비딸(2025)
    감독 : 필감성 출연 : 조정석(이정환), 최유리(이수아), 이정은(김밤순), 조여정(신연화), 윤경호(조동배) 어느날 자고 일어났더니 세상이 엉망이 되어 버렸다. 정환은 어느 아침과 마찬가지로 아침밥을 차리고 자고 있는 딸 수아를 깨운다. 수아에게 아침밥을 먹이고 출근을 하려는데 거실 창에 옆집 아주머니가 다가온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괴상한 몸짓을 하고, 이상한 소리를 내고, 급기야 유리창을 깨고 집에 들어오려 한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텔레비전을 트니 속보가 뜬다. ‘서울에 좀비 바이러스가 출몰해서 사람들이 좀비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상황을 파악한 정환은 딸 수아와 같이 도시를 벗어나기 위한 탈출작전을 감행한다. 그런데 쉽지 않다. 이미 정환의 아파트는 좀비들로 가득하고 그들은 정상인을 물어뜯기 위해 접근해 온다. 방법은 한 가지 뿐, 정환은 수아를 기둥 뒤에 숨어 있게 하고 요리조리 피해서 자동차에 시동을 걸었다. 수아에게 가까스로 접근한 정환은 얼른 타라고 하고는 구사일생으로 아파트 촌을 벗어난다. 이제 안심이다. 한 숨 돌리는 순간 옆 좌석에 타고 있는 딸 수아의 표정이 이상하다. 얼굴에 핏줄이 서 있고, 눈은 충혈되어 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괴성을 지른다. 큰 일이다. 수아도 좀비에게 물린 것이다. 정환은 우선 갓길에 차를 정차하고 안전벨트로 수아의 몸을 단단히 묶었다. 머리에는 옷을 휘감아 공격하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딸을 어떻게 해야 할까? 정환은 혼동에 사로잡힌다. 딸을 살려두자니 자신도 위험하고, 그렇다고 딸을 버리고 죽일수도 없다. 우선 정환은 어머니가 사는 한적한 시골 마을로 좀비딸이 되어버린 수아와 대피를 한다. 어머니 집에 숨어 지내던 정환은 두 가지 소식을 듣게 된다. 우선 국가 계엄령이 내려서 좀비가 된 자들을 모두 사살하고 있다는 끔찍한 소식이다. 또한 좀비를 숨겨주거나 신고하지 않는 자들도 처벌을 받게 된다고 한다. 아무리 한적한 시골이지만 결국은 들키고 말텐데 정환의 걱정이 커진다. 반면 반가운 소식도 듣는다. 어릴 적 동네 친구인 동배는 약사인데 미국에서 좀비 바이러스를 물리칠 백신을 개발중인데, 자신은 그 제약회사의 주식을 산다고 한다. 정환에게 희소식이다. 어쨌든 백신 개발 때까지만 수아를 감추고 있으면 된다. 좀비가 되어버린 딸 수아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존재가 또 있다. 바로 정환의 어머니이자 수아의 할머니 밤순이다. 할머니는 손녀가 이상한 모습으로 변해도 개의치 않는다. 여전히 할머니에게는 귀여운 내 새끼다. 이어지는 장면들은 정환과 밤순이 수아를 길들여 가는 과정을 유쾌하게 그린다. 동물원에서 사자를 사육하는 일을 했던 정환이기에 좀비가 되어있는 수아를 맹수 조련하듯이 길들여 간다. 그런데 이게 제법 성공적으로 먹힌다. 그러던 중 정환은 새로운 소식을 접하게 되는데, 좀비가 되어가는 사람이 기억력을 가지게 되면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부터 정환은 수아의 기억력을 살리기 위해 온갖 일을 한다. 우선 수아가 좋아했던 추러스를 사 온다. 하지만 실패. 그런데 할머니가 막창구이를 해 주니 수아가 걸신처럼 먹어댄다. 어릴 적 할머니가 해 준 그 맛을 본능적으로 기억해 낸 것이다. 정환은 수아가 좀비가 되기 전 보아의 노래를 좋아하고 보아의 춤을 따라했던 것이 생각 났다. 그래서일까. 정환은 수아를 의자에 묶어 놓고 그 앞에서 보아의 춤을 시현한다. 보아의 노래를 틀어 놓고 보아의 춤을 춰서 수아의 기억력이 되살아 나게 하려는 시도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나. 보아의 음악에 수아도 고개를 끄덕이며 조금씩 반응한다. 하지만 이들에게 생각지 못한 복병이 등장한다. 정환의 첫사랑 연화다. 연화는 선생님이 되었는데 고향 학교로 전근을 왔다. 마침 정환이 딸과 함께 고향으로 왔다는 말을 듣고 집으로 찾아온다. 정환은 수아를 적극적으로 감추려 하지만, 결국 연화에게 좀비가 된 수아의 존재를 들키게 된다. 연화는 당장 수아를 내쫓으로 한다. 만약 신고하지 않으면 자신이 신고할 것이라 협박한다. 연화가 그러는 데는 이유가 있다. 자신의 남편이 좀비로 변했고, 좀비가 된 남편은 자신을 물어 뜯으려 했다. 그 순간 연화는 좀비가 되어 버린 남편을 죽여버렸다. 그리고 좀비는 인간이 아니기에 없애버려야 한다고 자신을 정당화했다. 그래서 정환의 딸 수아도 사람이 아니라 좀비에 불과하다며 내 쫓던지 없애든지 하라고 몰아붙인다. 영화의 이야기는 이렇게 전개된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신학적 사유를 하게 되었다. 우선 좀비 바이러스의 출현과 그에 감염된 상황인데, 죄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인류가 오버랩되었다. 그렇다. 태초에 인류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완벽했다. 하나님은 인간을 자신의 형상으로 만드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하셨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형상이었다. 