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욕망 ②의심 ③불평 ④교만 ⑤두려움
겸손할 줄 모르는 것이 교만이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무엇일까? 성경은 그것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우상숭배와 불평과 교만이라고 한다. 하나님께서 교만을 싫어하실 뿐 아니라 교만하면 내가 망한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사탄은 인간에게 <교만으로 나아가도록>끝없이 부추긴다. 그리고 인간은 이 부추김에 가장 취약하다.
잠언 16장 18절은 이렇게 말한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잠언 18장 12절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성경은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다. <교만>은 인간을 패망으로 이끌어간다. 우선 성경 안에서 그 실례(實例)를 찾아보자.
이집트의 바로(왕)를 생각해보자. 그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억압하고 착취한다. 자신이 소중한 인간이라면 이스라엘 사람들도 <소중한 인간>이다. 그러나 바로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심하게 학대한다. 인간으로서의 소중함과 존엄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중노동으로 몰고 간다. 이스라엘의 조상 중 한 사람이던 요셉이 애굽의 총리대신으로 재임하면서 애굽을 7년 대흉년으로부터 구해낼 뿐 아니라 애굽 국민들에게 선정(善政)을 베풀었던 그 아름도운 역사를 전혀 기억하지 아니한다. 교만한 사람의 특징이 『背恩忘德』(배은망덕)이라는 것을 이집트의 왕 바로가 아주 잘 보여준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을 바로에게 보내신다. 교만한 마음을 반성하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유(自由)를 허용하라고 충고하고 권면한다.
이 충고는 인간 모세의 충고가 아니고 실은 <하나님의 명령>이시다. 인간이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바로는 번번이 약속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기만한다. 그 결과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열 가지 재앙>이 이집트 땅에 차례로 내리게 된다. ‘열 가지 재앙’이라 했으니 바로(왕)가 하나님의 명령(권면/충고)을 열 번이나 무시하고 비웃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약속한 바’를 열 번이나 번복하였다는 뜻이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이집트 전역에 열 가지 재앙이 차례대로 내리게 된 것이다. 그 내용이 무엇이던가?
피·개구리·이·파리·악질·독종·우박·메뚜기·흑암 그리고 〈처음 난 것들의 죽음〉 이다.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인 〈처음 난 것들의 죽음〉 에 대하여 출애굽기 12:29~30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밤중에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난 것 곧 왕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와 가축의 처음 난 것을 다 치시매 그 밤에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모든 애굽 사람이 일어나고 애굽에 큰 부르짖음이 있었으니 이는 그 나라에 죽임을 당하지 아니한 집이 하나도 없었음 이었더라.”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다〉는 성경 말씀 그대로 열 가지 재앙을 차례로 거듭 겪으면서 이집트 나라는 초토화 되었다.
그러고도 바로(왕)는 겸손 할 줄 모른다. 여전히 교만하다. 그는 이집트군의 정예 군대를 이끌고 출애굽하여 이미 상당한 거리로 벗어나고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의 뒤를 추격하였다.
이스라엘은 홍해를 육지 같이 걸어서 건너갔다. 하나님께서 홍해물의 위, 아래를 막으시면서 강바닥에 길을 내어 주셨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노래하고 춤추면서 홍해를 육지같이 건널 수 있었다. 겸손할 줄 모르고 끝까지 교만에 갇혀 있던 바로(왕)와 이집트 정예 군대는 이스라엘의 뒤를 추격하다가 홍해에서 몰살당하였다. 통치자 한 사람의 끝없는 교만 때문에 이집트 전 국민들 집집마다 장남이 죽어 나가고 모든 가축의 초태생(初胎生)이 죽어 나갔다. 집집마다 시신을 치우고 장례를 치루느라고 애굽의 땅과 하늘에는 ‘통곡 소리’가 뒤 덮였다.
교만의 폐단은 이렇게 무섭다. 하나님께서는 ‘교만’을 용납하지 않으신다.
너무 교양 많고(?) 지체 높은(?) 사람이 될려고 하지 말고 〈원초적이고 순전한 어린아이 같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자. 자신이 너무 고상하고 대단하다고 착각하면 점점 교만해질 위험성이 크다. 그리되면 무어보다 ‘은혜’를 못 받는다. 그리스도인이 은혜를 못 받으면 숨이 막혀 살 수가 없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는 것이다. 하늘로서 내려오는 은혜(heavenly grace)이다. 주일마다 은혜를 받는 것이다. 예배시간마다 은혜를 받는 것이다. 신자는 은혜를 못 받으면 살 수가 없다. 숨이 막힌다. 겸손해야 은혜를 받는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평강을 누리면서 행복하게 살기를 참으로 바라신다. 그래서 우리더러 겸손하게 살라고 하신다(미가6:8, 벧전5:5). 때로는 고난을 경험시켜가면서 우리를 겸손케 하신다(시 119:67,71).
