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해가 바뀐다고 해서 새로워지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우리 이름, 신분, 가족관계, 직장 등 거의 모든 것이 지난해와 똑같습니다. 말은 “새”라고 하지만, 실제는 낡은 것들과 함께 시작하는 것입니다. 목회자들의 설교도 늘 같습니다. 언제나 삼위일체 하나님을 말하고,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아무 것도 달라지는 게 없다는 것 때문에 답답해할 것입니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찬송가 205장을 보면 <평생에 듣던 말씀 또 들려주시오......늘 들려주시오>라는 가사가 나옵니다. 어찌 보면 목회자들이 같은 메시지를 반복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나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웃을 일만은 아닙니다.
그런데 빌립보서 3장 1절을 보면 바울 사도는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고 말씀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전에 하지 않던 새로운 말을 한 게 아닙니다. 그는 늘 전에 하던 그 말씀을 반복했습니다. 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 그 안에서 성도가 맛보는 기쁨 등을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같은 말을 반복해서 쓰는 것이 자신에게는 조금도 수고로움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얼마든지 반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바울은 그렇게 하는 것이 빌립보 교회 교인들에게 안전하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이 전에 듣지 못하던 메시지를 전한다면 그건 이단일 것입니다. 우리가 전할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과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 외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늘 듣던 그 설교, 늘 듣던 예수님 이야기를 반복해서 듣는 것이 영적으로 안전합니다.
그렇다면 새해가 되어도 달라지는 것도 없이 모든 것이 동일하다면 그 답답함은 어떻게 극복하면 좋겠습니까? 하나도 바뀐 것이 없어도 모든 것이 새롭게 바뀐 것처럼 느끼면서 기쁘게 살아가는 비결이 딱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 자신이 바뀌는 것입니다. 우리만 바뀌면 세상 모든 것이 새로워진 것과 동일한 효과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초록색 선글라스를 쓰는 순간 온 세상이 초록색으로 보이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은 그대로인데도 내가 선글라스를 썼기 때문에 온 세상이 새롭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2016년을 맞이하면서 <왜 세상이 변하지 않는가? 왜 환경이 새로워지지 않느냐?>고 원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 자신만 새롭게 바뀌면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새로워질 수 있을까요? 우리를 새롭게 하는 분은 삼위일체 하나님뿐이십니다. 요한계시록 21장 5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고 하셨고, 고린도후서 5장 17절은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했습니다. 또 에스겔서 36장 26-27절을 보면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고 했습니다.
2016년도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다음과 같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그 동안 환경을 바꾸어 새롭게 하소서라고 기도했으나, 이제 다시 기도하오니, 저희 자신을 새롭게 하소서. 저희가 새로워짐으로써 만물을 새롭게 바라보고 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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