아담은 하와를 향해 “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 ” 이라 고백한다. 하지만 죄라는 바이러스가 하와에게 들어왔고, 이내 아담도 동참하게 된다. 하나님이 금지하신 금단의 열매를 먹고 죄가 하와와 아담에게 들어왔다. 그 순간 죄 바이러스는 아담과 하와를 변질시켰고, 그들은 서로를 수치심으로 보게 된다. 낙원에서 추방된 아담과 하와는 아들들을 낳았다. 하지만 첫째 아들 가인은 둘째이자 동생인 아벨을 질투해서 죽인다. 죄가 모든 것을 망쳐버린다. 얼마 후 라멕이라는 자는 오히려 죄를 칭송한다. “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황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 라멕은 죄에 대해 뻔뻔스럽게 행동하며 자신의 살인을 자랑한다. 그리고 노아의 시대가 되자 죄 바이러스는 온 세상을 휩쓸었다. 하나님은 죄를 다루시기로 하셨다.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찾게끔 시도하신다. 노아의 홍수 이후 언약의 징표로 무지개를 주시고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신다. 하나님을 기억하고 언약을 기억하여 죄를 짓지 않게 하시려 했다. 하지만 죄 바이러스는 더욱 퍼져나갔고 급기야 바벨탑을 쌓아 하나님의 자리에 도전하려 했다. 이후의 역사는 두 가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우선 영화에서 아버지 정환이 좀비딸 수아를 포기하지 않듯이, 하나님 아버지도 자신의 자녀들을 포기하지 않으신다. 당신의 자녀들이 아무리 죄를 지어도, 하나님을 반역해도, 그 형상을 스스로 버리고 잊어버려도 그 분은 포기하지 않으신다. 끈질긴 사랑과 인내로 자녀들을 회복시키신다. 집 떠난 탕자가 거지 차람으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달려나가 끌어안고 입맞춤을 한다. 아버지의 마음이다. 아버지는 자식을 있는 그대로 용납하신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들이 죄 바이러스에 걸려 변해 가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버리지 않으시고 회복시키신다. 하나님 아버지가 죄 바이러스에 걸려 갈팡질팡하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방법은 은혜라는 백신이다. 마침내 독생자가 오셨고, 그분은 죄인들을 대신해서 영원한 화목제물로 십자가에서 대속적 죽음을 받아들이셨다. 단번에 드려진 희생제물이셨다. 이후로 누구든지 예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면 구원을 받게 되었다. 개혁자 마틴 루터는 이것을 ‘주입된 은총’이라 명했다. 우리 외부에서 은혜가 우리 안에 주입되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은혜가 우리 안에 작동하여 죄와 맞서 싸운다. 결국은 은혜가 승리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온전한 자녀로 회복된다. 죄 바이러스에 감염된 우리를 치료하는 유일한 방법은 은혜라는 백신이다. 은혜의 백신이 주입되면 우리는 성령에 의해 은혜의 사람으로 차츰 변해간다. 이것이 성화다. 영화 좀비딸은 아버지의 사랑을 잘 보여준다. 좀비 바이러스에 걸렸지만 딸 됨을 포기하지 않는 아버지의 마음이다. 그리고 언젠가 백신을 통해 회복되기를 소망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잘 표현했다. 우리도 그렇다. 죄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죄인의 행태를 보이지만 우리에게는 궁극적인 소망이 있다. 이미 은혜의 백신이 우리 안에 주입되었고, 우리 안에서 선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우뚝 설 것이다. 우리도 그런 사랑으로 사람을 대하자. 아버지의 마음으로 대하자. 쉽게 포기하지 말고 용납하는 법을 배우자. 러시아의 대문화 도스토예프스키의 마음을 우리도 가지면 좋겠다. “어떤 사람을 대할 때 장차 예수님의 은혜로 변화될 모습으로 기대하라”
    • 문화
    • 영화
    2025-09-05
  • [기독교인문학]성경은 다양한 장르의 문학 모음집
    바른 성경읽기의 첫 단계 “성경 안에 나름대로의 관점을 지닌 서로 다른 장르의 문학들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은, 과거에 많은 독자들이 성경 안에서 경험했던 혼동이나 난해함이나 충돌을 효과적으로 이해하는 첫 번째 단계가 될 수 있다.” ■우리는 무엇을 읽고 있는가? 김길구 성경은 세계문학의 위대한 고전 중에 하나죠. 여러 계층의 영감을 받은 다양한 저자들에 의해 기록된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는 계시의 기록뿐만 아니라 문학적 걸작이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거예요. 반면에 성경만큼 다양한 해석을 불러일으키는 책도 없어요. 