잠언 16장 18절은 이렇게 말한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잠언 18장 12절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성경은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다. <교만>은 인간을 패망으로 이끌어간다. 우선 성경 안에서 그 실례(實例)를 찾아보자.
이집트의 바로(왕)를 생각해보자. 그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억압하고 착취한다. 자신이 소중한 인간이라면 이스라엘 사람들도 <소중한 인간>이다. 그러나 바로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심하게 학대한다. 인간으로서의 소중함과 존엄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중노동으로 몰고 간다. 이스라엘의 조상 중 한 사람이던 요셉이 애굽의 총리대신으로 재임하면서 애굽을 7년 대흉년으로부터 구해낼 뿐 아니라 애굽 국민들에게 선정(善政)을 베풀었던 그 아름도운 역사를 전혀 기억하지 아니한다. 교만한 사람의 특징이 『背恩忘德』(배은망덕)이라는 것을 이집트의 왕 바로가 아주 잘 보여준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을 바로에게 보내신다. 교만한 마음을 반성하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유(自由)를 허용하라고 충고하고 권면한다.
이 충고는 인간 모세의 충고가 아니고 실은 <하나님의 명령>이시다. 인간이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바로는 번번이 약속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기만한다. 그 결과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열 가지 재앙>이 이집트 땅에 차례로 내리게 된다. ‘열 가지 재앙’이라 했으니 바로(왕)가 하나님의 명령(권면/충고)을 열 번이나 무시하고 비웃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약속한 바’를 열 번이나 번복하였다는 뜻이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이집트 전역에 열 가지 재앙이 차례대로 내리게 된 것이다. 그 내용이 무엇이던가?
피·개구리·이·파리·악질·독종·우박·메뚜기·흑암 그리고 〈처음 난 것들의 죽음〉 이다.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인 〈처음 난 것들의 죽음〉 에 대하여 출애굽기 12:29~30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밤중에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난 것 곧 왕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와 가축의 처음 난 것을 다 치시매 그 밤에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모든 애굽 사람이 일어나고 애굽에 큰 부르짖음이 있었으니 이는 그 나라에 죽임을 당하지 아니한 집이 하나도 없었음 이었더라.”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다〉는 성경 말씀 그대로 열 가지 재앙을 차례로 거듭 겪으면서 이집트 나라는 초토화 되었다.
그러고도 바로(왕)는 겸손 할 줄 모른다. 여전히 교만하다. 그는 이집트군의 정예 군대를 이끌고 출애굽하여 이미 상당한 거리로 벗어나고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의 뒤를 추격하였다.
이스라엘은 홍해를 육지 같이 걸어서 건너갔다. 하나님께서 홍해물의 위, 아래를 막으시면서 강바닥에 길을 내어 주셨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노래하고 춤추면서 홍해를 육지같이 건널 수 있었다. 겸손할 줄 모르고 끝까지 교만에 갇혀 있던 바로(왕)와 이집트 정예 군대는 이스라엘의 뒤를 추격하다가 홍해에서 몰살당하였다. 통치자 한 사람의 끝없는 교만 때문에 이집트 전 국민들 집집마다 장남이 죽어 나가고 모든 가축의 초태생(初胎生)이 죽어 나갔다. 집집마다 시신을 치우고 장례를 치루느라고 애굽의 땅과 하늘에는 ‘통곡 소리’가 뒤 덮였다.
교만의 폐단은 이렇게 무섭다. 하나님께서는 ‘교만’을 용납하지 않으신다.
너무 교양 많고(?) 지체 높은(?) 사람이 될려고 하지 말고 〈원초적이고 순전한 어린아이 같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자. 자신이 너무 고상하고 대단하다고 착각하면 점점 교만해질 위험성이 크다. 그리되면 무어보다 ‘은혜’를 못 받는다. 그리스도인이 은혜를 못 받으면 숨이 막혀 살 수가 없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는 것이다. 하늘로서 내려오는 은혜(heavenly grace)이다. 주일마다 은혜를 받는 것이다. 예배시간마다 은혜를 받는 것이다. 신자는 은혜를 못 받으면 살 수가 없다. 숨이 막힌다. 겸손해야 은혜를 받는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평강을 누리면서 행복하게 살기를 참으로 바라신다. 그래서 우리더러 겸손하게 살라고 하신다(미가6:8, 벧전5:5). 때로는 고난을 경험시켜가면서 우리를 겸손케 하신다(시 119:6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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