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교는 믿음보다는 수행을 근거로 삼고 있습니다. 이런 자력종교들은 면벽참선을 하든지 와선을 하든지 나름대로의 수고를 통해서 진리에 이르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믿음을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영이시며 아들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님, 즉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습니다. 믿음 속에는 신뢰, 의지, 위탁, 순종 등이 모두 망라됩니다. <주님, 제가 믿습니다!>라고 고백한다는 것은 그 분께 우리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을 말합니다.
믿음은 위대한 능력을 가집니다. 예수님께서는 믿는 자에게 임하는 능력을 마가복음 9장 23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또 누가복음 17장 6절은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대부분의 교인들은 믿음을 <현상을 바꾸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믿음만 있으면 눈앞의 답답한 현실을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믿음은 그러한 힘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마가복음 9장 23절의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는 말씀은 변화산에서 내려오신 예수님께서 귀신들린 아이를 데리고 온 아버지에게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믿으면 아들 속에 임한 귀신이 쫓겨나고 건강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었고, 실제로 그대로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구절에 익숙합니다. 믿으면 오병이어의 기적도 일어나고, 믿으면 바다 가운데도 길이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믿음에는 이와는 색다른 또 다른 능력이 있습니다. 그것은 <현상을 받아들이는 힘>입니다.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비스가 산꼭대기에서 바라보기만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 모세는 그토록 오랫동안 사모하던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 때문에 상심하여 기도하였습니다. 그것이 본문 23-25절의 내용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거절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 모세의 반응입니다. 모세는 그 후로 단 한 번도 그 일로 다시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내리신 결정대로 순종하였습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것이 모세의 믿음이었습니다.
목회를 하다보면 믿음으로 현실을 바꾼 이들의 간증을 들을 때가 많습니다. 그런 간증은 듣는 이들에게 기쁨과 부러움을 함께 줍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깊은 감동을 주는 것은 주어진 형편을 믿음으로 그대로 받아들여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의 이야기입니다. 다른 이들이라면 하루도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감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울 사도가 그런 예라고 하겠습니다. 바울 사도는 감옥 밖에서도 자유인이었고, 감옥 안에서도 자유인이었습니다. 감옥의 담장이 그를 가둘 수 없었습니다. 어디서나 찬송하고 기도했으며, 복음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그는 빈궁에 처할 줄도 알았고, 풍부함에 처할 줄도 알았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승리하는 일체의 비결을 터득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진정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참 믿음의 소유자가 되길 원합니다. 그리하여 <현상을 바꾸는 능력>과 <현상을 받아들이는 능력> 두 가지를 모두 경험하길 원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와 기쁨으로 살아가는 참 믿음의 사람이 되길 소망합니다.
믿음은 위대한 능력을 가집니다. 예수님께서는 믿는 자에게 임하는 능력을 마가복음 9장 23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또 누가복음 17장 6절은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대부분의 교인들은 믿음을 <현상을 바꾸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믿음만 있으면 눈앞의 답답한 현실을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믿음은 그러한 힘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마가복음 9장 23절의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는 말씀은 변화산에서 내려오신 예수님께서 귀신들린 아이를 데리고 온 아버지에게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믿으면 아들 속에 임한 귀신이 쫓겨나고 건강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었고, 실제로 그대로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구절에 익숙합니다. 믿으면 오병이어의 기적도 일어나고, 믿으면 바다 가운데도 길이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믿음에는 이와는 색다른 또 다른 능력이 있습니다. 그것은 <현상을 받아들이는 힘>입니다.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비스가 산꼭대기에서 바라보기만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 모세는 그토록 오랫동안 사모하던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 때문에 상심하여 기도하였습니다. 그것이 본문 23-25절의 내용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거절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 모세의 반응입니다. 모세는 그 후로 단 한 번도 그 일로 다시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내리신 결정대로 순종하였습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것이 모세의 믿음이었습니다.
목회를 하다보면 믿음으로 현실을 바꾼 이들의 간증을 들을 때가 많습니다. 그런 간증은 듣는 이들에게 기쁨과 부러움을 함께 줍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깊은 감동을 주는 것은 주어진 형편을 믿음으로 그대로 받아들여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의 이야기입니다. 다른 이들이라면 하루도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감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울 사도가 그런 예라고 하겠습니다. 바울 사도는 감옥 밖에서도 자유인이었고, 감옥 안에서도 자유인이었습니다. 감옥의 담장이 그를 가둘 수 없었습니다. 어디서나 찬송하고 기도했으며, 복음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그는 빈궁에 처할 줄도 알았고, 풍부함에 처할 줄도 알았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승리하는 일체의 비결을 터득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진정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참 믿음의 소유자가 되길 원합니다. 그리하여 <현상을 바꾸는 능력>과 <현상을 받아들이는 능력> 두 가지를 모두 경험하길 원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와 기쁨으로 살아가는 참 믿음의 사람이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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