오해의 원인은 성경이 기록된 2000년이라는 시간적 간격과 그에 따른 문화적 간격이 아닐까 요. 오늘 우리의 관점으로 성경을 다 이해하기는 불가능하죠. 김현호 성경은 진공된 상태에서 하나님이 불러주시는 대로 받아쓴 책이 아니라, ‘당시의 문화를 들어 마신 후 그것을 다른 형태로 내쉰 것’이라고 성경을 호흡에 비유하기도 하지요. 그래서 버나드 램 같은 분은 성경시대와 독자시대 사이의 간격인 언어, 역사, 문화, 지리를 이해해야 한다고 하지만 모두가 그럴 순 없겠죠? 류지원 저자는 성경이 인식 가능하고 잘 보존된 고대세계의 문학 장르로 –지혜 문학, 의식서, 준 역사자료, 예언 문학, 법과 행동 수칙 모음집, 묵시 문학, 편지, 복음서- 구성되어 있는데, 66권 각각의 성경 문학의 장르와 그 역사적 배경을 이해할 때 비로써 본문의 의도와 하나님의 메시지를 왜곡 없이 읽을 수 있다며, 그동안 학계에 머물던 해석 도구로서의 문학 유형 분류체계를 성경에 적용하여 평신도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그리고 좀 더 깊이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우리를 안내하고 있습니다. ■ 정의, 심판, 민족의 멸망- 예언 문학 김길구 구약시대의 빛나는 전통 중에 하나는 히브리 예언가들의 활약입니다. 그래서 역사가들은 서양문명을 이끌어온 3대 주류로 그리스의 이성과 철학, 로마의 법과 질서와 더불어 히브리 예언가들의 사회정의를 높이 평가했어요. 예언 문학에서 예언자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거대한 역사와 국제적인 사건들을 해석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습니다. 이를 통해 그들은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 해석가로서의 기능을 담당했던 것입니다. 류지원 이 책에서는 아모스서, 이사야서, 예레미야서를 소개하고 있는데, 예언자의 개념부터 얘기해 보죠. 우리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예언자를 점쟁이로 혼돈하는 경향이 있어요. 물론 그런 기능이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한자의 미리 안다를 뜻하는 예(豫) 보다는 맡길 예(預)자가 히브리어 ‘나비’의 본래의 뜻에 가까워요. ‘하나님으로부터 말씀과 사명을 맡아 전하는 사람’을 뜻하니까요. 김현호 구약의 예언과 그리스의 신탁을 비교해 보면 구약이 하나님의 언약과 도덕적 책임에 기초하며, 회개와 순종의 인간의 반응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는 윤리적·관계적 성격을 가지는 반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탁은 주어진 운명을 알리는 결정론적·점술적 성격이 강하다고 해요. 예언 문학은 역사적 위기의 순간에 정의와 심판, 회복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지요. 성경을 단지 삶의 지침서로만 읽는 이들은 자기 마음에 와닿는 구절에 집착하여 본문 전체의 맥락을 고려치 않아 본문의 뜻이 왜곡될 수 있기에 예언자들이 활동한 시기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1차 독자의 입장에서 본문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해요. 저자는 특히 신약의 시각으로 구약을 봄으로써 본래의 뜻이 왜곡될 소지가 많다며 여러 사례를 들고 있어요. ■ 법모음집 김길구 사회 공동체 안에서 인간생활을 규제하는 일은 인간 역사에서 늘 있는 보편적인 현상이지요. B.C. 18C경 바빌론의 함무라비 법전이 가장 오래된 법으로 알려져 있고, 구약에서는 이보다 늦은 여러 가지 법조문, 지침서, 기타 규율 모음집이 있지만 그중 중요한 것이 출애급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에 나타나고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 사용했던 규범들도 마태복음과 목회서신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김현호 구분해 보면 우리가 잘 아는 십계명(출20:1-17, 신5:6-21)의 경우 처벌규정이 없어 법조문의 기능이라기 보다 하나의 원리 규범으로 기능하였고, 그 중심에 토라(오경)가 자리하고 있어요. 각각의 계명들이 창세기의 내러티브들에 소급 연결되어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예를 들면 안식일 준수계명은 창세기 2:3-3의 안식일 규정과 연결된 것처럼. 류지원 언약 법전은 모세의 언약 체결 이야기를 구성하는 내러티브 안에 있는데 윤리적 규범과 제의적 규범이 병렬되어 있어요. 고대 이스라엘보다 빠른 함무라비 법전과 비교해 보면 둘 다 고대 근동 사회의 법체계로, 사회 질서 유지와 정의 실현을 목표로 하고, 조건법 형식 -“만일 … 하면 … 한다”-이 있으며, 재산권, 폭력 범죄, 가족법 등 폭넓은 사회 영역 다룬다는 점에는 공통점이 보이나, 구약 법전은 절대법인 종교적 기반과 언약적 성격이 강하며, 법 준수는 신앙 행위의 일부인 반면, 함무라비 법전은 세속 통치 이념에 기반, 계급에 따른 법 적용 차별이 존재한다는 차이를 보입니다. 