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 자라기 위해서는 빛과 열이 함께 있어야 한다. 빛이 있으면서 열이 없으면 차가운 한겨울 햇빛처럼 물을 얼게 만들고 나뭇잎을 떨어지게 하고 땅을 꽁꽁 얼게 만든다. 이렇게 생명이 자라지 못하게 하는 이유는 빛이 냉기와 결합했기 때문이다. 빛이 따뜻한 열과 결합할 때에만 봄 철, 여름철의 햇빛처럼 생명을 자라게 하며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이다. 빛과 열이 함께 있어야 하는 것처럼 진리와 사랑은 항상 함께 있어야 한다. 진리는 빛, 총명, 능력, 힘이라고 할 수 있고, 사랑은 열, 따뜻함, 배려, 선함이라고 할 수 있다. 진리를 아는 총명하고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 그 속에는 사랑, 따뜻함, 열정이 없는 사람이 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뛰어난 실력과 총명함으로 사람위에 군림하고 지배하며 사람을 두렵게 만들고 옥죄어서 자유와 기쁨을 사라지게 하는 무서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고린도 전서 13장 13절에 ‘믿음, 소망, 사랑은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랑이 제일이라는 말은 사랑이 최고라는 말일 수도 있지만 사랑이 목적이고 시작이고 생명이라는 말이다. 믿음과 소망은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며, 사랑을 이루는 수단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은 항상 사랑인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삶과 주변을 살아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상황에 있든지 사랑에서 나오는 진리이어야 하며 진리를 통해서 사랑이 나타나야 할 것이다.
요한복음에는 예수께서 날 때부터 맹인인 사람의 눈을 뜨게 하신 사건이 나온다. 제자들은 ‘날 때부터 맹인으로 태어난 것은 부모나 혹은 자신의 죄 때문이다.’라고 자신이 알고 있는 진리를 말한다. 그 속에는 따뜻함이 없었고 그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이 있었을 뿐이다. 날 때부터 맹인으로 살아야하는 불행처럼 보이는 이 삶을 보면서 원인을 찾고 책임질 사람을 찾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태도는 모두의 삶을 더 불행하고 힘들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순간에 예수께서는 “이 사람이 맹인으로 태어난 것은 누구의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다.”하시며 원인이나 책임질 대상을 찾는 것이 아니라 맹인의 불행해 보이는 삶 속에서 사랑하고 선을 행하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인 것을 말씀하신다. 눈이 보이지 상태에서도 어떻게 사랑할까, 어떻게 선을 행할까를 생각하고 행동할 때 불행의 원인과 원망의 대상은 사라지고 삶은 생기를 얻으며 주변은 밝아지고 따뜻해지게 되는 것이다. 모든 상황에서 사랑과 선을 행하려는 마음으로 그 방법을 찾는 것이 어두운 눈을 뜨게 만드는 힘인 것이다.
진리란 ‘이것이 옳다. 이것이 맞다’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진리란 세상을 밝게 만드는 빛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시대나 진리를 아는 사람이 세상을 밝게 만든다. 불을 발견한 사람, 전구를 발명한 사람, 인체나 과학의 비밀, 전화기를 발명한 사람, 영적인 비밀 등 남들이 모르는 비밀을 아는 사람이 시대를 밝게 만들었다. 그리고 비밀을 발견한 사람은 힘 있는 자가 되며 권력과 부를 소유한 지배자로 살아간다.
진리자체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며 생명이 아니라 생명을 담는 그릇인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진리를 가지고 사랑과 선을 행하며 세상을 밝고 따뜻하게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진리와 비밀을 알아서 힘과 권력을 소유했다면 그것으로 다 이룬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은 속에 반드시 따뜻하고 선을 행하는 사랑이 있어야 자신도 살고 다른 사람도 살리는 생명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만약 영적인 진리를 알고 있는 종교지도자나 수많은 제자를 둔 선생이나 부자나 권력자나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따뜻함과 선을 행하려는 마음이 없으면 그 사람은 영혼이 없는 육체처럼 생명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진리와 사랑을 함께 갖추어 밝으면서 따뜻하며 나로 인해 상대방도 밝고 따뜻하게 만드는 진리와 사랑을 모두 갖춘 균형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고린도 전서 13장 13절에 ‘믿음, 소망, 사랑은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랑이 제일이라는 말은 사랑이 최고라는 말일 수도 있지만 사랑이 목적이고 시작이고 생명이라는 말이다. 믿음과 소망은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며, 사랑을 이루는 수단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은 항상 사랑인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삶과 주변을 살아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상황에 있든지 사랑에서 나오는 진리이어야 하며 진리를 통해서 사랑이 나타나야 할 것이다.
요한복음에는 예수께서 날 때부터 맹인인 사람의 눈을 뜨게 하신 사건이 나온다. 제자들은 ‘날 때부터 맹인으로 태어난 것은 부모나 혹은 자신의 죄 때문이다.’라고 자신이 알고 있는 진리를 말한다. 그 속에는 따뜻함이 없었고 그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이 있었을 뿐이다. 날 때부터 맹인으로 살아야하는 불행처럼 보이는 이 삶을 보면서 원인을 찾고 책임질 사람을 찾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태도는 모두의 삶을 더 불행하고 힘들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순간에 예수께서는 “이 사람이 맹인으로 태어난 것은 누구의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다.”하시며 원인이나 책임질 대상을 찾는 것이 아니라 맹인의 불행해 보이는 삶 속에서 사랑하고 선을 행하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인 것을 말씀하신다. 눈이 보이지 상태에서도 어떻게 사랑할까, 어떻게 선을 행할까를 생각하고 행동할 때 불행의 원인과 원망의 대상은 사라지고 삶은 생기를 얻으며 주변은 밝아지고 따뜻해지게 되는 것이다. 모든 상황에서 사랑과 선을 행하려는 마음으로 그 방법을 찾는 것이 어두운 눈을 뜨게 만드는 힘인 것이다.
진리란 ‘이것이 옳다. 이것이 맞다’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진리란 세상을 밝게 만드는 빛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시대나 진리를 아는 사람이 세상을 밝게 만든다. 불을 발견한 사람, 전구를 발명한 사람, 인체나 과학의 비밀, 전화기를 발명한 사람, 영적인 비밀 등 남들이 모르는 비밀을 아는 사람이 시대를 밝게 만들었다. 그리고 비밀을 발견한 사람은 힘 있는 자가 되며 권력과 부를 소유한 지배자로 살아간다.
진리자체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며 생명이 아니라 생명을 담는 그릇인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진리를 가지고 사랑과 선을 행하며 세상을 밝고 따뜻하게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진리와 비밀을 알아서 힘과 권력을 소유했다면 그것으로 다 이룬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은 속에 반드시 따뜻하고 선을 행하는 사랑이 있어야 자신도 살고 다른 사람도 살리는 생명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만약 영적인 진리를 알고 있는 종교지도자나 수많은 제자를 둔 선생이나 부자나 권력자나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따뜻함과 선을 행하려는 마음이 없으면 그 사람은 영혼이 없는 육체처럼 생명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진리와 사랑을 함께 갖추어 밝으면서 따뜻하며 나로 인해 상대방도 밝고 따뜻하게 만드는 진리와 사랑을 모두 갖춘 균형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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