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2-13(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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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탄절은 해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데 성탄의 의의는 변함이 없되 어쩐 일인지 우리들의 마음은 성탄절의 깊은 의미와는 무엇인지 모를 벽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웬일인지 모르겠다.
  예수 없는 성탄절을 세속적인 성탄절이라 한다. 예수 없는 성탄절은 예수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 맞이하여 지키는 성탄절 행사인데, 놀라운 것은 오늘 교회 안에서조차도 예수 없는 성탄절 행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 예수 없는 성탄절 행사라는 말은 성탄절의 진정한 의미를 알지 못하고 성탄절을 맞는 것을 뜻한다.
  성탄의 진정한 의의는 무엇인가?
  죄로 죽어 가는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인간비하(人間卑下)다. 그러기에 진정한 성탄의 의미를 깨달아 축하할 수 있는 삶이란, 바로 그리스도 예수가 사람의 몸을 입고 낮아지심처럼 그리스도인은 보다 낮아지는 삶으로의 전환, 그 자체가 진정한 성탄의 의의를 깨달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다.
  2011년도에 출간된 ‘엘버트 놀런’의 저서 <오늘의 예수>가 있다. 이 책을 짧게 요약하면 1부에서는 시대의 징표를 요약한 후에 오늘의 의미를 정립하고, 2부에서는 예수님의 고유 영성에 대하여, 3부에서는 예수님의 영성에 맞추어서 오늘 우리들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조명하고 있다. 이 책이 강조하는 근본은 예수님의 관점은 사람이었고, 인간이 이와 같은 근원적 자유함을 경험할 수 있기 위하여 예수님은 스스로 먼저 사람을 사랑하셨고, 사람을 위하여 자기 자신을 내려놓고 비우고 마지막에는 자기 자신까지도 버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본성적으로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사랑하면서 타락해 간다. 그것의 근원이 ego, 자아(自我)다. 인간생활에 가장 무서운 것은 ‘에고이즘’(egoism), 곧 이기주의, 자기중심적인 성향이다. 이것은 자기 자신 말고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의 필요와 자신의 만족만을 갈구한다. 인간에 대한 연민이나 공감이 완전히 결여된다. 타인에게 유난스레 잔인할 수 있고, 그것이 발전되면서 타인을 고통에 빠뜨리는 인간이 되어 간다. 그러면서 자기가 하는 모든 것은 정의(正義)라고 착각한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근원적인 자유함이 없다.
  이와 같은 환경에 살아가는 인간을 인간답게 살게 하신 분이 예수님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그 사랑은 비교원리가 아니라 창조원리에서 해석되는 것이다. 즉 있고 없고, 많고 적고, 높고 낮고의 관계를 넘어 서로를 돌보아 주고, 서로를 공감하고, 서로를 보호해주고, 서로 가진 것을 나누는 관계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은 이것이었다. 이것을 이루기 위하여 스스로 낮아지고, 가난하게 되고, 섬기고, 마지막은 죽기까지 하신 것이다.
  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한 가지 분명하게 마음에 담아 두어야 할 것 있다. 그것은 너를 자유하게 하고, 너를 기쁘게 하고, 너를 행복하게 하려면 내가 아프고, 내가 힘들고, 내가 고통 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이해하고, 관용하고, 용서하고, 사랑하면서, 더 낮아지고, 더 내려놓고, 더 인내하는 삶이다.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오늘의 예수다. 너를 아프게 하고, 너를 힘들게 하고, 너를 불행하게 하면서, 내가 행복하고, 내가 자유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니다. 그 삶은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없는 삶이다.
  그런데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언제부터인가 나의 기쁨을 위하여, 나의 행복을 위하여 너를 아프게 하고 너를 힘들게 하면서 자기는 정의라고 부르짖는 타락한 삶에 물들어가는 데 아픔이 있다. 그것은 성탄 이전의 인간의 삶이다. 성탄 이후의 삶은 그런 삶이 아니다.
  나의 방송설교를 듣고 상담을 해 온 교수님의 고뇌의 한마디를 잊지 못한다. “나는 61년 신앙생활을 하면서 아직도 교회에서 사람이 그립습니다. 우리교회는 하나님만 모여 있습니다.”라고 아파하면서 “내말이 맞다, 내 생각이 옳다, 내가 말 하는 대로 되어야 한다, 라는 논리만 전개하는 그분들은 허물과 실수와 잘못이 전혀 없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우리교회는 왜 평안하지를 않습니까? 그러기에 자신의 허물과 실수도 볼 줄 알고, 자신의 부족함과 잘못도 인정할 줄 알고, 자신도 죄인임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 그립습니다.”
  그렇다. 교회에서조차 사람의 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아지는 요즈음, 권력과 명예를 얻기 위하여 쟁투하는 소리가 끊어지지 않는 요즈음, 서로 높아지려고 다투는 분쟁의 소리가 요란한 요즈음, 모두가 자기의 일이 가장 옳은 일이라고 떠들면서 하나님 없는 신앙을 생활하는 시끄러운 요즈음, 우리는 성탄의 깊은 의미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지금 보다 더 낮아지는 것이다. 네 탓이 아니라 내 탓, 나만 옳은 것이 아니라 너도 옳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는 마음, 거기서 서로를 공감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더불어 살아감이 실천될 때, 거기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을 수 있다. 거기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 그것이 곧 우리 자신이 더 낮아지는 삶으로 나아가는 것이며, 그것이 오늘의 예수가 되어 가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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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임중 칼럼] 우리는 오늘의 예수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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