김현호 신명기는 가나안 땅 진출을 눈앞에 두고 요단강 저편 모압 평지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한 모세의 연설로 나타나지만, 그 핵심은 신명기 12-26장의 신명기 법전입니다. 주전 622년-621년에 요시아 왕이 단행한 종교개혁의 시기와 맞물려있지요. 신명기는 이스라엘의 위대한 역사적 서사의 편집과정에서도 발견된다는 사실은 그 중요성이 얼마나 큰지를 가늠케 합니다. 특별 가난한 자, 억압받는 자, 과부와 고아에 대한 관심을 보인 인도주의적인 내용을 담고 있고, 동물과 식물의 보호, 토양에 대한 배려 등은 돋보이는 대목입니다. 류지원 레위기 17-26장은 성결법전으로 하나님이 거룩하심과 백성의 성결을 강조한 성결법전도 중요하지요. 제의적 요구와 처벌, 제사장 규례, 절기와 안식일, 희년(레25장) 등 제의적 관신 가운데 가장 숭고한 윤리적 원칙이 등장합니다.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니라”(레19:18). 그러나 성경의 법 모음집은 현대에 와서 큰 과제를 주고 있어요. 성경이 제시한 대부분의 법을 실제로 따르지 않고 있으며-동물제사 등, 동성애, 교회 안에서의 여성지도력, 이혼 문제 등으로 신약성경의 진술의 의미와 유효성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죠. ■ 저자가 제안하는 성경독서법 김길구 마셜 D. 존슨이 제안하는 성경 읽기 방법을 소개하면 ① 먼저 본문의 장르를 파악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펼치면, 그 부분이 지혜문학, 예언 문학, 법전, 역사서, 시편, 묵시문학, 복음서, 서신서 중 어디에 속하는지 먼저 구분하라고 합니다. 그렇지않을 경우, 각 장르는 표현 방식, 목적, 독자층이 다른데 동일한 해석 틀을 적용하면 왜곡될 위험이 크다는 거예요. 김현호 ② 당시 청중의 입장에서 성경을 읽으라는 것입니다. 읽을 때는 본문이 기록될 당시의 역사적 상황, 사회 구조, 종교적 환경을 고려하고, 그 당시의 1차 독자가 어떻게 이해했을지를 상상하며 읽으면 더 효과적이겠지요. 예를 들면 예언서는 나라가 정치·군사적 위기 속에서 선포되었고, 법전은 광야의 텐트 생활 속에서의 공동체 생활 규범이었다는 것을 상상하며 읽으라는 거예요. 그리고 ③ 문학적 기법을 인식하라는 것입니다. 시, 은유, 상징, 반복, 구조적 패턴(평행법 등)을 주의 깊게 관찰하되 직역보다는 문학 장르에 맞는 해석을 우선하라는 거예요. 류지원 ④ 본문의 신학적 메시지를 오늘로 연결하라. 장르와 당시 의미를 먼저 이해한 후, 오늘날의 삶과 신앙에 적용하라는 것입니다. 원래 의미를 무시한 현대적 적용은 위험하지만, 본래 의미 위에서의 적용은 말씀에 생명력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⑤ 장르 혼합에 주의하라 입니다. 한 책 안에 여러 장르가 섞여 있을 수 있으므로, 본문 단위로 세밀하게 구분하라는 것이죠. 왜냐하면 복음서 안에는 역사적 내러티브, 비유, 설교, 묵시적 예언이 공존하기 때문입니다. 【정리 김길구】 마셜 존슨의 《 고대문학의 렌즈로 보는 성경 》 우리가 성경을 읽는 독서법은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양할 수 있다. 본서는 성경 66권이 각기 다른 장르의 문학 작품-지혜 문학, 예전 의식서, 역사 이야기, 예언 문학, 법 모음집, 묵시문학, 편지, 복음서-으로 구성된 문학 모음집이라며 성경을 제대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먼저 장르를 구별하고 그 특성을 이해한 뒤 기록될 당시의 상황에서 독자의 관점으로 읽어야 한다는 새로운 성경 독서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를 위하여 저자는 성경을 문학의 한 형태로서, 그리고 고대의 역사·문화적 산물로서 존중하며 읽는 것이 바른 성경 해석의 출발점으로, 장르를 파악하고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며 문학적 장치를 인식하고 그 위에 신앙적 적용을 하라고 가르친다. ◇ 저자소개 마셜 존슨 ∥ 포트레스 출판사의 편집장이다. 수 십 년 동안 성경학을 연구하고 관련 책을 출간했다. 뉴욕의 유니온 신학대학원에서 성경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노르웨이의 베르겐대학교에서 가르쳤다. ◇ 저 서 ∥ 《The Apostles’ Creed》, 《The Purpose of the Biblical Genealogies》, 《Psalms Through the Year》 등이 있다.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고대 근동 문헌과 구약성경》 크리스토퍼 B. 헤이즈 / CLC / 2018 《성경의 탄생》 존 드레인 / 옥당 / 2011 《구약성경문학탐구》 찌포라 탈쉬르 / 한국이스라엘학회 역 / 《오리게네스 성경해석학 서사기-해석, 상징, 드라마》 곽계일 / 다함 /
    • 문화
    • 기독교인문학
    2025-08-15
  • [영화]오징어게임3
