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생긴 일이다. 내가 자동차에 다가가면 자동차가 반가운 소리를 내면서 잠금장치가 풀리고 문이 열렸다. 그러나 다른 가족이 다가가면 아무런 소리도 없고 아내가 같이 가서 문을 열려고 해도 열리지 않았다. 나는 “내가 가면 문은 열리지만 당신이 가면 문을 열리지 않는다!”면서 의기양양했다. 그런데 자동차 문의 잠금장치가 해제되는 것은 나 때문이 아니라 내 주머니 속 ‘리모컨’ 덕분이었다. 문을 여는 해결책이 주머니에 숨어겨있어서 보이지 않은 것뿐이었다.
우리는 내 능력의 비결이 딴 곳에 있는데 그것을 내가 한 것인 양, 내 것인 양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 모습은 삶에서 경계해야 하는 성품이다. 창세기에 나오는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법칙 중에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 후에 “우리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을 다스리게 하자”고 하셨다. 그리고 자신의 모양대로 만드시고 자신의 생명과 지혜와 능력을 사람에게 주셨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최고의 선물과 자유를 주셔서 온전한 사랑을 보여주셨다. 이렇게 창조된 인간이 자신이 지닌 생명을 유지하고 지혜와 능력을 발휘하면서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이 모든 능력의 근원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잊지 않으면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지만 잊으면 그 때부터 죽음인 것이다.
내가 받은 것은 내 속에 들어와 생명이 되어 있지만 그것을 준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나의 나 됨은 누군가의 덕분인데 내가 잘 나서 된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것이다. 이런 태도에서 신의 속성을 잃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어느 집에서 아내가 명절이 되어서 며칠을 고생해서 소불고기, 닭 매운찜, 자연산 회, 신선한 샐러드 등의 산해진미로 상을 차려 놓았다 하자. 그리고 아버지가 상에 둘러앉아있는 아이들에게 물었다. “이 모든 음식을 누가 만들었지?” 아이들은 모두 “엄마가 했어요!” 그 대답을 하는 순간 아이들의 마음에 엄마에 대한 고마움이 일어난다. 그런데 아내는 “내가 했다. 내가 내 돈으로, 내 실력으로, 허리가 아프면서도 며칠을 고생해서 내가 한 것이다.”라고 말하면 그 순간 아내는 ‘생명의 근원’을 잊은 것이 된다. 아내의 말이 맞는 말이다. 아내가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수고와 능력으로 모든 것을 한 것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아내(음식을 만든 사람) 자신이 이 모든 것의 근원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생명의 근원을 잃어버린 사람은 어리석음과 두려움이 그 중심에 자리 잡게 된다. 그리고는 그 두려움을 해결하려고 할 때 어리석음은 무엇인가를 의존하고 숭배하게 만든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자연을 숭배하게 되고 심지어는 동물이나 돌과 그림, 부적을 만들어 숭배한다. 어떤 이는 귀신을 숭배하며 힘 있는 모든 것은 다 숭배한다. 결국 마지막에는 돈을 숭배하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 그러나 근원을 아는 존재는 하늘과 땅에 있는 그 어떤 것도 숭배하지 않으며 어떤 존재로부터도 숭배 받는 것을 거절한다. 누군가 천사의 능력 때문에 천사를 숭배하려고 하면 그 천사는 거절할 것이다. 왜냐면 내 능력의 근원은 내가 아니라 창조주인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무와 동물과 자연의 모든 만물이 그렇다. 자신의 근원이 자신이 아닌 것을 아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자신을 드러내며 사람이 자신을 숭배하는 것을 좋아하고 부축이고 강요한다. 도리어 자신을 알아주지 않으면 섭섭해 하고 자신을 알아달라고 투정하고 심지어는 위협하고 죽이려고도 한다. 그 속에 근본적으로 근원을 무시하는 사단의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땅을 살면서 진정으로 성공한 사람은 자신의 잠재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며 기꺼이 수고하고 마음껏 사랑하고 마음껏 자유를 누리며 행복해한다. 그러나 이 모든 성공과 자유의 근원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내 능력의 비결이 딴 곳에 있는데 그것을 내가 한 것인 양, 내 것인 양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 모습은 삶에서 경계해야 하는 성품이다. 창세기에 나오는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법칙 중에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 후에 “우리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을 다스리게 하자”고 하셨다. 그리고 자신의 모양대로 만드시고 자신의 생명과 지혜와 능력을 사람에게 주셨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최고의 선물과 자유를 주셔서 온전한 사랑을 보여주셨다. 이렇게 창조된 인간이 자신이 지닌 생명을 유지하고 지혜와 능력을 발휘하면서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이 모든 능력의 근원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잊지 않으면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지만 잊으면 그 때부터 죽음인 것이다.
내가 받은 것은 내 속에 들어와 생명이 되어 있지만 그것을 준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나의 나 됨은 누군가의 덕분인데 내가 잘 나서 된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것이다. 이런 태도에서 신의 속성을 잃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어느 집에서 아내가 명절이 되어서 며칠을 고생해서 소불고기, 닭 매운찜, 자연산 회, 신선한 샐러드 등의 산해진미로 상을 차려 놓았다 하자. 그리고 아버지가 상에 둘러앉아있는 아이들에게 물었다. “이 모든 음식을 누가 만들었지?” 아이들은 모두 “엄마가 했어요!” 그 대답을 하는 순간 아이들의 마음에 엄마에 대한 고마움이 일어난다. 그런데 아내는 “내가 했다. 내가 내 돈으로, 내 실력으로, 허리가 아프면서도 며칠을 고생해서 내가 한 것이다.”라고 말하면 그 순간 아내는 ‘생명의 근원’을 잊은 것이 된다. 아내의 말이 맞는 말이다. 아내가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수고와 능력으로 모든 것을 한 것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아내(음식을 만든 사람) 자신이 이 모든 것의 근원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생명의 근원을 잃어버린 사람은 어리석음과 두려움이 그 중심에 자리 잡게 된다. 그리고는 그 두려움을 해결하려고 할 때 어리석음은 무엇인가를 의존하고 숭배하게 만든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자연을 숭배하게 되고 심지어는 동물이나 돌과 그림, 부적을 만들어 숭배한다. 어떤 이는 귀신을 숭배하며 힘 있는 모든 것은 다 숭배한다. 결국 마지막에는 돈을 숭배하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 그러나 근원을 아는 존재는 하늘과 땅에 있는 그 어떤 것도 숭배하지 않으며 어떤 존재로부터도 숭배 받는 것을 거절한다. 누군가 천사의 능력 때문에 천사를 숭배하려고 하면 그 천사는 거절할 것이다. 왜냐면 내 능력의 근원은 내가 아니라 창조주인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무와 동물과 자연의 모든 만물이 그렇다. 자신의 근원이 자신이 아닌 것을 아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자신을 드러내며 사람이 자신을 숭배하는 것을 좋아하고 부축이고 강요한다. 도리어 자신을 알아주지 않으면 섭섭해 하고 자신을 알아달라고 투정하고 심지어는 위협하고 죽이려고도 한다. 그 속에 근본적으로 근원을 무시하는 사단의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땅을 살면서 진정으로 성공한 사람은 자신의 잠재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며 기꺼이 수고하고 마음껏 사랑하고 마음껏 자유를 누리며 행복해한다. 그러나 이 모든 성공과 자유의 근원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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