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면서 모든 사람들이 <새 사람이 되어 새로운 삶을 살려는 결심>을 했을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새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사람들은 마음을 바꾸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노력을 기울입니다. 예컨대 <아무리 화가 나도 말하기 전에 3초쯤 기다리자>,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어떤 일에든 불가능은 없다>, <나만 힘든 게 아니다>, <눈앞의 이익보다 먼 미래의 더 큰 이익을 추구하자>, <늘 같은 방식으로 하지 말고 새로운 방식으로 도전하자>, <마음을 비우자> 등의 생각을 가지고 살려고 노력합니다.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특별한 환경으로 들어가기도 합니다. 그 대표적 예가 불교의 템플 스테이입니다. 일상을 떠나 조용한 산사에 몸을 담고 며칠 동안 마음 다스리기를 합니다. 시끄러운 소음을 떠나 산사 처마 아래의 풍경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마음이 맑아지는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자신을 한 걸음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명상이나 심리학적인 수련은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이란 마음만 가진 존재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은 마음 다스리기만으로 변화되는 존재가 아닙니다. 사람에게는 마음보다 더 깊은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영혼입니다.
성경은 이 사실을 잘 말씀합니다. 신약성경 에베소서 4장 17절에 보면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 <마음>이란 헬라어로 <누스>를 말하는데, ‘생각, 마음’이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영어로는 mind입니다. 그 다음 18절에는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라고 했는데, 여기의 <마음>은 헬라어로 <카르디아>, 즉 정서를 말합니다. 영어로는 heart라고 번역됩니다. 그런데 새 사람이 되는 비결을 말씀하는 23절에는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라고 했는데, 여기 <심령>이란 헬라어로 <프뉴마 투 누스>라고 되어 있고, 이것은 <마음의 영>이란 뜻입니다. 영어로는 <spirit of mind>라고 했습니다. 즉 마음의 배후에는 영혼이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보다 더 깊은 곳에 마음을 움직이는 영혼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이나 정서를 다스리는 것만으로는 새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 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영혼이 변해야 비로소 새 사람이 됩니다.
그렇다면 영혼은 어떻게 새로워질 수 있을까요? 영혼은 사람의 노력으로는 새로워지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심령을 새롭게 하여>란 능동적 표현 대신 <심령이 새롭게 되어>라고 수동형으로 쓴 것입니다. 우리 영혼은 심리학적 방법이나 명상으로 새로워지지 않습니다. 이런 것들은 그저 마음의 일부를 다스릴 뿐입니다. 마음의 근본인 영혼을 새롭게 하는 분은 오직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뿐입니다. 사람의 영혼은 성령님께서 도와주실 때 새롭게 되고, 영혼이 새롭게 되어야 마음과 정서가 새롭게 되고,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새로운 말과 행동이 이루어져 새 삶을 살게 됩니다.
새 사람이 되고자 하십니까? 그래서 마음 다스리기에 힘을 쓰고 있습니까? 그 보다 중요한 기도를 하십시오. 그리스도인은 마음 다스리기나 명상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의 손길이 영혼에 임할 것입니다. 2016년에는 우리 모두 새 사람으로 살아가길 기원합니다.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특별한 환경으로 들어가기도 합니다. 그 대표적 예가 불교의 템플 스테이입니다. 일상을 떠나 조용한 산사에 몸을 담고 며칠 동안 마음 다스리기를 합니다. 시끄러운 소음을 떠나 산사 처마 아래의 풍경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마음이 맑아지는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자신을 한 걸음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명상이나 심리학적인 수련은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이란 마음만 가진 존재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은 마음 다스리기만으로 변화되는 존재가 아닙니다. 사람에게는 마음보다 더 깊은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영혼입니다.
성경은 이 사실을 잘 말씀합니다. 신약성경 에베소서 4장 17절에 보면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 <마음>이란 헬라어로 <누스>를 말하는데, ‘생각, 마음’이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영어로는 mind입니다. 그 다음 18절에는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라고 했는데, 여기의 <마음>은 헬라어로 <카르디아>, 즉 정서를 말합니다. 영어로는 heart라고 번역됩니다. 그런데 새 사람이 되는 비결을 말씀하는 23절에는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라고 했는데, 여기 <심령>이란 헬라어로 <프뉴마 투 누스>라고 되어 있고, 이것은 <마음의 영>이란 뜻입니다. 영어로는 <spirit of mind>라고 했습니다. 즉 마음의 배후에는 영혼이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보다 더 깊은 곳에 마음을 움직이는 영혼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이나 정서를 다스리는 것만으로는 새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 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영혼이 변해야 비로소 새 사람이 됩니다.
그렇다면 영혼은 어떻게 새로워질 수 있을까요? 영혼은 사람의 노력으로는 새로워지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심령을 새롭게 하여>란 능동적 표현 대신 <심령이 새롭게 되어>라고 수동형으로 쓴 것입니다. 우리 영혼은 심리학적 방법이나 명상으로 새로워지지 않습니다. 이런 것들은 그저 마음의 일부를 다스릴 뿐입니다. 마음의 근본인 영혼을 새롭게 하는 분은 오직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뿐입니다. 사람의 영혼은 성령님께서 도와주실 때 새롭게 되고, 영혼이 새롭게 되어야 마음과 정서가 새롭게 되고,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새로운 말과 행동이 이루어져 새 삶을 살게 됩니다.
새 사람이 되고자 하십니까? 그래서 마음 다스리기에 힘을 쓰고 있습니까? 그 보다 중요한 기도를 하십시오. 그리스도인은 마음 다스리기나 명상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의 손길이 영혼에 임할 것입니다. 2016년에는 우리 모두 새 사람으로 살아가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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