    감독 : 황동혁 출연 : 성기훈(이정재), 프론트맨 황인호(이병헌), 이명기(임시완), 강노을(박규영), 김준희(조 유리), 황준호(위하준), 장금자(강애심), 영화는 현실을 반영하고, 현실은 영화를 따라간다. 인기 있는 영화일수록 그 반향은 크다. 흥행에 성공한 영화는 현실을 잘 반영한다. 달리 말하면 사람들의 공감대를 얻었다는 뜻이다. 문제는 감독이 영화의 스크린에 펼쳐 놓은 어떤 장면, 스토리, 가치관은 즉시 모방 효과를 낳는다는 데 있다. 한 때 조폭 시리즈 영화들이 인기있었다. 생각해 보면 그 즈음을 지나면서 청소년들의 입이 거칠어 졌다. 욕설이 난무했다. 우스개소리로 욕을 빼면 말이 안되는 지경이 되었다. 일본 학원 폭력물이 무분별하게 들어오던 시점에 학원 폭력도 더해졌다. 이른바 왕따 현상, 학원 폭력이 훨씬 증가했다. 영화가 현실을 반영하여 그 반향이 크면현실은 그 영화를 따라간다. 전 세계를 뒤흔든 오징어 게임이 드디어 대결말을 장식했다. 시즌 1에서 엄청난 글로벌 흥행을 이룬 뒤 시리즈 2와 3을 제작하여 개봉했다. 오징어 게임은 일종의 신드롬을 낳았다. 전 세계 시청률 1위를 찍은 것 뿐 아니라 전 세계인들이 오징어 게임에 등장하는 놀이를 따라하고 관련 상품도 메가 히트를 쳤다. 그야말로 신드롬이었다. 오징어 게임을 간략하게 정리해 보자. 이런 저런 이유로 빚을 진 사람들,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이 상금에 눈이 멀어 게임장에 들어왔다. 456명의 참가자들, 게임을 해서 최종 승자가 되면 456억의 상금을 차지할 수 있다. 하지만 첫 게임을 하고 난 뒤 참가자들은 일대 혼란에 빠진다. 게임에 진다는 것은 곧 죽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설마 했던 것이 현실로 다가 왔다. 게임에 탈락하면 죽는다. 공포와 전율이 이들을 사로잡는다. 하늘이 무너져도 빠져나갈 구멍이 있다고 했다. 프론트 맨은 한 가지 탈출구를 제시한다. 참가자들이 투표를 통해 게임의 진행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명이라도 더 게임 정지를 결정하면 현재의 상금을 나눠서 나갈 수 있다. 하지만 투표 결과는 충격이다. 게임을 계속 하자는 편이 더 많다. 여기에는 두 가지 심리가 담겨 있다. 우선 내가 어떤 게임이든지 이길 수 있다는 착각이 깔려 있고, 또 하나 다른 사람을 죽여서라도 돈을 차지하겠다는 욕망이 내포되어 있다. 잔혹한 부조리극이다. 인류의 문명이 시작된 후 지속적으로 이어져 온 거대한 부조리다. 이기적 욕망이 싸움을 낳고 전쟁을 낳고 제국을 낳았다. 제국은 이런 인간 심리를 선동한 독재자가 독차지하는 구조다. 대부분은 희생의 제물이 되고 비참한 삶을 영위했지만, 그들은 나도 언젠가 제국의 최상위 포식자가 될 것이라는 착각과 내 자녀가 사다리의 맨 윗자리에 오를 것이라는 자기기만을 해 왔다. 이런 자기 기만과 거대한 착각 속에서 죽고 죽이는 만인의 만인에 의한 투쟁이 이어져 왔다. 결국 극소수외에 다 죽고 마는 게임인데도 깨닫지를 못한다. 오징어 게임은 작금의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 1980년대부터 이어져 온 신자유주의라는 물결 속에서 일어난 금융자본주의의 욕망을 펼쳐 보인다. 누구든지 게임에서 최후 승자가 되면 슈퍼 리치가 될 수 있다는 신화가 판을 치고 있다. 그런 신화의 주인공들이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대학의 롤모델이 되고 사회의 영웅이 된다. 잘 생각해 보면 전 세계에서 겨우 몇 명 뿐인데, 나도 그 사람이 될 것이라 착각을 한다. 토마 피케티의 잘 정리된 통계에 의하면 전 세계 부의 50%이상을 전 세계 인구의 단 1%가 차지하고 있는데 말이다. 99%의 사람은 이 거대한 게임의 법칙에서 탈락하고 1%의 부자들을 위해 부를 제공하고 있지만 이욕망의 매카니즘은 끝이 나지 않는다. 나도 1%의 마법 안에 들어갈 수 있다는 메시지가 더 크기 때문이다. 다행히 감독은 예언자적 인물을 다시 게임판에 넣었다. 성기훈이다. 그는 지난 게임의 최후 승자가 되어 막대한 부를 획득했지만, 그 돈이 누군가의 피의 대가라는 것에 마음이 편하지 않다. 친구가 죽었고, 이런 저런 사연의 사람들이 죽은 대가를 도무지 누릴 수 없었다. 그는 이 게임을 중지시키려 한다. 다시 게임판에 들어간 성기훈은 지속적으로 말한다. “이러다 다 죽습니다” “이제 게임을 멈추어야 합니다” “누군가를 죽이고 돈을 차지할 것이라 하지만 자신이 죽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리고 성기훈은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 놓을 각오가 되어 있다. 비록 자신이 죽을지라도 이 게임을 멈추어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면 족하다고 여긴다. 성기훈은 예언자의 목소리다. 일찍이 월터 브루그만이 말한 예언자적 상상력의 사람이다. 브루그만은 앗수르, 바벨론, 이집트 제국의 각축장 한 가운데서 외쳤던 예언자 이사야를 소개한다. “ 사자들이 어린 양과 뛰놀며, 독사 굴에 어린아이가 손을 넣어도 물지 않는 세상 ” 은 예언자가 소망하는 곳이다. 제국에 던지는 폭탄 선언이자 대안 세상에 대한 청사진이다. 맞다. 새로운 세상은 새로운 생각에서 시작된다. 오징에 게임에서 프론트맨 황인호가 당황해 하는 지점은 성기훈의 선지자적 면이다. 그곳에서 거대한 게임판의 균열이 일어난다. 아울러 성기훈의 진정성에 감동한 소수의 무리들이 대안이다. 비록 자신은 인생에 실패했지만 태어날 아기는 새로운 세상에서 살기를 소망하며 희생을 각오하는 김준희, 자식 교육에 실패해서 끔찍한 게임판에 들어왔으나 각성한 장금자, 게임진행요원으로 들어왔으나 거대한 구조에 맞서는 강노을 등이다. 성기훈의 예언자적 목소리에 반응한 사람들이다. 역사 는 이런 소수의 각성자들에 의해 진보해왔다. 흑인노예의 인권을 대변했던 윌리엄 윌버포스와 그의 생각에 동의하고 도왔던 ‘클래펌’ 공동체, 존 울먼 목사의 사상에 동의하고 해방 노예들을 북쪽으로 데려다 준 ‘지하철도’ 조직원들, 이런 사람들의 헌신으로 역사는 발전해 왔다. 이제 우리들이 움직일 때다. 오징어 게임이라는 드라마에 일희일비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감독이 던진 구조적 문제에 응답할 때다. 칸트가 일찍이 말한 바 “머리 위 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우리의 마음에 살아있는 도덕 법칙” 에 응답할 때다. 나 혼자의 욕망에 끌려 사는 삶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헌신이다. ‘다 죽을 것이냐? 다 살아남을 것이냐?’ 그것은 나의 각성과 의지에 있다. 오징어 게임을 우리 아이들에게 다시 돌려주자. 해 지면 훌훌 털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동심의 세계를 물려주자.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 체 게바라
    • 문화
    • 영화
    2025-07-25
  • [기독교인문학] 비유에 담긴 하나님 나라의 희망
    비유에 담긴 급진적 의미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나라를 간절히 기다렸다. 하지만 그들은 점점 더 하나님 나라에서 배제된 채 척박하고 불안한 현실을 목도할 뿐이다. 그러나 예수의 하나님 나라는 그들이 익히 듣던 하나님 나라와 달랐다. 기존의 생각을 완전히 뒤집었기 때문이다. 그 새로움과 놀라움은 현재와 다른 삶을 상상하고 희망하게 했다.” 비유의 주제는 하나님 나라 김길구 오늘 우리가 다룰 주제는 예수님의 비유를 다룬 김호경 교수의 《예수가 하려던 말》들 입니다. 공관복음서에 있는 예수님 말씀의 ⅓가량이 비유로 되어 있고, 그 메시지의 핵심 주제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비유parables가 적게는 30개 많게는 60개로 학자들에 따라서 달리 보고 있는데, 본서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19개의 비유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김현호 이 책의 집필 동기에 대하여 저자는 ‘예수 당시 사람들이 뒷목을 잡을 만큼 놀랐던 이야기에 나는 왜 놀랄 수 없는가?’란 문제의식에서 비롯되었는데, 그 이유를 해석의 왜곡에서 찾고 있어요. 2천 년 전 1C 팔레스타인 지역의 일상에 빗대어 한 낯선 이야기들을 오늘 우리가 100% 공감하기는 불가능하겠죠. 저자는 그 시공간의 간극을 성서학적, 철학적 사색을 통하여 메꿔주고 있습니다. 류지원 또 하나의 특징은 철학적 사유인데, 19개 비유를 설명하면서 한 비유에 한 개념씩 현대철학자들의 통찰과 연결함으로써 상호 이해의 폭을 넓히고 있는데요. 일부만 소개해도 앙가주망, 리좀, 아비투스, 르상티앙 등 철학 개념과 키에르케고르, 장 폴 사르트르, 칸트, 레비나스, 푸코, 질 들뢰즈 니체 등이 망라되어 있어 좋았어요. 김길구 비유에 대한 다양한 해석은 예수가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할 때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는 하였지만, ‘하나님 나라’의 뜻을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에둘러 그것도 상징과 비유를 들어 모호성과 다중성을 띤 채 듣는 이들이 그것에 참여하게 함으로써 다양한 해석이 불가피하지 않았나 생각해요. 김현호 하나님 나라는 예민한 말이예요. 로마 황제의 나라와 대치되는 개념이죠. 더 놀라운 것은 여기 서있는 사람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고 했으니까요. 류지원 책에서 말하는 비유 속의 복음의 급진성이란 힘없고 소외된 절망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기존의 상식과 질서와 상투성에 익숙한 사회 관념의 변혁과 일상의 세계를 초월하는 새로운 사회 질서의 도래를 꿈꾸는 통쾌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눈이 열리다-에포케 김길구 마13:45~46에 나오는 ‘진주를 구하는 상인’의 비유의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이 책에는 19개의 비유 중 첫 번째 비유입니다.“하나님 나라는 좋은 진주를 구하는 상인과 같다. 그가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면, 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그것을 산다”는 내용입니다. 저자는 우선 인용한 비유를 성서학적으로 분석하여 재구성하고, 이를 현대철학자들의 개념들로 확대하여 비유에 나타난 함의를 살펴본 뒤 비유가 말하고자 하는 본래의 의미를 되살리고 있어요. 류지원 “때가 찼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여라. 복음을 믿어라”는 (막1:15) 말씀에서 하나님의 통치는 절대적인 하나님의 주권으로 인간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없고 다만 우리가 해야할 것은 회개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길을 가겠다는 방향전환 곧 ‘돌이킴’인데 철학자 후셀이 말하는 에포케(Epoche)로 정지, 중지, 중단을 의미하는 단어로서 자신이 옳다고 여겨 온 일과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에 대한 판단중지는 새로운 대상에 접근하기 위한 첫걸음을 말합니다. 회개가 익숙함으로부터의 돌이킴이라면 복음을 믿어라는 선언은 방향전환의 목표이며, 에포케를 통해서 새롭게 대면하는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김현호 비유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를 정의 하면서 “정치적이고 영적이며 실존적인 사건으로 단순한 내세의 왕국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 여기에서 삶의 질서가 전복되고, 가난한 자가 복되고, 권력이 재편되는 혁명이다. 하지만 이 혁명은 칼이 아닌 진리로, 억압이 아닌 해방으로, 억지가 아닌 은유로 완성된다.”는 대목이 와 닿습니다. ■주체로 행하다 - 앙가주망 류지원 마25:14~30에 나오는 유명한 달란트 비유의 예를 들어보죠.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자기 종들을 불러 능력에 맞게 각각 5달란트, 2달란트, 한 달란트씩을 주고 떠났는데, 오랜 뒤에 돌아와서 결산해 보니 5달란트 받은 종은 5달란트를 남기고, 2달란트 받은 종은 2달란트를 남겨서 칭찬을 받고,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땅에 숨겨두고 한 푼도 남기지 못했다고 하자 있는 것 조차 빼앗기고 어두운 데로 쫓겨났다는 얘기입니다. 김현호 달란트는 적은 돈이 아니예요. 1달란트가 대략 6,000 데나리온에 해당되고, 한 데나리온은 일용직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니 한 달란트는 노동자가 대략 17년간 받을 품삯이니 거액으로, 주인은 종들을 재산목록으로 알던 시대에 상상이상의 큰 은혜를 베풀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거예요. 저자는 주인이 그들에게 기대한 것은 앙가주망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길구 앙가주망(Engagement)은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가 자주 사용했던 용어로 직접 사회에 참여, 즉 앙가제(s'engager)하여 조금씩 세계를 변화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 자기 선택의 폭, 행위의 범위를 확장시키는 것으로 이 책에서는 주체적으로 관계된 일에 참여한다는 뜻으로 이는 그의 자유에 대한 이해와 관련이 있는 개념입니다. 주인은 그 큰돈을 주면서 그 무엇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 돈을 쓸 수 있는 무한한 자유를 주었을 뿐입니다. 1달란트 가진 종은 그 큰돈을 사용하는 하는데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그는 아무것도 하지않았고 그러므로 아무 일도 일어 나지 않았습니다. 이는 자신의 자유를 제대로 사용하지 않은 대가였습니다. ■새로운 꿈을 꾸다 - 르상티망 김길구 마 20:1~16의 포도원 품꾼 비유입니다. 주인은 인력시장에 이른 아침과 오전 9시, 그리고 정오인 12시, 오후 3시에 나가 하루 품삯인 1데나리온의 조건으로 일꾼을 데려와 일을 시키고, 마칠시간이 다 되어가는 오후 5시에도 나가보니 일자리를 못 구해 놀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 동일한 조건으로 일을 시킨 뒤 근무시간에 관계없이 계약한대로 임금을 1데나리온씩 똑같이 나누어주었다는 얘기이지요. 김현호 이른 아침에 채용된 일꾼과 오후 5시에 채용된 사람이 같은 임금을 받으니 더 많은 시간을 일한 사람들이 원망하자 주인은 “내가 선함으로 네가 나를 악하게 보느냐”며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며 아랑곳하지 않았다는 얘기입니다. 류지원 저자는 여기서 니체의 인간의 본성 중 하나인 약한 입장의 사람이 강자에 대해 갖는 질투, 원한, 열등감 등의 감정인 시기심을 르상티망(ressentiment)이라고 하였는데, 그 예로 로마의 가치를 뒤집기 위해서 ‘신’이라는 개념으로 정반대의 가치를 만들어 르상티망을 해소하는 그리스도교와 팔복의 전도된 가치관을 들었어요. 마치 이숍우화의 신포도와 같은 방어기제가 작동했다는 거예요. 김길구 저자는 약자의 논리인 니체의 주장대로 르상티망으로 인해 그리스도교적 특성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온 품꾼과 늦게 온 품꾼 모두가 주인에게만 종속되며, 주인의 자유는 포도원에서는 모두가 평등한 공동체로 새로운 질서를 구축한다는 것이죠. 따라서 르상티망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주인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이라는 논리입니다. 다음은 마셜 존슨 저, 차준희 교수 번역의 《고대 문학의 렌즈로 보는 성경》으로 이레서원에서 출간되었습니다. 【정리 김길구】 김호경의 《 예수가 하려는 말들 》 예수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일상의 소재로 누구나 알아듣게 우화적인 비유로 심오한 진리를 설파하셨기 때문이다. 공관복음서에 나오는 예수의 교훈들 중 35%가 비유의 말씀으로 그 핵심의 주제는 ‘하나님 나라’였다. 이스라엘이 왕과 나라를 잃고 당시 최강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던 절망의 시기에 예수는 비유를 들어 ‘황제의 나라’가 아닌 ‘하나님 나라’를 선포한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익숙한 일상의 얘기를 빗댄 그의 가르침에 군중들은 열광으로 화답하였다. 2천년 전의 시공간의 간극을 저자의 성서학적, 철학적 지식과 더불어 그의 쾌도난마식 글쓰기는 비유가 가진 본래의 역동성을 되찾아 주며 즐거운 독서로 안내해 주고 있다. ◇ 저자소개 김호경 ∥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신학석사 학위를 받았고 연세대학교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서울장로회신학교에서 신약학 교수로 가르쳤다. ◇ 저 서 ∥ 《예수의 식탁 이야기》, 《여자, 성서 밖으로 나오다》, 《예수가 상상한 그리스도》, 《인간의 옷을 입은 성서》, 역서로는 《스피노자와 근대의 탄생》, 《신학-정치학》 등이 있다.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예수의 비유》 요아킴 예레미아스 / 분도출판사 / 1974 《예수님의 식탁 이야기》 김호경 / 두란노 / 2024 《중동의 눈으로 본 예수님의 비유》 케네스 E 베일리 / 이레서원 / 2017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야마구치 슈 / 대산초당 / 2018
    • 문화
    • 기독교인문학
    2025-06-29
  • 이단코드
    이단을 설명하지 않는다. 이단을 진단하는 핵심 코드를 알려준다. “나날이 진화하는 K-이단의 최신 트렌트는 무엇인가?” “한류를 업고 세계로 진출한 K-이단의 미혹 코드는 무엇인가?” “타 이단교리와 섞여진, 이단 교리의 핵심 코드는 무엇인가?” “타 이단을 밴치마킹한 이단 교리는 어떻게 진화되어 가는가?” 포스트 코로나 세상은 ‘복음 전도’와 함께 ‘복음 분별’이 동시에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이단들은 전통적인 오프라인 환경과 코로나 이후 본격화한 온라인 공간을 넘나들며 하이브리드 이단으로 정착한 모양새이다. 교회 밖에서는, 노략질을 일삼는 가짜 이단이 진짜 교회처럼 양의 옷을 입은 선한 이웃으로 코스프레한 후, 자원봉사활동에 주력하며 사회적 인지도를 높이고 있고, 교회 안에서는, 신앙 연륜이 있는 교인들은 물론이고 나름 성경에 대한 지식과 관심이 많다고 하는 신앙인들마저 이단의 미혹에 빠지고 있다. 게다가 한국 이단들은 사회적 순기능을 노출하는 포교전략과 한류(K-Trend)로 무장한 채,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 가히 ‘한국 이단 팬데믹 시대’라고 부를 수 있는 형세이다. 이러한 때 이단의 핵심코드를 명확히 잡아내는 이 책은 혼란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이단을 진단하고 파악할 수 있는 명확한 눈을 갖게 해준다. <저자소개> 한국 이단 연구의 선구자이자 월간 「현대종교」 설립자인 故 탁명환 소장의 장남으로, 이단 신도의 피습을 받아 소천한 선친의 뒤를 이어 이단 예방 및 대처를 위해 애쓰고 있다. 장로회신학대학(신학사), 연세대학교 대학원(신학석사, 한국교회사), 미국 San Francisco Theological Seminary/GTU(Joint M.Div./M.A., 역사신학)에서 공부했으며, 캐나다 토론토대학교 St. Michael’s College에서 교회사 전공으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부산장신대학교 교회사 교수로 재직하면서, 월간 「현대종교」 이사장 겸 편집장 및 부산성시화 이단상담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이단』, 『교회와 이단』, 『이단 OUT』(이상 두란노), 『이단이 알고 싶다』(넥서스CROSS), 『사료 한국의 신흥종교』(현대종교), 『가스라이팅 이단』(산), Family- Centered Belief and Practice in the Church of Jesus Christ of Latter-Day Saints and the Unification Church(Peter Lang Publishing, Inc.), 『찬송으로 듣는 교회사 이야기』(대한기독교서회), 『부산의 첫 선교사들』(한국장로교출판사), 『다르게 다가서는 역사』(예영커뮤니케이션) 등이 있다. 출판사 : 한국장로교출판사 정가 16,900원
    • 문화
    • 도서
    2025-06-20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